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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67)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3

당왕 이치는 몸이 비대했을 뿐만 아니라 간질병까지 있었기 때문에 정사(政事)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더구나 여색을 밝혀 닥치는대로 여자를 탐했는데 이틀에 한 명씩 궁에서 여자의 시신이 밖으로 버려졌다. 그것은 무후(武后)가 이치가 상관한 여자를 때려죽여 궁 밖으로 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안 궁녀들은 당왕 이치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도망치기 바빴으니 밤이면 여자를 찾아다니는 이치를 궁에서 왕귀(王鬼)라고 불렀다. 이치는 무후를 왕비로 책봉한 후부터 거의 정사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 사신이 자주 찾는 것은 이의부, 허경종 등이었다. 그들은 무소의가 왕비가 되도록 공이 컸기 때문에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전하께선 요즘 대전에 잘 나오시지 않아서 뵙기가 어렵소. 이의부가 웃음 띤 얼굴로 김창준에게 말했다. 김창준은 진골 왕족으로 김춘추의 친척이다. 대감, 방법이 없겠습니까? 김창준은 45세, 지금까지 당에 여섯 번째 오는 셈이어서 장안성의 지리는 물론이고 이의부가 뇌물을 밝힌다는 것까지 안다. 오늘 김창춘은 이의부에게 황금 3백 냥을 가져왔다. 그래서 이의부가 만나준 것이다. 이의부가 눈을 좁혀 뜨고 김창준에게 물었다. 황금이 몇 냥이나 남았소? 가져온 것은 다 떨어졌지만 빌릴 수는 있지요. 옳지, 공대인한테서 빌린다는 말인가? 예, 자주 거래를 해서 신용으로 빌리고 갚습니다. 그렇다면 황금 1천 냥을 가져오시오. 방에 둘 뿐이었지만 이의부가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왕비께 여쭤서 신라의 원병을 보내도록 애쓰리다. 대감, 한시가 급합니다. 김창준이 상기된 얼굴로 이의부를 보았다. 촛불에 비친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당군(唐軍)만 파견해 주시면 대감께 황금 3천 냥을 드리지요. 우선 1천 냥을 가져오도록 하고. 대감 약조를 해 주시지요. 이것 봐요.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이의부가 눈썹을 모으고 혀를 찼다. 이찬, 나하고 한두 번 만났소? 아닙니다, 대감. 지금 세상이 무후(武后)의 세상이 되었소. 무후가 누군지 아시오? 압니다. 잘 모르는 모양인데 새겨들으시오. 무후께선 미랑으로 계실 때부터 돌아가신 선왕의 왕비나 마찬가지였소. 그렇습니다. 선왕(先王)께서 40이 넘으셨을 때 14살이 된 미랑(媚娘)을 보시고 무미(武媚)라는 이름을 짓고 총애를 하셨소. 예에. 천하가 아는 일이었지만 김창준은 처음 듣는 척했다. 신라는 물론 백제, 고구려는 이런 일은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워한다. 지금 이의부는 현재의 당왕(唐王) 이치(李治)의 부친 이세민의 애첩이었던 미랑, 즉 무후(武后) 이야기를 하고있다. 이치는 제 부친의 애첩 미랑을 왕비로 삼은 것이다. 그것을 당의 대신 이의부는 자랑삼아서 떠벌리고 있다. 무후의 권력을 과시할 목적인 것이다. 이의부가 어깨를 펴고 말했다. 무후께서 지시하시면 왕께서는 두말하지 않으시오. 그러니 내일 금화 1천 냥을 가져오시오. 예, 대감. 김창준이 두말하지 않고 엎드렸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20 18:19

[불멸의 백제] (266) 14장 당왕(唐王)이치(李治) 2

계백은 왜국의 대영주가 되어 있습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백제방의 직할령을 늘려가고 있는바, 이것은 왜왕과 백제방간의 합의에 의한 것입니다. 풍이 계백을 신임하는 것 같구나. 왜왕께서도 의지하고 계시지요. 계백은 왜국에 두는 것이 낫다. 의자가 결론을 내었다. 왜국은 수백년간 백제 문물을 받아들여 백제화(百濟化) 되었다. 계백이 직할령을 늘려 그것을 더욱 굳히게 하도록 해라. 백제인은 오래전부터 왜국으로 집단 이주를 해서 제각기 근거지를 넓히고 호족이 되었는데 그것이 왜국의 왕가(王家)와 지방 영주의 뿌리다. 백제인들은 왜인과 동화, 선진문명을 전파하고 무기와 전술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왜국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지금 왜왕 일가(一家)는 물론이고 왜왕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섭정 소가 이루카도 백제계이며 담로인 왜국을 관리하는 백제방에는 왕자 풍이 방주가 되어있다. 왜국은 명실상부한 백제령이다. 그때 내신좌평 목부가 나섰다. 대왕, 당왕이 한달동안이나 신라왕이 보낸 사신을 만나지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의자가 고개를 들었고 목부가 말을 이었다. 신라왕이 계속해서 걸사표를 보내는 터라 읽기가 싫다는 것 입니다. 하긴 제 애비의 애첩을 왕비로 들이느라 머리털이 빠졌을테니까.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여색(女色)을 끊임없이 밝히는구나. 의자가 용상에 등을 붙였다. 신라여왕 김승만(金勝曼)은 재위 8년만인 작년에 죽고 마침내 김춘추가 신라왕위에 올랐다. 김춘추는 이제 신라의 29대 왕이 된 것이다. 목부의 말이 이어졌다. 대왕, 김춘추는 군사만 파병해주면 백제는 모두 당의 직할령으로 내놓고 신라는 신라국으로 남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으음. 신음을 뱉은 의자가 백관들을 둘러보았다. 들어라. 예. 1백여명의 대신들이 일제히 대답했을때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지금 신라는 백제에게 영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져있다. 의자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된다. 김춘추가 당을 이용하여 끝까지 항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에서 군사를 파병할 여력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가 말했을때 의자가 머리를 저었다. 너희들은 김춘추를 가볍게 보고 있다. 대륙 동쪽의 3국(國)중에서 김춘추만한 인재가 없다. 모두 숨을 죽였다. 김춘추를 칭찬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제 조정에서 이런 말이 나온적은 없다. 오랑캐인 당(唐)에 붙어서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지탱하고 있는 소국(小國), 김춘추가 바로 신라다. 김춘추는 고구려, 백제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대야성을 백제에게 함락당하고 성주인 사위 김품석과 딸이 살해당했으며 42개의 성을 빼앗겼다.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받아 영토가 반토막이 되었으며 내란이 일어나 상대등 비담 일당과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신라가 명운을 유지해 온 것은 오직 김춘추의 공이다. 김춘추는 적국(敵國)인 고구려에 단신으로 들어가 연개소문을 만나 백제를 함께 공격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왔다. 왜국에 밀항해서 왜왕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가 백제방의 호의로 풀려 나오기도 했다. 당으로 가는 중에 해상에서 백제 수군에게 잡혀 도성으로 끌려왔다가 다시 풀려난 인물이다. 그때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김춘추는 영웅이다. 적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청안에 한동안 정적이 덮여졌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7 21:57

