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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희망의 새 생명처럼 흰눈이 내리길 - 이세재

어느 교회의 목사님은 예배 때 가끔 갓 난 아기를 안고 기도를 한다. 이 아이에게 용기와 지혜가 충만하기를, 그리하여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며 베푸는 삶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그러기 위해 좋은 친구와 이웃을 만나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심신이 건강하게 성장 하라고 축복해 준다. 이 기도를 통해 목사님은 우리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희망을 누가 가꾸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리라. 아이만 낳아 놓으면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주신다고 설교를 하는 목사는 없을 테니까.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는 625전쟁 후의 베이비붐에 대한 내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빨래를 하다가도 애를 낳고, 시장에서, 부엌에서, 연년생으로 마치 전쟁으로 축난 종족들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아기들은 왕성하게 태어났다. 굶주림만이 입을 벌리고 있는 폐허에서 한국의 여인들은 그 아기들을 희망삼아 버티고 살았다. 머리에 생선을 이고 눈길을 걷는 어머니의 등에 업혔던 젖먹이와 좌우에서 달랑거리던 그 어린 것들이 자라서 오늘의 풍요를 이루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만약 지금 시간이 정지해서(사실은 그것이 곧 죽음의 세계이겠지만) 우리가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해서 그것이 천국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과거를 씻을 수 있는 미래라는 희망이 없는 정지된 현재가 어찌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회개한 새 생명과 구원의 기독교적 진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분명 새로운 생명에게 미래의 희망을 걸며 살아왔다.평생을 폭력과 범죄로 살다 간 마피아 비토 꼴레오네의 삶을 다룬 영화 대부의 마지막 장면은 늙은 대부가 손녀와 토마토 밭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쓰러진다. 냉혹하고 비정했던 삶을 마감하는 순간 그의 눈빛은 손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붙들고 놓지 못한다. 마치 그 손녀가 자신의 과거를 청산한 새 생명인 듯 바라보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새 생명만이 우리의 과거를 회복시킬 희망이라고 믿어질 때가 많다.또 한 해가 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인류의 구원이요 축복이라며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서고 캐럴송이 울리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굳이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는 후회스런 우리의 삶에 새 생명의 희망을 느끼게 하는 암시적 계기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하얀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덮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우리는 멋도 모르고 좋아했었다. 흰눈처럼 하얗게 씻김 받고픈 영혼의 갈망이었을 것이다.험한 세상,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갓 난 아기의 새 생명이 자라기를 빈다. 아기들의 하얗고 뽀송한 피부처럼 우리의 희망이 피어나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이기를./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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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8 23:02

[새벽메아리] 전주종합경기장은 '주차 천국' - 전선자

모모회에서는 한 달에 한번, 유적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답사를 떠난다. 둔황 벽화처럼 벌겋게 밝아오는 여명과 함께 무주를 출발, 전주를 향해 달리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고 신선, 명쾌하다. 구릉 같은 산 셋을 넘으면서 곡예하듯 달린다. 아무리 서둘러 챙겨도 도착 시간이 급박하여 항상 조급한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 같은 용담호변 대교를 달리다보면 산 끝자락과 하늘과 강이 맞닿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호프만의 뱃노래'를 들으며 음악이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잠시 생각한다. 전주에 가면 어머니 품만큼 큰 주차장이 있어 한가닥 걱정을 던다. 바로 종합경기장이다. 떠나는 곳은 항상 그 경기장의 수당문 앞이어서 등산가는 버스, 타지 혼사에 가는 버스, 기행 답사 떠나는 버스, 등등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작은 차를 주차시키고 단체활동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하고 이만한 거리, 공간이 달리 많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루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440여대, 그러나 차를 하루종일 주차하고 다니지는 않아서 들고 날고 하는 차량 수가 1,000여대에서 많게는 3,000여대 정도가 하루에 주, 정차를 할 수 있다하니 과히 오지랖이 넓다하지 않을 수 없다.전주 종합경기장 하면 큰 체육시설만도 13개, 작년도 이용횟수와 인원이 391회 29만 9천여명에 이르렀으며 2004년도에는 무려 411회에 30만 7천여명에 이르렀다한다. 물론 전북도에서 전주시로 이관된 대지 38,000여평 규모의 시설이고 공무원이 관계하고는 있지만 체육관계자와 공설운동장관계자는 주말과 공휴일도 반납한 채 수당 없는 근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난 6월 월드컵 경기 때에는 붉은 악마와 시민 10만 명이 이곳에 모여 열띤 응원을 펼쳤고 최근 일로는 12월 6일에 '현대차노사 대타협촉구 촛불집회'가 7-8,000 여명이 모인 가운데 무사히 이뤄졌다한다. 이렇듯 전주의, 아니 전북의 대소사를 다 치르고 있는 종합경기장이야말로 전북의 모체라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리라. 오나가나 걸리는 것이 차이고 보면 주차시설이야말로 시민의 걱정을 해소해주는 큰 힘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이 그리 좁다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늦게 들어가면 차 댈 곳이 없어 몇 바퀴 뱅글뱅글 돌기가 일쑤인 현실, 한정된 토지에 이 또한 감당하기 힘든 것이 주차시설이리라.비슷한 시설로는 월드컵 경기장과 전주대 옆 자전거 경륜장과 도청 주차장이 있다. 년 간 무휴 시민들의 건강증진, 체력단련, 여가활동(자전거 타기, 인라인스케이트 타기)을 겸한 시설로 무료개방하고 있다한다. 물론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용되고 있어 당연하다 말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역지사지, 내가 주말과 공휴일도 쉴 수 없는 공무원, 그 처지에 있다면 불만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관계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한편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주변환경이나 화장실이 청결하지 못함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니 좀 개선해야 할 문제다.하루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종합경기장에 주차된 무사한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유쾌하고 보람차다. 과연 양심적으로 볼 때 몇 천원에서부터 몇 만원에 이르는 주차비를 지불했다면 그러할까? 좋은 시설을 맘껏 향유했다는데서 오는 만족감에 그저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전선자(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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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1 23:02

[새벽메아리] '공공성'의 벽 소통 통해 뛰어넘자 - 노현정

벌써 2006년 한 해의 끝에 와 있다. 이제 겨우 한 장 남은 달력의 가벼움은 이미 넘겨있는 지난 달력들의 무게를 저울질 해봐야할 것 같은 책임감을 얹어주고 마음의 무게만 무거워진다. 그래도 매번 맞이하는 연말은 365일 각각의 삶터에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돌아봄의 의미를 부여하며 진한 삶의 가르침을 준다. 그렇게 한해를 보낼 준비를 하는 여타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올 한해를 뒤돌아보다 끝없는 고민에 빠져있다. 특히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게 평등함을 공존하게 하고, 전체 시민들의 정치 사회적 영역에 걸친 공익적 가치가 제대로 환원될 수 있도록 실천적 활동을 고민하는 나로써 더욱 그렇다. 단편적으로 최근 연일 보도되는 한미 FTA 반대집회와 원천봉쇄로 막으려는 정부와의 싸움을 마주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그늘은 무엇보다 내 마음의 허기 같은 공허를 느끼게 한다. 요즘 빈번하게 들리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현재 시장과 경쟁,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대표적으로 공공부분과 공적사회보장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민영화하는 등의 프로젝트로 관철되고 있다. 또한 전 사회적으로 시장과 경쟁의 원리를 달성하기 위해 지역사회 안까지 공적 또는 사적인 영역을 불문하고 정치적인 공세를 펼치면서 그 파워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2003년경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WORLD BANK나,IMF 조차도 입장을 수정하였고, 신자유주의 이념에서 말하는경쟁이라는 것이 우리 삶 속에선전쟁과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다른 국가들과 연구자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데도 말이다.이러한 상황 속 끝없는 고민의 시작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해 내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한 시민운동이 이제 거세게 몰아쳐오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적 실천의 중심에 공공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 없이 신자유주의에 내던져지고 있는 시민들의 경제적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들을 통해 시민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켜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안에 거침없이 계속되는 맹목적 발전주의가 극복되고 다양한 가치가 살아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삶의 조건들이 채워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는 공공성의 이름으로 민주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권위를 가져갔고, 지역의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관련된 공공적 이슈의 결정을 특정 공적기관이 절대 독점해왔다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될 일 이다. 다가오는 2007년, 지역 안의 다양한 시민사회세력들이 공공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민주적 협치를 가능하게 할 때 일방적이며 형식적인권위주의적 공공성의 벽을 뛰어넘어 발전을 위한 발전이 아닌 진정으로 소통되어 성장하는 전라북도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노현정(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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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04 23:02

