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03 22:17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김진애의 공간정치

삽화=권휘원 화백 제 정치적 코드는 공간정치입니다. 우리가 산업이나 복지를 이야기하지만, 공간은 아주 큰 핵심 과제 중 하나예요. 그런데도 나쁜 공간정치가 횡행합니다. 혁신도시는 방법에 있어 미흡함과 아쉬움이 있지만 좋은 공간정치지요. 그러나 4대강 대운하 사업은 나쁜 공간정치의 전형입니다. 실제로 지방선거의 가장 큰 이슈가 4대강이었잖아요. 10여 년 전, 당시 1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진애 전 의원이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좋은 공간정치의 개념을 우리 사회에 많이 퍼뜨리게 하는 일을 자신의 정치적 활동 동기로 꼽았던 김 전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어렵게(?) 입성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여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을 때 역시 김진애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정치철학인 공간정치의 가치를 확신하며 동의를 구하는 일에 거침없었던 이미지가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서울시민이 아닌데도 꾸준히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성가시기 보다는 오래전 인터뷰가 떠올랐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도시건축가로 서울 뿐 아니라 대한민국 도시들을 줄곧 깊이 들여다보아온 그가 당시 새롭게 시작한 오래된 도시들의 도시 만들기를 주목하며 내놓았던 조언이 있었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공공의 역할. 시민들에게 개발될 수 있다는 헛꿈을 불어넣지 말고 살기 좋은 동네를 위해 도서관이나 커뮤니티센터와 같은 생활서비스 공간을 만들라거나 일자리 역시 숫자로 키우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새만금 같은 새로운 도시라면 어떨까. 상주인구보다 유동인구를 늘리는 도시. 상주인구는 400만 명이지만 유동인구 1000만 명이 매일 움직이는 파리나 상주인구 30만 명에 120만 명이 움직이는 두바이 같은 도시를 목표로 해야 성공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계획 자체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던 그가 새만금 산업의 중심으로 식품클러스트 산업을 꼽은 것이나 국내 연안항을 연결해 중국과 교역의 앵커로 역할하게 해야 한다는 분석의 바탕에도 역시 공간정치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그는 지난 17일, 여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했다. 사실이변은 없었다는 평이 자연스러울 만큼 결과는 예상된 것이었다. 그가 국회의원직 사퇴라는 강수까지 두며 나선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그래서 더 명징해지는 것이 있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공간정치의 힘이다.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보니 10년도 더 지난 그의 조언들이 더 새로워진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3.18 17:55

합계출산율과 인구 정책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달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 통계 잠정치를 보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꾸준히 증가해오던 인구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자연 감소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2400명으로 전년 대비 3만300명(10.0%)이 감소한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5100명으로 전년보다 1만명(3.4%)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구 자연증감은 ―3만2700명을 기록했다.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4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0명대를 기록했으며 세계 220개 국가 가운데 최하위다. 지난해 전라북도의 합계출산율은 0.91명으로 도 단위 광역자치단체 중 경기도 0.88명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전북은 3년 연속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북의 인구 자연증가율은 ―3.6%로 전남 ―4.2%, 경북 ―3.8%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 전북의 합계출산율이 매우 저조한 가운데 임실군과 순창군이 깜짝 기록을 보여 눈길을 끈다. 임실군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77로 장흥군과 함께 2위를 기록했고 순창군은 1.66으로 철원군과 함께 네 번째로 높았다. 1위는 영광군으로 2.46명, 3위는 해남군으로 1.67을 기록했다. 진안군도 1.63으로 합계출산율이 비교적 높았고 장수군 1.28 고창군 1.25 남원시 1.22 무주군 1.11로 1명대를 기록했다. 반면 전주시 0.81 익산시 0.85 정읍시 0.87 등 시 지역이 대체로 저조했다. 임실군과 순창군의 합계출산율이 높은 비결은 타 시군에 비해 파격적인 출산보육정책을 꼽는다. 임실군은 첫째아이 출산시 300만원, 넷째 이상은 800만원을 지원하고 산모 신생아 건강서비스비용으로 33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순창군도 첫째아이 300만원, 둘째 460만원, 셋째 1000만원, 넷째 이상은 1500만원을 지원한다. 합계출산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광군은 군 단위에 전국 최초로 인구일자리정책실을 신설하고 출산과 신생아 양육 등 다양한 맞춤형 출산시책을 펼치고 있다. 합계출산율 하락과 인구 자연감소 확대는 인구 절벽을 초래하고 결국 지역 소멸과 국가 소멸로 이어진다. 데이빗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는 몇 해 전 지구상에서 인구 소멸 국가 1호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에는 과연 그럴까 의문을 표했지만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자치단체는 위기의식도 없고 인구대책도 미흡하다. 출산과 인구 정책은 포플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3.17 19:58

오목대, LH 무산과 제3금융중심지

삽화=권휘원 화백 신도시 예정지역에 직원들 투기의혹으로 인해 LH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조직해체까지 거론되는 LH는 지난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묶어 출범한 공기업이다. 전북과의 인연은 또 다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애초 전북에 오기로 돼 있었는데 계획이 틀어지면서 대신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가 도민들 품에 안겼다. 전북 제3금융중심지 시대의 싹을 틔운 계기가 된 것이다. 137조 원의 국민연금 위탁자산 업무를 맡는 하나펀드서비스 전주센터가 지난 10일 문을 열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전북혁신도시로 옮긴 뒤 국내외 은행증권 등 6개 금융기관이 새로운 사무실을 마련했다. 신한하나은행 수탁사무소 개설도 곧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은 이미 800조를 넘어 1000조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금융기관 입주가 잇따르면서 자산운용 금융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동시에 금융생태계 조성에도 탄력이 붙는 양상이다. 지난 2011년 5월, LH의 진주 일괄이전이 확정돼 전북유치가 사실상 무산됐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도민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일시에 폭발했다.도지사의 무능함과 국회의원의 존재감 부족정치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며 울분을 토했다. 특히 유치를 호언장담했던 김완주 지사와 국회의원 등 정치권에 대한 규탄행렬이 이어지면서 즉각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삼성의 새만금 투자약속과 프로야구 제10구단 유치마저 물 건너 가자 도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엔 LH 무산에 따른 도민 대사기극에 불과하다며 김 지사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LH 무산 도민 궐기대회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이 지금 권력 중심부에 포진해 있다. 제3금융중심지는 LH 무산에 대한 치유책 일환인 국민연금 입주와 연계돼 있다. 더군다나 전북의 핵심현안이기에 정부 지정이 빨리 이뤄지도록 힘을 보태야 할 때다. 전주시장이던 송하진 지사와 국회의원였던 정세균 총리를 비롯해 정무부지사였던 김승수 시장, 도의원신분 김성주 의원과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정운천 의원, 이춘석 국회 사무총장 등이 그 때 현장에 있었다. 제3금융중심지 상황도 10년 전 LH 무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 대선공약인데도 기득권 지키는데만 혈안인 부산지역 정치권의 노골적 반대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외부 탓만 할 처지도 못 된다. 21대 국회 초재선 의원들이 입만 열면 외치던 원팀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다. 초기 제3금융중심지 문제를 다루는 국회 정무위에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아 도민들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얼마되지 않아 전북현안을 놓고 종종 마찰음이 들렸다. 급기야 최근에는 대선후보 따라 각자도생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전북 현안추진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LH 무산의 교훈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정치권의 뼈를 깎는 노력만이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3.16 20:32

