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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오이와 노각

순결의 상징 백합꽃이 다소곳이 피었다. 여름 내내 끊임없이 피는 제라늄과 채송화가 앞마당 가에서 형형색색으로 눈을 즐겨준다. 꽃대를 내밀고 하얗게 핀 옥잠화 향이 은은하게 퍼져,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게 꽃이다. 어느 때부터였던가, 꽃을 심었던 자리에 가지, 고추, 오이넝쿨이 어우러져있다. 나이가 들면 아름다운 꽃을 가꾸기보다 실속 있는 먹 거리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늙었다는 증거일까? 눈을 즐겨주던 꽃들이 채소들에 밀려나 주객이 전도 되었다.앙증맞은 새끼오이신품종 가시오이모종 두 그루를 사다가 커다란 화분에 심고, 토종오이는 씨앗을 뿌렸다. 심은 씨가 사나흘 지나 흙속어둠을 뚫고, 밝은 햇볕세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쌍떡잎을 나풀거리며 무럭무럭 자랐다. 가시오이와 토종오이모종이 나란히 서서 누가 먼저자라나 키 재기를 하나보다. 넝쿨손이 지주목을 휘감고 쭉쭉 뻗어나갔다. 활짝 핀 노랑꽃술 단맛을 아는 벌 나비가 모여들었다. 가시오이는 마디마디에 새끼오이를 매단 노랑꽃송이를 선보였다. 살아 숨 쉬는 생명, 앙증맞은 새끼오이가 하루가 다르게 크더니 아이팔뚝만 해졌다. 싱그러운 오이 살갗에 잔가시가 촘촘히 박혀있다.토종오이는 수꽃만 얼기설기 피어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열매를 맺은 암꽃이 보이질 않는다. 암, 수꽃이 함께 필터인데, 설마 뒤늦게라도 피겠지. 느긋하게 기다려보리라. 꿀을 찾는 꿀벌만 윙윙거린다. 가시오이를 심심찮게 7~8개를 따먹었는데, 토종오이는 어이된 일일까. 어느 날, 자세히 살펴보니 노랑수꽃 사이에 암꽃이 눈에 띄었다. 그럼 그렇지! 뒤늦게 핀 암꽃이 수줍은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신품종과 토종은 꽃 맺음부터 달랐다. 개량종은 쭉쭉 뻗은 날씬한 몸매이며, 토종은 생긴 그대로 오동통한 모양새이다.무엇이든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가시오이는 길고 반듯하여 상품가치가 있고, 아삭한 식감과 오이향이 품격을 높여준다. 마디마디에서 열기 때문에 생산자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소비자는 싼값으로 먹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수분이 많아 장아찌를 담으면 무르는 게 약점이라고 할까? 겉이 노랗게 늙은 토종오이 노각은, 속은 파란 청춘이다.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며, 상큼한 오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무침이나 장아찌로 두고 먹어도 손색이 없다. 오통통한 몸매에 작달막한 키로 수확량이 적어 비싼 게 흠이다.아삭아삭 한 맛 일품토종의 취약점을 연구하여 품질 좋고, 맛도 있으며, 더 많은 수확을 올리는 우량품종으로 품질개량을 하고 있다. 참다운 인격자를 위한 교육과 훈련도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정신무장이 아니던가. 오이가 자라는 입지적인 주변조건에 따라서 품질 좋은 상품이 생산되기도 하고, 뒤틀리고 볼품없는 불량품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도 좋은 환경의 부모 밑에서 자라면 선하고 착하게 크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않으면 외골수로 대인관계에서 원만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좋은 품질의 오이를 생산하기 위해 퇴비도 넣고, 해충도 잡아주듯, 사랑하는 내 아이가 사회에서 대접받는 자녀로 성장시키려면 부모의 역할이 크다. 잘하는 것은 칭찬해주고, 잘못하는 일은 바로잡아주면서 사랑으로 감싸주고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양희선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길 따라 꿈길 따라〉를 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수필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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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6 23:02

무더운 여름도 삶의 부분이다

태양열이 살을 파고든다. 바람 한 점 없는 도로에 햇살이 작살로 내리꽂힌다. 오후 3시, 살다 살다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이라고 투덜대며 나이 드신 언니가 참다못해 내 일터로 피서를 왔다. 열려진 문으로 더운 열기가 훅, 따라 들어온다.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하루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단다. 아무리 지독한 여름일지라도 빨리 지나가면 가는 만큼 우리도 빨리 늙을 텐데, 그래도 좋으냐고 농담을 했다.며칠 전엔 너무 더운 날씨 탓에 입맛을 잃었을 혼자 계신 어머니에게 점심 먹자는 전화를 드렸다가 벼락을 맞았다. 더운데 어딜 가냐?고. 덥기는 하고 기력이 없으니 느느니 짜증이다. 초여름에 에어컨을 달아드린다고 했더니 전기세가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인지 두 마디도 못하게 하셨다. 이렇게 더울 줄 알았다면 억지로라도 달아드렸을 텐데 후회막급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더위에 어떻게 지내는가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죽을 것 같이 덥단다.방송에서는 연일 폭염에 온열환자가 늘어나고 가축과 양식어류가 폐사하고 있다며 통계수치를 발표한다. 94년 이래 가장 덥다고 한다.아, 맞아, 94년 여름. 무지하게 더웠던 기억이 난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 계절학기 수업을 마치고 오후 두어 시쯤 이글거리는 해를 맞받으며 한 시간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어컨을 3단으로 켜도 너무 더워 속이 메슥거리곤 했다. 도저히 집으로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켠 친구네 매장 안, 사랑방으로 직행해서 벌겋게 익어버린 몸을 식혔던 기억이 또렷하다. 선풍기 2대로 버텼던 작업실엔 아예 두어 달이나 들어가지도 못했다. 친구네 집에서 수다나 떨고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겨우 잠들었다가도 금방 깨어 뒤척거리곤 했다.그저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여름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해 여름 나는 사는 게 아니었다. 그저 더위를 견뎠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견디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건 삶이 아니다. 시간을 운영해야 삶을 사는 것이다.이제 16년 여름, 나는 아무리 지치고 힘겨워도 내 몫의 삶을 직시하고 싶다.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다. 적어도 94년 여름처럼 허망하게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아침밥 준비하며 땀 흘린 후에 냉수욕을 하고 출근 전에 다시 한 번, 퇴근하고 찬물을 끼얹으면 그럭저럭 괜찮다. 차가운 물이 전신에 흘러내리는 감촉을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느낌도 시원하고 찜질방 같은 차안에 들어가 뜨거운 핸들을 잡는 일도 별로 나쁘지 않다. 다행히 여름감기도 걸리지 않고 심한 배탈도 나지 않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지 모른다더니, 너무 더워 사람이 오지 않는 매장 한쪽에서 에어컨에 선풍기까지 켜놓고 자잘자잘한 부채그림을 100여 개나 그리며 잘 놀았다. 그려놓으니 선물할 데가 생겼다. 모처럼 귀국한 당숙을 보러 서울 가는 길에 울타리 같은 친구들도 만나 선물하고 당숙 당고모 대가족한테도 맘껏 나눠드렸다. 세상에, 내가 언제라고 이렇게 푸지게 뭘 선물해본 적이 있던가. 기분이 좋았다.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잘 살아내고 이제 말복이다.머지않아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추운 겨울이 빨리 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기상청이 생기고 가장 덥다는 이번 여름을 천천히 향유하듯이 말이다.△박미서씨는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했다. 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그림에세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 옆에〉와 수필집 〈내 안의 가시 하나〉 〈이 찬란한 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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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9 23:02