[새벽메아리] 필봉에서 고성오광대를 만나다 - 박찬숙

임실 필봉의 옛 풍물굿 가락을 정리 복원하고 필봉농악의 전국적인 보급과 전승활동에 일생을 바친 고 양순용선생의 1주기 추모제로부터 시작되었고, 11주기 추모제를 맞은 지금은 필봉풍물굿이라 하여 선생의 추모제와 함께 전국 규모의 풍물놀이판을 꿈꾸고 있는, 매년 여름 막바지에 열리는 필봉 전수관 마당의 풍물굿판을 떠올린다. 해마다 구경꾼도 늘고 행사도 풍성해지고 체계도 잡혀가는 느낌이어서 다행하고 매일처럼 쏟아지던 소나기도 그날은 웬일인지 참아주니 그것도 다행하였다. 1978년도이던가? 서울 국기원에서 있었던 좌도풍물굿 필봉농악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재현되던 날의 기억, 30년 가까운 세월 저 너머에 먼지 둘러쓴 낡은 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다. 공연용으로만 짜여진 화려한 마스게임식의 농악만을 보아오던 나에게, 논두렁길을 지나 비포장 황톳길을 행진하듯 유장한 길굿 가락과 노동과 놀이와 삶의 땀냄새, 액막음과 속세의 기원 등이 틈틈이 베어있는 옛 농촌공동체의 풍물굿 그대로를 복원, 재현한 필봉농악을 처음 접했던 당시의 기억, 그것은 아마도 잔잔한 흥분이 뒤섞인 경외의 기억이 아니었나 싶다. 양순용선생의 유품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30년 전의 국기원 공연과 15년 전, 남원 대강면으로 전수갔을 때, 선생과 나의 날들이 마주치던 순간이 두 번 있었구나, 새삼 기억하며, 필봉농악의 오늘을 있게 하기 위한 선생의 고난에 찬 객지생활과 광기어린 신념,... 그 '고난'과 '신념'에 대하여 다시 또 경외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굿판에서 특히 반가웠던 것은 고성오광대 초청 공연이었다. 잔뜩 기대했던 것에 비해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여름날인데다 오늘날 최신 옷감의 질량 탓일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것이, 때로 힘차고 위엄있게, 때로 거드름피우듯 능청맞게, 그렇게 흔들리는 도포자락의 움직임을 십분 살려내는 멋들어진 춤사위는 볼 수 없이, 시종일관 활달하기만 한 춤사위에다 미얄 할매도 젊은 첩에게 밀리기에는 너무 혈기왕성한 연기와 몸짓, 경상도 고성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의 재담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반갑고 고마운 공연이었다. 오늘날 민속문화 중에서도 비인기종목으로 추락해버린 탈춤을 지금껏 보존하며 공연한다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리 생각하면 공연의 질을 놓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그 또한 경외롭다. 인기종목에 신념을 갖고 성공하며 사는 일도 훌륭하지만 비인기종목이라 하여도, 비록 성공과 거리가 멀다 해도 신념을 놓지 않고 지속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삶일지, 그래서 순탄하게 성공한 그 성공보다 고난투성이로 지켜진 신념이 두고두고 타인에게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성공을 거둔다. 살아생전 고향집으로 들지 못하고 떠돌았던 양순용 선생이 흙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고향마을 앞에 마련해준 필봉굿마당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고성오광대를 보며 다시금 세상의 고난투성이 신념들에 대하여 고개 숙여지던 늦여름밤의 기억.... 이제 겨울의 문턱, 2006년도 한달뿐이다. 올 한해 지나쳐온 시간들을 더듬으며 농사꾼이 이듬해 농사에 쓸 종자를 갈무리하듯, 단단하게 여문 기억 몇 가지 갈무리해두면 세월따라 쌓여가는 나이의 갈피가 조금은 더 두둑해질 듯하다. /박찬숙(전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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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27 23:02

[새벽메아리] 대학 입시는 시작되었는데 - 이세재

장차 부모님이 늙으시면 무얼 해드리겠는가? 지난 10월, 모 대학교 수시모집 면접시험 문제였다. 거기에 응시한 학생이 있어 어떻게 대답했느냐고 물었더니 집을 사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이것저것 예상 질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준비해 갔던 학생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면접에 맥이 빠져 돌아왔다.그렇다. 늙으신 부모님께 집을 장만해 드리겠다는데 더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교수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이면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소중한 것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소외감이나 외로움 등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걸 여러 교과를 통해 배웠지만 그것은 한낱 시험문제에 불과했고 정작 그 학생의 의식을 지배했던 건 자나 깨나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물질적 행복이었던 것이다.그 학생이 면접시험을 보러 가기 며칠 전에 우리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 humanism)'에 대한 수업을 했었다. 나노기술, 생명공학, 컴퓨터 등 최첨단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미래의 인간은 복제된 자신의 새로운 신체에 뇌의 기억까지 옮김으로써 영생을 구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인간은 이제 호모 사피언스 사피언스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포스트휴먼(post human)으로 가는 것이다. 이 내용은 수능 언어영역 문제집에 있는 지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과 죽음, 영생에 대한 허구, 진정한 행복 등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고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수학능력고사를 위한 수업은 학생들에게 예상 문제의 유형이나 기억되었을 뿐 다른 내용은 모두 지워져 버렸나 보다.사회 분위기가 학교 교육을 뒤흔드는 시대가 빨리 가기를 기대하며 교단에 서 왔다. 교육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이야말로 교육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늙으신 부모님께 소중한 것이 아파트라고 선뜻 대답할 수밖에 없는 고 3 제자를 보면서 교육적 자존심은 또 한번 무너졌다.대학은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균형적인 사고력을 유도하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통합교과 논술 시험 등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온갖 잔꾀로 그 논술에 대항하려고 한다. 가정은 물론 학교까지. 그러나 현재와 같은 교육환경과 체제에서는 대학교수들이 기대하는 논술 답안지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원자로가 빈약하면 그것은 곧 재앙이다. 미래의 문명은 원자로 속의 핵물질보다 천만 배 더 위험한데 그 문명을 이끌어갈 우리 후손들의 그릇이 균형을 잃을 때 인류의 재앙은 시작될지 모른다. 학교가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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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20 23:02

