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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역에서 출발하는 대륙횡단열차를 타려한다. 살아온 공간을 바퀴 굴리며온 동인에게 내주는 동안 철길이 되는 동인도 있다.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상처를 싣고 달린다. 먼 지평선역에 내려 쏠쏠하게 일어나는 입김을 서로에게 보여 줄 것이다. - 4집을 묶으면서 지평선시동인 일동. 지평선시동인(회장 김유석)이 네 번째 동인집 <줄노트에 대한 기억>(리토피아)을 펴냈다. 지평선시동인은 김제 지평선의 문화적 자산을 창조적인 정신문화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10년 꾸린 모임이다. 시집에는 기명숙, 김유석, 도혜숙, 배귀선, 안성덕, 문상봉, 이세영, 박윤근, 이강길, 이승훈, 이영종, 임백령, 전창옥, 장종권, 지연 시인이 내놓은 시 74편이 실렸다. 여기에 지평선을 주제로 동인 테마시 11편을 더했다. 동인집 제목 줄노트에 대한 기억은 지연 시인의 테마시. 네모 칸 밖으로 글자가 빠져나가면 어머니는 내 손들을 때렸지 연필을 쥘 때마다 손이 떨렸지 / 바져나가고 싶은 가와 나와 다 네모 안에 가둑기 위해 힘주어 썼던 음절 (하략). 지평선시동인은 그 동안 제1집 <소나기가 두들긴 달빛>, 제2집 <꽃의 고요를 핥아라>, 제3집 <민달팽이 한 마리가>를 출간, 삶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게 시로 옮겨왔다.
봄날 저녁이다. 호치민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나눠줄 때 옆에 앉은 베트남 여자는 편의점에서 샀을 법한 도시락을 꺼냈다.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은 할인티켓을 샀으리라. 그녀는 엄마나 아빠에게 드릴 용돈과 아이에게 줄 선물을 장만하느라 스스로에게 인색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저녁을 먹었을 시간. 나는 맵고 아린 봄동을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먹을 생각만으로 입맛을 다셨다. 저녁식사를 마친 승객들은 수면모드에 들어갔다. 이성이 잠들고 감성은 깨어나는 시간.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다. <더 풀문파티>의 주인공처럼, 겉으로는 바빴지만 실상은 건조하고 무료한 날들의 반복같은 직장생활이었다. 어디쯤 왔을까? <더 풀문파티>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소금인형처럼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접고 운명의 시간에 전부를 건 사람의 이야기다. 떠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비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저곳을 상상하고 여행을 떠난다. 얼마나 됐을까? 직장을 그만두면 복귀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휴가도 마음대로 못 쓰고 살았다. 직장에서 버틴다는 것은 조금씩 비겁함을 견디는 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겉과 속을 열두 번이라도 뒤바꿀 수 있는 사람들과 적당히 거짓을 교환하는 일. 어쩌면 여행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이렇게 버티다가는 돌처럼 굳어버릴 자신을 견딜 수 없을 때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벗어나는 것이다. 옆 좌석의 그녀는 도시락을 말끔히 비우고 신발을 벗는다. 비좁은 이코노미석 아래에서 원초적인 냄새가 올라왔다. 감상을 깨울 만큼 적나라하다. 실내등이 꺼진 시간. 밤 비행기의 안과 밖은 캄캄하다. 객실 안은 깊은 바다 속처럼 조용해졌다. <더 풀문파티>를 읽을 때 혼자였으나 외롭지 않았다. 따뜻한 밤바다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 같았다. 이윽고 나도 신발을 벗는다. 그녀와 나의 냄새는 어둠과 섞여 객실을 떠돌 것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흐르는 것 같다. 아픔을 가진 것들이 비로소 깨어나는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 놓고 울 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아래, 지상의 불빛들이 열도처럼 늘어서서 빛나고 있었다. 풀문파티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 박태건 시인은 199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스토리텔링과 관련한 글쓰기와 강의를 한다. 올 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었다.
