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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주 겸 대야군주(軍主) 김품석은 진골(眞骨) 왕족이며 벼슬도 2품 이찬(伊 )이다. 장인인 김춘추와 벼슬이 같다. 오시(12시) 무렵, 김품석이 장인 김춘추와 청 안에서 마주앉아 있다. 김춘추는 당연히 상석에 앉아 김품석을 내려다 본다.이찬, 백제왕 의자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김춘추가 입을 열었다.동방 방령 의직과 자주 만나는데 사냥을 핑계로 대규모 기병단을 이끌고 다닌다네.이쪽 남방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대감.김품석이 장인 대신으로 대감이라고 부른다. 김춘추는 갑자기 기마군 1백여기만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진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구성원일 뿐인 김춘추는 아직 실세가 아니다. 다른 왕족들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대야성 방문도 딸 소연의 병문안을 간다는 핑계를 대어야만 했다. 김품석의 시선을 받은 김춘추가 머리를 끄덕였다.의자가 제법 전략을 쓰고 있어.주위를 둘러본 김춘추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청 안에는 외인 출입을 금지시켜서 둘뿐이다.이찬, 대야주가 우리 가문의 기반이야. 잘 지켜야 돼.명심하겠습니다.비담 일족이 차기 왕위를 노리고 있지만 어떻게든 막아야 되네.김품석의 얼굴도 굳어졌다. 상대등 비담은 진골 왕족으로 유력한 차기 왕위 후계자다. 비담은 화백회의의 수장으로 김춘추보다 영향력이 강하다.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김유신이 보기당 당주가 되어서 당항성 근처로 파견되었어.대장군이 말씀입니까?김품석이 놀란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김춘추를 보았다. 대장군 김유신이 신라의 군단(軍團) 중 하나인 보기당을 이끌고 북상(北上)한 것이다. 백제 의자왕이 동방군(東方軍)과 함께 자주 기동군을 이끌고 사냥을 다니는 것에 자극을 받은 신라 조정에서 김유신을 북상시켰다. 김품석이 말을 이었다.며칠 전에 백제 기마정찰군이 대야주를 횡단했습니다.나도 들었어.기마군 5백기 정도였는데 빠르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기마대장이 연남군 출신의 계백이라고 들었어.예, 대감.화백회의에서 그 자 이야기가 나왔네. 의자가 그 자를 남방의 칠봉성주로 부른 것은 백제 기마군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이라는 결론이 났어.제 생각도 그렇습니다.계백이 젊지만 지용을 겸비한 놈이야. 이번 대야주 정찰에서 허점을 보이지 않았나 숙고하게.예, 대감.삼현성주를 교체했다면서?예, 대감.어깨를 편 김품석이 김춘추를 보았다.성주가 제 딸이 백제군에게 납치되었는데도 군주(軍主)인 저한테 보고도 하지 않았습니다.그 자가 가야인이지?예, 토호 가문입니다.김유신은 이미 신라 왕족 대접을 받지만 가야 토호 출신은 경계해야 돼.전(前) 성주는 가택연금 상태로 두었지만 곧 조치하겠습니다.머리를 끄덕인 김춘추가 다시 다짐하듯 말했다.이찬. 그대와 나, 김유신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네. 대야주를 잘 지키게.
그때 상을 물린 계백이 말했다.모두 물러가고 고화만 남아라. 할 이야기가 있다.저두요?덕조가 물었다가 계백의 표정을 보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일어섰다. 아직도 얼굴을 부풀린 우덕이 상을 들고 덕조와 함께 방을 나가자 둘이 남았다. 계백이 정색하고 고화를 보았다.김품석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야. 네 아비가 잘못한 거다.고화는 방바닥만 보았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그렇다고 네가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의심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겠느냐? 넌 백제 첩자라고 해도 해명할 길이 없다.방법은 있지.계백이 머리를 숙인 고화의 콧등을 향해 말을 잇는다.네 아비가 신라의, 아니, 김품석의 등을 찌르는 방법이다.그때 고화가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고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왜? 반역을 떠올리느냐? 배신? 누구한테 반역이고 배신이냐?고화가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고 얼굴이 붉어졌다가 곧 희게 굳어졌다.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네 조상은 가야국 가야인이다. 신라에 병합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야국 호족 중에서 신라국 고위직에 오른 인물은 내가 알기로 김유신뿐이다.김유신의 수단이야 능란하지. 조부, 부친이 왕족과 혼인을 한데다 김유신 본인도 김춘추의 옷자락을 일부러 밟아서 끈을 뗀 다음 제 여동생에게 바느질을 시켰다지 않느냐?그래서 진골 김춘추에게 제 여동생을 넘겨주고 나서야 안심을 했는가?네 아비는 김품석의 옷자락을 밟을만큼 수단이 없었나보다.그때 어금니를 문 고화가 눈을 치켜떴다. 눈에 물기가 고여 있었기 때문에 눈이 번들거렸다. 그것을 본 계백이 다시 쓴웃음을 짓더니 품에서 접혀진 편지를 꺼내 고화 눈앞에서 흔들었다.이건 네 아비가 너에게 쓴 편지다.고화의 시선이 편지에 빨려든 것 같았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내가 네 아비에게 너를 데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할말이 있으면 적어 보내라고 했더니 이걸 보냈다.주세요.고화가 겨우 말했을 때 계백이 머리를 저었다.보여주지 않겠다.보여주세요.너에게 잘 살라는 내용이야.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금화 세냥이 아깝기 때문이야.고화가 숨을 들이켰고 계백이 다시 편지를 가슴에 넣었다. 그때 고화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그렇군요. 아버님은 목숨을 끊으실 작정이시군요.마음대로 생각해라.그래서 제가 따라 죽을까봐 걱정이 되시는군요.이 편지는 나중에 보여주마.저, 아버님을 빼낼 수 있어요.불쑥 고화가 말했기 때문에 계백이 심호흡을 했다. 그때 고화가 말을 이었다.그래요. 개죽음을 할 필요는 없지요. 이대로 죽기는 억울해요.
