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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서툰 인사말

△김덕남씨는 전주 용소초등학교장으로 퇴임했다. ‘물사랑 공모전’ 은상, ‘글벗문학회 공모전’ 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아람 수필문학회’ 부회장, ‘대한 문학 작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어디 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집 아줌마가 방긋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저-기요” 나는 우물쭈물하다 건성으로 대답했다.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간다는 사적인 일까지 그녀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아, 네-” 하며 나의 무성의하고 애매한 대답에도 충분히 알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제 갈 길을 갔다. 그녀도 나에게서 명확한 대답을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라 그저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했다.우리가 흔히 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전쟁이 잦았던 우리의 역사 속에 밤새 아무 변고 없이 잘 자고 일어났느냐는 뜻의 애환이 섞인 의식적 안부 인사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보면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말도 애환의 의미가 담겼지만, 꼭 식사를 했느냐는 물음보다는 친근감에서 통용되어오던 인사말이다. 우리가 주고받는 인사말 중에는 이같이 통념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데 ‘어디 가느냐?’는 인사말은 친근감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 인사를 받고 ‘굳이 개인적인 행보까지 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충 성의 없이 얼버무림을 할 때가 있다. ‘어디 가세요?’ 보다는 ‘옷이 잘 어울려요.’ ‘인상이 참 좋으세요.’ 등 가볍고 현실적인 인사를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굳이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거나 참견하고 싶어 하는 인사말이 우리 세대의 인사다. 계산이 빤한 도시 깍쟁이보다 정이 넘치는 순수한 시골 아낙들일수록 더 그렇다. 재치 있고 경위 바른 젊은 세대들은 그런 일이 적은 편이다. 정말 궁금하여 가는 곳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타인의 목적지까지를 묻는 사생활 침해적인 그런 인사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서구 문화가 많이 접목된 요즈음은 ‘좋은 아침입니다.’ ‘반가워요.’ 등 밝고 경쾌한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런데 간혹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 아리따운 여인이나 멋스러운 남자가 느닷없이 ‘사랑합니다.’라는 닭살 돋는 인사말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어느 공공 기관과 통화를 했을 때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받고 무척 쑥스러웠는데 이제 그 인사말이 상점까지 심지어 우리 교회 신부님과 신자 상호 간의 인사로까지 발전되어 많이 익숙해졌다. 우리 일상에서 이렇게 습관화되지 못해 어색했던 인사말도 생활화되면 의식이 바뀌고 그 의미가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며칠 전 은행에 갔을 때였다. 촌로가 들어와 번호표를 뽑고 소파로 다가오더니 앉아 있던 또래의 노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 자네 여긴 어쩐 일인가?” 은행에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싶어 묻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안 그 노인도 “응, 그냥 왔네.”라는 허망한 답변을 건넸다. 진정으로 궁금해 알고 싶었다면, 그런 대답으로 충분했을까?“언제 밥이나 한번 먹세.” 인사를 건넸던 노인은 또 부질없는 기약의 인사를 던진 뒤, 무관심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 버린다. 그날 은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랫집 처녀와 마주쳤다. “유정 씨, 어디가?” “네. 안녕하세요?” 내가 묻는 인사말과는 아랑곳없는 인사를 던지고 해맑게 뛰어간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나 또한 무엇 때문에 남의 목적지를 궁금한 것처럼 물어봤을까? “안녕!” 또는 “잘 지냈어?”라는 적절한 인사말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사말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영위하는데 필요하다. 따라서 인사말의 기본은 길이와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 인사말들은 무엇일까? 항상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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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3 23:02

대통령, 유리천장을 깨다

긴긴밤 국민들의 손에 들린 촛불의 열매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논공행상이 이뤄질 무렵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분이 정권교체를 이루어 주신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되었습니다. 정권교체는 갈구했지만, 권력은 탐하지 않습니다.”라는 감동적인 몇 마디 말들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신 분들…. 대통령의 패권이라는 분들이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그분들을 닮은 사례가 우리 고장에도 있었다. 90년대 전주시에 치매 병원과 보건소를 지어 시민들의 건강을 보살피려고, 치매 가족들의 짐이 버거워서 부양의무를 포기하려는 의도에서 전주에 국고를 지원받아 치매 병원을 신축하려고 보건소장이 복지부에서 받아온 국비의 덫에 걸렸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국고를 환수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도 나서서 그 일을 해내도록 하려면 내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상의가 다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4급 보건소장직을 버리고 어느 보건소 관리의사로 갔던 그분은 자신의 사생활보다는 먼저 시민들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기반 구축에 노력하는 지도자였다. 치매 병원이 시민들에게 줄 혜택을 생각하고 자기희생을 감수했다. 문 대통령의 패권이라 지칭되던 삼철도 “친문 프레임, 삼철 낡은 언어 거둬 달라.”며 스스로 사라지듯,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떠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대통령의 정치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떠난 멋있는 분들, 왠지 그분들의 뒷모습을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의로운 나라, 위대한 국민들의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국민이 이기는 통합의 나라,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를 염원했고, 그 품은 뜻을 이뤄냈으니 여한이야 없겠지만 떠난다는 것이 홀가분하기만 했을까. 생각하면 그때처럼 짠하다. 그 후 대통령 행보에서 ‘이런 대통령도 있구나.’ 감탄하며 보름이 지났다. 국민들의 빈 마음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새 정부의 인사 발표에 감동했다. 파격적인 탕평인사다. 사람마다 이번 대통령은 멋지게 잘해 낼 거라며 신뢰를 보낸다. 특히 인사가 만사라는데, 이번에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성 평등한 대한민국”이다. 전에 여성 공무원들 근무하던 곳이 주로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 식품의약부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장관인사가 파격이다. 유엔 내에서는 입지전적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비외무고시 출신인 여성이 외교부장관에 발탁되고,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며 육군 최초 여성 헬리콥터 조종사를 국가보훈처장으로 발탈하다니…. 뭔가 달라도 다른 통념을 뛰어넘은 통합, 탕평, 파격 인사다. 여성들의 그 단단했던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여성도 사회적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곳,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여성을 승진시키고 싶어도 경력 단절이 문제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진정으로 탕평이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여성 공무원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7~80년 당시 여성 공무원들은 승진이란 걸 몰랐다. 이유는 근평을 남자직원에게 양보해야 했고, 양보를 거절하는 여직원은 조직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남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가 양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고착되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대개 7급 정년을 하였고 후에 6급 정년이 몇 명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대통령의 인사 기조에 맞춰 시군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도 4급,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 국민과 소통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새 시대의 인사답게 남녀 차별을 두지 않는 통합적인 탕평적인 파격적인 멋진 인사를 기대해 본다.△ 박귀덕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잃어버린 풍경이 말을 건네오다’ 등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북수필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작촌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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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09 23:02

어머님!

△김두성씨는 수필가이자 교육학박사다.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해 수필집 ‘나의 작은 행복’ 등을 냈다. 한국문인협회 남원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남원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어머님! 어머님께서 자나 깨나 심혈을 기울여 키워주신 큰아들 두성이가 어머님 영전에 섰습니다. 그동안 쏟아주신 어머님의 정성과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서도 생활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영전에서 지금까지 불효가 실감이 납니다.어머니께서 떠나시던 날 아침, 한동안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 그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뵈었던 모습과 말씀들은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먼 곳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버팀목이 되어주셨는데, 이제 어떻게 지탱해 나갈지 모르겠습니다.어머님의 부음을 받고 달려오신 이모들과 외삼촌들께서 하신 말씀들이 생각납니다. 다섯 시누이 틈 속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집살이를 하셨다던 말씀을 듣고 새삼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울컥 쏟아지는 울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같은 아파트 통로에 살 때, 내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주차를 확인하신 후에 밤잠 이루셨다던 어머님…. 7년이 넘게 대상포진, 간경화, 간암 등의 질환으로 고생하시면서 정신력으로 버티어 오시다가, 끝내는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시던 어머님! 그런 와중에서도 손주 녀석, 등록금 걱정을 해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새삼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느꼈습니다.이런 정성과 사랑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습니까?저희들 몸과 마음, 여기저기에 깊숙이 묻어있는 어머님의 관심과 정성을 저희가 만 분지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님! 처음에 이 글을 쓰다가 한참 동안 쏟아지는 눈물이 뒤범벅되어 다시 썼습니다.한마디로 저는 어머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유난히도 못난 이 자식을 사랑해 주셨던 어머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잘못 하였을 때 “내가 어떻게 키워왔는데 이 모양이냐” 하고 한탄하시던 말씀이 종종 생각납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분발하려고 무던히 발버둥 쳤습니다. 어머님, 아시죠? 어머님! 비록 76년간의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어머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깨끗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 봉사 하셨던 어머님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내면서, 어머님께서 항상 함께하셨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어머님!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못다 사신 어머님 몫까지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위 사람, 나아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욱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더욱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어머님의 자식이 되겠습니다.부디부디 편히 천국의 하늘나라에서 모든 근심 걱정 벗어버리시고, 저희 내외, 손주, 손녀 잘살아가는 모습, 자랑스럽게 되어가는 모습, 즐거운 마음으로 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어머님! 저희들, 항상 어머님과 함께하겠습니다.어머님의 큰아들, 두성이가 이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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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02 23:02