부동산 복부인(福婦人)

삽화=권휘원 화백 1960년대 이후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먹고 살기 힘든 지방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는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1969년 강남과 강북을 잇는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준공되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서울로의 인구 유입이 급증했다. 1970년대 초반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계획인 서울 강남 개발이 본격화됐다. 강남 개발 촉진을 위한 정부의 강남 8학군 조성, 여의도 개발과 지하철 2호선 건설 등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강남의 땅값 상승이 시작됐다. 강남 일대 토지는 집중적인 투기대상이 돼 땅값이 1년 새 10배 이상 뛰어오르기도 했고, 투기를 통해 거액을 챙긴 땅 부자들의 배를 불렸다. 특히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가정주부들이 투기에 뛰어들면서 1970년대 후반 복부인(福婦人)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수시로 출입하는 상류층 부인을 의미하는 복부인은 이후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로 대중화돼 국어사전에 까지 등재됐다. 1970년대 우리 사회의 부동산 투기 열풍을 주도한 복부인은 1980년 영화로 까지 제작됐을 정도다. 복부인이 등장한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사회는 LH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달 초 시민단체가 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 신도시 개발 예정지 투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돼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으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서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발본색원을 강력히 주문하면서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LH발 부동산 투기 의혹은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전주시는 지난 11일부터 시청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투기 의혹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다. LH가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전주역세권과 가련산공원, 택지개발이 끝난 전주 만성지구와 에코시티, 효천지구, 개발 예정지로 떠오른 천마지구와 여의지구 등 모두 7곳이 대상이다. 전주시는 공무원과 가족들의 내부 개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여부를 조사해 투기 행위가 확인되면 파면 등 중징계와 경찰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전주시에 이어 전북도 역시 개발지역 사전 정보 입수 등을 통한 투기행위 여부 전수조사에 착수했고, 전북경찰청도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와 강력범죄수사대 등 모두 42명으로 구성된 투기사범 전담 수사팀을 설치해 LH 직원 투기 의혹을 비롯한 전북지역 부동산 투기의혹 수사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전주지역 개발지역과 개발 예정지역 토지 소유주 가운데 여성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교직에 있는 여성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여교사들이 복부인 선생님이 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전북교육청도 LH발 부동산 투기 의혹에 관심을 갖고 대응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3.15 17:46

깨어 있는 시민의식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 415 총선 때 익산 2곳과 정읍 고창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민평당 현역의원을 제치고 당선돼 그 때부터 두 지역이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민주당 복당을 위해 노력했지만 탈당하면 바로 복당할 수 없는 당규정 때문에 입당이 불발돼 무소속으로 3선 출마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조용식 전 전북경찰청장과 강팔문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이 권리당원 확보에 나서는 등 건곤일척의 싸움판이 만들어졌다. 9급으로 시작해서 7급 공채를 거쳐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유기상 고창군수도 지난 선거 때는 민평당 유성엽 의원의 지원을 받아 당시 민주당 박우정 군수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전 전북부지사를 지낸 심덕섭 보훈처 차장이 민주당에 입당, 지난 11일 군수 도전장을 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입지전적인 인물로 소개된 유 군수는 후배인 심 전 부지사가 고창읍으로 이사 와서 조직을 정비하는 바람에 일찍 선거조직을 가동, 무소속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각 지역별로 단체장 후보 윤곽이 거의 그려진 가운데 도지사교육감전주시장남원시장임실군수무주군수순창군수 선거가 관심사다. 민주당 재선의 안호영김윤덕 의원이 송하진 지사에 경선도전장을 냈지만 아직까지 찻잔 속의 미풍에 불과, 시나리오만 무성하다. 안호영 의원은 김성주 의원과 함께 정세균 총리 직계로 돼 있어 정 총리의 대권행보에 따라 지사 경선에 나설 전망이고 지난 대선 때 안희정 충남지사 쪽에 섰다가 이재명 경기지사 쪽으로 일찍 줄 선 김윤덕 의원의 행보도 같은 형편이어서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송 지사가 3선 출마에 가타부타 언급이 없고 김승수 전주시장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행보를 밝히지 않아 호사가들의 입방아만 무성하다. 정당공천 없이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에 7~8명이 얼굴을 내밀어 경쟁이 펼쳐졌다. 동시선거로 치러지기 때문에 인지도가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 파탄으로 풍비박산이 나 어렵게 신흥중학교에 입학 정세균 총리와 함께 매점에서 빵 팔며 학업을 마친 서거석 전 전북대 총장과 황호진 전 부교육감, 전교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차상철 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해직 교사였다가 복귀한 노병섭 전 민주노총 전북본부장, 지난 선거에서 현 교육감을 밀고 들어간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그리고 전주교육장을 지낸 이항근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면서 다크호스로 부각됐다. 각종 선거 때마다 선거꾼들이 자신이 민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온갖 계략을 꾸미거나 심하게는 흑색선전을 일삼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그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교언영색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말아야 역량있는 사람을 뽑을 수 있다. 민초들이 항상 깨어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쉽게 말해 선거꾼들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할 수 있어 부화뇌동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부터 유권자들이 양심을 팔지 않고 깨어 있어야 낙후된 전북을 살릴 수 있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3.14 16:48