[새벽메아리] 어린이 예능교육에 거는 기대 - 전선자

노란 은행잎이 바람결에 하르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누가 금종이 어여삐 울린다고 했던가. 짧은 해를 덥썩 물고 가버린 가을사이 아직 단풍잎이 곱기만 한데 첫눈의 이미지를 안겨주는 입동이 으뭉스럽게 다가왔다. 어제는 황량한 벌판에 하얀 입김처럼 서리가 앉았다. 밭엔 겨울동안 따뜻하게 지낼 김장거리가 남아 있을 뿐 된서리에 폭삭 고개 숙인 고춧대며 호박넝쿨이 하루아침에 다른 모습이어서 보기 민망하다.지난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세계태권도 선수들이 모여 한판 승부를 겨룬 '2006 국제태권도대회'가 무주 한마당잔치로 어우러져 성황리에 끝났다. 11월 9일에는 제10회 무주 초, 중학생들의 종합예능발표회가 한국 남동발전 무주양수발전처의 후원, 무주교육청(유택열 교육장) 주관으로 열렸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 어린이 교육 쪽에는 솔직히 관심이 덜했었는데 요즘 어린이 교육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궁금하여 이번만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나가 보았다.전시실을 꽉 메운 어린이와 자모들, 작품들을 둘러보며 그 높은 수준과 섬세함, 양질의 교육, 그 노고에 치하를 아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 조화로운 인간육성교육에 혼신을 기울이는 무주의 교육가족 여러분들께 감사 드리고 싶어졌다. 이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선량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고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다는 감격 때문이리라.전시 작품들은 지난 10월 종합예능경연대회에서 뽑힌 우수한 작품(한국화, 서양화, 만화, 소묘, 판화, 서예 외에 시화의 작품)과 각급 학교에서 일년동안 준비한 교육과정의 학습 실적물 총 300여 점이라고 설명했다.공간과 시각과 청각을 요하는 작품으로 사물놀이에서부터 관악합주, 태권체조, 민요합창, 스포츠댄스, 리코더합주, 가야금병창, 자율댄스, 바이얼린합주, 소방동요에 이르는 무주적인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리코더 연주를 할 때 리코더가 상식 밖으로 여러 가지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에서 내 상식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깨달았다. 시대의 장벽을 넘고 넘어 예까지 이르렀으니 우리의 성장시기를 대비시킬 필요와 재간은 없다.어린이들의 예능에 대한 관심은 평생을 두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내 경험으로 잘 안다.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담임선생님은 성악에 특기를 가지신 분이셨다. 자연히 우리 반은 전교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는 반으로 꼽혀 무대가 마련될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노래뿐 아니라 단합도 아주 잘 이루어졌다. 노래부르는 것은 정서 순화에 지대한 공을 한 것이고 음률을 탄다는 것은 생체리듬하고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며칠전 초등학교 동창회를 했는데 다섯 반 중에 제일 많이 참석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는 일일까?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어릴 때의 교육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조금씩 있을 테지만 적절한 관심과 소질 개발로 참교육을 실시한다면 지금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미래에는 훌륭한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대에 기대를 걸면서./전선자(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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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13 23:02

[새벽메아리] 플래카드에 스치는 단상 - 노현정

따르릉 따르릉 ~~ 전화벨이 울린다. 유난히 바쁜 월요일 아침 정신없이 회의를 끝내고 다른 일정을 준비할 때쯤, 전화로 전해진 황당한 이야기에 머리가 띵하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내용인 즉 문 잠그고, 노출을 피합시다.라는 내용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플랑 하나가 전주시 ooo 시장 안에 걸려있고, 그 곳을 우연히 지나가다 본 방송사 기자분이 의아해 하며 전화를 줬다는 것이다. 최근 도내 여성실종사건을 비롯한 생활안전의 위험과 불안감 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 플랑의 내용은 여성폭력의 문제가 여성피해자의 지나친 노출이나, 여성 스스로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으로 인식하며 쓰여진 내용이라는 것에 매우 심각함을 느낀다. 사실 오랫동안 사회는 여성이 겪어온 고통과 피해의 심각성을 인정하거나, 공감하지는 않으면서 여성을 피해자화 하는 데에는 익숙해 왔다. 또한 여성이 피해상황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폭력에 대한 동의나 선택으로 이해하였고, 이러한 논리에서 피해여성은 남성폭력의 원인이자 결과로 간주했었다. 결국 여성에게 가해져 왔던 폭력의 상황들이 선택되고, 동의 되었다는 전제를 깔면서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남성의 책임을 숨겨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겨우 이 플랑 하나가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사회인식의 아주 조그만 일부를 잠시 보여준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항의공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민원까지 제기하면서우리가 걸지 않았다,누가 달았는지 모르겠다는 등 소모적인 논쟁만 한 끝에 플랑이 철거되긴 했지만 그 플랑이 걸려지기 까지 그 내용을 결정하고 걸었을 사람들에게 내재되어있는 성차별적 인식과 남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자성이 먼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이 플랑이 걸려 있던 그 곳을 알게 모르게 보고 지나갔을 사람들에게 마치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의 행실과 노출의 문제로 바라보게 하고, 여성관련 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준 건 아닐까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다가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 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으로 45년 전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세 자매를 추모하기 위해 정해진 날로써, 매년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여성을 대상으로 일상적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대하고, 여성들의 몸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고자 달빛시위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낮밤 가리지 않고 운신의 위험을 겪는 여성들은 매일 알게 모르게 햇빛,달빛시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곧 있을 여성폭력추방주간, 너와 내가, 너와 우리가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평등의식의 시작이라는 사실과, 스스로가 먼저 일상에서 작은 배려와 변화를 시도하고 만들어 가지 않는 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근절 될 수 없음이 조금이라도 이해되고 인식되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노현정(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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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6 23:02

[새벽메아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 박찬숙

무르익어 씨가 제 스스로 떨어지기 전에 들깨는 앗살하게 베어 눕힌다. 벼는 여물이 꽉 차오른 노랑빛 몸매가 논둑너머를 실없이 늠실댈 때 단번에 드르륵 훑어버린다. 고추는 된서리가 내릴 듯한 전날에 마지막 붉은 고추 일절 따내고 청고추도, 잎사귀도 우두두 숨 가쁘게 훑어버린다. 토란은 대공을 껍질 벗겨 쭉쭉 쪼개 널면 일없이 잘도 마를 가을볕 며칠 좋을 날을 골라, 늘씬하고 씩씩한 대를 인정사정도 없이 와싹 베어내고 무시무시하게 큰 호미로 알토란같은(?) 뿌리를 엉덩방아 숱하게 감내하면서 열렬히 캐어버린다. 서리 오면 위험천만 고구마는 주먹만한 크기로 살졌을 때쯤, 드렁칡 같은 웃 순을 낫으로 척척 걷어내고는 진분홍 몸피 드러날 때, 행여 찍힐세라 조심조심 설레어가며 캐내온다. 모든 밭작물은 서리가 오기 전에 거둬들여야 하지만 메주콩은 서리와도 문제없다. 그러나 낙엽지고 꼬투리가 제 스스로 벌기 전에 반드시 미리 뽑아, 너무 크지 않은 둥치로 묶어 해 잘 드는 처마 밑에 세워놓는다. 팥은 꼬투리가 완전히 연갈색으로 변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제 스스로 헤프게 열어버리므로 어지간히 놀놀해졌을 때라면 지체 없이 뽑아, 덩굴째 둘둘 말아 콩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 햇빛 잘 받게 뻗쳐놓는다. 단감은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날 때 제 몸의 대부분이 주황으로 반질반질 빛나는 것부터 점찍고, 헷갈리기 전에 오르락내리락 잽싸게 딴 후 푹신한 풀섶 위로 살며시 떨어뜨려 주워 모은다. 후휴-....... 들녘의 가을걷이란 해가 짧은지라 숨이 턱에 받칠 만큼 바쁘지만 반드시 쉴 틈을 내야한다. 들깨향이며 생 볏짚 냄새 뒤섞인 선선한 바람 앞에 땀범벅이 얼굴을 내밀고 심호흡하는 기분은 오로지 농사꾼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싱싱한 행복이다. 황금들판을 넘실대는 바람은 폭넓은 비단이불깃 같으며 감나무밭의 가을바람은 폭 좁은 긴 치맛자락 같은데, 바람의 모습까지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농사꾼만의 특권이다. 비록 거둬놓은 생산물들을 저울에 달고 내다파는 순간, 보람이 아닌 시름덩어리로 전락할지언정 가을날의 농꾼들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헬렌 켈러의 스승이 그랬다던가? 사랑하면서 성공도 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실패했더라도 계속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그 말을 알기 전부터도 그랬다. 비록 제값 받아보는 성공은 별로 해본 적 없지만 농사꾼이라는 직업에 대한 사랑을 그만두겠다고 여겨본 적은 없다. 후회 없이 흘려댄 땀방울 뒤의 후련함이나 가을들녘 바람 속 휴식의 달콤함을 맛본 농사꾼이라면 실패했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제값 받지 못한 실패는 농민의 탓이 아니며 성공은 한순간에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꿈으로 남겨두었기에, 봄만 되면 어김없이 손, 발을 재촉해대며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가을을 향해 들판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밑지는 장사 안한다는 세상 속 사람들의 야무진 계산법을 모를 리 없건만 세상의 바깥쪽에는, 농업을 포기해버리려는 정부의 야속한 홀대와 날로 불어가는 빚더미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농민들이 살고 있어서, 가을마다 들판은 풍요롭게 일렁거리며 보는 이들에게도 황금빛 포만감을 선사하는 것이리라. /박찬숙(전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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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30 23:02

