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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울 전북 정치인

지금까지 소석 이철승 만큼 중앙정치무대에서 크게 움직였던 전북정치인도 없다. 김원기 정세균의원이 국회의장을 지냈지만 큰 정치인으로는 안 본다. 4선의 정동영의원은 전국 최다득표의 영예를 안고 국회에 입성했지만 대선 때 너무 큰 표차로 패배해 명암이 교차하는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정의원 지지자들은 그를 전북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치켜 세운다. 하지만 전북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한 것이 없다고 평가절하한 사람들도 있다. 정치가 모든 재화를 배분하는 힘을 갖고 있어 큰 정치인이 절대 필요하다. 그간 중앙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전북 출신 국회의원이 간헐적으로 나왔지만 임기동안 지역발전을 위해 해 놓은 게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북이 고전하고 낙후를 떨치지 못한 것도 큰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큰 정치인은 대권주자의 반열에 있거나 차세대 후보군에 들어 있는 사람을 말한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은 지역에서 밀어 주지 않으면 커 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본인 역량이다. 그릇의 크기가 남 달라야 한다. 정글의 법칙과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정치현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카리스마가 넘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논리적이면서 말도 잘하고 입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 지금은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에 겸양지덕이 몸에 밴 사람을 높게 친다. 이 정도는 돼야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다. 10명의 도내 국회의원 중 이 기준에 근접한 인물은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정읍 고창)과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군산)이다. 도민들은 그래도 이 두 사람을 전북의 인물로 키워야 한다고 평한다. 유 의원은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중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85년부터 도청 주요 부서 실국장을 두루 거친 후 2002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정읍시장이 됐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투명하고 깨끗한 행정풍토를 만들었다. 그게 원동력이 돼서 무소속으로 18대 당선된 이후 내리 3번째다. 공직에서 몸에 밴 청렴의식 때문에 뒤태가 깔끔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직을 무난히 수행했고 2016년에는 100% 등원 기록을 세울 정도로 성실함도 엿보인다.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비당권파를 이끌고 제3지대를 모색하는 등 전북정치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절치부심한 것이 강점이다. 재선인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은 초선 때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탔다.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사법시험 등 고시 3관왕으로 알려진 그는 성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김&장에 있다가 43살 젊은 나이에 국회에 진출했다.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매사에 적극적인 그에 대한 평가는 여야를 떠나 모두가 높은 점수를 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때 국민의당 탄핵추진단 단장과 탄핵심판시 국회청구인을 맡아 깔끔하게 법논리를 폈다. 선거제와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후 일방적으로 사개위원을 사임시킨 것 때문에 책임짓고 원내대표를 그만뒀지만 주민들로부터는 신망이 두텁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7.14 16:53

‘휴머니튜드 케어’

책 선물을 받았다. 치매 케어 방법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는 휴머니튜드(Humanitude)를 다룬 책이다. 휴머니튜드 케어는 지난해 방송됐던 치매 관련 TV 다큐 영상에서 처음 마주했으나 아직 낯설다.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휴머니튜드 케어는 프랑스의 체육학 교사 부부인 이브 지네스트와 로젯 마레스코티가 개발한 기법이다. 프랑스어로 인간다움을 뜻하는 휴머니튜드는 프랑스의 흑인 시인이자 흑인 해방운동 지도자인 에메 세제르가 제안한 네그리튜드 개념에서 유래했다. 세제르가 흑인 노예를 의미하는 네겔이라는 말로부터 만들어낸네그리튜드는 흑인다움 혹은 아프리카다움을 의미한단다. 지네스트 부부는 여기에 더해 흑인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 인류에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담고 있다며 이 말을 만들어냄으로써 흑인들이 스스로 존엄성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소개한다. 지네스트 부부가 개발한 휴머니튜드 케어 역시 인간다움을 되찾는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1979년부터 간호와 간병 분야 현장에서 일해 오면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적용해온 휴머니튜드는 치매환자의 케어 방식으로 널리 확산되었지만 사실은 치매대상자나 노인 뿐 아니라 케어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철학이자 그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그 방식 또한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구체적으로는 수백 가지 케어 방식이 동원된다지만 바탕은 보다 말하다 만지다 서다 등 네 가지 기법에 놓여 있다. 모두가 당신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기술인데, 실천 사례의 효과가 놀랍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휴머니튜드 케어기법이 소개되면서 치매간병 현장에 도입되기 시작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2017년 기준, 73만 명. 놀랍게도 이 중 7만 명인 전체 치매환자의 9.7%가 65세 미만 환자다. 치매 환자 10명중 1명이 젊은 치매 환자인 셈이다. 전북의 치매환자도 3만 7900여명. 한해 평균 370건 이상의 치매노인이 가출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도 예방 시스템이나 사전등록제 등 자치단체의 관리시스템이 미흡한 현실은 안타깝다. 돌아보면 주변에 치매환자를 둔 가족이 적지 않다. 환자나 가족 모두 고통을 호소한다. 마법 같다(?)는 휴머니튜드 의 힘이 이들의 일상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7.11 17:57

