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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짐을 정리하다가 어딘가에 끼워져 있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다. 테이프 위에 써놓은 글자가 지워져 읽을 수 없으니 정체도 모르겠거니와 지금까지 찾지 않았던 것이니 없어도 되겠지 싶어 정리(?)를 했다. 자료를 뒤적이다 여러해 전 도시재생 사례 취재로 찾았던 독일 칼스루에의 미디어아트센터(ZKM)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미련 없이 버린 몇 개의 그 비디오테이프가 생각났다. 무슨 내용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순간의 선택이 후회됐다. ZKM은 2차 세계대전까지 탄약과 화약을 생산하는 탄약 공장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70년대까지 제철소로 활용됐지만 유럽 전역에서 중공업 제조업체들이 서비스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시기에 이 공장 역시 문을 닫았다. 이후 2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장이 미디어아트센터로 변신한 것은 정보과학에 일찌감치 눈을 떴던 칼스루에의 지역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덕분이었다. 새로운 미디어를 주목했던 칼스루에시는 정보 통신, 방송시설, 문화예술 영역을 통합해 발전시키는 정책에 눈을 떴다.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미디어아트센터의 설립도 그 결실이었다. ZKM은 탄약 창고를 아름답게 변화시킨 건축적 외향도 훌륭하지만 미디어아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과거의 자료를 기록하는 첨단시설의 구축이 놀랍다. 그 시설들 사이에서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ZKM 연구실과 미디어도서관에 쌓여 있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 생활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쓸모가 없어진 낡은 TV와 녹음기 전축 등 매체기기들이거나 원형을 훼손당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래된 자료들이 바로 ZKM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ZKM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역시 다시 과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목하는 이유라고 밝힌다. ZKM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오래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로부터 1만5천장의 음향영상물을 복원해냈다. 덕분에 이 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미디어도서관은 오래전부터 미디어계에서지상의 공룡으로 불리고 있다. 낡은 공간의 재생이 유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외형적 변신과 활용을 내세우지만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획일화 되어가는 재생공간이 너무 많다. 버려지는 비디오테이프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우리는 왜 갖지 못한 것일까.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강 이남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의 깃발을 올렸던 군산 구암교회 35 만세운동을 비롯 임실 오수 310 학생 만세운동, 전주 313 만세운동, 정읍 태인 316 만세운동, 김제 원평 320 만세운동 등 도내 수십여 곳에서 재연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임실에서 315 청웅면 만세운동 재연문화행사와 학술강연회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올해로 5번째 열린 이날 행사는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와 박준승선생기념사업회, 그리고 전북일보사가 공동 주최했다. 그동안 전라도지역의 31 운동 연구가 미진했기 때문에 전북지역 만세운동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소요사건 자료에 따르면 전북지역 31 만세운동 참여자 수는 3710명, 사상자 수는 20명으로 집계돼 있다. 반면 임시정부에서 만든 한일관계사료집에 따르면 전북지역 31 만세운동 참여자 수는 17만5000명, 전남은 9만7850명에 달한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도 전라도지역 31 만세운동 집회는 모두 222회에 달하며 참여자 수는 29만4800명, 사망자 384명, 부상자 767명, 투옥자 수는 2900명에 이른다. 이는 경기도와 평안도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호남지역, 특히 전북지역에서 31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활발하게 일어났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목숨 걸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했던 선열들 앞에 차마 고개를 들을 수 없는 부끄러운 행태들이 여전하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무척 분열시켰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민들에게 경악과 분노를 자아냈다. 친일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같은 언동이 발호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직도 우리 생활과 문화, 의식 속에는 일제 잔재가 뿌리 깊게 배어있다. 우리 지명(地名)의 30%는 일제에 의해 개명된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고 한반도 특산식물 527종 중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라는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우리말인 설날 대신 신정, 구정이란 말도 일제의 잔재물이다. 이제 친일 행각과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요, 민족 정기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첩경이다.
지역발전에 목말라 하는 지방에서 늘 주시하는 곳이 국토교통부다. 지역의 미래와 직결되는 국토개발과 교통여건을 바꿀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북이 오늘날 낙후된 데에는 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수도권과 영남권 중심의 국토개발이 이뤄진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이미 사회간접시설이 잘 갖춰진 수도권에서야 주택문제교통혼잡 문제 등이 이슈이지만, 전북과 같이 낙후된 곳에서는 여전히 국토개발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전북 출신 중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80년대 후반 최동섭(남원)박승(김제) 장관이, 문민의정부 때 고병우(군산) 장관이 건설부 장관을 잠깐씩 지냈다. 참여정부 때는 강동석 장관(전주)이 1년여 건교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다른 부처 장관도 가뭄에 콩 나듯 한 상황에서 전북 출신의 국토부 장관은 언감생심이었다. 정읍 출신의 김현미 국회의원(정읍)이 지난해 국토부 장관으로 입각한 것을 두고 지역민들이 반긴 것도 최소한 국토부의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최정호 전 전북정무부지사(익산)가 문재인 정부 2기 개각에서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현미 장관에 이어 연속 전북 출신 국토부 장관을 배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최 후보자를 내정하면서 전문성과 강단 있는 추진력으로 국정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민생 현안을 해소할 장관 적임자라 판단된다고 밝혔다. 