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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58) 13장 동정(東征) 14

오오다숲은 사방 50리(20㎞) 면적에 숲이 우거졌고 개울이 많아서 짐승들의 소굴이었다. 그래서 우에스기는 1년에 네댓 번씩 이곳에 와서 사냥을 했는데 지난번에는 곰을 3마리나 잡았다. 활로 고을 잡는 무장은 영지내(內)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우에스기는 명궁인데다 힘이 세었다. 우에스기가 사용하는 대궁(大弓)은 길이가 5자(1.5m)에 화살은 4자(1.2m)여서 작은 창같다. 오늘은 짐승이 안보인다. 오전 오시(12시) 무렵, 우에스기가 마상에서 짜증을 냈다. 오전에 우에스기가 사냥한 짐승은 꿩 3마리, 노루 1마리다. 몰이꾼인 기마군 3백이 오오다숲 동쪽을 훑어서 우에스기 앞으로 짐승을 몰았지만 큰 짐승은 보이지 않은 것이다. 기마군이 남쪽으로 돌아갔으니 그쪽은 개울이 많은 곳이라 큰 짐승이 많이 도망쳐올 것입니다. 중신(重臣) 소토메가 말했다. 이곳은 숲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동단위, 사방을 굽어볼 수 있는데다 2백보쯤 트여서 최적의 목이다. 이곳으로 사방에서 쫓겨온 짐승들이 지나가는 것이다. 지금쯤 계백이 미사코성에 가 있겠지? 불쑥 우에스기가 물었기 때문에 소토메가 고개를 들었다. 바람결에 우에스기의 머리칼이 날렸다. 투구에 흰 끈을 질끈 동여매었지만 뒤쪽을 묶은 머리털이 흔들렸다. 우에스기는 비대한 체구인데도 말을 잘 탔다. 말을 좋아해서 지금 우에스기가 타고 있는 적토마는 4대째 내려오는 순종이다. 첩자를 보냈으니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소토메가 다가서면서 말했다. 만일 계백을 처치하면 미사코성도 주군께서 차지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후쿠토미의 영지는 50만석이 넘습니다. 그러면 주군께서는 1백만석이 넘는 대영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내가 50 이전에 1백만석 영주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번에 소원이 이루어질까? 계백만 죽이면 가능한 일입니다. 소토메가 긴 얼굴을 들고 웃었다. 소토메의 여동생이 우에스기의 4번째 소실로 아들 둘을 낳았다. 그중 하나가 성주가 되었고 하나는 아직 미성년이다. 머리를 끄덕인 우에스기가 말을 잇는다. 그럼 너한테도 성주를 시켜주마. 네가 성주가 될 때도 되었다. 소토메는 44세, 우에스기의 측근에서 20년 가깝게 보냈으니 머릿속에 들어가 앉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공합니다, 주군. 감동한 소토메가 머리를 숙였을 때 서쪽에서 말굽소리가 났다. 서쪽에서도 몰이꾼이 짐승을 몰아오는 것 같다. 앞장서 달리던 계백이 공터로 다가가면서 손에 쥔 활에 살을 먹였다. 뒤를 따르던 슈토와 하도리는 똑같이 숨을 삼켰다. 그동안 하도리는 수없이 계백의 궁술을 보았다. 그러나 슈토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치켜뜬 눈을 깜박이지도 않는다. 계백이 이끈 기마군은 2백기, 숲속이어서 뒤쪽 일부분만 보인다. 2열 종대로 숲속을 달리고 있었지만 전속력이다. 훈련보다도 실전 경험이 뛰어난 군사들이다. 그 순간 숲을 벗어나면서 계백은 앞쪽 언덕 위에 서있는 우에스기를 보았다. 거리는 180보, 계백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시위에 먹이고 있던 화살과 함께 활을 치켜들면서 허리를 세웠다. 계백과 동체가 된 말이 달리면서 허리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계백을 위하여 반동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 순간 계백이 만월처럼 부풀려졌던 시위를 놓았다. 거리는 150보, 살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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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7 19:45

[불멸의 백제] (257) 13장 동정(東征) 13

성 안의 군사는 4천 남짓이지만 지휘관은 셋입니다. 미나미가 다케다에게 말했다. 오후 술시(8시) 무렵, 미나미와 다케다, 오진은 성 안 종각의 담장 옆에 둘러서 있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어서 미나미의 눈 화장이 더 뚜렷해졌다. 미나미는 35세, 3천석을 받는 우에스기의 중신(重臣). 녹봉지가 토요야마에서 1백여리 떨어진 바닷가다. 미나미가 말을 이었다. 시바다, 요미우리, 간센 세 놈인데 이놈들은 모두 우에스기의 자식이지요. 어둠속에서 미나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우에스기는 14명의 부인과 소실 사이에서 37명의 사내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18명이 스무살이 넘은 성인입니다. 그래서 휘하 군 지휘관, 성주, 측근 무장으로 모두 배치시켰지요. 자식으로 위사대를 만들겠구만. 위사대장도 12번째 아들입니다. 정색하고 말한 미나미가 다케다와 오진을 번갈아 보았다. 우에스기 가문은 백제계 얼굴에 똥칠을 하는 가문입니다. 이 정도에서 멸문을 시켜야지 자식들이 다시 씨를 뿌리면 왜국은 오염될 것이오. 미나미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미나미도 백제계인 것이다. 계백이 마상에서 고개를 돌려 슈토를 보았다. 슈토, 우에스기의 아들이 성주로 있는 성이 6개나 된다면 저항이 심하지 않겠느냐? 배다른 아들들이어서 연합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슈토가 계백 옆으로 말을 몰아 다가왔다. 깊은 밤, 계백이 이끈 기마대 5백은 우에스기 영지 깊숙이 전진하고 있다. 이곳은 거친 황야여서 인적도 없고 짐승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슈토가 말을 이었다. 형제 간의 갈등이 많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복종심도 강하지 않습니다.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아들이 37명이라니.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백제계 자손을 마구 뿌리기로 작정을 했구나. 그것이 우에스기 가문(家門)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입니다. 주군. 왜 그러느냐? 우에스기가 죽고 나면 모두 머리 잃은 뱀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온 슈토가 말을 이었다. 아들 휘하의 가신, 무장들이 심복하고 있겠습니까? 우에스기가 죽었다는 것이 드러나면 가만 두어도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디, 두고 보자.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웃었다. 이제 우에스기의 사냥터는 50여리 남았다. 지금 국경에 노부사와가 이끈 5천 군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중신(重臣) 이키타가 말하자 에미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우에스기, 그놈이 변방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까 현실감각이 무디어졌다. 나태해진 것이지요. 이키타가 말을 받았다. 에미시는 72세. 이키타도 동갑이다. 에미시를 50년이 넘도록 모신 터라 이키타는 표정만 봐도 배가 고픈지, 똥이 마려운지를 안다. 이키타가 말을 이었다. 권좌에 오래 앉아있으면 그 자리가 평생 그대로 있을 줄 압니다. 달콤한 말과 음식, 예쁜 여자에 젖어서 다른 세상을 모르게 되지요. 나한테 하는 말이냐? 주군께서는 섭정 자리를 이루카님께 넘기셨습니다. 그래도 큰 일은 내가 결정하지. 그건 그래야지요. 계백이 우에스기가 숨겨놓은 노부사와란 애송이한테 당할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군.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오히려 우에스기 가문이 멸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계백은 후쿠토미 영지에 이어서 우에스기의 55만석까지 차지하게 된다. 150만석의 대영주가 돼. 계백은 백제방 신하올시다. 대영주가 아니지요. 이키타가 긴 숨을 뱉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영지를 소유하게 되겠지요.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6 19:20

[불멸의 백제] (256) 13장 동정(東征) 12

토요야마 성을 나온 우에스기의 행차는 대단했다. 먼저 사냥감을 모으는 역할로 기마군 3백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위사대 1백이 기마로 따랐는데 깃발로 뒤덮인 행차다. 뒤로 말을 탄 우에스기가 아끼는 소실 후지코와 함께 나란히 걷는다. 주위에 가신과 시녀, 시종이 1백명 가깝게 둘러쌌고 뒤는 위사대 1백이 치중대와 함께 움직인다. 멀찍이 물러서서 우에스기의 행차를 구경하는 주민들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사냥 행차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 여자가 요즘 얻은 소실이지? 길가에 서있던 상인 복색의 사내가 옆에 선 사내에게 물었다. 후지코의 뒷모습을 눈으로 가리키고 있다. 응. 다키성의 보군대장 마누라였다는군. 옆쪽 사내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자식이 둘이나 있는 년인데 우에스기가 부르자 냉큼 달려왔다는 거야. 싫다는 년이 없겠지. 싫다면 남편에다 자식까지 몰사시킬 테니까. 저 색골은 누가 잡아가지 않나? 목소리를 죽였지만 둘러선 구경꾼들 몇은 다 들었다. 듣고도 피식거리며 웃는 것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주민 대부분이 우에스기의 행태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저 놈이 없어져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겠구나. 잘 되었다. 다케다가 발을 떼면서 말했다. 다케다는 등에 나무 짐을 짊어졌는데 영락없는 나무꾼이다. 옆을 따르는 오진, 뒤쪽에서 등에 어물 짐을 지고 있는 한고, 미타 등 10여 명도 모두 다케다의 부하다. 다 들어왔습니다. 오진이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우에스기의 거성(居城)인 토요야마성 안이다. 우에스기는 사냥을 하러 성을 나가고 다케다 일행은 성에 들어온 셈이다. 한낮, 미시(오후 2시)무렵이어서 성 안은 활기에 차 있다. 거성(巨城)입니다. 성 안을 둘러본 오진이 감탄했다. 이곳을 동방(東方)의 거점으로 삼아도 되겠습니다. 오진은 다케다의 부장(副將)으로 전(前)에는 다케다와 함께 후쿠토미의 가신(家臣)이었다. 50석을 받던 다케다는 이제 1천석 무장이 되었고 20석짜리 말단 무사였던 오진은 500석을 받는 무장이 되었다. 계백이 능력을 기준으로 녹봉을 주었기 때문이다. 둘 다 검술에 뛰어났고 학문까지 갖춰서 계백의 눈에 띈 것이다. 오진, 그대가 서문 쪽을 맡게. 다케다가 말하자 오진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다케다와 오진은 3백명을 이끌고 토요야마성에 잠입한 것이다. 모두 농부, 장사꾼, 어부로 위장하고 병장기를 숨겨서 한낮에 잠입했는데도 성문지기의 눈길 한 번 받지 않았다. 오늘이 우에스기의 사신 야쿠가 계백을 만나고 돌아간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야쿠, 네가 이번에는 미사코성에 한 번 다녀오너라. 마상에서 우에스기가 옆을 따르는 야쿠에게 말했다. 지금쯤 계백이 미사코성에 있겠지? 아마 그럴 것입니다. 미사코가 미인이라고 했는데 아깝다. 야쿠가 입을 다물었지만 우에스기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잠행을 해야겠지. 예, 주군. 계백이 당분간 그곳에 있겠지? 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가신들이 아야기했습니다. 이곳까지는 못 와. 섭정이 책임을 진다고 했어. 우에스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지코는 뒤로 떨어져 있다. 노부사다가 이끈 5천 기마군이 국경 쪽에 도착했을 거다. 만일 계백이 미사코성에서 다시 이쪽으로 온다면 그때는 영영 돌아가지 못해. 야쿠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만 끄덕였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3 19:51

