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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짓밟히던 때가.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했던 스승에게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딱히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도 못했다. 사회규범이 그랬다. 하지만 학생들이 모를 리 없었다. ‘사랑의 회초리’라고 불린 그것을 교사들이 얼마나 남용하고 오용했는지를. 그리고 훗날 잊고 있었던 사춘기 그 치욕의 순간을 소환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교단에 선 후배 교사들도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학교가 확 달라졌다. 학생인권이 강조되고 교사들은 회초리를 빼앗겼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다. 교육 현장에서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확립해야 할 가치는 학생인권이었다. 무소불위의 교권은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서울·전북·충남·제주 등 6개 시·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했다. 학생인권 침해 구제 조치가 시행되면서 징계를 받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당시에도 교권회복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몇몇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저지른 충격적인 기행(奇行)이 언론을 통해 속속 알려지면서 학창 시절의 교실을 기억하고 있던 학부모들은 크게 분노했고, 기세에 밀린 교직사회는 숨을 죽여야 했다. 그러면서 교권은 점점 무게를 잃어갔다. 터무니없이 부풀려지거나 사실과 거리가 먼 인권침해 사례도 있었지만, 당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억울하게 매도당한 교사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교권이 무너진 교실은 정상이 아니었다. 남용되고 오용되는 학생인권에 교사들의 속앓이는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터졌다. 어느 초등학교 여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계기가 됐다. 세상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교권을 위협하는 학생, 교사에게 갑질하는 학부모들의 행태가 부각되면서 공분을 샀다. 교육부가 교권보호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고, 정치권도 관련 법률 정비에 나섰다.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위기에 놓였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붕괴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열풍이 불던 때가 2010년대 초반이니 불과 10년 만에 생긴 변화다. 교육현장 인권의 무게추가 다시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금 시급하게 보호해야 할 가치는 교권이다. 학생인권이 아니다. 사회적 요구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또 세월이 흐르면 ‘지금’이 ‘그때’가 돼 그때의 결정에 따른 부작용이나 문제점이 드러날 수도 있다. 교육의 3주체인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는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한쪽에 무게가 실리면 다른 쪽은 공중에 붕 떠야 하는 운동장의 시소 같은 관계가 아니다.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은 그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다. 훗날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K―팝으로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서 막을 내린 제25회 새만금잼버리대회가 대회를 총괄했던 김현숙 여가부장관이 급기야 경찰 수사를 받고 21일부터 감사원에서 전북도에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예산집행을 총괄하며 대회준비에 만전을 다했다고 호언장담했던 김 공동조직위원장에 대한 경찰수사와 대회 개최지였던 전북도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통해 잘 잘못이 가려 지겠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한 새만금개발로 잼버리가 실패했다는 지적은 논리비약이며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것이다. 월드컵과 동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우리나라가 세계13위라는 경제대국임에도 사전에 각종편의시설을 제대로 확충하지 않고 폭염으로 온열환자가 발생할 것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등 운영미숙으로 국제적 망신을 사면서 국민적 자존심이 손상되었다. 의사결정구조상 원톱으로 대회조직위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야 했는데도 5명으로 공동조직위를 꾸려 역할과 책임의 한계가 불분명한 게 실패작이 되었다. 문제는 국힘이 일관되게 전북도가 새만금사업 추진을 위해 잼버리를 이용해서 국가예산을 확보 했다는 지적은 팩트가 잘못된 가짜뉴스나 다름 없다. 새만금사업은 노태우 김대중간 정치적 담판에 의해 1991년에 착공한 국책사업이다. 30년 이상 전북 도민들 한테 희망고문이 된 이사업을 이번 잼버리대회에 뜬금없이 소환해서 가타부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전북 도민을 무시하고 우롱한 처사밖에 안된다. 지역감정 해소를 통해 국민통합을 모색해야 할 국힘이 무슨 이유로 잼버리 실패를 전북도 책임인양 몰아가는지 납득이 안간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정서가 강한 전북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워 고립무원 상태로 빠뜨리려고 했다면 그건 잘못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전 대표도 전북도 잼버리 책임론에 정말 화가 난다면서 그게 당론이라면 탈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새만금 기반시설 확충은 보수정권의 공약이라고 지적했고 같은 당 천하람위원장도 정부 여당이라면 내 탓이오 자세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힘 정운천 의원은 타이밍을 놓친채 싸우려는 자세보다도 중앙정부에도 공간을 열어줘야 대화가 풀린다는 식으로 말해 도민들로부터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잼버리 실패에 대한 전북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그간 국힘과 협치를 통해 전북발전을 도모했던 김관영지사가 정치적으로 타격은 입었지만 오히려 도민들의 지지는 더 견고해졌다. 모처럼만에 전북정치권이 원팀으로 새만금을 흔들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결의한 것은 다행이지만 워낙 정치력이 약해 예산국회에서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지 걱정스럽다. 아무튼 김지사가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해 새만금 개발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암초를 만났지만 도민들이 자강의식을 갖고 똘똘 뭉치면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전북정치권의 존재감이 약해 이런 문제가 유발되었기에 물갈이를 통해 새정치판을 짜야할 때가 왔다.백성일 주필 부사장
잼버리 파행과 관련해 정치권의 책임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전북 덤터기’ 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조직위 자치단체 업무 분담과 구체적 수행 업무 내용을 살펴보면 진실은 곧 밝혀지기 마련이다. 잼버리는 개막일 지나서도 대원들 입영이 상당수 이뤄지지 않았고, 개영 2-3일 차엔 불편을 호소하며 야영지 탈출 엑소더스가 진행될 만큼 초반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통상 개막 1년 전에 마감하는 참가자 접수도 50일 전까지 계속해 준비 과정의 부실화를 예고했다. 무엇보다 잼버리 실전 경험이 풍부한 스카우트연맹의 해법 제시는 번번이 묵살되고, 심지어 자격 미달 10살 초등생 대원도 참가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이렇게 책임 소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유독 전라북도를 정조준해 모든 걸 뒤집어씌우려는 기류가 노골화되자 그에 대한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파행 사태 책임의 퍼즐 찾기는 사실상 전라북도와 감사원 감사로 시작됐다.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만큼 고강도 조사가 예고돼 있으며 이와 관련된 단체와 기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감사를 앞두고 개최지가 전북인 점을 겨냥해 전라북도 책임론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움직임이다. 