문화재 지정번호의 진실

삽화=권휘원 화백 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 10일 저녁,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 누각 안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초기 진화로 불길이 잡히는가 싶었지만 불길은 다시 치솟아 숭례문 상층부 대부분을 태워버렸다. 문화재 관리체계의 전반적인 문제와 함께 다시 뜨겁게 부상한 쟁점이 있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당초 일제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됐던 숭례문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보 1호로 지정됐다. 그 뒤 숭례문은 대한민국 문화의 상징이 되었으나 국보 1호로서의 숭례문 자격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국보 1호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될 때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지정번호가 가치 서열에 따라 부여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지정번호의 왜곡된 가치는 바뀌지 않았다. 줄곧 서열화 의혹(?)을 받아온 문화재 지정번호에 100년 전 일본 학자들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자료가 공개됐다.(한겨레신문 보도)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일본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와 보조 연구자인 야쓰이 세이이쓰가 펴낸 <조선 예술의 연구> 보고서와 자료를 완역해 펴낸 <한국 고고학자가 다시 쓰는 조선고적조사보고>를 통해서다. 이들 연구자들은 당시 조선의 문화유산 547종을 조사하면서 각각 갑을병정으로 분류했는데 그 기준이 흥미롭다. 일본 역사와 연관성이 있고 예술성이나 역사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것은 갑, 그 다음의 것을 을, 보호의 필요성이 없거나 전용할 수 있는 것들은 병정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갑 등급 가장 위에 놓인 숭례문(국보 1호)과 원각사 십층석탑(국보 2호)이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우리 문화재의 가치가 재단되었다는 증거다. 정교수도 인터뷰를 통해 특히 남대문과 원각사탑이 1909년 분류 기록에도 갑의 첫머리에 올라와 있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쯤되면 단순히 관리의 편의를 위해 지정했다는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숭례문인 우연성은 참으로 공교롭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번호를 공식 표기에서 없애기로 했다. 문화재 가치를 서열화하는 번호로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란다. 이제 국보 1호 숭례문이나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뀌게 된다. 이래저래 국보 1호 자격 논쟁은 끝나게 되었으나 논쟁의 본질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반가운 일만도 아니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3.11 18:20

세계유산 등재 나선 가야고분

삽화=권휘원 화백 남원을 비롯해 김해 함안 합천 고령 고성 창녕 등 한반도 남쪽의 연맹 왕국인 가야국의 고분군(Gaya Tumuli)이 세계유산 등재에 첫걸음을 뗐다. 지난 1월 제출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가 지난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등재신청서 완성도 검사를 통과하면서 가야 고분군이 본격적인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심사 절차에 들어간다. 유네스코 현지실사는 오는 8~9월께 진행될 예정이며 내년 7월 개최 예정인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야 고분군의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전북지역 가야 유적지는 남원과 완주 무주 장수 진안 임실 순창 등 7개 시군에 모두 822곳에 달한다. 이 중 가야국의 존재를 방증하는 유적인 고분과 제철유적 봉수 등이 776곳이다. 특히 남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에는 40기의 봉토분이 존재하며 이 중 지름 20m가 넘는 대형고분도 12기나 있다. 이곳에선 금동신발편과 청동수대경 등 축조세력이 지배계층이었음을 알 수 있는 금속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장수 백화산 고분군에서는 호남지역 가야국의 철제 유물의 실상을 밝혀 줄 단야구가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단야구는 철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망치 집게 모루 등의 도구로써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타격흔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들 남원과 장수 등지에서 발견된 제철 유적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야국이 철의 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야의 중심지로 꼽는 김해와 고령에서는 제철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원시에선 5~6세기 철과 봉수로 문화유산을 꽃 피웠던 기문(己汶)가야의 유적지 정비와 전시관 건립에 나섰다. 올해부터 총 사업비 195억 원을 들여 운봉고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일대에 유적 전시관을 세운다. 또한 매장문화재 지표발굴조사와 함께 유물 소장품 구입 등을 통해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고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역사문화자원 활성화에도 나선다. 다만 전북의 가야 세력이 독자 세력임을 규명하는 노력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학계에선 아직 전북의 가야 세력이 영남권 대가야의 하위집단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반면 전북에서는 남원 기문가야 등이 백제와 대가야 사이에 존재한 독자적 세력으로 보고 있다. 봉수와 제철유적 고분군, 그리고 중국계 청자인 계수호(鷄首壺) 등이 중국과의 독자적 외교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대가야에 귀속되지 않은 느슨한 연맹체 상태로 보고 있다. 어쨌든 1500여 년 전 찬란했던 철의 왕국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전북이 세계적 문화유산 명소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3.10 18:13

끝나지 않은 장점마을의 비극

삽화=권휘원 화백 집단 암 발병으로 주민 15명이 숨진 익산 장점마을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발병 원인이 비료공장의 연초박 때문이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발표된 건 지난 2019년 11월 14일. 그것도 주민들 노력으로 겨우 원인이 밝혀졌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안갯속 상황이다. 주민보상을 둘러싸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꽁무니만 빼기 일쑤다. 총리가 직접 사과하고 관련 부처가 후속대책 마련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는 게 현실이다. 손해배상 문제가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이들의 속은 이미 숯검정이나 마찬가지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데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끙끙 앓고 있기 때문이다. 비료생산 업체는 이미 파산했고 담뱃잎을 판매한 KT&G는 유해성 여부는 전혀 몰랐다며 발뺌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군다나 손해배상 민사조정을 둘러싸고 전북도익산시가 제시한 50억 원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일 국회 상임위 위원장들이 현지를 방문, 장점마을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KT&G의 책임에 목청을 돋웠다. 연간 매출 6조 원에 달하는 대기업에다 실제 KT&G가 지난 20092018년 전국에 유통시킨 연초박 물량 2242t이 이 공장에 반입된 사실이 밝혀진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암 발병 원인 연초박을 공급한 KT&G 측에 직접적인 화살을 돌렸다. 평화로운 마을이 암 공포로 덮쳐 주민 학살에 가까운 엄청난 일이 저질러졌음에도 현장 방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자세라며어찌 됐건 마을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피해를 입힌 기업이 있다면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시사했다. 이들 주민의 소외감과 홀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 진행되는 보상문제 이전 암 발병 원인 규명 때도 누구 하나 이들 고통과 아픔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암과 얽힌 문제점들을 수없이 관할관청에 목놓아 외쳐댔지만 아무런 메아리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주민들이 직접 조사에 나서 인근 비료공장 때문에 발병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들은 백방으로 도움 요청을 했지만 손을 내밀어 주는 곳이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암 환자는 원인도 모른 채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났다. 지난 날 힘겨운 여정 속에서 최재철 주민대책위원장은그간 공포에 떨어야 했던 마을의 분위기는 형용할 수가 없다. 정부와 자치단체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서 지금이라도 정부와 자치단체가 나서 응어리진 한을 풀어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물론 물밑대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책임 회피성 자세로 일관한 KT&G 책임은 피해갈 수가 없다. 얼마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가습기 살균제 사망에서도 제조사의 일부 배상책임과 임직원 형사책임을 물었다. 집단 암 발병도 그에 못지않은 책임 있는 자세가 절실한 때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3.09 19:54

