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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다르지만

고향은 그리움이다. 누구든 태어난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을 잊지 못하여 일생동안 향수에 젖은 채 고향을 찾아가곤 한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잊을 수 없는 마음의 보금자리다. 들길을 헤치고 가다보면 건너다보이는 고향집. 푸른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던 옛 고향집은 언제 가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놈이 갑자기 제 고향이 어디냐고 묻기에 무심코 00산부인과라고 말했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아들 녀석은 나의 농담을 곧이 곧 대로 듣고 학교에 가서 산부인과가 고향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녀석이 학교에서 알아오라고 했다면 자세히 알려주었을 텐데 지나간 이야기로만 듣고 대답해 준 것이다.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미안한 마음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라고 설명을 해주다보니 또 하나 문제가 발생했다. 나의 직장 특성상 이사가 잦아 나, 아내, 아들, 딸 넷 다 고향이 다른 꼴이 된 셈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아버지 고향은 제 1고향, 아들 딸 고향은 제2의 고향이라고 둘러댔다. 흔히들 타향도 정들면 제2의 고향이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일부 사람들 중에는 고향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편향된 애향심으로 잘못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개인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 이용하려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향이 같다고, 출신 학교 동문이라고, 성씨가 같은 집안이라고 암암리에 챙기고, 뭉치고, 어울리고, 서로 봐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토박이들은 고향이 다르다고 텃세까지 부려 뭇 사람들의 타향살이를 힘들게 한다. 결국 지역감정으로 발전되어 국토 개발의 불균형, 인재 등용의 차별이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편향된 고향 사랑이 사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이 같이 고향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갖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뀌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이렇게 노랫말을 지었다.고향은 다르지만 한겨레이고, 얼굴은 다르지만 이웃이라네./조상이 물려 준 흰 옷의 정신, 받들어 오늘의 거울로 삼자./ 사는 집 다르지만 한마음이고, 차린 옷 다르지만 한뜻이라네./ 지키는 질서에 명랑한 하루, 펼치어 내일의 꿈을 이루자./ 일터는 다르지만 보람찬 하루, 하는 일 다르지만 슬기로워라./ 다듬고 익히어 내 할 일 다 해, 우리의 새날을 가꾸어 가자./한국방송협회에서 주최한밝고 바른 우리사회 건설을 위한 온 국민이 함께 부를 노래 가사 현상 공모에 입선한 작품이다.최창권 작곡, 이용 노래로 고향은 다르지만이라는 제목으로 노래가 만들어졌다. 한동안 마을과 학교, 회사, 건설현장 등에서 확성기로 틀어주었는데 노래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건전가요는 내용이 아무리 건전해도 생명이 짧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이용의 노래 곡목 속에 나와 있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요즈음은 동요 속에 그리는 아름답고 정겨운 고향은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꽃피고 새소리 들리는 시골마을 고향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고속도로 로 변했고 아파트단지와 공장 건물로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고향마을은 이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마음의 고향은 그대로 남아 있어 힘들고 치쳤을 때 언제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식처는 마련해 준다. 도시생활 속에서 부대끼며 이 사람 저사람 눈치 보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고달픈 현실에서 고향은 언제나 엄마 품속같이 아늑함을 주고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해마다 귀성객의 행렬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한마당 잔치를 보는 것 같다. 우선 마음부터 들뜨는 게 고향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모처럼 복권 한 장 사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일주일처럼 마음 넉넉했다. 고향은 다르지만, 고향의 본질을 찾아 다 함께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최성철 수필가는 〈대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군산구불문학 회원이며 대한문학 작가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초등 교장직을 정년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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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20 23:02

우정 - 이명철

친구가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란 전화를 받았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였다. 그런데 수술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수술을 했을까?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내내 가슴이 조여 왔다. 예상치 못한 병에 대한 두려움이 무겁게 밀려온다.그의 부인이 간병하고 있었다. 푸석한 모습들, 친구의 얼굴은 야위고 초췌했다. 핏기는 없으나 눈빛은 형형(熒熒)하였다. 급할 것도 없어 천천히 물어보았다. 무슨 수술을 했어?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쓸개를 떼어냈다고 대답하였다.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 된데? 판에 박은 소리지만, 그 말 외에는 적당한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쓸개 하나 떼어내도 사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데.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친구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나 이제 쓸개 없는 놈 되었어야.그래, 나이 먹으면 쓸개가 없는 듯해야 돼. 그리고 너는 본래 쓸개가 없는 놈이었잖아! 우리는 병원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어댔다. 농(弄)은 그렇게 해도 친구나 나나 씁쓸한 웃음을 웃고 있는데, 친구의 부인이 수술결과가 좋다는 등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여 주었다. 끊어지다 이어지다 이야기는 반복되면서 시간은 흘렀다.친구는 가끔 창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름살이며 희어져가는 머리카락이 묘하게 햇살에 처량한 빛을 몰고 왔다. 병원 뜨락에는 가을빛이 완연했다. 단풍들고 낙엽지고, 앙상한 가지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가랑잎이 친구의 얼굴과 겹친다.이 친구는 나와 유독 가까이 지냈다. 군에 입대하기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놀다가 군용열차가 논산훈련소로 떠날 때까지 역전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고, 9개월 9일 간의 짧은 군대생활이었지만 제대 후 제일 먼저 찾은 것도 그였다. 직장도 함께했다. 같이 가서 시험을 보자고 했다. 친구는 네가 먼저 들어가서 근무해보고 좋으면 말해.라고 하여, 교육 받는 동안 시험이 있기에 원서를 사서 친구의 집에 보내주었다. 그는 바로 합격하였고, 30여 년이 넘도록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였다.그는 항상 나보다 생각이 깊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먼저 소식을 전하는 건 대부분 그였다. 혹여 내가 먼저 소식이라도 전할라치면, 야, 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구나.하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는 항상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농을 했다. 나보다 생일이 좀 빠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간에 무슨 일만 있으면 서로는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한다. 만나면 별로 할 말이 없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궁금하고 만나고 싶어진다. 술은 고작 몇 잔이면서도 항상 나보다 더 마신다고 장담한다. 서로 언짢은 말을 해도 그러든 말든 한다. 그는 늘 나에게 작고 아담한 푸른 소나무 같은 존재였다. 특별하지는 않으나 60년을 이어온 끈끈한 우정이다.?그와 나는 대나무막대기를 타고 놀던 죽마고우(竹馬故友)는 아니다. 사는 곳이 멀리 떨어진 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중과 포숙아 같이 혜안(慧眼)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희생하여 후세에까지 우정의 표상이 된 관포지교(管鮑之交)도 아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참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벗은 나이나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험한 인생길에 조그마한 위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벗이 될 것이다. 좋은 벗은 조건이나 상대방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다. 먼저 자신이 좋은 벗이 되어야 한다. 그만큼 순수한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와 나는 가슴속 꽃잎들을 꽃으로, 열매로 결실을 맺어가는 친구다.벗은 현실이요, 우정은 이상이다라고 했다. 벗은 눈앞의 꽃이라면 우정은 무화과처럼 안으로 피우는 꽃이다. 생각해보면 그와 내가 같이한 지난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앞으로도 살아생전 현실의 벗으로 영원한 우정으로 계속 이어갈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가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이명철 수필가는 1999년 〈지구 문학〉으로 등단, (사)한국문인협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이며 고창문인협회 제 8대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학교-지역사회연계 문화예술프로그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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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13 23:02

