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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지리산 자락에서 띄운 시인의 편지

최근에 한 착한 일이 뭐냐고 묻자, 꽃밭에 죽은 나비를 묻어줬다고 대답하는 박남준 시인. 어느 가을날, 그의 외딴집으로 전화 걸면 “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깊어가고 있습니까?”라는 녹음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낮지만 맑은 목소리. 그의 말간 얼굴까지 보고나면 사람들은 곧 시인에게 빠져들고 만다. 소설가 한창훈씨가 소개하는 시인은 더욱 매력적이다. ‘삶은 정갈하고 성품은 깨끗하고 몸은 아담하고 버릇은 단순하고 행동거지는 품위 있고 눈매는 깊고 손속은 성실한 데다가 시서에 능하고 음주는 탁월하고 가무는 빛나는 가인(佳人)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팬이 많지요. 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고 행여나, 멀리서 바라보는 이는 넘쳐날 정도입니다.’그러나 그가 산 속에 사는 이유는 알게되면 깬다. 뭔가 그럴싸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만, 단순히 돈이 없어서다. “내 경제 생활로는 도시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돈을 쓰지 않는 삶이라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겠다. 산 속에서 외따로 살아야 겠다.”“전원생활을 원치 않던” 그였지만, 돈을 쓰지 않기 위한 삶을 택하다 보니 산 속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지금 그는, 지리산 자락 악양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관값’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장례비 200만원만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넘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 기부한다. ‘시인 박남준이 악양 동매마을에서 띄우는 꽃 편지’란 부제가 붙은 「박남준 산방 일기」(조화로운삶). 모악산 기슭의 흙집에서 열두해를 보내며 쓴 「꽃이 진다 꽃이 핀다」에 이은 것이다. 쌀을 씻다가 반딧불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족제비와 참치 깡통을 나눠먹는 삶. 텃밭을 일구다가도 술 한잔 기울일 줄 아는 삶은 바람 좋고 해 좋은 날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매이지 않는 정신을, 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욕심인가.”쌀 항아리에 쌀 떨어지지 않고 나무 청에 땔나무들 겨울나기에 충분하고, 김장 항아리에 김치와 동치미가 가득하다. 내가 쓰고도 흡족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들려줄 시 몇 편 쓰는 일이 기쁘다는 시인.“혼자 시를 쓰고 즐거웠다. 그러나 그 시가 혼자만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런 시 쓰지 않을 것이다. 혼자만 즐거운 시라면 기꺼이 쓰레기더미에 던져 버릴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시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함께 나눔이 되지 못하는 시라면 그건 필시 독이다. 절망하는 이들의 가슴에 다가갈 수 있다면, 함께 그 절망을 나누는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기쁨을 버리고 그 절망으로 내딛을 것이다. 누군가 그 발자국을 따라 등불의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독재의 칼날이 횡횡하던 시대 시를 쓰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시를 쓰는 이유다. 여기 묶어 내보이는 글들은 시인이 시인에게 쓰는 편지요, 일기와 같은 소고다.

  • 주말
  • 도휘정
  • 2007.11.23 23:02

[책의 향기] 홍패 위조 - '가짜' 과거 합격증 소란

로스쿨을 둘러싼 소동이 가라앉질 않고 있다. 소위 ‘고시’ 합격이 가문의 영광이요, 온 동네의 경사로 여겼던 시절이 지금도 없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시’가 가지는 위력은 합격은 바로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있다. 옛 사람들이 과거 합격에 목숨을 걸듯이 맹진한 것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특히 3년에 한번씩 시행된 과거시험이었기에 낙방은 3년고생으로 연결되고,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 역시 가난한 선비들에게는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하지만 합격하였을 경우에는 모든게 달라진다. 세상사람들이 어떤 자리에 오르면 50가지가 바뀌네 100가지가 바뀌네 하는 것처럼 과거에 합격하면 눈뜬 장님처럼 대명천지가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웃지 못할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때 ‘고시합격생’ 행세를 하면서 수많은 여성을 농락하고 돈을 편취해 내는 고시병 범죄가 유행하고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 역시 고시가 가져다주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 때문인 것이다. 이런 범죄행위는 목적이 무엇이었던지 ‘위조’라는 또 다른 범법행위를 동반하게 된다. 그럴듯한 언변을 완벽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고시 합격증이었을테니까 말이다. 조선시대 과거합격을 둘러싼 폐단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갑신년 어느날 경상도 남해현 고현면에 살던 김재박은 동생의 위조된 과거합격증을 놓고 몹시 난처한 상황에 처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소지를 수령과 암행어사에 올려 호소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동생 김항이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하면서 홍패(과거합격증)를 위조하고 창부 십여명을 데리고 오면서 시작되었다. 김항의 일행을 맞이한 형 김재박은 과거에 합격한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큰 잔치를 벌이게 되었고, 그 잔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재산을 팔아야만 했다. 그런데 동생의 과거합격증이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즉각 위조된 홍패는 불태워졌고 동생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동생의 합격에 온 재산을 탕진한 김재박은 결국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창부로 왔던 문관성이라는 작자가 동생에게 돈 160냥을 빌려주었으니 감옥에 갇힌 동생을 대신하여 형이 갚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장을 올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서 김재박은 급제 축하 잔치비용을 다 갚았기 때문에 무고한 누명을 쓸 수 없다고 하면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암행어사에 청원하였던 것이다. 과거합격증을 위조해서 한판 해 먹었던 김재박의 동생과 같은 허황된 꿈을 쫒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홍패 위조에 대해 조선정부는 엄한 처벌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자신의 범죄를 위한 최초의 범법행위이다. 과거합격증 처럼 그 문서 하나가 가지는 폭발력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그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문서 위조는 사라지지 않을 범죄행위이다./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11.16 23:02

