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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로 내몰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마침내 초강수(超强手)를 선택했다.대통령 임기를 1년3개월여나 남겨놓은 시점에서 자신의 통치기반인 민주당 총재직을 과감히 벗어던진 것이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씨등 전직 대통령들이 차기 후보를 선출해놓고 2∼3개월 후, 대선을 치르기 3∼4개월 전에 총재직을 내놓은 적은있지만 차기 대통령후보가 정해지기 전에 총재직을 사퇴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의 이번 결단은 자업자득이라는 극히 일부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는 느낌까지든다. 누가 김대통령을 이렇게 벼랑끝으로 내몰았는가? 두말할것 없이 치기(稚氣)어린 한국의 정치판과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그 주범이다. 제왕적 대통령, 인치(人治)의 대통령, 대중에 영합하는 대통령이라는 비난에 잘한 일은 감춰지고 못한 일만 크게 부각되어 여론으로 부터 뭇매를 맞았으니 그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것에 대해서까지 평가절하의 차원을 넘어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으니 어찌 아니 과로웠겠는가.게다가 당내에서는 정권재창출이라는 기치아래 벌써부터 대권경쟁에 정신이 팔려 레임덕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고 개혁세력들은 정권창출의 본산인 동교동계와의 결별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모두가 합심해도 정권재창출을 해낼수 있을까 말까 하는 판에 태생적으로 한계를 안고 태어난 민주당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꼴도 김대통령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도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이 어떻게 당운영을 민주적으로 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어쨋거나 김대통령은 여당 총재직을 깨끗이 버렸고 앞으로 정국은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을 정도로 흔미 해졌다. 사태를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고가서 이나라 이민족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의원까지도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든든하게 서있어야 나라도 좋고 야당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깊이 되새겨 볼 말이다.
구약성서의 사무엘 상편을 보면 엘라계곡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민족의 전쟁이 묘사되어 있다. 이름하여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맨손의 양치기 소년 다윗이 물 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시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한다.요즈음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략한 지 한 달이 넘어 서고 있지만 제1차 목표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그렇다고 제2차 목표인 탈레반 정권의 붕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싶어 보인다. 한마디로 전생 성과가 지지부진한 것이다.그런 와중에 와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구 소련이 10년 아프간 전쟁에서 얻은 것은 소련의 해체뿐이었다고 빈정대며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은 똑같은 결과를 맛볼 것이라고 미국의 부아를 돋구고 있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마치 장군에 멍군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복을 계속하고 있으며, 탈레반은 결사항전의 뜻을 결연하게 다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오사마 빈 라덴은 또 다른 보복을 꼭 하겠다고 하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탈레반 정부는 없어질 것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전쟁을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전쟁이 계속되면서 미국은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탈레반과 탄저균 말고도 반전 여론이라는 또 하나의 힘겨운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워싱턴과 LA 등 미국 주요도시에서는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중순에는 19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의 메카였던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시의회가 반전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미 뉴스워크지가 지난 3일 발표한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72%의 응답자가 미국의 공습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직은 압도적 다수가 전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치는 일주일 전보다 3%포인트, 그 전주에 비해서는 6%포인트 떨어진 수치다.해외에서의 반전 여론 또한 무시할 바가 아닌 것 같다. 이슬람 국가의 반미 시위대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으며, 영국을 비롯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반전운동의 확산이 더욱 거세 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글방인 서당(書堂)은 일종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에 관한 초기 기록은 사기(史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각 지방 평민층 자제들에게 경학, 문학, 무예등을 가르치던 경당( 堂)이라는 사학(私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처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려시대 서당에 관한 기록으로는 인종 2년인 1124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의 성장관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자세히 서술돼 있어 당시 서당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서당이 그대로 조선시대에 이어져 19세기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민중교육기관으로 그 기능을 다했다.이렇게 우리의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은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민간교육에 나서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후 우리나라를 병합한 일제의 교육말살정책에 따라 서당은 급속히 사라졌다. 일제는 1981년 ‘서당규칙’을 발표하여 전국에 2만4천여개소에 달하던 서당의 말살을 시도했다. 당시 공립 보통학교가 전국적으로 4백62개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할때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의 폐지는 일제의 민족교육 황폐화 책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당은 근대식 학제가 시행된 후에도 보통교육에 보조기관으로 명맥이 유지되다가 산간벽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급격히 쇠퇴했다.