지역의 보석같은 이야기가 책으로…

지역에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와 예술가를 발굴해 조명한 소중한 책이 발간됐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이 지역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펴낸 <강을 거닐다>와 문화예술인을 재조명하고 집대성한 <익산예인열전>(문학)이 그것. 지역자원콘텐츠 사업 일환으로 진행 중인 지역 스토리텔링 시리즈의 이번 편 강을 거닐다는 지역의 젊은 작가 박태건, 김정배, 김형미, 서덕민 등 4명의 집필진이 참여했다. 웅포, 성당포 등 금강 인근 지역 포구 중심의 이야기들을 한데 엮었다. 강과 강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 강을 따라 흘렀던 역사 등 지역의 보석 같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2015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공모사업에 선정된 그 때 그 시절 영정통 사람들을 시작으로 2017년은 익산역을 중심으로 중앙동 일대의 근대와 철도 이야기를 모은 근대 익산을 거닐다를, 2018년은 웅포, 성당포 등 금강 인근 지역 포구를 중심으로 지역의 이야기들을 강을 거닐다라는 제목으로 엮어냈다. 금강변 용 이야기부터 허균의 맛의 기억들, 탑천을 따라 발길을 옮긴 무왕의 순례길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 장을 넘기게 한다. 기쁨과 슬픔, 절망 등 모든 것을 안고 흐르는 강물처럼 이 책에도 강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장 사이사이 사진과 그림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시선과 함께 지역 작가들의 소중한 생각들도 느낄 수 있다.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익산 또는 익산 관련 문화예술인을 재조명하고 집대성한 <익산예인열전>은 익산문화관광이 추진하는 인물 아카이빙 사업이다. 2017년 시각 예술 분야에 이어 2018년 문학 편에는 눈의 시인 박항식, 시골무사 이성계의 서권, 교육가이자 아동문학가 소석호, 별의 시인 안건옥, 오송회 사건의 맑아서 불온했던 시인 이광웅, 호연지기씨 조두현 등 여섯 명의 예인들을 선정했다. 예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 제자 등이 집필에 참여해 풍성한 기록을 엮어냈다. 2019년 공연예술 분야까지 열전을 펴내고 최종적으로는 익산예술사 발간을 통해 지역예술사 연구를 집대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과거와 현재의 지역문화자원과 사람을 통해 미래 지역 예술을 준비하겠다는 익산문화관광재단의 목표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지역 스토리텔링 <강을 거닐다>와 <익산예인열전>(문학)은 비매품으로, 전국 도서관 및 주요 문화예술시설에서 만날 수 있으며, 재고 소진 시까지 익산문화관광재단을 통해 배포한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7 21:57

전주문화재단, 서학동 마을술사 교과서 발간

전주시 서학동은 삶의 흔적과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동네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서학동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통해 국내외 사람들이 서학동만의 훈훈한 인정을 취하길 기대합니다. (판소리 다섯마당 예술마을 만들기 시민위원인 박영진 글로벌문화협회장) 전주문화재단이 전주한옥마을 인근 서학동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담은 서학동 마을술사 교과서 <두루미가 살았던 우리 동네 서학동 이야기>를 발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판소리 다섯마당 예술마을 만들기 성과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학동 미리 보기 △서학동 느리게 걷기 △서학동 동네 밥상 레시피 △부록 등 총 9종 47개 콘텐츠를 중심으로 서학동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 소개한다. 서학동 미리 보기에는 서학동의 조성 시기와 위치, 조형물 등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다. 서학동 느리게 걷기에는 서서학동, 동서학동, 대성동, 색장동, 서학동 산책길에 대한 정보가 수록돼 있다. 전주문화재단 정정숙 대표이사는 앞으로도 문화 재생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주민주도의 지속 가능한 운영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며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국립무형유산원을 거쳐 서학동을 체험하고 갈 수 있도록 방문을 유도하겠다라고 밝혔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9.01.17 21:57

목천 정병렬 시인, 마음 풍경 담아

제 아무리 드론이 난다 해도 울어머이 그 포근한 나라를 어찌 모른다 하시나이까. 58년전,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엄동의 계절로 등단한 목천 정병렬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울어머이 그 포근한 나라>(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출판사)를 펴냈다. 팔순 노년에도 그는 나이를 모르고 젊으며, 지역문인들로부터 신사의 품위와 활발한 문단활동을 인정받고 있다는 시인. 못에게는 / 망치가 구원의 신이다 / 못된 것 망치로 두들기면 / 한번 박은 못은 죽도록 꽃이다 / 몸을 태워 일생을 웃는다 / 저 널빤지 밤하늘 / 별 하나 - 저 별, 망치가 빛난다 전문. 이운룡 시인은 시평설 정병렬의 개안 투시와 통찰의 심상 을 통해 그는 언어의 엄격한 결백성을 시창작의 과업으로 믿고 이를 구현코자 노력한 시인이다며 이제 거목과 거목이 어깨를 짜고 숲이 되어 살아가는 식물적 생태와 같이 정병렬 시인을 숲의 시인이라 불러도 좋으리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정 시인의 시는 함부로 넘겨볼 수 없는 중력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을 꼼꼼하고 신중하게 숙고해야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다고 귀띔한다. 시집은 서시 2편과 1부 너를 만나는 눈길, 2부 울어머이 그 포근한 나라, 3부 담쟁이 벽보, 4부 연날리기에 걸쳐 79편의 시를 새겼다. 순창 동계 출생인 정 시인은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중등 영어 교사로 30여 년간 교편을 잡았다. 시집 <등불하나가 지나가네>, <물길어가는 새떼들>, <설원에 서다>, <외롭다는 것>, 산문집 <희망시인내동사랑가>를 출간했다. 전북시인상중산문학상을 받았고, 한국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1.17 21:57

