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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법, 마음이 따뜻해지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데 필요한 80개의 표현을 담은 어린이책 <아홉 살 함께 사전>이 출간됐다. 어린이책 <아홉 살 함께 사전>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의 후속작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학교라는 사회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현을 그림과 함께 사전 형태로 소개한다. 박성우 시인이 글을 쓰고, 김효은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생활은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자기 내면을 성장시키는 기회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데 필요한 표현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한 어린이들은 서툰 표현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관계 맺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가까이하다’부터 ‘화해하다’까지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사용되는 표현 80개를 사전처럼 가나다순으로 담아냈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과 그 표현이 활용되는 구체적인 상황을 함께 소개한다. 예를 들어 ‘부탁하다’라는 표현은 원피스 뒷면에 달린 단추를 언니에게 채워 달라고 말하는 상황, 신발을 고쳐 신는 동안 친구에게 신발주머니를 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상황 등과 함께 제시한다. 박성우 시인은 1971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가뜬한 잠>·<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우리 집 한 바퀴>, 청소년시집 <난 빨강>·<사과가 필요해> 등을 썼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3.08 20:04

[불멸의 백제] (46) 3장 백제의 혼(魂) ⑤

누구냐? 어둠속에서 외침이 울렸다. 밤, 축시(2시)경, 기마군은 삼현성에서 동쪽으로 1백리 정도 나아간 상태다. 이곳은 정안성에서 20리쯤 떨어진 강가, 흐린 날씨여서 별빛도 없는 천지는 먹물속 같다. 그때 선두에서 기마군을 안내하던 전택이 소리쳐 대답했다. 나는 삼현성 보군대장 급벌찬 전택이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정안성 유천 검문소 군사올시다! 앞쪽에서 사내가 외쳤다. 이 밤중에 어디로 가는 군사입니까? 세곡을 싣고 대야성으로 간다! 군주의 지시로 밤을 세워 가는 중이야! 그러는 사이에 기마군은 검문소로 더 접근했다. 어둠속이었지만 검문소가 드러났다. 앞장선 전택은 이제 검문소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검문소 윤곽이 드러났다. 통나무로 지은 2채의 막사, 이미 검문소 안에서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10여인이다. 그때 군사들을 헤치고 무장 하나가 나섰다. 나는 검문소장 대사 유만성이오! 삼현성 급벌찬이라면 증표를 보이시오! 여기있네. 전택이 마상에서 나무를 깎아만든 증패를 내밀었다. 이제 검문소 군사들이 횃불을 켜서 주위가 환해졌다. 기마군 3백기가 검문소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되어서 군사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신라군 차림이라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때 증표를 본 검문소장이 전택에게 돌려주면서 다시 물었다. 삼현성에 내 의형제가 있소. 수문장으로 있는 사지 안태상이를 아시오? 누구? 사지 벼슬의 안태상이오. 그때 계백이 군사들을 헤치고 앞쪽으로 나와 둘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기마군은 검문소를 사방으로 둘러쌓아서 물샐틈이 없다. 3백 기마군이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는 터라 둘의 문답이 뒷쪽에까지 들린다. 그때 전택이 물었다. 대사, 그대도 가야인인가? 그렇습니다. 올려다보는 대사 직급의 검문소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30대쯤의 건장한 체격이다. 시선을 받은 전택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믿지 못하고 있군. 무슨 말씀이오? 나도 가야인이야. 그렇습니까? 사지 벼슬의 안태상이란 수문장은 작년에 병으로 죽었네. 의형제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나? 아. 수문장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잠깐 잊고 있었소. 그순간이다. 전택이 허리에 찬 칼을 후려치듯이 뽑으면서 수문장의 목을 쳤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수문장이 목에서 피를 품으며 쓰러지기도 전에 기마군이 덮쳤다.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명령을 하지도 않았다. 비명과 외침, 신음은 잠깐동안 이어지다가 뚝 그쳤다. 마상에서 공격한 기마군은 함성 한번 지르지 않고 검문소 군사들을 도륙한 것이다. 말에서 뛰어내린 기마군사 10여명이 막사 안까지 뛰어들어가더니 신음이 울렸다. 그때 피가 묻은 칼을 칼집에 넣으면서 전택이 계백을 보았다. 장군, 제가 동족을 쳤습니다. 살려둘 수가 없었어. 계백이 위로하듯 말하더니 말고삐를 당겼다. 검문소가 당한 것을 알면 전령이 김품석에게 보고를 할 거다. 이제는 낮에도 달려야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08 20:04

[김소윤 첫 소설집 '밤의 나라' 출간] 위태로운 '여성들'… 그래도 살기 위해 맞선다

김소윤 소설가가 최근 펴낸 첫 소설집 <밤의 나라>(바람꽃)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쓴 단편소설을 엮은 것으로, 위안부탈북자결혼 이주 여성장애 여성국제 밀거래 조직 등 소재는 다양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여성이 존재한다. 김 소설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결핍과 상처를 지니고 있어서 쓰면서도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어서 그들의 치유와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고 내가 그래줄 수 있기를 소망했지만, 아마도 그건 내 몫이 아닐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이들을 끌어내 세상 속에 세우는 일뿐이었다고 말했다. 표제작인 밤의 나라는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 탈북한 여성 미호의 이야기다. 탈북 과정에서 온 가족을 잃은 미호는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으로 밀항한다. 그곳에서마저 밀항선 선장으로부터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살기 위해 조직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결국 권력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양도한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에서 온 소년과 마주치며 다시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 대가는 죽음이었지만 미호는 더이상 숨고 도망치며 자신을 잃어버리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머지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우리 사회가 구성원으로 상정하고 있는 표준적인 모델은 아니다. 김대현 문학평론가는 김소윤은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았던 위태로운 여성들을 보이게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억압받는 주인공들은 자신을 시험하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광기로 대항하거나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싸운다.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한다. 김 평론가는 아무리 비루한 삶이라도 살아지는 이 끈질긴 생명의 힘을 보라며 모든 과정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간다. 그것이 그들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북 출신인 김소윤 소설가는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서 단편소설 벌레 당선, 2012년 제1회 자음과모음 나는 작가다에서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당선 등의 경험이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3.08 20:04