[책의 향기] 평화.상생의 '생명수' 찾아서 - 이규태 교수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설화인 ‘바리데기’를 현실세계의 문제들과 접합시켜 생명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추구한 화제의 작품이다. 설화의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다. 어느 나라에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난 ‘바리공주’를 아버지가 참다못해 산속에 갖다버리라고 한다. 버려진 ‘바리공주’를 짐승들이 보호하고 키운다. 그런데 ‘바리공주’를 버리고 난 이후 온 세상에 병이 돌고 부모도 병이 들어 죽을 상황에 직면한다. 점을 치니까 옛날에 갖다버린 ‘바리공주’가 해가 지는 서쪽 세상 끝에 있는 ‘생명수’를 찾아오면 산다고 한다. 그래서 ‘바리공주’를 찾고, ‘바리공주’는 ‘생명수’를 찾아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생명수’를 구해 돌아와 부모와 세상을 살린다는 줄거리이다. 설화 속의 ‘바리공주’가 바로 ‘바리데기’이다. 소설 「바리데기」는 탈북소녀 ‘바리’를 통해 설화와 현실을 재구성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대양을 넘어 서구사회의 심장부 런던에까지 들어가 21세기 전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바리’는 북한의 어느 단란한 집 일곱째 딸로 태어나 ‘바리공주’처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은 그래도 가족이 있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뭄과 기근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설상가상으로 외삼촌이 남한으로 탈출함으로써 가족은 완전히 해체된다. 시기적으로는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북한의 정치경제 환경이 급속히 나빠지고 기근과 홍수로 죽는 이들이 늘어난 1990년대 중반이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피난생활을 해야 했던 ‘바리’는 이때부터 험난한 생을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은 ‘바리’는 지독한 고난 속에서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설화 속의 공주처럼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생명수’를 찾아 중국을 거쳐 영국에까지 흘러가게 된다. 중국대륙과 대양을 건너 런던에 정착하는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북한 동포들이 겪어야만 했던 말 못할 재앙의 고통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외와 차별, 갈등과 분쟁,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를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10년 내에 벌어진 9?1 테러,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침공, 영국 동시다발 테러, 다양한 이주민의 삶을 소재로 한 종교와 인종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모습들을 모두 한 배에 탄 우울한 인류의 자화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설화는 효심을 바탕으로 했지만 저자 황석영은 「바리데기」를 통해 이데올로기와 종교, 그리고 인종 갈등을 넘어서는 ‘평화와 상생’이라는 ‘생명수’를 추구하고 있다. 설화가 그렇듯 「바리데기」도 절망을 넘어선다. 물론 똑같은 것은 아니다. 설화가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보여주고 있다면 「바리데기」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까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분노와 폭력으로 물든 지구촌을 향해 반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끝끝내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강변한다. 이 희망이야말로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는 점을 절실하게 일깨우는 것이다. ‘바리’는 남들보다 더 힘들고 몇 배로 험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로 인해 조그만 것에 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경험을 통해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되었으며, 수많은 갈등을 겪음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과 화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결국 세계는 서로 얽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이라는 분단 현실과 갈등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문화적 공통체로서 하나일 수밖에 없는 당위와 필연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생명과 평화, 조화와 상생의 길을 21세기의 문명으로 재창조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11.16 23:02

[책의 향기] 멍청이 등

△ 멍청이 / 공지희 글 / 낮은산 / 8800원. "정말이지 가장 싫을 때는 방학 때다. 방학마다 '엘리트 특강' '영재 종합 특강' 등 별별 특강반을 잘도 만들어 낸다."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건 이제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다. 문제집 풀고 답을 맞추고, 또 문제집 풀고 또 답을 맞추고…. 아무리 날이 춥고, 비염이 심해져도 학원은 가야 하는 게 요즘 아이들.억울하고 화가 날 만도 한데 학원에 안 가면 아이들 스스로가 안절부절 못한다.표제작 '멍청이'의 무진이는 학원을 빼먹고 "갑자기 나 혼자 외계의 다른 시간 속으로 뚝 떨어져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불안했다." 라고 털어놓는다. 작가는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내면을 파고들며 어른들의 욕심과 조바심에 희생되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다.아이들이 숨막히는 일상에서 탈출하는 길은 딱 하나. 바로 상상이다. 자신이 놓인 상황에 다른 탈출구를 찾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게임에 빠지거나 약한 아이를 괴롭히고, UFO를 타고 멀리 날아가 버리거나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할 꿈을 꾼다. △ 정갑영의 경제학교 / 정갑영 글 / 영진미디어 / 1만원 "세계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자 되는 법을 배웁니다.… 이 말은 경제 지식을 가까이 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일반 대중들이 경제 현상을 생활 속에서 보다 친밀하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갑영의 경제학교'는 10대를 위한 경제 학습 만화다. 아무리 장황한 설명도 한정된 만화 컷으로 요약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책이 나오기까지 무려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만화로 배우는 경제' '소비자를 움직이는 경제'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기업' '나라 경제를 이끄는 정부' '글로벌 경제와 한국경제' 5권으로 구성됐다.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경제용어와 시장원리를 역사적인 사건이나 복권, 영화, 명품 등 일상 소재 안에 담아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을 포인트 경제 이야기(학습면)에서 다시 한 번 보충 설명한 점도 친절하다. △ 노란 샌들 한 짝 / 캐런 린 윌리엄스, 카드라 모하메드 글 / 맑은가람 / 9000원 옛 소련과의 전쟁과 내전으로 유랑해야 했던 아프카니스탄 난민촌. 하루하루 생활이 절박한 난민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저자 카드라 모하메드의 체험을 토대로 썼다. 구호 트럭이 오면 서로 좋은 옷을 갖겠다고 밀치고 난리가 되는 이 곳. 하지만 리나와 페로자 두 소녀는 한 켤레의 샌들을 놓고 사이좋게 오늘은 페로자가, 내일은 리나가 신기로 한다. 작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소녀들의 우정을 다감하게 그렸다.이들은 학교가 작아 여자아이는 공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창문 너머로 이름을 적어 보기도 하고, 달을 쳐다보며 소곤소곤 옛날 얘기도 한다. 미국 입국 허가를 받아서 떠나게 된 리나 가족. 서로 샌들을 가지라고 권하다가 사이좋게 한 짝씩 나눠 갖고는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고 다짐한다. 작가는 한없이 어둡고 슬플 법한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세계에는 전쟁이나 기아,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야 하는 난민이 2000만 명이 넘는다. '노란 샌들 한 짝'은 다른 세계, 다른 환경에 처한 또래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이끌어 아이들의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 △ 기발한 지식책 / 리처드 혼, 트레이시 터너 글 / 웅진주니어(웅진씽크빅) / 1만원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는 발 냄새일까 방귀 냄새일까.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치타일까 독수리일까. 1분은 왜 100초도 아니고 60초 일까.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새롭고 신선한 지적 자극이 된다.지식은 억지로 읽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익히게 만드는 것.이 책은 읽으면서 동시에 직접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하고, 질문과 관련된 실험과 체험을 통해 호기심을 살아있는 지식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북쪽을 어떻게 찾을까. 이 책은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는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나침반이 없을 경우 별과 태양을 이용하는 방법, 시침이 있는 시계를 이용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여 호기심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평상시 독자들이 궁금하다고 생각했거나 기발하다고 느꼈을 질문을 책 뒷면에 있는 엽서를 통해 편집부에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선택된 질문은 후속권의 자료로 사용돼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11.16 23:02

