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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2018년 봄. 갓 대학에 입학해 정신없이 노닐던 새내기 때였다. 몇 주 동안 제집처럼 드나들던 과방 출입문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짤막한 글귀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문 앞에 떡하니 걸려있는 것이다. 누렇게 변색된 에이포 용지 위에 붓펜으로 어설프게 써 내려간 ‘그럴 수도 있지’. 오른쪽 귀퉁이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연분홍 꽃이 두세 송이 그려져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눈에 띈 적 없었지만, 모양새를 보아하니 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듯했다. 알고 보니 역사가 일 년도 더 된 그 캘리그래피는 당시 꽤 친했던 한 학년 위 선배의 작품이었다. 선배는 뿌듯함과 민망함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내 삶의 신조이자 우리 과의 급훈”이라 설명했다. 냉정히 말해 글씨도 그림도 하나같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중화장실 칸막이에서 뜻밖에 명언을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럴 수도 있지’의 영어 번역문은 ‘I understand’다. 목적어는 없다. 이해의 대상이 남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과 나의 숱한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포용하는 ‘관용’의 자세가 모진 고행도 경건한 기도도 아닌, 그저 그 간결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됨을 그때 깨달았다. 이에 그 소박한 글귀가 내 맘속 깊이 뿌리 내리도록 몇 번이고 곱씹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2학년이 되었다. 새내기들의 전유물이었던 과방은 더 이상 찾을 일이 없었고, 하루에 한두 번씩 주문처럼 되새겼던 여섯 글자는 자연스레 차츰 흐려져 갔다. 이후 뿌리 얕은 나무가 쉽사리 흔들리듯 살랑이는 바람에도 난 한없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을 때면 한껏 짜증이 났다. 주문한 음식의 조리 시간이 길어질 때면 곧잘 불쾌감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흡연자를 마주칠 때면 마구 화가 솟구쳤다. 그렇게 별거 아닌 일에도 나는 쉽게 분노했다. 다이어트 도중에 떡볶이를 시킬 때면 나 자신을 혐오했다. 시험에서 아는 문제를 틀릴 때면 몇 날 며칠을 후회했다. 아침잠을 못 이겨 오전 수업에 지각할 때면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렇게 사소한 실수에도 나는 크게 자책했다. 가게 점원의 말투가 불친절할 때면 속이 상했다. 대학 동기가 짓궂은 농담을 건넬 때면 혹여 진심일까 마음졸였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면 날 향한 애정의 진위를 의심했다. 그렇게 하찮은 비난에도 나는 깊게 상처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얘기를 나누던 친구의 입에서 한참 동안 잊고 살았던 내 빛바랜 주문이 무심코 흘러나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내 나도 모르는 새 줄곧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자각했다. 내겐 남을 이해할 의지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금세 달아오르고 금세 식어버리는 가벼운 양은 냄비처럼, 텅 빈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싹 메마른 삭막한 마음은 고작 그 여섯 글자에 다시금 슬며시 촉촉해졌다. 그날 이후 사소한 일로 습관처럼 분노가 치솟거나 마음을 다칠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4년 전 봄날을 떠올린다. 여닫을 때마다 희미한 쇳소리를 내던 육중한 진회색 철문을 떠올린다. 스카치테이프 한 장에 매달려 힘없이 달싹이던 누런 에이포 용지를 떠올린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서른 번쯤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앳된 나를 떠올린다.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조금씩 하자 있는 서로를 너그러이 감싸 안으며 살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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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6 13:45

전북 산림자원 활용 방안

우리나라는 국토의 63%가 숲인 세계적인 산림 국가이나 산림 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우리나라 임야는 639만㏊로 국토 면적의 63.7%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 산림 면적 비율에서는 4위를 차지하고, 세계 평균(31%)보다는 2배를 기록해 OECD 국가 중에서 우수한 산림 보유 국가로 인정 받고 있다. 하지만 산림 면적은 연평균 3천㏊씩 계속 감소하고 있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1985년 653만ha의 산림면적이 2005년 639만ha으로 줄어들면서 올해말에는 630만ha를 예상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 근접해 있는 산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라북도 산림자원은 어떠한가. 산림 면적은 443,140ha로 전라북도 면적 대비 54.9% 이며, 전국 산림 면적(6,334,615ha) 대비 7%로 산림 자원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림 98,303ha, 지방자치 단체가 보유한 공유림은 29,920ha 그리고 개인과 단체등이 가지고 있는 사유림은 314,917ha 이다. 산림은 사회적·경제적 가치의 선순환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공간이며,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산은 우리에게 수원 함양·대기 정화·휴양·토사유출 방지 등 국민 1인당 매년 249만원어치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농촌과 산촌 지역에는 ‘마을’이라는 공동체 개념이 남아 있어 풍부한 산림자원의 공유를 통해 공동의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산림 자원을 활용한 주민 주도의 계획을 통해 산촌의 안정적 소득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사람·공간·공감을 중심으로 하는 산촌의 자립적 미래성장 모델을 도출해 삶의 일터와 쉼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산림자원 활용 잠재력이 높은 지역을 산촌 거점권역으로 시군에 육성함으로써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을 실현할 수 있다. 역량 강화 교육을 통해 지역 거버넌스 구축으로 지역협의체 구성 및 운영에 탄력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청년 유입과 청년의 산림기업 취업을 지원하여 산촌 유입을 유도하고 청년 구직자를 선발하여 산림분야 기술 연수 및 취업의 기회제공을 노동청과 협의하여 이끌어 낼 수 있다. 목재산업 측면에서 보면, 2050탄소중립 선언이후 탄소의 흡수원인 나무에 관심을 끌게 되었다. 2022년도 전남 화순군에 선정 되었던 목재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남원시에서 성장하는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우드칩,우드펠렛 생산, 그리고 무주군이 산림청으로부터 선정된 2023년 목재친화도시 건설사업 등 목재를 이용한 산업 성장을 기대 하고 있다. 전북형 맞춤 산림 서비스 강화로 산촌 마을과 산림 치유의 연계를 통한 서비스 확대와 산림치유지도사 육성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 기존 체험형, 생태교육 중심에서 벗어나 생활형, 아웃 도어형 특화된 프로그램은 물론 홈스테이를 운영해 산촌의 삶과 문화를 교육하고 ‘배움의 숲’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폐교를 중심으로 한 산림교육 운영을 고려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 특화 산림레포츠 단지로 체험형 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북형 산림문화자원 활용한 관광 상품 개발 및 휴양림 연계 숲속 야영장 조성 등 다양한 산업 성장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숲과 사람, 산림 자원을 활용한 산림친화 도시건설에 앞장 설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은 다양한 협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상민 산림청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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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6 13:41

