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북이 울린다. 오전 진시(8시), 신라군이 먼저 움직여 황산벌로 나오고 있다. 앞장선 신라군 선봉군은 기마군 1만, 좌우 끝이 조금 앞으로 나온 반원형 진(陣), 그 중심에 대장군 김흠춘이 5천 기마군을 한 덩어리로 만든 채 거대한 산이 굴러오는 것처럼 다가온다. 넓게 펼쳐진 진(陣)의 폭은 2리(1km), 양 끝에 포진한 1천기씩의 기마군은 시위에 쟁여진 화살촉 같다. 선봉군 뒤로 1리(500m) 거리를 두고 김유신과 대장군 김품일이 따르고 있었는데 병력은 3만, 김유신의 중군(中軍) 2만을 김품일이 좌우로 둘러싸고 나가는 형국이다. 앞이 훤하게 보이는 터라 허점이 보이거나 필요할 때 김품일의 기마군 1만을 기동군으로 응용하려는 것이다. 그 뒤를 후위군 1만이 따른다. 거리는 1리, 5만이 철갑을 겹겹이 입은 것처럼 나아간다. 보기만 해도 압도적이다. 수십 개의 대고(大鼓)가 울리는 데다 기마군의 말굽소리, 그러나 하늘은 맑아서 구름 한 점 없다. 서늘한 날씨, 북소리에 맞춰 속보로 나아가는 신라군의 어깨에 힘이 실렸다. 아직 앞쪽에서 백제군의 반응은 없다. 멀리 15리쯤 앞쪽으로 검은 산맥이 둘러쳐져 있다. 그곳, 3개 산성에 백제군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백제군은 일시에 쳐들어올 것이다. 김흠춘이 앞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앞에 첨병대를 보냈지만 시야가 탁 트여서 3개 산성이 보인다. 산성과는 이제 15리(7km) 정도, 아직 백제군은 기척이 없다. 이쯤 되면 첨병이나 유격군을 보내 진로를 방해하는 것이 정상이다. 김흠춘의 옆을 따르던 부장(副將) 성진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산성을 비우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가 있느냐? 김흠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지금 나란히 속보로 전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0대 중반으로 백제군과 수십 년 전장에서 만난 성진이 대답했다. 계백의 기마군은 모두 왜에서 데려온 왜군입니다. 계백의 영지에서 조련시켜 데려왔다지만 훈련이 덜 되었는데 모릅니다. 용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 김흠춘이 나무랐지만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북은 더 힘차게 울렸고 말발굽 소리는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그때 성진이 소리쳤다. 백제군입니다! 고개를 든 김흠춘이 앞쪽 산성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기마군을 보았다. 3개 산성에서 동시에 쏟아져 내려왔기 때문에 햇살에 번득이는 창날이 위압적이다. 온다! 북을! 성진이 소리치자 옆쪽 고수들이 세차게 북을 쳤다. 전투개시의 북이다. 그때 앞쪽을 응시하던 김흠춘이 소리쳤다. 저놈들이 옆으로 비껴간다! 숨을 들이켠 성진이 말 위에서 엉덩이를 들고 섰다. 과연 그렇다. 백제 기마군은 정면으로 닥쳐오는 것 같다가 옆으로 비껴 달리는 것이다. 거리가 4리(2k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이쪽은 바라만 볼 뿐이다. 도망치는가요? 옆으로 다가온 아들 반굴이 물었기 때문에 김흠춘이 고개부터 저었다. 아니다. 저놈들이 무력시위를 한다. 그때 옆쪽에서 낮은 탄성이 울렸다. 보라. 이제는 흙먼지가 걷히면서 백제 기마군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두 붉은색 갑옷을 걸쳤다. 그래서 불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다. 3개 산성에서 쏟아져 나온 기마군은 직선으로 달려오다가 제각기 말머리를 틀어 옆으로 비껴가고 있다. 정연한 움직임이다. 백제 기마군이 황산벌 앞쪽을 붉은 불길로 가로막는 것 같다.
그날 밤 계백이 주둔한 웅치산성으로 좌평 충상이 찾아왔다. 호위군사 셋과 함께 말을 달려온 것이다. 계백은 흥수와 함께 맞았는데 둘을 본 충상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이곳에서 함께 죽읍시다. 허, 좌평, 우리는 그대와 함께 죽을 생각이 없네. 흥수가 정색하고 말을 받았다. 청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충상이 계백과 흥수를 번갈아 보았다. 도성은 이미 연임자가 장악하고 있소. 동방과 서방, 남방군은 모두 연임자의 모략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모일 수도 없소. 오직 이곳만 도성을 막고 있을 뿐이오. 대왕께서 무슨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계백이 묻자 충상이 놀란 표정을 짓다가 길게 숨을 뱉었다. 달솔, 대왕께선 달솔이 좌평 흥수를 유배지에서 빼낸 것에 진노하셨네. 좌평, 잘 오셨습니다. 계백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충상을 보았다. 좌평께선 이곳에 남아 있다가 대왕을 모시지요. 무슨 말인가? 저희들하고 같이 싸우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오. 아니, 그것은 눈을 크게 뜬 충상이 흥수를 보았다. 충상은 충신이다. 충신(忠臣)이라고 해서 다 기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목에 칼을 대면 변절을 하는 충신이 9할은 된다. 충상이 그런 부류다. 연임자가 반역을 하는 줄 뻔히 알면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망설이고 회피했다가 이곳에 온 것은 마지막 용기를 낸 셈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흥수의 얼굴에 쓴 웃음이 번져졌다. 이보게 좌평, 죽는 것이 능사가 아닐세. 충상에게 흥수는 선임자인 데다 연상의 어른이기도 하다. 그러나 흥수가 연임자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떠날 때에도 도와주지 못했다.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나 같다. 흥수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연임자가 백제국을 안에서 무너뜨리는 것을 방관하다가 지금은 마지막 용기를 내어서 죽을 자리를 찾아온 셈인가? 그렇습니다. 시선을 내린 충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겁자를 받아주시오. 그때 계백이 밖에 대고 소리쳤다. 하도리 있느냐? 예, 달솔. 기다렸다는 듯이 창밖에서 목소리가 울리더니 하도리가 위사들과 함께 들어섰다. 그 순간 충상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졌다. 계백이 충상에게 말했다. 좌평,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곳 웅치산성의 감옥에 계시오. 달, 달솔, 왜 이러시는가? 눈을 크게 뜬 충상이 계백을 보았다. 함께 죽도록 해주시게. 달솔. 우리가 떠났을 때 김유신이 이곳 감옥에 갇힌 좌평을 보고 풀어줄 것이오. 아니, 달솔 적인 나에게 잡혀 갇혀져 있다는 것은 곧 우군이라는 표시일터, 김유신이 우대를 해줄 것이오. 달솔, 나는 김유신과 같이 도성으로 가서 대왕을 모시기 바라오. 그때 흥수가 말을 받는다. 좌평, 알겠는가? 이곳을 지난 김유신은 소정방과 함께 도성을 함락시키지 않겠는가? 그러면 대왕은 포로가 되네. 충상은 숨만 쉬었고 흥수가 말했다. 여기서 죽겠다는 용기로 포로가 된 대왕을 모시기 바라네. 그게 달솔의 뜻이네.
