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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지도 않은 불청객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밤새 사무실에는 또 두 장의 팩스가 들어와 있다. 노트북을 홍보하는 전단지와 4금융권에서 날아온 대출안내서다. 점심때가 되자 또 한 장의 팩스가 들어온다. 직장인을 상대로 연 5.5%의 저리로 1억5천만 원까지 대출해주겠다는 것이다. 은행에 찾아오지 않아도 연락만 주면 직접 방문하여 상담하겠다고 한다. 이렇듯 반갑지 않은 판촉물들이 하루에도 몇 장씩 방문한다. 담당자에게 팩스 받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겠다고 했지만 잠시뿐, 잊을만하면 또다시 날아든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보내려면 종이값이라도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막무가내. 전화로 큰 소리 한번 쳐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곳에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 성큼 전화하기도 망설여진다. 그냥 못 본체하고 버리면 될 일이지만 팩스용지가 아깝다. 팩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화공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름도 낯선 잡지사와 리서치단체에서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정도로 수준급의 프로들이다. 잠깐이면 된다고 하지만 거의 10여분을 물고 늘어진다. 어제는 폴더형 내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겠다는 전화가 오더니, 암보험을 들었던 회사에서 치매와 뇌졸중을 들먹이며 선심을 쓰듯 노인병보험을 들으라고 졸라댄다. 화가 치밀어 한번만 더 전화하면 암보험까지 해약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되레 손님만 손해라며 으름장을 피운다.귀찮은 전화는 또 있다.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전화다. 이 사람들은 거의 상습적이고 근성이 강해 한번 물고 늘어지면 놓지 않는 하이에나와 같다. 한번은 돈이 없다, 아직은 건강하다. 회의 중이다.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회피했지만 결국 끈질긴 들이대기에 손을 들었다. 일단 시음용 제품을 먹어본 다음에 맘에 들면 구입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며칠 뒤 도착한 것은 시음용 제품이 아니라 견본제품이 들어있는 건강식품 한 박스였다. 되돌려 보내려고 전화했더니 뜯어본 것은 반납할 수 없다.며 오히려 지로용지를 보내왔다. 다행히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반납했지만 상도덕을 무시한 이들의 영업 전략에 울며 겨자 먹듯 피해 보는 사람들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지금 사무실 한쪽에는 뜯지도 않은 불청객, 박스 하나가 방치돼 있다. 서울에 주소를 둔 한국장애우공동체라는 곳에서 보내온 수제비누다. 지난해 사정사정하는 전화가 걸려와 어쩔 수없이 구입해 줬더니 올해는 묻지도 않고 또 보내왔다. 참으로 얄밉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어떤 사업이든 홍보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잡이로 팩스를 보내는 광고행위는 상도덕이 아니다. 남의 휴지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나 다름없다. 또한 남의 입장은 무시한 채 끈질기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 역시 못마땅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반강제로 제품을 보내고 뜯어본 제품은 반납할 수 없다는 판매전술은 참으로 비겁하고 치졸하기까지 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최고의 판촉행위가 아닐는지.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 팩스홍보나 전화판촉을 규제하는 규정은 없는지 알아볼 일이다.△수필가 백봉기 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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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5 23:02

한글전용의 허와 실

한글전용이란 모든 글자를 한글로만 쓰는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뜻 자체도 순 우리말로 써야 한다는 말인가? 아리송하다 “지독한 감기로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괜찮다. 그런데 나는 나았지만 이번에는 동생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조용했지만 나사가 풀린 듯한 목소리에서 나는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나에게 전염이 되었나 싶어 은근히 겁도 났다. 어렸을 때는 허구한 날 나를 귀찮게 해서 내가 가끔씩 혼내주던 그 동생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이렇게 한자 없이 오직 한글로만 쓰여 진 이런 글귀를 보면 언뜻 한자어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고 순전히 우리말로만 된 글같이 보인다. 그래서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글귀를 좋아할 것이고 이런 글이 한글만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글 속에는 많은 한자가 숨어 있다.그 첫 마디 지독(至毒)하다는 말은 어떤 상태가 독(毒)에 이를(至) 정도로 아주 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감기(感氣)라는 말은 차가운 기운(氣)을 슬쩍 느끼기(感)만 해도 걸리는 병이라 해서 붙여진 말이다. 고생은 어렵고 힘든 경험이 곧 쓴(苦) 인생살이(生)이기에 고생(苦生)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즈음 이 구절을 “至毒한 感氣로 苦生했다”고 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이미 우리말로 토착돼 굳이 한자로 표시할 필요도 없고 한자어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단지 그 본디가 한자어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기분은 괜찮다.”라는 구절에서도 기분(氣分)이 한자의 뿌리를 갖고 있다. ‘기운 기(氣)’자는 이렇게 감기나 기분 같은 말의 뿌리가 되었지만 그 자체로도 기(氣)가 차다, 기(氣)가 막히다, 기(氣)가 꺾이다, 기(氣)가 죽다, 기(氣)가 살다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말 속에 일찍부터 기(氣)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기(氣)에 심취하고자 기(氣)를 쓰는지도 알 듯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괜찮다’는 말에 숨어 있는 한자를 찾아내는 일이다. ‘괜찮다’라고 세 마디소리(三音節)로 줄어 든 이 말의 어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괜치 않다, 괜치 아니하다, 괜ㅎ지 아니하다......’ 등으로 밝혀지고 마지막에는 ‘관계(關係)하지 아니하다’라는 한자어가 담긴 본디 말을 찾게 된다. 어떤 일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데서 ‘괜찮다’라는 표현이 생긴 것이다. ‘귀(貴)하지 아니하다’가 줄어서 ‘귀찮다’가 된 것이나 ‘공연(空然)히’가 줄어서 ‘괜히’가 된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괜찮다, 귀찮다, 괜히’ 같은 말이 우리말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많은 우리말이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동생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에서 동생도 같은(同) 부모에게서 낳았다고(生) 해서 동생(同生)이다. 예사(例事)롭다, 이상(異狀 또는 異常)하다도 한자어다. ‘조용하다’는 말도 원래 ‘종용(從容)하다’가 변한 것이다. 겉으로는 안 보이지만 한자어가 우리말 속에 ‘조용히’ 들어와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굳건(健)하다, 익숙(熟)하다, 말쑥(淑)하다, 얄팍(薄)하다, 멀쩡(淨)하다, 스산(酸)하다, 썰렁(凉)하다, 두둑(篤)하다, 착(?)하다, 성(成)하다, 환(煥)하다, 용(靈)하다 등 무수히 많다.‘나사(螺絲)’라는 말이 한자어라는 것은 모르더라도 영어나 불어라고는 하지 말아야겠다.물론 ‘분명히, 도저히, 심지어, 대체, 도대체, 대관절’같은 부사도 한글로 정착된 말이지만 그 어원은 ‘勿論(물론), 分明(분명)히, 到底(도저)히, 甚至於(심지어), 大體(대체), 都大體(도대체), 大關節(대관절)’이다. 우리말이 본래 한자어라고 해서 반드시 한자로 적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많은 ‘우리말’ 속에 한자어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자 함이다.△남원 출신인 안도 작가(67)는 1982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동화집 〈민들레의 꿈〉, 〈선생님은 미운가봐〉, 〈산에는 꽃이 피네〉와 시집 〈지하수〉 등이 있다. 현재 제30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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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8 23:02

