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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언영색 - 백봉기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시작되었다. 빌딩마다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자신의 이미지를 알리는 슬로건들이 다채롭다. 서민이 국회의원입니다 서민의 든든한 언덕 오직 민생 전주의 희망을 찾아서.인물사진도 다채롭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기본이고, 농민과 대화하는 사진,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노타이에 점퍼차림의 후보도 있다.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친근감 있게 보이려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잘할 것 같다. 그런데 어색하게도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찍은 사진이 눈에 걸린다. 너무나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외모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얼굴이 곧 마음이고, 얼굴은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 않았던가.자주 가는 음식점에 예쁜 아줌마가 있었다. 언제나 웃는 듯, 인자한 얼굴에 조용한 성품, 어머니 같은 자상함까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인이었다. 사실 그 여인의 단아한 모습이 보고 싶어서 찾아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인에 대한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손님과 말다툼하는 모습이 너무나 딴 판이었다. 고귀하고 정숙했던 여인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고 금방이라도 손님에게 덤벼들 것 같은 사나운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뒤로 그 집에 가는 발길을 줄였다.좋은 얼굴과 좋게 보이려는 얼굴은 비슷하면서도 거리가 있다. 좋게 보이려는 얼굴은 겉으로 나타난 표정이 자연 그대로일 수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음, 인격과 수양이 잘된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억지로 꾸민 얼굴은 좋을 리 없다. 말씨도 그렇다. 말을 잘 한다는 것과 교묘하게 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교묘하게 한다는 것은 듣기 좋은 소리로 그럴 듯하게 잘 포장하기 때문에 속마음과 같을 수 없다.공자는 〈논어〉 학이편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즉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말이나 알랑거리는 태도, 아첨하는 얼굴빛을 가진 사람은 어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남의 눈에 잘 보이게 하려고 억지웃음을 짓는 사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좋은 얼굴과 좋게 보이려는 얼굴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연기하듯 눈물 글썽이면서 하소연하는 사람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 정도를 찾기가 어렵다.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만이 참 모습을 구별할 수가 있다.TV에 나오는 사람들은 짙은 화장과 분장을 하고 몸맵시를 곱게 가꾼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방송국 스타일리스트들이 예쁘게 꾸며준다. 말할 때도 호감을 얻으려고 미소를 띤다. 어느 때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나온 사람들처럼 억지웃음을 짓고 새침을 떨기도 한다. 물론 대인관계에서 말과 인상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부하거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남의 눈에 잘 보이게 하려는 사람은 결국 속마음이 들통 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교태를 부려도 마음속에 감춘 칼날은 자신도 모르는 은연중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마음에 없는 표정으로 표를 얻기 위해 교언영색(巧言令色)해도, 비린내 나는 생선을 아무리 빛깔 고운 천으로 싸고 또 싸도 그 냄새는 감출 수가 없다.국회의원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다. 벌써부터 현혹되기 쉬운 복지공약들이 흘러나온다. 얼굴에 관한 한 정치인처럼 변화무쌍하고, 표정관리를 잘하는 사람 중에 사기꾼과 도박꾼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제발 대중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꼼수정치는 없어야할 것이다. 늘 처음처럼, 대형 현수막에 내건 슬로건처럼 언제나 서민의 편에 서서, 어머니가 가족을 볼보는 마음으로 부디 좋은 정치를 해주길 바랄뿐이다.△백봉기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해,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를 발간했다. 현재 전북예총 사무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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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4 23:02

하고 많은 이름 중에

남산에서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김 씨일 확률이 높다는 가장 흔한 김 씨 성이 나의 뿌리다. 그리고 덕남이라는 이름은 충직한 사내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할아버지는 계집아이인 내 이름에 그렇게 우직한 이름을 달아놓고도 모자라 사내 남(男)자를 쓰셨다. 오로지 남동생을 터 팔라는 아들 선호사상의 독단이셨다. 철든 훗날 내 볼멘 추궁에 밝혀진 일이지만, 그 일은 엄연한 삼신할미의 주관이지 내 이름자의 기운으로 결정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를 모르시던 할아버지는 여동생 이름 끝 자에도 기어이 아들 ‘자’ (子)를 쓰시더니 그 지극함에 내리 손자 둘을 보셨다. 나는 4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그때 차라리 범국가적 이름인 명자, 춘자 정도로만 붙여주었어도 지금껏 내 이름으로 투덜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성격도 이름을 닮아서인지 내가 나를 보아도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름 그대로다. 그래서 가끔 어머니께 투정을 하면 “네 이름이 어때서? 여자아이가 사내 이름이면 벼슬할 이름이지.”라고 포장하여 나를 추켜세우지만 내 딸 아이 만큼은 멋진 이름을 꼭 지어주겠노라는 결의로 반박을 대신했다. 철수와 영희는 50∼60년대 내가 배웠던 국어책에 등장하는 표준 이름이었고, 바둑이는 친근한 가축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그 시절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덕남이라는 이름이 실렸다. 바른 윤리관을 주입하던 대표적 글자가 덕(德)이었고, 사내아이의 도덕 지향적 이름으로 덕남이는 당연히 그 글 속의 도덕적 남자아이였다. 그래도 활자를 타고 만나는 내 이름이 반가웠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지명되어 내가 내 이름을 불러대니 책을 읽는 동안 교실은 반 아이들의 킥킥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아이들도 신기했던 것이지, 비웃음은 아니었다. 고집스럽고 애교스럽지 못한 내 성격은 사내 남(男)자의 이름 탓이라 믿는다. 지금도 가끔 툭 던지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도 자존심 상해 팩 토라져 사나흘씩 입에서 군내가 돋도록 닫아버린 못된 성격도 내 이름의 사내 ‘남’ 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직장 시절 사전 교류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이름을 보고 남자로 오해하여 배려 받지 못한 채 만삭의 몸으로 일 년 간 힘든 업무를 맡아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 일은 연애 시절의 일이다. 연서의 서두에는 흔히 ‘희’야 ‘숙’아 ‘은아’ 하고 연인을 호칭하며 핑크빛 분위기를 돋우던 시절이다. 그런데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을 깨버리는 남자 같은 내 이름은 글 단락마다 낭만적의 걸림돌이 되기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보내온 글마다 호칭을 생략하고 본문으로 진지하게 들이댔다. 이건 순전히 투박하고 사내 같은 내 이름자의 탓이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 사내 남(男)자를 썼느냐는 원망은 인생막장인 이 시점에서도 내 안에서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항상 생각에 그치고 말지만 아직도 가끔 간지러운 여자 태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같이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가야금을 뜯으며 남편의 피로를 풀어준다던 선배처럼 남편 사랑을 붙들어 맬 수는 없어도 여인의 필수 덕목인 삽삽함은 지금도 흉내 내고 싶은 나의 염원이다.△김덕남씨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수자원공사가 주최한 제5회 물사랑 공모전 수필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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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6 23:02

신지식인의 조건

언젠가 나는 빌게이츠가 일 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우리나라 1년 예산과 같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결국 지식인 한 사람이 우리나라 전 국민의 식생활은 물론, 경제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결론이니, 과연 창의력이란 것이 국가 경쟁력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았다.지금까지의 우리 사회는 오랜 동안 경력과 학력을 자산으로 삼고, 전통적 계층구조를 앞세운 수직적 조직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현재 경력과 학력의 위계질서 보다는 창의력과 성과위주의 경영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시대변화에 따라 짧은 기간에 직업의 수는 30만개가 넘었고, 이처럼 세분화되는 수평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전문성과 실천적 지식, 즉 현장감이 살아있는 지식을 갖추어야 살아남는다. 즉 차별화 된 전문성을 지닌 사람만이 인정받고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반면에 학력과 학식만 믿고 두루뭉실한 실력으로 살아간다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지난 20세기는 학벌과 학식을 의미했지만, 21세기는 이것들만 가지고는 현장의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따라서 학력파괴와 교육혁신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현장에서 생생한 체험을 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현상을 면밀히 분석하여 실용적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바로 21세기의 신지식인의 모습이다. 이들은 스스로 일이 좋아서 창의적 성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을 감동시키는 능력, 직업적 열정, 시간에 관계없이 업무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직장인들의 새로운 필수 조건이다. 또한 이들은 자기의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기를 원하고, 이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온힘을 기울여 가치창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21세기는 직업은 없고 모두 기업가 시대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이는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일해야 성공한다는 의미이며 학력불문, 전공불문, 나이불문, 남녀불문이 바로 이런 정신의 구성요소다. 누구든지 창의력에 도전해 볼만한 것이 바로 이러한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신지식인이란 그야말로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인재인 것이다.또한 신지식인으로써 함께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은 바로 뛰어난 창의력과 더불어 대인관계다. 지금까지는 도전정신. 열정, 정보기술, 창의력 등을 핵심요소로 손꼽았지만 최근에는 직업윤리. 신뢰성, 팀워크, 에티켓, 사교성 등을 중시하고 있다. 아무리 신지식인이라 하더라도 팀워크나 대인관계가 부족하면 조직의 상승효과는 감소할 것이다. 전문성만 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인격적으로 성숙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전종용씨는 진안 출생으로 초등학교 교장에서 퇴직하고, 지금은 한학에 심취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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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05 23:02