그 어느 날 - 김정희

콧물 훌쩍이는 손자와 택시를 탔다. 소아과 건너편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는 우리를 건널목에 떨어뜨리고 신호가 바뀌자 쏜살같이 달아났다. 파란 불이 켜진 뒤, 두 돌 지난 녀석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녀석이 다른 손을 번쩍 들고 건너는 것 아닌가. 신기하고 기특하여 길을 다 건넌 뒤 물었다. 길 건널 때 손들고 가라고 어린이집에서 배웠어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겨우 말귀 알아듣고 몇 마디 하는 아이가 이런 교육을 받았다니 어린이집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친구들과 여행 약속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횡단보도에 닿기 전 신호가 바뀌며 차들이 멈췄기에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달렸다. 겨우 버스정류장에 와서 거친 숨을 고르는데 누가 아줌마! 아줌마!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경찰관이 수첩 같은 것을 꺼내 들고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란다. 왜요? 아줌마 무단 횡단했잖아요. 어서 주민등록증 주세요. 이런, 이렇게 난감할 수가.아저씨, 급해서 그랬어요. 한번 봐주세요. 아니 아줌마만 봐주면 저 아줌마는 어떡해요? 경찰관의 손짓을 따라가니 몇 걸음 안 가 순찰차 앞에서 또 다른 경찰관에게 죄인처럼 서 있는 여인이 서 있었다. 아줌마가 달리니까 저 아줌마도 뒤따라 달렸어요. 허허. 경찰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속으로 퍽 우습기도 하겠다.라고 쏘아주고 싶었다.그 날 나는 내 인생에 하나의 역사를 기록했다. 말로만 듣던 딱지를 뗀 것이다. 거금 이만 원짜리를 기어이 끊기고 만 것이었다. 친구들과 여행길에 오르며 나는 한마디 했다. 나 오늘 딱지 뗐어. 액땜했으니까 잘 지내고 오자. 모두 환호했고 이틀간의 여행은 내 덕(?)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그 날의 딱지 한 장은 내가 아끼는 상자 안에서 다른 귀한 것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 가끔 희고 길쭉한 딱지를 본다. 그리고 내 삶에 있어서나 주변 생활에 있어서 또 다른 무단횡단은 없었는지 또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무작정 달려가진 않았는지, 기다려야 하는데 성급한 적은 없었는지 되짚어보며 정도를 지키는 삶이었기를 다짐해본다. 그리고 건강을 지켜가는 일에서도 너무 무리하지는 않았는지! 의사에게 딱지 끊길 일은 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게도 된다. 또한 가족을 대하는 데도 무단횡단 같은 무례한 사례는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만 원짜리 딱지 한 장이 반면교사가 되어준 셈이다.그날 이후 나는 어떤 경우에도 무단횡단은 하지 않는다. 지난날의 그 기억이 부끄러워서다. 조금 늦어지고 귀찮아도 그 날의 교훈을 떠올리며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 불을 기다린다. 내 마지막 삶의 길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김정희 수필가는 〈표현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덕진문학〉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자작나무〉와 〈마음에하나 찍듯〉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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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26 23:02

몽돌 서진

서진(書鎭)을 볼 때마다 바닷가 풍경이 떠오른다. 오늘도 문인화를 그리기 위해 화선지를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이어서 화선지 네 귀에 지난해 바닷가에서 주워온 몽돌 네 개를 올려 고정시켰다. 이 몽돌은 가족 행사로 안면도에 있는 샛별 글램핑장 야영 때 주워온 뒤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돌이다. 지금도 몽돌 서진을 보면 그때의 생각이 난다. 여명의 하늘이 밝아오는 아침잠에 깨어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에 나아가 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바다는 간조 시간이 되었던지 바닷물은 저만치 밀려가고 허연 백사장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부옇게 밝아오는 망망대해 하늘가에는 갈매기가 끼룩끼루룩 목청을 높이며 날고 있었다. 썰물이 되어 끝없이 하얗게 드러난 모래사장도 아름답지만 수억 년을 파도에 씻겨 닳아 몽돌이 된 조약돌이 밀려와 쌓여 바다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다는 데 있어 새삼 마음이 무거워졌다. 끝없이 쌓인 몽돌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지 위아래 옷의 호주머니가 가득하게 주워 담았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두 손에도 움켜쥐고 숙소로 돌아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몽돌은 모양도 예쁘지만, 색깔이 가지각색이다. 모양과 색깔이 예뻐 그때 주워온 몽돌을 지금 나는 책상 머리맡에 올려놓고 서진으로 이용하고 있다. 나는 몽돌을 사용할 때마다 바닷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몽돌에 미안한 생각이다. 수많은 세월 망망대해 바닷가 백사장에서 마음껏 뒹굴고 놀며 바닷물이 씻겨주는 전신욕도 못하고 외롭고 건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또한 몽돌을 볼 때 사자성어 수어지교(水魚之交)를 생각하면서도 빗대어 불러주었던 파석지교(波石之交)의 이름이 생각나서이다. 물과 물고기의 만남 같이 친밀한 관계를 수석지교라 부른다면, 모난 돌이 파도를 만나 예쁜 몽돌이 되었겠구나 싶어 파석지교라 이름 지어 불러주었기 때문이다.물을 가리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부른다. 바다는 개울물이 모여 바닷물이 되기까지 걸림돌을 만나면 돌아서 가고, 웅덩이를 채우며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넓은 바다를 이룬다. 이와 같이 물에는 역행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따라서 물을 가리켜 상선약수라,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라고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고 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가장 낮은 곳에 머무른다. 이와 같이 물은 항상 낮은 곳에서 다투지 않고 겸손의 미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선약수라 하였지 않았나 싶다.인생은 채움과 비움, 비움과 채움의 반복이라고 한다. 또한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무엇을 비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도 물처럼 마음을 비우고 채우며, 무리하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라고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그런 큰 뜻을 지닌 바닷물에서 파도와 친교를 맺으며 지내온 몽돌을 내 욕심 때문에 머리맡에 두고 서진으로 사용하려니 가끔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 몽돌아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바닷물이 철썩철썩 달려와 찌든 때를 씻어주고 가듯 가끔 깨끗하게 닦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어서 너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문인화와 풍경화를 그려 보겠노라 다짐을 해본다.△한현수 씨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내 고향 토담집〉, 〈방안퉁수가 부르는 노래〉가 있으며 현재 덕진문학,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전주덕진노인복지관 방송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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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19 23:02