정읍 무성서원

12세 어린 나이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당당히 빈공과에 합격한 최치원(857년~?)은 당대 천재였다. 그는 중국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명문 토황소격문을 비롯해 많은 문장과 한시를 남겼고 중국인들은 그를 당송 100대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귀국해서 6두품(六頭品)의 최고위직인 아찬(阿飡)에 올랐으나 진골 귀족중심의 신분체제와 국정의 문란함에 외직을 자원해 886년 태산군(지금의 정읍 태인칠보)의 태수로 부임했다. 통일신라시대 대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최치원은 태산태수로 재임하면서 뛰어난 학문과 많은 덕행을 남겼고 이를 기리기 위해 후대들이 광해군 7년인 1615년 칠보면 무성리에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을 세웠다. 당초 태산사로 불리다가 숙종 22년인 1696년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에도 호남에서 정읍 무성서원과 장성 필암서원, 광주 포충사 등 3곳만 헐리지 않았다. 무성서원 주벽에는 최치원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는데 한 때 분실됐던 초상화는 지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장기대여 형식으로 47년만에 돌아왔다. 배향 인물로는 정극인과 신잠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 지역 현인들을 모셨다. 특히 조선 초 문인 불우헌 정극인은 14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처향(妻鄕)인 태인으로 낙향,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지었고 최초의 지역자치 규약인 고현동(古縣洞)향약(1475, 보물1181호)을 만들어 권장했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는 병오창의(丙午倡義)가 이곳 무성서원에서 일어났다.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 등이 주도한 이 사건은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이다. 이를 기려 1992년 12월 정읍지역 유림에서 무성서원 옆에 병오창의기적비를 세웠다. 선비문화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무성서원이 지난 7일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됐다. 전북에서는 지난 2000년 고창 고인돌과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이어 3번째로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신분 계급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제공했던 무성서원은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동일하며 마을 중심부에 위치해 지역민의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선비정신과 애국충절, 그리고 애향애민이 서려 있는 무성서원이 앞으로 전라북도와 대한민국의 문화 자긍심을 드높이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7.10 16:55

동냥벼슬

선거 때만 되면 깜냥도 안되는 사람들이 불나비 마냥 설친다. 예전과 달라 선출직 할려면 상당한 식견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돈 좀 벌었다 싶으면 명예를 얻고 싶어서인지 곧장 자기최면에 빠져 선출직에 나간다. 선거꾼들이 돈 냄새 맡고서 부추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판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서 돈이 많이 들어 간다. 물먹는 하마처럼 움직이면 돈이 들어 가기 때문에 자칫 한강 투석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지방의원 등 선출직들은 동냥벼슬이다. 인품이 훌륭해도 표을 구걸할 수 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한표를 그냥 쉽게 주지 않는다. 요즘 민주당 후보들이 국회의원 후보경선을 앞두고 당원 모집에 혈안이 돼있지만 당원 모집이 쉽지 않다. 월 1천원의 당비지만 그냥 대충 입당 원서를 써주지 않는다. 모집하는 쪽에서 보면 야속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표밭인심이 사나워졌고 인심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출마하면 그 집안의 3대 내력이 까벌려 지기 때문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선거판에 쉽게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국회의원 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 권한은 많고 책임질일이 별로 없다. 세비가 연간 1억8천만원이요 후원금까지 모금해서 쓸 수 있어 그 만큼 호사를 누릴 자리도 드물다. 면책특권이 주어져 특별한 일이 아니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보통 정치인 하면 국회의원을 지칭하는데 그 자리에 가려고 평생을 노력해도 못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한번 하면 낙선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부분 다선의원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잔뜩 목에 힘이 들어 간다. 목에 힘 들어 간 것을 정작 자신만 모르지 유권자들은 그냥 안다. 그렇다고 충고하기도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 목에 힘 들어 간 순간부터 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되기도 어렵지만 여론이 그런식으로 돌아가면 안된다. 요즘 현역들의 지역구 방문이 잦아졌다.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거의 지역구에서 산다. 한표라도 더 얻으려고 절치부심한다. 평소 목에 힘이 들어가 잘 숙여지지 않는 허리를 숙이고 친한척 하느라 애쓴다.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한꺼번에 해 치우는 것처럼 보인다. 유권자들도 다시 기회를 줘야 할지를 훤히 꿰뚫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민심이 까다롭고 냉정해진다. 앞에서는 지지하겠다고 끄덕이면서도 돌아서면 얼음짝처럼 굳어진다. 조석으로 변하는 게 민심이어서 진정성 없이는 그 맘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유권자들은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표를 주기 때문에 평소에 잘 해야 한다. 선거판에선 열렬한 지지자도 중요하지만 고추가루 한사람의 목소리가 더 거슬린다. 인간은 감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서운했거나 소홀한 점을 표 찍을 때 나타낸다. 현역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냥 지나치지만 서운한 사람들은 꿍하면서 벼룬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 것처럼 국회의원 하려면 겸양지덕이 먼저다. 누운 풀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야 표가 나온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7.09 17:15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김제시 용지면 와룡리에 가면 용이 누워있다는 의미의 와룡산이 있는데 마을 한쪽엔 십수년전 바람의 파이터란 영화로 유명세를 탔던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영의(1923~1994) 생가 터가 있다. 식민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주먹과 맨몸뚱이 하나로 일본 격투기계를 정복한 사람이다. 김제 용지에서 태어난 최영의는 16살에 홀로 일본에 건너가 극진회라는 가라테 유파를 창시한 격투기의 대가였다. 가라테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린 그는 1950년 맨손으로 소와 대결해 47마리를 쓰러뜨렸는데 이중 4마리는 즉사했다고 한다. 그의 일대기는 만화가 고우영의 대야망과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로 널리 알려졌다. 2004년바람의 파이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꽤 인기를 누렸다. 지역사회에서는 최영의라는 본명으로 각인돼 있는데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도 한민족의 혼을 잊지않기 위해 최배달 이란 이름으로도 행세했다. 최영의는 면장을 지낸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비교적 부유했으나 어려서부터 무술에 관심이 많았다. 주먹이나 손날로 상대를 가격하는 수박(手搏)당수(當手)에 일가견을 갖게된 그는 맨손으로 소와 대결하여 뿔을 부러뜨리고, 한방에 죽이는 등 가공할 능력을 과시하면서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무릎을 꿇으면서 트라우마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은 최배달을 보면서 열광했다. 전 세계 140개국에 가라테 지부를 두었으나 한국에는 태권도 발전을 위해 설치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그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사후 4반세기가 지나면서 김제에서는 최영의를 관광마케팅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읍시가 최치원 마케팅을 통해 무성서원피향정을 널리 알리듯 각 시군은 역사인물을 활용해 관광 상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 가라테는 2018년 기준 전세계 130여국에서 약2500만 명의 수련생이 있다고 하니 이를 활용한 지역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보는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요즘 일본이 한국의 강제징용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경제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한일 관계가 일촉즉발이다. 이번 사안의 발단은 멀리 김-오히라 메모에서 비롯됐다. 김종필ㆍ오히라(大平) 회담에서 비밀메모(김-오히라 메모)를 통해 대일청구권문제 등에서 우리에게 크게 불리한 합의를 해준게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친다. 대일청구권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일본이 독립축하금이란 이름으로 무상 3억 달러에 일제 36년 식민통치에 따른 모든 배상문제를 마무리한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최영의가 되살아난다면 한국이나 일본에서 당수를 한대씩 맞아야 할 사람이 많이있다. 나이 어린 베트남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이를 포함해서 말이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7.08 18:18

