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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유쾌! 상쾌! 통쾌!한 책 읽으며 더위 탈출

누군가 그랬다. 독서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방학 때 밀린 일기와 함께 해치웠던 독후감의 압박이라고.방학이다. 예의상 책 한두권쯤은 읽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 그것이 방학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라면, 한없이 풀어져도 괜찮을 것만 같은 방학 초기에는 '유쾌' '상쾌' '통쾌'한 청소년 문학이 어울린다.대부분의 청소년 문학은 계몽적이기 마련. 착한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들처럼 이겨내라고 가르치려든다. 그런 면에서 신여랑의 「자전거 말고 바이크」(낮은산 키큰나무)는 '기존의 청소년 문학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있음을 확인해 주는 신호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10대들만이 갖고 있는 어두움을 어른들의 시선에서 강제로 화해시키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과감함이 빛난다"며 "국내 청소년 문학에 관심있는 모두가 지켜봐야 할 문제작"이라고 추천한다.성장의 그늘을 지나는 10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깊이 있는 성장을 담은 책. 다섯편의 단편 중 '화란이'는 거리의 소녀를 통해 극한 상황에 몰리기만 하는 10대들의 현실을 그려 독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이 책을 읽는 나의 어린 독자들 모두에게 첫 페이지, 시작이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저자의 말에 코끝이 찡해지는 책이다.「완득이」(창비)는 2007년 제정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성장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외국소설 「호밀밭의 파수꾼」과 「Go!」에 견주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성인독자들을 겨냥, 양장본을 따로 펴낼 정도로 세대를 뛰어넘어 인기를 끌고 있다.주제의식을 놓지 않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 김려령의 필력도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활기 넘치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집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일곱 소년 '완득이'를 비롯해 학생들을 약 올리는 재미로 학교에 나오는 것 같은 담임선생 '똥주', 전교 1·2등을 다투는 범생이지만 왠지 모르게 '완득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윤하', 여기에 '완득이'가 교회에 갈 때마다 나타나 '자매님'을 찾는 정체불명의 '핫산', 밤마다 "완득인지, 만득인지"를 찾느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앞집 아저씨' 등 양념처럼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재밌다.「처음 연애」(사계절출판사)는 제목에서부터 설레임이 느껴지는 책이다. 6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10대들의 첫사랑에 얽힌 시대별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소설로 묶어낸 것. 4·19혁명과 전태일 분신 사건, 91년 대규모 학생 데모, 2002 월드컵 등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행동했거나 크게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을 배경으로 10대들의 변화상과 사랑이야기를 맛깔스럽게 그려냈다.사회가 변화면서 1318 사랑도 변한다. 그러나 "1318들은 진정한 사랑-목적이나 이유나 계산이 없는-을 하고 있는 유일한 세대다"는 저자 김종광.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입담을 떠올리게 하는 김종광 특유의 능청스럽고 힘있는 서사가 첫사랑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 주말
  • 도휘정
  • 2008.07.11 23:02

[책의 향기]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수연 목사

"한 때 우리는 돈만 많이 벌면 잘 사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더 쉬운 방법으로도 잘 살 수 있어요. 바로 책을 많이 읽는 거죠."'줄포학교마을도서관' 개관을 위해 25일 부안을 찾은 김수연 사단법인 작은도서관을만드는사람들 대표이사(62·서울 한길교회 목사). 그는 "책은 습관"이라며 "습관이 되지 않으면 어른이 된 후에도 책을 익숙하지 않은 상품으로만 생각한다"고 말했다."일곱살짜리 아이를 잃었어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방황하고 좌절하던 때도 있었지만, 정면승부하기로 마음 먹었죠. 그 때부터 지구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소중한 일을 해나가기로 했습니다."잘 나가던 방송국 기자가 목사가 됐고, 사비를 털어가면서 빈 교실이 늘어나고 마을에 서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책을 선물하고 도서관을 열었다.벌써 20년. 좋은 책이 좋은 삶,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김대표는 "책 한 권으로 삶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책을 선물하는 것은 곧 생명을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아무리 시골이라도 초등학교는 있지 않습니까? 학교가 아니면 대안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당신이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 주민들까지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선생님들이 나서서 일깨워 줘야 합니다."김대표는 "시골로 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책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며 "소중한 것은 전부 책에 있다"고 강조했다."나는 이제 내 삶의 근거를 찾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도서관 만드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작은 마을마다 도서관이 만들어지는 날을 꿈꾸며, 김대표는 오늘도 전국을 누빈다.

  • 주말
  • 도휘정
  • 2008.06.27 23:02

[책의 향기] 부안 줄포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 풍경

운동장으로 '책읽는 버스'가 들어왔다. 전교생이 200명이 채 안되는 작은 학교가 오랜만에 시끌벅적하다."너희들 우리 엄마한테 이르지마. 나, 산으로 갈꺼야." "안돼! 산으로 가면 도깨비 나와.""그럼, 너희들 눈에 내 배꼽도 보이느냐?" "네!"'책읽는 버스' 안. 동화구연을 하는 선생님에게 까만 눈망울을 고정시킨 아이들의 대화는 끝날 줄 모른다. 동화구연을 듣던 김이슬양은 "책은 말을 못하지만, 사람이 목소리를 바꿔가며 이야기해주면 더 재밌고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25일 오후 부안 줄포초등학교. 매일 10분씩 '아침 독서하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 곳에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이사 김수연)이 만드는 '줄포학교마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개설한 124번째, 올해 28번째 도서관이다."책 많이 읽고싶어요. 책을 읽고 나면 기분도 좋고,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한 반 뿐인 2학년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진아와 지훈이는 "학교에 있는 책은 거의 읽었는데, 새 책이 들어와 기대된다"고 말했다. 찬혁이는 "뛰어노는 게 더 재밌다"면서도 친구들 어깨 너머로 책을 들여다 보기 바쁘다.'줄포학교마을도서관'에는 성인용 857권, 아동용 2200권 등 총 3057권의 책이 새로 들어왔다. 돈으로 따지면 2800만원 어치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이다.김길중 줄포초등학교 교장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부안군, 부안교육청이 '책과 더불어 잘사는 부안'을 만들기 위해 학교마을도서관 설치 및 운영 협약을 체결, 도서관 야간개방 등 다양한 지원을 하게 됐다"며 "독서는 공부, 공부는 곧 독서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물론, 학부모와 주민들이 자주 도서관을 이용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성인군(13)은 "부모님과 같이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결 고운 백발과 넉넉한 품이 산타클로스를 연상시키는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김수연 대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줄포초등학교 아이들과 또 약속을 했다."너희들이 책 많이 읽으면 내년에 또 선물 많이 가지고 오마. 부모님이 읽으면 아이들도 읽습니다. 뒤에 앉아계시는 부모님들도 저랑 약속하세요."

