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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활용과 회생사이

”그날 밤 우리는 전주라는 큰 마을에 도착했었는데 이곳은 지난날 왕이 살던 곳으로서 지금은 전라도 관찰사가 주재하고 있었다 –중략- 전주는 바다로부터 하룻길이었지만 마을이 컸고 큰 장이 서고 있었다.“ 1668년에 간행된 <하멜표류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하멜이 기록한 ‘큰 장’은 오늘의 남부시장이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도 남부시장의 풍경이 있다. ”미처 헤아려 챙길 사이도 없는 갖가지 물화들이 길 양편으로 쩍 벌여 내놓였는데 그 길이가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오릿길 행보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잣거리 아래로 흘러가는 개천은 쪽빛으로 맑아서 길 위에선 저자가 물빛에 드리워 또한 오릿길 저자를 이루니 그 분주함이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당시 국가가 주도해 만든 시전은 서울의 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전주 같은 대형거점장에서도 열렸다. 호남권 최대 물류 집산지이자 교역의 중심으로서 전주의 기능은 8개의 도(道)가 13개로 개편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남문(풍남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남문 밖 남문시장과 동문 밖 동문시장, 북문 밖 북문시장과 서문 밖 서문시장을 통해서다. 사람들은 이를 ‘남밖장’ ‘동밖장’식으로 불렀다. 남문시장인 남밖장이 지금의 남부시장이다. 전주시장의 중심이었던 남문시장은 1905년 정기 공설시장으로 개설됐다. 이후 일본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몰려들면서 다른 장들은 쇠퇴하고 남문시장으로 통합됐다. 남문시장이 ‘남부시장’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36년 시장을 개축하면서다. 당시 개축된 규모는 5천 8백여 평. 지금보다도 컸다. 이용객들도 많아 일제강점기에 쓰인 <전주부사>에는 1년 동안 시장을 이용한 사람이 186만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부시장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전북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이었다. 전성기였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쌀을 사러 오는 상인들이 몰려 남부시장에서 전국 시세가 결정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전통시장의 상권은 오래전에 잠식당했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은 소멸했거나 살아남았다 해도 쇠퇴의 길에서 허덕이고 있다. 전주의 전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공간을 바꾸고, 서비스 환경을 새롭게 갖추는 등 회생을 위해 분투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과 편리성, 서비스로 무장한 대형마트의 공세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전통시장 살리기 전략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돌아보니 전통시장을 관광자산으로 활용하는 자치단체가 많아졌다. 이들 사이에서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엇갈린다. 성공 사례는 지역과 그 시장만의 특성을 차별화한 경우가 많다. 전통시장을 살리는데는 좋은 선례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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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4.25 18:23

‘새만금 잼버리’와 한반도 평화

지구촌 청소년들의 축제인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3일로 ‘D-100일’을 맞았다. 새만금 세계잼버리(8월 1일~12일)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D-100일 기념행사’ 는 27일 전북도청에서 열린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행사를 1년 연기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 새만금 잼버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지구촌 170여 개국에서 4만3000여명의 청소년이 참가할 예정이다. 지구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고, 새만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조직위원회는 ‘새만금이 세계 청소년들의 지속가능한 자연‧환경의 중심지, 더불어 사는 지구촌 평화운동의 거점, 행복한 가족 운동의 성장지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년 행사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이벤트나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2017년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새만금 유치가 확정된 직후 조직위원회는 세계인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김윤덕 조직위원장은 “북한 청소년과 청소년 지도자들을 초청해 새만금이 민족 화합과 인류평화의 새로운 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과연 북한이 참가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컸지만 기대도 있었다. 남과 북의 청소년들이 순수하게 만나 우애를 나누게 된다면 경색된 남북관계와 국제정세를 평화와 화해, 협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했고, 우리 정부의 제의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까지 성사됐다는 점에서 기대치는 조금씩 커졌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서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 때도 초청장을 보내면서 북한 청소년 참가에 공을 들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다. 그나마 이번에는 계획단계에 그쳤으니 아쉬움이 더 크다. 조직위원회는 북한 청소년 초청 계획이 어긋나면서 한국스카우트연맹이 매년 개최해온 ‘평화통일 체험활동, 휴전선 155마일 횡단’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이에 따라 조직위는 대안으로 우크라이나‧튀르키예 등 전쟁‧재난지역의 청소년, 그리고 국내 탈북 청소년 초청 프로젝트를 역점 추진하고 있다. 또 참가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유스포럼에서 지구촌 환경‧평화 실천 선언문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한반도와 지구촌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벤트로는 많이 부족하다. 새만금이 한반도와 지구촌의 미래를 위한 평화운동의 새로운 거점으로 기억될 수 있는 획기적인 평화통일 프로젝트가 아쉽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4.24 16:31

환골탈태해야 할 민주당

그간 3차례나 진보 대통령을 만든 호남인들은 민주당의 대선 경선과 당대표 경선 때 불거진 돈봉투 살포 의혹을 보면서 실망스럽다는 눈치다. "진보는 평등을 우선가치로 내세우면서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와 각종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간 대선 경선후보 선출 때나 당 대표 선출 때 돈을 살포했다는 사실이 특정인의 녹취록이나 공소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당의 존립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대선 경선 때 민주당 대의원과 진성당원 30%를 차지하는 호남지역의 표심장악을 위해 돈을 뿌려야 한다는 식으로 선거전략을 수립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 지역 당원들은 "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민주투사들의 고귀한 넋과 희생정신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면서 "민주당 후보가 돈을 뿌려서 민심을 사려고 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불법행위"라고 힐난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선 경선을 앞둔 2021년 2월 호남지역 공략을 위해 20억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한테 요구하자 유 전직무대리는 지난해 4∼8월 천하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로부터 현금 8억4700만원을 건내 받고 김 부원장에게 최종적으로 6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이 대표가 여론조사 결과 선두를 달렸지만 호남 출신의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총리에 비해 호남지지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호남내 지지세 확대를 위해 지지모임이나 연이어 발대식을 가졌다는 것. 검찰은 김 부원장이 이 대표 캠프에서 조직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에 주목,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받은 돈 6억 원이 쓰인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이정근 사무부총장 녹취록에서 밝혀진 돈 봉투 살포의혹은 민주당이 수권정당 이라기 보다는 쩐의 정당 같다면서 실망한 사람이 많다. 송영길을 당 대표로 만들려고 윤관석 의원 이정근 사무부총장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등이 9400만원의 현금을 10여명의 의원과 핵심조직원에게 나눠줬다는 것. 정성호 의원은 300만원은 식대수준의 돈으로 별것 아니다고 의미를 축소했다가 여론으로부터 거센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최근 조합장 선거에서 10만원만 받아도 구속된 마당에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살포하고도 아무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 것은 법 앞의 평등을 짓밟는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그간 각종 선거때마다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호남인들은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돈을 뿌린 것에 실망하면서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는 반응이다. 돈으로 표를 사서 대표가 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틀을 흔든 불법행위인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어물쩍하게 꼬리자르기식으로 넘기려 했다가는 유권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음참마속의 심정으로 돈선거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 민주당은 호남인의 자존심을 손상했기 때문에 먼저 각성해야 한다. 내년 총선 때 그에 상응하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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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4.23 17:48