[책의 향기]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등

△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박종호 지음/시공사 펴냄/1만2000원거리감 있던 와인을 생활로 끌어들인 건 어느 만화책 이었다. 여기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는 오페라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풀어주는 책이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수많은 오페라 공연과 음반을 섭렵한 오페라 전문가인 박종호가 30년 동안 쌓은 생생한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펴냈다.오페라 입문자들을 위해 주인공과 아저씨가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쉽게 풀이 했으며 세계 유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500여 편의 공연을 직접 본 경험에 기초하여 재미있게 구성했다.오페라의 규칙을 설명하고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초보자가 실제로 오페라를 접할 때 겪을 만한 어려움을 미리 해결해 준다. 함께 수록된 부록에서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오페라 작품들도 소개했다.△ 절벽에서 젖소를 떨어뜨린 이유알지라 카스틸유 지음, 임소라 엮음/좋은생각 펴냄/8900원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이 책은 세계의 우화들을 담았다. 삶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통해 꼬집는다. 변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한 젖소를 당장 떨어뜨리기’ 위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은 어떤 것인지도 알아 볼 수 있다.지은이는 ‘마케팅 컨설턴트’라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참신하고 다양한 이야기로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고 성사시킬 수 있도록 현실성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우화로 구성돼 있어 어른들뿐 아니라 학생들이 읽어도 어렵지 않을 책.

  • 주말
  • 이지연
  • 2007.11.16 23:02

[책의 향기] 침대위 책벌레가 안내하는 '책 세상'

이 책이 읽고 싶은 이유는 순전히 끌려서였다. 표지 한 가운데 써있는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선정적이라면 선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구와 책 날개에 써있는 저자의 글때문이었다. ‘관능적인 독서’란 표현은 무한한 호기심을 일으켜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으며, ‘엄마는 나의 검은 피부를 싫어했고 나는 나의 갈색 피부를 좋아했으며, 엄마는 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싫어했고 나는 나의 부스스한 머리를 좋아했다. 우리는 많은 부분 통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엄마는 내가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자기를 닮아서 애가 이렇게 책을 좋아한다고 칭찬하고 인정해줬다’는 짤막한 글도 매력적이었다.「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 사랑이 끝났음을 알아채는 순간, 감정이 휘몰아쳐 삶이 휘청대는 날, 침실로 들어가 책장을 펼치면 어김없이 인생의 힌트를 주었던 책 이야기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걸려올 단 한통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첫사랑 애인이 전화해서 만나자 했다고 난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마담 보바리」를, 맹추 같은 남자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눈 먼 바보에게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줄 것이라는 저자. 그는 ‘김어준의 저공비행’과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등을 만든 CBS PD 정혜윤씨다. “라디오 PD가 된 뒤로 잘 놀라지도 상처 받지도 않는다”는 그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수만 가지 방식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책과 라디오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 손을 뻗어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책을 읽는 버릇이 있다. 옆으로 누워 책을 읽다가 가끔 골반 한쪽이 내려앉을까봐 자세를 바꾸는 것 말고는 오로지 눈동자만 움직이는 그 시간이 그에게는 간신히 인생의 해답을 얻어가는 시간이라고 했다.책 속에 실린 책들은 대부분 소설 위주며, 연관지어 떠올려 볼 수 있는 영화도 간간이 등장한다. 다른 독서 에세이에 비해 작품의 본문을 발췌한 분량이 비교적 많다는 게 장점이면 장점이고, 또 단점이면 단점이다.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지식 자랑만 하다 결국은 읽는 이로 하여금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무지막지한 독서 편력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본문과 잘 어울리는 사진들은 인기 여행산문집 「끌림」의 저자 이병률씨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마지막으로 정씨가 이야기하는 침대와 책의 공통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기 어려우며, 특별한 사람에게만 빌려주고 싶으며, 화려한 커버를 두르고 있더라도 진가는 내용에서 드러난다는 것. 때론 잠을 부르고, 때론 잠을 쫓는다는 점도 닮아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11.16 23:02