물처럼 바람처럼

만덕산 아래 자그만 터를 마련해 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5년이 다 돼 간다. 이젠 지나는 길손이나 만나는 마을사람마다 농사를 잘 짓는다고 말하는 걸 보면 반농부가 다 된 것 같다. 철따라 생산되는 푸성귀나 오이, 방울토마토, 가지, 수박, 참외 등을 아들, 딸에게 보내기도 하고 간혹 친구들에게도 맛을 보여주는 나눔의 기쁨이 쏠쏠하기 그지없다. 봄이 되면 고사리를 따러오는 친구들과 술도 한 잔 나누고, 시시 때때로 흐르는 구름을 보거나 바람을 쐬러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어 산 속의 삶이 외롭진 않다. 마치 어찌하여 청산에 사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음만 지을 뿐, 대답은 아니 해도 마음은 한가로웠다는 이백의 ‘산중문답’의 경지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싶다. 때론 안개구름이 산등성이를 감돌아 여기가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야릇한 산내움을 실은 바람이 불어와 풀꽃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살갗을 흘러내리며 세상에서 더러워진 나를 상긋이 씻어준다. 이따금 산 속을 흔드는 바람이 갑자기 일어 나뭇잎을 뒤흔드는 통에 나무의 잎이 뒤집혀 마치 하얀 꽃잎을 피워낸 듯 온 산이 아름다운 화원인 양 연출하기도 한다. 이를 본 친구는 이 무슨 하얀 꽃들이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피었냐고 탄사를 늘어놓다가도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채고는 머쓱하게 웃기도 한다. 이런 바람이 여름날 반드시 소나기를 몰고 오는 마중물 같은 돌풍이란 걸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 깨달은 것은 한참 지난 후였다. 올 봄엔 들깨 씨를 두 번이나 뿌렸다. 보이지도 않을 작은 들깨 씨들을 새들이 모두다 쪼아버려 깨 농사를 망칠 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순식간에 수십 마리로 늘어나 들깨 밭을 싹쓸이 했다. 농사를 망치는 새로 말하자면 까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새다. 좋은 소식을 알린다는 길조가 아니라, 아예 농사를 망가뜨리는 못된 망조(亡鳥)다. 그러나 나를 한없이 즐겁게 해주는 새는 뭐니 뭐니 해도 초록과 황금색깔의 아름다운 옷을 곱게 차려입은 꾀꼬리다. 이 새야말로 봄부터 여름철에 이르기까지 나를 반기는 진객 중의 진객이다. 꾀꼬리는 홀로인가 싶으면 어느새 다른 짝이 뒤를 따라 날아간다. ‘꾀꼬리는 훨훨/ 쌍쌍이 노니는데, 나만이 외로우니/ 그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까?’라 노래한 유리왕의 사랑도 읽을 만하다. 어디 이뿐이랴? 연미복보다 더 멋지고 날렵한 옷을 입은 장끼가 날아와 나래를 접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수더분하게 차려입은 까투리가 뒤따르며 화려한 장끼를 더욱 멋쟁이로 북돋운다. 앙증맞은 새끼들 서너 마리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며 엄마 뒤를 따른다. 멀찍이 고라니가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이들을 쳐다보고는 자리를 슬며시 내어주기도 한다. 영락없는 한 폭의 풍경화다. 소설가 박경리나 박완서가 원주의 산골과 구리의 시골에서 자연을 벗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간 까닭을 알만도 하다. 흐르는 물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툴 일 없고, 보이지 않아도 온갖 산의 향기 실어다 가슴에 안겨다 주는 산바람이 있어 세상이 부럽지 않다. 하니 산 좋고 물 좋은 산 속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래서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 〈도덕경〉에 담긴 상선약수(上善若水)! 대문호 톨스토이도 1884년 3월의 일기에서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은 노자가 이른 물이라 했다. 물은 막히지 않으면 흐르고, 막히면 멈췄다가 차고 넘쳐 다시 흘러간다. 담기는 용기(用器) 따라 제 모양이 바뀌더라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이내 순응한다. 그런 까닭에 물은 무엇보다 귀하고, 무엇보다 강한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그리 말했나보다.△수필가 전일환 씨는 장수 출신으로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다. 지난 1993년 〈한국수필〉에 ‘그 말 한마디’로 등단했다. 저서로 수필집 〈그 말 한마디〉(2008), 〈예전엔 정말 왜 몰랐을까〉(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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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1 23:02

샴페인인가 쓴잔인가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했다.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급 이집트에서 억압과 고난 속에서 살아온 민족을 신이 그들을 이끌어 주었다. 그날이 유월절이다. 우리에게 독립기념일이 있다면 유대인에게는 유월절이 있다. 그날을 맞이하여 쓴잔을 마시며 맞이한다. 환희의 고향 고국 땅에서 샴페인 터트리고 그 감격을 맞이해도 부족할 탠대 그들은 쓴잔을 마신다고 하니, 그날의 비극에 역사를 잊고 새로운 미래로 가자는 야심찬 다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도 광복70주년을 맞이하였다. 과거의 역사를 생각하며 그때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압제 속에서 살아왔던 그때를 한 번 더 기억해 보아야 하며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고 처형되고 몸 받쳐온 애국지사들 그 희생의 정신을 기리고 살아야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큰 나무가 되듯이 역사는 뿌리다.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유와 행복이 있다고 그때를 잊은 다면 우리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면, 또 언제 우리가 그때처럼 불행한 역사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적은 항상 사회가 타락되고 갈등과 분쟁 내부적 내분이 있을 때에 침투한다. 적은 항상 우리 안에 있었다.1540년대 당시의 정세는 양반 관료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당쟁으로 나라 안은 온통 파당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또한 부정부패는 서민들의 생활은 물론 국운이 기울대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일본은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국력을 키워 대륙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에 일본의 정세를 파악 하기위해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이중 한 사람은 간신이고 한사람은 충신이다. 지도자는 당연이 충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간신의 말을 들었다 그 원인은 정치적 이해관계 당파싸움의 연관이다. 간신은 항상 샴페인 잔을 올려, 임금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충신은 항상 쓴잔을 바른 소리란 채찍질과도 같다. 충신은 일본이 대륙진출을 할 것이라고 보고하였고 10만의 양병 설을 주장했다. 간신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를 했다. 임금은 간신의 보고를 들어 주어 백성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엄청난 민족의 비극을 주고 말았다.항상 우리를 속이는 자는 거짓으로 유혹한다. 지도자는 항상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백성을 보라 백성과 함께 희생의 정신으로 살아야한다. 지도자는 먼 곳을 바라보라.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가지는 서쪽 그 넘어 지평선을 보이지 않는 곳도 보아야한다. 그것이 능력이고 지혜다. 현장을 살피라 우리의 적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우리사회는 충신이 있고 간신이 있다. 갈등과 분쟁 거짓 선동이 있을지라도 지도자에 강력한 리드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것 이것이 남북통일로 가는 길이다. 통일이란 우리사회에 불신이 없어야 하며 갈등과 분쟁 지역갈등 타파하지 못한다면 남북통일도 바라 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 튼튼한 반석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 국력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튼튼한 안보와 국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미래로 나갈 수가 있다. 일본은 지금 자기의 반성이 없다. 제국시대로 꿈을 가지고 있지나 않는가. 일본은 쓴잔을 마시며 안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국력을 키워 다시제국의 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대한민국은 하나로 가야 한다. 힘을 합쳐야 한다. 미래를 보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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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4 23:02

찜통 더위와 하회탈

금년 여름은 유난히 찜통더위에 힘들었다. 아침부터 찾아든 더위는 그야말로 푹푹 삶는다는 표현이 맞는 듯싶다. 이런 더위가 밤 2, 3시가 넘어서야 제풀에 고개를 숙였으니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선풍기와 에어컨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막내딸이 손자 성일에게 어린이집에서 방학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전주 할아버지 집에 가겠다고 했다니 싫진 안했다.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린 8월 초의 어느날 아침 짐을 챙겨 식구들과 완주군 동상면 계곡으로 달렸다. 굽이진 시골길을 드라이브 하며 코끝에 스치는 아침 공기가 매우 상쾌했다. 길가의 논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며 초록으로 물들었다. 어린 시절, 이 논 저 논에서 도열병에 걸려 붉은 빛으로 물든 논이 많았는데, 그런 논은 한 곳도 보이지 않으니 농사기술이 향상된 것이리라. 나같이 늦깎이 농사꾼도 벼 한 포기 병에 걸린 게 없을 정도니 말이다.자식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나가면 다리 밑을 좋아했던 아내는 이 날도 어김없이 다리가 보일 때마다 승용차를 멈추게 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다리가 햇빛을 가려주니 시원하기 때문이다. 이날도 다리 밑에 가서 살펴보니 평상은 아직도 사용할 때가 아닌 듯 언덕에서 잠자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려고 만들어 놓지 않았나 싶었다. 아내는 그곳에서 놀다보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그러기를 서너 번. 동상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운일암 반일암 쪽으로 꺾으니 그야말로 천막과 평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다가 신원리 촌락이라는 평상을 대여하는 곳에서 맘에 드는 평상을 골라 여장을 풀었다.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평상에 누우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물놀이가 목적인 성일이는 튜브를 들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손자에게는 광대가 되어야 따르는 것이 요즘 세태이지 않은가. 성일이 튜브를 밀어주고 끌어주니 하회탈이 되어 행복만점이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는가 싶다. 외가나 친가나 할아버지 사진도 보지 못하고 자랐으니, 성일이와 많이 놀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성일이를 튜브에 태워 주다가 생각하니 천직이 발동되었다. 성일이 혼자 튜브를 타고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저어보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성일이는 물장구치라는 줄 알고 수면을 두드리니 물방울만 튈 뿐이다. 다시 손가락을 모으고 뒤로 저어보기를 주문했다. 제가 탄 튜브가 움직였는지 또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웃지 않던가. 잘 했다고 박수쳐주며 이번에는 반대편 손으로 저어보게 했다. 성일이가 영재인가? 다음에는 두 손으로, 그 다음에는 발을 뒤로 퐁당대기를.성일이는 저어보고 퐁당거리며 제 몸이 이동되니까 신기한 듯 얼굴에 하회탈이 지워지지 않는다.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다가오라면 손짓 발짓해 가며 제법이다. 가까이 와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눈을 아주 감은 하회탈을 그린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 있는 얼굴이다. 무작정 내가 목표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채근하기만을 고집한 지난 세월이 죄스러워진다. 좀 더 다정하게 하나하나 터득하게 해줄 걸.푹푹 찌는 찜통더위의 여름 날 하루. 성일이가 그린 하회탈이 선하다.△이종희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저서에 수필집 〈임 보고 뽕도 따고〉가 있다. 김제난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 감사, 안골은빛수필문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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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8 23:02

