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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마 IMF 이후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 때는 없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군산공장이 문 닫으면서 그 파장이 전북경제를 강타한 탓이 컸기 때문이다. 도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반적으로 남북문제가 잘 풀려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조급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기대만큼 쉽게 안 풀리고 있다. 도민들은 인구감소를 내일이 아닌 것처럼 가볍게 넘긴다. 향후 전주 군산 익산 완주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시군은 소멸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구 3만에서 턱걸이 하는 농촌군은 고령화 사회를 형성해 복지예산만 늘어간다. 이미 농촌마을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다. 인구감소는 국가적 재앙이 되었다. 출산하고 싶어도 양육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출산을 꺼린다. 3백만을 바라다 볼 때는 전북의 위상이 중위권이었지만 2백만이 무너지고 185만 지키기도 힘겨운 지금은 모든 면에서 최하위다. 전북 뒤에 제주 밖에 없다. 도청소재지인 전주시도 인구 증가요인이 없어 65만에서 정체돼 있다. 전주시를 키워야 전북이 발전한다. 전주 완주 통합이 세번이나 무산됐지만 지금이라도 통합문제를 다시 거론해야 한다. 전주 완주 통합문제를 감정적으로 바라다 볼 문제가 아니다. 마산 창원 진주나 여수 여천 그리고 청주 청원 통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청주시와 청원군은 통합되면서 인구 85만 도시로 커졌다. 올 예산이 2조3천억으로 통합의 시너지효과가 나타났다. 청주는 수도권으로 편입되면서 기업유치가 활발해 예전의 청주시가 아니다. 청주공항 건설 당시만해도 경제성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청주공항의 무용론이 제기됐지만 지금은 충북 수출창구로 뒤바꿔졌다. 중부권 허브공항 기능을 톡톡히 하면서 사람과 돈이 모이는 청주로 탈바꿈했다. 전주시는 SOC 관련 국가예산이 적어 예산이 1조5천억 밖에 안된다. 인구 30만인 익산시는 1조2천억이고 정읍 남원시가 8천억 순창이 4천억 수준이다. 전주시가 인구에 비해 예산 규모가 적은 것은 면적이 적기 때문이다. 완주군과 경계지역이 대부분 그린벨트 지역이어서 개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 생활권이 같은 완주를 전주와 통합시켜야 한다. 전주를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완주 발전도 더디다. 그간 통합을 제기할 때마다 묘한 정치논리에 가로막혀 통합이 성사되지 못했다. 전주나 완주군민들도 근시안적인 생각을 바꿔야 한다. 완주군 오피니언 리더들이 기득권을 빼앗긴다고 여기고 주민들을 상대로 반대논리를 편 것은 잘못이다. 김승수 전주시장과 시의회는 완주군민의 입장에서 통합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간 완주군민의 피해의식이 컸다. 전주시의 도시 팽창으로 완주군이 잠식당하면서 민원을 유발시키는 시설들이 속속 들어왔다. 전주시가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해 완주군민들이 시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21대 총선전에 통합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여러해 전, 창조도시와 도시혁신의 석학 찰스 랜드리 교수가 전주를 찾았다. 전북의 한문화창조산업 컨퍼런스 기조발제자로 초청된 그는 이 지역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문화산업 기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기조발제를 통해 지난 25년간 일어났던 역사와 도시 개발의 궤적을 살펴보면 창조성과 문화의 결합이 세계 곳곳에서 흥미롭고 빠르게 확산되는 범지구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그의 분석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는 한옥마을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당시는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던 때였는데 오히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우려했다. 한옥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유무형 자산이 풍부했던 시절의 이미지가 그래도 남아 있는 덕분이라고 진단한 그는 그러나 관광객이 몰리다보면 건물 임대료가 오르게 되고 소중한 자산인 예술가들이 이곳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진단은 세계 여러 도시들이 치룬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문화창조산업을 성공시킨 일본의 가나자와가 관광객이 몰리면서 그 원형을 지키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나,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국의 켐브리지를 예로 들었다. 런던의 경우, 예술의 거리 프로젝트를 만들어 실행했는데 그 거리에 관광객이 몰리자 명품브랜드가 들어와 작은 가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가 형성됐다는 예는 시사 하는바가 컸다. 그렇다면 원형을 지키며 창조적으로 발전하는 도시는 불가능할까. 아니면 그런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일까. 그의 답이 궁금했었다. 어려운 문제지만 그래도 길을 찾는다면 유일한 처방이 있다는 그가 제시한 것은 도시계획에 필요한 자치단체장의 결단력이었다. 영국 웨스턴미니스터시가 예술의 거리를 조성하면서 들어올 수 있는 업종을 제한한 것이나 일본 교토의 경우 관광객 제한 규정을 만들어 특화된 정원을 유지하는 규정을 만든 예를 들었다. 재산권 침해라는 반발이 워낙 컸고, 관람권 침해라는 저항이 있었지만 이 도시들의 거리와 정원은 원형을 지켜나가는데 성공했다. 