[책의 향기] 무과 홍패 - 1만명 넘는 과거급제자를 뽑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조선 후기에 무과시험이 극도로 부패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다섯가지를 지적하여 이를 5난(亂)으로 부르고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만과(萬科)도 그 중 하나이다. 만과는 글자 그대로 만명이나 되는 많은 급제자를 뽑았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무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림에 보이는 무과 합격증서 즉 무과 홍패의 주인공 정시룡은 숙종 2년(1676)의 무과에 응시하여 병과 10,305인의 성적으로 급제하였는데, 이 때 선발된 인원은 자그마치 18,251명이나 되었다. 병진만과(丙辰萬科)로 불리는 이 시험은 조선조에서 가장 많은 급제자를 배출한 과거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선발하다 보니 그 시험이 제대로 실시될 리가 만무하였다.무과시험과목에는 원래 10기(技) 1강(講), 즉 10 종목의 무기(武技)와 강서(講書)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항상 다 실시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관료의 수급과는 관계없이 경축행사의 하나로서, 혹은 민심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실시되었던 임시과거에서는 한 두 가지 과목으로만 시험을 치뤘다. 심한 경우 화살 열 발을 쏴서 한 번이라도 맞히면 급제하였다. 위 숙종대의 과거가 바로 그러한 시험이었다. 심지어 정부에서 그 명단조차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을 정도였다. 따라서 그 무과급제자들이 벼슬의 기회를 얻는 일은 극히 어려웠다. 다행히도 정시룡은 중군(中軍)을 거쳐 전선대장(戰船代將)으로 승진하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벼슬길이 막힌 채로 헛되이 늙어갈 뿐이었다. 다산이 말한 5난 가운데 공로(空老)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대부분이 지방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서울 권세가의 자제들은 설령 만과 출신자라 하더라도 즉각 임용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승진의 길을 밟아서 10년이 못가서 한 도의 병사(兵使)나 수사(水使)로 출세하였지만, 시골 출신은 벼슬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돈없고 빽없는 설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서울 출신의 이같은 과거 독점은 무과는 물론 문과에서도 광범하게 일어났다. 특히 지방에서 1차시험을 치루지 않고 서울에서 갑작스럽게 열리는 임시과거에서 그런 현상이 더 심하였다. 그런데 무과는 문과와는 달리 정규적인 식년시에서조차 서울 출신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였다. 다산은 그 이유를 격축(擊逐)에서 찾고 있다. 무과시험은 그 특성상 서북지방의 굳세고 날랜 무사들과 영호남의 기재(奇才)들이 좋은 점수를 얻기 마련이었으며, 반대로 서울의 권세있는 장수 집안의 자제들은 호의호식하며 귀하게 자라난 약체들이어서 이들 지방출신과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들 세가의 자제들은 폭력배를 동원하여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응시자들을 호젓한 골목이나 주가(酒家)에서 싸움을 걸어 때려 눕혀 관절을 부수고 병신으로 만들어버렸다. 모처럼 서울까지 올라왔다가 결국은 시험도 못보고 불구의 몸이 되어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런 낭패가 또 어디 있겠는가. 5난의 또다른 하나인 격축은 이렇게 폭력으로 지방응시자들을 쳐몰아낸다는 뜻이었으니, 조선 후기의 과거 운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유호석 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11.02 23:02

[책의 향기] 자본주의엔 '삶의 윤리'가 있다 - 김정현 교수

“정신이 없는 전문가, 가슴없는 향락자: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전에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지성사에서 최고의 분석을 한 독일의 사회사상가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영혼이 화석화되고 가슴이 황량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삶에 대한 성찰이나 고뇌가 없는 지식기능인들이 늘어가고 심미적 감성이 없는 향락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 자본주의란 진정 무엇이며, 과연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인간성을 향상시키고 있는지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란 어떤 정신에서 탄생된 것일까? 자본주의에는 과연 윤리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가장 명철하게 대답을 주는 명저가 바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이 책은 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금욕주의의 상관성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그렇게 획득한 재화를 마음대로 소비하며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금전욕을 충족시키고 가장 효율적으로 이를 소비하는 것이 과연 자본주의일까? 베버는 화폐취득을 할 때 자기 이익추구만을 추구하는 파렴치 현상은 바로 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처진 나라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금전욕에 거리낌없이 매달리는 것은 실은 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거리가 먼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이라고 고발한다.자본주의 정신은 이와 반대로 벼락부자의 과시, 불필요한 낭비나 권력의 자의적 사용을 경계하는 금욕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다. 경제생활에서 새로운 정신을 관철시키는데 결정적 전환을 이룬 사람들은 무모하고 파렴치한 투기업자나 경제적 모험가들 또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대체로 엄격한 시민적 관점과 ‘원칙’을 갖고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특히 ‘공정하고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에는 경제적 이윤추구가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의 삶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금욕주의적 윤리적 태도가 함장되어 있다.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이 직업적으로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려는 정신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거짓과 사기, 책략과 속임수를 통해 정당하지 못하게 돈을 벌고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는 가장 반(反)자본주의 정신인 것이다. 그는 세속적 일상적 노동이 곧 종교적 의무라는 개신교의 정신에서 직업개념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즉 세속적 직업노동은 바로 화폐만을 취득하려는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이웃 사랑의 외적 표현이라는 종교적 맥락을 지니고 있기에, 그로부터 얻어지는 재화 역시 근검, 절약, 저축, 정직 등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통해 운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직업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방식이며 금욕주의 정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그의 말은 소비와 낭비, 사치와 허영을 자본주의로 이해하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과 삶의 윤리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성찰적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11.02 23:02