둥근바위솔

오후 내내 자올자올 졸다가 친구의 농원에 놀러갔지요. 그냥 한 바퀴 휘 돌아볼 요량이어서 운동복을 입은 채로 편한 신발 직직 끌며 어슬렁거렸어요. 친구 내외는 없네요. 가까운 절에 기도드리러 간 게지요. 팔순의 어머님이 가끔씩 정신을 놓으시거든요.마당 한 쪽엔 바람이 미루나무 잎을 되작되작 들추며 놀고 있었고 작은 꽃들은 눈을 뜬 채 졸고 있었어요. 풀들도 팔 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리고는 끄덕끄덕 졸음에 잡혀있네요. 간간히 끼어드는 산비둘기의 딸꾹질 소리로 고요가 잠깐씩 일그러지기도 했어요.현관 앞 평상에 앉아계신 친구 어머님께 건성으로 인사를 했어요. 어머님도 내 인사는 아랑곳 않고 대문 너머 큰길 쪽만 기웃거리시네요. 멀리서 가물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아들은 용케 알아보시거든요. 혼자서 농원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어 마냥 늘어지기 좋은 날이었지요. 대강대강 농원의 농작물과 화초들을 스치며 지나가는데 선명하고 말간 꽃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갓 태어난 병아리의 종아리처럼 발그레했지요. 친구 내외가 오랫동안 기른 둥근바위솔이지요. 얼마 전까지도 아무 기척 없이 잎만 덩그렇더니 제 깜냥으로는 여린 꽃대를 끙끙 밀어 올렸나 봅니다. 앙증맞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서다가 흠칫 물러섰습니다.눈 밝은 햇살이 둥근바위솔의 갓 피어난 꽃숭어리 위에 둘러주신 원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법 나이를 먹은 바위솔은 몸 전체가 휘우듬하니 기울어져 있었고, 묵은 잎 위에 올린 새 잎은 마치 부처님이 앉아계신 연화대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연화대였습니다. 비스듬히 기운 연화대에 앉아 온몸 빨개지도록 용을 쓰던 어린 꽃대가 이제 막, 한 생각 터트리신 겁니다. 깨우치는 순간을 지켜보며 기다려 준 햇살이 얼른 후광을 씌워드렸고요. 늘어질 대로 늘어져 신발 직직 끌고 다니던 나도 재빨리 두 손 모으고 싶었습니다. 신발 고쳐 신고 옷섶 여몄지요.세상일을 하나씩 놓아가는 친구 어머님도, 어머님의 마른 손을 요리조리 핥아주고 있는 고양이도 부처님이었지요. 세상에나! 자꾸 미끄러지는 모래 비탈 위에 그지없이 편안하게 가부좌한 강아지 똥은 또 어떻고요. 자기 농원에 이렇게 많은 부처님을 두고 친구 내외는 어느 부처님에게 빌러 갔을까요?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풀들은 그대로 한 송이 꽃이네요. 보드랍고 여린 상추 잎 안에는 세상의 모든 길이 다 환하게 들어있어요. 화려했던 봄꽃을 지우고 꼬투리에 든 열매들은 둥글어지기 시작했고요. 알 속의 갑갑한 시간을 잘 견딘 애벌레는 나무와 외로움을 나누어 가졌어요.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제 일에 정성인 모든 것들이 다 깨달은 것들이었어요. 바다를 의식하지 않고 졸졸 흐르는 도랑물 소리가, 마당귀에 의젓하게 서 있는 미루나무 세 그루가, 미루나무에서 놀고 있는 천진한 바람이 나에게는 경전이네요.혼자서 끙끙 앓다가 웃다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꼼짝 못했네요. 햇살이 몸을 기울여 마지막 고운 빛만을 골라 하늘 가득 펼쳐놓으시고는 휘적휘적 서쪽 산을 넘어가네요. 친구 내외가 대문을 밀치는 소리가 내 적막을 흔들고 나서야 발이 저리다는 것을 알았어요. 돌아가는 길엔 휘파람 한 곡조 불며 주머니 속에서 짤그락거리는 생각들로 물수제비나 뜰까요?△김영 시인은 김제 출신으로 지난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 〈다시 길눈 뜨다〉, 〈나비 편지〉와 수필집 〈뜬 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 〈잘가용 어리광〉 등을 냈다. 독서대상 대통령상, 신지식인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전북여류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전북시인협회장를 맡으며, 김제 만경여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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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1 23:02

함께 가는 길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멀리 가려면 사막을 지나고 짐승을 피해야 하는데, 길동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먼 인생의 길에도 어려움이 어디 사막과 짐승뿐이랴.우리 동네에 80세가 넘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매일 동네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뒤지며 폐휴지나 재활용 고물들을 모은다. 허리가 굽어 몸도 잘 가누지 못하시는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자 동행한 적이 있다. 아들이 모두 잘살지만 의탁하지 않으려는 성미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폐휴지를 주워 모은단다. 좁은 골목에 창고 아닌 창고에 많은 폐휴지가 쌓여있었다. “이걸 팔아서 어디에 쓰려고 해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건 알아서 뭣 헐려고 그려.” 하고 별것을 다 묻는다는 투다. 아드님이 용돈도 준다면서 왜 이런 고생을 하시느냐고 묻자, 나는 돈이 필요 없다면서, 할머니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사연을 듣는 나는 부끄럽고, 내가 살아온 길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혼자서 두 아들을 공부시켜 서울에서 훌륭한 자리에 있게 만들고 매일 모으는 폐휴지를 팔아 저축한 돈 십여만 원을 노인 요양 복지병원에 있는 환우들에게 보낸단다. 한 달에 많아야 십여만 원 정도의 돈이 별것 아니어서 부지런히 일해야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것이라며 누구에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할머니는 80년이 넘는 먼 길을 누구와 동행했을까? 멀고 험한 길을 누구를 위해서 걸어왔을까? 어린 자녀들을 위해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한국동란 때 남편을 여의고 할머니는 동행한 짝도 없이 자식을 위해 아니 자식과 동행의 길을 이곳 80이 넘는 고개까지 멀리 왔던 것이다. 과연 혼자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함께 가는 사람이 있기에 멀리 갈 수 있다. 소찬이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가족과의 밥상이 즐겁고 맛있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젊은 날엔 가족과 지금은 노인복지병원의 환우들과 동행의 삶을 걸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멀리 걸어왔고 또 멀리 가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멀리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 당신은 누가 떠오르는가? 떠오르는 사람이 빨리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 걸어온 삶이 너무 많았다는 증거다. 너무 많은 사람이 생각난다면 그 사람들과의 마음을 나누며 느리더라도 함께 걸어온 삶이 보람과 희망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여겨도 된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먼 길을 가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슬기, 행복, 즐거움 등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렇게 멀기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려면 마음씨 고운 동행인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누구도 그 거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늘 고마워해야 한다. 내 마음과 몸이 그들에게 깊이 의지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오늘 당신은 누구와 동행하는가? 성인의 그늘이 아니라도, 조그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즐거움으로 포장된 동행의 순례 길을 준비하길 바란다. 설령 외롭거나, 홀로 산다고 혼자 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길은 내일의 밝고 맑은 축복의 문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수필가 나인구 씨는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했다. 〈대한문학〉에 시·수필로 등단했다. 저서로 수필집 〈그런 돌이 되고싶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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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4 23:02