[새벽메아리] 가을 편지 - 이세재

죽고 싶을 땐 살아가야 할 존재 이유를, 살고 싶을 땐 영혼의 한 부분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일찍이 깨닫고 떠나버린 그대여!순리에 익숙한 계절들은 왔다간 가고 또 가지만 풀어도 풀어도 의문만 쌓이는 나의 세월은 갈수록 낯설기만 합니다. 지금, 또 가을은 깊어가고 있으나 릴케의 마지막 과실에 이틀의 햇살이 부족했던 것처럼 내 삶과 죽음의 문을 통하게 해줄 한 방울의 피가 부족합니다.서늘한 듯 차가운 듯, 정겨운 듯 쓸쓸한 듯한 가을밤 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듭니다.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그 창문을 통째로 열어젖힙니다. 아직도 이렇게 그대를 향한 피는 식지 않았는데 창밖의 플라타너스 잎처럼 내 자신의 존재 이유는 메말라 갑니다. 봄날에 아름답던 내 꽃잎은 허무하게 졌고, 그 자리에 다시 사과가 열렸고, 그 사과가 익기도 전에 햇살이 식어가는 가을의 이유를 나는 그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100년쯤이나 후에 지금 그대가 있는 곳에 가면 이 가슴이 트일지, 그래서 그리운 그대여.살고 죽는 이유들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의 유전자는 진화를 거듭했음에도 나의 세계는 아직 현실에의 저항과 순응의 고리를 풀지 못하는 어둠뿐입니다. 진?선?미에 싫증난 사람들과 더불어 허위와 악함과 혐오감을 오히려 즐기는 천박한 문화에 묻혀가면서도 거기에 저항할 피가 없음을 고백합니다.대자연의 도전에 저항하여 문명을 이룩했고, 귀족과 천민의 신분적 차별에 저항하여 평등과 자유를 얻었고, 그 문명과 평등과 자유의 질적 공유를 위해 크고 작게 투쟁해온 조상의 핏속에서 뜨겁게 흐르던 저항의 유전자는 이제 풍요로운 자유와 물질에 묻혀 잠들었습니다. 아니, 물질을 위한, 물질에 의한 투쟁의 유전자로 변질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주체할 수 없는 자유에의 불안과 고독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쥐꼬리만한 권력으로라도, 아니면 더 큰 권위에 개처럼 복종을 해서라도,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춤을 추는 자동인형이 되어서라도 나는 불안한 나를 버리고 어딘가 의지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이렇게 초라하게 나의 가을은 깊어 갑니다. 순리를 아는 낙엽은 익숙하게 제 자리를 찾아 비행을 하는데 내 삶과 죽음을 잇는 존재의 다리로 놓여 있어야 할 나는 타자(他者)의 부속품으로 소모되어 갑니다. 다시 봄이 올 때 나는 나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그러나 그대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고 100년쯤 앞에 서 있음을 느끼는 이 감각은 100년 안에 언젠가는 나도 스스로의 혁명에 의해 지금 그대가 있는 곳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대를 향하여 가을밤 쓸쓸한 창문을 열어젖히는 이 그리움의 피는 지금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홀로 사랑을 완성하라며 떠나간 그대여!/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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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23 23:02

[새벽메아리] 이 가을에 생각되는 것들 - 전선자

산천 초목 단풍으로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적상산 석벽에 붙어사는 담쟁이의 단풍으로부터 가을은 오는가. 그런가하면 들판은 오곡백과로 풍년을 노래하고 있다. 날씨가 가뭄이 들었다고들 하지만 가을걷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슨 일이나 다 좋으면 좋겠지만 그렇질 못하다.이런 가을이면 정처 없이 떠나 일탈을 꿈꾸며 며칠쯤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소망은 여인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을의 몽상이리라. 이렇게 감정적으로 설레이고 있는 시기에 우리 경제가 침체된 지도 벌써 몇 년째, 이런 우리를 절망시키는 절박한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위에 가세되어 북한의 핵실험 얘기를 들으니 보통 심란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여야 공방에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그 위기감과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는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동안 문민정부, 참여정부가 펼친 대북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이 과연 북한 국민들에게 얼마만큼 기아해소나 행복지수나 인권평등의 문제해소에 있어 큰 힘이 되었던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무작정 인도주의적 퍼주기식 지원이 그들의 핵 개발에 작은 도움이나마 주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또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의 경제협력에 힘입어 우리 투자가 그들의 핵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정부에게 묻고 싶고 만약 그렇다면 정말 억울한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다.배곯는 북한 주민을 위하여 무한한 식량과 연료원조를 해준 우리와 중국은 북한 붕괴로 인하여 대규모 난민들이 유입되는 것보다 북한 정권의 연장이 낫다고 판단되어 지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무조건적인 지원을 자제하고 유화정책의 적정성을 잘 고려해야 되지 않겠는가.그저 마음과 말로만 걱정이지 해결책을 위한 여야의 정쟁이 또한 심각하여 정치권마저 염려스럽다. 지금의 위기란 세계적인 것이어서 불안하기 짝 없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함에 있어 세계 각국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는 이유는 가치관이 다른 김정일 독재주의의 기치아래 세계 평화를 깨트릴까를 염려함이고 상품화 할 가능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의심 때문이리라.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며 오로지 나뭇잎 하나에 마지막 희망을 잃지 않았던 존시와 수우의 투철한 삶의 자세와 예술정신과 영혼의 반짝임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 가을엔 정치적인, 경제적인, 사회적인, 반인륜적인, 반모험적인 것들을 다 배제하고 조용히 묵상하면서 그저 맘에 맞는 사람과 다정히 낙엽지는 오솔길을 걷고 싶다.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허물어지려는 자신을 추스르고 싶다./전선자(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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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6 23:02

