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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미래자원, 바다에 관심을” 제13회 해운문학상 공모

바다는 인류의 생명줄이며 우리들의 미래입니다. 해운은 인류의 활동과 삶의 모태이며 핏줄입니다. 지난 2017년에 명칭을 바꾸고 응모 대상도 전국으로 확대한 해운문학상이 올해 제13회를 맞아 다시 한번 거듭난다. 해양의 가치가 더 귀해지는 새만금 시대에 발맞춰 주최주관후원 주체가 새롭게 구성된 것. 지난해까지는 ㈜국제해운이 단독 주최했지만, 올해부터는 전북일보사가 공동 주최자로 손을 맞잡았다. 바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더욱 높이고, 해양문학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확장하기 위해서다. 또한 해운문학상운영위원회를 구성, 작품 심사 등을 주관하게 됐다. 운영위원장은 김남곤 전 전북일보사 사장이 맡았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인 만큼 해양수산부한국문인협회가 후원자로 참여하고, 한국예총 전북연합회도 힘을 보탠다. 제13회 해운문학상 작품 공모는 오는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다를 주제로 한 미발표 순수창작물인 시와 수필을 응모할 수 있다. 올해 시상은 해운문학상 대상해운문학상 본상바다문학상 등 세 부문. 해운문학상 대상에는 해양수산부장관상, 상금 300만 원, 순금 10돈이 주어지며, 해운문학상 본상에는 전북일보 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공동시상으로 상금 200만 원을 수여한다. 바다문학상은 공모하지 않고 전북지역 기성문인 중 해양문학 발전에 힘쓴 공로자를 찾아 시상한다. 바다문학상 수상자에게는 해양수산부장관상과 순금 10돈이 주어진다. 윤석정 해운문학상운영위원회 이사장(국제해운 대표전북일보 사장)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해양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전북에서도 해운문학상을 통해 중요한 미래자원인 바다와 해운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응모작 접수는 우편(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418. 전북일보사 문화사업국)으로만 한다. 응모작 겉봉투에는 제13회 해운문학상 응모작이라고 표시하고 응모분야, 성명, 연락처를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단, 작품 안에는 응모자의 신원을 암시하는 성명 등 일체의 표시를 금지한다. 당선작은 오는 5월 20일자 전북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시상식은 같은 달 31일 바다의 날에 열릴 예정이다. 제13회 해운문학상 공모와 관련한 문의 사항은 해운문학상운영위원회(010-4642-8573)으로 전화하면 된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02.06 18:46

“봄은 왜 이리 더디 오는가” 백관수 ‘동유록’

정녕 때는 2월이건만 / 봄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 세 다다미 크기의 감방 창 아래에서 / 역시 나 홀로 모름이련가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투옥된 근촌 백관수 선생의 한시 정녕 때는 이다. 봄은 오고 있지만, 그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진정한 봄은 오고 있는 것인지, 그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옥중의 수인은 간절히 표출하고 있다. 근촌 백관수 선생이 옥중에서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쓴 한시를 엮은 <동유록>이 세상에 나왔다. 애초 작품은 한시로 되어 있었지만 근촌의 차남인 백순이 한글 번역과 영문 번역을 맡아 이번에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 작품집에는 일제의 지배에 대한 시적 저항의 정신이 담겨 있으며, 시대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주를 이룬다. 특히 1919년 동경에서 있었던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저항의 정신과 기개와 맞물려 있다. 근촌은 <동유록>에서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사상을 동경 감옥안에서 두 가지의 마음으로 표출했다. <동유록> 전편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후편의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그것이다. 그가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봄은 반만년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의 독립이며, 충의로운 나라 사랑이 갈망하고 있는 한국의 독립이고, 열방의파리강화회의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보는 한국의 독립이며, 그리고 2.8 독립운동이 불씨가 되어 한국 전역에 독립운동이 번져 이뤄지기를 열망하는 한국의 독립이다. 근촌은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고 있다. 위를 우러러보거나 아래를 굽어보아도 그의 2.8 독립선언의 외침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커다란 옳음과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동경 감옥 안에서 다짐하며 간직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마음은 2.8 독립운동을 일으켰던부끄럽지 않은 마음이다. 한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일편단심의 마음이며, 인간의 가장 높은 가치인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는 마음이고 큰일을 이루지 못한 스스로의 후회와 형세가 따라주지 않는 잘못이 있는 인간의 허물을 인정해야 하는 마음이다. 백순 교수는 부친의 이러한봄을 기다리는 마음과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1919년 3.1 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수립, 1945년 대한민국의 해방을 가져오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승곤 전북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서평을 통해 근촌의 동유록은 불타는 애국심에서 나온 눈물 어린 저항시로서, 일시적으로 일제의 굴욕적 지배에 놓여 있지만, 반드시 이 굴레를 벗어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투지가 뚜렷이 엿보이게 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간 한 지식인의 삶의 모습에서 그의 투철한 애국정신과 감성은 물론 그의 인간적 면모까지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2.06 18:46

