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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문화 아시아 넘어 세계인과 소통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고영수)를 지원하여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개최되는 ‘2014 런던도서전’의 마켓포커스(Market Focus) 국가로 참가한다.1971년에 시작된 런던도서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과 함께 저작권 거래를 위한 비즈니스 중심 도서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매년 100여 개가 넘는 국가에서 약 2만 5000명의 출판인·서적상·출판 에이전트·사서 및 영상산업 관계자들이 참가해 왔다.한국은 지난 2012년 베이징국제도서전, 2013년 도쿄국제도서전 주빈국 참가에 이어 올해는 런던도서전 마켓포커스 국가로 참가하여 아시아를 넘는 영어권 시장으로의 도약을 꾀한다. 이번 도서전 참가 콘셉트는 책과 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세계인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출판문화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출판 특별전시, 작가 문학행사 및 출판 전문 세미나, 참가사 설명회 등을 준비했다.마켓포커스관(516㎡) 중 한국 출판문화를 조명하는 특별전시관(258㎡)에서는 이번 도서전 참여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작가특별전, 한국 전자책의 기술 및 콘텐츠를 소개하고 우수 전자책 콘텐츠를 시연해보는 전자출판 특별전,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와 작품을 전시하는 한국 근대문학특별전, 한국 유일의 웹툰을 소개하고 다양한 웹툰의 창작 방식과 소비 방식을 살펴보는 만화ㆍ웹툰 홍보관 등이 마련되어 한국 출판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알릴 예정이다.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에서는 양국 간 문학교류 행사를 통해 한국문학의 영미권 시장 진출을 꾀한다. 이를 위해 정읍 출신의 소설가 신경숙 등 10명의 작가가 참가하여 영국작가와의 대담회 및 문학 세미나, 문학살롱, ‘오늘의 작가’ 행사, 번역세미나, 한국문학번역 즉석대회 등 다양한 문학행사를 개최한다. 2달간 열리는 ‘한국인쇄활자문화전(The Art of Printing)’ 전시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을 비롯해 금속활자와 목활자, 바가지 활자 등 한국의 인쇄문화와 활자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50여 종의 활자본이 전시된다. 또한 영국인들이 매월 한 권의 한국문학 작품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한국문학의 밤’ 행사가 10회에 걸쳐 개최된다. 7일 문화원에서 개최되는 개막 전야 리셉션에서는 성악가 조수미의 ‘가곡과 아리아의 만남’ 공연도 선보일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7 23:02

전북지역 문학관·시비 사진전…전북문학관 10일부터

전북에 어떤 문학관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 또 전북 출신 문인들을 기념하는 어떤 시비가 세워져 있을까. 그 현주소를 한자리에서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전북문학관(관장 이운룡)에 의해 기획됐다. 전북문학관이 10일부터 문학관 3전시실에서 도내 문학관·시비 사진 전시회를 연다. 도내에 산재한 문학관과 시비를 담은 사진전을 통해 전북문학의 맥을 이어온 기념비적 유산을 담아보는 자리다. 걸출한 문인들이 배출되어 시향(詩鄕)이라고 불리는 전북문학 유산의 생생한 현장을 접할 수 있는 사진 40여점이 준비됐다. 문학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그간 김환태문학관(무주)·미당시문학관(고창)·석정문학관(부안)·아리랑문학관(김제)·채만식문학관(군산)·최명희문학관(전주)·혼불문학관(남원)과, 가람시비·권일송시비·김민성시비·김해강시비·김환태문학비·매창시비·박동화문학비·박정만시비·박항식시비·백양촌시비·삼의당시비·삼의당 담락당 부부시비·상춘곡비·서정주시비·신석정시비·송기섭시비·송남 이병기시비·이광웅시비·이철균시비· 정읍사비·조두현시비·진을주시비·채만식문학비·최학규시비 등 현장을 탐방했다.이운룡 관장은 “전북문학관이 문학을 통해 삶을 향기롭게 열어가자는 취지로, 개관 3년차를 맞아 매월 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회가 전북문학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히고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문의 전북문학관 063)252-4411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4 23:02