독립유공자 전봉준

삽화=권휘원 화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1941~1945년)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 물자로 사용할 송탄유(松炭油)를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 곳곳의 소나무에 상처를 내 송진을 채취했다. 톱날로 낸 V자형 상처 크기가 최대 1.2m에 달한다. 일본은 1933년부터 1943년까지 9539t의 송진을 수탈했다고 한다. 1943년에만 수령 50년 이상 소나무 92만 그루에서 4074t의 송진을 채취해 갔다는게 산림청의 설명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7년부터 문헌과 현장조사 등을 통해 전국 40개 지자체 46곳의 일제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분포 현황을 파악했다. 전북에서는 남원정읍완주 등에서 피해 사실이 확인됐고, 특히 남원시 대산면 왈길마을 소나무 숲에는 현재까지도 피해목이 살아 있다. 남원 왈길마을 소나무 숲 등 전국 피해목 생육지 5곳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역사적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지난달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이란 책을 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은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인 전봉준과 최시형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했다. 그 근거는 일본군의 취조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2차 동학농민혁명 후 체포된 전봉준은 1895년 1월 9일 나주에서 일본인 미나미 고시로 소좌에게 취조받는 자리에 7월 일본군이 경성에 들어가 왕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동지를 모아서 이를 쳐서 없애려고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고 당당히 밝힌다. 1895년 2월 18일 서울로 압송된 뒤 이노우에 카오루 일본 공사의 취조에서도 작년 6월(음력) 일본병이 경성에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함께 물리치려고 마침내 의병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고 답한다.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 1895년 3월 29일 법무아문 권설재판소 판결문도 피고(전봉준)는 일본 군대가 대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탄(倂呑)하고자 하는 뜻 인줄 알고 일본군을 쳐서 물리치고 일본 거류민을 국외로 몰아낼 마음으로 다시 군대를 일으킬 것을 도모했다고 적고 있다. 지난해 3월 작고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정기학술대회 자료집에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의 정권에서도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이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민형배 국회의원은 지난해 10월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일제와 맞서 싸운 전봉준 장군 등 2차 동학농민군 참여자들을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1차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투쟁, 2차 동학농민혁명은 항일 구국투쟁으로 소개돼 있다. 일제의 송탄유 채취 피해목인 소나무도 국가산림자원 지정이 추진되는데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119명의 독립유공 명예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3.08 17:54

대선과 전북발전

삽화=권휘원 화백 60, 70년대만해도 대선이나 총선의 전국적인 투표행태가 여촌야도(與村野都)로 나타났다. 그 이후 계속된 직선제 대선에서는 지역적 투표행태가 강해졌다. 전북은 DJ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하는 한 맺힌 이유로 지난 88년 대선 때부터 하나로 똘똘 뭉쳤다. 총선과 지방선거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황색 깃발만 꽂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당선시켰다. 그렇게 30년 이상 몰표를 특정 정당에 안겨준 결과가 오늘의 전북 모습이다. 내년에 치러질 제20대 대선일이 1년 앞으로 다가섰다. 트로트 경연처럼 이미 대선 레이스가 펼쳐졌다. 여권인 민주당에선 이낙연 대표를 비롯해 정세균 총리 이재명 경기지사가 당내경선을 앞두고 지지층 확대에 들어갔다. 야권은 뚜렷한 주자가 없는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중수청법 설립을 반대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전격 사퇴함에 따라 대선 시계가 빨라졌다. 오는 4월 7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내년 대선 가늠자 구실을 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점입가경 양상이다. 지금부터는 도민들도 대선정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는 모든 재화를 나누고 인재 등용 기회를 좌지우지하는 독립변수라서 매의 눈으로 파악해서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막중하므로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전북은 민주당 정서가 강해 민주당 대선 후보와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내년 6월 1일 지방선거도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DJ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집권시기가 전북발전의 호기였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권력 심장부에 전북 출신들이 있었어도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느라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결국 본인들만 맘껏 명예와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지금껏 DJ정권 때 대통령 경제고문을 지낸 유종근 지사가 환란을 극복하면서 소리문화전당을 건립한 것 이외에는 크게 눈에 띈 게 없다. 서남대 폐교로 생긴 의대 정원 49명을 갖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문제나 전주혁신도시 제3금융중심지 지정, 전주~김천간 횡단철도건설, 부창대교 건설 등 현안이 산적하지만 전북정치권의 힘이 약해 해결 못하고 또다시 다음 정권한테 기대는 모습이다. 아무튼 문재인 정권 임기 1년여가 남은 시점인데도 존재감 약화로 지역개발문제가 제대로 챙겨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년 대선은 지역정서에 의존한 감성적인 선거 보다는 당과 후보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이성적인 선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전북 몫 찾기가 가능해져 지역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 새로 마련한 새만금 MP가 엿가락 처럼 축 늘어져 2050년까지로 수립된 것도 문제지만 새만금공항건설을 이 정권에서 꼭 조기 착공토록 힘을 모아야 한다. 문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총력 경주한 것을 무작정 부럽다고 바라다 만 볼 수 없다. 우리도 급하다고 마구 외쳐대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3.07 16:17