[책의 향기] 토리, 게임 나라에서 탈출하다 등

△토리, 게임 나라에서 탈출하다 / 오윤헌 글 / 스콜라 / 7500원.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큰딸도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단다. 게이츠회장은 딸에게 하루 45분, 주말에는 하루 한 시간만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제한시켰다. 개인 컴퓨터를 보급시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장본인도 자녀의 컴퓨터 게임 중독엔 속수무책인 세상이다.컴퓨터 게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주인공 토리. 고심 끝에 아빠는 토리가 게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우스를 숨기지만 토리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마우스를 훔쳐 온다. 결국 염소 아저씨의 이상한 PC방에 빠져 게임밖에는 할 수 없는 공간에 갇히게 된다. 이 책은 게임 때문에 외톨이가 된 토리를 통해 게임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 준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게임하지 말라고 무작정 혼내기 전에 아이 스스로 게임을 조절할 수 있도록 의지를 키워주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 리틀 로스쿨 / 이재만 글 / 동아일보사 / 9800원박물관으로 체험학습 가던 종도. 파란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걸어가고 있다가 빨간불로 바뀌고 난 뒤 택시에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종도는 파란불이 깜박거릴 때 건너기 시작했다. 파란불이 깜박이는 것은 빨간불로 바뀔 수 있다는 뜻. 종도는 빨리 건너거나 일단 멈춰 설 의무가 있다. 물론 택시 운전사도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한 책임이 있다. 결국 종도 치료비가 10만 원이라면 택시 운전사는 종도에게 7만 원을 줘야 한다. 이 책은 이렇듯 아리송한 상황을 법률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소개했다. 학교나 학원에서 친구와 싸웠을 때, 사고가 났을 때, 아파트에서 일어난 분쟁, 악성댓글 등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일을 에피소드로 꾸몄다. 질문과 상황설명, 명료한 답으로 구성한 책이다. △ 옥수수가 익어가요 / 도로시 로즈 글 / 열린어린이 / 8000원.매일 먹고 자고 뛰놀기 좋아하는 티그레.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야 할 나이지만 매일 늦잠 자기 바쁜 열두 살 소년이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늦잠을 잤다.그러던 어느 날 혼자 숲으로 나무를 베러 갔던 아버지는 나무에 깔려 다리를 다치게 된다. 주술사는 옥수수 추수 때까지 낫지 않을 거란 이야기를 전한다. 이에 가족들을 위해 혼자 힘으로 옥수수 밭을 일구기로 결심한 티그레. 그는 밭을 일구며 오랜 세월 전해 오는 마야 인들의 지혜를 통해 자연의 섭리와 신의 뜻을 깨달아 간다. 뉴베리 영예상 수상작.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야 인들의 모습을 대담하고 꾸밈없이 진솔하게 담아냈다. 옥수수 밭을 일구며 성장해 가는 마야 소년의 용기와 지혜를 그려낸 성장동화다. △ 스미스 선생님의 이상한 그림책 / 마이클 갈랜드 글 /은나팔 / 9500원. 하늘로 치솟은 빨간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보다 더 빨갛고 더 뾰족이 올라간 안경테. 학교에 새로 오신 스미스 선생님.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선생님 같지 않아!” 하지만 스미스 선생이 책을 읽어주는 순간, 아이들은 온통 책속으로 모인다. 아이들의 눈동자와 귓바퀴와 조잘거리던 입술과 마음은 블랙홀로 빠져들듯 책속으로 쏠리기 때문. 그러자 눈과 입으로만 만났던 주인공들이 아이들 곁으로 하나씩 튀어나온다. 이들은 바로 ‘에버애프터’. 널리 읽혀진 동화 속 주인공들이다. 아이들은 이들의 존재에 놀라기는커녕 즐거워하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 반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 걸고 상상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해 보도록 기획됐다. 낯선 상상의 세계를 꿈꾸며 스스로 체험하고픈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 주말
  • 이화정
  • 2007.11.02 23:02

[책의 향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부키 펴냄/1만4000원‘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괘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등을 통해 경제 현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한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보통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책이다.책 속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보호주의로 성공 했으면서도 개발도산국에는 자유무역·자유시장을 강요하는 선진국들을 일컫는다.저자는 자신의 아들을 미래의 이야기에 가상으로 등장 시켜 아이를 과잉보호 하지 않고 일찍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세계화’와 ‘개방’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쥬의적 조류에 대한 역설.우리 시대의 각종 현안에 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세계화’ ‘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키울 수 있다.경제학 전반에 대한 부담없는 교양 경제서.△ 포르토벨로의 마녀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두빈 옮김/문학동네펴냄/1만1000원「연금술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의 2007년 신작이다.책은 작가가 우리 시대의 여성들에게 바치는 찬가이자 송가. '아테네'라는 여자의 행적을 통해 그동안 여성을 성녀와 마녀, 혹은 온순한 여자와 길들일 수 없는 여자로 나누었던 이분법을 넘어서서, 숨겨진 '신으로서의 여성'을 탐구하게 된다.에로스와 아가페, 관능과 욕망, 모성과 인류애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인간이 지닌 가장 큰 힘의 근원인 사랑을 말한다. 여러 관찰자들을 등장시켜 한 사건과 같은 인물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보여주는 구성이 색다르다.지금까지 작가가 써온 모든 소설 중에서 가장 담대하게, 가장 멀리 나아갔으며 소설가로서 장인적 힘을 극명하고 뜨겁게, 가장 감동적으로 드러냈다는 평.

  • 주말
  • 이지연
  • 2007.11.02 23:02

[책의 향기] 우리 시대 명인ㆍ명창들과의 진솔한 만남

예술가의 인생은 흔히 ‘길’에 비유된다. 흔들림없이 한 길만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고집스러운 집념이 있어야 하며, 또 그들이 걸어온 길이야 말로 전통예술의 맥을 잇는 후배들이 쫓아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우리네 아름다움을 지켜오고 있는 명인들. 한국국악협회가 해마다 10명의 명인들을 선정, 그들의 삶과 예술을 집중조명해 온 「명인에게 길을 묻다」(민속원) 3편이 발간됐다. 2005년과 2006년 1편과 2편에 이은 시리즈 최종편이다. 3편에는 이양교(중요무형문화재 41호 가사 예능보유자), 이홍구(40호 학연화대합설무 예능보유자), 정철호(5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이영희(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이은관(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금화(82호 서해안풍어제 예능보유자), 신영희(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 후보), 조창훈(20호 대금정악 이수자), 정인삼(한국민속촌 농악 단장), 최경만씨(부여충남국악단 예술감독)가 초대됐다. 지난 10월 한국국악협회가 주최하는 ‘제27회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농익은 무대를 펼쳐냈던 명인들로, 오직 실력만으로 선정된 이들이다. 1편과 2편에는 강선영(태평무), 이매방(승무), 정재국(피리정악), 김호성(정가), 성창순(판소리), 조통달(판소리), 이생강(대금산조), 김영재(거문고 산조), 이은주(경기민요), 김청만(판소리고법), 안숙선(가야금병창), 강정숙(가야금병창), 이동규(남창가곡), 박용호(대금정악), 황용주(선소리 산타령), 이춘희(경기민요), 남해성(판소리), 김일구(판소리), 이애주(승무), 정재만씨(살풀이)가 집중조명됐다. 「명인에게 길을 묻다」는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아트북. 명인들의 삶을 다룬 수준 높은 글과 기존 전통문화 관련 사진들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사진으로 구성됐다. 특히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자들이 명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써내려간 글은 지난한 삶을 살아온 예술가의 구술생애사로 귀한 자료다. 명인들의 애장품을 만나는 재미도 크다.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은 “이 책에 소개된 명인들은 예술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으로 오랫동안 한 길만을 걸어온 전통예술의 큰 어른들”이라며 “아트북이 우리 음악의 오늘을 만들어 온 여러 명인들의 공헌에 작게나마 보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주말
  • 도휘정
  • 2007.11.02 23:02