엊그제 김제시 성덕면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개인서당 낙성식이 열려 관심을 끌었다. ‘우리시대 마지막 훈장’으로 일컬어지는 화석 김수연(和石 金洙連·76)옹이 고향에 사재를 털어 마련한 ‘학성(學聖)강당’은 대지 8백여평에 건평 1백평 규모로 크고 작은 방 26개가 들어서 있어 1백여명의 수강생이 기거하면서 학문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50년간 학문전수에 힘써온 김옹은 앞으로도 전국에서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옛 선현들의 가르침을 무료로 가르칠 계획이라니 지극한 정성이 수강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극단적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왜곡되고 파괴된 가치규범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 말로 당면한 과제의 하나이다. ‘학성강당’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는 메카가 되길 기대해본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선심행정’이라는 말이다. 자치단체장들을 선거로 선출하다 보니 표를 얻기 위한 편의적 행정집행이 빈번해지면서 나온 것이리라.선심(善心)의 본래 사전적 의미는 ‘착한 마을’, ‘선량한 마음’ 혹은 ‘남을 구제하는 마음’등으로 좋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국사를 집행한다는 행정과 만나면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개인적 차원의 덕목이 공공 영역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선심행정이란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공정성,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합리적 기준이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결재권자에 의해 임의적으로 결정하여 집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체장의 판공비가 불투명하게 집행되는 것이나, 포상제의 남발, 그리고 요즘 언론의 집중 질타를 받은 바 있는 용역의 남발 등이 지방자치시대 대표적인 선심행정의 사례라 할 수 있다.축제나 체육대회 등 각종 전시성 행사나 사회단체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 혹은 ‘전관예우’형태로 자행되는 불필요한 위원회의 설립도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선심행정의 표본이다.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는 일이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일지라도 공공행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태도가 우선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선심행정에 현혹당하지 않는 성숙한 자세의 확보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쉽게 긍정을 해버리고 그렇지 않는 것은 선심행정이라 매도하는 이기주의야말로 선심행정이 기생하기 쉬운 숙주요 텃밭인 것이다.성숙한 시민의식만이 속보이는 선심으로 표를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막을 수 있다. 표가 급한 사람들이 반성할 것을 기다릴 게 아니라 그것이 표로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말이다. 시민 하나 하나의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기네스북(1996년판)에 오른 세계 최장수 인간은 일본인 이즈미 시게치요라는 사람이다. 그는 1865년 6월29일 태어나 1986년 2월21일 사망했으므로 정확히 1백20년 2백27일을 살다 간 셈이다. 그는 105세까지 일을 했으며 70세까지 독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기록상 최고 수명이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 살고있는 노인들도 없지 않다. 도미니카의 한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를 125세로 기억하고 있고 일본의 107세 쌍둥이 자매 할머니는 지금도 TV에 출연하는등 건강하게 살면서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유럽 알바니아의 산악지대나 코카서스지방,또는 요즘 테러전쟁으로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아프칸 같은 중동지역에도 장수마을은 수없이 많다. 110세된 아버지에 90세된 아들,70대손자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마을 풍경이 그렇게 평화로울수 없다. 대개는 문명과 등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깨끗한 공기,자연이 주는 식품이 장수의 비결이란 점이 공통적이다.엊그제 서울대 박상철(朴相哲)교수팀이 우리나라 장수 마을을 조사한 결과를 봐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인구 10만명당 100세이상 노인수가 21명 이상인 장수마을은 전국적으로 13개 지역이며 이들 지역은 대개 해발 300∼400m인 영·호남 구릉지역에 집중돼 있었다한다. 그중 전남이 7개로 가장 많았고 도내에서도 순창이 포함된것으로 나타났다.이 장수마을에 사는 100세 이상 노인들의 식생활을 보면 끼니마다 밥 한공기에 짜거나 매운 음식보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것으로 밝혀졌으며 술이나 담배를 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다. 노년의 건강은 타고난것이라기보다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학계의 보고도 있는지라 결국 이 노인들의 장수 비결도‘적게 먹고’‘잠을 잘 자며’규칙적인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무병장수(無病長壽)는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다. 그러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이치는 누구도 거스를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마련인 것이다. 다만 얼마나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다 가느냐가 중요하다. 장수(長壽)보다 금욕(禁欲)의 금도를 지키는 일,그것이 더 돋보이는 것이 세상 이치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주홍글씨’를 보면 목사와 간통한 죄로 간통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Adultery'의 첫 글자 'A'를 붉은 글씨로 가슴에 새기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던 비련의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등장한다.