적극적인 기질

지금은 전북이 낙후된 것에 대해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만큼 상황이 절박하고 심각하다. 전국에서 평균소득이 꼴찌라는 것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할 노릇이다. 이농현상으로 인구감소가 생겼지만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전북을 탈출하는 것은 전북의 미래와 직결돼 있어 더 간과해선 안될 문제다. 외지인들이 전북인을 양반들이라고 좋게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극적이고 책임감이 약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도민들의 성징이 적극적이질 못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성경에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부딪치면 뭔가 되는 쪽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수레바퀴와 같다고 했다. 도민들은 행정기관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할 때나 대출을 받을 때도 거의가 안된다고 하면 자포자기하고 쉽게 물러서 버린다는 것. 반면 광주나 전남 사람들은 뒷 배경이 든든한 탓인지 계속해서 담당자나 그 윗선과 부딪치면서 설득작업을 벌인다는 것. 그래서인지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부딪쳐서인지 하나라도 얻어 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를 전북에서 근무했던 공직자나 은행지점장들이 떠난후에 말해준다. 전북 정치권도 똑같다. 도민들의 성징을 그대로 빼다 닮았다. 뚝심과 야성이 부족하다는 것. 현실적으로 쪽수가 부족해 힘이 약하지만 뒷심부족이 더 큰 문제다. 중앙정치권에서 존재감이 약하다보니까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여당인 이춘석이나 안호영의원은 지난 장미대선 때 도민들이 문재인 후보한테 64.8%라는 기록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통 크게 광폭행진을 했어야 했다는 것. 도민들 가운데는 3선 중진으로 이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전북현안을 해결하는데는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정운천 의원을 제외하고 다른 의원들 한테는 이빨빠진 호랑이 마냥 야성이 부족했다고 호되게 비판한다. 정 의원이 연속 4년간 예결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건설예산을 파격적으로 확보해 잼버리 개최 이전에 완공할 수 있게 되었다. 야당의원은 야성이 강해야 힘이 생기는 법이다. 상임위 활동을 통해 장관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가 돼야 해당 부처에서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거물급들은 중앙무대에서 잘 나가므로 지역구에 내려 올 시간이 없다. 그렇지 않은 의원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느라 자주 온다. 걸핏하면 지방의원들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행사장을 찾는게 고작이다. 앞으로는 옥석을 정확히 가려줘야 한다. 사사로운 인정에 사로잡혀 제 역할을 못하는 의원을 뽑아주면 지역이 발전을 못한다. 후손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게하려면 부모 세대부터 독하고 강해져야 한다. 도민들은 무작정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사업을 이행할 것이라고 순진무구하게 믿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될 수 있다. 크게 울어대야 젖을 준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7.07 16:23

임을 위한 행진곡

80년대 뜨거운 시위현장에서 불리던 운동권 가요들이 있다. 운동권에서 불리는 노래란 특성 때문에 대부분 대중가요(?)로서의 힘을 얻진 못했지만 대학가의 시위 현장이나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서 살아남아 끝내 생명을 얻은 노래들도 적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 중 하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노동운동가 윤상원씨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래다. 가사는 황석영씨가 백기완 선생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를 차용해 썼고, 곡은 김종률씨가 만들었다. 작곡가는 노래의 의미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분들의 용기에 대한 존경, 그들 속에 피어난 사랑에 대한 찬사, 미래에 다시 올 수 있는 불의에 맞서 싸울 각오다. 그렇고 보니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열망한 이 노래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시위현장에서도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최근 전 세계의 관심이 홍콩에 쏠리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거리 시위 때문이다. 홍콩의 인구 240만 명. 그중 수십만 명이 매일 거리로 나와 벌이는 시위 현장은 뜨겁다. 어느 날은 100만 명, 200만 명이 나왔다는 보도도 있으니 홍콩 사상초유의 대규모 시위라 할만하다. 우리가 이 시위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시위현장에서 불리는 노래의 정체(?)다. 광둥어로 개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 주인공이다. 흥미로운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에서 불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홍콩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장 먼저 외국어로 번역돼 전해진 나라다. 알려지기로는 1980년대 초 중반 한국과 홍콩의 운동권 학생들이 교류하면서 이 노래가 전해졌다고 한다. 이미 30여 년 전에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 널리 불렸던 민중가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인 셈이다. 그 뿐이 아니다. 홍콩에 이어 대만, 중국,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일본, 그리고 호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서 불리면서 이제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으니 세계화가 따로 없다. 영상으로 전해지는 홍콩의 시위현장.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대의식을 부른다. 노래의 탄생이 비장했던 만큼 그 생명의 빛이 눈부시다. 시대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노래의 힘이 새삼스럽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7.04 19:09

