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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자연관(自然觀) - 장세균

우리를 둘러싼 자연(自然)을 어떻게 보느냐가 자연관(自然觀)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존재이다.그리고 환경문제와 결부해서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의 자연관은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자연을 보는 자연관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유태교적 자연관 또는 서구적 자연관이라고 하고 둘째는 동양적 자연관 또는 중국인적 자연관이라고도 한다. 유태교적 자연관의 모체는 성경에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며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지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이 말뜻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니 다른 모든 존재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자연은 인간보다는 하위급의 존재이며 인간 지배의 대상이라는 뜻을 암시한다. 그래서 유태교적 자연관 또는 서구적 자연관은 인간 중심적 자연관이며 인본주의(人本主義)적이라고 하는것이다.린, 회이트(Lynn White)라는 사람은 그의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원인"이라는 책에서 서양의 신학적 전통이 환경위기의 근원이라고 까지 말한바 있다.동양적 자연관 또는 중국인적 자연관에는 중국 도교의 철학이 숨어있다.중국의 노자(老子)는 인간이 땅을 따르고, 땅이 하늘을 따르고 하늘이 도(道 )를 따르고 도(道)가 자연을 이룬다고 했다. 자연의 개념을 이처럼 높이 격상시켰다. 노자는 자연을 인간지배나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귀속해야할 이상적 상태로 보았고 자연과 인간을 인위적으로 구분치 않고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했다.노자를 이어받은 장자(莊子)는 자연은 크고 작은것이 없으며 유용(有用) 무용(無用)이 있을수 없다고 했다. 유용, 무용이라는것은 오로지 인간의 입장에서 본 가치관일뿐 자연은 그대로 자연일뿐이라는 것이다. 농사를 중요시했던 농경민족은 자연을 지배대상이 아닌 화합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생존 기술은 자연파괴가 아닌 자연과의 합리적 조화를 의미한다 할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29 23:02

[오목대] 배 아파하는 사회 - 백성일

진보 성향의 김승환교육감이 된 것에 배 아파하는 사람이 많다.그가 추진하는 일련의 개혁 정책이 성미에 안 맞아서그럴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무명 인사가 하루 아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기 때문이다.김교육감은 23년간 전북대 법대 교수를 지냈고 평화와 인권연대 대표로도 활동했지만 지역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사였다.일반에게는 KBS 전주총국에서 방송하는 시사포커스 사회자 정도로 알려졌다.익산 중앙초등학교를 다니다 주산 실력이 뛰어나 광주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온 후 건국대와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었지만 별다른 학맥과 지역 기반이 약한 조용한 사람이었다.지역에서 공인으로 활동하다보면 출신 고등학교를 무척 따진다.특정학교를 나왔느냐 여부에 따라 마치 주류 비주류로 편이 갈리는 것처럼 말이다.익산이 고향인데도 별로 치지 않고 중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그리고 대학도 서울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북 오피니언 리더들은 그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선거 초반부터 단박에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역전승을 거뒀다.결국 보수 성향의 네 후보 난립이 승인이었다.MB 특권교육과 줄세우기 교육정책 그리고 전임 교육감의 총체적인 부실 운영이 그를 교육감으로 만들었다.시운을 탄 것일까 아니면 억세게 운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여기서 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겼다.그렇게 권한 많은 교육감 자리를 무명의 대학교수가 앉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도내서는 국회의원 지사 교육감 도의회의장 시장 군수 언론사 사주 전북은행장 상공회의소 회장 애향운동본부총재 등이 실력자로 꼽힌다.물론 국가 임명직인 법원장 검사장 국정원지부장 기무부대장 경찰청장 등도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다.지방자치가 되면서 주류는 그래도 선출직이다.특정 학교 출신들이 선출직 기관장을 맡으면 당연하고 김교육감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수히 태클이 들어 온다.보이지 않게 괴롭힘을 당한다.도의회의장이나 정읍· 남원시장 임실군수도 마찬가지다.전북이 못사는 원인은 배 아파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배고픈 사람은 잘 살 수 있어도 배 아픈 사람은 못 사는 법이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28 23:02

[오목대] 일자리 만들기 - 이경재

"영혼이라도 팔아서 취직 하고 싶다"는 말은 일자리의 소중함을 대변하는 명제가 됐다. 도서관에서 대학생한테 들었다는 이 말은 김완주 지사가 선거 때부터 줄곧 썼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경선 때부터 이 명제를 즐겨 썼다. '원전'(原典)이 누구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가릴 방법은 없어 보인다.자치단체마다 일자리 만들기가 최대 화두다. 김완주 지사가 민선 5기를 시작하면서 "4년 동안 4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글쎄…. 도청의 조직도 일자리 위주로 확 바꿔버렸다. 민생일자리 본부장(부이사관)-일자리창출정책관(서기관)-일자리기획· 일자리컨설팅· 일자리평가 담당(사무관) 체제를 짰다.그뿐인가. 기존의 여성· 노인일자리 담당 외에 각 국에 환경·문화·농식품·복지·건설·소방일자리 담당을 만들었다. 일자리 기구가 아니면 쪽도 펴지 못하게 생겼다.도청은 일선 시군과는 달리 기획· 정책· 조정기능이 주다. 조직이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면 역효과 우려가 매우 높다. 실적 보고 때문에 몇달 근무하고 말 일자리,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할 것이란 염려도 나온다. 일자리와 관련 없는 부서도 일자리 만들기에 치중해야 되기 때문에 본업 아닌 잡무만 늘어날 수도 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일자리 실적에 포함시키는 행위들도 나타날 것이다.일자리는 당연히 만들어야 하지만 행정이 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다. 행정은 이런 기능이나 해야 옳다. 기업이 들어올 때 농지전용· 형질변경 기간을 최소화했는지, 민원이 사흘만에 끝났는 데도 규정상 처리기간 7일을 고집하며 나흘이나 서랍에 넣어두는 행위, 준비서류와 절차, 소요기간 등 요건을 소상히 안내해줬는지, 생략해도 좋은 절차·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을 개선했는지, 부서간 이기주의 때문에 일을 더디게 만든 행위는 없었는지 등을 살피는 게 일자리 만들기를 돕는 길이다.일자리 때문에 일거리만 늘어 개고생해선 안된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도 성과가 없다면 이처럼 비생산적인 행정도 없을 것이다. '개 뼈다귀에 은(銀) 올린다'는 속담이 있다. 전시적으로 치장만 했지 효과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일자리 조직개편이 꼭 이런 속담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경재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27 23:02