문학평론가 신동욱 교수가 본 송하선 저 〈신석정 평전〉

신석정 시인의 작품에 관한 평가나 해설은 시인의 작품들이 발표될 무렵부터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대표적인 몇 사례를 들 수 있는데, 목가시인이라는 호칭을 송하선 교수는 그 잘못됨을 지적했다. 작품집 〈촛불〉(1939)에 수록된 작품들, 그리고 〈슬픈 牧歌〉 (1947년)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자연을 읊은 데서 그럴만한 수용자적 관점에서는 고요한 경지에서 은일(隱逸)사상을 노래한 것임을 영미문학의 용어인 목가(pastoral)가 아닌 점을 지적하고 있다.송 교수는 신석정 시인의 말을 인용하여 시인이 닦은 철학적 근거로 노장철학과 일부 불교사상을 들어, 도연명의 도화연기의 내용과 신석정 시인의 작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대비하며, 동질적 사상들을 도표로 제시하였다.동양문화권에 있는 시인으로서 그만한 사상적 교양을 가진 시인 또는 문인이라면 그만한 수용적 시심을 나타내어 작품으로 창작함직하다.이렇게 본다면, 문예작품들은 그 지은 작가의 사상적 근거나 교양에 의하여 그 미적 특성의 근원을 밝힘직한 사례가 된다고 하겠다. 아마도 기존의 신석정 작품의 논평들 중에서 송하선 교수만큼 시인의 창작의도와, 사상적 접근을 구체화한 논평은 드문 예가 될 것이다.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참여시인이라고 평하고 그러한 호칭으로 신석정 시인을 말한 1960년대 평자들에 대하여 송 교수는 신석정 시인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적 견해를 밝힌 점이다. 송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참여라는 뜻은 어울리지 않는 지조있는 선비이며, 신석정시인의 작품에서 永河나 山의 序曲에 보이는 내용들은 현실 투시일뿐, 참여의 의지를 나타낸 것은 아니라고 논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선비정신이나 작품에 나타난 현실인식의 의미도 참여와는 다른 시적 투시에서 반영된 현실일 뿐이라고 밝혀, 기존의 평자들의 편향된 해석은 옳지 않다고 논평하였다.송 교수는 신석정시인의 시어, 겨울:봄, 밝음:어두움, 등의 대비에서 현실인식을 나타내고 있으나, 참여시나 참여 정신과 달리, 현실을 투시한 것뿐임을 논증하고 있다. 현실참여의 의지와는 확연히 다름을 밝히고 있다.그는 신석정 시인의 시작품의 주요 특징을 중심으로 호칭을 전원시인으로 붙인다면 좋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한 호칭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를 해설하고 있다. 다음으로 석정 시 사상의 근원에서 임께서 부르시면을 해설하는 데서도 장자의 제물론과 관련한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 더하여, 불교의 영생관이나 윤회사상과도 관련을 맺고 있음을 논급하고, 이 작품에 보인 임은 천지의 주재자로 규정하고 있다. 한용운, 김소월과도 다른 임의 의미임을 분명히 밝혀 송 교수의 시 해석의 독자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 대바람 소리에 관한 해설에서, 체념 은둔의 정서를 지적하면서, 동양적 선비정신을 나타냄을 거듭 밝히고 있다.(p179)위와 같은 신석정 시인의 사상적 뿌리를 밝힌 작품해설은, 이제까지의 여러 평자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작품의 의미해명을 보이고 있다. 독자들은 송 교수의 작품풀이를 위한 여러 논거되는 자료들을 고려한다면 일정한 설득력과 객관적 시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특히 그의 여러 논거들의 신석정시인의 생애, 교육, 취향과 거의 일치함을 제시한 점에서 실증적 풀이의 장점을 알 수 있게 했고, 이 점은 송 교수의 한학적 교양과도 일면 상통함을 엿보게 하고 있다.그런데,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미술감상이나 음악감상 또는 영화나 무용감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늘 수용자, 여기서는 시의 독자가 각자 지니고 길러온 미의식과의 문제이다.즉 작품과 독자들의(또는 감상자) 미적가치의 수용에서 나타나는 개별적 이해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의 연마된 또는 잘 숙달된 미의식이 문제가 됨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작품의 의미와 미적가치는 고정된 원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수용자적 인식의 다양성과 연결되어 작품의 생명성이 또는 유기적 가치의 진폭이 나타남을 고려할 수 있다.송하선 교수의 근래에 보기 드문 노작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이 참여하여 신석정 시인의 시 정신과 작품의 미적 특질과의 연결 고리를 잘 찾기를 기원한다.※문학평론가 신동욱 전 고려대 교수는 196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 현대 시평사〉, 〈문학의 비평적 해석〉 〈현대의 서민〉 〈근대시의 서구적 근원 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04 23:02

