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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의 후계자

삽화=권휘원 화백 20년도 더 지난 2000년 4월 9일이다. 그날 오후 전북예술회관 3층 공연장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특별한 무대가 열렸다. 이일주 명창의 판소리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난석 이일주의 소리판 이었다. 제자들이 존경의 뜻과 정성을 모아 만든 무대. 이미 명창의 반열에 서있는 중견 명창과 젊은 소리꾼들, 초등학교 유망주들까지 50여명 제자들은 육자배기나 판소리 연창, 단막 창극 놀부전으로 스승의 소리 길을 빛냈다. 그러나 무대의 백미는 역시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발휘하는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으로 화답한 이일주의 소리였다. 명창은 서편제 대가 이날치의 후손이다. 아버지 이기중(이날치의 손자) 역시 판소리를 잘하여 소리꾼으로도 이름을 알렸는데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소리를 배운 이일주는 일찌감치 명창 재목으로 주목 받아왔다. 그는 박초월 김소희 명창 문하에서 공부했지만 이후, 동초제 다섯 바탕을 온전히 계승한 오정숙 명창을 사사하며 동초제 소리를 받았다. 대를 잇는 서편제 대신 동초제 소리를 잇게 된 이유다. 그의 소리는 높고 단단하고 제대로 쉰 치열한 소리다. 이 소리는 판소리에서 최고로 치는 자질이기도 한데, 판소리 연구가 최동현 교수는 그를 타고난 기질에 거친 맛과 부드러운 맛, 슬픔과 너그러움, 그리고 깊은 그늘을 표현해내는 좋은 목 구성까지 갖춘 명창으로 꼽아왔다. 소리의 맛을 높이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너름새나 아니리 보다 소리 그 자체에 치중하면서도 청중들을 사로잡았던 힘이 여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건강이 나빠져 꽤 오래전부터 무대에 서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전라북도 지방무형문화재 보유자 자격(동초제 심청가)을 내놓고 명예 보유자가 됐다. 명예 보유자는 연행자가 공연 무대에 더 이상 설 수 없게 되었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자리다. 동초제는 다섯 바탕 중 수궁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유자가 지정되어 있다. 최근 두 명 명창이 그의 뒤를 잇는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30일이 지나면 정식으로 보유자가 되는 절차다. 들여다보니 같은 시점에 같은 종목, 같은 스승의 제자들이 동시에 보유자 인정을 받는 일은 지방무형문화재 영역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두 명 모두 비교 선택이 불가할 만큼 역량이나 활동 등의 여건을 잘 갖추었다는 결과이니 반갑긴 하나 이례적 결정의 좀더 명쾌한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한 종목 복수 지정의 길까지 열어놓고도 정작 보유자조차 갖지 못한 동초제 수궁가의 처지(?)를 보면 더 그렇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4.15 20:09

람사르습지 도시

삽화=권휘원 화백 고창 운곡습지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9년. 당시 고창부군수로 재직하던 한웅재 전 익산부시장이 휴일마다 읍면지역을 탐방하던 중 아산면 운곡리 일대에 장기간 방치된 폐경 농지가 습지로 탈바꿈한 것을 처음 발견했다. 전북도청 1호 환경 전문직 공무원인 그는 단박에 운곡습지의 가치를 알아보고 생물다양성 조사 등을 통해 환경부로부터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받았다. 이어 2011년 4월 람사르협회로부터 람사르습지로 지정등록됐다. 운곡 람사르습지는 1980년대 초부터 운곡저수지의 물이 영광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로 공급됨에 따라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한 폐경지가 자연 상태로 유지되면서 산지형 저층 습지를 형성했다. 30여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게 되면서 원시 습지 형태로 회복되고 자연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생물다양성이 더 늘어나 2010년 527종에서 2018년 830여 종으로 증가했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수달과 황새, 2급인 구렁이 삵 알락개구리매 긴꼬리딱새 가시연 긴노랑상사화 등 희귀 동식물의 서식처로 자리 잡았다. 이 곳은 고창 고인돌공원과 인접해 2014년 환경부에서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했고 2017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았다. 최근에는 운곡습지 주변 6개 마을이 치유형 농촌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난해 방문객이 전년보다 1.5배나 늘어났다. 고창군은 지난 10년 동안 운곡 람사르습지 성공을 통해 도내 최초로 람사르습지 도시 국제 인증에 나섰다. 지난해 3월 환경부가 고창 운곡습지와 충남 서천갯벌, 제주 서귀포시 물영아리오름 등 3곳에 대해 제2차 람사르습지 도시 인증을 신청했다. 람사르협약 사무국은 자문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오는 6월 상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되면 람사르 상징을 6년간 지역 농수산물이나 생산물판촉, 생태관광활성화 프로그램 등에 활용할 수 있고 습지보전 이용시설과 생태관광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 국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 람사르습지는 창녕 우포늪 고창부안갯벌을 비롯해 23곳이 있고 람사르습지 도시는 순천 창녕 인제 제주 등 우리나라 4개 도시를 포함, 7개국 18개 도시가 지난 2018년 최초로 인증을 받았다. 국내에는 현재 확인된 습지가 총 1700여 곳에 달하고 전북에도 군산 옥산습지 완주 신천습지 남원 요천습지 등 대표적 습지가 다수 있다. 습지가 자연 상태로 복원되면 생물다양성이 늘어나고 생태관광 등을 통해 인간에게도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운곡습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4.14 17:50