김유신이 황산벌 남쪽 끝에 멈춰 섰을때는 오후 유시(6시) 무렵이다. 북쪽 끝의 산성에 진을 친 백제군과는 20리 거리가 되어서 기마군들이 내달린다면 한식경만에 칼을 부딪칠 거리다. 내일 아침에 바로 돌파한다. 김유신이 진막에 모인 장수들에게 말했다. 장수들이 긴장했고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기마군이 앞장을 서서 전진한다. 백제군이 대항에 올것이나 밀고 나간다. 전법(戰法)이 없다. 밀고 나가다가 백제군이 부딪치면 물리치고 가란 말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발이 흩날리면 눈발을 맞고 가라는 말이나 같다. 이것이 백전노장 김유신의 용병술이다. 그동안 수백번 전투를 치른 김유신이다. 사사건건 세밀하게 적전지시를 하면 오히려 그 지시가 걸림이 되어서 장수들이 제대로 용병(用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만. 김유신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선봉군은 김흠춘이 맡고 선봉군과 본군의 사이에 유격군을 두되 수장(首將)은 김품일이다. 각자 방심하지 말라. 김품일과 김흠춘은 진골 왕족으로 각각 화랑인 아들 관창과 반굴을 데리고 출전했다. 간단하고 명료한 작전지시가 끝나고 장수들이 물러갔을 때 대장군이며 중군(中軍)의 수장인 김행보가 말했다. 총사령, 계백이 3개 산성에 군사를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그냥 전군(全軍)을밀고 나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계백의 기마전술에 유린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유신과 둘만 있는 자리여서 직언을 한 것이다. 김행보의 말을 들은 김유신이 빙그레 웃었다. 너, 계백이 처자식을 죽이고 왔다는 말을 들었느냐? 예, 신라군에서도 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자 김유신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계백은 결사의 대형으로 부딪쳐 올 것이다. 그러니 더욱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군사들도 수장(首將)이 처자식을 베어 죽이고 앞장서 나설테니 모두 죽을 각오로 따르겠지. 그렇습니다. 단 한차례의 돌격으로 부숴진다. 김행보의 시선을 받은 김유신이 다시 웃었다. 파도가 한번 철썩, 바위에 부딪치는 것으로 백제군의 돌격은 끝날 것이다. 숨만 들이켠 김행보를 향해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파도는 뭉쳐서 맞는 편이 낫다. 그러고 나면 백제군은 흩어질 것이다. 과연. 죽음을 무릅쓴 돌격은 한번이면 끝난다. 두 번째에는 일어날 기력도 없이 주저앉아서 죽여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역시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김행보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법도 없이 뭉쳐서 나가는 이유를 이해한 것이다.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진군해 나가면 3개 산성의 백제군이 일제히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부딪치겠지요. 김행보가 말을 받는다. 아마 선봉군은 절반쯤 돌파하고 나서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그때 유격군이 섬멸하는 것이지. 이것이 김유신의 머릿속에 든 전략이다.