화중군자 연 앞에서

가끔 머리가 심란할 때 ‘덕진공원’을 가면 연못의 연꽃들이 여름 내내 영화의 잔상처럼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잔상이 아니라 실상을 드러내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연(蓮)은 3일 동안만 제대로 꽃을 피운다. 첫날은 커다란 꽃봉오리를 여느라 그리 더디다. 둘째 날은 딱 하루만 그가 지니고 있는 우주의 완전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추함을 감추려고 서두른다. 하지만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으나 그의 향기(蓮香)는 꽃이 피기 전부터 안개처럼 은근하게 연못을 메운다.그러다가 성급한 마음에 미리서 찾는 이들에게는 슬며시 스며들어 청정한 여운을 전한다. 그러면 그 여운은 모두를 한동안 마비의 성 안에 가두어버린다. 진흙탕 속에서도 순결하게 처연히 일어서는 자태, 아무 것도 없는 무(無)였다가 완전한 코스모스(cosmos)의 오묘함을 발하는 그를 오죽하면 예로부터 ‘화중군자(花中君子)’라 했을까. 덕진 공원에서는 해마다 연꽃 축제가 열린다. ‘덕진채련(德津埰蓮)’은 조선시대부터 전주 8경의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연꽃 축제의 효시라고 할 정도로 전국에 이름이 났었다. 단오 때면 이곳에서 용왕제 성격의 물맞이 행사가 성대하여 대관령 산신제인 강릉 단오제와 견줄 정도였다. 지금은 덕진공원과 채련공원이 분리되어 있는데 채련을 체련(體鍊)으로 잘 못 알고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지금은 문화축제로서 창포나 그네 대신 다양한 행사를 하는데 그래도 연꽃축제이니 연꽃이 주인공이다. 연지(蓮池)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신비스런 여인이 혼자 살면서 한여름 며칠만 잠깐 고고하게 나타나는 데 바로 이것이 덕진채련이다.파울로 코옐로는 〈연금술사〉에서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이 세상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존재 자체를 느끼라는 말이다. 또한 단 두 방울의 기름일지라도 거기에 이르는 노력과 희생을 새기라는 뜻이리라. 화려한 꽃축제를 불 밝히기 위해 인내한 연의 통과 의례들, 숨은 진실을! 밀도 높은 진흙 속에서 숨 쉬기 어려워 그 뿌리는 그렇게 구멍이 뚫려 있고 대궁도 속이 비었을까.심오한 호흡을 통해 저절로 침투된 연향의 그윽함은 내 깊은 곳까지 닿는다. 몸을 던지면 금방이라도 받아 낼 것만 같은 넉넉하고 꼿꼿해 보이는 잎과 천상선녀가 앉은 듯 한 풍채는 가슴을 활처럼 휘게 한다. 한데 세상 모든 게 그러하듯 그 화려함의 또 다른 이름처럼 짙은 어둠과 적막의 쇠사슬이 검은 연실로 박혀 있다. 그런 걸 신비라 하던가. 마치 깊은 산사에서 들리는 북 울림으로 나를 에워싸며 원초적 고독을 느낀다. 동시에 생의 환희가 새삼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친다. 나는 향연의 기운에 흠뻑 젖는다. 오랫동안 잊고 산 생명의 의미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겨울가고 또 다른 봄을 그린다. 연꽃은 당연함으로 사는 인생길에, 잠깐 낯선 설렘을 주고 다시 진흙으로 스러진다. 간절한 염원으로 만난, 바람과의 한 순간 스침으로 꽃의 존재는 꺾인다. 이제 연은 본연으로 돌아가 우주와의 교감하겠지. 그 깊은 진흙 속에서 까마득한 땅 밑의 울림을 품는다. 그리고 한 줄기 촉각으로 하늘에 귀 기울인다. 그러면 언젠가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누가 감히 그런 기약을 자신할 수 있으랴. 서정주님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처럼 그리 섭섭지는 말고, 또 그렇게 애절하게는 말고 담담하게…그러면 언젠가 또 마주침의 연이 오지 않겠는가.△수필가 이민숙 씨는 〈좋은문학〉으로 등단. 현재 전북대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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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31 23:02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못의 물은 파랗고 물고기가 뛰놀고 있다. 둘레 돌 틈새에는 큼지막한 분홍색 꽃이 한 송이 피어 있고 연못가의 버드나무 가지가 치렁하다. 그 시절 연못 주위엔 버드나무만 많았다는 것을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다. 연못가 풀밭에 새들인지 병아리인지 알 수 없는 날짐승 두 마리도 아이들 속에서 놀고 있다. 연못은 넓은 집 마당에 인위로 만든 작은 물웅덩이 같은 게 아이의 그림답다고나 할까. 풍경 앞에는 짧은 파마머리를 한 젊은 엄마가 카메라를 조준하고 있다.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던 우리는 동네 아이들과 더불어 덕진공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늘 튼튼한 다리를 붙여서 함께 자동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기를 들고 다녔는데, 그때의 추억들이 사진처럼, 울긋불긋한 색조의 연못 속에 담겨 있다. 내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연못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려 그렸지 싶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들이 되어 한여름 날을 수놓고 있다. 엄마들은 연꽃보다 더 어여쁜 꽃 중의 아이 꽃을 돌보기에 여념 없다. 할머니가 된 내가 옛날 그랬던 것처럼.무더위가 피어낸 연화장(蓮花藏)에 내려앉아 액자 속의 추억을 떠올린다. 더운 여름에는 집 안을 깨끗이 해야 덜 덥다고 하던 그 사람의 잔소리도, 다시 만나기로 한 이별 같이 한두 철 전의 일처럼 일상의 어느 귀퉁이에서 그림으로 나올 때가 있다.사랑의 열기를 품고 달려갔던 연지. 얼굴의 홍조가 연꽃들로 더더욱 붉어져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새벽. 이른 아침 안갯속에 시퍼렇게 넘실대는 연잎 사이사이로 올라와 있는 연향이 하늘 한가득 그윽했다. 연못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옷깃 사이로 연향을 날리며 한 풍경 속으로 어우러졌었지. 뜨거운 여름에 연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탓할 수 없지 않은가.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으로 기억하리라.봄 내내 푸름을 키워내며 산과 들은 여름의 절정을 오르느라 한시도 한가할 틈이 없었다.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듯, 한끝을 말아 쥐고 둘둘 굴리면 한없이 감아질 것 같은 들녘. 말았다 폈다 할 수만 있다면, 비어 있어 싸늘할 겨울 들녘을 위해 마련해 두고 싶다.마침내 배롱나무에 빨간 꽃잎이 달리기 시작하니 초록 들판은 긴 숨을 들여 마시고 생동감 넘치는 춤사위를 준비한다. 백일 동안 배롱꽃이 피고 지는 사이 눈물 같은 벼꽃도 피어서 영근 꿈을 키울 것이다. 후끈하게 땀이 배어 끈끈한 여름날의 사랑도 한여름의 소낙비에 젖으면 다시 생기를 얻고 밤바람 속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뜨거운 열기를 날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명이 숨 쉬는 숲 속의 밀어들, 아침 새벽부터 부지런한 새들의 요란한 지저귐. 여름이 아니면 언제 들을 수 있을 건가. 오랫동안 갇혀 품어 왔던 생의 분출을 위한 애절한 울부짖음. 처절한 절규인 듯 온 생명이 다하도록 외쳐대는 매미들의 독주도 여름의 백미가 아닌가.흐르는 땀방울을 감당할 기력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이 생명의 절정을 구가하는 여름이 빨리 가기를 원치 않는다. 하루의 피곤을 느슨히 풀어내는 태양의 한숨인 듯, 노을 지는 서녘 하늘이 어찌나 고마운지. 절대 변하지 않는 위대한 유산, 사랑만은 멈출 수 없는 것. 원하기도 전에 이미 가고 말 이 여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천년 된 연실에서도 싹을 틔워낸다는 연꽃의 꿈을 연화 세상에 와서 다시 읽는다. 진흙 바닥 같은 삶의 터전에서 연심(蓮心)을 챙겨본다.△수필가 조윤수 씨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전주여중, 전주여고, 경희대, 부산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2003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나의 차마고도〉, 〈명창정궤를 위하여〉, 〈나도 샤갈처럼 미친(及) 글을 쓰고 싶다〉, 〈바람의 커튼〉이 있다. 지난해 제6회 목포문학상 수필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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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4 23:02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길

남풍이 찾아온 쪽빛칠월은 논두렁마다 가는허리 풀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풀숲을 이루고 있다.한해를 시작하며 지우고, 버리고, 줄여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정월의 산과 들녘은 텅 비어 있었으나 지금의 칠월은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 속에 감춰진 지나온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환갑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들꽃처럼 키워주시니 때로는 시린 가슴도 데워지고, 자연과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걷는 길은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있어 하루하루가 참으로 소중하고 사는 재미가 있다.삶이 건조하다 싶으면 경각산과 구이저수지가 손잡고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진 술테마박물관을 자주 찾아간다. 우뚝 솟은 산이 나를 안아주는 포근함은 아마도 어머니의 품 속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이곳을 가게 된다. 싸목싸목 걸으며 눈 안에 산과 그리고 자연을 담다보면 산처럼 무거운 걱정을 메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늙은 아버지가 보이고, 쑥국새 우는 날에는 가랑비 맞으며 사랑하는 모습도 그냥 볼 수 있어 좋다. 구이중학교→구이저수지 제방→저수지 숲 속길→호숫가 데크→술 박물관 구간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호수는 오는 이 마다 탄복을 한다.본래의 둘레 길은 산비탈에 사는 주민들이 험한 산길을 힘들여 넘지 않고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길이었을 것이다. 둘레 길에는 논두렁길, 숲길, 고갯길, 마을길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 그 길을 걷다보면 나름대로 향기가 있어 어느 길을 만나든 부담 없이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기에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둘레 길을 거닐다보면 시공을 떠나 한없는 여유로움을 느끼며 인간체험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이 주변에는 딸기와 포도 농장이 있고 기류를 이용하여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 좋다. 이곳에 자리한 지는 일 년 남짓 되었지만 원주민처럼 해돋이에서 해넘이 시간까지 언제나 지켜 볼 수 있어 노후에는 아마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이곳은 비가 내리면 운치가 있고 혼자 있어도 절대 외롭지 않은 이야기가 엮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솥뚜껑에 돼지기름 올려놓고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함석집 지붕 위를 때리고 있다. 이런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 술 한 잔 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옛말에 사흘에 한 번 마시면 금이요, 밤에 마시는 술은 은, 낮에 마시는 술은 납이라 했거늘,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와인 한 잔 마시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이기에 다른 술은 맛을 몰라도 용서가 된다. 형용할 수 없는 그리고 모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이곳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길 희망한다.퇴직하면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그동안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서로가 되어야한다고 하였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서로가 다름과 차이에 문제가 생겼다.생명을 기르는 일은 수도자의 길과도 같다. 조금씩 심고 가꾸어 새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벌레를 잡아주고 흙을 밟는 아름다운 ‘소담과 安土尼吾’의 해피 데이를 꿈꾼다.운무로 인해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작은 연못에 붕어와 우렁이 그리고 부레옥잠과 홍연이 살고 있다. 내년쯤 아마 연분홍 입술을 열어 그 은은한 향내로 세상을 삼킬 듯 뿜어내는 연꽃이 필 것을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난다. 가끔은 손등이 햇볕에 그을리고 가녀린 손등에 핏줄이 불거져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어도 손톱 밑에 흙이 들어간 지금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는지. 또 다시 남풍이 분다. 풀은 누웠다 다시 일어서고 나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선다. 풀도 나도 하나 되어 붉은 웃음을 웃는다. 자연이 사람을 위로하는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곳에 발자국을 남긴 칠월이 좋다.△ 수필가 겸 시인인 안 영 씨는 〈문예사조〉(수필)와 〈한국문학예술)(시)로 등단. 수필집〈 〈내 안에 숨겨진 바다〉가 있다. 현재 한국문학예술 전북지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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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7 23:02