국토부에서 잔뼈가 굵은 최 후보자는 또 국토부 노조에서 이례적으로 환영 논평을 받기도 했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전북도 정무부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전북현안 해결에 대한 열정과 소탈한 성품으로 주변의 신망을 받았다. 그러나 장관에 지명된 후 최 후보자가 연일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어 안타깝다. 최 후보자가 다주택 소유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꼼수 증여등 부동산 문제와 논문 표절 의혹에 쌓이면서다. 전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를 안고 있다면 아무리 우리 지역 출신이며, 전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보라고 해도 옹호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마녀사냥식 흠집내기에 정치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경남 거제에서 가덕도를 향해 달리다보면 거가대교가 나온다. 마치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처럼 거가대교는 바다 아래 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거제에서 가덕도를 가다보면 거가대교에 이르기전 오른편으로 작은 마을 하나가 있다. 거제도에 있는 장목면 대계마을인데 지형이 닭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곳은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내듯 민주화를 일궈내는데 큰 공헌을 한 YS는 대통령 재임중 국가 살림을 거덜내 IMF의 치욕을 겪은 바 있다. 그가 남긴 어록 중 대표적인게 대도무문(大道無門정도를 걸으면 걸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거제 생가에 이 문구가 가장 크게 걸려있다. 그가 즐겨쓴 또다른 어록 하나는 대변인(代辯人)은 있어도 대청인(代聽人)은 없다는 말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입장과 처지를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대변인은 있을지언정 대신 들어줄 수 있는 대청인은 없다는 의미다. 아닌게 아니라,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서 최고봉의 자리에 오른 이를 위해 대신 말해줄 사람은 수없이 많았으나 대신 들어주는 대청인은 없었다. 그래서 YS도 50년 정치역정을 보내면서 듣기 싫은 거북한 말을 들으려고 나름 애썼으나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에는 귀가 막히게 되고 결국 소통령의 농단이나 IMF의 치욕을 경험한다. 사실 YS가 정치적으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당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지내면서 언론과 국민의 주목을 받은 거였다. 정치초년 시절 낙선을 거듭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민주당과 민중당에서 대변인을 거치면서 빼어난 언변과 정곡을 찌르는 혜안을 인정받으면서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처럼 대변인은 중요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대청인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권력이 세질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잘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갑자기 대변인대청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며칠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하면서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비판하다가 너무 나가면서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 할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해야하지 않느냐는 반격에 직면한 바 있다. 대변인 경력을 지녔기에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더욱 세련미가 부족한듯 하다. 그런데 도내 관공서에 대변인은 차고 넘치는데 이젠 대청인도 필요해 보인다. 자사고 문제와 관련해서 1000명이 넘는 이해 관계인이 교육감을 찾았으나 듣기 싫어서인지 연가를 내고 자리를 비운 김승환 교육감을 대신해 들어줄 대청인(代聽人) 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대변인 뿐 아니라 대청인도 필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주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옥마을 같지만 예전에는 교육도시로 더 알려져 있었다. 평준화 이전만해도 전주고와 전주여고라는 명문 때문에 명성이 자자했다. 모든 학생들이 가고 싶어라하는 선망이었다. 전북의 인재들이 그 학교로 모여들어 세칭 SKY 대학에 대거 진학했다. 그 당시만해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이 이 학교로 진학해 훗날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평준화 이후에 설립된 상산고등학교가 그 명성을 꾸준히 이어간다. 입시생에게는 바이블이나 다름 없는 수학 1,2 정석을 펴낸 홍성대 이사장이 전 사재를 털어 상산고를 설립해 후학양성에 전력투구했다. 상산고는 해를 거듭할수록 대학입시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면서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발돋음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뒤쳐진 전주가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상산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혁신도시기관 종사자들이 전주로 이주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명문 상산고가 일조했다. 예전에 전주고와 전주여고가 맡았던 역할과 명성을 상산고가 이어 받으면서 수 많은 인재를 배출,지금은 지역학교가 아닌 전국에서 공부 잘 가르치는 입시명문으로 우뚝 섰다. 특히 고향이 아닌 학생들이 대거 상산고에 진학하면서 인재로 커 나가 전북의 존재감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자립형 상산고가 금년들어 생각지도 않은 큰 암초에 부딪쳤다. 전북도교육청이 상산고 재지정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평가기준을 타 시도와 달리 상향조정했기 때문이다. 도 교육청이 제시한기준점수와사회통합전형이 그것이다. 다른 지역의 자사고 기준점수는 70점인데 유독 전북 교육청만 80점으로 제시했고, 권장사항인 사회통합전형(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자녀 등 사회적 배려 대상의 입학) 비율을 10%로 못 박은 것 역시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사회통합 전형대상자를 정원의 10% 이상 뽑을 경우 4점 만점을 주는데 이 지표대로라면 매년 정원의 3%를 뽑아온 상산고는 최하점인 0.8점을 받는다. 강원도의 민족사관고는 사회통합전형비율 10%의 문제점을 들어 이의제기를 해 결국 4%로 조정했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상산고의 합리적인 요구를 거절했다. 수월성 교육을 시켜 인재요람으로 자리매김한 상산고를 숨통 조이는 것은 진보교육감인 김승환교육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는 분명 전북의 교육자산이기 때문에 전 도민들이 합심협력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켜줘야 한다. 평가는 교육감 재량이지만 그 것이 공명정대하지 않으면 재량권 남용이다. 인성교육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산고처럼 수월성 교육을 시켜 일류대학에 대거 진학시키는 것도 전북과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김 교육감이 상산고를 격려하기는 커녕 아예 재지정을 취소할 것처럼 평가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요 아이러니다. 3선 교육감인 김 교육감이 진보교육감을 자처하지만해야 할일과 안해야 할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주시내 곳곳에 나붙은 플래카드와 안내 표지판 덕분에 친숙해진 서체(글꼴)가 있다.