‘바가지’ 골프장의 그늘

지난 주말 중앙지 인터넷신문에 1면 톱으로 실린 ‘골프장 그늘집’ 의 역대급 바가지요금과 관련한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골프를 치다가 출출하면 중간에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는 쉼터다. 수도권 그늘집에서 먹는 음식값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임에도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어 이용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사례는 수도권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골프 동호인들 사이에서 천정부지로 오른 그린피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얼마 전 도내서도 평소 15만 원 하던 골프장이 기습적으로 2만 원을 올려 눈총을 받고 있다. 이같은 ‘배짱 영업’ 은 한두 번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국회 국감서도 이 문제가 도마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 10만 원 넘는 돈가스 탕수육은 물론 1000원대 막걸리를 1만 2000원에 팔거나 시중의 10배가 넘는 떡볶이를 통해 폭리를 취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재앙 수준의 코로나가 덮쳐 자영업 소상공인들은 지금도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골프장들은 유례없는 호황으로 사상 최고치 이익을 냈다. 코로나 비상 조치로 다중집합시설 방문은커녕 해외여행도 막히자 사람들은 청정 지역으로 인식된 골프장으로 몰렸다. 젊은 MZ세대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며 지난해 전국 501개 골프장 방문객이 4천673만 명으로 전년 대비 12% 늘었다. 골프 인구도 515만 명으로 1년 새 46만 명이 급증했다. 코로나 특수에 따른 영업 이익도 평균 54% 늘어난 건 물론이다. 여기에다 개별소비세와 부가세까지 면제받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 로 불릴 정도다. 코로나가 서서히 풀리는 데도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자 고질적인 부킹 전쟁과 가격 상승의 문제점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해외 골프도 점차 늘고 젊은 층 일부는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발길을 끊었는데도 호황 모드는 꺾일 줄 모른다. 골프장들은 그런 점을 틈 타 코로나 때도 대중 골프장 그린피를 평균 20% 인상하고. 카트 사용료와 캐디피도 1만∼2만 원씩 올렸다. 뿐만 아니라 부수입 또한 알뜰하게 챙겨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샤워 시설 이용이 불가능해지자 이에 따른 수도세, 전기세, 인건비까지 아꼈다. 이렇게 코로나 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도 이용객에 대한 서비스 질은 떨어졌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부킹 갑질, 비싼 음식값과 함께 직원 불친절, 잔디 부실 관리는 단골 지적 사항이다. 단체 예약 콜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임박해서 OK 사인을 보내 낭패보기 일쑤다 1인당 20만 원이 넘는 골프 비용이 부담스러워 점심은 골프장 외곽 식당에서 대충 때우기도 한다. 그만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상황에서 또다시 그린피를 올리는 건 고객을 ‘봉’ 으로만 여기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코로나의 혹독한 시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최대 호황기를 노려 장삿속 주판알만 튕긴 셈이다. 불만이 가득찬 이용객들의 부메랑이 우려된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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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4.20 18:24

정주영의 5백원 지폐와 새만금

며칠 전 햇감자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던 김제시 광활면(廣活面)은 김제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는 곳이다. 이름만 봐서는 막힌 데가 없이 매우 넓을 것 같은데 사실은 아주 작은 면이다. 1920년대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에 의해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면 전역이 간척사업으로 생겨났다. 쌀이 넘쳐나는데 구태여 무슨 간척사업을 했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반만년 동안 굶주렸던 일반 서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간척사업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나라 전체 농지 중 간척농지는 무려 11만 2000ha(1120㎢)로 서울시의 두배에 달한다. 이는 전체 농경지의 7%가 넘는 수치다. 피땀을 흘려 조금씩 농경지를 늘려간 것이 최근 100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과정에서 정치공학적으로 시작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새만금간척사업도 어쨋든 처음엔 전체를 농경지로 쓸 예정이었다. 이후 계획을 변경해 30%만 농경지로 사용하고 70%는 산업단지나 관광단지 등으로 활용키로 했다. 간척사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서산에 있는 천수만 간척지다. 당시 7.7㎞에 달하는 방조제를 쌓던 중 9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 초당 8m의 거센 조류 때문에 승용차 크기만 한 커다란 돌을 퍼부어도 물살을 버텨내지 못했다. 고심하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해냈는데 고철로 쓰기 위해 들여온 대형 유조선(23만t)을 방조제 구간에 가라앉히는 공법이었다. 소위 정주영 공법인데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타임’에도 소개됐다. 정경유착 등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으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도전정신은 조선소 건설 때 최고조에 달한다. 조선소를 짓기위해 영국 최고 은행이던 바클레이은행과 큰 금액의 차관도입을 협의했는데 은행측은 손사래를 저었다. 이에 정 회장은 1971년 9월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박 컨설턴트 회사인 애플도어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그 또한 고개를 가로젓자 정 회장은 지갑에서 지폐 한장을 꺼내 들었다. 거북선 그림이 그려져있던 500원짜리 지폐였다. 400년전 이미 정교한 큰 배를 만든 경험이 있다는 메시지였다. 결국 추천서를 받아낸 정 회장은 차관도입을 통해 2년여만에 조선소를 완공해낸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새만금사업이 요즘 산업생태계의 메카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지난 8년간 100만평에 불과했던 산업단지 분양면적이 최근 1년동안에 무려 120만평이 매각됐다고 한다. 산업단지의 경우 전체 9개공구 약 540만평중 1, 2, 5, 6단지가 사실상 분양완료되고 3, 4, 7, 8지구 약 300만평은 빨라야 향후 2년후부터나 공급 가능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지금까지 33년 계속된 새만금사업이 개발완료되려면 앞으로도 20년 남짓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차전지 특화단지는 도약의 첫 걸음인데 향후 정주영의 500원 지폐로 상징되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글로벌 회사들이 새만금지역으로 몰려올 날도 이젠 머지않아 보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4.19 15:35