원로 역사학자 이규하 교수, 독일 현대사 연구 논문집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가 <이규하 교수 논문집-원로 역사학자의 독일 현대사 연구>(한울)를 출간했다. 이 교수가 팔순에 맞춰 펴낸 이 책은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역사에 대해 자세하고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전쟁으로 야기된 독일의 재무장 논쟁, 중국 산둥반도에서 독일일본 제국주의 충돌 연구 논문도 더했다. 이 교수는 독일 격동기의 역사정치사상에 대해 자료를 수집연구하고 보완해온 글들을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어 매우 기쁘고 홀가분하다며 자신의 전공 분야 중 핵심을 이 책에 모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비교적 부피가 작은 책이지만,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고 가장 힘을 들였으며, 외국에서 외국 자료로만 쓴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책은 제1부 아돌프 히틀러,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분단, 독일 통일, 제2부 한국 전쟁과 서독의 재무장 논쟁, 부록 독일 전통사상의 한 주류 등 318쪽으로 구성됐다. 이 교수는 전북대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현대사연구소, 베를린 자유대학교 연구원, 하버드 대학교 연구교수, 전북사학회장, 전북대 인문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대 명예교수로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1.17 21:57

[불멸의 백제] (265)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

현재의 당왕(唐王) 이치(李治)는 당태종 이세민의 아홉째 아들이다. 이세민에게는 1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왕비인 문덕왕비한테서 낳은 왕자는 장남인 승건, 넷째 아들 태(泰)와 아홉째아들 치(治), 셋뿐이었다. 그런데 장남인 왕태자 이승건(李承乾)은 남색을 밝힐 뿐만 아니라 성격이 괴상해서 이세민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남색의 상대자인 칭심(稱心)이라는 미소년을 죽여버리자 이승건은 더 미쳤다. 죽은 칭심의 초남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내고 눈물을 흘리면서 배회했으니 태종 이세민의 울화가 터지지 않을 리가 없다. 또한 태종은 넷째 황자 태를 사랑했다. 이승건은 다리 병신이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는데도 놔두었고 태가 비만해서 걷기 힘들어하자 그에게만 궁중에서도 수레를 탈 수 있도록 허락할 정도였다. 그러자 태에게 황태자를 이양할 눈치를 챈 이승건이 자객을 보내 태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다. 다시 왕자간 내분이 일어날 분위기였다. 그래서 태종 이세민은 아홉째 아들 치(治)를 후계자로 세운 것이다. 이것이 치(治)가 당왕이 된 이유다. 그것이 정관 17년, 서기 634년이었고 태종은 6년후 정관 23년, 서기 649년에 51세로 죽는다. 28세에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형이며 태자인 이건성, 동생 원길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지 23년만에 죽었다. 그당시 이세민은 형 건성의 아들 5명, 동생 원길의 아들 5명까지 다 죽였으니 이번에는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여자 문제는 여전히 지저분했다. 이세민은 죽인 동생 원길의 처 양씨를 총애하여 왕비 문덕이 죽은 후에 왕비로 세우려고 했다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그리고 지금, 당왕 이치는 제 아비가 총애하던 미랑을 제 애첩으로 삼았다. 그 미랑이 나중에 당나라를 잠깐 무씨 왕국으로 바꾼 측천무후가 되었으니 백제 관점에서 보면 상놈의 나라다. 미랑은 소의가 되더니 이치(李治)가 왕위에 오른지 6년만인 서기 655년에 왕후에 올랐다. 이치의 왕비가 된 것이다. 백제 의자왕 15년이다. 음, 그 무소의의 나이가 지금 몇이라구? 의자가 묻자 좌평 성충이 대답했다. 예, 올해로 32세입니다. 그럼 이제 무후(武后)로 불리우겠구만? 그렇습니다. 백제 왕궁의 청 안이다. 백관이 도열한 청 안에서 다시 의자가 묻는다. 이세민이 죽은지 6년이 지났다. 당왕 이치는 제 아비의 애첩이었던 미랑을 궁으로 불러들여 소의(昭儀)를 시켰고 이제 왕후가 되었다. 그런데도 당 조정에서 간하는 신하가 없었는가? 있었지만 무소의가 다 모함해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당왕 이치도 무소의를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이세민의 업보가 제 자식에게 넘어간 것일까? 형제의 미망인을 제 처첩으로 삼는 것은 오랑케의 풍습이긴 합니다. 본래 이세민의 아비 이연이 오랑케인 선비족이란 소문은 있습니다. 아무리 오랑케라도 그렇지. 어찌 이치(李治)는 제 아비 이세민의 애첩을 데려다가 이제는 왕비로 삼는단 말인가? 의자가 백관들을 둘러보았다. 이것은 당 조정이 썩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든 신하들은 없느니만 못하다. 지당하진 말씀이오. 대신 서너명이 입을 맞춰 말했다. 소신들은 그런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소이다. 백제가 중원을 제패해야 제대로 된 인륜의 왕도가 세워질 것이다. 혼잣소리처럼 말한 의자가 성춘을 보았다. 어디, 계백의 이야기를 듣자, 백제방의 영토가 왜에서 얼마나 늘어났는가?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6 20:08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개최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6일 오후 전북일보사 7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인 시 부문 한경선(60경기도 고양), 소설 부문 권준섭(22서울), 동화 부문 김영숙(45대구), 수필 부문 이진숙(54전주) 씨는 각각 더욱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남곤 전 전북일보 사장을 비롯해 김경희, 김계식, 김영, 김종필, 류희옥, 박예분, 서정환, 서재균, 석인수, 소재호, 윤이현, 이준관, 이운룡, 이소애, 이형구, 장태윤, 정병렬, 전병윤, 정성수, 전일환, 전정구, 조기호, 조미애, 주봉구, 최기우, 허호석 등 원로중견 문인과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 백성일 부사장, 서창원 이사, 위병기 문화사업국장이 참석했다. 한경선 시인, 권준섭 소설가, 김영숙 동화작가, 이진숙 수필가라는 호명으로 운을 뗀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들에게 축하한다.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문인이 되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한국 문단을 넘어 세계로 지평을 넓히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창작의 바다로 출항에 나서는 후배들을 선배 문인이 도와달라며 전북일보도 자긍심을 갖고 문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활약상을 소개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평에 나선 소재호 시인은 문학이란 인상 깊게 통찰한 바를 감동 있게 표상하거나 경이적인 관점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언어예술이라며 이번 작품들 모두 이에 합당한 걸작이었다. 모든 당선자에게 깊이 축하한다고 격려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6 20:08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오늘을 밑거름으로, 훨훨 날 길”