[불멸의 백제] (277)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3

"어딜 보세요?" 뒤에서 미사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옷자락이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저녁 무렵, 성의 5층 누각에 선 계백이 앞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가온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섰다. 바람이 미사코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었고 긴 머리칼 몇 가닥이 얼굴을 휘감았다. 미사코의 체취가 맡아졌다. 향기가 섞인 살 냄새다. 계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사코가 같은 방향에 시선을 준 채로 다시 말했다. "노을은 볼 때마다 달라요. 얼핏 보면 똑같은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어요." "" "냄새도, 파도도, 날씨도" 계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녁노을이 붉은 비단을 덮은 것처럼 바다를 물들였다. 태양은 수평선 아래쪽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바다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미사코는 잘못 물었다. 어딜 보느냐고 묻지 말고 뭘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토요야마성, 미사코가 따라와서 닷새째 머물고 있다. 토요야마성에는 소실이 셋 있다. 아야메, 하루에, 다나에다. 그중 다나에와 하루에는 임신을 해서 배가 부르다. 이번에는 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서 바다냄새가 맡아졌다. 토요야마성에서 서쪽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미사코, 저 바다 건너편에 전운(戰雲)이 덮여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보입니다." 미사코가 바로 대답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시늉을 했다. 계백이 더 붉어진 수평선 위쪽 하늘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곳에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이 펼쳐져 있다." 미사코가 숨을 죽였다. 곧 미사코는 미사코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사코는 엄연히 소영주(小領主)인 것이다. 미사코성(城)을 중심으로 옛 후쿠토니의 영지를 통치해야만 한다. 계백의 목소리가 누각 위에 울렸다. "난 조만간 저곳으로 돌아간다. 미사코." "알고 있습니다. 주군."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바짝 붙어섰다. 계백의 측실 중에 미사코만이 이런 행동을 한다. "미사코, 네가 중심이 되어라." "예. 주군." "내 자식들을 낳으면 네가 다 뒤를 봐주도록 해라." "주군이 옆에 계셔야지요." "있을 것이다." "꼭 돌아오신다고 약속해주세요." "돌아오마." "하루에, 다나에님은 곧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아야메님도 잉태를 했습니까?" "했을 것이다." "제가 낳는 아들이 적자가 됩니까?" "내가 백제방과 이곳에 남는 중신(重臣)에게 말해놓겠다. 네 아들이 적자다." "주군." 미사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미사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코가 계백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 말씀 하시려고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다른 소실들 인사도 받아야 할 것 아니냐?" 미사코를 왜국 내의 정실부인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미사코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이곳 계백 가문은 걱정하지 마세요. 뿌리는 단단히 굳혀놓을 테니까요." "다른 백제계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너희들의 바탕이 든든하다." "좋은 밭(田)입니다." 미사코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바다를 건너가실 때는 뵙지 못하겠군요." "언젠가는 돌아올 테니까." 이제는 계백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다. 왜국이다. 뒤쪽 청에는 이미 향초를 여러 개 켜놓아서 환해져 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곳, 왜국은 내 고향이나 같다. 내 자식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뿌리를 뻗고 열매를 맺어갈 테니까."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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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6 18:46

[불멸의 백제] (276)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2

사비도성의 청 안, 의자왕이 좌평 성충, 흥수, 연임자 등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한달 전에 김창준이 당왕 이치한테서 당군의 파병을 통보받았어. 지금은 파병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소정방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각 주(州)에서 제대로 군사나 물품이 준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관 좌평 성충이 대답했다. 이번 파병은 제 나라 일도 아닌 데다 겨우 미랑에게 뇌물을 써서 이루어진 일이라 그렇습니다.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미랑은 현(現) 당왕(唐王)의 부친 이세연의 애첩이었을 때의 이름이다. 그 미랑이 이세연의 총애를 받아서 무미(武媚)라는 호를 받았는데 본래 이름이 무조(武照)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 조정은 당(唐) 왕실의 패륜을 경멸하여 죽은 아비의 소실을 왕비로 삼은 당왕(唐王) 이치는 물론 무후 미랑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말했다. 이찬 김창준이 장안성에 머물면서 계속 미랑에게 뇌물을 바친다니 성과가 있을 것이오. 그럴 것이다. 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라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미랑이 뇌물 몇만량에 대군(大軍)을 동원할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제 욕심만 차리는 계집이라고 해도 일국의 왕비가 된 괴물입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설령 당왕 이치는 그냥 넘긴다고 해도 대신들에게 명분을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옳다. 의자가 입술 끝을 올리고 물었다. 그 명분은 신라, 백제, 고구려까지의 병합이겠지? 그렇습니다. 신라는 이미 당의 관복을 입고 당의 속령으로 자처하고 있으니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에는 속국으로 삼겠다는 명분을 세울 것입니다. 결국 김춘추의 당과 일심동체론이 당의 대신들에게도 먹히겠지. 신라의 위협이 당의 위협으로 될 것입니다. 김춘추가 필사적으로 당에 매달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야. 눈을 가늘게 뜬 의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제일 두려운 상황이 무엇인지 아느냐? 의자가 묻자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얼른 대답하는 대신은 없다. 의자의 시선이 내신좌평 연임자에게 옮겨졌다. 내신좌평이 말해보라. 당의 대군이 예상 외로 많이 출정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몇십만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대백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나섰다. 당의 대군이 빨리 오는 경우입니까? 아니다. 의자의 시선이 성충에게로 옮겨졌다. 병관좌평이 말해보라. 이치가 죽고 미랑이 집권하는 것 아닙니까? 옳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친 의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은 두 번째로 두려운 상황이다.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왕. 그럼 무후(武后)가 당왕(唐王)이 되겠구나. 미랑은 왕비를 퇴위시키려고 제가 낳은 딸을 질식시켜 죽인 요물입니다. 과연. 의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 딸을 질식시켜 죽인 미랑은 그 죄를 왕비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미랑은 왕비가 되었다. 그때 의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두려운 상황은 김춘추와 미랑이 결탁하는 것이다. 세쌍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나이들었지만 지금도 수려한 용모에 언변이 뛰어났고 재능은 따를 자가 없다. 미랑이 그자를 만난다면 이 세상은 김춘추가 장악하게 될 것이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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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1 20:02