'만인은 평등' 외친 정여립 소설로 만나다

역사 속 정여립(1546~1589)의 모습은 전제왕권에 도전한 반역자 등 부정적인 기록으로 덧칠돼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과 혼정편록, 연려실기술, 대동야승 등 기축옥사와 관련한 역사 내용을 살펴보면 정여립에 대한 오해가 상당했음을 깨닫고 시대를 앞서간 그 사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정여립은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한 인물이다. 장편소설 <여립아 여립아>의 저자 박이선 씨는 정여립을 영국 올리버 크롬웰보다 앞선 공화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시대를 앞선 그 사상이 조선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이런 인물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인물로 불러올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소설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정여립과 대동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특히 동후가 의병들을 모아놓고 말하는 대목은 정여립의 혁명적인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나라 조선은 임금의 나라도 아니요 양반의 나라도 아니다. 우리가 여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모인 것은 사랑하는 내 피붙이들을 위함이 아닌가. 옛 성현들도 말하기를 백성이 나라의 기본이요 무거운 존재라고 했다. 천하에 어찌 주인이 따로 있겠는가.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인 것이다. (본문 중 일부) 이 책은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정여립의 삶과 죽음을 촘촘히 그려낸다. 정여립, 정철, 송익필, 지함두, 변숭복 등 당대 인물들은 철저한 사료 고증을 거쳐 작품 속에서 되살아난다. 또 저자는 마치 르포르타주(기록문학)처럼 당대의 역사를 정교하게 묘사하면서 정여립과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 모반으로 일어난 동인과 서인 간의 정쟁)의 전말을 드러낸다. 기축옥사를 각각 인물의 시점으로 총체적으로 묘사해 역사의 한 장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했다. 남원 출신 박이선 씨는 201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하구로 당선됐다.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춘포>, <이네기>, <이어도 전쟁>이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3.08 20:04

[불멸의 백제] (45) 3장 백제의 혼(魂) ④

저녁, 술시(8시) 무렵, 골짜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마군 앞쪽이 술렁거리더니 곧 고덕 호성이 서둘러 다가왔다. 호성은 기마군의 선봉을 맡고 있어서 언제나 맨 앞에 나가있다. “나솔, 전택이 왔습니다.” 낮게 소리친 호성의 뒤로 전택이 따라왔다. 계백은 전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택은 신라무장 차림이었는데 연락과 감시역으로 파견되었던 장반과 유권도 데리고 왔다. “장군, 준비 다 되었습니다.” 어깨를 편 전택이 계백에게 군례를 하면서 말을 잇는다. “가족은 처가가 있는 산골로 보냈으니 이젠 마음놓고 죽을 수가 있게 되었소.” “죽으면 되나?”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살아서 영화를 누려야지. 그래서 싸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전택이 따라 웃었고 계백이 일어나는 것을 신호로 화청과 해준이 소리쳐 기마군을 정돈했다. 다시 출발하려는 것이다. 이곳은 삼현성에서 10리쯤 떨어진 골짜기다. 길잡이 역할을 할 전택을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터라 밤길을 달려야 한다. 다행히 삼현성까지 오는데 농군 몇 명만 보았지 신라 순찰대는 만나지 않았다. 이제 앞에 삼현성 보군대장이며 급벌찬 벼슬인 전택을 내세웠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출발!” 말에 오른 계백이 소리치자 기마군 3백이 움직였다. 이제는 소음을 죽이고 행군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말들도 울지 않는다. 그 시간에 김유신이 전령의 보고를 받는다. 이곳은 신라 덕천성, 김유신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장군, 백제군이 반으로 쪼개졌습니다.” “쪼개져?” 청 안이 조용해졌고 김유신이 치켜뜬 눈으로 전령을 보았다. 전령이 소리쳐 말을 이었다. “예. 기마군 2만여기가 쪼개져서 남하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 진시(8시)경이었으니 지금쯤…….” “2백리는 갔지 않겠느냐?” 김유신이 대신 말을 받았다. “기마군 2만이라고 했느냐?” “예, 속보로 남하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전령은 12품 대사 직급으로 전장에 익숙한 30대다. “백제왕의 깃발은 그대로 진영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유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전령을 응시했으나 눈의 초점이 떤다. 이윽고 김유신이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전군(全軍)을 출동 준비 시켜라.” “예, 대장군.” 부장 서준이 대답부터 하고나서 묻는다. “어디로 갑니까?” “안곡성으로!” “예, 대장군.” “한시진 후에는 출발이다.” 김유신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안곡성에 전령을 보내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해라!” “예, 대장군.” 청 안의 무장들이 일제히 일어났고 제각기 떠났는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안곡성은 신라 국경에 위치한 산성(山城)으로 백제군이 주둔하고 있는 영암성 근처의 황야와는 50리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백제측에서 보면 신라군이 공격해 오는 것으로 알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07 20:29

[불멸의 백제] (44) 3장 백제의 혼(魂) ③

국경을 넘었습니다. 옆을 따르던 장덕 해준이 낮게 말했을 때는 유시(오후 6시) 무렵, 기마군은 이제 일렬종대로 산기슭을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사람 하나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외진 산길, 옆쪽은 자갈투성이의 불모지인데다 물줄기도 없어서 짐승도 드문 땅, 신라군 국경 초소는 5백여보 떨어져 있었는데 이 시간에는 저녁 준비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마군은 초소를 뒤로하고 술시(8시)가 될 때까지 영토 안으로 더 진입하고 나서야 작은 개울가에서 멈췄다. 변복해라. 계백이 지시하자 각 무장들이 제각기 군사들에게 지시했고 한식경도 되지 않았을 때 기마군은 신라군으로 변했다. 각자가 신라군 복장을 말에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백도 허리띠를 떼고 신라 무장의 가죽갑옷으로 바꿔 입었으며 황금색 용 한 마리를 자수로 놓은 검정색 두건을 썼다. 이찬 등급을 나타내는 두건이다. 장덕 화청과 해준은 붉은색 두건을 썼으니 신라의 6급품 일길찬이 되었고 청색 두건을 쓴 효성은 9급품 급벌찬이다. 자, 오늘밤은 영내로 더 깊게 진입한다. 출발이다. 버릴 것은 땅에 묻고 신라군이 된 기마군이 계백의 명령에 따라 다시 떠났다. 내일 저녁에는 삼현성에 달아야 한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계백이 소리쳤다. 이제는 신라군이 되었으니 수군대며 지시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에 백제왕 의자가 동방방령 의직에게 말하고 있다. 달솔, 그대는 김유신만 막으면 된다. 김유신이 대야주를 지원하려고 내려올 때 허리를 끊어라. 예, 대왕. 의직이 허리를 굽혔다가 펴고 의자를 보았다. 이곳은 동방(東方) 동북쪽의 황야, 백제대왕의 거대한 깃발이 꽂힌 백제군의 본진이다. 대왕 의자가 친히 2만 친위군을 거느리고 북상했고 동방방령 휘하의 동방군 2만5천에다 북방군 5천까지 합해서 5만 대군이 벌판을 뒤덮고 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서 수천개의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터라 마치 땅에도 별무리가 펼쳐진 것 같다. 대왕, 옥체를 보중하소서. 전쟁이 빨리 그쳐야지. 의직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는 이미 갑옷 차림이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진막을 나온 의자가 위사장이 잡고 선 말고삐를 받아 쥐더니 날렵한 동작으로 말에 올랐다. 어둠 속에는 이미 수백기의 위사대가 주위에 벌려서 있다. 별이 밝구나. 하늘을 올려다 본 의자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의직은 바로 말을 받았다. 이번 출정에 대운(大運)이 따른다는 징조올시다. 대왕. 앗하하. 마상의 의자가 턱을 치켜들고 웃었다. 달솔, 지금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면 뭐라고 말을 받을 거냐? 액운이 떨어졌으니 거칠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는 곧 좌평이 되겠다. 입만 가지고 승진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왕. 잘 지켜라. 의자가 정색하고 말하자 의직이 허리를 꺾어 절을 하고나서 낮게 소리쳤다. 대왕. 만세, 천세. 머리를 끄덕인 의자가 말고삐를 채어 몸을 돌렸다. 위사대에 둘러싸인 의자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의자는 친위군을 이끌고 남하하는 것이다. 의자대왕 깃발을 놔두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06 21:04