실제 대회 초반 사태가 심각해지자 급기야 총리와 행자부 장관이 회견을 자청 “지금까지 지방정부가 주도한 대회를 중앙 정부가 마무리하겠다” 며 책임에서 한발 비껴간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힘도 질세라 야당 텃밭을 감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꺼내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런 기류에 편승해 ‘전북 책임론’ 을 맞장구치는 중앙 언론 논조도 예사롭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사실 전북에서도 잼버리 대회의 도지사 역할론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2020년 조직위가 출범할 때 도지사가 공동위원장 2인 체제에서 배제된 채 그 아래 집행위원장에 내정되자 격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다름 아니라 공동위원장에 뽑힌 지역구 김윤덕 의원과의 역학 관계를 감안해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추진 동력과 파급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 때문에 개최지인 전북을 무력화시키고 중앙 정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독차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역대 최악의 불명예를 빌미로 이를 정치 도구화 하려는 정치권 저의를 경계한다. 국민의힘은 그 원인을 SOC 사업과 결부시켜 “잼버리 예산 1171억, SOC 11조“ 를 들먹이며 애초 잼버리가 목적이 아니라 중앙 예산을 타내려는 꼼수였다고 억지를 부렸다. 마치 새만금 사업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론몰이를 시도하고 있다. 2029년 완공 예정인 새만금 신공항이 직격탄을 맞을 거란 추측성 보도까지 나온 배경이다. 김관영 지사도 이 점을 주목해 새만금 사업 음모론에 쐐기를 박았다. 만약 사실을 왜곡해 악의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면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린 ‘희생양 만들기’ 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김영곤 논설위원
일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이지메가 횡행했다. 남의 일로만 알았던 이지메는 1990년대 이후 왕따라는 이름으로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한 집단에서 다수의 성원이 소수의 약자를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소외시키는 행위를 말하는데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원숭이, 토끼처럼 서열이 엄격한 동물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체로 또래집단 보다 약할때 나타난다고 한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데 무주, 진안, 장수를 일컬어 무진장 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이들이 있다. 오랫동안 전국적인 오지의 대명사였다. 경북에 가면 BYC가 있다. 경북 북동부에 있는 봉화군, 영양군, 청송군의 앞 글자를 딴 것인데 전북을 기반으로 한 속옷회사 BYC에 빗댄 이름이다. 3지역 두문자어라는 공통점이 있는 무진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대표 낙후지역으로 손꼽힌다. 무진장은 고속도로라도 잘 뚫려있는 반면, BYC에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은 청송 한 곳밖에 없다. 다만 산업화나 개발 등의 관점에서 본 것일뿐, 오늘날에는 무진장이나 BYC를 꼭 오지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천혜의 자연환경,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 등의 이미지 등으로 인해서 오히려 수도권에서 전학을 오거나 귀촌하는 이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규모가 적고, 인구나 힘이 약하면 흔히 말하는 이지메를 당하기 십상이다. 국제사회는 물론, 지역사회, 개인들간의 관계에서도 엄연히 실체는 존재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전북의 최근 100년 역사만 살펴봐도 축소의 역사, 이지메의 역사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구나 경제력, 전국적인 영향력 등 모든 측면에서 볼때 확대되기보다는 축소됐고 지배하기 보다는 지배당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그 큰 원인을 어떤 이는 오너가 없는 전북정치권에서 찾는다. 광복 이후 인촌 김성수 정도가 한민당의 실질적 오너 역할을 했으나, 그 이후는 전북을 기반으로 한 오너 정치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일정한 계보를 가진 오너 정치인은 소석 이철승 정도를 꼽을 수 있으나 그 또한 김영삼, 김대중과는 달리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의지는 강력하지 않았고 양김씨와의 경쟁에서 패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2000년 이후, 정동영, 정세균 정도가 나름의 세력을 키우면서 대권 후보 반열에까지 진입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그들 역시 지분을 가진 오너 사장은 아니었다. 작금의 전북정가 현실은 오너는 커녕, 실세 하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얼마전 새만금잼버리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중단사태를 맞으면서 전북은 뭇매를 맞다시피했는데 어느 누구하나 전북민을 대변하는 이는 없었다. 오너 정치인이 없는 전북은 잼버리 실패로 인해 향후 엄청난 이지메를 당할 소지가 커졌다. 중앙정치권이나 타 시도의 이지메를 견뎌내야만 한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고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전북사회에서 내부총질을 해선 안된다. 분열된 집안은 생존할 수 없고 전북은 대리전을 벌이는 이전투구의 장소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공후인>은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만들어 부른 고대 가요다. 남편으로부터 백수광부와 그의 아내 이야기를 듣고 만든 이 노래의 또 다른 이름은 <공무도하가>. 가장 오래된 시가로 알려진 이 노래로 지금은 사라졌으나 그 이름을 알린 악기가 있다. 고대 현악기 <공후>다. 기록에 따르면 공후는 고대 아시리아로부터 페르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왔다. 문헌상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현악기로 꼽히는 공후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문헌에 모두 전해지고 있고, 범종이나 벽화 등에도 공후를 연주하는 사람이 남아 있어 오랜 세월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악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 시대 이후 공후는 우리나라 음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음악 서적 <악학궤범>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지 않으니 조선 시대 이전부터 연주에 사용하지 않은 악기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만 있을 뿐이다. 2000년대 초, 잊혀진 고대의 현악기 공후를 복원하겠다고 나선 악기장이 있다. 현악기를 만드는 고수환 명장이다. 젊은 가야금 연주자와 함께 시작했던 복원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남아 있던 오래된 문헌과 국립국악원에 전시된 공후를 연구해 실패와 보완을 거듭하며 복원에 성공했다. ‘잊혀진 악기 공후’의 복원에 국악계는 주목했다. 연주 무대까지 선보이며 공후는 다시 살아난 악기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공후는 그 후 다시 연주되지 않았다. 공후를 찾는 연주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장은 자신이 복원한 공후가 ‘10% 부족한 악기’에서 멈추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사실 공후는 25줄 현악기로 복원했지만, 음의 폭이 좁아 오늘의 무대에서 연주하기에는 보완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았다. 갈수록 자리가 좁아지는 국악기 제작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그의 꿈은 다음 세대까지 남을 수 있는 생명력 긴 악기를 만드는 일. 좋은 악기를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잊혀진 악기 공후 복원에 매달렸던 이유였다. 고수환 명장이 지난 7월,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이 됐다. 국가문화재 악기장 분야 지정은 26년 만의 일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숫자도 적어 올해 지정된 그를 포함한 현악기장은 3명이다. 알고 보니 이들 모두 전북 태생이다. 열여섯 살에 악기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해 60년 동안 한길만 걸어온 그는 내려놓았던 <공후 복원>을 다시 꿈꾸고 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연주 악기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그에게 공후 복원은 이제 묻어둘 수 없는 일이 됐다. 