사진가와 시인이 사람냄새 나는 장터 나들이에 나섰다. 이흥재 작가의 사진과 김용택안도현 시인의 글로 채워진 <장날>(시공사)에서는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을 통해 우리네 사람들의 녹슬지 않는 정을 전한다. 장날의 사진을 통해 나는 단순히 이미 지나가 버린 것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나와 우리 다음 세대의 아름다운 얼굴을 그려 보고 싶었다. 전북도립미술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으로 있는 이흥재 작가가 흑백의 장날 사진에 담긴 추억을 꺼내 보인다. 작가는 이번 사진집에서 옛것의 따스한 온기와 지금 것의 현재성이 함께 할 때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워지는 삶에 주목했다. 장날 아침이면 온 동네가 자에 내다팔 닭을 잡으려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곳. 중고등학교를 순창으로 다닌 김용택 시인은 갈담장의 추억을 소환했다. 버스도 자주 없어 집에서 시오리 되는 길을 걸어야 했던 그곳에서 머리 위에 머리만 내놓은 닭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 눈알만 띠룩거렸다. 혼담이 오고가고 무르익던 곳, 농사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 정치에 대한 정보가 밝혀지고 여론이 조성되던 곳, 김용택 시인이 본 갈담장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들끓는 장소였다. 살기가 힘들고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안도현 시인은 장터에 가보라 권한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그곳에서는 삶이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그 대신 들뜨고, 흥청거리고, 질퍽거릴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도시숲과 대형마트에 떠밀려 장터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1970년 발표된 신경림의 시 파장에 나오는 달이 환한 마찻길을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앞으로 또 30년이 흘러 우리가 장터라는 말을 잊어버린다면 그 모습을 기억해내기 위해 이 책을 열심히 뒤적거리게 될까. 정진국 미술평론가는 장터가 그립다며 눈을 비비는 사진가와 마찬가지로 그 장터 국수 맛이 여전하다며 입맛을 다시는 시인이 만났을 때 우리는 이렇듯 모처럼 즐거운 상상의 나들이에 오르게 된다며 시인과 사진가는 바로 여기, 지금, 오늘에도 여전한 것들이, 지난날의 고유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낄 때 느끼는 훈훈하고 끈끈한 정,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이 책은 잊혀져가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는 장날의 추억과 만남에 관한 것이다.
엄마 됨을 후회하고, 아이는 행복이지만 육아는 즐겁지 않은, 보통 엄마 신나리 작가가 전하는 솔직 공감 에세이 <엄마 되기의 민낯>이 출간됐다. 책 속에서 작가는 쉴 새 없이 자문한다. 24시간 아이와 단둘이 부대끼는 독박육아. 출퇴근도, 대가도 없이 이어지는 가사노동. 세간이 칭송하는 행복한 엄마로 살 수 있을까? 좋은 엄마는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걸까? <엄마 되기의 민낯>은 저자가 엄마에게 부여되는 어려움과 싸우며 탈출구를 찾아 헤맨 이야기이다. 독박육아의 원인과 문제점, 현재의 육아가 어째서 더 어려워졌는지, 엄마 됨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고찰하며, 엄마가 되어 변해 버린 것들 사이에서 나를 위해 투쟁한다. 작가는 화려한 치장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엄마가 되는 일, 엄마로 사는 일의 민낯을 여실히 공개한다. 삶이 마음 같지 않아 속상하고, 행복이 멀게 느껴지고, 엄마됨과 육아를 위대한 일이라 찬양하는 목소리에 주눅이 든 모든 엄마를 위한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엄마 에세이이다. 작가는 나를 구하기 위해 써 온 글은 이름 모를 독자들에게 닿았고, 읽어주고 공명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이 다시 글을 쓰게 했다고 말한다. 그는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고, 행복해지고 싶지만 잡다한 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금세 지치고, 엄마 됨과 육아를 위대한 일이라 찬양하는 목소리에 주눅이 든 누군가가 있다면 그곳에 닿길 바란다고 전했다. 저자의 남편 이종찬 씨는 추천의 글을 통해 아내가 한 문장, 한 문장 써 가는 동안 나는 돈만 버는 사람에서 아빠가 되어 갔다고 말한다. 이 책은 혼란스러운 육아의 자리와 비현실적인 지침서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느 엄마와 아빠들에게 단비가 되어 줄 것이다.
김종윤 수필가의 첫 수필집 <시나브로 가는 길>이 세상에 나왔다. 저자가 그동안 꾸준히 써온 수필을 모아 12년 만에 세상에 선보인 이번 수필집은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지나온 이야기와 가족의 이야기로 설명된다. 책에 담긴 수필들을 살펴보노라면 수필집 제목처럼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수필집을 내보는 꿈을 가졌지만 그 길은 수월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몇 개 글을 골라 엮으면서도 저자 스스로 독자들에게 읽을거리가 될 것인가 민망해하기도 했다. 김종윤 수필가는 금싸라기가 되지 못하고 모래알 같은 글 속에서 조금이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동감을 기대한다며 항상 염려해준 가족과 함께 지도해준 교수와 문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도에 나선 김학 수필가는 수필의 길은 끝없는 수도의 길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 그러니 자기의 글이 늘 미완성이라 생각하고 구도자의 자세로 겸허히 글을 빚어나간다면 언젠가는 자기가 기대하는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종윤 수필가야말로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격려했다. 김종윤 수필집 <시나브로 가는 길>을 통해 다양한 수필을 만날 수 있다. 