설날에 핀 보세란

정유년 새해 설날 아침이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은은한 난의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설날 이렇게 때맞춰 난이 꽃을 피우고, 그윽한 향기를 뿜게 된 것은 30년 동안 난을 키워오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은 아내가 그동안 난을 키우느라 애쓴 노력의 결과다. 전문가도 아닌 아내는 겨우 난을 살릴 정도의 실력으로 난을 키운다.우리 집에는 십여 분 정도의 난을 베란다에서 키운다. 그날도 대여섯 개의 화분과 난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의 난분에서 꽃대 두 개가 쑥 올라온 것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영하 8~9도의 추위에 얼어 죽을세라 얼른 거실로 옮겨놓았다. 설날 아침에 보니 길게 뻗은 꽃대에서 꽃잎 대여섯 개가 잎을 벙싯거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잎 새 사이로 내뿜는 난의 향기가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그동안 난을 키우면서 동양난의 일종인 보세란(報歲蘭)으로만 알고 있었다.이번 기회에 잘 알아야 할 것 같아 사진과 비교하면서 살펴보니 대만보세란(臺灣報歲蘭)이었다. 중국 및 대만 등에서 자생한다. 동양란 가운데 잎이 매우 아름다운 종류이다. 음력 정월 무렵에 개화한다. 설날 피는 꽃으로 새해를 알린다는 뜻인 보세란(報歲蘭)이라고 부른다.난의 역사가 제일 먼저 거론된 때는 공자의 논어 의란조(?蘭操)에서 나온다. 공자가 입신(立身)하기 전, 왕도(王道)의 실현이라는 뜻을 품고 천하를 전전했지만,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왕후(王候)는 없었다. 이에 실망한 공자가 낙향하는 길에 깊은 산속에서 난(蘭)을 발견했다.그 난의 향기가 그윽하고 자태가 고고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의란조(?蘭操)를 보면 난의 고고한 자태를 빌어, 자신도 군자의 길을 걷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렇듯 난의 문화는 공자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문화라 할 수 있다.새해 설날에 보세란이 우리 집에서 꽃망울을 열었다. 기쁜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올해에는 사회와 우리 가정에도 상서(祥瑞)로운 일이 많기를 기대한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탄핵 판결에 모두가 승복하여 국기(國基)를 바로잡고, 경제도 살아났으면 한다. 또 통일이 되어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함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우리 집에서는 벌써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다. 힘들게 공부한 외손녀가 대학입시에서 자기가 희망하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설날 아침에 핀 보세란이 먼저 우리 집에 행복을 가져다 준 행운의 난이 되었다.△오창록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에서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행촌수필문학회, 전북문인협회, 신아문예작가회,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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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12 23:02

추억의 시래기 밥

꽃샘추위가 물러갈 무렵이면 까칠한 입맛을 돋우는 소박한 음식이 있다. 한 그릇에 담긴 맛과 정감으로 기운을 돋아주는 게 있다면 시래기 밥이다. 어린 시절, 집집이 처마와 그늘진 곳에 무청이나 배추 잎을 말린 시래기를 매달아 놓고 겨울부터 초봄까지 배를 채워주었다.긴긴 봄날 배가 고플 때면 어머님께서는 으레, 시래기밥이나 시래기죽을 내놓으셨다. 배고팠던 시절, 우리 가족을 켜켜이 지켜주었던 일등공신을 꼽는다면 단연코 시래기 음식이리라. 시래기는 나물 무침. 비빔밥. 된장국. 죽. 전 등을 만들어 먹던 식재료다. 물고기와도 잘 어울려 물고기 매운탕, 고등어 졸임, 추어탕을 끓일 때면 꼭 들어가야 하는 게 시래기였다.옛날에는 허기진 배를 달래야 하는 구황식품이었지만 지금은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시래기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항암작용과 면역력을 강화하고, 칼슘? 철분? 미네랄 등이 들어 있어 골다공증과 빈혈 예방에도 그만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시래기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내려준 보약이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죽(粥)을 즐겨 먹었다. 한문으로 죽을 풀어보면 활궁(弓)자 가운데 쌀미(米)자가 들어있다. 내 생각으로는 배가 불러야 활을 당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는 죽 요리가 수십 종이 있는데 곡물을 기본재료로 여러 가지 식품을 섞어서 죽을 쑨다. 쌀 이외의 곡물로 쑨 죽에는 율무, 녹두, 팥, 콩 등이 있고, 곡물에다 채소나 나물을 섞어서 쑨 죽에는 시래기, 콩나물, 방풍, 아욱, 호박, 등이 있다. 동물, 어패류, 견과류 등을 이용한 죽들도 있다. 부잣집에서는 보양식이었지만, 우리 집처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배고픔을 달래주던 구세주였다.어린 시절, 우리 집은 너무도 가난했다. 산골 다랑이 논 몇 마지기와 산비탈 밭뙈기가 전부였다. 가축이라고는 소 한 마리와 돼지, 닭 몇 마리였다. 아버지는 남의 일을 하면서도 담배 농사에 전념하셨고, 어머니는 비탈밭을 일구면서도 누에치기에 몰두하셨다. 일곱 남매를 키우고 가르치느라 허리 펼 틈도 없었으니 얼마나 고달픈 삶이었을까? 오죽했으면 찬밥 한두 덩이를 시래기나 묵은 김치를 듬뿍 넣고서 끓여 놓은 죽으로 온 가족의 배를 채워야 했을까.어느새 고희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어릴 적 먹었던 시래기 밥과 시래기 음식이 생각난다. 시래기를 푹 삶아서 쫑쫑 썰어서 들기름 국 간장으로 밑간하여 양념이 배게 두었다가 씻은 쌀 위에 올려 밥을 지었다. 밥이 되는 동안 시래기 밥에 넣을 양념장을 만들어 놓았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시래기 밥 위에 고소한 양념장을 넣고 비벼주시던 어머니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가지 추억이라면 시래기나물 무침이다. 시래기를 충분히 삶은 뒤 깨끗한 물에 씻어 놓고 된장과 마늘 다지기를 넣어 조물조물 버무려 밑간을 한다. 촉촉하게 양념이 스며들면 대파를 썰어 넣고 들깻가루를 약간 뿌려 놓으면 끝이다. 투박하긴 했지만, 어찌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했던가? 예전 같으면 옻닭이나 쇠고기, 돼지고기였지만 지금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시래기비빔밥? 콩나물비빔밥? 꽁보리밥 등 웰빙 음식이 있다고 하면 기필코 찾아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미를 그 누가 말릴 것인가.이 좋은 시대에 우리 모두 팔팔하게 운동하고, 건강식품도 챙겨 먹으며, 아프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또 있겠는가?△임두환 수필가는 〈대한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뚝심대장 임장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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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5 23:02

부서져야 산다

밀가루를 사려고 마트에 갔다. 국산 밀가루를 사려고 둘러보다가 하나 남은 우리 밀가루에 시선이 멈추었다. 가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바구니에 담았다. 1960년대, 우리는 밀 농사를 지었고, 그 밀을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가루로 빻아다 수제비나 부침개를 만들어 허기를 달랬었다.그 당시 우리 부모님께서는 날만 새면 들녘으로 나가 일에 매달리셨다. 하지만 논농사 수입은 농가 빚이나 세금 등을 내기 위해 쌀값이 가장 싼 추수 직후에 거의 다 내다 팔았기에 쌀은 늘 귀했다. 그러니 밀이나 보리농사를 지어 주식으로 대용했었다. 또 겨울 양식인 고구마는 캐다가 방 윗목에 밑동가리를 만들어 수북이 쌓아놓았고, 수확한 콩은 처마 밑에 차곡차곡 보관해 두었다.들깨는 키가 커서 밭에서 타작하여 알갱이만 들여왔지만, 집에 들어온 콩을 갈무리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처음엔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게 잘했다는 칭찬을 들으니까 신이 나서 하다 보니 내 일이 된 것이다.볕 좋은 날, 나는 마당에 포장을 깔고 거둬들인 콩을 펼쳐놓았다. 어느 정도 마른 성싶으면 처음엔 튀어날까 봐 발로 자근자근 밟다가 나중에는 긴 막대기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여기서 툭, 저기서 툭, 입을 쩍쩍 벌리며 노란 콩을 뱉어내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잘 참았다. 콩은 깨지고 부서져서 메주가 되고, 간장, 된장, 고추장이 되었다.들깨 또한 깻잎이 부스러기가 되도록 부서져야 고소한 알갱이를 뱉어내고, 이 알갱이가 부서지고 으깨져서 기름이 되고 가루가 되어 맛, 영양, 건강까지 챙겨주는 회춘 식품이 된다.얼마 전 친구들과 어느 식당에서 시래깃국을 맛있게 먹은 일이 있다. 요즘 날씨가 쌀랑하니까 따뜻한 국물 생각이 나서 냉동실에 있는 시래기를 꺼내 나름대로 국을 끓였지만, 맛이 별로였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그 식당에서는 들깨가루를 넣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들깨가루가 없어서 생 들깨를 조금 갈아 넣고 중불에 푹 끓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릴 때 먹었던 시래깃국, 바로 그 맛이었다.예로부터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 장 가르기를 했다. 지난 2월 초순 소금물에 담가놓았던 메주를 으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꺼냈다. 간장과 분리한 메주는 다른 항아리에 옮기고 잘게 부수어서 으깬 다음 소금을 뿌리고 꾹꾹 눌러놓았다. 항아리 속에서 얼마간의 숙성기간을 거쳐 맛있게 익으면 담근 장류로 조물조물 무치고 보글보글 끓여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훈훈해진다.이렇듯 밀이나 콩, 깨 등이 부서져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원 재료에 없는 유익한 성분이 생성되어 건강식품으로 재탄생하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서로 엉켜 비비고 문지르며 수없이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할 수 있으며, 우리가 꿈꾸는 조화로운 세상이 되는 게 아닐까?흙덩어리도 부서져야 그 속에 씨가 뿌려지고 싹이 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부서져야 한다. 굳어진 땅이 아닌 상대를 위해 자신을 부스러뜨리는 겸손한 부드러운 땅이 되어야 한다.△한일신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이다. 수필집 〈내 삶의 여정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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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8 23:02