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인간을 가슴 설레이게 하는 묘약이 되어 왔고 때로는 깊은 수렁과 좌절을 주는 상처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불멸의 테마가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도 함께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사랑의 묘약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그런데, 남녀의 사랑과 혼인생활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 기차의 레일처럼 서로 평행선을 그리며 다른 길을 갈 때도 종종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간통죄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간통이란 배우자를 둔 사람이 자발적으로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강제적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강간과는 차이가 있으며, 성관계를 상품화하는 매매춘(賣買春)과도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간통을 가슴설레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시킬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역사적으로 간통죄 처벌은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따라서 서유럽의 경우, 간통에 대한 법적 제재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곧 그만큼 여권이 신장되었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주로 남성들이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고 여성들이 존속을 주장하는 흐름과는 좀 어긋나는 실정이다.간통죄 폐지가 어려운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우리 사회는 이혼한 사람, 특히 이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신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이혼을 하면 여성이 더 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서유럽에선 이혼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이나 불이익이 거의 없다. 오히려 독일에선 이혼한 여성에게 취업이나 면세 등 갖가지 혜택을 국가에서 주고 있는 실정이다.뿐만 아니다. 독일에서는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이 각각 네번씩 결혼하면서도 "재혼은 필수, 세번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을 마치 외치듯 서슴없이 하는데 그런 사회적 풍토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한순간 전 세계를 경악과 공포 속에 몰아넣은 미국 쌍둥이빌딩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사상자 수를 얼마로 예상하는가”라는 질문에 “지금은 희생자 수를 셀 때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존자와 부상자를 구출하느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더 이상 질문을 자제했고 이후 미국 언론은 테러의 주체와 배후에 대해서만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내비쳤을 뿐 어떤 추측 기사나 책임공방도 없이 하나같이 사태극복과 구조활동에 대부분의 기사를 할애했다.한 재미(在美) 언론인은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테러범을 향한 분노로 심리적 혼돈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나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고 놀랍도록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상황대처를 하는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지켜보면서 ‘위대한 미국’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한국 언론 풍토에 익숙한 자신이 사망자 수에 대한 호기심과 중앙정보국(CIA)에 대한 문책 수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같은 자신의 얄팍한 정서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요즘 한국 언론의 실태는 어떠한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미명하에 무차별적으로 또는 정략적으로 자행되는 폭로 기사,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기자의 식견과 객관성 부족 그리고 부주의한 감정 개입 등 으로 수많은 보도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정언(政言)갈등에 언론이 언론을 고발하는 언론사상 초우의 언언(言言)갈등까지 세기말적인 사건들이 판을 치고 있는 곳이 오늘날 한국 언론의 현주소요 부끄러운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다.물론 민주국가에서 언론사마다 각기 다른 견해를 갖는다고 그것을 탓할수는 없다. 또 정부의 언론정책이 반드시 옳다고 두둔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지 언론사와 언론인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겠다는 말이다. 언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여론독과점 현상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산소 원자 3개로 이루어진 오존(Ozone)은 약간의 푸른 색을 띠고 특유의 냄새를 지닌 기체로 산화력이 강하고 표백 살균에 사용된다. 지구상 오존 층량의 90%는 지표면 10∼50㎞의 성층권에 존재하며,그중에서도 25㎞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 층(層)을 오존층이라고 부른다. 오존층은 태양으로 부터 방출되는 강력한 자외선의 90% 이상을 차단하여 지구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자연산 필터 역할을 하고 있다.그런데 이 오존층의 파괴로 자외선 복사량이 증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환경재앙이 발생하고 있다. 오존층 파괴 주요원인은 20세기 들어 인류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냉장고나 자동차 에어컨등의 냉매로 널리 쓰이는 프레온 가스(염화불화탄소·CFC)를 비롯 할론,메틸 브로마이드등이 오존층의 오존을 파괴하기 때문이다.오존층이 1% 파괴되면 자외선은 2%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외선 증가는 피부암과 백내장 발병률을 높이며, 최근에는 동물의 DNA구조를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까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오존층이 10% 정도 감소한 호주에서는 전세계 피부암 환자의 6%가 발생하며, 해마다 1천명 이상이 피부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는 오존층 파괴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협약으로 89년 9월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으며, 우리나라도 91년 CFC등의 제조량을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80년대까지 계속 파괴되는 추세였던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이 90년대 들어 복원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연세대 오존관측소가 85년이후 매년 조사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99년 현재 한반도 상공에 있는 오존층의 오존량이 10년전인 89년에 비해 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같은 오존층의 복원현상은 오존층 파괴물질 사용을 줄인 것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 해도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 당장 눈앞의 편리함만을 목적으로 후손에 물려줘야 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죄악이다.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복원을 계기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할 때이다.