동행할 연주자가 있으면 명장에게는 큰 힘이 될 터. 무대를 만날 공후가 기다려진다. / 김은정 선임기자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가 폭염 대비가 소홀했던 탓으로 온열환자가 집단 발생해 미국과 영국이 대회 초반에 철수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정치권의 책임 공방으로 번져 역대 최대 규모라는 자랑과는 달리 국제적 망신을 샀다. 꿈을 펼치라는 주제를 내건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올림픽,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답게 국가적 역량을 과시, 2030 부산엑스포를 유치하려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기대에 못 미쳤다. 159개 국가에서 피부색 문화 생활 종교 언어가 다른 4만5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12일간 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사전 준비가 철저했어야 옳았다. 박근혜 정권 때 유치전에 나서 문재인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3개 정권이 관여한 이번 대회가 폭염 폭우 보건 위생 안전 등 대회 준비가 미흡해 불명예스럽게 끝난 건 국가적 망신이었다. 세계 13위라는 경제대국의 민낯을 세계인들한테 실시간으로 보여줌으로 해서 국가적 자존심이 훼손되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나지 않았던 간척지에 집중폭우에 대비한 배수시설이나 에어돔 설치를 통한 폭염 대비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전체 대원들이 한꺼번에 이용할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난리통이었다. 여기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샤워시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크게 부족해 불만이 컸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이 대회에 딱 들어맞았다. 원래 여가부장관과 민주당 출신 김윤덕 의원이 2인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았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행안부장관 문체부장관 한국보이스카웃연맹 총재 등 5인으로 조직위가 확대 개편되었다. 조직위 사무총장을 여가부 출신이 맡아서 실무를 진두진휘했다. 문제는 부처 존폐 위기에 몰린 여가부장관이 처음부터 예산집행에 대한 모든 승인권을 쥐고 사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해 개최지인 전북도 김관영 지사가 집행위원장을 맡았지만 의사결정구조상 비껴 나 있어 제대로 업무수행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대회실패를 새만금 탓으로 돌리는 국힘 지도부의 지적은 논리 비약으로 어불성설이라는 것. 전북도가 잼버리를 핑계삼아 새만금 국가예산 확보하는데만 (잿밥) 정신이 팔렸다고 말한 것은 괘변으로 도민들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특히 대회를 망친 것은 5인 공동조직위인데도 마치 전북도가 사전준비를 제대로 안해서 망쳤다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저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5일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대표가 전주에 왔을 때 전주시민이 등 돌렸고 자당 후보가 심지어 김건희를 비판한 안해욱 후보보다 뒤쳐진 5등으로 8%를 획득,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가 얻은 14.4%에 미치지 못해 그런 나쁜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닌가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태원 참사 때도 정치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은 현 정권이 잼버리 실패 책임을 엉뚱하게 전북도를 속죄양으로 삼아 책임지우려는 것은 잘못이다.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기회로 김관영 지사를 흠집내려는 것은 도민들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잼버리 개막을 앞둔 지난 5월 새만금 현지에서 조직위 위원급 대상으로 실사가 있었다. 당시 폭우로 인해 야영지 침수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공동위원장 5명 중 장관 3명과 함께 대상자 상당수가 불참해 다소 맥빠진 분위기로 진행됐다. 뜨거운 감자였던 침수 대책은 조직위 측이 사전 준비한 코스를 둘러보며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하자 이를 취재하던 기자가 주변 깊게 패인 물웅덩이를 가리키며 거칠게 항의했다. 눈가림식 전시 행사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꼼수를 질타한 것이다. 대규모 국제대회를 앞두고 조직위 청사는 긴박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도 폭우와 폭염 대책에 대한 참석자들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조직위는 만반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대회 관계자들은 말끝마다 158개국 4만3천여명의 역대 최다 참가 기록을 띄우면서 마치 성공 예감한 듯 자신만만했다. 나중에 잼버리 파행을 겪으며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 화를 자초한 건 아닌지 곱씹어 봤다. 매머드 조직위 구성을 보면 ‘불안한 동거‘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 2020년 발족할 때부터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중심 체제로 운영해온 건 사실이다. 뒤에 합류한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스카우트연맹 등도 주축을 이뤘다. 문제는 부서 폐지 논란에 휩싸인 여가부 존재감이 약해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부서가 해체 위기에 몰렸는데 그들에게 순도 100%의 열정을 기대하긴 무리다. 조직위 사무총장도 여가부 출신이다. 여기에 언론, 홍보를 담당하는 본부장은 행안부 출신이 꿰차고, 실무 준비는 스카우트연맹 전문가의 몫이었다. 이처럼 복잡한 인적 구조와 운영 체계는 결국 신속한 의사 결정의 걸림돌이 된 셈이다. 대회 직전까지 최대 골칫거리는 야영지 침수였다. 2-3차례 내린 호우로 침수 문제가 언론에서 연일 뭇매를 맞자 관계자들도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침수 해결책 마련에 골몰하는 사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작 파행 사태를 부른 건 극한의 폭염이었다. 심술궂은 날씨 탓에 조직위의 허술한 운영 능력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새만금 상황과 판박이인 8년 전 일본 잼버리의 학습 효과도 충분했다. 간척지 여건과 습도, 해충, 침수는 물론 온열 환자 속출도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은 개막 2년 전 예비 대회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성공 개최를 이끌었다. 필자가 실사 현장에서 만나본 조직위 관계자들은 4만3천여명의 역대급 참가 기록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언론도 뒤질세라 이 참가 기록에 의미 부여하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정도 열기가 뜨거웠다면 조직위로선 자랑거리 보단 부담을 갖는 게 먼저다. 지구촌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다. 폭염과 푹우가 예상되는 8월 초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 허허벌판에서 야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김영곤 논설위원