[(23) 김시습의 〈만복사 저포기〉] 남원지역 설화 재구성한 한문소설

계유정란을 일으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김시습(세종 17년 1435- 성종 24년 1493)은 삭발하고 중이 되어 북으로 안시향령, 동으로 금강오대, 남으로 다도해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 관동록, 호남록을 썼고, 그때 읊은 시들을 정리하여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을 남겼다. 그리고 누차 세조의 소명도 뿌리치고 31세(세조 11년 )때에 경주 남산 금오산 자락에 금오산실을 짓고 들어앉아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몽유록계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筵錄)〉 등 5편이 「금오신화」에 실려 전한다.「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으로 완본은 전해오지 않으나 육당 최남선이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발견하여 1927년 〈계명〉19호에 실음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 책은 고종 21년(1884년) 동경에서 발간된 것으로 상, 하 2권이다. 상권은 32장으로 서(序)와 〈매월당소전〉,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등이 실려 있고, 하권은 24장으로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발문, 평(評) 등으로 되어 있다. 본디 이 목판본은 효종 4년(1653년) 일본에서 초간되었던 것을 중간한 것으로 초간본은 오스까(大塚彦太郞)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자료였다. 국내에서도 1952년에 정병욱 교수가 필사본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을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아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생규장전〉은 개성의 이생(李生)과 최소저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후반에 가서 홍건적의 난에 죽은 아내 최소저와 부부의 연을 다시 이어가다가 영영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생은 학당을 오가다가 근처에 살고 있는 양반집 규수인 최소저와 눈이 맞아 밤마다 담을 넘어 다니며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국 이를 알게 된 이생의 부모가 이생을 먼 울주로 떠나보내어서 이들의 애정행각을 끊어 놓았다. 하지만 최소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양가부모의 허락을 받아서 종국에 혼인을 하였다. 이후 이생은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최소저와 양가의 가족이 모두 희생되고 이생 혼자만 남게 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부인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는 이생에게 최씨 부인이 다시 나타나서 수년간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이승의 인연이 끝났다고 홀연히 떠나버리자, 이생도 마침내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죽게 된다는 결말의 구조를 지닌 이야기다. 이생규장전은 일종의 산자와 죽은 자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시애(屍愛)설화라 할 수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개성에 사는 홍생(洪生)이 평양으로 장사를 나갔다가 대동강 부벽루에서 술을 마시며 놀게 되었는데 수 천 년 전 선녀가 된 기씨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다. 본디 개성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홍생이 달 밝은 어느 날밤에 부벽루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처녀는 그 옛날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의 후예였는데 고국을 너무 그리워하다가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 꿈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날 하늘의 천명을 어길 수 없다며 승천을 하자, 양생도 병이 들어 죽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생규장전과 같은 시애소설의 공통적인 설화구조를 지닌다. 〈남염부주지〉는 미신과 불교를 배척하는 선비인 박생(朴生)이 경주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꿈속에 저승에서 염라대왕과 토론을 하고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용궁부연록〉은 개성에 살고 있었던 한생(韓生)이 꿈속에서 용왕의 잔치에 초대되어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이야기다.〈만복사저포기〉는 전북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梁生)이 부처와 저포놀이(윷놀이내기)를 하여 승리한 대가로 부처가 수년전 왜구들에게 죽은 처녀귀신과 만나게 해줌으로써 이들은 꿈같은 부부생활을 하다가 헤어졌다는 산자와 죽은 자와의 사랑을 다룬 설화이다. 양생은 일찍 부모를 여읜 후 혼인을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데 부처의 도움으로 왜구의 난에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혼자 정절을 지키며 살다 죽은 원혼을 만나게 되어 며칠간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재회를 기약한 날 양생은 딸의 대상을 치루는 양반집 행차를 목격하고 자신과 사랑을 나눈 처녀가 3년 전에 죽은 그 양반댁의 망자임을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부모가 베풀어준 음식을 먹고 난 후 처녀는 저승의 명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며 홀연히 사라지자, 양생도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홀연히 그 처녀가 다시 나타나서 자신은 죽어서 다른 나라로 가 남자로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이에 양생은 장가를 들지 않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평생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이야기로 이생규장전과 같이 산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구조를 지닌 설화다. 이들 한문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지방에 많이 살고 있는 대표적인 토속적 성씨들로서 재자가인들이며, 아름다운 문언문(文言文)의 한문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로운 설화를 옮긴 점 등이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성격을 공통적으로 띠고 있는 특성을 보인다. 금오신화의 이야기들은 조선 초에 이르기 까지 계속적으로 서사문학의 원초형태인 설화로 이루어져 전승 변이되면서 소설이 발생될 수 있는 문학사적 기저를 마련했다고 할 수가 있다. 설화나 소설은 동질의 서사문학이기 때문에 이러한 설화의 발달이 한문소설의 발전을 가져온 동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인량의 「수이전」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는 수많은 설화들이나 임춘의 〈국순전〉이나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나 〈청강사자현부전〉 같은 고려의 가전체소설 등이 금오신화에 내면적 영향을 주었고, 외적으로는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와 같은 전기체 소설의 영향을 비교문학적으로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세조찬탈이라는 부조리한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관북, 관서, 호남, 영남의 방랑생활에서 얻어진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만복사저포기〉는 전북 남원지방에 있는 만복사를 배경으로 남원 양씨 성을 가진 노총각과 왜구의 출몰로 희생된 처녀귀신과의 이야기구조를 이룬 설화를 수집하여 재구성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가 있다. 그리고 국문학상 고려대의 가전체소설을 이은 최초의 한문소설의 첫 작품 〈만복사저포기〉가 남원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남원에서 살다간 최척이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조위한의 한문소설 〈최척전〉을 낳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가사 〈유민탄(流民嘆)〉이 생산케 되었다는 국문학적 의미가 크다. 그리고 훗날 남원 광한루를 배경으로 전승되는 남원 여인을 중심으로 민간설화를 소설화한 우리나라의 러브스토리 〈춘향전〉이 조선 후기의 주요한 국문학 작품이라는데 큰 의의를 찾을 수가 있다. 〈만복사저포기〉와 〈춘향전〉 이 두 작품은 환상이나 몽상의 공간과 현실공간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주자학적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이념이나 철학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중심적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남성종속적인 여성관에서 여성의 독자적 존재 가치가 부각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근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가 있다. 이는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남원지방 민중들의 인간중심적인 휴머니티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한문소설의 효시작인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와 광해군이 암행조사를 할 만큼 문제가 된 가사 〈유민탄〉과 임진란 때 실제 남원에 살았던 최척이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소설 〈최척전〉이 남원의 조위한에 의해 이 지방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이 고장이 우리나라 산문문학의 원천이라는 국문학적 의미를 갖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04 23:02

한 권 책에 담은 의미있는 시인의 흔적

1970년 발급된 주민등록증, 빛바랜 앨범, 명함, 안경, 파이프, 지갑, 시계, 의류, 책장, 상패 등은 시인의 흔적으로 묶어졌다. 1939년 발간된 첫 시집 <촛불>부터 제2시집 <슬픈 牧歌>, 3시집 <氷河>, 4시집 <山의 序曲>, 유고시집, 수필집, 전집 등은 저서로 정리됐다.신석정 시인(1907~1974)이 남긴 많은 유품과 기증 자료들을 보관전시하고 있는 석정문학관이 이를 <소장자료집>으로 발간했다. 2011년 고향 부안읍 선은리 고택에 건립된 석정문학관에는 5000여점의 유품과 몇만 권의 장서가 소장돼 석정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석정의 유족들이 내놓은 일상 용품서적서간문과, 초대 석정문학관장을 지낸 허소라 시인(군산대 명예교수)이 기탁한 여러 유품과 희귀 도서, 정양 시인(우석대 명예교수)오하근 문학평론가(원광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자료 등이 문학관을 풍성하게 만들었다.소장자료집은 이렇게 모인 자료들을 분석해 석정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석전 박한영 스님, 가람 이병기 시인, 박화성 소설가, 김광섭정인섭김소운장만영서정주설창수박목월황금찬김상옥조병화 시인 등이 보낸 편지와 엽서 등은 수신 편지로 묶어 자료집에 게재됐다. 또 1930년대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석정의 사진들과, 문학관이 소장하는 서화도서들도 자료집으로 정리됐다.소재호 석정문학관장은 진열대와 수장고에 산적한 자료를 오하근 교수님이 몇 날을 공들여 의미를 캐고, 사적을 더듬고, 분석하여 자료집으로 엮을 수 있게 됐다며, 이 역사적 사료 제작에 관심을 주신 많은 분들께 사의를 표한다고 발간사에서 밝혔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1 23:02