인구 부풀리기

전주시가 야심차게 도시의 미래 성장비전을 담은 2035 전주 도시기본계획(안)이 정부의 국토정책위원회로부터 재조정 요구를 받았다. 이유인즉 전주시의 계획인구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전주시는 오는 2035년까지 계획인구를 83만5000명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국토정책위원회에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추세를 반영해 실현가능한 수준으로 목표인구를 하향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생명의숲시민행동21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인구 감소 흐름과 벗어난 인구 부풀리기 등을 이유로 전주시의 2035년 도시기본계획이 허점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새 전주시 인구가 7196명 늘어나는 데 그쳤는데도 2035년까지 17만6789명이 증가한다는 것은 과도한 목표인구 설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계획인구 부풀리기는 비단 전주시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 1월 경기도 평택시와 용인시도 도시계획 수립을 위한 목표 인구로 각각 120만명과 150만명을 설정했지만 국토정책위원회에서 하향조정 요구를 받고 각각 90만명과 128만명으로 축소했다. 이처럼 자치단체가 도시 계획인구를 부풀리는 이유는 미래의 도시 팽창을 염두에 두고 개발 가능한 시가지화 용지를 좀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계산에서 나온다. 그러나 시가지화 용지를 늘리는 만큼 도심 공원이나 보존녹지지역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여름철 도심 열섬현상과 폭염 증가로 쾌적한 생활환경을 해칠 수 있다. 또한 도시개발 용지만 확보해 놓고 장기간 방치할 경우 도시 활력이 떨어지고 지가 상승에 따른 향후 개발비용 부담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민선 자치 이후 시장군수들이 한때 인구 공약이나 슬로건을 너도나도 내걸었었다. 익산시는 민선 5기 때 인구 50만 도시건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지만 지난 2017년 인구 30만명 선도 무너지고 말았다. 완주군은 민선 6기부터 인구 15만 도농통합 자족도시를 내걸었지만 지난 2017년 9월 인구 9만7000명 선을 찍고 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완주군은 이서 혁신도시와 삼봉 신도시, 산단 미니도시, 복합행정타운 조성을 통해 인구유입을 기대하고 있지만 전북 인구 절벽과 전주시내 아파트 미분양 등을 고려하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젠 자치단체의 인구 늘리기 슬로건이 실효성이 없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7.03 18:45

농민수당

사회구성원들에게 조건 없이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가 확산되는 추세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한 때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놓고 정부가 제동을 걸어 큰 논란이 일었으나 지금은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청년수당을 도입했다. 지난 대선 후보 대부분의 공약이었던 노인기초연금 증액과 아동수당 지급은 현실화 됐다. 아직도퍼주기식 선심 행정이란 비판이 없지 않지만,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깊어질수록 이런 형태의 기본소득제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전북도가 내년부터 전북 농가에농민 공익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적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시군이 이미 여럿 있고, 도내에서도 고창군이 농민수당 지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지난달 조례제정까지 마쳐 새삼스러울 게 없으나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확장성이 주목된다. 농업과 농가의 어려움은 굳이 사족이 필요치 않다. 역대 정권마다 농업에 대한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업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농가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20여년 전 경영이양직불제를 시작으로 2001년 논농업직불제 등 여러 형태의 직불금 제도를 도입했지만 소수 대규모 농가에 혜택이 돌아간 채 대다수 농가들은 도시 근로자 소득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농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초고령사회다. 10년 뒤면 농촌의 65세 노인이 절반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군 소멸에 앞서 농촌사회 전반이 붕괴될 것이란 경고가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 유럽 등 여러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한 농업에 관심을 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2년 전 농업인과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 조사에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많다는 데 70%가 응답한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 대다수도 농업농촌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것 같다. 전북도의농민 공익수당도입으로 우리의 농업과 농촌에게 얼마만큼 힘이 될 지는 미지수다. 농가에 지급하는 연간 60만원은 아동 한 명의 수당도 안 된다. 그럼에도 전북 전체적으로 연간 6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단다. 농가 소득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려면 수당을 높이는 문제여서 결국 재원 확보가 관건인 셈이다. 중앙 재정의 투입 없이 자치단체로서는 한계가 있다. 광역 지자체에서 어렵게 나선 만큼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7.02 17:17

지도자의 승부수

단 한장의 사진이 오랫동안 강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들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 수병과 간호사가 바로 그것이다. 해군 복장의 수병이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간호사 복장의 여성을 끌어안고 강렬하게 키스하는 장면의 흑백 사진은 너무도 생생하다.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2차 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컷이 됐다. 사진속의 남성 주인공 조지 멘돈사는 당초 자신의 연인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으나 종전 소식에 너무 들뜬 나머지 생면부지의 간호사 여성을 끌어안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널리 알린 네이팜탄 소녀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인상적인 사진으로 꼽힌다. 그런데 먼 훗날 21세기를 대표할 사진 한장이 판문점에서 전세계에 타전됐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판문점에서 엊그제 김정은-트럼프 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조연을 자처했으나 문재인 대통령 또한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한 가운데 사실상의 625 정전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혹자는 회담이 전격적으로 마련된 즉흥적인 것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뤄진 회담이라고도 한다. 진위야 어쨌든 사람들은 툭툭 내던지듯 돌발적인 결정을 하는 듯한 트럼프의 리더십을 주목한다. 대충 던지는 것 같지만 언행 하나하나가 마치 프로기사 고수와 같다고 한다. 일본 전국시대 세명의 영웅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등이다. 오다가 타고난 천재라면 도요토미는 철저한 전략가였고, 도쿠가와는 인내와 덕을 겸비했는데 결국 최후의 승자는 숱한 시련을 인내심으로 극복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트럼프는 어리숙해 보이지만 어쩌면 현실속에서 혁신에 능한 오다 노부나가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민선 7기가 출범한지도 벌써 2년차에 돌입했다. 역대 도백의 경우 단점은 차치하고, 유종근 지사가 비전 제시와 추진력이 돋보였다면, 강현욱 지사는 무리를 하지않는 스타일이었고, 김완주 지사는 근면과 꼼꼼함을 바탕에 뒀다고 한다. 현재 도백을 맡고있는 송하진 지사는 모르긴해도 앞선 이들의 장점만을 취하고 싶을 것이나 최종 평가는 임기가 끝난뒤 내려질 것이다. 비단 도지사뿐 아니라 교육감과 도내 시장군수들도 임기 2년차를 맞으면서 전임자들의 행적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진일보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초심에서 시작한다. 토끼는 귀를 잡고, 닭은 날개죽지를 잡으며, 고양이는 목덜미를 잡는데, 겸허한 초심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잡는 요체 아닌가.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7.01 18:02