독자는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을 넘어, 자신과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치매에 대한 이해, 치매대상자 관리, 치매대상자 가족의 역할 등을 소개하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고성희 전북대학교 간호대학 교수가 이영희 가톨릭관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와 함께 펴낸 <치매 강의노트 - 치매 대상자와 간병인을 위한 케어 노하우>(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이 책은 치매 전문가 고성희이영희 교수가 풍부한 임상경험과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치매 관련 종합서로 치매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삶의 질 증진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1부에서는 치매의 대상인 노인의 정의와 치매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다. 일반인이라면 다소 생소한 치매의 유병률, 치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간 뇌 구조와 기능, 치매의 정의, 증상, 원인, 분류, 치료 및 치매의 예방법 등을 포괄적으로 다뤘다. 제2부에서는 치매 관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치매 대상자와의 의사소통, 영양과 식사, 개인위생과 배설, 치매 대상자에게 생길 수 있는 응급상황과 대처 방법 등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특히 집에서 환자를 간병하거나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가족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치매를 겪는 가족의 관점에서 가족의 역할, 스트레스와 부양부담감, 복지서비스 종류와 활용방법, 인권 및 학대 문제 등을 다양하게 살폈다. 이 책의 저자인 고성희 교수는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치매의 무서움과 실체를 몸소 겪은 치매 가족이다. 그런 만큼 실제 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대응 전략까지 충실하게 담아냈다. 앞으로 노인 관련 전문가들을 위한 케어 사업과 전문가 양성교육을 고민 중이라는 고성희 교수는 이 책에 수록된 정보들이 주변에 널리 나누어지고, 치매 대상자와 가족만이 아니라 치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충실한 자료로 쓰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 다섯. 영혼은 퇴행하고 / 아픔은 진화했다(마흔 넷 전문)고, 그는 말했다. 죽는 이치도 알고, 사는 이치도 안다고 얼마만큼은 말할 수 있는 나이. 무엇이 그토록 그를 메마르고 황폐하게 만들었을까. 영혼이 퇴행할 만큼 아프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상처가 목숨을 위태롭게(잡탕밥 부분) 할 정도로 사무친 사람이 되었을까. 직업상 부안으로 발령이 난 그가 <해물짬뽕 집>을 내겠다고 연락이 오지 않았던들 그 속내를 알기나 했을까. 먹고 사는 일이나 / 시를 짓는 일이 / 버겁기는 한 가지(시인의 말 중)라고, <해물짬뽕 집>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시인은 말했다.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유머를 재치 있게 구사할 줄 아는 선배 시인의 입에서 나온 얘기가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을까. 하지만 어느 곳이든 한 곳에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사람의 눈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시든, 아픔이든, 사람속이거나 죽음이든 간에.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 하나만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은, 그 속에서 충분히 삭여낸 심장을 가지고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하고 있다. 하여 한겨울 인생의 쓴맛을 혹독히 겪(머우 무침 부분)은 기억으로 더욱 자기 내면에 대하여 견고해질 수밖에 없음을. 때문에 박수서 시인의 시들은 봄날 입맛 돋우는 나물(머우 무침 부분)처럼 쓰다. 삶이 아름답다며 서정적인 군더더기를 겉대거나 꾸미려는 마음은 애초에 없다. 다소 건조하고 메마르다고 여길 수 있겠으나, 대신 사는 일에 지쳐 눌린 어깨에 피가 되고 살이 되라고(삼겹살 부분), 시인의 가슴에는 늘 물컹하고 고소한 생고기를 품고 있(삼겹살 부분)다. 너와 나에게 맞짱 뜨는 인생도 / 섞고 볶다 보면 그게 그거 아니겠(잡탕밥 부분)느냐는 식의, 결코 건방지지 않은 건들거림도 있다. 어딘가 한 곳에 깊숙이 들어가 세상 밖에서 세상을 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몸짓이다. 그렇다. 그는 시에서도 비릿한 날것의 냄새를 풍길 줄 아는 시인인 것이다. * 김형미 시인은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03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오동꽃 피기 전>,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그림에세이 <누에>, <모악산> 등이 있다. 불꽃문학상, 서울문학상, 한국문학예술상, 목정청년예술상을 수상했다.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요즘은 다 놓고 그대와 함께 장편의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백봉기 (사)한국예총 전북연합회 사무처장이 네 번째 수필집 <해도 되나요>(북매니저)를 발간했다. 이번 수필집에서 백 작가는 60여 편의 수필을 희로애락으로 나누어 직장과 가정, 생활 주변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예술 메세나와 전북문화예술에 봄은 오는가는 백 작가가 몸 담고 있는 예술문화단체에 대한 애정과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백 작가는 책을 내며 글을 쓰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세상을 대하는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했으며, 첫 번째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에 이어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 등을 펴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와 전주문인협회, 한국미래문화연구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온글문학 회장을 맡고 있다.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지부(회장 김정길)는 지난 23일 전주 백송회관에서 문화융성을 위한 문학 강연과 제2회 완산벌 문학상 시상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을 비롯해 박병술 전주시의회 의장, 김학 신아문예대학 교수, 소재호 전 전북문협 회장, 박동수 심사위원장 등 회원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전북도민의 정서함양과 문화융성을 위해 마련된 문학강연에서는 김용옥 한국현대수필 부이사장이 고흐의 그림처럼 말하는 수필을 쓴다를 주제로, 김영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이 수필에 관한 독서노트를 주제로 강단에 섰다. 