마음속 옹달샘

산길을 가다가 갈증이 날 때 바위 밑에 고인 옹달샘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가. 옹달샘은 대개 야산보다는 깊고 깊은 산 속에 있다. 행여 자신이 흐려질까 봐 인적 드문 숲 속 바위틈에 고요히 숨어있나 보다. 아니면 심심산길을 가다가 목마른 나그네에게 맑은 물을 주려고 깊은 산 바위 밑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옹달샘에선 쉬지 않고 샘물이 솟아나온다. 나그네가 먹고 산짐승들이 먹어도 그리고 아무리 가물어도 옹달샘 물은 마르지 않고 흐른다. 도대처 어디서 그 맑은 물이 흘러나온단 말인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드디어 과학책에서 그 근원을 찾았다. 비가 오면 빗물이 나무 아래로 스며들고 나무들은 뿌리와 잔뿌리까지 서로 얽혀서 그물망을 만든다. 그리하여 비가 올 때마다 그곳에 물을 저장한다. 이렇게 나무뿌리 사이에 모인 물을 녹색 댐이라고 하는데 이 물이 서서히 땅속으로 스미게 된다. 땅으로 들어간 물은 자갈과 모래, 흙을 지나면서 자연히 여과되어 정화수가 된다. 이렇게 정화된 맑은 물이 얕은 곳으로 흐르다가 바위틈에 고여 옹달샘이 되리라. 옹달샘엔 빗방울과 나무, 자갈과 모래의 속삭임이 들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져 언제나 맑은 샘물이 솟아 나언 거란다.수필 쓰는 일도 빗물이 여러 번 걸러져 옹달샘이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좋은 책을 많이 읽어 풍부한 감수성을 길러야 하리라. 또 여러 가지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예를 들면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기회가 되므로 글 쓸 소재가 많이 생긴다. 지나온 추억 역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모인 글감을 바탕으로 생각의 그물망을 짠 뒤 글을 쓰면 된다. 초고를 쓰고 나서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퇴고를 거듭해야 한편의 글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수필은 정화된 옹달샘 물과 같아야 한다.하늘에서 비가 내리자마자 금방 깨끗한 물이 될 수는 없다. 맨 처음 빗물이 땅에 떨어지면 흙탕물이다. 땅에 스며든 비는 나무뿌리 사이에 녹색 댐으로 저장되었다가 자갈, 모래, 흙을 지나면서 비로소 맑은 물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필도 다독, 경험, 추억 등을 가슴 속에 담았다가 사색이라는 여과장치를 거쳐 향기로운 글로 숙성시켜야 한다. 옹달샘처럼 맑고 맛좋은 수필을 쓰려면, 마음속에 넉넉한 글샘을 만들어 놓고 수시로 정화해야 한다.가슴에 담긴 소재를 하나둘 꺼내어 글을 쓴 뒤, 퇴고하는 여과과정을 수없이 거친 뒤에야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 진솔한 수필이 나오지 않을까? 아무리 글감이 좋아도 생각을 거듭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다듬지 아니하면 일상적인 일기 같은 글이 되기 쉽다. 흙탕물을 거르고 걸러야 정화수가 되듯이, 문장도 갈고 닦아야 맑고 감칠맛 나는 옹달샘 같은 글이 되리라.내 마음속에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하나 두고 싶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온 삶의 순간순간을 되살려 음미할 수 있는 수필을 써서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갔으면 한다.△박일천씨는 〈대한문학〉에서 수필, 〈지구문학〉에서 시로 등단했으며, 현재 늘푸른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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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29 23:02

보리밭

60~70년대 우리의 농촌은 지금처럼 비옥한 땅이 없었다.초가을 지나 찬 서리가 오고 추운겨울 굶주리고 헐벗고 의지 할 곳 하나 없는 대지위에 보리만은 끈질긴 생명 파란 잎새가 우리에게 푸른 꿈을 주었다.신개간지 민둥산을 개간하여 산비탈 사람이 지개로 갈수 있는 곳은 생계를 위한 농사 보리... 보리... 보리밭?보리는 우리에게 절대 주식이었다.당시에 곡식이 부족해 보릿고개가 있었다.우리의 식량은 절대 부족하고 수확 때까지 버티기에는 힘든 고비였다.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을 때 음력 3~4월 풋보리를 배어 일부 수확해 그 해을 겨우 넘길 수가 있었다.9~10월경에 보리 파종을 하고 가을이 되면 대기가 건조해지고 쌀쌀한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기 시작하고 찬 서리가 올 때까지 보리파종을 한다.일주일이 지나면 보리 싹이 나오기 시작하여 추운 겨울 눈보라 몰아치고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로 겨울잠을 자는 사이 보리만은 어기찬 생명 넘실넘실 푸른 초원처럼 겨울바다를 이루어 놓는다.농가들은 이때는 농한기라 보리밭 가꾸기를 한다. 소, 돼지 축사에서 나오는 퇴비 남자들은 바지개로, 여자들은 머리위고 지고 비탈길 산기슭 논 따랑이까지 보리밭에 온 식구가 모여 가꾸어 간다.보리들은 뿌리가 서릿발에 얼어 죽기 때문에 그래서 보리밭을 밞아주고 보리 뿌리가 땅하고 더 밀착하게 단단하게 밟아 주어야한다.보리는 추운 겨울 동안도 잘 자란다.이제 날이 해동하고 봄이 되면 보리밭 김매기가 시작된다. 보리밭 속에 숨어있는 다랭이 냉이 봄나물 어머님은 우리에 밥상을 만들어 놓는다.음력 3월경이 되면 보리이삭이 나오기 시작하고 보리밭 들녘 활기를 띈다.저녁이 되면 이 동네 저 동네 처녀총각들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며 노래와 휘파람소리 자연 속에 자유를 즐기며 살아간다.지금처럼 도로 교통 도시문화가 쉴 만한 곳도 없었고 오직 자연이 주는 자유 속에서 인생을 즐긴다.또 보리밭에 들어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며 인생을 결정짓는 쉼터이기도 하다. 휴식공간이며 또 많은 문학을 만들어주는 문학공간 보리밭이다.보리밭은 우리의 마지막 생존을 위한 힘든 농사였다.유월 망종이 되면 보리밭은 알갱이가 엉글기 시작한다.들녘에서 불을 피워 보리깜부기 비벼먹으면 온 얼굴들이 새까맣게 검정얼굴로 해는 길고 허기지고 유일한 간식들이다.유월부터 보리타작이 시작된다.온 식구들이 이때부터 보리 베기가 시작되고 보리타작 보리 털 가시 옷 섭으로 파고 들어가 가려우며 참으로 까칠까칠한 농사였다.타작마당 온 식구들이 총출동 한다. 땀과 먼지 보리가시락 눈만 보이고 얼굴은 까맣게 알아볼 수가 없다. 보리타작이 끝나면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제일먼저 물어본다.몇 가마니냐? 아무리 힘든 타작마당 그래도 수확에 관심이 있고 보람을 느끼게하였다.보리 파종에서부터 퇴비주기 보리타작까지 힘든 고난이었다.보리밭 푸른 생명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넘실대는 푸른 기상 우리에게 미래로 가는 꿈을 주었다.보리밭 (헝거리) 가난의 정신 뿌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처럼 발전했다.보리밭 향수에 젖어 흙 냄새업디어 입을 맞추어본다.(고향을 사랑한다)△신이봉 씨는 시인이자 수필가로 전북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남원경제살리기 본부장으로 할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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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22 23:02