돌아온 허수아비 가족

허수아비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난다. 어린 시절에는 엿장수들이 빈병이나 녹슨 쇠붙이, 헌 고무신은 물론 삼베 걸레도 엿과 바꿔 주었다. 그래서 들판에 삼베옷을 입고 서있는 허수아비들이 가끔 수난을 당했다.개구쟁이들이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 엿과 바꿔 먹어 허수아비들은 알몸으로 모자만 눌러쓰고 밭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허수아비들은 날씨가 덥거나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쳐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논밭을 떠나지 않았다. 허수아비들은 농민들의 말을 잘 따르고 고락을 함께한 동반자였다. 농민들이 너도 나도 일자리를 찾아 도회지로 떠나자 허수아비들도 덩달아 농촌을 떠났다.내 생(生)의 들판에도 크고 작은 참새 떼가 많았다. 이럴 때 내 잠자는 영혼을 다시 한 번 일깨운 허수아비. 훠이 훠이, 참새를 쫓는 묵언의 함성이 환청으로 들린다. 그 음성을 기둥삼아 내 정신의 들판이 황금빛 생명의 물결로 출렁일 수 있기를 빌어본다. 나는 가을바람에 소매 자락 펄럭이는 허수아비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쌀독에 거미줄 치던 가난한 세월에도 해마다 기대가 부푸는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이면 마을에서는 날 새들로부터 곡식을 지킨다. 한줌도 안 되는 곡식을 놓고 사람과 짐승이 피비린 쟁탈전을 벌이는데 흉년드는 해일수록 목숨 걸고 달려드는 참새 떼들을 말려내는 재간이 없었다.농촌을 떠난 허수아비들은 차림새가 달라졌다. 모자도 허름한 밀짚모자가 아니고 입은 옷도 떨어진 삼베옷이 아니다. 모자나 옷 모두 메이커도 다르고 색상이나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패션이 다양해졌다. 개중에는 유명메이커를 입기도 한다. 또 도회지의 축제장이나 공원, 도로 주변의 화단에 여럿이 서있다. 그 모양도 양팔을 벌리고 서있는 게 아니고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어 보기엔 화려하다. 하지만 늦은 밤 공원의 가로등불 밑에 서있는 허수아비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향을 떠난 실향민처럼 보여 측은하다. 젊은이들과 함께 허수아비도 떠나버린 농촌은 힘없고 경제력도 넉넉지 못한 노인들만 남아 적막하고 쓸쓸했다.농촌을 떠나 도회지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안락한 노후 생활을 위해 하나 둘 귀농을 하더니 요즘은 젊은 청년들 중에서도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도회지 에서 귀농하는 사람들을 따라 허수아비도 귀농을 하고 있다. 귀농한 허수아비는 들판의 논에서 참새들과 벗하던 옛날과 달리 주로 산골짜기 과수원이나 밭에서 멧돼지나 고라니 너구리같은 크고 사나운 짐승들을 지킨다. 고향의 산골짜기에서 만난 허수아비는 혼자가 아니다. 허수어미와 함께 있다. 허수어미는 옷도 멋있게 입었다. 빨간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등산모자도 썼다. 지팡이도 들고 서있어 멋있고 힘차게 보인다. 허수아비 혼자일 때보다 마음이 든든하다. 사나운 짐승들도 부부가 함께 지키고 있으니 함부로 농작물을 해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다만 허수아들과 허수딸이 없는 게 조금 아쉽다. 허수아비에게는 허수어미가 옆에 있으니 머지않아 허수와 허순이도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농촌에 새바람이 이는 것 같다. 나이가 많은 귀농인도 반갑지만 젊은이들의 귀농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 소식을 듣는 기분이다. 농촌에 노인들만 남아있어 대를 이을 사람들이 없었는데 젊은이들이 귀농하여 농촌이 다시 활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농촌에서 젊은 아낙네들의 웃음소리와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 젊은 귀농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면 좋겠다. 해마다 가을, 농촌의 황금벌판에서 농민들과 돌아온 허수아비 가족이 함께 어울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깃발을 내걸고 풍년가를 부르며 한 판 축제를 벌이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최기춘 수필가는 대한문학작가회 부회장과 전북문협이사, 전북수필부회장. 행촌수필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수필집 <머슴들에게 영혼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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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6 23:02

"다시"의 교훈

이웃집 할망구가 날 보더니/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쓰면서/나는 이름도 쓸 줄 알고/ 버스도 안 물어 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 제.83세의 늦깎이 나이로 한글을 깨우친 어느 할머니의 내 기분이라는 시다. 이 시 속에는 웃음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내내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인생을 다시 산다는 기분에 얼마나 좋을까?한동안 뜸했던 아내가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 할까마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대단하다. 인생에서 다시라는 말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의 아내를 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다시라는 말이 새삼 고맙다.세월을 살다보면 어떤 인생이라도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것은 자기 몫이다. 어린이들이야 부모가 일으켜 세우지만 성인이 된 우리를 누가 다시 일으켜 주겠는가? 그 다시 일어남이 인생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는 주변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 사람들을 흔하게 보았기 때문이다.나 다시 일어서리라/더 이상 여기서 슬퍼할 수만 없어/ 어제까지 아픈 가슴 넓은 품에 맡겨버리고/두손을 굳게 잡고/나 다시 일어서리라/오 저 높은 곳 바라보며 나 다시 일어서리라.이 복음 성가의 다시는 나와 아내의 반면교사가 되었다.좋은 선생님은 과연 누구일까? 야단치며 채찍 하는 선생님인가. 아니면 괜찮아, 다시 해보자고 용기를 주는 사람인가. 나는 당연히 후자 쪽이라 생각한다. 가수는 한 곡의 노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백 번을 다시 부르고 또 부른다.소녀시절 가수를 꿈꾸었던 나의 아내는 갑상선 암을 수술하고 목소리가 변하여 노래는커녕 대화도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고통과 슬픔이 따랐다. 가장 큰 것은 좌절과 함께 찾아온 존재적 상실감이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노래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행복이었을 텐데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서러움이 질곡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 쉰 목소리에 갈라진 음성은 좌절하는 실망의 도를 넘었다. 관광을 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불안으로 몸을 떨기도 했다.언젠가 TV에서 국민 가수라 불리는 어느 대중 가수가 지금은 회복이 되었지만 한 때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노래를 부르지 못해 얼마나 갑갑했던지 자살까지 하고 싶었다는 심경을 털어 놓았다. 나는 순간 곁에 있던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 가수가 아내의 고통을 대변한 셈이다.나는 순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아내의 노래를 찾아주기로 결심하고 아내의 노래 선생을 자청했다. 여보! 좋아요. 다시 한 번 불러 봐요 하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때로는 아내가 신경질을 내기도 했으나 무시하고 나는 수없이 다시를 외쳤다.드디어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 아내의 노래 속에서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실감났다. 아내는 작년 군산의 작은 콘서트홀에서 상을 받더니 이제는 더 큰 무대로 나서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아내의 모습이 더욱 빛났다. 다시 라는 말이 지금은 내 아내 인생의 행복을 채워주고 있다. 만약 다시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아니 다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아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인생이 즐겁고 다시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희망은 내일의 꿈이기도 하다. 이 같은 기쁨이 아내의 육십 인생을 새롭게 달구고, 다시 일어섬에 대한 감사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다시라는 말을 되새겨 보며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한성덕 수필가는 대한문학회 이사이자 행촌수필 회원으로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반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단 하루만이라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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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30 23:02

서른 살 고무나무의 교훈

잎이 넓어 공기 정화 작용이 뛰어나고 광합성도 매우 활발하여 카펫이나 벽지 등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를 흡수하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고무나무가 우리 집에 자리한 지도 어느새 30년이 되었다.어느 지인이 새집에 입주한 기념으로 고무나무 화분 하나를 가져왔다. 그동안 네 번이나 이사를 하는 동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가는 곳 마다 잘 적응하며 시들지 않고 어른 키 만큼 쑥쑥 자라준 준 것이 대견하다.고무나무는 이사할 때마다 항상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자리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잎이 헤싱헤싱하여 수형도 엉성 하자 짝꿍도 은근히 구박을 하며 내다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봄날 눈 딱 감고 밑 둥에서 약 30cm만 남기고 과감하게 싹둑 잘라서 네 개의 화분으로 분양을 하였다. 그리고 이 고무나무가 과연 어떻게 될까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자른 줄기에서 하얀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그러더니 두어 달이 지나자 한 가지에 겨우 서너 개의 잎만 붙어있던 초라한 나무 등걸의 여기저기서 20여개 나 되는 잎이 뾰족뾰족 돋아나기 시작 했다. 이후 3년이 지난 오늘날엔 서른 개도 넘는 잎이 무성해져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생명 보전을 위한 자기만의 사투가 죽음을 무릅쓰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 잎들이 마치 새로 얻은 독수리의 부리와도 비슷했다. 독수리의 수명은 80년 정도지만 그 부리는 40년쯤 살면 낡아져서 점점 못쓰게 된다. 부리를 못 쓰게 된 독수리는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40년이 된 독수리는 삶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다시 생명을 이어가느냐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된다. 이 때 의지가 약한 독수리는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삶의 의지가 강한 독수리는 낡고 못쓰게 된 부리를 재생시키기 위해 하늘 높이 오른 다음 온 몸을 바위 위로 내리꽂아 낡은 부리를 뽑아내고 새부리를 얻어 다시 40년을 맹금류의 수장으로 살아간다고 한다.노인의 생각하나 바꾸는 것이 산을 옮기기보다 힘들다 했던가? 만약 내 삶의 방식이 낡고 효능이 떨어져 능력을 잃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삶에 도전 할까? 아니면 주어진 운명만 탓하며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고 결국 굶어죽는 독수리처럼 새로운 삶의 기회를 놓치게 될까?나는 고무나무의 회생을 보며 고무나무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는 아름다운 비결을 배웠다. 고무나무는 공격을 받아 몸에 상처가 나면 반항하지 않고 눈물로 대응을 한다. 고무나무는 상처를 통해서 눈물을 흘리지만 이 눈물은 마냥 슬픔에 젖은 눈물로 나무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한 고무를 만들어서 상처부위를 덮고 그 수액으로 고무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신발이 되어주고 기쁨이 되어준다. 상처를 받았지만 흘리는 눈물로 오히려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고무나무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흘리는 눈물로 더욱 강하게 대응하여야 한다.나이 먹을수록 제자리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제 고집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 부리를 가진 독수리처럼 거듭나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실만이 영원한 게 아닐까? 아집으로 사면초가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고무나무에서 교훈을 배워야한다. 고무나무는 햇볕이 없어서 힘들수록 그냥 말라 죽는 게 아니라 더욱 열심히 가지를 뻗고 잎을 만들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힘이 들수록 좀 더 자신을 계발하고, 분투하자.△ 수필가 박영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전북문학관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늘푸른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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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23 23:02