전국 도시마다 문화를 앞세운 도시만들기에 열심이다. 어느 도시나 문화도시를 꿈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쏟아져 나오는 정책이 천편일률이다. 수도 없이 건물을 늘리거나 정체도 모를 온갖 콘텐츠가 동원되다보니 도시의 특성은 없어지고 만다. 발전은 더디지만 쇄락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충분히 경험한 도시들도 다르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002년 4월 군산 옥도면 비안도 앞 해상에서 소라잡이에 나선 잠수부들이 고려청자 243점을 건져 올려 큰 화제가 됐다. 이후 군산 십이동파도 해역과 야미도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선 결과, 고려시대 청자를 운반하던 십이동파도선을 비롯해 도자기 닻돌 철제 솥 시루 밧줄 등 1만 50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해저 속에 뭍혀 있다가 800여년만에 빛을 본 이들 유물은 새만금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바다 물길의 변화로 갯벌이 쓸려 나가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 축조로 인해 비안도 주민들은 17년째 뱃길이 끊겨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 섬 지형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생겼다는 비안도(飛雁島)는 군산항 남서쪽 해상 1.63㎢ 면적의 비교적 큰 섬이다. 현재 182세대 365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지난 2002년부터 여객선 운항 적자와 새만금 방조제 축조로 뱃편이 끊긴 이후 해상 대중교통수단이 전혀 없다. 국내 유인 도서(島嶼) 가운데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곳은 비안도가 유일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섬 주민은 물론이고 관공서 학교 교직원 등도 육지로 오가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새만금 가력항에서 불과 4.5km 거리임에도 뱃편이 없기에 소형 어선을 이용해야 하고 기름값도 한번 운항하는데 20만원 가까이 들어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정원이 3명인 소형 어선에 10여명씩 타다보니 가끔씩 선박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했었다. 때문에 초등학교 교직원들의 인사 발령때 인수인계 물품이 구명조끼라고 까지 했었다. 지난 2012년에는 안전행정부에서 찾아가고 싶은 섬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고 25억원을 투입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2012년 자체 도선사업단을 구성해 가력선착장 점사용 승인신청서를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했지만 새만금 행정구역 분쟁으로 부안지역에서 강력 반대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마침내 지난 17년동안 끊겼던 군산 비안도 뱃길이 열리게 됐다. 지난 18일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재로 전북도와 군산시 부안군 비안도가력선착장 주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군산 비안도~가력선착장 선박 운항을 합의했다. 선박과 선착장 부대시설 등이 마련되면 내년 8월부터 본격 운항될 예정이다. 비안도와 부안 어민들은 이날 예전처럼 형제같이 지내자며 상생 화합을 다졌다. 17년만에 서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여니 이웃사촌 한 형제가 됐다.
참여정부 때 제안된 자사고 제도가 실제 도입된 것은 국민의정부 말기인 2002년도였다. 도입 당시 찬반 논란도 컸다. 특히 자립형 사립고를 둘러싼 논란이 전국적으로 가장 치열했던 곳이 전북이었다. 전주 상산고가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자립형 사립고로 신청했던 사립 고교들의 경우 포철공고광양제철공고민족사관고 등 기업형 학교이거나 학생 수가 많지 않았던 학교인 데 비해 전주 상산고는 일반계 고교로서 지역 교육에 미칠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상산고의 자립형 사립고 신청을 놓고 전북교육계가 1년 가깝게 찬반 논쟁을 벌였다. 전교조 전북지부는 50일 넘게 도교육청에서 농성을 이어갔으며, 당시 차상철 지부장이 단식 농성에 나서기도 했다. 전북교육청은 반대, 찬성, 유보 입장을 오가며 흔들렸다. 전교조는자립형 사립고 지정된 날(2002년 5월5일)이 전북교육 사망의 날이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교육부 장관교육감 퇴진운동과 자립고 안보내기 도민운동홍성대 이사장의 저서 <수학정석> 불매운동 등을 펼치겠다고 결의하기도 했다. 자사고를 둘러싼 16년 전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자립형 사립고 지정 때와 마찬가지로 전북이 또 핫플레이스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교육부의 자사고 퇴출 정책보다 훨씬 강도를 높이면서다. 김 교육감은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자사고 지원생의 일반고 중복 지원 금지를 앞장서 주도한 데 이어,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점수를 교육부 기준보다 강화시켰다. 당장 내년 재지정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산고를 겨냥해서다.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은 사학재단을 대표해 엊그제 헌재 공개 변론에 나서 자사고의 궤멸을 걱정했다. 전북 교육의 수장과 전북의 명문 사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놓고 건강한 토론과 바라직한 해법을 찾는 과정이라면 생산적인 장이 될 수 있다. 자사고 문제는 지역 전반의 교육 생태계와 관련돼 있다. 교육 수장의 개인적 교육철학만을 고집할 문제가 아니다. 자사고 존폐에 대한 지역 내 공론화 과정부터 필요하다고 본다.
