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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동학농민혁명, 소설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으로 재조명

고창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소설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이 나왔다(문학공원).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이강수) 지원으로 소설가 이성수씨가 집필한 책이다. 소설은 동학농민혁명의 포고문이 선언된 고창 공음 구수내 마을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된 개갑장터, 석교포구 등이 소설의 주 활동무대이고 손화중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과 외세와 결탁된 지도층의 부패 및 탐학, 탐관오리의 학정을 그려냈으며 역사서가 지닌 한계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재조명하고 있다.이성수 씨는는 아무리 중요했던 사실이고 인물이어도 결국 잊히기 마련이다. 이번 소설은 그 점에 착안하여 집필했다고 밝혔다. 또 기록으로 남겨진 극소수 사람들의 행적만 알려져서 선양되고 있는 형편이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대다수 민초들의 노력과 희생은 잊혀져가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혁명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의 행적을 다루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소설가 안휘(본명 안재휘)씨는 이번 소설에 대해 그 동안 역사와 문학에서 잘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료를 중심으로 독창적 시각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하고 독자에게 색다른 감흥과 함께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고 말했다.계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김순진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에서 전봉준, 김개남 등만이 조명되었던 동학농민혁명사를 재조명해 민중의 지도자 손화중을 세상에 재등장시킴으로써 정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우리들 가슴에 심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저자인 이씨는 고창 출신으로, 조선대를 졸업하고 월간스토리문학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꼼수〉 〈혼돈의 계절〉을 냈으며, 소설동인회 스토리소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천일건축엔지니어링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성규
  • 2014.04.25 23:02

[(26) 치부의 노래 치산가(상)] 근세 실학사상 특성 지닌 호남지역 귀중한 자료

치산가는 부녀자를 가르치기 위한 계녀가류(誡女歌類)의 가사로서 주로 재산을 늘려 집안을 일으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작품이다. 이 가사는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여 노래한 망부가나 명당을 찾아 산천을 답사하면서 쓴 답산가와 마찬가지로 재산을 잘 다스려 집안을 일으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가사라는 뜻을 지닌 치산가(治産歌)이다.이 작품은 오래전에 필자가 이 고장 전주의 한 고서화점에서 발견한 것으로 신유년 정월 팔일 효심곡 열녀전합부라 병기하고 한글로 〈열녀젼이라〉고 표제한 것 중의 일부이다. 창작시기는 치산가의 결구 뒤에 임슐년 졍월 쵸파일 치산가 디노라로 보아 임술년 1월 8일인 것은 분명하나, 임술년의 간지가 어느 해인지 분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이 작품의 사상적 배경으로 보면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실학이 성행했던 조선 정조대 이후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순조 2년 1802년이 임술년이고, 철종 13년인 1862년이 임술년인데, 사용된 국어법이나 종이의 지질, 또는 사상적 배경 등으로 보면 1862년 정월 팔일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치산가 라 표제한 뒤 3221cm의 크기로 한지를 접어 궁체흘림붓글씨체로 14장 28쪽으로 쓴 252행 501구의 장형가사작품과 겁젼이라 한 산문체의 한글소설이 18장 36쪽으로 병합된 수제본이다. 끝에는 고창군 대산면 성남이 成소저시라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성소저(成小姐)는 이 작품을 필사한 사람으로 추정된 여성이다. 이외에 기묘 8월 득용기(得用記)라고 한 동명이작의 치산가가 〈별회심곡〉과 합본된 작품이 또 있으나 취급하지 않고 이 치산가만을 소개하려 한다.작품 내용으로 보면 안빈낙도하는 도학자풍과는 달리 치산을 잘 해야만 집안이 풍족해지고 자식도 잘 가르쳐서 번성할 수 있다는 근세 실학적 물질사상이 근간을 이루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도 조선조를 주도해 왔던 남성적 언어가 아니라, 규중여인네의 목소리였다는데 주목하고 싶다. 