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 서체는 목판본에 새겨진 한글의 특성을 살려 컴퓨터 서체로 개발해낸 전주완판본체다. 강한 느낌의 각체와 부드러운 느낌의 순체로 새롭게 태어난 이 서체는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제작되었던 인쇄 목판 완판본에 새겨진 글자체가 그 뿌리다. 완판본은 감영에서 제작한 목판 책판이다. 당시 전라감영에서 발행한 책은 대략 60여종. 사대부들이 즐겨 읽거나 국가가 널리 읽히려했던 책들이다. 이 책 판본들은 1899년, 감영에서 전주향교로 옮겨졌다. 당시 전라감사 조한국은 이 책판을 향교로 옮겨 향유들로 하여금 글을 읽고 그 도를 구하여 평생 무궁히 쓸 것을 장만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부터 향교 안 책판은 유실되고 훼손되기 시작했다. 1921년에 펴낸 <향교책고중건기(鄕校冊庫重建記, 소학규 엮음>에는 책판이 썩게 될 지경에 놓인지라 오영석이 이것을 두려워하여 책고를 중건하고 흩어진 판본을 갖추어서 소중히 보관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명륜당 동편에 중건된 책고도 자연재해, 조선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목판을 잃거나 훼손당했다. 1800년대에 세상에 나왔으니 200여년, 사라질 뻔 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우리 앞에 놓인 완판본의 존재는 그만큼 귀하다. 완판본은 1987년 전주 향교 뒤편에 지어졌던 장판각에 옮겨져 보관되어 오다가 2005년 전북대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당시 전주시의 목판 정리사업으로 밝혀진 완판본 목판은 5천 59개. 장판각으로 옮겨질 당시 9천500여개였던 목판이 20년이 안 되는 동안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상당수 목판이 복원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15년이 지난 지금 완판본 목판은 제대로 복원되고 보존되어 있을까 궁금해진다. 사실 전라감영의 책판은 조선시대 감영의 출판문화를 대변하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크다. 완판본은 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때 연구자들이 앞장서 국가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원형 훼손의 정도가 심해 가능성이 닫혔다. 전주시가 2017년부터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 컴퓨터 글꼴 <전주 완판본체>의 쓰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완판본. 옛것의 가치에 눈뜰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반갑다.
13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를 통해 도내에서 조합장 109명이 선출됐다. 전국에선 1344명이 새로 뽑혔다. 이들은 임기 4년동안 농수축산림조합의 최고 CEO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임직원 인사권과 사업집행권, 예산 재량권, 파산 신청권, 대출한도 조정, 농산물 판매, 복지사업 주관 등 거의 제왕적 권한을 가진다. 특히 조합장이 받는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매달 집행하는 업무추진비 등을 합하면 억대에 달하며 규모가 큰 도시지역 조합장은 연봉이 2억원을 웃돈다. 실제 서울의 한 단위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업무추진비로만 3억원을 넘게 사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농협법 제1조를 보면 농협의 설립목적은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 하지만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을 보면 갈수록 암울한 실정이다. 지난해 농가 평균소득이 3824만원이라고 하지만 실제 농민들의 농업 소득은 1000만원을 밑돌고 있다. 반면 단위 농협 직원의 평균 연봉은 조합 규모에 따라 6000만원에서 많게는 7800만원선에 달한다. 지난해 농협중앙회 직원의 평균 연봉은 9148만원이었다. 더욱이 농협중앙회에서 예치금 이자 정산금으로 매년 5000억원 정도를 지역 농협에 환원하고 있다. 조합원의 농자재 구입비와 쌀 수매 지원 등에 쓰라고 지원했지만 이마저도 자체 수익으로 잡아 직원들 돈 잔치로 사용하는 조합도 수두룩하다. 이러니 농민을 위한 농협이냐, 직원을 위한 조합이냐는 말이 나온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조합장은 그 예우와 권한에 합당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지역의 경제권력자로서 혜택만 누려서는 안 된다. 조합원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농업인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진정 농민을 위한 조합, 조합원이 잘사는 농협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이제 조합이 편안히 앉아서 조합원을 상대로 금리 장사만 해서는 안 된다. 조합장부터 발로 뛰면서 농가 소득증대 사업을 발굴하고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축수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체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 또한 조합원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조합원을 주인으로 섬기고 받드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럴 때 조합원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고 조합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소해 줄 목적으로 대궐 밖에 달았던 북이 신문고(申聞鼓)다. 태종 때 처음 도입된 신문고는 임금이 북소리를 직접 듣고 북을 치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처리토록 했다. 그러나 실제 이용자는 보통의 억울한 백성이 아닌 서울의 관리들 정도였다고 한다. 신문고 이용이 남발하면서 차츰 여러 제한과 조건이 붙으면서다. 억울한 사정을 풀지 못해 최고 권력자의 힘을 빌리려는 경향은 민주주의 사회인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민원이 있을 경우 지자체와 경찰, 검찰 등 관련 기관이 있으나 여기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할 때 청와대로 향한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속 시원히 답을 줄 리 없다. 해당 민원에 대해 대부분 담당 기관으로 이첩했다는 게 청와대의 답변이다. 결국 해당 기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민원인으로서는 청와대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정도의 심리적 위안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청와대 국민청원은 청와대와 국민을 잇는 새로운 형태의 신문고다. 북 대신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수단으로 하고, 거의 무제한 적으로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청원에 대해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추천이 있을 경우 청와대와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글이 게시판 개설 후 42만여건으로, 하루 평균 700건이 넘는 청원이 쏟아졌다. 20만명 이상 추천을 받아 답변을 끌어낸 청원도 글도 1호 답변인 소년법 개정부터 가장 최근 답변인 공수처 신설 청원까지 78개에 이른다. 특정인에 대한 과한 공격이나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등의 역기능도 없지 않지만, 민의를 진솔하게 엿볼 수 있는국민의 놀이터로 자리잡은 것이다. 전국 각 지자체들이 청와대를 본떠 시민청원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도내에서는 익산시가 처음으로 지난 7일부터시민청원운영에 들어갔다. 30일 동안 시민 1000명 이상 공감을 사는 청원에 대해 시장과 간부 공무원이 공식 답변을 하도록 한단다. 