수수동 희필 - 물에 들다

냇물에 갈 때 마다 돌을 던진다. 기껏해야 종아리도 못 미치는 깊이지만 돌이 쌓이면 물의 흐름은 조금씩 느려진다. 얼기설기 쌓인 틈으로 새어나가면서도 그 안 물은 금방 풍성해진다. 자리 잡힌 돌 부피 하나에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고 더디어졌다가 소리를 내기도 하는 게 개울에 흐르는 물이다.수년전 산 맞은 편 냇가를 석축으로 쌓는 대대적인 제방공사가 있었다. 냇물 위로 축축 늘어진 산 쪽의 나뭇가지들이 무자비한 중장비로 꺾이고 베어져 한마디로 휑한 풍경이 돼버렸다. 내 바닥을 긁어내고 물길을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 수해방지 때문이라니 할 말도 없었지만 그때 사라진 자연미가 아쉽기 그지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되자 사람의 손으로 뒤적거려놓은 그 자리가 다시 새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잠시 직선으로 흐르던 물길이 방향을 돌리고 반대편에 자갈을 채우며 새로운 곡선을 만들어 냈다. 나무들도 다시 물 쪽으로 가지를 뻗어 내는가 싶더니 꺾이고 베인 상처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머루, 때죽나무, 단풍나무, 노각나무, 돌배나무 등, 나무의 푸른빛들이 다시 당당해진 것이다.덕분에 해가 뜨는 아침부터 정오까지는 나무그림자가 냇물에 가득하다. 폭이라고 해봤자 징검다리 예닐곱 개 건너는 정도지만 한낮 가득한 햇볕은 오후가 되면 서쪽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울타리삼아 집 가장자리에 사다 심은 작은 나무들이 어느새 커 생긴 그늘이다. 시간의 흐름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준 것이다.성벽처럼 비탈이 진 산에 촘촘히 선 나무들은 저마다 해바라기를 하느라 키들이 크다. 그 큰 나무들 틈에 하얀 꽃을 피우는 노각나무도 섰지만 가까이 갈 수 없이 칙칙한 숲이기 때문이다. 노각나무 하얀 꽃들은 여름이 짙어지기 전 주변 숲속으로 대부분 져 내리지만 몇 꽃송이들은 물 위로도 떨어진다.잎이 하얗고 꽃술이 노란 노각꽃 낙화유영은 차라리 귀족적이다. 마지막이라는 자태의 비장미가 없다. 봄에 호르르 지거나 가을에 쓸쓸히 지는 이미지가 아니다. 떨어진 꽃송이지만 나무와 인연을 끝내기 전 그대로다. 그냥 떠 있거나 맴을 돌거나 물살에 넘쳐 흘러가거나, 그 어떤 것 중의 하나라도 경박하지 않고 도도하다. 작년부터 냇물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 이유도 실은 물 위에 그 꽃송이들을 가둬두기 위함이었다.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는 무더위였다. 남한유일의 고원지대라 시원함을 자랑했던 산동네, 수수동에 찾아온 염장군의 기세가 여느 해와는 전혀 달랐다. 한여름에도 냉방기가 필요 없었던 집이었지만 그 서기를 피해 집 아래 냇가를 찾는 것이 이젠 일과가 돼버렸다.명색이 전원주택이라 일하다 버려진 흙 묻은 면장갑이나 걸레들은 모아 빨래를 하기도 한다. 둑 공사 때 꺾였던 때죽나무를 다듬어 만든 방망이로 빨래를 두들기면 소리의 청량함이 계곡에 가득해진다. 내가 만들어내어 내가 즐겨듣는 소리다. 그렇게 방망이질 빨래를 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돌에 앉아 탁족을 하고 있지만 결코 어긋난 연출은 아니다. 맑게 흐르는 물이 아까워 물에 드는, 물놀이의 풍요를 내가 즐기는 것뿐이다.오늘도 물가를 찾았다. 조금 더 더워지는 시각이 되면 아예 몸을 물에 담그고 대사리를 잡기로 작정을 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놓여있지 않다.산딸기가 드디어 익었네.아내가 물 가장자리 숲 쪽을 손으로 가리킨다. 전에 영 볼품없이 물 쪽으로 늘어져 있던 산딸기 가지에 어느새 까맣게 열매가 익었다. 질 새라 나도 이리 뻗었다는 듯 싸리나무가지도 물 위로 늘어졌다. 얼굴에 검은 점 가득한 주황색 산나리도 그 틈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분명한 야생종인데 어느 화원에서 키운 것보다 더 훌륭한 자태다. 산딸기가 손안에 모아지는 동안 팔뚝에 스친 싸리나무 꽃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잘디 잔 보랏빛 꽃들이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물 위에서 맴을 돈다. 맴을 돌다 천천히 흘러간다.△수필가 선산곡 씨는 1994년 '문예연구'로 등단. 수필집 'LA쑥대머리' '끽주만필' '속아도 꿈 속여도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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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16 23:02

구름이 천지를 가리우니

백두산 서파 산문에 도착하니 작달비가 쏟아진다. 맑은 천지가 보고 싶어 찾아왔는데. 굵은 빗줄기가 원망스러워 하늘만 올려다본다. 내일 북파로 올라가서라도 꼭 한 번은 천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았다.활짝 핀 만병초가 산을 덮었다. 드문드문 쌓인 눈 덩이는 비가 내려도 녹지 않고 남아 있다. 우주선을 타고 별나라에 온 우주인 같다. 낯설고 물설다.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며 야생화를 탐사했다. 그곳의 꽃향기를 흠뻑 가슴에 담았다. 천지를 보려면 천사백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가이드는 이런 날씨에 천지를 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날씨가 변덕을 부리니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고 한다.무엇을 선택해야 할 때, 항상 망설임이 뒤따른다. 요즈음 무릎이 편치 않아 걱정 되었지만, 천지를 보러 왔으니 못 보고 내려온다 해도 올라가야 한다. 운이 좋으면 천지를 보고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한참을 지나니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우비를 입고 계단을 올라가다 일행 중 비가 내려도 개의치 않고 올라갔던 부부를 만났다. 궁금했다. 천지를 봤느냐.고 물어봤다. 구름이 잠깐 걷혀 맑은 천지를 보고 오는 중이란다. 우리도 올라만 간다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조급해진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다. 숨이 차오르며 땀이 흘러 얼굴에 강줄기를 만든다. 하지만 정상에 오를 기대감과 천지를 본다는 희망이 버티게 해주었다. 무릎이 허청거릴 때쯤 토라진 천지가 눈에 들어왔다. 구름 속에 잠겨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얼굴을 베일에 감춰두고 보여주려 하지 않는 천지를 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버선발로 뛰어오지 않아 섭섭해서 토라진 것인지, 삼대가 적선을 하지 않아서 그러는지, 아니면 만나기 싫은 사람이 와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날씨라고 들었으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다가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천지에서 마시는 소주의 맛을 즐기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한 번 구름 속에 감추어 둔 얼굴을 쉬이 드러내놓지 않는 천지, 전라全裸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뒤집어쓴 면사포 속에서 곁눈질만 하며 애를 태운다.백두산 천지에 대한 기대와 상상이 많았다. 산골짜기에 야생화가 곱게 피어있는 그림엽서 같은 천지, 뭉게구름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푹 잠겨 더욱 쪽빛이 된 천지, 청노루, 산토끼, 다람쥐, 꿩이 새끼를 기르며 사는 무능도원 같은 곳,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시원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천지는 구름이 가려 보지도 못하고, 두 손을 담구지 도 못 한 채 드센 비바람을 만나 아쉽다. 걸음이 무겁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백두산의 절경을 만났다. 구름의 조화가 경이롭다. 천지를 앞에 두고도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하늘이 밀당을 한다. 먼 산과 골짜기에 핀 야생화를 품었다가 풀어놓으며 수 만장의 수묵화를 그린다. 구름이 있어 백두산의 경치가 더욱 신비로웠다.다음 날 북파에서도 어제보다 더욱 심한 구름의 훼방으로 천지를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진작품으로 백두산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찰나를 보았다. 야생화가 활짝 핀 백두산, 별똥별이 쏟아지는 순간, 하얀 뭉게구름 잠긴 천지, 해 뜨는 아침이 액자 속에서 다양한 천지를 보여주었다. 순간들을 포착하여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동안의 기다림과 고독, 지난했을 작가들의 발걸음이 작품 속에 스며있다. 백 번을 찾아오면 두 번 볼 수 있다는 백두산의 모습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보여 달라 조르던 내 욕심이 민망했다.△박귀덕은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삶의 빛, 사랑의 숨결', '잃어버린 풍경이 말을 걸어오다'등을 출간했다. 작촌문학상을 수상했고 행촌 수필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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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09 23:02

