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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마을

70~80년대 학교 주변 곳곳에 하숙촌이 자리했다. 대개가 허름한 개인 주택이었고, 하숙생 수도 평균 대여섯이었다. 주인과 하숙생이 한 집에서 부대끼며 생활했기 때문에 하숙집 자체가 한 가족이었다. 고교생 하숙생에게 하숙집 아주머니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이른 새벽밥을 짓고, 점심저녁 도시락까지 챙기는 데 정성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 하숙촌은 이제 추억의 장소가 됐다. 대학은 물론, 고교까지 기숙사가 생기면서다. 전주와 서울 유학생을 위해 시군별 장학숙도 운영되고 있다. 하숙을 치던 학교 주변의 낡은 주택들은 거의 모두 원룸촌으로 변했다. 원룸 주인들이 대학 기숙사 확충을 반대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던 때도 있었으나 사회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하숙촌의 쇠퇴는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이를 역으로 활용한 곳이 교육도시인 충남 공주다. 공주시는 주민들과 함께 과거 하숙촌에 민박과 식당, 카페, 사진관, 갤러리, 문학관 등을 조성해 하숙마을로 이름 붙였다. 1960년대 이후 지역민들의 삶이 담긴 게스트하우스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추억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게 한 것이다. 전북혁신도시를 지나다보면하숙마을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곳 하숙마을은 공무원 연수기관인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이 완주 이서에 둥지를 틀면서 전용 하숙단지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원룸과 주택 100여 채 중 80여 채가 하숙집으로 운영되고 있고, 객실 수만 1200개에 이른다. 과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하숙촌과는 거리가 있지만, 하숙마을이라는 이름만으로 정겹다. 이 하숙마을이 채 정착도 전에 존폐 기로에 놓였다. 경기도가 인재개발원으로 교육생을 보내지 않고 자체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고 행자부에 요청하면서다. 인재개발원이 떠난 뒤 수원의 하숙마을이 쇠퇴하고, 해당 지역의 상권이 무너진 것을 직접 경험한 곳이 경기도다. 경기도가 이제와서 공무원교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자체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동안 인재개발원의 특수를 누렸던 지자체로서 도리가 아니다. 경기도의 몽니와 행안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인재개발원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하숙마을을 포함한 지역상권이 위협받을까 걱정이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4.02 20:2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일제 침략기 군항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한때 요처로 꼽혔던 경남 진해에는 해마다 군항제가 펼쳐지는 이즈음 전국에서 몰려드는 벚꽃 관광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화사한 벚꽃의 정취는 특히 밤에 멋드러진 조명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그런데 청명을 며칠 앞둔 요즘 날씨는 한마디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절기로는 분명 봄이지만, 봄 같지 않은 추운 날씨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씨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많은 이들은 유신 독재의 총수인 박정희가 불과 몇달전 사라졌기에 이제 곧 민주화가 이뤄지고 김대중 또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소한 김종필이나 최규하가 상당 기간 끌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3김 회동에서 김종필은 묘한 말을 남겼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을 아십니까아직 봄이 오직 않았다는 의미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이미 1212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518 광주를 통해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렸다. 시간이 한참 지난뒤 반추해 보면 춘래불사춘을 언급했던 김종필의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역사의 고비고비 마다 확실히 매듭을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만 새 출발이 가능하지만, 결말이 나지 않았을때 비극은 오랫동안 계속되곤 한다. 대표적인게 임진왜란이다. 이 전쟁을 거치면서 명나라가 망해버리면서 청이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도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의한 에도 막부 시대가 펼쳐졌다. 하지만 전장터를 제공하며 숱한 백성이 죽어나간 한반도에선 정작 조선이 망하지 않고 멀쩡히 이어졌다. 어쩌면 조선이 그때 망하지 않고 생불여사(生不如死) 같은 모습으로 살아남은게 큰 저주였음이 훗날 역사는 보여준다. 소위 촛불혁명으로 새 정권이 탄생했으나 요즘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아직 봄은 오지 않았나보다. 누구보다 법을 지켜야 할 법무부장관 출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진해 바로 옆에 있는 창원에서 프로축구 경기장에 난입, 불법선거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법을 몰랐다고 하면 그뿐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 여당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처신으로 자꾸 민심을 잃고 있다. 민심과 거리가 먼 인사를 하고, 요석인 박영선김연철 카드를 살리기 위해 폐석인 최정호조동호를 버렸다는 말도 들린다. 한비자는 일찌감치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고 했다. 도리가 아닌 것은 이치를 당하지 못하고, 이치는 법을 당하지 못하고, 법은 권세를 당하지 못하고, 권세는 하늘(=사람)을 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어떤 권력도 민초의 저변 민심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4.01 20:28