독재의 끝, 미얀마의 봄

삽화=권휘원 화백 2017년에 제작된 후지모토 아키오 감독의 영화 <내가 돌아갈 곳>은 미얀마 출신 부부가 안전한 삶을 위해 일본으로 이주했으나 정착하지 못하고 두 명의 아이들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난민문제를 새롭게 일깨워주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늘 불안한 미얀마의 정치적 상황을 깨닫게 한다. 민주화 운동가 아웅산 수치가 자신의 조국 미얀마로 돌아온 것은 1988년이었다. 인도대사로 부임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건너간 것이 1960년, 그가 떠나 있는 동안 미얀마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독재에 의해 경제는 파탄 났으며 인권을 유린당한 국민들은 폭압과 가난 속에 허덕여야 했다. 그때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자유와 인권, 독립을 상징하는 공작새가 그려진 깃발을 손에 들고 평화적 시위로 거리에 나섰지만 군부는 총격으로 진압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위에서 죽어가자 승려들과 시민들이 가세했다. 1988년 8월 8일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일어난 8888항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병상의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던 아웅 산 수치를 불러낸 것은 8888항쟁과 국민들의 열망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지도자가 된 아웅 산 수치는 민주민족동맹(NLD)을 결성하고 군부정당인 국민통합당(NUP)에 맞섰다. 거리에 나서 민주화를 외치는 그는 미얀마 국민들의 희망이자 미래였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화는 쉽게 오지 않았다. 군부 독재는 정당한 총선 결과에 승복하는 대신 총칼로 국민들을 협박하며 정권을 장악하고 아웅 산 수치를 오랜 세월, 투옥과 가택연금으로 묶어 두었다. 다행히 미얀마는 2011년 민선대통령을 선출해 민주주의와 개방경제 실현 등 중도 개혁을 시도하고, 2015년에는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선거에서 완승하면서 독재 시대의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도 정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세력을 키웠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민 아웅 흘라인.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다시 NLD가 압승하자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최고 사령관이다. 군부 쿠데타로 혼란에 휩싸인 미얀마 상황이 심상치 않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한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두들겨 맞는 시위대와 독재타도의 팻말을 보며 군부 독재를 끌어내린 80년대 우리의 거리 항쟁을 생각하게 된다. 미얀마 국민들, 부디 힘내시라.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3.04 19:51

한국 김치의 딜레마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달 중순 할리우드 톱스타 기네스 펠트로(49)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렸던 사실을 고백하면서 한국 김치를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구프를 통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감염됐던 사실을 공개하며 계속되는 피로와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한 느낌이 이어지면서 기억력 감퇴와 우울증 등이 나타나는 브레인 포그 현상을 겪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keto(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와 식물 기반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며 훌륭한 무설탕 김치를 발견했다. 매우 놀랍다고 전했다. 사실 펠트로는 한식 애호가로 과거에도 김치전을 SNS에 소개하고 비빔밥 먹방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시대를 맞아 한국 김치가 글로벌 면역푸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발효식품인 김치는 유산균이 풍부해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주고 고추 마늘 생강 등 양념류는 항산화 작용을 통해 장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외에도 비만 및 지질 저해, 대장암 예방 기능, 아토피 알러지 저하 등 김치의 효능이 다양하다. 세계인들이 한국 김치를 많이 찾으면서 지난해 김치 수출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출액은 1억4451만 달러로 전년보다 37.6%나 증가했다. 수출 국가도 일본과 미국 홍콩 대만 호주뿐만 아니라 중동 남미 섬나라인 북마리아나 군도 등 80여 곳에 달한다. 그런데 정작 수출되는 김치에 한국 김치라고 표기를 못하고 있다. 정부에선 중국과 일본에서 주장하는 김치 종주국 논란과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의 외국산 김치가 한국 김치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명 지리적 표시권을 지난해 8월 도입했다. 국가명 지리적 표시권은 한국(고려) 인삼 이후 김치가 두 번째다. 하지만 국가명 지리적 표시권이 도입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국내 김치업체 중 등록 신청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배추 무 고춧가루 등 주원료 3개 이내는 국내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주원료는 기상여건이나 작황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데다 고춧가루는 수입산이 국내산보다 훨씬 저렴하다. 따라서 대부분 수입 고춧가루를 쓰는 국내 김치업체들이 한국이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명 표기를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김치협회에선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김치만 예외를 두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달 중 공청회를 통해 결론을 낼 방침이다. 한국 김치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김치 종주국으로서 지위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3.03 17:38

‘느림보’ 행정의 상처

삽화=권휘원 화백 옛 대한방직 터 개발에 대한 권고안이 발표됐다. 상업시설에서 인근 종합경기장 개발과 중복됨에 따라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대한방직 공론화위원회는 지난달 25일 1년여 만에 시민 여론을 담은 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상업시설 중심의 복합 문화공간 개발 시나리오가 이번에 마련한 3개안 중에서 가장 높은 74.9%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화점호텔컨벤션 등이 포함된 종합경기장 개발과 상업시설 기능이 겹치는 바람에 전주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애초 자광이 지난 2018년 470m 높이 익스트림 타워와 복합쇼핑몰호텔컨벤션은 물론 아파트 3000세대 등을 짓겠다고 밝히면서 이같은 문제점은 충분히 예견됐다. 더구나 이들 두 지역은 자동차로 불과 10분 안팎에 위치해 있다. 상업시설 기능도 중첩되지만 거리상으로도 너무 가까워 전주시 도시개발 계획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앞서 발표된 종합경기장 개발안은 전체 면적의 33.1%(4만800㎡)를 뺀 나머지를 숲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아래 롯데에게 백화점과 호텔을 허용하겠다는 게 골자다. 시민단체는 이와 관련 3700억 원을 들인 시민의 숲은 허울 뿐이지 결과적으론 백화점과 호텔에 휴식공간까지 만들어 준 꼴이다며 일침을 가했다. 대한방직과 종합경기장은 전주에서 몇 군데 남지않은 핵심 노른자위 땅이다. 도시발전 측면에서도 기능 중복의 겹치기 개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다. 이런 점 때문에 시의 입장에서도 솔로몬의 지혜를 강구하기 위한 여론수렴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되다 보니 전주시 속내가 궁금해진다. 시 관계자들도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 리는 만무하다. 더군다나 이들 사업에 대한 시민들 관심이 폭발적인 데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음에도 여태까지 질질 끌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일찍이 이와 관련해 숱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이를 순발력있게 대처하지 못한 시의 행정능력이다. 원래 롯데쇼핑을 끌어들인 종합경기장 개발계획은 송하진 지사가 전주시장 때 추진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승수 시장이 이를 전면 틀어버리면서 실타래처럼 꼬인 것이다.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시민들 시선이 곱지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한방직 해결책도 이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개발안이 확정되더라도 소정의 과정을 거쳐 전북도의 승인절차가 남아있다. 용도변경이 핵심인데 이런 복잡한 문제들이 도청 업무와 연계돼 있다. 그렇다면 전주시가 먼저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개발계획을 접수하고 3년 가까운 시간속에서 타당성 검토를 했기에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시민여론이 반영된 최종 개발 권고안까지 윤곽을 드러냄으로써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이들 지역의 개발 여부는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제 회생의 모멘텀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3.02 20:07