조약돌

그는 내 마음을 매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기자기함에 일단 눈길이 머물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한다. 요모조모 볼수록 오목한 용모에 매료돼 사춘기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시간 마모를 거듭했으면 살갗이 이리 보드라울까. 조약돌에서 지난한 세월을 읽는다. 여느 몽돌과는 그 격이 다르다. 아기 볼을 쓰다듬는 느낌이 이럴까. 맨살의 촉감이 감미로운 나머지 메마른 정서가 촉촉해진다. 둥글납작한 형상이 대부분이나 어떤 녀석은 타원형이요, 묘하게 휘돈 놈은 꼭 소라를 닮았다. 영락없는 조가비도 있다. 저마다 다른 상을 지녔어도 어느 한 곳 모난 데 없이 한결같이 반드럽다. 모진 세파 속에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음으로써 오늘에 이르렀음을 생각하니 그 걸음이 장해 보인다. 대개 조약돌은 단색인데 이들은 한 몸에서도 다채롭다. 몸의 삼 할이 잿빛인 놈은 중간에 살구 톤으로 번지다 미색으로 갈무리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홍색을 온몸에 입은 녀석은 오밀조밀한 선이 하나씩 늘 때마다 농담이 달라지는 절묘함에 탄성이 나온다. 어떻게 이리 오묘한 하모니를 이루는지 기특하다. 바닷물과 바람과 햇볕의 정기가 적절히 버무려져 곰삭으면 이리 영롱할까. 돌이라기보다는 옥으로 격상시켜 주고 싶다. 녀석들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색을 띠고 있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절제와 겸양까지 지녔다. 이들도 연륜이 쌓이는 걸까. 고만고만한 몸에 유려한 문양에다 이미지도 다양하다. 실금이 버선코처럼 유선형으로 돌다 어느 지점에서는 지문처럼 흐르기도 한다. 또한 구불구불한 무늬가 등고선 같은가 하면, 파도가 층층이 밀려오는 문양도 있고 서녘 하늘의 노을 형상을 띤 것도 있다. 섬세한 선과 색이 만나니 산이 되고 새가 되어 수묵화를 이루고 담채화를 그려냈다. 어느 화가의 못다 이룬 꿈이 조약돌 속에서 환생이라도 했을까. 어설픈 붓끝으로는 흉내 낼 수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외경심마저 인다. 사람이 정성으로 빚은들 이만할까. 아무래도 신의 손길이 지나간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 예스러우랴. 동글동글 매끄러운 것이 미려한 문양에다 영롱한 색조까지 지녔으니 이 아니 어여쁘랴. 사람으로 치자면 단아하면서 맵시까지 지닌 여인이랄까. 무심코 바라보면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첫사랑에 달뜬 마음이 이럴까. 녀석은 어느새 서른 지기가 다 되었다. 그 옆에는 어른 주먹만 한 흙빛 몽돌과 황토색 몽돌도 나란히 누워있다. 수족관에서 걸어 나온 이들은 멀리서 보면 더없이 다정한데 표면은 꺼칠하다. 요리조리 봐도 물 찬 제비 같은 조약돌에는 비견할 바가 아니다. 요놈들도 분명 몽돌 과이나 어느 해변 출신이다 자랑치 않고 더 힘세다고 거드름 피지도 않는다. 더 잘 보이고 좋은 자리에 놓이려고 자리다툼도 하지 않는다. 그저 대나무 바구니 안에서 조신하게 어깨를 기대고 더불어 산다. 어찌 보면 묵언 수행 중인 수도승 같다. 아무래도 조약돌이 우리 집에 온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모난 마음이 쉬 사그라지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사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 가슴만 시린 줄 알았다. 그럴 때 문득 녀석을 보면 무심한 듯 초연한 모습이 은연중 나를 일깨운다. 침묵 속에서 묘한 울림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각진 감정도 삭이다 보면 두루뭉술해지니 연륜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둥글게 품는 도량을 지니라 이른다.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른다 했던가. 제 몸이 저리 닳는 동안 안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두질했을까 생각하니 세상을 대하는데 옹졸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수필가 이양선씨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와 계간수필로 등단. 수필집 〈잠박(蠶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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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3 23:02

무 예찬

무는 배추의 단짝이다.무는 항상 배추 뒷자리에 선다. 사람들은 무보다는 배추를 더 우위에 놓는다.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무김치는 쓸모가 없다. 찌개에 들어가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배추는 백채라는 한자어에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나는 무우가 아닌 무가 표준어라는 사실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배추만큼 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그러나 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배추 뒤에 놓는 일이 미안해질 것이다.요즘 면역성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홍삼이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무는 산삼에 버금가는 채소라지만 밭에서 나는 삼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무의 활약상도 평범하지 않다.무를 자박자박 썰어 설탕에 재어 두었다가 차로 마시면 기침이나 감기에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무를 갈아 즙을 내어 마실 수도 있다. 무즙은 시험에 낙방할 뻔한 수십 명의 학생들을 구제해 준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즙이 엿기름을 대신하여 넣었을 때 엿을 만들어 내는 탁월함을 지녔기 때문이다.총각무는 잎줄기 모양이 머리를 갈라 땋아서 묶은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투를 틀기전의 장가들지 않은 총각의 머리 모양을 닮은 것이다. 총각무의 무청에는 사과의 10배가 넘는 비타민 씨가 들어 있다고 한다.무청 시래기를 말려 비행기에 실려 보내며 생계를 잇는 농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래기 축제를 여는 마을도 곳곳에 생겨난다. 무 자체에도 비타민 C가 많으니 미용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무와 친해지길 권한다.무의 섬유질은 니코틴을 제거해 준다고 하니 금연이 어려우신 분들이 챙겨 드시면 좋을 듯하다.무는 자신을 깍두기로 대하든, 무 밑동 같은 처지에 놓이든 굴하지 않는다. 깍두기는 그 옛날 궁궐 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어늘 어이 깍두기 신세를 논한단 말인가.김장철이 되어 배추가 100포기,200포기 줄을 지어 나서면 무도 질세라, 소수의 무리일망정 졸래졸래 배추 군단을 따라나선다.무채가 되어 양념 속에서 제 몫을 다한다. 도막 도막 잘려 배추김치 속으로 들어가 깊은 맛을 내는데 일조한다.무김치는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만 담아 배추김치 대열 구석에 존재감 없이 세워 둔다. 동치미는 우리 선조들의 맛을 흉내 내기가 쉽지 않고 항아리를 땅에 묻을 수 없는 생활구조 탓에 아예 모습을 감추고 있다.본디 제 모습이 드러나야 위대한 것은 진정한 위대함이 아니라 했다.자신은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주위를 더 유익하게 하는 무리가 있다.무도 그중 하나다. 무가 있으므로 배추는 더 빛이 나고, 무가 늘 곁에 있어 외롭지 않다.무는 각종 생선 조림에서 오랜 가열로 인해 자신의 본성을 다 잃고도 마지막까지 우리의 미각을 충족시켜주는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최후에 때깔 잃은 모습으로 남아 우리에게 무의 진미를 누릴 수 있는 황홀한 순간을 선사한다.무는 내 한 몸을 던져 주위를 구하지만 자신만이 가진 고유의 진가를 지킨다. 그런 고고함이야말로 무의 매력이자 저력이며, 내가 무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스스로는 김장김치로 대접받지 못한다 해도 다른 김치의 깊은 맛을 돕는 선의를 인정해주고 싶은 까닭이다.△수필가 왕미선씨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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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6 23:02