군산의 불꽃, 다시 피어오르다

산골 출신인 필자가 난생 처음으로 배를 타본게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인 듯하다. 군산에서 선유도로 가는 여객선이었다. 그때의 신기함과 놀람은 지금도 생생하다. 부지사로 취임 이후 지난 9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공장을 다녀왔다. 군산조선소가 2017년 7월 가동이 중단된 이후 5년 만에 재개장을 앞두고 사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현장을 찾은 것이다. 55만평의 광활한 공장 부지와 1,650톤의 골리앗 크레인이 주는 웅장함은 5년전 연매출 1조원, 군산 산업의 24%를 담당하던 예전의 영광을 재현해 주는듯 하였다. 지난달 28일 11시,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100여명의 내외빈을 모시고 ‘군산의 불꽃 – 다시 피어오르다’라는 주제로 재가동 선포식이 있었다. 그 날 군산조선소에서는 플라즈마 절단기가 1cm 두께의 강재를 자르는 푸르스름한 불꽃이 연기와 함게 피어오르면서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 멈추기 시작했다고 여긴 도민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라북도․군산시 등 관계자들이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관계 중앙부처 방문․건의 46회, 정치권․사회단체 협력대응 62회, 현대중공업 울산본사 방문 26회 등 총 223회에 이른다. 이 수치 이외에 조선소 재가동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방울을 흘리신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3년만에 1,746만톤이라는 선박수주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 등 선박분야에서도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선박 발주량은 2030년까지 연평균 4천만톤 이상의 안정적인 발주량이 지속될 전망이다. ‘물 들어올 때 노(櫓) 저어라’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물’이 들어온다 해도 ‘노(櫓)’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그 ‘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전라북도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조선업 호황기 이후 다시 찾아온 글로벌 시황회복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해안 미래 친환경 조선산업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전라북도 조선산업 활성화 3대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이다. 첫째, 내년 1월 본격적인 재가동과 함께 초기 블록제작에서 향후 LNG․LPG 선박건조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무너진 조선산업을 재건하고 산업기반을 강화하자는 의미이다. 둘째, 중소형‧특수선 중심의 지속가능한 新조선 생태계 조성으로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다. 셋째, 조선업의 친환경‧스마트화를 촉진시킬 테스트베드 구축을 통해 친환경 선박 산업의 거점 지역으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할 것이다. 이제 군산조선소는 재가동 선포식을 기점으로 사람과 자본이 넘치던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더 큰 도약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군산조선소가 부활을 넘어 세계 제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도민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 도와 군산시의 인력양성 및 고용지원,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선박 건조 노력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다. 조선산업이 재가동 선포식의 작은 플라즈마 불꽃을 발화점으로 전라북도 제조업의 중심으로 다시 활짝 피어오르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군산조선소 도크에서 건조된 선박의 진수선을 도끼로 자르고, 스파클링와인 병을 깨뜨리는 진수식이 개최되기를 희망한다. 다시 한번 ‘서해안 미래 친환경 조선산업 중심지’ 도약이라는 담대한 도전에 나선 전라북도 조선산업에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종훈 전라북도 경제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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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6 13:37

사리장엄의 존재와 힘

2009년 1월 14일 오후, 보수 정비를 위해 해체되고 있던 익산 미륵사지 서탑 현장에서 놀라운 유물이 발견됐다.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은제관식 등 유물 5백여 점이 담겨있는 백제 사리장엄구였다. 가공수법이 정교하고 세련된 품새의 사리장엄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빼어난 기교로 주목을 모았다. 그러나 학계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안에 있던 금제 사리기다. 사리기는 불교에서 탑을 세울 때 심주석(탑의 가장 중심에 놓인 돌) 주변에 안치했던 기물. 탑을 조성한 내력을 기록해놓기도 해 그동안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던 미륵사지 탑의 창건 내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계의 기대대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석탑 건립연대와 시주자의 신분이 기록되어 있었다. 익산 미륵사의 창건 시기가 백제 30대 무왕 때인 서기 639년이라는 것,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사찰을 창건했다는 설화와는 달리 무왕의 왕후는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륵사지 서탑 사리기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2년 앞서 발견된 부여 왕흥사지 목탑 터의 창왕시대 사리기에 이어 백제 사리기로는 두 번째. 백제 시대 불교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미륵사지 서탑의 사리장엄구에서 쏟아져 나온 500여 점 유물의 가치와 발굴 의미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당시 유물 공개 현장에 참석한 이건무 문화재청장도 그 가치를 인정해 ‘국보 중에서도 국보급’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파장도 컸다. 기존의 백제사 연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 문화강국이었던 백제, 특히 공예 미술사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백제문화의 실체를 밝혀내는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라는 평가도 더해졌다. 정교한 서역풍 문양으로 가득 채워진 금제 사리항아리, 금판 위에 193자를 새겨넣은 사리봉안 명문기, 은제관식과 여러 가지 내용을 새겨넣은 금제 소형판 등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유물이 건네는 선물이었다. 2018년 미륵사 서탑의 사리장엄구는 보물로 지정됐다. 세상에 모습을 보인 지 10년 다 되어 얻은 자격이다. 그리고 다시 4년. 사리장엄구가 국보로 지정 예고됐다. 국보 승격은 역사·학술·예술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들여다보니 1400년 묻혀있던 역사가 우리에게 다시 찾아오는 과정이 흥미롭다. 어느 날 문득 역사가 말을 건네는 이유가 있을 터. 가장 빛나는 문화적 역량을 발휘했으나 700년 찬란한 역사를 끝으로 패망하고 난 뒤, 그 존재조차 미미해졌던 백제를 다시 보게 하는 힘. 사리장엄구의 존재가 새삼스럽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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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2.11.03 18:41