그리움이 머무는 곳

어릴 적 우리 집은 여산 장터에 살았다. 그곳에서 20분쯤 가면 유성이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엔 우리 셋째 아버지의 집이 있었다. 셋째 어머니께선 홍시가 떨어지면 주워 두었다가 내가 가면 여산아, 어서 오너라! 하시며 반갑게 맞으며 먹을 것도 주셨다. 언제나 어린 조카들을 함빡 웃으며 맞아주시던 셋째 어머니의 그 따뜻한 모습이 언제나 그립다.그 집엔 선생님이셨던 사촌 오빠와 사촌 언니도 계시어 언제나 내 마음속엔 우리 셋째 집이 좋았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났는데, 우리 친척들은 대부분 셋째 집으로 피난을 가서 같이 먹고살았다. 셋째 집은 넓고 방도 많았다. 한 여름이라 뒷동산에선 매미 소리와 새소리 들렸는데 가끔 멀리서 대포 소리도 났다.낮에는 텃밭에서 따온 옥수수도 쪄주고 고소한 미숫가루도 타주셨다. 장독대 둘레에는 채송화와 봉숭아, 맨드라미, 접시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밤에는 언니들이 내 손톱에 봉숭아 물도 들여 주고, 내가 배탈이 나면 셋째 어머니께서 내 목에 짚으로 만든 새끼줄을 걸고 뒷간으로 데리고 가서 빌어주셨다. 그게 아마 배탈을 낫게 하는 비법이었나 보다. 서울에서 공부하시던 사촌 오빠들도 전쟁 중이라 모두 집으로 돌아왔고, 오빠의 친구 한 분도 피난을 와 있었다.철없는 나는 전쟁 중이지만 이방에 가면 언니들이 있고, 저방에 가면 나를 작은 아씨라고 정답게 불러주던 보름달같이 예쁜 새언니가 있고, 사랑방에 가면 오빠들이 학교생활 이야기하는 것도 들을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평소엔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많은 친척들이 한데 모여 사니 그저 신나고 좋았던 기억뿐이다. 셋째 집 가족들은 어린 나를 누구나 예뻐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못 잊은 분은 오늘 만난 언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우리나라 지형도를 만들어 오라는 지리 숙제가 있었다. 신문지를 물에 푹 담갔다가 며칠 후에 꽉 짜서 풀을 섞어 우리나라 지도 모형을 만들라는 것이다. 나는 도저히 엄두도 안 나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씨 착한 사촌 언니한테 찾아가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언니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그래? 그럼 만들어보자. 하면서 종이 찰흙으로 우리나라 지형도를 만든 다음 물기가 마른 후 물감으로 색칠을 하니 훌륭한 지도 모형이 완성된 것이다. 나는 얼마나 신기하고 좋은지 뛸 듯이 기뻤다.그렇게 어려운 일을 척척해내는 우리 언니! 나는 언니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 밖에도 재봉, 식물 채집 등 어려운 일만 있으면 찾아갔으나 그때마다 항상 기분 좋은 얼굴로 선뜻 도와주던 천사 같은 사촌 언니였다.그 당시 언니 나이가 스무 살쯤 된 때인데 대학교에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랬던 언니께서 공주로 시집을 가신 후에는 만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몇 십 년이었는데 시월의 단풍이 곱게 물들던 어느 날 그 언니와 큰어머니의 외동딸인 사촌동생과 세 자매가 서울에서 만났다. 완전히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젊은 시절엔 친척들의 애경사에도 참석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사촌동생의 장례식장에서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서 사촌 세 자매가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40~50년간이나 못 보며 지내다니, 그만큼 삶의 질곡이 만만찮았다는 증거다. 이제부터는 내 발로 돌아다닐 수 있을 때까지 그리운 얼굴들을 부지런히 만나러 다녀야겠다.△이여산 수필가는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수필집 〈아름다운 인연〉 등 3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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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1 23:02

어느 날의 외출

보드라운 햇살이 내리는 휴일 오후, 아지랑이에 실려 온 봄이 나른한 여유를 싣고 부유하던 날,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은 고인돌, 정확히 말하자면 고인돌을 왕복하는 탐방 열차 일명 모로모로 열차를 타보고 싶어서 망설일 겨를도 없이 고인돌 유적지를 향해 달려갔다.자동차를 개조해 운행하는 탐방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마치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왜 나는 이렇듯 타는 걸 좋아하는 걸까? 아주 어릴 적엔 아버지 어깨에 올라앉아 무등을 타며 신이 나 했고, 놀이공원에서의 회전목마라든가 여러 가지 탈것들에 환호했었다. 특히 여고시절 학교 수업이 없는 날에는 걷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느린 전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끝없이 떠들어대고 까르르 웃어대던 일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몇 십 년의 세월이 흘러 탈것이 흔치 않은 이곳에서 탐방 열차를 타려고 줄을 서있는 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감돈다. 짧은 기다림 끝에 탐방 열차에 올라앉아 흔들거리고 있노라니 또 하나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를 타고 등하교 하던 그 시절, 나는 늘 교복 상의 주머니에 옷핀을 꽂고 다녔다. 차장의 손에 떠밀려 겨우 올라탄 버스는 숨을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승객들이 꽉 찼는데 그 사이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못된 손, 음흉하게 뻗어오는 치한의 손을 힘껏 찌르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엔 성추행법이라던가 여성을 보호할만한 특별한 법이 없었기 때문에 만원 버스를 타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했었다.싱그러운 풀 향이 코끝에 스치는가 싶더니 열차는 어느새 고인돌 유적지 앞에 다다랐다. 고인돌 중에서도 특히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고창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많은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청동기시대에 이미 취락을 이루고 생활하여 왔음을 엿보게 하는 이곳엔 내 키의 열 배는 됨직한 커다란 고인돌을 위시해 아주 작은 고인돌, 납작한 고인돌, 뾰족한 고인돌 등 각양각색의 고인돌이 산등성이를 휘감고 산재되어 있다.가장 큰 고인돌은 어쩌면 그 옛날 천하를 호령하던 권세가의 것일지도 모르고, 가장 작은 고인돌은 빈한하지만 청렴하게 살았던 어느 선비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왕후장상일지라도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 말 없는 돌무덤으로 남아있을 뿐인 것을.녹아내린 사연이 너무 많아/굽이굽이 감아 도는 산등성이에/이끼 낀 몰골로 오도카니 서있다/안간힘 쓰고 살았어도/후회뿐인 지난날의 상념들은/땀방울 떨군 들녘에 뿌려버리고/영원할 것 같던 시간이 정지되던 날/그 자리에 선채로 돌이 되었구나/내려놓지 못한 전생이 하도 무거워/구부정하게 선 너는/혼령들의 한숨소리 듣고 있는 것인지희뿌연 하늘에 솔개 한 마리가 난다. 천 년의 세월을 지켜온 듯 크게 두어 바퀴를 돈 후에 선인들의 편안함을 확인했는지 산기슭 너머로 사라진다. 태고의 깊은 혼은 몇 천 년이 지났어도 살아 숨 쉬고 세계인의 보물로 찬란히 빛을 발하는데 일백 년 인생사 내 모습은 훗날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게 될까? 어느덧 시간이 흘렀는지 싸늘한 바람이 볼을 때린다. 고인돌 사이를 오가던 관람객도 저마다 갈 길을 가고 그 자리엔 무거운 침묵만이 내린다. 부드럽던 봄 햇살도 어느덧 서녘 하늘로 잠을 청하고 삶에 대한 존경과 가치의 숭고한 정신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문인순은 대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무장면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장과 평통자문위원, 고창군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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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4 23:02