한국 문단의 큰 빛 되기를. 16일 전북일보사 7층 회의실에서 열린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는 한국 문단의 신예 탄생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선배 문인과 가족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시상식에서 당선자들은 각자 등단의 기쁨을 밝히는 한편 이에 더해 앞으로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한 생각들도 털어놨다. 30대부터 시작한 글 쓰는 일이, 정말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정말 막다른 벼랑 끝에서 붙잡아줘 고맙습니다. 시 훈민정음 재개발 지구로 당선한 한경선 작가는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를 수십번,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한 순간,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는 행복하지만 슬프고 힘든 이 길을 함부로 걷지 않겠다며 죽는 날까지 열심히 쓰라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쓰겠다고 말했다. 소설 창으로 당선한 권준섭 작가는 올해 스물둘로 문청(文靑)중 문청이다. 그는 지금껏 왜 글을 썼나 생각해보니, 내가 썼던 모든 글과 문장들이 내게 힘과 위안이 되어 줬다며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겠다. 쉬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필 한 걸음으로 작가의 길에 오른 이진숙 작가는 당선 소식을 듣던 날을 잊지 못한다. 너무 기쁜 마음에 거실에 흩어져있던 책들도, 설거지통에 쌓인 그릇들도 예쁘게만 보였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튿날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말한다. 이내 그는 내가 받은 사랑만큼 열심히 써서 더 많은 위로를 주는 글을 쓰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이제 인생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살며, 글 쓰는 것이 내 삶의 한 부분이라 느끼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 주위에 마음 아픈 아이들에게 글을 써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 봐요. 동화 성냥팔이 소녀로 등단한 김영숙 작가는 당선 소식을 들은 날부터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하지만 이 자리에 와보니 날아올랐던 높이 만큼 어깨가 무거움을 느낀다며 그 무게만큼 신중하게 글을 읽고, 쓰며,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선택해서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문단에 첫 발을 내디딘 네 명의 작가에게 축하의 말도 이어졌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이 있지만 이는 글을 쓰는 작업에서만큼은 통용되지 않는 말이라며 글은 언제나 신선해야 하고 아무도 되뇌지 않은 새롭고 창의적인 언어만이 뇌리에 각인된다. 아무리 문력이 반백년 지난 원로 문인일지라도 펜을 잡는 순간이 바로 그 글을 쓰는 시작점이다고 조언했다. 그는 영광스러운 오늘을 밑거름으로 삼아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달라고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6 20:08

[불멸의 백제] (264) 13장 동정(東征) 20

계백이 화청과 함께 토요야마성에 입성한 것은 그로부터 나흘 후다. 1만여 명의 군사가 입성할 때 성에서 미나미, 가와사키 등 우에스기의 중신(重臣)들이 마중을 나왔고 주민들은 길가에 엎드려 일행을 맞았다. 우에스기의 영지는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복속한 것이다. 오오다숲에서 우에스기를 죽인 것으로 55만 석 영지가 평정되었다. 국경에서 대기했던 노부사다와 동생 다까다는 자결함으로써 수하 군사들의 목숨을 구했다. 주군, 우에스기의 여섯 째 아들 아오모리가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백의 부장(副將) 다께다가 보고했다. 청에 앉은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모리는 서북쪽 국경의 4개 성을 장악하고 우에스기 일족을 모아놓고 있다. 데리고 오도록. 계백이 말하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토요야마성의 정청은 넓고 화려했다. 55만 석 영주의 거성답게 위압적이다. 조처의 소영주가 압도당할만했다. 이윽고 아오모리가 청 안으로 들어섰는데 뒤로 가신 둘이 따른다. 아오모리는 단정한 용모에 몸매도 단단하게 보였다. 이윽고 계백의 10보 앞으로 다가선 아오모리가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 손은 청 바닥에 짚으면서 이마를 붙여 절을 했다. 우에스기의 자식 아오모리입니다.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대감의 처분을 받고자 왔습니다. 청에는 계백의 무장 50여 명에다 우에스기의 신하까지 70여 명이 정연하게 앉아있다. 고개를 든 아오모리가 계백을 보았다.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고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러나 입은 꾹 닫쳐진 채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청 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너, 살고 싶으냐? 예, 대감. 바로 대답한 아오모리가 다시 두 손으로 청 바닥을 짚었다. 이제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지만 시선은 필사적으로 떼지 않는다. 아오모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살려주십시오. 어떻게 살겠느냐? 절에 들어가 중이 되겠습니다. 네 가족은? 영지를 떠나 농사를 짓겠습니다. 몇 명이냐? 예, 처가 식구까지 모두 37명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부처님께 대감의 무운장구를 빌겠습니다. 엎드린 아오모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청 안이 숙연해졌을 때 계백이 말했다. 네 아비의 원혼도 달래주거라. 네 아비는 내가 죽였다. 아오모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너한테 변방의 성을 몇 개 주고 싶지만 네 자손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 다른 곳에 가서 새 영지를 만들어 보거라. 예, 대감. 계백의 시선이 화청의 부장 복위에서 옮겨졌다. 네가 아오모리에게 황료 1천 냥을 주고 국경까지 호위해주고 오너라. 예, 대감. 감동한 아오모리가 청 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사례를 하고는 물러갔다. 청에 가신들만 남았을 때 화청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군, 이곳을 동정(東征)의 중심으로 삼으시지요. 어깨를 편 화청이 말을 이었다. 동쪽에 수천만 석의 영지가 펼쳐져 있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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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5 19:56

[불멸의 백제] (263) 13장 동정(東征) 19

노부사다가 동생 다카다를 보냈습니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장 복위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투항 사절입니다. 장군. 데리고 와. 화청이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전막 안에는 무장들이 모여 있었는데 밝은 분위기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주둔한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우에스기가 죽은지 9일째. 그동안 바깥 세상은 언덕 위에서 저절로 굴러가는 바위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 복위의 안내로 다카다가 들어섰는데 차분한 표정이다. 화청의 다섯걸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한 다카다가 두손을 짚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노부사다는 항복합니다. 노부사다의 목숨은 맡기겠으나 군사는 충성스럽고 잘 훈련되었으니 계백 영주님의 군사로 써 주시기만 소원합니다. 항복하는 놈이 무슨 조건을 붙인단 말이냐? 화청이 버럭 소리쳤다. 눈치를 보다가 휘하 무장놈들이 야반도주를 하니까 결국 항복해오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장군. 너는 노부사다의 동생이라면서? 예, 장군. 너도 죄가 있다. 왜 둔한 네 형놈을 지금까지 눈치만 살피도록 했느냐? 일찍 항복했다면 칭찬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늦었다.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몇 놈이 남았느냐? 기마군 1천2백, 보군 1천3백, 잡군, 사역병 2천4백입니다. 오합지졸이군. 외람되오나 노부사다에게 우에스기 영지 소탕의 선봉을 맡겨주시면 소임을 책임지고 끝내겠습니다. 어젯밤에도 무장들이 군사를 이끌고 도망쳤지? 예, 장군. 그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장군. 네 형한테 가서 말해라. 예, 장군. 이미 늦었다. 눈을 가늘게 뜬 화청이 흰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노부사다한테 군사는 내가 맡아줄 테니 보내라고 해라. 예, 장군. 노부사다는 아스카의 소가 대신한테 가든지 자결하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너도 마찬가지. 알았느냐? 예, 장군. 너희 형제는 시기를 놓친 거다. 가거라. 그러자 다카다가 말없이 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카다가 진막을 나갔을 때 화청이 복위에게 지시했다. 네가 노부사다의 군사들을 데려와라. 예, 장군. 쓴웃음을 지은 복위가 말을 이었다. 눈치만 보다가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로써 국경에 있던 우에스기의 병력도 정리가 되었다. 어젯밤 노부사다의 진을 빠져나온 세 무장은 화청의 진으로 투항해 온 것이다. 노부사다는 모르고 있었지만 화청의 마음은 그것으로 이미 결정이 된 상황이다. 노부사다까지 받아들이면 먼저 투항한 세 무장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된다. 그래서 화청이 노부사다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때 화청이 복위에게 지시했다. 주군께 보고를 해라. 이제 우에스기의 주력군은 다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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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4 16:22