대개 계녀가란 근검절약하여 가산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치산의 개념으로 하고 있지만, 이 치산가는 그러한 소극적 차원에서 벗어나 치산의 구체적이고도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어서 다른 계녀가사와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홍규권장가〉, 〈상사별곡〉과 더불어 영성한 호남지방의 규방가사 가운데 질량을 더해줄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이 치산가는 서사, 화동생지친(和同生至親), 사구고(事舅姑), 행신(行身), 접빈객(接賓客), 봉제사(奉祭祀), 치산, 태교, 육아, 장원급제 및 도문(到門), 진심갈충(盡心竭忠), 결사로 구성되어 있는 영남의 일반적인 계녀가류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치산가의 결언 가운데는 유전(有錢)이면 가사귀(家事貴)라 하여 치산을 잘해야만 자식의 권학에 힘쓸 수 있고, 이후에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진보적인 자본주의의 물질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간 만물중의 신령(神靈)한 게 사람이라얼굴로 이른 것과 행실로 이름이라신체발부 이내몸은 부모님께 받아있다효도로 지애(至愛)하고 지성으로 봉양하소가막 까치 저 짐승도 반포(反哺)할 줄 능히 아네하물며 사람이야 부모봉양 섬서하랴부모은덕 논란하면 태산이 가벼우니정성 충양 극기하나 반분인들 갚을소냐귀하도다 우리형제 부모정기 함께 받아형수 동기 형제간의 우애화목 아니하랴(중략)행동거지 조심하고 언어수족 삼가하소과년(過年)에 출가하기여자의 예사로다이친출가(離親出嫁) 무삼인고 삼종(三從)이 지중하다 천지간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게 사람이라고 시작하는 것은 규방가사의 일반적 형식에 맞춘 것으로 유교적 윤리의 전범에 의거하였다. 〈훈계가〉의 천생만물 하올적에 유인이 최귀로다도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소학의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衆 唯人最貴)를 그대로 용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신체발부 이내몸은 부모님께 받아있다.(身體髮膚 受之父母)라든가 까막까치 저 짐승도 반포할 줄 능히 아네등이 모두 논어, 맹자, 소학, 대학 등의 유교전서에 전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런 바탕 위에 송나라 때의 주자가훈이나 주천구가 찬한 여범(女範)이 근간이 된 인효문황후(AD 1407년)의 내훈(內訓) 등은 조선조 규방가사의 전범이 되었다. 내훈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70년이 지난 조선 성종비인 소혜왕후가 쓴 게 있지만 목록은 비슷하나 내용은 서로 다르다. 명 나라의 내훈은 영조 12년(1736년)에 이덕수가 여사서(女四書)의 권2에 전문을 수록하여 놓았는데 그 목록들은 유교전서 외에도 주자가훈이나 여범(女範), 내훈(內訓), 여사서, 여훈(女訓) 등에 들어있는 덕목으로 여자로서 말을 삼가하는 일, 덕성을 기르는 일, 부지런함, 남편을 모시는 일, 형제간의 우애와 친척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일 등 20덕목을 구체화하여 진술되고 있다. 천지간 만물 중에 인간만이 가장 신령스럽고 귀중한 존재이며, 사람의 신체발부는 부모께 받은 것이므로 부모께 지성으로 효도하여 봉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새끼들은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먹고 자라지만, 성장한 뒤에는 어미를 되먹여 살린다는 반포조(反哺鳥)인 까마귀를 용사(用事)하여 때론 인간이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하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강조하였다. 부모정기를 함께 받아 태어난 형제간에는 우애하며 화목해야 하고 출가하면 후회하지 않도록 규중범절을 익히면서 침선(針線)과 주조(酒造)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언어와 수족을 삼가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특히 언문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보더라도 언문은 학문이라기보다 규중여자들의 필수적 수신과목이었음을 알만하다.여자가 과년하면 의당 출가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나 부모 곁을 떠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확인해 보지만 여자는 삼종(三從)의 질곡이 운명이라고 체념을 하기도 한다. 삼종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고 삼강오륜의 뜻을 알고 몸소 실행을 한다면 여자의 행실은 자연 아름다워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삼강 중에서 임금이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는 강상은 지적함이 없이 자식의 벼리는 아버지인 것이며 부처(夫妻)의 벼리는 가장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오륜은 부부간에 친애하고 임금과 신하간에는 충의가 있어야 하며, 부자간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소년간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삼강에서 군신간의 벼리가 빠진 것처럼 오륜에서도 벗들 간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덕목이 결여되어 있다. 출가하여 3일을 지낸 뒤에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시부모에게 공양을 잘 해야 하는데, 시부모께 효양을 잘 하면 세상 여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효부가 되고 또 가장을 공경하면 세상에서 범상치 않은 열녀가 된다고 하였다. 시부모는 남편의 부모이자 곧 나의 부모가 되기 때문에 어육과 떡, 과실을 얻게 되면 먼저 부모에게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예거하고 있다. 벗들 간에는 신의가 첫째요, 일가친척 간에는 화목해야 하며 슬하의 노복(奴僕)들은 나의 손발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체하(逮下)의 도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옛날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 원문에는 종공예로 잘못 기록됨)는 9대에 걸쳐 집안 화목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들어 용사하면서 구세동거(九世同居)의 중요한 요인이 참는 일이며, 따라서 백인지당(百忍之堂)의 집안이면 반드시 화목이 이루어진다고도 하였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25 23:02