신 오복론

사람들아 부질없이 지는 꽃을 보고 아쉬워 말라. 꽃은 지면 내년에 다시 핀다네. 슬픈 것은 저기 저 흘러가는 물줄기라네. 우리네 인생처럼 가고 아니 오나니라는 시 한 구절이 가슴을 저민다. 엊그제가 청춘이었는데 벌써 노년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인생에서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이 어찌 한 두 가지 일까마는 간략하게 몇가지 적어보고자 한다.첫째, 권력거리 지수를 낮추자.권력의 거리란 구성원간, 또는 개인과 개인 간의 심리적인 거리로 이 거리는 나이가 들면 공중에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거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권력거리가 100인 사람은 100m의 높이에서 추락하게 되어 그 충격이 클 것이며 권력거리가 0인 사람은 노년의 새로운 생활적응에 연착륙하여 주변과 더불어 충격 없이 즐거운 생활을 영위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서로 믿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조건은 권력거리지수를 낮추는 것이 필수적이다.둘째, 영원한 멘토(Mentor)가 되자.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게 된 율리시즈는 외아들인 텔레마쿠스가 몸도 마음도 허약한 것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아들의 양육을 부탁했다. 20년이 넘는 전쟁 가운데 멘토는 테레마쿠스를 부모처럼 스승처럼 가르치고 이끌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강건한 용사로 변모했다. 이후 이처럼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풍부한 삶의 지혜와 경험의 교육방식을 멘토의 이름을 따서 멘토링 교육법이라고도 한다.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선배 지도자, 경험 있고 현명하여 믿을 수 있는 조언자이며 후원자, 따르고 싶고 닮고 싶은 선배로서 사회에서 기억되고 존경받는 영원한 멘토가 되는 것도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셋째, 새로운 오복(五福)을 준비하자.예로부터 흔히 행복의 으뜸 조건으로 장수하며, 재물이 있고, 건강하며, 덕을 즐겨 행하며, 편안하게 죽는 것을 오복이라 했는데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어서 최근에는 신오복론이 있는데 건강, 처, 재물, 일, 친구가 바로 그것이다.우선 건강해야 하고, 이어서 의지할 아내와 적당한 일거리, 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오복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건임을 부정할 수 없다.보통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고 남과 비교하지만 더러는 지금의 나를 만족한다고 자신을 긍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없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가진 것을 기뻐하는 사람, 행복은 감사에서 오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는 말을 항상 마음에 두자.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정신 건강에 중요하지 않을까?△소우섭씨는 평생을 교단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지금은 초야에 묻혀 살면서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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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5 23:02

포커스 인생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돋보기로 종이를 태워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한 점에 모아 종이에 비추노라면 마침내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이 타는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지금도 그 때 그 냄새를 잊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신기했을까? 돋보기를 가지고 태우는 모습은 마치 마술사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면 갑자기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야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조리개가 너무 좁아진 탓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돋보기 하나만 있으면 으스대며 많은 친구들을 모을 수 있었다. 빙 둘러앉아 시선을 오로지 햇빛이 모아진 한 곳만 응시하다보면 드디어 함성이 터진다.야! 탄다, 타. 연기 난다, 연기 나!그것도 초점을 잘 맞추어야 연기가 빨리 난다. 재질이 좋지 못한 돋보기는 초점도 잘 맞지 않아 빛이 모아지려다 분산되어버려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기대에 찬 꼬마들의 마음을 실망케 한다. 돋보기를 쉽게 구하지 못했던 나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유리조각을 주워서 햇빛을 모아 보려고 애를 썼던 기억도 난다. 내가 얼토당토않은 그 일에 심취해있는 사이 어떤 짓궂은 녀석은 나를 약이라도 올리듯 팔이나 발등에다가 돋보기를 들이대면 나는 앗 뜨거워!하며 뚜다가 급기야는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초점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도 초점이 맞지 않으면 사람이 멍하게 보인다. 합창에도 발성의 초점이 없으면 공명된 소리의 멋진 화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창 젊었던 시절 합창지도를 한답시고 이리 가르치고 저리 가르치면서 발성의 초점을 맞추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일이 떠오른다.세상의 모든 이치도 이 초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줄곧 달려 왔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오로지 한 곳만을 향해 질주를 한 셈이다. 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반평생 봉직해 온 나나 우리 친구들의 초점은 무엇이 엇을까? 물어보나 마나 뻔하다. 바로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여 기본이 바로 선 훌륭한 민주 시민을 기르는데 있었다. 초임 때 가르쳤던 제자가 같이 늙어 가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훌륭하게 제 몫을 다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이제 정년을 한 시점에서 우리는 첫 번째 인생의 Focus를 성공적으로 맞춘 셈이다. 남은 건 제2의 Focus를 맞추기 위해 또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뭔가 새롭게 맞출 초점을 찾아 서서히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40년 가까이 한 길에 초점을 맞추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듯이 영예로운 퇴직과 함께 꿈과 희망을 가득 싣고 귀향하는 만선처럼 제2의 Focus를 잘 맞춰 후회 없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 한다.△김재균씨는 전주 양지초등학교 교장으로 42년 공직생활을 마쳤다. 교단 재직시 가족이 함께 하는 교육에 힘써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한국교육자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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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8 23:02

우울해진다

11월 들어서면서 잦아진 비와 흐린 날씨 현상이 12월 중순 까지 계속되니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몹시 우울하게 한다. 해 늦은 첫눈이 폭설로 내렸는데 일주일 후에 또다시 예측 없는 폭설이 내렸다. 이는 분명 인류가 만든 이상기후의 재앙 징조임에 틀림없다.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동안 나 하나쯤이야 했던 일들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양심의 가책으로 다가온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산천, 맑은 공기와 물은 우리 대한민국의 대명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산업화의 물결로 곳곳이 훼손되었다. 그래서 물도 사 먹을 지경이고 전국이 미세먼지로 덮여 생명이 위협을 받을 정도로 건강의 한계를 지켜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모두는 누구랄 것 없이 건강 염려증 환자가 되어 시달린다.사람 사는 일이 온통 걱정 투성이고 행복이란 꿈만 꾸다가 마는 형국이 되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고 이웃과의 유대관계도 깨어져 버렸으며 존중과 신뢰가 사라져 버렸다.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무엇보다도 갑자기 밀어닥친 외래문화와 산업발달로 인해 인간은 소외 되고 물질문명이 지배하다보니 인성이 무시당하고 자존감이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걷잡을 수 없는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이 인간의 본성을 망가뜨리게 하고 타인의 존재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갈수록 민심이 각박해지는 요즘 날씨마저 따라주지 않으니 밝은 날이 더욱 그립다.1993년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진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을 때 겪은 일이다.그 무렵 중국을 갔는데 오후 5시쯤 심양에서 연길까지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2층 침대 2개가 양쪽 벽에 놓여있는 4인실이었다. 저녁식사도 열차 안까지 배달이 되었고 밤에는 맥주며 야식 등 이것저것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쓰레기는 쌓여 내심 걱정이 되었다.그런데 열차는 밤새 달려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연길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리기 한 시간 전쯤 여승무원들이 각 방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라는 것이 열차 내의 모든 쓰레기를 창밖으로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주변은 완전 쓰레기 더미로 즐비하고 그야말로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그리고 순간 아- 큰일이다. 싶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내려가는 황하의 물줄기가 닿는 곳이 우리의 서해라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해는 우리나라의 목젖과 같은 바다여서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러니 저 환경의 오염을 우리가 앞으로 어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봄이면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이 우리나라 전역에 불어와 황사라는 이름으로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그리고 공장지대에서 날아오는 분진으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은 이제 도를 넘었다. 이제 자국의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간의 환경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 그리고 물질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오늘도 겨울비가 내린다. 가뭄을 해소해 주는 비가 내리는 것은 좋지만 오염된 산성비가 내리는 것은 정말 싫다.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보면 정말 우울해진다.△전선자씨는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숨겨진 방〉 〈여정은 짧고 길은 멀고〉와 시집 〈그 어디쯤에서 나는〉 〈달 같은 세상 하나〉를 출간했다. 무주군의원을 거쳐 현재는 김환태문학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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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1 23:02