<금요수필>구두병원 아저씨

몇 년 전 아내가 편안하게 신으라며 캐주얼 화 한 켤레를 사 왔다. 평생 처음 신어 본 신발이었다. 퇴직 후 자유롭게 신을 수 있어서 계절도 날씨도 상관없이 줄곧 신고 다니다 보니 구두 밑창이 닳아 버렸다. 발바닥의 균형이 어긋나 팔자걸음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백화점 신발가게에 가서 밑창을 보수하려니 5만 원을 내라 했다. 수선비가 비싸서 포기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동네 은행 앞에 구두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창문에 <구두병원, 광택, 수선, 굽갈이> 등을 써 붙여 놓았는데 한 평도 안 되는 컨테이너 부스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60대 후반의 아저씨가 오래된 구두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다. 구두 굽을 갈아주는 데 얼마냐고 물으니 만 오천 원이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니까 사오십 분은 기다리라고 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구두를 맡기니 헌 구두로 만든 슬리퍼를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구두병원 안 쪼끄마한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나이가 몇이며, 어느 곳에 사는지 물으며 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간간이 아가씨들과 중년 부인들이 샌들이나 구두 굽갈이를 맡기고 한두 시간 뒤 찾아가곤 하였다. 나도 다른 신발을 가지고 와서 맡기고 일을 본 뒤 찾아갈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뒤 굽을 칼로 잘라내고 있는 걸 어쩌랴. 그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료장수는 건강이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위장에는 부추(전라도에서는 솔, 타지방에서는 정구지)를 삶아 먹어야 하고, 호박이나 가지를 많이 먹어야 좋다는 등 단방약에 관한 처방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구두 손질은 멈추지 않았다. 얼핏 들었던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돈을 벌어서 불우이웃을 돕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땐, 뭐 그런 것을 다 묻느냐며 얼버무렸다. 이 신기료장수는 독신으로 살면서 가난한 이를 돕고, 손수 도시락을 싸서 가지고 온다고 들었다. 이야기 중에도 신발을 칼로 자르고 페이퍼로 닦고 문지르며 손끝으로 곱게 다듬다가 밖에 나가 숫돌에 문지르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 뒤 강력 접착제로 붙이며, 송곳으로 꿰매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그런데도 새로 오는 손님의 일감을 주문받으랴, 수선한 신발을 내주랴 바삐 움직였다. 나는 대충 되었으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멀었단다. 신발을 신다가 잘못되어 창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깔창을 뜯어내더니 다시 송곳으로 밑창을 꿰매는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무릎 위에 널따랗고 두꺼운 보자기를 올려놓고 한 번도 하늘을 향해 본 적이 없는 구두 밑바닥을 뒤집어놓고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단단히 끈을 조이고 정성을 다하는 게 아닌가. 고무신이나 운동화는 빨아서 말릴 때 뒤집어 밑창이 하늘을 볼 수 있게 하건만, 가죽구두는 어디 그렇던가. 구두를 닦고 약칠을 하면서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택도 내며, 입김을 불어 살살 문지르고, 깔창은 씻어 말리지만, 밑창은 항상 땅에 엎드려 그 음침한 곳에 붙어있다. 그리고 늘 젖은 곳이나 더러운 곳만 밟는다. 깨끗하고 번들번들한 구두 밑창을 이 구두병원장(?)은 가장 가까이에서 소중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만지면서 일을 한다. 그 구두병원 아저씨를 보니 윤오영 님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이 문득 생각났다. 맡겨진 일에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세가 믿음직했다. 우리 모두가 이 아저씨처럼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맑고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나인구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시, 수필로 등단해쓰며 전북문협, 전북수필, 영호남수필. 대한문학회원이며 은빛수필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간주곡의 서정》 수필집《그런 돌이 되고 싶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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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6:23

인사청문제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를 두고 전북도의회와 전라북도의 갈등이 극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도의회의 문화건설안전위원회의 8인과 의장 추천 4인으로 총 12명의 청문위원으로 구성된 인사청문회에서 전북개발공사 사장 서경석 후보가 부동산 구입 등과 관련한 금융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인사청문회를 중단하고 청문보고서 채택을 하지 않았다. 이는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민선 8기를 맞아 새롭게 구성된 전북도의회는 의장을 필두로 인사청문제도 개혁에 대해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에 실패하여 청문대상기관을 4개 늘리고 청문위원, 청문 기간 및 청문 시간을 조정하는 선에서 그쳤다. 인사청문제도의 제도적 한계와 모순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인사청문회 협상이 용두사미로 된 것은 외부 인사도 참여하는 공동 대책 기구를 구성하여 협상을 진행하거나 협상 과정을 모두 공개하여 공론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회는 밀실 협상을 통해 단독으로 청문회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에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도덕성 검증 공개 문제는 전혀 개선하지 못한 것이다. 강한 집행부에 끌려 다니는 의회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록이 동색이라고 같은 당 소속 집행부에 맞서 의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숱하게 보아 왔다. 강한 집행부와 맞서 약한 의회가 힘을 가지려면 당의 공천권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의회를 떠받치고 있는 전북 도민과 언론,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임해야 한다. 그마저도 집행부가 끝까지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다면 강제성이 없는 협약이기에 불가능하지만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덕성 검증이 청문회의 꽃이자 핵심인데 이를 비공개하며 그들만의 리그인 밀실에서 후보자의 자격과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애당초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전북문화재단 대표이사 청문 과정에서부터 형식적이며 무기력한 청문회에 대한 무용론이 크게 증폭되었다. 청문회가 주먹구구이다 보니 여론은 말할 것도 없고 의회 내부에서도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은 집행부의 인사 추천의 흐름과 후보자의 태도이다. 주요 기관장 인선이 전북이외의 외부 인사 중심으로 이루어져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북도의 인사 기준이 ‘능력주의’라고 하지만 전북 인사들이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인사가 단체장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전북개발공사 사장 청문회를 보아도 능력 있는 인사를 고르기 위한 집행부의 노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주요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는 틀에 갇혀 관련 분야의 전문성과 객관성 등을 간과한 측면이 크다. 후보자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고 명확한 설명과 자료 제공을 통해 여러 의문과 우려를 불식시켰어야 했다. 부동산이나 재산 형성 과정 등 제반 문제는 아무리 비공개라 하더라도 도덕성 검증의 핵심 사안이다.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의회에 대한 무시이며 도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온당하지 못했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행부와 의회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며 협치와 상생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인사청문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입법화를 통해 법적 기구로 전환되어야 한다. 분권과 자치의 핵심은 지방자치의 내실화에 있다. 지역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인 연대 활동을 통해 인사청문제도를 비롯한 지방자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제반 법 개정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에 의회가 앞장서야 한다. /김영기 객원논설위원(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지방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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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5:40