해도 되나요

눈이 내릴 때 삶의 무상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가짜 시인 행세를 한 적이 있다. 한 쪽에 모아두었던 시집을 꺼내어 정독을 하고, 감정 떠오르는 대로 시 쓰기를 흉내 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시의 소재였고, 수필 쓰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기만 시인이 던진 말이 가슴을 찔렀다. 함부로 시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다가 안 되면 결국 가짜 시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비 시인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K시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의 평가는 더 냉혹했다. 시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시 50편은 외우고난 다음에 써야한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며 30여 편 중에서 대여섯 편만 남기고 나머지는 빨간 볼펜으로 엑스선을 그었다. 창피했다. 그 뒤로 짝퉁 시인 행세를 그만 두고 글 가는 대로 사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엊그제 우연히 컴퓨터를 뒤지다가 수년 전에 사장시킨 그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해도 되나요라는 시가 울컥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 글을 쓰던 때의 혼령이 되살아나는 듯했다.그리워해도 되나요 꿈에서라도그대 가슴에 얼굴 묻고 / 따뜻한 체온 느껴도 되나요길을 걷다가도 / 문득 문득 떠오르는 당신사랑한다는 말 / 염치없지만 / 단 한번 단 한번만이라도 해도 되나요내 뜨거운 심장으로 / 그대를 온통 멍들게 해도 되나요내 그리운 이여 / 견디다 못해 지쳐 쓰러질 때당신 사랑했다는 말 진정 해도 되나요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것 같다. 꿈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문득 떠오를 만큼 만나고 싶었던 이. 사랑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가슴 벅찬 짝사랑은 아니었는지. 손에 잡힐 듯 말 듯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느껴지고,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다시 멀어지는 슬픈 사랑이야기인 듯싶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를 향해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했고, 그 열정은 뜨거웠던 것 같다. 그리워해도 되나요 느껴도 되나요 사랑해도 되나요 이루지 못할 사랑일지라도 진정 사랑했다는 말은 하고 싶었던 것 같다.누구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가슴 설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이 시의 제목은 시애詩愛이었다. 시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애절하던 때였다. 마치 시인이나 된 것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릴케가 되고 소월이 되고, 때로는 설렘과 번민과 가슴앓이로 밤잠을 설칠 때였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시어詩語 하나를 목마르게 갈망하던 때였다. 결국 포기해야 했다. 시는 수필보다 더 가시밭길이었다. 사랑이 핑크빛만은 아니듯 시창작의 길도 끝없는 고뇌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도 되나요〉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던 내 지난날의 초상인 듯하다. 누구에게 답답한 심정을 고백하고 의지하며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읊조렸던 것이리다.누군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망설일 때가 있다. 나 또한 인생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했고 결국 나 스스로 갈 길을 결정하면서 살아왔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과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갈림길에서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했든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잘못된 선택이었더라도 그것은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픔이 컸던 만큼 더 성장할 수가 있었다.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앞으로 펼쳐질 내 운명에 또 어떤 선택의 갈림길이 있을지. 이렇게 해도 되나요? 그저 신의 뜻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백봉기 수필가는 군산 출생이며 한국산문 수필공모에 당선됐으며 KBS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현재 전북예총 사무처장으로 있으며 수필집 '팔짱녀'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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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02 23:02

띠풀

평소 자주 다니던 산책로가 엉망이다. 도로 공사를 하기 위해 막아버려 다른 길로 돌아다녀야 한다. 늘 다니던 길이 그렇게 되어 버리니 아쉽다. 어느 땐 나도 모르게 그 길로 들어섰다가 되돌아 나오곤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니 자연히 그 길과 멀어졌다. 이제 새로운 코스가 당연한 길이 되어 버렸지만 옛길이 그리워 그 근처를 서성거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달라진 길 모습이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사람들의 발자국 따라 다져졌던 길은 어느새 풀들이 수북해서 선뜻 발 들여놓기가 망설여졌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어지니 순간에 이렇게 되어 버리는구나 싶다. 문득 맹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孟子謂高子曰(맹자위고자왈)/山經之蹊間(산경지혜간)/介然用之而成路(개연용지이성로)/爲間不用(위간불용)/則茅塞之矣(즉모색지의)/今茅塞子之心矣(금모색자지심의)’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산길이라도 사용하면 길이 되지만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다. 지금 그대의 마음을 띠풀이 꽉 막고 있구나.’하는 내용으로 사람의 본성도 마찬가지라서 수양하지 않으면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면서도 실현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누군들 그 사실을 모를까. 알면서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리라.오래된 일이다. 상당히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마음 내키면 아무 때나 드라이브 가고 여행을 다니면서 거리낌 없이 속내를 보이던 사이였다. 한 가지 다르다면 그쪽은 농담을 좋아하고 나는 그런 농담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쪽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고 내 쪽에서 하는 말은 전부 진심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계가 되었다.어느 날, 그쪽에서 오는 농담을 별생각 없이 받아넘겼다. 그런데 친구는 본인이 한 말은 농담으로 했다고 생각하면서 내 말을 진담으로 알아듣고는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나와 결별을 작심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변명조차 하기 싫어 그 길로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몇 년이 흐른 뒤 정반대의 일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무척 마음 상하는 일을 당했다. 정말이지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만한 일로 정을 끊어 버린다면 내 곁에 과연 친구가 몇이나 남게 될까, 세상 살면서 외톨이가 될까 두려웠다. 어떻게 하든 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내 마음의 상처가 가실 때까지는 자주 마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되도록 오래 대면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결과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시 전처럼 가까운 관계로 회복되었다.먼저 친구와는 그야말로 띠풀로 막힌 길이 되어 버렸고 나중의 친구와는 더는 그런 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기를 넘겼다. 먼저 친구와의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나중의 친구 관계는 내 쪽에서 띠풀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가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지나고 나서야 좀 더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인생 공부는 왜 꼭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인지. 하긴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내가 조금은 성숙해졌는지도 모른다.부딪치고 꺾이면서 생긴 상처들을 안고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치받고 일어날 때 어떤 희열을 느끼기도 했고, 극에서 극을 넘나드는 감정의 변화가 때론 삶의 무게를 높여 주기도 했다. 생각이 단순하지 못하다는 것은 맑은 성격이 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삶의 굴곡을 들여다본 경험이 세상을 깊게 보는 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어찌 보면 그 친구의 결별이 오히려 내 삶의 길을 올곧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 지침서가 된 듯싶다. 내 본성을 잃어버리거나 어긋나는 일 없이 잘 비껴갈 능력을 키워 준 것이리라.이렇듯, 한 번 겪은 띠풀의 경험이 있었기에 내 안에는 그런 띠풀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김재희는 '수필과 비평'을 통해 등단했으며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장승'으로 등단한 뒤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등을 출간했으며,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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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25 23:02