[불멸의 백제] (262) 13장 동정(東征) 18

마침내 계백이 우에스기를 멸망시켰구나. 소가 에미시가 아들 이루카에게 말했다. 한낮, 이루카의 저택 청에는 에미시와 중신(重臣)들, 그리고 우에스기 영지에서 달려온 가신까지 10여명이 둘러앉아 있다. 에미시가 우에스기의 가신 이쯔키(五木)에게 물었다. 너는 노부사다를 만났느냐? 만나지 않고 곧장 여기로 왔습니다. 우에스기의 처남 중 하나인 이쯔키는 42세, 3천석 녹봉을 받는다. 에미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쯔키를 보았다. 우에스기의 처남이 너를 포함해서 몇 명이나 되느냐? 이쯔키가 서너 번 눈을 깜박이고 나서 대답했다. 20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처가 몇 명이지? 10명이 넘습니다. 그렇군. 거기에 아들이 37명이라니. 한숨을 쉬고 난 에미시가 이루카를 보았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우에스기 영지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낫겠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루카가 묻자 에미시는 힐끗 이쯔키를 보았다. 이미 늦었다. 지금쯤 내분이 일어나다 망해가고 있을 게다. 이루카는 입을 다물었고 에미시의 말이 이어졌다. 자식들, 처남들끼리 전쟁 중일 테니 계백은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국경에 있는 노부사다의 5천 군사는 어떻게 합니까? 아마 노부사다 휘하 무장들 사이에도 내분이 일어나 쪼개질 거다. 에미시가 머리를 저었다. 거기에다 우에스기 영지까지 파견할 병력도 없다. 그랬다가는 에미시가 입을 다물었지만 이루카는 다음 말을 알 수 있었다. 그랬다가는 되려 이쪽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때 에미시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쯔키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서 쉬거라. 이것으로 우에스기 가문의 존망(存亡)이 결정되었다. 말뜻을 알아차린 이쯔키는 입을 열지도 못했다. 과연 노회한 에미시의 예상이 맞았다. 그 시간에 국경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노부사다의 진막 안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엇이? 나까모리가? 앞에 선 무장은 외면한 채 대답했다. 예, 마사키와 유시로도 함께 간 것 같습니다. 마사키? 유시로도? 노부사다의 입술에 경련이 일어났다. 모두 측근 무장이다. 무장이 말을 이었다. 끌고 간 병력이 2천 가깝게 됩니다. 밤사이에 무장들이 도망친 것이다.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무장들을 모두 불러라! 노부사다의 고함이 비명처럼 울렸다. 무장이 서둘러 진막을 나갔을 때 노부사다가 옆에 선 다까다에게 말했다. 다까다는 노부사다의 동생이다. 다까다, 내가 너무 우유부단한 거냐? 어쩔 수 없었지요. 다까다는 참모형이다. 정색한 다까다가 말을 이었다. 형님, 화청의 대군이 50리 거리에 있습니다. 계백이 왜 화청에게 우리를 공격하라고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지금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군. 쓴웃음을 지은 노부사다가 말을 이었다. 도망친 배신자들이 후회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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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3 18:38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아우타르케이아 길 - 박월선

모악산 기슭, 텃밭 길을 걷는다. 숲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시원하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도시가 보이는 산 아래로 간다. 텃밭 가는 길목에 아기 흑염소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아저씨가 아직 퇴원을 안 하신 모양이다. 퇴직을 하고 흑염소 농장을 시작했다는 아저씨가 보이지 않아 얼마 전 물어본 적이 있었다. 흑염소 아저씨가 안 보이시네요? 글쎄 암에 걸렸대. 지금 병원에서 수술하고 치료 중이라네. 아들이 가끔 와서 흑염소 사료 주고 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아저씨. 어서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며 길을 걷는다. 흑염소 농장 너머로 걷다 보면 다랑이 논이 보인다. 다랑이 논은 모두 4층으로 되었다. 그중 3층, 4층 다랑이 논은 농사를 짓지 않았다. 이 논은 농사를 안 짓는대요? 작년에 가뭄이 들어서 아래 논 주인과 칼부림을 했어. 왜요? 아래 논 주인이 저 위 계곡에서 먼저 물을 호스로 끌어서 아래 논에 물을 대니, 위 논 주인이 물이 부족했던 거지. 아, 가뭄. 올봄 너무 가물어서 우리도 텃밭에 물을 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열 받은 이 씨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물을 끌어오는 호스를 낫으로 잘라버렸어. 그러니 아래 논 주인과 싸움이 난 거지. 다친 사람은 없나요? 낫 들고 덤벼드니 경찰서에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하고 살인 미수죄라고 난리가 났지. 그래도 사람은 안 다쳐서 조용히 끝났어. 다행이네요. 도시에서 직장 다니던 자식들이 허겁지겁 와서는 아부지, 농사지어서 얼마나 남는다고 그라요, 이제는 농사짓지 마시오, 그 논 팝시다, 그랬다지. 과수원 길에 소문이 파다해. 빈 논에는 소문만큼 풀들이 무성하다. 과수원을 지나 기슭 아래 이르면 텃밭이 있다. 텃밭으로 지나는 길에는 작은 보랏빛 자운영 꽃이 피고 잡풀 속에서 피어난 참나리 꽃도 화사하다. 그동안 몰랐던 더덕 꽃도 길을 걷다 발견한 것이다. 계절을 모르는 듯 피어난 코스모스도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질경이가 가득 찬 길을 밟고 가기 미안해 사뿐히 지르밟고 지나는 텃밭 길이다. 밭고랑과 고랑 사이를 밟고 흙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계절별로 다른 햇볕의 강약도 즐긴다. 도시의 경쟁 속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악산 기슭이 나를 안아서 위로해 준다. 힘들었지? 수고했어. 풀과 꽃들이 나무가 바람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군가와 경쟁하기보다 연약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영원의 소유자인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래, 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오늘 하루는 모악산에게 위로받고 들꽃들에게 사랑도 받을 자격이 있어.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땅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면 햇볕과 바람이 들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최근 깨달은 게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레몬밤 허브 한 줌을 심었더니 아주 잘 자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잘라 말려서 아들 방에, 남편 자동차 안에, 그리고 텃밭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향기를 만끽했다. 그런데 휴가철에 2주 정도 그곳을 찾지 못하고 3주째 갔더니 그 옆에 심어 놓은 참외 덩굴이 허브 줄기를 감아 허브를 전멸시키고 있었다. 작은 땅에 욕심껏, 너무 많은 것들을 심어 놓았으니 뻗을 자리가 부족했던 것을! 텃밭으로 가는 길 아래 엉성하게 만든 평상에 누워 책 한 권을 꺼낸다. '행복의 경제학'. 쓰지 신이치 글은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풍요라는 보물을 찾기 위해 너무나도 서둘러 왔기 때문에 행복이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져버렸다. 작가는 말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과 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사이의 균형 감각이며, 자신과 세상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 나는 늘 많이 가질수록 행복해진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더 많이 갖기 위해 땀 흘리는 개미처럼 살아왔다. 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유는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 것 같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가슴을 쓸고 가는 휑한 찬바람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런데 이 길은 내게 가르친다. 만족하고 순응하며 소통하라고. 나는 텃밭까지 오르는 길을 아우타르케이아 길이라고 명명한다. 아우타르케이아(자기만족이라는 그리스어) 길은 헛되고 무익한 것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정도껏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 길에서 위로받고 자연이 선물해준 채소들을 가득 안고 다시 도시의 집으로 걷는다. 바람 한 줌도 가슴에 품고서. *박월선: 2007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동화 '딸꾹질 멈추게 해줘', '닥나무 숲의 비밀', '내 멋대로 부대찌개'(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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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1 17:48