달솔, 여쭤볼 말씀이 있소. 청을 나갔던 화청이 다가와 계백에게 물었을 때는 사시(10시) 무렵이다. 화청의 뒤에는 윤진이 따르고 있다. 앞에 선 화청이 주춤거리는 것 같더니 계백을 보았다. 달솔, 대답해 주시오. 이 사람아. 뭘 물어야 대답을 할 것 아닌가? 계백이 웃지도 않고 되물었더니 화청이 멋쩍은 듯 수염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렸다. 뒤에 선 윤진은 아까부터 딴전을 부리고 있다. 화청이 다시 계백을 보았다. 달솔,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날 밤에 토성에 다녀오셨지 않소? 그렇지. 토성이 불에 타 재가 되었다고 들었소. 맞네. 달솔. 뭔가? 화청이 눈을 부릅떴다. 처자를 베어 죽이셨소? 계백이 시선만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윤진이 한 걸음 다가섰다. 벌써 윤진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윤진이 부른다. 달솔. 너는 또 무슨 일이냐? 소문이 다 퍼져 나가서 모두 울었지만 사기가 떨어졌소. 저런. 윤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달솔, 왜 그러셨소? 어깨를 부풀린 윤진이 계백을 쏘아보았다. 장수들도 이곳저곳에 처자식이 있소. 군사들이야 격해져서 죽음을 잊겠지만 장수들은 앞뒤를 재어야 될 것 아닙니까? 처자식도 다 죽였으니 내 차례다 하고 덤비는 장수에게 승산이 있겠습니까? 과연. 계백이 남의 일처럼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옆에 서 있던 화청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난 처자식을 하도리의 부장 혼다를 시켜 왜국으로 옮겼어. 지금쯤 구례 포구에서 왜국행 배를 탔을 것이네. 아아. 화청의 얼굴에 금방 웃음이 떠올랐다. 달솔, 잘하셨소. 그래야지요. 윤진도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수들에게는 그렇게 말해주겠소. 윤진과 화청이 서둘러 청을 나갔을 때 계백이 길게 숨을 뱉었다. 그렇다. 처자를 베어 죽이고 배수진을 친 것처럼 싸우다 죽을 생각이었지만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하도리의 부장 혼다를 시켜 그날 밤으로 구례 포구로 떠나보낸 후에 토성에 불을 지른 것이다. 잠시 후에 청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다께다가 뛰어 들어왔다. 주군, 신라군이 왔습니다. 다께다가 소리쳐 말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고 숨결도 고르다. 먼저 기마군이 남쪽 언덕 위에 포진했고 뒤를 선봉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는 25리(12km)가량 됩니다. 오늘 저녁에야 진을 칠 것이다. 계백이 청을 나서면서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전쟁이 시작되겠지. 주군, 마님과 공주님을 구례 포구로 보내셨다는 말을 듣고 장수들이 모두 기운을 냈습니다. 옆을 따르던 다께다가 말했다. 다께다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처자를 죽여 명예를 지키는 장수가 아니다. 그런 명예는 필요 없다. 발을 떼며 계백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명예도 지켜지는 법이다.
대학의 도(道)는 밝은 덕(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친화함(親)에 있으며, 지극히 착함(至善)에 머무름에 있다.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가 유학의 사서, 대학(大學)의 명제와 의미를 고찰해 책으로 펴냈다. 주자의 대학장구를 의식하지 않고 증자가 쓴 대학 원본을 토대로 장, 절, 항목을 부여해 해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대인들을 위한 단순한 의미에서의 고전(古典)에서 나아가 동양의 전통인문 수양의 정화(精華)를 집중적으로 반영한 대학(大學).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을 내용으로 형성된 전통은 오늘과 미래에도 향하고 있다. 특히, 물질이 초고도로 발달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인간상, 사회상, 정치상을 보면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는 머리말을 통해 이같이 설명하며 이 책이 엉망의 그늘에서 빠져 나오는 인격적 수양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유교에서는 개인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아 수양하는 수신(修身)과 집안을 바로 다스리는 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 온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확장과정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학은 일종의 윤리철학이자 사회철학,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요즈음 천편일률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읽혀지고 있는 주자의 이른바 대학장구를 벗어나 증자의 원본 대학에 대하여 주자의 견해를 떠나 자유롭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필자의 대학 바로보기(교육과학사, 2017.1 발행)도 퍽 의미 있고 유익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고창 출신으로 전주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군장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현재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중국 동북 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석좌교수로 있다. 1997년 월간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상하)>, <중국교육전개사>, <황혼의 강변을 거닐며> 등 30권이 있다.
최은섭안준희 교수가 <화장품 광고와 아름다움의 문화사>를 펴냈다. 이 책은 산소같은 여자, 깨끗함이 달라요 등 광고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 출신의 최은섭 교수와 한국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해온 문화인류학자 안준희 교수가 국내 화장품 광고의 100년사를 기술하고 광고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입체적으로 다뤘다. 한국 최초의 국산 화장품으로 등록된 박가분과 뒤이어 출시된 설화분이 1922년과 1921년 동아일보에 각각 광고를 게재한 지 100년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한국의 화장품 광고에 투영된 아름다움의 문화사를 살펴보려는 의도로 기획, 광고를 연구하는 광고학자와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만났다. 저자는 국내 화장품 광고의 변화가 마케팅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아냈는지를 분석했다. 수직적으로는 한국의 화장품 산업이 어떤 시대적 배경과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변천해 왔고, 수평적으로는 화장품 광고를 사회문화적 텍스트로 접근해 이곳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구조와 그 변화상을 젠더, 계급, 우리와 타자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다. 경성의 모던걸이 서울리스타로 바뀌어 불리게 된 화장품 광고의 시간 여행, K-Beauty의 중심에 있는 우리 화장품의 브랜드 스토리, 여성과 아름다움 사이에 담긴 인간과 사회의 속 얘기 등이 포인트다. 최은섭 교수는 15년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화장품 광고를 제작했던 경험과 2005년 이후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져온 광고에 대한 관심사 등을 이 책에 녹여내고자 힘썼다고 밝혔다.