파도

하늘이 파랗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이 강하게 비친다. 날씨는 가을이라 덥지도 않고 선선하여 나들이하기에 좋다. 이런 날이면 마음이 울적하여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해변을 찾아 갔다. 들녘엔 벼들이 노랗게 익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풍성하게 잘 익은 과일이 빨갛게 물들어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구불구불한 해변을 따라 바다풍경을 바라보면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이며 기분이 상쾌하다. 바닷가 풍경은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다. 아득하게 보이는 수평선과 푸른 하늘, 맑은 공기는 처음 보는 듯이 우리를 반긴다. 한적한 마을의 풍경은 지난 날 어릴 적 고향마을을 생각나게 한다. 대나무가 있고 측백나무의 울타리도 주변의 나무들과 잘 어울려 있다.바닷가에 닿았다. 모래밭을 걸으며 파도가 밀리고 밀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한데 파도만 철썩이며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밀려왔다가기를 반복한다. 손을 들어 숨을 크게 들이쉬고 파도를 향해 큰소리를 쳐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런 대답 없이 부딪치기를 계속한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널따란 모래밭을 따라 산과 바위가 있는 곳으로 하염없이 걸어간다. 머나먼 수평선과 끊임없이 다가오는 파도를 벗 삼아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해변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철썩철썩 다가오는 물결을 하나둘 헤아리며 발자취를 남겼다.파도는 왔다가 밀려가고 밀려가면 다시 한 몸이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파도는 폭풍을 만나면 거세어진다. 집채 같은 커다란 바위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거세게 밀려든다. 그리고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다시 한 몸이 된다. 성난 파도가 힘차게 바위를 치거나 잔잔한 파도가 조금씩 어루만져도 모두 하나가 된다. 우린 서로 의견이 맞아 친하게 지내거나 뜻이 맞지 않아 대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서로 다투기도 하고 헤어져서 다시 만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파도는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잔잔하게 살살 다가와도 다시 하나가 된다.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듯이 서로 화합하고 융화하기를 반복한다. 나도 파도처럼 이렇게 하나 되는 지혜를 갖고 싶다.파도는 폭풍우에 흘러내리는 흙탕물이나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가리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 부딪쳤다가 부서지고 다시 모아 하나가 되기를 쉬지 않고 반복한다. 흙탕물은 싫고 맑은 물은 좋다고 투정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일 뿐이다. 모두를 다 보듬고 어르며 함께 생활한다. 모양이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나, 냄새가 좋고 나쁜 것도 가리지 않는다. 부모와 같이 포근한 마음으로 감싸며 떠안고 보살피는 것 같아 보인다. 나도 파도처럼 모든 걸 떠안고 포용하며 지내고 싶다.사람들은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기억하며 생각하고 싶어 한다. 싫거나 짜증나는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가슴 속에 남아서 두고두고 애를 태우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주변을 뱅뱅 돌면서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즐겁고 신나게 생활해도 인생이 짧은데 거슬리는 일로 근심하고 걱정하며 고달프게 지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파도는 남기고 싶은 발자취나 지우고 싶은 흔적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 지워버린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나도 파도처럼 잊고 싶은 기억들을 모두 한꺼번에 지워버리고 하얀 백지처럼 깨끗하게 되돌리고 싶다.오늘도 파도는 쉬지 않고 부딪치고 부서지며 다시 모아 하나 되고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모든 흔적들을 지워버린다. 언제나 새롭고 단정하게 새 손님을 기다린다. 나도 파도처럼 모두 지워버리고 새 손님을 기다리고 싶다.△최동민씨는 교직에 재직하다 퇴직했다.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암 이삼만 선양회 초대작가(문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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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8 23:02

레드슈즈

어느 여행 잡지에서 니스를 보지 않고 나이스(nice)를 말하지 말라는 글을 보았다. 글에서처럼 니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강렬한 태양, 검푸른 바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 니스는 일 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비는 세계적 휴양지다. 니스와 붙여 부르는 깐느는 한 도시 같은 다른 도시다. 니스 깐느, 니스 카니발과 깐느 영화제는 역사로나 규모로나 세계적이다. 영국 왕실가족이 주로 찾는 니스 깐느는 그래서인가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길은 낭만과 여유가 넘친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백발의 노부부는 먼 옛날 신혼여행의 단 꿈에 젖어 있는 듯했다. 부인의 신은 레드 슈스, 레드 슈즈를 신고 해변을 걷는 노부부에게서 완숙한 행복을 읽을 수 있었다.파리를 출발하여 스위스와 이탈리아 모나코를 거쳐 니스 깐느에 도착한 것은 1985년 2월 15일 쯤이었다. 손자 홍기가 막 돌을 지났을 때 딸 내외와 친구 김성균(교장)과 함께 즐긴 15일 간의 유럽 여행은 생애의 마지막이자 가장 의미 있는 행사였다. 김성균은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몹쓸 병에 걸려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여행에서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상은 니스 해변에서 보았던 노 숙녀의 레드 슈즈다. 왜였을까? 아마도 빨강의 색채적 발산력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노인과 빨강, 어찌 보면 아주 대칭적인 개념 같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상 깊게 어울리는 개념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색의 배치와 사용이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젊었던 시절 백화점 쇼윈도우에 걸려 있는 레드 슈즈를 보면서 강렬한 연정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대상은 없었다. 있다면 저 레드슈즈를 신은 어여쁜 발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여자는 손발이 얼굴보다 예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색의 호감도에서 나는 빨강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빨강과 레드슈즈와 연정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빨간색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움츠리고 있던 연정이 레드 슈즈를 통해 살아난 것으로 해석했다. 물론 레드 슈즈에 대한 망상은 허무로 이어졌다. 안델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한 영화 분홍신(The Red Shuse)은 그 주인공이 어느 장례식장에서 빨간 구두를 벗기며 죽는다는 황당한 스토리다. 이처럼 빨강이 꼭 좋은 징조의 색깔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긴 하다. 학창 시절 어느 모임에서 만난 여자 친구의 빨간 구두는 단번에 나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는 듯 진지하고 열렬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흔히 말하는 결별의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중희(전주 출신)씨가 작사한 남일해의 노래 빨간 구두 아가씨 솔 솔 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똑 똑 똑 구두 소리 어딜 가시나/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발 거름 하나 둘 혼자서 가네/솔 솔 솔 닥아 온 빨간 구두는 어느 날 소리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살아졌다. 비련이랄 수도 없는 해프닝쯤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나는 더 이상 빨강구두를 좋아할 수 없었다.손연재를 비롯한 많은 리듬체조 선수들은 화장을 짙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손연재 뿐만 아니라 배구스타 김연경도 많은 여자 선수가 예뻐 보이기보다는 자신감을 얻고 지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는 인터뷰내용을 본 일이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도 선수들의 화장은 예뻐 보이기 위한 것 외에 강해질 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거는 것이라며 김현경 선수의 말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 핵심적 화장품은 물론 빨간 립스틱이다. 가수 임주리가 불렀던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화장품 회사의 빨간 립스틱을 동나게 할만큼 선풍적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빨간 립스틱과 레드 슈즈, 여인들의 도전적 애정 표시의 대표적 브랜드이고 정렬적 고백의 상징처럼 되었다.오늘부터 한 달간 코리아 쎄일 페스타행사가 열려 백화점 쇼윈도우에도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 옛날 친구를 그리며 혹시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레드 슈즈를 보러 가보아야겠다.△안홍엽 수필가는 남원에서 태어나 익산 남성고와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전주 MBC 편성국장으로 재직 중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산문집 '사랑이 꽃비 되어'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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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1 23:02

속이 빈 밑동

창밖에 펼쳐진 하늘이 아스라하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아 물결 잃은 대해大海 같다. 앞 동棟 옥상 가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환풍기도 까딱하지 않는다. 그 뒤 뾰족 선 안테나가 쓸쓸하다. 이런 날엔 열 마리도 더 되는 까치 가족이 몰려와 서로 어르는지, 다투는지 한 바탕 옥상을 휘젓다가 약속이나 한듯 안테나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았으면 좋으련만.옥상 바로 밑창에서 흘러내린 녹물, 남루한 벽이 보기 싫어 얼른 오른쪽으로 눈길을 옮긴다. 정문에서 시작한 철제 울타리 아래, 토담처럼 세로로 늘어선 철쭉. 지난봄 이 우중충한 아파트에 빨강, 하양, 노랑으로 환한 빛을 뿜어주던 것들이다. 그 뒤에 듬성듬성 서 있는 살구나무, 배롱나무, 감나무가 눈길을 붙잡는다. 지난여름 보는 것만으로 침샘을 자극하던 노란 살구,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계속하던 주홍색 백일홍 꽃, 지닌 가을 가지가 휘게 열려 있던 아기주먹 만한 감들. 지금은 꽃도 열매도 다 떨구고 거무죽죽한 빈 가지로 허공에 머물러 있다. 지나간 날들은, 그 날들이 설령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되살아난다고 하던데, 내게 지나간 날들은 하나같이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우중충하다.아파트 정문은 문이 없어 좋다. 벗겨야 할 빗장도, 끌러야 할 자물통도 없어 좋다. 경비실에 사람이 있다지만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 누구 하나 통제하지 않아 좋다. 허리 굽은 노파가 유모차 같은 보행기를 밀고 나가고 이어 검은 잠바를 입은 중년 남자가 활갯짓을 하며 나간다.얼마 뒤 택시 한 대가 정문 앞에 선다. 택시 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눈 깜박이는 것도 잊고 택시를 바라본다. 누가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은 것도 아닌데 반가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다. 택시에선 젊은 부부가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듯한 아이를 데리고 내린다. 그들이 내리자 택시는 빈차 표시등을 밝히고 사라진다. 허전한 가슴을 내버려둔 채 눈은 계속 정문에 멎는다. 과일장수 트럭이 정문 안으로 들어온다. 들어와 1동과 2동 사이 주차장에 서더니 농장에서 직송한 꿀 사과가 한 보따리에 오천 원. 마트에서 만 원짜릴 싸게 싸게 파니 싸게 싸게 나와 가져가세요.를 반복한다.고개를 돌려 왼쪽을 본다. 야트막한 산의 기슭, 앙상한 잡목들 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늙은 오동나무에 눈을 맞춘다. 몇 해 전 몰아친 태풍에 꺾인 중동 북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복구요원들이 톱질을 하기에 꺾인 가지를 잘라내는가 했는데 잔가지만 잘라 놓아 그 모양이 옷 다 벗은 늙은이의 삭신 같다.몇 해 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앞 전나무 숲으로 가는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길가에 있는 거대한 나무통 안에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가 부둥켜안고 환희 웃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사방으로 벋은 어린이 몸통 굵기의 뿌리 위에 얹혀 있는 속이 빈 밑동이었다. 수령 육백 년이 넘은 전나무 고목이 지난여름 태풍에 부러진 것이라 했다. 속은 두 사람이 들어가 부둥켜안고 남을 만큼 넓은데 갓은 절구통 둘레만큼이나 얇았다. 밑동에서 우둠지까지 속을 단단히 채우며 나이테를 늘려왔을 긴 세월. 위의당당威儀堂堂했을 모습은 간데없다. 그 밑동 바닥에서 회색 바람이 일어 맴도는가 싶더니 이내 가슴 안으로 밀려듦을 느꼈다.중동이 꺾여 불안하게 늘어져 있는 저 오동나무도 밑동이 비어 있을 것이다. 늙어 속이 비는 것이 어디 나무뿐이겠는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묵으면 묵을수록 속이 비어, 거기서 이는 바람이 갈수록 거세질 테니까.△김형진 수필가는 〈계간수필〉에서 수필과 평론으로 등단했으며 '수필문우회' 회원이며 '토방' 동인이다. 수필집 〈종달새〉, 〈흐르는 길〉, 〈바딧소리〉와 수필평론집 〈이어받음과 열어나감〉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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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04 23:02