섬진강이 울던 날

강이 운다. 화병 난 사람처럼 포효하고 부글거리고 서럽게 늘켜 운다.섬진강이 그렇게 몸부림치며 울던 날 지리산 능선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노니는 흰 구름을 만났다. 산 아래서 뭉실뭉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하얀 구름은 저 멀리 정령 치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다.저녁 때 남도로 가는 길은 며칠을 밤마다 쏟아지던 폭우가 섬진강 바닥을 채우고 흘러넘쳐서 범람하면서까지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수년 전에 물 밭은 섬진강을 바라보며 곡성으로 돌아가던 그날도 떠오르고 그날 해저물녘 적란운이 노고단을 어루만지고 애무하던 이런 여름날 해거름이었다. 오늘은 적란운 대신 하얀 명주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지리산을 덮고 있다. 이미 섬진강을 채울 대로 채운 붉덩물이 비가 그쳤다는 표시인지 하얀 면사포를 두르고 지리산을 에두르는 중이다.지리산 계곡 의신 골에서 부터 내려오는 빗물은 그런대로 깨끗해서 보아줄만 했는데 반대로 앞 섬진강물은 흙탕물이다. 백사장이 이름다웠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사라져 버리고 풀숲우거진 강가 상까지 성난 물은 강바닥을 뒤집으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녹차밭들도 배나무들도 붉덩물에 발을 담근 채로이고 새로 공사 시작했던 황토지반은 이미 물속에 잠겨 방방하게 찬 흙탕물이 어디가 어딘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낮에는 하마터면 송림공원 주차장까지 잘름잘름 했다는데 내가 간 늦은 시간에는 그래도 세 칸이나 아래로 내려간 상태라 하였다. 오래전에 하동 송림공원에는 강가에서 굿을 하는 무인들 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계단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이날 남아있는 계단은 불과 몇 개였다.하동 송림공원 앞의 섬진강 계단에 물이 찼던 모양이 선명하다. 해질녘 노을빛으로 너른 섬진강은 울고 또 울고 배앓이 나서 뒹구는 아이들 마냥 그렇게 울고 있었다. 늦은 오후 배앓이 난 섬진강을 달랜다고 하동으로 내려가는데 함께 가는 동무를 구했지만 소식 없어 혼자라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한 시간 반 만에 하동시내에서 퍼버리고 앉아 울부짖는 섬진강을 만난 것이다. 섬진강이 저리 울면 강 사람들은 더 몸 둘 바를 모른다. 강변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삼켜버린 논과 밭들을 건지지 못하고 그저 울다 지쳐서 절로 바다로 빠져나가는 날까지 물끄러미 바라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뉘라서 자연의 성난 강물을 달랠 수가 있었을까? 줄 나루를 당기며 건너던 섬진강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그 너른 강 가득 내려가는 강폭은 언제부터 저리 넓었던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어쩌면 이번에 섬진강은 오래도록 배앓이를 할 것 같다. 상류에서 내려가는 물의 양을 보면 말이다. 가다보면 강 가운데서 소용돌이치는 샘솟는 것처럼 물굽이가 돌아드는 섬진강, 논밭과 많은 것들을 삼켜버리거나 혹은 휩쓸러 가게 한 이번 폭우는 분명 섬진강을 울리고 말았다. 아름다웠던 섬진강이 저리 아우성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늦은 밤까지 하염없이 섬진강이 우는걸 보면서도, 매급시 달랠 엄두도 못 내면서 배앓이를 하면서 울고 있는 섬진강을 보고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항상 폭우로 많은 물이 오원 천을 가득 채우고 내려가면 우리는 보통 섬진 댐에 갇히려니 했지만 상류에서 하동 포구 근처까지 내 눈으로 확인 한 것은 분명 섬진강이 통곡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 올라오는 길 부글부글 끓는 섬진강이 눈에 선하여 잠 못 이룰 것 같다. 나는 왜 통곡하는 섬진강을 만나러 그 먼 곳을 달려갔을까△김여화씨는 수필집 〈아낙에 핀 물망초〉 〈행복의 언덕에서〉 등을 냈다. 임실문협회장을 지냈으며 전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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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2 23:02

수석과 수필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돌보기를 황금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생겼다.80년 내가 순창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 지역에는 호피석(虎皮石)이란 돌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돌의 색깔이 흡사 호랑이 가죽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둘만 모여도 화제는 호피석이었다. 그리고 당시 큰 음식점이나 웬만한 집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호피석이 몇 개씩이 진열되어 호피석이 품격의 상징처럼 보였다.호피석은 색깔이 선명하고 석질이 단단하며 가급적 큰 것일수록 가격이 높았다. 좋은 호피석을 본 사람들은 그 놈 참 잘 익었구나!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무렵을 전후하여 수석 전문 판매점도 많이 생겨, 외지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고객들로 인해 호황을 맞고 있었다.호피석은 크기에 따라 작은 것은 몇 만원에서부터 큰 것은 몇 천만 원까지 호가했다. 예전에는 하찮게 여기던 돌덩이가 큰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순박한 시골 농촌 고추장 고을 순창에 돌덩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던 것이다.호피석은 주로 순창군 동계면 동계천에서 많이 채취되었다. 호피석이라는 말이 있기 전에는 그 가치를 몰라 시골집 담장에도 잡석과 섞여 쌓아 놓은 담장이 많았다. 그런데 그 걸 그대로 놓아 둘리가 만무했다. 당장 큰돈이 되니 옛날에 쌓아 놓았던 담장을 헐어 호피석을 채취하는가 하면 틈만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동계천에 몰려와 수석을 줍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굴삭기까지 동원하여 하천을 파헤치는 등 극성을 부렸으나 결국 허탕을 치고 몇 백만 원만 날렸다는 소문도 있었다.호기심이 발동한 나도 어느 일요일 도시락을 싸들고 주민 네댓 명과 같이 동계천으로 갔으나 겨우 잡석 비슷한 검은 돌 몇 개만 주워 왔을 뿐이다. 그 시절 순창읍내에서 가축병원을 운영하던 친구는 가축병원에는 진열장과 널빤지 위에 온갖 크고 작은 수석들이 50여점이나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수석 중에는 호피석은 물론 오석(烏石), 무주에서 채취한 깨돌, 장수에서 가져온 문양석(文樣石) 등이 있었다. 가축병원인지 수석판매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그 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수필창작반에 들어와 공부한 지도 어느덧 5년여가 지났다. 모든 수필소재는 우수마발처럼 널려 있고 수필을 잘 쓰기위해서는 참신한 소재, 참신한 해석, 참신한 표현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와 이젠 내 머릿속에 못이 박혔다. 그리고 참신한 소재를 찾으면 이미 수필쓰기의 반은 성공한 셈이라 했다.그래서 그 소재를 찾으려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 옛날 내 친구가 수석을 줍던 생각이 떠올랐다. 수필소재를 찾는 일은 어쩌면 수석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보여주었던 수석채취에 관한 예민한 혜안이 새삼스럽게 부러웠다. 만약 그가 수필을 배웠더라면 명수필가가 되지 않았을까?왜냐하면 수석과 수필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 꾸미고 가공하지 않는 원재료를 취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그리고 둘째로는 그 소재가 전적으로 취하려는 사람의 혜안에 의해서 선택되어진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더 보태면 둘 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똑같은 것이 많고,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존재이유를 잃고 말 것이다.바로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가공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돌은 애초에 수석으로 취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쓰인 수필 또한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수석과 수필은 공통점이 많다. 그러므로 수석을 보면서 때때로 수필의 의미, 지향점, 상상의 문제를 함께 떠올리는 것은 두 대상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 아닐까?△수필가 김학철 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이사영호남수필문학회, 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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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5 23:02

병원 이야기

작년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친척 중모야라는 병으로 입원한 분이 있었다. 그 병은 일종의 뇌 혈전인데 수술을 해야 했다. 문병을 오시는 분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뇌를 수술하려면 지방 병원보다는 서울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우물쭈물하다가 수술시기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서울로 가는 것이 좋긴 좋으나 수술을 빨리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알음알음 수소문하여 서울 S병원 응급실로 옮겨 즉시 수술을 했다. 수술결과도 좋아 바로 퇴원을 하였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몸 한쪽의 마비가 왔단다. 부리나케 수술했던 S병원을 다시 찾았다.응급실은 항상 환자가 넘쳤다. 복도 한쪽에 3일이나 있었지만 입원실이 없었다. 시장바닥 같은 응급실이 너무 불편했다. 의사선생님에게 사정을 하여도 차례대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입원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겨우 인맥을 통하니 입원하려면 50만 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돈을 건네니 없다던 입원실이 나왔다.내 동생 이야기다. 치아가 좋지 않아 치과에 갔다. 충치가 있으니 치아를 빼야 한다고 하여 치료도 하지 않고 하나씩 빼고서 틀니를 했다. 그 뒤 충치 치료도 하지 않고 의사 말만 들은 것을 몹시 후회했다.얼마 전 제약회사의 사례비 문제가 연일 보도된 일이 있었다. 어느 제약회사는 45억 원을 의사들에게 주었다가 적발이 됐다. 포인트를 의사 자신의 명의로 적립하다가 발각되어 시민단체에서는 불법사례비를 준 6개 제약회사에 약값 환급 소송을 냈단다.다음은 내 이야기다. 치석제거를 한 지가 1년이 넘었다. 치과에 가야지 미루다가 며칠 전 단골 치과에 갔다. 방사선 사진을 찍어 보더니 충치가 두 군데 생겼다는 것이다. 신경치료까지 해야 할지 모르며 금으로 때우려면 7십만 원이 든다고 했다. 치과에 늦게 온 것이 퍽 후회되었다. 치석제거만 한 뒤 충치는 다른 날로 잡혔다.역사탐방을 하다가횡설수설이란 책을 쓴 최자홍 수필가와 친해졌다. 그 책 광고에 치과가 있었다. 그래서 그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아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치과에 갈 일이 있으면 들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 집과는 좀 먼 편이지만 단골치과에 가지 않고 그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그 치과에 갔다. 늦은 오후였는데 손님이 가득하였다. 치료하는 칸막이 몇 군데에서 환자들이 동시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간호사가 많아 종합병원 같은 인상이 들었다.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책을 읽다가 우산을 확인하러 밖의 우산대를 가보니 우산이 없어졌다. 몇 년간 나의 손때가 묻은 정든 우산, 거기에는 큼지막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왜 남의 우산을 가져갔을까? 나와 우산의 인연이 여기서 끝났다는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그렇게 상념에 젖고 있을 때 내 차례가 됐다. 의사는 치아 사진도 찍어보지 않고 충치가 있는 치아를 지적하며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표도 나지 않게 그 자리를 때워 주었다. 돈을 내려니 십만 원인데 1만 원만 내라고 했다. 단골치과에서 7십만 원짜리가, 1만 원으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몇 분 전 우산을 잃고 시무룩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내 마음은 하늘을 날 듯 기뻤다. 어둑어둑해지는 차가운 겨울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내가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향했다.이 세상에는 너무나 돈에 눈이 뒤집힌 사람이 많다. 예로부터 인생은 고해라 했거늘 비록 주위로 부터 멸시와 조소와 천대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욕심내지 말고 덤비지 말고 욕먹지 말고 손가락질 받지 말고 살아야 한다.△송일섭씨는 전주평화초등학교에서 퇴직했다.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수필문학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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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8 23:02