㈔문화연구창이 문화예술비평지 <담론창> 910호를 나란히 발간했다. 문화연구창은 전주한옥마을, 내 인생의 노래 등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두 권씩 지역문화예술계의 소식을 담은 <담론창>을 발간해왔다. 이번에 발간한 <담론창> 9호는 사용자 공유공간 PlanC - 1년의 기록, 10호는 2018 미술로창. 사용자 공유공간 PlanC는 전주한옥마을 은행로에 위치한 적산가옥으로 지난 2017년 기획자 정문성 씨가 지인에게 5년간 무상으로 임대 받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문화공간이다. 9호 사용자 공유공간 PlanC - 1년의 기록에는 사진작가 장근범 씨의 33 새만금, 갯벌의 기억-땅의 환상을 시작으로, 한국화가 고형숙 작가가 그래픽노블 미술서적을 소개한 미미책방, 퍼포먼스 작가 연정 씨의 립스틱 파티 등 PlanC에서 진행한 열세 번의 프로젝트가 담겼다. 10호 2018 미술로창에는 문화연구창이 진행하는 미술 관람 프로그램인 미술로(路)창 잡담클럽의 1년을 기록했다. 미술로창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점심을 함께 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된 일정. 참여자는 각자 식사비만 들고 전주 시내 전시장을 방문하거나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지난 2014년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259회가 진행됐다니 놀랍다. 문화예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로당인 기령당은 완산동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뒤에는 송석정이란 정자가 있다. 기령당은 조선시대 전라관찰사나 전주부윤이 부임하면 가장 먼저 찾은 곳이었다. 지역 원로와 부노들로부터 덕담을 듣기 위해서이다. 아직도 지자체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과 도지사, 시장 등 기관장들이 부임하면 가장 먼저 기령당에 와서 인사들 드린다고 한다. - 전주 완산구 소재 기령당. 전북문화원연합회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가치가 큰 유무형의 전북 향토문화유산을 모아 <전북의 향토문화유산>으로 엮었다. 전주 향교길 박진효자비부터 곤지산 이팝나무까지 43종, 군산 옥구읍 원오곡마을 추모재부터 민살풀이춤까지 19종, 익산 영등동 유적부터 여산면 태성리 수덕정까지 13종 등. 이 책에는 전북 14개 시군 지역성과 역사성을 반영한 421종의 유무형 향토문화유산이 614쪽에 걸쳐 기록됐다. 전북문화원연합회는 <전북의 향토문화유산> 발간과 함께 향토유산의 가치, 향토유산의 발견과 보존, 각 지역의 음식 등을 특집으로 다룬 <전북문화> 제22호도 펴냈다. 나종우 회장은 향토문화유산은 다양한 형태의 가치를 부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지역의 정체성, 차별성, 지역경제의 활성화 측면에서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지역 축제나 관광에서도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주 사람과 언론이 계간지 <사람과 언론> 제4호(2019 봄호)(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이번 봄호에는 제왕적 지배문화와 갑질현상을 특집기획으로 엮어, 우리 사회 지배문화로 자리해 온 갑질현상의 실체와 부작용, 개선방향을 짚었다. 직장갑질119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최혜인 노무사를 통해 직장갑질의 행태와 대처 방안, 20년 넘게 강사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대학사회의 지독한 갑질현상에 대한 임건태 박사 인터뷰 등이 실렸다. 또한 촛불정부 3년 차, 성찰과 남은 과제를 주제로 적폐청산을 위해 숨 가쁘게 펼쳐온 개혁정책의 결과는 무엇인지, 밝고 투명한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담았다. 이밖에 100년 전북지역 언론역사를 <전북언론사>로 펴낸 최동성 언론학 박사를 화제의 인물로 소개, 지역 언론은 죽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명제에 대한 고민도 제안한다.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지부는 제2회 완산벌 문학상 수상자로 김길남박순희 수필가를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김길남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해 <논두렁 밭두렁>, <다듬잇돌> 등 7권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전북수필문학회,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지부 회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황조근정훈장, 전북수필문학상, 행촌수필문학상, 대한작가상, 은빛수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순희 수필가는 <한국문인>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대체로 맑음> 등을 엮었다. 전북수필문학회 감사와 행촌수필문학회 감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행촌수필학회 부회장, 전북수필문학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촌수필문학상과 완산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지부 회장은 완산벌문학상은 예향의 고장 전북의 문화융성과 회원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위해 제정됐다며 앞으로도 <완산벌에 핀 꽃> 동인지 발간, 저명인사 초청 문학강연과 동서화합을 위한 영호남문학교류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제2회 완산벌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3월 23일 오후 5시 전주 백송회관에서 열린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김용옥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과 김영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김제예총 회장) 초청 문학 강연도 진행될 예정이다.