기러기를 따라간 동장군

개구리기 놀라 깬다는 경칩(驚蟄)이 지났다. 서슬이 퍼렇던 동장군이 물러나고 새싹이 파릇파릇 움 트는 시기다. 그래서 그런지 대문을 드리운 라일락 가지 끝에서 파릇한 기운이 엿보인다. 경칩은 동지 이후, 74일째 되는 날로 양력으로는 대개 3월 5일 무렵이다. 이날이 지나면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할 정도로 완연한 봄을 느낀다. 며칠 전부터 고로쇠 물을 마신다는 소식이니 얇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까 보다.40여 년 공직생활을 마칠 때가 되어 고민한 때가 있었다. 평생을 직장만 오가며 생활했으니 사회 물정엔 문외한이었다. 다시 직장을 구하면 받아줄 곳은 있을까? 만약에 갈 곳이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내 마음에 동장군이 자리 잡은 것이다.퇴직 후에 대한 걱정을 하다 보니 그날은 어김없이 오고 말았다. 고민을 한다고 마음의 동장군은 물러나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실컷 자보자는 심정으로 며칠을 집에서 뒹굴었다. 아내는 무슨 잠이 그렇게 오느냐며, 시내도 나가보고 친구들도 만나라며 성화를 댔다. 직장에 다닐 때 실컷 자보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항상 잠이 모자라 피로가 겹쳐 눈이 충혈하기 일쑤였다. 겨우 동네 사우나 가는 것으로 한 달을 보냈다.우연히 어느 정년퇴직자 부인들이 모인 장소에서 오가는 말들을 잘 정리하여 소개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정년퇴직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걱정하는 아내. 정년퇴직한 지 꽤 됐는데도 놀고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 놀기만 하면 사람이 처지고 빨리 늙는다고 걱정하는 아내.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집에서 매끼 밥을 차려 달래서 미워 죽겠다는 아내 등. 더는 자리에 앉아있기가 거북해서 자리를 피했다는 작가의 말이었다. 예비 퇴직자들이 모이면 퇴직하면 뭐 할래?가 인사다. 바로 내가 받는 인사가 되고 말았다.직장에 다니면서 취미생활로 한 점 두 점 수집했던 수석이나 분재 수집도 그만 둔지 몇 해 되었다. 그 뒤 시작한 것이 13년간의 서예 공부였는데, 갑자기 손 떨림 증후가 나타나 붓을 잡을 수가 없었다. 평탄한 아스팔트 길에 웅덩이가 생긴 것처럼 허무했다.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면 서예 공부를 계속할 수 있어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월남전에서 얻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걸핏하면 병원 신세 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병원생활이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말았다.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떨리는 손이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는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문학이다 싶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입문했다. 내 마음의 동장군이 풀리는 경칩의 절기가 온 것이다.동료 문우님들은 나와 같이 손 떨림 증후가 있는 분이 없었다. 부러웠다. 선배들은 작품을 발표하고 동료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데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선배들의 자상한 귀띔에 넋을 잃기도 했다. 두어 주 지났을까, 작품을 한 편 써 놓고 발표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선배가 주는 용기에 나도 발표할 기회를 갖기 시작했다. 여러 문우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다시 읽어가며 수정하기를 거듭했다. 문장이 매끄러울 때는 손도 떨리지 않는지 자판위에서 춤을 춘다.경칩이 지나면서부터 동장군을 잊듯 문학에 빠지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글감이다. 내 마음을 짓눌렀던 동장군이 기러기를 따라 북쪽으로 갔는지 평화롭다. 지난해, 부끄럽지만 수필집과 시집을 출간하고, 부안 해변에 있는 펜션을 빌려 한 달여 혼자 숙식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경칩이 지났으니 다시 걸어야지.△김정수 시인은 시는 《한국국보문학》 수필은 《대한문학》에 등단했다. 2016년에 시집 詩의 창에 꽃비 내리던 날, 수필집 파랑새 둥지를 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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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07 23:02

학교현장에 행복의 비타민을

항상 밝게 그리고 즐겁게 생활하며 살아가는 어느 호텔의 지배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소개하며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를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그는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어서 별의별 상황을 많이 겪었지만 유독 머릿속에 기억되는 일이 있다.어떤 손님이 투숙한 지 한 시간쯤 지난 후 프론트에 전화가 걸려왔다.한지와 풀, 그리고 가위를 가져다주시오.갑자기 어리둥절해진 직원은 지배인에게 손님의 말을 전했고, 지배인은 직접 그 객실로 올라갔다.손님, 어디 불편한 점이 있으십니까?아니요. 꼭 필요한 데가 있어서 그러니 조금 전에 부탁드린 물건을 가져다주시오.지배인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요구한 물품을 가져다 드렸다. 참 이상한 손님도 있군하고 생각했다. 이튿날 그 객실을 들어가 방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구멍 난 한지문이 곱게 발라져 있었다. 지배인은 그 즉시 호텔의 전 객실을 조사해 보았다. 찢어진 곳이 많았다. 지배인은 관심 있게 살펴보지 못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불평하지 않고 소리 없이 문을 바르고 가신 투숙객이 한없이 고맙게 생각되며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고 말했다.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숙어지곤 한다. 우리 주위를 관심 있게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구멍이 있는가? 겉은 멀쩡하지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 가정의 화목을 파괴하는 부정과 불성실, 직장에 대한 불평불만, 학생들의 현실도피적인 행동, 사회의 이기적인 몰인정, 몰이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 주변들이 이토록 허술하고 나약해져 가는 이 현실을 적시 진단하여 치유될 수 있도록 모두 작은 힘을 모아 상처들을 싸매 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학교는 사랑의 실천 장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의 현장에 도덕성 회복을 위한 교육은 지속되어 왔지만,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최근의 현상은 인간적 윤리의식의 결핍증세가 곳곳에서 나타나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학생의 가정들은 편부, 편모가 늘어나고 이혼 등으로 인한 부조화, 심지어 가정 폭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요사이 어느 교장의 죽음은 학교가 얼마나 반목과 갈등 속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대변해 주고 있다. 사회 역시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행복의 비타민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이 모든 사회적 병리현상은 사랑과 관심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비타민 결핍에서 오는 가정, 학교, 사회의 제 현상들을 사랑이란 단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교사들은 진실한 사랑으로 꿈나무의 미래를 밝게 열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는 사랑의 실천 도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LOVE이다. LOVE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네 가지 의미를 살펴보자.첫 번 째 글자 L은 Listen 즉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방 말에 관심을 가지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두 번 째 글자 O는 Open으로 여는 것이다. 내 마음을 열어서 상대방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아울러 내 약점도 솔직하게 내어 보임으로써 상대방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세 번 째 글자 V는 Value로 가치를 의미한다.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며 그를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마지막으로 네 번 째 글자 E는 Express, 곧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느낌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말과 혀로만 해서도 안 된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표현해야 함을 의미한다.당신은 지금 참된 의미의 사랑(LOVE)을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정오 수필가는 전북도교육청 장학관과 전주 전일중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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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31 23:02

희망의 불빛

선생님, ㄱ을 기억으로 쓰면 왜 틀리나요? 이름을 한문이 아니고, 왜 한자로 쓴다고 해야 하나요? tire의 발음은 왜 타이어인가요? 궁금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풀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상당한 날카로움(?)이 깃든 질문들이 쏟아지며 좁은 교실 안이 시끌벅적하다. 익산 구도심에 자리한 어느 여고 정문 앞, 오랜 시간 비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허름한 건물의 2층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다. 40~50년 전의 청소년으로 돌아간 중장년의 학생들이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서러움을 풀어보겠다고 머리를 싸맨 야학교실이다. 전등불 아래로 모여든 60대 전후의 이들 중?노년 학생들은 답답하고 어두웠던 지난날을 떨쳐내고 이제라도 밝은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일념으로 책과 씨름하고 있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그들의 꿈은 검정고시에 합격, 당당하게 학력을 인정받는 것이다.저녁식사는 하고 오셨나요? 아니~오. 대충대충 때우고 왔어요. 그러면서 손가방 속 누룽지며 고구마를 내놓고 시장기를 채운다. 애들처럼 군것질을 하는 교실 풍경에서 정겨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금방 설명을 했는데도 선생님, 조금 전 뭐라고 하셨지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수줍어도 열심히 질문하는 늦깎이들의 서툰 공부방이다. 그러기에 설명은 최대한 쉽고 천천히 해야 한다.눈빛 초롱초롱한 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색에 잠긴다. 하루 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온갖 힘든 일을 하며 가난한 시대를 까막눈으로 살았을 것이다. 서러움도 많았고, 숱한 날들을 남몰래 울기도 했을 것이다. 기억 조차 하기 싫을 만큼 아린 상처를 자녀들에게만은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른 채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사람들은 꿈을 꾸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훌쩍 늙어가고, 젊은 시절 꿈은 멀어져 있다. 건강했던 지난날들을 회상하면서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거나, 먼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움의 꿈은 이루고 싶다. 그 현장이 야학교실이다.그분들의 열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나는 최근 1960년 후반 대학시절부터 몸에 밴 야학강사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야학생들은 낮에는 점원이나 사환(使喚)생활을 하고, 배고픔을 맹물로 달래가며 주경야독했다. 야간학교에 찾아들었던 그 까까머리들은 이제 초로가 되어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당시의 그들은 젊었지만,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저 학생들은 중노년들이다. 각자 그 처지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배울 때를 놓쳐 서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과거에는 학업 시기를 놓치고 생업에 뛰어든 젊은 근로자들을 위한 산업체 학교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전 덕암정보고 산업체특별학급 졸업을 끝으로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배움을 갈망하는 중노년이 많다. 미력이나마 봉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삶은 자기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길을 향해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25시간을 하루 삼아 힘겹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년은 올해보다 좋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평생 공부하며 살아간다. 인생에서 나이는 부끄러움도 아니고 한계도 아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야학교실 전등불 아래로 모여든 저 나이 든 청춘들이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고 조만간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김형중 수필가는 익산 이일여고 교사를 거쳐 전북여고 교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시대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과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행촌수필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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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4 23:02