사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 가운데 하나다.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이나 세계 최고(最古)의 함무라비 법전도 사형의 적법성을 보여준다. 동서를 막론하고 흉악범에 대한 강력한 응보(應報)수단으로 대다수 국가들이 50여년전 까지만 해도 사형제도를 시행해왔다.우리나라도 사형제도 필요성을 계속 인정해오고 있다.지난 96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게 결정요지 였다.그러나 세계적인 추세는 사형의 폐지쪽으로 흐름을 타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대부분 2차대전 이후 사형제도를 없앴다. 엠네스티(국제사면위)에 따르면 올해 6월 현재 미국과 중국등 86개국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1백9개국이 이를 폐지했거나 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사형 폐지추진 움직임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다. 여야의원 1백54명은 지난달 30일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함께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불교·개신교등 국내 주요 종교계도 공동으로 11월 한달을 ‘사형폐지 촉구의 달’로 정하고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한다.사형폐지론의 논거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오판으로 억울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고, 범죄 억제효과가 없으며, 또 원시적인 보복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이에대해 존속론자들은 흉악범의 인권만 생각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으냐고 반박한다. 사형제도가 죽음에 대한 공포 및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는 주장이다. 피해자를 대신하여 국가나 징벌권을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헌재(憲哉)는 지난 96년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시대상황이 바뀌면 사형은 폐지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었다. 그 이후 5년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형제도 찬반논쟁의 가열에 따라 폐지론이 탄력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의 법감정이 흉악범의 인권까지 고려할 만큼 성숙됐는지는 의문이다. 충분한 여론수렴 절차가 필요한 사안이다. 사형폐지 운동의 귀추가 주목된다.
발암물질 배출량 전국 3위! 산업화가 덜 되어 소독이 적고 일자리가 많지 않아도 크게 섭섭하지 않았다. 거창하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때문만은 아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게 마련, 그 덕에 오염이 비교적 덜 된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차별의 서러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위안거리가 있어서였다.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환경부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유해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TRI)에 의하면 연간 134만kg의 발암물질이 이곳 전라북도에 배출되고 있다. 전국 배출량이 830만kg이니 대략 16%가 되고 광역자치단체별로 비교하면 울산과 전남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순위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양이다. 그 다음 순위인 충남이 고작 68만kg로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서울과 부산은 말할 것도 없고 경북과 경남만 해도 10만kg을 넘지 않고 있다.주 원인 제공자는 물론 전주2공단이다. 공단별 배출량을 비교해도 전주2공단이 울산 미포공단과 여천공단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유해화학물질 중에서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디클로로메탄이 차지하는 비중이 특히 높다는 것이다.더구나 전주2공단은 인구밀집지역인 도심지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어 대기 흐름에 의해 공단주변은 물론 도심지 시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내륙의 생태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제 우리 지역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산업화 혹은 공업화 등 개발에 목말라하더니 가장 유해한 산업을 덥석 물어온 것 아닌가? 막차를 타도 아주 고약한 막차를 타고 만 꼴이다.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너무 농도만 내세우지 말고 환경관리를 좀더 철저하게 해야겠다. 아니 이번 기회에 새만금사업 자체도 재검토해보면 어떨까.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농토를 늘리는 것도 그렇고 공업단지 조성은 환경오염의 염려가 있으니 말이다. 청정 농도의 명예를 하루빨리 회복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기대해본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로 비유되는 중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상은 세계의 경제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경탄의 대상이 되고있다. 국민총생산·무역총액·외국인 투자실적등 경제지표를 보면 상하이의 푸동( 東)지구를 둘러본 북한의 김정일(金正一)위원장이‘상전벽해(桑田碧海)를 절감했다’고 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수 있다.우리나라 경제 고위관료가 중국의 초고속 성장을 두고 한마디로‘무섭다’고 표현한것도 얼마 전일이다. 전자·반도체·생물유전공학 등 전 산업분야에서 우리는 앞지를 날이 그리 멀지 않는다는게 그의 분석이었다. 황해를 사이에 두고 바로 이웃 해 있는 우리나라가 저들 시장경제의 무차별 공략목표가 돼 버린지도 오래다. 중국의 이런 산업화 과정을 박정희식(式) 개발독재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는 경제학자도 있는 모양이다.그러나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성장의 그늘에는 우리도 경험한듯이 관료조직의 부정부패 사회불안의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져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는 풀되 체제는 사회주의를 고집하는 중국인지라 공직자들의 독직이나 각종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리만치 엄격하다.예전에 한 지방 고위관료가 뇌물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하급심에서 상급심까지 초고속으로 심리가 진행된후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그 즉시 총살형이 집행됐다. 