웅치산성의 청안, 계백이 황령산성, 장동석성에서 포진하고 있던 화청, 윤진까지 불러 회의를 하고 있다. 오전 진시(8시) 무렵, 둘러앉은 장수들은 10여명, 왜인으로 백제군 장수가 된 하도리와 다께다까지 모였다. 계백이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에는 신라군이 황산벌 남쪽 끝에 닿는다. 계백의 표정은 담담하다. 날씨 이야기를 하는 농부 같다. 농부는 날씨가 궂거나 개거나 태연하다. 하늘의 뜻에 일희일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신라군은 사비도성 앞에서 당군(唐軍)과 만나 함께 사비도성을 공격할 계획이라 우리는 신라군을 막고 그동안 남방(南方)이나 서방(西方)군이 모이기를 기다려야 한다. 달솔. 주장(主將) 계백의 자문 역할로 말석에 앉아있던 흥수가 나섰다. 흥수가 어느새 물기가 번진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서방군, 남방군은 모이지 않소. 이미 연임자가 장수들을 교체 한데다가 사기가 떨어져서 오합지졸이요. 마침내 흥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머개를 든 흥수가 계백을 보았다. 달솔, 황산벌에 모인 왜군은 강군(强軍)이요. 달솔을 위해서 모두 목숨을 바칠 것이오. 허나. 흥수의 시선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분하오. 대백제가 마지막 국운(國運)을 왜군 5천에 걸고 있다니 내가 죽어서도 눈이 감기지 않을 것 같소. 그때 윤진이 나섰다. 어깨를 치켜세운 윤진이 흥수를 노려보았다. 좌평, 우리는 백제 대왕을 위하여 여기 온 것이 아니오. 달솔 계백과 함께 죽으려고 왔소. 다른 건 상관하지 않소. 윤진의 두 눈도 번들거렸다. 그때 화청이 말을 받았다. 나도 그렇소. 보시오. 화청이 손을 들더니 둘러앉은 장수들을 가리키고 나서 제 가슴을 쳤다. 나는 당(唐)고조 이연이가 태원유수로 있을 때 휘하 장수였다가 탈주하여 대백제의 장수가 되었으며... 숨을 고른 화청이 말을 이었다. 여기 앉은 윤진은 본국(本國) 출신이나 달솔은 백제 담로인 연남군에서 왔소. 화청이 하도리와 다께다를 가리켰다. 하도리는 왜인이었다가 일찍 귀화하여 백제 장수가 되었고 다께다는 왜국 영지의 장수요. 몸을 돌린 화청이 흥수를 보았다. 좌평, 달솔 계백이 지휘하는 군사가 바로 대백제의 얼굴이요. 과연. 어깨를 부풀린 흥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웃는다. 흥수가 고개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달솔, 내가 늙었으나 신라 장수 한 둘은 벨 수가 있소. 나도 앞장을 설 테니 군사를 주시오. 잠자코 듣기만 하던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라군이 왜국 기마군을 전부터 얕보고 있었소. 거기에다 소정방과 합류하려고 서두르고 있으니 헛점이 많을 것이오. 계백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들은 일당백의 용사다. 그러나 자만하면 안 된다. 장수들이 숙연해졌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명심해라. 개죽음을 할 수는 없다. 우리의 목적은 대백제의 존속이다. 계백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만일 우리가 이곳에서 소멸된다면 신라는 인심 쓰듯이 황산벌의 이야기를 한 줄 남겨둘 것이다. 열 번 싸워 이기다 죽었다고.
계백이 황산벌 위쪽 3개 산성(山城)에 입성했습니다. 달솔 해수가 보고하자 청 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의자도 침묵한 채 해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조금 전 동방방령 사택부한테 보냈던 전령이 돌아와 보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택부는 갑자기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적이 눈앞에 왔는데 왕의 명을 받은 장수가 병이 났다고 드러누운 꼴이니 기가 막힐 일이 일어났지만 이제 분개하는 신하도 없다. 그때 내신좌평 연임자가 입을 열었다. 계백은 유배되었던 흥수와 함께 있습니다. 더구나 대왕이 부르시는데도 도성에 오지 않고 있는 데다 부르러 간 덕솔 하성까지 베어 죽였습니다. 의자는 듣기만 했다. 덕솔을 죽인 것은 함께 내려갔던 계백의 사신이었지만 연임자는 그렇게 말을 만들었다. 대왕, 당군(唐軍)이 서쪽에서 나흘 거리로 다가오는 중이고 신라군은 동쪽에서 역시 나흘 거리에 있습니다. 연임자가 말을 이었다. 이것은 모두 성충, 흥수, 윤충, 의직 등 반역의 무리가 대왕을 부추겨 방심하시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서 당과 신라가 연합하는데 대비하지도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남에게 그대로 뒤집어씌울 때 자신의 행적을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의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재위 20년, 나이 40이 넘어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 60대다. 백관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40여 년간 수십 번 전장에 나갔지만 단 한 번도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다.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오명을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할까 두렵다. 대왕께서는 영웅이십니다. 연임자가 바로 소리치듯 말했다. 곧 동방군(東方軍)과 서방군(西方軍), 그리고 남방군(南方軍)이 이어서 올 터이니 그동안 웅진성으로 몸을 피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청 안이 술렁거렸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동방군 3만은 지금 사택부가 거느린 채 움직이지 않았고 남방방령 의직은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래서 지금 방좌인 은솔 해무가 남방군 3만을 지휘하고 있지만 병력이 분산되어서 집결시키려면 열흘은 더 걸릴 것이다. 서방군은 달솔 상영의 지휘하에 백강(白江)으로 출동했다가 당군(唐軍)을 놓치고 나서 뒤를 쫓는 형국이 되어있다. 그러나 4만 병력으로 중과부적인 데다 기세가 떨어졌다. 당군은 전투병만 13만인 것이다. 의자가 고개를 들고 위쪽을 보았다. 모두 내 탓이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때 좌평 충상이 나섰다. 충상은 윤충 대신 병관좌평을 맡고 있었는데 50대 중반이다. 충상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의자를 보았다. 눈에 물기가 가득 차서 그렇다. 대왕, 소신이 황산벌로 가서 계백과 함께 있겠습니다. 의자의 시선을 받은 충상이 말을 이었다. 황산벌에서 40리 거리의 토성에 계백의 처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충상이 똑바로 의자를 보았다. 어젯밤 그 토성에 불이 났고 하인까지 흩어져 빈 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의자가 마른 목소리로 묻자 충상이 외면하고 대답했다. 계백이 처자를 죽이고 갔다고 합니다.