헛다리길

아랫목이 없는 아파트에서 구들목 대신 온수매트에 몸을 부린다. 뒈작뒈작 앞뒤로 몸을 뒤집자니 푸른 바다에서 막 건져낸 고등어라도 된 양 몸이 땀으로 비릿해진다. 몸을 굴리듯 생각도 요리조리 굴려서 쓸 만한 심상心象 몇 개 건져 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잡생각뿐이다.하릴없이 누워있는데 건넌방에서 부는 섹소폰 소리가 울려온다. 평생지기 그이가 문 꽁꽁 닫아걸고 높낮은 음표들과 노는 소리다. 그 초보적인 음률은 내 기분에 따라 감미롭거나 우울하거나 서글프게 들린다. 오늘은 흐느적거리는 음계 마디마디가 검은 장막을 두른 듯 칙칙하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차암 ~으~으~음~~ 그 대목이 성급히 삼킨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몸이 흐느적거리면 맘마저 무너지는 것인지 지난 시간, 지난 일들, 어긋난 관계들이 난 참 바보처러엄~~~으로 다가온다. 하필, 나뭇잎 몇 장 거느리고 서 있던 그 길이 떠올랐다.드라마 겨울연가로 인해 연인의 섬으로 더 잘 알려진 곳. 반달 모양의 남이섬은 파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잣나무와 연인들의 속삭임처럼 부드러운 황금색 은행나무, 금슬 좋은 노부부의 뒷모습 같은 메타세콰이아 길이 향기롭고 아늑하다.어느 길을 먼저 걸어도 편안한 마음이었다. 만나고 헤어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림 같은 풍경이 걸음을 느리게 한다. 따스한 바람과 다정한 눈빛의 사람들, 상냥한 새들과 벗하며 두어 시간쯤 걸었을 무렵 흙길이 끝나고 통나무길을 만났다. 길의 초입에 헛다리길이라고 쓰여 있다. 헛다리길이라니?햇볕에 찌든 통나무는 남루하고 초췌한 모양새로 낡아가고 있다. 굴비처럼 엮어진 한 귀퉁이는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밧줄 사이로 낡아빠진 나무가 푸서석 밟히니 바스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우이겠거니 여기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 해의 수명을 다한 나뭇잎들이 통나무길 아래 호수 위에 떠 있고 저 멀리 납작 엎드린 집 몇 채와 그만그만한 능선의 곡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하, 서정적인 이 길이 헛다리길이라니. 헛 이라는 단어가 행여 쓸모없는의 뜻으로 들렸고 그 울림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피듯 건너왔다. 한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며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에 맘속 어디에선가도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날 헛다리짚어 부끄럽고 부질없던 헛, 헛, 헛것들에게 저항하는 절규가 들려온다. 본의 아니게 헛짚기도 하고 헛짚이기도 해서 억울했던 기억들에게 손사래를 쳤다. 이미 지나간 것은 죽은 것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재탄생된다는데끄무레한 날씨 탓인지 구슬픈 가락 때문인지, 나는 헛다리길 위에 서서 맥없이 설움에 겨웠다.세상엔 헛수고, 헛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헛것이 헛것만은 아니랍니다. 헛것들이 인생입니다. 헛다리길 안내판에 쓰인 글귀로 나를 달래보지만 이울어가는 나이 탓인가? 헛산 것처럼 헛헛하고 쓸쓸했다.하지만 생명의 존재는 살고자 하는 존재. 나는 아직 살아있고 내일은 새 힘 새 마음으로 잘 살고 싶다.헛다리길을 걸으며 헛 산 날을 잠시 돌아보았다.다시는 미래라는 앞길에서 헛짚어 살지 않으리라.△이연희씨는〈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전북수필과비평 작가회의 회장과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산문집 〈풀꽃들과 만나다〉 외 수필집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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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5 23:02

잠깐 멈춤

어느 때부터인가 내 안에서 조급증이 자라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온 지 한참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틀에 묶여 나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루가 모자라 늘 뛰어다니며 사는 사람이 6박7일이나 공백을 가진다는 것은 큰 무리였지만 그냥 눈 딱 감고 떠나보기로 했다.이른바 힐링을 위해 떠나온 지금 참으로 오랜만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보는 산길. 잡다한 생각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되어본다. 닫혀있던 오감이 열리어 오랫동안 알아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들이 생생히 들린다. 가을을 찬미하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새소리, 물소리, 나무들의 숨소리, 바스락거리며 본향으로 돌아가는 낙엽소리, 살아있는 모든 자연의 소리가 껴울림되어 들린다. 눈을 들어 나무 가지 사이로 열린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한다. 티 하나 없는 숲의 향기가 허파를 거쳐 온몸을 정화시킨다. 겹겹이 껴입고 있는 남루한 옷을 벗어버린 가벼움이다.우리가 지구 안에 여러 나라를 이루고 있듯이 산도 우리 사람살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끼리끼리 어우러져 있는가 하면 호젓이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독을 즐기며 사는 식물들도 있다. 땅에 엎드려 있는 작은 이끼에서부터 키 자랑이라도 하는 듯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편백나무도 눈에 띈다. 그렇다고 편백나무가 잘 사는 것처럼 뽐내지는 않는다. 사랑이 넘치는 마삭줄은 떡갈나무와 포옹을 하며 얼굴을 붉힌다. 쳐다보는 나도 덩달아 얼굴이 붉어진다.음악소리가 들린다. 가을 철새들의 만남과 이별을 위한 향연인가? 아님 산에는 늘 축제가 열리고 있는 걸일까? 곤충나라와 새나라가 합세하여 음악회를 연 모양이다. 멋진 연회복을 입고서 윙윙 날개 저으며 고추잠자리가 지휘를 하고 있다. 개똥벌레는 발광기를 최대한 작동시켜 지휘하는 고추잠자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다. 빨간 바탕에 검은 점박이 옷을 입은 무당벌레는 자케오처럼 키가 작아 나무 위에 올라 친구들하고 구경을 한다. 귀뚜라미가 퍼스트바이올린 파트를 맡은 듯 고음의 소리를 낸다. 보이지는 않지만 방아깨비는 따다닥 따다닥 작은 북을 치고 있다. 방청객으로 온 도토리가 나무 밑에 수없이 앉아 꺄르륵 킥킥 웃음을 참지 못하고 떼구루루 구르며 박수를 친다. 산에서 대장행세를 하는 독수리는 체통 때문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어디에서인가 대견스럽게 지켜보고 있겠지.도토리 한 알 툭 어깨를 치며 떨어진다. 내려놓음의 아름다움이다. 무거움을 벗어버리니 알몸이 된다. 시간에 쫓기면서 무엇이 되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던가? 이젠 새로움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를 치유하여 새살을 돋게 하고 메말라버린 내 감성에 마중물을 부어주어 춘삼월 새싹처럼 여기저기서 움이 돋아난다.그동안 무엇을 위하여 앞만 보고 질주하였던가. 쉬는 것도 용기다. 가끔은 만사제치고 잠깐 멈춰 나를 만나볼 일이다.△이정숙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작촌예술문학상, 온글문학상을 수상했다.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 회장을 거쳐 현재 전북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으로 있다. 수필집 〈지금은 노랑신호등〉 〈내 안의 어처구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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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8 23:02

이슬처럼 빛 고운 단풍처럼

지금쯤 한 평의 묘지 속에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한줌의 재가 되어 이 산천 어디엔가 훌훌 뿌려져 있다면 참으로 신세 편안할 노구들이 병원의 대기실을 꽉 매운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인들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나는 특별히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해서 어지간히 아픈 것은 그냥 버티어본다, 행여 불치의병이 걸렸을 지도 모르는데 홀수 짝수 해 찾아가며 건강검진을 받아 보라는 통지가 와도 한 번도 받지 않았다.이제 살만큼 살았고 지금 이승을 떠난다 해도 별로 슬퍼할만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언제인가 혼자 떠나야 하는 길, 언제 떠나면 어떠랴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부득이 병원을 찾은 것은 다음날 기차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는데 계단에서 미끄러져 허리에 통증이 와서다.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거의 노인이었고 여자들이었다. 큰 병원처럼 번호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는 잊어버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편한 마음으로 수필집 한권을 끼고 뒷자리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책에서 읽은 이야기 보다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더욱 맴돌았다.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얘기들을 잘 하는지 늙으면 입만 산다더니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했다. 대개의 이야기들은 자기 몸 아픈 자랑이고 자식이 스물이면 뭐하느냐는 소리도 들렸다.나는 간혹 모임 장소에서 구구 팔팔 이라는 건배 구호를 듣고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뜻을 알고 보니 99세까지 팔팔 하게 살자는 것이라는 소리에 기가 질렸다. 이렇게 아픈 몸 이끌고 돌아누우면서도 아이구 아이구 하는 신음 소리가 연거푸 나는데 구구 팔팔의 세월을 살려면 그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어 나는 이후로 구호를 따라 외치지 않는다.언제부터 우리사회가 장수를 하게 되었는가? 내가 생각하기엔 한 푼의 소득도 없는 노인네들이 이렇게 의료보험 혜택으로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덕이 아닌가 생각 된다. 그동안 병원을 멀리한 나는 잘 몰랐는데 오늘 병원에 와서 들으니 진료비 1500원이면 주사 맞고 침 맡고 전기 치료, 온 찜질 원적외선과 안마 등 물리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단다. 더욱이 혼자 사는 노인들은 손닿지 않는 곳에 파스 한 장 부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냥 와서 누워만 있으면 편안 하게 해주므로 그토록 오래 기다려도 매일 오다시피 한다고 한다.어떤 사람은 물리치료가 끝났는데도 기다리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좀 더해 달라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분을 것을 보면서 참 염치없는 노인이 구나, 늙으면 스스로의 행동에 따라 노인 대접을 받는다는데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노인들의 수명이 길어 졌으니 오래 오래 대우받고 살려면 돈을 아껴 쓰라던 말을 해 준 지인의 말을 떠 올려 본다. 짐스러운 노후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많은 노력이 필요 할 것 같다. 첫째 건강해야겠고 둘째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좋겠으며 셋째는 느긋한 정신적인 여유로 젊은이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삶의 끝자락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그리고 빛 고운 단풍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된다면 복 받은 삶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그런 복이 올 수 있도록 신께 기도하며 살련다.△김호심씨는 〈한국문인〉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전북문협와 행촌수필전북수필신문학회원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부안문화원 시낭송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 지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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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1 23:02