[오목대] 비교의식 - 장세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한강의 기적을 모른다. 그들이 태어날 때 그들의 입에는 이미, 모유나 분유가 물려있었고 조금 커서는 수돗물을 먹고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했기에 흉년의 보리고개 의미를 알수가 없다.독립 기념관에는 한국의 경제 발전상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각 시대별로 그 당시 일반 주택의 부엌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1950년대의 나무로 불때서 밥을 짓던 재래식 부엌, 60년대의 연탄부엌,70년대의 어설픈 입식 부엌등을 나열해 놓았다.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1950년대 한국 부엌을 보고 혹시, 월남 사람들의 부엌이 아니냐고 묻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한마디로 가난의 시절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의 어두웠던 현대사에 대한 가르침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게큼 만든 교육의 잘못도 있다.2009년 이탈리아 라퀄라에서 열렸던 G8 정상회의 폐막 기자 회견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리카 모든 나라들이 경제 상장을 위해 본받아야할 나라는 한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여서 "케냐는 자기 선친이 미국에 유학을 왔을 당시인 195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과 국내 총생산이 한국보다 높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국은 매우 발전하고 케냐는 여전히 심각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칭찬한 한국의 경제발전이 한국인에게 그만큼의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한국인은 지금 행복한가. 한국인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 전세계 부유층 인구의 상위 11%, 즉 약 60억 인구중, 상위 6억 6천만 인구속에 포함된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경제 개발국가중에 자살률이 제일 많은 자살 금메달 국가이다.한해 1만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나라이다.진정으로 살기 어려웠던 1940년대, 50년대에는 자살은 극히 드문 희귀현상 이었다. 한국인의 불행은 남들과 자신을 수시로 비교하는데서 오는 심리적 갈등에서 이다. 이웃에게 지지 않으려는 비교의식이 만족을 모르고 현재를 불만케 한다. 이런 비교 의식이 경제발전의 추동력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아킬레스 건이 되고 있다./장세균 논설위원

  • 경제일반
  • 전북일보
  • 2010.07.26 23:02

[오목대] 시장의 손톱손질 - 조상진

시인 서정주는 치매 걸린 아내(方玉淑)의 손톱 발톱을 10년 넘게 깎아주며 수발했다. 그리고 어디든 손을 잡고 다녔다. 밥도 먼저 푼 고봉밥을 아내 앞에 놓아주고 나중에 남은 밥은 자신이 먹었다. 부인이 2000년 10월 먼저 세상을 뜨자 시인은 곡기를 끊었다. 맥주로 연명하다 두달 뒤인 12월 부인의 뒤를 따랐다. 그때 나이 85세였다.시인은 젊은 시절 부인의 속을 무던히 태웠던듯 하다. "나 바람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내 아내)도 그중 하나다.그가 임종했을 때 그의 옆에는 염주와 돋보기, 필묵과 함께 부인의 손톱을 깎아주던 손톱깎기가 놓여 있었다.그에게 손톱, 그 중에서도 조반월(爪半月·손톱속 반달)은 신체중 가장 투명한 부분으로 성적 만족이나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에는 유난히 손톱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자화상), 손톱에는 모싯물이 들어 있었지(기억), 손톱이 龜甲처럼 두터워 가는 것이 기쁘구나(엽서), 낯선 소녀의 손톱속의 반달을 보기 위해(내가 타는 기차), 손톱의 반달 좋은 처녀 하나쯤을(格浦雨中),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이쁘게 깎아주자(늙은 사내의 詩) 등이 그것이다.손톱은 보통 분홍빛으로 갈라짐이 없고 색깔이 균일해야 정상적이다. 모양이나 색깔이 변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또 건강한 사람의 경우 엄지의 반달모양이 손톱의 1/4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은 여성들 사이에 손톱 모양을 다듬고 색을 입히는 '네일케어'가 큰 인기다.손톱은 개인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한달에 2-4.5㎜씩 자란다. 따라서 한달에 한 두차례 반드시 깎아줘야 한다. 6개월 정도가 되면 완전히 교체된다.그런데 이러한 손톱손질이 최근 구설수에 올랐다. 민주당 전주 완산갑지구당 당직자들이 전주교도소 이전 문제로 송하진 전주시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송 시장이 손톱을 깎았다는 것이다. 신건 의원측은 자신을 무시한 결례라면서 발끈하고 나섰다.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6·2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생긴 앙금이 재연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간 정치적 갈등이 손톱 손질로 옮겨 붙은 것 같아 씁쓸하다.