계백이 황산벌에 포진했어? 놀란 김유신이 목소리를 높이더니 곧 탄식했다. 늦었구나. 총사령, 계백은 왜병 5천기를 끌고 왔을 뿐입니다. 김품일이 다가서며 위로했다. 한식경이면 흩트리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내일 오후에는 황산벌에 닿습니다. 으음, 선봉대를 먼저 보내 그쪽 산성을 장악해두는 건데. 김유신이 입맛을 다셨다. 왜군 기마군의 진군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이야. 오후 술시(8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이곳은 황산벌에서 2백여리(100km) 떨어진 무릉군의 벌판, 백제 동방(東方) 지역이지만 백제군은 보이지 않는다. 동방 방령 사택부가 1백여리 떨어진 군창성 위쪽에 3만 군사를 거느리고 숙영하고 있지만 이미 신라군과 내통하는 사이다. 그동안 두 번이나 전령이 오갔기 때문에 오히려 우군(友軍) 같다. 반역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고금 역사에 기록된 반역자가 스스로 반역이라고 느낀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온갖 이유를 붙여 합리화시켜놓기 때문에 나중에야 평가된다. 지금 사택부가, 연임자가 그렇다. 김유신의 진막 안이다. 고개를 든 김유신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의외로 웃음 띤 얼굴이어서 장수들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김유신이 물었다. 백제는 당장 운용할 수 있는 군사가 왜병 5천뿐이다. 백제왕 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과연, 그렇습니다. 김흠춘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받았다. 김흠춘은 김품일과 더불어 김유신의 최측근으로 대장군이다. 진골 왕족이기도 하다. 몇 달 전만 해도 동, 서, 남, 북 중의 5방(方)에서 20만 군사를 모을 수가 있었지요. 20만뿐입니까? 김품일이 나섰다. 신라, 고구려, 백제, 3국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해외 영지인 담로가 22곳이나 되어서 백만 대군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부(內部)에서 무너져 버리다니 우습지 않은가? 이제는 김유신이 정색하고 장수들을 보았다. 반면교사다. 너희들도 명심해라. 자만하면 필패한다. 백제왕 의자가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신라의 성 40여개를 빼앗았다. 그 후로 18년, 신라는 갈수록 위축되었고 백제는 갈수록 교만해졌다. 김유신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이제 신라는 선덕, 진덕 두 여왕이 죽고 나서 김춘추가 왕이 되었다. 대야성에서 김춘추는 사위 김품석과 딸을 잃었다. 그야말로 절치부심, 김춘추는 왜는 물론이고 고구려까지 찾아가 원병을 구걸했고 당은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 읍소했다. 아들 김법민을 당왕 이치의 시종으로까지 바친 김춘추의 노력이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교만해진 백제 내부를 대성8족의 반역으로 이끈 김춘추의 외교술이 결실을 본 것이다.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이제 내일 황산벌에 닿고, 그다음 날은 백제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나서 당군(唐軍)과 만나게 된다. 김유신의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흐려졌다. 온갖 감회가 밀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왕이 된 김춘추와 수십 년간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 멸망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계백군만 물리치면 된다.
황산벌이 내려다보이는 3개의 성(城)이 있으니 장동석성(壯洞石城), 웅치산성(熊峙山城), 황령토성(黃嶺土城)이다. 계백은 이 3성을 연결하여 3영(三營)의 전술로 신라군을 맞았다. 신라군을 분산 격파하려는 기세다. 술시(오후 8시) 무렵, 장동석성에 화청, 황령토성에는 윤진을 주장(主將)으로 두고 각각 1500기마군을 배치 시킨 후에 중앙의 웅치산성에는 계백이 흥수와 다께다, 하도리와 함께 2천 기마군으로 입성했다. 각각의 성에는 2백여 명 정도의 보군이 지키고 있었는데 계백의 기마군이 입성하자 반색을 하고 맞았다. 소식이 빨라서 동방방령 사택부가 배신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계백의 기마군을 보더니 죽은 부모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겼다. 사기가 충천해서 기세는 일당백이 되었다. 신라군은 아직 2백여리 밖입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계백이 말했을 때는 해시(오후 10시)가 되었을 무렵이다. 저녁을 먹고 지친 군사들은 잠이 들었다. 계백이 흥수에게 말을 이었다. 좌평, 내 처자가 이곳에서 40리(20㎞) 거리의 토성에 와 있소. 아, 그렇지. 흥수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흥수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계백에게 물었다. 달솔, 처자를 만나고 오겠는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소. 그렇지. 가서 보고 오게.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작별 인사나 하고 오겠소. 흥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계백이 몸을 돌렸다. 어둠 속을 30여기의 기마군이 서쪽으로 매닫고 있다. 거친 황야였지만 어둠에 익숙한 전마(戰馬)는 거침없이 질주했고 마상의 기수 또한 말과 일체가 되어있다. 이윽고 기마대가 멈춰선 곳은 토성의 마당이다. 어느덧 마당에 횃불이 서너개 켜졌고 저택의 마루에도 등이 걸렸다. 먼저 달려간 첨병이 기별을 넣은 터라 마루에 서 있던 계백의 처 고화가 내려왔다. 놀랍고 반가운 고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져 있다. 그리고 고화의 뒤를 따라 계백의 딸 선(善)이 내려왔다. 여덟 살, 눈방울이 또렷한 선이 계백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늦었다. 계백이 짧게 말하고는 고화와 선을 양팔로 당겨 안았다. 마당에서 안은 것이다. 둘러섰던 하인, 시녀들은 잠깐 놀랐지만 모두 처연한 표정이 되었다. 계백이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었다는 말이 밤이 깊었다는 말도 되었고 시기가 늦었다는 말도 되었다. 자시(밤 12시)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계백이 양팔에 고화와 선을 감싸 안은 채 마루에 올라 청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선이 계백을 향해 절을 했다. 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것이다. 고화가 시켰을 것이다. 많이 컸구나. 흐려진 눈으로 선을 본 계백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밖에서 말굽 소리와 장식이 철거덕거리는 금속 소리, 수군대는 군사들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그때 고화가 입을 열었다. 곧 김유신군(軍)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고화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이제는 여한이 없습니다. 선(善)이 아비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가겠습니다. 그때 계백이 밖에 대고 소리쳤다. 다께다, 거기 있느냐? 부하 장수를 부르는 것이다.