명암이 교차하는 정동영

정동영 만큼 명암이 교차하는 의원도 드물다. 전북 출신으로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그가 낙선해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 칩거하는 등 냉 온탕을 오가며 4선이 됐다. 방송기자 출신으로 15대 총선때 덕진구로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정계에 입문,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잘 생긴 외모에 앵커 출신으로 인기가 높아 하루 아침에 DJ입으로 변신,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지내면서 DJ의 신임을 받았다. 출마 때 개나리아저씨란 닉네임으로 전주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여성유권자한테 인기가 대단 이미지정치의 상징이 되었다. 정의원이 워낙 중앙정치 무대에서 바쁘게 뛰다보니까 지역구에 내려올 시간이 없었다. 당시 재선인 장영달 의원(완산구)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빛이 안 났다. 그 이유는 정의원의 이미지 정치에 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당 최고위원이 됐던 정의원은 초선들과 함께 권노갑고문의 2선후퇴를 요구하며 정풍운동을 주도했다. 그 결과 권 고문이 물러났지만 동교동 실세들이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앙금이 남아 정의원을 배척,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됐다. 대학 동기였던 이해찬 대표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권 고문이 사무실을 마련해 주는 등 동교동계의 도움이 컸다. 반노이미지를 강조한 그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극적으로 선출됐지만 MB한테 531만표라는 사상 유례없는 표차로 낙선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노무현은 후보 당시 DJ의 모든 공과를 안고 가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정의원은 노 대통령의 공만 갖고 과는 버리고 가는 바람에 친노세력의 거센 저항을 샀다. 노 대통령 서거 때 봉하마을에서 쫓겨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선때마다 1백만표 안에서 승패가 갈렸지만 거의 더블 스코어차로 져 진보진영 한테 좌절감을 안겼고 전북 출신들도 MB때 맥을 못췄다. 그후 안철수 탈당으로 술렁이는 호남민심을 잡기 위해 2015년 12월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직접 순창에 내려와 그를 만났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간게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정몽준 한테 패배한 후 순창에서 씨감자를 재배해왔다. 그러나 문 대표는 정의원과 만나는 것이 비밀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몹시 실망해 씨감자만 받고 돌아 섰다는 것. 문 대표는 그 누구도 몰래 그를 만나려고 순창까지 왔는데 그때 이미 기자들이 와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한참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가 그냥 갈 수 없어 그를 만났다는 것. 이미 양측이 그의 복당과 비례대표문제를 어느정도 합의해 놓아 문 대표가 확답 받으려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평화당의 당 지지도가 2.5%이고 그의 정치가 콘텐츠 보다는 이미지 정치로 계속 흘러간 게 결국은 전북정치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기대가 엇갈린다. 전북정치의 자산인지는 전주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6.30 17:33

인권과 공동체의 가치

오늘의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예술가이자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가 제작해 전 세계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 다큐가 있다. 25명의 제작진이 1년여 동안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프랑스, 그리스, 독일, 스위스, 시리아, 터키 등 20여 개국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유랑하는 사람들(Human Flow)>이다. 인권의 가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난민 문제를 추적해온 아이웨이웨이가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떠나는 난민들의 생생한 현장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낸 기록. 덕분에 다큐는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수많은 난민들의 절박하고 처절한 난민들의 삶을 서사적 풍경으로 보여준다. 걸어서 국경을 넘거나 좁은 보트에 몸을 칼날처럼 세워 쟁여진 채 바다를 떠다닌 난민들의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 것. 다행히 어느 나라 해변에 발 딛을 수 있었던 난민들이 시간을 다투어 황망하게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모래위에 쌓이고 또 쌓여 거대한 설치물이 된 난민들의 구명조끼 행렬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이 있다. 의지할 보트는 고사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다 목숨을 잃는 난민들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엘살바도르 난민 아버지와 두 살짜리 딸이 꼭 껴안은 채 숨져있는 영상이 공개됐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다 물살에 떠밀려 목숨을 잃은 부녀의 충격적인 죽음이다. 미국 국경을 불과 1km 앞에 둔 멕시코의 강가, 그 건너편에서 앞서간 남편과 딸을 지켜보던 아내의 울부짖음이 처절하다. 4년 전에도 유럽으로 가려다 배가 뒤집혀 터키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난민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전 세계를 슬픔에 빠트렸다. 이 후 난민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아이웨이웨이의 경고를 다시 떠올린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하나의 운명 공동체인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보다 높은 수준의 관용, 연민 그리고 신뢰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인권과 공동체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이 가져오는 상처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다문화 가족의 자녀를 잡종강세니 튀기 로 표현한 한 자치단체장의 발언만 해도 인권과 공동체 인식의 비루함으로부터 온 것 일터. 공동체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6.27 18:48