인구, 경제력 등 모든 측면에서 전북은 전국 17개 시도중 10위 이내에 랭크되는게 거의 없다. 그래서 지역의 지도급 인사들을 만나면 으레 화려했던 옛날만 되뇌인다. 다행인 것은 피폐와 좌절의 시기를 오래 겪으면서 요즘들어 과거 보다는 현재, 현재 보다는 미래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점에서 새롭게 출범한 재경 전북도민회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출향인 중 최고 원로급이 맡아왔던 회장직을 이번에 김홍국 하림 회장이 이어받으면서 조타수가 과거에 비해 20년 이상 젊어졌다. 그와 호흡을 맞춰 정읍 출신 장기철 상임부회장이 실무 책임자를 맡게되면서 전북인들의 네트워크 강화및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출향 전북인은 얼추 300만명에 이르고 있으니 지역에 거주하는 200만 도민과 함께 손을 맞잡는다면 무서울게 하나도 없을 터다. 흔히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 고려대동창회를 가장 끈끈한 3대 단체로 꼽는데 새 출발하는 전북도민회가 호남향우회의 중심축이 되기를 기대한다. 며칠전 정부는 차관급 16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는데 전북도민 입장에서는 명암이 교차한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전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냈던 김일재 행안부 정부혁신조직실장이 차관급으로 승진하면서 개인정보보호위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전북부지사를 지낸 이들이 차관급 인사로 승진하는 관행이 이경옥, 심보균, 심덕섭 차관에 이어 계속되고 있다. 이쯤되면 행안부 간부들이 서로 전북부지사로 오려고 다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80년대초 서울 법대 출신의 전병우 전북부지사(진안)는 현직에서 일약 전국구 국회의원에 발탁돼 이후 11, 12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그 시절은 막무가내 낙점하던 군사정부때였다. 왜소한 전북에서 부지사를 지냈다하여 1~2년만에 차관이 되는것은 사실 오랫동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게 하나 있다. 이번 인사에서 심보균 행안부 차관, 심덕섭 보훈처 차장,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라승용 농진청장 등 전북 출신 차관 4명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차기 고시 기수가 밀려오기에 차관은 1년 남짓 재직하는게 관례라고는 하지만 유독 전북 출신 요직 차관만 다 날아간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않다. 신임 차관 16명중 무려 3명이 광주 동신고 출신이라는 소식이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왜 그럴까. 차관 인사를 지켜보는 도민들은 전북도민회의 더 능동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희망의 아이콘인 새만금개발사업이 도민들 뜻대로 안되고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과 김대중 총재간에 정치적 합의로 시작된 새만금개발이 우선순위가 뒤바뀐채 추진돼 기대에 어긋난다. 당초 농지를 확보하려고 추진한 사업을 MB때 마스터플랜을 변경해서 농지를 30%로 대폭 축소하고 대신 공장용지를 70%로 확보하기로 했던 것. 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착공한 새만금개발사업은 그간 역대 대통령들이 의지가 없어 시늉내기식 개발로 그치다보니까 30년이 다되도록 완공을 못했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언제 완공될지 기약이 없다. 다행인 것은 도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많이 줘서인지 속도감을 내려고 새만금개발공사를 신설했고, 국회에서 예결위 소위원이있던 정운천 의원의 막판 노력으로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건설사업비가 당초 정부 예산안보다 1500억원이 증액된 4035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사업인 공항과 신항만건설사업이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2가지 사업은 새만금사업의 핵심사업으로서 가장 먼저 끝마쳐야할 사업이었다. 공항과 항만이 제대로 안되면 새만금사업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내부개발도 진척시켜야겠지만 그보다 더 빨리 추진해야 할 사업이 공항과 항만건설이다. 사실 공항과 항만을 앞서 추진하지 않은 것만 봐도 역대 정권들이 얼마나 새만금사업에 관심이 없는가를 알 수 있다. 글로벌경쟁시대에는 물류가 관건이다. 접근성이 용이하고 누가 더 낮은 단가로 물류비를 줄여 수송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그래서 기를 쓰고 고속도로와 항만 그리고 공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간 송하진 지사는 김완주 지사 때 김제공항건설을 포기한 것을 불씨를 되살려 새만금에 공항이 건설돼야 한다는 논리를 개발해서 중앙정부를 설득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간 송 지사는 2023년 국제잼버리 새만금 개최를 배수진으로 치고 조기에 공항건설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정부가 예타를 들먹이고 묘한 정치논리를 앞세워 내년 국가예산에 용역비 25억을 확보하지 못했다. 새만금공항건설은 정부의지에 달려 있다. 얼마든지 정부가 하겠다고 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의지가 약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왔었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에 진정성이 있다면 공항건설과 신항만을 2023년까지 끝내야 맞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상황으로는 난감하다. 정부가 새만금신항만건설을 선 민자를 유치한 후 후 재정사업을 고집해 난관에 부딪쳤다. 이처럼 정부가 공항이나 신항만 건설에 의지가 약한 것은 여권의 정치논리가 강하게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공항은 전남 무안과 청주 그리고 서산공항 때문이고 항만도 인천 평택 대산 대불 광양항 때문에 샌드위치가 돼 터덕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새만금에 공항과 신항만을 크게 건설할 경우 자신들 몫이 줄어들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딴지를 걸고 있다. 항공과 물류수요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도 반대논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도내 정치권이 똘똘뭉쳐 해결해 나가야 한다.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언제 들어도 마음 따뜻해지는 도서관이 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뒤쪽에 있는 이진아 기념 도서관. 지난 2005년 문을 연 이진아도서관은 한 기업가가 외국 유학중 교통사고로 스물 셋에 세상을 떠난 딸을 기리기 위해 사재 50억 원을 기부해 지어진 공간이다. 개인이 공공도서관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는 일도 그렇지만 진심이 전달되는 공간을 만들고자했던 건축가와 진심을 전한 동네 주민의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다. 평생 사업을 하느라 두 딸의 입학식과 졸업식에 가지 못했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다가 평소 책을 좋아하고 사회봉사에 관심이 많았던 진아씨 이름으로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서대문 형무소 뒤쪽에 부지가 확정되고 이어진 현상설계공모에 당선된 사람은 건축가 한형우씨. 그는 도서관이 들어설 땅의 의미와 진아씨의 아픈 사연이 잘 담긴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화인사들이 투옥되었던 서대문형무소와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 건축가는 형무소의 어둡고 닫힌 이미지와 비극적 사연을 밝고 따뜻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박스형 열람실이 반복되는 공간이 아니라 내부가 통으로 시원하게 뚫린 높은 천장과 밝은 빛이 쏟아지는 열린 구조, 인왕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전망 공간과 이용객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도록 배치된 계단과 복도 등 특별한 공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5년 9월 15일 도서관 개관식날, 고인의 아버지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도서관 터 닦는 작업부터 완공까지의 과정을 찍은 사진이 담긴 CD와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란 내용의 편지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세진엄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건축가는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세진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진아도서관을 가장 의미 있는 작업으로 꼽는 한형우 교수가 전해준 이야기가 있다. 도서관 인근 아파트 주민이었던 세진엄마의 사진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그런 사연을 가진 도서관이 들어선다는데 주민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도서관이 지어지는 모습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날마다 베란다에 나가 공사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개관식날 전했던 CD는 그의 진심이 담긴 선물이었던 것이다.