때아닌 인사자료 논쟁

삽화=권휘원 화백 인사를 앞둔 공직사회는 예외없이 긴장감에 휩싸인다. 특히 승진 대상자들은 발표 때까지 숨막히듯이 속이 타들어간다. 승진이야말로 직장생활하며 최고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그간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더라도 이 순간 만큼은 충분하게 보상받은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인사철만 되면 숱한 하마평이 떠도는 가운데 학연지연을 통한 연줄 찾기에 여념이 없는 모양이다. 민선 이후 각 기관 단체장의 인사 스타일은 대동소이한 편이다.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오거나 함께 일한 사람을 대체로 선호한다. 여기에다 선거 캠프에서 고락을 같이 했으면 전리품(?)을 나누려고 자리로 품앗이한다. 인사 때마다 측근 인사보은 인사 등 시비가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조직 장악과 차기 선거를 겨냥한 이중적 포석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가끔 도청 주변에선 송하진 지사가 동문인 고려대 출신을 유독 챙긴다고 꼬집는다. 불통 이미지 김승환 교육감도 편중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지 세력인 전교조 출신의 파격 발탁이 대표적이다. 김승수 시장의 경우는 김완주 사단 인맥의 데자뷔이자 도돌이표 인사라고 시선이 곱지 않다. 몇 년 전 도청과 전주시청 안팎에서 널리 알려진 애기다. 과장급인 사무관의 성격이 너무 곧고 직선적이어서 의회기자와 맞서 종종 마찰을 빚었다. 그가 미운 털이 박혀 인사 불이익을 받은 건 짐작한대로다. 하필이면 시장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상대의 심기를 건드린 탓이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직원들 한테는 이 간부가 베스트로 뽑힐 정도로 평가가 호의적이었다. 바람막이 역할은 물론 업무 처리능력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결국 그는 나중에 구청장은 물론 3급까지 승승장구했다. 반면에 상상을 초월한 성실함으로 요직에 임명돼 억세게 관운이 좋다는 이도 있다. 단체장의 사적 일정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행차 장소에 어김없이 나타나 그림자 보좌를 하기 일쑤다. 절대적 신임을 받아 퇴직 후에도 잘 나가는 자리를 꿰차면서 주위 눈총을 받기도 했다. 지난 8일 전북공무원노조가 발표한 간부공무원 베스트워스트 설문조사에 뒷말이 많다. 매년 발표할 때마다 설왕설래는 있지만 조직문화 쇄신 차원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인기 투표라고 폄훼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직원들간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를 받는다. 조사는 4개 항목, 13개 지표로 나눠 직업윤리업무능력 등을 검증했다는 것이다. 6급 이하 대상자 80% 이상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른 후폭풍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인사자료 활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공동체 구성원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부자연스런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호불호가 갈리는 건 사실이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직된 조직을 바꾸려는 노력은 눈에 띈다. 때아닌 논쟁이 아니더라도 모처럼만에 공직사회의 활력을 느낄 수 있어 반갑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4.13 20:31

노을대교

삽화=권휘원 화백 다리는 공간을 잇고 사람을 잇는다. 공간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는 일상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일상 곳곳에서 만나는 다리는 저마다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1995년 개봉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사람을 연결해 준 다리다. 잡지 표지에 게재할 다리 사진을 찍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에 도착한 사진 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그 곳에 사는 여성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의 나흘간의 사랑 얘기다. 짧은 사랑을 평생 가슴에 간직한 채 인생을 바쳐 가족을 지킨 프란체스카의 삶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즈먼 다리)에 남겨진다. 1981년 개봉한 또 다른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영국군 포로들을 동원해 콰이강에 군용 철도가 지나갈 다리를 건설하고 영국군이 다리를 폭파하는 내용이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감독상각색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을 휩쓸며 명작으로 남았다. 다리는 공간과 사람의 연결을 넘어 건축물 그 자체로도 가치를 갖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The Golden Gate Bridge), 영국 런던의 타워 브리지 등 세계 각국에는 저마다 그 나라의 랜드마크로 인식되는 다리들이 있다. 다리 고유의 공간 연결 기능을 넘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답고 유명한 다리들이 많다. 지난 2006년에는 올림픽대교, 서해대교, 진도대교 등 한국의 다리 시리즈 우표도 제작됐다. 부산은 광안대교와 영도대교, 남항대교 등 각기 다른 건축양식을 가진 7개 해안 교량을 묶어 관광자원화 하는 세븐 브릿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에는 해상 교량 드라이브 명소가 많다. 고흥 팔영대교, 완도 장보고대교, 목포대교, 영광 칠산대교 등에 이어 지난 2019년 4월에는 신안군 압해읍과 암태면을 잇는 7.22㎞의 천사대교가 개통했다. 천사대교는 신안군 6개 섬 지역의 공간 연결을 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전북에서도 명소가 될 다리 건설이 추진돼 왔다. 부안군 변산면~고창군 해리면을 연결하는 길이 7.48㎞의 부창대교다. 다리가 건설되면 62.5㎞에 달하는 통행 거리가 1/8 이상 줄고 통행 시간도 50분 이상 단축된다. 부창대교는 부산~경기 파주를 연결하는 국도 77호선(1239.4㎞)에 포함돼 있지만 17년째 표류중이다. 국도 77호선의 유일한 단절 구간이다. 석양이 지는 서해바다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어 가칭 노을대교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 9일 노을대교 건설 예정지를 방문한 국민의힘 정운천 국회의원은 전북 도민들의 17년의 기다림을 이제 끝맺어야 할 때라고 천명했다. 여야의 합심으로 노을대교 건설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4.12 17:42

각자 도생한 전북 정치권

삽화=권휘원 화백 도내 국회의원 수가 10명이지만 그나마 모래알이다. 당선될 때는 원팀으로 똘똘 뭉쳐 지역발전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으나 지금은 각개약진이다. 자신의 지역구 일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서남의대 폐교로 생긴 정원 49명의 남원공공의대 설립 문제도 남원이 지역구인 무소속 이용호 의원과 김성주 의원 정도만 신경 쓰지 나머지는 강 건너 불구경 식이다. 부산이나 광주 전남의원들은 지역이해가 걸리면 여야를 떠나 원팀으로 움직인다. 예산 국회가 열리면 아니꼬울 정도로 서로가 챙긴다. 최근 경북대와 전남대가 캠퍼스 혁신파크 신규사업지로 최종 선정됐다. 교육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가 공모한 이번 사업에 전북대 등 전국 23개 대학이 응모, 2개 대학이 최종 선정돼 학내에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전남대 선정은 광주시가 80억을 지원키로 한 것과 광주 전남 국회의원들이 한 몸이 되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 게 주효했다. 전주혁신도시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 안되는 이유가 부산지역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안된다. 물론 인프라 구축이 안된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전북정치력이 약한 탓이 크다. 중앙정치권에서 보면 전주와 전북은 안 보인다. 그 이유는 전북정치권의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중진이 없고 초재선으로 전북정치권이 짜여진 게 문제다. 국회는 철저하게 선수(選數)를 존중, 상임위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북이 그만큼 소외 당하고 있다. 민주당 일색인 전북에서 지사와 전주시장이 엇박자로 노는 것도 지역발전의 걸림돌이다. 역대 지사와 전주시장과의 관계가 협력관계가 아닌 치받는 관계가 돼버린 게 문제다. 유종근 지사와 김완주 시장, 김완주 지사와 송하진 시장, 송하진 지사와 김승수 시장 관계가 묘하게도 시장이 지사를 치받는 관계가 돼버려 전주발전이 안된다. 전북 인구 180만 붕괴도 전주가 도청소재지 기능을 다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재선한 송 지사나 김 시장이 계속 불편한 관계가 지속돼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송 지사가 시장을 두번이나 역임해 전주시정에 도움주고 싶어도 김 시장이 마이웨이로 가버려 남남 보다도 못한 사이가 돼버렸다. 지사를 꿈꿔온 김 시장이 특례시를 만들려고 강한 집착을 보였지만 결국 송 지사의 반대로 좌절되자 앙금만 남았다. 그 여파로 전주시정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꼴이 되었다. 전북도가 추진한 국제금융센터 건립도 송 지사와 김 시장이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댔으면 얼마든지 풀 수 있었다. 도가 재정적으로 시를 도와 전북은행 본점을 매입토록 해서 시청을 옮기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북은행이 반대해서 일을 그르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전북은행은 주식회사라서 잘못 투자하면 배임문제가 생긴다. 서한국 전북은행장은 부산은행처럼 도움 달라는 건 아니고 최소한 손해 보지 않도록만 해주면 혁신도시에 50층 이상의 국제금융센터를 지어 본점도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단체장의 불편한 관계가 전북발전을 꼬이게 만들었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4.11 16:43