촛불 국회의원

지금도 선출직에 나서려면 능력에 상관없이 돈부터 걱정한다. 아직도 돈선거가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 같은 생각을 한다. 능력이 출중하면 돈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법정선거비용이 한정돼 있지만 알게 모르게 영수증 처리도 못하고 쓰는 돈이 꽤 많다. 5만원짜리 고액권이 나온 후로는 그 만큼 돈가치가 하락해 예전보다 돈을 많이 쓴다. 선거가 잦아지면서 선거브로커들이 각 지역별로 활개쳐 돈선거의 유혹이 상존한다. 21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예상 출마자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선거법이 확정되지 않아 선거구가 어떻게 획정될지가 미지수지만 일단은 지역구가 줄고 비례대표가 늘 전망이어서 전북은 의원축소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10석의 의석수가 1~2석 정도 준다면 전북은 완전히 분대급 정치권으로 전락하면서 지역구 경쟁만 치열할 전망이다. 2석 밖에 안된 민주당은 지역구별로 후보경선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이 녹색 돌풍을 일으켜 7석을 석권 압승하는 바람에 민주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그간 와신상담하면서 재기를 넘보지만 그 어느때보다 당내 공천경쟁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 지난 장미대선 때 민주당이 압승해 그 여파가 21대 총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3선의 이강래 한국도로공사사장,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이사장이 절치부심하고 있고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였던 김금옥씨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내 비례대표로 안전하게 국회에 진출할 수도 있었지만 전주 완산갑으로 출사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DJ가 낙선한 후 영국에 가 있을 때부터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DJP연합의 밑그림을 그렸던 이강래 사장이 최근들어 내년 총선 출마의지를 강하게 불태운다는 것. 민주당 복당이 좌절된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계속해서 민주당 복당을 노리지만 이 사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당내 경선을 통해 4선고지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는 것. 민주당 실세들과 끈끈한 맥을 갖고 있는 이 사장이 한때 국정원장 발탁설이 나돌 정도로 조용한 실력자로 알려졌는데 그가 총선에서 성공하면 후반부에 들어간 문재인 정부나 국회에서 부의장 이상 요직을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간 보수정권이 전북 출신들을 소외시켜 전북인재 풀이 제한됐지만 문재인 정부 때부터 장차관 기용이 많아져 민주당쪽의 지역구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라승용 전 농진청장(김제) 행정부지사를 역임했던 심덕섭 보훈처차장(고창) 심보균 행안부차관(김제) 등이 눈에 띤다. 문제는 누가 더 많은 권리당원을 확보하느냐가 관심사다. 촛불혁명을 통해 무능한 박근혜 전대통령을 탄핵시켰던 도민들이 촛불정신을 되살려 나갈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21대 총선은 물갈이냐 아니면 인물키우기냐로 여론이 갈리겠지만 유권자들이 연고주의에 현혹되지 않고 인물을 잘 뽑아야 전북발전도 가능하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3.31 19:59

레지던시의 진화

예술가들에게 창작 생활공간을 지원해 작품 활동을 돕는 사업, 레지던시(residency)가 진화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기업 뿐 아니라 사설미술관과 단체까지 레지던시를 주도하고 있는 덕분이다. 전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불과 3-4년 전 만해도 어려움을 겪었던 입주자 모집 여건은 넘쳐나는 신청자들로 이미 반전되었다. 지역의 한계를 넘어 외국작가들의 참여도 해마다 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예술가가 특정 공간에 거주하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창작 활동을 지원을 받는 레지던시는 유럽을 비롯해 예술가 지원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좀 더 일찍 시작된 제도지만 그것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국내 도입 역시 그즈음인데 공공기관 보다는 기업의 예술가 지원 사업이 오히려 레지던시 환경을 북돋아온 경향이 짙다. 사실 레지던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시작은 독일의 창작공간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Kuenstlerhaus Bethanien).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예술가 스튜디오이기도 한 이 공간은 병원 건물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의료시설로서의 기능을 잃고 훼손되어 폐허가 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예술공간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베타니엔이 본격적인 창작 지원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5년, 본격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이후 40년. 지금 베타니엔은 세계 각국 작가들이 상주하면서 실험정신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세계적인 창작 실험실이 됐다.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베타니엔의 명성을 높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우선 특별한 것은 입주작가의 자격. 자국의 작가들이 아닌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외국 작가들이 대상이다. 국제예술교류를 지향하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베타니엔은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공공예술단체와 협약을 맺고 해마다 추천을 받아 입주 작가를 선정하고 1년 동안 창작공간과 전시공간, 활동비를 지원해준다. 그러면서도 창조적 관점을 지켜 생산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하는 덕분에 입주 작가들은 1년 동안 오로지 작업에만 전념하면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며 창의적인 작업을 마음 놓고 펼치게 된다. 근래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레지던시를 들여다보니 형식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게다가 유독 미술 분야에만 편중되어 있다. 지역적 특성으로도 문학과 공연 등 분야의 확장이 아쉽다. 이대로는 레지던시의 건강한 진화가 멀게만 보인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3.28 20:20

지역 격차의 복지서비스

대한민국 복지사업 현황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정부 운영의복지로(www.bokjiro.go.kr) 시스템이 있다. 생애주기(임신출산부터 노년까지)가족상황(장애인한부모)주제별(교육고용주거) 등 분류 검색과, 지역별 검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전체 검색을 눌러보니 무려 7152건에 이른다. 가히 복지정책의 홍수시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가짓수의 복지사업이 이뤄지더라도 나를 위한 복지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림의 떡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지자체별 재정격차에 따라 갈수록 복지서비스에서도 차이가 벌어지면서 다른 시도에서 받는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실제 경기도의 몇몇 복지사업만 보더라도 전북 지역민들로선 부러울 수밖에 없다. 경기도는 올해 만 24세 청년 1인당 연 100만원 지역화폐로 지급하는청년배당과, 최초 국민연금 보험료를 1회 지원하는 생애최초 국민연금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청년구직지원금, 일하는 청년통장, 청소년학업장학금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 또한 여럿이다. 0세아 전용 어린이집, 365어르신돌봄센터도 운영 중이다. 경기도청 본청에서만 140건의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성남시는 경기도와 별도로 자체 54건에 이르는 복지사업을복지로에 올려놓았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복지서비스만 해도 오케스트라와 유소년 축구단을 운영하고, 다문화모국방문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와 비교할 때 전북 지자체의 복지사업은 그야말로 면피용 수준이다. 도청 본청에서 시행하는 자체 69건의 복지사업이라고 해야 저소득층노인 등 취약계층 시설과 단체 운영과 행사 등을 지원하는 정도다. 34개의 자체 복지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전주시 역시 마찬가지며, 청년 대상 복지사업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게 고작이다. 지자체의 복지사업을 두고 선심성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그것도 재정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하다. 재정여건이 안 된 지자체들은 정부 복지사업의 매칭펀드를 메꾸기도 버겁다. 복지예산 비중이 전국에 가장 높은 전북이 그렇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이 부모뿐 아니라 지역으로도 결정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3.27 20:42