  • 주말
  • 도휘정
  • 2008.06.27 23:02

[책의 향기] 날짜의 표기

현존하는 모든 문서들의 정확한 생산연도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특히 토지거래시 주고 받은 매매계약서나 청원서 등과 같이 단순히 간지(干支)만을 적었을 경우 그것이 어느 해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파악해야 하고 그나마 추적이 가능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이런 문서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연호를 통해서 생산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대대로 중국연호를 사용해 왔다. 중국연호의 사용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력(萬曆), 숭정(崇禎), 가경(嘉慶) 등 중국 황제의 연호가 우리나라의 문서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청나라에 대한 반감, 즉 왜란 당시 우리나라를 도운 명나라에 대한 ‘재조보은지국(再造報恩之國)’ 인식으로 인하여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 등은 연호가 단순한 ‘시기’의 구분을 의미하지 않았음을 말한다.“또한 한 가지 통쾌한 일이 있습니다. 갑오년 이전의 매매 문기에 모두 타국의 연호를 사용하였으니 실로 5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의 수치였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없애 버린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1900년 중추원 의장이었던 김가진은 우리나라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에 대한 소회를 이처럼 표현하였다.중국연호의 금지는 1894년 6월 28일에 이루어졌다. 중국의 연호 대신에 개국기년을 사용하도록 한 이 조치 후 2일 뒤에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개국기원을 일본의 정략적 의도로 파악하는 것은 박영효의 명의로 내려진 훈시 중에 개국기원의 사용과 함께 일본이 우리나라의 독립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도록 한 것으로 보아 터무니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후 1896년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건양(建陽), 광무(光武), 융희(隆熙)등 조선 독자의 연호 사용은 시대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용도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일원적 세계질서로부터 각국 중심의 다원적 세계질서로의 재편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태음력을 버리고 태양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연계된다. 1895년 9월 9일(음력)에 고종황제는 같은 해 11월 17일(음력)을 1896년 1월 1일(양력)으로 반포하였다. 태양력에 의한 문서작성시기의 표기가 시작된 것이다. 수백년을 음력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양력 사용은 혼돈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렇듯 신정과 설날을 두 번 세는 고민은 양력사용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단기(檀紀), 공자탄강, 조선개국, 분단, 통일 등 지금까지 사용된 수많은 기년의 표기는 시대인식을 대변한다. 자국 연호의 사용과 태양력의 사용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시기의 구분점이기도 한 셈이다./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8.03.07 23:02

[책의 향기] 외동딸이 뭐가 나빠 등

◇ 외동딸이 뭐가 나빠 / 캐리 베스트 글 / 비룡소 / 8500원 로즈메리 엠마 안젤라 리네트 아사벨 아이리스 말론. (줄이면 로즈메리.) 주인공 로즈메리는 외동딸이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녀의 이름이 이것을 반영한다. 엄마는 로즈메리를, 아빠는 엠마, 할아버지 할머니는 안젤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리네트를 고집했다. 이모와 삼촌까지 나서 아이리스와 말론이 덧붙었다. 로즈메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가족의 관심사다. 하지만 그녀가 필요한 것은 함께 놀 형제자매와 친구들이다. 가족들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그녀가 그런 상황을 더 벗어나고 싶고,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 그런지 아이가 동물들과 친구가 되면서 외로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파스텔 톤의 연한 분홍을 주조로 한 아기자기한 그림은 '로즈메리 공주님'의 일상과 심리를 제대로 그려냈다는 평가다. 외동아이의 심리와 생활을 재치와 유머로 유쾌하게 담았다. ◇ 나쁜 엄마 / 클라라 비달 글 / 메타포 / 8500원멜리 엄마는 나쁘다. 사람들이 보는 데선 요리도 잘하고, 멜리와 잘 놀아 주고, 애정 표현을 하는 '완벽한' 엄마다. 하지만 자신이 기분 나쁘고 아프면 멜리 탓을 하며, 멜리가 여자로 성숙하는 증거인 2차 성징조자초 못마땅해 한다. 그 자신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약한 엄마'이기도 하다. 책 속 설정이 낯설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네 엄마들도 완벽하기를 추구하지만, 좋다가 나쁘다가, 고맙다가 미운 게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나쁠 때는 '엄마 나빠!'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하기 버거운 엄마의 변화나 감정을 아이 혼자 책임지지 말아야 한다.애증이 교차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잘 포착해, 그 사이의 미묘한 심리를 잘 그려냈다. 아주 특별한 듯하면서도 또 보편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 내 가족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도록 이끌었다. ◇ 존 아저씨의 꿈의 목록 / 존 고다드 글/ 글담 어린이 / 9000원 "127개의 꿈 목록은 비 오는 오후에 탄생했어." 탐험가, 인류학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존 고다드. 그는 카약 하나에 의지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 강 탐험을 처음으로 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유명하게 된 진짜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적어 오던 '꿈 목록'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 오후, 그는 식탁에 앉아 127개의 '꿈 목록'을 써 내려갔단다. 그중 111개의 꿈을 성취했으며, 그 후로도 500여 개의 꿈을 더 이뤄 냈다. 그의 꿈은 달성하기 어렵거나 크고 거창한 꿈이 아니다. 윗몸일으키기 200회, 플루트 배우기, 인디언 문화 배우기 등 작은 꿈들부터 차근차근 이루어 갔다. 이 꿈들은 다시 킬리만자로 산 등반, 비행기 조종하기 같은 이루기 어려운 꿈들로 발전했고, 결국 그가 다섯 살 때부터 꿈꾸어 오던 탐험가로 만들었다. 작은 꿈들이 모여 결국 큰 꿈을 이루게 한 것이다. 존 고다드는 꿈을 기록하는 습관이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전한다. ◇ 월든 / 김선희 글 / 파란자전거 / 9800원 '월든'은 미국 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호수의 이름이다. 작은 호수에 불과한 이곳에 매년 6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다.소로는 상업주의로 인해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소외돼 가는 것을 극복하고자 '월든'에 오두막집을 짓고 자급자족적인 삶을 택했다. 그것만이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돼 가는 자연을 구하고 인간 자신도 구제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에 눈 뜰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책을 읽기 전 알아야 할 사항을 따로 구성한 점이 눈길을 끈다. 1부는 소로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미국 사상사의 주요 흐름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서술했다. 이어 2부엔 『월든』의 원문을 실어 내용과 문체를 살리면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150여 년 전 벌써 물질문명의 폐해와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꿰뚫어본 소로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8.03.07 23:02

[책의 향기] 김희경 글 '도요새 공주'

새만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새만금에서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여의도 면적의 100배에 달하는 거대한 간척지를 조성하는 동안 그 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던 갯벌 생물들의 생태계는 엉망이 되었다. 갯벌에서 잠시 쉬어가던 철새 도요새의 삶도 마찬가지. 북쪽의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하고 남쪽의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시아로 날아와 겨울을 보내는, 1년에 두 번 먼 길을 오가는 도요새는 고단한 여행길 중간에 위치한 서해안 갯벌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최근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막아버린 탓에 새만금에 날아들던 도요새 수가 부쩍 줄어들고, 이 곳을 찾는 도요새들이 갯벌에서 죽어가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동화 「도요새 공주」(한겨레아이들)는 갯벌에 의지하며 살았던 수많은 갯벌 생명을 위로하는 이야기. 이 책으로 ‘한국 안데르센 그림자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가는 그동안 옛이야기에서 빌려온 우리만의 지혜와 해학을 정감 넘치는 동화로 되살려온 김회경씨다. 그는 “새만금 간척 사업 현장을 돌아보며 새들의 쉼터인 갯벌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다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군산, 김제, 부안에 걸쳐 있는 넓고 넓은 새만금 갯벌은 그 풍요로움 때문에 아주 먼 옛날부터 도요새들이 즐겨 찾아온 곳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요새들의 생명의 쉼터인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갯벌이 없어진 줄 모르고 찾아온 도요새들이 그 곳에서 지쳐 쓰러져 죽어가고 있습니다.”김씨는 “사람의 욕심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 가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도요새 공주」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후, 서해안 갯벌과 북쪽 도요왕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판타지동화다. 그 안에서 사람이 되기 위한 고통을 이겨내고, 나아가 타인인 아퀴새들의 아픔까지 이해하게 되는 주인공 ‘달빛도요’의 성장과정이 그려진다.아이들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마음껏 상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어른들은 복잡한 논리로만 설명되어져 온 새만금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다. 그림은 사진과 그림 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조혜원씨가 맡았다. 1000년 후 도요왕국와 사람 세상을 환상적인 색감으로 표현해 냈다.