  • 정치일반
  • 전북일보
  • 2010.07.23 23:02

[오목대] 사치병 - 장세균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0일 한국이 최고의 고가 명품 소비시장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다. 그리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경우, 고가 브랜드 제품 소비에 따른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불과 5%에 불과했다고 한다.명품 브랜드 소비에 대해서 일본인의 40%가, 중국인의 38%, 미국인의 27%가 나쁜 행위라고 생각한 반면 한국인의 경우, 22%만이 나쁜 행위로 간주했다고 한다. 비싼 명품 구입에 따른 도덕의식이 다른나라 사람들에 비해 약함을 드러냈다. 경기가 나쁠수록 역으로 명품 고가 상품이 더 잘팔리는것도 한국시장의 특징이기도 하다.한국인의 명품 브랜드에의 집착 현상은 여려 원인이 있겠지만 부(富)의 과시욕과 신분 상승에의 욕구 표현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다 과거 사치의식의 연장이기도 할것이다. 중종실록(中宗實錄)도 그 당시 사대부(士大夫)들이 초구(貂?)나 사라(紗羅)로 몸치장을 하고 옥개(屋蓋)없는 가마는 창피하다 하여 타지 않으려는 성향마져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여자들 역시도 머리 사치가 심하여 요란스런 가발을 못하도록 금령까지 내렸다고도 한다. 정종실록(正宗實錄)에 의하면 손에 들고 다니는 부채가 배 8,9필 값과 맞먹는 중국의 명나라 것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인조(仁祖)때는 사치가 어찌 심했던지 심지어 가마꾼마저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도 않는 금단(錦緞)을 입었다고 한다.조선 사회에서는 결혼 적령기를 놓친 선비의 딸들이 항상 큰 사회 문제였다고 하는데 지방의 목민관은 이 혼기(婚期)를 놓친 처녀 총각들을 시집 장가를 보내주는 일도 그 임무의 하나였다. 그런데 처녀 총각들이 결혼 적령기를 놓치는 큰 이유는 결혼 예물로 중국에서 수입하는 사치스런 당물(唐物)을 사용하는 관례를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사회 한편에서는 선비정신이 살아있어 청빈(淸貧) 생활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반대 현상도 있었던 것이다.사치병은 최고의 상품만을 상품으로 인정하는 심리이다. 이런 심리에 편승해서 최고를 나타내는 외래어가 우리 주변에 범람한다. 예를 든다면 로열,골드,슈퍼, 디럭스, 프레지던트이다. 명품 브랜드 사용으로 인한 우월감만이 행복감은 아닐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22 23:02

[오목대] 진짜배기 완장 - 백성일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아."1980년대 초 나온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서 술집 작부인 부월이가 주인공인 저수지 감시원 임종술에게 완장의 덧 없음을 이렇게 설명한다.세상사를 완장 하나로 깊이 있게 조명한 대목은 놀랄만 하다.완장은 명예욕의 상징으로 본성까지도 드러난다.완장 차면 괜히 폼 잡고 싶고 어디 가서 대접 받고 싶고 앞자리에 앉고 싶어진다.하빠리 완장이나 진짜배기 완장이나 완장은 완장이다.하빠리 완장 하나만 차도 기세 등등해 위세부리고 폼잡고 산다.종술이가 찬 완장은 하빠리 완장이었는데도 그 위세에 도취돼 나중에는 이성도 잃었다.제 위에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촌놈 근성이 나타났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며 날뛰기만 했다.예나 지금이나 완장만 차면 올챙이 적을 잊고 딴 생각들만 한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실세그룹이 형성된다.MB정권도 예외가 아니다.포항과 영덕 출신 공직자들이 영포목우회를 조직해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이다.계통을 무시하고 끼리끼리 뭉쳐서 권력을 나눠 먹었다.이들은 종술이 마냥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총리실 전 공직윤리지원관은 떠도는 MB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해서 올린 민간인을 잡아다가 영장 없이 뒤지고 은행에 압력을 가해 지분을 포기하고 대표이사직을 사직케 했다.지금 중앙이나 지방이나 완장 차고 거들먹 거리는 세력이 있다. 배지 찬 일부 지방의원도 이에 속한다. 목에다 잔뜩 힘이나 주고 인사나 이권개입 창구 노릇을 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북도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전주시장 때부터 김완주지사를 보좌해온 한 측근이 자기 사람들을 전진 배치 해두고 있다. 청내에서는 그의 영향력을 감안해 고위직까지도 그의 눈치를 살필 정도라고 한다.도청내 힘 있는 각 실 과 담당 자리에 영포목우회처럼 그와 가까운 동향및 고등학교 동문들로 채워져 있다.부월이의 말처럼 진짜배기 완장 찬 사람은 눈에 뵈지도 않는데 그의 모습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21 23:02