고기없는 고기, 이른바 가짜 고기인 대체육이 세계 식품시장에서 뜨고 있다. 진짜 고기처럼 육즙이나 향 식감까지 비슷하지만 고기보다 단백질과 철분이 많은 반면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은 낮아 푸드 테크의 총아로 꼽힌다. 또한 환경오염과 동물 학대 논란도 피할 수 있어서 인류의 미래 식량으로서 각광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대체육은 곤충 식품과 식물 기반의 식물성 고기, 줄기세포 등을 활용한 배양육 등 3가지 분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대체육 시장은 식물성 고기다. 곤충식품은 혐오감에 대한 인식 때문에 시장 확대에 어려움이 있고 줄기세포 배양육은 생산 원가가 높아 아직은 상품화에 한계가 있다. 식물성 고기의 글로벌 선두 주자는 미국의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 푸드다. 2009년 창업한 비욘드미트는 그동안 우리가 먹던 콩 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 콩 고기는 콩을 갈아 글루텐으로 굳힌 것이다. 반면 비욘드미트는 콩 버섯 호박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을 효모 섬유질 등과 배양해 고기의 맛과 형태 육즙까지 그대로 재현해 진짜 고기와 흡사하다. 비욘드미트에 투자한 빌 게이츠도 나는 원래 쉽게 속지 않는 사람이다. 가짜 고기가 진짜보다 맛있다고 극찬했다. 비욘드미트가 2016년 출시한 소고기맛 햄버거 패티는 미국에서 2500만개 이상 팔려나갔다. 배양육 시장은 멤피스 미트가 선도하고 있다. 2015년 스타트업 기업으로 출발한 멤피스 미트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줄기세포를 근육조직으로 분화시켜 고기를 배양한다. 실제 동물의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근육과 살코기를 배양했고 2016년 초반 미트볼로 유명세를 탔다. 현재 배양 접시를 식품공장으로 옮겨서 대량 생산에 나섰다. 배양육은 동물 도축이 없고 박테리아 감염 우려도 없어 항생제를 안 쓴다는 장점이 있다. 대체육 시장은 미국 뿐만 아니라 인도와 싱가포르 등 세계에서 주목하면서 지난해 시장 규모가 42억 달러에 달했다. 2025년에는 7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식품 대기업에서도 대체육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고 일부 업체에서는 미국업체와 손잡고 햄버거 소시지 버거 패티 등을 곧 선보일 예정이다. 농도로서 농생명 식품산업에 방점을 찍은 전라북도가 국가식품클러스터 구축과 함께 전통 농업의 대안으로 떠오른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 등 차세대 식품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전국의 거의 모든 형무소에서 자행됐다. 1960년 국회 양민학살진상특별위원회가 경남북과 전남, 제주지역에서 현지조사를 벌여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부산형무소에서 4832명, 마산형무소 1682명, 대구형무소 1402명 처형된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민간인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은폐 되면서 그 전모가 지금껏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전주형무소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역시 마찬가지다.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이 공개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것도 겨우 3년 전이다. 이인철 6.25민간인학살조사연구회 대표 주도로 마련된6.25 전주형무소 민간인 희생 규명을 위한 연구포럼을 통해서다. 퇴각하던 북한군이 1950년 9월25일부터 나흘에 걸쳐 500여명을 피살했다는 내용이 여기서 보고됐다. 그 해 9월 전주 효자공원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전주형무소의 비극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북한군의 전주 점령 이전에 많은 민간인들이 한국 군경에 의해 살해됐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또 다른 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이 알려진 것은 경상대 신경득 교수가 쓴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2002년)이란 논문 속 전주형무소 관련 기술을 통해서다. 1950년 6월26일부터 전주함락 시점인 7월20일까지 정치범과 보도연맹원 등 4500명(과거사정리위원회는 1600명으로 추정)에 대한 4차례의 대량 학살이 있었다는 것이다. 월간 <말>은 2003년 유가족과 당시 교도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신 교수의 논문을 뒷받침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형무소(진북동)에서 남쪽의 시내를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옛 공동묘지와 건지산, 황방산, 소리개재 등이 학살 장소로 선택됐다고 <말>지는 전했다. 전주시가 북한군과 우리의 군경에 의해 전주형무소에서 학살된 민간인 유해 발굴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저 전시성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진상 규명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영혼과 유족들의 상처를 진실로 보듬는 길이며,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자신의 업적이나 공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돼 있다. 양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이름을 널리 떨친 사람치고 묘비명을 남기지 않은 이가 드물다. 묘비명은 대부분 사자의 혼이 담겨있다.로큰롤의 제왕으로 일컬어졌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을 때, 또 위대한 록밴드로 인정받는 비틀즈의 존 레넌이 죽었을 때 당시 언론은 King Is Dead와 Music Is Dead라고 썼다.재치가 넘치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다.반년전 타개한 김종필 전 총리도 스스로 상당히 긴 비문을 지었는데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이다.사악함이 없는 생각이라는 의미인데 과연 실제 JP의 삶이 사무사 였는지는 많은 논란이 있을법 하다. 익히 알려진대로 중국 최초의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는 세상을 떠날 무렵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많으므로 비석 하나에는 다 기록할 수 없을 테니 그저 아무 것도 새기지 말고 비워 두라는 유언을 남겼다. 측천무후의 무자비(無字碑)는 실로 방자하기 그지없다. 오랜 역사속에서 어떤 이는 업적을 돌에 새기고, 또 어떤 이는 쇳물을 녹여 온갖 미사여구로 담아냈으나 그 누구도 변화무쌍한 세월과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기 일쑤였다. 며칠전 470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막판 의결과정에서 당초 정부 예산안에도 없었으나 신규로 증액된 쪽지예산이 무려 100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소위 실세 정치인으로 꼽히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미래당 원내대표, 안상수 예결위원장, 장제원 한국당 예결위 간사, 조정식 민주당 예결위 간사 등의 이름이 도하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뚜렷한 명분만 있다면 국회의원이 지역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예산을 확보한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하다. 