세계유산 되는 혁명의 역사

동학농민혁명 역사 복원은 2004년 제정된 ‘동학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시작이다. 특별법 제정의 의미와 성과는 적지 않았다. 진실이 왜곡된 갑오년 역사 위에 ‘역도’의 오명을 쓰고 숨죽여 묻혀 있던 농민군들에게는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고, 기념관과 기념탑 건립 등 역사조명 사업이 힘을 얻게 되었으며 혁명의 진원지인 전북을 중심으로 치중되었던 동학농민혁명사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특별법 제정으로 기대되었던 농민군의 명예회복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특별법으로 출범한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5년여 동안의 활동으로 찾아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3,644명. 이들은 유족 10,563명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발굴되지 않은 참여자는 더 있었다. 2009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나섰다. 2010년부터 찾아낸 참여자만도 3백 명이 넘었다. 다행히 2018년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다시 출범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위탁된 이 위원회 활동으로 참여자 발굴이 이어져 지금은 3,745명 참여자와 12,962명 유족이 이름을 올렸다. 2019년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제정됐다. 왜곡됐던 역사의 면모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통로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였다. 유적지 발굴과 보존, 세계혁명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작업 등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이 더 절실한 과제로 안겼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그 하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4·19혁명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사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두 기록물의 최종 등재 승인은 5월 10일부터 열리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결정되지만 등재권고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없어 사실상 등재가 확실시 된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등재는 2015년부터 추진해온 일이다. 탈락과 재신청 과정을 거쳐 ‘등재권고’ 판정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과 1895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 185건이다. 농민군과 정부나 관이 생산한 것들이다. <사발통문>은 물론 참여자들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갑오년 상황을 기록한 유생들의 글도 망라됐다. 참여자 편지는 유족이 숨겨 지켜온 덕분에 살아나 빛을 본 결실이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유산 등재는 그 의미가 크다. 세계적인 기록물이 된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이 역사를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세계사의 노정에 들어선 동학농민혁명 역사가 자랑스럽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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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4.18 17:06

보리밭 나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들녘에선 매서운 겨울 한파를 이겨낸 보리가 봄 햇살에 쑥쑥 자라난다. 짙은 초록으로 물든 보리밭은 특별한 봄날의 정취를 만들어낸다.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이다. 하지만 들판에 나가도 보리밭 보기가 쉽지 않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보리를 파종했던 농민들이 어느 때부턴가 ‘돈 안 되는 보리’ 대신 비닐하우스를 세워 채소·원예작물을 가꾸거나 아예 땅을 놀리면서 보리밭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에서 쌀 다음가는 주곡이었던 보리는 이제 경관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지와 농작물을 활용해 조성한 운치 있는 경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농업이다. 이맘때면 고창 학원농장과 제주 가파도·포항 호미곶·보령 천북폐목장 등 전국 곳곳의 청보리밭 명소에 나들이객들이 몰린다. 이 중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고창군 공음면의 학원농장이다. 고창군은 이곳에서 매년 봄 청보리밭 축제를 연다. 올해로 벌써 20회째다. 살랑바람에 파도처럼 넘실대는 청보리밭은 도시인들에게 녹색 쉼터가 된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 보리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가을에 거둬들인 쌀이 바닥나고 추수 후 논에 심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야 했던 봄철, 우리네 삶이 험난한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를 빗대어 부른 용어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혼·분식 장려운동’을 정책적으로 펼쳤다. 흰 쌀밥 대신 보리 등 여러 잡곡을 섞어 먹거나 밀가루 음식을 먹자는 캠페인이다. 표현은 ‘장려’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적인 방법이 다수 동원됐다. 주식인 쌀의 생산량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쌀이 남아도는 시대다. 품종개량과 농업의 기계화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쌀은 어느 순간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과거 ‘혼·분식 장려운동’처럼 ‘쌀 소비촉진 캠페인’이 펼쳐지고는 있지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 주식 쌀은 과잉생산으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고, 보리는 구경거리가 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쌀 소비량이 줄어 쌀값이 폭락한다면 벼농사도 조만간 보리처럼 다른 각도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쌀 과잉생산 문제를 풀기 위해 벼 재배면적 축소 정책에 강도를 높일 게 뻔하다. 결국 농민들도 쌀보다 돈이 더 되는 체험·관광 목적의 벼농사로 눈을 돌릴 지 모른다. 마치 숲체험장처럼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을 ‘농경체험장’으로 꾸며놓고 옛 정취를 갈망하는 도시인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아동·청소년 대상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실제 벼농사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이 곳곳에서 추진됐다. 추수철 황금벌판에서 농경문화 체험을 테마로 열리는 김제 지평선축제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니 그렇게 멀리 볼 일만도 아니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4.17 15:36

홀로아리랑 김지사

단기필마로 지사 자리를 꿰찬 김관영 지사는 취임 9개월을 맞아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려고 전력투구한다. 김 지사가 민주당으로 복당해서 당선되었지만 국민의힘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다 보니까 전북의 현안을 풀어 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원팀이 돼서 김 지사를 돕기로 했던 도내 국회의원들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자도생 하기에 급급, 김 지사 한테 큰 도움이 안된다. 김 지사가 젊은 패기를 앞세워 냉·온탕을 넘나들며 전방위로 뛰지만 역부족일 때가 다반사다. 우군으로 믿었던 도내 국회의원들도 차기 지사자리를 놓고 잠재적 경쟁자 관계라서 신경만 쓰인다. 게다가 국힘 비례대표 출신인 정운천 의원 마저도 4·5 전주을 재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도당위원장과 당협위원장직을 박탈당함에 따라 그간 폼 나게 움직이었던 여야협치가 깨지기 일보직전이다. 지금 김 지사는 대광법, 공공의대법, 특별자치도법 보완 그리고 새만금에 이차전지 기업유치 등을 위해 국회에 살다시피 한다. 서번전번(서울에서 번쩍 전북에서 번쩍)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바삐 뛰고 있다. 성과를 중시하는 김앤장 출신 답게 개인기에 의존해서 여야 의원과 윤석열정부에 매달리고 있다. 다행히도 김 지사의 행정고시 동기들이 아직도 차관급으로 부처에서 실무를 지휘하고 과거 재선 국회의원 하는 동안 함께 호흡했던 여야 의원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줘 큰 힘이 되고 있다. 새만금잼버리 대회에 보이스카우트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키로 하는 등 대회개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도 시도지사 부회장인 김 지사의 믿음과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전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천리길도 마다 않고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 때문에 도정이 예전과 달리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인하대 윤태익 교수의 세가지 성격유형에 따르면 김 지사는 머리로만 하지 않고 가슴과 장형이 믹스된 리더십을 취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창시절부터 공부면 공부, 노래면 노래, 운동이면 운동까지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면서 고시3관왕을 일궈냈기 때문에 자신의 임기동안 전국 꼴찌라는 낙후 꼬리표를 떼겠다는 각오가 남달라 보인다. 한동안 참모진과 출연기관장을 잘못 인선했다는 비난을 샀지만 한종관 전북신보재단 이사장과 최정호 전북개발공사 사장 등 전문가를 임명해 전화위복 됐다는 평가다. 김 지사가 내년 총선 전까지 스스로 성과를 내면서 자신과 호흡이 맞는 인물이 대거 국회의원이 되어야 롱런할 수 있다. 이번 전주을 재선거 결과가 말해주듯 도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해 김지사도 기업유치를 통해 청년일자리 창출에 더 신경써야 한다.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김 지사의 입지도 종전보다 더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때문에 민주당 한테 큰 도움받는 것도 쉽지 않고 정부여당인 국힘 한테도 지원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전북 현안을 타개해 나가려면 도민들의 지지가 더 필요해 보인다. 봄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빛이 피곤해 보이지만 전북발전에 대한 결기 만큼은 강하게 느껴진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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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4.16 16:55