[불멸의 백제] (275)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1

장군, 이번이 마지막 기회요. 김춘추가 말하자 김유신이 먼저 길게 숨부터 뱉었다. 그렇습니다. 먼 길을 걷고 나서 앞쪽에 사람 사는 민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소? 쓰게 웃은 김춘추가 술잔을 들었다. 깊은 밤. 해시(10시) 무렵이다. 동경의 내성 청 안에는 신라왕 김춘추와 대장군 김유신 둘이서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둘은 왕과 신하이기 전에 처남 매부 사이며 지금까지 온갖 역경을 함께 겪어온 동지이기도 하다. 김유신의 무력(武力) 뒷받침이 없었다면 기라성 같은 다른 진골 왕족을 젖히고 김춘추는 신라왕이 되지 못했다. 김유신 또한 김춘추의 지원이 없었다면 가야 출신으로 대장군까지 이르지 못했다. 둘은 합심하여 상대등 비담의 난을 평정했고 그 와중에 여왕 김덕만을 제거했으며 사촌 여동생 김승만을 여왕으로 옹립했다. 후에 선덕, 진덕으로 불린 여왕들이다. 진덕여왕 김승만이 재위 8년 만에 죽고 김춘추가 왕이 되었으니 53세가 되었을 때다. 김춘추가 지그시 김유신을 보았다. 장군, 백제를 멸망시키면 고구려는 저절로 떨어지는 감이나 같소. 그렇습니다. 김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연개소문의 기반이 불안한 터라 연개소문만 죽으면 고구려는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소.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는가? 신라가 명운을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은 김춘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서 가장 세력이 약하면서도 내분이 많았던 신라다. 성골, 진골 왕족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왕조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백제 의자왕 초기에 대야성이 함락되고 주변의 42개 성까지 백제령이 되는 바람에 영토의 4할을 빼앗겼다. 그야말로 국운이 풍전등화가 되어 있었던 상황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대국 백제, 고구려는 호시탐탐 대륙을 노리는 중이어서 신라를 등에 붙은 거머리 정도 밖으로 여기지 않는다.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전하, 당군(唐軍)이 온다는 소문은 백제에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김춘추가 6살 연상의 김유신을 보았다. 아마 연개소문도 알고 있을 것이오. 연개소문은 지난번 이세민의 침공 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고 아직 군병을 모아 백제를 도울 여력이 없습니다. 김유신이 흰 수염을 쓸면서 말을 이었다. 제일 위험한 쪽은 왜입니다. 그렇군. 왜에서 계백이 대영주가 되어 있습니다. 전하. 그 놈이 또 뒤를 치면 큰일이오. 첩자의 말을 들으면 영지에서 군사 5만을 금방 모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놈이 동진을 해서 서쪽 해안까지 닿았다니 바다만 건너면 바로 우리 등에 닿게 되지 않겠소? 진즉 우리가 왜를 개척했어야 했습니다. 뼈다귀 싸움하는 바람에 다 놓쳤지. 지금 가장 위험한 적이 계백입니다. 김춘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을 왜에 묶어놓아야 할 텐데 방책이 없겠소? 백제 조정 내부에 있는 첩자를 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 내가 이찬 김기평을 불러 지시를 하리다. 길게 숨을 뱉은 김춘추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장군, 5년쯤 후에는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오. 장군의 생각은 어떠시오? 어떤 세상이 펼쳐졌을 것 같소? 그때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소신은 대왕께 충성을 한 장수로만 알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이건 관심 없습니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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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0 19:30