[새벽메아리] 울지마, 이젠 웃게 될거야~ - 노현정

울지마, 이젠 웃게 될거야 ~저기, 서울 여의도 한 여성의 긴 머리가 잘린다. 몇 번의 가위질에 곱디 곱게 기른 머리칼은 흩어지고 머리카락 속 감춰있던 새파란 속살이 가슴 속 응어리진 파란 멍 덩어리인 듯, 드러내 보일수록 그 큰 눈엔 달덩이만한 눈물이 맺힌다. 추석명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시 기약 없는 시간을 약속하며 하루 세끼 먹는 것 마저 포기하고 젊은 나이 지 생명을 내건다. 지난 2월 임금체불과 인권유린, 외주위탁사의 과도한 임금 착취 등 말 못할 고통과 서러운 세월 속 KTX 400여명의 승무원들은 200여일이 넘는 끈질긴 투쟁을 진행 해 왔다. 이를 통해 불법파견조사에 대한 노동부의 재조사를 얻어내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성실한 듯 보였던 조사과정과는 달리 29일 서울지방노동청은 철도공사가 도급계약으로서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다며 KTX 승무지부의 불법파견 진정 건을 종결한다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발표했다. 다시, 여기 전라북도 도청 앞 최저임금 속 사측의 비인간적 처사와 횡포 그리고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매일 쓸고 닦는 도청 앞 시멘트 바닥에 한순간 내몰리며 집단 해고당한 열 네 명의 어머니들이 있다.그 맨바닥에서 시작된 투쟁은 여러 번 찢기며 짓밟혔고,적반하장격으로 용역업체의 업무방해 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그 넓디 넓은 도청광장에서 쫓겨나 쌩쌩 지나가는 차로 앞에 천막을 치고 숙직을 해가며 투쟁해 온지 100여일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지난 8월 말 광주지방노동청 전주지청은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이고, 노동조합 가입활동에 대한 불이익을 준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써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 개입한 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을 했었다. 이러한 판결에 잠시나마 복직의 희망을 꿈꾸었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거절당했던 도지사와의 면담도 진행되었건만, 어떠한 변화도 없다. 바로 마주하고 있는 경찰청 내 미화노동자들이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3년째 고용보장이 이루어지는 모습에서 원청사업주인 도청의 책임 있는 자세가 문제해결의 열쇠임을 묵묵히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100여일이 넘는 투쟁 끝 희망에 부풀었던 도지사와의 첫 면담의 긴 시간동안 목 놓아 울었을 그들이 긴 추석연휴 부양해야 하는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횡한 천막에서 삼킨 눈물과 한숨은 얼마나 될까. 이 땅 한 곳 한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한 사회적 모순 속에 20대 초반의 여성과 50대 초반의 어머니들이 말하는 옳음이 마치 허구인 냥 뒤바꿔진 채 밤낮 허공만을 떠 다니고 있다. 지난 추석, 환하게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빌었을 그들의 소원이 추운 계절이 오기 전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래보며 울고 있는 그들의 사진 속, 울지마 이젠 웃게 될거야 라고 써놓은 그 누군가의 말이 내 가슴을 뒤흔든다. /노현정(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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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09 23:02

[새벽메아리] 비단구두 사가지고 - 박찬숙

작년 10월, 전북도청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일환이었던 방북일정에 한 일원이 되어 평양과 황해남도 신천군을 잠깐 다녀왔었다. 그 이후 내 기억 속에는 아리랑 축전이나 평양시내의 모습보다 더 뚜렷이 자리 잡은 풍경들이 있다.평양시내를 빠져나와 1시간여 달려 도착한 사리원시, 70년 전 아버지의 어릴 적 담박질 자욱이 저 어디메쯤 파묻혀있을까? (아버지는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으로 사리원 중학에 잠깐 다니신 적이 있다) 중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을 찾아 헤매던 눈초리가 금방이라도 버스 밖으로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쏜살같이 시가지를 빠져나갔고 동승한 북측 안내원들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몰래 셔터만 더듬다가 아쉽게 놓쳐버린 시가지 모습, 순간 파도처럼 출렁이는 가슴 속 흐느낌을 잠재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었다. 그날 이후 회색빛 사리원시가지와 미루나무, 코스모스길 따라 펼쳐진 재령평야의 모습은 가슴속 뜨거운 통증과 함께 내게도 그리움의 장소가 되어버렸다.그렇게 지나쳐버린 아버지의 고향 언저리 모습을 부모님께 전해드릴 때도 등줄기는 덜덜 떨려왔고 아버지의 표정조차 살피기 어려웠었다. 후에 어머니께 들은 얘기로는 막내딸이라도 당신의 고향 가는 길목을 다녀온 것이 너무도 기뻐 며칠 밤을 잠 못 이루셨다고 한다. 얼마 전 서울에 갔을 때, 40년 전 내 초등학교가 도시재개발로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을 찾은 나는 오래도록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발아래 깊은 곳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부둥키듯 한 이상한 기운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까닭이다. 해주 바다 가까이 아버지의 고향마을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라져버린 학교를 금세 찾아내었듯 아버지도 고향마을의 골목과 집들을 바로 찾아내실 것이다. 더구나 두고 온 부모님과 형제들이 그곳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계실 터이니.모두가 고향을 찾는 추석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에 비단구두 한 켤레씩 품고 고향으로 달려가고픈 꿈을 하염없이 짓누르며,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눈물 젖은 차례상을 지켜오셨을 고령의 실향노인들, 그들에게 살아생전 단 한번만이라도 고향방문의 기회가 주어지길 간절히 염원한다. 때마다 가보아도 뒤돌아서면 다시 그리운 것이 고향일진대 북녘땅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야 어찌 짐작인들 하겠는가?국민들 모두 월드컵축구에 몰두해있던 지난 초여름, 서울의 단 한관에서 외롭게 개봉된 여균동 감독의 비단구두 사가지고, 그 영화 역시 국민들과 현재의 통일정책에 호소하고 싶었나보다. 이제 더이상 그 어떤 조건과 명분 따위 들먹이지 말고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하듯 따뜻한 마음 하나로 고령의 실향민들에게 고향 한번 보여드리자고. 북한의 미사일발사로 긴장관계가 조성되었던 시기에도 동포의 생존을 걱정해주는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의 길이 다시 이어졌듯 부모님께 하는 마지막 효도 또한 인도주의라 이름 붙여도 마땅하질 않겠는가?북녘땅을 밟아야 할 가장 절실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지체 있는 그 어떤 분이 아니라 바로 내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다. 서둘러야한다. 아버지에게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박찬숙(전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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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02 23:02

[새벽메아리] 생명과학 시대의 추석 - 이세재

마을 앞 들녘이 황록색으로 그득하고 지붕의 빨간 고추에 명랑한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 속에 우리의 추석은 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반드시 어머니가 있다. 추석에 대한 뉴스 배경 그림으로 마을 어귀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비단 명절이면 가족이 모이고 가족 사랑의 중심에 어머니가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추석과 모성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농경사회는 풍요와 다산이 지상의 목표였다. 당연히 풍요와 다산은 여신을 탄생시켰다. 세계적으로 고대 농경사회의 신화나 유적의 연구에는 위대한 어머니 또는 위대한 여신에 관한 자료가 많다. 추석과 직접 관련하여 우리나라 삼국사기의 기록에 신라 유리왕이 여인들로 하여금 베를 짜게 했던 사실도 풍요에 대한 기원을 여성에 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곡식이건 인간이건 그 풍요는 자손의 번창함에 있으므로 자손 생산의 모태인 여성을 신성시했던 것이다.따라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일이 피상적으로는 조상에게 하는 것 같지만 근원적으로는 모성의 생산성에 대한 의식인 것이어서 추석의 풍요는 현실로서의 풍요로움보다는 미래에 대한 정신적 믿음에서 오는 풍요인 것이다.그런데 그런 모성적 풍요로움이 오늘날 추석에서 흐려지고 있다. 여성성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함께 추석의 본질이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에게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칭호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자신들을 자손 번식의 도구로만 취급하지 말라고 할 것이며, 곡식도 인구도 관점에 따라서는 과잉 상태여서 남성도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풍요와 다산에는 흥미를 잃었는지도 모른다.이러한 사실은 과거 억압되고 왜곡되었던 여성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는 일과 맞물려서 여성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생명의 신비와 모성의 개념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 모성이 흔들리는 세태를 두고 종말론까지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변화가 여성성에 근원을 둔 추석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그러나 인류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대지에 뿌리를 둔 생명체에 불과하다. 인간의 궁극적인 풍요는 과학적 문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영원한 풍요의 여신이며, 고향의 추석은 생명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전수해온 원형적 상징이다.추석이 연휴가 되면서 고향이 아니라 심지어 외국 휴양지로까지 떠나는 인파가 늘고 있다. 물질의 풍요는 왜 정신적 빈곤을 잉태하는 것일까. 고향을 등지고, 풍요의 신화를 등지고, 언제까지나 부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고향 마을 어귀에서 눈물어린 어머니가 흐려진다./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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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25 23:02