[오목대] 소리가 있는 퇴임식 - 이경재

며칠 전 전주 썬플라워 웨딩홀. 정년퇴임식이 열린 이 곳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무슨 전달식 등의 헐렁한 의식이 진행된 뒤엔 단가와 아리랑 곡조가 어울어진 흥겨운 소리판이 벌어졌다. 여자 명창은 전라도 사투리로 분위기를 띄운 뒤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단가 '사철가'와 '쑥대머리'를 불렀다. 하객들이 추임새를 넣지 않으면 혼도 내고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흥을 돋궜다.그런 뒤엔 '진도아리랑'을 불러 하객들을 소리판에 끌어들였다. 하객들은 자연스럽게 아리랑 가락에 맞춰 박수치고 명창과 함께 노래하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소리판은 명창과 150여명의 하객, 정년퇴임하는 주인공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단가는 본격적인 창을 하기에 앞서 부르는 짧은 노래다. 목을 푸는 예비적 기능도 하지만 청중을 소리판에 주체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단순히 남의 놀이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 사설의 이면에는 인생무상과 풍류적 정서가 깔려있다. 이런 걸 보면 정년퇴임식장의 메뉴로 딱 좋다. 퇴임식장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든 건 탁월한 식견이다.또 하나는 맛보기일 망정 소리의 고장다운 걸 보여준 것도 효과다. 이 자리에는 지역 인사들 외에도 마산 출신으로서 전북에서 행정부지사를 지낸 이성열 대한지적공사 사장과 전국의 각 지역본부장들이 참석해 있었다. 이들은 "소리가 있는 퇴임식은 처음"이라며 "소리의 고장의 참 멋을 느낄 수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고 한다.퇴임식이 끝난 뒤 각 지역본부장들은 본사가 들어설 전주혁신도시 예정지와 새만금을 시찰했다. 동료의 이색 퇴임식도 구경하고 본사 신축부지도 둘러보고 전국적 이슈인 새만금도 둘러봤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주은 격'이다.정년퇴임의 주인공은 권영길 지적공사전북본부장이다. 익산부시장과 두차례 전북도 건설교통국장을 지내고 노조 추천으로 공사에 임용됐다. 퇴임식장에 소리판을 벌인 것도 그다. 자비를 들였다. 마음 먹기에 따라선 일석삼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좋은 사례여서 소개했다. 매년 퇴임식이 열린다. 이제는 정년퇴임식 하면 연상되는 엄숙주의와 고답적인 의전을 깨뜨려보자./이경재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20 23:02

[오목대] 화란(和蘭) - 장세균

네덜란드는 이번 남아공 월드 대회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네덜란드는 누구나 인정하듯 축구 강국이다. 온 국민이 축구의 열성 팬이다. 바다 수면이 육지보다 높아 항상 물과의 전쟁을 해야만 했던 그들은 축구가 그들 국민성에 부합되었는지도 모른다.바다와 싸워 이긴 그들의 저력이 오늘의 네덜란드 축구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 가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지구는 하느님이 만드셨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태고적부터 네덜란드인은 바다와 싸우면서 바다를 막고 간척을 하여 오늘의 네덜란드를 만든것이다. 그들의 진취적 기상은 세계로 뻗어나갔다.네덜란드를 우리는 화란(和蘭)이라고 불렀다. 16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홀랜드'란 이름은 없었고 '바다보다 낮은 지방'이라는 뜻의 '네덜랜즈'였고 홀랜드는 네덜랜즈 북부의 일개 주(州)였다고 한다. 네덜란드 즉, 화란과 우리와의 인연은 상당히 깊다.화란인이 우리 한국에 최초로 표류해 온사람이 '얀 냔세 웰테프레'이다. 그는 인조 2년, 1628년에 표류한것이었다. 그의 이름이 '얀'이기에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 '연(淵)'으로 바꾸어 '박연'이 된것이다. 박연은 추운 겨울에도 화란의 풍습대로 솜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며 한국에 정착하여 외인부대로써 병자호란에 참전하기도 했다.한국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딸 둘을 낳고 살았다. 박연이 표류하고 26년이 지났을때 화란 상인인, 하멜 일행이 일본 나카사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때 통역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박연이었다. 박연도 하멜 일행을 만났을때는 자기 모국어인 화란어가 잘 나오지 않아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근 30년동안 화란말을 사용치 않았으니 자기 모국어를 잃어 버렸던 것이다.하멜 일행은 한국에서 어렵게 생활을 했으며 그의 일행중 8명이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화란으로 돌아갔다. 화란에서 하멜은 그가 겪은 조선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 조선을 처음 화란에 알린 것이다. 2002년 월드 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올린 사람이 화란인 히딩크였다. 화란은 유럽에서 영어 독어 불어가 가장 편하게 통하는 나라라고 도 한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19 23:02

[오목대] 가람시조마을 - 조상진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난초4)바람이 소슬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별)가람 이병기(1891-1968)의 주옥같은 시조다. 초중고 교과서에 실리거나 가곡 등으로 작곡돼 널리 애송·애창되고 있다.국문학계의 큰 별로 존경받는 가람은 3복(福)을 가졌다고 자처했다. 술복과 난초복, 제자복이 그것이다. 그는 청탁(淸濁)을 불문했고 말년에 뇌일혈로 10년 동안 쓰러져 누운 것도 술 때문이었다. 또 그는 난초를 무척 사랑했고 수많은 난초를 길렀다. 난초에 관한 명수필과 시조도 다수 남겼다. 제자복 역시 많아서 국문학계의 쟁쟁한 학자들과 시인들을 키워냈다. 선비다운 풍류와 인간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하지만 진짜 업적은 따로 있다. 가람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는데 앞장섰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또 묻혀있던 우리의 고전작품을 발굴해 냈으며 판소리 연구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현대시조 증흥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이런 가람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생가(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가 무너지고 깨져 흡사 폐가처럼 되었다고 한다. 한쪽 담장이 무너지고 건물 곳곳에는 거미줄과 곤충 사체가 즐비하다는 것이다. 뒷뜰 대나무숲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다고 한다.익산시는 5년전 이곳에 가람문학관을 건립하고 이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산타령만 할뿐 방치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이곳을 '가람시조마을'로 확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일대 2만㎡의 부지에 130억 원을 들여 시조문학관 건립은 물론 체험관, 테마길 조성 등 한국시조문학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제발 이번에는 헛약속이 아니었으면 싶다. 자랑스런 인물을 번번이 욕되게 해서야 되겠는가./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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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6 23:02