최장순 시인이 첫 시집 <언니의 조각보>를 펴냈다.그의 시는 인생의 파노라마를 연상케 한다. 안으로 다독이고 다독이던 한도 있고, 소녀의 심상도 읽힌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를 바라보면서 느낀 심정은 시의 화제, 서사적 스토리가 된다. 억새꽃을 어머니로 치환해 어머니의 일생을 은유화하는 것이 그것.가슴에 숭숭한 찬바람 일고/ 어머니의 한 생애도 이리 흔들렸으리/ 내내 안으로 스며드는 가없는 마음 ( 억새 숲에서 일부)나의 어머니란 시에서는 어머니가 성녀로 등극한다. 팔 남매에게 끼치는 사랑은 성스러움의 극치다. 등불이자 따듯한 봄날의 햇볕인 셈이다. 아버지란 시에서 아버지는 반딧불, 나팔꽃, 고향 강가에 서리는 모든 서경적 소재로 표상된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어머니보다 좀 더 대아적이다. 가정과 자녀에게만 정성을 쏟던 어머니와는 달리 가정 돌봄은 물론이고 마을 앞 가로수를 가꾼다던지 행동반경이 사뭇 넓다.최 시인은 많이 힘들고 외로울 때 시는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며 부족한 시어로 표현한 글이지만 나의 시가 외로운 이의 가슴에, 아픈 이의 마음에 닿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수필동인이 첫 동인지 <또 하나의 세상>을 펴냈다.순수필동인은 2009년 수필에 뜻이 있는 몇몇이 2주에 한 번씩 모여 수필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 모태다. 그리고 2016년 봄, 회원들의 뜻에 동의하는 기성작가들과 함께 정식으로 순수필동인을 결성하기로 했다. 회칙과 사무실 등을 마련해 모양새를 갖추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다. 동인지도 발간하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또 하나의 세상>이다. 순수필동인 회원인 김형진, 박갑순, 박경숙, 이명화, 이순종, 이승수, 전성권, 황점복 수필가가 수필을 각 3편씩 실었다.박경숙 수필가는 편집 후기를 통해 “교정과 편집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면서 “작은 파장이 깊이 파고들어 가듯이 우리의 작업이 글을 읽은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어 마음 밑바닥까지 파고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수 출신의 박상재 동화작가가 그림책 <따라쟁이 앵무새>와 <진도 아리랑>(도서출판 장수하늘소)을 펴냈다.유아기의 한두 살 터울 형제나 자매, 남매 사이는 우애도 좋지만 어쩔 수 없는 경쟁과 갈등도 따른다. <따라쟁이 앵무새>는 유아기 자녀들의 경쟁과 갈등, 우애를 다뤘다. 서로가 상호 보완적인 존재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과 심리를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 재동이에게 투영해 그려냈다.주인공인 유민이와 유빈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살 터울 형제다. 동생인 유빈이는 매사에 착실해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는 형 유민에게 심술이 난다. 게다가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마저 유빈이를 놀리자 유빈이는 앵무새한테도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아 화를 낸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를 통해 가족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내용이다. 구지현 그림작가의 삽화로 경쾌함을 더했다.<진도아리랑>은 초등학생을 위한 성장소설에 가깝다. 서울에서 살던 진석이는 진도로 전근 발령 난 아버지를 따라 진도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며 진도의 자연과 풍속, 생활과 문화를 알아나가며 펼치는 모험 이야기이다. 주인공 소년이 낯선 곳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진도에서의 모험담을 함께 넣어 문학성과 교육성을 모두 갖춘 책이라는 평가다. 신보륜 씨가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국제펜 한국본부가 수여하는 PEN문학상을 받기도 했다.박상재 동화가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과 <새벗문학상> 장편동화 부문에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박경종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90여 권의 창작동화집을 냈다. 현재 한국글짓기지도회장, 한국아둥문학회장을 맡고 있다.