슬픔(哀)이 상처(傷)로 남지 않기를

하늘은 인간에게 일곱 가지 다양한 감정을 주었다. 기쁨, 분노, 슬픔, 공포, 사랑, 증오, 욕망이다. 이런 인간이 겪어야 하는 다양한 감정을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칠정(七情)이라고 한다. 칠정은 인간의 네 가지 본성 사단(四端)과 함께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이다. 문제는 일곱 가지 감정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인간의 마음을 교대로 흔들어댄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기쁨에 들떠 춤추며 놀다가도 화내며 슬픔에 젖어 비탄에 젖기도 한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다가도 사랑과 연민에 어느덧 언제 공포가 있었냐는 듯 잊어버리기도 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의 기복으로 일상을 맞이해야 하는가?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평온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감정의 조절과 평정은 성찰의 중요한 주제이며, 죽을 때까지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중용>에서 감정의 조절을 ‘중화(中和)’라고 한다. 중화는 인간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 삶의 중심축이 무너질 수 있기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는 감정의 조절을 통해 인간의 생명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참으면 속으로 병이 들고, 분노가 지나치면 화로 번진다. 기쁨을 억누르면 답답해지고, 기쁨이 넘치면 음란함이 된다. 공포는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지만, 조절만 잘하면 긴장감으로 인간의 잠자고 있는 세포에 불을 켜게 한다. 욕망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고, 탐욕으로 넘치면 인간의 삶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길들여야 할 대상이다.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마음의 감정을 잘 조정하는 것을 ‘조심(操心)’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정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마음(心)을 잘 조종(操)할 수만 있으면 더 높은 단계의 삶을 살 수 있다. 마음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뛰게 만드는 것을 ‘방심(放心)’이라고 한다. 마음(心)을 놓쳤다(放)는 뜻이다. 중화(中和)의 중(中)은 중심을 유지한다는 뜻이며, 화(和)는 감정이 적시(適時)에 표출되어 상황에 맞는다는 뜻이다. 슬플 때 울 줄 알고, 기쁠 때 춤출 줄 아는 것이 ‘중화’다. 중요한 것은 슬픔이 지나쳐서 상처가 되면 안 되고, 기쁨이 지나쳐서 음란함으로 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은 한 나라의 통치자가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고 지어진 이름이다. 지도자가 감정 조절에 실패하면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국민이 도탄에 처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이 널뛰고 있다. 슬픔이 넘쳐 분노가 되기도 하고, 분노와 분노가 만나 갈등과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해결책은 없고 공방만 있고, 성찰은 없고 떠넘기기만 있다. 슬픔은 없고 상처로 가득하다. 지켜주는 어른은 없었고, 젊은 영혼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슬픔의 감정과 마주하고 있다. 많은 젊은 영혼의 꽃들이 채 피우지도 못하고 골목길에서 쓰러져 갔다. 꽃이 지는 것은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당국자가 좀 더 신경 쓰고 살피고 주의했더라면 꽃은 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나라 안이든, 나라 밖이든, 그 어느 곳, 어느 시간에서라도 국민의 안녕과 생존을 위해 모든 수단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번 참사에 국민 모두 애도하며 슬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슬픔이 상처로 남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된다면 슬픔은 상처가 될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로지 희생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이 역시 상처로 남을 것이다. 슬픔이 상처로 남아서는 안 된다(哀而不傷). 슬픔을 통해 정화되어 더 높은 수준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들의 희생이 의미를 지닐 것이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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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4:00

가정법원, 소년분류심사원 전북 설치를

대한민국 국민은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비단 성별, 종교, 학력 등에 의한 차별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어느 곳에 살더라도 지나친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북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법률 분야다. 최근 화두로 등장한 가정법원이나 소년분류심사원 전북 설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법원이나 법무부 시각에서 볼 때 다른 지역도 다 비슷하다는 논리를 펼지 몰라도 적어도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선, 법무부가 소년범죄 예방 및 재범 방지 인프라 확충을 추진하면서 전북에도 소년분류심사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는 ‘촉법소년’ 상한연령(형사미성년자 기준)을 만 13세로 낮추는 내용 등이 담긴 소년법·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소년분류심사원 확충도 추진한다. 전주송천중고등학교(전주소년원)는 재판대기 중인 소년범 중 법원으로부터 임시조치(구속)를 받은 이들을 수용하지 않고 전북의 임시조치 소년범들은 고룡정보산업학교(광주소년원)에 위탁하고 있다. 광주지역으로 임시조치된 전북의 소년범들은 가족들과의 면회는 물론 변호인 접견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주지법에서 재판을 받을 때마다 왕복 3시간을 오가는 불편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북에 이 같은 기능을 모두 지닌 소년분류심사원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다. 법무부가 추진 중인 소년분류심사원 시설 확충은 소년범들에 대한 교정‧교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정책인 만큼 열악한 인프라를 지닌 전북에 우선 설치해야 한다. 차제에 전주가정법원도 서둘러서 전북도민들이 차별없는 사법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전주가정법원 유치를 위한 전북지방변호사회 특별추진위원회는 최근 국회 법사위를 방문, ‘전주가정법원 설치법안 조속 통과’를 강력 촉구했다. 가족관계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가사사건과 소년보호사건 등에 대한 전문적인 사법서비스 제공 요구는 커지고 있으나 전북에는 아직 전문법원과 전문법관이 없어 전북도민들이 질 높은 사법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한단 말인가. 전주가정법원 설치법안의 조속한 통과는 너무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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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3:58

병적기록표 온라인 발급 절차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친 후, 취업 등의 이유로 군 복무를 확인할 수 있는 병적기록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병적기록표를 발급받으려면 지방병무청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전산시스템 구축으로 지방병무청을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직접 병적기록표를 신속하게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병적기록표 온라인 발급을 위해서는 먼저 병무청 누리집 화면 상단에 있는 병무 민원 메뉴를 클릭하신 후 병적기록표 발급 신청 화면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병적기록표 신청 시 병적기록표가 전산화된 이후 전역자는 온라인 즉시 발급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온라인 즉시 발급이 가능한 대상인 병적기록표가 전산화된 대상은 육군 장교·부사관, 해군, 공군은 ’05년 11월 1일 이후 전역자, 육군 병은 ’07년 4월 1일 이후 전역자, 의무경찰, 의무소방, 해양경찰은 ’17년 1월 1일 이후 전역자입니다. 또한, 온라인 즉시 발급 시 필요 항목을 선택하여 발급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였습니다. 기본항목인 성명, 주민등록번호, 군별, 계급, 주특기, 입영(전역)일 외에 선택항목인 신체검사 및 병역처분사항 등의 항목을 선택하여 병적기록표를 발급할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 병적기록표 전산화 이전 전역자 및 면제자 분들도 병적기록표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십니다. 다만, 온라인 즉시 발급은 어려우시면, 우편 발송 또는 방문 수령으로 선택하신 방법에 따라 병적기록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지방병무청을 본인이 직접 방문하는 경우에는 신분증을 지참하시고, 가족이나 대리인이 신청하시는 경우에는 위임장, 위임자 신분증, 신청자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하셔야 만 발급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안내한 사항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전북지방병무청 고객지원과 민원실로 문의하여 주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북지방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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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3:57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차질 없어야 한다