‘강한 경제’ 전주의 조건

우범기 전주시정(市政)의 핵심은 강한 경제를 통한 지역 활력에 있다. 무기력한 지역 정서를 걷어내고 역동적 기운이 꿈틀대는 도시로 바꾸겠다는 청사진이다. 서민 경제를 옥죄는 불합리한 족쇄를 풀고 창조적 파괴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는 취임 직후 재건축 재개발 용적률 완화와 함께 구도심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 대못’ 을 뽑는 데 먼저 칼을 빼들었다. 환경 시민단체와 기득권층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더 나아가 그동안 ‘폭탄 돌리기’ 로 인식될 만큼 논의 자체를 꺼려 했던 종합경기장과 대한방직 개발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성장 동력이란 인식 아래 과감한 추진 의사를 밝혔고, 실제 구조물 철거 등 구체적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다. 이런 모습들이 “이번엔 뭔가 다르다” 는 긍정적 시그널로 비춰짐에 따라 우 시장이 꿈꾸는 미래 전주에 대한 시민 기대도 큰 편이다. 그는 선거 출사표 때부터 전주 대개혁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해왔다. 개혁을 화두로 변화의 거대한 물줄기를 주도하는 배경이다. 선거 표심을 의식해 전임 시장이 망설였던 핵심 현안들이 그의 지휘 아래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셈이다. 변화에 대한 그의 목마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사실상 공약 실현의 성패는 예산 뒷받침인데 그가 기재부에서 잔뼈가 굵은 예산 전문가라는 점이 신뢰도를 높여준다. 선거 때도 그는 유불리를 떠나 폭발성 높은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밝혀 논란을 자초했다. 전임 시장이 눈치만 보며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던 완주전주 통합을 비롯해 전주역세권 개발, 천마지구 개발까지 추진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의 이같은 직진 본능이야말로 무사안일에 젖어 있던 공직 사회에 경종을 주고 있다. 미래 먹거리 개발 못지않게 그가 관심을 쏟는 게 전주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다. 새롭게 조명되는 후백제와 함께 조선왕조의 뿌리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후백제는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 에 이를 포함시켜 고구려 백제 신라 문화권에 버금가는 명예 회복에 부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의 역사와 문화가 작년 1100만 명 이상 다녀간 한옥마을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느냐가 숙제로 남아있다.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돼 13회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전주시가 그 명성에 걸맞는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꽃 피우느냐 여부가 관건이다. 우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도 역설적으로 전주 대변혁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다. 기업 유치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공단 부지가 모자라 첫 단추를 꿰지 못하는 것도 전주의 현실이다. 눈앞 이익에만 급급해 근시안 행정에 안주한 것도 모자라 미래 투자까지 소홀히 한 것은 무능에 가깝다. 리더 한 사람의 가치 판단에 따라 어떤 후유증을 가져오는지 지금 목도하고 있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한 우 시장이 밤낮없이 뛰어야 하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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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4.13 17:34

이용호 김윤덕 간사의 존재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가수 유심초에 의해 가요로 불려지면서 크게 대중화된 곡이다. 앞서 1969년 김광섭 시인은 ‘저녁에’를 발표한 뒤 수화 김환기 화백에게 보낸다. 이 시에서 영감을 얻은 김환기 화백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으로 1970년 한국미술대상을 받으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하나의 시가 그림과 노래로 재탄생된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달 말 명품대통령으로 일컬어지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총괄 회장이 짧은 방한을 했는데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과 리움미술관에서 비공개 만남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국내 명품업계에서 LVMH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유명세는 곧 막대한 영향력과 자본을 의미한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특수에 힘입어 울산 원도심 방문객이 무려 5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울산시 중구는 원도심 유동 인구·상권 데이터 분석 결과, 울산시립미술관 인근 동헌·내아 방문객이 1월 대비 2월에는 554%, 3월에는 464% 증가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는 시립미술관에서 지난 2월 16일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개막한 영향인 것으로 중구는 분석했다. ‘이건희 컬렉션’전시회가 지난해부터 지역을 순회하면서 열리고 있는데 전북 전시는 2024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개최 예정이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전북의 전국적인 순위가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보고 출발해야 한다. 매년 음력 5월 5일 열리는 전주단오제의 경우 관련 예산이 1억2천만원 정도 되는데 유네스코 인류무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는 100억원 가량 된다고 하니 현실에 안주했을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12일 발표한 왕의궁원 프로젝트는 장기간에 투자되는 것이지만 1조가 넘는 것이기에 어쨋든 기대를 갖게한다. 오죽하면 최근 일부 전주시의회 의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삼성가 사람을 만나 제발 진품 하나만 갖다 전주에 전시해라, 그래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고 호소했을까. 한 지방의원은 “홍라희(洪羅喜) 전 리움 미술관장은 부친인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이 전주지법 판사로 재직 중 태어나 이름을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뜻의 ‘라희(羅喜)’로 지었다고 하지 않느냐”며 지역 국회의원들이 좀 더 뛰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도내 문화예술인들뿐 아니라 체육인들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여야 간사인 이용호(남원임실순창), 김윤덕(전주완산) 의원이 포진해 있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왜 성과가 적다고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어쨋든 문화와 체육, 관광 분야에서 여야 간사가 포진한 지금 이용호, 김윤덕 간사가 협치를 통해 확실한 성과로 도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4.12 15:30