전북작가회의, 서른 즈음에 펴낸 특별히 특별한 책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 <작가의 눈> 통권 25호와 테마 수필집 <천년의 허기>를 나란히 펴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흔들리는 세상을 30년 살아왔다는 전북작가회의. 그 나이 서른 즈음, 지난달 15일 같은 날 태어난 특별히 특별한 책 두 권이 반갑다. △<작가의 눈> 통권 25호 전북작가회의 김종필 회장은 <작가의 눈> 발간사에서 이 짧은 문장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다며 지난 1997년 발간한 창간호 창간사 일부를 인용했다. <작가의 눈>은 세상이 어두울수록, 세상의 몸과 마음이 썩어문드러질수록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어야겠다는 우리의 다짐인 동시에,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자 하는 작가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는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 특집, 제11회 불꽃문학상, 제9회 작가의 눈 작품상 수상작수상소감과 함께, 회원들의 신작시소설동시동화수필 작품을 383쪽에 걸쳐 씨줄날줄로 엮었다. (상략) 가야할 길들이 있다 /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들이 길을 만들 듯 / 전북작가회의 30주년 / 서른 송이 꽃송이가 피었다 / 길을 따라 나선다 저만큼 마흔 송이, 쉰 송이 / 환하다 / 그렇게 길은 시작되는 것이다 - 박남준 시인의 축시 꽃들이 길을 내어 중. 전북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 특집에서는 지난해 10월 개최한 30주년 기념 좌담회를 기록한 글을 비롯해 최동현 시인의 내가 겪은 전북작가회의 30년, 이병초 시인의 이제 너희가 대답하라! 등이 담겼다. △테마 수필집 <천년의 허기> 멸치눈물두부졸임, 아버지표 배추김치, 외할머니 도토리묵, 청포묵으로 반찬을 올리고, 호박대국, 아욱국 도 한 그릇, 나를 살린 추어탕, 붕어매운탕에 튀밥 세 봉지 . 전북작가회의 회원 40명이 음식 이야기로 밥상을 차렸다. 글마다 흑백삽화를 얹혀 읽는 즐거움도 더했다. 형형색색 먹거리가 TV를 장악했다. 모 프로그램은 패널들이 등장해 먹는 이야기로만 꽃을 피운다. 말로 맛을 음미하고 거기에 가격과 시각적인 맛마저도 품평한다. 가히 허기의 전성시대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먹거리로 채울 수 없는 허기, 그것은 그리움과 애틋함과 사랑에 관한 허기이지 않을까. 그리고 독자에게 권한다. 마흔 편의 이야기를 맛보며 허기를 채워보라고.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1.03 19:51

양우식 시집 ‘대충 살면 어때서’

양우식 시인이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시를 통해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집 대충 살면 어때서(도서출판 한솜)를 펴냈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툇마루에 앉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여유가 생겨서일까, 힘들게 지나왔던 격랑의 시간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하고 작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적어 내려간 글이 시가 됐다. 시인의 지나온 삶은 파랑 치는 바다였다. 그러한 삶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여유가 생긴 지금은 아픔도 결국 회심 속에 환기된 사랑의 결정체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힘들고 지난한 체험이라 해도 종국에는 스스로 어루만지기 마련이다. 양 시인은 깨지고 몽글어진 몽돌이 되기까지 남모를 참담함을 넘어선 격랑의 시간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의 바다는 자신을 반추시키는 울림이다. 표제작 대충 살면 어때서에서도 인생이라는 편도로 떠나온 여행길에서 / 깨달음은 그렇게 종착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시를 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절절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없었을까. 시인은 시집에서 시로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위안을 주었다고 말한다.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절제된 시적 언어는 작가뿐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 양우식 작가는 완주 삼례 출생으로 <한국문학예술>에서 동시 부문을, <대한문학>에서 수필과 시 부문에 등단했다. 지난 2011년에 첫 시집 <그런 사람 있었을까?>를 냈고, 2017년에는 수필집 <그래도 소중한 날들>을 출간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03 19:51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어머니! 당신의 몸길 위를 걸어갑니다 - 김행인

길에 대한 어느 추천사 몇 해 전 가을, 들길 하나가 내게 추천사를 써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 길이 사람을 추천하면 모를까 감히 사람이 길을 추천하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네 사람들을 낳았을지도 모를 길인데. 그즈음 나는 달이 바뀔 적마다 수십의 무리와 함께 이 산길, 저 들길을 밟으며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꽤 많은 친구들이 언제든 내가 가자고 하면 가고, 걷자고 하면 나와서 걷던 호시절이었으니, 길이 내게 추천을 청한 게 무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이름 없는 들길 하나쯤 추천해 주고 소개비를 받아먹으면 어떠랴. 하지만 나는 감히 그에 대해 함부로 주절거릴 수가 없었다. 이름 없는 길도 아니었거니와, 감히 나 같은 소인배가 이러쿵저러쿵 평을 할 대상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될 만큼, 이 들길은 내게 숭모의 대상이었다. 우리 전라북도의 이 길 저 길 곳곳을 샅샅이 헤매고 다녔고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길의 맛을 그래도 많이 아는 편이라 자부해왔음에도, 내가 이 들길에게서 받은 감동은 마치 아이에게 듬뿍 내려준 어머니 사랑처럼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몇 해 동안 가슴 깊이 간직했던 이야기. 더 이상은 묵힐 수 없어 사모곡(思母曲)을 부르듯이 끝내 털어놓는다. 구불구불 내 어머니 몸 같은 구불길 이름이 구불길이라고 했다. 낮은 산등성이와 논배미를 구불구불 돌아서 가는 길이라 붙여진 이름일지 몰라도 나는 그 이름만으로 어머니를 연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 어머니의 구불구불한 인생 여정 탓일 수도 있겠고,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 가슴과 배의 포근한 느낌 탓일 수도 있겠다. 옥산저수지 수변산책로는 구불길에서도 다섯 번째 구간, 구불5길이라고 했다. 나는 늦은 가을날 이 길을 처음 만났다. 공식 명칭이 옥산저수지라 하지만 호수라 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호수 초입에서 둑방으로 올라서면 맨 먼저 눈부신 억새 숲에 경탄을 멈추지 못한다. 둑방길에 발을 딛자마자 억새의 화려한 흔들림이 나그네 발길을 그만 붙든다. 잿빛 구름이 낮게 내려와 억새풀과 한 덩어리로 춤을 춘다. 저만치서 오색 바람개비가 자연의 풍력발전처럼 빙빙빙 돌아간다. 어릴 적 추억도 함께 돌아간다. 호수 위 하늘 높이 방패연이라도 띄우면 좋을 것처럼 바람은 세차다. 이 인공 언덕 위의 풍경은, 가을 끝자락에서 탈색한 나무와 빛들의 떨림이 한가락 자연의 노래를 들려준다. 둑방길을 뒤덮은 억새 숲길을 지나 수변산책로로 들어선다. 잘 단장된 산책로는 가을 내내 떨어져 길 위에 곱게 쌓인 낙엽들 덕분에 푹신푹신하다. 주변의 온 산을 뒤덮은 마삭줄은 낙엽과 함께 포근한 이불이 되어 촉촉한 마사포길을 만들어 주었다. 걷는 내내 나그네의 발은 안식에 젖어든다. 호수 옆으로 낙엽이 온통 다 떨어져 쌓인 갈숲 흙길은 구불길의 압권이다. 숲속의 은은한 나무 향은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내내 건강과 치유의 향을 맘껏 나눠주고, 낙엽이 쌓인 포근한 길은 편안한 촉감으로 내내 발길을 감싸 준다. 나그네의 호사다. 가만 보니 길 주변에 습지가 잘 발달된 자연생태학습장이 형성되어 있다. 곤충과 야생화, 새 들이 공생하는 체험학습장이다. 곳곳에 표시된 안내판에는 서식하는 생물 종류의 다양성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저수지의 물빛도 아름답거니와 나뭇잎 모양의 녹색 의자며 노란색 안내판, 둥근 통나무 의자, 나이테가 선명한 널빤지 모양의 긴 의자, 녹색 화살표가 선명한 빨래판 모양의 이정표 등 세심하게 공들인 시설들도 아름답다. 자연의 경치 못지않게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정성스러운 길이다. 이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아오른 대나무 숲길이 반겨준다. 두어 번 깊은 호흡을 하고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맑아진다. 이산화탄소를 몽땅 빨아들이고 산소를 뿜어내는 대나무 숲은 그야말로 하마 숲이라 할 수 있겠다. 호수 주변에는 물빛길, 꽃향기길, 대나무숲길, 소나무숲길, 단풍나무숲길, 왕비들나무 같은 다양한 활엽수와 침엽수가 무성하게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호숫가 둑길을 걷다가 산자락으로 접어들면 위태로울 만치 바짝 좁아진 수변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위 오솔길을 걷기도 한다. 호젓한 숲길을 걷노라니 늦가을 쌀쌀한 바람을 막아 주는 소나무 숲을 뚫고 황금빛 석양이 눈부시다. 한참을 걷다가, 몸 안 어디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느낌에 파르르 떨고 만다. 가만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이 나뭇잎에 비치는 햇빛에 부딪혀 떨리는 것이었다. 아! 나는 순간 가슴이 쿵 울리고 말았다. 어머니 숨결 같은 햇빛, 그 안에서 아주 작은 내가 태어나고 있었다. 이름마저 빼앗긴 굴곡진 역사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청암산은 원래 취암(翠岩)산이었다. 푸르다는 의미의 취암산이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푸를 청(靑) 자를 써서 청암산으로 이름을 둔갑시켰다니, 남의 땅 이름을 함부로 바꿀 정도라면 그만한 저의가 있었겠다. 산 주변을 물로 가득 채워 버린 대공사가 들판을 내려다보던 바위의 색깔을 아예 바꿔 버리지 않았겠는가? 주변이 온통 논이던 해발 116.8미터짜리 낮은 산을 파헤치고 둑을 쌓아서 저수지로 바꿔 놨으니 말이다. 일제 강점기 1939년 옥산ㆍ회현 일대에 수원지로 조성한 옥산저수지가 이 호수다. 해안을 끼고 비옥한 대지를 가진 옥산, 회현, 대야, 임피, 서수 들녘에서 많은 농산물이 생산된 곡창지대 군산. 이를 수탈하기 위해 전군도로와 철도를 만든 일제가 곡물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저수지가 필요했다. 이 호수는 오늘날 군산의 제2저수지다. 주변 농경지와 군산 시민의 상수도 역할을 한다. 1963년부터는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물이 깨끗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호수 주변의 자연 생태까지 잘 보존되었다. 일제가 옥구 평야의 미곡을 퍼내가기 위해 산을 파헤치고 둑을 쌓고 논을 막아 만든 인공의 저수지가, 어언 80년이 지나는 동안 물 맑은 호수로 변모했다. 세월이 오늘날의 천연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군산 옥산저수지, 아니 옥산호수의 수변산책로는 청암산 능선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과 호수를 옆으로 끼고 도는 구불구불한 수변길이 나란히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14.8킬로미터에 이르는 구불 5길, 7시간은 걸려서야 다 걸을 수 있다는 군산 구불길 25킬로미터 중에서 절반을 넘는 길이다. 햇볕 창창한 가을 문턱이다. 나는 또다시 이 길을 찾아 일상의 무게를 물 위에 띄워 올리고 싶다.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둑방길 억새밭을 지나 숲의 호흡을 느끼며 타박타박 호수 둘레를 걷는 안식의 길. 굴곡진 역사를 살아온 내 어머니 구부러진 몸 같은 길. 알록달록 수풀이 우거진 호수 주변을 따라 이리저리 느릿느릿 구부러지고 싶다. *김행인(본명 김수돈): 평화동마을신문 편집인/마을미디어 운동가/시인. 2010년 월간 『문학바탕』 신인문학상.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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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3 19:51

