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남편 그리움 계절따라 더욱 커져
신랑신부 서로 만나 여군동침(與君同寢) 하올 적에
섬섬옥수(纖纖玉手) 마주잡고 사랑으로 노닐 적에
옥안(玉顔)을 상대하니 여운간지(如雲間之) 명월(明月)이라
마음이 호탕(浩蕩)하여 다야담화(多夜談話) 즐길 적에
주순(朱脣)을 반개(半開)하니 약수중지(弱水中之) 연화(蓮花)로다
은은한 둘의 정(情)을 게 뉘라서 다 알소냐
동영(東影)의 비친 달이 서창(西窓)에 다지도록
연연(戀戀)한 둘의 심사 파정(罷情)을 못 다하고
신혼 초야인데도 신랑 신부의 사랑이 무르녹아 내린다. 마치 고려속요 ‘만전춘별사’의 정조와 흡사하다. 동쪽 창가에 비친 달이 긴 밤을 지나 서창에 다지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다할 수 없음이 얼음 위에 댓잎자리를 보아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얼어 죽을망정 이 밤이 더디 새었으면 좋겠다는 ‘만전춘별사’ 속요의 정조와도 동질적이다. 옥 같은 얼굴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밝은 달처럼 예쁘고, 붉은 입술 방긋이 웃는 모습은 신선이 노닐었다던 중국 서부의 전설적인 강물 약수(弱水)에 떠 있는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용사(用事)하였다.
그러나 다른 상사가나 여탄(女嘆)류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도 육정적인 표현들이 많다. ‘원앙금침 잔 이불이 운우지정 깊이 든 잠’이라 표현된 ‘망부가’의 경우를 보더라도 운우지정의 ‘운우(雲雨)’는 대담하고도 육정적인 성행위의 상징이며, ‘금침에 누었으니 이성지합 분명하다/ 부끄러움 멀어지고 인정은 깊어온다’라는 ‘여자자탄가’도 부끄러움 멀어지고 인정은 깊어온다라는 초야정사 장면이 혼인 첫날 치고는 상당히 과장적이고도 대담한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혼례의 초야정사가 끝나면 으레 시가(媤家)의 신행길이 이어진다. 이날이 가까워 오면 시집살이의 두려움과 초조함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게 규방가사의 공통적인 성격이겠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정조를 찾아 볼 수가 없다. 두려움이나 초조함보다 오히려 시댁 형제간 우애와 비복(婢僕)을 다스리는데 있어 인의가 제일임을 교훈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행길이야 말로 응당 여자가 행해야 할 부창부수의 어려운 길일 터인데 오히려 즐거움과 행복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도 허구적이다. 더구나 시집은 시집살이의 고통이나 한이 있는 게 아니라, 부부간의 좋은 금실로 밤낮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려지고 있다. 이는 남녀의 결합으로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 됨을 강조하면 할수록 망부(亡夫)의 슬픔이 더욱 커지는 그런 대조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천지조화로 이뤄진 혼인이었지만 밤낮없이 즐거웠던 신혼의 행복이 갑작스런 남편의 불치의 득병으로 이어져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다. 부부간의 이 같은 깊은 사랑을 천지가 미워한 것인가, 아니면 귀신이 작해(作害)한 것인지, 부부는 천만년 같이 살아갈 것이라 믿어왔는데 백약이 무효라고 한탄을 한다.
이렇듯이 짚은 정을 천지가 미워한가
귀신이 작해(作害)한지 어여쁠사 우리낭군
천만세나 믿었더니 우연히 득병(得病)하야
백약이 무효로다 의약이 분주(奔走)하야
아무리 치료하되 살릴 길이 전혀 없다
(중략)
금풍(琴風)이 소슬(蕭瑟)하야 오동잎은 떨어지고
오곡이 성실(成實)하야 사계(梭鷄)는 슬피울제
동방의 실솔성은 나의 수심(愁心) 자아내고
추야장(秋夜長) 긴긴 밤에 어찌 아니 한심할까
가을이 돌아가도 우리임은 아니 온다
그렁저렁 동절(冬節)이 돌아오니 백설(白雪)이
분분(紛紛)하니 만건곤(滿乾坤)이라
궁항(窮巷) 적막(寂寞)의 비금(飛禽)주수(走獸)는 깊이 들고
산천 초목(山川草木)이 백발(白髮) 세계(世界)로다
고칠 수 없는 병을 얻어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가눌 길 없는 슬픔의 독수공방은 이 상사별곡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망부의 한과 독수공방의 슬픔의 단락이 이 가사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극적 전환을 이루기도 한다.
독수공방의 한과 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 등장하는 소재는 예나 지금이나 바람, 비, 오동잎, 베짱이와 귀뚜라미들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울어대는 이런 풀벌레들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상사의 그리움의 정을 더 깊게 만드는 관례적인 소재들이다. 그리고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정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더욱 상승되어 나타난다. 동지섣달 긴긴 밤이면 그리움에 비례하여 슬픔이 고조되기 마련이고 과세하기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봄이 오면 잎이 떨어진 나무마다 새잎이 돋아나고 다시 꽃이 피어 나비나 벌들이 날아들기 마련이지만, 쌍쌍이 나는 새들은 춘흥을 못 이기어 화류경(花柳景)을 즐긴다. 그런데 한번 간 우리임은 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이냐며 화자는 한탄하고 있다. 자연경물의 변화에 따라 더욱 임 생각이 간절히 묘사되는 건 속요 ‘동동(動動)’과 같은 달거리 노래들처럼 우리 고전시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다.
봄이 가고 사오월이 오면 녹음이 산야에 가득 펼쳐지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쌍쌍이 날아들어 환호성을 즐기는데 한번 간 우리임은 어찌하여 날 찾거나 부를 줄 모르는 것인가 한탄을 한다. 그러면서 먼 산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고 긴 한숨 자진 강탄하여 끝내 잊을 수 없다고 절절히 하소연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 ‘상사별곡’은 1897년쯤 창작된 규방가사로 거의 호남에 분포되지 않았다는 종래의 관점에서 벗어나 홍규권장가, 치산가와 더불어 전북지방의 규방가사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전라방언인 ‘ㄱ’의 ‘ㅈ’화인 구개음화 현상이 뚜렷하고, ‘ㅎ’의 음운변화가 표준음 ‘ㅋ’이 아닌 ‘ㅅ’이나 ‘ㅆ’으로 일어났다는 점과 ‘네 목궁기로 피를 내어 그놈 먹고 살아나니’와 같이 지시대명사 ‘그놈’ 등의 용법을 보더라도 상사별곡이 전라도에서 창작되고 수용, 향유되었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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