[새벽메아리] 쓰레기 몸살 관광지 구천동 - 전선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은 피부에 와 닿는 기온으로부터 온다. 긴 장마에 홍수피해가 많아 지쳐있었던 데다가 보름 이상을 폭염이 쏟아져 더위에 시달렸고, 열흘 가까이 열대야를 견뎌야했던 올 여름은 참으로 모두가 힘겨웠다. 이런 천재지변의 역경을 견뎌낸 사람이면 누구나 이 초가을의 기온을 즐기지 않을 사람은 없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끈적이지 않고 보송보송하여 느낌이 좋다. 모두들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얘기를 한 마디씩 한다. 순리대로 돌아가는 계절의 순환 앞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마음도 동반하여 가을을 맞고 있다. 그저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 쓸쓸함 같은 것으로.무주구천동은 아름다운 계곡에 33경을 갖추었고, 높은 덕유산(남한에서 네 번째 높은 해발 1,614m의 산)과 겨울 스포츠, 스키의 메카 무주리조트를 품어 안고있는 남한 중심부의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무주는 태권도 공원과 기업도시가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다.일 년을 통 털어 100만 내지 300만 명쯤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 통계이다. 그런데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만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계곡 곳곳이 오물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고 간 후남긴 쓰레기와 오물은 아름다운 산과 계곡의 구석구석에 버려져 썩어 맡기 힘든 냄새와 보기에 힘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직도 우리의 생각에 '쓰레기는 아무 곳에나 버려도 된다'는 잠재의식이 살아있는 것일까?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한심한 상황은 강을 따라 가보면 안다. 흐르는 강물 가에 썩지도 않을 라면봉투, 비닐 류, 캔 종류, 스트로 폼 등 별스런 것들이 다 떠내려 가고있으니 어쩌면 좋으랴. 강의 맨 끝, 땜이 있는 호수나 바닷가에 가 보라. 부유물이 얼마나 많은가를. 우리자녀들 미래의 삶이 염려스러워진다.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쓰레기만 신경 써서 잘 치우고 챙겨오면 쓰레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즐기는 것만큼 내 강산, 내 국토의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한 사람 한 사람 양심에 호소한 자연보호를 앞장서서 몸소 실천해야겠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하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학생에게, 주부에게, 직장인에게, 기업인에게, 사장에게, 대통령에게도...누구에게든 책임 있게 한 달에 하루, 서너 시간 정도씩 쓰레기를 직접 줍도록 해보면 산 교육이 되리라. 다시금 쓰레기를 버릴 마음을 갖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쓰레기와 오물이 마구 버려질 때 우리의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폐해가 나 자신에게 오며 먹거리에 의해 섭취하게 되는가를 정밀 분석하고 교육시킨다면 아마 인식의 변화가 금방 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 상식을 지킬 줄 아는 국민 모두가 되었으면 싶다./전선자(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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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18 23:02

[새벽메아리] '공약,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노현정

5월 31일, 가을이 오는데 웬 5월인가 싶겠다. 올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한 표를 호소하며 다양한 분야의 공약들을 내걸었다. 이에 발맞춰 지역시민사회는 후보들의 공약이 정치행위로 그치지 않고 충분한 논의와 계획, 확보 가능한 재원 속에서 실행되도록 정책과 공약 검증활동을 진행하였으며 메니페스토라는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했었다. 민선 4기가 시작된 지 2개월, 이제 공(公)언 했던 정책과 공약의 실질적 집행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환경과 여성부서의 통폐합, 성희롱 공무원의 요직발령 그리고 도청사 어린이집 공사 중단 등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대 퇴보적 사안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며칠 전 정부는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저 출산과 저성장,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장기적 전략차원에서 함께 가는 희망한국 비젼 2030을 발표하였다. 재원확보의 문제제기가 있지만, 지금까지 성장위주의 사회발전 패러다임에서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 전략으로 전환한 것에 눈여겨 볼만하다. 특히 그동안 가족에 의존하던 복지에서 정부의 역할을 제고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복지전략을 삼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시점에서 전라북도는 어떠한가? 전북지역 몇 개 안되는 직장보육시설 중 하나인 도청 어린이집은 오래전부터 운영되어 왔으며, 청사이전으로 인해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수당지급 요구가 높았지만 지자체가 공보육 확대라는 선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원칙하에 어렵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민선 4기, 합리적인 결정을 하겠다며 이미 3억여 원이 투입되어 40%에 가까운 공정률을 보여 왔던 어린이집 공사는 당시 논란만을 불러일으킨 채 이전에 진행한 설문조사를 재 실시하고는 중단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일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지난 7월 30일자 시민의 신문은 전주시의 보육관련 특수시책예산을 공무원의 선심성 예산으로 꼬집었다. 내용인 즉 직장보육시설이 없는 대신 지자체 예산으로만 7억여 원을 보육관련 특수시책예산으로 만들어 놓고 년 4억여 원을 공무원들의 보육수당으로 지급하여 전주시 전체 아동에게 돌아가야 할 1인당 보육예산을 줄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전주시민들은 국가가 정해 놓은 부모의 소득기준에 의해 적용되는 가구만이 아동연령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조받고 있는 실정인데도 말이다. 공보육 시설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이다. 최근에 문을 연 중앙청사 어린이집은 개원당시 70여명 이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1년 만에 200여명이 넘는 아동들이 다니고 있고, 대기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국가도 앞장서서 새싹플랜을 발표하는 등 장기적으로 공보육확대 정책을 실시하는 상황에서 약속한 보육정책을 바꾼다면 그것은 이미 실현 불가능한 공(空)언이었으며, 4년 이후 우리는 또 공약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노현정(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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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11 23:02