세계 시민의 정직성 실험

지난 20일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흥미로운 연구논문이 게재됐다. 미국 미시건대와 유타대, 스위스 취리히대 공동연구팀이 세계 시민들의 정직성 실험을 한 결과가 실렸다. 공동연구팀은 세계 40개 국가 355개 도시에서 잃어버린 지갑 찾아주기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는 우체국 호텔 병원 문화관련 기관 등 공공기관과 민영회사 사람들이었다. 돈이 들어 있지 않은 지갑과 13.45달러(1만6000원 상당)가 들어 있는 지갑, 그리고 94.15달러(11만원 상당)가 든 지갑 등 3종류, 1만7303개의 지갑을 사용해 정직성 테스트를 진행했다. 지갑에는 돈뿐만이 아니라 열쇠와 명함 등도 함께 넣었고 직접 실험 대상자들에게 분실 지갑이라면서 건네주는 방식으로 실시했다. 실험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연구팀은 지갑에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챙기려는 의도가 강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지갑에 돈이 많을수록 돌려주는 비율이 높았다. 돈이 없는 지갑의 회수율은 평균 40%에 그쳤지만 13.45달러가 든 지갑은 51%, 94.15달러가 든 지갑은 72%로 회수율이 높아졌다. 지갑 회수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스위스였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이 뒤를 이었다. 회수율이 낮은 국가는 중국 모로코 페루 카자흐스탄 케냐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실험은 사익이 행위를 이끈다는 고전적 경제 논리를 반박했다. 오히려 분실 지갑에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정직해졌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둑으로 비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사익보다는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지, 즉 자신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번 실험 대상국에서 한국은 빠졌다. 우리도 정직성 실험대상에 포함됐으면 아마 상위권에 랭크되지 않았을까. 체면과 도리, 양심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성을 보면 돈 지갑 회수율은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정직성 실험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방금 한 말도 부정하고 약속은 파기하기 일쑤고 금방 들통날 거짓말도 거리낌 없이 해대고 내년 21대 총선에서는 선량들의 선택기준으로 정직성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6.26 16:41

왕의 깃발

전주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다. 조선왕조와 관련된 유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李安社)가 살았다는 이목대와, 이성계가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다는 오목대가 있다. 조경단에 전주이씨 시조묘가 봉안돼 있고, 경기전에 태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런 유적들을 옆에 두고도 오늘을 사는 전주시민들에게 왕조의 발상지라는 점이 그리 큰 자부심이나 실감나는 역사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조선왕조가 그저 성씨의 본향 정도 수준 정도로 전주를 데면데면 여겼다면 이제와서 굳이 왕조의 발상지입네 요란 떨 일도 아니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이 전주를 왕조의 발상지로 각별히 생각했던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잘 드러난다. 특히 경기전에 보관했던 태조영정을 챙긴 것은 유별났다. 세종 때 지은 경기전에 태조 영정을 봉안하면서 공조 판서를 보냈다. 영정을 봉안할 때 문무관을 뽑는 과거를 시행하기도 하고, 경기전 5리 길 안에 향을 피우기까지 했다. 종 9품의 참봉이 경기전을 지켰으며, 영정을 잘 간수한 관리에게 특별 승진도 시켰다. 전주(全州)의 영정이 형세상 장차 여름을 지나게 되었는바, 습기가 스며들 걱정이 있을 듯하니 자주 봉심하고, 혹 본부 관사의 온돌방에다 보관하되, 불조심을 하는 등의 일을 십분 늘 신칙하라. 광해군이 전라감사에 이런 세부적인 내용까지 지시한 걸 보면 조선 왕들이 태조영정을 얼마만큼 소중히 다뤘는지 알 수 있다. 역사적 평가를 접어두고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 사건 처리에서도 조선왕조가 전주를 어떻게 여겼는지 보여준다. 전주가 조종(祖宗)의 어향(御鄕) 이니 전주에 있는 정여립의 조부 이상의 분묘를 낱낱이 파내어 이장하도록 하고, 또 그의 멀고 가까운 족류(族類)들도 모두 전주에서 내쫓아 딴 고을에 살도록 하라고 선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중죄인을 치죄하면서 보통 해당 고을의 격을 강등시켰으나 전주를 예외로 한 적도 있다. 조선왕조가 조경묘와 경기전의 체면을 막중하게 여겨서다. 전주시가 한옥마을에서 국립무형유산원으로 연결되는 오목교에 조선시대왕의 깃발을 걸었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만든 왕의 행차에 사용되던 의장기 28기다. 왕조 발상지로서 시민들의 자부심과 함께 전주의 위상을 곧추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6.25 16:56

수학정석길과 교육감

정읍 태인에 가면 피향정이라는 유명한 정자가 있다. 연못의 연꽃 향기를 입은 정자라는 의미다. 전국적으로 최치원 마케팅을 하는 시군이 수십곳에 달하는데 피향정은 태인군수를 지냈던 최치원 마케팅의 한 사례다. 피향정 옆에 있는 빗돌을 보면 임꺽정을 지은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태인군수) 선정비, 실학 4대가 이서구(관찰사) 불망비, 탐학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유발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친 조규순(태인현감) 불망비도 눈에 띈다. 그런데 피향정 바로 옆 도로명은 흥미롭게도 수학정석길이다. 역시 예상한 그대로다. 수학의 정석으로 유명한 홍성대 전주 상산학원 이사장의 생가가 바로 옆에 있다. 학교명상산(象山)이란 명칭은 태인 근처 상두산(象頭山)에서 가운데 글자를 빼고 따왔다. 홍 이사장이 불과 30세의 나이에 수학의 정석을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53년간 대략 50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바둑용어인 정석(定石)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했다. 작업의 정석 연애의 정석 등 수학의 정석을 변용한 수많은 예술작품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돈 방석에 올라선 홍 이사장은 남들처럼 국회의원 배지 한번 달고, 해외 골프여행 다니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으나 후학 양성에 올인했다. 1981년 상산고 설립 당시, 5억원만 있으면 그럴듯한 학교하나 세워서 사돈네 팔촌까지 이사장교장행정실장을 해먹고 교사 채용은 뒷돈을 받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는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하고도 단 한사람의 친척도 쓰지 않았다. 다른 자사고는 모두 대재벌이 후원하고 있으나 상산학원만은 홍 이사장이 지금까지 설립 이후 사재 500억원 이상을 출연했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을 바쳐온 그의 건학이념이 붕괴위험에 직면했다.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편승해 김승환 교육감이 전북의 커트라인을 타 시도(70점)와 달리 80점으로 높인 때문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 일부 진보진영을 등에업은 전북교육감은 이제 마지노선도 넘어섰다. 급기야 24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정치권에도 경고를 날렸다. 정치권이 조언한다면 모르지만 선을 넘어 개입하는 것은 단호히 처리하겠다며 교육부에서 부동의가 이뤄진다면 권한쟁의 심판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이쯤되면 누가봐도 막가자는 거다. 1964년 김용환 초대 교육감 이래 설인수, 유재영, 유재신, 홍태표, 임승래, 염규윤, 문용주, 최규호에 이어 김승환 교육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역대 교육감 중 혹자는 오명을 남기고 혹자는 지금도 칭송을 받는다. 3년후 임기 종료뒤 김승환 교육감은 과연 후세의 사가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될까.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6.24 18:21