황혼이혼,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21세기를 활짝 열어젖힌 태양이 시계 추를 부지런히 흔들더니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황혼녘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초근목피로 굶주림을 이겨내며 생명의 끈을 이어온 불행한 시절을 살아왔다. 이제 조금 넉넉해져 대다수 국민이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부러움을 사는 한민족으로 우뚝 서 있다.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인가. 급격한 산업성장으로 부유해진 삶에서 파생된 개인주의가 전통가족제도를 해체했고, 수십 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한 부부들이 황혼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단초를 만들어 냈다.황혼이혼은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당시 일본이 경제 불황에 빠지면서 퇴직자들이 늘어났는데 공교롭게도 부인으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는 노인이 급증했다. 그 현상이 우리나라로 전염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것이다. 또 비단 일본과 한국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 여러 나라에서도 골칫거리다.고령화 사회가 은퇴한 남편 증후군이란 새로운 질병을 만들었다. 부인들이 은퇴한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쌓인 감정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해 발생한 부산물이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커져 자주 아프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나타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증상을 말한다.현대의학의 발달로 기대 수명이 크게 늘었다. 초고령사회가 눈 앞에 있다. 100세 시대가 열린 현대사회에서 베이비부머 세대 부부들은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갈 것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결혼했다면 60~70년 이상 부부가 동고동락할 것이라는 산법(算法)이 나온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어서도 20~40년간 함께 한다. 이 때문에 삼식이, 바둑이, 젖은 낙엽 등 슬픈 신조어도 생겼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더라는 사회 통념과는 달리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상대가 나를 신뢰하고 또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만족 정도가 높지 않고, 비록 작더라도 그때 그때 행복한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시켜 주는 바로미터라고 한다.숱한 날들에서 갈등이 없는 부부는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었느냐 보다는 그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가 문제를 해결하는 포인트다.노년기 삶의 행복은 건강과 경제력, 그리고 부부나 가족들과의 관계 유지가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 한다. 서로 아껴주고 돌봐주는 정도가 부부관계의 성공을 결정 짓는다.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황혼기의 종지부가 못다 이룬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은 자칫 실루엣의 허상일 수도 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헤어진 뒤 멀지 않은 세월이 지나면 예상하지 않은 외로움이나 후회가 반드시 올 수도 있다.파라다이스의 세계를 그리며 맺었던 청춘시절의 결혼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면 열정이 식어 가고, 결국 법으로 눈가림을 한다고 한다.인생의 저슬기 문턱을 넘어서는 노년에 쓸쓸한 들녘 길을 혼자 걸어갈 것인가. 황혼기는 여러모로 힘들고 외로운 시기다. 자꾸 지난 날들이 그리워지고, 다정한 말벗이 절실해진다. 그저 지난 날 힘들었던 일 만을 앞세워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 보겠다는 편협한 생각 만으로 선택하는 황혼이혼은 어쩌면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김형중씨는 〈수필시대〉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와 행촌 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원광보건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전라북도 인재육성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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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04 23:02

꿈은 이루어 진다

퇴직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그 동안 교단에서 후학들에게 나의 역량과 재능을 다 발휘하며 교육하였다. 그리고 이제 젊은이들에게 나의 일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구직난에 다음 세대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물려주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나는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찾아 후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초등학교 교과서에 즐거운 생활이 있다. 교과 내용은 음악, 미술, 체육을 합하여 엮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음악, 미술, 체육을 잘 해야 즐거운 생활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체육은 쉽게 익히고 좋아했다. 그러나 미술은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재능도 부족했다. 그런데 우리 집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져야 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가져온 미술 숙제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로써 그림을 못 그린다고 물리칠 수 없어 그 때부터 도안사전을 준비해서 스케치 연습을 하기 시작 했다.그 뒤 이제는 주말과 휴일이면 미술선생님을 모시고 야외로 스케치를 나가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나는 아이와 함께 그림 공부를 하면서 그 원리를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자연을 세밀히 관찰하여 스케치 하면서부터 그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고 자연의 오묘함을 하나씩 화폭에 옮겨가며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그런 과정을 통에서 왜 색채학습이 노인들의 정신 건강과 치매 예방에 좋은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림 공부를 시작 한 것이 일석이조가 되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수채화와 한국화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한국화반을 찾아 등록을 하였다. 여기에서 지도 하시는 선생님은 우리 지방에서 손꼽히는 한국화가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연세도 지긋하시고 경험이 많아 뛰어난 재능으로 성실하게 잘 가르쳐 주셨다. 거기에다가 선생님은 미인이며 패션도 젊은이 보다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성격도 온유하시고 친절하시여 수강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셨다.벌써 한국화를 시작한지 6년째다. 처음에는 선긋기부터 시작했다. 가늘고 굵게 , 길고 짧게 등 여러 가지로 변화를 주면서 선을 그렸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선긋기가 난치기로 변화하고 난에서 매화, 목단 등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갔다. 그림 공부를 시작 한 이듬해부터 선생님의 추천으로 창암 이산만 선생 선양회 주최 전국서화 백일 대상 전에 참가했는데 뜻하지 않게 특선 상을 받았다. 이후부터 나의 그림 공부는 갈수록 탄력을 받았다. 그래서 해마다 이 대회에 참가하여 특선을 했다. 그 결과 작년에 창암 선양회로부터 초대작가증을 받아서 비로소 내가 원하는 문인화가가 되었다.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꿈은 존재한다. 그 꿈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불굴의 도전정신은 어느 사회에서든 강조되어왔다. 문제는 꿈과 그 꿈의 실현을 위한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앞으로 나는 더욱 정진하여 더 큰 대회의 초대작가도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재능은 두 번째다. 우선 시작해서 뜻을 세우고 노력해서 반드시 꿈을 이루련다.△최동민씨는 교직에 재직하다 퇴직했다.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암 이삼만 선양회 초대작가(문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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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27 23:02