군산~제주 노선을 운항해온 제주항공이 다음달 군산공항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항공오지 전북’의 해묵은 숙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군산공항에 남은 진에어에 군산~제주 노선 증편을 요청해 도민 불편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 대책이 아니다. 다행히 진에어가 군산~제주 노선을 증편하더라도 이윤을 중시하는 민간항공사인 만큼 언제든 여건이 악화되면 감축 운항이나 운항 중단 결정을 내릴 게 뻔하다. 게다가 군산공항은 미군 활주로를 이용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민간 항공기 취항에 걸림돌이 적지 않다. 결국 전북이 항공오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만금국제공항을 독립된 민간공항으로 조속히 건설해 항공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 이번 제주항공의 군산공항 철수 결정도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항공오지에서 벗어나 온전한 하늘길을 여는 일은 전북도민의 오랜 열망이었다. 그리고 2019년 1월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에 포함돼 새만금국제공항 신설이 확정되면서 이 같은 열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고시한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에 따르면 공항은 사업비 총 8077억 원을 들여 2028년 완공, 2029년 개항을 목표로 2024년 착공할 예정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북을 찾아 “새만금국제공항을 조기 착공해 공항·항만·철도 등 ‘새만금 트라이포트’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대선 후보 시절 새만금공항 조기 착공을 약속했다. 전북 신공항 건설사업이 수십년 우여곡절 끝에 가시화됐지만 낙관할 수만은 없다. 공항 건설을 위한 행정절차에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리고, 그사이 민원 등 변수가 생기면 사업이 지연될 수도 있다. 과거 김제공항 건립사업의 경우 부지매입까지 완료하고도 지역주민의 반대와 감사원의 공사중단 요구로 공항건설 계획 자체가 취소됐다. 전북도민의 오랜 숙원인 새만금국제공항은 문재인 정부가 예타면제 대상으로 선정한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조기 착공을 약속한 사업이다. 적어도 공항 건립 사업에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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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2:19

새만금 하이퍼튜브 예타, 반드시 통과하라

새만금 하이퍼튜브(HTX) 종합시험센터 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탈락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31일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총괄위원회를 열어 이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크게 기대를 걸었던 전북으로서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새만금 지역이 국토부의 공모에서 선정되자 전북도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국토부가 보완을 거쳐 재신청키로 한다니 이번에는 다시 탈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탈락의 원인은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 부족으로 알려졌다. 시험센터 건설 이후 핵심기술연구, 시험선 구축, 실증기간 등 연구기간 9년 외에는 상용화 일정 및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이퍼튜브가 공기저항이 없는 아진공(0.001기압) 튜브 안에서 최고 시속 1200㎞ 이상의 주행이 가능한 만큼 사고 발생 시 안전성이 크게 문제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도 탈락 이유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국토부와 전북도의 준비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 사업은 새만금 농생명용지 1~3공구에 2024년부터 2032년까지 9046억원을 투입해 시험선로 12km와 연구동, 차량기지 등을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미국 등에서 시험중인 하이퍼루프의 한국형 모델로, 항공기의 속도와 열차의 도심 접근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어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서 기술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새만금 지역은 광활한데다 민원이 없는 국가 땅이어서 최적의 장소다. 20㎞이상의 직선거리와 국내 최대 규모인 3GW급 재생에너지 공급까지 갖추고 있다. 전북도는 시험센터 구축과 실증, 연구와 연계된 관련기업 유치를 통해 앞으로 20년간 9조8000억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했다. 자칫 이러한 효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1개월 남짓 기간에 이를 수정·보완해 예타를 통과할 수 있느냐 여부다. 과기부가 사업기획의 완성도 및 안전성에서 부정적 의견이므로 이를 대폭 보완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과기부와 국토부간 이견도 조율해야 할 것이다. 전북 정치권에서도 이번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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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2.11.02 17:41

축객령 휘몰아친 전북정치권

조선의 건국(1392년)과 임진왜란(1592년)의 딱 중간인 1492년 스페인에선 역사적인 3대 사건이 발생한다. 레콩키스타 운동을 통해 무려 800년 가까운 이슬람 통치를 종식시켰고, 스페인 왕국 수립과 더불어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이어졌다. 알함브라 칙령은 한마디로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지 않는 무슬림과 유대인을 쫒아낸다는 거였다. 하지만 훗날 역사는 1492년에 이르러 최고 정점에 이른 스페인은 바로 알함브라 칙령으로 인해 몰락이 시작됐다고 한다. 신념과 종교, 나라와 피부, 학교와 고향이 다르다고 마음속에서 누구를 차별하거나 추방한 결과는 스페인이 훗날 2등 국가로 전락하는 단초가 됐다. 언제 어디에서든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게 바로 '축객령(逐客令)'이다. 지금부터 약 2200년 전, 중국 최초 통일제국의 진시황제도 한때 축객령을 내렸다. 천하통일 전 치수사업을 벌이다 간첩사건이 발생하자 격분한 시 황제는 다른 나라 출신 관리들의 진나라 밖 추방을 명령했다. 초나라 출신이던 이사 역시 쫓겨날 위기에 처했으나 그는 “추방만이 정답이 아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올렸고 진시황제가 이를 받아들이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면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 전북 정치권에 부쩍 외지인 논란이 번지고 있다. 한술 더 떠서 민주당 출신이 아닌 국민의당이나 국민의힘 출신에 대한 배타적 감정도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김관영 지사 취임 이후 발탁한 인사들이 하나같이 전북이 아닌 타 시도 사람이라는 거다. 면면을 따져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민주당이 주축인 지역 정치권에서는 과거 국민의당 출신들이 대거 발탁되는 게 곱게 보일리 만무하다. 여기에 일부 참모나 산하기관장 후보가 자격 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 외지인 논란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그런데 사안의 본질은 외지인 논란이나 자격시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구실일 뿐 발단은 민주당 지사 경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당을 줄곧 지켜왔던 세력과 국민의당 출신 세력 간 힘겨루기는 경선으로 결말이 났으나 아직 앙금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우리가 민주당을 지켜올 때 당신들은 살길 찾아 탈당하지 않았느냐”는 속내도 조금씩 표출되는 것 같다. 여기에 도의회 일각에서는 지방의원을 제대로 대접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자격 시비로 포장된 ‘외지인 배제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 출신으로 전북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인사가 능력까지 갖췄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우리도 모르게 전북에서 또 다른 형태의 축객령이나 알함브라 칙령을 반포하면서 사람들을 내쫒고 있는것은 아닐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2.11.02 16:59