그런데 내후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별다른 실적도 없는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나서서 쪽지예산을 확보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은 볼쌍스럽다. 심지어 일부 시장 군수는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가진 곳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고서도 반성문을 쓰기는 커녕, 자랑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일부 지방의원도 국회 쪽지예산을 그대로 답습해 뽐내고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묘비명을 단단한 돌에 끌로 새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상이 이럴진대 지금의 위정자들이 앞으로 어떤 비문을 스스로 지어서 후세에 남길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올해도 도민들의 삶은 경제난으로 윤택해졌다기 보다는 팍팍했다. 지난해 장미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준 도민들은 지역발전에 기대가 컸으나 결과가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9년동안 전북이 철저하게 소외된터라 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역시나 내지는 아니올씨다로 끝났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군산공장 폐쇄로 직격탄을 맞은 전북은 정부에서 전북경제를 살려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연말이 닥쳐도 피부에 닿는 뾰족한 지원책이 없다. 그간 2개 기업의 비중과 협력사가 많아 군산경제를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반토막 났다. 사실상 군산조선소의 내년도 재개는 물건너갔고 GM군산자동차공장 문제도 오리무중이다. 도의회가 전북예산 7조원시대를 열었다고 자랑하지만 도민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차갑고 낮다. 생활형편이 풀리고 나아져야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송하진 지사가 사람과 돈이 모이는 전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의욕 만큼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송 지사는 도민들의 기대치와 요구사항에 제대로 부응 못해 못내 아쉬워 하는 마음이다. 10명의 국회의원들도 4개정파로 나눠져 말로만 협치 운운하지 실제로는 자신들 21대 총선 준비하기에 급급하다 보니까 도정에 큰 도움을 못줬다. 국회의원들이 송지사 앞에서는 도와준척 하지만 돌아서면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큰소리 못치고 모기소리나 내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허약한 존재에 세비가 아깝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도내 국회의원들이 당을 떠나 지혜를 모으고 협치를 해야 그나마 전북몫을 챙겨올 수 있지만 그렇게 안돌아가고 있다. 방안퉁수격인 전북 정치권의 소지역이기주의가 지역발전을 발목잡았다. 힘을 모아도 존재감이 약한데 서로 질시해 정치력만 약화됐다. 그간 학연을 중심으로 한 끼리끼리 형태로 도내 리더그룹이 형성되다 보니까 뭉치고 단합해야할 때 구심점이 없어 힘이 모아지지 않았다.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되는한 전북발전은 요원할 뿐이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타지로 나가는 판에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업체를 반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기업유치한다고 산토끼 잡으려고 뛰어 다닌 것도 좋지만 투자하겠다고 찾아온 업체를 내팽개치는 것은 납득이 안간다는 것. (주)자광이 전주 대한방직 부지에 143층 높이의 익스트림 타워를 건립하겠다고 했지만 전주시가 일방적인 반대여론만을 의식한 나머지 거절했다. 책임론 때문에 거절한 것인지 아니면 더 크게 공익을 확보하려고 한 것인지 석연치 않다. 이런 와중에 15년간이나 전북애향운동본부를 이끌어왔던 임병찬 총재가 3년 더 하겠다는 말이 나돌자 논란이 일고 있다. 도민들이 그분의 공과를 잘 알고 있어 오는 13일 대의원 총회 개최 이전에 2선으로 물러 나겠다고 발표하는 게 도민들에게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여러해 전 인터넷상에서 눈길을 모았던 사진이 있다. 삭발한 할아버지와 역시 머리털이 없는 아기. 아기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할아버지는 미국 41대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이고 아기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두 살배기 패트릭, 부시대통령의 경호원 아들이다. 이 사진은 패트릭의 친구들(Patrics Pal)이란 사이트를 통해 알려졌는데 사이트에는 이 사진 말고도 부시대통령과 함께 20여명 삭발한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또 있었다. 더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부시대통령과 이들 20여명이 함께 삭발한 이유가 알려지면서다. 부시 대통령이 삭발한 것은 2013년, 그의 나이 89세때다. 파킨슨병을 앓았던 그는 이미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퇴임 이후 봉사활동에 헌신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자선단체를 통해 도서관과 장학단체 지원 등 폭넓은 봉사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백혈병 어린이 환자돕기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딸 로빈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그의 삭발은 자신을 경호하는 백악관 비밀경호실 직원들의 집단 삭발에 뜻을 함께 한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직원들은 동료의 아들인 패트릭이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게 되자 아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함께 삭발을 하고 모금에 나섰다. 패트릭의 친구들이 패트릭을 돕기 위한 모금 홈페이지였다. 직원들의 동행 삭발을 알게 된 부시 역시 삭발로 뜻을 더했다. 전직 대통령의 훈훈한 인간애에 미국 국민들은 뜨거운 존경과 박수를 보냈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삶이 조명되고 있다. 그의 생애 94년. 세계사에 미친 궤적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길에는 공과가 모두 존재하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모로 퇴임 이후 미국 국민들로부터 더 큰 존경을 받았던 부시대통령의 삶의 면면을 보면서 우리의 대통령들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5일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추모와 애도의 고별사가 넘쳐난다. 그 중 하나. 부시의 삶은 공공에 봉사하는 것이 고귀하고 즐거운 일이며 놀라운 여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보낸 애도사가 눈길을 모은다. 공공에 봉사하고 헌신한 부시 대통령의 삶에 대한 경외일터다. 우리에게도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전직대통령들이 있다. 존경이나 품격은 그만두고 부끄럽지 않은 전직대통령과 동시대를 함께 한다는 일.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싶다.