"전문성 강화·지역작가 육성 절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전북도립미술관에 전문성 강화와 지역작가 육성, 사업의 선택과 집중 등이 주문됐다. 이는 사회적기업 마당이 개관 10주년, 전북도립미술관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지난 16일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공간 봄 세미나실에서 마련한 제135회 수요포럼에서 제언됐다. 이날 이세영 문화저널 편집팀장의 사회로 박인현 전북대 예술대 학장, 신동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큐레이터, 이진철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이흥재 전북도립미술관 관장, 장경화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관람객 대표 한지영 씨가 패널로 참여해 3시간 가량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이들은 도립미술관이 도청의 사업소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열악한 예산인력으로 작품 수집과 보존 연구, 기획 전시,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데 한계를 재인식하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도립미술관의 역할과 나가야 할 방향 등 토론회의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전문성 강화 절실도립미술관의 학예 인력은 4명으로 인력난을 타개하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술관의 첨병인 이들의 전문성이 요구됐다.지역미술관의 효시가 된 광주시립미술관의 장경화 학예연구관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학예원의 숫자가 달라지는데 현실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만큼 한국의 문화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과 성과를 갖춘 사람이 들어와야 하고, 미술관에서도 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며 큐레이터의 덕목은 돈을 안 들여 작품을 대여하고, 유명 강사를 섭외하는 능력이다고 강조했다.이진철 학예연구사는 행정기관에 예산과 인력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지난한 얘기로 독일의 사례처럼 대학 인력 또는 외부 전문가와 미술관이 협력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더불어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장경화 학예연구관은 우리 미술관은 위상 제고와 연구성과 등을 위해 연간 전시 횟수를 10회에서 5회로 줄여 예산을 집중한다면서 1개를 하더라도 질을 좀 높이면 지역에서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질적 제고의 중요성을 짚었다. 그는 이어 교육전시레지던시 등은 숫자를 줄여서라도 알차게 해야한다며 처음부터 한꺼번에 다 요구하기 보다는 여건을 만들어 조금씩 늘려가야 한다고 덧붙였다.이진철 학예연구사는 예산 부족을 메우기 위해 부산시립미술관은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특정 강좌는 금액을 올리고, 필요에 따라 자치단체가 별도 투자를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수집전시의 지역성 확보지역 미술관으로서의 역할론 공방도 오고갔다. 소장품 구입 과정의 기준과 지역 작가에 대한 정의를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연간 2억 원 규모로 이뤄지는 도립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절차에 대해 이흥재 관장은 공모 방식은 젊은 작가들이 발빠르게 대응, 여기에 빠진 원로작가는 학예실 추천으로 한다며 잡음이 많아 지난해부터 심사위원을 인력풀제로 했고 7~9명 가운데 대부분은 도외 사람으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축으로 석지 채용신 작품을 중심으로 초상화 소장품을 특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작가를 대표해 참석한 박인현 학장은 작고 또는 현존 작가의 작품 구입 기준이나 규정이 애매한 만큼 공개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가 남는다며 지역 작가에 대한 자료를 구축하면 이를 바탕으로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출생지, 성장지, 활동 근거지 등에 따라 지역 작가의 분류가 달라져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채용신의 초상화와 지역성의 연계는 의문이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소장품 구입 절차에 대해서는 광주시립미술관이 참고 사례로 소개됐다. 미술관이 구입 방향을 설정하면 11명의 학예사가 각자 작가를 추천을 한다. 