익산시정과 관련해 1000명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청원이가 얼마나 나올 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주민과 소통에 나서려는 시도는 평가할 일이다.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할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부관참시는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났을 때 처하는 극형을 말한다.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부수고 시신을 참수하는 것으로 대개의 경우 세상사가 바뀌었을때 가해지는 정치적 보복인 경우가 많다. 동양에서만 있던 형벌이라고 아는 이가 많지만 실은 서양에서도 광범위하게 부관참시가 행해졌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올리버 크롬웰이다. 영국 청교도 혁명을 성공리에 완수한 크롬웰은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호국경이 됐으나 불과 12년 뒤왕을 죽인 반역자란 죄목이 붙어 결국 부관참시 된다. 찰스 1세 처형 기념식날 무덤에서 꺼내진 크롬웰의 시신은 교수대에 매달린 후 토막나는 운명을 맞게된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사화때 정적을 쓸어버리는 부관참시가 성행하게 된다. 대표적인게 김종직과 한명회다. 살아생전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한명회는 훗날 뒤바뀐 세상에서 무덤과 시신이 훼손되는 지경에 이른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역시 부관참시를 두려워했나 보다. 그가 죽은 뒤 전국에 열두개의 크나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매국노의 무덤이 파헤쳐져 부관참시될 것을 두려워 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 불과 50년만에 전국에 산재한 그 열두개의 무덤이 모조리 처참하게 파헤쳐졌다. 매국노 후손이라 지탄받던 그의 증손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모두 파헤쳐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시대상황에 맞지않게 부관참시를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법정에 섰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사자인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다. 전씨는 그동안 치매와 독감을 이유로 법정 출석을 거부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씨의 변호인 측은 망가진 전씨를 법정에 세워 수모를 주는 것은 김종직의 부관참시나 같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아직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도 안된 마당에 당시 신군부 최고 실력자였던 이가 오늘날 억울하게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수백, 수천명이 죽고 다쳤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감안하면 사자명예훼손은 지극히 사소한 곁가지일 뿐이나 이것을 통해서라도 명예를 되찾고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사람들의 사투가 눈물겨울 뿐이다. 죽은 이는 있으나 학살을 명령한 자는 아직 완전히 단죄되기는 커녕 드러나지도 않았다. 한때 대통령을 지냈으나 전씨의 말년은 더욱 험로가 예상된다. 이 대목에서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연극 오이디푸스에서 광야로 사라지는 오이디푸스를 보며 코러스장이 전하는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오이디푸스를 보라, 저 뒷모습을 본 자라면 명심하라, 누구든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을 행복하다고 믿지 말라,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
송하진 지사가 최정호 국토교통부 2차관을 정무부지사로 내정할 때만해도 도청 안팎에서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고향이 익산이지만 중학교를 강경중,고등학교를 가정형편이 어려워 구미 금오공고를 나왔기 때문이다. 공직사회가 철저한 서열구조속에 움직인 관계로 차관했던 사람이 1급인 정무부지사로 온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안갔다. 지금 생각하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가 30여년간 공직생활하면서 고향 전북이 너무 낙후된 것에 뭔가 일조 하려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였다. 최정호 하면 닉네임처럼 따라 붙는 말이 일 잘하고 반듯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송 지사가 그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하자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일 잘한 사람을 발탁했느냐고 칭찬이 자자했다는 것. 그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되자 국토교통부 공무원 노조에서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만 봐도 그의 공직생활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으로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한 없이 낮춘 사람이 바로 최정호이기 때문이다. 그는 누굴 만나도 서글서글하게 격식을 따지지 않고 대해줘 주위에 사람이 많다. 처음 대하는 사람한테도 친근감을 표시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다 보는 그의 안목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정무부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전북의 제일 큰 현안이 새만금국제공항 예타 면제였는데 송지사를 적극 보좌해서 이를 달성했다. 사실 송지사도 새만금국제공항 예타면제를 확정하는데 독립군처럼 활동했다. 가급적 이해찬 민주당 대표나 이낙연 국무총리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익산 전국체전에 참석한 이 총리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도록 하려고 언론사 사장들과의 만찬장에서 가급적 질문을 안해줬으면 할 정도로 조심조심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넜다는 것. 송지사가 믿었던 것은 최 부지사를 활용해서 청와대와 기재부 그리고 국토교통부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설득작업을 벌였던 것.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안나오자 공항건설사업비를 7천900억으로 낮추는 등 마지막까지 준비를 철저히 했던 것. 그 때 최 부지사는 홍길동 마냥 서번전번(서울에서 번쩍 전주에서 번쩍)하듯 눈코 뜰새없이 바삐 뛰었다. 국토교통부 근무할 당시 일 잘하는 최정호라는 말이 한마디로 증명되었다. 도민들은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 이유는 공항을 건설해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다니던 그가 공항건설의 최고 수장이 되었고 다음으로 전북의 낙후를 피부로 느끼고 잘 살폈으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착공한지 28년된 새만금사업이 빨리 추진되고 초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접안할 수 있도록 신항만 하역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인 양성학교인 금오공고에 진학했고 기술부사관으로 복무하며 차량정비기술을 익히는 등 그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였다. 81년 전역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해서 85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관운도 뒤따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하려다가 장관으로 발탁됐다.