[새벽메아리] 쌀, 별, 들 - 박찬숙

농민 아닌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묻는 것 중 하나가 왜 꼭 우리쌀을 먹어야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때문에 늘 그 질문의 답안지를 머리 속에 넣고 다녀야하고 더구나 농사지은 쌀을 직거래로 팔아야하는 입장이고 보니 쉽고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답안지의 내용이란 대략 이렇다. 첫째, 쌀의 자급은 나라의 자존심과 식량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둘째, 신선도와 안전도 면에서 수입쌀에 비할 바가 아니며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당연히 우리쌀이다. 셋째, 자연녹지, 공기정화, 담수능력으로 인한 지하수자원보존과 홍수피해방지 등 환경을 지키는 1등공신이 쌀농사다. 넷째,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세계적 식량부족, 식량무기화, 그에 따른 국가안보, 통일대비를 위해 쌀농업은 꼭 지켜져야 한다. 다섯째, 비싸다고 우리쌀을 외면하면 쌀생산기반 붕괴는 물론 농토를 떠난 농민들로 실업인구가 증가할 것이며, 한번 무너진 생산기반을 복원하는 일은 유지비용의 서너배의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때문에 국가는 쌀농업을 비교역대상 기본산업으로서 반드시 보호해야하고 소비자들 역시 우리쌀 애용으로 쌀농업을 함께 지켜가야 한다. 그러나 나의 대답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우리쌀 구매의 절대적인 결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젠 내가 도리어 묻고 싶다. 왜 꼭 우리쌀을 사야한다고 생각하시지요? 농민임을 잊은 중년의 주부가 내 안에서 이렇게 말을 꺼낸다.어린시절, 어머니가 지게꾼 등 뒤에서 끙끙대며 들어다가 마루 한가운데 놓인 뒤주에 부어넣으실 때면 가마니 틈에 끼어있던 쌀들이 사방으로 튀며 달아났는데, 집안 모든 여자들이 마루바닥 헤매며 치마폭에 한톨한톨 귀하게 주워 담았다. 가을들판을 메뚜기박자로 한참 폴짝대고 나면 묵직해지는 주전자, 풀줄기에 꿰어 구워먹던 그 기막힌 맛의 간식거리가 사라졌을 때쯤, 소달구지에 높다랗게 실려가던 나락다발, 한 오라기씩 빼내어 이삭을 잘근잘근 씹어대면 고소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넘는데 입가엔 뽀얀 자욱이 금세 말라붙었다. 소잔등을 후려치던 회초리가 달구지 뒤에 달라붙은 아이들을 파리떼처럼 아낼 때 후닥닥 사방으로 흩어지던 아이들,.......쌀과 들은 우리의 역사요 문화였다. 기차소리 요란한 방아실 출구로 술술 쏟아져 내리던 신기한 탄생, 별처럼 맑게 빛나는 그것을 내나라 땅에서 얻어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가? 미국, 중국산 쌀을 생각하면 도무지 어떤 그림도 떠올릴 수 없다. 향기로운 들과 별 같은 쌀이 다 무언가? 방부제가 묻어있겠지? 유전자변형 쌀은 아닐까? 설마 쌀 모양 납 쪼가리 섞인 건 아니겠지? 식량주권이든 국가안보든 거창한 이유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별 같은 내 아이들에게 속도 모를 수입쌀을 먹일 수야 없지 않겠나? 그런데 문제는 학교급식이나 군대급식, 음식점의 밥이 수입쌀일 것만 같아 걱정이고 또 우리쌀 포장지를 둘러쓰고 둔갑한 수입쌀은 어찌 가려낼지 그게 걱정이야. 한다.한미FTA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인 광우병 위험 미국소고기 수입 임박 소식과 함께 10년 안에 모든 농산물을 개방하라는 한미FTA, 그 거대한 폭탄이 별 같은 쌀을 쏟아낼 우리의 보물 들판에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농민이 아니라 온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대재앙임에 틀림없다./박찬숙(前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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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04 23:02

[새벽메아리] 야래향(夜來香) - 이세재

남풍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소쩍새 울음소리 처량하구나. 달빛 아래 꽃들도 이미 꿈속에 들었는데 저 야래향만이 꽃향기를 뿜고 있네 중국 등려군이라는 가수의 야래향이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야래향이란 이름부터가 그렇고, 중국 여가수의 독특한 고음과 가락에서 신비롭고 애련한 동양적 낭만이 흐른다. 밤에 피어나는 향기라는 언어적 이미지로 인해 비련의 여인을 상징하기에 적합해서인지 댄서의 순정이라는 영화에서 문근영이 이 노래를 불렀고 그 후 야래향이란 꽃이 유행하게 되었다.야래향은 그 이름처럼 밤에 향기를 뿜는 꽃이다. 남미 등 열대지방이 원산지인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기르고 있다. 난향처럼 은은하면서도 백합향기처럼 강한 맛이 있어 여름밤의 무더위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되는 꽃이다.야래향(夜來香)― 비단 이 꽃만이 아니라 무릇 꽃향기는 밤공기를 타고 흐른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에 은은히 번지는 장미 향기를 맡고 잊었던 울타리의 넝쿨장미 존재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매화와 달을 함께 얘기하는 것도 밤이면 더욱 진해진 향기 때문이기도 하다.낮이라 해서 꽃이 향기를 뿜지 않을 리 없는데 우리의 후각은 밤이 되어야 제대로 그 기능을 찾는 것 같다. 낮에는 소란하고 번잡한 일상에 묻혀서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게 아닐까. 힘들게 사는 사람은 살기 위해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은 즐기기 위해서 모두 방방 떠 있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들, 그것에 사로잡히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에 초연한 이는 드물어 낮 세상은 갈수록 시끄럽기만 하다.인간은 천혜의 오감(五感)을 갖고 있다. 그 감각들은 인간 삶의 원동력이다. 생존과 번식에서부터 풍요로운 정신적 삶에 이르기까지 이 다섯 가지 감각이 골고루 작용하고 있다. 이런 본능적 5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거기에서 영적 능력인 제 6감이 형성된다는 말도 있다. 어쨌거나 어느 한 쪽 감각에 치우쳐 부화뇌동하는 것은 삶의 기본이 무너진 충격이다. 중심 없이 들떠 사는 세월은 한 순간에 먼지처럼 날아가 버린다. 동양화에서는 여백의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대상을 그린다 하고, 음악도 침묵을 말하기 위해 소리를 배치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그대로 본질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외쳐온 현상적 실존과 문명의 가치에 가려 정작 그 현상이 창조해내는 본질을 감지하는 능력은 무디어지고 있다. 여백과 침묵 속에 허무와 고통의 극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느낄 수 있는 제 6감이 있는가. 야래향(夜來香)― 한갓 댄서의 순정이나 비련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관념적 언어의 이미지로서만 사랑 받지 않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감각을 소생시키는 매체로 생명을 얻길 바란다./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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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28 23:02