전북도립국악원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25·26호 발간

전북도립국악원이 전통 예인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를 더듬어 그들의 예술 편린을 살펴보는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전북의 전통 예인 구술사> 제25권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강정렬 편, 제26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수궁가) 예능보유자 김소영 편. 강정렬 편은 강 명인의 출생과 성장, 삶과 예술 그리고 제자들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남성 가야금병창의 맥을 잇는 강 명인의 집안 내력과 스승들로부터의 학습 내력, 부산에서의 활동 사항,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의 특성, 정달영류 가야금병창의 특징을 세세히 수록했다. 강 명인은 전통시대 마지막 예술인으로 평가받는다. 전통시대 예술인이란 스승과 일대일로 교육받는 이른바 구전심수로 학습한 세대를 일컫는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악가무 일체를 총체적으로 습득한 세대라는 점이다. 실제 그는 가야금산조로 국악에 입문한 이래 판소리와 가야금병창, 아쟁에 이르기까지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김소영 편은 전주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승되는 동초제를 잇고 있는 김 명창의 가정환경과 학습 과정, 예술 활동을 담고 있다. 김 명창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춘향가) 예능보유자였던 김유앵 선생의 친조카로, 홍정택 명창은 그의 고모부이다. 오정숙 명창은 그의 판소리 스승이기에 앞서 아버지의 막내 이모이기도 하다. 그 밖에 전주 출신 명창들이 그와 친척 관계에 있다. 김 명창은 1990년 남원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을 수상해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2012년 각종 국악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명창들이 한자리에 모인 제1회 독도사랑 국악사랑 대한민국 국창대회에서 최고상인 독도국창상을 수상해 국창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9.01.03 19:51

당신의 인생을 바꿀 신의 한 수 ‘왼손 필사’

삐뚤빼뚤 오른손잡이가 왼손에 연필을 쥐면 글씨는 힘없이 나부낀다. 막 글을 배우는 어린아이의 글씨를 보는 듯하다. 오른손잡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봤을 이 왼손 필사를 꾸준히 실천한 조영권 왼손필사재능&학습연구소 소장은 자신이 겪은 기적 같은 체험을 털어놓는다. 특히 오른손 필사로 암송에 실패했던 정호승 시인의 5개 연으로 된 산문시 서울의 예수를 2시간 30분 만에 모두 외워 쓴 일은 그에게는 정말 큰 사건이었다. 자기계발서 <왼손으로 써봐-네 인생이 달라질 테니>는 조 소장과 그 주변인들이 왼손 필사를 체험한 사례와 그 효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소개한 책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 필사를 하면 좋은 점이 책 전반에 걸쳐 자세히 설명돼 있다. YTN에서 20년간 기자로 일한 저자는 취재 현장을 누빌 때 기사를 더 효과적으로 작성하기 위해 소설을 꾸준히 필사했다고 한다. 누나 조미애 시인으로부터 시 창작 지도를 받으면서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고, 시를 더 잘 쓰고 싶은 바람으로 왼손 필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왼손 필사를 한 달 이상 꾸준히 한 학생이나 주변인이 직접 겪은 효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학습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 기억력이 감퇴하는 어른들이 기억력과 집중력은 물론 자신감까지 키운 사례들이 등장한다. 모두 그가 개발한 한줄기억 왼손 필사법을 경험한 이들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줄기억 왼손 필사법은 저자가 왼손 필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한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면서 암송한 뒤 왼손으로 필사하면 된다. 이 필사법에 관해 그는 누구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자기 계발법이자 학습법이라고 강조했다. 조 소장은 사실을 중시하는 기자로 20년을 생활한 이가 이 책에서 다소 황당한 말을 늘어놓은 듯싶어 겸연쩍을 때가 있다. 하지만 왼손 필사가 우리의 지적 삶에 일으킨 기적 같은 변화는 직접 겪고 눈으로 확인한 그대로 사실이라며 한줄기억 왼손 필사가 멋진 글쓰기와 더 나은 학습을 위한 기분 좋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9.01.03 19:51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 “나 자신과 주변 사람 위한 글 쓸게요”

삶이 문학이었던 사람들. 피부관리실 원장, 초등학교 교사, 문학관 전문위원 등 생업에 매진하면서도 늘 작가를 본업으로 삼고자 했던 사람들. 그들이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자는 지난해보다 29명이 늘어난 871명. 이 가운데 한경선(60시), 권준섭(22단편소설), 김영숙(45동화), 이진숙(54수필) 씨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이들에게 당선 소감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 한경선 씨 한경선 씨는 수필, 소설, 시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소우주를 창조해왔다. 한 씨는 34세 때부터 수필을 접한 뒤 40세 때 정수남 소설가가 운영하는 일산문학학교에서 소설을, 57세 때 동국대 일산캠퍼스 평생교육원에서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를 배운 뒤 신춘문예 공모에 도전하기를 수십번.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고비라 생각한 순간,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글을 쓰게 한 동력은 번뇌였다. 부조리한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해지는데 그게 안 되면 세상과 끊임없는 긴장 상태가 됩니다. 들어줄 사람 없는 말들이 거품처럼 일어나 아우성치는 때가 있어요. 저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해 글을 썼던 것 같아요. 당선작인 훈민정음 재개발 지구도 서울 부동산시장의 불패 신화라는 부조리한 경제 현상을 통해 공수래공수거 정신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역설적이지만 논어에 나오는 술이부작이란 말을 깊이 되새기고 있다며 공부하고 정진해 세상에 꼭 나와야만 하는 시를 쓰고 싶다. 딸들이 살아갈 세상이 정신적으로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지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단편소설 권준섭 씨 권준섭 씨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옆자리 짝이 소설 쓰는 모습을 보고 시작한 글쓰기는 중학생 무렵부터는 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됐다. 지금껏 살아온 짧은 인생 절반을 소설을 쓰며 보냈다. 녹록지 않은 글쓰기에 자신만의 동기를 부여하고 싶어 도전한 게 신춘문예다. 치열한 지난 시간의 보상일까. 첫 도전에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작가는 신춘문예에 도전해봄으로써 글 쓰는 동기를 부여하고, 미력하나마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가늠해보고 싶었다며 부족한 작가에게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밝혔다. 권 씨는 소설 속에 담긴 신선한 시각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고 겸연쩍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모습을 비틀어 바라보며 시각을 달리할 수 있는 모습은 갖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평했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라는 질문은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약해지고 힘들어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쓸 생각이라며 담대한 문학적 가치보다는 글을 통해 작가와 독자 모두 위안받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동화 김영숙 씨 김영숙 씨는 신춘문예 응모작이 대구에서 전북으로 여행을 갔다고 했다. 낯선 도시의 설렘. 김 씨는 그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난 작품이 당선 소식을 알려왔다. 제 작품이 여행을 갔다고 느꼈어요. 당선된다면 나도 작품이 떠난 길을 따라 그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했죠. 상상이 현실이 돼 당선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김 씨는 3년 전 처음 신춘문예에 도전한 이후 두 번째 도전 만에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대신 초등학교 교사인 김 씨의 일상은 동화적 언어로 가득하다. 일기나 독후감 등 아이들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는 때론 훌륭한 글감이 되기도 한다. 학교에 있다 보니 매일 아침 30분씩 아이들과 독서 시간을 보내요. 그때 아이들은 보통 만화책을 많이 읽어요. 내가 동화를 재밌게 써서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었으면 했죠. 동화를 읽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요. 동화책뿐만 아니라 그림 동화책에도 관심이 많다는 그는 짧은 이야기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선 스스로 더 많이 다듬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열심히 갈고닦아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 동화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수필 이진숙 씨 이진숙 씨는 어릴 적부터 가졌던 작가라는 꿈을 속된 말로 먹고 사는 게 바빠 잊고 지냈다 말한다. 그는 글 쓰는 일은 쉬지 않았지만, 치열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우연하지만 불행했던 기회에 다시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됐다. 뇌경색으로 입원해 병마와 싸웠던 그는 너무 바쁘게 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 같다며 감사하게도 몸 상태가 호전돼 퇴원한 후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최명희 작가의 향수가 묻어난다. 최명희문학관 전문위원으로 혼불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일상이 영향을 미친 터. 작품 속에 음성 상징어가 많이 들어있는 것도 그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이 씨는 우리 말에 대한 아름다움과 애착을 표현한 최명희 작가를 동경해왔다며 이제 미흡하나마 그녀의 발자국을 한 걸음씩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된다고 말했다. 수필뿐 아니라 소설, 동화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언어를 표출해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매일 진실한 삶을 살며 그 진실한 삶을 글로써 오롯이 표현해내고 싶다. 우리네 삶과 밀접한 글을 쓰며 나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도 함께 위로받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문민주, 천경석 기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9.01.02 19:46