한옥마을의 꽃송이

전주 한옥마을에 화사한 꽃송이가 나부낀다. 많은 관광객이 길거리를 메운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꽃송이, 바로 한복 입은 여성이다. 지나면서 보면 어찌 아름다운지 몇 번이고 돌아보고 싶어진다. 우아한 자태가 마음을 이끈다. 거기에 꽃 댕기까지 매면 한결 아름다워진다.오늘 본 한복 입은 여성은 대전에서 구경하러 온 여학생이었다. 하나같이 하얀 피부에 별처럼 반짝이는 눈, 적당히 세워진 코, 붕어처럼 작은 입을 가진 여섯 미인이었다. 흰 저고리에 파란치마, 빨간 저고리에 남색당초문 치마, 옅은 배추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 박꽃색 저고리에 회색금박문치마 등 차려 입었다. 마지막 여성은 금박문 빨간 댕기를 매어 더욱 아름다웠다. 이들이 방실방실 웃으며 사진을 찍고 깔깔거리니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았다. 또 남녀 한 쌍도 한복으로 차려 입고 손을 잡고 걸으니,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눈에 띄는 것은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다. 양복만 입은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한복과 양복을 입은 사람이 섞여 있으니 한복의 우아한 모습이 돋보였다. 한복은 우선 색상이 튀어난다. 어떤 한복이든지 색이 밝고 화사하다. 그러니 잡초 밭에 꽃처럼 눈에 띈다. 거기에다 요즘 여성은 어찌 예쁜지 모르겠다. 키도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에 얼굴도 잘 가꾸어 미운 사람이 없다. 이런 자태에 예쁜 한복을 입었으니 돋보이지 않으랴.한복은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이다. 조상 대대로 입고 살아왔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면 한복을 입고 있다. 조선시대의 인물화에서도 한복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어려서도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었는데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양복을 입었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편리함 때문에 양복에 밀려났지만 소홀히 대해서는 아니 될 고유의상이다. 문화는 발전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뿌리까지 바뀌어서는 아니 된다. 근본은 살리고 부분적으로 편리하게 변화하는 것이 옳은 일이려니 싶다.나는 평상시에는 양복을 입지만 전통의식을 치룰 때는 한복을 입는다. 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덧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는다. 그래야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차려 입으니 손자도 따라서 한복을 입고 참석한다. 기특한 일이다. 아내도 한복을 입고 제사를 모신다.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 것이다.요즘도 결혼식장에 가보면 신랑신부가 폐백을 드릴 때에는 한복을 입는다. 양가의 어머니도 고운 한복을 차려 입는다. 부모의 팔순잔치나 금혼식, 회혼식에는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다. 평상시에는 편한 양복을 입더라도 의식을 갖추는 데는 한복이 주류를 이룬다. 좋은 경향이라 여겨진다.여성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경향이므로 예쁜 한복을 입어 더 예뻐졌으면 한다. 전주 한옥마을에 오는 여성들은 모두 한복을 입어 아름다움을 자랑했으면 좋겠다.△김길남 수필가는 〈논두렁 밭두렁〉 외 수필집 6권을 펴냈다. 행촌수필문학상, 은빛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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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28 23:02

편지 이야기

편지를 직접 써본지가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편지를 처음 써본 것은 강산이 여섯 번을 변하고도 남았을 60여 년 전의 일로 일찍이 한글을 익혀 고향마을에서는 신동(?)이라는 유명세를 타던 때라 이웃 어르신의 부탁으로 군대에 간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 드리고 불러주시는 대로 답장을 대신 써준 것을 시작으로 마을 형님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며 문학가의 기틀을 다진 셈이지만 내 이름으로 받아본 첫 편지는 군대에 간 6촌 형님이 보내주신 군사우편이었다.나이 차가 많은 관계로 대하기가 어려워서 평소에는 만나도 어색한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는데 얼굴을 안보고 글로만 쓰는 편지에는 구구절절 무슨 말을 해도 거리낄게 없었기에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는데 형님이 군대생활을 하는 3년 동안 받은 편지가 무려 1천 여 통에 달했고 나 또한 비슷한 분량의 답장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아련한 추억만 남아있을 뿐이다.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매일 안부를 주고받으며 교분을 쌓다보니 새록새록 정이 들어서 형님이 제대를 하신 뒤로는 끈끈한 혈육의 정을 나누며 친분관계를 유지해 오던 중에 형님께서 삶의 터전을 전주로 옮긴 후로는 문중 시제 때나 한 두 번씩 만나 회포를 풀곤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문중의 대소사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시던 형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10년 넘게 안부조차 모르는 채 살고 있으니 무심하고 각박한 세태가 원망스럽다.예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문안편지를 써 보내고 연말연시면 연하장을 보내는 일이 생활의 한 부분이었는데 집집마다 전화가 보급되면서 소통방식도 편지에서 전화통화로 바뀌었고 컴퓨터가 등장하고부터는 전자우편인 이메일이 소통수단으로 각광을 받더니 휴대폰과 스마트폰이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손 편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문자메시지나 카카오 톡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편지를 한자로는 便紙, 片紙로 표기하는데 종이에 안부나 소식을 간단하게 적어 보내는 서신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대쪽이나 나무판에 글씨를 써 보냈기에 옛날에는 편지를 서간(書簡)이나 간찰(簡札)이라고도 했고 편지는 대쪽의 의미를 갖는 간(簡)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것이 일반화된 것이 오늘날의 편지라고 한다. 편지는 글을 써서 보내는 문자활동의 하나로서 영어의 lettr가 문자라는 의미 외에 편지라는 뜻도 갖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노벨문학상 후보작가로 해마다 한국인들에게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안겨주고 있는 우리고장 전북출신인 고은 선생의 가을 편지라는 작품을 음미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지냈던 친구들에게 불현듯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온 누리에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사색하기 좋은 계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연이 담긴 편지 한 통이라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김희선 수필가는 정읍문화원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정읍지부장, 한국예총 정읍지회장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농촌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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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21 23:02