[불멸의 백제] (274)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0

화청과 윤진, 백용문은 계백을 따라 본토에서 바다를 건너 백제 담로인 왜국으로 건너온 후에 왜국 영주가 되었다. 계백이 영지를 나눠준 것이다. 물론 계백령이라 불리는 계백의 영지 안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계백의 신하다. 그러나 각각 10여만 석의 영지를 통치하고 영지 안 주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터라 왕(王)이나 같다. 또한 전(前) 영주의 소실이나 이리저리 인연을 잡아 내실에 처첩을 둘씩, 셋씩 거느렸고 시녀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딴 세상을 사는 중이다. 그 계백의 원래 측근 셋이 미사코성에 모였다. 계백이 부른 것이다. 미사코성은 계백령의 중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동정(東征)하면서 거성(居城)을 여러 번 옮긴 터라 계백의 처첩은 모두 동쪽 토요야마 성으로 옮겨갔다. 미사코성의 미사코만 예외다. 그대는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구나. 계백의 앞쪽에 앉은 화청에게 말했더니 청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윤진과 백용문이 웃은 것이다. 물론 화청은 안 웃었다. 대신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이러다가 오래 못 살 것입니다. 화청이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고 밤에 젊은 여자에게 원기를 빼앗기는 생활을 하면 그 죗값을 받습니다. 이젠 그럴 때도 되었지 않나? 이렇게 살았다면 30년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나솔, 자책할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왔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한(限)을 품은 채 다음날을 기다리며 살았으니 이렇게 견딘 것입니다. 고개를 든 화청이 계백을 보았다. 달솔, 고향으로 돌아가 육신을 눕히고 싶습니다. 누가 있다고 그러는가? 다 흙이 되어 있으니 저도 같은 땅의 흙이 되려고 그럽니다. 화청의 고향은 대륙의 태원이다. 수(隋)나라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였던 화청은 이연이 아들 이세민의 설득을 받고 반란을 일으키자 수 양제에게 보고를 했지만 발각되어 가족이 몰사를 당했다. 그 후로 화청은 몸을 피해 도망을 쳤고 이연은 승승장구, 마침내 당(唐)을 세운 것이다. 그것이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이제 화청은 63세, 백발로 덮인 노장(老將) 모습으로 바다 건너 왜국의 영주가 되어 대륙을 그리고 있다.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지. 계백의 말에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치를 깔고 앉은 미랑이란 요물도 마찬가지지요.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그때 윤진이 입을 열었다. 주군, 곧 당군(唐軍)이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이다. 정색한 계백이 셋을 둘러보았다. 이제 영지의 기반이 굳어졌을 테니 정병을 길러 만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셋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따르겠다는 표시를 했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대군(大軍)을 수송할 수 있는 대선단을 만들 테다. 이것은 풍왕자께서도 허락하셨다. 그때 윤진이 물었다. 대군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본국으로 데려갈 병력은 기마군 2만, 말이 5만필이다. 계백이 바로 대답했다. 양곡은 반년분을 싣고 간다. 사역병, 잡병, 기타 부속병까지 5천은 더 있어야 될 것이고 마차나 진막, 자재까지 준비해야 됩니다. 모두 원정군 경험이 있는 터라 화청이 말을 잇는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윤진을 보았다. 원정군 준비는 나솔 윤진이 맡고 기한은 년으로 한다. 모두 적극 협력하도록. 아직 당군(唐軍)의 병력, 출동 일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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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9 15:59

[불멸의 백제] (273)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9

네가 누구냐?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묻자 김창준이 납작 엎드렸다. 장안성 왕궁의 청 안이다. 예, 신라 사신 김창준입니다. 소리쳐 말했지만 당왕과의 거리가 30보나 되어서 잘 안 들렸는지 이치가 비만한 몸을 꿈틀거렸다. 눈썹이 찌푸려져 있다. 누구? 김춘추라고? 아닙니다! 김창준입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대답하자 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추가 김창준으로 이름을 바꾼 모양이군. 그때 옆쪽의 이의부가 반 발짝 앞으로 나섰다. 대왕전하.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려던 이의부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 옆에 앉아있던 무후가 손을 저었기 때문이다. 가만있으라는 표시다. 그때 무후가 말했다. 김춘추나 김창준이나 그 이름이 그 이름이지, 안 그러냐? 높고 앙칼진 무후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러자 이의부, 허경종이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마마, 그렇습니다. 그때 무후가 이치를 돌아보았다. 대왕, 신라가 원병을 청하니 보내 주시지요. 그놈들은 맨날 원병이야?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어떻게 사노? 신라가 없어지면 백제 고구려가 대당의 등을 찌를테니까요. 무후가 쨍쨍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왕, 대왕이 즉위하시고 나서 고구려 백제는 인사도 안 했습니다.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랬지, 인사도 안 했지.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도총관으로 삼아서 병력을 모으라고 하지요. 소정방을, 그자가 살아있나? 원정군 사령관으로 적당해요. 청 안에 백 명이 넘는 백관이 도열하고 서 있었지만 계단 위의 옥좌에 나란히 앉은 왕과 왕비가 거침없이 국사를 논하고 있다. 아니, 논하는 것이 아니다. 왕비 무후가 왕 이치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백관들이 다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제 일상화되어서 놀라지도 않는다. 그때 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소정방을 보내지. 백제를 멸망시키면 그곳에 도독부를 두고 속령으로 삼을 것입니다. 옳지, 속령으로. 그때 이의부가 소리쳐 대답했다. 대당(大唐)이 천년만년 번성할 것입니다. 만세! 대왕 만세! 왕비 만세! 그러자 다른 백관들도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엎드려있던 김창준도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따라 부른다. 이제 되었다. 왕궁을 나오면서 김창준이 부사(副使) 김익수에게 말했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눈에 눈물까지 고여져 있다. 신라가 이제 살아나는구나. 대감, 애쓰셨습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당의 도성 장안성에서 석 달째 머물고 있었던 김창준이다. 성문을 나온 김창준이 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대왕께서 그토록 공을 들이신 덕분이다. 저 돼지 같은 놈의 군사를 빌려 개떼 같은 백제, 고구려를 치는 것이다. 대감, 감개가 무량합니다. 김익수도 눈물을 닦았다. 둘은 신라의 충신이다. 다시 발을 떼면서 김창준이 말을 이었다. 어서 이 소식을 대왕께 알려야겠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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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8 19:35