룰라의 몰락과 귀환

삽화=권휘원 화백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룰라란 이름으로 친밀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2010년 임기를 마치면서 눈물로 전한 퇴임사다. 그를 두 번이나 선택했던 브라질 국민들은 그해 12월, 퇴임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87%의 높은 지지율로 그를 환송(?)했다. 1945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학교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열네 살 때 정식 노동자가 된 그는 노동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익을 위해 앞장선 그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군부 독재 정권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그는 1980년 노동자당을 창립해 정치에 입문했다.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선거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그는 네 번째 도전한 2002년 대선에서 당선했다. 강경 노조 지도자, 급진 좌파의 이미지를 벗고 중도 좌파로 변신한 덕분이었다. 빈곤과 심각한 국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빈곤층에 집중했던 그는 볼사 파밀리아 같은 사회 지원 프로그램으로 브라질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집권했던 8년 동안 브라질은 국가 부채를 해결했고 빈민은 줄었으며 세계 8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퇴임한지 7년 만에 뇌물 수수혐의를 받는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몰락했다. 2014년 시작된 부패척결수사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감독 페트라 코스타)는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그의 후견인인 국민 영웅 룰라가 어떤 정치적 메카니즘에 의해 탄핵이 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몰락하는가를 기록한 영화다. 부패척결을 내세운 일명 세차 작전. 수사 지휘에 나선 세르지우 모루 검사의 집요하고 편파적인 수사방식, 그런 모루 검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마치 권력비리를 캐고 있는 양 착각하는 언론의 여론몰이, 정치적 셈법에만 몰두해 있는 정치인들의 공격 등 영화에서 만나는 면면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지난 3월초 브라질 대법원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실형을 모두 무효화했다. 피선거권을 빼앗겼던 룰라에게 출마의 길이 열리면서 브라질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대선 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룰라는 1위다. 브라질 국민들이 룰라의 귀환을 반기는 이유가 있을 터.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4.08 17:50

문화재 지정된 김제 수류성당

삽화=권휘원 화백 모악산 자락에 있는 김제 금산면만큼 우리나라에서 종교 성지가 많은 곳은 없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금산사와 기독교 초기 ㄱ자 교회인 금산교회, 증산교의 성지인 증산법종교 본부, 그리고 전북지역 초창기 천주교 3대 성당 중 하나인 김제 수류성당이 금산면에 있다. 지난 5일 1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김제 수류성당이 전라북도 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금산면지역 4대 종교의 성지가 모두 문화재로 등재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금산사는 국가 중요사적으로, 증산법종교본부는 국가등록문화재로, 금산교회와 수류성당은 전북도 문화재다. 1890년대 완주 화산 되재성당과 익산 망성 나바위성당과 함께 호남 3대 성당으로 꼽는 김제 수류성당은 1889년 베르모렐 요셉 신부가 완주 구이면 안덕리에 세운 배재본당이 그 모태였다. 이후 수류로 성당이 이전되고 1901년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하지만 수류성당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2대 조조 주임신부가 갑오동학농민혁명 와중에 순교하고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이 성당에 불을 질러 신부와 수도자 신도 등 50여 명이 학살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수난과 시련 가운데도 동양권에서는 가장 많은 신부를 배출, 화율리에서만 15명의 신부가 나왔고 수도자들도 많다. 한국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수류성당에는 전북 최초의 신식학교인 인명학교가 세워져 한문과 신학문이 가르쳤고 후에 화율국민학교로 바뀌었다. 당시 수류성당의 관할은 김제뿐만 아니라 부안 정읍 순창 고창 담양 장성까지로 그 영향력이 컸다. 성당 본당은 한국전쟁 때 소실돼 1959년 재건됐지만 1890년대 지어진 종탑 현재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지난 2003년 신부와 스님, 그리고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화합과 꿈을 이루어 가는 영화 보리울의 여름이 수류성당과 화율초등학교, 귀신사 등지에서 촬영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김제시에선 지난 2002년부터 수류성지 성역화와 함께 문화재 지정작업에 나서 20년 만에야 전북도 문화재로 등재됐다. 이제 김제 금산면지역 4대 종교 성지가 모두 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김제시에서는 이들 종교문화자산을 잘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할 때다. 명산인 모악산과 함께 종교문화 유적지구로 조성하고 서로 연계해서 순례길이나 탐방코스 등으로 관광 상품화하면 시너지효과가 기대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4.07 17:54