[오목대] 정신적 시계(時計) - 장세균

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생물학적 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몸이 어느때 잠자야 하고 , 먹고, 일어나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역활을 하고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을 관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환경변화는 생물학적 시계의 적응을 어렵게 만들수도 있다.이럴때, 사람은 외부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게되고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이 깨지고 만다. 문제는 사람에게는 생물학적 시계뿐만 아니라 정신적 시계도 있다는 것이다 . 현재에 살면서도 현재의 변화를 모르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의식의 초점이 고착된채 살아가는 것이다.이런 증상이 심할때는 정신적 질환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60년대나,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교포들이 그동안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지 못했을 때는 지금도 한국은 독재자 밑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도 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정신적 시계는 40년전의 과거에서 멈추어져 있는 것이다.일반인들의 정신적 시계보다도 정신적 시계가 과거 60년대나, 70년대에 고착되어 있는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투적 투쟁을 해야 하고 미국은 후진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제국주의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투쟁적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숨가쁘게 위를 향해 발전해왔다.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후 대통령 단임제 실시, 그리고 지방자치제 실시, 전국 공무원 노조 인정 ,다양한 시민단체 등장등 민주주의에 대한 하드웨어는 그런대로 갖추어진 셈인것이다. 이제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보완 차원의 소프트 웨어적 개선작업이 남었을뿐이다.개선이나 개혁이 필요할뿐 전투적 혁명은 구시대 작품이다.20세기말 세계 그리고 지금도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속에 있다. 지금은 급변하는 세계에 어떻게 적응할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때이다. 그런데도 1960년대나 1970년대식 아날로그적 정신적 시계를 들이대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일수밖에 없다. 강대국들에 에워쌓인 한반도는 과거 고착적, 정신적 시계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 정신적 시계가 요구된다./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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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23:02

[오목대] 공항(空港) - 백성일

도내에 공항이 없어 도민들이 겪는 애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외국 나갈 기회가 잦아졌지만 공항이 없어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다.남들은 다 디지털 시대에서 살지만 도민들은 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것 같다.시간 경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글로벌이니 디지털이니 하는 말들이 한낱 사치스럽다.군산공항이 있지만 미군 공항이어서 제주도만 오가는데 이용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다.공항은 밖으로 나가는 신발과 같다.전북은 공항이 없어 육지속의 섬으로 전락한지 오래다.도민들이 외국 한번 나가려면 비행기도 타기전에 파김치가 돼 버린다.4~5시간 이상씩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을 오가기 때문에 탑승 전에 이미 녹초가 돼 버린다.출국 2시간 전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하므로 잠도 못자고 꼭두 새벽에 집을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외국으로 관광 간다는 기쁨도 잠시일 뿐 개고생만 한다.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래도 시간이 있어 낫다.그러나 외국 관광객이나 바이어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전주나 도내 다른 도시를 올려고 하겠는가.전북이 뒤쳐진 원인 중 하나가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관광이나 새만금에 대한 해외 투자객 유치가 이래서 경쟁력이 없다.외국 투자자나 바이어들은 공항에서 1시간권 밖이면 쳐다 보지도 않는다.그래서 대기업 공장 주변에는 공항과 항만이 붙어 있다.그간 도가 공항 건설을 위해 애를 썼지만 남은 것은 김제공항 건설부지가 배추 밭으로 변해 있는 것 밖에 없다.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두 정권 때 김제공항을 건설했어야 옳았다.지금껏 도내에 공항이 없는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 결정적이다.그간 국회의원 지내면서 호의호식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그 때 기회를 못잡아 지금 이 모양이 꼴이 되었다.김완주지사가 새만금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은 먼저 공항문제부터 풀고 넘어가야 한다.그래야 새만금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지금까지 미군을 상대로 힘겹게 군산공항 확장이나 국제선 취항 보다는 차라리 김제공항을 건설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김제 시민들을 설득해서 공항을 건설해야 전북이 산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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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4 23:02