전주시 공무원 김소윤씨, 제주 4·3평화문학상 당선

전주시의회에 근무하는 김소윤(38) 작가가 제6회 제주 43평화문학상소설부문에 당선됐다. 수상작은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 제주43평화문학상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이 43의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문학작품으로 담아내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43의 진실,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시와 소설 2개 부문으로 공모한다. 소설 7000만원, 시 20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상금이 주어진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이뤄진 공모에는 국내외 15개국에서 231명이 소설 101편과 시 1635편을 접수했다. 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는 지난달 28일 본심 심사위원회를 열고 김 작가의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을 소설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는 정찬일(제주 서귀포시)씨의 취우가 당선됐다. 정난주 마리아는 1801년 조선 후기 천주학 사건(황사영 백서)으로 제주도로 유배돼 관노비로 살게 된 여성 정난주의 비극적인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조선이라는 봉건시대의 변방에 놓여있는 제주의 차별성을 정난주라는 한 여인의 핍진한 삶과 연결시키는 작가의 진정성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작가의 성실하고 개성 있는 문체도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단편소설 벌레가, 제1회 자음과 모음 나는 작가다에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가 잇따라 당선됐다. 최근 단편소설집 밤의 나라를 펴냈다.

  • 문학·출판
  • 은수정
  • 2018.03.06 21:04

세계막사발미술관 폐관 놓고 '예술인-완주군' 대립

세계막사발미술관 폐관을 놓고 도예가들과 완주군이 대립하고 있다. 도예가들은 일방적인 행정으로 약 5년간 완주 삼례를 막사발 예술의 고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위기라고 호소했다. 반면 완주군은 삼례문화예술촌 위탁기관 변경 및 기관별 운영 평가에 따라 세계막사발미술관장의 장기 해외 출장 등으로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김용문 세계막사발미술관장은 6일 호소문을 통해 세계막사발미술관은 지난 5년간 완주 삼례에서 세계막사발심포지엄, 외국 작가 초청 레지던스, 기획 전시, 도예 교육 등을 통해 세계 유수 교수작가들과 교류해왔다며 짧은 기간 세계막사발미술관이 각국 교수작가들의 교류 장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주군은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며 폐관을 통보하고 지난해 12월 31일 자로 폐쇄했다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이어 사람을 쫓아내도 이렇게 일방적인 처사는 있을 수 없다며 지난 5년간 도예가들과 함께 공들인 활동은 모두 헛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관장은 8일 세계막사발미술관 광장에서 폐관 탄원 퍼포먼스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완주군은 세계막사발미술관 폐관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위탁기관 계약 만료(지난해 12월 31일)로 위탁기관이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에서 아트네트웍스로 변경됐고, 이 과정에서 세계막사발미술관을 포함한 삼례문화예술촌 7개 문화시설 운영자와 사업 내용에 대한 조정이 이뤄졌다. 책공방북아트센터와 김상림목공소만 기존 운영자가 유지되고, 나머지 문화시설은 운영자가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상림목공소, 디지털아트관을 제외한 문화시설의 사업 내용도 변화됐다. 완주군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김 관장이 터키 하제테페대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1년에 3~4개월 국내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 관장의 부재로 인한 리더십 공백으로 정책 결정과 실행 등 원활한 운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위탁기관 변경과 맞물려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자리한 옛 삼례역 역사의 활용도를 높이는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3.06 21:04

[불멸의 백제] (43) 3장 백제의 혼(魂) ②

아침, 3백기의 기마군이 칠봉산성을 내려가고 있다. 예비마와 식량을 실은 말까지 4백여 필의 말이 속보로 내려가는 터라 산이 울렸다. 앞장선 척후는 10여기. 그러나 깃발도 들지 않았고 백제군(軍)을 나타내는 띠도 매지 않았다. 사냥을 갈 때의 차림이다. 아침 일찍 산에 나왔던 나무꾼 서너명이 내려오는 기마군을 보고는 길가에 비켜섰다가 계백이 다가오자 꿇어앉았다. 근처 마을 농부들이어서 계백의 얼굴을 안다. “성주, 잘 다녀옵시오!” 나이든 사내가 소리치자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추수 잘 하게!” 계백의 목소리는 곧 말굽 소리에 묻혔고 기마군에 둘러싸인 뒷모습도 곧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남방 방령 윤충도 말에 오르고 있다. “선봉이 떠났습니다!” 부장(副將)인 덕솔 목기진이 소리쳐 말하면서 옆으로 다가왔다. 목기진이 탄 군마(軍馬)가 흥분해서 목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두 번이나 맴돌았다. 싸움에 익숙한 군마들은 전장 분위기를 느끼면 날뛰는 것이다. “서둘러라!” 말고삐를 쥔 윤충이 소리치자 목기진의 손짓을 받은 중군(中軍)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솔 협반이 지휘하는 선봉군 3천이 조금 전에 방성(方城) 아래쪽 산기슭에 주둔하고 있다가 출발한 것이다. 윤충이 이끄는 중군은 기마군 7천5백, 후군은 3천5백, 선봉군까지 1만4천이다. 기마군이 움직이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자, 이제 시작이다.” 윤충이 말에 박차를 넣어 속보로 걸리면서 주위에 모인 무장들에게 말했다. “이번 싸움은 나솔 계백에게 달려있다.” “방령, 대왕께 전령이 떠났소이다!” 중군의 제1대장을 맡은 나솔 정찬이 다가와 보고했다. “대왕과는 이틀 간격이 되겠소.” “일정이 정확해야 산다.” 윤충이 소리쳐 말했다. “낙오자는 남겨두고 행군을 멈추지 말라!” 이미 각 무장들에게 지시를 해놓은 터라 전령을 시켜 전달할 필요는 없다. 후군(後軍) 뒤로 병참과 예비마까지 3천여 필의 말떼가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성 안은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을 했다. 성 안 주민들이 길가에 나와 서서 구경을 한다. 이 중에 신라 첩자가 있을 것이지만 기마군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출동 전까지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었던 터라 첩자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성문을 나서자 아침 햇살이 기마군 위로 펼쳐졌다. 창끝이 빛을 받아 반짝였고 말들은 기운차게 걸음을 내딛는다. 윤충이 번쩍 상체를 세우고 소리쳤다. “보라! 창끝에 비친 햇살이 이렇게 밝은 적은 처음이다! 이번 싸움은 이긴다!” “와앗!” 근처의 무장들이 소리쳤고 전령들이 앞뒤로 말을 달려 나가면서 기마군들에게 전한다. “창끝의 햇살이 이렇게 밝기는 처음이라고 방령께서 전하셨다! 이번 싸움은 이긴다!” “와앗!” 앞쪽과 뒤쪽에서 전령의 말을 들은 기마군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병사에게 사기를 일으켜주는 것이 장수의 역할이다. 수백 번 전투를 치른 윤충은 비오는 어느 날에 전장으로 달려가면서 빗속의 귀신이 너희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그날 윤충은 5백 기마군으로 3천이 넘는 신라군을 패주시켰는데 귀신의 도움이 컸다. 군사들은 귀신들이 옆에서 돕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것이 사기고 전장(戰場)의 단순함이다. 그것을 잘 응용하는 장수가 이긴다. 제갈공명의 계략은 다 헛소리다. 윤충의 머릿속에 계백의 모습이 떠올랐다. 계백. 지금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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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5 21:21