그것도 공개리에 처형돼 중국식 사법제도에 익숙치 못한 서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었다.중국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쇠국의 길을 재독했던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만큼 일반 범죄에 비해 특히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도 엄중하다. 내외국인에 차별이 없다. 그런 사례가 지난달 26일 공개 총살이 집행된 한국인 신모씨의 경우이다. 그는 도내 남원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문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범죄혐의로 사형되기는 처음인데다가 중국당국이 우리측에 아무런 사전·사후 통보가 없었다는 점이다. 외교당국의 책임문제가 거론되는등 논란이 일고 있다. 아무리 범죄자이지만 중국의 이번 처사는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경제의 고속성장 못지않게 인권신장의 선진화도 중국에 절실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것중 비행기와 네발 달린것중 책상을 빼고는 못먹을것이 없다는 나라가 중국이다. 삶고 굽고 튀겨서 요리가 안되는것이 없는 나라이고 보니 개고기라고 물론 빠질리가 없다. 우리도 그렇듯이 중국사람들도 개고기를 굳이 견육(犬肉)이라고 하지 않고 점잖게 향육(香肉)이라고 부른다.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모든 개를 다 먹는것은 아니라고 한다. 잡아 먹는 개가 따로 있는데 누렁이를 최고로 친다고 한다. 그런점이 개라면 잡종견이건 진도개건 세퍼트건 가리지 않고 다 먹어 치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식도락과 차별이 나는 것일까? 아니 그 정도로 가려서 먹을줄 알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했기에 적어도 개고기를 놓고는 중국 사람들이 세계 동물애호가들의 눈총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사실 개고기를 즐겨먹는 우리나 말고기를 좋아하는 일본·독일사람이나 다를게 뭐 있는가. 힌두교도는 쇠고기를 안먹고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숭배하는가 하면 문화 선진국을 자랑하는 유럽사람들이 거위간이나 원숭이 생골, 달팽이요리를 자랑하는것은 또 뭔가. 생활관습이나 문화차이 아닌가. 그렇게 보면 우리끼리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않아 ‘개장국’대신 보신탕이니 영양탕이니 해서 이름 바꾸기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너무 주늑들어 있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88올림픽때 한차례 홍역을 치른바 있는 보신탕이 요즘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언론과 동물보호단체들로부터 또다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영국에서는 우리 대사관앞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미국에서는 한국상품 불매운동까지 벌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고기를 먹는것 자체보다 개를 잔인하게 죽이는것에 더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마침내 정부가 다음달부터 잔인한 개 도살을 집중단속할 계획을 밝히고 나섰다. 월드컵에 대비해 우리의 보신탕문화에 대한 이미지 개선작업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차제에 우리도 ‘개는 때려 잡아야 제맛’이란 볼썽 사나운 관습은 버려야 할 때다. 오히려 식품으로 합법화된 보신탕을 제대로 즐길수 있도록 도축과정이나 위생·조리시설 정비에 중점을 둬 ‘혐오’의 굴레를 벗겨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회는 너죽고 나실기식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대립의 장(場)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선량들의 의견을 토론과 타협을 토해 합의로 이끌어내는‘정치의 산실’이다. 국회에서 합의를 도출할때 크게 두번의 갈등과 협력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하나는 같은 정당내에서 정치인들의 이해가 통합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간의 주장을 조율하는 조정과정이다. 이러한 두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원내총무다. 그래서 원내총무는‘국회의 꽃’으로 불린다.현실적으로 많은 정치인들은 국회의장단이나 상임위원장 보다도 원내총무에 선출되기를 희망한다. 원내 총무는 그 자체가 권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료 의원들에게 여러 도움을 줄 수 있어 장차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고, 국민들에게 지명도를 높임으로써 대중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원내총무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정치인을 꼽으라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는 제3공화국시절 야당인 신민당 원내총무를 무려 네번이나 역임해 한국정치사에 기록을 세웠다. 그가 오늘날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명(名)원내총무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저돌적인 성격이 당시 정치행태와 잘 어우러진 점도 있지만 상황이 불리할대마다 대립적인 의제를 제기하여 협상을 이끌어 내는 수완을 발휘한 덕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근래 정치권에서 여야 원내총무 모두 기질과 능력면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정국을 풀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총무 교체로 정국전환의 첫 단추를 끼우자”는 주장이 제기돼 정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우선 기질면에서 민주당 이상수(李相洙)총무나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는‘타협’보다‘투쟁’성향이 더 강하고 능력면에서도 쟁점 해소의 주역으로 활약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악화 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두 원내총무는‘당과 정국 운영을 위해 스스로 제척(除斥)을 자청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 될것’이라는 주변의 쓴소리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뒤뚱거리는 오리가 걷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왠지 불안한 마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른바 '레임 덕(lame duck)' 현상이다. 