  • 주말
  • 도휘정
  • 2008.03.07 23:02

[책의 향기] 등장(等狀)

유곡에 사는 안동 권씨 권벌의 집안을 중심으로 조선조 양반의 실체를 다룬 「양반」의 저자 미야지마 히로시는 우리나라에서 동족조직으로서의 문중이 형성된 시기를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치는 때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 들어서면 15, 16세기에 편찬된 안동권씨 성화보나 문화유씨 가정보 등 초기 족보에서 나타나는 몇가지 특징들―예컨대 남녀순이 아닌 출생순으로 씨족원을 기재하고 있다든지 친손뿐만 아니라 외손까지 기재하고 있는 점, 또한 여자가 재혼한 경우 두 명의 남편을 모두 밝히고 있으며, 자식이 없어도 입양을 한 사례가 거의 없거나 매우 드문 점 등―이 차츰 사라지고 부계혈연 중심의 기록으로 족보가 바뀌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바로 이것이 동족집단의 결합이 강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가서 맞이하는 족보의 전성시대는 이같은 동족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경제적인 면에서 지방 양반층의 경제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상속의 형태가 이른바 남녀균분 상속에서 남자균분 상속으로, 다시 장자우대 상속으로 바뀌어가는 때이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그 모든 변화의 배후에 경제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조선 후기의 고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중의 망나니들은 인간사회에서는 으레 찾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지방 양반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고문서에서 문중은 항상 힘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중을 어지럽히는 망나니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일 때가 더 많다. 태인 지방의 김씨 문중은 죽은 아내의 무덤을 선산에 몰래 쓴 일족의 한 사람에게 무덤을 파가도록 계속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였다. 결국 관에 소지를 올려 종중의 단묘제를 기일 내에 무사히 치를 수 있게 관에서 무덤을 속히 파내도록 조치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산송(山訟)은 그리 쉽게 마무리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덤을 몰래 썼더라도 유교사회에서 이를 함부로 팔 수는 없었던 것이다.문중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문중의 재산을 몰래 팔거나 빼돌리는 경우이다. 순창의 한씨문중은 9세조의 선산과 그곳의 소나무를 몰래 팔아먹은 한아무개를 관에 고발하였는데, 관에서는 문중의 일이니 알아서 상의해보라는 판결을 내렸다. 문중으로서는 답답한 일이었겠지만 다행히도 당사자가 그 값을 물어주겠다는 수표를 작성하는 선에서 해결이 되었다. 그림에 제시한 고문서의 사례는 훨씬 기가 막힌 경우이다. 1720년 경상도 예천과 풍기 등지에 살던 예안김씨의 문중에서 관에 등장(等狀)을 올려 제위답(祭位畓)을 문중노(門中奴)의 이름으로 토지대장에 등록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등장은 여러 사람이 관에 올린 진정서이다. 심성이 고약한 문중의 김아무개가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애써 마련한 논을 저당잡히고 노비까지 팔아먹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예 문중노의 이름으로 논을 등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수령의 판결이 쓴 웃음을 지어내게 한다. “자손이 조상을 제사지내는데 문중노의 이름을 내걸다니 참으로 머리가 몽롱할 따름이다.” /유호석(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8.02.29 23:02

[책의 향기] 스타시커 1, 2 등

△ 스타시커 1, 2 / 팀 보울러 글 / 다산북스 / 8000원"난 혼자야. 누구도 날 이해 못 해. 내 마음은 닫혔어. 이제 아무도 못 들어와." 아버지와 이별 후 마음을 닫고 방황하던 열네 살 소년 루크. 그는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 자신의 내면과 타인의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까지 듣는 특별한 아이다. 루크는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 재능이 있지만,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방황한다. 엄마와 하는 말마다 다툼이 되고 불량한 패거리와 어울렸다가 이제는 보복이 무서워서 발을 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냉소적인 리틀 부인과 수수께끼의 소녀 나탈리를 만나면서 내면에 귀 기울이고 주변 사람과 아름다운 교감을 만들어간다. 특히 피아노연주는 루크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줄 뿐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나누던 차이코프스키의 '달콤한 꿈', 리틀 부인에게 바치는 스크리아빈 '연습곡 2-1번'의 잔잔한 감동은 소설의 핵심이다. △ 너는 나의 달콤한 □□ / 이민혜 글 / 문학동네어린이 / 9800원 "젠장, 제기랄, 미친 새끼, 날라리 같은 게!" '동화니까' '동화라면'이라는 말은 첫 장부터 무색해져 버리는 책이다. 교실에 난무하는 욕설, 나름의 원칙이 존재하는 집과 학교에서 살아남는 요령, 독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뻔뻔한 심리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문제아'는 '문제어른'과 '정상적인 아이들'을 꼬집는다. '모범생'은 '철없는 어른'과 '문제아'를 야유한다. 그렇다고 '문제의 작가'가 그 아이들을 무조건 감싸지도 않는다. 열세 살이 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따로 또 같이 겪는 사건(연애담, 가정사, 학교생활 등)들이 각자의 시선에 따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렸다. 문제아 지혜와 모범생이자 학급회장인 일진이가 만나 연애를 한다. 험한 말과 뺨 한 대로 삐거덕거리며 시작된 관계. 하지만 알고 보면 다른 속사정과 착각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아무리 어른스러운 아이라도 어른한테 이해받을 권리가 있음을 깨달아 쓴 책이란다. △ 퀴즈퀴즈 공부벌레 호기심 랭킹 / 궁금증해결위원회 / 해냄주니어 / 7500원"도대체 왜지? 이유가 뭘까?"아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사물에 대한 궁금증은 끝이 없다. 부모들조차 그 무수한 궁금증에 대해 적당한 답을 해주지 못한 경우가 많을 정도.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다가 문득 '겨울잠을 자는 곰은 오줌이 마렵지 않을까' 의아해 한다. 식탁에서 밥에 김을 싸서 먹다가 '김은 어디가 앞면이고 뒷면일까?' 궁금해 하기도 한다.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육식동물은 채소를 먹지 않아도 병이 나지 않을까' 알고 싶어진다. 이 책은 이렇듯 생활 속 신기하고 재밌는 퀴즈 65개를 뽑아 초등생 100명에게 풀게 해 가장 많이 맞힌 문제부터 적게 맞힌 문제가지 순위를 매겨 정리했다. 즐거운 공부는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모와 함께 읽으면 상식을 넓혀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바사라산 스케치 통신 / 스즈키 마무루 글 / 한울림 어린이 / 1만 2000원"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삽니다. 누구나 자기한테 어울리는 인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저자는 삶의 다양성, 존재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자연이 특정한 삶을 강요하지 않듯 인간의 삶 역시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라사산은 높이가 608m밖에 안 되는 작고 아담한 산. 새 둥지 연구가인 저자는 일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이 작은 산에 자신의 터전을 마련해 밭을 일구며 산속 생활을 시작했다. 이 책은 작가가 새집을 짓고 채소를 가꾸면서 풀 베는 법, 장작 패는 법을 배우며 얻은 깨달음을 잔잔하면서도 재밌게 써내려간 생태일기다. 각 페이지마다 저자가 직접 그린 재치 있는 스케치도 글의 재미를 더해준다. 언뜻 보면 세밀하지도, 오랜 시간 정성들여 그린 느낌 같지도 않다. 하지만 기교를 부리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쓱쓱 그려낸 그림에서 화가가 '마음 서랍'에 간직했던 그림을 꺼내 그려낸 듯 하다.