설날과 수입계란

설날 제사상에 들러선 손자들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빛살처럼 지나갔다. 그때의 제사음식은 가지 수도 많고 떡이며 전은 산봉우리 모양 수북이 쌓았다. 그런데 내가 차린 제사상에 올린 음식은 너무 간소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여자들은 제사상 앞에 얼씬도 못했는데 요즘은 마음만 있으면 절도한다. 어른들의 설복은 간편하나 아이들의 한복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다. 내 유년시절의 설빔은 할머니가 겨우내 짠 명주로 만든 빨강치마 노랑저고리는 로망이고 기쁨이었다.유교를 받들고 살아온 우리는 조상을 극진히 모셨다. 이러한 관습은 제사 음식은 우리 땅에서 난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님들이 행여나 제사상에 토종이 아닌 음식을 낯설어 하실까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명절 음식을 하려면 꼭 필요한 계란의 공급이 부족하니 정부에서 서둘러 수입을 했나보다. 부족하면 넉넉한 곳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 같은데 영 찝찝하다. 계란이 몇 개 남지 않았으니 어떤 계란을 살 것인지 망설이다 비싸도 우리 것으로 필요한 만큼 만 샀다. 나물 종류도 산지를 알아볼 방법이 없고, 수입 고기를 한우라고 속여 파는 세상이니 그저 조상님들의 아량을 바랄뿐이다.어릴 적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는 귀한 반찬 이었다. 교실 난로에 켜켜이 올려놓은 도시락들 사이로 풍겨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엄마가 내게만 특별히 챙겨주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소풍갈 때는 사이다 한 병과 삶은 달걀 한 개는 필수 기본 옵션이었다. 껍질 탁 소금 톡 하얀 흰자를 베어 물고 사이다 한 번 마시고 다시 노른자를 털어 넣고 사이다를 들이키면 소풍을 왔네 하는 실감이 났었다. 그런 추억의 계란이 되다니 씁쓸하다.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 한치 앞이 불투명하고, 국민은 찬반으로 등을 맞대고 있으니 어느 누가 설이라고 편할 수 있으리. 거기다 지난해 한 해 걸러 찾아온 AI(조류인플루엔자)는 독성이 강한 두 종류의 바이러스란다. 그래서인지 두어 달 만에 산란계의 3분의 1정도가 살쳐 분됐다. 우리나라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하면 3km 이내의 멀쩡한 닭까지 몽땅 쓸어 담아 땅에 파묻는다. 산목숨을 애도 한 마디 없이 묻는 사람이나, 당하는 닭들은 무슨 날벼락인가! AI가 오면 그때서야 방역을 한다고 교통을 통제하고 약을 살포하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는 모양새다. 민초들은 불안하다.우리보다 기술이 좀 뒤진다는 태국기업의 대형 양계장에서는 로봇을 이용해 닭을 돌본다고 한다. 로봇에 달린 센서를 이용해 닭들의 체온과 활동을 측정해 발병을 미연에 방지한다고 한다. 우린 번번이 막대한 살생으로 경제적인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환경과 정서적인 문제까지 깊은 주름으로 점철 되어야 하는가. 우선 닭 사육방식을 개선해야 예방도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첨단 과학시대에 조금 생각하면 왜 방법이 없겠는가. AI가 올 때마다 드는 매몰비와 방역 비, 피해 농가에 지급하는 보상비를 합치면 천문학적 수치이리라. 이렇게 세금에서 빠져나가는 금액을 예방대책비로 쓴다면 이토록 비참한 살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수입한 횐 달걀은 죄가 없지만 댕기지 않으니 쳐다보고 지나간다. 한편 생각하면 우리가 먹던 갈색계란은 안전한 먹거리였을까? 조악한 환경에서 항생제 까지 먹으며 낳아준 갈색계란이 횐 달걀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다. 동물이 병들면 그 연결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 또한 안심할 수 있을까!대선이 다가 온다. 설이 기다려지고 계란 까지 수입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갈 적임자는 누구일까?△이의 수필가는 전직 교사로 대학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행촌수필문학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자나이 마흔둘 마흔셋〉, 〈오이 밭에 새 둥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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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17 23:02

거짓말쟁이 우리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며칠전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뤄진 1시간짜리 인터뷰에서 단 하나의 탄핵사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이야기들이 오해며 허구라고 반박했다. 또 개혁과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합류, 자신의 탄핵을 오래전부터 기획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친정인 새누리당 역시 싸늘한 분위기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 발언은) 민심과 동떨어진 언급이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며 합리적이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인터뷰였다고 평했다어떤 정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의 설 밥상에 국정농단이란 주제도 모자라 오리발까지 올려놨다고 하면서 반박할 게 있으면 청와대 관저에 숨어 떼를 쓸 게 아니라 헌재에 나와 스스로 변호하길 바란다고 했다.난국에 태어나지 안 했어야 했나. 거짓말을 너무나 잘하는 공주였나. 왕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백설 공주였나. 그런 공주를 되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 공주를 저 멀리 쫓아냈어야 했다. 훌륭하게 거짓말하는 공주가 되었다.어울려서는 안 되는 공주의 남자(최태민)를, 만나지 안 했어야 했다. 거기에서 시작했고 그 뿌리에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온 나라를 거짓말 왕국을 만들었다. 그런 공주에게 나라를 맡겨 온 나라가 거짓말 경쟁국이 되었고 쑥대밭이 되었다.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착하고 유능한 각료들도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거짓말이다. 사실무근이다. 유튜브에 나오는 내용이 거짓말이고 사실무근인가? 녹취록일 뿐 사실 확인은 안 되었으며 판단은 구독자의 몫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말도 거짓말인가. 청문회에서 물어보는 호가호위했던 거창한 여자 한사람 이름(최순실)을 들어보지도 전화 한일도 만나지도 모른다고 했다. 기억도 없다고 했고 .알 것이라고 했는데 모른다고 대답 했다. 뻔뻔스럽다. 2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탄핵에 찬성했다. 배신자일까?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인 것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수첩공주로 보는 면에서 수첩에 적은 대로 인사도 발언도 하고 대통령의 딸이었고 정치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아버지로 부터 정치 수업을 받았고 그 인기 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소통을 못하고 한번 믿으면 끝가지 믿어주는 태도도 마찬가지다.다른 면은 1974년 8월15일 어머니, 5년 후 1979년 10월26일 아버지를 잃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청와대를 나올 때의 의연한 모습을 말하기도 했다. 부모도 안 계시고 남편도, 자식도 없으나 재산은 있으니 부정 없이 잘 할 것이다라고.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게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다고. 그리고 TV를 통해서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편해진다고 했단다.요즘에는 TV에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면 시선을 돌린다.한나라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신분에 맞게 하셔야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 너무 많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많이 유튜브 동영상에 또 스마트폰 카카오에 보이는 상황이다. 서울 사는 친구가 박사모 모임에 나가서 태극기를 휘저으며 의견을 제시했다기에 또 한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탄핵 끝까지 꼭 가야 할까 생각되기도 했다.불확실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거기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만민평등 복음정신에 어긋나는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새해이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건강관리 잘 하자.△이남구 수필가는 〈문예사조〉로 등단했으며, 전주대 사대부고에서 퇴직했다. 전북수필문학회장과 영호남수문학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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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10 23:02