[불멸의 백제] (272)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8

꿈틀거리면서 엉켜붙는 미사코의 몸은 뜨거운 문어 같다. 방안에는 미사코의 신음으로 가득 덮여졌다. 한 몸이 되고 난 후부터 미사코는 순하고 겁 많은 양에서 사나운 고양이가 되었다. 신음은 야성의 울부짖음 같았고 계백의 움직임에 맞춰서 대드는 것처럼 잡고 놓지 않는다. 계백도 어느덧 미사코의 뜨거운 폭풍 속으로 몸이 빨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온몸에서 뻗어 나오는 열기가 미사코의 몸 안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저절로 탄성이 뱉어졌다. 용암 굴이 터지고 터지다가 미사코가 마침내 온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신음하더니 폭풍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 순간 계백이 온몸을 굳히면서 미사코와 함께 떠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계백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미사코의 숨결에 찬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비틀어 누웠다. 그리고는 미사코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알몸의 미사코는 허물어지듯이 계백의 가슴에 몸을 붙인다. 땀이 배인 몸이 미끈거리고 있다. 그때 미사코가 가쁜 숨을 가누면서 물었다. 주군,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될 것 아니냐? 계백이 미사코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넌 요부다. 미사코. 부끄럽습니다. 뭐가 부끄럽단 말이냐? 제 몸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나도 너 같은 몸은 처음이다. 좋으셨습니까? 요부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칭찬이다. 내가 미사코성에 오래 머물지 못할 터라 미리 이야기해놓을 것이 있다. 계백이 정색한 얼굴로 미사코를 보았다. 내 자식을 낳으면 계백충(忠)이라고 이름을 붙여라. 미사코가 숨을 죽였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여아를 낳는다면 계백진(眞)이다. 알았느냐? 네. 주군. 네가 잘 키우리라고 믿는다. 주군, 본국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미사코가 몸을 붙이며 물었다. 두 눈이 젖어가고 있다. 계백이 다시 미사코의 알몸을 당겨 안았다. 미사코도 두 팔로 계백의 허리를 감는다. 김춘추가 마침내 신라왕이 된 데다가 신라는 위쪽과 좌우가 막힌 독 안에 든 쥐 형국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김춘추는 결사적으로 당(唐)에 매달려 사생결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 주군께서도 출진하십니까? 결전의 시기가 오면 가야지. 그것이 언제입니까? 김춘추가 당에 청병을 원하는 사신을 보냈다니 곧 연락이 올 것이다. 당왕(唐王)이 몸도 못 가누는 비만인 데다가 간질병 환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왕이 원병을 보낼까요? 미장이란 요부가 왕비가 되었어. 무후(武后)가 이제는 당(唐)을 장악했다는구나.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무후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정국(政局)이 심상치 않게 되었다. 길게 숨을 뱉은 계백이 미사코의 몸을 바로 눕히고는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미사코, 왜에서도 백제계는 더욱 번성해야 된다. 그때 미사코가 두 팔을 뻗어 계백의 목을 감아 안았다. 두 눈이 반짝였다. 네 주군. 계백의 자손이 왜국에서 번성하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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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7 19:21

신정일 이사장,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출간

16세기 조선을 뒤흔들어 천재 1000명을 죽음으로 내몬 기축옥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문학사학자 신정일이 펴낸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상상출판)에서 그 음모가 밝혀진다. 조선의 천재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 사건의 시작점에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이었던 기축옥사. 이는 기축년(1589년) 생긴 정여립의 모반을 시작으로 사건의 연루자를 색출해나가는 과정에서 동인들이 서인들에게 탄압받은 사건을 말한다. 동인과 서인을 막론하고 뛰어난 천재로 평가했던 정여립, 서인 측의 송익필, 알성 급제를 했던 이발 그리고 정철. 당파와 입장 차이가 컸던 그들은 공존하지 못했고 결국 피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천재들의 참혹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축옥사는 선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당쟁으로 비화됐다. 기축옥사를 계기로 동인과 서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고, 이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저자는 이와 같이 기축옥사에 얽힌 음모와 정여립, 그리고 모반사건에 개입돼 죽어간 천명의 선비들이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비들의 개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선조, 서로 다른 길을 택하는 유성룡과 이항복, 당리를 위해 정적을 죽이는 정철과 정의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최영경, 그리고 역모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16세기의 역사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저자인 문화사학자 신정일 선생은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길 위의 인문학이 대표적이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도보여행가로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비롯해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를 걷고, 400여곳의 산을 오른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01.24 19:57