투기 직원 ‘도매금’ 논란

삽화=권휘원 화백 부동산 투기 회오리가 공직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정부도 이번에 이를 뿌리뽑기 위해 공직자 재산 등록을 공무원 전체로 확대한다는 방침까지 내놓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전주시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근절 의지를 밝힌 가운데 연일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시는 이와 관련해서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투기 의심 다주택자 4명을 승진에서 탈락시켰다. 또 가짜 부동산 자료를 제출한 직원 승진도 취소한 바 있다. 3월 보직이동 때도 이같은 인사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직원들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 사이 코로나 상황이 2단계로 격상한 데다 부동산 전수조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여론 뭇매를 맞는 고위직의 탐욕은 양심불량 그 자체다. 전남 광양과 수도권 신도시에 시세 차익만을 노리고 내부 고급 정보를 이용한 그 지역 인사의 비도덕적 행태는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가관인 것은 개발 부서 담당자가 사업 예정지에 몰래 산 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도로 노선까지 제멋대로 변경한 것이다.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한 토지 소유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의 10.4%다. 반면에 고위 공직자가 땅을 갖고 있는 비율은 국민 평균보다 5배나 높다. 그만큼 고급 정보가 그들에게 집중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직자 입장에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그러나 하위직 공무원들 표정은 탐탁치 않아 보인다. 전후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울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읍면동 사무소 등에 근무하는 89급은 개발 정보나 시세차익 투기와는 거리가 멀다. 공직 입문이 짧아서인지 정보는커녕 경제적으로도 빠듯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다. 이들은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심리따라 자칫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전주시가 지난주 발표한 1가구 2주택 이상자에 대한 인사 불이익 규정 강화가 대표적이다. 실질적으로 작년 12월 17일 전주가 부동산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시는 투기의심 직원에 대해 강도 높은 인사 조치를 취해 왔다. 이처럼 이미 시행하고 있는 데다 수차례 엄중 경고까지 한 상황에서 재차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떠드는 것 자체가 곱지 않다는 것이다. 시류에 편승한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지적이다. 관건은 집 몇 채를 갖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전형적 투기냐 실수요냐 여부를 가리는 데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작금 지방의원 전수조사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이들 또한 볼멘소리를 자제하고 있다. 고위직을 포함한 극히 일부를 빼곤 묵묵히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공직자가 대부분이다. 인사(人事)는 개인 능력과 자질을 전제로 한다. 직무관련 정보를 이용한 투기 행위는 형사처벌 감이다. 인사 불이익 차원을 뛰어 넘는 문제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4.06 18:28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장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해 4월 해임된 뒤 지난 2월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최창학 한국국토정보공사(LX) 19대 사장이 최근 남은 임기 4개월여 동안 LX의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장으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LX는 이미 8개월 전 20대 김정렬 사장이 취임해 사상 초유의 한 지붕 두 사장 사태를 맞았다. 언제, 어디서나란 뜻의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장을 천명한 그는 전국 어느 지사나 본부, 어느 현장이든 근무 시간 중 불시에 방문해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시정조치 하도록 하고, 직무에 충실하고 있으면 아낌없이 격려해 주겠다고 밝혔다. 이미 서울과 인천지역 지사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행정소송 승소후 지난달 공식 입장 표명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가슴속에 불덩이를 안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해임 통보를 받은 뒤 소송을 진행하면서 겪었을 심적 고통을 본인 이외에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해임 사유 가운데 하나였던 경북도와의 드론교육센터 유치 관련 MOU 체결은 전북도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다. MOU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에 불과하다지만 기관장의 고향에서 오해를 살 수 있는 MOU가 진행된 것은 공정성 시비를 부를 수 있는 신중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방이전 공공기관들이 모두 본사 소재지역에만 산하 기관과 시설을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에 자리잡은 공공기관은 해당 지역과의 상생이 우선이다. 지역출신 공공기관장 임명을 바라는 지역의 목소리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전주 출신인 김성주 국회의원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추진한 기금운용본부 관련 여러 금융기관들의 전주 이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직 판결을 받은 그는 본인의 명예회복과 자신으로 인해 인사 불이익을 받은 직원 구제 등을 수습 방안으로 제시했다. 20대 사장의 역할을 존중해 자신은 현장 점검과 직원 격려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장으로 활동하겠다는 의사를 담은 제안인 셈이다. 그러나 LX 내부의 분위기는 그의 뜻과는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사장 해임 과정에서 이 곳 저 곳으로 부터 다섯 차례나 기관 감사를 받아야 했던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고, 경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서 경제적 손실도 컸기 때문이다. 생소한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장이 그리 반가워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최창학 LX 19대 사장은 자신의 해임 사건으로 자신이 평생 치유하기 힘든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아울러 국가와 LX, 후임 사장 모두가 피해자라고 밝혔다. 그가 천명한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장 활동이 피해를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면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4.05 20:04

원정쇼핑

삽화=권휘원 화백 대전과 광주권의 세력이 갈수록 확대돼 전주시의 시세가 약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전주가 독자적인 상권을 형성해 자금 역외유출현상이 심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대전 광주에 대형유통시설이 들어서면서 원정쇼핑객이 늘어나 상권이 위축되고 있다. 심지어 1시간 권에 있는 충남 부여읍 롯데아웃렛을 찾는 쇼핑객이 늘어나 자존심이 상할 정도다. 전주시가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대형 유통시설 입점을 막아버린 것이 원정쇼핑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 때문에 기존 유통시설과 로드샵마저도 장사가 안돼 아우성이다. 전주에 명품을 파는 고급백화점이 없어 KTX를 이용해서 서울 백화점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심지어 젊은이들은 주말에 신촌의 홍대거리나 강남 유흥가를 나돌면서 쇼핑까지 하고 있다. 코로나19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젊음을 발산하고 낭만을 구가하는 새로운 쇼핑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젊은층들은 발품만 잘 팔면 교통비 등 경비도 건질 수 있다면서 쇼핑도 하고 문화도 함께 즐기는 이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은 익명성이 보장되고 명품을 믿고 구입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서울 신세계롯데현대갤러리아백화점을 즐겨 찾는다. 이들은 명소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전주에서 맛 볼 수 없는 맛 좋은 음식을 다양하게 즐기면서 부부간에 쇼핑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갈수록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쇼핑패턴이 차츰 서울 백화점으로 쏠리고 있다. 웬만한 맞벌이들도 서울 가서 물건 사는 것을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전주 롯데백화점의 명품이 별로고 상품 질도 떨어져 서울가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왕이면 믿고 명품도 사고 다양한 문화까지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서울로 발길을 돌린다는 것. 지난해 6월 26일 대전 유성구 용산동에 개점한 현대백화점 대전 프리미엄 아웃렛을 찾는 전주사람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전주나 익산에서 고속도로로 1시간이면 가기 때문에 주말이 아니어도 평일에도 많이 찾고 있다. 3000억을 들여 오픈한 이 프리미엄 아웃렛은 영업매장이 1만6210평으로 넓고 메이커가 다양하게 입점해 있어 만족도를 높여 주고 있다. 특히 각종 어린이놀이시설까지 갖춰 놓아 가족 단위 젊은 쇼핑객을 유인하고 있다. 전주에는 코스트코가 없어 드라이브를 겸해서 대전까지 가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 순창고창남원정읍에서도 광주로 쇼핑가는 사람들이 많다. 부여읍 롯데아울렛 점주들은 전주나 익산 등 전북에서 오신 손님들이 많다면서 이들이 매상을 많이 올려주는 반가운 손님들이라고 말한다. 뜻 있는 시민 가운데는 전주시가 대형 유통시설 진입을 막은 게 결국은 원정쇼핑객을 많게 만들었다면서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틀어 막는다고 골목상권을 부활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지금이라도 전주시는 (주)자광이 2조5000억원을 투자해서 500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대한방직터개발사업을 추진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4.04 16:58