레임덕은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말로서 미국 남북전쟁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그런데, 우리 사회가 지금 레임 덕 현상에 빠져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복지부동이네 아니면 복지와동이네 하면서 공무원들이 힘의 향방에 눈치를 보거나 힘있는 쪽에 줄대기를 하려는 조임마저 보이고 있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정치권력이라는 것은 마치 불과 같은 것이어서 가까이 하면 데고, 멀리하면 추워서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기간 동안 중단되거나 누수 없이 그 힘을 발휘할 때에 나라의 안정과 국민의 번영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물론,“절대적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액턴 경(卿)의 말처럼 특정인이나 소수의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여 그들이 공권력을 행사할 때에 정치권력이 국가와 국민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켜봤고 또 몸으로 겪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정치권력이 힘을 잃어 최소한의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본연의 생명력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집권말기의 권력누수현상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결코 정치 그 자체와 정치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지난 6월 외교통상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한 때 한 러 공동성명 관련 조사 보고라는 문건이 언론에 유출돼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 불거진 현직 경찰공무원의 정보문서 유출 사건은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공직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지면서 '줄서기와 줄대기'가 시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성급한 판단마저 들게한다.뒤늦게 사정(司正)당국이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라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일부 공무원들의 기밀유출과 정치권 줄대기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 특별감찰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나섰다.
혼자 사는 ‘나홀로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월과 최근 발표한 2000년 혼인·이혼 통계및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 혼인율은 떨어진 반면 이혼율이 높아지고 또 평균수명이 늘어난데 따른‘나홀로 가구’가 크게 증가한 사실이다.작년 11월말 현재 우리나라 총 가구수는 1천4백39만 가구로 이 중 혼자사는 가구가 15.5%인 2백22만 가구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95년의 1백64만가구에 비해 5년사이 35%나 늘어난 것이다. 혼자사는 이유로는 미혼이 43%, 배우자 사별 35% 외에 이혼이 9.8%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혼 1인가구주가 95만명으로 5년사이 26%나 증가한 것은‘호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을 선호’하는 20∼30대 독신자층이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같은 통계수치로 볼때 이제 우리사회도 싫든 좋든간에 독신자들을 사회의 한 그룹으로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정부 당국등의 정책적인 배려가 없었음은 물론 여전히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이런 정서가 사회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 정부나 각 기업체, 심지어 민간단체에서조차 독신자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치부되던 이같은 현상들은 독신자수의 급증 추세를 맞아 앞으로는 당연히 변해야 한다. 비록 정부차원의 대책이 미흡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독거상태에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이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와함께 우리 사회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대상이 독거노인들이다. 특히 평생을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등에 헌신하고도 우리 사회 특성상 경제력을 갖지 못한 여성노인들이 요즘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녀들이 부양을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국가와 사회단체가 이들의 부양책임을 분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선진국에서 노인문제를 사회복지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오만함으로 인해 신의 벌을 받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유한한 인간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감히 신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신을 능멸했다가 어김없이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이야기들이다.제우스의 총애를 받던 거부(巨富) 탄탈로스는 신들의 능력을 실험해보기 위해 자신을 살해하여 국을 끊여 신들을 대접했다가 영원한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 벌을 받는다. 최고의 수금(竪琴)연주자인 마르시아스는 음악의 신 아폴로 앞에서 연주실력을 뽑내다가 산채로 살갗을 벗기우는 참혹한 고통을 당한다. 테베의 여인 니오베는 자식 자랑을 하며 여신 레토를 능멸했다는 죄로 열네 명의 자녀를 모두 한꺼번에 잃는 참변을 당한다.모두 자만심이 지나쳐 도(道)에서 벗어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을 경계하기 위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때 인간의 오만함을 벌하는 신들은 바로 자연의 질서, 혹은 우주 섭리의 대변자에 다름 아니다. 오만함은 으례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요즘 소리축제 주최측의 지나친 자부심이 빈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엄청난 예산과 지역주민들의 맹목적이다 싶은 소리사랑, 그리고 지역언론의 헌신적인 홍보열기 등에 힘입어 겨우 체면유지를 한 처지에 방자함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소리축제를 아끼는 마음에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비판을 자체하며 오히려 여러 악조건을 이겨낸 것을 대견스러워 해주니 이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기 잘났다고 으스대며 남들 비판을 코 등으로 흘리고 있는 것이다.아뿔싸! 벌써 예비대회의 교훈을 잊었단 말인가? 앞으로의 축제를 견실하게 준비해나 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객관적 평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판에 자축의 분위기에 젖어 흥청거리고 있다니! 오냐오냐하니까 할아버지 수염을 뽑는다던가? 저러다가 탄탈로스나 니오베 꼴이 되는 것은 아닐지. 벌써부터 내년 축제가 염려스러워 진다.