새벽의 꿈

깊은 잠 꿈속에서 그립던 사람 만나서 행복했었는데 홀연히 사라져 버린 새벽입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재촉해 보지만 깨어버린 잠과 열려 버린 새벽은 변함없이 찾아오는 아침의 방문객을 맞습니다. 꿈속의 미소를 현실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움의 갈증에 냉수만 한 사발 들이킵니다.그대의 손길이 내게 닿으면 난 움직이는 산맥이 됩니다. 그대의 입술이 내게 닿으면 난 가득 찬 호수가 됩니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그대가 가라앉아 돌면 난 눈을 감은 하늘이 됩니다. 어디선지 멧새소리 가물거리고 그대의 눈물이 내게 와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됩니다.입을 버리고 말을 버리고, 춤추는 손으로 대답합니다. 춤추는 가슴으로 대답합니다. 우주는 주인 잃은 꿈꾸는 악기입니다, 악기가 울면 허공에 별 하나 뜨고 지상의 목숨들은 탈춤을 춥니다. 떨리는 나뭇잎도 가지 끝에서 출렁이는 물결도 바닷가에서 탈춤을 춥니다.나는 아파트에다 토담집을 짓습니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돌아 나가는 강물이 있어 산책길에 내 발을 적십니다. 음악이 들리는 창문, 장미가 피는 창문, 라일락이 서 있는 창문은 모두 다 내 집입니다. 저녁달이 오르면 내 눈은 거대한 우주가 되어 아파트 위에 둥실 떠오릅니다. 내 눈은 이제 빛입니다. 푸른 초원에서 그대를 향한 여름밤 빛입니다.나는 그대의 몽당연필이 되어도 좋습니다. 침 발라 쓰다가, 쓰다가 쓸 수 없을 때 버려도 좋을 한 자루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갈 세상이 시커먼 흑연 빛이 아니라 5월의 푸른 하늘같이만 될 수 있다면 그 푸른 하늘을 나는 종달새 같이만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대의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습니다.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인생,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인생, 그런 인생은 인생도 아닙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인생의 특권이 아니겠습니까?오늘 밤에도 그대의 꿈을 꾸고 싶습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 떼쓰지 마십시오. 정말 꿈이란 어딜 가나 지름길입니다. 꿈속에서라도 그대와 함께 하늘까지 갔다 온 기쁨이야말로 내 인생의 축북입니다. 매일 밤 그대의 꿈을 꾸고 싶습니다.목마른 서로에게 물 한 잔씩 건네주는 꿈,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시 사랑해야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물 한 잔 건네는 그런 마음으로 목마른 마음으로. 꿈에서 나는 때로 천사이지만 꿈을 깨면 자신의 목마름도 달래지 못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꿈, 턱 괴고 모로 누우면 그저 절로 떨어지지만 농익은 꿈이 짓물러 터지면 허사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흔들고 작대기로 후려쳐 기다리는 꿈은 결코 꿈이 아닙니다. 바람도 구름도 한 점 없는 새벽 숲엔 별빛만 더욱 푸릅니다. 속가슴 가득 파란 하늘을 담습니다. 매일 별꽃을 바라보다 나는 작은 별 됩니다.더 추워지기 전에 어느 하루쯤은 혼자서 한적한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늘 보고 눕고 싶습니다. 쳐다보이는 하늘이 이왕이면 뿌옇게 흐려주었으면 더 좋겠고 흐린 만큼 푸근한 가을 숲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 주소와 숱하게 드나들던 슈퍼마켓이랑 병목현상이 잦은 출근길, 이런 것들도 그 날 하루는 저절로 함께 쉬이 잊혀 졌으면 좋겠습니다.물방울 하나가 새벽 꿈속에 떨어집니다. 꿈속의 물방울은 잠긴 문을 두드려 몽매를 흔들고 우둔을 깨워 내 삶을 적시는 울음입니다. 돌아다 볼 어제가 아닌, 미루어 둘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시간 눈동자 위에 핏방울처럼, 채찍처럼 잠긴 문을 밀고서 아프게 날 깨우는 그대의 근심과 그대의 사랑입니다.△시인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안도씨는 현재 전북문인협회 회장과 전북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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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1 23:02

더덕 꽃향기

낯선 곳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났을 때 기쁨은 참으로 크다. 이런 때 반가움을 표현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아카시아 향처럼 다소곳이 다가가 달콤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흔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비처럼 양팔을 벌리며 다가가 뜨겁게 포옹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변의 시선이나 체면은 아랑곳없이 부등켜안고 어린애처럼 좋아서 폴짝폴짝 뛰며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이 전달되어 부러움과 함께 미소를 머금게 한다.나는 더덕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더덕은 초롱꽃 목으로 속씨식물 중의 하나인데 덩굴을 이루는 다년생 식물로 8~9월에 개화한다. 꽃도 예쁘지만 꽃보다 더덕이 지닌 맛과 향이 주는 매력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직한 모습이 탐스럽기도 하고 많이 먹어도 자생적으로 몸이 보호될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더구나 우윳빛 속살에 은은한 향은 나를 유혹하고도 남음이 있다.껍질을 벗겨내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고추장을 푹 찍어 입에 넣기라도 하면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식감을 더욱 자극하여 기분을 상승시켜준다. 내가 더덕을 좋아하는 애호가임을 알고계신 어머니께서는 시골 집 뒤뜰에 더덕 몇 뿌리를 심어놓으신다. 그리고 날마다 들여다보다가 뿌리에 약이 차는 4월초순경 쯤에 나를 불러서 대 여섯 뿌리 케어 더덕무침을 맛있게 해 주시곤 한다. 입안에 들어오기 전부터 향기를 잃지 않는 더덕의 맛이야말로 매력의 도가니다.더덕구이 또한 이에 못지않다. 여러 가지 양념으로 색감을 내 보지만 그 특유의 향과 맛이 강하여 양념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그럴수록 자신의 독특한 맛을 더욱 강하게 내기 때문에 구이로서도 일품이다.장미향이 그윽한 토요일, 모처럼 여유를 만끽하며 쉬고 있는데 남편이 오늘 점심은 남원에서 유명한 더덕구이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귀가 번쩍 띄어 벌떡 일어나 인터넷으로 맛 집 검색을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남원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집을 찾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낯선 가족들이 옹기종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맛 집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창밖이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으며 다양한 메뉴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더덕구이 정식을 시켜놓고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나를 꼭 껴안으며 여기까지 웬일이야하며 더덕 꽃처럼 예쁜 얼굴을 옆으로 내밀었다. 리고 남편에게도 깍듯하게 인사했다.헐~ 정말이지 행복한 순간이었다. 20년 지기 고교 동창생 친구였다. 반가움에 부등켜안고 팔짝팔짝 뛸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공중을 날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 눈빛을 보며 잠시 행복감에 젖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는 나와 남편을 자신의 가족들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친구 가족들 또한 마치 내 가족을 대하듯 하여 반가움이 컸다.어린 시절 아빠와 산행을 하던 어느 날 문득 산딸기를 발견하고 칡잎에 한 움큼 따 주셨던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기분이랄까?더덕 꽃 같은 내 친구! 더덕 향을 지닌 내 친구!친구란 존재는 가슴을 설레게도 하고 그리움에 젖게도 한다. 눈빛만 보아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친구는 먼저 일어서며 이미 나와 남편의 식사비까지 미리서 지불하고 내 손을 꼭 잡고 앞으로 가끔 얼굴 보며 살자고 했다. 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훈훈하고 행복한 오후였다.△노은정씨는 월간 〈한비문학〉에서 동시와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한국아동문학회에서 동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북문학관 아카데미에서 어린이 성균관 교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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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4 23:02