낙서와 예술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 달,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은 작가가 있다. 영국의 그라피티(graffiti)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뱅크시다. 그의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항상 주목을 받아왔지만, 지난 3월 23일(현지 시간) 열린 크리스티 경매 결과는 더 특별했다. 한 소년이 배트맨이나 스파이더 같은 인형 대신 망토를 입은 간호사 인형을 들고 노는 모습을 담은 그림 게임 체인저. 자그마치 1440만 파운드(한화 224억 원)에 낙찰된 이 그림은 코로나 19 팬데믹이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해 5월, 뱅크시가 의료진에 대한 감사와 응원의 뜻을 담아 영국 사우샘프턴 종합병원에 기증한 것이었다. 뱅크시는 그라피티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신분을 숨기고 세계 주요 미술관을 급습해 도둑 전시를 하거나 도시를 찾아다니며 거대 자본과 환경파괴, 전쟁을 수단으로 여기는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거리의 벽화들로 예술의 힘을 증명해온 작가다. 권력과 제도에 저항하며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온 그가 코로나 팬더믹의 위기 상황을 지나칠 리 없었다. 지난해 7월, 영국 런던의 지하철에 방역요원처럼 차려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열차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한 뒤 열차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채기를 하는 쥐, 마스크를 쓴 쥐, 마스크 쓰라고 권하는 쥐 등 다양한 모습의 쥐가 등장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뱅크시였다. 이 그라피티는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못 일어나 란 제목의 동영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열차 안의 그림은 지하철회사의 낙서 반대 규정을 충실하게(?) 따른 청소원에 의해 깨끗이 지워졌다. 사실 의뢰를 받거나 허락을 받지 않고 그리는 그라피티는 위법이다. 그러나 화제가 되는 대부분의 그라피티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영역에 놓인 것들이다. 뱅크시의 작업도 예외가 아닌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그라피티가 갖는 힘이 자유롭고 도발적인 방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롯데월드몰 지하 1층 벽에 전시되어 있던 세계적 그라피티 작가 존원(Jon One)의 작품 거리의 소음을 20대 연인이 훼손해 화제(?)가 됐다. 그림 앞에 놓여 있는 붓과 물감통을 보고 참여 퍼포먼스로 완성되는 그림으로 생각했다는 이들의 행위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낙서가 더해진 그림을 보니 낙서가 된 예술과 예술이 된 낙서의 차이가 궁금해진다. 이 또한 예술이 가진 힘일 터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4.01 17:49

드라마와 역사왜곡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달 역사왜곡 논란을 초래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송 2회 만에 전격 종영됐다. 방송 드라마 사상 초유의 일로 그만큼 역사왜곡 논란의 파장이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방송사로선 전체 드라마 분량의 80% 정도 이미 촬영을 마친 데다 방영권료 대부분을 선지급한 상태라 큰 손실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당장 방송을 취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역사왜곡 논란 사태가 심각했다. 첫 방송이 나오자마자 온라인에서 역사왜곡 논란이 제기된 데 이어 청와대 국민 청원과 방송통신위원회 민원 제기, 광고 철회 등이 연달았다. 특히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조선왕조에 대한 허황적이고 부정적인 묘사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전주이씨종친회는 살인마로 묘사된 태종과 6대조 할아버지를 욕하는 충녕대군(세종) 등이 조선왕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다며 방송 중지와 함께 법적 대응을 표명했다. 더욱이 최근 중국이 김치 한복 등의 종주국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는 문화 동북공정에 나선 상황에서 드라마 주인공들의 중국풍 의상과 소품 등이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드라마 제작사에 중국 자본이 투자됐고 극본을 쓴 작가도 한중 합작 제작사와 계약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사왜곡 논란이 증폭됐다. 이 드라마 작가는 과거 작품에서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사실 드라마에서 폄훼나 미화 등 왜곡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안방 드라마에선 전라도 사람들은 대게 가정부나 막노동꾼 등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주로 악역으로 묘사돼 특정지역 비하 문제로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문제는 드라마에서 단순히 흥미유발이나 시청률을 의식해 가공된 역사적 상상력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거나 전혀 다를 경우 그 폐해와 악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국민들, 특히 자라나는 다음세대에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결국 왜곡된 역사관은 민족의식과 정체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뿐만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맞아 문화콘텐츠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거나 SNS를 통해 제한없이 접하는 시대에 잘못된 역사적 창작물은 대한민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 아무리 허구적 상상력이 허용되는 드라마라 해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묘사할 땐 사실이나 사료에 기초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3.31 17:55

‘내탓’ 투기의혹

삽화=권휘원 화백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자치단체장지방의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지난주 공직자 재산이 공개되면서 문재인정부의 청렴기준인 1주택 그 이상을 보유한 고위직 공무원과 시장군수 등이 수두룩했다. 실생활 거주지는 물론 서울제주도까지 주택과 부동산을 상당수 가지고 있었다. 직장생활의 편의성을 고려하거나 노후설계에 따른 상식선의 보유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사회통념을 벗어나 양도차익만을 노린 전형적 투기 여부다. 개중에는 물의를 일으킨 전문 투기꾼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예도 적지 않았다. 도내 공직자 가운데 일부 논란이 있긴 하지만 도의회 김기영박용근 의원 사례가 눈에 띈다. 전주방송 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은 새만금 방조제 개통 이후 투기바람이 불어닥쳤던 고군산군도와 제주도에만 30여 개 부동산을 갖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주목 받는 선유도 등 5개 섬에 2014년부터 3년간 집중적으로 여러 필지의 땅을 구입했다. 그 중 선유도 한 필지는 공유자가 20명이나 돼 전형적 투기수법이란 의혹을 사고 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 부동산까지 눈을 돌렸다. 이번엔 부인과 10대 딸 2명 명의로 토지를 쪼개서 구입, 지분을 나눴다. 이들 부동산은 2016년 한 해에만 공시지가가 40%나 폭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사 출신답게 김 의원의 치밀한 투자전략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반면에 박용근 의원 부부는 건물 9채를 보유, 합리적 의심에 대한 집중 표적이 됐다. 전주시내 오피스텔과 연립주택 외에 부인명의 아파트를 신고했다. 지역구인 장수와 서울 강남에도 각각 단독주택과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구입한 건물마다 전세보증금과 금융대출 포함해 14억원을 끼고 있었다. 이른바 갭투자 의혹에 대한 강한 불신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문승우 의원도 부인이 개발 호재가 많은 평택과 당진에 여러 필지의 땅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의혹과 관련해 이들 의원들은 노후 대비용이라며 전형적 투기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들 해명에도 보통 사람들 상식과는 너무 거리감이 있는지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성 싶다. 이들에게 더욱 엄중한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는 건 다름아닌 도의원 신분이라 그렇다. 행정관청산하기관 단체 등을 감시견제함은 물론 예산인사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며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3명은 얼마 전에도 도청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위원자격으로 참여한 바 있다. 후보자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혹독하게 검증하고 적격여부를 가리는 일이다. 더욱이 행정사무감사 때는 수감기관 인사예산을 비롯해 사업추진 타당성 여부 등을 지적하고 추궁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인으로서 최소한이라도 부끄러운 일이나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선 곤란하다. 남을 탓하기 전에 본인 처신부터 엄격히 하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3.30 20:24