곽병창 세 번째 희곡집 ‘억울한 남자’

극작가 곽병창 교수가 희곡집 <억울한 남자>를 펴냈다. 지난 2007년 평론집 <연희 극 축제>와 2013년 희곡집 <필례, 미친 꽃>에 이은 세 번째 작품집. 이번 작품집에는 표제작 억울한 남자를 비롯해 귀신보다 무서운,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 대필병사 김막득, 천사는 바이러스 등 소중한 작품 5편이 실려 있다. 이번 희곡집은 곽 교수가 그간 보여줬던 행보와 달라진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역사적 과거를 현대에 대응해 온 작가는 이번 희곡집에서는 역사적 현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 기존 작품 대부분이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며 영향을 미치고, 과거를 생생한 현실로 표현하며 역사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역사의 그늘에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주목했었다. 하지만 이번 희곡집 중 억울한 남자와 원작이 있는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과 무관하게 채워나갔다. 대신 역사적 사건의 공백을 우화적 상상력으로 담아냈다. 작가는 단순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다양한 의미의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전북 지역과 밀접한 이야기도 작품집에 담았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을 통해 국가라는 이름의 공권력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고발하는 귀신보다 무서운은 지난 2016년 12월 창작 소극장에서 공연되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천사는 바이러스는 매년 연말이면 전주시 노송동을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들 모두 2014년 이후 최근까지 공연한 작품들로 작품마다 계기와 기획 의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작가는 연극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했다. 작가는 갈수록 극예술의 고전적 본질에 끌리고 있는 현실에 여러 번 생각해봐도 인간의 일 가운데 연극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충남 금산 출생인 곽 교수는 전북대 극예술연구회 기린극회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삼십 대 이후 줄곧 극단 창작극회 창작소극장에서 배우, 극작, 연출로 살아왔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을 비롯해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서 극작을 가르치고 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24 19:57

[불멸의 백제] (271)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7

계백이 미사코 성(城)에 입성했을 때는 오후 유시(6시) 무렵이다. 미리 전령을 보낸 터라 성주 미사코와 중신들이 모두 성 밖까지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함께 내성의 청으로 들어섰다. 계백은 계속 동정(東征)을 해왔기 때문에 거성(居城)도 서쪽의 이쓰와(五和) 성에서 4백여리나 떨어진 토요야마성으로 옮긴 것이다. 미사코성은 그 중간 지점이다. 청에 앉은 계백이 앞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미사코에게 물었다. 주민들이 잘 사느냐? 아직 모르겠습니다. 시선을 내린 미사코가 바로 대답을 했지만 얼굴이 붉어졌다. 미사코는 이곳의 전(前) 지배자였던 후쿠토미의 동생이다. 계백이 후쿠토미를 죽이고 나서 미사코를 성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중신(重臣) 사다케를 보좌역으로 옆에 두기는 했다. 계백의 시선이 사다케에게 옮겨졌다. 사다케, 여기 군사는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 예, 기마군 5천에 보군 1만입니다. 사다케가 바로 대답했다. 이곳은 전마(戰馬)의 산지여서 말을 2만필 가깝게 모았습니다. 잘 조련시키면 기마군 1만은 가능합니다. 가구수, 주민수 조사는 끝냈느냐? 예. 어깨를 편 사다케가 힐끗 옆에 앉은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님이 성주로 부임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산속, 골짜기에 숨어살던 주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전보다 호구수가 2배나 늘었습니다. 허어. 감탄한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된 일이다. 그래, 얼마냐? 16만호에 주민이 어린아이 포함하여 1백만 가깝게 됩니다. 허어, 영지에 비교하면 주민이 많은 편이 되지 않았는가? 아닙니다. 후쿠토미 시절에는 땅이 있어도 경작을 안했기 때문에 영지 계산이 안되었습니다. 소신이 바쁘게 계산했지만 이곳 영지가 1백만씩 소출이 가능합니다. 허, 내가 대영주가 되었구나. 주군께선 이미 대영주이십니다.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 네 백성이다. 예, 주군. 너를 믿고 산에서 나왔다니 잘 살게 해줘야 될 것이야. 예, 주군. 미사코의 얼굴은 붉어진 채다. 그날 밤, 계백의 침실 문이 열리더니 미사코가 들어섰다. 자시(12시)가 가까운 시간이어서 내성 안은 조용하다. 방의 불을 켜놓았기 때문에 계백이 미사코에게 물었다. 미사코, 네 자의로 온 것이냐? 네, 주군. 고개를 든 미사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불빛에 비친 미사코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침상으로 다가온 미사코가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너를 만나려고 온 것이야. 손을 벌려 맞는 시늉을 하면서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없더라도 네가 이곳 중심이 되어라. 주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침상으로 오른 미사코가 계백의 옆으로 파고 들면서 물었다. 주군께서 어디로 가십니까? 계백은 대답하지 않고 옷을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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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4 19:56