김용옥 부이사장은 고흐의 아몬드 꽃처럼, 한겨울의 설중매처럼 꽃 피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쓰는 한 편 한 편이 나의 수필인 동시에 체험문학, 고백문학인 수필의 진실성을 문학적 철학적으로 복사하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김영 부회장은 우리가 문학을 하는 목적은 정서적으로 순화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지식으로 해결 받지 못하는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의도다.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고 했다. 제2회 완산벌 문학상을 수상한 김길남 수필가 이제까지 많은 수필을 썼지만, 대표작이 뭐냐하면 내세울만한 작품이 없었다며 앞으로 깊이있는 사고를 통해 대표작을 내놓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박순희 수필가는 문학상이라는 것은 내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칭찬해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정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동서화합과 문화융성, 도민의 정서함양과 예향의 고장 전북을 수필문학의 메카로 만드는데 문인들이 앞장서자고 밝혔다. 이용수 기자
전주시민 모두가 글 쓰는 시민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전주시민문학제가 지난해의 성과에 힘입어 올해도 개최된다.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가 주관하고 전주시가 주최하는 제2회 전주시민문학제에서 전주 시민들의 작품을 기다린다. 오는 4월 1일부터 6월 30일 오후 6시까지 예술의 고장 천년 전주를 알리는 내용을 주제로 작품을 공모한다. 응모 당시 전주시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문단 등단자는 제외) 자기 생각을 원고지나 도화지 위에 마음껏 펼치면 된다. 운문(시, 동시바탕체 12P)과 산문(수필200자원고지 15매 이내)은 각 1편씩, 작품 상단에 성명과 소속(일반인은 주소)을 명기해야 한다. 초등 1~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일기는 8절지 도화지에 그리고 뒷면에 학교와 학년, 이름, 연락처를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응모 작품은 그간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품을 원칙으로, 표절 또는 발표된 작품일 경우 당선을 취소한다. 모든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고, 모든 저작물 재산권은 5년간 전주시가 보유한다. 시상은 대상 1명을 선정해 100만 원을 수여하고, 장원(운문 3명, 산문 3명, 그림일기 1명) 7명에게 총 280만 원, 그밖에 차상 7명, 차하 22명, 참방 38명에게 각각 상금이 주어진다. 당선작은 9월 중에 발표되며, 시상식과 전시 일정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다.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 이소애 회장은 전주시민문학제는 시민의 문화예술적 소양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많은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주시민문학제에 참여하는 운문과 산문 작품은 이메일(siminmh@naver.com)을 통해서만 접수받고, 그림일기는 방문접수하면 된다. 접수처 주소는 전주시 덕진구 가리내로 254 환희B/D 5층이다. 문의 063-232-3477.
시집이 배달됐다. 키 크고 잘 생긴, 시밖에 모르는 그가 떠오른다. 페이지를 연다. 흑백의 우울한 풍경, 불우한 청춘의 자화상이 펼쳐져 있다. 비정한 자본주의 그늘 환멸과 굴욕, 권태와 우울 속을 그와 걷는다. 그때 폭설이 동반한다. 때론 향이 나는 비를 달이 기우는 쪽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비를 옷장에 넣어두고 신발장에도 쟁여두고 밥솥 가득 밥을 짓(달이 기우는 비향)는 것이다. 불행의 촉수에 민감한 그는 불완전하고 결핍인 채로 살아가는 것들을 사랑한다. 따라서 극사실화 화풍을 지닌 그의 시들은 부서진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긴 랭보였던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는 200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학부시절 촉망받는 문사였다. 내 모교의 축제 뒤풀이 장소였던가! 청년은 몇 시간 내내 문학 얘기만 했다. 세기의 희망적 담론이나 밥벌이의 치사함, 대학 축제에 어울릴 만한 청춘들의 연애사는 안중에 없었다. 詩를 끌이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날 어쩌면 문학의 고질을 앓고 있는 청년에게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도. 김성철 시인이 이끄는 대로흐린 추억의 영사실로 들어가 보자. 웅숭깊고 애련한 어조로 어머니를 부르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가족 서사를 넘어 인류 보편 비극적 경험의 인식으로 확장한다. 그 풍경 속에는 끊임없이 공간이 변주된다.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흔들려 구간과 구간을 반복할 때마다 덜컹(지하철 생활자의 수기)이는 지하철이 나오고 서민아파트가 나오고 뭉툭한 연필밖에 없는 유년기 외로운 방이 소환된다. 또 삶의 등가물인 실직과 구직, 자본주의 세계를 밀도 있게 재현함과 동시에 고통의 순간을 미적 쾌감의 순간으로 바꿔놓는다. 불화하지만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의지로볕 그늘에 앉아 하루 종일 들풀들의 이름이나 지어 줬으면 (중략) 그리하여 고운 이름 하나 얻어 당신 닮은 딸을 만들고 들풀이라고 부르며 종일토록 들판에 피어 있었으면(괭이밥)하고 평범하고도 따뜻한 미래를 꿈꾼다. 취업도 연애도 제대로 되지 않는 청춘들의부재와 결핍을 시의 몸을 빌려 웅변하고 위로하는 것. 고단과 불안의 시간을 견디는 이들에게, 이 시집은 내적 충일감과 살아내는 자의 존엄을 선사할 것이다. 그는 문학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꿈꾼다. 꿈꾸는 영혼이란 얼마나 적나라하게 불행한 것인가, 그러나 시인은 그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름답고 용감한 그를 응원한다. * 기명숙 시인은 목포 출신으로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로 당선됐다. 