근대 연예 농악의 정점, 여성농악 예인들 한눈에

1959년 남원국악원에서는 최초의 여성농악단인 남원여성농악단이 만들어졌다. 김영운, 강도근, 주광덕 등 판소리 명창들과 남원의 국악 동호인들이 참여해 단원들을 교육하고 단체를 운영했다. 이보다 1년 늦게 만들어진 단체인 춘향여성농악단은 강도근 명창의 여동생 강선화가 단장을 맡았다. 명창 강도근과 대금 명인 강백천, 정읍농악 꽹과리 명인 전사종, 장구 명인 김병섭, 채상소고 명인 정오동 등이 단원들을 교육했다. 오갑순, 안숙선 등은 춘향여성농악단의 스타였다. 호남우도농악의 상쇠 나금추도 수습을 떼고 이 단체에서 처음 상쇠가 됐다. 안숙선의 외가 어른들이었던 강선화, 강도근, 강백천은 요즘 연예 기획사의 트레이너들처럼 소녀들을 당대의 농악 연예인, 국악 연예인으로 성장시켰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여성농악 예인들. 최근 발행된 <향기조차 짙었어라>는 이 여성농악 예인들을 생생하게 되살린 책이다. 이 책에는 여성농악 최초의 상쇠 장홍도, 남원국악원의 숨은 주역 김정화, 여성농악의 간판스타 오갑순, 여성농악의 장구 스타 배분순, 춘향여성농악단의 열두발상모 박복례, 국악계의 거목이 된 명창 안숙선, 춘향여성농악단의 4대 상쇠 이희숙, 호남우도 부포놀이의 명인 상쇠 나금추, 춘향여성농악단의 사업부장 김수덕, 춘향여성농악단의 마지막 세대 소고잽이 노영숙 등 10인의 구술이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실려 있다. 구술자들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 남원여성농악단과 춘향여성농악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이다. 이를 기획한 사람은 1960년대 중반 춘향여성농악단의 소고잽이로 활동했던 노영숙이다. 그는 강백천 일가와 함께 지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단체의 해산도 지켜봤다. 1970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 한국예술단으로 선발돼 전사섭, 유지화 등과 공연을 했고 이후 박귀희 단장의 한국민속가무예술단 단원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한 바 있다. 노영숙은 <여성농악단 연구>(2004)를 발행한 전북대 국문과 강사 권은영과 협업해 책을 완성했다. 농악 연구자이기도 한 권은영은 채록과 편집, 해설을 맡았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9.01.10 20:02

[불멸의 백제] (261) 13장 동정(東征) 17

사냥을 나갔던 우에스기가 오오다숲에서 계백에게 사냥을 당한 후에 영지 안은 즉시로 내분에 휩싸였다. 우선 거성(居城)인 토요야마 성 안에서 세 자식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셋 중 품이 배다른 형제인데다 같은 배에서 난 둘도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동복형제 중 동생이 형을 죽였고 이틀 후에 그 형이 배다른 아우한테 죽임을 당했다. 그 전쟁으로 세 형제가 보유했던 전력이 3할 정도만 남았다. 7백여 명이다. 살아남은 동생 이름이 아끼로, 24세. 그 아끼로가 승리의 기쁨을 하룻밤도 느끼지 못하고 미나미가 이끄는 군사에게 패배, 목이 베어졌다. 이렇게 토요야마성은 우에스기가 죽은 지 나흘 만에 미나미의 수중에 떨어졌다. 대감께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린다고 말씀드려라. 미나미가 오오다숲에 머물고 있는 계백에게 전령을 보내면서 말했다. 토요야마성은 대감이 입성 하시기를 고대한다고 전해라. 그 시간에도 우에스기의 영지 안은 이합집산이 거듭되었다. 자식끼리 전쟁이 일어나 자식 넷이 살해되었고 일곱은 도망쳤으며 하나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섯째 아들 아오모리다. 23세, 북쪽 국경의 성주로 나가 있었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로 평소 근면하고 검소해서 주민의 인망을 모았던 자식이다. 아오모리는 주변의 3개 성을 모아 독자 세력을 형성했는데 군사는 5천여 명, 기마군 2천, 보군 3천 정도다. 또 하나, 국경에서 계백을 기다리고 있다가 주머니가 터진 사냥꾼 꼴이 된 노부사다. 정병(精兵) 수천을 보유한 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노부사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았다. 우에스기가 사냥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사흘이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우에스기가 죽은 후로 살아남은 가신, 무장들이 흩어졌지만 노부사다한테는 보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생존자 대부분이 토요야마성, 또는 우에스기의 아들들한테 달려간 것이다. 아연실색한 노부사다가 평정을 찾고 나서 한 일이 아스카의 섭정 이루카에게 전령을 보낸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런 내용의 밀서를 이루카가 받았을 때가 우에스기가 죽은 지 엿새째가 되는 날이다. 그때 노부사다는 화청의 대군이 옆쪽에 닿았다는 보고를 받고 다시 기절할 듯 놀라 좌불안석이 되어있던 상황이다. 이제 이루카가 어떤 지시를 하건 떠날 생각이 일어났다. 그런데 우에스기가 없는 영지로 돌아갈지, 아니면 후쿠토미 영지를 통과해서 이루카에게 갈지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다. 계백은 미나미의 전령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전령을 기다리게 한 후에 이틀간 사냥을 계속했으니 우에스기를 죽인지 어느덧 8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날 아침, 다시 토요야마 성에서 미나미가 전령을 보냈다. 이번 전령은 기치성주 가와사키다. 40대의 가와사키가 진막 안에 들어와 계백에게 절을 하고 말했다. 우에스기 영지의 42개 성 중에서 38개가 투항서를 제출했습니다. 가와사키가 계백을 우러러 보았다. 4개 성은 우에스기의 여섯째 아들 아오모리와 함께 서북쪽 국경에 모여 있는 바, 말씀만 내리시면 소탕군을 모아 섬멸시키겠습니다. 계백이 지그시 가와사키를 보았다. 진막 안은 조용하다. 둘러선 무장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이윽고 계백이 입을 열었다. 너도 이곳에서 이틀만 더 기다려라. 이번 전쟁은 서두르는 쪽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기다려라.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10 20:02