역전의 명수

삽화=권휘원 화백 야구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다. 객관적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관중수와 시청률 등을 감안한 국내 인기 스포츠 순위에서 야구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팬 숫자를 고려한 세계 스포츠 인기 순위에서도 야구는 10위권 안에 드는 종목이다. 일본에서 야구는 스모와 함께 최고 인기 스포츠로 꼽힌다. 지난주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일본 고시엔대회(선발고교야구대회)에서 거둔 첫 승이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24일 열린 제93회 고시엔대회에서 교토국제고는 시바타고에 연장 승부 끝에 5-4로 역전승했다. 외국계 학교로는 사상 처음으로 고시엔대회에 출전해 첫 승의 기록까지 세웠다. 일본 고교야구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고시엔대회는 전국 3940개 팀이 치열한 지역 예선을 거쳐 1%도 안되는 32개 학교만 본선 무대에 선다. 일본 언론들도 학생수 131명에 불과한 교토국제고의 고시엔대회 진출을 기적으로 표현했을 정도다. 1999년 창단한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고시엔 출전과 첫 승은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고 재일동포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줬다. 일본 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고시엔구장은 물론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전국에 한국어 교가를 세 차례나 울려퍼지게 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27일 열린 16강전에서는 5-4로 역전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고시엔대회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새겼다. 한국계 교토국제고의 기적에 앞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야구의 콧대를 꺾은 학교는 군산상고다. 군산상고는 49년 전인 1972년 7월 황금사자기 대회 결승전에서 부산고에 9회초까지 1대 4로 끌려가 패색이 짙던 경기를 9회말 2사 후 5대 4의 대역전극으로 뒤집었다. 역전의 명수란 애칭을 얻었고,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역전의 명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한국 고교 대표팀은 두 달 뒤인 9월 일본에서 열린 5차례 친선 경기에서 4승 1패의 성적을 거두며 한국 고교야구의 매운 맛을 보여주고 돌아왔다. 군산상고는 1980년대 초에는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팔색조 싸움닭으로 불린 조계현 투수(현 기아 타이거즈 단장)의 눈부신 활약으로 청룡기와 봉황대기에서 우승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군산상고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군산시민은 물론 전북도민들이 TV와 라디오로 야구중계에 몰입할 정도였다. 1968년 창단한 군산상고 야구부는 국내 고교야구 3대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는 물론 대통령배, 전국체전 등 전국대회 16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16년 제97회 전국체전 우승 이후 아직 우승 소식이 없다. 다음달 17일부터 올해 고교야구대회 일정이 시작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도민들에게 즐거운 소식을 들려줄 군산상고 야구부의 멋진 부활을 기대해 본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3.29 17:55

홀로 웃지요(獨笑)

삽화=권휘원 화백 인간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지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요즘은 꽃 피는 순서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봄의 전령사인 동백매화산수유목련진달래개나리벚꽃 순으로 꽃이 피었다. 지금은 이상기온 여파로 한꺼번에 꽃이 피고 진다. 전주 삼천의 가로수인 벚꽃이 만개했다. 마치 꽃 대궐을 이룬 느낌이다. 화사하기로는 벚꽃을 능가할만한 꽃이 없다. 일본 국화인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도산공원에 왜 벚꽃나무를 심었냐고 야단치자 당시 서울시청 녹지과장이었던 윤태경 과장이 벚꽃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라고 답변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일화가 있다. 그래서 각 시군마다 앞다퉈가며 벚꽃나무를 많이 심었다. 전북대 임학과 출신인 윤 과장은 그 이후 도 산림국장옥구군수남원시장강원도 동해 출장소장을 역임했다. 정약용이 유배생활 중 강경에서 쓴 나 홀로 웃는다(獨笑)는 시 구절이 떠오른다.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月滿頻値雲)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花開風誤之)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거야(物物盡如此)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 걸(獨笑無人知). 가장 힘든 시기에 다산은 혼자 있으면서 인간사를 통찰했다. 다산이 강진 등 유배지에서 18년간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지 않았으면 목민심서 등 주옥같은 500권의 저작물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관직에 나가 출세하거나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면 자신도 모르게 시기질투하는 사람들로 마(魔)가 낀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훼방꾼이 되는 것이다. 면전에서는 성공한 것을 칭찬하고 박수 치지만 뒤돌아서면 이기심 때문에 험담을 늘어놓는 등 깎아 내리기 일색이다. 그렇게 화사하게 핀 꽃도 비바람 때문에 10일을 못 넘긴다. 영원히 부귀와 권세를 누릴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한 게 세상의 이치요 인간사다. 잘 나갈 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업신여기거나 깔아뭉개는 경우가 있다. 다산은 그래서 혼자 웃는다(獨笑)며 마침표를 찍었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가진 자나 없는 자 할 것 없이 제대로 소통을 못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다. 백신 접종자가 늘면서 차츰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감이 없지 않다. 아무튼 이 험난한 세파를 지혜롭게 살려면 겸손 밖에 없다. 주역 15번째 괘가 산지겸 겸손괘다.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겸손한 사람 한테는 주위에 좋은 친구가 많다.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겸양지덕(謙讓之德)을 최고로 친다. 정치인 등 힘센 사람들이 한 번쯤 새겨들었으면 하는 맘이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3.28 16:52

양희은의 '뜻밖의 만남'