[불멸의 백제] (270)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6

장안성의 왕비궁 안, 똑같은 복도를 돌고 또 돌아서 환관을 세 번이나 바꾸어 마침내 도착한 곳이 무후(武后)의 거처, 안락궁이다. 김창준은 궁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오금이 붙어서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다. 앞장선 이의부는 여러 번 와본 모양으로 안내역으로 새 환관이 나타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윽고 문지방 밖에 선 이의부가 궁녀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더니 곧 나왔다. 무후께서 기다리시오. 김창준이 숨을 들이켜고 나서 이의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호사스럽다는 표현보다 정신이 어지럽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붉은 기둥에는 황금 용이 칭칭 감겨있는 조각을 붙였고 천장, 계단 모두 황금이다. 붉은 비단이 사방에 드리웠으며 서 있는 궁녀들은 얼굴에 흰 칠을 했고 입술에 붉은 물을 들여 귀녀(鬼女) 같다. 자욱한 향내는 이곳이 지상(地上) 같지가 않다. 수십 명의 궁녀, 환관이 오갔고 서 있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낮인데도 사방에 수백 개의 황금색 양초를 켜놓지 않았다면 귀신 세상 같았을 것이다. 이윽고 걸음을 멈춘 이의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기 때문에 김창준이 서둘러 엎드렸다. 마마, 신라 사신을 데려왔습니다. 이의부가 보고하고 나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엉겁결에 따라서 외친 김장준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 순간 김창준이 숨을 들이켰다. 앞쪽 계단 위에 앉은 무후(武后)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무후는 흰 얼굴에 눈썹을 진하게 그렸고 입술은 붉은 점을 찍은 것 같다. 붉은 바탕에 황금 용이 자수로 놓여진 용포를 입고 머리에는 금으로 만든 봉황 관을 썼다. 미모다. 그러나 눈길이 얼음송곳처럼 느껴졌다. 그때 비스름한 앞쪽에 엎드린 이의부가 소리쳐 말했다. 마마, 신라 사신이 황금 5천냥을 보낸다고 합니다. 김창준이 숨을 들이켰다. 이곳까지 오느라고 황금 1천3백냥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2천냥을 만나고 나서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무후에게 5천냥을 주란 말인가? 그때 무후가 입을 열었다. 신라에 대당군(大唐軍)을 보내달란 말이냐? 예, 마마. 김창준이 서둘러 대답했을 때 무후가 지그시 시선을 주면서 물었다. 신라에 금이 많으냐? 예, 많습니다. 마마. 김창준이 얼른 대답했더니 무후의 눈빛이 강해졌다. 내가 당군을 보낼 테니 황금 10만냥을 가져올 수 있느냐? 예, 마마. 백제 땅의 금화를 거두면 10만냥은 될 것입니다. 그럼 내가 곧 당군을 보내도록 하지. 마마, 성은이 망극합니다. 신구도행군도총관으로 소정방을 임명해서 출전시킬 것이다. 마마, 꼭 보은을 하겠습니다. 네가 김춘추 대신으로 대당군이 백제에 닿으면 금화 10만냥을 낸다는 약정서를 써놓도록 해라. 당장 쓰겠습니다. 곧 대당군이 출전할 테니 물러가라. 만세, 만세, 만세! 김창준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만세를 불렀다. 이의부와 함께 왕비전을 나온 김창준이 열에 뜬 얼굴로 물었다. 대감, 대왕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의부가 빙그레 웃었다. 무후께서 결정하시면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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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3 16:37