[불멸의 백제] (255) 13장 동정(東廷) 11회

기치성의 계백에게도 우에스기가 보낸 사신이 왔다. 전령이 돌아온 다음 날이다. 사신은 우에스기의 가신(家臣) 야쿠, 40대쯤의 마른 체격으로 눈동자가 자주 흔들렸다. 납작 엎드려 절을 한 야쿠가 계백을 보았는데 눈동자가 왔다 갔다 했다. 계백의 눈빛이 강해지자 더 자주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위인은 상대가 약하게 보이면 대번에 눈꼬리와 어깨가 올라간다. 야쿠가 입을 떼었다. 백제방 달솔이시며 소덕이시고 대영주이신 계백 대감께 문안드리오. 계백은 쳐다만 보았고 좌우에 벌려 앉은 슈토, 하도리, 노무라, 다케다 등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가와사키와 기치성의 관리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에 야쿠의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침을 삼키고 난 야쿠가 말을 이었다. 제 주군 우에스기께서는 대감께 안부를 물으시고. 잠깐. 야쿠의 말을 자른 것은 하도리다. 하도리가 눈을 부릅뜨고 야쿠에게 물었다. 네 주군 우에스기님의 직위가 무엇이냐? 기세가 등등했기 때문에 야쿠가 저절로 대답했다. 예, 7품 대의(大義)올시다. 나는 대백제의 7품 장덕(將德)이니 이곳 왜국의 직위는 1등급 오르게 되는 터라 6품 소신(小信)이다. 알고 있느냐? 모, 모르고 있었습니다. 네 주군 우에스기님보다 1등급 높다는 뜻이야! 예, 나리. 그런데 7품 대의의 신분으로 왜국 직위 2품 소덕의 대감께 감히 안부를 물어? 예? 야쿠의 얼굴에서 조금 전부터 땀방울이 돋아나더니 이제는 하얗게 굳어졌다. 어깨를 부풀린 하도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는 내가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도 네 주군은 나한테 아무 말 못하게 되어있다. 아느냐? 예, 나리. 야쿠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을 때 계백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만해라. 예, 대감. 위계질서를 모르니까 한 말이다. 예, 7품 주제에 2품 대감께 감히 안부가 어쩌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족보도 없는 가신 놈의 주둥이로 말입니다. 하도리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이놈들이 안하무인입니다. 조정과 대백제에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계백이 짧게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 아닙니다 대감. 소신나리. 야쿠가 허둥대었을 때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신 야쿠의 인사말도 다 듣지 않은 것이다. 계백이 일어서자 휘하 장수들도 따라 일어섰고 청 안에는 가와사키와 서너 명의 무장만 야쿠와 함께 남았다. 가와사키가 야쿠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것 보시오, 야쿠님. 차라리 가만있으셨던 것이 나을 뻔했소. 가와사키가 낮게 말하자 아직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야쿠가 중얼거렸다. 아니, 안부를 묻는 것이 무슨 죄라고. 글쎄, 그 안부란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니, 왜. 대감께서 내일쯤 급히 회군을 해야 하실 것 같소. 미사코성, 그러니까 후쿠토미의 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말요. 반, 반란이 말이오? 그래서 지금 대감 주위의 분위기가 흉흉한 거요. 정보를 수집한 후에 대감은 군사를 이끌고 내일 회군하실 거요. 아하. 자, 나하고 같이 저녁을 먹읍시다. 아니, 아직 이른 시간인데. 주춤거리던 야쿠가 발을 떼면서 말했다. 난 그냥 도성으로 돌아가겠소. 인사는 했으니 상관없겠지요?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2 16:43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성냥팔이 소녀 - 김영숙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밤입니다. 식당에 일하러 나가신 엄마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은미와 은수는 엄마도 기다릴 겸 현관 앞에 나란히 앉아 눈 구경을 합니다. 누나. 응? 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야? 은수가 양손을 볼에 딱 붙인 채 은미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습니다. 비가 얼면 눈이 된대.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그랬어. 그럼 선녀님들이 뿌려 대는 솜 같은 건 아니란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왜 하얀색이야? 무지개색이면 엄청 예쁠 텐데. 어휴, 이 녀석이. 은미는 이제 은수가 묻는 말에 답하는 것이 귀찮습니다. 1학년인 은수는 항상 궁금한 게 많으니까요. 이제 그만 좀 물어. 나 눈 구경할 거야. 치, 누난 항상 그래. 공부도 못하면서. 뭐? 3학년이면서 구구단도 못 외우잖아. 메롱! 은수는 놀리듯 이렇게 말하곤 곧바로 일어나 눈 속으로 달음질칩니다. 누나, 나 지금부터 코끼리만한 눈사람 만들 거다. 나랑 같이 만들지 않을래? 싫어. 너 같은 심술쟁이랑은 같이 안 놀 거야! 허벅지 사이로 두 손을 꼭 끼운 채 현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은미의 모습이 꼭 파란 색상지 위에 그려진 마트료시카 인형 같습니다. 그 둥근 인형 뒤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 끝에는 창문도 없고, 온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런 낮에도 밤처럼 깜깜한 은미의 집이 있습니다. 빛바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출입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퀴퀴한 곰팡내와 기름때로 얼룩진 부엌, 그리고 두꺼운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좁다란 방이 등장합니다. 은미와 은수는 그 속에 파묻혀 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라면도 먹고, 그러다 잠이 듭니다. 솔직히, 아무리 이불을 많이 깔아 놓아도 춥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 겨울 내내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나고, 머리는 어지럽고, 몸에선 열이 납니다. 감기가 시작되는 며칠은 이런 것들로 괴롭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그런대로 견딜만합니다. 오후 늦게부터 내린 눈이 이젠 제법 많이 쌓였습니다. 눈나라 밤하늘 아래, 움직이는 것이라곤 은수뿐입니다. 얼굴에 주근깨투성이인 은수는 정말 개구쟁이입니다. 발목까지 쌓인 눈 속에서도 폴짝폴짝 잘도 뛰어 다닙니다. 가끔 발걸음을 멈춘 다음 눈을 날름 받아먹기도 하고, 권투를 하듯 잔뜩 움켜쥔 주먹을 이리저리 휘둘러보기도 합니다. 너, 그러다 감기 또 걸린다. 은미는 은수를 불러 까까머리 위에 쌓인 눈송이를 톡, 톡, 털어 줍니다. 괜찮아. 감기는 맨날 걸리지만 눈은 항상 오지 않잖아. 은수의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들려오는 은수의 기침소리는 항상 걱정입니다. 모든 지붕은 하얀 기왓장으로 새롭게 단장해 버렸고, 담장 위로 우뚝 솟아오른 나뭇가지엔 목련꽃만한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둠 속으로 흩날리는 눈송이는 콩알처럼 작게 보이고, 가로등 앞에서 폴폴대는 눈송이는 포도알처럼 크게 보입니다. 정말, 엄청난 폭설입니다. 이렇게 눈으로 덮인 세상을 말똥히 바라보고 있으니, 은미의 머릿속으로 한 소녀의 갸름한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겨울이 지나면 은미도 이제 의젓한 4학년이 되겠구나. 어젯밤, 어머니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은미에게 <안데르센 동화집>을 사 주셨습니다. 은미는 학교 숙제도 잊은 채 밤 세워 그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은미는 특히 <성냥팔이 소녀>를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눈 오는 섣달 그믐날, 한 갑도 팔리지 않는 성냥을 들고 얼어버린 맨발과 맨손으로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소녀가 등장하는 동화 말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은미는 소녀와 자신이 꽤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좋아했던 아버지도 그렇고, 가난하다는 점도 그렇고, 아니 어쩌면 이렇게 두툼한 이불 속에 파묻혀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이 그 소녀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행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은미는 이 눈 내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이야기 속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 봅니다. 그러다 문득, 동화 속 내용을 한 번 따라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 직접 경험해봐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래야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이라고. 물론, 성냥팔이 소녀를 따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성냥은 방에 있을 것이고, 소녀의 얼룩진 옷은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외투와 비슷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펄 펄 눈까지 내립니다. 은미는 재빨리 지하 단칸방으로 내려가 성냥을 찾습니다. 다행히 엄마 화장대 서랍 속에 조그만 성냥갑 하나가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오는 은미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현관 앞에 도착한 은미는 양말을 벗어 신발 속에 집어넣은 다음 눈 쌓인 골목길을 맨발로 걸어 봅니다. 서,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하지만 은미의 성냥을 사 줄 행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위는 마치 텅 빈 성당 안 같습니다. 골목 군데군데 솟아 오른 은행나무들만이 하얀 외투를 걸친 채 은미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차츰, 눈 속에 묻힌 두 발이 시려옵니다. 은미는 황급히 현관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아이, 발 시려. 현관 앞에 도착한 은미는 서둘러 신발을 신습니다. 순간, 어디선가로부터 성냥팔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뭐? 나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맨발로 눈 속을 몇 걸음도 걷지 못하는 네가? 은미는 부끄러워 신발을 벗습니다. 하지만 저 차가운 눈밭 속을 다시 걸을 자신이 없습니다. 은미는 그렇게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현관 앞에 웅크리고 앉습니다. 그리고 성냥갑 속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입니다. 환한 불빛 때문인지 은미의 볼그레 달아오른 볼이 더 붉게 보입니다. 누나, 뭐해? 밤에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 놀이터 쪽에서 눈을 뭉치던 은수가 은미를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응, 자꾸만 성냥팔이 소녀의 모습이 떠올라서. 성냥팔이 소녀? 그게 누구야? 책을 싫어하는 은수가 성냥팔이 소녀를 알 리가 없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설명을 해 줘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 성냥을 팔아서 살아가는 여자아이인데, 오늘처럼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추위에 떨다 그만 죽어 버렸대. 정말 불쌍하지? 하지만 은수는 은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눈밭 위를 내달리며 열심히 눈뭉치를 굴립니다. 눈발이 많이 약해 졌습니다. 잠시 후면 그칠 모양입니다. 은미는 다시 몇 개의 성냥에 불을 붙입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불꽃을 바라보며 그랬듯이 등에 포크가 꽂힌 거위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꼬마전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영 또렷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개의 성냥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집니다. 은미의 가느다란 손가락 위엔 이제 마지막 성냥이 놓여 있습니다. 은미는 그 성냥에 불을 붙입니다. 포르락하고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은미는 천천히 두 손을 모읍니다. 순간, 불꽃 속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 백짓장처럼 희고 가냘픈 얼굴. 분명, 어젯밤 동화책 속에서 보았던 성냥팔이 소녀의 얼굴입니다. 바로 너였구나! 은미는 반가운 마음에 소녀를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하지만 소녀는 은미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단지 구름처럼 공중에 떠 있는 할머니의 도톰한 얼굴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할머니, 절 데려가 주세요. 소녀가 이렇게 나지막이 속삭이자, 할머니가 눈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녀의 하얀 볼은 다시 붉어지고 입가엔 초승달 같은 미소가 번집니다. 소녀는 졸음에 겨운지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그래, 착한 아기야. 나에게로 오렴. 할머니가 두 팔을 벌립니다. 그제야 은미는 불안합니다. 은미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추운 겨울, 거리에서 잠이 들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은미는 소녀를 향해 뭐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술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끈적끈적한 풀로 단단하게 붙여 놓은 것만 같습니다. 안 돼! 그렇게 잠들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단 말이야. 제발, 일어나!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 난 말이야. 눈 속에 묻힌 네 발이 얼마나 시렸을지, 성냥불로 언 몸을 녹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충분히 알 것 같단 말이야. 그러니 제발 눈을 떠. 일어나란 말이야! 아, 불꽃 속의 소녀는 이제 할머니의 품속에 완전히 잠겨버렸습니다.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퍽! 순간, 굵다란 눈뭉치가 은미의 머리위로 떨어집니다. 헤, 헤, 미안해. 은수입니다. 은수 옆으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은미 너 졸았구나. 엄마가 돌아오셨습니다. 엄마! 은미는 벌떡 일어나 엄마의 품속으로 와락 달려듭니다. 엄마의 품속은 역시 따스합니다.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이런데서 잠들면 정말 큰일 난다. 누나 진짜 잔거야? 아냐. 그냥 잠시 은미는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더니, 잽싸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눈으로 뒤덮인 동네 풍경과 은수가 만들어 놓은 장독만한 크기의 눈사람뿐입니다. 꿈이었구나. 은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엄마의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걸음을 떼려는 순간, 은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엄마의 까칠까칠한 손을 입 가까이로 가져갑니다. 응? 손이 왜 이렇게 차? 꼭 얼음장 같아. 그리고 호, 호 하고 연방 입김을 불어댑니다. 원 녀석도. 나 보다 네 손이 더 찬 것 같은데. 엄마는 그런 은미가 대견스러운 듯 흐뭇한 미소를 머금습니다. 엄마, 누나 발 좀 봐. 맨발이야! 이번엔 은수가 놀란 듯 은미의 발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칩니다. 그제야 은미는 자신이 맨발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현관 바닥 위에 서 있는 은미의 두 발이 전혀 시리지 않습니다. 아니, 꼭 따스한 난로 옆에 서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은미는 신기한 듯 한 쪽 발을 들어 올려 손으로 만져 봅니다. 엄마, 나 이상해! 발이 전혀 시리지 않아. 순간, 은미의 몸이 공중으로 힘차게 솟구치더니 엄마의 가슴 깊숙이 파묻힙니다. 어휴, 발이 얼었나 보네. 이런 말썽꾸러기. 신발도 신지 않고 눈 구경을 하다니. 엄마의 품속은 더없이 따스하지만 왠지 답답합니다. 엄마는 꽁꽁 언 은미의 두 발을 계속 손으로 문지릅니다. 그러자 은미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엄마, 나 내려 줘! 정말 괜찮아. 하나도 발 시리지 않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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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한 걸음 - 이진숙