인사청문 유감, 내 귀를 의심했다

며칠 전 전북개발공사 사장 임용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이 있었다.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에 이어서 민선 8기 두 번째 인사청문회였다. 재단 대표이사 인사청문의 경우, 리모델링이라도 하면 그나마 안정적인 거주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개발공사 사장 인사청문은 철거 후 재건축이 필요한 수준이었다. 청문위원으로서 유감이다. 도지사와 임원추천위원회가 이런 후보자를 선정해서 청문 대상으로 요청하는 사례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두 후보자의 공통분모는 공교롭게도 광주 출신의 타지역 인사라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청문회 시작 전부터 타지역 인사 중용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확산됐다. 물론 타지역 인사라고 해서 조건반사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것이 과연 합당한 태도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의문이 든다. 중요한 것은 자질과 능력이지 고향이 어디냐를 우선적으로 따지는 것은 폐쇄적이고 고루한 사고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연이은 타지역 인사, 그것도 광주출신 인사를 고집하는 도지사의 의중이 있는 것만 같아서 유쾌하지 않았다. 두 후보자에게서는 광주출신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을 보였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공직후보자로서의 언어였다. 당시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후보자는 달변은 아니지만 겸손한 언어로 일관했던 반면, 개발공사 사장 후보자는 달변의 기술에만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발언의 진정성을 온전히 체감하기에 부족해 보였다. 특히 개발공사 사장 후보자의 입에서 ‘하층민’이나 ‘다방 레지’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충격이었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했는데, 후보자에게는 본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계관’이 장착되어 있고 이러한 세계관이 하층민이라는 단어에 투영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굴지의 대기업 고위 임원 출신이면서 권력기관을 상대로 한 대관업무 전문가라는 이력을 갖고 있다 보니 사회를 상층민과 하층민이라는 이분법적 층위로 구성된 세계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발언의 맥락이 무엇이 됐든 공직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서 그런 단어를 입에 담았다는 것은 결격사유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번 청문위원들이 청문과정을 모두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청문을 중단하고 경과보고서 채택 여부에 관한 논의 자체를 생략해버린 이유 중 하나다. 물론 공직후보자로서의 부적절한 언어 문제가 유일무이한 이유는 아니었다. 부동산 투기가 의심돼 관련 자료를 요청했고 제출을 거부했던 금융거래내역에 대해서도 재차 제출을 요청했지만 후보자는 끝내 거부했다. 이 역시 재단 대표이사와 크게 달랐던 점이다. 제출거부 의사를 표명하면서 나름의 사유를 들긴 했지만 청문위원들은 인사청문회 협약서에 근거해서 요청을 한 것이었고 그간 자료제출을 거부한 사례도 없었기 때문에 청문위원들 입장에서는 도의회를 경시하고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밖에 읽히지 않았다. 이번 개발공사 사장 후보자는 마지막으로 근무한 회사가 건설회사였을 뿐, 실제 업무는 개발공사의 핵심 사업영역과는 무관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타지역 인사이고 주된 주거지가 서울이다 보니 전북에 대한 이해도 일천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개발공사 사장 임용후보자로 결정된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그런데도 그런 인사를 청문대상으로 요청한 것은 의도가 무엇이 됐든 도의회에 책임을 전가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건데 김관영 지사와 7명의 임원추천위원은 도민들께 공식적인 사과를 표하고 새로운 후보자 물색에 나서야 한다. 헌 집을 고집할 게 아니라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것만이 답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행여라도 강행한다면 인사청문은 폐지하는 게 낫다. 설령 존속시켜도 나는 청문위원에서 빠지고 싶다. 후보자 입에서 나온 하층민 발언으로 귀를 의심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김관영 지사를 바라보는 도민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명연 전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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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2.11.02 14:21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

농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살아온 우리 역사의 증언이고,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미래의 당부다. 지난해부터 쌀값이 폭락해 산지 쌀값(80kg 기준)은 올 9월 161,572원으로 전년 대비 24.9%나 떨어졌다. 관련 통계조사 이후 전년 동기 대비로는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정부·여당은 작금의 쌀값 폭락을 전임 정부의 실패 탓이라고 호도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19만원대를 지켜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4개월 동안 무려 12.5%나 폭락했다. 지난 10월 19일,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필자는 국회 농해수위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 개정안의 안건조정위 및 상임위 통과를 주도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3회의 안건조정위원회 회의 동안 매번 회의 참여를 거부하고서도 자신들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는 등의 궤변으로 일관했다. 동 개정안에는 쌀값 정상화를 담보하는 기제(機制)인 쌀 시장격리 의무화와 쌀 생산조정제(논 타작물 재배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담겨 있다. 구조적 생산과잉(약 20만톤)은 타작물 재배지원 등 생산 조정을 통해서, 풍작 등에 의한 일시적 과잉은 시장격리를 통해서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정부·여당은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매년 1조가 넘는 국민 혈세가 들어간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을 강력히 반대해 왔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농식품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분석” 보고서를 반대 논리의 증거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농식품부가 요청하여 작성된 부실한 보고서임이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보고서의 저자는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필자 등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연구원장으로부터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농식품부 사무관으로부터 법안의 핵심내용인 쌀 생산조정제의 효과는 ‘제외’하라는 요청을 받았음을 실토했다. 벼 재배면적(쌀 생산)이나 쌀 소비는 쌀값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비탄력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재배면적이 큰 폭으로 늘어나 쌀 생산과잉이 심화될 것이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략작물 직불제나 논 타작물 재배지원 등을 통해 쌀 생산을 조정하면 시장격리를 할 필요가 없어져 추가재정을 투입할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국정감사장에서 필자는 ‘쌀 생산조정제’를 배제하고 시장격리 의무제만으로 '양곡관리법' 개정효과를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지적했다. 결국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옳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의 목적은 농가소득 보장 및 식량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쌀값이 5% 이상 떨어질 경우 등에 한해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는 ‘조건부’ 의무화라 하더라도 이러한 입법은 정부로 하여금 쌀 생산조정제를 더 내실있게 시행하도록 강제하는 실효적 기제(機制)가 될 것이다. 정부·여당은 물가안정을 핑계로 농민을 낭떠러지로 몰아넣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국가경영을 멈춰야 한다.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의결에 국민의힘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한다. /윤준병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정읍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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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2 13:33