[불멸의 백제] (269)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5

그날 밤 침상에 누워있던 계백이 방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귀인(貴人) 차림의 여자가 들어서고 있다.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계백이 여자에게 물었다. 누구냐? 우에스기의 소실이었던 오타니라고 합니다. 맑고 높은 목소리였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맑은 눈으로 계백을 응시하고 있다. 거리는 다섯 걸음 정도. 기둥에 붙여 놓은 양초 서너 개의 불꽃이 흔들렸다. 여자가 들어와 공기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키가 크고 날씬했다. 긴 겉옷을 입었지만 허리를 조여맨 자태가 색정적이다. 이런. 계백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어느덧 소실이 다섯이나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죽거나 쫓아낸 영주의 처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를 가진 처첩은 함께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승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여자 측에서도 오갈 데가 없는 터라 원하는 것이다 누가 보냈느냐? 계백이 묻자 여자의 시선이 내려졌다. 예, 중신(重臣) 노무라님이십니다. 노무라가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냐? 주군께서 거부하시면 바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나가서 노무라를 불러와라. 너도 같이 들어오도록. 그러자 여자가 절을 하더니 방을 나갔다. 자시(12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거성(居城)인 토요야마 내궁 안은 깊은 정적에 덮여 있다. 계백은 이쓰와(五和) 거성에서 바다와 가까운 이곳 토요야마 성으로 거성을 옮긴 것이다. 그때 노무라와 함께 여자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너는 어떤 기준으로 여자를 내 침소에 넣는 것이냐? 계백이 질책하듯 물었지만 노무라는 머리를 들고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우에스기를 멸망시킨 후로 한번도 우에스기 내궁의 여자들을 위무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위무를 시켜? 계백이 노무라를 노려보았다. 내가 포로로 잡은 적장의 처첩을 위무시켜야 된단 말이냐? 이젠 주군의 처첩이올시다. 정색한 노무라가 말을 이었다. 주군, 한시바삐 안돈시켜 주시옵소서. 이년은 누구냐? 계백이 눈으로 오타니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무라가 서둘러 대답했다. 우에스기가 멸망시킨 북쪽 영지에서 포로로 잡혀왔다가 이번에 남게 된 여자입니다. 아비가 우에스기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래서 우에스기의 소실이 되었다가 이번에는 나한테 넘겨졌다는 말인가? 예, 주군. 본인도 주군의 소실이 되겠다고 합니다. 계백이 고개를 돌려 오타니를 보았다. 이유가 뭐냐? 예, 자식을 낳아서 의지하고 살고 싶습니다. 오타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군의 자식이라면 아무도 무시하기 못하겠지요. 강한 자식을 낳겠습니다. 숨을 들이킨 계백이 노무라를 보았다. 노무라도 놀랐는지 고개를 돌려 계백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오타니에게 말했다. 잘 알았다. 내궁에서 대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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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2 19:46

[불멸의 백제] (268)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4

잘 왔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연자춘을 보았다. 연자춘은 9품 고덕(固德) 벼슬로 칠봉산성에서부터 계백의 휘하로 종사하다가 사비도성에 남았던 장수다. 연자춘이 청에 엎드려 계백에게 말했다. 달솔, 다시 뵙게 되어 꿈만 같습니다. 연자춘은 42세, 계백보다 연상이었지만 심복으로 따르던 부하다. 이곳은 계백의 거성이 되어있는 토요야마성의 청 안이다. 연자춘이 말을 이었다. 아스카 왕궁에서 이곳까지 1천여 리 길입니다. 달솔의 영지가 8백여 리나 되었습니다. 모두 백제방의 직할령이야. 달솔께서 영주이시지요. 대영주이십니다. 연자춘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연자춘은 의자왕이 계백에게 보낸 사신이다. 의자왕이 계백의 심복이었던 연자춘을 골라 보낸 것이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청 안에는 계백의 중신(重臣) 노무라와 다케다, 그리고 하도리까지 셋만 둘러앉았다. 연자춘이 주위를 물리쳐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달솔,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계백은 고개만 끄덕였고 연자춘이 말을 이었다. 신라왕 김춘추가 당왕 이치에게 사신을 보내 원병을 청하는 한편으로 신라 안의 전(全) 군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럴 때도 되었지. 김유신을 총사령으로 하고 대장군 품일, 흠춘을 좌우에 나누어 정병 10만을 동원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기회에 당(唐)까지 멸망시켜야 될 것이다. 당왕 이치가 무후(武后)가 된 미랑에게 빠져있어서 정사는 미랑이 다 한다고 합니다. 나도 들었어.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제야말로 백제, 고구려가 중원(中原)을 차지할 때다. 예, 당(唐)도 3대(代)에 끝날 것 같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연자춘이 열기 띤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래서 대왕께서는 달솔이 정예군을 대기시켜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계백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오히려 본국이 더 가깝다. 백제방에서 본국으로 가려면 내해(內海)를 거쳐 동해로 나가야 되지만 이곳에서는 곧장 동해를 건너면 된다. 그때 다케다가 말했다. 배만 준비된다면 열흘에 본국에 닿을 수 있습니다. 주군.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연자춘을 보았다. 들었느냐? 예, 달솔. 이제 내 영지가 1백50여만 석, 기마군 2만에 보군 3만을 갖추게 되었다. 대왕께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달려간다고 말씀드려라. 예, 달솔. 두 손으로 청을 짚은 연자춘의 눈이 더욱 번들거렸다. 물기가 번졌기 때문이다. 그때 계백이 말을 이었다. 수(隋)가 3대 39년 만에 멸망하고 이제 당(唐)이 3대 40년도 안 되어서 멸망하는구나. 이제는 백제의 천하다. 수는 문제(文帝) 양견에 이어서 양제(煬帝) 양광, 양유까지 3대를 거쳤지만 양제가 목메어 죽고 나서 2대째에 멸망한 것이나 같다. 그리고 당이 이연, 이세민에 이어서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제위에 올랐지만 제 아비의 첩을 왕후로 두고 비만해서 거동을 못 하는 데다 간질병자다. 왕후 무후(武后)가 권력을 쥐었다니 곧 멸망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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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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