학예사들의 발표와 논쟁을 거쳐 최종 2명의 후보를 압축하고 관장이 1명을 낙점하는 방식이다.도립미술관이 지역 작가에 대한 지원이 미진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도립미술관이 갖추진 못한 창작스튜디오를 마련하는데 다른 기관의 시설을 이용하는 전향적인 복안도 나왔다. 신동희 큐레이터는 최근 2~3년간 도립미술관의 기획 전시 가운데 도내 미술인이 적었으며, 신진 작가인 20~40대는 거의 포진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장경화 학예연구관은 작가가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레지던시도 시설이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지역작가 육성을 위해 시설을 끌어들여야 한다며 최근 광주시립미술과은 중국 상해의 사립미술관인 히말라야미술관과 큐레이터작가 교류를 위한 MOU를 맺어 그쪽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역민, 지역 작가와의 신뢰 구축도립미술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담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지역 미술계도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인현 학장은 도립미술관이 지역의 대표 미술관으로 지역 작가와의 신뢰를 구축해 미묘한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경화 학예연구관은 지역 미술계도 한 목소리를 내 미술관의 인력예산 확보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공공미술관의 공통 문제인 정치로부터의 자유도 이뤄야 한다고 피력했다. 더 나아가 향후 공립미술관의 역할도 그려졌다. 이진철 학예연구사는 선택과 집중, 공유와 소통,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면서 지역 작가가 곧 문화상품이 되는 만큼 문화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어 공공성을 유지하되 비즈니스를 위해 기업경영을 벤치마팅하는 부분도 해결해야 한다고 보탰다. 이흥재 관장은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자료 구축, 창작스튜디오 마련 등의 과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4.04.18 23:02

조광환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 개정판 펴내

장군천안전공지묘(將軍天安全公之墓). 조광환 동학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56정읍 학산고 교사)은 지난해 8월, 정읍시 옹동면 비봉산에 이렇게 쓰인 1미터 남짓 되는 화감암 비석이 전봉준 장군의 묘일 가능성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두 차례 답사를 벌인 뒤 문헌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전봉준 장군의 묘일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으며, 그 가능성이 적더라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자치단체에 건의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관심을 갖지 않아 안타깝단다.정읍을 기반으로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계승사업에 열심인 조씨가 갑오년 2주갑을 맞아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 개정판을 냈다(살림터). 2008년 <소통하는 우리 역사>란 제목으로 초판본을 낸 후 새로운 관련 사료의 발견과 초판본에서 누락된 내용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으며, 특히 장군천안전공지묘의 발견이 자극제가 됐다.동학농민혁명 발발 이후 우리들이 겪었던 31운동, 4월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등 가치와 의미가 큰 혁명 또는 그에 준하는 대사건들이 있어 왔지만 그 규모와 깊이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능가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세상은 크게 변한 것 같지만 120년 전 개혁의 깃발 아래 탐관오리의 처벌, 지벌을 타파하고 고른 인재등용, 조세개혁을 외치던 동학 농민군의 요구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저자는 20여년간 혁명의 유적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관련된 기록과 이야기를 살피고, 한국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의미와 교훈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들려주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에서부터 전개과정,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야기, 그리고 혁명의 현재적 의미 등을 다루었다.(사)정읍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정읍본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안내> <내 고향 역사의 숨겨을 찾아서>(공저)를 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18 23:02

[(25) 춘향전과 흥부전, 콩쥐팥쥐전, 홍길동전] 춘향 문화재, 남원 곳곳 산재 '본향 확실'