[불멸의 백제] (42) 3장 백제의 혼(魂) ①

“부르셨어요?” 마룻방에 앉아있던 계백에게 고화가 다가오며 물었다. 고화는 깔끔한 옷차림에 이제는 피부에도 윤기가 난다. 성주(城主)의 손님이 되어서 머물고 있는 터라 몸은 편해졌지만 아직 얼굴에는 수심이 끼었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앞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 앉아.” 오시(12시) 무렵, 잠깐 자고 일어난 계백이 다시 나갈 차비를 하고 앉아있다. 앞쪽에 앉은 고화가 맑은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이제는 눈에 적의는 사라졌다. 대신 두려움과 수줍음이 절반씩 섞여진 것 같다. 계백이 입을 열었다. “내일 새벽에 출진을 할 테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불렀어.” 고화는 시선만 주었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방령께 말씀을 드리려고 했더니 마침 방좌께서 말을 꺼내시더군. 그래서 그대를 내 처로 대우 해달라고 청을 드렸어.” 고화가 시선을 내렸고 계백의 말이 마룻방을 울렸다. “그러니 내가 돌아오지 않아도 나솔 계백의 처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야. 그런 줄 알고 있도록.” “나리.” 머리를 든 고화가 계백을 보았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제가 아버지를 사지(死地)에 빠뜨려놓고 이제는 나리까지 몰아 넣는군요.”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어.”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그대가 지금은 내 걱정을 해주는가?” “아버님께 저는 꼭 살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옳지, 그래야지.” 계백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효도하는 길이고 대의(大義)일세. 내가 전해 드리겠네.” 어깨를 편 계백이 머리를 돌리더니 밖에 대고 소리쳤다. “덕조 있느냐!” “예, 나리.” 문 밖에 있었는지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집안 식구들 모두 불러라!” “예, 나리.” 숨을 다섯번 쉬기도 전에 덕조가 종 둘과 우덕까지 데리고 마룻방 끝쪽에 섰다. 계백이 머리를 들고 덕조에게 말했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아씨를 모시고 기다려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나리.” 했지만 덕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직 내막을 모르기 때문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방좌 덕솔 연신님께서 아씨를 내 처로 인정하시고 대우해주신다고 하셨다. 알겠느냐?” “예, 나리.” 그때서야 덕조가 계백 사후(死後)의 고화에 대한 대우 문제인 것을 알고는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예, 돌아오실 때까지 잘 모시지요.” 머리를 끄덕인 계백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이만하면 되었어.”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내일 새벽에 출진이야. 청으로 들어가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나서 그곳에서 출진할 테니까 여기서 작별이다.” “나리, 무사히 돌아오시오.” 계백의 등에 대고 덕조가 건성으로 말했다. 마룻방을 나가던 계백의 옷자락이 뒤에서 당겨졌다. 머리를 돌린 계백이 옷자락을 잡고 선 고화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화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나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죽을 작정으로 떠나는 무장이야.” 그러나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대에게 돌아오려고 죽음을 피하지는 않아.” 계백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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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4 20:19

[불멸의 백제] (40) 2장 대야성 19

대야성 서문 수문장 여준은 다가오는 진궁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성주 오시오?” “난 성주에서 떨어진지 한 달 되었어.” 쓴웃음을 지은 진궁이 다가와 섰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진궁은 여준의 숙소로 찾아온 것이다. 미리 장춘을 시켜 연락을 한 터라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준이 진궁을 안내했다. 여준도 가야 호족 출신으로 진궁의 가문과 인척으로 맺어져 있다. 진궁의 어머니가 여준의 친척인 것이다. 뒤채 마룻방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뒤를 따라온 장춘이 마룻방 밖에서 지켜섰고 여준은 방에 불도 켜지 않았다. 진궁은 이미 기피 인물이다. 딸이 백제군에게 납치된 것을 숨기고 있다가 군주로부터 직위가 박탈된 신분인 것이다. 억울하겠지만 진궁과 접촉했다가 군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리는 진궁을 피하는 실정이다. “이것 봐, 나마. 내가 그대와 친척이라는 것을 누가 아는가?” 웃음 띤 얼굴로 진궁이 묻자 여준이 따라 웃었다. “안다면 벌써 그자가 군주께 말했겠지요.” “그렇군.” “한 달이 지났으니 아마 저도 직이 잘렸을 겁니다.” “김유신은 내 구명 편지도 불에 태웠어.” “당연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그대와 내 관계도 알게 될 거야.” “그럴 것 같습니다.” 여준은 33세, 활을 잘 쏘았고 마술이 뛰어나 여러 번 전장에서 공을 세웠지만 11품 나마에 머물고 있다. 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지 1백년도 되지 않는다. 그 전(前)에는 가야와 백제가 연합해서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때 진궁이 정색하고 여준을 보았다. 방안이 어두워서 진궁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봐, 나마. 나는 이곳에서 죽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놀란 여준이 눈을 둥그렇게 떴을 때 어깨를 치켜올린 진궁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마는 살아서 영예를 찾게.” “왜 죽습니까?” “대야성을 함락시키겠네.” “대아찬, 무슨 말씀이오?” “성문을 열어주지 않겠는가?” 낮게 말한 진궁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여준을 보았다. “대야성만 넘어가면 대야주 42개 가야 영토의 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네.” “…….” “그럼 우리 가야인들이 다시 대가야의 주인이 되겠지. 나마, 그대가 42개 가야성 한 곳의 성주는 되지 않겠는가?” “…….” “신라가 우리 대가야를 병합시키고 나서 가야족으로 출신한 위인은 김유신 하나뿐이지 않은가?” “…….” “내가 5품 대아찬이 된 것도 30여 번의 전공을 세운 덕분이지. 나 같은 경우는 몇 명 안되어.” “그렇지요.” 어깨를 부풀린 여준이 말했다. “대아찬은 김유신보다도 더 전공을 세웠지요.” 그러나 김유신은 이미 왕족 대우를 받고 진골 김춘추의 매부이며 대장군에다 2품 이찬이 되었다. 가야인 토호 대부분은 11품 나마 이상으로 승급되지 않는다. 전택도 특별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그때 여준이 물었다. “대아찬, 백제에 투항하시려는 겁니까?” “나를 따르겠는가?” “명분은 있으니 실리까지 보여주시오.” “옳지.” 진궁이 어둠 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장하네, 거사가 성공하면 그대에게 성주를 보장하지 못하겠는가?” “조건없는 투항은 백제에서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딸 고화의 장래를 보장받았네.” “대아찬, 살아서 그것을 보셔야지요. 함께 삽시다.” “그럼 성문을 열겠는가?” “대가야는 내 땅이요, 내 집 성문을 여는 것입니다.” 여준의 두 눈이 번들거렸고 먼저 손을 뻗어 진궁의 손을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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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8 19:54

