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 현판, 한글 현판으로 달아 줘야
 김중만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전라감영 복원 공사가 2017년 11월 1일 첫 삽을 떴고, 2018년 7월25일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 상량식을 열었다고 한다. 감영 안에는 선화당을 비롯하여 내아, 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부속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복원이 예정대로 잘 되기를 기대함과 동시에 어떤 모습으로 복원될지 기다려진다. 완공을 앞두고, 한자 유식자들과 서예가들의 반대가 심하겠지만, 선화당을 비롯한 6개의 건물에 붙여질 현판이 한자가 아닌 한글 현판이 걸리기를 기대한다.
지난 11월 중순경 치악산 관광길에 원주시 소재 강원감영을 들리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복원 중인 전라감영이 연상되었다. 전주감영을 미리 보는 듯한 기분으로, 한자 현판을 읽어보던 중 C전 국무총리가 쓴 선화당(宣化堂) 현판은 한글과 같은 서순인데, 관동관찰사영문(門營使察觀東關)과 포정루(樓政布) 등은 한글 서순과 반대였다. 이처럼 같은 경내에 있는 현판의 글줄 서순가 서로 다르게 된 것은 문제다.
이러한 현판의 서순 혼란 문제는 한자 현판에서 만 생기는 문제로, 지역 서예가들에게 현판 쓰는 기회를 안배하는 과정에서 서순 원칙을 미리 제시하지 않은 담당자의 실수가 그 원인이다.
모든 현판은 어느 나라든 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를 쓰는 게 상식이고 기본이다. 한자 현판을 거는 것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저버리고, 시대착오적이고, 한자 사대주의 관성에 갇혀 있는 처사다. 한자 현판은 한자 유식자와 한글 유식자를 불리 시키고, 한글세대들을 문맹자로 만드는 처사이며, 세종대왕의 고행적인 한글 발명의 참뜻을 저버리는 짓이다. 앞으로 한글 시대가 더욱 활기차게 펼쳐질 것을 예상하면, 지금의 한자 현판은 해가 갈수록 국민의 눈에서 멀어질 것이다.
한문 현판은 한글 앞에서 열등의식을 가진 일본인과 중국인에게만 편리할 뿐이다. 과거 중국어나 일본어가 강제로 우리의 국어가 될 뻔 했던 치욕과 이 두 나라는 과거 우리 민족을 어렵게 하였고, 현재도 우리 민족을 무시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두 국가의 국민에게만 편리한 현판을 걸어 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말글 강 국민의 주체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한자 현판을 아직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한글이 가장 조선스런 말글임을 인식 못하는 처사다. 한글은 조선 초기(1443년) 발명된 말글이다. 조선시대 한글 발명과 전라감영 창건의 동시성에서 볼 때, 조선식 건물에 한글 현판을 거는 것이 가장 조선스런 것이다. 게다가 한글은 전주가 배출한 전주이 씨인 세종대왕이 발명한 말글이므로, 전주시는 한글 관련 행사나 조형물 설치 및 한글 현판 달기를 선도해서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널리 펼쳐야 할 명분이 충분한 도시이기도 하다.
한글 현판은 비용을 들여 서예가들에게 의뢰할 필요도 없다. 전라감영 복원에 맞춰 진보적 용기를 발휘해서 한글 현판 달기가 실행된다면, 다른 지역 감영에서도 현판을 한글로 바꾸게 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김중만 원광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