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남원 사대부 후손 / 화답시 등 270편 담아/ 진안 마령에 부부시비도
영조 45년(1769) 10월 13일 동년월일 날에 남원 서봉방(현 향교동)에서 태어난 청동옥녀(靑童玉女)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가 그들 나이 18세가 되던 해인 정조 10년(1786)에 결혼을 하였다. 삼의당 김씨는 연산군 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일로 영남학파들이 모조리 사형을 당한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관 김일손의 11대손인 김인혁의 딸이며, 담락당 하립(1769 - 1830)은 세종조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12대 손으로 두 집안 모두 몰락한 사대부 집안의 후예다.
〈김삼의당시문집(金三宜堂詩文集)〉은 하립이 신혼 초야 서로 주고받은 화답시와 2년 후 20세 때 과거를 위해 상경한 뒤 10년간의 긴 이별과 33세 해우할 때까지 부부의 그리움과 고운 정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253편의 한시와 서간문 22여 편이 담겨져 있다. 남원이라는 동일한 공간적 배경을 지닌 춘향전과 다를 바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시화(詩話)이며, 매창과 쌍벽을 이룬 이 고장의 여성문학이 아닐 수 없다.
담락당(1769 - 1830)은 ‘우리 서로 만나 가연 맺으니 광한루의 신선이네/ 오늘 밤 우리가 부부되니 옛 인연 분명 하네요/ 남녀의 결합은 본디 하늘의 뜻인데/ 공연히 세간의 중매만 분주 했구려’라 초야의 밤을 노래하자, 삼의당도 ‘열여덟 신선 낭군 18세 신선낭자/ 동방화촉 밝히니 좋고도 좋은 인연/ 동년 동월 같은 동네 태어나 살다가/ 이 밤에야 서로 만남이 어찌 우연이리까’라 화답하였다. 담락당이 신혼 초에 신부 김삼의당과 주고받은 이 화답시는 자신들이 마치 춘향과 이도령이 현세에 다시 환생된 것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이 은근히 드러난다.
삼의당 김씨(1769 - 1823)가 자서한 서문을 보면 ‘난 호남의 우매한 부녀자로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나 경사(經史)를 넓게 알지 못하고 언문으로 소학을 읽어 제가(諸家)들의 시문을 보았다’라 했으니 스스로 한문을 배우고 한시를 익혔음을 알 수 있다. 결혼을 한 이후 이들 부부는 춘향과 이도령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의 세월을 보내며 그들이 주고받은 사랑과 그리움을 한시에 고이 담아내었다. 거의 4언 시경시체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때론 3언과 5언, 7언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정체시의 규격을 벗어난 새로운 시격을 이루어냈다. 그리하여 마치 언문일치의 국문을 쓰듯 사랑과 이별, 슬픔, 자연의 경물들을 물 흐르듯 유려하게 엮어낸 〈김삼의당시문집〉은 부안의 매창이 남긴 시조나 한시와 더불어 조선 중기 전라문학의 보고라 할 만하다.
1982년 오초(吾超) 황안웅 선생이 마이산 금당사에서 원문에 담긴 사랑의 시정을 오롯하게 시조형에 담아 다시 엮어내니 이들 부부의 작품이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이 한 봄 고운 꽃에 달빛마저 드리우니/ 달빛에 비친 꽃이 그 더욱 고웁고녀/ 곱고도 또 고운 빛이 우리 집에 비치오’ 라며 담락당이 읊어내자, ‘밝은 달 고운 빛이 서로 엉겨 가득한데/ 꽃 같고 달도 같은 우리임을 마주 대하노니/ 그 뉘 세간영욕이 이보다 더하리오’라고 신부 삼의당이 서로를 달님과 꽃님이라며 곱고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화답하면서 한 생애를 살다간 담락당과 삼의당의 사랑과 진실이라고 하였다.
미당 서정주도 ‘삼의당 김씨는 때때로는 그 얼굴에 이뿐 분홍꽃빛도 잘 나타내는 미인이시기도 하였던 것 같은데, 〈시경〉 도요(桃夭)편의 그 왼 집안(宜其室家)과 가족(宜其家室)과 심부름꾼(宜其家人)에게 까지 세 가지로 다 얌전하고 의젓이 두루 좋은 삼의(三宜)의 미덕으로만 종생(終生)하셨다니 그 더욱 가찬(可讚)할 일이다’라 했다. 또한 ‘낭군(郎君)은 벼슬길에서도 낙제(落第)나 하고 궁거(窮居)하던 촌(村)선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사랑을 다해서 끝까지 그를 도와 깨끗한 집안을 이루어 내셨다니 참으로 공경해 모실만한 어른이시다. 주부(主婦)가 요로코롬 시인(詩人)노릇도 하기라면 세상의 가장(家長)들은 누구나 다 그 아내가 시인을 겸하기를 바라마지 않을 것 같다’고 찬(讚)하기도 했다.