바이올린은 우리에게도 피아노 못지않게 친숙한 서양악기지만 본격적인 악기로서의 태생 연원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1550년 경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악기가 만들어졌으니 그 역사는 길게 잡아도 500년이 안 된다. 어쨌든 바이올린은 클래식 음악 뿐 아니라 팝 재즈 민속 집시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주되는 완벽한 악기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에 이르러 현악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이올린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이탈리아의 아마티(Amati) 가문이다. 아마티와 함께 세계 3대 명품 바이올린으로 이름을 올린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도 아마티 가문에서 일을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이올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저력이다. 그래서 더 주목을 모으는 일이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뛰어난 소리의 악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현악기장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부안에도 그 고행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 악기장이 있다. 현악기를 만드는 박경호씨다. 이탈리아의 악기제작학교 굽비오에서 공부한 그는 한국에서 서양악기를 만드는 특별한 존재다. 1990년대 말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02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바이올린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지만 올드나 모던 악기를 선호하는 한국의 연주자들에게 그의 악기는 외면 받았다. 악기를 만드는 일 보다 수리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2012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새로운 모형과 새로운 소리를 지닌 바이올린이 두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에서 태어났다. 눈길을 끄는 악기가 있다. 한반도와 아리랑이란 이름을 얻은 바이올린이다. 그중에서도 아리랑 12호는 모양도 특별한데, 하나는 북쪽지형을 하나는 남쪽 지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이 악기를 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좌우 밸런스를 깨고 각각 고음과 저음을 갖게 했다. 두 개 바이올린의 음의 조화가 융화의 소리로 이어지는 무대를 상상했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항상 네 것을 만들라고 가르쳤다. 한국에 돌아와 변형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창의력을 살리라고 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이 악기는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연주자들에 의해 처음 연주됐다. 기왕 생명을 얻었으니 반갑지만 아직도 제 무대(?)를 갖지 못한 현실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을 덮친 강진과 쓰나미로 인해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의 수가 무려 4340명에 달했다. 최대 피해지역인 팔루에서만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1000여 구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고 600여명의 실종자는 숨진 것으로 처리했다. 술라웨시섬의 주도(主都)인 팔루는 길이 10㎞, 폭 2㎞의 좁은 만의 끝자락에 위치해 이곳으로 몰린 쓰나미가 6m까지 치솟으면서 도시를 초토화시켜 피해가 가장 컸다. 세계 환경전문가들은 술라웨시섬을 강타한 지진쓰나미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 사라진 맹그로브 숲을 지목했다. 해안가에 서식하는 맹그로브 나무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엉킨 뿌리와 가지들이 쓰나미 파도의 에너지를 흡수해 소멸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때문에 맹그로브 숲이 없는 해안지대는 태풍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2m 정도씩 토양이 침식된다는 조사 분석도 있다. 해안 방어벽인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새우 양식이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가 맹그로브 숲은 천연 영양분이 풍부해 블랙타이거 새우 양식의 최적지로 꼽힌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국가에서 수출용 새우양식을 많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선 매년 520㎢에 달하는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고 있고 전체 면적의 절반인 1만8200㎢가 훼손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9월 지진쓰나미 피해가 컸던 팔루시 역시 맹그로브 숲이 대거 파괴된 지역 중 하나다.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은 15만㎢로 한반도 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미 절반이 넘는 맹그로브 숲이 파괴됐다. 현재 추세라면 100년 뒤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멸종위기종이 됐다. 한번 파괴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려면 최소 226년이 걸린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선 매년 7월 26일을 국제 맹그로브 보존의 날로 지정하고 맹그로브 숲 복원에 나서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대한민국도 미세먼지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미세먼지 공포에 짜증을 넘어 분노와 우울, 절망감까지 더해지고 있다. 개발 만능이 빚어낸 인간의 탐욕이 결국 환경 재앙을 자초하고 있다. 맹그로브 숲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를 절대 잊어선 안된다.