[오목대] 신(新) 토착비리 - 이경재

토착비리라는 말은 지역주민들이 듣기에 매우 거북한 표현이다. 지역 전체, 또는 구성원들이 마치 비리집단인 것처럼 비칠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토착비리는 없어져야 할 대상임엔 틀림 없다. 사회질서를 깨뜨리고 경제행위를 왜곡시키는 사회악이기 때문이다.과거 토착비리의 주인공들은 대개 지역 유지들이었다. 힘 깨나 쓰는 유지들이 권력과 결탁해 잇권에 개입하고 이득을 취하는 따위의 행태들을 보였다. 인허가와 공무원 인사, 공사 수주나 단속 무마 조건의 잇권 챙기기 수법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과거 전북지역에 나돌았던 '5적(賊)'이 좋은 예다.이젠 토착비리도 진화하고 있다. 민선 이후 지역의 권력이 단체장에 집중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아무리 유력한 유지라 할지라도 단체장·지방의원 선거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개 털'이나 다름 없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지역의 권력의 핵심이고, 주변 세력들이 과거 유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동에 따른 토착세력의 판도가 변환되고 있다.이런 구조적 변화를 이해 관계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새롭게 부상한 이들 권력의 핵심과 연(緣)을 맺기 위해 분주하다. 단체장은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다. 비리도 선출직과 관련한 구조적인 비리로 특화하고 있다. 이른바 '신(新) 토착비리'다. 토착비리를 없앨라치면 이들 핵심에 대한 정보와 관리가 첩경일 터이다.이런 유형의 비리가 터진다면 단체장도 그 책임을 벗기 어렵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본인만 도리질 친다고 부정되겠는가. 다산(茶山)이 강조한 목민관의 표상은 청빈과 청렴이었다. '청렴한 목민관의 행장은 이부자리에 속옷, 그리고 책 한수레쯤이면 된다'고 했던가.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형제들 조차 관저에서는 만나지 않았다.단체장·지방의원들한테 다산과 호치민의 철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캠프사람만 끼고 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신 토착세력의 특권적 행태를 부추길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깜'도 안되는 인물을 특정 자리에 앉혀 막걸리집 안주꺼리가 되고 있다. 어느 사업은 누구한테 간다는 소문도 나온다. 선거가 끝나면 비리의 시작이다./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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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3 23:02

[오목대] 백두산 화산과 발해 - 장세균

백두산은 애국가에도 나오는 우리민족의 성산(聖山)이자 만주 여진족들에게도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중국 청나라때는 백두산 근처에 못들어가도록 금족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요즈음 백두산의 지진 빈도수가 급격히 늘고 마그마 상승으로 분화구 산체가 부풀어 올라 머지 않은 장래에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제기하고도 있다.화산 폭발의 재앙은 실로 엄청나다. 기원후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폼페이 도시가 하루 아침에 잿더미화 된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과거 10세기에 일어났던 백두산의 화산 폭발은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의 50배 규모였다고 한다.이런 엄청난 화산 폭발의 흔적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일본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등 일본의 도호쿠 지방이나 핫코다 산지와 같은 산악지대 또는 삿뽀로 ,하코다테, 무카와 등 홋카이도 광활한 지역 어디에서도 백두산 화산재가 발견된다고 한다.역사학게 정설로는 발해는 926년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발해의 멸망 원인을 백두산 화산 폭발과 연관시키는 새로운 학설도 있다.일본에서 최초로 백두산, 도마코마이 화산재를 발견했던 도쿄 도립 대학의 마치다는 1992년에 "화산의 분화와 발해의 쇠망"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바 있다. 강연의 서두는 소원주씨가 저술한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이란 책속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화산의 분화와 발해의 쇠망이라는 오늘의 주제를 보면 마치 화산 분화가 발해 멸망의 원인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것 뿐입니다. 진실의 역사는 무미건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수년이 지나서 오늘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그 옛날 발해 한복판에 위치했던 백두산의 약 1000년전 분화는 대단한 규모의 것으로 인간과 그 주변 자연환경에 초래한 영향이 매우 컸다는것은 분명합니다.그것과 발해의 멸망과의 관계에 대해 결론을 얻기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백두산 화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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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2 23:02

[오목대] 가인(街人) 연수관 - 조상진

정부 수립 초기, 카리스마가 강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법부를 마땅치 않아했다. 판결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헌법을 내세우며 원칙을 고수하는 김병로 대법원장이 대표적이었다.그래서 이 대통령은 법조계 인사들을 만날 때면 "헌법 잘 계시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깎듯이 대하고 어려워 했다고 한다.9년 4개월 동안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8-1964)는 우리나라 사법의 뼈대를 세운 분이다. 그가 정치 권력으로 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고 추앙받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항일운동 경력이다. 가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순창에서 최익현의 의병에 가담했다. 또 100여 건 이상의 항일변론을 맡았다. 6·10 만세운동, 백두산 펑펑고을 화전민사건, 대구 학생 비밀결사, 광주학생사건, 안창호 변론 등이 그것이다. 그러기에 이승만 등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둘째는 해박한 법률지식이다. 가인은 경성전수학교(서울대 법대 전신)에서 유일한 조선인 교원으로 그의 명강의는 유명했다. 명쾌한 논리와 방대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 법전편찬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세째는 강직한 성품과 청렴한 생활이다. 공사(公私) 구분이 추상같았고 많은 일화를 남겼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법원 직원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요구했다. 1957년 이임사에서 "전 사법 종사자에게 굶어 죽는 것을 영광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명예롭기 때문이다"고 말할 정도였다.대법원이 이러한 가인을 기려 그의 고향인 순창군 복흥면 답동리에 '가인연수관'을 세웠다. 심적산과 추월산의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담양호와 가인이 어릴 적 공부하던 낙덕정을 굽아보는 곳이다.116억 원을 들여 1년 5개월만에 완공한 이 연수관은 8만303㎡(2만4291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시설은 객실, 세미나실, 강의실, 천연 잔디구장 등을 갖췄다. 판사와 법원 공무원들의 단체행사, 연수, 세미나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개관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가인은 법관의 인격수양과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가인연수관이 사법종사자들의 인격수양과 휴식에 요긴하게 쓰였으면 한다./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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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9 23:02