글쓰기 센터, 공무원 연수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지평선 동인시집 <줄노트에 대한 기억>, 논문 <현실과 시적형상화>, 학술서 <학제통합논술 교재연구> 등이 있다.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 쓰는 농부로 알려진 전희식의 신작 <마음 농사 짓기>가 출간됐다. 제목을 짓기까지 많은 생각을 거쳤다. 부제인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는 것도 결국은 작가의 마음이 담긴 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결국은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는, 그런 시간을 살자는, 마음의 심층을 꿰뚫어 보자는 권유라고 할 수 있다. 조건화된 작가의 무의식의 뿌리를 마음속에서 제거하자는 염원을 담았다. 작가는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그렇게 읽히기를 바라고 있다. <마음 농사 짓기>는 작가가 그의 시골집에서 동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읍내를 넘어 버스를 타고 오가는 도시의 아스팔트, 마침내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중국과 남미에 이르는 해외까지 삶의 현장에서 농작물을 기르고, 사람과 더불어 일하고, 세상을 살리는 농사 너머의 농사를 통해 내 마음의 행방을 알아채고, 내 마음 농사를 짓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책이다. 작가가 그동안 전북일보와 경남도민일보 등 언론사와 한국작가회의 전북지부 등에 내놓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책 속에서 작가는 일이 많다고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마음을 늘 챙긴다고 긴장된 삶의 연속은 더더욱 아닐 터. 저자는 스스로 어떤 조건에서도 긴장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일상. 시골에 살면서 겪는 여러 일화들 중심으로 정리한 글들(9쪽)을 모았다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농촌의 삶이 선사하는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며 산다. 이제는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평소에 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성을 안 내는 기 고마워. 늘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205쪽)라고 말한 그대로 그는 치열한 전투 현장이든, 해학과 풍자 넘치는 마을에서든 웃는 표정과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기다려주고, 함께해주고, 살리고, 기른다. 윤덕현 다큐멘터리 감독은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많다. 그것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일상의 생생한 체험과 실천으로부터 우러나온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이라며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에서부터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긴 리얼 다큐 수필들을 한 편씩 시청하다 보면 따뜻한 된장 국물처럼 위로를 얻을 때도, 혹은 겨울산 약수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경남 함양 출생으로 2006년부터 장수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지내고 있다. 농민단체와 생명평화단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치매 어머니를 모신 이야기를 담은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를 비롯해 한국 농업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 먹다>, <시골집 고쳐 살기>,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옛 농사 이야기> 등을 썼다. 어린이 책 <하늘이의 시골 일기>도 있다.
내 몸 귀한 줄 알고, 평생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내 딸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들을 모았습니다. 세 딸의 엄마인 이민아 분당 미나여성의원 원장이 여성의 몸을 주제로 따뜻한 조언을 전한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20여 년간 여성의 몸을 관찰해온 이민아 원장은 <참 예쁘다, 내 몸>(더문)을 펴내며 이 책을 읽는 여성분들에게 당신의 몸, 그 모든 부분이 아름답다고 말해 주고 싶다. 소중한 딸들에게 말하듯 엄마의 마음으로 적어보겠다고 말머리를 열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알고, 느끼고, 누리는 여성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저자는 여성들이 조금 더 몸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조금 더 일찍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저자는 더 이상 여성들이 무지로 인해 눈물 흘리지 않도록 여성의 평생 건강을 위해 방향을 제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동안 저자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얻게 된 지식과 경험이 녹아든 이 책은 총 5부로 나눠져 있다. 1부 내 몸은 예쁘다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지우기 위한 이민아 원장의 노력이 엿보인다. 남들과 똑같지 않은 나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격려도 읽을 수 있다. 2부에는 생리, 외음부, 가슴, 털, 속옷, 자궁암 등 여성 건강과 관련한 산부인과 정보를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여성의 몸은 부끄럽고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가꾸고 아껴야 할 대상이라는 맥락에서 3부에서는 성 문제를, 4부에서는 여성질환을 다루고 있다. 5부에는 결혼 전, 독신, 무자녀, 폐경 이후 등 주기별로 알아두면 좋을 여성 건강에 대한 점검 사항을 담아냈다. 성폭행 강간 등 성 관련 피해가 발생했을 때 주의점과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성 건강 자가 검진 체크리스트, 산부인과 방문 전 알아 놓으면 좋은 사항들, 백일장 입상작 천하보다 귀한 생명 등 부록까지 알차게 구성됐다. 