원로작가 윤영근 씨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애국지사 백용성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아름다운 삶을 집필해 출간했다. 백용성 스님은 지난 1864년 장수군 번암면에서 출생해 남원 교룡산 덕밀암에서 수행을 시작해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불교를 지키고 융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 항일운동에 몸을 바친 백용성 스님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 대표로 참여한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용성 스님은 독립운동과 불교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많은 불경을 한글로 번역해 한글 살리기 운동도 함께 전개했다. 또한 윤봉길 의사를 상해 김구 주석에게 보내 독립 운동을 하도록 했으며,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의 고관대작들이 대륙침략의 전승 기념행사를 하는 자리에 폭탄을 투척해 한민족이 살아있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고하도록 했다. 남원 운봉 출신 임철호 씨에게도 운봉에서 청년동맹을 조직해 농민운동을 하도록 했으며, 임철호씨는 이후 독립투쟁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런 일대기를 집필한 작가 윤영근 씨는 지난 1980년 월간 문학에 소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으며, 그 동안 창작집 상쇠 , 장편소설 동편제, 의열 윤봉길, 평설흥부전, 평설 최척전, 유자광전, 각설이의 노래 등을 발간했다.
월간 <소년문학>(소년문학사) 2월호가 출간됐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미래를, 어른들에게는 동심과 추억을 일깨우기 위해 제작된 도서잡지로, 동시동화교양글명상만화학생 기고 등 다양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호에는 제6회 소년 해양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손영순 씨의 아 해반천!도 수록됐는데 동화와 소년소설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년소설의 전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또한 제31회 소년문학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을 수상한 최향순 씨의 고 조그만 나무가도 수록되며 아동 문학계 활성화를 이루며 뜻깊다는 평을 받는다. 2월호에는 故 정기상 선생님의 유고동화 배려와 존중도 수록됐다.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정 선생님은 아기 고래의 모험과 용감한 까치 형제, 고창 사랑 그리고 흥 등 어린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어린이의 시선으로 관찰한 작품을 남겼다. 무주 안성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강기택 아동문학가의 알쏭달쏭 우리말 코너에서는 하다와 시키다에 대해 설명했고, 김종환 씨의 재미있는 한자 이야기 편에서는 고사성어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을 소개했다. 3월호부터는 최영환 주간이 새 코너 세계를 가다 스페인 편을 맡아 스페인의 문화와 풍물 그리고 동심의 세계를 표현할 예정이다.
멍텅구리는 바닷물고기로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는다. 그래서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빗대 멍텅구리라고도 한다. 그동안 편안한 길만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다 그리 사는 줄 알았다. 이제 더는 돈과 권력 앞에 주눅이 들지 않는 깐깐한 멍텅구리가 되겠다고 말하는 한 지식인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이한교 한국폴리텍대학 김제캠퍼스 교수가 펴낸 <멍텅구리의 생각>(북랩). 이 책에는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이 교수가 신문 등에 기고해 온 180여 편의 칼럼 중 <지렁이의 눈물>에 싣지 못한 작품과 창작 단편소설, 수필이 담겼다. 총 7부 356쪽으로 구성됐으며, 1부에서 5부까지는 칼럼을 다듬어 실었다. 적폐 청산, 청년 실업, 기득권의 권력 남용 등 사회문제를 다룬 칼럼에 실린 목소리가 묵직하다. 6부에는 일상의 경험을 소시민의 감성으로 기록한 수필이 수록됐고, 7부에는 청춘의 서정이 담긴 단편소설 네 편이 실렸다. 이 교수는 <시와 수필마당> 수필 부문 신인상, <한국수필> 수필 부문 신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6년 칼럼집 <지렁이의 눈물>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폴리텍대학 김제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이름을 알린 김정경 시인이 골목의 날씨를 만드는 사람이 돼 돌아왔다. 진한 분홍빛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 그의 첫 시집 <골목의 날씨>(천년의시작)는 추운 나라의 언어들처럼 시작해 입춘으로 끝을 맺는다. 김 시인은 시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고 말머리를 연다. 끝까지 자신을 몰고 갔어야 한다는 자책과 부끄러움 때문에 늘 자고 나면 결심이 무너졌다고. 이윽고 시인은 이제 이 몸은 안심하고 떠돌 수 있겠다. 돌아올 수 있겠다고 희망을 전한다. 새하얀 종이에 옅은 미소를 닮은 진분홍 물감이 은은히 퍼지는 듯하다. 겨울 전주천, 막차를 기다리던 부안터미널, 연꽃 따러 가는 길, 백년만의 가뭄이라고 떠들썩하던 저녁, 뻘뻘 땀 흘리던 여름, 조심조심 골라 디뎠으나 은행알 밟고 만 날, 풋눈 내리는 아침에도 시인은 날씨에 내면의 풍경을 담았다. 그의 언어는 불안을 폭로하는 방식으로도 발현된다. 유강희 시인은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던 자기소개서"를 끌어안은 자의 상처가 마음의 날씨로 드러난다고 봤다. 스무살의 김정경을 기억하는 박성우 시인은 "그는 내가 아는 한 시와 삶에 대한 극진함이 큰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시집 속에는 우리가 아직 가 닿지 못한 사랑이 있고 먼 그리움이 있다고도 전했다. 문신 시인은 해설을 통해 김정경 시인의 시가 내어(內語) 가득한 하나의 세계라고 정의한다. 더불어 언어에 대한 시인 김정경의 자의식에 대해 시인으로서 일상의 언어를 채굴하고 재련해 시의 언어로 정련하고자 하는 연금술에 대한 강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김정경 시인은 이 강박을 중압이나 억압의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소함이라는 사적(私的) 트라우마를 활용한다고 강조한다. 김정경 시인은 경남 하동 출생이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전북일보를 통해 등단했으며 현재는 전주MBC 라디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시인 한 사람의 13년 동안의 고뇌가 시집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김광원 시인의 시집 <대장도 폐가>가 그것. 김 시인의 <대장도 폐가>는 지난 2005년 작가가 펴낸 <옥수수는 알을 낳는다> 이후 나온 작품 89편의 시들을 담고 있다. 13년 동안 시인이 고뇌하고 살아온 흔적과 슬프게 돌아가는 세상 풍경이 89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물질문명의 극한 속을 살아가는 현 상황에서 현대인은 정체성 상실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가운데 현시대의 한 시인으로서 생명의 순수의지를 추구하는 것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정상화를 열망하는 비판 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이 시집은 생명의 순수의지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고뇌와 이를 극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숙명을 화두로 삼고 있으며, 아울러 문학적 형상화 과정을 통해 존재론적 삶의 가치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강상기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시인은 우수한 마음의 소유자로 그의 에너지는 신성한 시적 에너지로 변형된다며 그의 시는 이쪽 기슭에 집착하면 저쪽 기슭이 허구로 보이는 착시가 아니라 하나로 조합하는 강렬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김광원 시인은 내가 꿈꾸는 일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안의 선입견과 내 방식의 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세상은 지금과 다르게 빛날 것이다며 나의 시 쓰기는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작업이고 내 사고의 변모 과정을 담아내는 자화상이다고 말했다. 전주 출생인 김 시인은 원광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원광문화대상(시 부문) 당선(1977), 제1회 전주세계소리축제 기념 단가 공모에서 민초가가 최우수상에 당선됐으며(2001),군산문학상(2015) 및 소태산 문학상(2018)을 수상했다. 의상 만해 연구원연구위원, 원광대 및 백제예술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고교 국어교사로 수십 년 근무했다.