토오옥, 토오옥. 봉황산 밑에서 깨 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저기 엄마가 계시는구나,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더욱 바빠진다. 예전 같으면 한걸음에 갔을 텐데. 뇌경색으로 퇴원한 지 일주일. 아직은 마음을 안 따라주는 몸이다. 부르르, 부르르, 트리를 불고 혀를 잘근잘근 씹어본다. 다시 천천히 힘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엄마 숨결을 향해 발을 옮긴다. 바람의 무게가 느껴진다. 한 걸음.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난다. 샛노랗게 달린 열매에서 향긋한 향이 흘러나온다. 향의 소리도 가을 하늘만큼 상큼하고 신선하다. 어린 날의 추억이 슬그머니 기지개를 편다. 날카로운 가시를 피해가며 잘 익은 탱자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넣었다. 눈이 찡긋해질 만큼 새콤달콤한 맛이다. 동글동글 씨앗들이 한입 가득 남는다. 후루루 퉤, 입안이 알싸하다. 코끝까지 개운해진다. 엄마는 그것을 뒷마루에 말려두었다가 우리가 고뿔이라도 걸릴 양이면 화롯불에 약탕기를 올려놓고선 내내 달였다. 그런 날은 달빛조차 환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시 한 걸음. 발이 돌에 걸려 삐끗했다. 작은 돌멩이에도 이젠 균형을 잃는다. 발밑을 조심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질경이가 밟혔다. 엄마는 이것을 소달구지 밑에서도 살아남는 배짱 좋은 녀석이라고 했다. 길가에 흔한 풀로 산에서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질경이는 고소한 냄새로 남아있다. 엄마는 그것을 끓는 물에 데쳐 간장 넣고 조물거리다가 참깨를 뿌리고 들기름을 살짝 쳐서 무쳐 주시곤 하셨다. 지금도 그 고소함이 땅에 납작 엎드린 잎에 묻어 있다. 갈색이 되어가는 씨앗들도 대글대글 영글어 있다. 무르익어가는 것이다. 나도 이처럼 잘 익을 수 있을까? 오십 초반에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쉼표를 허락하는 선물임을 확신한다. 이렇게 한 걸음에도 5초 이상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잠포록한 날씨다. 또 한 걸음. 한 해를 달려온 엄마, 그녀의 마지막 숙제인 배추밭을 지난다. 일렬로 길게 뻗은 밭이랑에 진녹색 배추가 예닐곱 겹의 속살을 채워가고 있다. 김장철이 오면 노랗게 속이 찬 배추가 토방 가득 쌓이겠지. 배추를 네 조각으로 가르고, 그것을 소금에 절여 한밤을 재울 것이다. 품앗이 온 이웃 아주머니들과 무채를 치며 밤새는 줄 모를 것이다. 참깨 볶는 향이 진동하고, 시원한 배와 사과, 생강과 마늘, 대파, 양파의 매콤함과 달큼함이 온 마당을 차지할 것이다. 찹쌀 풀을 쑤어 태양초 고춧가루와 섞은 후 설탕 대신 홍시를 넣고, 까나리 액젓과 새우젓, 온갖 양념거리를 한데 섞어 버무리면 양념 준비는 끝이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배추에 빨간 양념을 입히며 시집간 딸 이야기와 갓 태어난 손주 이야기로 꽃을 피우시겠지. 부엌에선 보쌈 익는 냄새가 구수하고, 갓 버무린 배추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어 깨소금 듬뿍 묻혀서 고기 한 점을 싸 먹으면 겨울의 매운바람도 시어머니의 독한 시집살이도 모두 고소한 추억으로 변화될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두부를 가운데 놓고 한 입 두 입 김치와 곁들여 먹는 재미도 뺄 수 없다. 편하고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나는 김장문화가 변질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또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고구마를 캐내고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황토가 보인다. 무더기무더기 된서리를 맞은 고구마 순들은 축축 늘어져 있다. 그 옆으로 노란 호박이 하나, 둘, 셋. 여덟 덩이나 달려 있다. 늙은 호박을 갈아서 부침개를 해 먹고, 호박죽을 쑤었던 그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우리 여덟 남매와 작은집 여섯, 고모네 여덟 남매를 책임졌던 엄마의 식사 준비에 호박죽이 최고였다. 언니들과 나는 빙 둘러앉아 한 나절 내내 달챙이숟가락으로 껍질을 긁고 속을 파냈다. 호박씨는 깨끗이 씻어 채반에 말렸다가 백산을 만들 때 고명으로 쓸 것이다. 뭉텅뭉텅 토막 낸 호박을 큰 가마솥에 넣고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끓여준다. 거기에 불린 찹쌀을 학독(돌확)에 갈아서 부어준다. 불렸다가 삶은 붉은 팥도 넣으면 궁합이 제격이다. 한참을 젓다 보면 몽글몽글 밝은 주황빛 죽이 된다. 어우렁더우렁 조화를 이루며 살던 배부른 가난이 해결되는 순간이다. 찹쌀 새알을 넣어 끓인 뜨끈한 호박죽을 생각하며 한 걸음에 힘을 모아 다시 발을 옮긴다. 툭, 툭, 툭. 엄마가 보인다. 토독, 토독, 토도독, 산 그림자가 짙게 내려와 누운 봉황산 자락에 깨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무죽죽하게 마른 들깨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은행나무에 기댄 채 돌아앉아 깨를 터는 엄마의 뒷모습은 작고 쓸쓸하였다. 머리카락을 감싼 하얀 수건엔 검불이 쉬고, 웅크린 등으로 고단한 가을바람이 끙끙거리며 지나간다. 내가 다가서는 것도 모른 채 긴 막대기로 깨를 터는 구순의 엄마. 십 년 전 먼저 떠난 남편의 빈자리, 그 허전함을 애써 털어낸다. 톡톡,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이 한 보따리 털어진다. 먼저 가버린 큰아들에 대한 애증이 또 한 보따리 쏟아진다. 진안 성수면 봉황산자락 상수리나무도 노랗게 다홍으로 물들어 가는데 돌아온다는 소식이 없는 이들을 부르는 소리다. 나는 아픈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허리를 세우고 웃음으로 입 꼬리를 올린다. 솔음으로 엄마를 불러본다. 엄, 마, 엄마! 소리는 울음을 먹고 잠긴다. 쪼그라든 엄마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엄마의 깨 터는 소리는 여전히 봉황산에서 놀고, 엄마의 지게에 근심 한 짐을 더 지울 나는 한숨처럼 발길을 돌린다. 내 소리를 더 키워서 와야지. 내 걸음에 힘이 실리면 저 깨를 같이 털어야지. 고단한 엄마의 걸음에 힘을 주는 막내가 되어야지. 무수히 떨어지는 저 근심 덩어리가 웃음소리가 되기를 빌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들깨의 고소한 향이 한 걸음 앞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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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훈민정음 재개발지구 - 한경선

강남로 집현전 부동산 내벽에는 매물로 나온 낯선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푸른 종이 속 세종대왕을 사랑한 삼촌은 강남로에 집현전을 차려놓고 그 안에 가득 바람을 풀어놓았다 이곳의 바람은 타워팰리스 하늘과 내통한 지 이미 오래다 집현전 내벽에 새롭게 나붙은 훈민정음을 보며 성층권에서 내려온 별똥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별똥들의 방언도 이곳에서는 종종 새로운 훈민정음으로 인정된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소문의 지도를 따라 북두칠성이 제 궤도를 돌 때 궤도를 벗어난 뭇별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각진 상자 한 귀퉁이에 지친 제 하루를 누인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상자 속의 상자 앰뷸런스 소리가 빈번한 이곳 곽에서 관으로 이동하는 길목에도 훈민정음이 있다 흐린 불빛을 달고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관은 언젠가는 땅속 깊이 스며들어 더 이상 길어 올릴 수 없는 검은 우물을 만질 것이다 노숙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이미 그 우물의 색깔을 알고 있다 종종 허름한 지하방으로 스며들던 그 우물의 예언을 사람들은 한때 언문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순식간에 곽이 관으로 변하는 것은 집현전의 소관이 아니다 ㄱ자로 꺾인 길을 돌아 ㄴ자로 통하는 길은 강남로 후미진 골목 도처에 널려 있다 나랏말싸미 세상인심과 달라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주위에 이상한 소문의 울타리를 친다 바람이 곽을 슬쩍 밀면 순식간에 관이 되는 이 새로운 골목에서 세종대왕을 사랑한 삼촌은 집현전 벽면에 새로운 훈민정음을 붙이고 네모난 상자곽 안의 잠을 사랑한 아버지는 오늘도 당신의 잠 속에 칠성판을 그려 넣고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아버지에겐 종종 잠도 또 다른 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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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창 - 권준섭