내 나이가 어때서

금년에도 제일 많이 불리어지는 노래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한다.그래 내 나이가 어때서 이제 난 70대인데, 80도 안 되었는데! 누군들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할까? 마는, 그래도 나이 이야기만 나오면 움츠러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나이를 알고 싶어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한테도 이야기 몇 마디하고 나면 나이를 물어보고 싶어진다. 혹시 몇 살이나 잡수셨어요?라든지 연세가 어떻게 되지요하고 묻고 싶다.그런데 나이가 궁금해진다. 그것은 은연 중 자기 하고 비교하고픈 마음일 것이다, 나보다 많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기를 바라서이다. 물어보는 의도는 다양하다. 나보다 많다면 일단은 안심이다. 나보다 많은데 나보다 어른인데 그의 말을 들어야하고 따라야 한다는 안심이 든다. 작은 기쁨을 느끼게도 된다. 나는 저분에게 비하면 젊구나. 그래 나는 아직은 젊어! 하는 자부심도 든다. 내 나이는 몇 살이나 먹어 보여요? 하고서, 내 나이보다 적은 나이를 대면 내심으로는 기분이 좋다. 그렇게 젊음을 갈구했다. 그랬건만 어느 듯 나이 들어 어디서나 제일 어른이 되었다.어려서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랬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모두가 짐으로 와 닿았다. 어른스러움이 나를 얽맸다. 무엇이든 잘 해야 하고 함부로 말도 못하고 행동거지도 본이 되어야 한다. 딱히 누가 그래야 한다고는 안하지만 내 자신이 그렇게 된다. 내가 올바르게 해야 후배들이 본을 보고 따라서 할 것이다.는 생각이 행동의 제약이 된다.어느 때인가 한 어른이 술에 취해 할 소리 안 할 소리 하며 주책을 떠니 모두가 하는 말, 나이 먹은 사람이 저게 뭐람 하며 격멸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도 때로는 자유스럽게 행동하고 싶고 어린아이 노릇도 하고 싶다. 어른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동심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른에게도 있다. 나이는 먹고, 멋은 든다.는 말이 있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한다. 마음이 편안해야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데 우리 사회도 그런 것 같다. 최근에는 사람들 심성이 거칠어져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우리의 마음이 건강해져서 사회도 건전해졌으면 좋겠다.내 나이 팔십을 바라보지만 결코 나는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산다. 마음은 항상 이십대이다. 무엇이나 할 수 있어,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 먹음을 거부한 나는 누가 나를 할머니라 부르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할머니는 할머니구나 하고 인정을 하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니야 하는 부정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나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할머니인가? 물론 현실적으로는 여덟 명의 손자가 있고 손자며느리에 증손자도 있다. 컴퓨터도 자유자재로 하고 모르는 것 있으면 컴퓨터에서 검색해 찾아낸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닌 지도 40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만 운전하라며 밤낮으로 전화를 한다. 비가 온다든지 눈이 오는 날은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아니면 눈이 오니까 운전하고 나가면 위험하다고 야단들이다. 때로는 이런 전화가 부담스럽다. 너희들보다 내가 더 알아서 조심할 텐데 하고 중얼거려진다.한번은 새벽교회를 자전거 타고 갔다 오다 넘어져 팔과 다리에 찰과상을 입었다. 당황한 나는 누가 볼세라 얼른 일어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보니 피가 옷 위로 흘러 솟아 피범벅이 되었다. 혼자서 후후 불어가며 약을 발랐다. 그래 속으로 어쩔 수 없이 할머니구나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그래도 난, 그래도 나는하고 내적으로 부정하는 소리를 외친다. 열정과 긍지를 가지고 뛰며 달린다. 내 나이가 어때서 아직도 난 청춘이다. 누가 뭐래도 난 청춘이다 속으로는 이렇듯 외치며 힘차게 살아간다. 나는 오직 청춘할머니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이강애 씨는 2007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이루며 사는 삶〉이 있으며, 영호남수필문학 임실문학 행촌수필문학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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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7 23:02

맛보기 인생

며칠 전 대형매장을 갔었다. 꼭 무엇을 사겠다는 것보다는 둘러보는 눈요기를 겸한 나들이였다. 아내와 카트를 밀고 다니며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다. 식품매장을 지나칠 때는 아내가 부지런히 맛보기 음식을 가져왔다. 점심 무렵 시장하던 참이라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이쑤시개에 찍어주기도 하고, 작은 종이컵에 담아주기도 했다. 처음이라서 어색하기도 했고 맛본 뒤에 그냥 돌아서기도 미안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러는 걸 어찌하랴.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나의 생애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는 삶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나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농구를 좋아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축구와 배구도 해보았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탁구와 배드민턴을 하다가 골프에 입문했다. 그런데 요즘 골프채 가방은 거실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 수영, 스케이트도 해보았지만 맛보기 정도였다. 여가에 장기, 바둑을 즐겼던 젊은 날도 있었고, 고스톱을 치며 날밤도 새웠다. 등산에 흠뻑 빠진 때가 있었고, 낚시에 미친 시절이 아스라하게 떠오르기도 한다.다방 레지가 건네는 모닝커피를 마셔보았고 비싸다는 루왁 커피 맛을 본 적도 있다. 요즘은 아메리카노 커피도 잘 마시며 봉지 커피도 즐긴다. 막걸리를 주전자에 담아 마셨고 소주, 맥주, 양주, 마오타이, 보드카, 럼주도 마셨다. 물고기도 잡고 토끼사냥도 해보았다. 죽을 고비도 넘겨보았고 교통사고도 당했다. 이런 병도 앓아보았고 저런 병으로 입원하기도 했다.영어, 독일어, 중국어를 배워보았지만, 지금은 도로아미타불이다. 독서를 유일한 취미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책을 멀리한 지 오래다. 한때 시를 쓴다고 끙끙댔지만 이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노래를 부르고 드럼을 배워보았건만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았을 뿐이다. 여행을 다니며 명승고적도 답사했다. 자전거, 전차, 기차, 자동차, 배, 비행기도 타보았다. 학창시절 이 학교 저 학교도 다녔고 교직생활 중 이런저런 학교도 근무 해보았다. 새마을운동에도 참여하고 데모 현장에도 가보았다. 야당에도 투표해보았고, 여당을 믿어보기도 했다. 후진국에서 시작하여 개발도상국, 선진국 문턱에서도 살고 있다.개근상, 우등상, 훈장도 받았다. 좋은 사람도, 사람도 만났다. 세월의 풍상 속에 많은 친구들이 내 곁을 스쳐 갔다. 군대에서 예비군에서 훈련도 지겹게 받았다. 여자를 사랑해 보았으며, 결혼하여 자녀와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도 알았지만, 부모, 형제와의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다음 세상을 그리며 성당에도, 교회도 나간다. 불교학생회에 가입해 보았고, 신흥종교 교단에도 나가보았다.10대의 풋풋한 삶도 맛보았고, 청년, 중년, 장년의 삶을 살아왔다. 농촌 초가집에서 대가족으로도 살았고, 지금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부부와 조용히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중 몇 가지뿐이라는 걸 깨달았다.이렇게 나는 무엇이든지 진득하게 몰두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맛보기로 살아온 것 같다. 때문에 무엇이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 쫓기는 것도 아닌데 남은 생애 동안 깊이 파고들 것을 찾고 싶다. 수필에 입문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슬그머니 꾀가 나고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그렇다고 달리 몰두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필의 맛보기도 끝났다. 더 깊이 몰두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생각할 때가 온 것 같다.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을 노래한 천상병 시인도 세상 눈요기를 맘껏 하고 떠나지 않았을까? 나는 오늘도 못 다한 삶을 맛보기 위해 분주하게 나들이를 해야 할 것 같다.△김현준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으며, 남원 한빛중학교 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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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0 23:02

전주종합경기장 단상

전주문인협회에서 문학기행을 가는 날이었다.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에서 출발할 예정인데 나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추억이 서린 종합경기장을 들러보고 싶어서였다.전주종합경기장은 제44회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논을 메워서 1963년에 준공하였다. 이후 1980년에 제61회 대회가. 1991년에는 제72회 대회가, 그리고 2003년에는 제84회 대회가 개최된 장소다.제44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될 당시에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축구선수로 그 대회에 참가했다. 제61회 대회에는 전라북도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그리고 제72회 대회에는 전라북도축구협회부회장으로 참가했다.그런데 44회를 전주에서 그 대회를 유치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경기장도 문제였지만, 각 시도의 선수들을 수용할 숙박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44회 대회를 이곳에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쳐 전북도민의 저력을 발휘하면서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이 대회를 통해서 전주는 멋과 맛의 고장이며 인심 좋은 고장임을 전국에 또 한 번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맛의 고장이란 그 지역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전주는 달랐다, 이미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으로 맛의 고장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선수들이 민박을 통해서 각 가정에서 맛을 본 음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이후 종합경기장은 전국체전 외에도 전국소년체전이나 전국규모의 많은 행사가 많이 유치되었다. 어느 지역을 가나 대부분의 경기장마다 출입문이 네 개였다. 대개 동서남북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문이 다른 문보다 규모가 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콘크리트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전주종합경기장은 달랐다. 수당문은 삭막한 몰골을 들어내 보이는 콘크리트 문이 아니라, 은은한 한국미를 자랑하는, 단청으로 말끔히 단장된 고풍어린 일주문이었다. 그것을 보고 선수들은 전주가 천년고도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경기장 동편으로 도열해 심어져있던 이태리포플러나무들이 외지에서 온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부분 조경수로 듬성듬성 빈 공간을 채우기에 급급했는데, 키가 큰 포플러가 단지처럼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라이터가 없던 시절에 성냥개비로, 이쑤시개와 나무젓가락, 그리고 펄프용으로 경제성이 많은 그 나무들을 보고 많은 선수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은 그 자리에 100m달리기 4레인이, 그리고 나머지는 주차라인이 그려져 있다.원래 종합경기장에는 별도의 정문이란 호칭이 없었다. 하지만 전주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출입문 하나를 설계하고 그 비용을 (주)삼양사에 의탁했다. 그 회사 회장의 호를 딴 수당문이 된 연유였다. 그래서 전주시민들은 지금까지도 수당문 외에는 경기장의 문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그런데 친일잔재청산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수당문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 보도를 접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었는데 수당문이란 현판만 철거되었다. 그것을 보고 이름표를 떼어내거나 바꿔 달면 모든 것이 청산된다는 생각이 들어 찜찜했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어서 집행을 유예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나는 욕심을 부르지 않고 바보처럼 사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란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올랐다.△수필가 이희근씨는 계간 〈문학사랑〉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산에 올라가 봐야〉〈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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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3 23:02