벼를 거둬들이고

재작년은 흉년에다 이슬비를 맞고 벼를 베어 수분함량이 제법 높아 부아가 치밀었다. 작년엔 오히려 너무 건조해서 손해를 봤다. 엊그제 비를 걱정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쾌청해 이슬이 잠에서 깨면 괜찮을 것 같았다. 콤바인이 몇 분이라도 늦게 오길 바랐는데 사돈네 논을 베고 곧바로 11시가 못되어 들어왔다.예년처럼 콤바인은 뒤 논두렁 쪽에서 시작해 논을 오른쪽으로 한 바퀴 삥 돌았다. 누런 벼는 베어지면서 콤바인 안으로 들어가 낟알이 훑어지고 볏짚을 뒤로 가지런히 놓았다. 뒤 논두렁 끝에 갈 때야 들은 게 생각나는지 볏짚을 잘라서 내놓았다. 논바닥은 거무스레한 속살을 들어 내놓다가 곧바로 볏짚으로 가렸다. 콤바인은 논바닥이 질컥질컥해 힘들어 했다.콤바인이 부지런히 한 바퀴를 돌고 있는데, 또 한 대가 불청객으로 들어온 게 아닌가? 아마 둘은 우리 논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했을 성싶었다. 나중에 온 콤바인도 눈썰미가 빨라 앞 콤바인을 따라 돌면서 꼼꼼하게 일을 했다. 논에 콤바인 두 대가 빠른 걸음으로 다니니까 한 대일 때보다 직사각형의 황금물결이 금방금방 줄어들어, 서운하기도 했다.콤바인은 벼를 훑은 낟알을 풍구질 해 모았다가 도로가의 트럭에 있는 큰 포대에다 담아주었다. 콤바인 도우미 아주머니와 포대를 쫙 펴서 잡고 많이 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포대 밖으로 튀어나와 차와 길바닥에 떨어진 낟알 하나하나가 아까웠다. 낟알 한 알을 여물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 길바닥에 떨어진 낟알들은 아내가 손바닥으로 모아 담았지만, 마음이 아렸다. 포대가 조금 작아서 그런지 작년보다 하나를 더해 네 개에 가득가득 담았다. 난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다.산물 벼로 팔려 트럭을 앞세우고 농협이 운영한 DSC(벼 건조저장실)로 갔다. 적정수분 함량이 되어야 할 텐데.하는 바람뿐이었다. 저장실 앞 수매시설 위 전광판에 정석곤 벼 수매 라고 녹색불이 켜졌다. 수매원이 벼의 품질을 검사한 뒤 부었다. 내 이름 밑에 무게(kg)와 수분함량(%)의 수치가 자주 바뀌기 시작했다. 두 번째 포대를 부었다. 무게와 수분함량의 수치는 24와 25 사이를 오가느라 바빴다. 무게보다는 수분 함량에 더 눈독을 들였다. 세 번째 포대를 비웠다. 옆에서 팔고 있는 농가의 수분함량 수치를 곁눈질 하며 비교해 보았다. 마지막 포대를 비웠다. 수분함량 수치가 25가 거의 가까울 때는 25를 넘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다. 드디어 수치가 멈추었다. 2,803kg에다 24.2%였다. 1등급에다 적정수분 함량 24%에 가까워 정상이라고 했다.모내기는 적기에 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벼 수확도 그렇다. 그건 수분함량 때문이다. 작년보다 사흘 앞서고 이웃보다 빨라 적기라 여겼는데 지난 이틀간 비를 맞아 걱정을 많이 했다. 다 쓸데없는 염려였다. 올해는 대풍년이라 할 수 있을까? 수분함량도 정상인데다가 생산량도 600여 kg이 더 늘었으니까.올 같은 가뭄에도 지하수를 뿜어 오렸다. 볏짚을 깔고 모내기를 했다. 비료와 농약도 뿌렸다. 잡초인 올갱이와 전쟁도 네댓 번에 끝냈다. 논두렁 풀을 벴다. 작년에 내 맘을 까맣게 태웠던 벼 깜부기가 올해도 까맣게 꽃을 피워 따보기도 했다. 사돈의 논농사 도움과 조언을 받아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벼농사의 시절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도움을 바랄 뿐이었다. 여름에 태풍이 몇 차례 한반도에서 멀리 스쳐 지나가, 벼가 꽃을 피우고 꽃가루받이가 잘 돼 낟알이 튼실하게 여물었다. 기쁨을 안겨 주신 하나님께 고마운 마음을 드리고 싶다.△정석곤씨는 2009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풋밤송이의 기지개〉를 출간했다. 행촌수필문학회와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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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20 23:02

솔바람 길

주말 오전이면 나는 항상 가는 곳이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남원 덕음산 기슭의 솔바람길이다. 이 길은 관광단지내 놀이시설 부근에서 시작되어 항공우주천문대 입구 부근까지 약 1200m의 나무데크 길이다.이 길에 들어서면 솔바람길이란 이름이 의미하듯이 솔향기가 은은한 소나무 숲길이다. 더군다나 길 전체가 나무 데크로 조성되어 있어 안심하고 다녀도 좋은 산책길이다.덕음산 솔바람길이라고 쓰인 입구의 현판을 통과하여 계단 길을 이삼 분 오르면,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다. 왼쪽은 100미터 정도의 나무데크길이 나있고, 그길 끝부분에 이르면 극락암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들 사이로 놀이시설들이 보이고, 리듬에 맞추어 놀이를 유도하는 경쾌한 음악이 흥겹기까지 한다.그길 끝에 있는 전망데크를 돌아 처음 갈림길로 와서, 다시 반대쪽 방향으로 가면, 1000미터 정도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평탄한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외에도 아카시아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가 주를 이루고, 주위 계곡에는 고비 등 양치류들이 많다.봄에는 연하고 푸릇푸릇한 신록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기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뽐내고 있다. 봄 산이 거느린 산벚꽃과 샛노란 개나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봄바람에 솔향기 은은히 풍겨와 상쾌함을 더해 준다.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바람이 종종 불어와 뜨거운 햇빛과 습기를 막아주니, 시원함에다 쾌적함을 더해 준다. 봄에 나왔던 상사화 잎들이 말라가는 대신, 연홍색의 꽃들이 피어난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과 꽃이 서로를 생각한다 하여 상사화(相思花)라고 한단다.가을에는 키 큰 소나무들을 칭칭 감아 올라간 담장이 넝쿨과, 나무데크 길 위에 쌓여가는 갈잎, 가랑잎 등의 낙엽들과 열매껍질들을 보고 걷노라면, 풍족함을 느끼게 한다.겨울에는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제법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몸이 움츠려 들기도 하지만,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걷다보면, 주위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의 운치를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낙엽들과 열매껍질들이 뒤덮인 길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밟고 걷노라면, 더욱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솔바람길은 숲속의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천연의 피톤치드다. 일주간의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데 나는 이 솔바람길을 애용한다. 편한 마음으로 단전호흡과 명상을 하며 이 길을 걷는다. 나의 보행명상 자리로 그만이다.지금 이 순간!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온 몸을 이완하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들숨이 횡격막을 지나 단전 아래로 들어오는 느낌을 관전한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날숨이 단전에서 서서히 나가는 느낌을 알아차린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나의 생각, 감정, 오감을 모두 내려놓고, 나의 존재만 확인한다. 순수한 나를 느껴본다. 나는 늘 존재하고 있다. 내 안에서 빛나고 있는 광명, 행복, 평화, 그리고 자유어느덧, 처음의 갈림길까지 되돌아와, 솔바람길 입구의 계단길을 내려온다. 조금 더 이 길을 걷고 싶다. 삼십분 정도 더 걷고 싶다. 덕음산 능선 가까이로 500미터 정도 연장하여 순환하는 길을 내면 더욱 좋겠다.△김두성씨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한국문학예술〉로 등단했다. 현재 금지중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며,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나의 작은 행복〉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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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3 23:02

둔치농장

나는 요즈음 인근 아중저수지 둔치에 조그만 밭을 개간하여 채소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푸성귀 몇 가지를 심었으나 점차 키운 작물이 증가하여 12종이 넘는다. 나는 이 밭을 둔치농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 근처 산책로 변에 있어 산책을 하면서 수시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으로 행복하다.작물을 가꾸다 보면 항상 즐거움과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가뭄에 시들어 가는 작물들을 보며 애를 태우기도 하고 병충해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속상할 때도 있다.이른 봄 하지감자를 한 두렁을 심어놓고 싹이 트이지 않아 애태우던 생각이 난다. 나는 씨감자를 어떻게 파종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경험이 있는 친구한테 물어 심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싹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도 답답해서 친구에게 재차 물었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같았다. 감자를 몇 조각으로 쪼개서 눈이 있는 부위를 아래쪽으로 하고 잘린 부위가 위로 가게 심은 다음 살짝 덮어주면 된다는 것이다.분명히 가르쳐 준대로 심었는데 싹이 트지 않아 혹시 심는 방향을 잘못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고 또다시 채근하였더니 잠자코 기다리면 싹이 나올 것이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다.그렇게 며칠을 지나자 마침내 친구의 말처럼 새싹이 비닐을 밀치고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 하더니 금방 파릇파릇 잎이 피어나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어린 새싹을 보면서 냉기도 가시지 않은 3월의 땅속에서 고통을 견디며 나왔구나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비닐 사이를 틔워 주고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었더니 보답이라도 하듯이 무럭무럭 자라며 새싹의 강인함 보여 주었다. 씨감자 심은 지 3개월 남짓 된 6월 중순경에 어느새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과연 며칠만 관심을 같지 않아도 금방 표시가 역력하다. 초여름 바쁜 일정으로 잠시 농장을 들리지 못하였더니 쇠비름 바랭이 등 온갖 잡초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 무렵 가뭄이 심해서 작물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특이 고추와 가지, 호박은 애처롭게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대파와 들깨는 병충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목이 말라 애태우는 녀석들부터 물을 흠뻑 뿌려주고, 훼방꾼 쇠비름 바랭이 등 잡초를 제거한 다음 병충해 구제에 나섰다.물을 흠뻑 먹은 고추와 가지 호박잎들이 어느새 나풀거리며 생기를 되찾는 듯싶더니 옆에 있던 고추가 한 마디 하고 나선다. 주인님, 최근에 유행하는 탄저균이 온다는데 정말 무서우니 미리 예방을 좀 해주세요. 듣고 있던 들깨도 거들고 나선다. 저는요 갑작스럽게 목이 꺾기는 역병이 돌아다닌다는데 걱정입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고 있었지만, 이들을 직접 대하니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주인체면으로 큰소리쳤다. 염려 말아라. 오늘부터 내가 너희 곁에서 보살피며 지켜 주마. 이후부터 매일같이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펴준 덕택인지 모두 기력을 회복하여 병충해를 이기고 무럭무럭 자라서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들을 보고 작물은 인간과는 달리 뿌린 만큼 반드시 보상해 준다는 것을 경험했다.얼마 안 있으면 들깨 수확을 끝내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어 내년 봄을 기약할 것이다. 나의 둔치농장은 나의 삶에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활력소다.△육심표씨는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다.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 과정을 수료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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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6 23:02