축시(오전 2시) 무렵, 계백이 산기슭의 진막 안에서 가섭이 가져온 편지를 받고는 빙그레 웃었다. 진막에는 해준과 호성 등 장수들이 둘러섰고 앞에 가섭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고생했다.계백이 가섭을 칭찬하고 나서 편지를 펼쳤다. 기둥에 매단 기름등 불꽃이 흔들렸고 진막 안이 조용해졌다. 진궁이 보낸 편지다.대신라국 대아찬 진궁이 백제국 나솔 계백에게 보낸다. 내 딸에게 편지를 전해준다니 고맙다.그리고는 조금 떼어서 썼다.고화, 전란 속에서 너를 낳은 것이 부모에게는 기쁨이었으나 자식은 지옥을 보는구나. 부모의 죄다.네가 백제땅에서 잘 살라고 기원하고 싶으나 신라 무장으로서 할 말이 아닌 것 같다.너는 가야 호족의 핏줄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라. 네 조상은 대가야의 중신(重臣)이었다.나는 이제 너를 잊는다. 너는 가야인의 후손인 것만 가슴에 담고 새 인생을 살거라.계백이 편지에서 시선을 들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편지를 해준에게 넘겨준 계백이 아직도 앉아있는 가섭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호성에게 말했다.고덕, 이자에게 금화 서 냥을 주게.예. 나솔.대답은 했지만 호성이 두 눈을 꿈벅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시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심부름 값이야. 장모에게 효도하는 상도 주는 거야.예. 나솔.호성이 가섭을 데리고 진막을 나갔을 때 편지를 다 읽은 해준이 말했다.나솔. 편지로 신라국 대아찬 하나를 죽이셨습니다.계백의 시선을 받은 해준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진궁이 자결을 할 것 같습니다.장덕도 그렇게 느꼈나?딸에게 유서를 써 보냈으니 이제 이 세상에 미련이 없을 것 아닙니까?계백은 쓴웃음만 지었고 해준이 다시 감탄했다.성문을 열라는 뻔한 수단으로 방심을 시켜놓고 기습을 한 셈이지요. 진궁은 지금 기습을 당한 줄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꿈보다 해몽이 좋군.나솔의 전략에 감복했습니다.이 사람이 도성에 있으면서 듣기 좋은 말만 배운 것 같구만.아니오. 나솔의 용명(勇名)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정색한 해준이 말하자 계백이 무장들을 둘러보았다.아침 일찍 회군이야. 준비를 하게.그러자 모두 계백에게 인사를 하고 진막을 나갔다. 오전 진시(8시)가 되었을 때 백제 기마군은 질풍처럼 신라 영토를 내달렸다. 이제는 지리에 익숙한 터라 감시 초소나 성을 피해서 내닫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 술시(8시) 무렵에는 3백여 리를 주파, 백제령으로 들어섰다.신라 16개 성을 지났으니 지금쯤 전령들이 이쪽 저쪽으로 내닫고 있을 것이오.앞쪽에 보이는 백제 하산성으로 다가가면서 해준이 말했다. 하산성은 남방(南方) 소속의 토성으로 강가에 세워졌다. 지난 수십년 간 신라와 백제가 번갈아 차지했기 때문에 주민은 없고 군사들만 상주한다. 전령을 보낸 터라 성에서 불을 환하게 밝혀 정찰대를 맞을 준비를 한다.
“나리.”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진궁이 머리를 들었다. 오후 해시(10시) 무렵, 저녁을 마친 진궁이 기름 등불 아래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참이었다.“나리.”다시 부르는 소리는 낮지만 절실했다. 절박감이 느껴지는 소리다. 무장(武將)으로 반평생을 보낸 진궁이다. 눈빛에서 살기(殺氣)를 느끼듯이 목소리에서도 위기(危氣)를 감지할 수가 있다. 진궁이 방문으로 다가가 반쯤 열었을 때 마루 끝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집안 종은 아니다. 진궁이 낮게 물었다.“누구냐?”“예, 서문 옆에서 그릇가게를 하는 가섭입니다.”“응, 내가 너를 알지.”진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그런데 밤늦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느냐?”연금 상태라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가섭이 마루 앞으로 바짝 다가와 섰다.“담을 넘었지요. 편지를 가져왔습니다.”“응? 누구 편지?”“읽어 보시지요.”가섭이 품에서 헝겊에 싼 편지를 꺼내 진궁에게 건네주었다.“소인이 성 밖에 나갔다가 백제군에게 잡혔습니다.”주위를 둘러 본 가섭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장모께 약을 갖다드리려는 길이었지요. 그 편지는 백제군 장수가 나리께 보낸다고 직접 썼습니다.”“네 장모가 인질로 잡혀 있느냐?”“심부름을 안 하면 제 처갓집은 도륙을 당하겠지요.”“그렇구나.”머리를 끄덕인 진궁이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방으로 들어오너라.”기름등 밑으로 다가가 앉은 진궁이 편지를 펼쳤고 가섭은 방으로 들어와 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궁이 편지를 읽었다.“나는 대백제국 나솔 계백이다. 삼현성 성주 진궁에게 인연이 닿아서 이렇게 편지를 전하게 되었다. 그대의 딸 고화와 우덕은 내가 종으로 사서 데리고 있다. 이곳을 지나다가 그대가 딸 때문에 성주직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상인 하나를 잡아 서신을 보낸다. 딸과 성을 바꾸지 않겠는가? 성문을 열어주면 딸과 함께 백제땅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벼슬도 할 수가 있겠지. 가부(可否)를 상인 편에 적어 보내라.”이렇게 끊긴 줄 알았는데 그 밑에 다시 글이 이어져 있다. 작은 글씨다. 진궁이 편지를 눈에 가깝게 대고 읽는다.“그대 딸은 백제땅에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니 출가한 것쯤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성을 내놓지 않으면 딸을 죽인다는 억지를 써서 넘어가는 무장이 있겠는가? 상인한테 딸에게 보내는 편지나 써주면 전해주겠다. 대백제국 나솔 계백이 전한다.”이윽고 머리를 든 진궁이 가섭을 보았다. 차분해진 표정이다.“너, 글을 아느냐?”“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건 새가 똥을 싼 것 같구요.”“내가 편지를 써 줄테니 가져가거라.”“예. 오늘밤 다시 성을 넘어갈 겁니다.”가섭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궁을 본다.“그, 백제 장군이 무섭게 생겼지만 위엄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성주 나리보다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장수 출신의 박상재 아동문학가(문학박사)가 지난달 말 장편동화 <진도 아리랑>으로 제33회 PEN문학상을 받았다.국제PEN 한국본부(이사장 손해일)가 수여하는 PEN문학상은 시, 소설, 수필, 아동문학, 번역문학, 해외문학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진도아리랑>은 서울 아이인 진석이가 아버지를 따라 진도로 내려와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진도의 자연과 풍속, 생활과 문화를 알아나가는 모험 이야기다.조대현 심사위원은 주인공 소년의 진도 정착과 모험담을 기본 축으로 하면서 배경에 진도의 역사와 문화를 버무려 넣어 서사문학으로서의 기본 틀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평했다.그는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꿈꾸는 대나무가 당선돼 등단했다. <원숭이 마카카> 등 90여 권의 동화집을 냈고 방정환 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한정동 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서울당중초 교장, 한국아동문학학회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이다.