일제 잔재 지명(地名)

고향의 마을 이름이 구암리다. 마을 뒷동산 아래에 거북모양의 큰 바위가 있었기에 구암(龜岩)마을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구암(九岩)마을로 한자표기가 바뀌었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구산리도 산 모양이 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구산(龜山)이었지만 역시 거북 구(龜)가 아닌 아홉 구(九)로 개명됐다. 동네 어른들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때문에 왜구가 패망했기에 우리 지명에서 거북 구(龜)를 못쓰게 했다고 한다. 거북 구(龜)뿐만 아니라 지명에 용(龍)이나 봉황(鳳凰)이 들어간 곳도 일제가 바꿨다. 대전 계족산의 원래 이름은 봉황산이었다. 장수 용계(龍鷄)마을도 고려 말기 왜구 토벌에 나선 이성계 장군이 깜박 잠이 들었다가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왜구를 무찔렀다 해서 그렇게 불렸지만 일제 강점기 때 닭 계(鷄) 대신 시내 계(溪)로 바꿨다. 1910년 대한민국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1914년 3월부터 1917년까지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통해 우리 고유의 지명을 모조리 바꾸었다.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전국 3만4233개에 달하는 고유의 지명을 한자 표기로 고쳤다. 새터마을은 신기(新基)로, 큰 골은 대곡(大谷), 장터는 장기(場基), 대밭골은 죽전(竹田), 솔고개는 송현(松峴) 등으로 개칭했다. 또한 관청을 중심으로 방향을 뜻하는 동면서면남면북면으로 지명을 정했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때 바뀐 지명 가운데 아직도 30% 정도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87년부터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지명 정비사업을 추진했지만 지금까지 전국에서 60여 곳만이 이름을 되찾는 데 그쳤다. 이후 2006년 행정안전부에서 일제 잔재를 뿌리 뽑겠다며 지명 개정대상 31곳을 선정했지만 14곳만 고쳤다. 엊그제 전주 동산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일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창업주 이와사키 야타로의 호를 딴 동산동 지명을 바꾸기 위한 첫 설명회를 가졌다. 동산동의 원래 이름은 쪽구름마을이었다. 전주시는 이달 말까지 명칭변경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지명 개명에 나설 계획이다. 군산 서수면도 악덕 일본인 농장주 가와사끼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신사를 옮겨와 세워놓고 서수(瑞穗)라 지은 이름이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지명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3.26 20:49

미원과 미풍

삼성 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생전 못한것이 3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자식들을 서울대에 못 보낸 것, 삼성계열 중앙일보가 동아일보를 못 이긴것, 제일제당이 생산하던 조미료 미풍이 대상에서 생산한 미원을 능가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녀들은 서울대 보다 더 좋은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을 나왔고, 중앙일보는 오래전 동아일보를 넘어섰으나 끝내 미풍은 미원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굴지의 재벌이 시장을 독점하던 시대 상황에서 미원을 이기지 못한 이병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미원과 미풍은 반세기 동안 라이벌 이었다. 하나는 호남을 대표하고 하나는 영남을 대표하는 지역색까지 입었으니 얼마나 관심이 클지는 불문가지다. 전주의 명물이던 미원탑은 전주시 팔달로 옛 전주시청 사거리에 있었으나 지금부터 꼭 40년전 전국체전을 앞두고 철거된 바 있다. 미원탑은 1956년 창립해 지금은 대상그룹으로 이름이 바뀐 미원그룹이 순수 국내 발효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해 선풍적 인기를 끈 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을 알리기 위해 1967년 설치했던 광고탑이다. 정읍 출신 고 임대홍 미원그룹 회장이 사비를 들여 설치한 미원탑은 조미료인 미원을 알리는 광고탑 역할도 했지만 전주의 상징물이었다. 전주시가 지난해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심의를 거쳐 미원탑 터와 함께 전주 남부시장, 호남제일문, 어은쌍다리, 한성여관 등 38곳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와 자본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는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미원이 미풍을 누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실제로 전북이 서울,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와 공정한 경쟁을 했을때 이길 수 있는 분야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잘 찾아보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지역과 특화된 재화와 용역을 바탕으로 누가 보더라도 합당한 명분을 갖추면 못할 것도 없다. 요즘 제3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공식 발표는 안됐으나 KDI의 용역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좀 부족한 것으로 결론이 도출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북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나 마냥 포기할 일만은 아니다.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현실을 감안해 향후 정무적 판단을 곁들일 경우 얼마든 명분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북이 추가 선정되면 부산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한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생임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정치공학상 전북이 부산을 넘어서기 어렵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2의 미원 신화가 창조되는지 잘 지켜보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3.25 20:18