“농경시대 이래 인류의‘먹거리’는 기근과 풍요의 반복이었다. 잉여분이 충분하면 잘 먹고, 부족하면 굶주렸다. 여유가 있으면 우아하게,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허겁지겁 먹었다”이탈리아의 음식사가 몬타나리라는 사람이 ‘유럽의 음식문화’라는 책에서 쓴 말이다.굳이 유럽뿐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건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한 맛있게, 잘 먹으려 했던게 사실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도 결국 먹을 것을 찾고 생산해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런 욕구를 바탕으로 기후와 토양, 종교와 관습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음식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삶이 윤택해지고 문화의 글로벌화가 촉진되면서 새롭게 진기한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아하고 멋있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맛보려는 식도락가들의 욕구가 새로운 관광상품화 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나 일본의 전국 도시락 투어, 암스텔담 공항의 다양한 육가공식품등을 이미 음식여행의 단골 코스이고 아프리카 야생동물 별식(別食)도 서구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그 중 뭐니뭐니 해도 싱가포르의 음식축제는 그 자체로 문화상품이다. ‘지구상 어떤 음식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지 않게 온갖 산해진미를 만날 수 있고 동·서양 음식을 혼합한 퓨전요리 강좌는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국내에서도 순천 음식 큰 잔치를 비롯해서 광주 김치, 부산 자갈치, 인천 (소)래포구, 강경 맛갈젓축제등이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고 서울의 일류 호텔마다 세계 요리축제를 여는 것도 연례 행사가 된지 오래다.엊그제 소리축제를 성황리에 끝낸 전주에서 내년에는 음식축제도 함께 열 계획이라 한다. 사실 멋과 맛의 고장이라고 입 부르트게 선전해온 전주가 맛의 대명사를 이웃 광주에 빼앗겼다는 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왜 이번 소리축제에 그 기획을 못했을까 새삼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전주비빔밥을 세계시장에 선보인 전주다. 내년 음식축제가 전주음식의 진가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조성된 ‘폭로정국’이 급기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권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면책특권을 방패삼아 비열한 정치적 술수를 부리고 있다’고 공격하면서 이의 악용을 막기위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야권은 ‘한마디로 면책특권의 기본정신조차 모르는 한심한 발상’이라며 반박 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이 ‘면책특권에도 한계가 있다’며 근거없는 주장이나 유언비어에 대해 강력 대처할것임을 시사해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국회의원의 발언·표결의 자유라고도 하는 면책특권은 헌법 제45조가 보장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아니하는 특권’을 말한다. 이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를 견제하여 권력내의 비리나 부정등을 감시·감독할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해준 고유의 권한이라 할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도 분명 한계는 있어야 한다. 확인도 안된 시중여론이나 ‘카더라 통신’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사생활 폭로, 명예훼손을 일삼는다면 그 폐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설(說)만 가지고 무차별적인 폭로정치를 일삼고 결과적으로 ‘아니면 말고’식, 치고 빠지기 발언이 ‘정치의 희화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않은 것이다.이번 국회 대정부 질문과정에서 국민들은 이런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똑바로 봤을 것이다. 여권 지지층이든 야권 지지층이든 마찬가지다. ‘아무리 국회의원이지만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함부로…’하는 개탄의 소리가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가 보충질의에 나선 한나라당의원에게 ‘선배 정치인으로서 한마디 충고하겠다’며 앞뒤 가리지 않는 험한 발언에 제동을 걸고 나섰겠는가.차제에 정쟁(政爭)만 일삼는 대정부 질문제도를 폐지하거나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모양이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개구리에게 돌 던지는 식’의 무분별한 발언이 면책특권의 장막에 가려져 국민 인식에 혼란을 줘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회개하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개과천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희세(稀世)의 대도(大盜) 조세형(趙世衡)이 병적도벽(kleptomanid)을 이기지 못하고 작년 11월 신앙간증차 건너간 일본에서 또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 체포돼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고위층 인사나 재벌 집만 골라 터는 도둑, 드라이버 하나로 첨단경비망을 뚫고 귀신같이 물건을 빼내는 도둑, 흉기를 쓰지 않는 도둑,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도둑…· 지난 1982년 당시 내노라 하는 집만 골라 값비싼 보석과 거액의 현금을 훔치다 붙잡혀 항소심 재판을 받던중 탈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을 이야기 할때 수사(修辭)이다. 