전주풍물시동인회 30주년 기념…‘달빛이 닦아놓은 길’

지역의 중견원로시인으로 이뤄진 전주풍물시동인회의 동인지 풍물 30주년 기념 특집호가 나왔다. 전북문단의 가교 구실을 하며 수많은 문인의 사랑을 받아온 3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람에 빗대면 30년이라는 시간은 청년의 혈기가 어느 정도 다듬어져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 단계까지 이른 시기다. 작품보다 인간을, 인간보다 삶을, 삶보다 더 소중한 거시기를 추구하자며 소재호, 이동희, 정희수, 진동규 등 4인이 1987년 9월에 첫 모임을 갖고 시작한 풍물이 중요한 길목에 들어섰음을 짐작케 한다. 달빛이 닦아놓은 길이라는 주제 아래 빼곡히 실린 회원들의 신작시와 알찬 소식들로 풍물이 건재함을 알려준다. 보랏빛 표지의 첫 장을 펼치면 창간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변화된 표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30년의 역사 동안 풍물에 참여한 우리 지역 시인들의 이름도 독자를 반긴다. 김남곤, 김영, 문금옥, 박영택, 발철영, 소재호, 신해식, 심옥남, 우미자, 유인실, 이동희, 이문희, 장욱, 정군수, 조기호, 조미애, 조정희, 조춘식, 진동규, 최만산, 김기찬 등 풍물에 참여한 21명의 작가 작품이 오롯이 실려있다. 특히 참여 시인 18인의 육필원고를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시의 깊이도 깊이지만, 시인 각자의 개성이 필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책 말미에는 지난 30년 동안 전주풍물의 연혁을 정리해 인간사 한 세기 동안 흘러온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운룡 원로시인의 초대시를 비롯해 류희옥 전북문인협회 회장, 김동수 온글문학대표, 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 회장, 김현조 금요시담동인회장의 축하의 글도 빼곡하다. 전주풍물을 사랑한 전북 문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철영 회장은 여는 글을 통해 풍물이 이제 서른 해를 맞았다. 지방에서 이름값 하는 문사들의 의기와 열정으로 태동하여 지금까지 탈 없이 이어 오면서 문단의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온 동인지로는 그 연조가 제일 깊지 않나 싶다며 풍물을 거쳐간 많은 시인들이 한때 대단한 자존감이나 소속감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음이 그 증거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9.01.10 20:02

“멈추지 말고 앞으로”

책을 펼쳐 향기를 쫓으니 푸릇푸릇 풀내음이 났다. 70세 고희를 넘어 80세 산수를 바라보는 세월, 마음공부가 담긴 수필집이건만. 책 제목 때문일까. 이여산 수필가가 네번째 수필집 <마음 밭 잡초를 뽑으며>(북매니저)를 펴냈다. 나이를 먹을수록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긴다. 그런데 말은 그리 하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고, 놓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있으니, 그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지난 2017년 결혼한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을 치렀다는 저자는 책 머리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새 날에 감사와 희망을 걸어본다고 했다. 아련한 기억의 한켠. 저자는 밀밭에서는 심은 일이 없는 가라지도 저절로 나고 자라듯이 나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만하며 착하게 살고 싶은데 (중략)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이켜 보면서 반성하며 내 마음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지만, 잡초는 뽑으면 어느 새 또 생겨서 나를 괴롭힌다고 고백한다. 그런가하면 칠전팔기란 말도 있지 않은가. 매사에 절반의 실패가 있더라도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꿋꿋한 의지로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독자들을 응원한다. 이 책은 1부 한여름 밤의 꿈, 2부 낭만에 몸을 싣고서, 3부 사랑으로 피어난 꽃, 4부 멈추지 말고 앞으로, 5부 그리움이 머무는 곳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미술협회 회원인 양윤영 작가가 표지그림을 그렸고, 서평을 대신해 수필가 김은실 씨가 친구의 글 - 지금처럼 곱고 환한 미소를으로 출간을 축하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43년간 교편을 잡았다. 지난 2000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전북수필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전북여류문학회, 무주문인협회, 카톨릭문우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아름다운 인연>, <하얀 꽃 그늘 아래 누워서>, <향수> 등 3권을 펴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01.10 20:02

전북소설가협회 제13대 회장에 정영신 작가 선정

전북소설가협회 제13대 회장에 정영신 작가(60)가 선정됐다. 협회는 지난 5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13대 회장에 정영신 제12대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10일 밝혔다. 임기는 2년이다. 부회장은 박은주 소설가, 사무국장은 박이선 소설가가 선임됐다. 전주여고를 졸업한 정영신 회장은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대하장편고전소설 윤하정삼문취록의 혼사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2006년 월간문학 7월호에 소설 엄마의 시간표로 등단했고, 빈롱의 물안개로 제3회 전북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17년 제12대 회장 취임 후 최초로 소설낭독회를 통해 소설 창작과정을 작가의 육성으로 직접 듣고 이해할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소설과 영상문학의 만남. 소설과 영상음악의 만남, 전주의 풍수 이야기, 장타령과 동냥아치, 백정의 삶 등 향토색 짙은 다양한 주제의 문학강연과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지역 문인과 관심 있는 도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정영신 회장은 앞으로도 소설낭독회와 문학강연, 문학기행,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등 전북도민과 함께할 수 있는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따뜻한 소설, 문학적 감성이 흐르는 풍류 전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문학·출판
  • 신기철
  • 2019.01.10 16:12