  • 주말
  • 이화정
  • 2008.02.29 23:02

[책의 향기] 신경림 시집 '낙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로 시작되는 ‘가난한 사랑 노래’를, 나는 1998년 겨울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됐던 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이 시에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란 부제가 붙어있었다는 걸 알고 무작정 이 시가 좋아졌다.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가난한 젊은이를 위해 시를 썼을 시인이 무작정 좋아졌다. 중년의 나이에 이 시를 쓴 시인은 어느새 일흔 고개를 넘어선 한국 시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이다. 오랜 기간 문단과 독자를 기다리게 한 그가 6년 만에 열번째 시집 「낙타」(창비)를 펴냈다.‘낙타를 가고 가리라, 저승길은 / 별과 달과 해와 /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 손 저어 대답하면서, /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 (…)’ (‘낙타’ 중에서)표제작이 암시하듯, 이번 시집은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깊은 비유와 편안함으로 물 흐르듯 전개되는 시들은 52년 시력을 안고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은 시인의 눈은 이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초월해 그것을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길떠남은 자연스레 여행으로 이어져, 여행시로 또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시집 말미에는 시인이 직접 쓴 산문 ‘나는 왜 시를 쓰는가’가 실렸다. 그가 시 쓰는 일에 처음 회의를 느낀 것은 문단에 나온 직후. 추천을 받은 작품은 순수 서정시였는데, 그 무렵 세상은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시인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절망감이었지만, 내 시는 내 절망감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내 서정시는 내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못되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세상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가 시시해지고, 시 따위 쓰지 않으면 어떠냐 하는 건방진 생각조차 하게 되면서 시에는 더욱 게을러졌다는 시인. 시골로 귀향하면서 이 땅이 참으로 살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도 비로소 절감하고 만약 글 쓸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남이 아닌 이웃들의 정서나 설움, 얘기 같은 것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고 한다. 이번 시집 「낙타」의 시들을 쓰는 동안 그는 “시 작업이야말로 세계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는 어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간다는 생각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해찰할 때 해찰하고 그가 걸음을 멈추면 멈추고, 그렇게 시인을 따라가게 된다.

  • 주말
  • 도휘정
  • 2008.02.29 23:02

[책의 향기]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등

△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 보도 섀퍼 글 / 을파소 / 1만2000원"나도 돈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돈이 없어 궁지에 몰리게 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돈이 중요해지지…네가 원한다면 돈이 네 인생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 줄까 해." 재정 문제 컨설턴트이자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지은이는 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올바로 이해하고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늘 모자라는 용돈으로 좋아하는 CD를 사느라 용을 쓰는 키라.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개 머니가 말을 할 수 있을 뿐더러 부자가 되는 방법에 관한 한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머니가 주장하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목표를 정할 것. 부자가 되고 싶은 열 가지 이유와 그 중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소원을 적는 것이다. 둘째, 해 보기 전에 미리 판단하지 말 것. 머니는 "한 번 해 보겠다고 말하는 것은 안 될 일에 대해 미리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한번 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 두 가지가 있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즉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는 뜻. 이 외에도 머니는 매일 10분씩 성공일기를 쓸 것, 장래를 위해 돈을 분배하는 것과 목표를 가시화 하는 일, 계획한 바를 72시간 내에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이 경제동화'일 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자기 계발 서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열 두 살 어니의 좌충우돌 경영자수업 / 도우 쿠니 글 / 1만2000원12살 어니는 자나깨나 '어떻게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궁리만 하는 꼬마 사업가다. 심지어 맛없어하는 학교급식을 먹는 친구들에게 치즈버거를 팔 정도다. 어느날 어니에게 기가 막힌 사업 아이템이 떠오른다. 그건 바로 애완동물 장례식 사업. 친구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어니는 온갖 사건들을 겪으며 '좋은 CEO'의 의미와 일의 가치, 사람에 대한 사랑을 배운다. 경제 교육을 넘어 경영 교육이 필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보다 넓은 안목,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가능케하는 '인간애'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을 다루는 사업(장례업)을 통해 '좋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익만을 좇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돈을 벌고 활용하는 솔깃한 기술을 알려주면서도, 타인의 입장에 대한 이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등 가슴 따뜻하고 뭉클한 인간애가 녹아있는 것이 이 책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행복한 글쓰기 / 카슨 레빈 글 / 주니어김영사 / 9800원"세부 묘사는 여러분이 만든 세상에 빛을 던져 줍니다. 물 한 잔 마시려고 부엌에 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장, 지금 그 장면을 눈앞에 그려 보세요. 컵은 어디에 두나요? 그 대답이 세부 묘사입니다. 물 잔을 잡으려면 어딘가에 올라서야만 하나요? 그럼 어디에 올라서나요? 그 대답이 바로 세부 묘사입니다." 말은 잘 해도 글쓰기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책은 드물다. "수영도 하루아침에 잘할 수 없듯 글쓰기도 연습이 필요하다" 는 것이 이 책의 저자 레빈의 말이다. 글쓰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뜻. 하지만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작가의 비법을 슬쩍 응용하면 지름길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작가는 '세부 묘사가 글에 활기를 줘요'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세요' '서로 말을 시켜요' '누구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결정해요' 등 글쓰기관한 팁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글쓰기 입문서라 할 수 있다. △ 주문에 걸린 마을 / 황선미 글 / 주니어랜덤 / 1만2000원무엇이든 잘 깜빡하는 건망증 작가는 이제 막 유럽의 동화마을 여행을 시작한다. 작가의 취재노트 안에서 미완성된 동화 캐릭터였던 새끼 쥐 '깜쥐'는 작가보다 앞서서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소중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간다.피터팬을 만난 '깜지'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소년인 피터팬의 비밀을 듣게 된다. 돌아가고 싶었으나, 엄마 품엔 다른 아기가 잠들어 있어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 결국 켄싱턴 공원의 요정들과 소년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또한 상냥하고 조심스러운 세탁부 '티기 윙클' 아줌마를 만나 잃어버렸던 손수건도 찾고, 티틀 마우스라는 쥐가 입었던 바지도 얻게 된다.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선 개구쟁이 원숭이 닐손과 함께 신나게 놀고 있는 삐삐를 만나는가 하면, 피렌체의 뒷골목에서 아직도 인간이 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피노키오를 만난다. 미완성 캐릭터였던 '깜지'는 이 여행을 통해 동화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성숙해져 간다. 보고, 듣고, 느낀 여행기를 성장동화로 승화시킨 놀라운 힘이 엿보이는 책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8.02.22 23:02

[책의 향기] 고문서의 근대화?