판소리 보존과 대중화의 경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무형문화유산까지 확대한 것은 2001년이다. 유네스코는 2000년 가을, 새로운 제도를 발표했다. 소멸 위기에 있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인류무형문화유산 걸작’ 지정제도다.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하고 유형유산을 보존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 1972년이니 유형유산에서 무형유산까지 넓히는데 3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이다. 유네스코가 규정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은 ‘개인에 의해 표현되며 공동체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과 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적 공동체의 전통에 기초한 창작의 총체’다. 무형유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각 나라의 수많은 무형유산은 생명을 다시 얻게 됐다. 우리나라의 무형유산도 이 대열에 섰다.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한 무형유산들이 쏟아졌으나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01년 등재된 ‘종묘제례 및 제례악’이다. 판소리는 그 뒤를 잇는다. 판소리는 2003년 우리나라의 두 번째 세계무형유산이 됐다. 모든 민족적 정서가 황폐해지고 말살되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근근이 맥을 이어왔던 판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조명받게 된 계기였다. 판소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판소리의 대중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돌아보면 판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무대 위에 놓았던 소리꾼들이 적지 않다. 그중 가장 치열하게 대중들과 교감하며 판소리로 시대를 호흡했던 명창이 있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바로 그해, 세상을 떠난 박동진 명창이다. 선생의 이름을 알린 것은 1968년에 연 여섯 시간짜리 흥부가 완창회. 판소리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판소리를 주목했을까 싶지만, 선생은 이후 1년, 혹은 2년 사이에 완창회를 이어 가면서 끝내 다섯 바탕 전통 판소리를 완주했다.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선생의 노력은 창작판소리로도 이어졌다. 종교와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판소리를 만들어 시대와 호흡한 것은 판소리를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한 선생의 분투였다. 올해 세계유산 등재 20주년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작업이 활발하다. 전통 판소리도 그렇고 새로운 형식으로 기획된 실험적인 무대의 행렬도 반갑다. 모두 판소리 보존과 대중화를 위한 여정일 터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그 길은 멀어 보인다. 모든 장르가 혼재된 문화충돌의 시대, 판소리가 보존의 경계를 딛고 시대의 음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일. 이제 더 무거운 과제가 됐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04.11 18:35

봄가뭄과 호남평야 통수식

희망의 계절에 근심이 커진다. 봄가뭄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영농기를 앞두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댐 수위가 낮아지면서 농심은 타들어간다. 기다리던 봄비가 내렸지만 완전한 해갈에는 한참이나 모자란다. 닫아두었던 물길을 열어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큰 행사가 매해 4월 호남평야에서 열린다. 호남평야의 젖줄 동진강 낙양취입수문에서 열리는 ‘백파 통수식’이다. 한 해 풍년농사와 안전영농을 기원하며 수문을 열어 농업용수를 흘려보내는 유서 깊은 행사다. 전국 곳곳에서 통수식이 열리지만, 대표 행사는 단연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주관하는 호남평야 백파 통수식이다. 백파 통수식은 가뭄 극복을 위한 근대 농업용수 개발의 대역사(大役事)를 기리자는 취지도 담겨있다. 한반도 도작(稻作)문화의 발상지인 곡창 호남평야에는 일찍부터 대규모 수리‧관개(灌漑) 시설이 조성됐다. 20세기 초에는 섬진강 상류에 운암제를 축조(1927년)하고 유역변경식 발전소인 운암발전소‧칠보발전소를 통해 섬진강의 수자원을 동진강으로 끌어내 호남평야 농업용수로 사용했다. 그리고 1965년에는 운암제 하류 쪽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축조해 물그릇을 키웠다. 호남평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 중 하나가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 동진강 본류에서 김제용수간선과 정읍용수간선이 갈라지는 낙양취입수문이다. 1927년에 준공된 이 시설은 동진강 유역 농경지에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용수로에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농어촌공사가 정한 호남평야 관개기간은 4월 초부터 9월 말까지다. 이에 따라 해마다 4월에 통수식을 갖고 수문을 열어 180일간의 급수작전에 돌입한다. ‘백파제(百派祭)’라는 행사 명칭은 낙양취입수문 기념비에 새겨진 ‘일원종시백파(一源從是百派)’라는 문구에서 따왔다. 한줄기의 물이 백갈래로 퍼져 광활한 농경지를 고루 적셔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올해는 이 백파 통수식이 취소됐다.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호남평야에 물을 대는 섬진강댐의 저수율이 너무 낮아 차질이 생겼다. 결국 낙양취입수문 개방 시기를 5월로 늦췄고, 4월 영농의 시작을 알리는 통수식은 열지 않기로 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4월 초에 열리던 백파 통수식은 어느 순간 4월 20~25일로 늦춰졌고, 올해는 가뭄으로 수문 개방 시기를 더 늦추면서 통수식마저 취소한 것이다. 수리시설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한계가 있다. 농사는 결국 하늘을 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쌀값 폭락이 거듭되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은 웃을 수 없게 됐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농촌 공동체가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다. 농업‧농촌, 농민이 고사 위기에 몰렸다. 메마른 농촌에 단비가 내리기는 할까?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4.10 16:06

전북의 정치적 딜레마

민주당은 전북을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여기고 잡은 물고기 마냥 먹이를 주지 않고 국민의 힘은 각종 선거 때마다 표를 주지 않았다 해서 철저하게 외면한다. 도민들은 DJ때 정권교체가 이뤄져 지역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큰 기대를 걸었으나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한풀이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죽어라고 표를 찍어줬지만 그 때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대로인 채 임기를 마쳤다. MB가 정동영 한테 5백만표 이상으로 압승을 거둔 바람에 전북 출신들은 중앙관가에서부터 씨가 말랐다. 후보와 동향 이라는 이유로 패배자의 설움을 철저하게 맞봤다. 전북 한테는 문재인 정권 때도 기회였지만 모든 게 립서비스로 끝났다. 정권 초에는 전북을 방문해서 친구로 여긴 듯 싶었지만 쪽수가 적고 계속해서 전북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어 실질적인 지원 보다는 생색내기에 급급했다. 전북은 DJ를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줄곧 민주당의 텃밭이 되어왔다. 30년 가까이 민주당 일변도로 가다 보니까 반대편인 국민의힘은 들어설 땅이 없었다. 전북에서 국힘 후보로 각종 선거에 나서 승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 없었다. 대선 때도 한자릿수를 넘기느냐가 관건일 정도였다. 이때문에 국힘쪽은 선거 때마다 선거를 포기, 후보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정치인은 선거 때 자신이 얻은 표대로 움직이게 돼 있다. 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때 전북에서 표가 나오지 않자 아예 전북을 방문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국가예산을 배분하거나 인재등용도 철저하게 배제됐다. 이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전북은 도세가 강원·충북 보다도 뒤로 밀렸다. 지난 대선 때 20% 득표를 기대했던 국힘의 윤석열 대통령이 14.4% 밖에 얻지 못하자 그게 전북을 대하는 바로미터로 계속 작용하고 있다. 전북은 30년 이상 믿고 따랐던 민주당이 전북을 위해 해준 게 별로였고 국힘은 표를 주지 않았다 해서 푸대접을 가해 결국 오늘 같은 낙후가 만들어졌다. 정치적으로 유연성을 갖고 대처하지 못한 게 전북낙후를 가져왔다. 빈곤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이를 타개할 움직임마저 보이지 않아 답답할 지경이다. 민주당 후보로 뽑힌 21대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역량이 크게 부족해 제 앞에 놓인 감도 못 먹을 정도다. 서남의대 폐교로 생긴 49명의 정원을 갖고 만들기로 했던 공공의대설립 문제는 두고 두고 비난 받아야 맞다. 문재인 정권 때 남원 출신인 권덕철 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이었고 해당 상임위 간사가 김성주 의원이었다. 4·5 재선거로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당선됐지만 혼자서 전북의 단선적인 정치구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민주당이 전북을 집토끼로만 여길 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국힘은 표를 주지 않았다 해서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아 전북의 미래가 암울하다. 전북이 정치적으로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충청이나 강원도처럼 갈아 엎을 때는 사정없이 판을 갈아 엎어야 해결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3.04.09 17:00