파이 키우기

그간 전북이 산업화과정에서 뒤쳐지다보니까 제반여건이 안좋아 돈벌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었다. 설사 돈 벌어도 준조세 성격의 뜯기는 돈(?) 때문에 귀찮게 여겨 사업체를 서울로 어디로 옮긴다는 것. 서울로 가면 규모가 적어 익명성이 보장돼 누구한테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돈 벌어가며 사업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것. 자연히 돈 좀 번 업체들이 전북을 떠나다 보니까 전북은 인심만 사납고 사람과 돈이 모이지 않는 황량한 지역으로 바뀌었다. 도시가 1백만이 넘어야 그런대로 자체소비와 생산이 이뤄지면서 돈과 사람이 모이게 돼 있다. 인접 광주가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부정적 요인이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전주와 전북은 그나마 적은 파이를 놓고 서로가 그걸 먹어 치우려고 아귀다툼 하는 바람에 인심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졌다. 건설업체들은 입찰이 안되는 바람에 수주량이 적어 대기업한테 하도급 받으려고 안달이다. 경쟁업체를 제압하려고 헐뜯거나 심지어 악성 루머까지 만들어 퍼뜨린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이 그 도가 심하다. 65만 전주에서 돈 벌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시장규모가 적고 날마다 형님 동생하며 살아가는 연고주의와 온정주의가 지배하는 구조라서 더 어렵다. 좋게 말해 경쟁이지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전투구 해 더 어렵다. 예전 인심 좋았던 때와는 달리 돈 앞에서 의리도 그 무엇도 없는 비정한 세계만 펼쳐졌다. 투서 무고 진정 자살률 이혼률 등 안 좋은 지표만 전국 최고다. 눈길을 밖으로 돌리면 전주가 잠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전주는 고층아파트를 짓기 위한 타워크레인 몇대가 겨우 움직인다. 수도권이 평택 청주까지 남하하면서 상전벽해를 이룬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자광이 도청 옆 대한방직 부지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걸 이유도 아닌 이유를 들어 전주시가 거절한 것은 납득이 안간다. 143층 높이의 익스트림 타워와 대단위 아파트를 건립해야 역동성이 생겨나면서 도시가 발전하는데 시는 목소리 큰 반대측만 일방적으로 의식해 불허가 처분을 내렸다. 더 한심한 건 전주 아파트 시장을 광주 외지업체들이 안방으로 만들어 평당 분양가를 천만원대로 형성해 수조원씩 벌어 가는 것은 불평이나 불만을 않고 유독 자광만 목줄을 죄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전주시가 익스트림 타워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 서면 다른 곳이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한 것은 기우다. 빈 아파트가 늘지만 수요가 또다른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문제는 아니다. 서울에서 전주에다가 무슨 수요가 있다고 익스트림 타워를 건립하냐고 비아냥 거리는 것은 전주를 하대한 것으로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다. 전주한옥마을의 기존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계하면 관광객도 1000만 이상이 유지되면서 숙박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표만 의식해 포퓰리즘으로 시정을 이끌지 말고 파이를 키워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3.24 19:09

버려지는 비디오테이프

오래된 짐을 정리하다가 어딘가에 끼워져 있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다. 테이프 위에 써놓은 글자가 지워져 읽을 수 없으니 정체도 모르겠거니와 지금까지 찾지 않았던 것이니 없어도 되겠지 싶어 정리(?)를 했다. 자료를 뒤적이다 여러해 전 도시재생 사례 취재로 찾았던 독일 칼스루에의 미디어아트센터(ZKM)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미련 없이 버린 몇 개의 그 비디오테이프가 생각났다. 무슨 내용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순간의 선택이 후회됐다. ZKM은 2차 세계대전까지 탄약과 화약을 생산하는 탄약 공장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70년대까지 제철소로 활용됐지만 유럽 전역에서 중공업 제조업체들이 서비스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시기에 이 공장 역시 문을 닫았다. 이후 2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장이 미디어아트센터로 변신한 것은 정보과학에 일찌감치 눈을 떴던 칼스루에의 지역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덕분이었다. 새로운 미디어를 주목했던 칼스루에시는 정보 통신, 방송시설, 문화예술 영역을 통합해 발전시키는 정책에 눈을 떴다.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미디어아트센터의 설립도 그 결실이었다. ZKM은 탄약 창고를 아름답게 변화시킨 건축적 외향도 훌륭하지만 미디어아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과거의 자료를 기록하는 첨단시설의 구축이 놀랍다. 그 시설들 사이에서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ZKM 연구실과 미디어도서관에 쌓여 있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 생활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쓸모가 없어진 낡은 TV와 녹음기 전축 등 매체기기들이거나 원형을 훼손당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래된 자료들이 바로 ZKM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ZKM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역시 다시 과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목하는 이유라고 밝힌다. ZKM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오래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로부터 1만5천장의 음향영상물을 복원해냈다. 덕분에 이 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미디어도서관은 오래전부터 미디어계에서지상의 공룡으로 불리고 있다. 낡은 공간의 재생이 유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외형적 변신과 활용을 내세우지만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획일화 되어가는 재생공간이 너무 많다. 버려지는 비디오테이프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우리는 왜 갖지 못한 것일까.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3.21 20:30

3·1 운동과 일제 잔재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강 이남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의 깃발을 올렸던 군산 구암교회 35 만세운동을 비롯 임실 오수 310 학생 만세운동, 전주 313 만세운동, 정읍 태인 316 만세운동, 김제 원평 320 만세운동 등 도내 수십여 곳에서 재연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임실에서 315 청웅면 만세운동 재연문화행사와 학술강연회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올해로 5번째 열린 이날 행사는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와 박준승선생기념사업회, 그리고 전북일보사가 공동 주최했다. 그동안 전라도지역의 31 운동 연구가 미진했기 때문에 전북지역 만세운동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소요사건 자료에 따르면 전북지역 31 만세운동 참여자 수는 3710명, 사상자 수는 20명으로 집계돼 있다. 반면 임시정부에서 만든 한일관계사료집에 따르면 전북지역 31 만세운동 참여자 수는 17만5000명, 전남은 9만7850명에 달한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도 전라도지역 31 만세운동 집회는 모두 222회에 달하며 참여자 수는 29만4800명, 사망자 384명, 부상자 767명, 투옥자 수는 2900명에 이른다. 이는 경기도와 평안도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호남지역, 특히 전북지역에서 31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활발하게 일어났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목숨 걸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했던 선열들 앞에 차마 고개를 들을 수 없는 부끄러운 행태들이 여전하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무척 분열시켰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민들에게 경악과 분노를 자아냈다. 친일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같은 언동이 발호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직도 우리 생활과 문화, 의식 속에는 일제 잔재가 뿌리 깊게 배어있다. 우리 지명(地名)의 30%는 일제에 의해 개명된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고 한반도 특산식물 527종 중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라는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우리말인 설날 대신 신정, 구정이란 말도 일제의 잔재물이다. 이제 친일 행각과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요, 민족 정기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첩경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3.20 20:42

