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사고(四固)사찰과 사천왕 이야기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우리가 살고 있는 전주는 신라 9주의 한 주로 개편된 1300여년 전 이전부터 지역의 행정 중심이자, 사람이 몰리는, 살기 좋은 곳으로 평가되어 왔다. 특히 후백제의 견훤이 도읍으로 전주를 선택함으로써, 전주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들이 풍부하게 되었다. 견훤은 무진주(지금의 광주)에서 웅거하였지만, 전주를 순행하면서 전주 지역 주민의 호응과 역사적 연원, 지세에 흡족해 하여, 도읍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후백제의 도읍지로서의 전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전주의 동서남북 네 방위를 수호하는 사신산(四神山) 이야기 일 것이다. 사신산은 도교의 사령 신앙에 기초한 것이다. 신선을 호위하는 네 가지 신령한 동물이 있다. 이러한 네 가지 신령한 동물인 기린, 용, 봉황, 거북의 영이 깃든 산을 사신산이라 한다. 전주는 네 방위에 있는 이러한 사신산이 수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사신산 이야기에 덧붙여 전해지는 것은 전주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네 사찰이 견훤의 도읍 시기에 건립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사고(四固)사찰이라 하는데, 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지금의 진북사)를 말한다. 각 절들의 연원을 살펴보면, 서고사는 견훤의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동고사, 남고사. 북고사는 이전 시기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름에서 보듯, 사고사찰이 전주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비보사찰의 성격을 가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견훤의 시기에는 이 사고사찰의 주위에 각 지역을 방비하는 동고진, 서고진, 남고진, 북고진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사고사찰의 위치가 전주의 방어상 중요한 위치인 것을 보면 어떤 성책이나 보루가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대체로 이러한 성책이나 보루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인력이 필요하고, 이를 주로 절의 승려나 비속들이 담당해 왔던 전통에서 보면 그렇다.
사고사찰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는 불교의 사천왕 신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당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침공하려 하자, 문무왕이 신하에게 비책을 물으니, 명랑법사가 낭산 아래 사천왕사를 짓고 도량을 열면 막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당나라가 서해로 바로 출병하므로, 시일이 촉박하여 절을 임시로 가설한 후 비법을 실시하자, 당나라 군사들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괴멸되었다고 한다. 사천왕사가 완성된 후, 다시 당나라 5만의 군사가 출병하였으나 사천왕사의 비법으로 몰살되었다고 한다.
사천왕의 보호를 받아 적병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신라와 고려시대에 사천왕 도량이 많이 지어졌다. 불교에서의 사천왕은 수미산에 있는 불국토를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持國)천왕, 서쪽의 광목(廣目)천왕, 남쪽의 증장(增長)천왕, 북쪽의 다문(多聞)천왕을 말한다. 불국토를 형상화하고 있는 절의 가람 배치에서 보면, 절에 들어가기 전에 맨 먼저 접하게 되는 곳이 천왕문인데, 천왕문의 안쪽 양면에 네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사천왕이 호법신으로서 불국토를 수호한다는 불교적 관점에서, 사천왕사를 설립하여 호법신에 의존하여 적병을 물리치고자 하는 신앙이 신라시대에 널리 인정되고 있었다고 한다면, 사고사찰은 군사적 관점만이 아니라, 이러한 불교 신앙적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김우영 총장은 전북지역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