김 지사의 실용 인사

취임 10개월을 맞는 김관영 지사의 실용주의 인사가 주목받고 있다. 갓 출범했을 때만 해도 그의 파격적 인사 스타일이 여론 뭇매를 맞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선거 전리품인 양 캠프 출신과 측근 관료가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관행에 익숙한 탓일까. 당시 인사 뚜껑이 열리자 ‘타시도 출신’ 대거 발탁이라는 초유의 일이 본능적 거부감을 유발했다. 언론도 뒤질세라 능력은 제껴둔 채 지역 출신이 아니란 점을 부각시켜 공격했다. 이 와중에도 김 지사는 검증된 인사를 고집하며 나중에 성과를 통해 심판을 받겠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초기 인사 논란을 잠재우고 후속 산하기관장 검증 평가에서 대체로 전문성과 능력에서 합격점을 받은 건 김 지사의 뚝심이 빚은 결과다. 민선 8기 출범 직후 도청의 정무라인과 산하기관장 인사 논란이 거셌다. 물론 지역 현안과 관련해 인사 대상자들의 기본 인식이 빈약하고 발언 태도가 기름을 부은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어제 인사청문을 통과한 이규택 전북테크노파크 원장을 비롯해 한종관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과 최정호 전북개발공사 사장, 이항구 자동차기술원장, 조준필 군산의료원장은 그 분야 전문가로 정평이 났다. 한쪽에선 이들 경력과 전문 능력을 감안해 보면 ‘하향 지원’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김관영호 산하기관장과 정무라인 인사의 특징은 중앙 무대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발탁했다는 점이 과거와 크게 다르다. 여야 협치를 위해 국민의힘 인사를 도청 3급 협력관에 임명한 것도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도청 5급 팀장에게 타시도 정책 벤치마킹을 통해 지역발전 아이디어를 공모해 우수 사례를 정책에 반영하고 담당자를 특진시켜 역동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도 고무적이다. 민선 자치 출범부터 도청 핵심 보직은 선거 캠프 출신과 측근 관료들이 독점한 게 사실이다. 이들 전면 배치는 일종의 ‘양날의 검’ 이다. 하지만 조직을 장악하는 데는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가 필요한 반면 공무원의 위계 질서가 무너지는 부작용도 있다. 그럼에도 산하기관장과 정무 홍보라인은 도정을 떠받치는 핵심 조직이기에 측근이나 행정관료 중 에이스를 주로 앉혔다. 특히 2인자로 불리는 비서실장엔 최측근 복심을 앞세워 무게 중심을 잡아 갔다. 공보관 자리는 기자 출신이 전매특허인 양 발탁돼 도정의 리스크 관리를 뒷받침해 왔다. 도지사가 추구하는 도정 철학에 따라 인사 스타일은 다르기 마련이다. 선거 공신과 측근 관료를 우대한 역대 지사와 달리 김 지사 용인술은 철저하게 성과를 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 인사 기조에 따라 능력이 검증된 전문가를 선호할 뿐 출생 지역은 크게 얽매이지 않는 편이다. 행정 수장의 도지사라 할지라도 그는 분명 정치인이다. 차기 선거에서 이겨야만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숙명을 안고 있다. 유권자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도 그런 맥락이다. 126년 만의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그 위상에 걸맞는 인재를 찾아야 한다. 인사는 만사이기 때문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4.06 17:15

대리전 양상 전주을 재선거

대리전(代理戰)은 분쟁 당사국이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동맹국이나 영향력을 받는 나라로 하여금 상대편 나라와 대신 싸우도록 해서 일어나는 전쟁을 말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양이 극한 대결을 벌이던 시절, 한반도에서 벌어진 6∙25나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베트남 전쟁도 실은 또 다른 형태의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불릿(bullet 총탄) 대신 밸럿(ballot 투표)을 사용하는 정치의 세계에서도 전쟁만큼이나 대리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공천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정계거물들의 각축전도 따지고 보면 자신을 지지해줄 수하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는 작업이다. 전북의 경우 지금은 정계 전면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나 정세균 전 총리와 정동영 전 대표가 거의 20년 가까이 영향력을 행사한 까닦에 총선 후보나 도지사를 비롯한 단체장, 심지어 지방의원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대리전 양상을 벌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사소한 것 같아도 지역정가에서는 비례대표 도의원 하나 공천하는 과정에서도 지역 유지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민주당 여성 비례대표 도의원 선거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전북도당 광역의원 비례대표 자리를 두고 전정희(63) 현 여성교육문화센터장, 이해숙(58) 현 전북대병원 상임감사, 정진숙(60) 전 국민의당 전북도당 사무처장의 경합이 불을 뿜었다. 당시 비례대표 투표 결과 정진숙씨 1위, 이해숙씨 2위, 전정희씨 3위 였다. 그런데 정진숙씨는 맨 먼저 제9대 도의원을 지냈고, 이해숙씨는 10대 도의원을 지냈으며, 전정희씨는 19대 총선때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볼때 오늘의 결과가 내일의 상황과는 다를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비례대표 도의원 경선 당시 지역정가의 쟁쟁한 빅브러더들이 총출동 하다시피해 사실상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번졌던 일은 지금도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5일 치러진 전주을 재선거는 민주당이 공천하지 않았기에 대리전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수면하에서 치열한 수읽기와 대리전이 펼쳐졌다는게 정가에 정통한 이들의 귀띔이다. 범 민주당계로 꼽히는 임정엽, 김호서 후보의 경우 외형상 당의 공식적인 지원은 전혀 없었으나 지방의원은 물론, 내년 총선 입지자들이 어깨너머 훈수를 엄청나게 뒀다는 얘기도 들린다. 유력한 정치인과 가까운 이들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하고 있고, 진보당 강성희 후보는 단순히 지역 당원 차원이 아닌 노동단체를 비롯한 진보진영이 총출동해서 도왔다고 한다. 어쨋든 당초 예상과 달리 대리전 양상을 띈 이번 전주을 재선거가 끝난뒤 총선 가도에서는 어떤 대리전이 펼쳐질지 주목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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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4.05 15:09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전략