김제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 농경문화 생생한 교육장 기대

김제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이 동진수리민속박물관(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소유) 소장 유물 1457점을 이관 받아 명실공히 농경문화박물관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김제시는 지난 1998년부터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이관받으려 노력했으나 그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다 이번에 이관 받음으로써 16년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이로써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향후 전시 및 교육 등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이 소장 하고 있던 유물들은 지난 1983년부터 수집이 이뤄진 생산지가 분명한 지역생활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김제시는 이관 받은 유물을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내 동진관에 전시하고, 전시도록에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100년사와 동진수리조합동진농업주식회사의 역사를 축약해 담았다.또 수리도구발달사에는 길이 4m에 달하는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나무 파이프 및 물을 품어내는 물풍구, 대나무물풍구 등 희귀자료를 선보이고 있고, 농업도구 발달사는 농촌진흥청의 농기계 국가검정과 기술개발 자료인 재건쟁기와 중경제초기가 전시돼 있다.특별전시존에는 1970년대 동진수리조합에 재직했던 박규현 씨 사랑채를 재구성했으며, 동진수리민속박물관 기념존에서는 동진동우회 인터뷰자료 등 동진의 역사 및 유물이관의 의의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관계자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이번 동진관 개관을 통해 동진수리조합 100년의 역사를 끌어안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서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에 이관하는데 협조해준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한편 김제시는 지난 28일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에서 이건식 시장을 비롯 김상무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장 및 관계자, 도시의원, 유관기관단체장, 지역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진관 개관식을 가졌다.

  • 문학·출판
  • 최대우
  • 2014.03.31 23:02

의외성 사건에 직면한 현대인 모습

종교와 역사에 천착했던 소설가 이선구 씨(58)가 발칙한 상상력과 아련한 그리움을 들고 돌아왔다.그는 신간 단편소설집 <욕망을 팝니다> (도서출판 청어)를 통해 후기 산업사회에서 예외적인 사건을 직면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지난 2011년 장편소설 사자춤를 펴낸 뒤 3년 만이다. 이번 소설집은 그가 평소에 쓰는 스타일을 벗어나 스펙트럼을 넓혔다.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단편소설 욕망을 팝니다는 전세계 남성이 무성욕자가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일명 후천성 관음증 해체 증후군이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며 욕망을 파는 광고기획사는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난다.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광고를 만들어온 주인공은 거래처 상품의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도피하는 신세가 된다. 남성의 성욕이 사라지자 이내 화장품과 의류 매출은 급락하고 성욕을 높이는 약과 민간 요법의 재료들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남성의 관심을 끌기위한 여성의 대담한 시위가 이어지고 신혼부부의 이혼율이 높아지는 등 그야말로 요지경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는 성적인 문제가 사회문제화된 뉴스를 보고 한국의 성적 규범과 함께 왜 생물학적으로 남성만 능동적으로 인식하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 이를 뒤집어봤다고 말했다. 이선구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전북대 의대를 졸업했다. 소설은 문학적인 일탈이고 자신의 폭로다는 그는 의대에 다니면서도 시를 써 최승범 시인에게 보이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그가 소설가의 길을 결심한 것은 15년 전이다. 그는 몇 달을 사이에 두고 친구 2명이 잇따라 세상을 뜨면서 인생을 고민하게 됐고 어느날 눈 앞에 문장이 떠올랐다며 스스로 놀라 그날 펜을 잡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지난 2007년 계간문예로 등단한 뒤 소설 시의 갈레누스베네치아 코덱스왕롱의 잔유리병 속의 코끼리사자춤(전 3권)등의 장편소설과 단편집을 발표했다. 계간문예소설문학상, 아시아황금사자문학상, 하이네 문학상,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장려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4.03.28 23:02

고향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풀어내

“현실 속에서 꿈을 잃은 영혼들이 있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분노하고 울분을 토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울분을 토할 수 없어 늘 삼키고 침묵하는 마음들이 있다. 그 마음이 만드는 시어는 지극히 단단한 절벽, 혹은 절규의 냄새가 난다.”민용태 고려대 명예교수(스페인 왕립 한림원 위원)는 최인호 시인의 시가 그런 범상스럽지 않은 벼랑 위의 꿈, 절벽 위에 핀 꽃이다고 했다. 최 시인이 낸 시집 <서정의 분노>에 대한 작품해설을 통해서다<문학시티>.군산 출신으로, 계간 <문학미디어>로 등단한 최 시인의 시에는 정지용 못지 않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가득차 있다고 민 교수는 보았다. ‘심청가 감미로운 진양조에 / 외조부님 눈시울 뜨겁다 /(중략)/둔덕길 돌아오는 길 뜨락에 서면 / 초가지붕 처마 기슭 따라 조여진 듯 / 색감으로 꼬옥 다음어진 이엉 아래 / 섬돌 위 흰 고무신’.고향 냄새 물씬 풍기는 정스러운 이미지를 ‘섬돌 위 흰 고무신’으로 그렸고, 고향을 연상시키는‘어머니’를 곳곳에 등장시켰다. 시인은 또 시장에 나온 춥고 배고픈 사람들, 등굽은 할매의 모습에 남다른 연민을 가졌고, 나무를 보며 생명의 눈길을 노래했다. ‘꽃비 날리는 날이면’‘서투르니 고아라’‘수긋함이 좋다’‘평안의 빛’‘분노’5부에 걸쳐 100편의 시를 수록했다.문학미디어 작가회장을 지냈으며, <눈부신 바다> <꽃향기가 말했다> <달항아리> 등의 공저가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3.28 23:02