삽화=권휘원 화백 양희은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는 엄마와 딸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사랑받는 곡이다. 이 곡은 더 깊어진 양희은의 목소리에 얹힌 시적 가사만으로도 울컥해지지만 또 다른 가수와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대목은 숙연해지면서도 마음 따뜻해지는 울림이 더 크게 온다. 양희은은 지난 2014년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후배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해 새로운 곡을 내놓는 싱글 연작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이 그것이다. <엄마가 딸에게>도 이 프로젝트의 네 번째 결실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노래는 아홉 곡인데 그 면면이 모두 새롭고 뜨겁고 아름답고 에너지가 넘친다. 새 곡이 발표될 때마다 그의 프로젝트가 주목 받는 이유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음악가들 또한 눈길을 끈다. 윤종신, 이적, 이상순, 김창기, 아스트로비츠, 강승원, 김반장, 악동뮤지션, 성시경에 이르기 까지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레게 가수, 프로듀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실력을 인정받는 고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모두가 양 희은의 프러포즈를 받았을 터인데, 장르의 영역도 세대차도 만만치 않다. 이를테면 다섯 번째 곡 <슬픔 이젠 안녕>은 프로듀서이자 일렉트로닉 음악가 아스트로비츠와의 작업 결실이고, 일곱 번째 곡 <요즘 어때? 위 러뷰 쏘>는 레게 가수 김반장과의 콜라보로 포크와 레게 소울이 만났다. 여덟 번째 콜라보 <나무>는 47년이나 나이차가 있는 악동뮤지션과의 작업이지만 세대차는 물론 시대의 간극 없이 전달되는 음악적 조화가 놀랍다. 프로젝트의 결실은 대부분 후배들이 곡을 만들고 양희은이 부르는 형식이지만 콜라보 작업은 듀엣이나 피처링 등 단순한 결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까지 이어내는 밀도 있는 작업으로 완성도를 높인다. 사실 예술의 영역에서 콜라보는 낯설지 않다. 한 장르 안에서 성격을 달리하는 영역의 작업이 조화를 이루거나 전혀 다른 장르와 장르가 만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양희은의 콜라보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은 더 특별하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그야말로 특별한 존재인 그가 같은 시대를 사는 후배들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세상과 새롭게 교류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가 갖는 무게 때문이다. 세대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이 예술의 영역에서만 의미 있는 일은 아닐 터. 양희은의 지치지 않는 음악적 도전이 더 빛나 보이는 이유도 거기 있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3.25 17:58

조선의 마사다 웅치 전적지

삽화=권휘원 화백 이스라엘 남부 사해(死海)에 인접한 마사다 항전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긍심이자 저항정신의 상징이다. AD 70년 로마군대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유대인 열심당원과 가족 960명이 천혜의 요새인 마사다로 이주해 최후에 항전을 벌였던 전적지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마사다는 난공불락의 지형으로 로마 제10군단이 2년 넘게 포위 공격을 시도했지만 점령하지 못했다. 이에 로마군이 유대인을 동원해 수백m 높이의 공격용 경사로를 구축하고 마지막 공격에 나서려던 때 저항군과 가족들은 모두 집단 자결을 선택하고 만다. 그들은 로마군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저항군이 먼저 자기 가족을 죽이고 다시 모여 열 사람씩 조를 짜서 한 사람이 아홉 명을 죽이는 방식으로 죽음의 의식을 치렀다. 그렇게 남은 최후의 한 사람은 성에 불을 지른 후 자결했다. 마사다 항전지는 1963년~1965년 사이에 발굴돼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관생도와 장병들은 모두 마사다 항전지에서 임관선서와 훈련 수료식을 가질 정도로 이스라엘 민족혼의 상징이 됐다. 우리 지역에도 이스라엘의 마사다 항전지와 같은 임진왜란 전적지가 있다. 완주 소양과 진안 부귀 일대에 있는 웅치 전적지다. 웅치 전적지는 1592년 8월 14일(음력 7월 8일) 관군과 의병 그리고 지역민 등 3000여 명이 1만여 명의 왜군에 맞서 모두 죽음으로 결사 항전한 곳이다. 비록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전주성과 호남을 지켜낸 최후의 보루가 됐고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단초가 됐다. 하지만 웅치 전적지는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힌 채 조명받지 못해왔다. 임진왜란 3대 대첩 못지않은 역사적 전사적 중요성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던 것. 그동안 완주진안지역 주민 중심으로 면 단위 기념행사를 치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최근에서야 지역 주민과 향토사학계, 언론을 중심으로 기념사업과 재조명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라북도에선 국가 사적지 지정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웅치 전적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기념관 건립과 역사탐방길 조성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웅치 전적지와 함께 완주 운주와 충남 금산 일대의 이치 전적지도 사적지 지정에 나서야 한다. 이름 없는 4백여 명의 농민이 관군과 함께 왜군 1만여 명과 맞서 장렬히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웅치이치 전적지는 위국 충절의 상징이자 우리 민족혼의 표상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3.24 17:43

시군 의원들 왜 이러나

삽화=권휘원 화백 시군 의원의 부도덕한 행태가 끊이지 않으면서 기초의회 폐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연일 터지는 비위와 추문으로 인해 이들의 위상뿐 아니라 의회 존재자체가 위협받는 형국이다. 특히 동료 의원간 성 스캔들도 낯 뜨거운데 한술 더 떠 제식구 감싸기식 징계는 스스로 화를 부르는 꼴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그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 예의는 고사하고 지역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 지 꽤 됐다. 오죽하면 주민들은 민폐를 끼치고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초의회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폐지론에 가세하고 있다. 이해관계에 얽힌 독점적 먹이사슬 구조가 정치오염의 뿌리임에 틀림없다. 시장 군수기초의원 공천권을 사실상 거머쥔 국회의원부터 기득권 지키기에만 열을 올린다. 더욱이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특정정당 싹쓸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해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후보자를 검증하고 책임정치 실현을 위해 2005년 도입한 게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다. 지방 정치인의 정책비리에 대해 소속 정당에게 공동 책임을 묻자는 취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함량미달 인사의 정치권 진입 통로로 악용되기 일쑤다. 최근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출마자 전과자 비율은 40% 선이다. 이는 2010년 선거 때 12%보다 무려 3배다. 때문에 2012년 여야 대선후보까지 나서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을 내놓을 정도다. 그 이후 시대 흐름도 폐지론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법 개정을 주도하는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이들 공천권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따지고 보면 시장군수 상당수가 이들 시군의원 무소불위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소속 정당이 같은 데다 국회의원과 삼각 연결고리를 통해 한 통속이 된 것이다. 집행부의회 관계가 견제감시라는 본래 기능이 작동되기 어려운 구조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포함 도내 11개 자치단체장과 13개의회 의장단이 민주당 일색이었다. 기초의회 또한 민주당의 압도적 우위는 여전했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 인사와 이권개입 그리고 폭행막말 갑질행위 등 이들의 막가파식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유권자 역시 이들의 무한 책임에서 비껴갈 수가 없다. 일꾼으로 뽑아놓고 제대로 일하는 지 감시를 소홀히 해 걸러내지 못한 탓이다. 이 와중에 국회입법조사처가 17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밝힌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작년 12월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방의회 권한이 크게 강화된 만큼 그에 따른 책임감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의회 사무직원 인사권이 의장에 부여될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방의원 정책보좌관까지 둘 수 있게 됐다. 의정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일환이다. 달리 해석하면 지방의회에 거는 국민들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 셈이다. 그런데 작금의 시군 의원들 불미스런 행태는 이런 기대와는 반대로 역주행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3.23 20:13