소한에 핀 명자

지난 12월 초, 뜨락 담 아래 새똥 빠지게 명자나무의 꽃이 두 세 송이 살짝 얼굴을 내밀더니, 이번에는 모든 사물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추운 절기인 소한 무렵 검붉은 숭어리에서 대여섯 송이가 활짝 피어 내 눈을 의심케 했다.춘삼월에 피어야 할 꽃이 동지섣달 매서운 시절에 꽃을 피우다니 이상의 현실에 난감하면서도 나는 한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 집 뜨락의 명자나무 꽃만이 양지바른 언덕에선 개나리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런 이상 현상이 모두 제트기류 때문이란다.그러더니 대한이 당도하자 그 이름값을 하며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1주일 가까이 계속되어 힘들었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立冬)에서 시작하여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산골짜기와 하천이 있어선지 시내보다 5도 정도 더 낮게 체감한다.2017년 정유년을 붉은 닭의 해라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닭들을 보아왔지만 붉은 닭은 생소하다. 그러나 어감 상 붉은 닭 하면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좀 더 이해를 돕자면 붉다는 것은 밝다는 뜻이기도 해서 정유년을 밝은 닭의 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밝다는 것은 사람에게서는 총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유년을 총명한 닭의 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상서로운 기운에, 나도 생각지도 않은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 수반에 꽂아 보름 정도 더 감상했다. 향기가 멀리까지 간다는 천리향 작은 철쭉 분을 방안에 들여 한결 코와 눈의 호사도 부려보았다. 방안 가득한 향을 인공 향수와 비하랴. 그 맑고 상큼한 향 때문인지 추운 날인데도 추운 기분은 뒤로 물러서고 나는 그 향기에 취해있다.어느새 70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달려온 나를 반추해 본다. 풀 한 포기도 자연의 일부로 다 제 길을 가는 게 뭐 나쁠까마는, 꼭 정원의 예쁜 꽃 보다는 길가의 풀 한 포기로 만족하면서 욕심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꽃을 대단히 좋아는 나는 올해에는 뜨락에 꽃 양귀비와 수레국화를 심으려 했지만 이름 없는 들풀들도 함께 심어보려 한다. 내가 들풀들을 유독 좋아하는 것은 그 풀들이 저마다 독특한 풀 향기를 내뿜고 있어서가 아니다 세찬 바람엔 조용히 누워주고 잔바람엔 살짝 일어나 그윽한 향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무명의 들풀들도 비가 오면 모두가 젖는다. 들풀은 그 속에서 온몸을 적시며 발뒤꿈치를 든다. 누가 알아주랴 그의 이름을, 그래도 그들은 파란 생명의 등불을 켠다. 이름은 없어도 신선한 등불을. 그리고 들풀은 들풀끼리 어울려 산다. 갖가지 모양새, 수수한 차림새로 오가는 길손이야 보든 말든 바람 부는 대로 하느작거리는 몸짓으로 서로 어깨를 비비며 머리를 맞대고 하냥 즐겁다. 거목의 꿈은 아니어도 생명의 빛을 세상에 펼친다. 푸르게 그러나 조용히 설레면서 들풀은 들풀끼리 어울려 산다. 이러한 들풀들을 심약한 가지의 양귀비와 수레국화 사이에 심어 놓으면 서로 의지하며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화원에서 구입해 피우는 꽃도 좋지만, 들풀과 더불어 마음속에 항상 곱고 알알이 맺힌 작은 송이를 만들며 웃고 살면 일석이조로 건강하고 행복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작년부터 세상이 뒤숭숭한 세월 속에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꽃을 보고 가꾸며 위로하고 그럴수록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 없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붉은 닭의 해인 올해는 닭의 오덕 중 여명을 알리는 부지런함과, 여럿이 먹이를 먹는 것에서 배려하는 마음을 올해는 더 배우련다.△임영희 수필가는 전북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어 문학에 입문해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문화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야기할머니로 유치원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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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3 23:02

겨울 햇볕과 함께

아침 공기가 차갑다.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 정보대로다. 겨울이면 춥고 눈 오는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치니 추위에 몸은 움츠러들어 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 아침 뉴스를 들었다. 하루하루 전해지는 뉴스가 희망보다는 참담하고 우울한 소식이 더 많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영민하지 못하면 국가는 혼돈에 빠지고 국민은 도탄에 떨어지게 된다는 점을 자주 느끼게 한다. 해를 넘기며 벌어지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예부터 사람의 기본은 진퇴를 잘한 사람이라 배웠다. 나라가 빨리 안정이 되었으면 한다.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기린봉에 보이는 눈이 하얗다. 차가운 날씨에 녹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겨울의 햇볕은 포근하기도 하다. 거실에 옮겨 놓은 화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겨울잠에 빠져 있는 화초의 모습이 느긋해 보인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옹기종기 어깨와 팔을 맞대고 있는 모습들이 친근하다. 아마도 춥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바깥 자연과 더불어 지낼 일이 기다려지는 눈치다. 겨울이면 거실로 오고, 봄이면 바깥으로 나가는 환경에 순응하는 법도를 익히는 듯하다.따뜻한 겨울 햇볕을 받으며 거실의 화초를 보면서 진퇴라는 말에 생각이 머문다. 어릴 때 다투고 싸우던 일들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한 번 뒤로 물러섰다면 싸우는 일이 없었을 거 아닌가. 어려서 물 뿌리고 청소하며 어른에게 공손히 대하고 나아감과 물러섬을 배워왔건만, 고희를 살아온 내게 진퇴를 아는가, 누가 묻는다면 제대로 실행을 못 하였으니 그저 웃을 따름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직분을 다하고, 일을 마치면 물러나야 한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은 진퇴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매한 내가 진퇴를 속 시원히 말할 수가 있겠는가마는 누구나 자신을 위한 생각은 있으리라 여긴다.세상일은 진퇴로 이루어지고 마감한다는 생각이 든다. 순리와 천명에 따라 현명한 진퇴를 결정한 사람에게는 존경과 찬사가 뒤따르고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역사에도 길이길이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진퇴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여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었다. 이는 나라보다 개인의 영욕이 앞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생뿐만이 아니다. 전쟁에서도 진퇴의 판단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남는다. 현명한 진퇴로 사랑과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우리는 흔히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가. 태평 성대한 시대를 요순시대라 말한다. 요순의 뒤를 이은 우임금의 일화가 있다. 우는 치수 사업을 잘해서 태평성세를 이룬 임금이다. 치수 사업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청렴하였던지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도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있는 모습을 보면서 새겨들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지도자, 정치하는 사람들은 진실한 마음가짐이 더욱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고사에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고, 과일나무 아래서 갓을 바로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멀리서는 밭에서 오이를 따는 모습이고, 과일을 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으로부터 의심 살만한 행동은 말라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정해지면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나라가 비리로 먹칠 되어 있는 모양새다. 국가 비리로 법원의 심판을 받아 결과가 나올 것이나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고 모두 발뺌을 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고 존경했다면 오늘날의 탄핵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많은 사람이 원할 때 오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진퇴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한 나라의 혼돈 시대를 피할 수 있다. 국가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정체 상태이다. 하루빨리 이 모든 일이 해결되어 나라가 정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따뜻한 겨울 햇볕을 받으니 바깥 추위를 잊은 듯하다. 고서인 소학의 쇄소, 응대, 진퇴의 구절이 생각나서 다시 새겨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먼저 수신하고 치국에 뜻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윤재석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 협회원, 영호남 수필문학회원이다. 안골은빛 수필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집 〈삶은 기다림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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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4 23:02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