그에게는 심지어 괴도(怪盜), 의적(義賊), 전설적인 대도라는 현란한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상습절도범 조세형이 이처럼 과대포장되어 인구에 회자된 것은 그 시절 시대상이 군부독재와 부정부패로 국민들 원성이 하늘을 찌를 때여서 높은자와 가진자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가 훔친 보석과 현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서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중에서도 한개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호사스런 부유층이 전유물처럼 여겨져 국민들로 부터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권력과 부에 대한 사회분위기가 얼마나 부정적이었으면 일반시민들 사이에 탈주한 조세형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까지 벌어졌겠는가.수확철을 맞은 요즘 농촌에 농산물 도둑이 설쳐 농민들이 밤잠을 못이루고 있다고 한다. 거친 풍우 맞아가며 자식처럼 키워낸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지 못해 어깨가 축 처진 농부들을 위로는 못할 망정 아예 ‘삶의 의욕’마저 꺾으려드는 몰염치한 인간들이 있다니 참으로 기가 찬다.옛날 어느 인정받은 도둑은 도둑질하러간 집 솥에 밥지은 흔적이 없자 다른 곳에서 훔친 쌀을 놓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속담에 ‘도둑의 집에도 되가 있다’는 말이 있다. 힘없고 외로운 사람 울리는 비겁하고 치사한 도둑부터 소탕을 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월은 변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요즈음은 큰 것이 좋은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까마득한 선사(先史)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때에도 사람이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큰돌은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사람들은 큰 돌에는 시비로운 힘, 즉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었으며, 이 같은 정령은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좌우할 수도 있는 대단한 존재로 인식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고인돌이나 선돌과 같은 거석을 만들어 섬기며, 그 앞에서 소를 비롯한 가축을 제물 삼아 희생물로 신에게 바치는 제례(祭禮)를 지내고 제례와 함께 제연(祭宴)을 베풀어, 이를 행한 주최자의 사회적 지위를 찬양하고 그의 이름을 후세까지 전하고 있다.고인돌은 우리나라 전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전북지역에도 도내 거의 전지역에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나 밀집정도를 기준으로 할 때 서부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전북의 다른 지역과 달리 고창군의 고인돌은 그 군집의 규모가 작게는 수십 기부터 많게는 수백 기에 이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약 2천여기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된바 있다.역사성과 규모로 볼 때 고창의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값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유산은 보존하고 전승되는 데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핏줄을 통하여 유전이 이루어지듯이 문화유산도 계승을 통하여 후세에 이어져 내려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욱 큰 것이다.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문화유산의 전승이 자칫 부족한 예산문제로 난항을 겪을 처지가 되었다. 고창 고인돌공원 조성사업이 전시시설지구에 대한 사업비가 해결되지 않아 관련사업 추진이 좌초될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정작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문화재청은 전시시설지구에 대한 국비 투입에 난색을 표명하며 딴전을 피우고 있다.그러한 정부의 입장을 지켜보면서 무심히 흐르는 로렐라이 강변에 그저 뎅그러니 세워진 요정의 동상 하나를 가지고 별난 자부심과 자랑을 일삼는 독일인의 정신을 한번쯤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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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줄서기’ 악습, 이번엔 뿌리 뽑아야
오래된 다정함, 남문사잇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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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에 담긴 한민족의 고유정서
새 주인 맞는 군산조선소, 신조선박 보고 싶다
'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고래가 싸우는 세계, 한국의 길
부모님의 땀방울 서린 농지, 지혜롭게 물려받는 법
제세공과금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