떨어진 낙엽을 보며

아파트 둘레 길을 걷기 위해서 새벽에 길을 나섰다. 샛별은 변함없이 반짝이는데 옆에 떠 머물러 있는 상현달은 빛을 잃어간다. 간밤에 세차게 불던 바람은 가로수의 무수한 나뭇잎을 성급히 떨어뜨려 놓았다. 낙엽이 발밑에 애잔하게 밟힌다. 인생이란 낮선 여인숙에서 하룻밤이다.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사랑하라 인도 빈민가의 척박한 땅에 고귀한 사랑의 씨앗을 뿌린 마더 데레사수녀의 말이 생각난다. 젊어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주변 삶들이 이제는 어렴풋이 그 윤곽들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확실한 것은 영원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기에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이 낙엽들처럼 다 소멸되고 만다는 것이다.기세등등하던 올 여름의 폭염도 9월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시절 앞에 꼬리를 사리고 말았다. 더위에 맞서 쉼 없이 돌던 선풍기도 이제 한쪽으로 비켜서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는 한여름의 찜통더위를 나만의 최고 피서 방법인 방콕을 즐겼다. 그저 집에 콕 박혀서 책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사십대에 찾아온다는 사추기의 터널도 이 여행을 즐기다 보니 지나칠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여정에 예고 없이 찾아온 나름대로의 어려운 시절도 무리 없이 이겨낼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마음의 위안과 값진 격려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삶의 지혜도 배울 수 있어 더욱 좋았고, 뒤늦게나마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나는 삼 년 전부터 성경을 하루 한 장씩 필사해 왔다. 그러다 보니 완필이 눈앞에 이르렀다. 그 동안 유례없는 무더위는 선풍기의 힘으로 밀어내고 나만의 책상 겸용으로 쓰는 식탁에 앉아 한 자 한 자 쓰고 나면 하루 지난 어제의 일기를 썼다. 고개만 돌려도 금세 있었던 일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이 일쑤였는데 생각을 곱씹어 어제 일을 나열하다 보니 기억력이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 일상들을 삼 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해 왔다. 그리고 올 여름에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기도 했다. 빌려온 책은 반납 기일이 있어서 독서에 게으름이나 나태함이 찾아들 틈이 없어 좋았다. 만년에 좋은 친구가 자리해 주어 지난여름 극심했던 더위를 지나칠 수 있었다.가끔 친정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살아보니 아무 것도 아니어! 희망을 부풀려 걸어놓고 애면글면 했던 것들도 다 부질없음을 떨어진 낙엽을 보며 터득하게 된다. 세월의 물살이 속절없이 너무 빠른 속도로 흘러가 버리니 자선과 선행으로 지은 나만의 값진 수의에 이따금 생각이 머무는 때가 있다. 이제 나도 이것을 준비해야지 싶기도 하다. 자선은 가진 자만이 베푸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위로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2003년에 복자로 시복 되었다가 올해 성인품에 오른 마더 데레사 수녀는나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대하듯 마음을 담아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라고 했는데, 그분의 말과 행적이 내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어려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해온 그분의 삶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된다. 가을의 문턱에서 새롭게 다짐해 본다. 일상에서 나를 스치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내어주는 하루하루이기를 바라고 싶다. 작은 것일지라도 받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비움으로 채워지는 충만감을 느끼며 살기를 염원해 본다. 하릴없이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스산해졌던 마음에 새로운 삶의 군불을 지펴본다.△서계숙씨는 〈순수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민들레의 기행〉을 펴냈다. 현재 전북문학관아카데미 수필반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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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4 23:02

임금님의 술

가을바람이 불면 술 한 잔이 생각이 난다. 젊은 시절 농사일에 땀 흘리고 잠깐 쉴 때 마셨던 새참이 그립기 때문이다. 막걸리로 시작한 농촌의 술 문화는 이제 약주, 맥주를 거쳐 고량주 까지 진전하여 시골 들녘까지 맥주나 고량주가 배달되는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마시는 술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작업성과를 독촉하는 상사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에 최고의 맛이었다.어느 날 문득 옛날 임금님의 술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궁금했는데 우연히 임금님이 마시는 우리나라 전통의 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술 이름이 ‘온’이라고 했다. 보통 술은 쌀밥에 누룩을 섞어 빚는다. 쌀이 누룩을 만나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처음 나온 술이 단양주이다. 이 단양주를 다시 한 번 빚으면 이양주가 된다. 이 과정을 12번 반복하고 정제하여 빚은 술이 온이다. 아마 온이라는 술을 만들다가 신하가 술기운에 취해 횟수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술맛이 궁금하였다. 나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 술을 마시면 걱정은 사라지고 보이는 여성은 모두 천국의 미인 같을 것 같았다. 중국 초나라 장왕 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 날 장왕은 장수들과 늦도록 연회를 베풀며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자 통 큰 장수가 임금이 특별히 사랑하는 여자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아마 술기운에 용기가 생겨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추행을 당한 그녀는 엉겁결에 장군의 갓끈을 잡아 당겨 끊어버렸다. 그리고 빨리 불을 켜라고 소리를 쳤다. 장왕도 눈치를 챘지만 험악한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기지를 발휘하여 명령한다. “경들은 불을 밝히기 전에 모두 자기 갓끈을 버리시오”라며 연회석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갓끈이 떨어져 나갔던 장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 장수는 그 뒤 초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앞장서서 공을 세워 빚을 갚았다는 임금과 술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5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그 때는 가정에서 술을 빚을 수가 없었다. 술은 주조장에서만 제조하여 파는 독과품목이었다. 주세가 국가 수입의 비중을 크게 차지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서민들은 몰래 술을 만들어 보약처럼 마셨다. 당시 시골마을에서는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이웃마을까지 금세 전달이 되어 제조하던 술을 헛간이나 돼지 울에 숨겼다. 그러나 단속하는 사람들은 술에서 풍기는 발효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찾아냈다. 그렇게 발각되면 한번 봐달라고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술을 몰래 제조하다 적발된 뒤에 부과되는 벌금제도는 애주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술 제조가 자유롭게 허용되어 지역마다 특산주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경쟁 사회가 되었다.요즘 우리 사회는 서로를 불신하고 오가는 말들은 사납다. 이럴 때일수록 한 잔 마시고 ‘카!’ 하면서 깍두기를 우지직하게 씹는 얼굴들이 보고 싶다. 좋은 일은 친구 덕이고 잘못 된 일은 내 탓이라며 텁텁한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싶다. 술에 취해 불그스레한 얼굴을 마주보며 마음을 열고 동네 모정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옛 친구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장병선씨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덕진문학〉 〈행촌수필〉 회원으로 문단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전주 덕진공원 문화재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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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07 23:02

노인의 유래

옛날에는 60세 이상을 살았던 사람이 드물어 평균수명이 짧았기에 장수를 자축하는 환갑(還甲 또는 回甲) 행사를 했다.(1940년대까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44세였다.) 즉 천간(天干)의 첫 글자인 갑(甲)으로 되돌아왔다는 뜻이다. 환갑잔치의 유래는 저 멀리 고려시대 충렬왕 22년(1296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올해는 사람들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붉은 원숭이해로 1956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환갑을 맞이하는 해다.노인의 법정 연령 65세는 1871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사고, 질병, 노령 등의 사회복지제도를 만들 당시 사회보험제도 상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결정한데서 비롯됐다. (이 때 독일 남성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50세도 안되었다고 한다.) 이 후 UN에서도 이 기준을 받아들이면서 국제적으로도 65세가 노인 연령의 기준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60세가 기준이었는데 1980년대에 노인 관련법을 제정하면서 65세로 기준을 바꿨다.과학과 의술이 발달해서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다가와 지구촌 시대가 노인들로 붐빈다. 지금 태어나는 어린애들은 성인이 되어서 모셔야 할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어쩌면 고달픈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누군가가 그랬다. 노인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 가는데, 본받을 만한 어른들은 안 계신다고. 우리나라는 2018년이 되면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초과하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 그 뒤부터는 고령화의 추세가 가속화되어 2050년까지 급속도로 늙어갈 나라의 순서에는 일본, 한국, 홍콩 등이 앞장을 서고 있다. 세 명에 한 명 이상이 노인 세상이 되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저성장이 고착화 된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추론이다.이렇게 되면 사회 전반의 문화와 경제구조 등 모든 것들이 놀랍도록 변화할 것이다.대한노인회는 이사회를 열어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하자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바가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개인 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지난날의 65세 이상 노인과 21세기 65세 이상 노인은 생각과 체력, 그리고 외모가 크게 다를 것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그리스의 격언에 집 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려서라도 모셔라.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쳐주는 격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노인은 아집만을 가진 노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어른을 말한다. 노인은 오랜 세월을 살아 왔기에 기억력도 떨어지고, 고집스런 행동이 강하다. 지나간 날들의 이야기를 내세우고, 매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이 모든 허물들을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의 경륜에서 얻은 지혜를 담은 통찰력이다. 풍부한 경험에서 얻어진 노련한 통찰력과 젊은이들의 패기가 어우러질 때 또 다른 사회 변화를 불러 올 수도 있을 것이다.대한의 어르신, 노인들이여!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비록 늙어 갈지언정 생각마저 낡아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젊은이들로부터 잔소리만 하는 노인네로 취급받아 따돌림 당하기 쉬우니 매사에 너그럽고 인자한 어르신이 되는 길, 외로운 신세를 덜어내는 길을 찾아보시기 바란다.△김형중씨는 〈수필시대〉로 등단했다. 문학박사로 전북여고 교장을 지냈으며, 원광보건대 교수다. 전북문인협회 이사와 행촌수필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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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30 23:02