[책의 향기] 프린세스 - 공주가 되는 법 등

△ 프린세스 - 공주가 되는 법 / 케이틀린 매튜스 글 / 삼성당 / 2만2000원 '공손하라. 다정다감하라. 정중하라. 감사하라…'그림동화 '거위치기 공주'의 페틀 공주가 제시한 '공주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다. '마녀의 마법을 피하는 법' 역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메시지. 잘 모르면서 덥석 약속하지 말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앞에서 가진 게 많다고 자랑하거나 으스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은 여자아이들에게 영원한 로망이자 애증의 대상인 공주가 되는 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속 내용은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싶을 만큼 묵직하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내면을 가꾸라"는 것이 책의 일관된 주제. 작가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비결은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이라며 "자기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고약한 말에 의존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아델과 사이먼 /바바라 매클린톡 글 / 베틀북 /9000원."사이먼, 제발 오늘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마." "알았어, 누나."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호기심 많은 아이 사이먼과 그 사이먼 때문에 속 타는 다정다감한 누나 아델이 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델과 사이먼'은 지난 2006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림이 가장 뛰어난 책. 펜으로 그린 스케치와 부드러운 수채화 색감의 그림은 "마치 칼데콧(19세기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미국도서관협회가 그 이름을 따 매년 최고의 그림책을 선정해 칼데콧상을 준다)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이 그림책의 매력은 '숨은 그림 찾기'. 근사한 파리 풍경 곳곳에 사이먼이 잃어버린 물건들이 숨어 있다. 사이먼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돼지책 / 앤서니 브라운 글 / 웅진닷컴 / 7000원맞벌이 부부로 학생인 두 아들을 둔 피곳 부인. 두 아들은 식탁에 앉아 "아침 빨리 주세요" 라고 외칠 뿐 꼼짝도 않는다. 설거지, 아이들 침대정리, 청소까지 모두 끝낸 후 그녀가 향하는 곳은 직장. 하지만 퇴근 후 피곤한 일상은 마찬가지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친 피곳 부인은 어느 날 "너희들은 돼지야" 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가 버린다. 그러자 피곳씨와 두 아들, 심지어 벽지의 꽃무늬, 액자 속의 그림, 소파의 무늬까지도 모두 돼지로 변한다. 이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가정에서의 남녀간 불평등, 어머니의 가출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사물이 돼지로 변하는 초현실적인 상황설정, 등장인물의 심리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의 색깔과 크기 등은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유쾌함을 선사한다. △ 청소부 곰팡이와 여행하다 (집요한 과학씨) / 오치 노리코 글 / 웅진주니어 / 9000원"어, 곰팡이가 피었잖아! 더러워!" 곰팡이가 핀 빵을 보면서 대부분의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바로 그때 곰팡이 쿠가 등장한다. 아이는 쿠와의 대화를 통해 더럽고 냄새도 나는데다 몸에도 해로운 것으로 알고 있던 곰팡이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다. 몸에 해롭지 않은 곰팡이도 있고, 핑크, 보라, 빨간빛을 띄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또한 곰팡이가 음식을 만들고, 약을 만들 때도 쓰일 뿐 아니라, 생물을 썩게 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곰팡이는 또 해충을 없애거나, 식물의 뿌리에 살면서 식물과 양분을 교환하기도 한다. 곰팡이 쿠의 다투면서 나누는 대화는 아이의 마음처럼 솔직하게 다가오면서 곰팡이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이 책은 한꺼번에 많은 과학적 사실을 쏟아내지 않는다. 다만 이제껏 '나와는 별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징그러운 곰팡이가 아름답게 보이는 색다른 매력이 담긴 책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10.26 23:02

[책의 향기]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 등

△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사라 본지오르니 지음, 안진환 옮김/엘도라도 펴냄/1만3000원‘1년간의 중국산 보이콧을 통한 한 가족의 세계화 체험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경제지 프리랜서 기자 사라 본지오르니의 가족이 직접 체험한 기록이다. ‘차이나 프리’를 선언한 후 저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표기된 장난감 앞에서 생떼를 쓰는 어린 아들을 지켜보며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난관에 적잖이 당황한다. 평범한 미국 가족이 중국산 보이콧을 벌이며 겪게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위력과 글로벌 경제의 영향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중국산 제품들에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 가난한 밥상이원종 지음/시공사 펴냄/1만원현대인은 ‘배부른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생활이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은 과거와 다른 잘못된 식습관과 흡연, 음주, 스트레스, 화학 물질 섭취 등에서 기인한 것. 올바른 영양군을 가지고 있던 선조들의 식단을 활용해 아침, 점심, 저녁별 식품으로 구분하고 밥상 차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요리 레시피 등을 함께 담았다. 저자는 현재 강릉대 식품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원종. 16년 동안 농가에 살면서 우리 조상들이 먹어왔던 토종식품들을 스스로 키우며 가난한 밥상 차리기를 실천하고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10.26 23:02