특히, 천하보다 귀한 생명은 이민아 원장의 어머니 김순덕 씨가 전북도립 여성중고등학교의 백일장 대회에서 쓴 고등부 차상 입상작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하던 때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구박 받고 죄인 취급당한 어머니. 오십여 년 후 딸이 운영하는 산부인과 병원 로비에서 한 여성이 천하보다 귀합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김종덕 전 전북대학교병원장은 추천서를 통해 이 시대에 건강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시금석과도 같은 책이며 엄마와 딸이 함께 읽으며 행복을 느끼는 책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안 출신인 이민아 원장은 전주여고와 전북의대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향장미용학 석사를 마쳤다. 1549 임신상담센터 이사를 역임했으며, 성치료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5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한 박일만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뼈의 속도>를 펴냈다. 그의 시는 과장도 군더더기도 없다. 그는 상처투성이인 우리들의 삶을 사내, 누이, 어머니란 자화상을 통해 수묵담채화처럼 담아냈다. 시간을 수없이 잡았다 펴가며 반듯한 철로에서도 뒤뚱댄다. 험준한 산길을 만날 때마다 쉼 없이 허리를 꺽어대야 하는 몸. 세상을 건너 시절을 건너 혈을 짚어가면서 뼈를 한 치씩 늘였다 줄여가면서 종점에서 시작, 종점에서 끝난다. 주렁주렁 식솔들에게 등을 내주고 길고 고단하게 달려야만 하는 몸은 태생부터 속도라는 패에 온 생을 걸었다 (뼈의 속도) 시집에는 표제작인 뼈의 속도와 지구의 저녁한때 5, 대장내시경, 저무는 새, 나무의 기억 등 60편의 시가 빼곡히 실려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관념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람과 사건 속에서 우리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는 민달팽이가 퉁퉁 부은 맨살로 길을 뚫고 가는 것처럼 관념적인 동굴을 과감히 버리고 투명한 언어들을 모아 세상에 새로운 문학적 희망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복효근 시인은 그의 시는 수사가 화려하지 않다. 요란스럽지 않다. 과장도 군더더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번다한 유추의 과정 없이 수묵 담채화처럼 맑고 고즈넉하게 마음에 안겨 온다고 말했다. 작가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 사람 사람. 많은 사람 속에서도 사람이 못내 그립습니다. 불교 종단의 어른이자 스승인 청화 스님이 세 번째 시집 <사람입니까>(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이 책에서 청화 스님은 사람 사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말고, 사람이니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시로 옮겼다. 그래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우아하게 사람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한다. 벌레가 아니니 / 누구 앞에서도 기지 말고 / 생기다만 사람이 아니니 / 어떤 힘 앞에서도 쫄지 말자 / 이것이 자신의 주춧돌이 될 때 / 그 위에 자존과 존엄이 / 돌기둥처럼 세워지는 것이니 -주춧돌 전문. 많은 바람에 / 많이 흔들리고 나서야 /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 곧은 나무가 되더라 (하략) - 두려워하지 말라 중. 청화 스님은 주춧돌처럼 묵직하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라 한다. 시집은 시 112편을 6부에 걸쳐 178쪽으로 엮었다. 1962년에 출가한 청화 스님은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후원회장, 조계사 상임법사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 법성사 주지를 맡고 있다.
한 편은 세상의 아이를 위하여, 또 한 편은 나의 아이를 위하여. 임성규 동화작가가 단편동화 다섯 편을 엮어 동화집 <형은 고슴도치>를 출간했다. 형은 고슴도치, 마법 신발을 신어 봐, 스치로폼 눈사람, 민지와 할아버지 지팡이, 우와크다의 비밀 등 임 작가는 이 책에서 따뜻한 이야기 집을 짓고 아이들을 초대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놀아보라고.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아이들을 키우면서 마음을 돌아보니 오랫동안 닦지 않은 창문처럼 얼룩이 가득했다며 다섯 편 이야기는 다섯 손가락까지밖에 숫자를 세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고백한다. 이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임 작가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배우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지난 2018년 광주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형은 고슴도치가 당선 돼,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주민의 4할은 될 것 같네. 흥수가 다가선 계백에게 말했다. 오전 진시(8시) 무렵 황산벌에서 남진(南進)한 백제군(軍)의 진막 안으로 흥수가 찾아온 것이다. 배를 타고 남하하는 백성이 1할 정도, 나머지는 육로로 이동할 것이네. 그동안 흥수는 각 성(城)과 현에 전령을 보내 이주민을 모집했던 것이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민들은 구례성에서 왜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앞에 앉은 흥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신라가 백제 땅을 차지하게 되면 이곳은 모두 신라 귀족들의 장원이 되고 백제 주민들은 농노가 되겠지. 그러나 조상이 묻힌 고향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네. 왜국에서 한 달쯤 후에는 5백여 척의 배가 올 것입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쉴 새 없이 주민들을 옮겨야지요. 김유신이 약속을 했지만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르네. 흥수가 여윈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내가 남장(南方)의 각 성에 전령을 보냈으니 군사들이 모이겠지만 당군(唐軍)까지 막기는 역부족이야. 서둘러야겠네. 그래야지요.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대이동이다. 백제 유민은 이제 왜국으로 건너간다. 백제왕 의자가 계백이 보낸 전령을 만났을 때는 신시(10시) 무렵이다. 