아름다운 귀향

삽화=권휘원 화백 얼마전 푸른바다거북의 신비로운 귀향 소식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2017년 전남 여수의 수족관에서 부화한 네 살 짜리 푸른바다거북이 지난해 9월 제주 중문해수욕장을 떠난 지 석 달 만인 지난해 12월 3847㎞ 떨어진 베트남 동쪽 해안에 도착한 사실이 확인됐다. 방류된 거북이 야생에 잘 적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등껍데기에 부착한 인공위성 위치추적 장치가 거북의 무사한 귀향 신호를 보내왔다. 멸종 위기종인 푸른바다거북의 주요 산란지는 베트남 등 동남아 인근인데 이 거북은 베트남 인근에서 포획된 어미가 국내에서 수컷과 짝짓기해 태어났다고 한다. 산란지가 아닌 이국의 수족관에서 인공 증식으로 태어난 어린 거북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미의 고향을 찾아 수 천㎞를 헤엄쳐 간 것이다. 고향을 찾아가는 귀소본능은 연어에게서 익숙하게 보아왔다. 연어의 고향으로 불리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과 울산 태화강, 경북 울진군 왕피천, 그리고 섬진강 등에서는 매년 연어의 귀향을 볼 수 있다. 귀향한 연어의 산란으로 태어난 새끼 연어는 잠시 하천에서 머물다 바다로 나간 뒤 베링해와 북태평양 전역을 회유하는 긴 여정을 거쳐 3~4년 뒤 어미가 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동 거리가 무려 1만6000㎞로 마라톤 풀코스(42.195㎞)의 380배다. 먼 거리를 오가는 동물들은 태양의 위치를 기초로 일정한 방향을 이동한다고 한다. 태양을 방향 인지의 나침반으로 삼는다고 해서 태양 컴퍼스(solar compass)라고 일컬어진다. 태양 컴퍼스는 철새와 연어 등 동물들의 귀소성(歸巢性)회귀성(回歸性)을 설명해주는 근거로 설명되고 있다. 동물이 서식산란육아를 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다시 그 곳으로 되돌아 오는 귀소본능은 태양 컴퍼스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해지는 석양을 보면 고향이 생각나는 것도 태양 컴퍼스와 관련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귀소본능은 명절 대이동과 장례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도 명절에 고향을 향하는 발걸음을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했고, 장례문화가 달라지긴 했지만 고향 선산으로 향하는 장례 행렬도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잠시 돌아오는 사람들과 달리 전북을 떠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지난 1973년 250여만 명에 달했던 전북 인구는 지난해 180여만 명으로 70만명이나 줄었다. 47년 만에 전주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2047년에는 158만명까지 감소할 것이란 통계청 전망도 있다. 지난 2008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후 김해 봉하마을 귀향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줬다. 전북에서는 이홍훈 전 대법관이 지난 2011년 퇴임후 고향인 고창으로 귀향해 주목받았다. 선거철이 되면 출사표를 들고 귀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잠시 왔다가 다시 떠나지 않는 출향 인사들의 아름다운 귀향 소식이 자주 들려왔으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3.01 16:57

‘천연두 바이러스’와 백신

삽화=권휘원 화백 인류역사상 최초의 전염병은 천연두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연원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기원전 1157년 이집트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 흔적이 발견되었고, 기원전 1112년에는 중국에서도 발병했다는 기록이 있다. 천연두는 사망률이 30%에 이르고 그 후유증도 컸던 탓에 인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행히 1977년 소말리아에서 발병한 환자를 마지막으로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천연두의 괴력(?)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창궐해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사실 WHO가 천연두 바이러스 박멸을 선포한 것이 1979년이니 공식적인 종식은 불과 30여 년 전이다. 인류를 위협했던 천연두 바이러스를 종식시킨 것은 역시 인류가 이어낸 과학의 힘이었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 영국 의학자인 그는 우두접종법을 발견한 의사. 인류 최초의 백신인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사람이 그다. 감염병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그는 1796년, 천연두에 걸린 여덟 살 소년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천연두 백신을 개발해냈다. 젖소를 감염시키는 우두 바이러스로부터 개발된 천연두 백신은 인류가 처음으로 질병을 정복할 수 있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제너에게 천연두에 감염된 소년이 찾아왔을 즈음, 항간에 나도는 소문이 있었다. 우두에 걸린 소의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람도 역시 붉은 상처가 생기는 등 앓게 되지만 곧 나을 뿐 아니라 이후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너는 이 소문을 의학적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나 임상시험 대상자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한 노인이 제너를 찾아왔다. 아홉 살 때 우두에 걸렸었다는 노인이었다. 기꺼이 실험에 응하겠다는 그 노인 덕분에 제너는 우두에 한번 걸리고 나면 50년이 지나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천연두 백신을 개발해냈다. 더해진 성과가 있다. 1798년, 제너가 발표한 종두법이다. 종두법은 오늘날 숱한 백신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질병 치료법의 의학적 뿌리다. 코로나의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할(?)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그사이 백신의 안전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여러 통로로 백신의 효과는 입증된 터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근거 없는 거짓뉴스가 나댄다. 일상이 무너져버린 절대 절명의 시기에 거짓 정보로 혼란을 불러내는 일은 범죄다. 집단면역으로 가는 길, 서로를 향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2.25 16:28