[새벽메아리] 더위를 이기는 독서 삼매경 - 전선자

여름의 대명사, 삼복 더위, 찌는 듯한 찜통 더위, 가마솥 용광로 더위에다가 열대야까지 계속되는 날이 보름을 넘겼다. 그러고 보니 이제 지치고 기운들이 없어 불쾌지수가 말할 나위 없이 높아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들었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위의 심각성은 실지로 우리도 체감할 수가 있다. 그렇게 며칠 더 견디다보면 찬바람이 슬며시 옷깃을 여미게 할 때가 오리라.모처럼 책 읽기를 결심한 것은 이런 더위를 이기자는 데에 길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황희순 님의 시, "나는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에서 책 속에 길이 있다기에/ 책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은유의 골짜기를 헤매다/ 행과 행 사이에 미끄러졌다/ 말[言]을 잘못 밟은 모양이다/ (中略) 여기야, 여기,/ 여기에 길이 있-다-구-. 나는 이 시를 보고 독서의 길을 찾는 중이었다. 등단 작가라고 여기저기서 책이 발간되면 아는 분들은 고맙게도 빼지 않고 보내준다. 저자의 서문과 목록을 먼저 보고 그리고 마음에 드는 몇 편의 글을 골라 읽을 뿐 전체를 섭렵하지는 못한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쏟아지는 인쇄물들을 어찌 다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책을 읽는 동안만은 몰입, 집중력이 대단해진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책 읽기를 권장하나 볼거리가 많은 아이들은 읽는 문화보다는 보는 문화에 더욱 빨리 익숙해지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섭섭하다.책읽기가 말은 쉽지만 가정의 주부로서, 아니면 직장인으로서 맡은 일을 하다보면 그리 쉬운 일만도 아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생활화, 보편화된 탓에 그 쪽에 빼앗기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매일(mail) 확인하고 대여섯 개의 카페에도 가입하여 온라인 상의 좋은 글들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소요하다보면 책읽기에 할애되는 시간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족한 시간도 문제지만 인내심이 부족하다해야 옳을 것이고 정서불안정도 원인도 될 것이다.올 여름에는 오랜만에 읽다가 팽개쳐버린 장편소설 "토지(박경리 작)"를 꼼꼼히 다시 읽기로 마음먹고 바로 시작했다. 솔 출판사에서 나남 출판사로 판권이 넘어가서 21권 한 질로 인쇄되어 나오고 있었다. 무조건 샀다.텔레비전에 연속드라마로 여러 번씩이나 방영됐던 그 유명한 "토지"를 책과 비교하면서 어쩐지 싱거운 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의존하지 못하고 죽자하고 책에 매달리는 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나는 여름만 되면 이런 장편을 들고 실랑이를 벌인다. 중학생 시절도, 고등학생시절에도 여름방학만 되면 세계명작과 씨름하던 추억이 있다.사람마다 취미는 다 다른 것, 폭염 속에서도 뛰기 좋아하는 사람은 뛸 것이고,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을 향할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알찬 교양이나 지식을 위해서는 한 권의 서적이라도 가까이 두어 양식을 삼을 일이다. 다른 쪽 일을 줄이고 책을 읽다보면 독서 삼매경에 푹 빠지게 된다. 즐겨보시라. 이보다 더한 기쁨은 많지 않을지니.../전선자(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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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21 23:02

[새벽메아리] 이건 아니잖아!! - 노현정

푹푹 찌는 무더위로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 그 따가운 햇볕을 가려본다고 손을 올리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빛에 나도 몰래 탄성이 나온다. 그러던 사이 저기 넓디넓은 광장에 파샤~하고 시원한 소리를 내며 마치 먹음직스런 팥빙수 속 하얀 얼음알갱이들을 쏟아내듯 여러 갈래로 물줄기가 퍼져 나간다. 헉, 이곳은 어딘가 ? 최근 나의 약속에 겹치기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 혹, 누군가 배시시 웃으면서 좋은 일 있나보네 ~라며 농담을 건넬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아침부터 달려온 곳이 사무실이 아닌 전라북도청, 신청사 이전 후 아직 버스노선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녹녹치 않은 살림에 택시비 마저 무시할 수 없지만 가슴을 뜨겁게 아니 아프게 하는 일들 덕(?)에 올 여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높아 보이는 도청 앞, 몇 명의 어머니들이 안절부절하고 있다. 송글송글 맺힌 땀을 씻어 내리는 손, 가족의 생계를 지키고자 굵어지다 못해 퉁퉁 부어버린 손마디 마디 허드렛일 마다않고 일해 왔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고이 담겨있다. 저기 한 어머니 결국 눈물을 쏟아내며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와 준걸로만도 고마워, 우린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어, 그래두 우릴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고마워.. 벌써 60여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지역 노동, 시민, 여성단체들이 도청 청소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비정규직, 그 자체만으로도 최저임금과 언제든지 해고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 휴식시간 배가 고파 빵을 사먹었다는 이유로, 다른 동료의 일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써야했고, 청소상태를 점검한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아 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측의 횡포에 그래도 청소가 자랑스러운 자신의 일이었기에 집단해고는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시켜낼 최악의 폭력이었다. 도청, 도지사에서부터 다양한 분야와 직급으로 나뉘어 자신의 일을 최소한 인격적으로 침해받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해 소통하여 일하는 곳이 아닌가 ? 아니, 적어도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되는 곳이 아니던가 ? 아무리 도청이 직접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도청이 선택한 용역업체가 도민의 공공장소인 도청의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노동행위를 자행하고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았을 시 우리 책임 아니라며 수수방관할 수 있는 것인가 ? 그렇게 목소리 높여가며 일자리 창출하겠다던 약속은 말 뿐이었던가 ?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만 하고 그 일자리의 질과 조건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 민선 4기 시작하자마자 상식 밖의 일들의 당혹감과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의 무게는 가볍지 많은 않은 모 개그맨의 유행어를 떠올리게 하며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정말,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 /노현장(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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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14 23:02

[새벽메아리] "여러분, 반갑습니다" - 박찬숙

올 들어 확실히 느껴지는 변화가 한 가지 있다. 들녘에 뱀이 늘어났다. 오늘도 논두렁에서 초록빛 꽃뱀 한 마리 만났다. 두어달 사이 벌써 열 번째도 넘는 만남이다.내가 농사짓던 초기엔 들녘뿐 아닌 집 주변에서도 뱀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사라져갔다. 땅꾼들의 눈부신 활약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바지런한 농사꾼들이 논은 물론 산 아래 밭에 이르기까지 잡초 한포기, 벌레 한마리 용납지 않으리라, 무시로 뿌려대던 독한 농약 덕분에 뱀들도 따라서 수난을 당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산이며 들을 오가다가 뱀을 만나면 피하려다말고 워메 반갑네이 할 정도로 뱀구경은 귀했었다. 1년 가야 고작 두어번에 불과하였으니 말이다.뱀이 늘어난 까닭은 쉽게 점쳐볼 수 있다. 땅꾼들이 땅을 뒤져대는 험한 노동자 대신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싸디 싸게 수입해 들여오는, 조금은 세련된 무역업자로 변신한 덕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값싼 수입농산물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더 이상 돈을 벌어주지 못하는 산 아래 밭일랑 묵혀버린 농민들 덕에, 또한 수매제도도 없어지고 팔기 힘들어진 쌀농사 대신 휴경보상금 받으면 그게 차라리 낫다 하고 다랭이거리 수렁논 까짓 묵혀버린 덕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사도 친환경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으니 독한 농약사용 자제한 덕에, 이래저래 촌에서 살판 난건 뱀들이었을 게다. 뱀이나 농민이나 촌에 살긴 마찬가진데 개방농정과 세계화로 갈수록 죽을 판이 되어가는 농민들과는 그 신세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오랜 장마와 홍수로 무너져내린 논두렁에 구멍이나 내고 다닐 사고뭉치인줄을 뻔히 알고 있건만 그가 어떻게 다시 들녘으로 돌아왔을지 아는 터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이렇게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동안 무더운 여름날 비지땀으로 빚어낸 우리 쌀은 뉘라서 반겨줄 것인가? 도시의 소비자들이 넘쳐나는 값싼 수입농산물 틈에서, 농민들의 친환경농사의 정성과 땀이 가득 베어있는 우리의 농산물을 가격표 들여다볼 틈 없이 반갑게 맞아들여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뱀을 피하기 위해 여름날 뜨거운 장화 속에 발을 쑤셔 넣고 다니더라도, 고추나무가지에 넌출넌출 제 몸을 걸쳐두고 낮잠 자는 기다란 그와 본의 아니게 악수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여러? 반갑습니다. 여러?처럼 우리도 살판나게 생겼습니다. 하지 않겠는가?봄비 내리는 날, 낮게 날아다니는 제비구경에 신바람내고, 가을들판 여문나락처럼 통통한 메뚜기들을 반가워하며, 이슬방울 매달린 거미줄들로 초록비단처럼 반짝이는 논들이 여기저기 늘어가고 있음을 눈여겨 바라볼 줄 알고, 아이들의 아토피를 사라지게 할 믿음직한 대안이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는,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땅 농민들의 땀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해줄 생면부지의 도시사람들에게 반가운 만남의 인사를 드린다. 여러분, 반갑습니다/박찬숙(前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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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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