경남 남해에 가면 독일인마을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잘 묘사됐듯이 1960년대와 70년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 등으로 파견돼 집안을 일으키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독일 거주 교포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2001년에 조성된 곳이다. 남해에 독일인마을이 있다면, 강화에는 스페인마을이 있다. 이곳 역시 스페인의 체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스페인은 애국가를 작곡했던 안익태가 살던 곳 정도로 여겨질만큼 심리적으로 먼 곳이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픽때 몬주익 언덕을 누빈 황영조와 이후 축구 스타들의 활약으로 인해 지금은 매우 친숙한 나라가 됐다. 더욱이 최근들어 스페인 여행 붐이 일면서 워낙 가까운 곳이 됐다. 그런데 지난 2021년 스페인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아리랑'이 실렸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가 어릴때 '에델바이스'나 '오 솔레미오'를 배웠듯 우리 노래를 스페인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게 된 것이다. 스페인 교과서에 한국 노래가 실리게 되면서 가장 주목받은 이가 있으니 바로 임재식 스페인 밀레니엄합창단 단장이다. 한인 지휘자이자 성악가인 임재식 씨는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중 1980년대, 세계 3대 테너 중 두 명이 스페인 출신인 걸 확인하고 무작정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이야 K팝 인기로 한국 문화가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는 한류는 커녕 스페인에서 한국이란 나라 자체도 잘 모를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한국 노래를 스페인에서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그는 어느날 무릎을 탁 쳤다. “아하, 현지인 목소리로 우리 노래를 부르게 하면 되겠구나” 풍찬노숙끝에 그는 스페인 국영방송 합창단 종신 단원이자 테너 파트장으로 확실히 입지를 굳혔다. 마침내 1999년엔 꿈에도 그리던 한국 민요와 가곡을 부르는 '밀레니엄 합창단'을 창단했다. 이후 밀레니엄 합창단은 해마다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노래를 알렸다고 한다. K팝 열풍이 전 세계에 불기 전인 1999년부터 이미 유럽 사회에 한국 음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것이다. 스페인 밀레니엄합창단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민요와 가곡을 부르는 프로 성악가들로 구성됐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스페인 국영방송사 RTVE 합창단원들이다. 임재식 지휘자를 제외하곤 모두가 푸른눈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밀레니엄합창단이 때마침 8월에 국내 11곳에서 내한공연을 펼친다. 전북의 경우 전북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고 전북교육청, 주한스페인대사관 등이 후원한 가운데 오는 16일 오후 7시30분 전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전주 공연에서는 특히 선구자, 그리운 금강산, 새야새야 파랑새야, 섬집아이, 하숙생 등 한국인의 정서를 외국인의 선율로 담아내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국내 가곡의 세계화를 향한 작은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래저래 푸른눈의 이방인들이 펼칠 전주 공연에 이목이 쏠린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1993년 8월, 일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했으며 일본군이 관여해 강제 동원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고노 장관은 일본군의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도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시인하면서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공식적인 발표, ‘고노담화’였다. 실제 고노담화가 있고 난 뒤 일본 교과서에는 위안부 관련 기술이 늘어났다. 1995년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담아 ‘전후 50년 담화’를 발표했으며 1998년에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라고도 명명하는 한일공동선언이 이루어졌다.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고노담화가 이어낸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노담화의 의미와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우익세력의 반발과 공격으로 담화를 파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제적 관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속내와는 달리 담화 계승을 내세워왔던 일본 정부가 속내를 드러내며 공식적으로 입장을 바꾼것은 아베 정권이다. 아베는 결국 ‘고노담화 검증’을 정부 차원의 과제로 만들었다. 지난 2014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가 그 결과물이다. 이 보고서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의미를 부정하며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폄훼했다. 곧바로 이어진 반향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정부터 시작됐다. 고노담화는 물론이고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은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2021년에는 스가 내각이 나서 ‘종군 위안부’ 란 표현을 ’위안부‘로 바꿀 것을 결정했다. 이듬해에는 이러한 결정이 검정교과서에 반영되면서 교과서 대부분이 수정됐다. 알려지기로는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중 고노담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는 1종뿐이다. 고노담화 발표 30년을 맞은 지난 3일,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기본적 방침‘은 ’1993년 8월 4일 내각 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기본적 방침은 그렇지만 방향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일까. 담화의 의미를 사실상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계승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교활한 정치적 속셈 뒤에 감추어진 일본 정부의 민낯이 강조될 뿐. 그래서인가. 한일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지금, 고노담화의 의미가 더 새롭다. / 김은정 선임기자
죽음을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꼭 듣고 싶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었다. 선원들은 밀랍으로 귀를 틀어 막게 하고, 자신은 귀를 막는 대신 돛대에 몸을 묶어 유혹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그는 악명 높은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났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 얘기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Siren)’은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바다 요정이다. 감미로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린 뒤 배를 암초로 유인해 침몰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더 유명한 독일 민요 ‘로렐라이’에 나오는 전설 속의 라인강 로렐라이언덕 위 여인도 세이렌이다. 고대 신화와 전설 속의 요정 세이렌은 지금도 살아있다. 세계 최대의 커피회사 스타벅스는 인어 모습을 한 세이렌의 형상을 로고로 택했다. 전설의 힘이 대단하다. 이 또 다른 세이렌의 유혹에 지구촌 커피 애호가들이 홀딱 넘어갔으니 말이다. 오늘날 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보장치를 칭하는 용어 사이렌의 어원이 바로 세이렌이다. 곧 닥쳐올 위험이나 지금의 긴급상황을 알려 경계하도록 하는 경보음에 치명적인 노랫소리로 죽음을 부르는 신화 속 요정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무조건 긴박한 상황이다. 소중한 생명이 달려있는 경우도 많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상시 훈련이 필요했다. 민방위 훈련이다. 매월 정해진 날, 훈련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이 전국에 울리면 차량 이동이 통제되고, 보행자들은 가까운 대피소나 지하공간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우리 사회 전쟁의 상흔과 공포가 남아 있던 20세기 후반 매우 익숙했던 모습이다. 이후 공습 대비 훈련(민방공훈련)은 2017년 8월, 지진·화재 등 재난 대비 훈련은 2019년 10월까지 실시된 후 중단됐다. 같은 시각, 전국에 울리던 요란한 사이렌 소리도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다. 그런 사이렌이 6년 만에 다시 울린다. 오는 23일 전국민이 참여하는 공습 대비 민방위훈련이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가상의 비상 상황을 설정해놓고 울리는 사이렌에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나라의 첫 민방위훈련은 1972년 1월이라고 한다.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다. 전국민이 참여하는 이 대규모 훈련의 풍경, 그리고 시민들의 자세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사뭇 궁금하다. 사람을 홀려 죽음의 길로 끌어들이는 요정의 치명적인 노랫소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긴급 상황을 알려 이를 경계하도록 하는 경보음으로⋯. 사이렌의 의미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귀를 막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결박한 오디세우스와는 정반대로 대응하는 게 맞다. 