신리 가는 버스

버스는 서학동의 교대 앞을 지나서 좁은목을 돌아, 시내 외곽으로 나와 신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세 살배기 외손녀 녀석 말대로 주황버스(일반버스)다. 의자가 꼭 차 있는 파랑버스(좌석버스)보다 차안이 넓어서 좋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물론 승용차보다도 주황버스 타기를 좋아했었다.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유월의 산 빛은 온통 진초록이다. 오월, 연초록 때의 부드러움을 벗어나서 이젠 생동감 넘치고 역동성에 생명감이 출렁이는 진초록이다. 그 싱그러운 산 빛에서 부드러웁도록 젊음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진초록을 좋아한다.아무튼 버스 요금 800원을 지불하고서 우리 집에 가는 길에 덤으로 얻는 포만감의 하나가 아닐까. 나는 신리에 산다고 한다. 그러면 공기 맑아서 좋겠구먼하고 받는다. 그렇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면 숨 쉬는 맛이 달라진다. 제법 시원한 것 같음을 느낀다. 실제로, 아니 기계로 측정 해 보지 않아서 수치상으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실은 굳이 공기 맑은 곳 경치 좋은 곳을 택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정년퇴임을 하면서 찾아 온 곳이 신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요즘 유럽에 있다는 다운시프트(downshift)족도 아니고, 도시 기피증이란 말 같은 것은 생각 해 보지도 않았다.하여간 좀 한가롭고 공기도 맑은 것 같고, 그보단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을 볼 수 있음이 좋아서 옮겼을 뿐이다. 4월엔 보이는 산마다 꽃밭이었기도 했다. 높고 낮은 산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산마다 산벚꽃으로 하이얗게 수를 놓은 듯 고왔었음도 놓칠 수 없는 경관이었다.어찌되었건 나는 요즈음 더욱 신리로 가는 버스만 타도 좋다. 그 중에서도 주황버스가 더 좋다. 그것은 세살배기 그 녀석이 입구에서 통통거리며 뛰어 가서 좌석을 하나 차지하고 좋아하며, 두리번 두리번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귀여운 모습이 선해서 더욱 좋은 것이다. 물론 버스 안이 복잡하지 않을 때의 일이다.신선하고 천진한 호기심으로 마냥 환하게 웃음 주던 녀석 모습은 언제 떠 올려도 행복하다.그러니까, 그 녀석이 3개월 여를 우리집에 와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많이 남겨 놓고 갔다.하부지 이게 뭐야?노오란 민들레를 비롯, 작은 풀꽃들이며 제가 처음 보는 것들이면 그냥 이게 뭐야라고 묻던 일. 과자를 맘대로 골라잡는 재미로 동네 슈퍼에 가자고 떼를 쓰던 일. 세 칸짜리 통근 기차(전주-군산간)를 타고, 폴짝폴짝 뛰면서 꽃기차(기차 외부에 꽃이 그려져 있음)탔다고 좋아 하던 일 등.하기야 지금, 그 녀석은 싱가포르에서 2층 버스를 타고 또 그렇게 좋아 한다고 하지 않는가.어쩌면 녀석은 버스 타는 재미를 빨리 터득한 건지 원.그런데 이런 재미도 내역도 모르는 이들은 아이고 바쁜데 웬 시내버습니까?하면서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하라고 권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서 속으로 대답한다. 그냥 웃으면서.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난 버스를 탈거야. 그 녀석이 좋아하던 주황 버스를. 그리고 느리게 살 거야. 저속 기어로 갈 거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쿨(cool)하게 살 거라구--후후.△윤이현씨는 〈아동문예〉로 등단했으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가을하늘이 등재돼있다.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국미래문화연구원장, 전북아동문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완주문협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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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7 23:02

어깨를 끼고 달리면 편하다

아이와 함께 낙원촌 캠프에 가는 날이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날은 유난히 길이 막혀 시간이 촉박해져서 마음도 약간은 조급했다. 기차역 앞에 당도하니 정말 몇 분이 안 남았다. 우리는 둘이 손을 잡고 달렸다. 플랫폼에 나오니 기차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열차에 오를 때까지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차가 스르르 움직였다. 그 때서야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차를 타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을 달리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매일 길을 나서보면 언제나 많은 사림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무엇 하는 사람들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두 바쁜 표정으로 누구보다 빨리 갈려고만 한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남보다 앞서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래서 길을 나서면 빨리 가는 길을 선택하려고 한다. 빨리 도착해야 할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먼저 도착한 사람이 행복을 모두 차지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뒤에 쳐져 있는데 혼자 외로이 달려서 잡은 결과가 행복일까.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되새겨지는 이야기가 있다. 내 인생의 지평을 더 넓게 펼쳐주었던 한 이야기를 생각한다.햇살이 뜨거운 여름 길을 땀을 훔치면서, 몇 사람의 동행자가 역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자. 시간을 재촉하면서 걸으며 가끔 시계를 보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 3분밖에 남지 않았어도 모두는 각별히 초조한 모습은 아니고 조금 보폭이 커지고 속도가 빨라진 정도였다. 드디어 역의 구내가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 열차가 들어왔다.고 외쳤다. 그때 누군가가 간발의 틈도 없이 어깨를 끼고 달리자라고 해서 함께 어깨를 끼고 달렸다.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차시간이 늦어질 때면 뛰는 일은 자주 있는 데 어깨를 끼고 달려본 적이 있는가. 도착해서 어깨를 끼고 달리니 훨씬 편하고 빠르네요.라고 했다. 나의 경험으로는 이런 때일수록 혼자 달린다. 같이 가다가는 발이 늦은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도착했다 해도, 나중에 오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이것이 우리들의 실생활 현실이다. 그런데 어깨를 끼고도 달리면 편하고 빠른 것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우리 인류는 21세기를 어떻게 맞아들여 무엇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 지금까지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목적도 수단도 종지부를 찍고 이제 새로운 도정으로 나 보다는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함께 어깨를 끼고 가자. 가정, 사회, 나라, 아니 온 인류가 모두 유일무이한 행복의 열차에 타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가 어깨를 끼고 타는 것이다.한 해의 마지막 날, 0시를 통과하면서 모두 새 단추를 끼지만 내 마음에 새 태양이 밝아오지 않는 한 새 날은 오지 않으리라.그러나 희망의 열차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우리 철도 100년사에 크나큰 전환점이 된 초고속철도가 운행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두 시간 반 만에 달릴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의 행복도 그렇게 빨리 실어다 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혼자 빨리 달려가다가 넘어져서 발 다치지 말고 누군가하고 사이좋게 팔짱이라도 끼고 걸으며 행복의 열차로 다가가자. 묵은 관념의 옷을 과감히 벗어 꽃피는 계절에 행복의 열차를 타러온 사람들과 어깨를 끼고 달리자.△조윤수씨는 〈수필괴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바람의 커튼〉 〈나도 샤갈처럼 미친 글을 쓰고 싶다〉 〈차마고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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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0 23:02