이 가을에 읽는 시

처서를 기점으로 하여 태양의 고도가 살짝 기울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폭염은 자리를 뜨고 산들바람이 밀려온다. 그 위풍당당 했던 초목은 기세를 접고 겸허히 옷깃을 여미며 결실을 준비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찬란했던 생을 한 개의 꼬투리에 고이 접으면서 오로지 자손 번성의 염원만을 안고 고개 숙인다.오늘이 음력 칠월 이십이일인가 삼일인가. 하현달이 하얗게 빛나는 이 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데, 따끈한 국화차 한 모금 입을 축이고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 가을 사랑을 듣는다. 나는 가을 사랑은 싫어 라고 답장을 보내고 생각하니 싫어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는 걸.나도 무얼 접어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적막하기만 한데 귀또리 한 마리가 깡총 문덕을 넘어든다. 그 찬란한 여름, 마음껏 풍요를 만끽하고 이젠 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 안을 엿보는 귀또리의 신세가 가엽다 생각하니 이 밤 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조지훈 님의 승무가 떠오른다.내 심장을 휘어 감는 시,나는 가을 이면 이 시에 취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바람 한 점 없는 밤,하늘은 청명하고 별은 빛나는데 이지러진 하현달은 하얀 빛을 발하며 서쪽을 향하고,황촉 불을 밝힌 조촐한 법당. 앞마당은 하얗게 빛나고 뜰 뒤뜰엔 오동나무가 큰 잎을 펼치고 있고, 까맣게 짙은 그림자는 동쪽으로 드리워 있고, 앞뜰에는 이러저러한 가을꽃들이 찬 이슬에 숨죽이고, 법당 처마 끝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풍경, 댓돌엔 스님의 흰 고무신이 두어 켤레.법당 안엔 빈대에 황촉불이 밝혀 있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얇은 사 하이얀 고깔에 감추오고 긴소매 도포를 입고 하얀 버선을 신고 춤을 추는 미모의 여승, 서럽도록 고운 빛이 흐르는 가냘픈 얼굴,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까만 눈동자를 어쩌다 한 번씩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을 응시할 때 복사꽃 고운 뺨, 그 고운 얼굴에 맺힌 눈물 두 방울. 긴소매를 휘어 감았다 다시접어 뻗으면서 날아갈 듯 돌아서며 살포시 스치는 작은 버선 발.세속의 번뇌를 긴 소매 자락에 실어 먼 하늘에 날려 보내고 온몸을 휘돌려 대자대비의 은총을 염원하는 여승의 춤사위는 미의 극치를 넘어 천상의 향연으로 펼쳐진다.이 시는 이 밤을 정적으로 몰아넣는다.산천의 잎 하나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 그 큰 오동잎도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 없이 한 잎 수직으로 떨어뜨린다. 법당 추녀 끝의 풍경조차 울리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법당 안 황촉불도 말없이 녹게 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잠들게 하고 오로지 승무를 추는 여승의 춤사위만을 펼쳐낸다. 한기에 몰린 귀또리도 울지 못하고 온밤을 지새울 뿐 오로지 여승의 춤사위가 바뀔 때 마다 옷깃 스치는 소리만 은은할 뿐이다. 온 세상을 잠들게 해야 승무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은 시인의 시적 기교에 감탄하면서 깊어가는 가을밤을 지새운다.적막한 이 가을 밤, 세상이 잠들어야만 들을 수 있는 춤사위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듣노라니 조촐한 법당 앞마당에 진하게 드리운 오동나무 검은 그림자가 달빛이 희면 그림자는 더욱 검고 짙어지는 이치를 가르쳐 준다.번뇌가 클수록 대자대비의 은총이 더욱 두터우리라는 깨달음으로 고요한 이 밤 춤추는 여승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조지훈 님의 시 승무를 읽는다.△송영수씨는 전주MBC 친절생활수기 대상과 전북여성백일장 수필부 장원을 차지했다.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4대 지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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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30 23:02

엄마와 딸

마침 근무가 없던 막내딸과 함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외손녀의 발레 수업을 구경했다. 앳된 여섯 살의 외손녀는 엄마와 함께 모처럼 서울에 오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보더니 함박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하며 의기양양하다.외할아버지는 수업이 끝나고 나온 외손녀가 하도 깜찍하고 기특해서 덥석 안아주고 싶어 팔을 벌렸지만 냉정하게 뿌리치며 제 엄마에게 달려가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는다. 그러더니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려던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마디 던진다.엄마, 이제 회사 나가지 마!외손녀의 갑작스럽고 단호한 말에 모두는 뜨끔하며 당황스러워 했다. 잠시 후 막내딸이 딸아이와 눈을 맞추고 나긋나긋 말했다.엄마가 회사에 가야 발레도 배우고 책도 사고, 또 담은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사먹을 수 있잖아?그러나 외손녀는 그 이유도 이제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외손녀의 폭탄 발언을 잠재울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선 듯 떠오르지 않는다.엄마, 얘가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가끔 이러네요.막내딸이 내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콧등을 찡긋하며 불편한 심정을 전한다. 조금 전까지 앙증맞은 발레 몸짓으로 기쁨을 주더니 점심시간 내내 우리를 근심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 엄마가 회사에 나가 돈을 벌기 때문에 자기 선물도 사주고, 예쁜 옷도 산다며 어미의 출근을 당연시하고 아침마다 엄마의 출근길에서 고사리 손을 흔들어 주었다.직장에 다니는 엄마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보모에게 맡겨 길러져 보모의 등이 안락한 요람이요 보모의 품과 냄새가 포근한 엄마였다. 그래서 직장에서 돌아와도 보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던 아이가 내심 서운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대개 아이들은 갓난이 때부터 낯가림을 안 하고 덥석덥석 안겨 귀여운 것인데, 외손녀는 보모 외에는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는 예민함 때문에 안아보고 싶은 우리 내외의 간절함에도 매번 서운하기만 했다. 그래서 막내딸은 그런 제 딸 때문에 늘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외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지금은 벌써 엄마가 되었지만 나의 막내딸도 병설 유치원 제도가 없던 시절, 나이 어린 가정부에 맡겨져 쓸쓸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나의 맞벌이 시절이었다. 다섯 살 막내딸은 아침마다 출근을 서두르는 엄마를 보며 늘 불안한 마음에 힘들었을 것이다. 출근길을 가로막으며 울어대는 아이를 우격다짐으로 겨우 뿌리치고 도망쳐 나오면 골목 끝까지 들려오는 딸의 울음소리는 내 가슴을 후벼 파며 종일 심한 통증이 되곤 했다. 직장을 그만두어야겠다는 갈등 속에서 세월이 갔고, 아이들은 고맙게도 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 주어 육아와 살림에 쫓기던 직장생활의 엄마를 후회하지 않게 했다.유난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던 그 막내딸, 그 딸의 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불쑥 던진 한마디가 계속 마음을 저리게 한다. 네 명의 자녀를 돌보며 직장 일과 살림, 그리고 여러 선영을 모셨던 종부의 고단했던 내 삶이, 특별한 자랑일 수만은 없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나의 옛 시절이니, 동생 하나 낳길 소망하는 속마음도 덮어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어미는 육아를 우선으로 해야 하지만, 가계에 도움도 되고 무엇보다 자기 전문성을 살리는 일이 있다는 긍지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담은아, 요즘 왜 할머니 전화도 안 받아?할머니, 나도 요즘 힘들어.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는 내 간절함을 거부하는 냉정한 외손녀다. 유치원 다니랴, 수영 배우랴, 발레 배우랴. 악기공부 하랴, 여섯 살 외손녀도 요즘 무척 바쁘고 힘들어서 전화 못 받는단다. 엉뚱한 이유도 귀엽기만 하니 우리 내외도 분명 손녀 바보가 틀림없다.제 핑계처럼 어린 몸이 바쁘다니 제 엄마의 어린 시절처럼 종일 어미만 찾으며 쓸쓸한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 차라리 힘든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다행이다.△김덕남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 수자원공사가 주최한 제 5회 K-water 물 사랑 공모전에서 수필부문 은상 수상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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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3 23:02