첨병이 잡아온 신라인은 삼현성 안에서 그릇 장사를 하는 가섭이라는 사내였다. 가섭은 성 밖에 사는 장모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몰래 빠져 나왔다가 잡힌 것이다. 한낮, 이곳은 삼현성에서 40여리 떨어진 강가, 계백의 정찰군(軍)은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성주께서 들으셔야겠소.”강가 바위에 앉아있는 계백에게 해준이 고덕(固德) 호성과 신라인 포로까지 데리고 다가왔다. 해준의 표정이 굳어져 있다. 신라인을 계백 앞에 꿇린 해준이 말을 이었다.“이놈 문초를 하다가 성안 사정을 알게 되었소. 들어보시지요.”해준의 눈짓을 받은 호성이 신라인에게 물었다.“다시 말해라, 성주가 갇혔다구?”“예, 신임성주 죽성의 지시로 사택에 감금되었습니다.”사내가 두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계백을 올려다 보았다. 30대쯤의 사내로 잡히다가 다쳤는지 이마가 조금 찢어져서 피가 배어나온다. 호성이 다그쳤다.“왜 감금 당한 거냐?”“예, 다퉜다고만 들었습니다.”그때 계백이 사내에게 직접 물었다.“왜 신임성주가 온 거냐?”“예, 성주 딸이 백제군에게 잡혀갔다는 소문이 났는데 그것을 군주(軍主)께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그순간 해준과 호성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신임성주가 온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이다. 계백이 지그시 사내를 보았다.“네 이름이 무엇이냐?”“예, 가섭입니다.”“너는 장모한테도 효자 노릇을 하는구나. 장하다.”난데없는 칭찬에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가 곧 눈이 벌겋게 되었다.“예, 장모는 제 어머니나 같습니다.”“장모가 병이 나서 성을 빠져나왔어?”“예, 장군.”“약을 가져가는 길이냐?”“예.”“약이 어디 있느냐?”“잡혀서 뺏겼습니다.”그때 호성이 말했다.“보따리에 약이 있었습니다.”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다시 물었다.“새 성주는 어떤 놈이냐?”“예, 군주의 친척이라고 합니다.”“전(前) 성주는 어떠냐?”“예?”입안의 침을 삼킨 사내가 계백을 보았다.“백성들에게 잘 해줬습니다.”“정직하게 말해라. 넌 죄가 없다. 돌려 보내줄테니 정직하게만 말해라.”“예, 전(前) 성주가 가야 사람이어서 그런지 백성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진궁이지?”“예, 장군.”“새 성주는 진골 왕족이겠구나.”“예, 장군.”“삼현성 군사들 중에 가야인들이 많지?”“열명에 일곱명은 가야인이지요.”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그릇장수 가섭에게 물었다.“네가 전(前) 성주 진궁에게 내 편지를 전해줄 수 있느냐? 물론 새 성주나 군사들이 모르게 말이다.”“전해 드리지요.”대번에 말한 가섭의 두눈이 번들거렸다.“장군, 믿으십시오.”“네 장모에게 약은 우리가 전해주마.”계백이 말을 이었다.“네 장모는 우리가 준 약을 먹고 살아날 것이다. 무슨말인지 알겠느냐?”
아찬, 지원군을 보내지 않을 바에는 첨병 30기를 내보낼 필요가 없었소.진궁이 말하자 죽성(竹盛)이 쓴웃음을 지었다.30기는 적의 의도를 탐색하기 위한 미끼 역할이었소. 적은 우리를 밖으로 끌어낼 계획이었지만 실패했소.그렇다면 아군 30기를 적의 먹이로 던져주었단 말인가?마침내 진궁이 버럭 소리쳤다.듣자 하니 가소롭다! 군사를 개 먹이 취급을 하는가? 그런 용병술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무엇이! 말을 삼가라!죽성도 따라서 소리쳤다.내가 성주대리다! 그대는 소임이 없으니 근신하라!근신을 해? 네 이놈!그때 청안의 관리들이 나섰다. 일부는 진궁을 막고 일부는 죽성을 달랬는데 뒤숭숭 해졌다. 진궁은 40대 중반의 장년인데 죽성은 20대 후반이니 아들뻘이다. 직위도 아찬으로 진궁보다 한등급 낮지만 대야군주 김품석으로부터 삼현성주로 임명된 신분인 것이다. 진궁은 보좌역일 뿐이다. 진궁한테서 욕을 얻어먹은 죽성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저자를 사택에 가둬놓고 문밖 출입을 통제하라! 성주의 명이다!성에서는 성주가 성안 장졸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청안의 위사들이 우물거렸으므로 죽성이 허리에 찬 칼까지 빼들었다.항명이냐?그때 위사장이 나서서 진궁에게 말했다.가시지요.진궁이 위사장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몸을 돌린 진궁이 잇사이로 말했다.개뼈다귀 같은놈.그소리는 앞쪽의 몇사람만 들었다. 개뼈다귀는 골품(骨品)제를 욕한 것이다. 신라의 지도층은 성골(聖骨), 진골(眞骨) 왕족이 아니면 출신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같기 때문이다. 진궁은 가야의 호족 출신으로 그동안 수많은 전공을 세웠는데도 5품 대아찬으로 끝났다. 그러나 왕족 가문인 죽성은 칼 한번 휘두른 적이 없었지만 승승장구하더니 이번에 성주가 되었다. 죽성은 김품석과 친척이 된다. 그날 밤, 진궁의 사택으로 9품 급벌찬 전택이 찾아왔다. 전택도 가야국 태생으로 수백년간 토호를 지낸 가문이었지만 지금은 성(城)의 보군대장이다.뒷문 경비장이 마침 내 부족이어서요. 못 본 척하라고 했지요.쓴웃음을 지은 전택이 진궁 앞에 술병을 내놓으며 말했다. 전택은 30대 후반으로 용장(勇將)이다. 작년에 선천성 싸움에서 백제군 무장 둘을 베어 죽이고 상으로 손잡이에 금구슬이 박힌 장검을 받았다.술을 가져왔는가?술을 좋아하는 진궁이 술병을 쥐고 웃었다. 눈꼬리에 잔주름이 가득 잡혔다. 진궁은 딸 고화가 다섯살 때 병으로 아내를 잃고 혼자 산다. 고화를 아비가 키운 셈이다. 고화가 시녀 우덕과 말을 타고 성 밖에 나갔다가 백제군에게 잡혀간지가 이제 한달 가깝게 되었다. 잔을 찾아온 전택과 진궁이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신다.성주, 죽성이 기마 정탐군 30기를 보냈다가 무장 둘에 군사 17명이 죽었소.술잔을 든 전택이 말을 이었다.백제 기마군 선두에 선 장수가 활로 먼저 아선과 국진을 쏘고 나서 돌파하는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박혀있소. 적이지만 보기드문 용장이었소.그렇다. 성루에서 진궁도 보았다. 용장이다.