[불멸의 백제] (39) 2장 대야성 18

“나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장들이 돌아가고 계백 혼자 마룻방에 남았을 때 먼저 나갔던 남용이 문앞에서 말했다. “뭐냐?” 다가온 남용이 품에서 접혀진 편지를 두 통 꺼내더니 내밀었다. “하나는 대아찬이 나리께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딸에게 주는 편지지만 나리께 먼저 드리라고 하더구만요.” 20대쯤의 남용은 농사꾼에서 병사로, 병사에서 15품 진무까지 출신을 했다. 군 경력이 8년, 수많은 전장(戰場)에서 살아남은 터라 생존본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편지를 받아든 계백이 남용에게 물었다. “진무, 대아찬의 기색이 어떻더냐?” 남용은 그동안 진궁과 함께 생활해왔던 것이다. 백제 측에서는 연락역 겸 감시역이다. “가야 호족으로 신라 왕족들에게 무시당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남용이 바로 대답했다. “백제군을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려 신라에 충성할 위인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딸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고 진심 같습니다. 딸이 잘 살면 된다는 말만 여러번 했습니다.” “진무, 수고했다.” “나리.” 계백을 부른 남용이 시선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었다. “저와 하성은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번 공격이 성공하면 너희들 둘은 12품 문독이 된다. 그것이 자손에게도 전해질 게다.” “그만하면 죽을 보람이 있지요.” 어깨를 부풀린 남용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죽더라도 자식에게 직위가 넘겨진다는 말이다. 남용이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은 먼저 자신에게로 온 편지부터 보았다. 이제는 눈에 익은 진궁의 필체다. “나솔, 다시 뵙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런 말을 할 기회가 없을 터라 먼저 말씀드리오. 내 딸 고화가 여러모로 부족하나 나솔이 상처하셨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필로 맞아주시면 마음놓고 세상을 뜰 수 있겠소. 이것도 인연이니 고화를 받아주시기 바라오. 고화에게도 따로 편지를 쓸 것인데 고화는 아비의 뜻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승낙해주신다면 백제와 나솔을 위해 대야성 공략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진궁.” 한동안 편지를 보던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편지는 자신의 딸을 배필로 맞으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내용은 당당했고 딸과 대야성을 바꾸겠다는 분위기까지 풍겼다. 이윽고 계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내용 속에 박힌 진궁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진심까지 몸속으로 배어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당으로 나간 계백이 종을 불러 고화를 불렀다. 고화는 이제 종이 아니라 손님이다. 방에서 나온 고화가 앞에 섰을 때 계백이 편지를 내밀었다. “부친과 함께 있는 무장이 여기 오면서 그대 부친의 편지를 가져왔어.” 편지를 내민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도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것도 함께 읽는 것이 낫겠군.” 계백이 다시 편지 한 통을 꺼내 고화에게 건네주고는 돌아섰다. 밤이 깊어서 칠봉산 이쪽저쪽의 부엉이가 울기 시작했다. 방으로 돌아온 계백이 그때서야 옷을 갈아입었을 때 덕조가 술상을 든 종과 함께 들어섰다. “주인, 무슨 편지를 주신 겁니까?” 종이 나갔을 때 술상 옆에 앉은 덕조가 물었다. “얼핏 들었더니 부친이 보낸 편지라면서요?” “고화 부친이 나한테 고화를 처로 맞아 달라는구나.” 순간 숨을 들이켠 덕조가 몸까지 굳히더니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소인이 보기에는 마님으로 적당하십니다. 얼른 받아들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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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7 19:57