5천 기마군이 질풍처럼 달리고 있다. 제각기 말 한필씩을 끌고 달리는 터라 말 1만필이 달려가는 셈이다. 계백도 예외가 아니다. 중군(中軍)에서 말 한필을 뒤에 매달고 달린다. 오후 미시(2시) 무렵, 태양은 중천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초가을의 햇살은 따갑다. 자욱한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났고 마른 땅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린다. 계백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고는 앞을 보았다. 이곳은 남방(南方)을 지나 중방(中方)으로 들어가는 경계선이다. 목적지인 황산벌까지는 150리(75km), 오후 술시(8시)까지는 전군(全軍)이 닿을 것이었다. 달솔, 선봉대는 유시(6시)쯤 황산벌에 닿을 것입니다! 옆으로 다가온 화청이 소리쳐 말했다. 화청의 흰 수염이 맞바람을 받아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수염이 짙어서 보기가 좋았기 때문에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장군, 수염이 장관이오. 그렇습니까? 김유신의 수염보다 낫지요. 화청이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웃었다. 붉은 입안에 서너개의 빠진 이가 드러났다. 화청은 김유신과 동갑이다. 66세인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은 수염이 숱이 적은데다가 이가 거의 다 빠져서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화청이 다시 소리쳤다. 우리가 먼저 황산벌에 닿겠습니다. 신라군은 내일 오후에나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북상하면서 수시로 동쪽으로 탐색병을 보내 신라군의 동향을 보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軍)은 기마군 1만에 보군 4만이다. 보군과 함께 움직이는 터라 하루에 150리밖에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백의 기마군은 각각 예비마 1필을 끄는데다 병참군도 말을 타고 따르는 것이다. 하루에 400리(200km)를 주파한다. 신라군보다 거의 3배나 빠른 기동력이다. 그때 앞쪽에서 전령이 달려왔다. 전령 깃발을 든 기마군 둘 뒤로 무관 복색의 기마인 둘이 따르고 있다. 계백이 달리면서 유심히 앞쪽을 보았다. 그때 계백의 뒤를 따르던 하도리가 소리쳤다, 도성으로 갔던 장덕 한성입니다! 그렇다. 한성이다. 부장(副將) 계덕 천용을 먼저 도망치게 한 다음에 도성에 남았던 한성이다. 그때 전령과 함께 한성이 달려왔다. 달솔. 오, 장덕! 살아왔구나! 달리면서 계백이 소리쳤다. 그때 옆으로 흥수까지 다가왔고 말을 속보로 걸리면서 계백이 물었다. 어떻게 도망쳐 왔느냐! 도성 앞에서 연임자가 보낸 놈을 칼로 베어 죽이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한성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놈들은 저한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놈들이 우두머리르 잃고 당황하는 사이에 도망쳐 온 것입니다! 장하다! 달솔, 도성 안에서 제가 들은 소문이 있소! 이제 계백과 한성을 중심으로 장수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달려가고 있다. 한성이 소리쳐 말했다. 동방방령 사택부에게 3만 기마군을 끌고 황산벌로 나가라고 대왕께서 지시했지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 것이야! 흥수가 핏발 선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백제 조정은 이미 연임자 일당에게 다 장악되었다. 대왕은 허수아비가 되어 있을 뿐이야! 예상한 일이었지만 흥수가 절규했다.
“노래 통해 전주에 활기 불어넣고 싶어요”
동시대 예술의 시선과 감각을 모으다
[결산! 전북문화 2025] ②성과와 과제 함께 남긴 2025 전북 국악계
데뷔 10년 임동혁, 러시아에 빠지다
[결산! 전북문화 2025] ①희비 교차한 전북 미술계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다양한 소재와 내면을 살피는 작품 다수…글을 끌고 나가는 힘 아쉬워”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윤일호 ‘거의 다 왔어!’
[전북사의 과제] ① 후백제사
창의와 열정의 주인공…2025 주민시네마스쿨 영상콘텐츠대잔치 시상식 개최
진안 출신 문정 시인 별세…향년 5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