고문서란 옛 문서를 말한다. ‘옛’이라는 게 어느 때까지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약간씩 다르지만 1910년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즉 조선시대의 문서를 생산하는 전통이 대한제국기를 거치고 일제시대에 들어서게 되면 소위 ‘식민지적’으로 변화하였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일제시대의 문서들을 기록학의 범주에서 다루어야 하며 고문서라 할 수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1910년 기점에 대한 또 다른 인식기반은 소위 ‘근대화’이다. 이는 전통사회에 대한 고답적인 시기구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는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문서에 대한 제반 규정 역시 분명하게 갑오개혁을 전후로 변화하였다. 다만 갑오개혁기에 대한 평가는 개혁으로 도출된 근대성보다 전근대적 요소의 연장선상으로 파악하고, 개혁 후 곧 일제 식민지라는 거대한 분기점을 맞기에 고문서는 1910년 이전의 문서로 규정된 것이다.그런데, 법률을 만들어서 제도를 변화한다 해도 실 생활에서의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무던한 시간이 필요하다. 공적인 기관에서 사용하는 문서의 양식이나 작성방법 등은 제도로 쉽게 변할 수 있었겠지만, 백성들이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전통적인 문서작성의 근대화는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문서의 규격이 통일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서식화된 용지에 필요한 내용만 써 넣었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는 문서의 생산 유통정보가 표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1910년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단 시일 내에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기록의 근대화는 식민지 지배의 필요에 의해서 가속화하면서 기록문화전통의 식민지성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위에서 소개한 문서는 1924년에 진안군 백운면 각 구(區)에서 올린 청원서이다. 동창리 김사언 등 9명의 연명으로 원탄곡리에 사는 장중식의 효행을 표창해달라고 백운면장에게 올린 것이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소지와 동일한 형태로 작성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백운면장의 처분(판결) 역시 조선시대 그대로 쓰여져 있다. 조선시대와 다른 점은 일본왕 다이쇼의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과, 처분에 면장의 관인을 사용하였다는 정도이다. 문서의 근대화 과정과 일제 식민지성의 관계는 어떠할까? 수십년이 흘러도 고문서의 시기구분은 계속 1910년에 머물러 있을까? 일제 강점기 이후 문서들은 주로 어떻게 변화하기 시작하였을까? 앞으로는 이런 점에 주목해 보기로 하자. 정부조직을 바꾸기 위해 몇 달간 지루한 싸움이 결판이 났다. 조직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조직이 어떻게 바뀌든 국가기록은 계속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BBK, 도곡동 사건 등의 무혐의와 삼성의 조직적 은폐를 보면서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제시대는 그런 점에서 ‘기록의 암흑기’일까?/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8.02.22 23:02

[책의 향기] '한국의 고집쟁이'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 80년이 다 되도록 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3대째 이발소를 하고 있는 사람, 서울 한복판에서 50년째 대장간을 하는 사람, 평생을 기다란 집게를 가지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사람, 대학을 나오고도 아버지 따라 팔도를 돌아다니며 엿을 파는 사람,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 하나 뿐인 팔로 구두를 만들고 있는 사람…. 우리는 그들을 ‘고집쟁이’라고 부른다.변화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세상. 때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때로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일에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이미 그 분야에서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신을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이들. 그들은 ‘한 자리에서 태어나 싹이 틔우고 열매를 맺고 또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는 사람들’이다.「한국의 고집쟁이」(나무생각)는 주류이기를 거부하고 자기 길을 고집해서 살고 있는 고집쟁이 23명에 대한 기록이다.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졌을 때,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000만원짜리 통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를 못하니, 당신은 꼭 돈을 벌어라”하며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드는 남궁정부’ 중에서)‘손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 해 추석날 하루 집에서 쉬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요. 열어봤더니 학생 때 감상실에 오다가 외지로 나간 사람들이었어요. 추석이라고 고향에 돌아와서 하이마트를 찾아왔는데, 문을 닫으면 어떡하냐는 거예요.” 그날 이후 김순희는 외국은커녕 대구 바깥으로도 나가본 적이 없다.’ (‘고전음악감상실 하이마트 김순희’ 중에서)하나같이 똥고집쟁이에 돈벌이와 거리가 먼 일들에 매달려온 사람들인데. 그 옛날이면 잡놈이라는 부류로 취급되는 무슨 쟁이, 무슨 쟁이들인데. 주류의 기준에서 보면 실패한 인생들 아닌가. 그러나 세상의 기준은 많이 바뀌었다. 고단한 시대에 이들이 감내하고 만들어낸 삶은 따뜻한 감동을 준다. 오히려 책을 읽다보면 그들을 고집쟁이로 만든 것은 세파에 흔들릴 때마다 그들을 지켜주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여행기사를 쓰며 세상을 돌아다니다 사진을 배웠고, ‘박종인의 인물기행’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저들이 몇 십 년씩 몸으로 만들어 놓은 지혜와 지식을 불과 몇 시간, 며칠의 만남을 통해 순식간에 도둑질할 수 있었으니, 이런 행복한 도둑질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인물기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삶만큼이나 고귀한 자연을 담은 사진이 함께하고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8.02.22 23:02

[책의 향기] 감사의 힘 등

△ 감사의 힘데보라 노빌 지음, 김용남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1만1000원“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바로 ‘고마워요’였어요. ‘사랑해요’는 그 다음이었죠.” (‘본문’ 중에서)‘고맙다’는 말을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바로 옆사람이 경쟁자인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 ‘고맙다’는 한 마디가 지닌 위대한 힘을 깨우쳐 준다.저자는 ABC 라디오쇼의 사회를 맡고 있는 데보라 노빌. 그는 감사의 에너지를 통해 기적을 맞이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심리학적 근거를 제시한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하기를 바란다.아이들이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워야 할 말. “얘야,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지”. 그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성취의 열쇠다. △ 남자의 성공 남자의 향기심혜정 이하연 지음/시대의창 펴냄/1만1000원성공한 남자들이 드나드는 고급 한정식집 ‘봉우리’를 운영하는 이하연씨와 성공한 남자가 궁금한 방송작가 심혜정씨가 쓴 책. 성공한 남자들의 공통점과 특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성공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 타고난 DNA가 아니라 갈고 닦은 DNA다. 이들은 일에 있어 프로며, 자신을 아끼고 또 그만큼 남을 아끼고 주위를 즐겁게 한다. 조용히 있다가도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성공을 예약하는 태도 열다섯가지’ ‘성공을 불러오는 대화법 열네가지’가 실렸다.