귀를 쫑긋 세워 신호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몸은 최대한 민첩하게 움직이는 게 사이렌에 대처하는 자세일 것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전북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액(GRDP)이 3091만원으로 전국 최하위다. 전북보다 아래였던 강원과 충북이 앞서 있고 제주특별자치도가 비슷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역대 정권들로부터 전북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돼 국가 예산을 제대로 받지 못해 SOC 구축이 미진, 그 결과로 산단 조성과 기업 유치를 못한 탓이 컸다. 민주화 이후 남의 탓 못지않게 내 탓도 있다는 것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민주당 일당 독식 구조라는 독특한 정치체계가 만들어져 경쟁의 정치가 펼쳐지지 않은 탓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으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라서 주민들보다는 공천권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악습이 거듭, 지역 발전이 뒤쳐졌다. 국회의원을 비롯 선출직들이 비전을 제시하면서 지역 발전을 도모하려고 힘쓰기보다는 자신의 입신양명하기에 급급한 것도 낙후 원인이었다. 3차례나 진보 쪽에서 정권을 잡았음에도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탓이 제일 크다. 여기에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시비 일변도로 나간 것도 잘못이었다. 아직도 농경산업이 주를 이룬 전북이 산업 생태계를 바꿔놓지 못하면 전국 꼴찌라는 오명을 벗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간 지역내총생산 순위에서 전북한테 밀렸던 강원과 충북이 지금 전북을 앞선 것은 수도권 팽창에 따른 대단위 공단 조성을 통해 기업 유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충북 진천만 해도 전북 전체 법인 수보다 많을 정도로 기업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오송은 식약청 등 관련 기관과 산학연 체계를 잘 갖춰 국내 바이오산업의 핵심 기지로 발전했다. 이들 지역이 기업 유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함께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여야가 경쟁하도록 골고루 뽑아줘 경쟁의 장을 만들어준 것이 효과를 거뒀다. 이 때문에 충북과 강원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가 예산 확보를 위해 서로가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강원도는 국힘 윤핵관 등 실세들이 포진해 내년 국가 예산 확보 목표를 전북보다 많은 10조 원으로 잡고 전력투구한다. 전북은 다행히도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해야만 전북의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김관영 지사의 저돌적인 생각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희망을 갖게 한다. 전북이 이차전지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정권 실세들이 포진한 울산 포항 오송에서 이미 생산을 하고 있어 전북이 유치전에 뛰어든다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처럼만에 전북출신인 한덕수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주례회동 때 새만금 장점을 피력, 원군 역할을 해준데다 국힘 정운천의원과 민주당 신영대의원이 해당 산업위에서 뒷받침을 잘 해줘 김 지사가 이차전지 새만금 유치라는 백년먹거리를 챙길 수 있었다. 젊은 김 지사가 꿈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하나씩 성과를 거두고 있어 도민들이 김 지사한테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전북이 전국 꼴찌를 면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지방의원 부정 이미지에 해외 연수를 둘러싼 추태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의원 입장에서도 그만큼 신경 쓰이고 부담감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민들 표정은 매우 못마땅하다. 의정 활동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관광성으로 비춰지는 해외 연수에 대해선 일단 부정적이다. 마치 MT가는 양 의례적인 데다 무늬만 연수지 관광 의도가 노골화 되다시피 해 언론 표적이 된 지 오래다. 주위의 이런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들이 해외 연수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걸 보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같은 논란 속에 얼마 전 전주시의회가 12대 들어 추진하는 해외 연수 시민 보고회를 갖고 소통의 장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해외 연수는 사전에 공무출장 계획서 제출과 심사 과정을 거쳐 전체 윤곽을 잡는다. 절차와 규정 등이 촘촘하게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건 연수 목적과 달리 관광이 주를 이룬다는 것. 누가 봐도 본말이 전도된 상황에서 기관 방문 1-2군데는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기 일쑤다. 심지어 결과 보고서도 인터넷을 베끼고, 여행사가 써준 그대로 제출한다. 그렇다고 연수 기관 시찰 위주로 무미건조한 스케줄이 짜여진다고 해도 효과는 의문시된다. 연수 취지와 관광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견문도 더 넓힐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핵심 과제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연수 결과를 어떻게 연결시켜 시민 이익으로 반영하느냐 여부다. 무엇보다 연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 제시에 주목한다. 3-4명 소그룹 단위는 기관 섭외와 통역, 항공권 등 비용 상승이 만만치 않아 가급적 파하는 게 상책이다. 인터넷 정보 홍수시대 여러 나라를 ‘찔끔 연수’ 하는 것보다 한 국가에서 3-4개 주제를 집중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면, 의원 전체가 동행하되 상임위별로 현지 연수는 별도 진행하는 식이다. 사전 예약과 일정 조율이 쉽고 경비를 절약해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덧붙여 시장 군수와 지방의원 포함해 국회의원, 관계기관까지 함께 팀을 꾸리는 방안도 관심을 끌었다. 다소 껄끄러운 동행이지만 지역발전의 큰 틀에서 보면 공감대 형성과 추진 동력 확보라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아직은 해외 연수에 대한 시민 여론이 곱지않은 상황에서 시민 보고회조차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시민들과 함께 공개 장소에서 연수 결과를 놓고 해법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진일보한 평가를 받는다. 주민들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하고 나름 새로운 돌파구 모색의 일환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모아짐으로써 시민 이익과 부합되는 연수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잘못된 점을 번연히 알고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지방의원도 이처럼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긍정적 변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전주시 만성동 법조타운 뒤편에는 작은 공원이 있는데 인류 역사를 관통하면서 현행 법 체계의 기반을 닦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던 주요 법률이 소개돼 있다. 그중 눈에 띄는것은 바로 함무라비법전이다. 지금부터 약 3800년전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왕 때 편찬된 최초의 성문법인데 로마법대전, 나폴레옹법전과 더불어 세계 3대법전중 하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함무라비법전은 죄에 상응하는 강한 징벌을 담고있는게 특징이다. 예를들면 “누구든 남의 집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뚫으면(훔치기 위하여 뚫고 들어가면) 그 구멍 앞에서 죽여 묻는다” 라든지, “집에 불이나서 불을 끄러 온 사람이 그 집 주인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그집 주인의 재산을 취하면 그 사람은 바로 그 불속에 던진다”하는 식이다. 무자비한 처벌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제재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려 4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건축업자와 선원’ 부분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 “건축업자가 타인의 집을 지을 때 견고하게 짓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었으면 그 건축업자를 죽인다∼ 건축업자가 타인을 위해 집을 짓는데, 집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균열이 발생할 경우 건축업자는 자비로 그 벽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어야 한다.” 