“‘일본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일본의 독도 명칭)’를 ‘일본 고유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로.” 일본 문부과학성이 2024년부터 쓰일 교과서 149종을 심사하면서 일본 초등학교가 사용할 사회교과서를 수정하게 한 내용이다. ‘일본 영토’를 ‘고유영토’로 고치고 다케시마가 ‘한국에 점거돼 일본은 항의하고 있다’는 내용도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돼 일본은 항의하고 있다’로 바꾸어 영유권 주장을 더 명확하게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내용은 강제성을 약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수정하게 했다. 강제적으로 징집의 의미를 갖는 ‘징병’ 대신 ‘참가’나 ‘지원’이란 표현을 쓰게 해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참여했다는 해석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런 시도는 지난해 고등학교 교과서를 대폭 수정하면서 먼저 이루어졌다. 역시 일본 문부과학성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연행’했다는 표현이 사라진 고등학교 검정교과서를 통과시키면서다. 이 과정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강제 징용’과 ‘강제 연행’은 ‘징용’이나 ‘연행’으로 수정됐고, ‘일본군 위안부’ 등의 표현은 사실상 사용을 금지해 삭제됐다. 다른 12종의 사회 과목 교과서들도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거나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바꾸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했다. 일본은 초중고교용 교과서를 국가가 정해주지 않는다. 민간 집필자나 발행자가 제작한 도서를 교과서로 신청하면 문부과학성이 `교과서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의 심사를 거쳐 적정성 여부를 결정할 뿐 교과서 선정은 자치단체 교육위원회나 학교가 자율적으로 한다. 교과서 검정 통과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정부도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들여 항의하고 성명을 냈다. 어김없이 ‘깊은 유감’ ‘강력한 항의’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가 있을 때마다 취해온 의례적인 방식이니 역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유독 눈길이 가는 내용이 있다. ‘일본 정부가 스스로 밝혀온 과거사 관련 사죄와 반성의 정신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기를 촉구한다’는 부분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스스로 사죄하고 반성한 적이 있었던가. 정부는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라며 논란이 된 강제동원 해법을 주도적으로 내놓았었다. 그러나 일본이 보여주는 태도는 여전히 무례하다. 교과서를 통한 역사왜곡 또한 줄곧 자행되어온 터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왜곡의 수단과 방식이 더 노골화되고 공고해지고 있다는 것. 정부의 외교전략이 달라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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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4.04 15:37

번영로 벚꽃엔딩

봄가뭄이 극심한데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마저 시원찮다. 엊그제 봄소식을 전한 벚꽃이 절정을 지나 하나둘 꽃잎을 떨군다. 이맘때면 꼭 봄비가 한두 차례 지나면서 낙화를 부추긴다. 올해도 꽃이 다 지기 전에 반가운 봄비가 찾아올 것이다.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 봄꽃 개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봄날은 짧아진다. 이렇게 꽃이 다 떨어지면 이 계절은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또 휑하니 지나갈 게 분명하다. 봄날 꽃놀이 명소를 꼽을 때면 빠지지 않았던 곳이 바로 ‘번영로 벚꽃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작로인 ‘전주~군산 100리 길’에 빼곡하게 이어진 하얀 벚꽃 터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벚꽃축제가 열리고, 축제장이 아니어도 벚나무 아래 꽃그늘에 자리를 잡고 봄을 즐기는 나들이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이 간선도로 곳곳에 임시주차장이 만들어지곤 했다. 하지만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 했다. 병해충 피해와 노령화로 인한 고사, 그리고 태풍, 도로공사 등으로 벚나무가 수없이 뽑혀나가고 제때 보식이 안 되면서 꽃길은 시들어갔다. 번영로 벚나무길은 1975년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전북 출신 재일교포들이 기증한 성금으로 조성됐다. 당시 식재된 6000여 그루의 벚나무 중 겨우 절반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조사보고서가 2017년 전북도의회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무가 뽑혀나가면서 흐드러지게 꽃무더기를 피워내던 튼실한 벚나무 대신 앙상한 가지에서 겨우 꽃잎 몇장을 내밀고 마는 가냘픈 어린나무가 자리를 채워갔다. 화려한 명성 속에 30년 가까이 이어진 번영로 벚꽃나들이는 이제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전국의 나들이객들을 유혹하던 번영로 벚꽃축제는 2000년대 들어서 슬그머니 사라졌고, 상춘객의 발길도 끊겼다. 여기에 차량 통행량도 급격히 줄어 도로변 마을은 활력을 잃어갔다. 공교롭게도 벚꽃 터널이 무너져가던 2002년 이 도로 옆에 전주~군산 자동차전용도로가 건설되면서 근대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번영로의 위상은 급락했다. 그렇게 번영로의 명성이 퇴색하기 시작할 무렵 이 길을 대동맥으로 삼아 도약을 꿈꿨던 지역사회도 번영이 아닌 쇠락의 길을 가야 했다. 급기야 이 도로를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벚꽃길 복원사업’에 나섰다. 전북도와 전주‧ 김제‧ 익산‧ 군산시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33㎞ 구간에 벚나무를 새로 심거나 기존 수목을 정비하는 가로수 정비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사업의 성과가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해 보인다. 벚꽃은 다양한 꽃말을 갖고 있고, 그 중 대표적인 게 부와 번영이다. 이 도로에 벚나무가 식재되면서 도로명이 전군가도(全群街道)에서 번영로로 바뀐 이유다. 이 번영로에 다시 벚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지역 발전의 염원을 담아 붙인 이름처럼 번성했던 번영로의 벚꽃이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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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4.03 15:52

우물안 개구리 같은 낡은 사고

온 나라가 꽃 대궐이다. 예년에 비해 벚꽃이 2주정도 빨리 펴 화사하기 그지없다. 3년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 받았던 심신을 달래 주려고 이렇게 꽃을 활짝 피게 한게 아닐까. 올 벚꽃은 비바람이 시샘하지 않아 만개한 꽃이 오래간다. 세상사 이치를 벚꽃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성공한 사람을 살펴보면 항상 주변 시기 질투가 뒤 따른다. 4·19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홧발에 짓밟혔던 젊은 청춘들이 채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그냥 사그라졌다.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처럼 말이다. 새장에 갇혔던 새들이 자유롭게 날갯짓하며 훨훨 날듯 상춘객들로 엄청나게 붐빈다. 남녘에 있는 제주도를 시작으로 여수 오동도 금오도 돌산 등지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상춘객의 손길을 유혹한다. KTX 종착역인 여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숙박관광지로 변신을 거듭했다. 돌산대교에서 내항위를 거쳐 오동도로 가는 길목에다가 케이블카를 설치해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줬다. 꽃을 찾아 나서는 벌들 마냥 상춘객들도 귓불을 간지럽힌 바다바람을 맞으면서 오동도에서 추억을 아로새긴다. 여수는 EXPO 개최 이후 이름 값을 톡톡히 했다. 인접 순천도 10년만에 국가정원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지난 1일부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갈대밭으로 볼품없던 순천만 일대에다가 세계 35개국 정원을 꾸며 놓아 꽃대궐을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튤립이 활짝 피어 관광객들을 손짓한다. 스카이 튜브를 타고 주변 갈대밭을 한눈에 조망하도록 해 놓은 것도 아이디어다. 관광산업이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역적 특색을 살려 순천시가 국가정원을 만들어 관광객을 모은 것을 전주와 전북도가 벤치마킹했으면 한다. 전북도 전남에 비해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명소가 산재해 있다. 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았던 관광객이 1천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대부분 관광객이 전주에 오래동안 머물지 않고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떠나간다. 머무는 시간이 짧다 보니까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 막걸리 정도 먹고 가기 때문에 큰 돈이 안된다. 머무는 시간을 늘려 잠 자고 가는 전주를 만들어야 한다. 조선조 본향인 경기전이나 한옥마을 전동성당 오목대 이목대 전라감영 갖고는 안된다. 후백제 수도였던 궁궐터 등을 빨리 발굴조사해서 전주의 랜드마크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 그간 전주는 역사문화도시로 보존에만 급급했는데 우범기 전주시장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개발에 방점을 찍은 것은 잘 한일이다. 종합경기장을 허물어 광주 상무지구에 있는 김대중 컨벤션센터보다 두배가 큰 컨벤션센터를 짓기로 한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마이스산업을 육성해야 전주가 관광도시로 새롭게 발전해 갈 수 있다. 대한방직터도 하루빨리 특혜시비 논쟁을 끝내고 개발하도록 해줘야 한다. 시장이 개발하겠다고 나서면 일부 시민사회단체서 존재감을 부각하려고 발목부터 잡고 나선 못된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 전주시민들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낡은 사고를 벗어나야 전주가 발전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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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4.02 17:53