  • 주말
  • 도휘정
  • 2008.02.15 23:02

[책의 향기] 숨어있는 국보 이야기 등

△ 숨어있는 국보 이야기 / 이정주 글 / 가교 / 8500원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렸다. 600년 동안 서울의 대문 구실을 해 온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져 내렸다. 예의를 숭상하고 풍수지리와 음양오행 사상을 엿볼 수 있었던 선조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던 곳이다. 몇 년 전 큰 불이 휩쓸고 지나간 낙산사 역시 화재로 인해 다 타 버리고 보물인 동종도 녹아 없어져 버렸다. 이처럼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지 못한 안타까움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책은 파랑새가 그린 아름다운 벽화 무위사 극락전, 바위로 변한 선묘 아가씨와 의상 스님을 그리는 절 부석사 무량수전 등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는 문화재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국보가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알 수 있다. 국보에 매겨진 번호는 지정한 순서일 뿐 역사적 가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환경과 마찬가지로 문화재 역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깨닫게 한다. △ 장승벌타령 / 김기정 글 / 책읽는 곰 / 9500원귀밑까지 찢어진 입, 주먹만한 코, 웃는 듯 화난 듯 알 수 없는 표정.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과 사찰의 지킴이자 나그네 이정표 노릇을 했던 장승의 얼굴이다.이 책은 판소리 ‘가루지기 타령’의 주인공 가루지기가 장승을 패서 땔감으로 쓰다가 동티가 나는 대목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뭐라 카노? 좀만 참거래이, 내 퍼뜩 가서 콱!” “뭐이 어드래? 간나 새끼 혼꾸멍 내갔어.” 억울한 장승의 노래를 듣고 팔도의 팔만 서너 장승들이 몰려드는데,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투리의 향연이다. ‘징글징글 미운 내 새끼야’라며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 아들에게 나무 해오라며 물벼락 주던 어미도 병든 아들을 보자 ‘내 살붙이 예쁜 아들’을 외치며 크게 운다. 가식 없이 느끼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들은 우리네 민초들 모습 그대로다. 결국 가루지기는 장승들이 준 팔만 서너 병을 앓다 홀어머니의 정성으로 병이 낫고 새 사람이 된다. 어린 시절 장승 앞을 지날 때면 오줌이 마려웠다는 작가는 후기에서 능청스럽게 한마디 보탰다. "장승 이야기를 썼으니, 장승도 날 좀 봐주지 않을까. 믿는 구석이 생겼다. 다행이다."△ 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글 / 계수나무 / 8500원턱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있는 코가 늘 불만인 나이구 스님.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코를 짧게 하기위해 쥐 참외를 달여 마시거나 쥐 오줌을 발라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써본다.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 낙담하는 그다. 한 제자가 코에 뜨거운 김을 불어넣은 뒤 두 발로 힘껏 밟으면 나을 수 있다는 비법을 전하자, 천신만고 끝에 스님은 짧은 코를 갖게 된다. 스님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스님은 코가 짧아졌지만 오히려 기쁨보다는 불행을 느낀다. 변한 자신의 모습에 사람들이 더욱 수군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인들이 예전보다 더 크게 비웃었는지를 묻는다면, 작가는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요절한 일본의 천재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동화 ‘코’를 통해 ‘인간의 행복은 마음에 달려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를 다룬 ‘흰둥이’, 부귀영화보다는 소박한 삶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두자춘’ 등 동화 3편이 한 권에 묶였다. 욕망과 좌절, 시기와 질투 등을 왔다 갔다 하는 부조리한 인간심리를 묘사한 대목은 음미해볼 만하다. △ 뿔난 바다 / 박예분 글 / 청개구리 / 1만원해마다 2월 3일이면 현해탄을 건너가는 사람들. 일본의 야마구치 현 우베 시 니시키와 해역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역사의 매듭이 얽혀 있다. 60여 년 전 강제 징용돼 죽도록 일을 하다 바닷속에 수장된 조선인들의 원혼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 물자 조달에 급급했던 일본은 바닷속까지 뚫고 들어가 조선 젊은이들을 채탄 작업에 희생시켰다. 일본의 최대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이 바로 그 곳. 이곳은 지난 1942년 바닷물이 터져 들어와 수몰되는 참상을 겪었다. 수몰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지만, 회사나 일본 정부의 관리 소홀로 참사를 당한 것이 더욱 가슴 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며, 역사적 증거물을 철거하려 하고 있다.성난 뿔이 돋은 건 아직도 사과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 작가는 당시 수몰 사고의 진상을 알고 있는 생존자인 김경봉, 설도술 할아버지들을 인터뷰하고 지난해 2월 3일 일본 현지 추모제를 취재하면서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을 논픽션으로 재구성해 냈다. 책에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마음이 빼곡히 담겨 있다.

  • 주말
  • 이화정
  • 2008.02.15 23:02

[책의 향기] 싱글 예찬? 현명한 결혼을 위한 가이드!

‘아주 잠시 동안은 모든 게 잘 돼 가는 것 같다. 대학 때 그토록 꿈꿔오던 독립을 하고, 뭐든 맘대로 하고, 간섭하거나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도 없다. 2주 동안 번 돈을 생활비와 쇼핑하는 데 다 써버릴 수도 있다. (…) 그런데 어느 순간, 약혼파티에 집들이에 이런저런 약속들로 정신이 다 나갈 지경이다.’이 책을 쓴 두 명의 젊은 여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맙소사, 나만 싱글 섬에 고립돼 버리다니!”‘골드미스’(경제력 있는 30대 싱글 여성)가 여성 싱글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사회. 하지만 이 세상의 여성 싱글 중에는 ‘골드미스’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다만 위로를 삼는다면, ‘골드미스’나 ‘실버미스’나 싱글로 산다는 건 똑같이 힘들다는 것. 싱글은 쉬워도 싱글로 ‘잘’ 사는 것은 특히 어렵다.「싱글의 법칙」(책생각)은 싱글 예찬론이 아닌, 어떻게 하면 현명한 결혼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행복한 결혼을 위한 싱글 가이드’다. 지은이는 현재 남자친구와 살고 있지만 신청서를 작성할 때면 여전히 ‘미혼’란에 체크하는 에린 토르네오와 운 좋게도 두 달 남짓 데이트한 첫번째 남자와 결혼한 발레리 카브레라 크라우스. 둘 다 여성작가로, 미국도 여성이 싱글로 살아간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결혼한 커플의 삶이 그럴듯해 보이더라도, 그 누구도 당신의 하루하루를 대신 살아주진 못한다. 혹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최악의 선택이다. 그도 머지않아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이혼하자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가 된 당신. 혹, 결혼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지는 않은지 체크해 보길.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케를 받은 적이 있다.-오래 전부터 갖고 싶던 가방도 안 샀는데 왜 허구한 날 재정 상태에 구멍이 나는지 모르겠다.-약혼한 친구를 보면서 ‘어떻게 나만 두고 결혼할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나를 보며 약혼이나 결혼한 친구들이 내게 미안해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 이상 있다.-끝까지 결혼도 못하고 홀로 남을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 죽겠다. 「싱글의 법칙」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한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한 책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8.02.15 23:02