국토부 장관과 전북

지역발전에 목말라 하는 지방에서 늘 주시하는 곳이 국토교통부다. 지역의 미래와 직결되는 국토개발과 교통여건을 바꿀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북이 오늘날 낙후된 데에는 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수도권과 영남권 중심의 국토개발이 이뤄진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이미 사회간접시설이 잘 갖춰진 수도권에서야 주택문제교통혼잡 문제 등이 이슈이지만, 전북과 같이 낙후된 곳에서는 여전히 국토개발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전북 출신 중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80년대 후반 최동섭(남원)박승(김제) 장관이, 문민의정부 때 고병우(군산) 장관이 건설부 장관을 잠깐씩 지냈다. 참여정부 때는 강동석 장관(전주)이 1년여 건교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다른 부처 장관도 가뭄에 콩 나듯 한 상황에서 전북 출신의 국토부 장관은 언감생심이었다. 정읍 출신의 김현미 국회의원(정읍)이 지난해 국토부 장관으로 입각한 것을 두고 지역민들이 반긴 것도 최소한 국토부의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최정호 전 전북정무부지사(익산)가 문재인 정부 2기 개각에서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현미 장관에 이어 연속 전북 출신 국토부 장관을 배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최 후보자를 내정하면서 전문성과 강단 있는 추진력으로 국정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민생 현안을 해소할 장관 적임자라 판단된다고 밝혔다. 국토부에서 잔뼈가 굵은 최 후보자는 또 국토부 노조에서 이례적으로 환영 논평을 받기도 했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전북도 정무부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전북현안 해결에 대한 열정과 소탈한 성품으로 주변의 신망을 받았다. 그러나 장관에 지명된 후 최 후보자가 연일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어 안타깝다. 최 후보자가 다주택 소유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꼼수 증여등 부동산 문제와 논문 표절 의혹에 쌓이면서다. 전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를 안고 있다면 아무리 우리 지역 출신이며, 전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보라고 해도 옹호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마녀사냥식 흠집내기에 정치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3.19 20:39

대변인과 대청인

경남 거제에서 가덕도를 향해 달리다보면 거가대교가 나온다. 마치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처럼 거가대교는 바다 아래 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거제에서 가덕도를 가다보면 거가대교에 이르기전 오른편으로 작은 마을 하나가 있다. 거제도에 있는 장목면 대계마을인데 지형이 닭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곳은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내듯 민주화를 일궈내는데 큰 공헌을 한 YS는 대통령 재임중 국가 살림을 거덜내 IMF의 치욕을 겪은 바 있다. 그가 남긴 어록 중 대표적인게 대도무문(大道無門정도를 걸으면 걸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거제 생가에 이 문구가 가장 크게 걸려있다. 그가 즐겨쓴 또다른 어록 하나는 대변인(代辯人)은 있어도 대청인(代聽人)은 없다는 말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입장과 처지를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대변인은 있을지언정 대신 들어줄 수 있는 대청인은 없다는 의미다. 아닌게 아니라,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서 최고봉의 자리에 오른 이를 위해 대신 말해줄 사람은 수없이 많았으나 대신 들어주는 대청인은 없었다. 그래서 YS도 50년 정치역정을 보내면서 듣기 싫은 거북한 말을 들으려고 나름 애썼으나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에는 귀가 막히게 되고 결국 소통령의 농단이나 IMF의 치욕을 경험한다. 사실 YS가 정치적으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당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지내면서 언론과 국민의 주목을 받은 거였다. 정치초년 시절 낙선을 거듭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민주당과 민중당에서 대변인을 거치면서 빼어난 언변과 정곡을 찌르는 혜안을 인정받으면서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처럼 대변인은 중요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대청인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권력이 세질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잘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갑자기 대변인대청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며칠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하면서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비판하다가 너무 나가면서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 할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해야하지 않느냐는 반격에 직면한 바 있다. 대변인 경력을 지녔기에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더욱 세련미가 부족한듯 하다. 그런데 도내 관공서에 대변인은 차고 넘치는데 이젠 대청인도 필요해 보인다. 자사고 문제와 관련해서 1000명이 넘는 이해 관계인이 교육감을 찾았으나 듣기 싫어서인지 연가를 내고 자리를 비운 김승환 교육감을 대신해 들어줄 대청인(代聽人) 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대변인 뿐 아니라 대청인도 필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3.18 20:18