헌혈명문가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국내 헌혈 인구가 격감하면서 혈액 수급에 초비상이 걸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과 5인 이상 모임 금지 및 외출 자제 권고 등 영향으로 헌혈의집 방문객과 단체헌혈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헌혈 인구는 전년보다 20만 명 이상 감소했고 현재 혈액보유량은 적정혈액보유량 5일분에 절반 수준인 2.9일분에 불과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5600여 명이 헌혈을 해야만 적정혈액보유량을 유지하는데 현재 일평균 헌혈자는 3600여 명에 그치고 있다. 현재와 같이 혈액보유량 3일 미만인 주의 단계가 지속되면 의료기관에 필요한 만큼 혈액공급이 어려워지고 재난이나 대형사고 등 국가위기상황 발생 시 심각한 혈액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 이처럼 혈액수급에 빨간불이 지속되는 가운데 온 가족이 헌혈에 나서고 있는 송태규 원광중학교 교장(60)과 자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송 교장은 지난 20일 헌혈 300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지난 2001년 5월 첫 헌혈에 나선 뒤 20년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육군 장교로 복무 중인 아들 호선씨(30)는 134회, 익산시보건소에 근무하는 딸 하늘씨(27)는 110회째 헌혈을 했다. 송 교장과 아들 딸의 헌혈 횟수를 합하면 모두 544회에 이른다. 일가족이 장기간에 걸쳐 헌혈에 참여하고 있는 사례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부인도 헌혈에 참여하려 했지만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못하고 있다. 송 교장은 2주에 한 번씩 헌혈을 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오고 있다. 아들과 함께 매년 수영 사이클 마라톤 등 철인 3종 경기에 참여하고 있고 헌혈 전에는 술이나 감기약도 먹지 않는다. 그는 300회 헌혈 기록을 세우면서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장 최고명예대장 포장증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세계헌혈자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100회 이상 헌혈자를 등재하는 대한적십자사 명예의 전당에는 아들 딸과 함께 나란히 올랐다. 익산시가 지난해 주최한 2020 익산만의 숨은 보석찾기 행사에선 최다 헌혈 가족으로 선정돼 헌혈명문가로 인정받았다. 송 교장은 헌혈 정년인 만 69세까지 헌혈을 이어가 500회를 채울 계획이다. 그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왔다면서 헌혈은 이웃 사랑과 생명 나눔의 실천이라고 전했다. 32년째 교직에 몸담고 있는 송 교장은 시인이자 수필가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해 수필집 마음의 다리를 놓다를 펴냈고 전북일보에 새벽메아리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2.24 17:29

자치단체장의 운명

삽화=권휘원 화백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가끔 정치권 화두로 등장할 때가 있다. 전북 문화공연의 메카인 이곳의 탄생 비화가 자치단체장 귀감 사례로 소환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무능력과 구태의연함을 탓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쓰인다. 머지않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무사안일한 자세를 경고하는 의미다. 2001년 개관 당시 소리문화전당은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시설 수준과 규모 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완공되기까지 과정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IMF 회오리가 몰아치던 1998년 첫 삽을 뜨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논란은 뜨거웠다. 국난극복의 어려운 시기임을 감안하면 투입예산이 1000억을 능가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때 정치스타로 급부상한 유종근 지사는 이런 반대여론에 굴복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글로벌마인드를 갖춘 거시적 안목과 지역발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직사회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강해 내부 불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라 살림이 거덜 난 판에 문화예술 공간을 짓는데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게 제정신이냐며 비판수위를 높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 지사 결단력이 문화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역발전과 주민행복은 선거를 통해 뽑힌 자치단체장의 운명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발상 대전환과 함께 과감하고 신속한 행정처리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역현실은 이런 기류와 동떨어져 이래저래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낯내기 행사에는 집착하는 반면 대형 어젠다 개발을 통한 지역발전 밑그림은 아예 관심 밖이다. 기껏해야 감성 정치에만 열 올리는 직업 정치인만 존재하는 꼴이다. 이처럼 비관적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주민들의 정치혐오증도 극에 달해 있다. 지난 2019년 조사결과 한국인이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공인으로 국회의원(39.8%)과 정치인(39.1%)이 각각 1, 2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새만금 행정구역 자치단체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전북미래를 가름하는 핵심사업임에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의 소아병적 이기주의는 도를 넘었다. 결국 군산시와 김제시는 간극을 좁히지 못해 법정다툼까지 벌였다. 전주 대한방직 부지개발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도 마찬가지다. 2조5000억 예산투입과 일자리 창출효과 5000개의 지역현안인데도 시가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를 앞세워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어느덧 성년이 된 소리문화전당이 올해 개관 20주년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코로나의 숨 막히는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욕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를 담아내면서 함께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풍성한 느낌이다. 자치단체장의 선구자적 혜안과 굽힐 줄 모르는 뚝심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2.23 17:33

램지어 교수와 역사 교육

삽화=권휘원 화백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우울한 요즘 미국 하버드대의 친일파 교수 한 명이 한국 사회에 공분을 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황당한 주장이 담긴 논문을 학술지에 보낸 존 마크 램지어 교수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성매매 계약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위안부는 매춘부로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인 성 노동이라고 강변했다. 램지어 교수는 일본에서 10대를 보냈고, 30대에는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본법과 기업을 연구한 친일파 학자다. 전범국가와 침략국가의 과거를 반성하기 보다 역사 왜곡에 몰두해온 일본을 공부한 셈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 세계 곳곳에 친일 인사를 심는데 막대한 돈과 시간을 쏟아왔다. 미국 의회에는 일본에 우호적인 의원 모임인 재팬 코커스 회원이 상하원 의원 121명에 달한다. 반면 코리아 코커스 회원은 80명 정도다. 램지어 교수의 하버드대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다. 일본의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하버드대에 200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면서 만든 자리다. 램지어 교수는 1998년부터 23년째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로 활동 중이다. 이번 위안부 왜곡뿐 아니라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도 부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해외에 일본 문화를 알린 공로로 2018년 그에게 욱일중수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훈장인 욱일장 6가지 중 3번째 서열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픈 상처에 비수를 들이대며 역사를 왜곡한 램지어 교수에 대해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일본의 범죄 행위에 대한 역사교육 확대 목소리도 높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군의 만행은 위안부 만행과 다르지 않았다. 왜군에게 젓가슴을 유린당했다며 자신의 젓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자결한 조선 여성들의 기록이 임진왜란사에 담겨있다. 최근 도내 대학의 일부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전북지역의 임진왜란사 정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북에는 임진왜란의 결정적 전투인 웅치이치전투를 비롯해 많은 의병전투 현장이 있지만 일부 지역 전투를 제외하고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가 미비해 임진왜란 당시 전북지역 관군 및 의병 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역사교육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유재란 시기 연구는 공백 상태로 일부 의병은 진위 논란까지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북과 달리 타 지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연구 등이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경북에서는 경북의병사(1990년), 대구지역 임진란사(2017년), 경북지역 임진란사(2018년) 등이, 전남에서는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1990년) 등이 발간돼 왔다. 전북에서도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정리 및 고증을 통해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소중한 역사를 기억하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2.22 17:27