완주군은 로컬푸드의 수도다. 국내 로컬푸드 운동의 시발지이며, 로컬푸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완주군이다. 2012년 4월 첫 개설된 완주 용진농협 직판장은 한국 로컬푸드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완주군의 로컬푸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올들어서만 정부 부처와 자치단체 등 190여개 기관에서 5700명이 찾았단다. 완주 로컬푸드의 열풍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완주군에서 처음 로컬푸드 운동이 시작됐을 때만해도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완주군 로컬푸드는 2008년 8월 임정엽 당시 군수가농업농촌발전 약속 프로젝트발표를 통해 처음 언급됐다. 농가의 소득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여러 정책 중 유통혁신 시책으로 로컬푸드 추진 계획을 내놓았다. 이후 로컬사업단이 지역자활센터에 꾸려져 간헐적으로 직거래장터를 열면서 기반을 넓혔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식품으로건강 밥상 꾸러미를 만들어 배달하는 꾸러미 사업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도 쌓았다. 실제 첫 직판장이 차려질 때까지 4년이 걸렸다. 완주군에서 로컬푸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역적으로 배후에 전주라는 큰 소비처가 있다는 게 강점이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 지역 농산물에 대한 애정도 한 몫 거들었다. 특히 정책결정권자의 의지를 빼놓을 수 없다. 다품목 소량 생산구조인 지역농업의 특성을 꿰뚫고, 다수의 소농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로컬푸드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완주에서 로컬푸드 운동이 본격화되기는 했지만 비슷한 형태의 농산물직거래 시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일본의 경우 이미 90년대 로컬푸드와 같은 지산지소 운동이 펼쳐졌다. 아이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지역의 특성과 농가의 사정을 살펴 이를 완주군 실정에 맞게 계속 업그레이드 시키며 정착시켰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민선 7기 들어 자치단체장마다 여러 새로운 정책들을 개발해서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눈에 확 띄는 정책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든 진정으로 지역민의 삶의 질을 앞세울 때 감동을 줄 수 있다. 완주 로컬푸드가 그 점에서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전북과 함께 해오면서 한국 프로축구사에 새로운 전설이 된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 그의 닉네임은 봉동이장이다. 실제 지난 2012년 2월 25일 전주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하프타임 때 완주군수로부터 명예 봉동이장 위촉패를 받았다. 이날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첫 데뷔전을 치른 최 감독은 완주군 이장단 전원과 봉동읍민 등 500여명을 경기에 초청, 답례했다. 최 감독이 봉동이장으로 불리운 것은 전북현대의 클럽하우스가 완주 봉동읍 율소리에 있는데다 그의 소박한 성품과 평소 편안하고 부담없는 언행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5년 만년 중하위팀인 전북현대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부임 첫 해 FA컵을 거머쥐었고 2006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당시 중국 원정경기에서 전북현대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중국 언론에선 최 감독을 강희대제라 칭했다. 하지만 전북의 열성팬들은 그를 봉동이장이라 불렀고 지난 2011년 12월 전북현대가 K리그 정상에 올랐을 때 팬들이 건넨 밀짚모자와 고무장화를 착용하면서 봉동이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 해 최 감독은 전북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전북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 감독은 이후 전주에서 주요 경기가 열릴 때마다 완주지역 이장을 초청, 관전하도록 배려했다. 지난 14년동안 전북현대를 이끌어 온 최 감독은 프로축구사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지난 3일 KEB하나은행 K리그 시상식 2018에서 K리그1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역대 최다 신기록인 6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또 이른바 닥치고 공격이라는 축구철학으로 지난 2009년과 2011년 2013년 2015년 2017년 2018년 등 모두 6차례 K리그 우승과 지난 2006년과 2016년 2번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이끌었다. 지난 4월에는 감독 통산 211번째 승리를 거두며 역대 K리그 감독 최다승 기록을 고쳐 썼다. 지난 2005년 감독 데뷔 이후 13년 만에, 210승을 거둔 김정남 전 감독의 기록을 경신했다. 올 시즌까지 전북현대 한 팀에서 통산 229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오는 14일 중국으로 떠나는 최강희 감독은 이제 한국프로축구의 전설로 남았다. 중국 슈퍼리그의 톈진 취안젠 사령탑에 오르는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중원에서 그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길 소망한다.
흔히 미국의 케네디 가문을 최고의 로열 패밀리로 꼽는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말처럼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막강한 그물망 인맥의 한 중심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혼맥지도가 있다. 재벌가를 중심으로 짜여진 로열 패밀리에서는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장차관 정도는 우습게 발견할 수 있다. 고관현직을 지내지는 못했지만 독립운동을 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 한 집안 역시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부지기수로 많다. 씨족의 개념의 약해지고 핵가족화 현상이 급격하게 진행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옛날 얘기같지만 지금도 로열 패밀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전북의 경우 대표적인 로열 패밀리를 꼽는다면 단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집안과 인촌 김성수 집안을 꼽을 수 있다. 인촌 김성수는 동아일보, 경성방직, 보성전문(=고려대)을 세웠고 친동생인 수당 김연수는 삼양사를 설립했다. 김연수의 아들이 김상협 전 총리이고, 그 손자가 바로 김한 JB금융지주 회장이다. 그런데 엊그제 당연히 3연임이 예상됐던 김한 JB 금융지주 회장이 전격 뜻을 접었다. 그 배경이야 어찌됐든 전북의 대표적 로얄 패밀리의 일원인 김한 회장의 결단이 새삼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김한 회장은 JB 금융지주 주식은 거의 없지만 삼양사가 약 7% 가량의 JB금융지주 주식을 가지고 있기에 회장인 그의 입김은 실로 막강하다. 사실 JB금융지주는 명실공히 전북 최대의 주식회사다. 50조에 가까운 자산, 3500여명의 직원, 전북은행광주은행JB우리캐피탈JB자산운용PBC 등 거대한 그룹을 만든 이가 김한 회장이다. 해마다 전북에 100억원의 기부금을 내는 곳은 JB금융지주가 유일하다. 전북은행 행장때 덩치가 훨씬 큰 광주은행을 인수하고, 전북에 본사를 둔 JB금융지주를 만들어낸 김한 회장의 공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멋지게 용퇴한다지만 김한 회장이 앞으로 해야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다.창사 50주년이 될때까지 단 한번도 전북은행 출신 행장이 없었기에, 이제는 지역 인물을 후임자로 발탁하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전북은행장 뿐 아니라 JB금융그룹 회장에는 지역에 대한 기반과 애정이 있는이가 발탁돼야 한다. 물론, 후임 회장은 사외이사 5명, 비상임이사 2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 후보추천 위원회에서 결정한다지만, 로열 패밀리의 후광을 등에 업고서 지역사회에 헌신해 온 김한 회장은 지금은 뒤로 빠질때가 아니다. 후임자를 잘 세워야 한다.