[오목대] 아방궁 청사 - 장세균

정부가 지방 자치단체의 호화 또는 과대청사를 막기위해 신축청사의 최대면적을 제한한다고 한다.아울러 지자체 단체장의 집무실 면적기준도 제시됐다.이런 내용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속에 담겨 있다.지자체가 열악한 재정 자립도 개선은 생각지 않고 호화 청사 짓기에 열을 내고 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대표적인 예가 성남시 청사이다. 성남시는 인구가 95만명인데 새로 신축된 청사의 연면적은 무려 7만 4452 평방미터에 지하 2층에 지상 9층 건물이다. 건축비와 토지 매입비 총액이 무려 3200억원이다.이런 아방궁 같은 청사는 지난해 국정 감사때도 '한국판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지적을 받은바 있다. 사실상, 시 청사나 군 청사는 일반 시민들의 이용 빈도수가 극히 적다. 오히려 동사무소 ,즉 주민센터가 일반 시민들과 행정적으로 더 밀착되어 있는 편이다.호화 청사란 대부분,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을 좋게 할뿐 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별로 없다, 호화 청사를 짓는데 아무런 제동 역활을 못하는것이 또한 시의회, 군의회이다.그리고 의원들의 제동과 입을 막기위해 의회 청사나 의장 집무실을 호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전략적이다.지난 2008년에도 전북도의 일부 시군 청사가 행안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하여 호화청사라는 지적에 따라 교부세가 삭감되기도 했다. 행안부는 자치단체의 호화청사 운영을 방지하기 위해 교부세 산정방식을 개선하여 호화청사를 예산 낭비로 간주하고 교부세를 삭감키로 한것이다. 호화청사에 근무한다고 공무원들의 근무자세가 좋아지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官)은 높고 백성은 낮다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장신만을 조장할뿐이다. 호화청사는 국민들에게 친밀감보다는 오히려 이질감만을 줄뿐이다.호화청사를 빗대어 하는 말이 아방궁(阿房宮) 청사라고 하는데 아방궁을 진시황제가 지을때 죄수 70만명을 동원했다. 아방궁은 죄수들의 땀으로 지어 진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호화청사는 주민들의 혈세(血稅)로 지어진 것이다. 정부가 아방궁 청사건축에 제동을 건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으나 환영할만한 조치이다./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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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8 23:02

[오목대] 해수(海水) 유통 - 백성일

새만금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처럼 소개되고 있다.유토피아 인 것처럼 말이다.정말 그럴까.역대 지사들이 새만금을 희망의 땅으로 열나게 홍보한 탓이다.지도를 바꾸는 대역사인 만큼 고비 때마다 도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비전 없는 전북에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새만금은 전북의 희망이므로 장차 성공하면 우리나라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김완주지사는 취임사를 통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새만금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이순신장군의 명랑대첩까지 떠올리면서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말은 옳은 말이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준공기간을 10년 앞당겨 내년부터 해마다 국가예산 1조원씩을 쏟아 붓어야 내부개발을 마칠 수 있다.19년간 2조9천억원을 들여 33㎞를 막은 액수에 비한다면 21조는 천문학적이다.노태우·김대중 간 정치적 합의로 태동된 사업이어서 논란이 많았다.개발론자와 환경보존론자는 걸핏하면 쌍심지를 켰다.개발론자들은 솔직히 새만금을 너무 많이 팔아 먹었다.선거 때마다 지사나 국회의원 할 것 없이 새만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것처럼 새만금을 갖고 놀았다.새만금사업은 만병통치약이요 요술방망이와 같았다.걸림돌에 부딪치면 막고 품는 식으로 뚫고 나갔다.안되면 그 때마다 관제데모대를 불러 들이면 그만이었다.새만금이란 단어가 전북에서는 희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민을 우민화시키는 면도 있었다.때로는 정략적 발상에 따라 도민들을 동원 체계화 한면도 없지 않다.새만금을 도민들의 뇌리에 하나의 신앙심으로 똬리 뜰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알맹이가 없다.외화내빈격이나 다름 없다.지금까지는 바지락 양식장 사가지고 보상 받아 떼부자 된 사람이나 정치적으로 새만금을 가지고 놀아 정치적 이득을 챙긴 세력들만 득의만면하다.앞으로 내부 개발 사업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지만 김지사의 취임사에는 이같은 구체적 방안이 없다.수질개선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그간 특별법이 만들어져 내부개발이 탄력을 받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정부 의지가 없어 내부개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최근 방조제 일부를 헐어 배가 드는 통선문을 설치하려는 의도는 또다시 해수유통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김지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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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7 23:02