[불멸의 백제] (38) 2장 대야성 17

결사대 3백은 칠봉성으로 파견된 병력중에서 선발했기 때문에 계백은 매일 군사 조련을 했다. 방령 윤충은 부장(副將)으로 장덕 화청을 보내 주었는데 40대의 한인(漢人)이다. 건장한 체격에 수염이 무성한 화청이 계백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장덕 화청이올시다. 나솔께서 연남군에 계실 때부터 용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당(唐)에서 귀화했나?” 계백이 묻자 청 안의 시선이 모여졌다. 칠봉성의 청 안이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화창한 날씨여서 산성위로 흰 구름이 지붕처럼 붙여져 있다. “아니오, 전 수(隋)가 멸망한 후에 귀순했으니 수에서 귀화한 셈입니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수(隋)는 3대 37년만에 멸망한 것이다. 한때 중원을 장악했던 수는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대패를 당한 후에 양제가 친위군의 반란으로 살해되면서 사라졌다. “수가 멸망한지 25년이야. 그대는 수에서 관직에 있었나?” “섬서성 동관의 교위로 있다가 동관이 함락되자 곧장 동성군에 투항하였습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성군은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백제령 담로의 하나다. 계백이 성장했던 담로 연남군의 윗쪽이다. “잘왔어, 그대의 경륜이 도움이 되겠다.” 계백이 반기고는 같은 부장(副將)이며 장덕인 해준과 고덕 효성 등 무장들을 소개했다. 이로써 결사대 장수와 병사 준비는 마쳤다. 성안의 군사는 물론 출동시킬 3백 기마군도 아직 대야성 공략은 커녕 출동 날짜도 모른다. 계백과 10여명의 무장만 알 뿐이다. 그날 저녁, 대야성에 밀파되었던 2명중 하나인 진무(振武) 남용이 계백의 사택에 도착했다. 남용은 온몸이 땀과 먼지로 뒤덮여 있는데다 나흘 밤낮을 걸었기 때문에 지쳐 있었다. “지쳤으니 잠깐 물을 마시고 죽을 먹어라.” 늘어진 남용에게 말한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가서 장덕 화청, 해준, 고덕 효성까지 불러오너라.” 덕조가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이 다시 남용에게 말했다. “다 함께 들으려고 그런다.” 잠시후에 선봉군 결사대의 무장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남용이 어디에서 온 것임을 아는 터라 긴장하고 있다. 마룻방에 다섯이 둘러 앉았을 때 계백이 남용에게 지시했다. “말해라.” “예, 그동안 대야성의 주둔병력이 1만3천5백으로 늘었습니다. 기마군 5천5백에 보군 8천입니다.” 남용이 가슴에서 접혀진 종이를 꺼내 계백 앞에 펼쳐놓았다. “대야성 지도입니다. 각 부대의 위치와 병력, 창고와 마굿간, 무장과 관리들의 숙소까지 다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지도는 대아찬이 그렸습니다.” 무장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었다. 계백이 지도를 집어들고 머리를 끄덕였다. 대아찬은 진궁이다. 다시 남용이 말을 이었다. “대야성 주변에 포진한 신라군은 대략 1만여명이고 중앙군단으로는 삼천당군(軍) 1만이 동쪽 마진성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대아찬은 유사시에 만 하루면 3만여명의 신라군이 모일 수가 있고 사흘이면 5만, 열흘이면 신주로 올라간 김유신군(軍)까지 내려와 10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야성 안 분위기는 어떠냐?” “전쟁 분위기는 아닙니다. 김유신군이 북상했고 의자대왕께서 북쪽에 계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숨을 고른 남용이 계백을 보았다. “대야성안 주민이나 가야출신 군사들은 신라 임금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도를 접은 계백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이제 시간이 된 것이다. 이쪽 준비는 다 되었다. “수고했다. 넌 오늘 푹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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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6 22:25

[불멸의 백제] (37) 2장 대야성 16

신주(新州)는 백제의 북방을 가로지르는 신라 영토지만 백제로부터 빼앗은 것이나 같다. 백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빼앗겼던 한강 유역 6군을 회복했다. 신라는 한강 상류 10군을 점령했는데 진흥왕은 갑자기 백제를 배신, 백제군이 수복한 6군마저 탈취한 후에 신주를 설치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성왕이 신라군과 싸우다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했으니 백제로서는 피눈물이 뿌려진 땅이다. 그리고 관산성 싸움에서 성왕을 패사시킨 신라 무장(武將)이 바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金武力)이다. 당시의 김무력이 신주군주(新州軍主)였던 것이다. 신주(新州) 서북방에 진출한 김유신이 덕천성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전령이 달려와 보고했다. 대장군, 백제 의자왕이 영암성에 입성했습니다. 영암성은 백제의 북단으로 신주와는 50여리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김유신이 주둔한 덕천성과는 2백리 정도다. 전령의 보고가 이어졌다. 의자왕이 이끈 기마군은 8천여기, 보군은 1만7천 정도이나 동방 방령 의직이 주둔한 대곡성에는 보기 2만 정도의 병력이 있습니다. 김유신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곡성과 영암성간 거리는 60여리밖에 되지 않는다. 의자가 노리는 곳은 두 곳 뿐이야. 김유신이 청안의 무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다. 이쪽, 신주(新州)와 서쪽 대야주다. 대장군, 의자가 이쪽에서 사냥 시늉을 하는 건 서쪽을 노리고 있는 것을 숨기려는 수작 아닐까요? 김병일이 물었을 때 김유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김유신은 올해 49세,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너무 뻔한 성동격서다. 그것은 뻔하게 드러냈으니 그 반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까? 대아찬, 그 반대가 무엇이냐? 김유신이 아직 20대 후반이나 5품 대아찬에 오른 김병일을 물끄러미 보았다. 김병일도 진골(眞骨)왕족이다. 상대등 비담의 조카가 된다. 비담 일당이 김유신의 옆에 박아 놓은 감찰관 역할이다. 김유신의 시선을 받은 김병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성동격서의 반대란 바로 소리를 내는 곳으로 공격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의자가 그렇게 뻔한 짓을 할까? 그럼 서쪽 대야주를 친다는 것입니까? 의자는 우리가 그것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때 김병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둘러선 무장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다. 대부분이 김유신을 따라 전장을 누비고 다닌 무장들이다. 그때 김유신이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내가 북상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군사를 이끌고 당항성으로 가지 않은 이유를 아는가? 김유신의 시선이 부장(副將) 서준에게로 옮겨졌다. 서준은 6품 아찬으로 38세, 10여년간 김유신을 수행한 무장이다. 아찬, 말해보라. 예,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서준이 바로 대답했다. 어깨를 편 서준의 왼쪽 볼에 칼자욱이 길게 뻗쳐졌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어느 쪽 적과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김유신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허나 의자의 준동은 전쟁의 시작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군사를 이끌고 북상한 것도 당연한 일, 서쪽 대야주 방비도 충분하니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백전노장의 빈틈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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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5 18:42