지름길의 그림자

사람은 매일 유무형의 길을 가게 된다. 그 길이 제 길이든 지름길이든 매 순간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깝고 빠르다는 속성(屬性)을 지닌 지름길의 유혹을 떨치기란 그리 쉽지 않다.어린 시절, 기회만 있으면 개구멍이나 샛길 통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등하교 때 제 길로 가지 않고 일부러 밭 가운데로 질러갔던 일도 떠오른다. 가까우니 편하고 그 쾌감 또한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지름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간혹 선생님이나 밭 주인한테 들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심리를 알고 있는 어른들은 그러려니 하며 크게 호통을 치지는 않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요즘처럼 경쟁을 조장하는 세태와는 달리, 순박함이 묻어있는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언제부터인가 지름길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지름길을 찾아야 한다며 스스로 채근한다. 제 길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는 열등생 취급을 받기 일쑤다. 요즘 너나없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 하나는바쁘다이다. 바쁘기로는 어린이들도 어른 못지않다. 방과 후에도 부모가 마련해준 경로를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어른들이 바쁘다는 것은 나름대로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어린이는 자신의 생각보다 부모의 의지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지름길로 눈이 가기 마련이다.발달심리학자 피아제에 의하면, 아동은 일정한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 연령 경계와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어도 모든 개인은 같은 단계를 같은 순서로 거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각 단계는 이전 단계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한 그다음 단계의 기초가 된다. 잎이 자라고 꽃이 피면 이내 열매를 맺는 식물의 순차적 성장과 어린이들의 단계적 성장은 같은 이치이다. 어린이들은 성장 발달 단계상 기초를 탄탄히 다지며,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야 한다는 것이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교육의 과정에서 속성(速成)의 이면에는 기본의 소홀, 단계의 건너뛰기, 인성의 경시라는 속성(屬性)이 숨어있다. 속성(速成)으로 인해 허약해진 기본과 뒤틀린 인성이 언젠가는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지름길로 달려 남보다 앞서 목표에 이를 수도 있겠으나, 이를 잘못 관리하면 자칫 자만과 나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으로 망설이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초가 허약하고 단계를 건너뛰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어른처럼 잘한다하여,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어린이의 성장이 때로는 터덕거리거나 모자라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당연한 현상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상을 되돌아보며 지름길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자상하게 들여다볼 일이다.△문경근씨는 전북문인협회와 정읍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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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3 23:02

울컥한다는 것

내 핸드폰 벨소리는 에이미와인하우스의 발레리다. 나는 워낙 그녀를 좋아해서 이 노래를 벨소리로 정했다. 비록 짧은 소절이지만 하루에 수십 번은 듣는듯하다. 어느 날은 노래를 들으려 느릿느릿 전화를 받을 때도 있다. 발레리는 강해지는 것이라는 뜻의 슬라브어 권에서 쓰이는 이름이다. 영어권에서는 밸러리(Valerie)라고 표기한다. 에이미와인하우스는 아깝게도 스물일곱 살에 요절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약물 중독과 거식증으로 고통 받다 죽어간 에이미가 너무 아까워 울컥하며 경련이 인다. 이건 몇 년이고 변함없는 감정이다. 울컥한다는 것은 격한 감정이 갑자기 심하게 치미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울컥한다는 것은 워낙 북받치는 감정이라 꼭 눈물로 이어지는데 실컷 울고 나면 후련해져서 오히려 슬픔이 희석 되는듯하다. 이런 정화된 기분은 누구든 한쯤은 느꼈을 것이다.요즘은 어디서든 울컥하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항상 뭔가 억울하고 답답한 일들이 많아 치가 떨리는 듯 진저리는 자주 치지만 감정이 격해져서 울컥해지는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세상은 항상 찌르며 대드는 송곳 같은 곳이어서 손잡이가 있는 안전한 쪽으로만 가고자한다. 그러나 안전한 쪽은 밋밋한 곳이기도 해서 그곳은 늘 건조하고 차갑다. 그래서 따뜻한 얘기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팔월은 운 좋게도 그 울컥하는 격한 감정을 몇 번이나 느낄 기회가 있었다. 애국가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울컥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며 우리도 함께 울컥하게 했던 리우의 태극전사들! 생각해 보니 장한 것과 울컥함은 동질의 것인 것 같기도 하다.연일 화염에 가까운 날씨가 계속되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아들이기보다 방화 셔터를 내리듯 창문을 닫아 화염을 차단하고 실내에 갇혀 지냈다. 폭염은 폭설보다 위험했으며 모든 게 정지된 듯 나른했다. 이런 날씨에 뭐든 피하기엔 극장만한 곳도 없지 싶다. 더구나 조조는 몰입하기 좋은 시간이다. 덕혜옹주와 터널, 두 편의 영화를 봤다.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해 나라 잃은 치욕과 식민지적 삶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고 허무하게 무너지게 하는지 분해서 하염없이 울었다. 아버지 고종처럼 독살될까봐 평생 보온병을 끼고 다녔다는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서도 보온병을 안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그 모진 세월이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감기가 들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 보는 내내 울컥울컥해서 울음 끝이 길어졌나보다.영화 터널은 부실 공사로 무너진 터널에 갇힌 자동차 딜러인 젊은 가장의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분통이 터지기는 마찬가지다. 나라를 잃지 않아도 나라가 없는 것보다 더 서러운 대접을 받는 게 이시대의 지금 국민이 아닐까. 결국 스스로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을 때, 그의 유쾌함을 가장한 담담함에 놀랐다. 상황의 어이없음이 억울하고 울컥해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가 구출됐을 때, 터널에 갇혔을 때보다 더 많은 인파에 갇혀 다시 압사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갑자기 친절해진 군중을 향해 모두 다 꺼지라고 소리친다. 가슴이 뻥 뚫린 듯 후련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울컥했다. 요즘은 점점 울컥해지는 감정과 만나지질 않는다. 분통이 터지지만 물러서야 이긴다고 천근의 무게로 나를 누르고 울분을 삼킨다. 세상은 자꾸만 울컥하는 감동이 없어지고 울컥의 또 다른 의미, 먹은 것을 갑자기 거세게 토하는 소리만 커지는 듯하다.△최화경씨는 〈좋은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음악 없이 춤추기〉와 〈달을 마시다〉를 펴냈다. 대한민국 문학예술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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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9 23:02

쟁기와 보습의 상생

사무실 앞에 서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따스한 사무실의 공기가 얼굴을 확 스친다. 그런데 문 앞의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할 사무실 살림꾼 여직원이 없다. 아직 안 왔나? 그러나 부지런한 그가 그럴 리가 없다. 어딜 갔나?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안개 같은 건망증이 걷히며 생각이 났다.음, 그래 맞아. 어제 내가 전주 출장을 보냈었지요즘 부쩍 늘어가는 건망증이 미워진다. 너저분한 서류들이 널려있는 책상, 주인 없는 컴퓨터가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볼펜을 들고서 일을 시작할 요량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집에서 출근할 때, 오늘은 이것과 저것을 매듭지어야지하고 왔는데도 도통 생각이 깡통 속이다.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마음을 다잡고 생각했던 것들을 종이 위에 메모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일 할 마음은 어디론지 도망가고 창 너머 푸른 숲을 맹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사람들과 지내는 일이 이런 이치도 있었구나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일이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어느 일이고 간에 양면이 마주서야 제대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새삼 사무실 문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여직원 자리의 무게를 크게 느낀다. 그러면서 전통적 농기구 쟁기와 보습을 떠올린다.쟁기는 논 밭 갈이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농기구다. 소가 앞에서 쟁기를 끌고 가면 논밭의 흙이 뒤집어 진다. 그런데 쟁기질을 할 때 필수적으로 따라다녀 할 부속 연장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보습이라는 철제기구다. 쟁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보습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언제나 땅을 뒤집는 땅 속에서만 일을 하는 부속기구이므로 땅위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구이기 때문이다.힘든 땅을 뒤집는 공은 언제나 쟁기에게만 있고 보습은 그 공과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그러나 어쩌다가 보습이 깨지는 날에는 쟁기도 꼼짝없이 쉬어야 한다. 보습이 쉬는 날 쟁기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쟁기뿐만이 아니라 이를 끌고 다녀야 하는 소도 별 볼일 없어진다.어디 그뿐인가? 자칫하면 농사일도 그르칠 수 있다. 보습은 그만치 하잘 것 없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연장이다. 반대로 쟁기가 쉬는 날에도 보습의 역할은 아무 것도 없다. 쟁기에서 분리되어 팽개쳐 놓기 마련인 보습은 뻘건 녹을 뒤집어쓰고서 쟁기가 일철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쟁기와 보습은 이렇게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해야 만 그 공과가 평가되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어느 한 쪽도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숙명이 주어져 있다.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도 다를 바가 없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상대를 가소롭게 치부해버리거나 일방적인 소행엔 능률이 없을 뿐만 아니라 희망도 없다. 그런 곳에서 꽃이 피어나리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자기본위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오직 자기만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성숙된 사람들은 정말 찾아보기가 힘들다. 제발 좀 성숙해지시길 바랍니다. 욕지거리나 해대고 남의 의견 깔아뭉개면 득되는 게 뭐가 있나? 다만 본능적인 쾌감은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늘 티격태격 싸움질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쟁기와 보습의 원리는 상생에 두고 있다. 입으로 하는 상생 말고 실천하는 쟁기와 보습처럼 상생 모습으로 살자.△양규태씨는 〈문예사조〉로 등단했으며 부안읍장을 지냈다. 부안예총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변산 마실길 이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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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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