[(22) 신경준의 시론서 시칙(詩則)] 일상속 사물 사실적 관찰…고전 한시 기존틀 깨

여암 신경준(1712~1781년)은 1455년 세조찬탈의 정란 이후 전북 순창 남산대로 낙향하여 귀래정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신말주의 11대손이다. 영조 30년(1754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휘릉별검, 정언, 장령, 서산군수, 좌승지, 순천부사, 제주목사 등을 지냈다. 〈문헌비고〉 편찬에서 〈여지고〉를 담당했고, 〈훈민정음운해〉, 〈평측운호거(平仄韻互擧)〉, 〈산수경(山水經)〉 등 비중 있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가운데 〈산수경〉은 일제의 산맥 지리서보다 앞선 것으로 우리나라 산줄기를 백두산을 시원으로 날과 씨로 구분하여 과학적으로 그려낸 지리서로도 유명하다. 시의 창작과 이해에 관한 이론서 〈시칙〉도 서구의 이론서에 못지않은 저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칙〉은 〈여암유고〉 권 8에 전하는데 그의 나이 23세 때 고서에서 읽은 것과 스승으로부터 들은 바를 바탕으로 한시의 이해와 작법을 5개의 도표와 그에 관한 해설로 엮은 것으로 시 창작기법을 겸한 시론서이다. 시의 근본적 기본요소를 체와 의(意), 성(聲)의 세 골격으로 나누고, 성은 다시 가(歌), 사(辭), 행(行), 곡(曲), 음(吟), 탄(歎), 원(怨), 인(引), 요(謠) 등의 장르로 분류하여 대개 5언과 7언을 기본 음수율로 하고 있다. 그리고 궁상각치우의 5음은 황종(黃鐘), 대려(大呂), 태족(太簇), 내종(來種), 고세(姑洗), 중려(中呂), 임종(林鐘),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사(無射), 응종(應鐘) 등 12율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고 했다. 의는 주의(主意)와 운의(運意)의 둘로 나누고, 다시 주의는 송미(頌美), 기자(奇字), 우애(憂哀), 희락(喜樂)으로, 운의는 점배(占排), 취사(取捨), 활축(闊蹙), 구결(口訣)로 나누어서 시의 내면적 서정의 표현방식을 구체화했다. 말하자면 여암은 시창작의 원리와 방법론에서 사(事)와 물(物), 정(情)의 문제를 제기하여 이에 대한 시창작의 상관관계를 설명했고, 전체적인 시의 짜임도 기승전결의 일반적 구조로부터 기(起), 승(承), 전(轉), 식(息), 숙(宿), 결(結), 졸(卒)로 세분화하여 풀이했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는 시가 본디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시에 있어 외형률의 음악성 외에 내면적 운율성을 강조한 것으로 시의(詩意)는 5성과 12율이 가지는 정취와 조화시키려했다는 점이 남다르다. 시어마다 성을 다시 5성(五聲)으로 배분해 보려는 시도한 것을 보면 당대로서는 전례가 없는 독창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가 있고, 5음과 12율의 배합 속에 시에서의 음악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에 있어서 시의 강령(綱領), 시의 재료, 시격(詩格), 시례(詩例)의 대강, 시작법총(詩作法叢), 시의 기품, 시의 대요, 시의 형체 등 8항목으로 분류하여 그러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하여 시의 강령은 다시 체와 의, 성과 시격 48표현방법, 시례는 14표현기교의 예증, 시의 기품은 10가지, 시의 대요엔 생각에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는 〈시경〉의 사무사(思無邪)의 정신을 시창작의 표준으로 삼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시의 형체는 8가지 격식의 작시법을 금기와 바람직한 방법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그가 남긴 「여암유고」 권 1에는 시 62제하에 145수의 시가 남아 있는데, 그가 관직에 있을 때나 일상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경준의 시세계는 대개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첫째, 그가 53세 때 장현현감으로 부임한 시절 백성들의 어려운 삶 속에서 우러난 민은시(民隱詩) 10장과, 둘째, 자연의 미물 - 개구리, 개똥벌레, 개미, 매미, 귀뚜라미, 거미, 파리, 모기 -까지 현미경적인 분석관찰을 통한 야충(野蟲)과 소충(小蟲)의 10장, 셋째, 전통적인 한시의 형식을 깨뜨리면서 실질을 추구한 고체시 65수로 대별할 수 있다. 박명희 교수는 ‘여암 신경준의 생애와 학문관’에서 이러한 신경준의 시세계의 성과를 신경준 개인의 사유와 학문적 지향 및 성과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이를 ‘박(博)’과 ‘실(實)’이라 했고, 특히 시를 통해 실질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무실(務實)’이었으므로 그의 시작태도를 무실적인 시작태도라 정의했다. 신경준은 관직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강계지〉, 〈동국문헌비고〉, 〈여지고〉 등의 저서 외에 〈여암유고〉에 전해지는 ‘일본증운(日本證韻)’, ‘언서음해(諺書音解)’, ‘평측운호거’, ‘거제책(車制策)’, ‘수차도설(水車圖說)’, ‘논선거비어(論船車備禦)’, ‘의표도(儀表圖)’, ‘산수고(山水考)’, ‘도로고’, ‘사연고(四沿考)’, ‘가람(伽藍)고’ 등 실로 다양하고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잡학이라고 홀대했던 천관(天官), 직방(職方), 성률(聲律), 의복(醫卜)에 이르는 학문과 기벽한 서책 등 정통 사대부들이 기피했던 분야까지 통달했던 선비였기 때문에 그의 학문의 요체를 ‘박학(博學)’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박(博)’이라고 줄여서 말한 것 같다. 신경준의 한시는 일상생활에 밀착되어 있거나 사물에 대한 사실적 관찰을 바탕으로 고전적인 한시의 기존형식을 깨뜨리면서 실질을 추구했으므로 이러한 시문학적인 자세를 ‘무실(務實)’이라는데 이의를 달수가 없다. 홍양호가 쓴 서문을 보더라도 결국 신경준의 시칙은 전 시대인들의 시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구차히 기존의 일정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정통시의 율격을 자유자재로 깨뜨리면서 나름의 개성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고, 야충이나 소충에서처럼 하찮은 미물 가운데에서 문학적 의미를 캐낸 시인으로서의 여암의 남다른 시 철학을 엿볼 수가 있다. 호미를 들고 청산에 가서(提鋤去靑山)맑은 물 논밭에 대고(白水稻田)달 밝은 밤 호미 들고 돌아오니(提鋤歸月明)앞마을엔 푸른 안개 끼었어라(前邨翠烟)하얀 호미자루 겨우 세치(白木柄强三咫)일년 삼백육십오일(一歲三百六十五日)내 생명 너에게 맡겼네(我命托子) - 호미를 들고(提鋤)-시제는 ‘제서(提鋤)’ 즉 ‘호미를 들고’이다. 4구까지는 청산에 있는 밭에 나가 달이 동산에 떠오를 때까지 일하다가 푸른 안개가 내려깔리는 달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한가로운 농촌의 정경을 노래했고, 나머지 시구에서는 비록 작은 호미로라도 농사를 지어야만 우리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노동과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여암의 무실의 시세계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4언과 5언, 6언, 8언 등 정격의 형식을 깨뜨리는 변칙의 운율적 효과를 실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신경준의 ‘잡언고시’ 중 10구의 ‘우양약(雨陽若)’이나 6구의 ‘앙양(仰陽)’ 등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여암 신경준은 전북이 낳은 실용성을 중시한 선비로 관직생활과 시문학을 통해 박학(博學)과 무실(務實)의 학문과 시세계를 구축하여 국가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1934년 암담한 일제하에 국학운동을 벌였던 위당 정인보가 아니었다면 자칫 실학적인 여암의 훌륭한 박학과 무실의 족적이 사라질 뻔했다. 1939년 위당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여암전서〉가 활자본으로 간행하면서 정인보는 ‘여암이 만약 국정을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망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일본을 능가했을 것’이라고 평한 것처럼 신경준의 다양한 저술활동은 우리나라를 위해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여암의 학문은 사승(師承)관계가 미미해 후대에 이어지질 못했고, 자신이 스스로 자득한 학문에 그쳤지만 기술과 실용을 중시한 실질적인 학문이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할 수 있다. 실로 신경준의 저술 가운데는 실용적인 학문과 과학기술은 어느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독자성을 구축한 업적들, 예컨대 천문관측기구를 비롯한 도로와 강하의 연구, 독창적인 조선의 지리의 정리, 수레와 선박, 화차 등의 기술적 탐구, 탁월한 언어학적 연구 등은 모두 우리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했던 그의 실사구시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전근대적인 성리학의 학문과 문학정신에서 의고주의적인 사고나 몰개성적인 철학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실용적인 측면을 몸소 실천궁행했던 근대지향의식을 지향한 실험자요, 선각자였다고 할 수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3.28 23:02