[불멸의 백제] (36) 2장 대야성 ⑮

고산성에서 돌아온 계백은 전택과 4명의 농민 차림의 사내를 대동했는데 그들이 바로 신라에 파견될 백제 연락역이다. 바로 첩자인 것이다. 15품 진무와 16품 극우에서 선발된 하급 무장이었지만 중책을 맡은 터라 모두 긴장하고 있다. 그들을 청으로 데려가지도 못하고 사택으로 데려온 계백이 마룻방에 모아놓고 말했다. “대야성 함락은 그대들에게 달렸다. 그대들의 목숨이 결코 헛되게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 진무 하나가 물었다. “나솔, 소인이 진무를 단지 3년이오. 이번 일이 성사되면 무독까지는 되겠지요?” 무독은 14품이니 2계단 오를 것이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런 욕심이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다. 공(功)에 대한 욕심이 없는 자는 많을 수가 없다. “내가 13품 문독까지는 보장한다.” “어이구, 살아서 문독이 되어야 할텐데요.” 20대 중반쯤의 진무가 따라 웃으며 말했을 때 계백이 대답했다. “그대가 죽으면 처자식이 그 보상을 받으리라.” 듣고만 있던 전택이 입을 열었다. “나솔, 다음달 보름이면 20여일이 남았소. 서둘러야 될 것입니다.” “그대의 책임이 크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대야성의 대아찬에게 연락을 해야 될 것이고 대야성까지의 길 안내를 해야 될테니까.” “나도 목숨을 내놓았소.” 전택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떠올랐다. “승자(勝者)의 세상이요, 승자로 죽으면 이름이라도 아름답게 남을 테니까 말씀이오.” 전택은 삼현성에서 대야성까지의 길 안내를 맡은 것이다. 제각기 농민 차림을 한 다섯명이 사택을 나갔을 때는 오후 유시(6시)무렵이다. 그들은 밤을 세워서 삼현성으로 간 후에 다시 전택은 진궁에게 붙여줄 둘을 데리고 대야성까지 가야만 한다.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계백이 마룻방으로 들어섰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몸을 돌린 계백이 문 앞에 서 있는 고화를 보았다. 시선을 받은 고화가 입을 열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무슨 말인가?” “신라땅으로 말씀입니다.” “준비가 되면 떠나야지.” 그때 고화가 한발짝 다가섰다. “아버지를 만나시겠지요?” “당연하지. 내가 그대 아버님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까.” “제가 급벌찬한테서 다 들었습니다.” 고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물기에 젖은 두눈이 반짝이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면 제 편지를 전해드릴 수 있습니까?” “전해주지.”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전해주겠다.” “그럼 떠나시기 전에 편지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그리고 이번 일이 성공하면 네 부친은 가야국 호족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되실 것이다.” 고화가 시선을 내린채 입을 다물었지만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벼슬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아니야. 네 부친은 정당한 권리를 찾으시려는 것이니까.” “……” “너를 종으로 산 인연으로 일이 이렇게 엮였지만 아직 마음이 놓이지는 않아.” “……” “네 부친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지도 아직 알 수가 없으니까.” 계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나도 최소한의 병력으로 네 부친한테 가는 거야. 네 부친한테 내 목숨을 맡기고 가는 셈이다.” 고화가 머리를 들었지만 계백은 몸을 돌린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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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2 21:18

80. 꼬막 - 고막 혹은 꼬막…'작은 집에 사는 것'

조선조 <재물보(才物譜)>에 ‘호남 사람들이 고막이라 칭한다’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고막(庫莫)이란 말이 나온다. 꼬막을 와룡자(瓦龍子)라고도 한다. 이는 중국과 한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데 기와지붕처럼 꼬막의 껍데기를 보고 지은 이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어로는 복로(伏老), 괴합(魁蛤) 등으로 불린다. <자산어보>에 ‘살이 노랗고 맛이 달다’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라도의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매패류에 속한다. 껍데기 길이 약 5㎝, 높이 약 4㎝, 나비 약 3.5㎝로 피조개나 새꼬막보다 크기가 작다. 껍데기는 사각형에 가깝고 매우 두꺼우며 각피에 벨벳 모양의 털이 없다. 껍데기 표면에 17~18줄의 굵은 방사륵(放射肋)이 있다. 방사륵에는 작은 알갱이처럼 생긴 결절이 각정부터 있어 배 가장자리 쪽으로 갈수록 굵고 거리가 떨어져 뚜렷하게 보인다. 인대(靭帶)는 검은색으로 모가 나 있으며 나비가 넓기 때문에 양 껍데기의 각정부가 약 5㎜ 정도 떨어져 있다. 껍데기는 흰색이고 각피는 회백색이며 살은 붉은 편이다. 우리말 ‘고막’과 ‘꼬막’은 같은 말로 ‘작은 조개’를 뜻한다. 고막과 꼬막에 쓰이는 ‘고’와 ‘꼬’는 ‘고맹이’, ‘꼬맹이’ 같이 구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꼬’는 ‘꼬마’, ‘꼬투리’처럼 작은 사물을 지칭하는 접두어다. ‘막’도 작은 공간을 나타내는 ‘오막’, ‘오두막’, ‘움막’ 등에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고막 혹은 꼬막은 ‘작은 집에 사는 것’이란 의미로 기와지붕처럼 생긴 꼬막의 껍데기를 연상하면 쉽게 그 연원을 생각할 수 있다. 꼬막에는 새꼬막, 참꼬막, 피조개 3가지가 있는데 모두 돌조갯과에 속한다. 새꼬막은 참꼬막보다 적고 털은 약간 있고, 주름은 30여 개며 살은 분홍색이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여 똥꼬막이라고도 한다. 참꼬막은 새꼬막보다 맛이 좋아 제사꼬막이라고도 하며 털은 없고 주름은 20여개이며 속살은 검붉은 색이다. 피꼬막은 혈색소가 헤모글로빈으로 되어 있어 피가 붉어 피조개라 하며 피를 직접 먹기도 한다. 털이 많고 주름은 4여 개다. 속살은 핏빛이며 값이 비싸 한때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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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2 21:18

삼부자의 기자 생활 100년 글자취

아버지와 두 아들의 기자 생활 100년을 기념하는 책이 나왔다. <청언백년(淸言百年)- ‘3부자 記者’ 100년의 글 자취>라는 제목의 이 책은 박규덕(1935~1998) 전 전북일보 주필, 박종권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종률 CBS 논설실장 삼부자가 쓴 칼럼과 논평을 발췌해 엮었다. 언론인으로 활동한 삼부자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접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해석한 글이 실려있다. 삼부자는 모두 기자로 출발해 논설위원을 거쳤다. 언론인의 길을 함께 걸었던 이들에게는 올곧은 저널리즘 정신이 관통한다. 고(故) 박규덕 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군(軍)을 ‘가시가 많아 울타리로 제격인 탱자나무’에 비유하며 군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큰아들인 박종권 씨는 한국기자협회 수석부회장으로 공정 언론을 구현하는 데 노력했고, 작은 아들인 박종률 씨는 한국기자협회 초대 직선 회장에 당선된 뒤 연임하며 저널리즘 복원에 힘썼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추천사를 통해 “깨끗한 말과 글인 ‘청언(淸言)’을 국민에게 전하려는 삼부자 기자의 고통과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들과 함께 격동의 대한민국 반세기를 찬찬히 뒤돌아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 박규덕 씨는 1957년 전북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이래 전북일보에서만 40여 년을 몸담으며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을 지낸 향토 언론인이다. 박종권 씨는 1986년 중앙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중앙엔터테인먼트앤드 스포츠 대표이사, 일간스포츠 편집인,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쳤다. 현재 내일신문과 아주경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박종률 씨는 1992년 CBS 기자로 입사한 뒤 아침 종합뉴스 앵커,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CBS 논설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2.22 21:18