“개수작 떨지 말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수작은 남의 말이나 행동을 하찮고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개’라는 접두어가 붙은 ‘개수작’은 턱없이 둘러대는 말 또는 음흉한 심보가 뻔히 보이는 말이나 행동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수작’의 고전적 어원은 꼭 그러하지 않다.중국 진(秦)나라 때 한자서로 알려진 「창일편」에서는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권하여 건배하는 것을 수(酬)라 하고, 손님이 주인에게 보답하여 건배하는 것을 작(酢)이라고 했다. 이렇게 주인과 손님이 서로 공경의 뜻을 표하면서 술을 주고받는 행위를 일컬어 수작이라고 한다. 중국 고대에서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표하는 예의의 형식이며 행위였다.멀리서 그리웠던 친구가 찾아오면 주안상을 마주하고 술부터 권한다. “이 사람아, 먼 길을 찾아와주니 정말 고맙네” 이렇게 잔을 주고받는 것을 갚을 수(酬), 술 잔(酌)을 써서 ‘수작(酬酌)’이라고 한다. 왁자지껄한 주막집 마루에 길벗 서넛이 걸터앉아 주안상을 받는다. 이때 연지분 냄새를 풍기는 주모에게도 한 잔 권한다. “어이! 주모도 한잔 할랑가?”하고 주모의 엉덩이를 툭 치면 주모는 “허튼 수작(酬酌) 말고 술이나 마셔”라고 한다. 수작은 이렇게 잔을 돌리며 친해 보자는 것이고 주모의 말은 친한 척 말라는 뜻이다.술 따를 작(酌)자가 쓰인 말들을 보자. 도자기 병에 술이 담기면 그 양을 가늠하기 어려워 천천히 기울여가며 술을 따르는 것이 짐작(斟酌)이다. 짐(斟)은 ‘머뭇거린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짐작은 ‘미리 어림잡는 것’이다. 또 무슨 일을 할 때는 우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이것이 작정(酌定)이다. ‘따르는 술의 양을 정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술을 따르다 보면 잔이 넘쳐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무례한 짓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무작정(無酌定)이다. 그리고 아무리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라도 원래 술을 잘못하는 사람이면, 마구잡이로 술을 권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그에게 절반만 따라주며 상대방의 주량을 헤아려 따라주는 것이 참작(參酌)이다. 판사가 피고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형량을 정할 때 ‘정상 참작’도 술 따르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니 술 한잔에도 여러 의미가 있음을 알고 마시면 좋겠다.
(사)김제향토사연구회가 김제에서 배출된 걸출한 명현과 인물에 관한 자료를 한데 모은 <김제명현 인물사전>을 펴냈다. 분량만 600페이지에 달한다.김제향토사연구회는 역대 지리지에 소개된 인물들을 추출하고, 수록된 내용을 해독해 사전적 성격에 맞게 재편했다. 지리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물을 다룬 각종 서적을 참고해 인물의 역사적 행보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다. 특히 완역되지 않은 인문지리서는 김제 출신 이은혁 전주대 한문교육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편집해 수록했다.김제향토사연구회 김병학 회장은 “편찬 과정에서 아쉬운 것은 그동안 김제지역에서 한문으로 발간된 각종 인문지리서가 아직 완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이는 인명사전을 편찬하는 데 커다란 난제였고, 이를 국역하고 재편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다”고 밝혔다.김 회장은 이어 “이번 인명사전을 통해 김제가 인물의 고장임을 실감할 수 있기를 바라고, 혹시 오류가 있거나 결손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지속적으로 보완해 증보하겠다”고 덧붙였다.