와부뇌명이 판치는 세상의 끝은

40여년간 영국과 캐나다 등에서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데이비드 재럿(Dr David Jarrett)은 『33가지 죽음 수업』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는 다양한 양상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한 상태에서 오래 겪어야 하는 느린 죽음이 있고, 우리 모두가 선택권만 있다면 한 표 던질 돌연사도 있다. 물론 그런 선택권은 우리에게 없다. 돌연사는 죽는 당사자에게는 너그러울지 몰라도 가족과 목격자들에게는 잔인할 때가 많다.” 특히 그에게 가장 충격적인 경우는 젊은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심정지 상황을 맞닥뜨릴 때였다고 한다. 의학드라마에서와 달리 현실에서 심폐 소생술은 힘들고 혼돈으로 가득하다며 대개는 실패한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며칠간은 뉴스를 보는 것도 너무 떨렸다. 세월호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우리 사회에서 또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전북 도내 연고자 7명을 포함, 156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허망하게 떠났다. 유가족들은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고 있다. 전문적인 의사들조차도 힘든 돌발적 상황을 생존자들은 눈앞에서 겪어야 했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정부는 무능했고 지자체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수사 당국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정치인들은 당 차원의 재발방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언론은 본질보다 자극적인 속보 경쟁에 치중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대형 참사의 데쟈뷰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화가 치민다. 아니 더 허망하다. 안전을 책임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는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인파가 이정도로 몰릴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직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차원에서 그 누구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BC 343?~BC 278?)이 한탄하며 외쳤다던 와부뇌명(瓦釜雷鳴)이 세상 곳곳에 판치고 있다.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천둥이 치는 소리로 착각한다는 뜻이다. 현자들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 이름 없이 사라지고 아첨꾼만이 세상에 가득 차 세상이 혼탁해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오던 당시를 한탄하며 지은 시의 한 대목이다. 매미 날개처럼 가벼운 것을 무겁다고 하고, 3만 근이나 나가는 무게를 가볍다고 여기는 결과는 결국 초나라를 멸망으로 몰았다. 산업화 시기 우리는 성장에 치중하여 안전을 소홀히 함으로써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했다.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붕괴,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세월호 침몰까지, 반복되는 대형 참사 속에서 재발방지는 늘 공염불이 되었고 슬픔은 늘 국민들의 몫이었다. 특히 희생자 156명중 104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20대는 이미 10대 시절, 또래들이 4.16 세월호 참사로 트라우마를 함께 겪었던 세대인데 또 다른 아픔을 준 것 같아 어른 세대로서 정말 그들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세월호 진상규명마저도 8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해경 123정장 처벌 외에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엄중한 책임자 처벌과 함께 무능한 내각의 쇄신만이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민경중 한국외대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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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2 13:33

‘군산~제주 항공노선 안정적 운항’ 대책을

전북의 유일한 하늘길인 군산~제주 항공노선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제주항공이 군산공항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내선 대신 국제선에 항공기를 추가 배치하려는 의도다. 현재 군산~제주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인 진에어와 제주항공이 하루 오전·오후 각 2편씩 8회 운항하고 있다. 제주항공이 다음달 군산공항에서 철수하게 되면 진에어만 남게 돼 전북의 하늘길은 반토막이 나게 된다. 도민들의 불편은 물론 군산공항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군산공항의 군산~제주 노선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됐다. 국내외 항공운송산업 여건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군산~제주 노선이 감축 대상에 올랐다. 올 6월에도 국토교통부가 시간당 항공기 도착편수(슬롯) 배분에 따라 군산∼제주 노선의 운항편수를 절반으로 줄여 논란이 일었다.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전북도와 군산시가 군산공항 활성화를 위해 국토부에 지역 여론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지역 정치권이 나서면서 군산~제주 노선은 기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도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쉰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노선감축 위기에 직면했다. 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정목표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하면서 ‘지방공항의 국내 항공 네트워크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민간항공사가 오로지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지방공항을 철저히 외면하는 상황에서 군산공항 활성화는 사실상 요원한 일이다. 우선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한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항공사업법(제18조)에서도 ‘지역 간 항공서비스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항공의 공공성, 안전성 또는 이용 편리성 확보 등 공공복리를 위하여 직권으로 운항시각을 배분 또는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국토교통부가 지방공항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전북도에서도 군산~제주 노선의 안정적 운항을 위한 대책을 세워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군산공항 노선감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북도는 ‘국토부 심의에서 군산~제주 노선이 안정적으로 운항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말뿐인 ‘최선’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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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2.11.02 11:42