엉터리 전주시의회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로 전주시의회가 구성됐지만 그간 시민들로부터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대다수 의원들이 전문성이 떨어지고 사명감마저 잊은채 자기 앞에 무작정 큰 감만 올려 놓을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는 명예를 숭상하기 보다는 시 의원 되는 것을 먹고 사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 특정 정당이 의회를 독점해 의회직을 장악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면서 다수당의 횡포가 극에 달해 올곧은 소수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시의회의 도덕성이 실추되면서 이권에 개입한 일부 의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등 염불 보다는 오히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부끄럽게도 청렴도가 계속 하위권에 맴돈 것이 이를 증명했다. 지난해 11대 시의회에 진입한 34명 의원중 1명이 보궐상태로 총33명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이 27명,민평당 3명,정의당 2명,무소속 1명이다. 대부분의 시의원이 시장과 같은 민주당이어서 처음부터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가에 많은 의문을 가졌다. 바로 역시나였다. 우려했던 사항이 하나씩 불거지면서 또다시 시의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경신 복지환경위원장만 빼고는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대부분이 김승수 시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집행부 입맛에 맞는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의회 안팎에서는 초선들이나 뜻 있는 다선의원들이 시행정의 문제를 샅샅이 지적하고 싶어도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방해해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반대발언을 일삼는 의원은 예결특위추천에서 배제시켜 버린다는 것. 김완주 전시장 때부터 민주당 완산갑 김윤덕 위원장이 김승수 현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와 그곳에서 당선된 시의원들이 시장장학생 역할을 도맡아 방패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 시의회는 집행부와 교묘하게 악어와 악어새 마냥 공생관계를 구축해 밥값도 못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의회가 도덕성과 자질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시의원이 된 탓이 크다. 그간 핫 이슈로 부각된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롯데한테 통째로 금싸라기 땅을 바치는 특혜성 개발계획인데도 시의회는 장학생들 때문에 시민의 반대의견을 대변하지 못했다. 일부 초선이나 다선들이 롯데한테 엄청난 특혜를 안겨준 사업이라고 반대하지만 다수 횡포에 눌려 모기소리로 그쳤다. 시가 의회의 의견을 구한 것을 갖고 행안부한테 야구장 신설을 위해 대체시설 승인을 한 상태여서 앞으로 승인이 나면 개발계획 용역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간 도는 시한테 넘겨준 종합경기장 개발안이 양여조건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지금은 무슨 이유로 찬성으로 돌아섰는지 의아해 한다. 시중에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전주시 개발행정이 잘못 추진돼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도 시의회가 짝짜꿍 해서 그걸 못하고 있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6.23 16:10

세계문화유산과 보편적 가치

한국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눈앞에 와있다. 지난달 유네스코 자문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가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권고한데 이어 오는 30일 유네스코의 최종 확정을 거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등재는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한차례 등재를 추진했으나 원점으로 돌아간 뒤 다시 추진해 얻게 되는 결실이다. 세계유산은 보존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보편적 가치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언제나 존중되어야 할 가치, 이를테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등과 같은 불변하는 가치다. 한국의 서원 역시 이코모스로부터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하는 등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의 서원이 등재된다는 소식에 중국의 일각에서 문제를 삼는 모양새다. 서원이 당초 중국 고대의 독특한 문화교육기구였었다는 점을 들어 중국으로부터 들여간 한국의 서원이 독립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문화재를 빼앗아간 것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변할 일은 없겠지만 유쾌한 일은 아니어서 우리의 서원이 지닌 보편적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서원의 역사를 들여다보자면 중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 서원이 시작된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에 이르러 꽃을 피웠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했다. 반면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역사의 변곡점에서 시대를 이끌었다. 한국 서원의 시작은 1543년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퇴계 이황에 의해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바꾼 백운동서원은 조정의 사액을 받는 첫 서원이자 공인된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이후 한국의 서원은 각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소수서원(영주)과 함께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안동), 도동서원(달성), 남계서원(함양), 무성서원(정읍), 필암서원(장성), 돈암서원(논산) 등 이번에 등재되는 9개 서원들이다. 한국의 서원이 인정받은 보편적 가치는 성리학의 전파에 기여하면서도 정형성을 보여주는 조선 건축의 정수라는데 있다. 주목되는 것이 있다. 서로 닮았지만 또한 서로 다른 9개 서원의 건축적 가치다. 공간을 늘리고 화려한 하드웨어 치장에 마음을 두기보다 서원마다의 진정한 가치를 창조적 문화유산으로 이끌어가는 지혜가 더 절실해졌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6.20 16:35