[불멸의 백제] (260) 13장 동정(東征) 16

화청이 이끄는 기마군 1만이 미사코성을 지나 우에스기 영지 국경에 닿았을 때는 그로부터 나흘후다. 화청은 나이가 66세, 신라의 김유신과 동년배였지만 이도 몇 개 빠지지 않았고 허리도 곧은 거구다. 수(隨)나라 양제 시절에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로 있다가 이연이 반역을 일으키자 반기를 들었던 화청이다. 그러다 가족이 몰사하고 단신으로 백제령 담로로 도망쳤다가 백제해(海)를 건너 본국으로 귀화한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그후로 계백의 심복이 되어 고구려와 당의 전쟁때 안시성에서 이연의 손자 이치(李治)가 이끄는 당군을 물리쳤다. 그러다 이제 왜국에까지 건너와 계백 휘하의 영주가 되었으니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노부사다는 기마군 5천이라고 하지만 전투병력은 3천 남짓입니다. 정찰하고 돌아온 복위가 보고했다. 나머지는 치중병, 사역병들입니다. 복위는 중원의 백제령 담로 출신이다. 화청과 고향이 가까워서 심복 무장이 되어 있었는데 담로에서부터 기마군 생활을 해서 지금은 기마군 대장중의 하나다. 45세, 9품 고덕(固德) 벼슬로 계백을 따라 왜국으로 건너왔지만 지금은 1천 기마군을 거느린 무장, 화청의 영지에서 3천석을 받는 중신(重臣)이 되었다.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놈들 기마군 체제나 전술이 우리보다 1백년은 뒤졌다. 대륙에서는 기마군간 전투가 매일 일어나지만 이곳은 산이 많고 골짜기가 깊어서 기마군 이동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화청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골짜기에 주둔한 총사령의 진막 안이다. 안에는 화청과 복위 등 대여섯의 무장이 둘러앉아 막 저녁을 마친 참이다. 술시(오후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진막의 기둥에 양초를 매달아 놓았다. 그때 무장 하나가 물었다. 장군, 노부사다의 기마군이 50리(20km) 거리에 있습니다. 단숨에 짓밟지 않고 이곳에서 머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군의 명령이다. 화청은 이제 계백을 주군이라고 부른다. 보료에 등을 기대고 앉은 화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누가 그 이유를 말해보라. 무장들을 둘러본 화청이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지시를 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고 하셨다. 그때 무장 하나가 화청을 보았다. 노부사다가 공격 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잠깐 시선을 주었던 화청이 다른 무장들을 보았다. 또 없느냐? 아군의 위용에 압도된 우에스기 가신들이 이제 우에스기까지 죽임을 당한터라 투항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무장 하나가 묻자 화청이 이번에도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에스기가 오오다숲에서 중신, 아들과 함께 사냥을 당했다는 것은 이미 화청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계백도 오오다 숲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복위가 입을 열었다. 우에스기가 죽고 나서 37명이나 된다는 아들, 친척, 가신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것 입니다. 지금 우에스기의 거성인 토요야마성은 내분에 휩싸여있겠지요. 화청의 시선을 받은 복위가 정색했다. 우에스기 내부에서 정리가 되도록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그때 화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 칼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9 19:41

[불멸의 백제] (259) 13장 동정(東征) 15

활을 겨눈 선두의 기마군을 본 순간에 우에스기는 말고삐를 채었다. 빠른 반응이다. 사냥으로 단련된 반사신경이 저절로 작용한 것이다. 앗! 옆에 서있던 소토메가 놀란 외침을 뱉었다. 입을 쩍벌린 소토메의 시선이 그쪽에서 떼어지지 않는다. 저놈들은 누구야? 우에스기 앞이어서 큰소리는 못치고 뒤쪽 위사대에게 물었는데 위사대도 소토메와 비슷한 표정이다. 그 순간이다. 우에스기가 상반신을 젖히면서 날아온 화살을 피했다. 쌕! 화살이 파공음을 내면서 우에스기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놈! 놀랍고 분한 우에스기가 눈을 치켜뜬 순간이다. 탁! 타격음이 경쾌하게 들리더니 우에스기가 벌떡 머리를 젖혔다. 우에스기의 이마에 맨 띠에 화살이 박혀있다. 우에스기가 반쯤 몸을 돌렸을 때다. 그동안 소토메와 위사대는 움직이지 못했다. 우에스기만 몸을 돌린 상태에서 이마에 화살을 맞은 것이다. 와앗! 함성을 지른 것은 슈토다. 슈토가 말단 군사처럼 함성을 지른 것이다. 계백은 눈 깜박하는 사이에 화살 두 대를 날렸다. 첫 화살이 박히기도 전에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갔다.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두 번째 화살이 시윗줄에 걸쳐지고 활이 만월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튕겨진 순간은 말이 네굽을 모으고 네 번 뛰었을 때다. 그야말로 눈 깜박하는 순간이었지만 말은 30보쯤을 더 달렸고 표적과의 거리는 1백20보 정도, 슈토는 우에스기가 첫 번째 화살을 상반신을 젖혀 피하고 나서 다시 머리를 세웠을 때 이마에 화살이 박히는 것을 본 것이다. 악! 소토메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마에 화살이 박힌 우에스기의 몸이 뒤로 젖혀지고 있다. 주, 주군! 엉겁결에 그렇게 소리친 순간 소토메의 벌린 입 안으로 들어간 화살이 목을 뚫고 뒤로 나왔다. 으아앗! 우에스기를 호위하고 있던 위사대는 1백여명, 나머지는 모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저놈들! 위사대장이며 우에스기의 12번째 아들 노무라가 소리쳤다. 노무라는 우에스기가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이미 7, 80보 거리고 다가온 기마대를 무시할 수가 없다. 저놈들을 잡아라! 노무라가 소리친 다음 순간 화살이 날아와 왼쪽 눈에 박혔다. 안시성에서 계백은 당 고종 이치(李治)의 눈을 화살로 맞춰 애꾸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노무라와의 거리는 70보, 화살이 왼쪽 눈을 뚫고 들어가 뒷머리를 깨고 밖으로 한 뼘쯤이나 나왔다. 뇌가 부서진 노무라는 말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저승으로 떠났다. 죽여라! 슈토가 우에스기, 소토메에 이어서 노무라까지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 소리쳤다. 손에 장검을 빼들고 있다. 와앗! 뒤를 따르는 기마군의 함성, 모두 앞쪽의 장면을 본 터라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일당백이 이렇게 된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1.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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