월드컵 지난해 우승국인 프랑스도 축구 암흑기가 있었다. 프랑스는 1960~70년대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버거웠고, 심지어 유로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런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 훈련장으로 사용된 클레르퐁텐 국립축구연구소(INF)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88년 개장한 클레르퐁텐은 56만㎡의 대규모 축구센터로, 국가대표와 우수한 신예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축구성지는 세인트조지파크로, 영국의 모든 축구팀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다. 런던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는 130만㎡ 부지에 실외 경기장 13개, 실내경기장, 재활센터, 스포츠 과학 의학시설 등 축구 경기에서 필요한 시설들이 완비됐다. 우리나라도 영국의 세인트조지파크를 본떠 경기도 파주에 축구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를 만들었다. 2002 월드컵 축구를 앞두고 개장한 파주 NFC는 천연잔디구장(6면)과 인조잔디구장(1면)을 갖추고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용 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제2의 축구종합센터 공모에 나서 자치단체간 경쟁이 치열하다. 33만㎡ 규모로 계획된 축구종합센터는 소형 스타디움과 천연인조잔디 구장 12면, 풋살구장 4면, 다목적체육관과 축구과학센터, 체력단련실 등이 들어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수 30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숙소 등 편의실설과, 직원 200여명이 상주할 수 있는 사무용 건물도 계획에 포함됐다. 축구협회는 센터가 들어서는 지역에 10년간 생산유발 효과 2조8000억원, 부가가치 1조4000억원, 고용유발 4만1885명 등의 효과를 예상했다. 대한축구협회도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자치단체들이 욕심을 낼 대규모 스포츠산업인 셈이다. 축구종합센터 공모에 전국적으로 24개 지자체가 응모했으며, 지난달 12곳의 1차 후보지가 가려졌다. 전북에서 군산과 장수가 1차 관문을 통과했다. 군산과 장수가 다른 시도 후보지와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전북도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 후보 단일화를 조율하거나, 그게 어려울 경우 각각의 강점을 살린 맞춤형 지원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축구의 메카가 될 기회를 꼭 붙잡길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때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작전이 있었으니 바로 1940년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다.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안에서 영국군 22만6000명,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11만2000명이 몰살위기 직전 상황에서 극적으로 영국으로 탈출, 결국 연합군이 반격하는 기반이 됐다. 6.25 전쟁때도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비슷한게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젊은층에게도 널리 각인된 흥남부두 철수작전이 바로 그거다. 1950년 12월, 10만명을 구해낸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연출됐다. 흥남부두에서 출발해 거제도에 도착한 배의 이름은 바로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 먼 훗날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이 배에 탑승해 피난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당시 김백일 1군단장 등은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피난민까지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는 10만명의 인명을 구한 6명의 영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김백일 장군이 한국전쟁 때 흥남 철수 과정에서 미군을 설득, 많은 피란민을 배에 태워 생명을 구한 공적을 기려 동상을 세울 것을 요청했고, 거제시가 지난 2011년 동상을 설치했다. 그런데 이후 김백일 장군은 친일행적에 휩싸였다. 급기야 지난 1일 거제 지역 3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친일김백일동상철거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가 김백일 장군 동상 바로 옆에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김백일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했는데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괴뢰만주국에 소속된 900여명 규모의 특수부대로 항일운동을 하는 독립군 토벌을 했다고 한다. 즉 친일 인사를 그냥 놔둘 수 없다는게 이번에 단죄비를 세운 이유다. 한쪽에선 숱한 피난민을 살리는데 기여했다고 공적비를 세우고, 또 다른편에선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단죄비를 세우는 현실은 우리 아픈 현대사가 아직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어제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낯선 이름 하나가 주요 검색어에 올랐다. 바로 완주 삼례 출신 양칠성이다. 인도네시아에 처음으로 한국인 이름이 붙은 도로가 생기는데 양칠성 도로라고 한다. 양칠성은 네덜란드-영국연합군과 맞서 싸운 지역 주민들의 독립투쟁을 도운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차대전 말기 그는 징용에 끌려가 현지에서 일본군 군무원으로서 연합군 포로 감시원을 지냈고 죽을때는 천황 만세를 외친 골수 친일이라는 연구 결과들도 있기에 양칠성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오늘도 역사에 대한 심판은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순환하면서 발전한다. 우리의 역사도 장구한 세월 속에서 아픔과 견디기 힘든 고난도 있었지만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적인 조건이 좋아 배고픔의 역사는 덜했다. 사람도 할아버지 아버지 나의 3대를 합산해서 나눠보면 같다고 한다. 추운 겨울처럼 견디기 힘든 운명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꽃피는 봄이나 추수하는 결실의 계절에 태어난 사람도 있다. 자신의 것만 분리해서 비교해보니 안타깝고 불행해 보이는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도 그렇다. 고려 왕건 때 훈요십조에는 차령산맥과 공주강 이외 사람들은 지세가 배역하니 인재로 등용치 말 것을 주문했다. 호남기피의 근거가 됐지만 전북인들은 머리가 명석해 조선 선조때까지 과거급제자수가 서울 다음으로 많았다고 한다. 이씨 조선의 본향답게 과거 준비생이 많았고 농경지와 어염이 풍부해 사대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 때 대동세상 건설을 외친 정여립이 모반으로 몰리면서 전북 엘리트 1천여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정여립이 처형되는 등 전북인들이 동서인 싸움(기축옥사)에 휘말려 큰 피해를 입었다. 정여립난 이후 과거급제자수가 뚝 떨어져 하위권으로 밀린 것만 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머리가 명석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좌절을 맛보자 세상을 한탄하면서 풍류쪽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 전북이 지금같은 맛과 멋의 고장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설이 있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동사상을 정여립이 외쳤기 때문에 그게 동학농민혁명정신으로 이어지면서 3.1만세운동으로 결실을 본 것이다. 전북인은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순국하는 등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민초들이었다. 남원성을 지키려다 순국한 사람들이나 임진왜란 때 이치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전주성을 지킨 사례는 그래서 빛나는 역사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고 인내천 사상에 근거한 동학혁명은 풀뿌리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었다. 외세에 의해 수 많은 희생자를 낳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각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는 등 민주정치의 토대를 만들었다. 근래 박정희 군사독재정치와 전두환군부독재정치가 이어지면서 전북이 힘들었지만 조상들의 자랑스런 국난극복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린다면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이 어렵고 힘든다고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니라 끊없는 도전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이룰 수 있다. 피와 땀의 역사는 절대로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완주 신리 태생인 정여립사건을 모반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들춰내 전북정신의 귀감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그간 승자의 편에서 역사가 잘못 기술돼 억울함과 한이 서려 있을 수 있다. 