사람 냄새

시장에 가면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다. 가는 곳마다 수북수북 쌓인 상품들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비켜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곳을 볼 수 있다. 호기심이 생겨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면 장사꾼의 호객과 재담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재래시장에 가면 대형 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장만의 매력 중 하나인 흥정이 있다. 자기가 파는 물건이 가장 좋다느니,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거저 준다느니 하며 능수능란한 솜씨로 후딱 팔아넘긴다. 고객들도 반신반의 하며 속마음으로는 ‘장사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며 값을 치른다. 시장과 흥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생관계다. 터무니없는 가격만 아니라면 적정한 선에서 흥정이 이루어지고 흥정을 통해 정이 오고 가서 단골손님도 생기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가게(廛)마다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물건들이고 풍기는 냄새도 다양하다. 꽃 가게의 꽃향기부터 방앗간의 고소한 기름 냄새, 생선가게의 비린내까지 가지가지다. 시골의 흙냄새, 바닷가의 갯내, 외국에서 온 이름 모를 냄새들까지 모여 수많은 사람이 스칠 때마다 유혹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시장을 찾는 사람들 모습에도 모두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세월로 만들어진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곱게 단장한 여인의 모습, 수수한 차림의 중년 남자, 미소 띤 환한 얼굴도 있고, 걱정가득한 입을 꽉 다문 초췌한 얼굴도 있다.시장을 가면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나,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는 막무가내 얌체족이 늘고 있다. 장사한다고 걸어 다닐 길도 없이 물건을 내어놓고, 옆집은 생각지도 않고 큰소리로 호객하는 행위나 고객을 속여 폭리를 취하는 야릇한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격이 바닥임을 나타낸다. 상도의가 없는 야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내 물건은 팔아야 하고 남의 물건은 팔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들은 사람 냄새보다는 꾀죄죄한 돈 냄새가 더 많이 난다. 돈이 좋기는 해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이웃 사랑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장사를 해도 이웃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인정을 베푸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외모만 반지르르한 사람보다는 속이 꽉 찬 사람들이다. 빠듯한 살림에도 남의 처지를 내 아픔으로 생각하고 어린이 재단이나 불우이웃돕기에 동참하여 적은 성의라도 모아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평생을 절약하며 꼬박꼬박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고 사회에 맡기는 사람들은 마음씨가 고운 세상의 천사들이다. 이웃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진정한 사람의 향기가 풍긴다. 나는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혼자서 노는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내 편협한 생각이겠지만, 은근한 사람이 좋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이웃에 인정 베푸는 양심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가면서 멀리 있어도 찾고 싶은 친구가 있고 가까이 있어도 만나기 싫은 사람도 있다. 자기와 성격이 잘 맞거나, 하는 일이 서로 비슷해서 잊히지 않는 이도 있다. 옆에만 있어도 너그러움이 느껴지고 마음이 포근한 사람과 가까이하며 산다면 정말 행복한 삶이겠다. 큰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사람 냄새가 그리워지는 시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려진 내 자화상은 어떤 냄새일까? 내 안에 있는 허접스러운 쓰레기를 찾아 버려야 할 것 같다.△2010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 사무국장과 진안문협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영호남수필 부회장과 전북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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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9 23:02

채송화가 피어 있는 시간

재작년이었던가. 옥상에서 키우던 제라늄이 시들자 그 화분에 채송화 꽃씨를 뿌려놓았다는 친정어머니 덕분에 나는 채송화를 가꾸게 되었다. 옥상 뙤약볕이 무서워 한 이틀 물을 안 주기도 했지만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생명력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고, 백일 된 애기입술 같은 꽃들 앞에서 나는 왠지 더 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반복되는 일상 틈에서 도드라지는 하찮은 돌발상황 때문에 아쉬움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울 일은 더더군다나 아닌 기분을 잠시 달래고는 했던 것이다. 바쁘다, 쉬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나를 찾아 떠나고 싶다, 빨리빨리란 단어가 싫다, 게을러터지고 싶다, 귀찮다는, 내 나이 오십 이후를 지배하는 문구들도 이 꽃들 앞에서 쓰다듬었다.그 중엔 누군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던, 내 속마음을 통쾌하게 터뜨려주었던 어느 심리학자의 글을 읽으며 울음을 쏟아냈던 한밤중도 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1997년 IMF가 났던 여름, 지붕만 슬레이트로 바뀐 홀어머니의 마당에 흐드러졌던 원색의 색감을. 우리 핏줄들의 탯줄이 묻혔을 울타리 아래, 퇴색한 장독대들 사이사이, 발길에 밟힐 수밖에 없도록 무작정 피어 있던 채송화를 잊을 수 없다. 갓 낳은 둘째 아이를 안고 마지막으로 친정집 마당을 밟았던 그 해, 큰 오빠는 슬레이트집과 몇 뙈기 안 남은 홀어머니의 전답을 몽땅 날려버렸고, 망했다.그런 인연 때문인지 나는 채송화가 피어 있는 시간에 끌리곤 했다. 아침을 준비하다 옥상을 바라보면 꼭 오무린 입술에 구슬구슬 이슬을 매달고 햇살에 반짝이는 꽃.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옥상문을 열어놓고 맞바람에 온몸을 맡기곤 했는데, 그 시각 노랗고 붉은 채송화는 한여름 뙤약볕을 맞서고 있었다. 때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면 채송화는 입술을 꼭 오무리고 마른 줄기만 매달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와 눈 맞출 수 있는 시간은 즐거웠다.그런데 갈수록 채송화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짧아진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오후 6시 넘어 돌아오는 게 나만은 아닐 터인데, 딱히 노동조건이 더 나빠진 것도,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 꽃들을 자주 쳐다 볼 틈이 없는지 얼른 설명이 안 된다. 어쩌다 해질녘에 물을 주며 그새 돋은 풀이나 뽑는 게 요즘의 나다. 사는 게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배배 꼬인 채송화 잎과 줄기에 자꾸 눈길이 간다. 나는 누구인가. 아내, 엄마, 며느리 이런 건조한 호칭에서 자유롭지 못한, 손에 쥔 것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이름을 남길 만한 일도 하지 못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매달고 빼빼 말라가는 채송화의 잎과 줄기 앞에서 나는 다시 작아졌다.마당이 있는 집을 갖고 싶다. 이 말을 꺼내자마자 남편은 에구, 에구 이 앓는 소리를 할 테지만 더 늦기 전에 삶의 돌파구에 필요한 껀수를 준비해야겠다. 사람이 사는 데 돈이 들면 얼마나 들까. 애들은 나가서 살게 될 터이니 두 늙은이가 아웅다웅할 부엌 딸린 방 한 칸과 책을 읽을 만한 궁극의 공간 둬 평이면 되지 않을까.전원주택이란 호사스런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산자락 밑으로 기어기어간 길들과 거름냄새 묻은 논밭과 이름 모를 풀꽃을 닮은 사람들과 너나들이로 살고 싶은 것이다. 나만이라도 돈의 노예, 시간의 노예, 문명으로 가장한 기계의 노예로 살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집 마당에 발 딛을 데만 빼놓고 채송화를 심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낮게 살아갈 것이다. 한때 절망이었고 희망이었던 채송화가 저녁햇살에 빛난다.△이현옥 씨는 완주 출신으로 〈우석대신문〉과 〈문화저널〉 등에 책과 관련된 다수의 산문을 발표했다. 현재 우석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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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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