[책의 향기] 가승(家乘)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수인사 후 따져보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세칭 족보를 따져본다고 말하는 것 속에는 성씨가 같을 경우 본관이 어디인지, 몇 대손인지를 묻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고향이 어디인지 묻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를 따져본다.혈연, 지연, 학연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상대방과의 교감을 나누려는 것이다. 교감을 나누려는 이유에 따라서 이것이 혹은 해가 되기도 하고 혹은 득이 되기도 한다. ‘족보를 따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것은 이런 교감을 통해 비합리적인 일처리들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래 이러한 교감의 끈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교감을 통해 집단의 사회성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끈’을 확인하는 것은 ‘족보’라고 하는 혈연 집단의 기록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기 시작하면서 강화되었을 것이다. 생존의 법칙처럼 나눠 먹어야 할 것이 적었던 사회에서 끼리 집단을 확인하고 더불어 세를 형성해서 일정한 파이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혈연의 확인은 족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족보란 동일 씨족의 관향(貫鄕)을 중심으로 시조 이하 후손들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책이다. 족보의 종류는 가승보(家乘譜)·족보(派譜)·내외보(內外譜)·팔고조도(八高祖圖)·십육조도(十六祖圖)·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승보는 족보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시조 이하 본인(本人)에 이르기까지 직계(直系)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가승보에 수록된 개인의 이력사항은 자(字)·호(號)·출생(出生)·과거(科擧)·관력(官歷)·사망(死亡)·묘역(墓域)·배우자(配偶者)등 아주 간략한 내용만 기재된다. 이러한 가승보는 전쟁과 재난으로 인한 족보의 유실에 대비하거나, 혹은 아동을 위한 교육용, 결혼한 새댁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알려주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책자로 만들어지기 전 두루마리 형태로 시조로부터 자신까지 직계만을 기록해 놓은 것을 흔히 가승이라고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승이다. 위의 문서는 평산 신씨의 가승이다. 이에 따르면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으로부터 27대 후손인 광두(光斗)까지 단선으로 기록하고 재원, 재형, 재리, 재정, 재곤의 다섯 아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이 가승은 광두의 아들인 5형제 중 누군가가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재형(在亨)이 정종(正宗) 갑인생(甲寅年 ; 1794) 생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막내인 재곤의 생년인 무진은 1808년이 된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이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설같은 명절에 족보를 굽어다 보는 풍습도 이제는 사라져 버린 듯하다. 족보를 보는 것 자체가 조금 어렵기도 하지만 족보를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자신의 이름이 나온 곳은 꼭 표시해 둔다. 가승은 바로 자신의 이름부터 아버지의 아버지를 찾아 시조까지 올라가면 된다. 그리고 나서 호남기록문화시스템에 있는 가계도 그리기를 통해 입력해 넣으면 훌륭한 가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8.02.15 23:02

[책의 향기] 명사들의 가슴에 남은 詩 '나의 애송시'

특별나게 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유달리 입 안을 맴도는 시 한편 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시인, 소설가, 교수, 단체장 등 저명 인사들이 신간 '나의 애송시'(범우 펴냄)에서 즐겨 읊는 시와 시조를 공개했다. 김초혜 시인은 지난해 타계힌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방에 붙어 있던 시구를 잊지 못한다."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라고 적힌 이 시는 조선 중기 문인 신흠이 쓴'야언(野言)'.김 시인은 "긴 세월에 걸쳐 많은 시와 시인을 접해왔지만 시와 시인이 일치하는감동을 갖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 시구는 바로 선생님의 삶과 인품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읽는 순간 숙연해졌다"고 밝혔다.도종환 시인의 애송시는 원로시인 신경림의 시 '동해바다'."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도 시인은 "우리는 왜인지 나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하다"면서 "남에게 엄격한 사람이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과정이 바로 수행의 길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남윤수 강원대 명예교수는 젊은 시절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 준 시로 김기림의 '일요일 행진곡'을 꼽았다. "월/화/수/목/금/토/하낫 둘/하낫 둘/일요일로 나가는 '엇둘' 소리……/ 자연의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 영혼의 위생 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남 교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날이 그날 같았던 암울하던 시절, 왜 사는지에 대한 회의가 무성하던 문학청년 시절에 이 시는 단박에 머릿 속에 입력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루하루가 경쾌하게 일요일을 향해 내달리는 김기림의 시처럼 "일요일 하루는 쉬기로 하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나를 내놓았다. 유쾌한 하루와 공활한 하늘은 새로운 세계였다"면서 "침울하던 터널을 한 편의 시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시의효용성이란 참으로 놀랍다"고 밝혔다.오남구 시인은 병든 아내를 입원시킬 돈이 없었던 젊은 시절 쓴 자작시 '풀꽃'이 당시 제자들을 한꺼번에 울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시인임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아내는 내일 입원을 한다./ 시는 돈이 될 수 없다./ 입원비를 마련치 못하는데/ 아내에게 시를 갖다 주면/ 꽃이 될까/ 아니 될까/ 딸들이 엄마 곁에서/ 풀꽃으로 흐느끼는 온밤." 월간 '책과 인생'에 실렸던 글들을 엮었다. 198쪽. 1만2000원.

  • 주말
  • 연합
  • 2008.02.15 23:02

[책의 향기] 문안단자

오빠와 아저씨의 구분 중에 하나가 문자를 보냈을 때 문자로 답하면 오빠이고 전화를 하면 아저씨라고 한다. 하지만 워낙 핸드폰의 사용이 보편화하였기에 문자만으로 오빠와 아저씨를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구시대적 나눔법이다. 환갑을 넘긴 어머니로부터 문자를 받고 있는 필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모티콘의 사용은 구분자가 될 수 있을 법하다. 이모티콘는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 1980년대 초 미국의 카네기멜론대학 학생이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이라는 부호를 사용하면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의 독특한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모티콘은 감정과 의사전달의 간결성에 있다. 비쥬얼한 세대는 굳이 글과 음성이 아닌 기호만으로도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와 자신만의 감정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모티콘이 상형문자시대로의 회귀는 아닐 것이다. 시대의 공감대 속에 놓인 자들의 전유물로서 생긴 무문의 언어인 셈이다. 조선시대에 굳이 이모티콘이라고 하기까지는 다소 억지스러운 감이 있지만, 아주 간편한 의사전달의 문서가 있었다. 문안단자(問安單子)라 불리는 이 문서는 단 두 글자만 사용한다. 밑도 끝도 없이 2자의 한자를 사용하고 발신일과 발신자만을 기록한 것이다.위 문서는 1881년 10월 9일 순천부사 윤아무개가 순천부 월등면에 사는 장만열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문안단자이다. 편지로 보내어진 이 문서에는 ‘존문(存問)’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신사년 10월 초 9일 행부사 윤’이라고만 쓰여 있다. “문안 여쭈옵니다”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편지의 크기는 가로·세로 30cm 정도이고, 종이 크기에 비해 글씨가 작은 것도 이 문서의 특징이다. 글씨가 작은 것은 대체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낼 때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즉 문안단자는 특별안 일을 알리거나 상의하기 위해 보내어지지 않고 편지와 방문이외에는 특별한 수단이 없던 시대에 문안인사를 드리는 이모티콘이었던 셈이다.다소 상투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문안단자는 ‘안부를 전해달라’는 전언에 비해 편지로 정성을 담아 보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은은한 정이 배어있는 것이다. 무언가 알리거나 상의할 일이 있거나 할 때 써야만 하는 것이 편지라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언어훼손의 주범으로 몰리는 이모티콘의 언저리에 ‘존문’이라는 두 글자로 안부를 묻는 센스를 가져보면 어떨까?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8.02.01 23:02