진안지역 마을지인 <진안 원강정마을>이 발간됐다.마을지 <진안 원강정마을>은 진안 원강정마을의 역사문화자원과 주민의 생활문화를 조사해 기록했다. 특히 마을 주민 45명의 제보를 그대로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마을지는 마을의 입지, 유래와 역사, 지형과 지세, 지명 등을 자세히 서술했다. 역사문화자원은 유형문화자원과 무형문화자원으로 나눠 소개했다. 유형문화자원으로는 합미산성, 보흥사, 수선루, 구산서원과 구산사, 영계서원, 오현사 등이 있다. 기우제, 술멕이, 마을 풍물굿, 매사냥 등 사라진 역사문화자원도 정리해 기억하고자 했다. 또 마을의 공동체 생활상과 마을 주민 9명의 생애사도 기록해 담았다.마을지 발간과 관련해 총괄책임을 맡은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 주용기 전임연구원은 “이번 마을지 발간을 통해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마을지가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방각본은 민간에서 판매를 위해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낸 책을 말한다. 방각본은 발간되는 지역마다 그 판본의 이름을 달리해 성행하게 되었고, 책은 백성들의 삶 속에 파고들었다. 1803년부터 1937년까지 130여 년 동안 전주에서는 50여 종류의 고소설이 발간됐다. 이 책들은 전주 남부시장과 천변 길목에 자리한 전국 최고 수준의 서포거리에서 전국으로 팔려나갔다.장은영 동화작가의 신작 <책 깎는 소년>은 우리의 우수한 기록 문화와 완판본을 완성해가는 각수장이 이야기를 그렸다. 그 속에서 열두 살 소년이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이 책에는 각수장이가 되고 싶은 봉운이와 장호가 등장한다. 둘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결국 봉운이는 동생 봉이가 부르는 판소리 춘향가를 듣고, 이 가사를 옮겨 적어 84장으로 된 방각본 한글 소설 <열녀춘향수절가>를 만들어낸다. 책 속에 사람을 담고 싶은 봉운이의 선택은 꿈으로 이어졌고, 책을 팔아 돈을 벌고 싶은 장호의 선택은 꿈에서 한없이 멀어졌다. 이밖에 봉운이가 느끼는 새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애증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봉운이와 장호를 통해서는 꿈의 의미를, 조상들의 책을 만드는 과정과 태도를 통해서는 책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실제 전주를 대표했던 서점이자 출판사인 서계서포와 남밖장(현재의 남부시장)을 배경으로 1800년대 말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다양한 한지와 음식 등 전주 고유의 특징,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가 읽는 맛을 더한다.장 작가는 우연히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를 읽은 뒤 그 매력에 빠졌고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고 한다. 완판본이 뭐지? 각수가 새겼다는데 각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새겼을까? 그 시절의 사람들도 나처럼 이 책을 좋아했을까? 등등. 그 길로 완판본을 연구하는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이태영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 교수가 보여준 사진에는 각수 박이력, 서봉운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때 장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동화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전통판각 강좌를 통해 각수가 책판을 새기는 과정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각수의 삶에 대한 밑그림 그렸다.장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선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을 만납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도 결정되지요.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아이들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선택을 하면 좋겠습니다.장은영 동화작가는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그러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동화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마음을 배달하는 아이>, <네 멋대로 부대찌개>(공저)가 있다.
첫눈에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안에 박혀, 나는 평생 이 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살아갈 거란 걸.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문득문득 이 순간이 떠올라 나를 무너뜨리거나 지탱시켜 줄 거란 걸. 내가 얼마를 살아도 이보다 더 거대하고 찬란하고 분명한 감정은 가질 수 없을 거란 걸. 나는 다 알았다.(운명을 기다리는 여자 고요)사랑이 뭔지 아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 그녀를 알지 못했을 때는.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잘 알겠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을, 나는 사랑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별과 눈송이와 빗방울을 다 셀 수 없다는 사실보다, 내가 나라는 사실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더 명징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그녀의 운명이 되고 싶은 남자 현우)계간지 <문예연구> 2017 겨울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최은별(33) 씨가 첫 장편소설 <시인과 기자의 어느 금요일>(신아출판사)을 펴냈다.시로 등단했지만 첫 작품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다. 운명을 기다리는 여자 고요와 그녀의 운명이 되고 싶은 남자 현우의 인연을 운명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다.둘을 번갈아 가며 일인칭 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은 지루함을 던다. 