지역에 노인은 많아도 어른이 없다보니까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여론형성이 제대로 안된다. 사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어른 역할 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공사 구분을 잘 하면서 처신을 올바르게 해온 사람이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베품과 나눔을 잘 해온 덕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칭할 수 있다. 물질적 기준은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덕망을 쌓은 사람이면 당연히 추앙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간 전북에다가 뿌리를 박고 살아오면서 흠 없이 살아오기란 쉽지 않다. 물질의 유혹과 명예욕에 빠질 수 있어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온전하게 지켜온 사람은 그리 많치 않다. 누구나 자신 앞에 큰 감 놓고 싶지 멀리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보다 물질위주의 가치관과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지역사회 인심이 더 팍팍해졌다. 산업화가 미진했을 때만해도 순수함과 낭만이 있었다. 존경받는 어른이 있어 방풍림과 사회 안전핀 역할을 했다. 지역에 무슨 큰 일이 생겨도 알게 모르게 어른들이 나서서 해결하는 소방수 역할을 했다. 서로간에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 먹을려는 맘들이 있었다. 비교적 형 동생간에 의리도 지켜졌다. 막상 끼니 끓일 것이 없어도 째째하게 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허세만 부린 것은 아니었다. 때로 의리가 지켜지지 않고 뒤틀렸을 때는 OK목장의 결투처럼 정의의 주먹을 날렸다. 비겁하게 뒤통수 치거나 야비하게 해코지 같은 짓은 안했다. 그 때 그 시절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먹고사는 것도 큰 차이가 나질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인격과 품격을 떠나서 돈격이 따로 있을 정도로 돈에 맥 못추는 사회가 돼버렸다. 돈에 웃고 우는 사회가 됐다. 지금은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이다. 경쟁이 치열하면서 그 좋았던 인심은 오 간데 없고 남 잘되는 꼴 못보는 몹쓸병이 생겼다. 돈이 돌지 않고 먹고 살기가 각박해지면서 진정과 투서가 많아졌다. 너무 건강성이 악화됐다. 어른이나 아들이 구분되지 않고 목소리 큰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난다. 전주한옥마을이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서서히 그 기운이 빠져가는 모습이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이 마땅하게 없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워 나갈려고 공동으로 노력은 않고 자신만 은근슬쩍 먹어 치우려다가 체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아직도 단체장 주변에서 아부하는 유지들이 많다. 또 복지부동형 공직자가 많다. 그간 전북사회를 이끌어왔던 나이든 세대들은 2선으로 빠지고 그들이 가졌던 경험과 지혜를 젊은층에게 줘서 전북사회를 역동성 있게 만들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세대교체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다보니까 지역사회가 무기력하며 동력이 약화됐다. 이제는 누구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통섭의 시대로 세상이 변한 만큼 선배들이 어른으로 남아 존경 받으려면 후배들한테 기회를 줘야 한다. 새시대가 왔는데도 아직도 전북은 변화하지 않고 요지경속이다.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
술이 금지된 시대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대와 국가에 따라 금주가 이루어진 예가 적지 않지만 현대사에서는 미국의 금주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금주법은 1919년 제정됐다. 이 법은 1933년까지 시행되었는데, 미국에서는 이 시기를 금주법시대라 통칭한다. 미국의회는 1919년 10월, 미국의 금주법에 관해 규정한 법률 볼스테드법을 통과시켰다. 하원 사법위원장이었던 앤드류 볼스테드 이름에서 따온 볼스테드법은 이 법에 의해 허용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조금이라도 독주를 제조하거나 팔거나 물물교환하거나 운송 수입 수출할 수 없으면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 법은 미국의 대부분 주에 확산되면서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술을 제조하거나 소비하는 모든 행위가 강력하게 금지됐다. 사실 미국의 금주법은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부족해진 식량(곡물)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취지와 목표가 달라졌다. 당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알코올중독 약물남용 도박중독 등의 사회적 문제를 금주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반감도 추진 동력이 됐다. 독일은 당시 맥주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 이민자 중에는 역시 양조업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층이 많아 이들을 견제할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찌됐든 볼스테드법이 발효된 그 해부터 미국의 술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법이 폐지된 1933년 이후에도 그 상황이 한참동안 유지되었으니 법 제정의 취지는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이어졌다. 술의 합법적 생산이 금지되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던 술값이 급등하자 가짜술 제조가 성행하면서 결국 그 고통이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밀주 생산과 밀거래, 무허가 술집까지 성행하면서 주류사업 이익을 둘러싸고 마피아 갱스터 같은 도시지역 범죄조직이 성장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가 이름을 알린 것도 이때였다.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는 금주법으로 주세를 걷지 못한 각 주 정부들이 세수부족에 더 시달려야 했다. 결국 193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당선한 루스벨트는 이듬해 이 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금주법이 온전히 철폐되기 까지는 그 후로도 30여년이 더 걸렸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금주법이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 페미니즘 열풍과 맞물려 사회적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PD수첩 메인 작가였던 소설가 조남주씨가 지난 2016년 10월 출간한 82년생 김지영이 2년여 만에 누적 판매부수 100만부를 돌파했다. 지난 27일부로 종이책 82만부, 전자책 18만부가 팔렸다고 출판사에서 밝혔다. 우리 문단에서 밀리언셀러는 2007년 김훈의 칼의 노래,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양성평등 이슈가 나올 때마다 거론됐고 국회에서 남녀고용평등법, 아이돌봄지원법 개정안 등 소위 김지영법을 입법하는 동력이 됐다. 자치단체에선 새로운 정책 홍보수단으로 ○○년생을 위한 정책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 16개국에 수출이 확정됐고 지난 5월 출간한 대만에서는 전자책 부문 1위에 올랐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김지영 역에 정유미씨, 김지영 남편 역에 공유씨가 확정됐고 내년 초 촬영에 들어간다.