체육회장 선거에 관심 갖는 이유

"지난 2020년 첫 민선체육회장 선거 때 다른 후보를 도왔다는 이유로 저를 찍어내려고 한 데다 오는 12월 15일 회장 선거가 있는데 저를 못 움직이게 하려고…" 부당 해고를 주장하며 6월 기자회견에서 억울함을 호소한 전 체육회 본부장이 밝힌 내용이다. 그는 직장 내 폭행과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등을 문제 삼아 자신에게 내려진 중징계 결정과 관련해 과도한 갑질 이상의 인권 유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김 본부장은 지방노동위로부터 “체육회 징계는 중대한 하자” 라는 판정을 받아냄으로써 그에게 내려진 해임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원대 복귀했다. 그에게 처음 징계가 내려질 당시 체육회 내부는 물론 지역 체육계가 뒤숭숭한 가운데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30여 년 체육회에 몸담으면서 전북 체육의 역사와 고락을 함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해임 징계를 한 도 체육회 결정이 부당하다는 판정이 내려짐에 따라 이 문제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체육회장 선거에서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입지자들의 출사표가 잇따르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최형원 전 체육회 사무처장과 김동진 전 체육회 부회장에 이어 31일 권순태 전 전북유도협회장이 출마를 공식화했다. 최 처장과 김 부회장은 과거 김 본부장과 한솥밥을 먹으며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이들 동시 출마가 예사롭지 않은 것도 김 본부장과 함께 3명이 지난 회장 선거 때 유력 후보를 도운 전력이 있어서다. 그들 조합 여부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높은 가운데 김 본부장은 정중동(靜中動) 모드에 들어갔다. 체육회는 곧 선거운영위를 구성해 300명 정도의 선거인단을 꾸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도 선관위와 선거 위탁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뭐니뭐니 해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 꼽힌다. 지난달 끝난 울산 전국체전에서 전북이 기록한 종합 14위는 대전과 제주 세종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하위다. 초라한 성적을 둘러싼 책임론이 체육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출마자들도 이를 선거 쟁점화할 태세다. 지난 2014년 제주 전국체전 당시에도 전북은 종합순위 14위를 기록해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책임 소재를 포함해 인적 쇄신 요구가 빗발치고 그에 따른 충격파가 얼마나 컸던지 도의회 특별감사까지 받았다. 여론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사무처장이 결국 책임지고 사퇴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터널을 지나야 했던 체육계가 다시 용틀임을 하고 있다. 민선 정강선 회장은 코로나에 휩쓸려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도 나름 월급을 반납하는 등 분위기 반전에 나섰지만 운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도청과의 관계마저 매끄럽지 못해 예산 삭감, 인사 잡음 등 후유증을 낳았다. 민선 시대 역동성을 기대하는 체육인들은 특유의 조직력을 통해 힘찬 날갯짓을 꿈꾸고 있다. 체육회장 선거가 갖는 의미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2.11.01 18:17

군산항, 준설과 물동량 확보로 경쟁력 높여야

군산항은 바다를 통한 전북의 유일한 해양물류 창구다. 군산항의 활성화는 전북 경제의 활로와 직결된다. 그런데 군산항은 수심이 낮고 물동량 부족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수심 확보다. 군산항은 금강하구에 자리잡고 있어 해마다 토사가 밀려와 쌓인다. 준설토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규모에 맞게 설계 수심이 확보된 곳이 없어서 그렇다. 5만t급 부두는 14m, 3만t급은 12m, 2만t급은 11m로 수심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수심은 7부두 5만t급은 10m안팎, 2만t급 5부두는 7m, 2만t과 1만t급 1∼2부두는 최저 4.5m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박의 밑이 해저에 닿는 바텀 터치(bottom touch)나 접안 선박이 미끄러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 낮은 수심으로 하역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간조 때 선박의 밑바닥이 뻘에 앉히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도 높다. 이로인해 대형 선박들이 다른 항만에 들러 일단 화물을 하역한 후 수심이 낮은 군산항의 실정에 맞게 흘수를 조정해 입항하는 게 현실이다. 군산항이 잠시 쉬어가는 세컨드 콜링포트로 전락한 셈이다. 다행인 것은 군산항 제2준설토 투기장 건설사업이 지난 8월 기재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군산항에는 해마다 300만∼400만㎥의 토사가 쌓인다. 이러한 퇴적량의 토사를 준설해야 하는데 찔끔찔금 예산이 편성돼 땜질식 준설에 그치고 있다. 과감한 예산 투입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물동량 확보도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도내 항만 수출 물동량의 80%이상, 수입 물동량의 약 40%가 타지역 항만으로 유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군산항은 물동량 2149만t을 처리해 신기록을 세웠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전국 항만 물동량 15억8070만여t의 1.36%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물량은 연간 하역능력의 70%선에 그친다. 전국 항만 중 보령항에도 밀려 12위의 실적을 보였다. 문제는 타지역은 물론 도내 물동량마저도 대부분 뺏기고 있다는 점이다. 군산지방해양수산청과 전북도 군산시 등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특송물품 통관장 설치, 휴일 검역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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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2.11.01 17:47

4차산업혁명시대의 교육, ‘장학’ 의미 되새겨야

교육 현장 속에는 ‘장학’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리고, ‘장학사’라는 전문직이 있다. 그렇다면, 장학사들이 하는 ‘장학’의 어원적 개념과 정의를 내려봐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supervision’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superior’와 ‘vision’의 합성어다. ‘높은 곳’과 ‘감시한다’의 뜻으로, ‘높은 곳에서 감시한다’라는 단어로 쓰인다. 의미가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어서인지 아무리 ‘장학’이라는 부드러운 말로 불러도 우리나라 교사들은 장학에 대하여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학’은 ‘교사들의 교수학습 태도 개선과 향상을 위한 조언으로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봉사활동’의 좋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장학’이라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자 동원하는 수업 과정의 변화에 영향을 직접 주는 인적·물적 요소를 다루는 일임에도, 무엇이 그토록 ‘장학’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본인은 ‘장학’이라는 단어와 행위가 교육 현장 속에서 중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싶다. ‘장학’은 교사의 교수학습 행위에 의도적이면서 계획적으로 직접 영향을 주는 활동으로, 장학을 통해 학교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학생의 학습 촉진이라는 궁극적 결과를 구체화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즉, ‘장학’을 통해 학습 개선을 위하여 교사의 교수학습 행위에 불투명한 변화가 아닌 의도적이고 목적이 있게 변화시켜주고 있어서다. 이처럼 ‘장학’은 교수학습 행위의 개선을 위하여 제공되는 조언과 학생의 학습·성장 발달에 관한 모든 여건을 향상시키는 전문적 기술 봉사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학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기초학력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력과 기초학력 간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라는 질문을 통해 얻어낸 학력의 개념과 기초학력이 부족해서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라는 개념 간 온도 차가 크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앞서 언급한 ‘장학’이라는 것이 투입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다양한 지식을 활용하고 융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교사의 전문적 성장과 학생의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해 ‘장학’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사가 학생들에게 미래 사회의 새로운 상황에서 적응을 잘하고, 창의적이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인성 역량을 갖춘 인재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급격한 사회·기술의 변화로 인해 평생 배워야 한다. 이는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지를 배우는’ 자기 주도 학습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에서의 교사의 역할이 크다. 그리고, 교사의 교수학습을 전문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장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 이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내 교육 현장 속에서 ‘장학’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기를 바란다. /박정희 전북도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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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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