마스크, 무서워요

길을 가다가 누군가 생끗 미소 지으며 눈길을 주면 기분이 좋다. 온종일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피고 일하는 손끝이 통통 튀기도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일지라도 서로 눈을 바라보면 호감을 갖게 된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 내용 전달이 잘 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끼리도 눈길을 주고받으면 얼마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봄 되어 슬슬 햇빛이 내리니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도저히 표정을 바라볼 수가 없다. 태양열이 피부에 닿으면 살갗이 그을고 거칠어지며 자외선은 피부암을 유발한다고 하니 마스크를 쓰는 건 어쩜 당연하다. 집안에서도 햇빛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니. 나도 벌써부터 파라솔을 꺼내 외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언젠가 길에서 애기엄마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다. “아줌마, 죄진 거 있어요? 얼굴을 싸매도 분수가 있지. 애들이 무서워 울잖아요?”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한 중년의 아줌마는 “싸매건 말건 무슨 간섭이야. 내가 애들보고 울라 그랬어?” 만만치 않은 둘의 큰소리에 엄마 치마폭에 달라붙은 큰아이와 유모차에 앉은 작은아이는 겁을 잔뜩 먹은 채 자지러졌다. 하기야 어른인 내가 봐도 무서울 때가 많다. 검은 등산복에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빠끔히 내놓고 팔을 휘휘 젓는 사람을 마주치면 정말 무섭다. 게다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으면 모양새만으로도 섬뜩하다. 차림새는 그렇다 치고 복면을 한 얼굴로 왜 그렇게 상대방을 빤히 바라보는지. 자기는 다 감추어 보일 것이 없지만 상대는 철갑을 두른 사람에게 알몸을 보이는 기분이다. 그 서늘함이라니. 요새는 남자들도 선크림을 뿌옇게 바르고 다닌다. 자외선이 피부의 적인데 여름엔 당연히 햇빛 차단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찬 공기를 막아 얼굴이 건조해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보니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더구나 작업 현장에서 추위와 맞서는 사람이나 겨울에 오토바이를 탈 때는 그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런데도 얼굴을 가리면 두려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아기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흥” 하면 무서운 호랑이가 되고 “야옹” 하면 날카로운 고양이가 되어 아기에게 겁을 주게 된다. 아기를 웃게 하려면 얼굴을 드러내고 환히 웃으면서 어른도 아기가 되어야 한다. 하물며 마스크를 쓰고 아기와 마주치면 경기를 할지도 모른다. 메르스로 전국이 휘청거리고 있는 올 여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두 딸과 공항에 들어서니 눈에 띄는 사람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마중 나온 큰딸과 사위들도 마스크를 쓰고 다짜고짜 우리에게도 씌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하는 바이러스까지 차단할 수 있는 방역용 마스크란다. 눈만 겨우 보이는 마스크를 쓰고 나니 숨쉬기도 불편하고 사람들 만나는 걸 삼가야 했다. 입가의 미소까지 감춰버린 마스크의 위력은 가지가지다. 이대로 길에 나서 아기를 만나면 겁을 낼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두려워 피할 것이다.△수필가 김춘자 씨는 임실 출신으로 지난 1998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다. 전주문인협회 편집국장,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임실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북펜클럽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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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9 23:02

눈과 귀가 어두워지는 뜻은

6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으로 구성된 전직공무원 친목모임에서의 일이다. 인사말을 하던 회장은 중간에 재미있는 말 한마디 하겠다 더니 “늙어 가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는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눈이 침침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아 왔으니 이젠 못 볼 것은 더 이상 보지 말라는 뜻이고, 귀가 어두워지는 이유는 들을 말 못들을 말 다 들어왔으니 이젠 안 들어도 될 말은 더 이상 듣지 말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참석자들의 폭소가 터졌다. 생각해보니 회장의 말은 우스개로 한 말이겠으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그럴싸한 말이었다. 요즘 TV나 신문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거의 매일 섬뜩하고도 참담한 사건사고가 터진다. 사회도 그렇고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망측하고도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일 계속된다.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불신풍조가 생겨 선한 사람조차도 나쁜 사람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보라.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못 믿겠다는듯 어둡고 누군가를 경계하는 눈초리가 역력하다. 어느 중견코미디언이 한 말이 생각난다. 각종 범죄뉴스로 말미암아 밤에 잠을 자도 꿈자리가 사납더라며 “밤 9시 뉴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 대신 저녁시간에는 명랑한 코미디나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프로로 대체해 온 국민이 편안하게 웃으면서 주무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게 나의 꿈이다.”라고 한 바 있다. 그 뒤 그는 안타깝게도 급성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의 뜻만큼은 갸륵했다. 어느 스님 한 분도 그랬다. 세상 사람의 이러한 행태가 꼴 보기 싫어 아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심심산골 오두막집에 들어가 텅 빈 방안에 홀로 앉아 책 몇 권에 촛불 하나 밝혀 놓고 있으니 그렇게 그윽하고 편안할 수가 없더라는 심경을 토로한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외국도 마찬가진 것같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1963)의 「내 귀는 소라 껍질」이란 시를 보면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의 파도 소리를 그리워 한다’ 라는 짧은 시가 유명한데 이는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잡소리를 거부한 채 오직 자연의 소리만 듣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로 불안해진 나의 생각을 사회나 정치권 등 남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진정 나는 이들과는 상관없는 초연한 사람인가? 내 안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실현 불가능함에도 재물은 남보다 더 많이, 지위는 남보다 더 높게, 명예는 남보다 더 넓게 하려고 몸부림친 적은 없었던가 하는 물음에 ‘아니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남의 성공에 시기심, 질투심은 물론 미움과 불안 초조로 밤잠까지도 설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렇듯 외부와 내부로부터의 무차별 공격에 대해 평정심을 되찾아야 할 때가 왔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홧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해침은 물론 육신의 건강까지 잃기 딱 알맞다. 이럴 때면 나는 으레 산을 찾는다. 그 많은 등산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아 짜증을 낼법도 한데 말없는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끌어 안는다.△수필가 김학철 씨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 이사·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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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2 23:02

졸수의 불편한 진실

며칠 전 점심식사 모임에서 한 친구가 갑자기 배(梨) 이야기를 꺼냈다.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보관 중이던 배가 폭삭 썩어버렸다. 딸이 사준 배를 먹지 않고 아끼던 중이었는데,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냉장고 서랍 속에 보관한 것이 실수였다고 애달아하고 있었다. 덕분에 모처럼 냉장고 속은 깨끗해졌다고 했다.나도 배 때문에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다. 지병인 천식 때문에 기침으로 고생할 때마다 배와 도라지 대추 생강 등을 넣고 즙을 내어 마시기 때문에 배를 항상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침 때문에 배를 찾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배가 모두 얼어버렸었다.썩은 배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던가? 하고 나는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부드러운 어투로 물었다.배의 껍질에 새카맣게 된 반점들이 군데군데 생겨서 손가락으로 가만히 눌러보았더니 물이 찌익 나오면서 포옥 들어가 버리데!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는 그 배의 냄새를 맡아보았느냐고 물었다. 아무 냄새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그 배는 썩은 것이 아니라 얼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것을 동리(凍梨)라고 표현한다고 설명해주었다.동리(凍梨)란 노인의 피부에 반점(斑點)이 생기는 것이 흡사 언 배의 껍질 같다는 데서, 노인들의 피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90세의 노인을 달리 이르는 말(동아국어사전)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90세의 노인을 졸수라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동리(凍梨)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실은 나도 많은 작가들의 수필 속에서 졸수(卒壽)라는 말을 접하고, 국어사전을 펼쳐보았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 그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졸(卒)의 약자가 아홉 구(九) 밑에 열 십(十)인 글자이기 때문에 九十(90)으로 읽어서 된 말이라고 하는 설명을 어느 친구한테서 우연히 들었다.나는 그 말을 확인하기 위해 서점으로 갔다. 그 글자를 소사전(小辭典)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툼한 한한대사전(韓漢大辭典)을 펼쳐보았다. 아홉 구(九) 밑에 열 십(十)의 글자는 사전마다 풀이가 달랐다. 졸(卒)의 속자(俗字)라고도 하고, 또 졸(卒)의 와자(訛字)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그때서야 졸수(卒壽)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나이를 나타내는 모든 단어들, 예를 들어, 종심(從心), 고희(古稀), 희수(喜壽), 산수(傘壽), 미수(米壽), 망구(望九) 망백(望百), 백수(白壽) 등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하지만 졸수(卒壽)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불확실한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그 말의 사용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친구에게 얼은 배 덕택으로 90세를 이르는 말로 동리(凍梨)라는 멋진 표현을 알게 되었으니, 뿌리도 모르는 졸수(卒壽)보다는 동리(凍梨)를 사용하라고 권했다. 나의 훈수가 졸수(拙手)가 되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면서.△수필가 이희근 씨는 정읍 출신으로 지난 2009년 계간 〈문학사랑〉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산에 올라가 봐야〉, 〈사랑의 유통기한〉,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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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05 23:02