등등. 수천년 앞을 내다본 것인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법전이다. 만일 함무라비법전이 오늘날 통용된다면 당장 죽어야 할 사람이 엄청 많다. 순살아파트와 관련된 사람을 함무라비는 과연 지금처럼 가만 놔눴을까. 아니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 바로 묻어버렸을까. 1970년 4월 8일 서울시 창전동 와우산 자락에 들어선 와우아파트의 경우 철근 70개를 써야 할 기둥에 겨우 5개를 집어넣었고 콘크리트는 자갈 섞인 모래 반죽이나 다름없었다. 결과는 붕괴로 인해 아파트 주민 33명과 판잣집 주민 1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를 기치로 내건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의 일처리 방식이 조종을 울리는 대형 참사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1994년 성수대교 붕괴가 있었고 1995년엔 삼풍백화점 참사가 있었다. 시스템의 붕괴와 원칙의 파괴가 부른 인재라며 야단법석을 떨었으나 2023년 지금도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다. 이름도 생소한 순살아파트.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떠받드는 건축 방식이다. 설계, 시공, 감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무량판 구조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공사 관행과 ‘무조건 더 싸게’를 강요하는 비용 절감이 무리하게 추진됐다는 얘기다. 2000년 전, 로마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서두르되 모든 상황을 잘 따져보고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지향점이 어디인지 명확히 해야한다. 우리 주위에 순살치킨이 아닌 순살아파트가 있어선 안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안나 할머니가 그린 예쁜 꽃 그림을 만난 것은 지난해 늦가을이다. 김제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이끄는 예비 사회적기업 ‘이랑 고랑’(대표 황유진)이 마련한 전시 <어르신들을 위한 나라>에서였다. 김제시 죽산면 면 소재지에 있는 낡고 작은 공간 ‘마을 오픈 갤러리’에서 열린 이 전시는 꽤 많은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전시 주인공은 광활면 용평마을의 여섯 명 할머니들. 평균 나이 85세인 이 할머니들 사이에 안나 할머니도 있었다. 전시는 이랑 고랑이 용평마을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진행한 그림그리기 교육의 결실이었다. 이랑 고랑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초, 용평마을 할머니들과 만났다. 미술을 전공한 젊은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이랑 고랑은 코로나 확산으로 위태로워진 환경에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할머니들과 그림으로 소통했다. 유난히 아름다운 꽃 그림으로 눈길을 끌었던 박안나 할머니는 김제시 광활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토박이다. 7남매를 낳았지만, 아들 하나를 앞세우고 남은 6남매를 평생 이어온 농사로 키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농사를 그만두었지만, 소일거리를 위해 몇 종 밭일 거리는 남겨 두었다. 나이가 들면서 일을 줄였지만 아직 손 가는 일이 많아 하루가 길지 않다는 안나 할머니의 일상이 달라진 것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다. 어느 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선생들이 가르쳐주는 그림그리기를 따라 하면서 할머니는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일도 있구나’ 싶었다. 누가 하라고 떠미는 것도 아닌데 틈틈이 시간을 내어 색연필로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문구류나 생활용품에 활용되어 아트상품이 되기도 했는데, 구도나 색의 조화가 남달랐던 안나 할머니의 그림은 그중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안나 할머니가 평생 처음 취직한 것이다. ‘이랑 고랑’이 할머니의 생애 첫 직장이다. 직급은 인턴. 할머니의 숨겨져 있던 재능과 감각을 눈여겨본 이랑 고랑의 황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자 지난 7월, 안나 할머니를 큰 고민 없이 채용했다. 하는 일은 원화를 그리는 일이다. 일주일 동안 일하는 시간은 24시간. 재택근무와 이랑 고랑 작업실 출근을 번갈아 하면서 근무시간을 채운다. 일흔 다섯 살에 그림을 시작한 풍경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아흔 살에 첫 콘서트를 열고 가수로 데뷔한 앙헬라 알바레스처럼 안나 할머니의 도전이 전하는 울림이 크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생겼어.’ 1938년생 여든다섯 살 인턴, 안나 할머니가 누릴 시간과 기쁨이 길었으면 좋겠다. / 김은정 선임기자
‘맨발걷기’가 대유행이다. 영어로는 접지(接地)를 뜻하는 ‘어싱(Earthing)’이다. 지구 표면과의 맨살 접촉, 즉 맨발로 맨땅을 걷는 운동이다. 모악산‧건지산 등 도시 인근 등산로나 산책로에 나가면 신발을 벗어 들고 살포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열풍이다. 각종 질병 치유와 건강 유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맨발걷기를 통해 말기 암을 극복한 사례까지 속속 발표되면서 너도나도 신발을 벗는다. 어렵지도 않다. 지구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맨땅과 굳은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정작 그 맨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회색 도시를 벗어나 녹색 공간, 산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곳도 만만치 않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등산로는 어김없이 거적과 파쇄석으로 덮여 있다. 경사 구간에는 목재 데크나 돌계단이 놓인 지 오래다. 등산객 안전과 토사유실 방지를 위해서다. 이로 인해 폭우나 인간의 발길에 의해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막았지만, 그 흙을 밟을 수는 없게 됐다. 어지간한 높이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말이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전국 각 지자체가 ‘무장애 나눔길’ 조성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치 좋은 숲길과 산책로는 빠짐없이 합성목재 데크로 뒤덮였다. 장애인과 노약자‧임산부 등 보행약자층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자는데 제동을 걸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단체는 없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편리함과 안전을 얻기 위해 진짜 소중한 것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했다는 사실을. 그런 지자체들이 이제는 무장애 나눔길 대신 황톳길‧흙길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맨발걷기 열풍에 발 빠르게 편승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주변에서 맨땅, 흙길을 지금보다 수월하게 접할 수 있을까? 기대하기 어렵다. 각종 개발사업이 중단될 리 없고, 이상기후로 극한호우‧슈퍼태풍 등 대규모 자연재해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이수(利水)’보다 ‘치수(治水)’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사태가 우려되는 비탈면과 절개지, 그리고 하천 제방은 다시 두꺼운 콘크리트로 도배될 게 뻔하다. 또 생활공간에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투수층을 보기도 더 힘들어질 것이다.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빗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물순환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수층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땅의 숨구멍을 막고 있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도시 침수의 원인으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데도 맨땅은 갈수록 줄어든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했다. 선인들은 ‘사람은 본디 흙에서 나서 평생 흙을 딛고 살다가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사람뿐만이 아니고 만물이 다 그렇다. 지구의 맨살, 흙을 밟지 못하고 사는 삶이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 김종표 논설위원