1. 타인의 창을 또렷하게 눈에 담은 건 17살 늦봄 때의 일이었다. 그는 전학을 간 학교에서 창가 반대쪽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교실에서 유일한 빈자리인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다른 여자애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애 옆에 앉는 것이 다소 신경이 쓰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은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지금 어디서 사는지 물어볼 법도 했는데, 하루가 끝날 때까지 말을 걸지도 않고 그저 책상 위를 가만히 보거나 내가 있는 반대편의 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난 그걸 온종일 의식하며 이따금 몰려든 반 아이들의 이런저런 질문들을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오직 그만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것만 같았다. 혹은 투명한 철창이 그와 모두를 갈라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반의 아이들은,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그를 향해 초점을 맞추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주변의 분위기에 혹시나 귀신인가 싶어 섬뜩해지기도 했지만, 이따금 내 오른팔에 맞닿는 그의 옷깃에 그가 실재한다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작당한 듯 그를 의도적으로 교실 안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단지 주변의 태도뿐만이 아니라 그 아이 자체도 확실히 이상했다. 그의 왼쪽 눈꺼풀 밑에는 분명히 창이 심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덮지 않았다. 덮기는커녕,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얼마든지 보라는 듯이 내놓고 다녔다. 창이 원래 보기 께름칙하다고는 해도 그의 것은 더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 것도 본 적 없지만, 적어도 내 창보다는 훨씬 더 새까만 것은 확실했다. 모든 걸 다 삼켜버릴 것만 같다는 느낌. 그게 엄밀한 발화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모두가 그를 멀리하는 건 모두를 위협하듯 드러나있는 그의 창 때문이라는 건 확실했다. 창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몸통 위에 머리가 얹어져 있고 몸 안의 장기에게 각자의 제자리가 있듯이, 창 또한 얼굴의 왼쪽 자리에 담담히 있을 뿐이었다. 본래 안구가 들어있었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그곳, 부드러운 두 곡선 사이 먹을 부어놓은 듯 채워져있었다. 우리는 작고 동그란 천으로 이런 창을 가린다. 안대라고도 하던데, 정확히는 건이다. 건은 창이 내뿜는 어둠을 틀어막아준다. 내 방 두 번째 서랍에는 여러 색의 건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갈색을 가장 아끼고, 제일 많이 사용했다. 나의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의식한 것이었다. 알맞게 내 창을 가릴 수 있는 크기의 건은, 때론 있는 듯 없는 듯싶었다. 처음에는 그가 건을 하고 오는 것을 잊었다거나―물론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아니면 잃어버렸다던가, 혹은 망가졌다던가 하는 이유 때문인가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의 창에 건이 덮이는 일은 없었다. 그를 관찰하는 건 내 소소한 일과가 되었다. 창을 덮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말 한마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교실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정작 그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그걸 매일같이 보고 있자니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는 그가 주변으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고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은 창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창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바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곁에서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다면 건을 하고 다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옆 동네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바보가 바지를 입고 다니지 않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서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늘 어딘가 의식이 나간 듯 멍하니 있었지만, 그는 평범하게 수업을 들었고 제대로 필기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입을 여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말을 못 하는 바보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은 넌지시 해보았다. 다음으로는 그가 지독한 반항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듯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를 피우고 하는 그런 부류의 반항아는 아닐지라도 분명 어딘가 비뚤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집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다가도 문들 떠오르곤 했다. 이토록 내가 누군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건은 어쨌어?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던 건 상당히 고심한 뒤였다. 딱히 잘못된 짓을 하는 게 아닌데도 누군가의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아 방과 후 그에게 슬며시 따라붙어서 말을 걸었다. 그는 무척이나 놀란 듯 눈썹을 한껏 치켜세운 표정을 지었지만, 역시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표정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창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두려움이 슬며시 뒷덜미를 감쌀 정도로 새까만 색이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창도 이런 것인가, 아니면 내 창도 남에게 이렇게 보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는 나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없이 다시 걸어갔다. 그의 집은 우리 집과 같은 방향에 있는 듯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한참이나 먼저 교실을 나서곤 했으니 몰랐던 사실이다. 몇 번이고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꺾었다. 그러다보니 그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그도 내가 뒤에 졸졸 따라오는 게 거슬렸던지, 흘끔 돌아보고는 순간 멈춰 섰다. 왜 따라오는 거야?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분명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멀쩡하게 단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말을 할 줄 알았구나. 뭐? 그는 아까보다도 더 얼굴을 구겼다. 감정에서 나온 표정이라기보다는 있는 힘껏 불쾌감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지은 것 같았다. 아마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내가 떨어져 나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그렇지만 내 눈에는 그저 겁 많은 동물이 으르렁거린다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도 집이 이쪽이야. 저기 큰길 건너 아파트에 살거든. 그는 찡그린 표정을 슬며시 누그러뜨렸다. 내 말에 뭔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건 전학 온 첫날 모여든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던 것이고, 내가 친절하게 말해준 내용이었다. 그러니 그도 못 들었을 리는 없다. 다만 의식 속에 담아두지 않았었던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그의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에 그는 갑작스러운 내 웃음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어느새 얼굴 근육이 풀렸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어색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주택가에 산다고 했다. 첫날에 짐을 전부 옮기고 잠깐 근처에 가본 적이 있다. 말라붙은 핏빛이 도는 벽돌로 만들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형성되어 있던 곳이었다. 더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그만두었다.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 감촉도 싫었고 무엇보다도 역한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찔러서 따가울 지경이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굳이 말하진 않았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해 그런 식의 말을 듣는다면 누구든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었다. 근데 이름이 뭐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네. 정작 중요한 것을 묻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부를지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내가 그의 이름을 모른다는 걸 눈치챘다. 이창.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이름이 창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굳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뭔가 다양한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이름이 싫다는 감정도 있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슬픔이나 각오, 그런 것들이 잔뜩 뒤엉켜서 말로는 그려낼 수 없었다. 이름이 창이라니, 멋지네. 난 그렇게 말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의 감정에 대해 내 생각을 이런 식으로 말해봤자 분명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를 따라 내 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경은이야. 장경은. 그는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와 나를 힐끗 보았다. 어딘가 그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차올랐다. 그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순간, 나는 맨 처음 거울을 통해 내 창을 제대로 바라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창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실재감은 없었다. 검은 얼룩이 거울에 묻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창은 거울의 상에서 홀로 붕 떠 있었다. 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저 검은색인 줄만 알았는데 잘 보니 희끄무레한 무늬가 나선처럼 안쪽으로 감겨들어 가고 있었고 조금씩 일렁이기도 했다.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었지만 조금 어지러웠다. 그때의 기분을 경은은 창이를 보며 똑같이 느꼈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 그 공백을 풍경으로 메웠다. 햇볕이 주변 풍경을 한껏 덮을 만큼 유난했다. 공기는 뜨끈했지만, 골목 사이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이 슬며시 온도를 낮춰주고 있었다. 여름의 향기가 났다. 선명한 그늘 밑에서 바라본 이름 모를 가로수는 검은빛에 가까운 초록색이었다. 우리 집은 여기야.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인 후에 살짝 손을 들어서 인사를 하곤 옆 골목으로 돌아들어 갔다. 곧바로 모습이 사라졌지만 나는 그가 돌아선 그 모퉁이를 몇 번이고 쳐다봤다. 자꾸만 여운이 남았나 보다. 그의 창이 자꾸만 뇌리에 맴돌았다. 티 하나 없는 완전한 검은색의 창. 그리고 그 창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다니는 창이. 학교에서 창이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나도 창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나를 배려해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었다. 난 그걸 존중해주기로 했다. 나 때문에 창이의 일상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도 마찬가지로 자신 때문에 내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생활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는 교실에서의 노력이 끝나면, 어김없이 같이 집으로 가곤 했다. 같이라기 보다는 그가 학교를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그 뒤에 따라붙었을 뿐이긴 했지만. 난 이때마다 야간 자율학습 참여가 재량인 이 학교가 항상 감사했다. 적어도 학교 정규 시간이 끝나면 내가 그와 같이 걷는 것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그의 옆에 슬며시 다가가면 그는 항상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단지 익숙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창에 더는 눈길이 가지 않게 된 건 금방이었다. 처음에는 창이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눈이나 입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었고, 곧 그의 전체 표정하고 몸짓도 시선에 담아냈다. 그것들은 그의 창의 존재감에 묻히기에는 아까운 것들이었다. 자연스레 창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다. 창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내 안에 위화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창은 있는 것이고, 창은 사람마다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의 창이 어떤 색을 하고 있고 어떤 느낌을 주는지는 중요치 않은 부분이었다. 건을 쓰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평범한 남자아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조금은 그의 분위기에 함께할 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있는 줄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어도 그 아이가 반장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검은색 두꺼운 뿔테 안경에 한껏 머리를 뒤로 묶고 있던 반장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난 그녀가 무엇을 말할지 첫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예상대로 창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창이라든지, 교실에서 그가 받는 취급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넌 이제 막 이사 와서 잘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일일이 붙여가며 말했다. 그리곤 나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도 머뭇거리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날 이상하게 본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혹시나 창이와 불건전한 관계가 아니냐는 둥의 이야기를, 왜인지 쩔쩔매면서 나한테 해주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 나빠할 법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굉장히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부터 그래 왔다. 누군가 전혀 엉뚱한 오해를 할 때면 나는 있는 힘껏 웃어젖히곤 했다. 난 그런 오해들을 즐기려 했다. 그 순간도 그랬다. 당연히 대놓고 웃진 않았지만 편안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러냐는 식으로 받아넘겼다. 그들이 뭐라 떠들건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남들에게 오해받는 상황임에도 정작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날 오후 집으로 가는 길, 창이에게 반장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끝까지 이야기를 들은 뒤에 창이는 은근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혹여나 자신 때문에 내가 반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에 대해 말이다. 창이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흐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직접 전해 듣진 않았겠지만 이런 건 의외로 분위기로 간단히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간결하면서도 세세하게 말해주었고, 그는 생각 외로 간단하게 내 생각을 이해했다. 이해했달까, 자기 생각과 비슷해서 반갑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난 그게 무척이나 기뻤다. 청소 당번을 끝내고 마지막에 남아 뒷정리를 하던 금요일 오후였다. 털어온 칠판지우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니 다른 아이들은 벌써 가고 없었다. 집에 가거나 자율학습을 하러 자습실로 향했을 것이다. 짧게 한숨을 쉬며 창밖을 보니 살짝 바랜 파란색의 하늘이 창가를 비추고 있었다.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는지 해가 많이 길어져 있었다.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니 벽에 창이가 기대어 서 있었다. 손에는 교복의 재킷을 들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고 있었다. 한참 전에 창이가 먼저 교실을 나간 걸 봤기에 오늘은 같이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얼마나 기쁘던지,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한 웃음이 표정으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나를 빤히 보는 걸 알고 나서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나란히 걷는 걸음이 어색했다. 언제나 말을 먼저 걸던 쪽은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술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횡단보도에 다다라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을 때 창이 나를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가. 청소 당번이라서 그렇지. 다 봐놓고. 근데 네가 왜 마지막이야? 글쎄.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수롭지 않으려 했다. 뭐라도 먹을래? 창이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를 올려다보니 그림자가 져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잠시 들뜬 가슴을 꾹 누르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게 좋으려나. 글쎄. 우리는 원래 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향했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가고 싶은 곳을 정해놓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더 말이 없었고 나도 그대로 그의 질문을 덮어버렸다. 우린 일정한 리듬을 새기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걸으면 작은 시장이 나온다. 뭘 먹을지 정하지 못했으니 우선 가서 결정하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난 조금 신기해. 내가 순간 생각나서 말했다. 뭐가? 어떻게 너랑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지. 처음에 널 봤을 때는 누구하고도 대화를 섞지 않으려 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단 말이야. 그런 모습에 오히려 흥미가 생겨서 말을 걸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가 날 귀찮아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럴 리가. 그가 조금 웃었다. 그의 웃음은 무척이나 어른스러웠다. 교실에서의 얼어붙은 모습과는 달리 그는 종종 이렇게 내 앞에서 웃어주었다. 건이 없어서인지 웃는 모습은 더욱 멋졌다. 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때론 이렇게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는 걸 그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다들 그런 걸까. 내가 말끝을 흐렸다. 어쩐지 해선 안 될 것만 같은 말을 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창이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길 바랐다. 가능하면 그의 앞에서 교실에서의 분위기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창을 똑바로 봐준 사람은 너 말고는 없었어. 침묵이 흘렀다. 내가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 또한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약간 쑥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침묵이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히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를 감싸주고 있었다.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니 차 소리보다는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나는 잠시 저 멀리의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근처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엄청나게 깊은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호수처럼 파란 게 아니라 까만색에 가까운 수면이었다. 군데군데 무너져있는 낮은 콘크리트 담에는 헙수룩하게 제비꽃이 피어서 그 옆을 지나는 내 다리를 간질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네 창. 내가 말했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피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딘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감정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창이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 저수지.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야. 그의 시선은 어느새 담 너머의 저수지로 향해 있었다. 왜? 무섭거든. 그는 의도적으로 말을 뚝뚝 끊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말을 조금씩 섞어주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무서운 걸까. 저 안을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 저기에 담겨 있는 게 뭔지도 모르고 깊이도 가늠이 안 되지. 혹시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어, 다들. 혹시 누군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 그는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서 내 질문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냥. 그 누구도 이젠 저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아. 무섭다고 생각되어 버린 감정은 어쩌면 다시는 바뀌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어. 근데 나는 한번 가보고 싶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조차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곧 그게 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이제 막 여기로 이사 와서 그런지 별로 무섭지 않아. 근데 다들 꺼리는 곳이라고 하니까, 왠지 꼭 한 번 가서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보고 싶네. 그 순간 그의 반응을 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내가 한 말에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가 들어도 억지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웃어냈다. 어쩐지 그의 걸음은 약간 느려져있었다. 간신히 내 발걸음을 쫓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장 골목은 한산했다. 얼마 전에 상가들이 전체적으로 새 단장을 했는지 재래시장 특유의 비린 냄새는 적었다. 괜히 시끄럽게 소리치는 상인도, 촌스러운 트로트를 틀어놓고 손님을 모으는 마트도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대화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틈새를 주변의 작은 웅성거림으로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불편하진 않았다. 왜인지 그와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내가 억지로 공백을 채우려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여기로 가자. 그가 뒤에서 나를 불러 멈춰 세웠다. 낡은 철제 간판에 사랑 분식이라고 적힌 분식집이었다. 주변의 세련된 가게들에 비해 여기저기서 낡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가게였다. 저 왔어요. 그가 삐걱거리는 나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렴. 어머, 뒤에는 친구니? 네, 뭐. 그가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제야 나는 그 가게가 창이네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쪽을 향해 있는 힘껏 웃어 보이시는 창이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핏기 없고 마른 얼굴,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가능하면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만 건 밑이 움푹 파였다는 걸 보여주는 음영까지. 그는 라면 두개와 김밥 두 줄을 시켰다. 어머니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딘가 불안한 몸짓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였구나.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응,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그 밑에 휴지 한 장을 깔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탁 앞에서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나도 먼저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김밥은 터질 것처럼 두꺼웠고 라면에는 달걀이 두 개씩 들어 있었다. 맛있었지만 익숙해질 수는 없는 맛이었다. 조금은 창이의 어머니에 대해 머릿속에서 굴렸다. 어떤 느낌이었냐고 하면, 나를 불편해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것이었다. 가게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면서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러다 한 번은 눈이 마주쳤는데, 아주머니는 서둘러 내 시선을 피하셨다. 어쩌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는 말이야, 창이 없어. 가게를 나서서 한참을 걷고서야 그가 첫마디를 떼었지만, 그런 뒤에도 잠시 간격을 두었다. 평소와는 다른 호흡이었다. 조금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을지도 몰랐기에, 나는 대꾸 없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빠라는 인간이 때려서 뭉개 버렸거든. 밥그릇 밑으로 찍어서. 바로 옆 구석에서 지켜보던 나는 난생처음으로 창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어. 엄마가 쓰러지는 것도 처음 봤고. 그게 아빠를 본 마지막 날이었어.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으니까. 술이라도 드셨던 거야? 그는 어딘가 불편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완전히 멀쩡한 정신이셨지. 우발적으로 싸우시다가 그런 것도 아니야. 그저 엄마의 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야. 우리 엄마도 그 때까지만 해도 건을 하지 않으셨거든. 난 묻고 싶었다. 네가 건을 하지 않는 건 너희 어머니 때문인 거냐고. 하지만 그렇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창이는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창을 가리지 않아. 뭉개지기 전 엄마의 창은 나랑 똑 닮아 있었다고 기억해. 물론 그래서 아빠란 작자도 나를 혐오했고. 하지만 말이야, 나는 이게 그렇게나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어. 우리 모두 창을 가지고 있는데, 왜 건이라는 걸로 가려야 하는 걸까. 그렇게 부끄러운 건가? 괴로운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표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색을 띠고 있었다. 저런 색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창에서, 그리고 아까 지나갔던 저수지의 색이었다.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서 들어본 적도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창을 지니고 있었고 늘 건으로 창을 가려왔다. 희미하게 머릿속 한켠에 있는 가장 처음의 기억에서도 나에겐 건이 매여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친구들도 예외가 없었다. 옷으로 알몸을 가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창이는 이런 의문을 품으려 하는 것일까. 그 누구에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왜 그는 스스로 자처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의문 속에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으려 하는지 난 알 수 없었다. 너무도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난 그의 창을 통해서 그의 감정을 읽어보고 있었다. 나까지 괴로워지게 되는 것이 겁이 났다. 그래서 그를 힘껏 안았다. 창이의 표정이 보이지 않게. 그리고 내 표정도 그에게 보이지 않게. 나는 아마 그의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창이나 건이 대체 무엇인지, 그런 건 영원히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싶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난 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어 느껴야만 했다. 왜냐면 나는 그의 창을 똑바로 보았으니까. 단지 그뿐이다. 그와 함께 곁에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물속에 담겨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의 몸을 한껏 껴안았던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잔잔함에 한껏 젖을 수 있었다. 여전히 교실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그대로 서로의 생활을 지켜나갔지만,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전보다도 더 확실하게 서로가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 누가 그러자고 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나는 그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곳은 3층짜리 연립주택의 반지하였다. 그날만큼은 울퉁불퉁한 골목길도, 부패하는 하수구 냄새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들은 전부 자연스레 그곳에 있어야 할 것들이었고 그걸 받아들이는 건 더는 어렵지 않았다. 해질 무렵 창이의 집에서 그의 그늘에 안겼을 땐, 나는 우리가 부드러운 살과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의 창에 대해서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그 검은 무언가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내 창을 보여준 건 처음이었다. 그는 내 작은 창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관찰했다. 기분 나빠하는 내색 없이 그저 소중한 것을 가능하면 머릿속에 담아두려는 듯 보였다. 입을 조금 벌리고, 미간의 근육을 미세하게 모은 채로. 신기하게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도 나에게 모든 걸 보여주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써가 아니라 온전히 내 의지로 내보이고 싶었다. 그의 마음에 이끌린 것이려나. 그의 왼팔에 기대어 선명하게 보이는 창을 중지와 약지 끝으로 사근사근 어루만졌다. 여전히 주변이 삼켜져 버릴 듯한 까만색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거기엔 있었다. 난 내 창을 좋아해.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걸 봤을 때도 그랬고, 엄마가 창을 잃기 직전까지 내 앞에서 빛내던 그 창도 내 기억 속에서는 아름다우니까.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도, 감추지도 않을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창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창이 내 시야 가득 들어오는 것도 이젠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왠지 나도 내 창이 좋아질 것만 같아. 네 창, 정말 예뻐. 난 이미 좋아해. 그의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누가 타인의 창을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반장에게도 창이가 건을 쓰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결코 제외해선 안 되었다. 그는 특별했고, 그가 창을 가리지 않는 것을 특별하게 여겼어야 했다. 평범하다고 해버리기엔 그의 모습에 담겨있는 특별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그는 자신의 특별함에 당당해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난 결코 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롯이 창을 드러낸 채로 고요히 자신을 외칠 수 있는 건 오직 창이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마 건을 벗어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그건 너무도 무서운 일이니까. 하지만 내 창을 부끄러워할 일은 분명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를 한껏 빠져들게 했던 그 계절,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2. 창이와 나는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의 창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함께 시간을 견뎠다. 가끔은 이 세계에 그와 나 둘만 남겨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깔끔하게 쪼개진 교실 안에서 난 결국 창이의 손을 잡았기에, 그를 따라 그곳에서 분리되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다. 야트막한 관계보다는 제대로 나를 품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곳으로 몸을 맡긴 것뿐이었으니. 때론 아무 이유 없이 두려워지곤 했다. 이렇게나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본 적이 처음이라서일까. 천천히 증발해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혹은 사막 한가운데에 지어놓은 모래성이 바람에 흩어져가는 것만 같은. 나는 그런 기분을 맛볼 때마다 그를 쓰다듬고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면 그와 함께 견딜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가을의 향기가 나기 시작할 무렵, 그의 집 앞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오가게 되었다. 온통 새카만 색에 등에 희끗거리는 무늬가 섞인 무척 작은 고양이로, 아마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오른쪽 앞다리가 유난히 짧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그 작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창이가 껍질을 깐 밤을 던져주었다. 그러자 움찔거리며 다가와 냄새를 맡은 뒤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 아이가 엄마도, 주인도 없이 홀로 겨울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고양이는 매일같이 창이의 집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가능한 한 제대로 된 식사를 주곤 했다. 창이는 나보다 더 고양이를 귀여워했다. 고양이도 그를 몹시 잘 따랐다. 고양이가 골목 구석 잡초가 무성한 곳에 앉은 조그만 날벌레를 땅에 엎드려 가만히 바라보다가 틈을 노려 덮치려 하는 모습을, 그는 종종 흐뭇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인지 거의 벌레를 잡지 못했고, 그럴 때면 그는 귀여운지 즐겁게 웃어보였다. 그와 고양이 사이에는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때론 그 고양이가 창이와 정말로 닮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쓰다듬으려 하면 별로 내키지 않는지 창이의 품으로 들어가 버려서, 그때마다 서운해하는 내 기분을 그가 풀어주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고양이가 매일 있던 장소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 종일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온 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좁은 건물 틈새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동차 밑도 샅샅이 뒤졌지만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름을 불러보려 했지만, 그제야 우리가 여태껏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 해가 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찾아다니면서, 난 어째서인지 이젠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길고양이라 곧 다시 오겠지 싶었지만, 이후 고양이가 다시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거겠지. 내가 멀리 가지 못했을 거라 분명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더는 고양이를 볼 수 없다는 걸 깨끗이 받아들였다. 조금 외로워 보이긴 했지만 귀여워했던 것치고는 상당히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3. 그와의 연애는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끝이 났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반이 갈렸고, 우리 둘 다 그걸 핑계로 서로를 마주하는 일을 줄여나갔다. 나는 그의 마음의 경과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예상컨대 그의 마음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었고, 그가 나와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 왜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창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만나서 조용히 짧은 대화를 나눴고, 슬픔을 내비치는 것조차 없이 헤어졌다. 단 몇 마디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의 창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내가 있었고, 내 창이 깃들어 있었다. 그게 이유였다.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역시 창을 받아들인다는 건 타인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어렸던 우리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왜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그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어떤 대답을 듣든 간에 지금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저 조금 후회했다. 그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줄 걸 그랬다고. 돌아서기 직전, 창이는 다시금 예전의 어른스러운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 보였다. 예전에 그가 보여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전까지만 해도 어른스럽게만 보이던 그 미소에서, 나는 그의 연약한 내면을 읽어냈다. 그는 나와 다르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이는 나와 어느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기던 갈색 건을 쓰레기통의 깊숙한 곳에 버렸다. 어쩐지 한껏 물을 먹은 듯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보기 싫어서 다른 쓰레기들에 묻혀 보이지 않게 꾹꾹 짓눌렀다. 그리곤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 역시나. 내 창도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나는 한참을 울었다. 이제는 그만 이 눈물을 타고 그가 흘러나오기를 바라며. 이쯤에서 인정하면 죄악감이 덜 하려나. 그의 창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 이후 한순간도 무거운 마음 없이 그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창이와 나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단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어느 순간 부서질 수도 있는 사람, 그게 우리들이었다. 우린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제대로 섞이지 못했고, 마지막까지도 각자의 안에서 위태롭게 넘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붕 뜬 것들을 분리해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우리 가족은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하지만 다시 그곳에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내 눈앞의 일들에 치여 그 동네를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난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단 한 번의 휴학도 없이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 괜찮은 직장에서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직장에서 한 남자를 만나 연애를 했다. 애인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컸고, 무엇보다 나에게 다정했다. 특이할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 또한 어김없이 얼굴 왼쪽에 어두운 남색 건을 하고 다녔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새삼스럽게도 내가 서있는 이곳은 십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이 희석되어 제 색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난 다시 그 동네를 찾았다. 살았던 아파트를 지나쳐 창이와 함께 걸었던 골목길을 지금의 애인과 함께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창이가 살았던 집은 나오지 않았다. 힘든 기색의 애인을 최대한 외면하며, 몇 번을 반복해서 같은 길을 걸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선선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잠시 벽에 기대어 쉬는 동안, 그는 내 뒷덜미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해 주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눈을 감고 흩어져버린 머릿속 생각들을 한데 모으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은 탄성이 들렸다. 가만히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니 쭈그려앉은 애인의 앞에는 아주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처음에는 검은색인가 했던 털은 자세히 보니 짙은 회색이었다. 예전 창이와 함께 했었던 이름 없던 그 작은 검정고양이가 떠올랐다. 겉모습이 많이 닮아 있어서 혹시나 그 아이인가 싶었지만, 이내 가라앉아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그런 느낌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그의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순식간에 멀찍이 달아나 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내밀었던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거푸 닦아냈다. 애인이 당황해하며 내 등을 다독여주었지만,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시야와 함께 모든 것들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거겠지. 창이의 목소리가 스몄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말한 그럴 때라는 건 대체 어떤 때를 말하는 걸까. 내가 만일 창이처럼 건을 벗어버렸다면 그럴 때라는 건 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린 온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더는 만날 수 없는 고양이에게, 난 말을 걸었다. 어쩌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잠시 검은색 실크 건을 걷어내고 고요히 머물고 있는 창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 틈새 사이로 사근한 바람이 스쳐갔다. 그 계절의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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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심사평] 당선작 ‘성냥팔이 소녀’