말(言) 무덤

하회마을을 나와 귀갓길에 올랐다. 네비게이션이 집까지 안내하는 시간은 3시간 이상 걸리는 긴 거리였다. 안동에서 예천, 남상주 IC에서 대전, 그리고 전주까지, 갈 때와 방향만 다를 뿐 빙빙 돌고 돌아야 하는 동선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쩌랴. 하회 마을 역시 낙동강이 휘감아 돌던 곳에 있었으니 내가 강이 되어 돌아가는 수밖에. 도로가 굽이 길과 오르막이 많고 공사구간이 많은데다 비가 내린 탓에 바닥이 온통 흙투성이서 차 룸미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나온 시간들이 온통 흐릿했다.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 이르렀을 때 말 무덤이란 입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당연히 말(馬)무덤이라고 생각했는데 말(言)무덤이었다. 차를 길 한 쪽에 세우고 안내판을 따라 들어갔다. 마을에 여러 성씨가 모여 살았는데 집안끼리 싸움이 그칠 줄 몰랐다. 어느 날 지나던 나그네가 마을이 풍수적으로 개가 짖어대는 모습을 띤 혈이라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 주둥이 송곳니 되는 곳에 날카롭게 생긴 바위를 세 개 세우고, 앞니가 되는 곳에 바위 두 개를 세워 재갈을 물리게 하였다. 끝으로 싸움을 일으킨 발단이 된 말(言)을 묻어 말(言)무덤을 만들었더니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잘 지냈다.는 유래담이었다.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와 같은 말을 바위에 새겨 말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채찍하고 있었다. 「논어」에서도 일에는 민첩하되 말은 삼가라.고 가르치고 있다.이렇듯 동서고금을 통해 말과 관련된 속담이나 경구가 많은 것은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말실수를 가장 많이 하며 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을 전달하다 보면 보태기 마련이지 덜지는 않는다. 말은 양쪽 말을 다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한 쪽 말만 경청하거나 듣기 편하고 좋은 말만 가려서 마음에 집어넣는다. 이것으로 끝내면 좋으련만 상상력을 무한대로 발휘하여 자기 생각까지 덧칠을 한다.이 과정에서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키거나 특정인을 말로 죽이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있는 조직이나 사회는 늘 분쟁과 갈등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불신이 기생식물처럼 붙어 다닌다. 우리는 아침햇살처럼 맑고 깨끗한 말을 하기보다 어둡고 칙칙한 말을 하면서 살 때가 많다. 소망적인 말보다 절망적인 말, 품어주는 말보다 밀어내는 말, 등을 대주는 말보다 등을 돌리는 말, 아랫목처럼 따스한 말보다 차디찬 얼음 같은 말을 많아 하며 살아 왔다.귀갓길,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쓸 데 없는 말을 모아 말(言)무덤에 묻은 선조들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한 말 가운데 말(言)무덤에 매장해야 할 말은 얼마쯤 될까. 감사하지 못하고 뱉어낸 불평, 불만, 원망, 망은의 말. 겸손하지 못하고 쏟아낸 교만, 자랑, 오만스러웠던 말. 경외하지 못한 불경스러웠던 말, 순종하지 못한 고집스러웠던 말. 관대하지 못한 인색하고 탐욕스러웠던 말들 천지였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내가 한 이런 말 때문에 상처받았거나 분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이 말들에 대한 부고장을 보냈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겨울오후가 저물고 있었지만 다가올 시간들이 청명하고 가지런하게 쌓여 대낮 같았다.△최재선씨는 월간 〈창조문예〉에서 수필, 계간 〈에세이〉에서 동시로 등단했다. 수필집 〈이 눈과 이 다리 이제 제 것이 아닙니다〉 〈무릎에 새기다〉가 있으며, 현재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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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9 23:02

나른한 어느 봄날

그해엔 딸을 많이 낳아서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 열한 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떼로 뭉쳐 다니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목자치기, 땅따먹기 등, 놀이도 많았는데 나는 자치기가 재미있었다.작은 막대 양옆을 사선으로 자른 끝을 큰 막대로 때려서 뛰어오른 작은 막대 옆을 탁 치면 멀리 날아가며 내는 바람소리가 좋았다. 때로는 앞 냇가 강변에 나가 돌을 골라 경계선을 만들고, 조그마한 텃밭을 일구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여기면서 무언가 열심히 심기도 했다. 떡잎이 날 무렵 비가 오면 텃밭이 떠내려 가버려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생산이 목적이 아니도 다만 여러 친구들의 소꿉놀이터였을 뿐이었니까.어느 날, 친구들과 방천으로 나물을 캐러 갔었다. 처음엔 모두들 열심히 캤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겨우내 움츠렸던 봄은 행복을 채워주려고 우리의 눈길과 발길 닫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향기를 피우며 유혹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지쳐 집에 가자고 친구들을 부르며 일어서는데, 멀리 물길에서 벗어난 작은 웅덩이가 보였다. 물가가 새파란 게 나물이 있겠다싶어 뛰어갔다.물기를 머금은 풀 속에서 쑥이며 미나리를 뜯다가 바라보니 파란하늘과 흰 구름이 물속에 잠겨있고 물이끼 덮인 돌덩이들 사이로 송사리들이 몰려다녔다. 물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물속에 다른 세상이 잠겨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잠시 예쁜 동화나라에 놀러 온 것 같았다. 행복해하며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을 하나 던지니 동그랗게 파문이 일며 물고기들이 흩어졌다. 심심한데 물고기나 잡아볼까 싶어 발을 담그니 발이 시렸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발을 물속에 몇 번 넣었다 뺐다 반복하니 괜찮아졌다.물속에서 발을 옮기는 대로 물결이 밀려가며 이끼가 흩어져 물은 흐려지지만 돌덩이를 들어보니 미꾸라지도 숨어 있었다. 어쩌다 두 손으로 미꾸라지를 움켜잡으려는데 손바닥에 닿는 순간 타다닥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뒷걸음치며 일어서다 넘어질 뻔했다. 다시 고무신을 양손으로 잡고 발로 살며시 돌을 떠들어 물고기를 잡아보려 애를 썼지만 마음같이 잘 되지 않았다.큰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송사리나 잡아볼까 하고 나물소쿠리를 비워서 물속에 넣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쫒아 다녔지만 힘만 빠지고 발바닥도 아파 물가로 나왔다. 그래도 재미가 있어 좋아했는데 종아리에 이상한 느낌이 있어 바라보니, 거머리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나물 뜯던 칼을 쥐고 거머리를 떼어보려니, 팔이 떨리고 온 몸이 굳어 눈물만 흘리다 방방 뛰며 엉엉 울었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뛰어와 왜 그러느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다.내 종아리에서 피가 흐른다는 소리를 듣고 내려다보니 거머리는 떨어지고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 앉아있으니 누군가 쑥을 찧어 다리에 붙여주며 손으로 누르라고 했다. 잠시 쉬었다 땅에 쏟아 놓았던 나물을 주워 담아 들기도 귀찮아 나물소쿠리를 배에다 붙이고 두 손으로 안고 걸어왔다. 대문 앞에서 배에 댔던 소쿠리를 떼어드니 나물이 한 주먹도 안 되었다. 걸어오면서 소쿠리 양옆으로 흘려버렸나보다. 소쿠리를 대문 기둥에 탁 때려 몇 개 안 되는 나물과 흙을 털어 버리고 이래저래 기운이 다 빠져 나른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하늘을 보니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그때 나는 아, 해님이 나를 예뻐하셔서 나만 따라오고 있었구나! 생각했었다. 나른한 어느 봄날 있었던 일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문진순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해 안골수필문학회에서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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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2 23:02

시래기 우거짓국

요즘 들어 TV에서 요리에 관한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한다. 갖가지 먹거리의 식재료와 기구를 이용하여 즉석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맛있는 식탁을 꾸려 주고픈 주부들에게 나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도 때로는 무슨 거창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늘 먹는 삼시세끼에 다소나마 변화를 주고 싶어 적잖이 고민할 때가 있다. 이왕이면 맛도 있고 영양가도 따져가며 식탁을 꾸려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어서 어떤 때는 제철에 나오는 싱싱한 재료를 식탁에 올려야지 하다가도 새로운 반찬 없이 먹던 음식을 그대로 내어놓을 때도 가끔은 있다. 그러다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끼니를 때우는 데 급급한 자신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누가 우리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게다. 그러나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성일지라도 가끔은 내가 먹고 싶어서 음식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중 하나가 바로 우거지나 시래기를 이용한 지짐이나 국 요리다. 시래기는 배추나 무 잎을 구하여 될 수 있으면 집에서 꼭 삶아서 해먹곤 한다. 요즈음은 텃밭에다 무와 배추를 직접 가꾸어서 여린 잎 때부터 시래기로 국을 끓여먹곤 한다. 시중에서 여러가지 시래기들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팩에 넣어 팔기도하지만 난 여태껏 우리 가족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 사먹어 본 적은 없다. 식당에서는 우거지갈비탕이니, 시래기해장국이니 이름 붙여 놓고 팔지만 시래기나 우거지는 부 재료이고 주인공은 본래 엄연히 갈비고 해장국인 셈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어디에서 유명한 시래기 우거짓국을 팔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은 없다.요즘 같은 때는 김장김치 위에 얹은 우거지로 국을 끓여먹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국으로 끓이려면 며칠간 우려내서 소금기를 빼내기 빼야 한다. 슴슴 해지면 먼저 냄비 바닥에 멸치, 디포리, 건새우, 다시마 등을 넣고 된장을 약하게 풀어 자작하게 끓여야 한다. 우거지가 흐물흐물해지기까지 약한 불로 끓이다가 마늘, 양파와 파, 그리고 매운 청양고추를 넣어 먹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은근하고 깊은 맛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더구나 많은 손길을 거쳤기에 감칠맛이 더해지는 듯하다.그동안 우리 집 시래기 된장국은 한 번도 식탁에서 내로라하며 주인공 행세를 해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집에 오면 엄마가 만들어준 우거지 시래깃국이 대 환영이다. 그 애들은 더 화려하고 더 있는 고단백의 음식에 익숙해 있을 텐데도 엄마가 끓여준 우거지 시래깃국에 젓가락이 먼저 간단다. 이를 보고 나는 가끔 지금이야 내가 입맛에 맞게 직접 끓여줄 수 있지만 나이 들어 직접 음식을 하게 될 때는 누가 이런 맛있는 국을 끓여줄까? 며느리는 더더구나 아닐 테고 딸도 기대를 못할 것 같다는 혼자만의 걱정도 해 본다.작년 7월에 우리 집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크나큰 슬픔에 싸인 일이 생겼다. 특히 친정어머니께서는 거의 모든 음식을 드시질 못하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며 힘들어하셨다. 이런저런 음식들을 갖다 드려도 며칠 후에 가보면 냉장고 속에 거의 그대로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네가 가져온 우거짓국으로 어제오늘 밥숟가락을 좀 넘겼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좋아해서 우거지 시래깃국을 즐겨 먹게 된 줄 알았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손맛에서 내게 익숙해진 음식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또한 내 입맛에 맞는 우거지시래기국은 우리 자식들한테서 맛볼 수 있을 테지.냉장고 속 김치통에서 우거지를 듬뿍 꺼내어 물에 담가본다. 내일은 모처럼 짬을 내어 친정어머니를 뵈러가야겠다. 시래기 우거짓국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자꾸 듣고 싶어 하시는 당신 손녀가 낳은 16개월짜리 증손녀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문애선씨는 부안 보안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고, 현재 전국소비자교육중앙회 전북도지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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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5 23:02