[책의 향기] '그대를 사랑합니다' 강풀

포털 사이트 ‘다음’에 5개월간 연재되어 총 페이지뷰 2천5백만 회에 댓글 수 6만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던 강풀(본명 강도영)의 연재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문학세계사 간, 전3권>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폐지 줍는 할머니와 우유 배달하는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축으로 주차장 관리 할아버지 부부 등의 사연이 치밀하게 얽혀 극적인 전개와 반전의 재미가 대단하다. 강풀 만화의 장점은 진솔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공포물 <아파트>나 엽기 코믹물 <일쌍다반사>와 함께 그의 대표작인 <순정만화>나 <바보>가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로서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출현을 예고했는데,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이런 만화를 읽고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는 이가 많았으며 필자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다 읽고 난 후에 옆에 휴지가 엄청 쌓여 있었어요,” “정말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만화네요,” 이런 반응들이었다. 원래 대학에서 국문과를 다녔고 학교 분규 때 대자보를 그리던 경험이 쌓여 만화가의 길을 가게 된 강풀은 2007년 대학생 들이 뽑은 분야별 최고의 인물, 만화가로 선정되었다. 그의 전작(前作)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 등으로 제작이 추진된다는 이 만화는, 주로 10대, 20대였던 이전 독자층을 30대, 40대로 넓혀 세대간의 관심의 폭을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만화의 소재가 우리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 그것도 왠지 거북하고 꺼림칙한 것으로 내몰려 있던 ‘노년의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네티즌의 폭발적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만화를 보면 독자들은 노인들의 일상 속에 시나브로 관심을 갖게 되며 그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가 결국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강풀 만화에는 악인이 없거나 있어도 종국에 뉘우치고 변화되므로 근본이 모두 착한 등장인물들에게 독자는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버리고 결국 작가의 관점을 공유하게 된다. “폐지 줍는 동네 할머니가 다시 보인다,” 만화를 볼 때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다,”는 류의 많은 댓글들이 그 점을 반증한다. “(이런 만화를 통하여) 전에는 노인의 삶에 대한 존재감이 없었지만 이제 그들의 삶도 하나의 의미 있는 삶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 같다(홍승우)”라는 말도 이 책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수긍이 가는 평가다.강풀은 집안 형편이 나아져 모시고 살게 된 93세의 친할머니를 통하여 30대 중반에 비로소 “(외람스럽게도) 할머니가 사랑스럽고 귀엽기까지 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인이란 겉으로 보는 것처럼 청춘을 흘려보낸 뒤 무기력하고 감정도 희미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 어느 날 갑자기 만화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마음 여린 소녀와 같고, 오래 살아서 지혜와 정이 넘치는 존재이며, “내가 ‘철학’이라고 일컫는 것 ‘일상’으로 알고 계셨고 내가 ‘이해’해야만 하는 것을 당연히 ‘알고’ 계신 할머니”를 통하여 작가는 갑자기 ‘특별한 존재’ 노인들의 삶에 눈뜨게 된 것이다. 노인들이 세월을 보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세월을 ‘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분들의 사랑과 애환을 그리며 행복했다고 술회하였다. 형식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발군인 그의 만화는 우리 사회와 역사의 거울이기도 하며,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뒤안길에서 우리가 잃고 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기게 해준다. 노년에서야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 송이뿐 할머니가 반세기도 더 지나 강원도 산골에 고향집으로 돌아갔을 때 놀랍게도 자신이 버리고 떠나온 어머니가 툇마루에 앉아계셨는데,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동안 그토록 매몰차게 버리고 뼈아프게 잃어버린 그 모든 귀한 것들을 늦게나마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가슴 벅차게 된다.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그랬듯이, 이 한편의 만화가 우리의 눈과 생각,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8.02.01 23:02

[책의 향기] 까만 얼굴의 루비 등

△ 까만 얼굴의 루비 / 루비 브리지스 글 / 웅진주니어 / 8000원 바람의 눈이 되어 / 떼레사 까르데나스 글/ 다른 / 1만원 올해는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더욱이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면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일이 여느 때보다 더 절실한 상황. 두 권 모두 ‘흑과 백’ 인종문제를 통해 인권의 가치를 전하는 책이다. ‘까만 얼굴의 루비’는 미국의 흑백 분리교육을, ‘바람의 눈이 되어’는 쿠바의 노예제도를 통해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풀어냈다. 전자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에 흑인이 처음 입학했던 소녀 루비 브리지스의 실제 이야기. 루비는 미국 대법원이 흑백 분리교육을 금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 백인만이 다닌다는 고교에 진학했다. 통합교육의 길은 험난했다. 집에서부터 부모의 찬반이 엇갈렸고, 보안관들의 보호를 받으며 등교해야 했다. ‘통합 반대’를 외치는 백인 시위대의 위협 때문. 또한 루비의 아빠는 딸이 통합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직장인 자동차 정비소에서 해고됐다. 하지만 역사의 진행 방향은 ‘발전’ 쪽이었다. 루비는 선생님과 지인의 도움으로 악몽과 거식증을 이겨냈고, 백인 시위대의 숫자도 점차 줄어들게 됐다. ‘바람의 눈이 되어’는 사탕수수 농장의 늙은 흑인노예 비에호가 주인공이다. 쿠바를 통치한 스페인들은 사탕수수를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수입했다. 때문에 노예들은 ‘삶 자체가 지옥’이었다. 자유를 꿈꿀 용기조차 없었던 그가 생의 처음 사랑에 관해 알게 되고, 자유가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되기까지의 비극적이고도 희망적인 과정이 펼쳐진다. △ 점퍼 1, 2 / 스티븐 굴드 글 / 까멜레옹(비룡소) / 6800원 "저게 뭐지." "뭐?" "네가 점프를 할 때 말이야. 뭔가 빛이 번쩍거렸어." 나는 카메라 옆에 서서 점프하기 직전까지 거꾸로 돌린 다음 정지 화면 검색 기능을 이용해 재생했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본문 중에서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을 피해 도망치다 우연히 ‘순간 이동’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이비드. 이 책은 ‘순간 이동’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자칫하면 허황된 공상으로 빠질 수 있는 스토리를 정교한 플롯과 문학적 디테일로 엮어냈다. 소심하며 아버지의 폭력이 자기 책임이라고 믿을 정도로 자존감이 결여된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하고 아버지를 이해해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1편인 ‘순간 이동’은 데이비드의 모험을 다뤘다. 데이비드는 새로운 능력을 깨달은 뒤에도, 늘 고민과 선택의 문제를 겪는다. 새 정착지 뉴욕에 온 뒤에도 아버지가 자신을 따라올까봐 걱정하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도 자신 때문일지 모른다며 불안해한다. 어머니와 연락이 닿은 뒤에도 어머니가 자신을 거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머니가 테러범에게 살해된 후에는 테러범과 아버지를 향한 분노에 휩싸인다. 결국 아버지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며 문제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2권에서는 또 다른 소년 점퍼 그리핀이 어린아이 점퍼들을 사냥하는 사냥꾼 '팔라딘'이라는 외계 조직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이 펼쳐진다. 아홉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 성장하면서 겪는 사춘기 시절의 고민과 모습이 녹아 있어 성장 소설의 면모를 보여 준다. 작가도 밝혔듯, '그리핀 이야기'는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백 스토리(backstory)에 가깝다.

  • 주말
  • 이화정
  • 2008.02.0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