국힘으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전북 정치가 더 쇠락해졌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거대 여당을 등에 업고도 대선 때 0.73%로 패한 이후 대장동 개발과 관련, 연이어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서 야당 역할을 못하고 있다. 초재선으로 짜인 전북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리더가 없어 각자도생하기에 급급, 지리멸렬한 상태다. 문재인 정권때가 춘삼월 호시절이었지만 정치력이 워낙 약해 전북 현안이었던 남원공공의대 설립이나 제3금융중심지 지정 문제를 풀지 못했다. 통상 국회가 선수(選數)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초선도 정치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제 몫을 찾아올 수 있다. 의석수가 10석인데다 정치적 영향력이 별로인 의원들로 전북 정치권이 짜여져 중앙정치 무대에서 전북 정치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 전 의원이 당 대표를 맡아 운영할 때는 국회를 쥐락펴락하는 바람에 다른 당 의원들까지도 지역구 현안 해결을 위해 정 대표를 찾아 나설 정도였다. 국힘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국힘 정운천 의원이 김관영 지사를 협치라는 이름으로 돕지만 당내 윤핵관 등 실세그룹의 견제가 보이지 않게 작용, 정권초기 때보다 약발이 떨어졌다. 특히 지난 전주 완산을 4.5재선거 때 국힘 김경민 후보가 6명 중 5등으로 완패해 내년 총선 출마를 노리는 정 의원한테도 큰 부담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를 만들어낸 여파를 몰아 완산을 재선거에 출마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김 지사와 협치를 통해 그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총선으로 기회를 넘긴 게 패착이었다고 분석한 사람도 있다. 지금 김관영 지사가 무기력했던 전북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전북 정치권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의존, 현안 해결에 나서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선의 안호영·김윤덕 의원이 지사 경선 때 일합을 겨뤘고 군산 신영대 의원과 강임준 시장이 지사선거 때 엔티여서 군산에서 김 지사 득표율이 가장 낮았다. 다행히도 김 지사가 백년 먹거리에 해당한 이차전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하려고 전북 정치권을 한데 끌어모아 유치에 성공하면서 그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 김 지사는 지난 1년 송하진 전 지사가 추진했던 기업유치업무를 승계하면서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이차전지특화단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하는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도민들은 정치력이 별로인 현역들을 또다시 국회로 보낸들 무슨 대수가 있겠느냐 면서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현역들을 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법리스크에 얽매인 이재명 대표의 눈치나 살피면서 방탄조끼 역할 하는 현역들을 대거 물갈이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당 혁신위원회가 구성 운영되지만 그들이 오히려 혁신 대상이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전북 정치권의 위상이 최약체로 도토리 키재기식이어서 강원도나 충청권처럼 갈아엎을 때는 인정사정 없이 갈아엎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무튼 전북이 꼴찌를 탈출하려면 정치력이 약한 도토리급 현역들을 갈아치우는 수밖에 없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갑질과 외압의 진실 공방을 둘러싸고 체육회와 도의회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였다. 문제의 심각성은 체육회가 직접 예산 편성과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도의회와 도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는 점이다. 특히 예산 문제는 체육 현안 중 최대 난제로 꼽히며 그동안에도 두 기관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도 결국 예산 갈등이 불씨를 키웠다. 체육회 사무처장이 본인의 사직을 전제로 사법기관 등의 고발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준섭 처장은 지난 25일 회견에서 도의원 갑질과 청탁, 도청 직원의 협박성 발언을 문제 삼았다. 사실관계는 곧 가려지겠지만 그의 폭탄 발언과 관련해 후폭풍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학 구도를 보면 도의회·도청은 실질적으로 체육회를 견제 감시할 뿐 아니라 예산과 업무 방향에 대해서도 결정적 권한을 쥐고 있다. 도지사가 회장을 겸할 때는 이들 관계가 비교적 원만하고 업무 협조도 잘됐다. 그러나 민선 체육회장 이후 불편한 기류가 역력해지면서 갈등과 마찰이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종목 단체 회장이 부족한 체육 예산에 불만을 품고 도지사 낙선운동을 언급해 큰 파장이 일었다. 도의회 행정 사무감사 때는 대폭 삭감된 예산을 들먹이며 의원이 체육회에 핀잔을 주는 일도 있었다. 민선 회장 시대를 맞아 가장 큰 이슈가 예산 확보 문제였다. 도지사 회장 시절엔 체육회 예산의 80-90%를 도청 지원금에 의존했다. 예산 문제 해결이 회장 역량 평가의 1순위로 떠오른 건 그 때문이다. 만약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 어떤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민선 초기 혼란과 시행착오를 감안한다 해도 갈등 수위는 예상 외로 높았다. 일각에선 도지사가 지원 사격한 후보가 분루를 삼키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설왕설래했다. 그 무렵 정강선 회장의 부적절한 처신 의혹까지 터지면서 문제는 더욱 꼬여갔다. 이렇듯 예산 문제는 민선 체육회장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체육인들은 이 상황에서 정 회장의 리더십 타격과 함께 추진동력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 선거에서 젊은 회장을 선택한 건 그만큼 체육 발전의 역동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패기와 추진력으로 기득권에 안주한 무기력한 기운을 걷어내고 힘찬 날갯짓을 함께 하자는 의미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예산 확보다. 그런데 예산 주무 기관인 도의회·도청과의 갈등도 모자라 직접 총구를 겨눴다는 점에서 수습책이 쉽지 않을거란 관측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정강선표 체육행정’ 의 진가를 발휘할 때다. 지난 2020년 그가 취임한 뒤 코로나 팬데믹이 덮쳐 체육 현장은 올스톱 되다시피 했다.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고 전북 체육이 용틀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암초에 걸려 가라앉지는 않을까 속을 태운다. 김영곤 논설위원
시간은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흘러가지만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모두 어느 특별한 순간은 두고두고 그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경우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2004년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한 기조 연설이 정치적으로 대성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연설은 ABC, CBS, NBC 등 메이저 TV 방송사에서 중계되지는 않았으나, 무려 910만 시청자들이 오바마의 연설에 탄복하면서 일약 중앙정계의 큰 물건으로 각인됐다고 한다.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일컬어지는데 반세기전인 1972년 황금사자기때 부산고와의 결승전에서 9회말 1대 4로 뒤지다가 5대 4로 대역전극을 펼친게 그 계기가 됐다. 1968년 창단된 군산상고 야구부는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팀이자 호남 야구를 대표하는 강호다.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김준환, 김용남, 조계현, 조규제 등 쟁쟁한 야구인들이 바로 군산상고 출신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태동할 때 해태타이거즈의 주요 멤버 또한 군산상고 출신이 주축을 이룬 바 있다. 그런데 군산상고 출신이자 프로야구 원년멤버였던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등 3인이 오는 8월 2일 전주에서 아주 특별한 만남을 갖기로 해 눈길을 끈다. 이들 3인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레전드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원년에 김봉연은 홈런왕, 김성한은 타점왕, 김일권은 도루왕을 차지한 바 있다. 