그가 훌쩍 떠난 지 일 년이 넘었다. 빨갛고 노란 단풍이 온 산에서 넉장거리 하던 재작년 가을 어느 날 그는 갔다. 그 해 봄에만 해도 생때같았던 그가 몇 달 사이에 그만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봄의 끝물쯤이었을까, 그가 위암이라는 소식이 풍문에 들려왔지만 직접 물어보기 멋쩍어 언저리만 맴돌며 살피기만 했다. 워낙 밝은 표정인 데다 평소처럼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성으로 보아 병이 그리 위중하리라고는 짐작조차도 못 했다. 수술하고 잘 조리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개복하고 보니 복막까지 전이되어 더는 손을 대지 못하고 닫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살다보니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하루하루가 바쁘다. 타고난 조급증 탓에 몸이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쁜 것인지도 모른다. L의 병세가 빠른 속도로 악화하여 집에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가 보지 못했다.그를 병원으로 옮겼다는 연락이 왔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하여 임종예배까지 미리 드렸다기에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다급히 병원으로 찾아갔다. 몸이 밭아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늠름했던 풍채는 어디로 가고 몰골이 너무 왜소하게 보였다. 그래도 듣던 것보단 약간 나았다.가족들은 의식조차 없었는데 하루 사이에 사람을 모두 알아보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좋아졌다며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위한 배려였을 줄이야. 수발하던 부인이 내가 왔음을 알리자 감았던 눈을 뜨며 희미하게 웃었다. 가만히 손을 잡았다. 그도 손을 맞잡았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저 맞잡은 손에 힘을 더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편안하게 그는 저 세상으로 갔다. 그가 떠난 지 벌써 2년째, 지금도 지인들끼리 모이면 그의 얘기하며 추억을 더듬는다. 시간이 갈수록 추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그와의 아름다운 기억들은 더욱 또렷해지고 어제 일처럼 느껴짐은 어인 까닭일까.나는 요즘 들어 가끔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사후세계에 대해 궁금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느 것 하나도 답이 없다. 그러잖아도 짧은 인생을 죽어보기 전에는 티끌만큼도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사유로 허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그보다는 죽음을 전제로 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때가 많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지인들의 부음을 전해 듣고 문상을 다녀온 날이면 이런 생각들이 더욱 깊어진다. 내가 죽어버리면 세상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면 애착을 가지던 일들이 시들해지고 가슴이 스산해지며 모두가 덧없이 느껴진다.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 있는 것은, 죽음이란 것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실제로 사는 모습을 보면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소유에 집착하며 욕심껏 움켜쥐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이 많다. 하나같이 생명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두려워 떤다. 나도 그들의 하나이지만.삶에 대한 애착이 결코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살면서 잊었던 것을 챙기듯 가끔은 죽음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집착하고 있는 일, 애착을 가지고 아끼는 것들을 천칭 저울의 한쪽 접시에 담고 반대쪽에 죽음을 올려 기울기를 달아볼 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을 남은 시간의 빈 그릇에 어떤 삶의 내용을 채워야 할까? 죽음을 전제로 삶의 가치를 천칭에 저울질하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며 살아야겠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소망을 담아서.△윤철 수필가는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진안군 부군수를 역임했으며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수필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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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17 23:02

민주공화국 열차

우리는 요즈음 TV, 신문, SNS 등에서 국회청문회나 특검들의 심문 앞에서 당연히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증인들이나 죄인들이 묵비권을 행사 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감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래서 요즈음 죄인들이 죄를 짓고서 빠져 나갈 길은, 첫째, 무조건 부인하고, 둘째, 변호사를 선임하고 셋째, 그것도 저것도 안 되겠거든 아예 숨어버리면 된다는 말이 회자 되고 있다.우리나라의 법에는 경찰들이나 법집행자들이 죄인들을 구속 할 때는 소위 미란다 법칙을 말해준다. 즉 피의자는 진술거부권을 가지고 있으며 피의자의 진술이 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과 피의자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인지 죄인들 모두, 하나 같이 부인을 하며 변호사를 선임하고 있다. 우리의 직업 중 남의 일을 대신해 주는 대리라는 직업이 있는데 대리운전기사, 대리강사. 대리모. 등 수없이 많다.지난날 우리는 대리 대통령의 통치하에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최순실아라는 여자가 대통령을 대리해 국정을 농단을 하여 이 나라를 참담하게 했고, 나라 안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광화문 앞에 모여서 촛불을 밝히고 나라를 바르게 세우자는 군중집회를 열고 소리를 높였다. 어떤 정치가는 바람이 불면 촛불은 곧 꺼질 거라 했지만 촛불은 아지도 그칠 줄 모르고 불타고 있었다. 지금은 비둘기 열차보다도 더 느린 탄핵열차를 발차시켰지만 이 탄핵열차는 속도가 국회 역에서 청와대 역까지 다가가며 무서운 탄력을 받으리라 생각한다.일부 사람들은 헌법재판소라는 역에서 기각되어 다시 뒤돌아 올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촛불대신 태극기를 들었지만 분명코 탄핵열차는 무사히 질주하여 목적지에 도착해서 새로운 기관사가 운전하는 대한민국 공화국 열차에 모든 국민들이 탑승하여 모두가 소원하는 복지국가로 함께 달릴 것이다.한 때는 고속성장을 하며 세계조선업 1위를 차지했고, 디지털강국 이란 명예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나라가 되어 추락되고 말았다.노블레스 오블리주 라고 지도층이 더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도층들이 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가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이제는 정권을 바꾸는 것이아니라 정치를 바꾸어야한다고 잠용들이 일어나 외쳐대지만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인지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러는 사이 미국, 중국, 일본 강대국들은 자기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 정치, 경재, 등 우리나라를 목조여 오지만 아직도 우리 정치인들은 대권 등 자리 싸움에만 연연하며 양분화 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이제는 모든 국민이 지혜와 힘을 한 곳으로 모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국민 모두가 잘살고 평등한 민주주의 복지나라를 끌고 갈 민주공화국 열차를 다시금 힘찬 발차를 해야 한다.△ 전주웅 수필가는 2001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한국전력공사에서 퇴직했으며 전북대학교 사회교육원의 문예창작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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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10 23:02

청동 주전자

보물 1683-2호인 하피첩(霞巾+皮帖)은 다산 정약용이 1810년 귀양지인 전남 강진에서 부인이 보내준 치맛감에 학연, 학유 두 아들을 위해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본래 네 첩이었으나 하나는 사라지고 세 첩만이 전한다. 얼마 전 서울 옥션 경매장에서 정약용의 하피첩은 7억 5000만원이라는 고가에 낙찰됐다. 하피첩이 경매장에 나오기 까지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한 폐지 수거자에게서 발견된 하피첩은 고서적 수집상에 넘어가고 다시 이것이 서울 옥션 경매장에 모습을 보이면서 세인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이렇게 우리의 문화재가 고가로 경매되는 것은 첫째는 수집가의 수집의 벽으로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작품의 중요성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귀한 문화재가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전통 문화재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가 높아지는 작금의 현실이다.나는 화요일 오후가 되면 낯 익은 소도시의 경매장엘 간다. 소품으로 된 청동제품 그것도 특히 청동 주전자를 낙찰받기 위해서다. 경매장에는 근현대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물품들이 출품된다. 우리 생활에서 낮 익은 물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희귀한 물건들도 가끔씩 출품되어 열띤 경매의 경쟁으로 호가를 올린다. 다행인 것은 사라져 가는 민속 물품들도 상당수 출품되어 경매장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어 여간 흥미롭지가 않다.56년 동안 나는 이곳에서 청동주전자를 100여 점, 청동 불상을 20여점, 청동 향로와 화로를 10여점 수집했다. 그 중에서 제일 내 마음을 사로잡는 물건은 청동 주전자이다. 주전자 모양이 천차만별이어서 여간 귀엽지가 않다. 지금까지 수없이 낙찰을 했어도 단 한 번도 똑같은 물건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재수좋은 날은 3-4점 낙찰 받기도 했고 제품이 출품되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허다했다. 그리고 주전자 모양이 주변의 동물모양의 오리, 개, 소, 돼지, 여우 등을 본떠서 만든 게 대다수인데 모두가 다양한 특징을 지녔다. 주로 중국의 명나라, 원나라, 청나라 때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모두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참으로 흥미가 쏠쏠하다.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주전자를 보면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고 나만이 느끼는 큰 보람을 얻게 된다. 자연 청동 제품만을 고집하다보니 불상도 20 여점 수집을 했는데 책장에 잘 진열해 놓았다. 그리고 아침으로 합장 배례 후 출근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낀다. 종교의 마력이다.이제는 진열해야 할 장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책장 틈 사이 이곳저곳에 겹치게 넣어 두다보니 무질서함이 그야말로 고물상이다. 집사람은 아연 실색을 하고 정리하라고 성화지만 나만이 즐기는 물건이라 가끔 끄집어내어 놓고 먼지를 닦아주면 반질반질한 윤기가 여간 매력적이 아니다. 이제 장을 놓을 자리를 물색해야 되지만 한 점 한 점 모아지는 소품들이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기쁨을 안겨주는 것들이어서 나는 화요일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기쁨의 날이 되었다.△최상섭 수필가이자 시인은 김제 출생으로 한국시와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독서진흥위원과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등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까치는 징검다리에 수(繡)를 놓고〉 등 6권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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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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