사람 냄새 나는 세상

삽화=권휘원 화백 세상살기가 나아지기보다는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19로 팬데믹을 가져온 탓만이 아니다. 사람 살아가는데 근본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생후 2주밖에 안 된 피붙이를 20대 철없는 부모가 죽여 놓은 막가는 세상이 되었다.30대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60대를 힐킥(무릎으로 가격)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장면이 고스란히 화면에 나왔다.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무서운 세상이다. 하굣길에 고교생들이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목격해도 그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예전에는 나무라고 타일렀지만, 지금은 어른이랍시고 꾸짖고 주의를 줬다가는 개망신 당하기에 십상이다. 자식이나 손자뻘 같아서 하지 말라고 말했다가는 바로 당신이 뭐길래 우리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느냐면서 눈을 부라리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달려들 것이다. 시내버스나 전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미풍양속은 기대할 게 못된다. 어린아이를 업었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도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미동도 하지 않고 눈길도 안 준다. 테스형. 왜 세상이 이렇게 험악하게 돌아가나요.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게 원인인 것 같다. 먹고 사는 직장도 다를 바 없다. 땡전 뉴스라는 말이 80년 5공 때 널리 회자된 것처럼 요즘에는 정각 8시나 9시에 출근하고 5시나 6시에땡하면 칼퇴근한다. 그 이후에는 휴대폰도 닿지 않아 연락하는 사람이 마치 정신 나간 웃기는 사람이 돼 버렸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살풍경만 펼쳐진다. 스마트폰이 편리함을 가져다줬지만, 그 반대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만 만연시켰다. 세대 차라고 말하기보다는 20, 30대들은 마치 딴나라에서 온 사람 같다. 기성세대들과 말과 행동이 다르다. 식생활 패턴도 차이가 엄청나다. 부모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기도 귀담아 듣지 않고 괜한 잔소리로 여겨버린다. 밥상머리 교육이 멀어진 만큼 부모와 자식 간 정도 그만큼 멀어졌다. 부모를 학대하고 패륜을 저지른 끔찍한 범죄만 늘어난다. 캥거루족이 늘면서 온실 속의 화초마냥 젊은층의 자립 의지가 약해 부모들만 늙어서까지 뼛골 빠진다. 가정 학교 사회가 기계식으로 움직이다 보니까 인성교육이 안됐다. 운동선수들은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되다 보니까 설령 학교폭력을 저질렀어도 묻히고 파묻혔다. 그게 이제서야 SNS를 통해 까발려 지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지금부터는 잘못한 일은 무작정 남 탓으로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처럼내 탓이요라고 했으면 한다. 법학자 옐리네크가법은 도덕의 최소한 이라고 말한 것처럼 도덕적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법의 공정성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위기를 맞았지만 그래도 법이 사회적 안정을 지킨다. 코로나로 고통 받으며 불확실한 세상 속에 살아도 새해에는 사람 냄새 풍기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2.21 17:29

전라감영과 ‘포크의 일기’

전주는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관찰사가 거처하는 감영이 있던 도시다. 당시 각 도마다 감영이 설치됐지만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도시로 이전하기도 해 전주처럼 지속적으로 감영이 존재했던 도시는 몇 되지 않는다. 지난해 지금의 호남과 제주를 아우르는 전라도 전역을 통치했던 전라감영이 복원되면서 전주의 역사성이 주목 받고 있다. 천년 시간을 거슬러 찾아온 역사 건축물의 위용과 장소의 역사성이 갖는 의미와 가치 덕분일터다. 사실 복원된 전라감영은 외형적으로도 완전복원이 아니다. 아직은 전라감영의 동편 부지에 있던 선화당을 비롯한 4개 건물과 부속건축물이 전부인데 그 일부를 복원하는데도 어려움이 컸다. 관련 자료가 미흡해 고증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복원에는 여러 사료가 동원됐다. 그중 가장 늦게 등장한 자료가 있다.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 내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두 점의 사진, 관찰사와 육방 권속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과 네 명의 기생이 춤을 추는 사진이다. 누가 언제 찍은 것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이 사진의 주인이 밝혀진 것은 건물 복원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즈음이다. 조지 클레이튼 포크. 1884년 5월, 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 해군 무관으로 부임한 외교관이다. 그는 정보수집을 위해 조선의 각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조사하고 기록을 남겼다. 이 사진 말고도 더 많은 사진과 보고 느낀 일기 형식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2007년 그의 조사 일기가 책으로도 간행되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사무엘 홀리 교수가 펴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의 1884년 조선 여행 일기>다. 당연히 관련 사료에 목말라 있던 연구자들에게 <포크의 일기>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연구자가 있다. 관련 자료를 추적해 포크의 기록이 미국 위스콘신 밀위키 대학에 소장된 과정을 알아낸 우석대 조법종 교수다. 공개된 포크의 사진을 면밀히 관찰해 당시의 사진기법(유리원판)까지 재현해낸 그가 최근 사무엘 교수의 책을 번역해 출간했다. 1884년 11월 1일 서울을 떠나 12월 14일 미국공사관에 복귀하기까지를 기록한 일기다.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의 기록은 전주에 머물며 전라감사와 나눈 대화와 자신이 살핀(?) 전라감영의 풍경과 인상이다. 섬세한 관찰 기록으로 만나는 전라감영은 더 흥미롭다. 기록이 주는 힘일 터. 번역자의 노고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2.18 17:18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