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서른넷 전업주부인 김지영의 삶을 통해 여성이 학교와 직장, 고용시장에서 받는 성차별과 불평등,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연결해 보여 주는 소설이다. 극적인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여성 주인공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여성의 삶을 과장없이 이야기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폭력과 성차별에 눈뜨기 시작했고 여성 문제가 주요 정치적 의제가 되면서 금태섭 의원이 동료의원들에게 이 책 300부를 선물하면서 알려졌다. 여기에 고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2017년 5월 청와대 오찬 회동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라며 이 책을 선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지영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또 미투 운동의 단초가 된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이 책을 언급했고 가수 아이린을 비롯 일부 여성연예인들이 단지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남성팬들로부터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면서 여성층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여성 구독자가 76%로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다. 앞으로의 세상은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의 시대적 책무이다.
도시가스가 보급되기 전까지 연탄은 서민들의 핵심에너지였다. 매년 겨울이면 연탄 관련 뉴스가 신문 사회면을 달궜다.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요즘의 교통사고만큼이나 빈번했다. 일가족 참변 등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뉴스도 많았다. 연탄 사재기나 연탄 파동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져 서민들을 움츠리게 했다. 지금이야 연탄이 빈곤층의 에너지로 전락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부유층의 에너지였다. 대부분 농가에서는 나무 땔감을 연료로 사용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 땔감을 장만하는 게 농가의 대사였다. 농가들에게 연탄은 큰 선물이었다. 김장과 함께 월동준비 1,2호를 다퉜던 그런 연탄도 더 편리한 도시가스에게 밀려났다. 연탄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추억이지만, 지금도 겨울을 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연탄 이용자들도 많다. 전북에서 연탄을 쓰는 가구가 8000여 세대에 이른다. 올 연탄 값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연탄이 보편적 연료이던 시절이라면 핫이슈가 될 사안이다. 연탄 가격이 왜 올랐는지, 연탄 수급에 문제가 없는지, 서민 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는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연탄 한 장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게다. 지난 23일부터 인상된 연탄 한 장 가격(공장도 가격)은 640원이다. 105원 올랐다. 소비자 가격은 900~1100원이다, 저소득층의 겨울나기가 그만큼 더 팍팍해진 셈이다. 엄밀히 따질 때 연탄은 사실 퇴출 대상이다. 아황산가스와 일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단위 열량당 온실가스도 많은 에너지여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도 연료 전환정책을 통해 연탄 대신 다른 연료를 사용하도록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연탄조차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을 연탄으로부터 탈출시키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새만금에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추진하고, 수소차 산업을 일으키는 등의 에너지개발 정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올 겨울을 어떻게 날 지 걱정하는 에너지 빈곤층을 살펴야 할 것이다.연탄 미담에 계속 의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경호처 직원의 시민 폭행 등 최근 청와대 인사들의 잇따른 물의와 관련해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성을 촉구했다. 임 실장은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익숙함이라며 ~관성이 이끄는 데로 가면 긴장감은 풀어지고 상상력은 좁아질 것이다. 익숙함관성과는 단호하게 결별하시라고 당부했다.비서이자 국민을 섬기는 공복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께 폐가 되고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요즘 임종석 비서실장은 자주 눈에 띈다. 실세 비서실장이기에 한쪽에선 질시도 많이 받고있다.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비서실장의 선글라스 파동도 사실 오해를 받는 측면이 많아 보이지만 실세의 처신은 더욱 엄중해야 함을 일깨워준다.굳이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뿐만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입줄에 오르는 참모들이 종종 있다. 꼭 20년전의 설화 사건이 떠오른다. 1998년 유종근 지사주재 회식자리에서 설화사건이 터졌다. 옛 전북도청 주변 고급 음식점에서 회식을 하던중 주성영 당시 전주지검 검사(훗날 국회의원 역임)가 자신을 말리던 박 모 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찍어 눈썹 주위가 6cm 가량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주 검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천안지청으로 전보되기도 했다. 당시 유종근 지사가 실세였기에 크게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지사나 비서실장 또한 구설수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주 검사가 도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까는데 이용한 도구가 당시 막 출시된 설화(雪花)라는 이름의 술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관련자들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진짜 설화(舌禍)에 휩싸였다.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당시 설화 사건이나 최근 발생한 일련의 청와대 참모들의 일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람일수록 더 겸손한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선거가 치러진지 반년도 되지 않아서 요즘 일선 시군에서는 일부 참모들의 전횡이나 잘못된 보좌가 종종 입방아에 오른다고 한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하거나 연임에 실패한 단체장들은 너나없이 사람을 잘못 쓴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다시 선거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모든게 다 보이게 돼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탈출-장민강 청명초 2학년
전북 제3금융중심지 재도전, ‘이번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