팔만대장경에 숨겨진 진실 파헤치다

역사담론과 한국문학의 원류를 찾는 데 천착해온 소설가 김종록 씨(51)가 장편소설 <붓다의 십자가>로 돌아왔다(감영사). 시대를 초월하는 인문정신과 문학, 역사, 철학의 융합을 시도해온 작가는 몽골군의 말발굽에 처참히 유린되던 상황에서도 대대적인 판각불사를 벌여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이 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에 주목했다.해인사 장경판전은 천 년의 숨결이 흐르는 나무도서관입니다. 2010년 판전을 취재하면서 오래된 경판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으며, 그 속삭임은 수천, 수만의 음성이 되어 나를 들볶았고, 그 시절을 날아다녔습니다.소설은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초조대장경의 숨겨진 진실과 새로운 경판사업 이면의 감춰진 이야기를 추적한다. 하나의 진리를 지키려는 자와 또 다른 구원을 꿈꾸는 자의 쫓고 쫓기는 대결, 고려 최대 국책 프로젝트 팔만대장경에 새겨진 낯선 상징과 이교도의 것으로 보이는 괴이한 문장을 두고 벌이는 전쟁, 진정한 구원과 이상세계를 찾아가는 모험을 그린 대장경의 미스터리 소설이다.저자는 이 소설을 위해 3년간 집요하게 사료를 파헤치고 소설의 현장인 강화도와 부안 변산반도 일대를 누볐단다. 소설의 중심에는 팔만대장경에 고대 동방기독교인 경교 관련 내용이 포함될 수 있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도발적인 소설 제목인 <붓다의 십자가>도 이런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뒀다. 작가는 1956년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 십자가나, 발해의 수도였던 만주 훈춘에서 발견된 가슴에 십자가 문양을 단 삼존불상 등을 들어 터무니없는 가설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을 팩션 소설로 분류했다.대장경에 경교 문헌들을 담았다면 대장경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작가는 작품 후기에서 아쉬워했다.진리의 등불을 전하기 위해 별을 보고 눈을 밟으며 동쪽으로 온 사람들, 그 기억을 찾아 서쪽으로 간 사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경전을 목판에 새겨 후세에 남기려 했떤 고려 지성들에게 바치는 찬사입니다.김 씨는 전북대 국문학과와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소설 <풍수>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달의 제국>과 산문집 <바이칼> <근대를 산책하다> 등을 냈다. 1987년 <파수병 시절>로 삼성문학상을, 1988년 장편소설 <칼라빈카>로 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3.24 23:02