언택트 마라톤

삽화=권휘원 화백 코로나19 대유행으로 1년 연기돼 오는 7월 23일 개막할 예정인 도쿄올림픽이 해외 관중없이 치러진다.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이 지난 20일 이같은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이미 해외에 판매된 티켓 63만장이 환불 조치되고 항공권과 숙박요금 등을 포함하면 손실액이 무려 16조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중지나 재연기를 주장하는 여론도 여전히 높다. 참가 선수와 대회 관계자, 취재진 등 수만 명이 움직여야 해 코로나19 집단 감염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공익재단법인인 신문통신조사회가 지난 1월 한국미국중국프랑스타이 등 5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도쿄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인 의견이 70%를 넘었다. 타이가 95.6%로 가장 높았고 한국(94.7%), 중국(82.1%), 미국(74.45), 프랑스(70.6%)가 뒤를 이었다. 도쿄올림픽은 개최되더라도 일본 내 관객수 제한이 불가피해 초라한 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겠지만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이 사라진 밋밋한 올림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의 대회 진행 여부도 관심이다. 수 백명의 선수가 같은 출발선에서 모여 함께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국내에서 열려온 각종 마라톤대회도 중단되거나 비대면(언택트) 마라톤 대회로 변신하고 있다. 다음달 열리는 대구 국제마라톤대회는 세계 최초로 언택트 레이스로 펼쳐진다. 4월 한 달간 참가자들이 국내외 어느 곳에서든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위치기반 서비스 등이 탑재된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달리면 기록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동 업로드된다. 지난해 10월~11월 인천에서는 언택트 마라톤대회인 코로나19 극복 버추얼 레이스가 펼쳐졌고, 경주 벚꽃마라톤대회도 오는 26일부터 4월 8일까지 언택트 레이스로 개최된다. 전북에서도 오는 6월 한 달간 언택트 천사마라톤대회가 개최돼 주목된다.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대회 조직위원회가 대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해 마련한 대회다. 참가비 없이 진행되는 이번 대회는 참가자가 레이스를 완주할 경우 기부 후원사를 통해 1인당 1만원이 사회복지단체에 기부되는 착한 마라톤대회다. 하프(21㎞), 10㎞, 5㎞ 등 본인이 신청한 거리를 전국 어디에서나 달리고 런닝앱을 이용해 본인의 기록을 대회 전용앱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올림픽 개최까지 어렵게 할 정도로 코로나19는 일부 프로 종목을 제외한 스포츠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즐겨온 다양한 체육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체육활동은 그나마 코로나 블루를 완화시켜줄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히지만 각종 제약으로 여의치 않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언택트 마라톤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듯 싶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3.22 17:52

벌써부터 난리법석

삽화=권휘원 화백 선출된 대표를 보면 그 지역 주민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게 정치적 민도다.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로 민선시대가 열리면서 주민들의 선거참여가 부쩍 늘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뒤바꿔지고 있다. 그러나 각종 선거결과가 이성적인 판단 보다는 거의 지연혈연학연에 의한 지역연고주의 내지는 감성투표에 기인한 것이어서 아이로니컬 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지세력 간에 살풍경이 펼쳐진다. 이미 지방선거에 나설 대진윤곽이 현역을 중심으로 거의 드러났다. 도지사교육감시장군수도의원시군의원 등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 같다. 시 지역은 단체장과 도의원 후보 간의 경계가 명확하지만 군 지역은 군수나 도의원을 한두 명 뽑기 때문에 모호하다. 군은 도의원들이 군수의 잠재적 경쟁자라서 각종 행사 때마다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펼친다. 행사 때마다 아예 도의원을 초청하지 않거나 설령 초청해도 인사소개를 빼거나 마이크 잡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간 선거를 자주 치르다 보니까 도시나 농촌 모두가 선거전문가를 뺨칠 정도의 선거꾼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들은 실전경험이 풍부해 표 성향을 분석해서 자기편으로 끌어모으는데 이골나 있다. 선거꾼이 거의 직업이 되다시피 했다. 특히 시 지역은 시장 주변에서 꿀단지 맛을 본 문화권력자들이 꿀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편 가르기에 열중이다. 이들은 각종 보조사업에 빨대를 들이대고 특혜를 누려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문제는 현직자 캠프에서 편 가르기를 지나칠 정도로 하면서 반대자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이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영란법 때문에 경조사비가 제약을 받지만 5만원권이 나오면서 알게 모르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나간다. 선거구민 애경사 때 최소 5만원 이상은 챙겨줘야 하고 때로는 그 이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걸 소홀히 했다가는 금방 입방아에 올라 잃는 게 엄청나다는 것. 농촌은 거의 경로당을 중심으로 동고동락하기 때문에 입뉴스가 무섭다. 누가 더 친경로당 후보냐에 따라 표심이 갈리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표를 찍을 때마다 후보자와 자신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다. 시군청이 돈과 정보를 거의 장악하기 때문에 어떤 후보를 밀어야 내가 좋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후보마다 다양한 공약을 내걸지만 실상은 누가 더 내밀하게 이해관계를 폭넓게 맺어 두느냐가 중요하다. 코로나19로 건설업체나 자영업자들이 경영난 악화로 부도위기에 내몰리자 내년 선거를 생존전략의 출구로 여기고 있다. 선거꾼들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챙기려고 불 탈법을 교묘하게 부추겨 그 어느 때보다 돈 선거 유혹이 남아 있다. 지금 전북은 돈과 사람이 모이지 않아 가장 살기가 힘든 곳이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성 있고 정치력 있는 인물을 시장군수로 뽑아야 한다. 꽃 피는 춘삼월에 벌써부터 지방권력을 장악하려는 수 싸움으로 난리법석이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3.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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