[동네책방서 놀자] 시인 만나고 책 이야기하고 음악 듣고 커피 마시고…

최근 몇 년째 동네 책방 열풍이 거세다. 전주도 잘 익은 언어들, 책방 토닥, 살림책방, 유월의서점, 북스포즈, 책방 같이(:가치), 에이커 등 개성 다른 작은 서점이 골목을 점령하고 있다. 오는 24일 새로 문 여는 L의 서재는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심야 문학서점이다. 전주 효자도서관 인근의 카페 알마 마테르 안에 둥지를 튼 L의 서재는 시와 소설, 에세이만을 다룬다. 베스트셀러에 편승하기보다는 일반서점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책과 작가 소개 등에 집중한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운영자 L(이재규 씨)은 밤에만 서점에 나온다. 그는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퇴근을 하고 밤늦게 책을 읽기 위해, 또는 퇴근 후 여유 시간을 인문학적으로 즐기기 위해 서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지금 읽으면 좋을 시집과 소설을 골라주고 책에 관한 소감을 나눈다. 낮에도 서점 문을 열고 책을 팔지만 자타공인 다독가로서 북 큐레이터를 자청한 L과 함께하는 책 이야기가 이 서점만의 특색이다. L의 서재는 오는 24일 오후 4시 30분 개점을 기념해 한국문학에서 개성적인 목소리로 유명한 배수아 작가를 초청한다. 그의 신작 단편 <뱀과 물>을 작가가 낭독극으로 들려주는 특별한 시간이다. 배 작가는 창작과 번역 양쪽에서 열혈 팬을 가졌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번역돼 미국에서 연달아 출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음료 포함 참가비(1만 원). 3월 23일은 김이듬 시인이 온다. 지난해 6월 전주 금암동 전북대 병원 맞은편에 자리를 튼 책방 놀지가 매일 하는 것. 놀 궁리다. 놀지는 책방과 지식을 뜻하는 단어인 Knowledge+지(知)의 합성어다. 전북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5명이 의기투합해 마련한 동네책방이자, 커피가게이자, 아시아문화를 탐구하는 연구소다. 연구원들의 취향 덕분인지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판매하고, 직접 책을 읽고 느낀 소감과 설명을 함께 전시한다. 커피와 맥주, 와인 등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이곳은 눈과 입, 귀가 함께 즐거운 공간이다. 손으로 넘겨보던 시를 귀로 읽어보는 시 낭독회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해 함께 듣는 밤의 음감회가 매달 열리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3월 7일 오후 7시 30분 열리는 시 낭독회에는 이희중 시인이 귀한 시간을 냈다. 지난해 15년 만에 세 번째 시집<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문학동네)를 낸 그가 신간에 수록된 시들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지난달에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인 김헌수 씨 등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낭독자로 나서 호평을 받았다. 도서음료 포함 참가비 1만 5000원. 3월 3일 오후 8시부터 열리는 밤의 음감회는 책방에서 나눠주는 엽서에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내면 매니저가 틀어준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나의 명곡 리스트를 공유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라는 설명이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2.22 21:18

[불멸의 백제] (35) 2장 대야성 ⑭

계백이 옷만 갈아입고 전택과 함께 남방 방성(方城)인 고산성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은 해시(10시) 무렵이다. 방령 윤충이 청 안에서 계백과 전택을 맞았는데 오늘도 방좌 연신이 동석했다.“나도 오늘 오후에 대왕께서 보내신 전령으로부터 내막을 들었어.”윤충이 계백을 맞으면서 말했다.“그런데 신라인을 직접 데려오다니 일이 빨리 진행되는구나.”윤충의 시선이 전택에게 옮겨졌다. 그때 전택이 두손으로 청 바닥을 짚고 절을 했다.“신라 삼현성 보군대장 급벌찬 전택입니다.”시선을 든 전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말을 이었다.“신라 관직을 대기가 부끄럽습니다.”“알아.”윤충이 담담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그대의 가슴이 복잡하겠지. 반역이냐 또는 내가 사내의 길로 바로 가는 것이냐, 하고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예, 목숨이 아깝지는 않으나 헛되게 버리지는 않겠습니다.”전택이 눈을 부릅뜨고 윤충을 보았다.“전(前) 삼현성주 진궁도 소인과 같습니다.”윤충의 시선이 계백에게로 옮겨졌다.“나솔, 나도 그대에게 맡기겠다. 허나 신중을 기해야 될 것이다.”그때 연신이 나섰다.“그래서 여기 있는 급벌찬과 진궁에게 각각 우리측 연락역을 배치시키는 것이 낫겠네.”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대아찬 진궁은 지금 대야성의 마장 관리인이 되어 대야성에 있습니다.”“어허.”탄성을 뱉은 윤충이 연신과 마주보더니 전택에게 물었다.“그게 정말인가?”“예, 방령. 그래서 제가 달려온 것입니다.”“그렇다면 곧장 대야성을 찌를 수도 있겠구나.”윤충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삼현성은 놔두고 뱀의 머리부터 떼는 것이다.”“제가 대야성으로 가겠습니다.”계백이 말을 이었다.“전택과 함께 삼현성 군사로 위장하고 대야성까지 가는 것입니다.”“전령의 말을 들으니 3백 군사만 데리고 가겠다던데 가능할까?”“바로 뒤만 받쳐 주십시오.”윤충과 연신이 다시 얼굴을 마주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아직도 전택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전택을 믿더라도 만일 신라군에게 잡히면 실토할 수밖에 없다. 그때 전택이 입을 열었다.“저에게 연락관 둘을 붙여 주시지요. 하나는 제 옆에 남고 또 하나는 연락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둘은 제 고향 농장에서 온 하인인 줄 알 것입니다.”“그렇다면 진궁에게도 둘을 보내야겠군.”“제가 이번에 그 둘을 데리고 가지요.”전택이 말을 이었다.“삼현성을 거쳐 대야성까지 들어가 대아찬을 만날 테니까요.”“그럼 내일 떠날 때 넷을 붙여주지.”윤충도 결단이 빠른 성품이다. 머리를 끄덕인 윤충이 수족 같은 방좌 연신에게 지시했다.“덕솔, 진무나 극우 중에서 넷을 추려 내일 나솔에게 딸려 보내도록.”“예, 방령.”“대가야가 백제에 귀속되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게야.”윤충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전택을 보았다.“가야 토호 중에서 김유신만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는 재주를 부려 김춘추에게 여동생을 주는 바람에 출신을 했지?”억지 소리지만 설득력은 있다. 전택이 어깨만 부풀렸고 윤충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대백제는 한때 대성(大性)이 권세를 누렸지만 지금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신하들을 관리한다. 그대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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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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