시인다운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도 돋보인다.최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김유신이 보낸 기마 척후군 2백기가 저쪽 백산성 앞까지 지나갔지요.안내역으로 따라온 무독(武督) 서준이 말했다. 서준이 가리키는 곳은 짙은 안개에 덮인 산맥이다. 이곳은 신라와의 국경에서 1백여리 떨어진 작은 강가, 오후 미시(2시)쯤 되었다. 기마군은 강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는데 칠봉성을 떠난지 이틀째, 4백여리를 비스듬히 전진해왔다. 계백이 해준에게 물었다.김유신의 주력군(主力軍)은 아직 북방에 있나?예, 신주(新州) 근처에 있다고 하오.해준이 개울물을 마시면서 말했다.대야성까지 내려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김유신은 이제 왕족 대우를 받는다.가야 수로왕의 12세손이며 조부가 한수유역 백제 6군을 점령하고 관산성에서 성왕(聖王)을 패사시킨 김무력(金武力)이다. 김무력은 신주군주(新州軍主)가 되었고 김유신의 부친 김서현은 갈문왕의 손녀 만명부인(萬明夫人)과 결혼하여 김유신을 낳은 것이다. 김유신은 또한 용장(勇將)이다. 강가의 바위에 앉은 계백이 문득 해준에게 물었다.장덕은 신라땅에 가보았나?예, 작년에 1백기를 이끌고 정찰을 나갔습니다. 방령의 영을 받고 나갔지요.해준이 말을 이었다.2백리까지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도중에 신라군 정찰대를 만나 20기 정도를 잃었지요.장하군.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장수인데도 위험을 피하는 부류가 많다. 해준은 해씨(解氏) 일족으로 대성(大性) 8족(族) 중의 하나다. 신라는 성골(聖骨), 진골(眞骨) 왕족이 권력을 장악한 반면에 백제는 오랫동안 대성8족(大性八族)이 요직을 차지했다. 해씨도 그 중 하나다. 대성8족은 사비와 웅진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사(沙), 목(木), 연(燕), 국(國), 해(解), 진(眞), 백( ), 협( )시 일족을 말한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장덕, 나는 8족이 아니네.나솔, 저도 8족의 덕을 본적이 없소이다.바로 말을 받은 해준이 계백의 시선을 받고는 빙그레 웃었다.그래서 이 나이에 7품으로 5년을 썩고 있지요.나는 본국에 오기 전에 나솔이 되었네.압니다.해준이 웃음 띤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나솔의 용명을 무장들은 다 듣고 있었습니다.그런가?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외면했다. 본국에 온 후로 이런 대화는 처음인 것이다. 그동안 도성에서 여럿을 만났지만 이렇게 둘이 마주앉아 마음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그것은 장덕 해준의 소탈한 성품 때문인 것 같다. 해준이 말을 이었다.나솔, 이번 전쟁의 목표가 대야성입니까? 아니면 당항성입니까?장덕은 왜 묻는가?동방군(東方軍)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이상해서 그럽니다.우리는 대야성을 목표로 삼으면 되네.윤충한테서 성동격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할 필요는 없다. 신라군을 대야성 부근으로 끌어모으는 역할이라고 말한다면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을 썼다가 곧장 소리나는 쪽으로 돌진한 적도 있지 않은가? 전쟁은 생물(生物)이다.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 해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날 밤, 덕조가 성안 하나밖에 없는 주막에서 군사들을 상대로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밤, 해시(10시)쯤 되었다. 초여름이어서 산중(山中)의 기온은 서늘했고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가 울리다가 인기척이 나면 뚝 그친다. 사택 마당으로 들어선 덕조가 제 방으로 가려다가 안쪽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화와 우덕의 방이다. 안에서 도란거리던 말소리가 들렸다가 덕조의 기척을 들었는지 뚝 그쳤다. 덕조가 방문 앞 토방에 털석 앉더니 커다랗게 트림을 하고 나서 말했다.“이년들아, 내가 왔다.”방안은 조용했고 덕조가 말을 이었다.“내가 이래봬도 바다건너 연남군에서 명성을 떨치던 계씨(階氏) 가문의 집사를 지낸 분이시다.”“…….”“네년들 같은 신라 시골뜨기들은 계씨 가문을 모르겠지.”덕조가 다시 트림을 하더니 침도 뱉고 나서 말했다.“아니, 연남군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를 거다. 그럼 내가 알려주마.”“…….”“바다를 건너야겠지. 그 바다가 뱃길로 한달이다. 그것도 순풍을 만나야 해. 그럼 그 연남군이 얼마나 넓은 줄 아느냐? 사방 1천리다. 당(唐)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매일 척후가 부딪치지. 우리 주인께서는 기마군 대장으로 1천5백 기마군을 이끄셨다.”“…….”“주인 부친께서는 태수 보좌역으로 은솔이셨고 조부 또한 좌장군으로 은솔(恩率)이셨다. 집안에는 모친만 남아 계시지만 아직도 연남군에서는 아무도 무시하지 못한다.”“…….”“네년같은 손톱만한 성주 집안이 아니란 말이다.”지금 덕조의 과녁은 고화다. 슬슬 분이 일어난 덕조의 목소리에 열기가 솟았다.“돌아가신 아씨는 네년보다 1백배는 더 미인인데다 품위가 있으셨다. 너는 감히 옆에 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아느냐? 모르겠지. 우리 주인이 아씨의 복수로 당(唐)의 척산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을. 그놈들이 한 것처럼 주인은 당군(唐軍)처자를 다 죽였다.”다시 트림을 한 덕조가 구역질을 하더니 잠잠해졌다.“저 미친놈.”그때서야 입속말로 욕을 한 우덕이 문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는 문틈으로 밖을 보았다. 그러더니 머리를 돌려 고화에게 말했다.“저놈이 마당을 기어서 제 방으로 가네요, 아씨.”고화는 시선만 주었고 다시 문밖을 본 우덕이 말을 이었다.“제 방 앞 토방에 누워 버리는데요. 거기서 개처럼 잘 모양입니다.”“…….”“아씨를 노렸다가 엄두가 안나니깐 별 시비를 다 하는군요. 미친놈.”“…….”“그나저나 성주 처자가 당군(唐軍)한테 살해되었나봐요.”그때 고화가 말했다.“너, 나가서 집사한테 거적이라도 덮어주고 오너라.”“내가 왜요?”했다가 고화의 시선을 받은 우덕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문고리를 잡았다.“아씨, 어떻게든 이놈의 땅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내가 저놈의 노리개가 되더라도 아씨는 도망치게 할 겁니다.”
