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심리학과 문학, 인식사(認識史)를 공부한 작곡가, 시인, 교사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즉흥연주 공연을 하고 음악과 그래픽을 결합시키는 비쥬얼 뮤직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스티븐 나흐마노비치(Stephen Nachmanovitch)의 저서『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원제: Free Play, 이상원 역, 2008, 에코의서재)은, 되풀이하여 읽고 곱씹어 깨달음과 통찰을 얻고 그것을 다듬어 가는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만한 책이다.즉흥적인 창조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으로 연극과 무용 분야에서 중요시되었고, 음악이나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예술가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뒤따라가며 즉흥적 창작을 해내었다. 그들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원재료를 가지고 의식이 한바탕 자유로운 놀이를 벌이게 했다. 저자는 모든 창조적 행동은 놀이의 다른 형태이며, 놀이는 창조성의 시작점이자 삶의 근본형태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우리의 창조성이 퇴화된다는 것이다.어릴 적 그린 아이의 그림이 자유롭고 거침없고 너무도 독창적이어서 피카소나 미로의 무애한 그림과 방불하였는데, 커가며 학교 교육을 받고 어떤 틀 속에 갇히면서 그 창조성과 상상력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왕왕 보곤 한다. 아이의 상상과 탐색의 날개는 조만간 꺾여버리고 어른들의 세상은 아이를 찍어 눌러 예측 가능한 사회구성원이라는 틀 속에 맞춰 넣는데 이 퇴화의 과정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 강화된다. 최신의 강력한 교육제도인 텔레비전과 대중음악은 획일화를 이루는데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 그래서 인스턴트 음식처럼 키워진 우리는 사회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점을 저자는 아프게 상기시킨다.저자는 가장 흔한 즉흥연주 형태가 일상의 대화임을 환기시킨다. 모든 대화가 재즈 연주와 같다는 것이다. 만족스런 대화를 할 때처럼,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감탄할 만큼 아주 독창적이고 거침없이 닥친 상황을 잘 풀어나가는 경험을 하곤 한다.저자는 말한다. "즉흥 작업을 이어가려면 창조적 영감이 얼마간 유지되어야 하고 그래서 즉흥작업자는 그 순간적인 섬광을 잡어 늘여 일상의 활동에까지 연결해야 한다. 즉흥작업의 창의력과 자유를 평소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에서 느낄 수 있게, 그러한 순간이 단절 없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가능해질 때, 특별한 예술은 없고 다만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예술이 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라는 말이 허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저자는 "지구 전체의 생명 유지 체계가 위기에 처한 오늘날 아 상황을 타개하는데 인간이라는 종(鍾)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상상력이다"라고 주장한다. 파괴의 유일한 해독제는 창조성이며, 인류의 창조성을 되살리는 것은 절박한 게임이니, 이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예술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적 영감은 직업예술가·같은 특별한 삶들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며, 그들에게 창조 능력을 넘겨버리는 것은 의사에게 치료 능력을 넘겨버리는 것과 같고, 진정한 치료, 진정한 창조성은 우리 모두 안에 있는바 그 능력을 버린다면 인류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저자는 경고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창조력을 찾고 강화하고픈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상상력을 최대로 사용할 때 얻어지는 기쁨, 책임감, 이해력, 평화 등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최효준(본지 서평위원·전북도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