상산고는 전북교육자산

전주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옥마을 같지만 예전에는 교육도시로 더 알려져 있었다. 평준화 이전만해도 전주고와 전주여고라는 명문 때문에 명성이 자자했다. 모든 학생들이 가고 싶어라하는 선망이었다. 전북의 인재들이 그 학교로 모여들어 세칭 SKY 대학에 대거 진학했다. 그 당시만해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이 이 학교로 진학해 훗날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평준화 이후에 설립된 상산고등학교가 그 명성을 꾸준히 이어간다. 입시생에게는 바이블이나 다름 없는 수학 1,2 정석을 펴낸 홍성대 이사장이 전 사재를 털어 상산고를 설립해 후학양성에 전력투구했다. 상산고는 해를 거듭할수록 대학입시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면서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발돋음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뒤쳐진 전주가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상산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혁신도시기관 종사자들이 전주로 이주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명문 상산고가 일조했다. 예전에 전주고와 전주여고가 맡았던 역할과 명성을 상산고가 이어 받으면서 수 많은 인재를 배출,지금은 지역학교가 아닌 전국에서 공부 잘 가르치는 입시명문으로 우뚝 섰다. 특히 고향이 아닌 학생들이 대거 상산고에 진학하면서 인재로 커 나가 전북의 존재감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자립형 상산고가 금년들어 생각지도 않은 큰 암초에 부딪쳤다. 전북도교육청이 상산고 재지정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평가기준을 타 시도와 달리 상향조정했기 때문이다. 도 교육청이 제시한기준점수와사회통합전형이 그것이다. 다른 지역의 자사고 기준점수는 70점인데 유독 전북 교육청만 80점으로 제시했고, 권장사항인 사회통합전형(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자녀 등 사회적 배려 대상의 입학) 비율을 10%로 못 박은 것 역시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사회통합 전형대상자를 정원의 10% 이상 뽑을 경우 4점 만점을 주는데 이 지표대로라면 매년 정원의 3%를 뽑아온 상산고는 최하점인 0.8점을 받는다. 강원도의 민족사관고는 사회통합전형비율 10%의 문제점을 들어 이의제기를 해 결국 4%로 조정했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상산고의 합리적인 요구를 거절했다. 수월성 교육을 시켜 인재요람으로 자리매김한 상산고를 숨통 조이는 것은 진보교육감인 김승환교육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는 분명 전북의 교육자산이기 때문에 전 도민들이 합심협력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켜줘야 한다. 평가는 교육감 재량이지만 그 것이 공명정대하지 않으면 재량권 남용이다. 인성교육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산고처럼 수월성 교육을 시켜 일류대학에 대거 진학시키는 것도 전북과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김 교육감이 상산고를 격려하기는 커녕 아예 재지정을 취소할 것처럼 평가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요 아이러니다. 3선 교육감인 김 교육감이 진보교육감을 자처하지만해야 할일과 안해야 할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3.17 19:45

책판본 ‘완판본’의 생명

전주시내 곳곳에 나붙은 플래카드와 안내 표지판 덕분에 친숙해진 서체(글꼴)가 있다.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 서체는 목판본에 새겨진 한글의 특성을 살려 컴퓨터 서체로 개발해낸 전주완판본체다. 강한 느낌의 각체와 부드러운 느낌의 순체로 새롭게 태어난 이 서체는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제작되었던 인쇄 목판 완판본에 새겨진 글자체가 그 뿌리다. 완판본은 감영에서 제작한 목판 책판이다. 당시 전라감영에서 발행한 책은 대략 60여종. 사대부들이 즐겨 읽거나 국가가 널리 읽히려했던 책들이다. 이 책 판본들은 1899년, 감영에서 전주향교로 옮겨졌다. 당시 전라감사 조한국은 이 책판을 향교로 옮겨 향유들로 하여금 글을 읽고 그 도를 구하여 평생 무궁히 쓸 것을 장만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부터 향교 안 책판은 유실되고 훼손되기 시작했다. 1921년에 펴낸 <향교책고중건기(鄕校冊庫重建記, 소학규 엮음>에는 책판이 썩게 될 지경에 놓인지라 오영석이 이것을 두려워하여 책고를 중건하고 흩어진 판본을 갖추어서 소중히 보관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명륜당 동편에 중건된 책고도 자연재해, 조선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목판을 잃거나 훼손당했다. 1800년대에 세상에 나왔으니 200여년, 사라질 뻔 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우리 앞에 놓인 완판본의 존재는 그만큼 귀하다. 완판본은 1987년 전주 향교 뒤편에 지어졌던 장판각에 옮겨져 보관되어 오다가 2005년 전북대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당시 전주시의 목판 정리사업으로 밝혀진 완판본 목판은 5천 59개. 장판각으로 옮겨질 당시 9천500여개였던 목판이 20년이 안 되는 동안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상당수 목판이 복원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15년이 지난 지금 완판본 목판은 제대로 복원되고 보존되어 있을까 궁금해진다. 사실 전라감영의 책판은 조선시대 감영의 출판문화를 대변하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크다. 완판본은 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때 연구자들이 앞장서 국가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원형 훼손의 정도가 심해 가능성이 닫혔다. 전주시가 2017년부터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 컴퓨터 글꼴 <전주 완판본체>의 쓰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완판본. 옛것의 가치에 눈뜰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반갑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3.14 20:56

조합장이 해야 할 일

13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를 통해 도내에서 조합장 109명이 선출됐다. 전국에선 1344명이 새로 뽑혔다. 이들은 임기 4년동안 농수축산림조합의 최고 CEO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임직원 인사권과 사업집행권, 예산 재량권, 파산 신청권, 대출한도 조정, 농산물 판매, 복지사업 주관 등 거의 제왕적 권한을 가진다. 특히 조합장이 받는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매달 집행하는 업무추진비 등을 합하면 억대에 달하며 규모가 큰 도시지역 조합장은 연봉이 2억원을 웃돈다. 실제 서울의 한 단위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업무추진비로만 3억원을 넘게 사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농협법 제1조를 보면 농협의 설립목적은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 하지만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을 보면 갈수록 암울한 실정이다. 지난해 농가 평균소득이 3824만원이라고 하지만 실제 농민들의 농업 소득은 1000만원을 밑돌고 있다. 반면 단위 농협 직원의 평균 연봉은 조합 규모에 따라 6000만원에서 많게는 7800만원선에 달한다. 지난해 농협중앙회 직원의 평균 연봉은 9148만원이었다. 더욱이 농협중앙회에서 예치금 이자 정산금으로 매년 5000억원 정도를 지역 농협에 환원하고 있다. 조합원의 농자재 구입비와 쌀 수매 지원 등에 쓰라고 지원했지만 이마저도 자체 수익으로 잡아 직원들 돈 잔치로 사용하는 조합도 수두룩하다. 이러니 농민을 위한 농협이냐, 직원을 위한 조합이냐는 말이 나온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조합장은 그 예우와 권한에 합당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지역의 경제권력자로서 혜택만 누려서는 안 된다. 조합원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농업인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진정 농민을 위한 조합, 조합원이 잘사는 농협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이제 조합이 편안히 앉아서 조합원을 상대로 금리 장사만 해서는 안 된다. 조합장부터 발로 뛰면서 농가 소득증대 사업을 발굴하고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축수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체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 또한 조합원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조합원을 주인으로 섬기고 받드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럴 때 조합원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고 조합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3.13 20:55