이준관 아동문학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7편이었다. 동화는 아이들의 생활과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애환과 속마음을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여 화해와 성취에 이르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런 동화의 본질에 충실하고 문장과 서사에서 동화의 틀을 갖춘 4편을 골라내어 집중 검토하였다. 분홍 축구화는 오해로 사이가 벌어진 친구와의 갈등을 분홍 축구화를 통해 화해하는 이야기다. 적절한 비밀과 복선을 깔아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갔으나 사소한 오해로 오랜 단짝 친구와 틈이 벌어졌다는 것이 설득력이 약했다. 꼬마 마법사는 기발한 동화적 발상이 눈길을 끌었다. 잘 사는 나라 아이와 지구 반대편에 사는 가난한 아이의 대비를 통해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요즘 아이들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아니어서 싱겁고 평범했다. 풍산이의 산은 목줄에 매인 풍산개가 탈출하여 야생을 되찾는 과정을 힘 있는 문체로 쓴 작품이었다. 풍산개에 대한 세밀하고 치밀한 묘사와 역동적인 문장으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저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간간이 눈에 띄는 상투적인 표현과 기존 동시에서 흔히 보았던 내용이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당선작 성냥팔이 소녀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아름다운 동화였다. 눈 오는 풍경을 배경으로 가난한 소녀가 직접 체험을 통해서 성냥팔이 소녀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시적인 문장으로 애틋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똑같이 해보는 거라면서 맨발로 눈길도 걸어보고 성냥불도 그어보는 소녀의 마음이 눈처럼 맑고 순수하다.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고 마지막의 결말도 훈훈하고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안겨주었다. 시적인 문장과 동화적 환상이 잘 어울리는 동화다운 아름다운 작품을 뽑게 되어 마음이 흐뭇하다. 정진하여 안데르센 같은 동화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당선작 ‘창’