도심의 수목원 햇빛찬을 가꾸며

필자는 요즈음 세간의 중심에서 회자되는 아파트 관리소장이다.그런데 아파트 관리소장이 언제부터 매스컴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아마도 관리소장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업무에 임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본다. 전국의 아파트에는 책임감을 가지고 직을 수행하는 관리소장이 참 많다. 관리소장이라는 업무적 직책보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며 소신 있게 일하는 관리소장들은 신뢰가 쌓여 입주민들과 한 식구가 된다.필자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아파트를 도심 속 작은 수목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올해도 2월부터 작년에 심어놓았던 경로당 앞 동강 할미꽃들이 잔설을 이고 불을 지피더니 이에 뒤질세라 놀이터에도 흰 개나리꽃이라 불리는 미선나무가 봄 향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태를 드로내기 시작하면 주민들은 이에 취해 무한 질주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을 하는 슬로우 아파트가 된다.전주시 삼천천을 옆에 끼고 느티나무처럼 서 있는 중화산동 햇빛찬 아파트가 필자가 관리하는 아파트다. 꽃밭에는 120여 종의 수목과 화초류가 각 세대의 문패처럼 이름표를 달고 반긴다. 출근 후 이름표를 보며 출석이라도 부르듯 봄바람 따라 아파트를 돌며 미리 내 마음속 월령가를 불러본다.가난하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 3월의 매화를 따라 하얀 목련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마치 여인의 하얀 발걸음이 내려와 서성인 듯하다. 동백은 또 언제 피었는지 함빡 웃으며 맞이하고 노란 수선화는 지나던 미소년이 고개를 내밀 듯 손짓한다. 바위틈의 난초는 붉은 꽃대를 올리며 암자처럼 고요하다. 4월이 오면 라일락꽃 살구꽃 옥매꽃이 무더기로 향수를 자극하고 5월이 오면 모란과 작약은 성화처럼 한바탕 마당을 달굴 것이다. 6월의 상사화가 서럽다. 그님을 볼 수 있는 길은 오직 꿈길 밖에 없으니.7월의 백합, 그 앞을 지나면 누구나 하얀 천사가 된다. 여름의 산수국, 헛꽃이 피어 벌 나비를 부르니 희생과 겸양지덕을 가르친다. 9월의 단풍숲이 붉은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10월의 국화는 존엄한 늦가을을 기도한다. 11월에는 남쪽 섬마을에서 시집 온 털머위꽃이 노란 향기로 파도치고 12월에는 금목서 은목서 구골목서 삼총사가 시퍼런 잎겨드랑이에서 은총의 눈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마지막 1월은 모든 생명들에게 대지의 모신 곁으로 동면휴가를 보내나니.이처럼 햇빛찬이 꽃대궐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남 남해의 섬 외도식물원처럼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꽃과 나무를 사랑한 김용신 아파트회장님의 순수함 때문이다. 푸름은 생명이다.라는 철학으로 아침마다 푸른 연잎 같은 모자를 쓰고 꽃삽을 들고 테마가 있는 씨앗을 뿌린 덕이다. 이에 아파트대표님들과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자기 앞마당처럼 가꾸며 오늘도 온고지신의 꽃밭으로 늘 탐구하며 실천한다. 그래서인지 10년 넘은 아파트이지만 젊은 동강할미꽃처럼 햇빛찬의 풍경은 늘 동안의 얼굴로 진화하고 있다.몇 년 전부터 이국적인 꽃들도 많이 이주해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로즈, 클레멘티스, 아프리카봉선화, 루피너스, 튤립, 서양산딸나무, 마로니에, 붓들레야 등 마치 다문화집 같다. 비유하자면 햇빛찬은 모든 국가와 민족이 웃음꽃을 피우며 살고 있는 작은 지구촌이다. 해마다 햇빛찬에 꽃구경하러 오시는 이웃 주민들과 유치원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그들의 눈빛은 꽃눈이 되고 마음은 꽃향기를 닮아갈 것이다.꽃의 힘을 생각해본다. 총구를 녹이는 순수함이 숨어 있다. 평화와 공존을 노래하는 꽃은 시인이요 위대한 정치가요 혁명가다. 나는 오늘도 행복지수가 높은 세상을 위해 꽃삽을 든다.△왕태삼씨는 지난 2012년 계간 〈문학시대〉로 등단했다. 시집 〈나의 등을 떠미는 사람들〉이 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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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08 23:02

규제와 배려

전주시 북부권인 동산동과 장동, 여의동을 아우르는 곳에 전주 월드컵경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월드컵 경기장은 축구경기가 열리는 일 년에 몇 번을 제외하고는 무척 한적한 곳이다. 하지만 이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가족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써 무척 각광을 받는 곳이다. 왜냐하면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기 때문이다.봄이 오면 잔디밭에서는 지난겨울이 남기고 간 노란 잔디가 움츠리고 있다가 봄바람과 함께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젊은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그늘막이나 텐트를 쳐놓고 파릇한 봄의 행복을 충전시킨다. 여름이면 숲에서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매미소리 풀벌레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풀꽃들을 안고서 삼겹살 파티도 한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면 가을 단풍과 함께 가을의 서정을 만끽해보는 산책길이 세월을 배웅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눈이 쌓이는 겨울엔 더없는 눈썰매장이 된다. 이렇듯 월드컵 경기장은 우리들과 친숙한 삶터가 되었다.그런데 이러한 도심 공간의 월드컵 경기장이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의 욕심으로 한 때 어린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저녁이면 숲 파티 장이 되었고, 남녀 불륜의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야영장이 아니니 텐트를 치지 말고 취사를 금지하며 전동차 타는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다행이도 이후 휴일이면 북적대던 이 곳에 무단으로 텐트를 치는 사람도, 가족끼리 삼겹살 파티도, 무질서한 전동차를 타는 어린이도 볼 수 없었다. 겨울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만 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설작업차가 굉음을 내며 눈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겨울방학 때면 오락실에서 게임이나 하는데 비해 얼마나 건전한 놀이인가. 어깨를 활짝 펴며 마음껏 웃고 가족과 한마음이 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 십조일 것 같다.때로는 규제도 필요하다. 규제 전에는 가족들이 놀다간 자리는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자기 집 정원의 잔디밭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수 있을까? 규제도 필요하고 때로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배려도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어릴 때 고향마을 앞에는 텃논이라 해서 항시 물이 고인 논이 있었다. 겨울이면 어른들이 물을 가두어 동네 꼬마들이 놀 수 있도록 얼음판을 만들어주었다. 물속에 남아있는 벼 그루터기가 물속에 완전히 잠길 때까지 더 많은 물을 채워 얼려 주었다. 어린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놀 수 있도록 하는 어른들의 배려가 있었다.취사를 못하게 하거나 눈썰매를 타다 다칠까봐 눈을 아예 치워버리는 그 심정도 이해하고 싶다. 눈썰매장은 어린아이와 부모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다. 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쌓여있는 눈까지 치워버려 동심을 멍들게 해서야 될 일인가. 그렇게 위험을 걱정한다면 제설차를 사용할 돈으로 안전시설을 마련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박제철씨는 경찰공무원으로 34년간 재직했다. 지난해 〈대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대한문학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 임실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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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01 23:02