“덕조, 기마군 조련에 열흘은 걸릴테니 집안 단속을 잘 해라.”수저를 내려놓은 계백이 말하자 덕조가 혀를 찼다.“저것들만 없었다면 주인을 따라갔을 터인데 괜히 샀습니다.”저것들이란 고화, 우덕을 말한다. 마침 고화는 밥 시중을 드느라고 윗목에 앉았고 우덕은 마루 끝에 서있는 참이다.그날, 장덕 해준의 종이 고화와 우덕의 정체를 폭로한 후부터 덕조의 태도가 또 달라졌다. 둘 옆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고화가 나타나면 뱀을 본 것처럼 피했다. 지금도 멀찍이 마당에 서서 말대답을 한다. 계백이 물그릇을 들고 말을 이었다.“성주 딸이면 정세도 알 것이고 삼현성에서 이곳까지의 지리도 익혀 놓았을 게다. 그래서 종을 시켜 기밀을 전할 수도 있을 게야.”“그렇지요.”눈을 치켜뜬 덕조가 마당에서 마루쪽으로 다가왔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저, 고화라는 성주 딸년이 아주 여우같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소인한테 싱긋 웃기까지 하더만요.”“저, 미친놈.”하고 우덕이 욕을 했지만 덕조가 목소리를 높였다.“주인, 저, 성주 딸년을 묶어서 골방에 가둬 놓을까요? 소인이 어젯밤에도 잠을 못잤습니다.”“왜?”말에 끌려든 듯 계백이 묻자 덕조가 길게 숨을 뱉었다.“아, 꿈에 저년이 나타나서 제 몸 위에 앉아있더란 말입니다.”“이 미친놈, 몽정을 했구나.”마침내 계백도 미친놈 소리를 했다. 포로가 되어 종으로 팔린 신라인은 도망치기가 어렵다. 특히 성안에서는 모두 얼굴을 아는터라 성밖 출입이 금지되고 성을 빠져 나간다고 해도 통행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물그릇을 내려놓은 계백이 고화를 보았다.“이곳이 싫다면 내가 조련에서 돌아와 너희들 둘을 다른 노예상에 넘겨주마.”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말을 이었다.“지난번 노예상이 도성의 유흥가에 팔 예정이라고 했으니 값을 잘 받을 수도 있겠다.”“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주인.”반색을 한 덕조가 어깨를 폈다.“그렇게 된다면 소인이 밤에 잘 자겠습니다.”고화는 시선을 내린 채 입을 다물었고 우덕은 부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주의 사택을 나온 계백이 청 앞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기마군 대장 장덕 해준이 다가왔다.“나솔, 준비 다 되었습니다.”뒤쪽으로 기마군 5백기가 정연하게 대기하고 있다. 말이 코를 부는 소리와 말굽으로 땅을 긁는 소음만 울릴 뿐이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말에 오르고는 성주대리 진광을 내려다 보았다.“장덕, 내 집 종들을 감시해주게. 내가 종을 잘못 샀어.”“잘 사신 겁니다.”진광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들으니 성주 딸이 미색이라고 하던데 다시 팔아도 되실 것이오.”옆에 있던 해준은 소리없이 웃었고 계백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번져졌다.“전장으로 가는 자가 집안 일을 걱정하다니. 다녀와서 팔아야겠네.”말고삐를 챈 계백이 앞장을 섰고 해준이 손을 들어 신호를 했다. 그러자 기마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봉산성의 줄기를 타고 기마군이 내려간다.
미국을 한자로 표기할 때 우리나라와 중국은 미국(美國)이라 쓰고 일본은 미국(米國)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식민지 의식이니 뭐니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1507년 독일의 지도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세계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는 이 지도에서 서반구에 있는 땅을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지도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명명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에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미합중국의 만장일치 선언’(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고 나와 처음으로 이 나라의 현 명칭이 쓰이는데, 이것은 1776년 7월 4일에 ‘아메리카 합중국 대표자’들이 채택한 것이었다.1777년 11월 15일 제2차 대륙 회의에서 연합 규약을 채택하면서 “이 연합의 입구는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날의 국호가 확립됐다. 이 국호의 축약형인 ‘United States’도 표준 명칭이다. 그 밖에 흔히 쓰이는 명칭으로는 ‘The U.S.’, ‘The USA’, ‘America’가 있다. 일상 회화에서 쓰이는 이름으로는 ‘The U.S. of A’와 ‘The States’도 있다.영어권에서 미국인을 이를 때 ‘아메리칸’(American)을 사용한다. 또 미국의 정식 형용사는 ‘United States’이지만, ‘America’나 ‘U.S.’가 가장 흔히 미국을 일컫는 형용사다.한편 오늘날 우리나라 등 중화권에서 쓰는 ‘미국’(美國)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이 ‘아메리칸’을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음역인 ‘美利堅’에서 왔다. 당시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은 ‘아메리칸’을 ‘메리칸’으로 들었고, 가까운 중국어 발음인 ‘메이리지안(美利堅)’이라고 했다. 이를 줄여 ‘메이궈’(美國)로도 표기하였고, 당시 조선인들이 이를 한국어식 한자음으로 읽어 ‘미리견(美利堅)’, ‘미국’(美國)으로 읽고 표기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亞米利加’(아미리가)로 표기했으며, 이를 줄여서 ‘베이코쿠’(米國)로 표기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도 이 표기를 사용했으며, 북한에서는 현재에도 일본식 음역인 ‘미국’(米國)을 사용한다.
한국미래문화연구원이 종합문예지인 <한국미래문화> 제28집을 출간했다.이번 호 특집 ‘인터뷰’ 편에서는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김영구 한국미래문화연구원 이사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성장 배경과 과정을 비롯해 정치가로서 활동상, 한국미래문화연구원에 대한 조언 등을 담았다. 특집 ‘문화 탐방’ 편에서는 김소형 전통술박물관 학예실장이 ‘날아라 매야, 바람을 타고 生을 향해 돌진하거라!’, 이병옥 전통예술평론가회 회장이 ‘한국 춤이 구리다고?’라는 제목으로 각각 기고했다.이밖에도 시, 시조, 아동문학(동시·동시조·동화), 수필, 소설, 평론, 기행문 등 회원들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다.
“노래 통해 전주에 활기 불어넣고 싶어요”
역사 추리 다큐멘터리, JTV 창사특집 다큐 ‘평장리 청동거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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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의 시선과 감각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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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다양한 소재와 내면을 살피는 작품 다수…글을 끌고 나가는 힘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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