숙종 때 이중환이 전북을 와보지도 않고 펴낸 택리지 속에다 전북인의 성징을 나쁘게 기술했지만 전북인의 핏속에는 저항과 선비의식이 도도히 흐른다. 3.1운동 1백주년을 맞아 이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게 전북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4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가 일본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열린 재판은 여섯 번.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8일에 걸쳐 열린 졸속 공판이 전부지만 뤼순 관동법원 재판정에 선 조선의 청년 안중근은 의연했다. 그는 그 재판정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어떻게 침탈당하고 있는가를 알리려 했으며 자신의 철학을 세계에 전하고 싶어 했다. 남아 있는 공판기록이 전하는 내용이다. 그 현장의 공판기록은 우리가 위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철학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만큼 사료의 의미와 가치가 크다는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철학과 사상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는 여의치 않다. 이러한 상황이 안타까워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공판 내용을 번역해 재구성한 역사책을 펴냈다. 출판인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다. 안중근 의사의 삶과 철학을 제대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그에 따르면 재판기록은 1000부 정도의 책으로 출간되어 있을 뿐이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펴낸 김 대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선 재판정 양측의 주장 속에는 한마디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안 의사의 분오와 침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전한다. 이 기록을 보면 안중근의사는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범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선정부를 대표하는 의용대장으로서의 자격으로 재판을 받고 싶어 했단다.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복잡하고 치밀한 속성이 있다. 하얼빈 의거의 진실 또한 그런 점에서 좀 더 깊이 해석되고 조명되어야 한다는 김 대표는 재판 기록은 그 날의 숨은 진실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고뇌와 분노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살아 있는 자료라고 소개한다. 안중근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무술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서예에도 출중했으며 한학에도 밝았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정도였으니 그의 사상과 철학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오늘, 문득 안중근 의사의 삶과 철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28일부터 농협 조합장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다음달 13일 치러지는 조합장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은 13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다. 이번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전북에서는 농축협 92곳과 수협 4곳, 산림조합 13곳 등 모두 109곳에서 조합장을 새로 뽑는다. 조합장은 단위 농협의 최고경영자이다. 임직원 인사권과 경제 사업권, 대출한도 조정, 예산 재량권, 파산 신청권, 농산물 판매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여기에 교육지원 명목으로 농협 복지사업을 주관하고 조합원 경조사, 자녀 장학금, 각종 영농단체와 모임 지원, 홍보선전 지원 권한도 행사한다. 조합장 연봉은 농협 규모에 따라 5000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곳도 많다. 조합장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을 웃돈다. 또한 매달 200만원 가량의 업무추진비 등을 포함하면 실제 조합장이 받는 평균 연봉은 1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7년 농가 평균 소득 3824만원 대비 2.6배에 달하는 고소득층이다. 일부의 경우 조합장 연봉이 시장군수보다도 많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단체장은 행정권력, 조합장은 경제권력으로 통한다. 조합장 경력을 발판으로 단체장과 지방의회 등 지역 정계로 진출하기도 한다. 거꾸로 지방의원을 하다가 실속있는 조합장 자리를 넘보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조합장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혜택이 크지만 견제 수단은 미흡한 실정이다. 조합원 총회와 이사회가 있지만, 조합장이 총회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기에 사실상 제동을 걸기 어려운 현실이다. 지역에선 일단 조합장이 되면 신분 상승과 함께 경제적 여유도 보장되는 만큼 출마자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득표전에 나선다. 벌써 전북경찰청에선 이번 조합장 선거와 관련, 17명을 수사중이다. 이 가운데 금품향응 제공이 12명에 달한다. 검찰에서도 금품수수 등으로 7명을 수사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제1회 조합장선거에서는 검찰이 71명을 입건하고 53명을 기소했다. 재판 결과, 6곳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재선거를 치렀다. 지금 농협은 개혁의 시험대에 서 있다. 사실 조합원이 농협의 주인이지만 조합원을 위한 농협이라는 얘기에 동의하는 농민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농업과 농협이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갈 적임자를 선출해야 한다. 진짜 일꾼이 아닌 삯꾼을 뽑으면 농협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이 국기다. 국가가 성립하기 전 고대사회 때부터 각 집단이 동물해달과 같은 징표를 사용했으며, 그러한 징표를 종이나 천에다 표시하게 된 것이 깃발이다. 국기가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은 근대국가 성립 이후로, 국기가 처음 사용된 것은 근대 시민사회 출발의 계기가 된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때다.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3색기가 오늘날 세계 각국 국기의 모태가 됐다.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의 효시는 프랑스보다 100년 뒤인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사용한태극도안이었다. 태극기가 공식적인 국기가 된 것은 1883년 고종이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하면서다. 태극기는 그해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 걸렸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국기제작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아 사용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오늘날 통일된 태극기는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국기제작법이 고시되면서였다.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받들어졌다. 태극기가 국민들 속에 보편화 계기도 3.1운동 때였다. 일제는 이후 태극기를 만들거나 지니고만 있어도 독립운동가로 간주했다.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198년 민주화운동 등에서도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며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올림픽 등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국가와 함께 태극기가 게양될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 태극기가 갖는 마력이다. 국민적 통합과 화합을 상징하는 이런 태극기가 요즘 분열과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소위태극기 부대가 등장하면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2016년 가을부터 촛불집회가 열리자, 보수 우파들이 이에 맞서태극기 집회를 열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태극기 부대들이 자유한국당으로 집단 입당해 전당대회를 흔들었다. 이들은 국민적 정서와는 상관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재판의 불공정성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비상식적인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소신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신성한 태극기까지 혐오감을 줄까 걱정이다. 3.1절의 태극기가 태극기부대로 인해 일그러져서야 되겠는가.