[책의 향기] 혁명가 정여립과 선비들의 전쟁 재조명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역사의 격랑에 과감히 뛰어든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연 주역들이었고, 역사를 진보하게 만든 힘의 원천이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잊혀졌던 광주의 기억을 되살렸고, 전북에 터를 잡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문화사학자 신정일씨가 정여립과 죽어간 1000명의 선비들을 귀환시켰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다산초당).조선 역사상 신원되지 못한 천재가 두 명 있다고 한다. 허균과 정여립. 당대 문사철을 고루 갖춘 아름다운 선비라 불렸으면서도 족보에서조차 지워져야 했던 비극적 인물. 역사는 그들을 왜곡해 왔다. 책에 실린 조경남의 발언을 빌리자면, 정여립은 ‘전주 사람으로 명망이 일찍부터 드러나 세상을 뒤엎었다. 그는 조정에서 물러나와 집에 있으면서 고매하고 자중해 관직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며 나라에서 불러도 가지 않았다. 선비들은 달려가서 한번이라도 그를 만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정여립은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 있으면서 서인에 속했으나 나중에는 동인에 가담해 이이와 성혼을 비판했다. 이로 인해 왕의 미움을 사고 관직에서 물러났지만, 낙향한 뒤에도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이후 진안군 죽도에 서실을 세우고 사람들을 규합해 대동계를 조직하고 무력을 길렀으며, 1587년에는 대동계를 이끌고 손죽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589년 정여립 일당이 한양으로 진격해 반란을 일으킨다는 고발에 관련자들이 차례로 잡혀가자 정여립은 자살했다. 정여립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되는 등 동인의 세력은 크게 약화됐고, 이를 ‘기축옥사’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라도는 반역땅이라 불리게 됐고, 이후 호남인들의 등용이 제한됐다. 정여립에 대해서는 ‘이씨는 망하고 정씨는 흥한다’는 「정감록」의 참설을 퍼뜨려 왕조를 전복시키려 한 인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왕권체제하에서 용납될 수 없는 혁신적 사상을 품은 사상가로 서인과 동인 사이 당쟁의 희생자로 보기도 한다. 책은 제1부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과 제2부 ‘비망록-기축옥사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로 구성됐다. 1부는 정여립을 중심으로 조대중과 김빙, 서산대사와 사명당, 노수신과 백유양, 이이와 성혼, 유성룡과 이항복, 정철과 최영경, 송익필과 이발, 정언신과 정언지, 이산해와 조헌, 박순과 정개청을 조명했다. 2부 비방록에는 ‘실패한 혁명인가 억울한 옥사인가’ ‘논쟁의 불꽃이 튀다’ ‘반역의 고향에 관한 이야기들’ ‘아름다운 꿈, 대동’ 등 기축옥사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이 정리됐다.문화사학자 신정일은 1985년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들을 펼쳤다. 대동사상에 관심을 갖게돼 정여립 역모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 그는 하루 16시간씩 책을 읽으며 수년간 고증 끝에 이 책을 탈고했다고 한다. 혁명의 성패는 결국 때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반만년 한국사에서 기회이자 위기였던 16세기에 ‘기축옥사’가 일어남으로써 그 역사적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 주말
  • 도휘정
  • 2007.10.26 23:02

[책의 향기] 이용악을 읽던 그 겨울 밤 - 김용택 시인

캄캄한 겨울밤 밖에는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지 이 따끔 창호지 문에 눈발이 부딪치는 바스락 소리가 들리곤 했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책을 읽기도 하고 시를 끄적거리기도 하다가 소변이 마려워 방문을 열면 불빛 안으로 눈들이 우우 몰려왔다. 툇마루에 서서 오줌을 누면 눈송이들이 발등과 얼굴에 와서 차게 녹았다. 으으 몸서리를 치며 얼른 방문을 닫고 들어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다시 보던 책을 보거나 그냥 누워 눈 위에 눈이 내리는 소리에 마음을 주기도 했다. 새벽이 오면 아버님께서 일어 나셔서 소죽을 끓이고 방이 따뜻해지면 나는 천길 만길 깊은 잠을 잤다. 죽음 같은 편안한 잠이었다. 이용악을 읽던 어느 겨울날밤이었다. 80년대 초반 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어느 날 얇고 볼 품 없는 복사 본 시집을 몇 권 가져왔다. 그 때 이용악, 백석, 오장환등의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았다. 나는 이용악의 시를 좋아 했다. 그의 시는 큰 산맥처럼 가락이 느리고 큰 파도처럼 부드럽고도 씩씩한 기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나이다운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함경도 사나이들의 느리면서도 든든한 그 무엇이 나를 기쁨에 넘치게 했다. 나는 이용악의 시들 중에서 <오랑캐꽃>, <죽음>, <전라도 가시내>, 등을 늘 가까이 두고 읽었다. 나중에는 기민사에서 해금 작가들의 시집들이 나왔다. 그리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이용악 전집이 나와서 그의 산문들도 읽게 되었다. <전라도 가시내>라는 시에서 나는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라는 구절을 참 좋아 한다. 이 구절은 이용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 한다. 이 구절은 크고 부드러운 파도 같은 가락과 숨 가쁜 산맥의 치달림이 숨어 있다. 나는 시에서의 생명은 가락이라고 생각한다. 가락이 없는 시는 맥없는 설명에 불과 하다. 이 구절은 말을 극도로 절제한 호흡의 흐름을 한껏 조절한 숨결이 느껴진다. 이용악의 첫 시집은 1938년에 나왔다. <낡은 집> 이었다. 모두 열다섯 편이었다. 요즘 같으면 한사람이 동인지에도 그만한 분량의 시를 발표 하는데 한권의 시집이 겨우 열다섯 편이라니, 그러나 한권의 시집으로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오륙 십 편 씩 묶어 낸 시집을 읽어도 어쩐지 성에 차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들이 지금 별 쓸데없는 생각으로 종이를 많이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너무 생각이 많아서 세상이 이리 험하고 어지럽고 편하지 못한 게 아닌지. 아무튼 그 작은 시집 <낡은 집>이라는 시집을 들고 있으면 어쩐지 초졸한 배부름과 구들 같이 따뜻한 행복감에 젖곤 한다. 이 시집 제목과 열다섯 편의 시와 꼬리말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욕심이 없는 시의 행복한 ‘집’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걸어 다니면서 시를 착상하고 싸구려 소주를 마시면서 시 구절을 다듬고 추운 이불 속 엎디어서 그것을 완성 했다고 한다. 그의 시에서는 고전적인 시인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나도 시를 늘 걸으면서 썼다. 강물을 따라 26여년을 걸어 다녔다. 물이 불면 징검다리를 맨발로 건너 발이 마를 때까지 강가에 않아 시를 메모했다가 밤이면 이불을 둘러쓰고 엎디어 글을 썼다. 밖이 추운 날은 하얗게 입김이 다 어렸다. 아무리 이불을 끌어다 덮어도 어깨가 춥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춥지 않았었다. 그런 시절, 혼자만 외롭던 시절이 나에게만 있었겠는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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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10.19 23:02