초록은 생명의 빛

비가 오고 난 후 산 숲은 로맨틱하다. 물기 머금은 잎은 한층 더 푸르다. 푸른 잎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은 은초롱으로 빛난다. 그 싱그러움에 이끌려 눈부신 햇빛도 숲을 향해 달려들고 새들도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지난 주 가까운 산에 올랐다. 숲길을 걸을 때 푸른 기운이 허공에 가득했다. 머리 위로 파란 물이 듣는 듯 했다. 불어오는 초록바람에 심란한 내 마음을 세탁했다. 콧속으로 흡입된 청량한 공기가 메마른 내 영혼까지 씻어냈다.지금 전국의 산야는 온통 초록 일색이다. 산도, 들도, 강도, 도시도 초록이다. 그야말로 싱싱한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나무들로 빼곡한 숲은 마치 초록빛 바다와 같다.만약 모든 나무들의 색깔이 까만색이나 하얀색이라면 어떻게 될까. 까만색은 너무 어두워 답답하다. 혐오감이 느껴질 것이다. 밤낮으로 시커먼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마치 저승사자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얀 나무는 또 어떤가. 너무 밝아서 춥고 싸늘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산에 모든 나무들이 하얀색으로 도색돼 있다면 사시사철 한 겨울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또 가로수나 정원수가 하얀색이라면 이는 마치 소복을 여인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백의의 천사나, 방금 웨딩마치를 한 신부 같기도 하겠지만.초록, 그곳엔 무한한 생명이 숨 쉬고 있다. 초록은 자연과 평화를 상징한다. 초록은 정신 활동에 지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준다. 초록은 심리적으로 자극을 주지 않고 감정의 안식을 얻는다. 초록으로 뒤덮인 숲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독일 작가 아스트트 폰 호노레드 드르프는 사랑이 푸른 화환을 쓰면 내 모든 감각은 초록색이 된다. 가슴 속에서 사랑을 갈망하는 자는 언제나 초록색을 지닐만하다. 그러므로 사랑의 기가 꺾인 자는 절대로 초록색을 걸쳐서는 안 된다.는 연애시를 발표한 바 있다. 아랍권에서 알 카디르는 초록빛 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황야에서 방황하던 유목 민족들을 물가로 인도해 생명을 유지시켜준다. 깨달음의 여행을 떠난 알 카디르는 마침내 생명의 산 위의 구름 위로 올라가 생명의 물을 마시자 그의 옷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영생을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꽃봉우리, 잎새, 과일 등 모든 식물에서 색의 시작은 초록이다. 이처럼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에는 초록색이 가장 먼저 주변을 장식하는 것이다.고 역설했다.사람마다 좋아하는 색깔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빨강색을 좋아하고, 노란색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분홍색과 자주색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꼭 한 가지를 집어내라면, 그것은 초록이다. 나는 그 많은 색깔 중에서 연초록을 좋아한다. 정서가 불안정할 때 초록이 옆에 있으면 생명력을 회복시키고 마음에 평화를 주기 때문이다.우리는 희망을 말할 때 내일의 푸른 꿈을 꾸자라고 하지, 노란 꿈이나 빨간 꿈을 들먹이지 않는다. 그만큼 초록은 절대적인 희망의 상징이다.5월도 어느덧 하순으로 접어든다. 지난 6일이 입하(立夏)였기에 절기상으론 이제 여름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천지만물은 성장속도가 빨라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신록의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싹을 틔워 푸르름의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친다.이제 곧 녹음이 무성해지는 여름이 올 것이다. 아니, 벌써 여름이 온 듯하다. 한여름 짙푸른 숲에 들면 어둑하고 서늘한 산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여름은 청춘의 계절이다. 청춘은 젊고 패기가 넘친다. 따라서 초록의 의미는 생명력, 안심, 진정, 긴장이완, 묵상이다. 초록은 내가 살아있다는 생명의 빛이다.△수필가 신영규씨는 1995년 월간〈문예사조〉, 1997년〈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 〈숲에서 만난 비〉 〈사랑을 소매치기 당한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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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9 23:02

길 잃은 어린 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오늘따라 교회출 입구 스티로폼판에 붙여 만든, 모 권사를 환영한다는 장식도 붙어있다. 평소 자주 드나드는 사무실 이웃 개척교회에서 ‘나의 아버지’라는 복음성가가 녹음 반주에 맞추어 들려온다. 복음성가를 부르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목소리를 지닌 처음 출석한 여자 권사의 부름인 듯하다. 애수 어리고 간절한 소망이 담긴 성가는 이웃에 있는 나까지도 이끌려 가기에 충분한 가창력을 가졌다. 나는 귀 기울여 들으며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시내 변두리 농촌이나 다름없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대문은 물론 울타리도 없었고 키 큰 포플러 나무가 가로수처럼 드문드문 둘러쳐 있었다. 잔디와 작은 잡초들 가운데로 흙이 드러난 오솔길 같은 출입로 옆에는 빨간 맨드라미며 접시꽃이 피었고 흰나비며 잠자리 등 곤충이 철따라 번갈아 꽃을 옮겨 다니며 놀았다. 지금의 교회처럼 뾰족한 교회지붕 꼭대기에는 빛바랜 나무 십자가가 꽂혀 있었는데 그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상징물이였다. 어린 나는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하늘에 계신 분이 높이 솟은 십자가를 타고 교회로 내려오실 거라고 믿었었다.철 따라 여름 성경학교가 열리면 어린이를 모아 놓고 기도하며 성가도 가르쳤다. 유대풍의 복장을 한 선지자가 기다란 ‘모세’지팡이를 짚고 어린 양떼를 거느린 표지 그림의 누가복음, 마태복음 등 질감 좋은 작은 선교 책자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고급 칼라판으로 된 이 작은 책자는 어린 마음에도 욕심나는 것이어서 열심히 받아 모았다. 젊은 전도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경어를 사용했고 엄격한 우리의 부모는 물론 대다수 어른에 비하여 우리를 대우하는 것만 같아 무척 따랐었다.그 뒤 부친께서는 그 작은 교회가 있는 동네를 떠나 양떼 같은 우리 칠남매를 거느리고 고풍스러운 성당 앞 동네로 이사했다. 이사하던 날 나는 작은 교회의 고즈넉한 나무 십자가와 따르던 전도사 선생님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글썽이며 떠나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의 새로운 놀이터가 된 성당의 십자가는 어린 소년인 나에게 하늘에 닿을 듯 높아 보였으며 마당에 높이 서있는 성모마리아 석고 입상은 그 앞에서 우리의 뛰어노는 모습을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가끔 검고 긴 복장에 흰줄 간 사각모자를 쓴 수녀님이 성경책을 옆에 끼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개구쟁이들이 노는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면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성당 십자가보다 더 높이 연을 날리려 애를 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웃에는 정확하게 5개의 교회와 성당이 있다. 주일이면 수 백 수 천의 신자가 교회에 모여 주변의 교통을 통제해야 할 형편이다. 번쩍이는 대리석 관청 같은 교회 현관 양쪽에는 세련된 큰 웃음을 담은 몇 분의 사목님 그리고 장로님들과 한복으로 치장한 화려한 사모님들이 줄지어 서서 신자를 맞아하는 광경을 본다. 나는 지금도 가끔 주일이면 어린 시절의 잠재의식에 이끌려 아무도 모르게 교회를 찾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줄지어 선 의욕적이고도 성대한 목사님 일행 앞을 통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집중되는 관심과 환영을 받아들일 준비와 자신이 내게는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 언덕 위 낡고 작은 종탑 위에서는 주일 종이 울리고 맨드라미, 접시꽃이 핀 마당길을 지나 목사님이 ‘베드로’아저씨처럼 우리를 맞아주던 평화로운 작은 교회를 나는 주일마다 마음 속에서 그리며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양으로 남아있다.△수필가 김동영 씨는 전주 출신으로 제50회 〈한국문예연구〉 겨울호에 신인을 등단했다. 한국문예연구문학회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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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5 23:02