아름다운 기저귀

기저귀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국어사전에도 어린아이의 대소변을 받아 내기 위하여 다리 사이에 채우는 천이나 종이라고 했다. 필자도 지난 시절 1남2여를 키우며 수없는 기저귀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어린이가 기저귀와 이별하려면 길게는 1년5개월 이상이 걸린다. 그렇다면 세 명의 아들과 딸을 길렀으니 줄잡아 50개월을 사용한 셈이다. 날짜로는 1,500일이 넘는다. 그리고 하루면 작게는 10번에서 크게는 15번도 넘게 갈아 줬으니 15,000번이 훨씬 넘는 숫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어린이가 설사나 질병이 있으면 더 갈아 줄 수도 있었으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 아내의 고생이 참으로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런데 옛날 기저귀와는 달이 요즘은 1회용으로 이를 만드는 유명메이커들도 많아 질 좋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한번 쓰고 돌돌 말아 버리면 그만 이다. 하지만 옛날의 기저귀는 일일이 손으로 빨아서 양은 냄비에 삶고 또 빨아서 햇볕에 말려 사용하고 또 사용했다. 천이 망가질 때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오래되어 구멍이 날수록 더 보들보들해서 사타구니에 더 좋았던 것 같았다.요즘 기저귀는 한번 사용하면 곧장 쓰레기통 행이였지만 그때는 그런 제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작은 기저귀 통이 별도로 있어 보관하였다가 대개는 동생들에게까지 대물림을 할 수가 있었다.생각해 보면 그냥 빨아서 사용해도 될 것을 아내는 꼭 삶아서 사용했으니 어머니의 그 정성을 우리 1남 2녀는 알고 있을까? 모를 것이다. 알았다하더라도 그 고마움은 지금쯤 잊었을 것이 분명하다. 벌써 큰딸과 아들은 40고개를 넘었고 작은 딸도 30대 후반인데 기저귀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여기까지 왔을까?얼마 전 고향 후배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서울의 유명병원에 입원했다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6개월 만에 전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왔다는 전화다. 그래서 요양원을 찾아갔다.그런데 바로 그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형! 하고 불러 보래도 아는 체도 안한다. 기저귀 때문에 쑥스러워서일 거라고 생각도 해 봤다. 그 후배가 기저귀와의 싸움에서 지고 저 세상으로 갔다. 폰에서 전화번호를 지우기가 힘들어 다시 한번 걸어보고 지웠다.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기저귀를 차러 왔다가 기저귀를 차고 가는구나 싶어 서글퍼진다. 그 날 그 현장에서 본 귀저귀가 눈에 밟혀 영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요즘 슈퍼나 약국에 가서 기저귀가 눈에 들어오면 눈을 돌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하체로 눈과 손이 간다. 언제 또 내 주위 사람들 중에 저 구차한 것을 차고 있을 것이며 나 또한 그 신세가 된다면 어떻게 그 기저귀에서 벋어날 수 가있을까 라는 자문자답도 해 보지만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문명이 그만큼 발달해 기저귀를 번거롭게 빨고 삶아 쓰지 않은 천이나 종이 제품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간편하고 기뻐 할 일인가. 다만 욕심 같아서는 누구나 기저귀 신세를 지지 않고 웃으며 행복한 죽음을 맞으면 좋겠다나는 욕심은 노욕일까?요즘 9988이란 용어가 유행이다. 분명히 그렇기 되기 위해서는 운동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를 풀면서 열심히 건강을 지키려 노력하자.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할 의무이자 책무라고 머리에 입력해놓고 살자.△이태현씨는 〈문예사조〉를 통해 수필, 〈한국문학세상〉을 통해 시로 등단했다. 임실문인협회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 〈눈으로 부르는 노래〉와 수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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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5 23:02

편지의 품은 참 넓다

가끔, 전주한옥마을을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학창시절을 보냈던 낯익은 골목들이 예전과 달리 활기가 넘친다. 이제는 화려한 색채로 물든 생동감이 내 걸음을 경쾌하게 한다.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풋풋한 젊은이들이 한옥마을의 꽃으로 피고 있다. 근래 집안 대소사나 기념일에 입는 예복처럼 간주되던 한복을 젊은이들이 여행 중에 입고 들뜬 기분을 만끽한다.한옥마을에 이는 한복 입기 열풍을 타고 나의 옛 추억이 떠오른다. 한옥마을에 학교가 있었던 나는 그 주변에서 자취를 하면서 살았다. 좁은 골목 끝에 처마가 낮은 기와집에서 살았던 자취방은 늘 썰렁했다. 귀가할 때도 맞아주는 가족이 없고, 저녁이 되어도 동생이 귀가를 하면 더 이상 찾아올 사람도 없던 아담한 공간이었다. 숙제를 마치고 밤이 깊어지면 습관처럼 편지를 썼다.하굣길에 무거운 책가방을 마루에 내려놓기 전, 행여 반가운 편지가 있나 두리번 거렸다. 방문 앞에 놓인 편지를 보면 외로움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편지가 생활의 일부분이던 시절이다.정기적으로 부모님께 안부 편지를 드려서 걱정을 덜어드렸고, 멀리 있는 친구에게 자정이 넘을 때까지 편지를 썼다. 다음날 학교 가는 길에 빨간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면 그때부터 답장이 올 때까지는 희망의 시간이었다. 나와 몇 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던 영숙이가 생각난다.서울로 시집간 사촌언니의 막내시누이었던 영숙이는 나와 편지친구였다. 사촌언니 신혼집에 놀러 간 것이 나의 첫 서울나들이였다. 언니는 동갑내기 영숙이를 친구로 소개해 주면서 함께 시내구경을 다녀오라고 했다. 친구를 따라 나선 서울구경은 동네에 국한되었지만 산골소녀인 내 눈에는 가장 화려한 서울 거리였다.그 만남 이후 영숙이는 나와 편지친구가 되었다. 서울 멋쟁이소녀 아니랄까봐 고운 편지지에 예쁜 글씨로 쓴 편지를 보내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어느 날은 예쁜 편지지 한 귀퉁이를 리본처럼 접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매번 다른 모양으로 접은 편지지가 들어 있어 따라 접는 것도 흥미로웠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서울의 거리를 상상했고, 영숙이의 편지에 담겨올 서울 소식을 기다렸다.편지의 품은 정말 넓다. 소녀인 내 마음을 설레게 한, 한 통의 편지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꿈을 함께 심어 주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뒤지지 않는 사연을 쓰려고 책도 읽고 사색도 하면서 노력했다. 덕분에 서울 친구 따라 하기를 하면서 감각도 키웠고 무엇보다 문장실력도 쌓아갈 수 있었다.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이 어찌 소녀시절 뿐이랴! 내가 중년에 만난 동생과 거의 두 주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받고 한 주가 지나면 동생의 편지를 다시 읽고 대답도 하고 또 나의 근황을 전달하면서 답장을 쓰는 즐거움에 푹 빠졌었다. 그때 받은 편지를 노트에 붙여 보관했더니 근사한 책 한 권이 되어 내게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편지는 문학 장르로 구분한다면 수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다른 점은 형식이 있다는 것이다. 편지에 형식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힘이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내 사연을 적으면 맛깔스런 한 편의 수필이자 편지가 완성된다. 마음을 활짝 열고 쓰다보면 따뜻한 편지 한 통을 쓰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편지를 쓰려면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편지의 형식에 따라서 쓰기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수필집 한 권을 출간했다. 늘 부족하지만 문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발단은 단연 학창시절 주고받은 편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운 한복을 입고 전통의 숨결이 느껴지는 전주한옥마을을 탐방한 즐거움을 지인에게 감동의 손편지로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황점숙씨는 2006년 〈좋은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수필 회원과 (사)한국편지가족 전북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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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18 23:02

남편의 그녀

휴일이 끝난 다음 날 피부과 대기실은 만원이었다. 차례를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친구에게서 받은 새해 인사 문구를 모처럼 그녀에게 보내자마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영혼 없이 녹음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대부분 무관심한 듯 했지만 이상한 눈길이 나를 향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바뀐 휴대전화 사용법을 대충은 익혔는데 수신문자가 음성으로 되어 있는 것은 몰랐다. 수신음은 계속 울리지 않고 한 번으로 그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다가왔다.누가 봐도 첫눈에 반할 정도의 멋진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비쩍 마른 몸매에 키도 작았다. 생애 제일 큰 스트레스로 맘고생을 겪고 있는 나는 부모의 주선으로 마지못해 나간 자리였다. 특별한 관심도 호감도 없는 데다 인물까지 신통치 않다보니 소 닭 보듯 앉았는데 그녀 역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나 다름없었다.아무런 호기심도 없다는 듯 그저 마시다만 찻잔에만 무심히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약속 장소가 엇갈려 늦어진 시간이 다행이다 싶었는데 점심때가 되니 몸보신 될 만한 것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보호본능이었을까. 그러나 평소 영양식이라는 것은 관심이 없었기에 갈비탕과 우족탕만 떠올라 둘 중 무엇을 먹겠느냐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짜장면을 먹겠단다. 중국집을 찾느라고 꽤나 많은 시간을 헤맨 끝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마주 앉았지만 여전히 할 말은 찾지 못한 채 짜장면만 부지런히 먹었다.그녀는 생긴 것과 같이 음식도 먹는 시늉으로 그쳤다.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짠하던지 인연이란 그렇게 맺어지는가 보다. 그런데 음식을 깨작대던 그녀가 안쓰러워 보인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오히려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뒷날에 얘기를 들었다. 짜장면을 먹겠다고 한 것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맞선을 본 날 분위기 없이 탕을 권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라는 것도.그렇게 부부가 된 그녀와 살아온 지도 강산이 몇 번 변했다. 그녀는 그동안 호랑이도 되었고 지칠 줄 모르는 소도 되는가 싶더니 꾀 많은 여우가 되어 나를 놀래 키기도 하며 든든한 가정을 꾸리더니 언제부턴가 변하기 시작했다. 30여 년을 오로지 직장에만 매달리다 끈 떨어진 매 신세가 된 나와 달리 억척스레 자기 일을 개척한 그녀는 이제야 자기 세상을 만난 듯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그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보던 날 소 닭 보듯 했던 나를 다시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아 혼자 앓는 속을 그녀는 알까? 그러나 오늘은 그녀라는 음성 메시지 속 그녀의 당신도 올 한 해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한다.는 메시지가 맘을 들뜨게 한다. 이제는 그녀로 저장된 그녀를 창밖의 여자로 바꾸어 입력해 볼까? 그러면 창밖의 여자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하는 음성 메시지가 들리겠지.△이용미씨는 2002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북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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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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