군산상고와 해태타이거즈 출신 이들 3인방은 8월 2일 전북체육회관에서 유물 기증식을 가질 예정이다. 전북체육역사기념관 건립에 써달라며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야구 용품을 전달하는 행사다. 이들이 걸었던 길은 그 자체로 야구사의 한 페이지인지라 주요 용품은 부산에 건립 예정인 KBO 야구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이미 기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향인 전북에 놓는게 더 의미있을거라는 점에 뜻을 함께하고 KBO에서 돌려받았다고 한다. 한편 일제때인 1941년 전북 최초의 상업계 교육기관인 군산상고가 개교한 이래 금융권 등에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으나 역전의 명수로 대변되는 야구 명문고의 명성은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지난 3월 2일 전북 초·중·고 입학식이 일제히 열렸을때 서거석 교육감은 상징성이 큰 군산상일고를 찾았다. 서 교육감은 “오늘은 군산상업고등학교가 명문 군산상일고로 거듭 태어난 날”이라며 “그 첫 발걸음의 주인공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고 싶어서 이른 아침 서둘러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귀띔했다. 군산상일고는 고교야구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일반고로 바뀌면서 얻은 새 이름이다. 서 교육감은 군산상일고 입학식에서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언급했다. “어떤 어려운 일에도 가슴 속 불과 같은 뜨거움을 간직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청춘”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군산상고 출신 3인방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가슴 속 불과같이 뜨겁기만 하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일본 구마모토성은 조선 침략을 이끈 가토 기요마사가 세운 성이다. 일본 내전에서도 활약했던 가토는 구마모토의 세습영주가 되자 성을 쌓기 시작해 7년만인 1607년에 구마모토성을 완성했다. 천수각만 두 개, 마흔 아홉 개의 성루를 가진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여러 개 성 중에서도 난공불락, 견고하게 축성돼 좀체 함락하기 어려운 성으로 꼽힌다. 전해지기로는 축성에 탁월한 기량을 가진 가토가 자신의 오랜 전투 경험과 오사카 축성에 참여했던 경험, 거기에 조선의 진주성을 공략했을 때 얻은 새로운 지식을 더해 더 견고하게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일본의 근대 사상 최대 내전인 서남 전쟁 때 불에 탔지만 이후 재건했으며 현존하는 천수각도 1959년 다시 세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인 구마모토성이 새롭게 얻은 이름이 있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지정 건축물’이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은 1988년에 만들어진 일종의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다. 구마모토 현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건축물로 도시를 바꾸어 보겠다’는 취지를 내세워 만들어낸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후대에 남길 문화적 자산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근대 이후 기술적 공법을 주목하고 기능만을 앞세웠던 기존 건축물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모색하고 실현해나가겠다는 태도와 과정이 바탕에 있다. 과거 유산인 역사건축물을 이 대열에 포함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구마모토성 외에도 주요한 현대건축물까지 현 안에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 수십 개를 그 대상으로 지정해놓았다.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4년 후, 역사적인 건물이나 호평을 받는 건축물(전통과 현대)에 대한 인증 사업을 새롭게 더해 1992년 46개의 기존 건축물을 선정한 결과다. 역사적 건축물과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에 지어진 주요건축물까지 아트폴리스 영역으로 들여온 것은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를 좀 더 친밀하게 느끼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35년.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지금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한 자치단체가 같은 사업을 이처럼 길게 이어온 사례는 드물다. 세계적으로 도시를 바꾸고 새롭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와 도시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구마모토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는 힘, 역사건축물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예의를 갖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이 주는 교훈이 크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문화유산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의 진정한 힘을 의심하는 자치단체장들이 아직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꿀사과‧꿀참외‧꿀잠‧꿀팁‧꿀재미⋯. 한동안 ‘꿀’이 들어간 말이 크게 유행했다. ‘꿀처럼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합성어가 넘쳐났다. 여기에 꿀이 ‘매우 좋은, 유용한’이라는 뜻으로 확장되면서 꿀팁‧꿀피부‧꿀직장과 같은 신조어들이 쏟아졌다. 또 ‘경치가 꿀이다’, ‘취사병은 꿀이다’처럼 ‘매우 좋다’라는 의미의 서술적 표현도 나왔다. 애정이 넘치는 신혼부부나 연인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관용구 ‘깨가 쏟아진다’는 ‘꿀이 떨어진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훨씬 ‘센 놈’이 불쑥 등장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놈이다. 바로 ‘마약’이다. 마약김밥‧마약치킨‧마약만두‧마약베개‧마약바지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꿀사과에 꿀이 없는 것처럼 마약김밥에도 물론 마약 성분은 들어가지 않는다. ‘한번 맛보거나 사용해보면 절대 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거나 좋다’는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다. 웬만한 자극과 충격에는 끄떡도 않는 이 시대의 소비자들을 흔들기 위해 ‘더 센 놈’, ‘극단의 용어’를 찾았을 것이다. 맛의 최고봉인 꿀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 놈은 자극성과 중독성을 무기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제품명과 음식점 상호에 버젓이 표기되면서 단박에 세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업계의 상술에 편승해 우후죽순 확산하면서 점차 익숙한 일상용어로 다가왔다. 게다가 꼭 단맛이 아니어도 되니 음식명 앞에 붙여 새로 만드는 합성어에서는 꿀보다 확장성이 크다. 괜찮을까? 그럴 리 없다. 마약은 해악이 너무 크다. 우리 일상에 파고든 이 자극적인 신조어들이 마약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희석시켜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식품이나 음식점 이름에 ‘마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법안(‘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전면 금지가 아닌 권고에 그쳐 실효성 면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다. ‘마약○○이 아닌, 소문난○○이나 꿀맛○○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주 풍남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말 ‘마약○○’ 간판을 단 학교 인근 한옥마을 유명 음식점 두 곳을 방문해 전달한 손편지의 내용이다. 아이들은 편지에서 ‘마약을 주제로 토론수업을 했는데 한옥마을 곳곳에 ‘마약○○’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마약이라는 문구가 불러일으킬 사회적 문제점을 열거하고, 마약을 대체할 용어까지 제안했다. 편지를 받은 상인들은 아이들의 제안을 흘려버리지 않았다. 한 상인은 간판 문구를 바꾸겠다고 약속했고, 곧바로 ‘마약○○’을 ‘원조○○’으로 변경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이 초면의 업주들을 찾아가 상호 변경을 요청했을까. ‘마약(痲藥)’은 ‘마약(魔藥)’이다. 절대로 꿀이 될 수 없다. / 김종표 논설위원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김 지사의 컷 오프설은 사실무근
지금, 우리에게 ‘호남’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