안도현 산문〈나는 당신입니다〉

시인이 문학판이 아닌 재판정에서 더 각광(?)을 받는 현실은 시인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지난해 절필 선언과, 현재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의 이야기다. 안 시인은 지난해 7월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며, 30년 넘게 시를 써 왔고 10권의 시집을 냈지만,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나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것이 괴롭다고 절필을 선언했다.절필 선언 후 실제 그의 신작 시를 접할 수 없게 된 팬들에게 최근 발간된 산문집 <나는 당신입니다>가 다소 위안이 될 것 같다. 10년 전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발간한 두 권을 다듬어 낸 책이다(느낌이 있는 책).<러브레터>는 안 시인이 평소 읽은 책에서 밑줄을 그어두고 싶은 구절들을 고르고, 그 글마다 자신의 느낌을 평지 형식으로 하나씩 서서 붙인 책이다. 이 책을 본 많은 독자들이 마치 러브레터를 한 통씩 받는 듯했다고 격려해줬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된 것을 이번에 새롭게 정리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는 것.국내외 유명 문인들의 시와 소설산문을 중심으로, 탈무드판소리민요동화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원전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고, 이에 대한 안 시인의 느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3.21 23:02

김계식 시인, 15번째 시집 〈어둑새벽〉

밤새 손질한 갑주에 / 튼튼한 방패를 챙겨 들고 / 적진의 한복판에 뛰어들어가 //(중략)// 뼈마디 하나 굳히려면 / 열 달을 채우고도 이루지 못하는데 / 삽시간에 남의 뼈 내 것 되려니 / 다른 오진 뼈 바스러지는 아픔 // 오죽하면 의붓아비도 아비이랴 / 욱신거리는 열기를 얼음 팩에 넘기고 // 문 틈새 /어른거리는 희망에 눈길 주며 /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 인공치아 지주.(임플란트중)김계식 시인은 매일 새벽에 일기를 쓴단다. 그 일기는 시의 바탕이 된다. 그에게는 일기가 시가 되고, 시가 일기가 되는 셈이다. 시인은 어느 날 임플란트 시술을 했고, 그 날의 일기는 임플란트와 관련한 심정을 적었을 것 같다. 시술 직전과 시술 과정에서의 두려운 마음, 그 속에서도 새로운 이를 갖는다는 희망이 임플란트라는 시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김 시인의 15번째 시집 〈어둑새벽〉 역시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그날이 그날 같은 나날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진솔한 삶의 일상을 담아낸 시집이다(신아출판사). 시집 〈뭇별 속에 묻어두고〉를 펴낸 후 1년만이다. 예전의 시집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정경, 마음에 꽃 피우는 그리움과 가슴 뜨거운 사랑,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한스러움, 마음을 새롭게 북돋우는 용기, 그리고 저 크고 작은 바람을 담은 것들, 제 나름의 성근 어레미로 꼴사나운 것들 한 번 걸러내고, 촘촘한 어레미로 모자란 아래의 것들 걸러낸 글을 골랐습니다.올 연초 전북문인협회로부터 전북문학상을 수상했던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열심히 시를 썼다고 개근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우등상을 받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뒤로 미루고 또 한 권의 시집을 서두르는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시집 머리에 적었다.시집은 흐르는 물 위에 눈금 매기다믿는 바탕 있음에소삽한 마음 고샅길그 자리에 서다믿음이 안기는 불굴 5부로 나눠 93편의 시를 담았다.전북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과 전주교육장을 지낸 김 시인은 2002년 한국창조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전북PEN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3.21 23:02