토머스 제퍼슨 제3대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명언을 남겼다. 실제로 우리의 근현대사만 봐도 그렇다. 동학농민혁명, 31운동, 625 전쟁, 419혁명과 바로 뒤이은 516 쿠데타, 518 광주민주화 운동 등등 숱한 고비고비마다 수많은 애국자는 물론, 압제자들의 피가 뿌려졌다. 광복 이후 어쩌면 우리 국민은 희생을 덜 치르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수도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무산되면서 엄청난 시련을 더 겪어야만 했다.대표적인게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질뻔하다가 눈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조병옥신익희 선생의 급서를 들 수 있다. 1960년 2월 15일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급서했다. 조윤형조순형 전 국회의원의 아버지인 조병옥 박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등록까지 마쳤지만 갑작스럽게 발병,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했으나 끝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 30년이 넘는 세월을 군부독재 치하에서 고통받는 신호탄 이었다. 조병옥 박사의 급서에 앞서 4년전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염증이 깊어지면서 1956년 3대 대선때 민주당 신익희 후보는 당선을 목전에 뒀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주당 대선 캐치프레이즈는 여론을 등에 업었으나 거기까지였다. 대선을 열흘 앞두고 신익희 선생이 호남 유세를 위해 열차로 이동하다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면서 정권 교체가 무산됐다. 공식 사망 원인은 뇌졸중 이었으나 갑작스런 유력 야당 후보의 죽음은 숱한 의혹을 낳았다. 바로 그때 전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를 담아낸 노래가 있었으니 박춘석 작곡, 손로원 작사, 손인호가 노래한비내리는 호남선이다. 신 박사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애도 심리 등이 맞물리면서 공전의 히트를 했다. 이후 김수희의 남행열차란 노래도 비내리는 호남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이런저런 사연을 모르는 이들도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로 시작하는 남행열차란 노래를 회식자리 같은데서 한두번쯤은 불렀으리라. 그런데 요즘 때아닌 남행열차열풍이 불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참석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대륙을 열차로 종단해 베트남에 도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지방행사에 참석할 경우 비행기, 열차, 자동차 등 3가지 교통 수단이 동시에 움직인다고 한다. 경호 등 여러가지를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어쨋든 한편에선 3시간이면 갈 것을 3일이나 걸려 간다고 말하고 있으나 남행열차를 타고 가는 김정은 위원장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남행열차에 몸을 실은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와의 핵담판에서 과연 핵웃음을 자아낼 큰 작품을 만들어낼 것인가.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도 안됐는데 조합장 선거열기가 후끈 달아 오르고 있다. 다음달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가 치러진다. 임기 4년인 조합장은 연임할 수 있다. 조합장 선거가 혼탁해지면서 과열양상을 보이는 것은 조합장이 갖는 권한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조합의 규모에 따라 보수가 다르지만 억대 연봉에다가 직원들의 인사권까지 쥐고 있어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단체장의 실제 권한이 막중해 지역에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지방의원이 견제를 하지만 대부분 같은 당 소속이어서 시장 군수가 거의 맘 먹은대로 한다. 지방의원들이 유급직으로 전환하면서 의정비를 받고 있지만 경조사비를 내고나면 남는 게 없고 바닥나기 일쑤다. 특별한 소득원이 없는 지방의원들은 사명감 없이는 지방의원 하기가 벅차다. 의원들은 자신들을 빛좋은 개살구라고 자조섞인 말들을 한다.하지만 조합장은 돈을 쥐고 있는 금력자라서 그 권한이 상상을 초월한다. 내부감사를 받지만 신용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금이 막대해서 도시형 농협은 얼마든지 조합장이 맘만 먹으며 조합원에게 선심성 환원사업을 할 수 있다. 재선하는 것은 떼논당상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쉽다. 심지어는 자기돈 안들이고 조합원들을 연수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시켜주고 값싸게 영농자재 등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현직 프리미엄이 엄청나다. 이처럼 농촌에서 조합장 자리를 놓고 경합이 심한 이유는 지방의원 해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는데 비해 조합장은 돈과 명예를 아우를 수 있는 자리라서 경쟁이 치열하다. 조합장이 4년간 가져가는 보수가 억대에 이르기 때문에 조합원들도 그냥 대충 표를 찍지 않는 풍토가 만들어졌다. 얻는 소득 만큼 조합원을 위해 베풀고 쓰라는 것.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간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됐지만 금품선거 풍토는 조합장 선거에서 비롯됐다. 돈 안뿌리면 안된다는 식이 돼 버렸다. 법망에 안걸리고 쓰는 것도 능력이라고 말할 정도로 돈선거가 교묘해지고 치밀해졌다. 특히 농촌은 연고주의 선거가 판치는 형국이라서 아무리 관계당국이 시퍼란 단속의 칼날을 들이대도 끄덕 않고 간다. 아마추어들이나 식사비 제공이나 명절 때 선물 돌리다 걸리지 진정한 프로는 애경사 때 조용하게 피아구분해서 빵빵하게 챙겨줘서 끝냈다는 것. 불탈법 선거가 연례행사처럼 됐지만 문제는 조합원 자신들이 당당하게 표를 던져야 한다. 후보가 깜냥이 되는지와 조합장으로서 역량이 있는지 그 여부를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조합발전을 위해 정책과 공약을 어떻게 내걸었는지도 살펴서 표를 찍어야 한다. 선거 때 알게 모르게 돈 써서 당선된 조합장은 본전 채우려고 도둑질 할 수 밖에 없다. 제발 받지도 주지도 않는 공명선거가 돼야 조합이 발전할 수 있다. 조합장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지면 우리의 장래가 어둡게 된다. 3.1운동 백주년을 맞아 선진국으로 가려면 법질서 확립이 제일 중요하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탈출-장민강 청명초 2학년
전북 제3금융중심지 재도전, ‘이번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