정비석도 ‘부부 사이의 화락(和樂)함을 일컬어 금슬이 좋다고 하는데 의(誼)좋은 부부 사이를 두고 이런 말을 쓰는 뜻은 참으로 의좋은 부부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듯싶다’라 할 정도로 부부간 금슬 좋은 부부간 사랑의 서정시의 정화(精華)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초(吾超)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호남의 한 구석에서 그대로 묻힐 뻔한 200여 년 전의 금슬(琴瑟)을 다시 손질하여 고운 금슬의 소리를 재치 있는 솜씨로 재현시켜 놓았다는 김삼의당 시문집 번역 발간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립고 보고 싶어 괴로운데(相思苦 相思苦)
닭이 세 번 우니 새벽 오경이네(鷄三窓 夜五鼓)
맥맥이 잠 못 이뤄 원앙침 대하니(脈脈無眠對鴛鴦)
눈물이 나서 흐르네 비 내리듯이(淚如雨 淚如雨)
임 만나기 어려워 정말 어려워(待君難 待君難)
어느 때나 돌아와 임을 만날까(待君幾時還)
길고 짧은 정자 사이 사람그림자 어리어도(人影長亭短亭間)
저녁놀 지는데 임 오지 않고 임 만나기 참 어렵네(夕陽盡 君不來 待君難)
삼의당 김씨가 혼인한 2년 후 남편이 과거공부를 위해 남원을 떠나자, 서울로 올라간 낭군을 그리워하며 노래한 연가다.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을 ‘상사고(相思苦) 상사고’라 하고 ‘대군난(待君難) 대군난’이란 3언의 반복과 7언을 혼용한 파격은 이미 〈시칙〉이란 시론을 펼친 여암 신경준(1712 - 1781)의 실험적인 시창작 기법이었다. 이러한 3언의 반복법은 ‘그립고’ ‘보고파’라거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네’라는 순수 우리말의 간절하고 절절한 심사의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한시는 어려운 문자로 구속되고 제한된 서정의 표출방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언문일치적 작시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움에 잠 못 든 야삼경(夜三更)을 새벽닭이 우는 ‘계삼창(鷄三窓)’이라 하고, 보고 싶음으로 뜬 눈을 지새운 새벽 야오경(夜五更)을 북을 다섯 번 쳐서 새벽을 알리는 ‘야오고(夜五鼓)’라 그린 것도 삼의당 김씨 만의 특이한 시심과 시작법이다. 원앙침 베개에 의지하여 잠을 청해 보지만 오매불망 임을 그리는 마음에 잠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하염없는 눈물만 빗물처럼 흘러 내려 베개를 적시는 정경을 ‘누여우(淚如雨) 누여우’라 반복함으로써 그리움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절절하게 그려낸 서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적 정서는 부안의 매창이 서울로 떠나간 유희경에게 읊어 낸 시조 ‘이화우(梨花雨)’의 경지와도 같고, 이후 15년간이나 돌아오지 않는 임을 그리워하며 읊은 〈규중원(閨中怨)〉 ‘고운 뜰엔 배꽃 피고 두견새는 슬피 울어/ 달빛이 뜰에 가득 차니 더더욱 서러워지네/ 꿈에서라도 사랑코자 해도 잠은 오지 않고/ 매화 핀 창가에 기대서니 새벽 닭 우는 소리 들리네’를 노래하는 듯하다. 삼의당은 이 같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유려한 서정시와 서간문에 오롯이 담아내었고, 특히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정격시를 깨뜨리고 때론 3언과 5언, 7언과 함께 혼용하면서 마치 언문일치의 한글처럼 시를 읊조리듯 자유자제로 한시를 실험한 선각의 여류시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삼의당 김씨는 1801년 12월 남원을 떠나 진안 마령 방화리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1823년 5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 전원시인으로 살았다. 당시 조선사회는 허난설헌이나 황진이, 매창처럼 사대부가의 여인이나 기녀도 아닌 여염집의 평범한 여인이 한시를 지으며 이를 향유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하지만 논밭 일까지 마다 않고 해야 하는 어려운 농촌의 삶 속에서도 때때로 부부의 애절한 사랑과 계절에 따른 그리움을 한시 속에 이렇듯 유려하게 녹여낸 삼의당의 문학정신이 드높지 아니할 수 없다. 100여 년이 지난 1930년 광주에서 〈김삼의당 김부인 유고〉가 출간되어 세상에 드러났고, 1983년 이들 부부를 기리는 기념사업회에서 그들이 살다간 진안 마령에 부부시비를 세워 이들을 찾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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