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전북 성지
열흘 전 우리 사회는 ‘교황 앓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질 정도로 달달한 홍역을 치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공식일정은 온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전 세계인들이 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와 지지를 보냈다.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서도 우리가 교황에 열광한 이유는 그는 사회에서 소외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약자들을 가식이 아닌 정성으로 따뜻이 안아줬기 때문이다.교황, 전북방문 이뤄지지 못해 아쉬워특히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과 위안부 할머니,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새터민, 그리고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풀리지 않는 딜레마를 그는 위로와 화해,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로 해원(解寃)케 했다.하지만 이번 교황 방한에 가장 아쉬운 점은 그토록 고대하던 전북 방문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년전부터 로마 교황청을 통해 방한 소식을 접하고, 본인은 국회의원이 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면 꼭 전북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 비공식적 이나마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교황의 한국방문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1984년 한국 가톨릭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1896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등 두 차례 이뤄졌지만 천주교의 성지인 전북방문은 이뤄지지 않아 이번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에 기대하는 바가 실로 컷다.교황의 전북 방문 당위성은 이번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 미사에서 나타났듯이 전북에서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24위에 이를 만 큼 전북의 천주교 역사는 깊다.이번 시복 대상자 124위의 대표자로 이름을 올린 윤지충 바오로(1759~1791)는 1791년 12월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 번째로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 당했다. 또 호남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시티노(1756~1801)’와 아들 부부인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가 전주감옥과 숲정이에서 순교하는 등 신유박해 때 4개월에 걸쳐 전주 남문 밖과 전주옥, 숲정이에서 피 흘린 순교가 이어졌다.이들 순교자들이 치명자산에 모셔졌고 그 기적의 땅에 순교자들의 선혈이 서린 전동성당이 23년의 공사 끝에 완공돼 전주를 지키고 있다.이제 교황은 떠났고 앞으로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지만 천주교의 성지인 도내 곳곳의 유서 깊은 유물과 역사를 차분히 조명하고 정리해 다시 찾을 교황 맞이에 준비해야 한다.전북은 비단 천주교만의 역사가 아니다.특히 전주 모악산은 단순한 명산이 아닌 영산(靈山)으로 불교를 대표하는 금산사와 귀신사, 금산사 바로 아랫마을 용화동에 위치한 개신교의 금산교회, 천주교의 수류성당, 원불교 원평교당, 일명 ‘오리알(來) 터’에 위치한 증산교의 동곡약방과 정여립의 대동사상, 동학혁명의 정신적 모태가 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 발원지이자 문화 보고이다.이들 종교들을 모두 품에 안은 모악산을 성지화하고 정신문화자산으로 관리하고 보존해야 한다.모든 종교 품은 모악산 성지화 필요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도시는 단순히 규모나 인구의 양적기준으로만 평가 받는게 아니라, 도시 주변에 사색할 수 있는 산책로나 순례길이 있어서 세계적인 문호나 대 철학자를 많이 배출한 무형의 정신적 가치와 인적자산을 중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악산 주변의 종교 순례길(둘레길)을 걷다 보면 왜, 모악산이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세계의 평화, 인권과 평등, 국민행복의 소중함을 근간으로 하는 여러 종교의 발상지가 되었는지, 왜 모악산이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지, 그리고 앞으로 새만금을 아우르는 전북이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는지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