[오목대] 껍데기 소통 - 이경재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1995년의 삼풍백화점 사고는 1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백화점을 지키는 경비보안 조장은 백화점 건물 옥상의 컨크리트 바닥 대부분이 균열로 인해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깨져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사고 나기 1년 전이었다. 이 사실을 상부에 알렸지만 언제나처럼 묵살됐다. 사고가 난 뒤 그는 인터뷰에서 "윗 대가리가···"라며 원통해 했다. 따지고 보면 조직내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부른 사고였다.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비슷한 케이스다.소통(疎通)을 뜻하는 커뮤이케이션(communication)은 라틴어 communis(공통· 공유)가 어원이다. 동사 communicare는 '같이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소통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의미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조직내 상하· 동료 간에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문제다.소통할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핵심이다. 노나라 임금 이야기는 좋은 예다. 우연히 날아온 바닷새를 노나라 임금이 데려와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주면서 극진히 대우했다. 그러나 새는 슬퍼할뿐 음식도, 술도 한모금 먹지 못한 채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진정으로 새를 기르고 싶다면 사람의 방식이 아닌 새가 원하는 것을 주어 길러야 한다는 우화다.주변에 '껍데기 소통'들이 많다. 말로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사는 사람, 내 생각만이 선(善)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듣는 것으로 그만인 사람, 자신한테 불리할 것 같으면 서둘러 입을 막아버리는 사람 등등.선거 때 소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민선 5기 단체장들의 공통된 화두가 소통이다. 김완주 지사가 "민선4기 행정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이었다"며 쌍방향 소통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 소통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늦게나마 다행스럽다.하지만 대화의 자리만 갖는다고, 얘기만 듣는다고 소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지사가 아닌 주민, 시군, 직원의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사 자신이 변화해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 그렇지 않으면 껍데기 소통일 뿐이다./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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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6 23:02

[오목대] 일본인 - 장세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란 일본 경제성장의 침체 시기이다.지금도 일본 경제 동력은 예전이 아니다. 여기에다 일본의 대표적 국가 브랜드였던 도요타가 리콜사태에 부딪쳐 곤혹을 치루었다. 나라가 어려우면 과거속에서 영웅을 찾는법이다.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사카모토 료마'가 뜨고 있다. '료마'는 지방의 하급무사로 태어나 에도에서 검술을 익히며 왕정복고(王政復古)주장과 왕정을 따르되 서양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존왕양이'운동도 접하였다. 그는 짧은 33세의 인생에서 유연한 발상과 탁월한 협상력, 추진력을 발휘했다. 일본인은 료마의 리더쉽을 그리워 하고 있다.한국은 일본인에게는 제 3국이다.외국도 일본 자국도 아닌 그중간인 제3 국인것이다.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는 고령사회이다. 4명중에 1명은 65세 이상이다. 일본의 정치구조는 파벌로 엮어졌다. 파벌내에는 자기들의 일정한 질서가 있다. 파벌의 수장이 되어야 총리의 물망에도 오른다. 파벌의 평범한 멤버가 수장까지 오르려면 많은 세월이 결린다.그래서 대부분 총리의 나이가 70세가 넘었던 것이다. 일본 사립 대학들의 교수정년이 대부분 70세가 넘는것도 사회 지도층 년로화(年老化)의 한 단면이다. 일본사람은 윗사람의 지시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엣날, 코오베 지진때 화재가 났는데도 윗사람으로부터 수도전을 풀라는 지시가 없어 수도전을 그냥 잠그둔채 놓아두었다고 한다.일본은 지진 나면 자동적으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게 되었는데 화재가 나면 누군가라도 수도전을 풀고 화재를 진화(鎭火)했었어야 했었다. 일본인은 주어진 일은 열심히 잘하지만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회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자기 전공이 아닌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한다고 한다.이런 말조심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약 1백년을 거치다 보니 개인이 살기위한 보신책(保身策)의 유산이다.이런 소심증 때문에 일본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른다.일본인은 강자(强者)에 매우 약하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의 하나가 '스모오'다. 스모오 우승자에게는 갖가지 상들이 주어지지만 2등에게는 아무 상도 없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7.05 23:02

[오목대] 한옥마을과 선비 - 조상진

선비는 '어질고 학식있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구현코자 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 중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는 경우를 처사(處士)라 했다. 또 학문에 조예가 깊어 후생을 가르치면서 바른 도리를 제시하는 사람을 선생(先生)이라 했다. 선생은 벼슬에 나간 '공(公)'보다 더 높은 존경을 받았다.선비는 두가지 방향을 지향했다. 하나는 스스로 도(道)를 연마하는 것이다. 도의 수행을 통해 행동과 예절을 바르게 하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또 하나는 후세에 말씀을 내려주고 가르침을 베푸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저술을 통해 도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약점괴 한계가 없지 않다. 봉건질서의 기반이 되었기에 불평등한 신분구조에 이바지했다. 또 명분만을 중시해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유학이나 선비정신이 벽에 부딪친 서양학문의 대안으로 떠오른지 꽤 되었다.이와 방향이 같진 않으나 전주에서도 한옥마을의 선비정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비의 길 조성을 위한 학술대회' 등이 그것이다.지금까지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관광산업 차원에서 인기를 끌었다. 도시와 인접한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자체가 볼거리였다.하지만 '콘텐츠'내지 '정신'이 빠져 있었다. 겉만 그럴싸 했다. 이제 그 '정신' 즉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말부터 선비들의 집합소였다. 일제의 유학자들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전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기호학파의 정통을 잇는 간재(艮齋) 전우의 제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흔히 '3재'라 불리는 터줏대감 금재(欽齎) 최병심과 고재(顧齋) 이병은, 유제(裕齋) 송기면이 대표적이다. 또 대대로 오목대 아래 살아온 목산(木山) 이기경의 후손을 비롯 김교준 박인규 이종림 이주필 등 유학자들이 모여 선비촌을 이루었다.이들은 학문을 연마하고 지조를 지키며 일제에 항거하는 등 선비 본연의 길을 걸었다.그러나 지금 이들의 자취는 묻혀지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이들의 정신이 새롭게 조명돼, 한옥마을이 명실상부한 명소로 발돋움했으면 한다.

  • 사회일반
  • 조상진
  • 2010.07.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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