한국농수산대학 흔들기

요즘 전라북도가 처한 현실을 보면 동네북 신세란 말이 딱 맞다. 정원이 1500명에 불과한 초미니 대학 하나 놓고 이리저리 패대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총선을 앞두고 전북 때리기로 표 결집을 노리는 외부 정치세력에도 화가 나지만 지역 현안을 놓고 번번이 네 탓 공방만 벌이는 전북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에 더 분노하게 된다. 지난 2015년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립한국농수산대학은 3년제로 학년당 정원이 550명에 불과한 특수대학이다. LH를 경남 진주로 뺏기고 농진청을 비롯해 농업관련 기관을 받으면서 전북을 농생명융합 중심도시로 조성하려는 취지에서 한국농수산대학도 옮겨왔다. 한국농수산대학이 이제 막 전라북도에 안착하려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지난해 한농대 멀티캠퍼스 추진을 위한 연구용역이 발주됐다. 명분은 중장기 발전방안으로 청년농 육성과 한농대 기능 및 역할 확대를 내세웠지만 지역별 입학생 불균형 문제도 담고 있기에 영남캠퍼스 설립 목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다.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올 1월 경남 합천군과 경북 의성군이 한농대 분교 유치를 내걸고 지역 정치권과 연계해 한농대 분할 시도에 나섰다. 현 한농대 총장이 경남 출신이기에 대학 분리는 빈말이 아닐 것이란 추측도 나돌았다. 급기야 지난 12일 경북 영주문경예천이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이 영남 분교를 설치하기 위한 한국농수산대학설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현실화됐다. 전라북도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았기에 이제 갓 이전한 대학까지 나눠 가지려는 발상을 가졌을까. 만약 한농대가 영남에 있었다면 전북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처음 한농대 분할 움직임에 전라북도와 정치권이 강력히 대처하지 못하면서 자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농대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이다. 농식품부를 관장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전북출신 국회의원이 3명이나 있다. 그럼에도 한농대를 계속 흔들어 대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년 21대 총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북흔들기는 갈수록 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정치권의 반발과 대응 미흡으로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 보류된 전철을 또다시 밟아선 안 된다. 주어진 밥그릇도 못 지킨다면 선출직들은 자리를 꿰찰 이유가 없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6.19 17:15

심수관과 남원

임진왜란정유재란은 일본에서도자기 전쟁으로 불린다. 자기 기술이 보잘 것 없었던 일본이 오늘날 도자기 선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전쟁 중 조선 도공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 중 일본 3대 도자기로 꼽히는사쓰마 도자기의 원조가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에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이었다. 그의 자손은 현재 15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사쓰마 도기를 주도해왔다. 심수관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반세기 안팎이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1964년에 쓴고향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후 80년대 중반 KBS가 이를 극화하면서심수관가의 400년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쓰마 도자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를 통해서다. 당시 출품했던 높이 1m 55㎝의 대화병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1902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최고상을 받았다. 심수관가의 비밀을 풀며 모국 속으로 깊이 들어온 이는 14대 심수관(본명 심혜길, 심수관은 본명 대신 전대의 이름을 따르는 이 가문의 관습)이다. 그는 특히 전북에 각별한 정을 나타냈다. 1989년 전북도와 자신이 살고 있는 가고시마현간 우호협력이 체결되는 자리에 참석했던 그는 선대로부터 4백년 동안 품어왔던 꿈이 실현된 것 같다는 감회를 밝혔다. 그는 남원도자기 일본 전래 400주년을 맞은 1998년 남원에서 불씨를 가져갔으며, 그 불씨로 구운 첫 도자기를 남원시에 기탁했다. 남원시는 아픈 역사와 함께 이국에서 예술혼을 꽃 피운 심수관가를 기리며 그간 여러 이벤트와 기념사업들을 진행했다. 남원시는 2008년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고, 그의 뒤를 이은 아들 15대 심수관에게도 2011년 명예시민증을 줬다. 심수관 도예전시관을 만들고, 여기서 매년 국제도예캠프를 열고 있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고향 남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부르며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는오나리노래탑이 역사적 아픔의 현장인 만인의총에 세워지기도 했다. 우리가 찾지 않았으나 조선 도예가의 후손임을 당당하게 내세우며 우리 곁으로 왔던 14대 심수관이 지난 1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도예의 종가 남원을 도예도시로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이 땅을 지킨 우리도 제대로 못한 일이다. 남원의 예술혼을 역사 속에서 끌어낸 고인을 잊지 말고 오래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6.18 16:43

이희호 das와 MB의 다스

물건의 개수를 나타내는 단위 중에 12개 묶음을 다스라고 한다. 이는 본래 영어 더즌(dozen)의 일본식 발음인데 어떤 연유에서 인지 일상생활 속에서 다스란 단어는 참 익숙하다. 중장년 이상의 연령층은 한 묶음이란 의미로 오랫동안연필 한 다스라고 해왔다. 연필이 샤프펜슬로 대체되고, 요즘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 주로 쓰이면서 일상에서 다스란 단어가 잊혀져갈 즈음 갑작스럽게 다시 다스(DAS)가 등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냐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다스란 회사가 MB 소유다, 아니다 말들이 무성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고 요즘 이 사건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실소유한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BBK 투자금 반환 소송비 585만 달러(약 67억7000만원)를 삼성이 대신 납부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심 재판부는 61억여 원을 뇌물로 인정하고 징역 15년과 벌금 130억원을 선고했다. 중장년들에게 다스 하면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을 안겨준 연필이 우선 떠오르는데 10여 년 전부터는 이게 MB소유 기업이 연상되고, 또 뇌물이란 인식이 강하다. 성공한 기업인이었으나 MB는 대통령 한번 지낸뒤 탐욕의 대명사가 됐다. 어릴때는 옷을 더럽히지 말고, 어른이 돼서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충고를 잊었나 보다. 한동안 잊혀진 듯 했던 다스가 최근 우리 앞에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엊그제 영면한 이희호 여사의 젊은 시절 별명이 바로 다스(das)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범대 재학시절 이희호에게 따라붙은 별명은 독일어 중성관사 다스였다.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에 따라 어미 변환이 많은데 das는 중성을 가르킬때 쓰는 단어다. 대학생 이희호는 행동만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걸음걸이도 빠르고 행동이 남성적이었다고 한다. 남성 위주의 관습이 사회전반에 강하게 찌든 상황속에서 이희호는 거대한 벽에 맞선 1세대 여성운동가다. 지금부터 꼭 56년전 마포구 동교동엔 김대중과 이희호 문패가 나란히 걸렸다. 부부 문패가 가정집에 나란히 걸린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대 충격이었다. 미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아내와 깨어있는 남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희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3김시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희호 여사가 떠나면서 이젠 3김의 흔적마저도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동일한 단어다스가 사람에 따라 이렇게 까지 다른 의미로 각인된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6.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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