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필봉에서 고성오광대를 만나다 - 박찬숙
임실 필봉의 옛 풍물굿 가락을 정리 복원하고 필봉농악의 전국적인 보급과 전승활동에 일생을 바친 고 양순용선생의 1주기 추모제로부터 시작되었고, 11주기 추모제를 맞은 지금은 필봉풍물굿이라 하여 선생의 추모제와 함께 전국 규모의 풍물놀이판을 꿈꾸고 있는, 매년 여름 막바지에 열리는 필봉 전수관 마당의 풍물굿판을 떠올린다. 해마다 구경꾼도 늘고 행사도 풍성해지고 체계도 잡혀가는 느낌이어서 다행하고 매일처럼 쏟아지던 소나기도 그날은 웬일인지 참아주니 그것도 다행하였다. 1978년도이던가? 서울 국기원에서 있었던 좌도풍물굿 필봉농악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재현되던 날의 기억, 30년 가까운 세월 저 너머에 먼지 둘러쓴 낡은 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다. 공연용으로만 짜여진 화려한 마스게임식의 농악만을 보아오던 나에게, 논두렁길을 지나 비포장 황톳길을 행진하듯 유장한 길굿 가락과 노동과 놀이와 삶의 땀냄새, 액막음과 속세의 기원 등이 틈틈이 베어있는 옛 농촌공동체의 풍물굿 그대로를 복원, 재현한 필봉농악을 처음 접했던 당시의 기억, 그것은 아마도 잔잔한 흥분이 뒤섞인 경외의 기억이 아니었나 싶다. 양순용선생의 유품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30년 전의 국기원 공연과 15년 전, 남원 대강면으로 전수갔을 때, 선생과 나의 날들이 마주치던 순간이 두 번 있었구나, 새삼 기억하며, 필봉농악의 오늘을 있게 하기 위한 선생의 고난에 찬 객지생활과 광기어린 신념,... 그 '고난'과 '신념'에 대하여 다시 또 경외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굿판에서 특히 반가웠던 것은 고성오광대 초청 공연이었다. 잔뜩 기대했던 것에 비해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여름날인데다 오늘날 최신 옷감의 질량 탓일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것이, 때로 힘차고 위엄있게, 때로 거드름피우듯 능청맞게, 그렇게 흔들리는 도포자락의 움직임을 십분 살려내는 멋들어진 춤사위는 볼 수 없이, 시종일관 활달하기만 한 춤사위에다 미얄 할매도 젊은 첩에게 밀리기에는 너무 혈기왕성한 연기와 몸짓, 경상도 고성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의 재담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반갑고 고마운 공연이었다. 오늘날 민속문화 중에서도 비인기종목으로 추락해버린 탈춤을 지금껏 보존하며 공연한다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리 생각하면 공연의 질을 놓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그 또한 경외롭다. 인기종목에 신념을 갖고 성공하며 사는 일도 훌륭하지만 비인기종목이라 하여도, 비록 성공과 거리가 멀다 해도 신념을 놓지 않고 지속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삶일지, 그래서 순탄하게 성공한 그 성공보다 고난투성이로 지켜진 신념이 두고두고 타인에게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성공을 거둔다. 살아생전 고향집으로 들지 못하고 떠돌았던 양순용 선생이 흙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고향마을 앞에 마련해준 필봉굿마당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고성오광대를 보며 다시금 세상의 고난투성이 신념들에 대하여 고개 숙여지던 늦여름밤의 기억.... 이제 겨울의 문턱, 2006년도 한달뿐이다. 올 한해 지나쳐온 시간들을 더듬으며 농사꾼이 이듬해 농사에 쓸 종자를 갈무리하듯, 단단하게 여문 기억 몇 가지 갈무리해두면 세월따라 쌓여가는 나이의 갈피가 조금은 더 두둑해질 듯하다. /박찬숙(전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