탄력 받는 ‘후백제 재조명’

후백제와 관련해서 요즘 다양한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작년 12월 ‘후백제 특별법’을 계기로 역사적 의미 재조명과 함께 세미나 토론회 등이 활발해졌다. 전주가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전국 패권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에 도민들 반응도 뜨겁다. 비록 존속 기간이 37년의 짧은 역사였지만 후백제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국가였다. 견훤왕이 900년 전주에 도읍지 터를 정한 이후 지금도 곳곳에 과거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 기록이 철저하게 승자의 관점에 따라 편향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여서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후백제 역사와 그 발자취가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전북의 총체적 위기 상황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모든 사회 지표가 전국 하위권을 맴도는 가운데 미래 성장 동력마저 뒷심이 부족한 상황이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에 밀려 존재감은 다소 퇴색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문화도시 시민으로서 전주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더욱이 후백제 중심축이 전주라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의미는 한층 더해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전주가 후백제와 연결되는 것 자체를 애써 부인하고 탐탁치 않게 여기는 기류가 지역에 존재했다. 1100여년 전 패망한 후백제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부정적인 데다 역사적 가치도 평가절하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일부 학자와 전문가들이 어렵게 뿌린 후백제 재조명 작업이 마침내 싹을 틔운 것이다. 최근 이같이 활발한 움직임은 지난주 전북일보가 주최한 후백제 학술 토론회에서도 여실히 반영됐다. 4시간 동안 자리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그동안 묻혀 있던 후백제의 재발견에 의미를 부여하고 깊은 공감대를 넓혀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적 발굴 복원과 함께 보존이 시급하다며 후속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우범기 전주시장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선거 공약에도 후백제 복원을 명문화하고 실제 ‘왕의궁원 프로젝트’ 를 가동함으로써 발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에게는 유적 복원 못지않게 관광 자원 활용이라는 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전주는 후백제 왕도이자 조선 왕조의 본향이다. 사실 문화 예술 도시의 명맥을 유지하는 그 뿌리다. 한옥마을에 가면 양반 이미지의 문화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도 시민 의식과 생활 속에 곧추세우고 있는 자존감 때문이다. 특별법 이후 후백제와 관련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과 유적 복원에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따라서 자치단체를 비롯해 학계 언론에서 후백제 재조명과 함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백제라고 부르며 당당하게 백제인으로 살았던 그들의 역사를 ‘후백제’ 라 칭한 것도 후대 학자가 편의상 백제와 구분하기 위함이다. 강대한 고구려 영토까지 편입시키려 했던 후백제의 진취적 기상을 통해 무기력한 전북의 현실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3.30 17:51

갑을(甲乙)관계와 갑질, 을질

중국 첫 통일 위업을 달성한 진나라 시황제를 도와 승상 자리에 올랐던 이사가 젊은 시절 말단관리를 할 때의 에피소드다. 어느 날 측간을 갔는데 관청 측간의 쥐는 허접하고 더러운 것을 먹다가도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오면 그때마다 무서워서 놀라 달아난 반면, 양곡 창고에서 사는 쥐는 제 맘껏 쌓인 곡식을 풍족히 먹으면서도 큰 집에 살아서 그런지 사람이나 개를 전혀 개의치 않고 먹더라는 것이다. 이것을 본 이사는 무릎을 탁 치면서 “사람이 어질다느니 못났다느니 하는 것은 결국 쥐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달렸구나”했다. 큰 도둑은 대우받는 반면 좀도둑은 늘 허겁지겁 뛰면서 이눈치 저눈치 보는 측간의 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큰 물에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만고풍상 끝에 승상자리에 오르게 된다. 말년은 불운했으나 어쨋든 이사의 일화가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요즘 도의회나 시군의회가 해외연수를 간다고 해서 도하 언론에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 훨씬 많은 혈세를 들여 외국에 가는 국회의원은 신문 동정란에 버젓이 실려 마치 큰일이나 한것처럼 대우받는 반면, 1년에 한번 해외에 나가는 지방의원은 측간의 쥐처럼 좁쌀 좀 먹으면서 눈치까지 봐야 하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구조를 잘 들여다보면 양곡 창고의 쥐 보다도 측간의 쥐가 더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후 해외연수에 나가는 의원들의 행태는 실로 가관이었다. 대부분 외국 방문 경험이 전무했던 지방의원들은 밤새워 고스톱을 치는 것은 보통이었고 새벽 시간에 의회 직원을 불러 라면을 끓여오게 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공개적인 면박을 주는 것은 예사였고, 자신의 짐을 직원에게 들게 하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만큼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적어도 의원과 직원들 간 부당한 갑을 관계는 없는 듯하다. 지난번 전북도의회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의장과 사무처장이 공개적으로 정면충돌하는 일까지 있었고 심지어 도의원과 도교육청 과장이 언성을 높이며 다툰 사례도 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완력으로 억누르려는 추태는 많이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요즘에도 지방의회 안팎에서는 크고 작은 갑질 얘기가 들리곤 한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본인만 모를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거다. 최근 지역사회에서는 상대방에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굴다가 갑질로 찍혀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이젠 갑질뿐 아니라 을질도 문제라고 한다. 자신의 약자 지위를 역이용해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일을 안 하거나 못하면서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대체로 말이 많고, 대외적으로는 마치 자신이 큰 수난과 피해를 당한 것처럼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갑질뿐 아니라 을질도 척결돼야만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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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3.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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