이미 신라군의 황산벌 돌파를 보고받고 있었던 터라 의자의 얼굴은 침통했다. 전령은 12품 문독 벼슬의 군관이다. 대왕, 달솔 계백은 좌평 흥수와 함께 주민들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습니다. 남하한다고? 의자가 묻자 전령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예, 남쪽에서 배로 왜국으로 이주할 예정입니다. 달솔 상영도 따라갔느냐? 계백이 감옥에 가둬놓았으니 김유신군이 진입해서 포로로 잡았을 것입니다. 청 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미 신라군은 하루 거리였고 당군은 반나절 거리로 다가왔다. 그때 의자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백제가 왜국으로 옮겨가는가? 김유신이 앞에 선 내신좌평 연임자와 동방방령 달솔 사택부를 보았다. 진군 중이어서 김유신은 땅바닥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았고 주위에 장수들이 둘러서 있다. 사택부 뒤쪽에 황산벌의 웅치산성 감옥에서 풀어내온 달솔 상영도 서있다. 김유신이 물었다. 사비도성에서 도망쳐 온 것이냐? 예, 대감. 연임자가 허리를 굽히면서 대답했다. 이제 소인의 소임도 마친 것 같아서 빠져나왔습니다. 김유신의 시선을 받은 연임자가 웃었다. 백제에서의 역할이 끝났습니다. 대감.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김유신이 옆에 선 김품일에게 말했다. 신라에서의 역할도 끝난 저놈들을 이곳에서 베어 죽이고 떠난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유신이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잘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개보다도 못 한 인간들이다. 계백이 다가오는 아내 고화와 딸 선(善)을 보았다. 남하하는 길가에서 고화와 계백 선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말에서 내린 계백이 다가가자 둘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올랐다. 구름 한 점 떠있지 않은 맑은 날씨였다.
전북여류문학회(회장 배순금)가 지난 16일 새 봄을 맞아 충북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이번 문학기행에는 배순금 전북여류문학회 회장, 조미애 전북시협 회장, 김영 김제예총 김영 회장, 박성숙 시인 등 회원 14명이 참석해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 문학관, 운보 미술관을 견학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원들은 옥천 정지용 문학관에서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인의 작품세계를 살펴봤으며, 정지용 시인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쌓았다. 또 회원들은 청주 운보미술관을 찾아 청각장애를 앓았던 천재화가 운보 김기창과 그의 부인인 박래현 화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이번 문학기행에 참여한 김영자 씨는 정지용 생가를 찾아 사립문, 우물, 장독대, 툇마루 등을 둘러보니 잊혀져가는 우리 고향집 풍경이 가슴에 다가와 문학의 향기로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며 운보미술관에서도 미술관, 조각공원, 수석공원 등 전통한옥과 자연풍광이 이뤄낸 최상의 조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배순금 회장은 전북여류문학회 회원들은 이번 봄 문학기행을 계기로 삼아 새로운 창작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관창이 죽었다고?김유신이 묻자 김품일이 고개를 떨구었다.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인가? 김품일이 입을 벌렸을 때 재빠르게 김흠춘이 대답했다. 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아닙니다. 말을 막듯이 김품일이 똑바로 김유신을 보았다. 말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백제군 외침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후에 발굽에 짓밟혀 죽었다고 합니다. 진막 안에는 김유신과 대장군 둘까지 셋뿐이다. 김유신이 김흠춘, 김품일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신라군은 백제군과 세 번 싸워서 세 번 패퇴했다. 벌써 1만여 명의 전상자가 생겼는데 4만도 못 되는 병력이 뒤쪽에 머물고 있다. 사기는 땅에 떨어져서 장수들의 외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김흠춘과 김품일은 차례로 아들 반굴과 관창을 잃었다. 그때 김유신이 말했다. 너희들의 아들 반굴과 관창은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기록될 것이다. 김유신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렇지. 반굴은 앞장서서 백제군 장수 셋을 베어 죽이고 전사를 했다고 하자. 김유신의 시선이 김품일에게 옳겨졌다. 네 아들 관창은 어리니 백제군에게 네 번 잡혔다가 풀려났는데도 계속해서 단신으로 돌진했다가 나중에 잡혀 목이 베어졌다고 하지. 그것을 본 신라군이 분을 일으켜 백제군을 전멸시켰다고 하는 것이다. 백제군도 이제 3천 남짓이다. 우리가 밀고 가면 또 패퇴하게 되더라도 몇 명 안 남는다. 역사는 이긴 자가 기록하는 거야. 백제는 이제 망한다. 백제 기록은 다 불태워질 것이고 우리 손으로 역사를 쓸 테니까. 그때 진막 밖이 웅성거리더니 위사장이 뛰어 들어왔다. 눈을 치켜뜨고 있다. 총사령, 백제군 전령이 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유신도 숨을 들이켰지만 곧 지시했다.데려오라. 백제군 전령은 나솔 윤진이다. 윤진은 피로 얼룩진 붉은 갑옷 차림으로 진막 안에 들어서더니 김유신을 향해 가볍게 목례만 했다. 백제군 대장군 윤진입니다. 김유신을 응시한 채 말하더니 어깨를 폈다. 백제군 총사령 달솔 계백의 전언을 가져왔습니다. 거기 앉으라. 김유신이 눈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윤진은 바닥에 놓인 나무 걸상에 앉았다. 세 걸음쯤 앞쪽 중앙에 김유신, 좌우에 김품일, 김흠춘이 앉았다. 주위는 조용하다. 밖에 모든 신라군이 백제군 전령이 온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윤진이 말했다. 백제군을 가로막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김유신이 눈썹을 모으고 윤진을 보았다. 가로막지 말라니? 예, 백제군은 남하(南下)하겠습니다.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 예, 백제 주민과 함께 남하해서 왜국으로 건너갈 것입니다. 그러니 막지 말란 말씀이오. 김유신이 숨만 쉬었고 김품일과 김흠춘은 서로의 얼굴만 보았다. 그때 윤진이 말을 이었다. 이미 좌평 흥수가 백제 주민을 모아 남하시킬 준비를 하고 있소. 서로 막지 마십시다.