다시 봄에

콩나물밥을 해서 달래장에 비벼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입 안에 달래향이 가득하다. 앞대산을 바라보는 냇가랑 둑엔 달래들이 지들끼리 키를 재며 저무는 봄빛을 온몸에 빨아들이고 있을 터이다. 퇴근한 뒤 아직 햇살이 남아있어서 냇가랑 둑에 간다. 머리가 반백이 된 지 오래지만 나도 어려선 ‘나물 캐는 가시내’였다. 햇빛이 골고루 퍼지는 둑이며 논밭두렁을 훑고 다니면서 달래며 냉이 쑥을 캤더랬다. 손길 재바른 동네 언니들이 실하고 보기 좋은 나물들을 몽땅 캐가고 난 뒤여서 나는 찌끄래기들이나 캤다. 그러므로 내 달래 냉이들은 빼빼 말랐고 양도 형편없이 적었다. 하지만 찌끄래기들이나마 내 차지하려고 꼼지락거리다보면 봄햇살에 미역 감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고 어떤 때는 어질머리가 들어 하늘이 노래지기 일쑤였다. 어질머리를 참고 캐온 달래 냉이를 이것도 나물이라고 캤냐고 어머니는 소쿠리째 내동댕이칠 게 빤하지만, 그래서 나는 또 속울음을 삼켜야겠지만 그래도 둑길에 나설 땐 신이 났다. 머릿속에는 달래가 꽉 들어찼는데 요놈의 달래들 대체 보이질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고만고만한 풀들 때문에 영 헷갈린다. 앞대산을 조금 비껴 선 둑길이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그 곳에 가보고 싶다. 나물 캤던 시절을 간직한 내 직감이 오랜만에 꿈틀거린다. 그 곳엔 틀림없이 사람 손을 안 탄 달래며 냉이 쑥들이 봄바람을 헤적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무더기 무더기 그야말로 달래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에게게? 요게 뭐람? 고것들 내 입속으로 들어오려면 한 열흘은 기다려야겠다. 문득 그때의 언니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따라붙지 못하게 늘 앞서가며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깔깔깔 봄들녘에 깨소금을 뿌려대던 언니들. 그니들은 버스차장, 방직공장, 가발공장으로들 떠나갔다. 어디에서 살든 곱게 늙어가기를 바라는 내 눈가가 따뜻해진다. 그니들도 나처럼 앞이 가물거리는 눈을 달고 소쿠리 대신 비닐봉지를 들고 어느 둑에 앉아서 저무는 봄날 하루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버스차장이라고 공순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상처받았던 날들을 저무는 봄햇살에 말리며, 오랜만에 실컷 눈물도 흘리면서 그 때 휘어진 마음이 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을 나는 언제부턴가 곧이듣지 않았다. 절약과 저축, 검소한 생활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 된 물질만능 이것은 사람마저 수단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여기에 5촉짜리 알전구만도 못한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갑질을 일삼는 촌뜨기들의 억지가 사방에서 거든다. 그런데도 지금이 좋은 세상인가. 살맛나는 세상은 물질화를 통해 익숙해진 것들을 거절하는 데서부터 올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물밥 해먹고 살았어도 그땐 사람들 사이가 이렇게까지 데면데면하진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림 같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빈곤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뿐이라고 냇가랑의 저녁물결이 반짝인다. 오늘 저녁은 딸애가 봉동 장터에서 사온 달래로 찬거리를 만들어봐야겠다. △이현옥 씨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우석대신문〉과 〈문화저널〉 등에 책과 관련된 다수의 산문을 발표했다. 현재 우석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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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8 23:02

면죄부

좋아하는 계절, 초봄에 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집 옆 모퉁이 취 밭에서부터 뒤란의 머위 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천나무 울타리 밖 매실나무 밑을 누비며, 그것도 부족해 어디에 또 없을까 희번덕거리며 그 새싹을 뽑아냈다. 그것도 한 주간을 사이에 두고 두 차례에 걸쳐. 그 여린 새싹에 무슨 원한이라도 맺힌 양, 떡잎과 겨우 두어 장의 속잎이 돋아 무순보다 더 여린 싹들을 몇 토막을 내어 두엄자리에 던져버렸다.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 밤중에야 희미하게 소리 들리네.눈 녹아 남쪽 개울물이 불어 났겠거니 / 풀싹은 얼마쯤 돋아났을까?춘흥(春興)이라는 정몽주의 시다. 나 또한 선암리의 긴 겨울동안 이 시를 생각하며 새 봄을 기다려온 터였다. 구성산에 오르며 눈 덮인 산등성이에서 춘란 한 촉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가. 그리고 나뭇가지의 잎눈을 보며 새봄을 맞을 설렘으로 얼마나 부풀었던가.그런데 이제 막 떡잎을 피워낸 그 여린 싹을 사정없이 뽑아낸 것은 그게 한삼덩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위의 모든 것을 감고 올라가며 수액을 빨아먹고 자라기 때문에 견뎌내는 곡식과 나무가 없다.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 지 돌 틈에서도 살아나며, 며칠만 지나면 덩굴이 저만치 뻗어나 있다. 이래서 나는 눈에 띄기만 하면 한삼덩굴을 뽑고야 만다. 남의 밭, 길가를 가리지 않는다.모름지기 악의 근원은 힘을 못 쓸 때 제거하는 것, 내 맘 속 악의 싹을 뽑아내려는 듯하다. 뒤돌아서면 금방 다시 돋을 줄 알면서도.그러나 항상 이렇게 잔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무언가를 가꾸기 때문에 울안은 그야말로 풀과 곤충의 천국이다. 이른 봄, 햇살이 채 따뜻해지기도 전에 앙증맞은 꽃 모양에 비해 이름이 좀 그런 개불알꽃, 줄기를 꺾으면 나오는 노란 진액이 아기의 그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애기똥풀, 보라색과 하늘색이 조화롭게 꽃 색깔을 이룬 현호색, 민들레 등이 잔치를 이룬다. 게다가 꽃밭에 심은 며느리바랑꽃, 진안 마이산 밑에서 두어 포기 옮겨왔는데 지금은 수십 포기의 무더기가 되어 등불이 된 하얀 색의 은초롱꽃이 시나브로 피고 진다. 문제는 화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채소와 더불어 자라고 피고 시드는 것.또 다른 문제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 때문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 속에서 추위를 이겨 내고 싹이 튼 생명인데 어느 꽃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고 먼 데서 옮겨다 심고, 어느 꽃은 좋아하면서도 흔하기에 뽑아 없애야 하는가? 같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으면 어울리니까 아름답다 하고 외따로 피어있으면 조화를 깬다는 것은 누구의 관점인가?모든 것은 크고 작고 간에, 귀하고 흔하고 간에, 나름의 중요함이 있어서 서로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긴 고민 끝에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어느 풀이든 꽃이 피었을 때는 뽑지 않는다고. 그간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워 꽃까지 피우느라 애쓰고 힘쓴 것에 대한 예우로. 잡초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죄를 주었을지라도 나는 면죄부를 준다.한데 그 후 얼마 있다 다시 보면 그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씨방을 활짝 열고 씨앗을 흩뿌리면서.△수필가 황숙 씨는 익산 출신으로 지난 1991년 전북 여성백일장 수필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96년 계간 〈시대문학〉(현, 문학시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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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4 23:02

선택의 순간에서 가치관의 힘

만약에 신(神)이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마법의 램프를 선물하였다면 나는 과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돈’이 가져다주는 요행을 가끔씩은 바랄 때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생각들이 잠재하는 것은 ‘물질의 풍요’를 중요시하는 삶의 가치관에서 시작된다. 가치관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이다. 때로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을 때, 바로 그때 가치관은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인간의 3대 선택이란 명제를 들면서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했다. 누구는 배우자의 선택이고, 무엇은 직업의 선택이다. 끝으로 가치관의 선택은 삶의 질적인 방향을 가늠하는 갈림길이다. 부자들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폭이 가난한 상대보다 훨씬 다양할 수 있다. 즉 ‘돈’은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기름지면서도 유리한 기회를 맞이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방적인 길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상하와 우열은 이웃이나 상대와의 비교에서 유발된다. 한국 사람들의 소득은 독립이후 60여 년 사이에 수백 배로 늘어나 부자나라로 살아가면서도 삶의 만족도는 우리보다 가난한 터키나 중국보다도 더 낮다고 하니, 왜 그럴까? 어찌했든 이 문제는 풀기 어려운 퍼즐(숙제)이다. 청춘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먼 훗날 백발이 인생을 가로막을 때에야 느끼듯, 불만과 과욕과 허영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미래는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다. 100세시대를 바라보는 요즘과 비교할 때 1945년 광복 이전의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40세 전후였다고 한다. 가난했기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우고 질병에 걸려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했다. 먹을 것이 없어 배는 불룩 튀어나오고 검게 탄 야윈 체형이 말해주듯 국민 대다수가 영양실조에 걸렸었다. 6.25를 지난 때에는 미군(美軍)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모아 파는 상인들 덕분에 일명 ‘꿀꿀이죽’으로 연명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어른들은 떠올리기 싫은 추억에 눈시울을 적신다. 부모들에게 가난은 이리도 야박하고 천덕스러웠던 것이다. 억척스럽게 살다간 질박한 선조들은 가난이라는 아프고도 고독한 긴 터널을 겪으면서도 올곧은 생각과 정직한 품성으로 고난을 견디어낸 것이다. 우리들 후손들은 과연 얼마나 고맙게 여기면서 현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먹을 것들이 지천(至賤)이다. 해마다 음식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몇 조(兆)의 경비가 쓰여 진다고 한다. 물질이 풍족해질수록 그 풍요로움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질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배고프지 않는 삶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에 미화 1달러(한화 1,150원 정도)로 살아가는 지구상의 인구는 15%, 2달러로 사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33% 즉 25억여 명이 넘는다는 유엔의 통계다. 상식과 이성에 바탕을 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혜로운 언행과 판단이 행복의 가늠자다. 후회의 의미는 주어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상황들을 겪은 뒤에야 그 가치를 비교하면서 후회와 한탄에 젖어든다.△수필가 김형중씨는 ‘수필시대’로 등단. 칼럼집 〈도전하는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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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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