[(21) 김구의‘떨어지는 배꽃’낙이화(落梨花)] 심미적인 7언절구 '시부의 표준' 칭송

사뿐히 춤추며 날아가다 도로 되돌아와서는거꾸로 나부껴 다시 가지에 올라 꽃 피우려다무단히 꽃잎 하나 거미줄 그물에 걸리니거미 때마침 나비인줄 알고 잡으러 오네 문정공 김구(1211- 1278년)의 시 가운데 가장 서정적이고 심미적인 시로 떨어지는 배꽃 낙이화(落梨花)라는 시제의 7언절구를 꼽을 수 있다. 이 시는 화사한 봄날,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배꽃 잎이 윤무를 그리다가 거미줄에 걸려 흔들거리는 것을 보다가, 마치 나비가 걸린 것으로 착각한 거미가 먹이인줄 알고 엉금엉금 기어오는 곤충들의 먹이사슬을 섬세하고도 희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희짓는 봄바람과 무수히 떨어지는 배꽃잎, 거미줄과 거미를 소재로 낙이화가 다시 개이화(開梨花)하려는 역리(逆理)성을 꼬집는 지포(止浦)의 시작법이 놀랍다. 그러기에 고려대의 문장가인 문충공 이제현은 이 시를 아름답기가 둘도 없는 작품이라 극찬하였고, 고종대의 문청공 최자는 시부의 표준이요, 모범이라 칭송하였다. 당대의 문호로 추앙받는 문순공 이규보(1168- 1241)는 고려의 문장을 저울질 할 사람이라 경탄을 하였고, 고려의 국왕인 고종도 동쪽 우리나라 대신의 정기를 타고나 서쪽 중국의 문장가들을 자유로이 주무르는 사람이라 칭찬했던 당대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원나라와의 외교에도 능한 정치가였다.김구는 이규보나 이제현처럼 고려대의 다른 문장가들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요, 외교가였다. 고려 고종조 대몽 항쟁기의 한 복판에 서서 민중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몽고를 오가며 감동적인 외교문서를 만들어서 그들을 설득하고 고려와의 관계를 회복시켰던 애국적인 사대부였다. 이는 당 희종 8년(881)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24세의 젊은 나이로 토벌장수 고병(高騈)의 종사관이 되어 황소에게 격문을 써서 반란을 평정함으로써 이름이 천하에 높아진 신라의 최치원과도 비교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최치원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7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선주표수현위를 거쳐 승무랑시어사내공봉의 벼슬에 올라 중국에 문명을 떨친 문장가였다.김구도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능통하고 시와 문을 잘 지어 칭송이 자자하였고, 여름에 절에 들어가 50일 동안 고문과 율시, 당송시를 공부하고 시와 부를 짓는 하과(夏課)에서는 여러 동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모두들 과거에 나가면 장원을 할 것이라 평판이 높았다는 기록이 지포의 행장에 나와 있다. 하지만 나이 20살에 문과에서 2등으로 뽑히자, 지공거(知貢擧)인 정숙공 김인경이 장원으로 뽑히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겨 자신도 제 2등으로 뽑혔다고 위로하니 김구도 장문의 병려체 계문(啓文)를 지어 사례를 하였다.문정공 김구는 무신정변이 일어난 지 40여년이 지난 희종 7년(1211) 비교적 정치가 안정기에 접어든 최충헌 집권기에 태어났다. 〈고려사〉 열전에는 부녕현(현 부안)인이라 되어 있지만 역사가들은 부안에서 태어났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부친인 김의(金宜)가 중앙관료로 개경에 거주했으므로 부안이 아닌 개경에서 출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2년(1836)에 발간된 〈부령김씨족보〉에 의하면 김구의 선대가 부안에 거주하게 된 것은 경순왕의 후손인 김경수가 고려 문종 때 과거에 올라 이부상서 우복야에 이르고 아들 김춘이 부녕부원군에 봉해지면서 부녕을 식읍으로 받았기 때문에 본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구의 아버지 김의는 고려 신종 7년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당시 최씨무단정권을 장악한 최충헌에 의해 발탁됨으로써 중앙관료로 진출하였고, 최충헌은 이규보, 최자, 진화, 김극기 등 당대 문신들을 우대하여 무신정권과 학문의 세계를 조화롭게 이끌어간 것으로 보인다. 김구는 당시 제일의 문호인 이규보의 천거에 의해 집권자 최우에게 발탁되어 관직에 올랐음을 〈고려사절요〉에서 엿볼 수 있다. 고종 21년(1234)부터 6년간 제주판관으로 있을 때 제주의 땅은 돌이 많고 메말라서 논농사를 지을 수 없고, 밀, 보리, 콩, 조 등 밭곡식만 재배하는데 소와 말, 노루, 사슴들 때문에 수확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다 땅의 경계도 없어 포악한 무리들이 남의 땅을 잠식하는 일이 많은지라 지포가 부임하자마자 많은 돌을 모아 담을 쌓게 함으로써 이러한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한 관리로서 제주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사실이 〈동문선〉과 〈탐라지〉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6년간 제주판관을 마치고 내직으로 자리를 옮겨 한림원에 들어가 문사로 활동하면서 나이 30세에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을 때 〈북정록(北征錄)〉이란 기행록을 남겼다. 그리고 가는 행로에 〈과철주(過鐵州)〉, 〈과서경(過西京)〉, 〈출새(出塞)〉, 〈분수령도중(分水嶺途中)〉 등 여러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들 작품 속에는 약소국의 한과 원나라에 대한 강렬한 항몽의식이 작품의 내면에 오롯이 담겨 전한다.당년에 성난 오랑캐들이 국경문을 막으니40여성이 불타오르는 요원같구나산에 기댄 외로운 성 오랑캐길목이구려일만군의 북과 함성 단 한 번에 삼키려 해도백면서생이 이 성곽을 굳게 지켜내어 나라에 몸 바치길 기러기 털처럼 가벼이 하였네.(중략)하룻밤 관아의 창고 붉은 화염 타오르니처자와 함께 기꺼이 불 속에 사라져갔네.충성스런 장한 혼백 가는 곳 어디 멘가.천고에 고을 이름만 철(鐵)이라 허공에 쓰네.〈철주를 지니며〉〈과철주〉의 시제 아래에 지포는 고종 18년 신묘 8월에 몽고 장수 산례탑이 함신진을 포위하고 철주성을 도륙했다. 이 때 그 고을 수령인 이원정이 성을 지키다가 결국 창고를 불사르고 처자와 함께 불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주를 붙여 이 작품의 서사적인 창작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밝혀놓았다. 그러므로 이 시는 1231년 몽고의 침략에 보름동안 항거하다 장렬하게 산화한 고을 수령 이원정과 그 처자에 대한 역사적 전쟁서사시임을 알 수 있다. 장수도 아닌 백면서생인 이원정이 인(仁)과 신(信)을 바탕으로 인심을 결속하여 몽고 장수 산례탑과 항전을 할 때 뼈를 태워 밥을 지어먹으며 싸웠던 전장의 참담한 극한상황이 떠오른다. 김구는 이런 용맹한 군사들을 용호(龍虎)로 비유하며 그들의 함성에 천지가 기울었고, 마지막 궁지에 몰린 이원정은 결국 처자와 더불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서 산화했다는 비장미를 이 시에 담아내었다.김구는 원종조 몽고와 강화가 성립된 이후, 대몽관계에서 중요한 외교문서를 전적으로 담당하여 몽고의 무도한 요구와 압박을 해결했던 표전문의 대문장가였다. 원종도 지난번 몽주(蒙主)의 조서에 올린 글의 뜻이 간절하고 관곡하였다는 말까지 했으니, 그대가 지어올린 표문의 사연과 문장이 곡진하여 몽주를 감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이러한 칭찬이 있었겠느냐고 기뻐할 정도였다. 확실히 지포는 대몽관계에서 외교관계의 훌륭한 표문을 작성하여 고려를 구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짐으로써 재상의 반열인 평장사에 오른 문장가였다.18대손 동호가 동문선과 고려사에에서 김구의 유문(遺文)을 뽑고, 16대손 홍철이 편찬한 연보를 추가 편찬하여 3권 2책의 〈지포집(止浦集)〉을 순조 1년(1801)에 발간했는데, 7언고시 2수, 7언절구 4수, 7언율시 6수, 계 1, 소 5, 서 3, 비명 2, 표전 69 등이 실려 전한다. 만년에 부안 변산 지지포(知止浦)에 지지재(知止齋)란 서당을 짓고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부안군 산내면 운산리에 묘소가 있고, 도동서원에 배향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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