신춘문예 계절이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은 설렘과 기대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신춘문예에 대한 기대는 참신한 신인과 새로운 작품에 대한 소망이다. 이러한 소망은 심사위원들의 마음 또한 뒤눕게 한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가운데, 예심을 거친 7편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서커스 유람마차 더듬이 너의 아름다운 곳 앤드 창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더듬이는 첨단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생산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시대 파악 시각이 돋보인다. 그러나 소설적 구체화는 아직 더 수련을 거쳐야 하리라고 본다. 앤드는 출산이 인공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첨단과학시대,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추구한 작품이다. 현실성을 더 살려야 작품으로서 값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걸로 본다. 너의 아름다운 곳은 현대적 환경에서 다문화적 삶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플롯을 엮어가는 소설적 논리에 관심을 더 가질 것을 권한다. 서커스 유람마차는 생활을 위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소녀가 채팅에서 만난 남자와 사귀면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현실감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안정된 문장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사유의 치열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작은 흠이다. 논의를 거쳐 당선작으로 결정한 작품은 창이었다. 이 작품은 창이라는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작중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을 빈틈없이 그리고 있다. 만나고, 가까워지고, 그리고 사랑으로 맺어지기까지, 그리고 다시 멀어지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섬세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플롯을 전개하는 데 창이라는 도구를 설정하고 있는 게 상징성을 띰으로서 주제와 연관성을 밀도있게 드러낸다. 창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열린 구멍인데, 그 창은 누구나 건으로 가리고 생활한다. 창과 건은 곧 인간의 열림과 닫힘을 상징하는데 그 건이 걷히고 완전한 창으로 통할 때 완전한 만남이고, 사랑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본질을 드러냈을 때, 그것은 다시 모양을 달리한 건이 되어 창의 본상을 감추게 되고 인간관계는 파탄을 겪게 된다. 인간관계 형성의 본질을 감춤과 드러냄의 변증논리로 그린 수작으로 보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에서는 창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운명일 수도 있고, 인간 존재의 모순적 상황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설명이 안 되는 영역이다. 이를 명징하게 밝히려고 모든 걸 사실로 드러낸다면 삶의 본질로서의 은폐성은 특질을 상실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감추며 드러내기의 기법적 특장을 잘 살렸다고 본다. 이번에 투고한 모든 분들의 분투를 빌며, 당선자의 문학적 앞길에 큰 성취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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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당선작 ‘한 걸음’

전정구 문학평론가.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은 30편이었다. 3편을 응모한 사람이 4인이고 나머지 9인은 2편씩 응모했다. 응모자들의 나이는 중년층 이상인 것으로 판단되었고, 일상적인 생활경험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글쓰기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소재를 다루는 솜씨와 그것을 문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자연스러운 서사적 진행에 초점을 맞추어 최종심 대상으로 3편의 작품을 선별했다. 속긋을 긋다와 붉은 잠망의 시간과 한 걸음은 글쓰기의 내공이 느껴지는 수작(秀作)들이다. 이 3편 모두 사물에 대한 감각과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여 서술하는 능력, 글의 속도감과 긴장감, 서사적 진행의 자연스러움, 어휘 활용의 적절성과 소재를 풀어내는 노련함이 돋보였다. 세 응모자의 또 다른 작품들도 당선작을 선정하는데 참고했다. 응모자 작품들을 면밀하게 다시 읽고 문학적 역량과 작가적 발전 가능성 등을 검토한 결과 한 걸음을 선정했다. 이 작품을 응모한 사람의 작품이 다른 두 명의 응모작들에 비해 글쓰기의 정치함과 감성적 호소력의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한 걸음은 소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언어로 풀어내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히 뇌경색으로 입원했다 퇴원한 화자-딸이 힘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엄마의 숨결을 향해 발을 옮기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현재의 입장-상황에서 고향의 풍경과 어머니의 숨결을 여러 감각들을 동원하여 통합적으로 서술하고 표현하는 솜씨가 수준 이상이었다. 정제된 문장구성과 언어구사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고향의 실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어머니와 고향을 감각적 이미지로 부활시켜 향수감을 자극한 점도 한 걸음이 지닌 미덕이다. 멈춤과 쉼, 그리고 여유를 되새기며 실존(實存)의 깊은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한 이 응모자의 또 다른 작품인 초짜드막(잠깐 동안)도 한 걸음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긍지와 자부심을 지닌 작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당선작 ‘훈민정음 재개발 지구’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자는 372명에 작품수는 1488편에 달했다. 지난 해보다 응모수가 증가되었으며 질적으로도 상승 기류를 탔다고 여겨진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10명 분 40편의 시를 고르고 골라 우수작품으로 훈민정음 재개발지구, 별이 빛나는 낮에, 비문을 읽다, 이음 베이커리, 별이 의문부호로 떠 있는 바다 등으로 선별되었는데, 최종심에서 훈민정음 재개발지구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신춘문예는 그 반향의 민감성으로,문학계에 끼친 영향의 상징성으로 연유하여 이의 품격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다음 몇 가지 필요 조건을 내 걸었다. 존귀하고 경이로운 우리 모국어를 충분히 잘 승화시켜 빛내고 있는가. 아름다운 정서를 잘 빚어 냈는가. 내포된 메세지는 미래지향적으로 건강한가. 시의 본질인 기본 체제 갖춤이나 형상화를 비롯한 여러 가춤으로 시적 감동을 함유하며 언어 예술의 경지를 달성하고 있는가. 등등이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훈민정음 재개발지구는 이러저러한 조건에 걸맞게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보았다. 훈민정음이라는 어휘가 담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 정신을 이끌어 와 시 전편에 한 사조로 굽이치게 하며, 여기에 얹어 현대의 세태적 실감을 풍자로 연출하고 있다. 대칭적 소재들이 유기적으로 화융하며 조화를 이루게 하여 서사적 스토리를 엮는다. 시적 발상이 우선 절묘했다. 세종대왕은 화폐로서 강남의 부를 창출하는 재화를 의미하며 또한 훈민정음의 정신을 함께 상징하여 중의적 표상으로 등장한다. 상층의 부류와 가난한 서민이 교차적으로 이야기 속에 끼여 든다. 곽과 관에 서로 넘나드는 이미지의 진화도 관심을 끈다. ㄱ과 ㄴ이 기호로 등장하는 교집합성과 대립성은 훈민정음의 정신 본연에 다가간다. 언문은 집단 무의식, 거대한 민족 문화의 누적적 잠재 의식을 담지하며 이 시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인 셈이다. 말하자면 백성들을 이롭게하려는 훈민정음의 고유 정신인 나라 말씀인 것이다. 북두칠성과 칠성판은 마치 생과 사, 빛과 어둠, 운명의 지배자(하늘)와 고단의 삶을 펼쳐 가는 피지배자(땅)로 상호 대치를 보이며 함께 조화로움에 다가간다. 이 시에서는 고결하고 신성한 훈민정음 정신과 세속적 부동산 실태와 노숙에서 돌아 온 아버지로 표상되는 가난한 서민의 삶 등 세 타래의 얼킨 스토리의 영상이 교차적으로 오버랩되며 종결에 이른다. 결국 마지막엔 원융(圓融)을 표방하며 옹근 시 정신을 성취한다.아버지에겐 종종 잠도 또 다른 언문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9.01.01 00:06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소감 - 김영숙

작은 딸의 손을 잡고 동네 고물상으로 향하던 어느 날, 이 이야기가 찾아왔습니다. 성냥개비로 이어 만든 별, 그 밤하늘 속에서 노니는 두 아이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늦은 밤, 어리고 가난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하얀 눈밭 속을 노닙니다. 눈사람을 만들고, 어제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 눈밭 속에 있지 않습니다. 꿈이라도 꾸어야만 닿을 수 있는 친구입니다. 세상은 온통 어둠입니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귀가한 엄마가 아이의 잠을 깨우고, 그 거친 손으로 두 아이의 시린 손을 부비고 언 발을 녹입니다. 그런, 연탄불 같은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스등 같은 포근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우선 부족한 원고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쓴 글을 읽고 애정을 담아 조언을 건네준 남편과 두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동심을 향한 제 열정의 첫걸음이 제대로 내디뎌진 것 같아 기쁩니다. 아이들의 밝은 미소 뒤에 숨어있는 한 조각 어둠을 발견하고, 그들의 언어로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작가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숙 1974년 경남 통영 출생. 진주교육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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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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