시민청원제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소해 줄 목적으로 대궐 밖에 달았던 북이 신문고(申聞鼓)다. 태종 때 처음 도입된 신문고는 임금이 북소리를 직접 듣고 북을 치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처리토록 했다. 그러나 실제 이용자는 보통의 억울한 백성이 아닌 서울의 관리들 정도였다고 한다. 신문고 이용이 남발하면서 차츰 여러 제한과 조건이 붙으면서다. 억울한 사정을 풀지 못해 최고 권력자의 힘을 빌리려는 경향은 민주주의 사회인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민원이 있을 경우 지자체와 경찰, 검찰 등 관련 기관이 있으나 여기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할 때 청와대로 향한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속 시원히 답을 줄 리 없다. 해당 민원에 대해 대부분 담당 기관으로 이첩했다는 게 청와대의 답변이다. 결국 해당 기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민원인으로서는 청와대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정도의 심리적 위안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청와대 국민청원은 청와대와 국민을 잇는 새로운 형태의 신문고다. 북 대신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수단으로 하고, 거의 무제한 적으로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청원에 대해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추천이 있을 경우 청와대와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글이 게시판 개설 후 42만여건으로, 하루 평균 700건이 넘는 청원이 쏟아졌다. 20만명 이상 추천을 받아 답변을 끌어낸 청원도 글도 1호 답변인 소년법 개정부터 가장 최근 답변인 공수처 신설 청원까지 78개에 이른다. 특정인에 대한 과한 공격이나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등의 역기능도 없지 않지만, 민의를 진솔하게 엿볼 수 있는국민의 놀이터로 자리잡은 것이다. 전국 각 지자체들이 청와대를 본떠 시민청원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도내에서는 익산시가 처음으로 지난 7일부터시민청원운영에 들어갔다. 30일 동안 시민 1000명 이상 공감을 사는 청원에 대해 시장과 간부 공무원이 공식 답변을 하도록 한단다. 익산시정과 관련해 1000명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청원이가 얼마나 나올 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주민과 소통에 나서려는 시도는 평가할 일이다.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할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3.12 20:55

부관참시(剖棺斬屍)

부관참시는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났을 때 처하는 극형을 말한다.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부수고 시신을 참수하는 것으로 대개의 경우 세상사가 바뀌었을때 가해지는 정치적 보복인 경우가 많다. 동양에서만 있던 형벌이라고 아는 이가 많지만 실은 서양에서도 광범위하게 부관참시가 행해졌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올리버 크롬웰이다. 영국 청교도 혁명을 성공리에 완수한 크롬웰은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호국경이 됐으나 불과 12년 뒤왕을 죽인 반역자란 죄목이 붙어 결국 부관참시 된다. 찰스 1세 처형 기념식날 무덤에서 꺼내진 크롬웰의 시신은 교수대에 매달린 후 토막나는 운명을 맞게된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사화때 정적을 쓸어버리는 부관참시가 성행하게 된다. 대표적인게 김종직과 한명회다. 살아생전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한명회는 훗날 뒤바뀐 세상에서 무덤과 시신이 훼손되는 지경에 이른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역시 부관참시를 두려워했나 보다. 그가 죽은 뒤 전국에 열두개의 크나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매국노의 무덤이 파헤쳐져 부관참시될 것을 두려워 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 불과 50년만에 전국에 산재한 그 열두개의 무덤이 모조리 처참하게 파헤쳐졌다. 매국노 후손이라 지탄받던 그의 증손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모두 파헤쳐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시대상황에 맞지않게 부관참시를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법정에 섰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사자인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다. 전씨는 그동안 치매와 독감을 이유로 법정 출석을 거부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씨의 변호인 측은 망가진 전씨를 법정에 세워 수모를 주는 것은 김종직의 부관참시나 같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아직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도 안된 마당에 당시 신군부 최고 실력자였던 이가 오늘날 억울하게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수백, 수천명이 죽고 다쳤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감안하면 사자명예훼손은 지극히 사소한 곁가지일 뿐이나 이것을 통해서라도 명예를 되찾고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사람들의 사투가 눈물겨울 뿐이다. 죽은 이는 있으나 학살을 명령한 자는 아직 완전히 단죄되기는 커녕 드러나지도 않았다. 한때 대통령을 지냈으나 전씨의 말년은 더욱 험로가 예상된다. 이 대목에서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연극 오이디푸스에서 광야로 사라지는 오이디푸스를 보며 코러스장이 전하는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오이디푸스를 보라, 저 뒷모습을 본 자라면 명심하라, 누구든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을 행복하다고 믿지 말라,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3.11 20:35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송하진 지사가 최정호 국토교통부 2차관을 정무부지사로 내정할 때만해도 도청 안팎에서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고향이 익산이지만 중학교를 강경중,고등학교를 가정형편이 어려워 구미 금오공고를 나왔기 때문이다. 공직사회가 철저한 서열구조속에 움직인 관계로 차관했던 사람이 1급인 정무부지사로 온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안갔다. 지금 생각하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가 30여년간 공직생활하면서 고향 전북이 너무 낙후된 것에 뭔가 일조 하려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였다. 최정호 하면 닉네임처럼 따라 붙는 말이 일 잘하고 반듯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송 지사가 그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하자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일 잘한 사람을 발탁했느냐고 칭찬이 자자했다는 것. 그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되자 국토교통부 공무원 노조에서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만 봐도 그의 공직생활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으로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한 없이 낮춘 사람이 바로 최정호이기 때문이다. 그는 누굴 만나도 서글서글하게 격식을 따지지 않고 대해줘 주위에 사람이 많다. 처음 대하는 사람한테도 친근감을 표시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다 보는 그의 안목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정무부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전북의 제일 큰 현안이 새만금국제공항 예타 면제였는데 송지사를 적극 보좌해서 이를 달성했다. 사실 송지사도 새만금국제공항 예타면제를 확정하는데 독립군처럼 활동했다. 가급적 이해찬 민주당 대표나 이낙연 국무총리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익산 전국체전에 참석한 이 총리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도록 하려고 언론사 사장들과의 만찬장에서 가급적 질문을 안해줬으면 할 정도로 조심조심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넜다는 것. 송지사가 믿었던 것은 최 부지사를 활용해서 청와대와 기재부 그리고 국토교통부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설득작업을 벌였던 것.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안나오자 공항건설사업비를 7천900억으로 낮추는 등 마지막까지 준비를 철저히 했던 것. 그 때 최 부지사는 홍길동 마냥 서번전번(서울에서 번쩍 전주에서 번쩍)하듯 눈코 뜰새없이 바삐 뛰었다. 국토교통부 근무할 당시 일 잘하는 최정호라는 말이 한마디로 증명되었다. 도민들은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 이유는 공항을 건설해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다니던 그가 공항건설의 최고 수장이 되었고 다음으로 전북의 낙후를 피부로 느끼고 잘 살폈으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착공한지 28년된 새만금사업이 빨리 추진되고 초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접안할 수 있도록 신항만 하역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인 양성학교인 금오공고에 진학했고 기술부사관으로 복무하며 차량정비기술을 익히는 등 그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였다. 81년 전역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해서 85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관운도 뒤따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하려다가 장관으로 발탁됐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3.10 20:01