[책의 향기] 혼의존록(婚儀存錄) - 자신 혼례 준비하기

가을하면 떠올리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연령대 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겠지만 결혼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 연령대의 자식들 둔 사람들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결혼시즌‘일 것이다. 아울러 솔솔 나가는 축하금의 무게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가을의 언어이다.결혼, 흔히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두 집안이 만나는 것이라 해서 전통적으로 결혼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 왔던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큼의 폐단도 양산되고 있다. 예단을 가지고 행복해야 할 만남이 파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들을 장가보내려면 키가 몇 개여야 하고, 딸을 보내려면 얼마가 든다는 등 결혼식이 온통 ‘돈’의 문제로만 인식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낭만이 되어버리고 결혼식은 경제논리에 던져진 현실이 되어 버렸다. 어쨌든 혼인에 대한 고금의 차이는 명확하다. 요즘에 비한다면 옛날의 혼인은 도덕적인 면이 있다. 서로의 혼인 의사를 묻는 의혼(議婚), 혼인 날짜를 정하는 납채(納采), 예물을 보내는 납폐(納幣), 혼례를 올리는 친영(親迎)의 네 단계의 절차는 독립적 객체로서의 혼인 당사자 의견이 종종 무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강압으로 비쳐칠 수 있지만 혼인이 가지는 성스러움을 지킬 수 있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옛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혼인은 장례만큼은 아닐지라도 ‘돈’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씨 성을 가진 지방의 한 양반이 둘째 아들 재섭을 산동 대평에 살던 홍씨 가문의 딸과 결혼하면서 작성한 문서를 보면, 지방의 양반이 아들 혼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고,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를 알 수 있다.왕재섭의 결혼을 위해 신부측에 건내 줄 혼수물목을 적어놓은 혼의존록(婚儀存錄)을 보면, 혼수물목과 수량 및 구입 비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옷장을 포함해서 혼례에 사용할 각종 의복과 거울, 가위, 면사, 목면 등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이 물목에는 당시 여러 정황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혼의(婚衣) 아래에 ‘장차 납폐로 쓰기 위해 미리 재봉을 해서 혼인시 착용하도록 먼저 보낸다’라고 쓰여 있으며, 옥양목 상의 아래에는 ‘질녀가 보내준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물목은 아들을 혼인시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과 소요 비용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 물목에는 납폐로 보낼 물건들도 포함되어 있고, 혼례시에 사용될 것들도 함께 들어가 있다. 요즘처럼 축의금 내역만을 달랑 남겨 놓는 혼례식 기록들에 비한다면 무척이나 자세한 부분들이다. 전통혼례에는 많은 문서들이 작성된다. 혼인의사를 확인하는 허혼문서와 신랑집에서 신랑의 사주단자 동봉해서 혼례일을 청하는 납채문, 신부댁에서 혼인의 날짜를 정해 보내는 연길, 신랑집에서 예단과 함께 보내는 혼서지 등이 그것이다. 청첩장 한통만이 남는 현대 결혼식에 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굳이 한문일 필요도 없이 한글로 정중하게 혼인을 청하고 허락하고 혼례식에 이르는 기록들이 더욱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공고히 해 주지는 않을까?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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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10.19 23:02

[책의 향기] 힘들어도 괜찮아 등

△돌 / 강정규 글 / 계수나무 / 9500원.작가의 처녀작이면서 가장 아끼는 작품인 '돌'.누구에게나 한 번 다가오는 첫사랑.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과 설렘, 은근함의 아름다운 감정이 책 속에 잔잔하게 담겨져 있다.전쟁을 피해 황해도 옹진에서 피란 온 소년.그는 함께 살게 된 집의 소녀에게 마음을 둔다. 추운 겨울 날씨에 얇은 치마저고리만 입은 그녀를 보며 가슴아파하던 그는 그녀를 위해 돌멩이를 달군다. 소년이 건넨 돌로 추위를 녹이던 소녀는 어려운 집안 형편 으로 남의 집으로 보내지게 되고, 그녀의 책상 위 바구니 속에는 그동안 그가 구워 준 돌들이 담겨있다. 소년은 눈 내리는 들판을 눈물을 흘리며 달린다.윤문영 화가에 의해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 자신도 그림 속의 소녀를 보며 가슴까지 먹먹했다고 했을 정도다. △ 힘들어도 괜찮아 / 오카 슈조 글 / 웅진주니어 / 8000원. "난 비로소 알았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걸….모두 괴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야"진행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특수학교 6학년 소년 시게루. 그를 통해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이야기다. 저자는 20여 년 동안 장애아이들 곁을 지켜온 특수학교 교사. 이 작품 역시 그가 만났던 실제 인물이 모델이다. 장애를 안고 살았던 그 소년은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장애아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어줍잖은 동정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각자 자신의 삶에서 어떤 가치와 희망을 찾아야 할지를 돌아보게 한다. 시게루는 "변하지 않는 것 중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즐기면서 살고 싶다고 외친다.△ 보이지 않는 질서, 시간 / 실비 보시에 글 / 푸른숲 / 1만원 시험을 앞두고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 보고 싶은 드라마 방영을 기다릴 때 한없이 더디게 흐르는 것. 그건 바로 시간이다. 인류가 언제부터 시간을 따졌고, 시계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또 시계가 없을 때는 어떻게 지냈을까.사서교사 출신인 작가는 이런 궁금증을 천체의 움직임, 시계, 달력 등으로 나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일 주일이 7일이 된 것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에 의해서다. 초승달에서 다시 초승달이 되기까지 28일. 이것을 4등분 해 '주(週)'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달의 모양이 초승달에서 반달, 반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는 현상과 거의 일치했다는 설명이다.이 책은 '시간의 시작과 끝' '시간과 공간의 관계' 등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읽기는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권할 만 하다. △ 아빠 좀 빌려 주세요 / 이규희 글 / 푸른책들 펴냄 / 8500원'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하는 이들의 모임'에 참가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법'에 관한 책도 넘쳐 난다. 헌데 '좋은 자녀가 되는 법'을 다룬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정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꾸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자녀 되게 돕는 것이 부모이듯, 부모를 부모 되게 돕는 것은 자녀다. '좋은 아빠'에 대한 고민은 아빠뿐만 아니라 아빠를 둔 모든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이 책에는 불쌍한 아빠, 창피한 아빠, 자랑스러운 아빠 등 아빠들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좋은 아빠를 만드는 씩씩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이 나온다. 책을 읽는 동안 사랑하고 아끼는 각자의 아빠, 자신이 믿고 사랑해야 할 당신들의 아버지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10.19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