좌측을 격파하고 돌아온다. 계백이 나들이를 다녀온다는 것처럼 말했다. 신라군의 북소리와 말굽 소리, 함성이 천 리를 진동하고 있다. 신라군 선봉 김흠춘 군(軍)이 뒤로 물러나고 중군(中軍)이 드러나면서 기마군 2개 군단이 좌우로 벌려져 달려오고 있다. 엄청난 기세다. 거리는 4리(21㎞), 질주하고 오는 터라 금방 부딪친다. 계백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느냐! 이번에 신라군의 중군(中軍)을 격파하는 것이다! 예엣! 장수들이 일제히 소리쳐 대답했다. 지금은 1진, 2진, 3진이 다 출진한다. 병력은 4천여 명, 전상자가 1천여 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백이 앞장을 서자 하도리가 위사 1백여 명과 함께 선두에 나섰다. 그때 계백이 허리에 찬 칼을 빼 들고 소리쳤다. 따르라! 계백이 박차를 넣자 말이 뛰었고 이제 백제군 4천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달린다. 이번에도 붉은 불길처럼 달려갔는데 말굽 소리만 울릴 뿐이다. 어엇! 저놈들이 우측을 친다! 김유신 옆에 선 부장 김용준이 소리쳤다. 신라군 쪽에서 보면 우측이다. 이쪽은 지형이 조금 높아서 백제군이 한 무더기가 되어서 우측의 신라군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군세(軍勢)가 비슷하다. 신라군은 좌우측에 각각 5천기씩 나눠졌기 때문이다. 우측 대장이 누구냐? 김유신이 묻자 김용준이 눈을 치켜뜨고 대답했다. 이찬 김석보입니다. 좌측 군이 백제군의 후미를 칠 수 없겠는가? 다급하게 김유신이 물었지만 곧 먼지 속에 드러난 백제군을 보더니 탄식했다. 이놈, 계백. 꼬리를 없앴구나. 보라. 백제군은 마치 둥근 바위처럼 뭉쳐 우측 신라군과 부딪친다. 후미가 없는 것이다. 좌우로 벌려진 신라군은 정공법으로 앞이 뾰족한 삼각 대형을 형성했고 뒤를 선봉, 중군, 후군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백제군은 둥근 덩어리로 한꺼번에 삼키는 것 같다. 대형이 없는 것이 더 기괴했다. 김유신이 탄식했다. 아, 저것이 무언가! 그 순간 붉은 기운이 신라군 선봉을 뒤덮었다. 그리고 함성이 일어났다. 백제여! 계백이 벽력처럼 소리치자 백제군이 일제히 외쳤다. 백제여! 갑자기 터진 함성에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고 안에서 꾹꾹 눌렀던 기백이 백제군의 온몸으로 터졌으며 신라군은 위축되었다. 계백은 옆으로 다가온 신라군 장수의 칼을 몸을 틀어 비꼈다. 다음 순간 계백이 휘둘러 친 칼이 장수의 팔을 잘라 떨어뜨렸다. 난전이다. 그러나 머물면 안 된다. 기마군은 달려야 한다. 부딪쳐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고 다른 말은 뛰어야 한다. 나가라! 계백이 소리치며 말을 달렸다. 뒤를 백제군이 함성을 지르면서 따른다. 한시진이 지난 오후 미시(2시) 무렵, 백제군이 다시 웅치산성 아래쪽에 모였다. 달솔, 장군 화청이 뵙자고 하오! 피투성이가 된 윤진이 말했다. 화청은 부상당한 몸으로 이번 대접전에 참가했다가 창에 가슴을 찔린 채 귀환했다. 어깨와 옆구리에도 칼을 맞아서 중상이다. 나무에 기대앉아있던 화청이 다가오는 계백을 보더니 웃었다. 피를 머금은 입안이 시뻘겋다. 달솔, 백제를 존속시키시오! 화청이 피를 뱉으면 말하더니 손을 뻗었다. 다가간 계백이 손을 잡은 순간 화청이 긴 숨을 뱉으며 숨이 끊어졌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김유신에게 전령을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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