바이올린 ‘한반도’와 ‘아리랑’

바이올린은 우리에게도 피아노 못지않게 친숙한 서양악기지만 본격적인 악기로서의 태생 연원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1550년 경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악기가 만들어졌으니 그 역사는 길게 잡아도 500년이 안 된다. 어쨌든 바이올린은 클래식 음악 뿐 아니라 팝 재즈 민속 집시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주되는 완벽한 악기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에 이르러 현악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이올린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이탈리아의 아마티(Amati) 가문이다. 아마티와 함께 세계 3대 명품 바이올린으로 이름을 올린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도 아마티 가문에서 일을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이올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저력이다. 그래서 더 주목을 모으는 일이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뛰어난 소리의 악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현악기장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부안에도 그 고행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 악기장이 있다. 현악기를 만드는 박경호씨다. 이탈리아의 악기제작학교 굽비오에서 공부한 그는 한국에서 서양악기를 만드는 특별한 존재다. 1990년대 말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02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바이올린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지만 올드나 모던 악기를 선호하는 한국의 연주자들에게 그의 악기는 외면 받았다. 악기를 만드는 일 보다 수리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2012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새로운 모형과 새로운 소리를 지닌 바이올린이 두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에서 태어났다. 눈길을 끄는 악기가 있다. 한반도와 아리랑이란 이름을 얻은 바이올린이다. 그중에서도 아리랑 12호는 모양도 특별한데, 하나는 북쪽지형을 하나는 남쪽 지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이 악기를 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좌우 밸런스를 깨고 각각 고음과 저음을 갖게 했다. 두 개 바이올린의 음의 조화가 융화의 소리로 이어지는 무대를 상상했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항상 네 것을 만들라고 가르쳤다. 한국에 돌아와 변형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창의력을 살리라고 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이 악기는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연주자들에 의해 처음 연주됐다. 기왕 생명을 얻었으니 반갑지만 아직도 제 무대(?)를 갖지 못한 현실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3.07 20:43

맹그로브 숲의 경고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을 덮친 강진과 쓰나미로 인해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의 수가 무려 4340명에 달했다. 최대 피해지역인 팔루에서만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1000여 구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고 600여명의 실종자는 숨진 것으로 처리했다. 술라웨시섬의 주도(主都)인 팔루는 길이 10㎞, 폭 2㎞의 좁은 만의 끝자락에 위치해 이곳으로 몰린 쓰나미가 6m까지 치솟으면서 도시를 초토화시켜 피해가 가장 컸다. 세계 환경전문가들은 술라웨시섬을 강타한 지진쓰나미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 사라진 맹그로브 숲을 지목했다. 해안가에 서식하는 맹그로브 나무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엉킨 뿌리와 가지들이 쓰나미 파도의 에너지를 흡수해 소멸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때문에 맹그로브 숲이 없는 해안지대는 태풍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2m 정도씩 토양이 침식된다는 조사 분석도 있다. 해안 방어벽인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새우 양식이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가 맹그로브 숲은 천연 영양분이 풍부해 블랙타이거 새우 양식의 최적지로 꼽힌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국가에서 수출용 새우양식을 많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선 매년 520㎢에 달하는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고 있고 전체 면적의 절반인 1만8200㎢가 훼손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9월 지진쓰나미 피해가 컸던 팔루시 역시 맹그로브 숲이 대거 파괴된 지역 중 하나다.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은 15만㎢로 한반도 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미 절반이 넘는 맹그로브 숲이 파괴됐다. 현재 추세라면 100년 뒤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멸종위기종이 됐다. 한번 파괴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려면 최소 226년이 걸린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선 매년 7월 26일을 국제 맹그로브 보존의 날로 지정하고 맹그로브 숲 복원에 나서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대한민국도 미세먼지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미세먼지 공포에 짜증을 넘어 분노와 우울, 절망감까지 더해지고 있다. 개발 만능이 빚어낸 인간의 탐욕이 결국 환경 재앙을 자초하고 있다. 맹그로브 숲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를 절대 잊어선 안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3.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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