〈춘향전〉은 작자, 창작년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숙종조나 영조 초에 판소리로 불리어오다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 장르로 문장체 한글소설과 한문본 소설 등이 있다. 그 종류만 해도 120여종이 넘고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므로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춘향전〉 작품군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춘향전〉의 모태가 된 근원설화를 보면 남원에 살았던 춘향이라는 기생이 이부사 자제의 도령을 홀로 사모하다 죽은 후에 원귀가 되어서 남원에 많은 재앙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양진사가 제문으로 창작했다는 액풀이로서의 제의(祭儀)설에 근원을 두고 시작된다. 그리고 노진, 조식, 성이성, 박문수 등 야담에서 전해지는 암행어사 출두설화가 〈춘향전〉에 부합되었다는 설과 조선조에 비롯된 기생과 양반도령과의 애련설화 등의 야담이 바탕이 되었다는 다양한 견해들이 많다.〈춘향전〉의 연구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조윤제의 「교주춘향전」이 나오면서 시작된 이래, 1965년 김동욱에 의해 발표된 〈판소리발생고〉로 본격화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판소리춘향가와 소설춘향가와의 관계를 근원설화로부터 판소리 한마당으로, 이후 판소리 대본 및 판소리계소설로의 정착이라는 전개도식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로써 〈춘향전〉의 소설이 판소리춘향가보다 앞섰다는 선행(先行)설을 극복하고 판소리춘향가의 선행설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원설화에 관한 연구도 도미설화의 변이형인 구례현에 살았던 부인의 〈지리산가〉 백제오가 열녀설화와 남원에서 노진, 김우항, 박문수, 성이성 어사와 기녀가 사랑했다는 설화들이 있고, 신임부사 생일잔치에서 지은 7언시 설화인 암행어사설화, 남원지방의 추녀기생 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 등 5종이 전해오고 있다. 이 외에도 유사한 연애설화와 아랑설화, 심수경 설화에 얽힌 신원설화(伸寃說話), 성현의 아들 성세창이 평양기생 자란과의 애련설화 등의 염정설화, 허현의 아들이 혼례식날 부친의 급서로 초야정사를 치르지 못하고 여묘(廬墓)살이 하다가 정사를 치러 자식을 낳았지만, 신랑이 죽자 신랑이 주었던 신표로 친자위기를 모면했다는 수기설화(手記說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로 발전한 것으로 귀결되어 왔다. 어쨌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간중심의 사랑이야기인 〈춘향전〉은 남원 광한루와 춘향사당, 춘향묘, 성안의(成安義)부사의 기적비, 이도령이 다니던 박셔틔(薄色峙)고개, 춘향이 버선발로 이도령을 따라갔다는 버선밭과 오리정(五里亭) 등의 배경과 소재들이 남원지방에 실제 산재해 있다. 또 남원에서 매년 시행되는 춘향제 등 민간설화와 더불어 전해지는 유형무형의 춘향의 문화재가 많은 남원은 조선조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본향임에 틀림이 없다. 1949년 80세 된 조성국 노인담에 의하면 박색 춘향이 이도령을 위해 수절하다가 옥사한 뒤 남원에 가뭄이 들자, 양진사가 백지 3장에 춘향의 해원(解寃)을 담아 기우제를 지낸 뒤 흉년을 면했는데 그것이 훗날 춘향전으로 발전되었고, 자신이 70 년 전(고종 16년, 1879년) 이용준 남원부사 시절에 남원 광대기생들이 춘향계를 만들어서 춘향의 제사를 춘추에 두 번 지내는 걸 보았다는 목격담이 전해 온다고도 하였다. 〈춘향전〉은 18세기 영국의 새뮤얼 리처드슨 (1689- 1761)이 귀족의 아들 백작 Mr. B와 그 집의 하녀 파멜라가 신분적 차이를 극복하고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는 애틋한 사랑을 편지체소설로 완성한 서구 근대소설의 효시인 〈파밀러〉와도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보이고, 이 소설에 견주어 보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고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 외에도 남원군 인월면 성산리나 아영면 성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과 전북 완주군 이서면을 배경으로 한 〈콩쥐팥쥐전〉 등의 한글소설이 이 고장을 배경으로 하여 창작되었다. 이는 조선 세조 조에 김시습이 남원에서 전해오는 양생과 귀신처녀와의 사랑을 엮은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와 광해군 때 실제 남원에 살았던 최척이 임병양란을 겪으며 옥영과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엮은 조위한의 〈최척전〉이 남원의 이러한 산문문학을 낳는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콩쥐팥쥐전〉은 서구의 신데렐라 소설과도 이야기 줄거리가 유사하고, 더욱이 중국의 옛 문헌에도 실려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세계 각국에 공통적으로 분포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인간 본연의 신분상승 욕구의 분출과 동경이 낳은 소산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이 고장 전북에는 이러한 소설을 뒷받침하는 지명이나 설화들이 산재해 있다. 예컨대 흥부태생마을인 남원 인월면 성산리와 흥부 발복 마을인 아영면 성리에는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 짚신을 털며 신세한탄을 했다는 신털바위와 박첨지 놀부묘가 실재하고, 박춘보 흥부가 허기져 쓰러졌다는 허기재와 놀부가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얻어 돌아가 쉬었다는 화초장 바위 외에도 연하다리, 연비봉, 흰죽배미, 새금모퉁이, 박놀보설화 등이 실제로 유전되고 있다. 또 완주군 이서면과 은교리 앵곡 마을에는 애통리 두월천 빨래터와 콩쥐가 은혜를 입은 산이라는 두은(斗恩)산, 팥쥐가 콩쥐를 빠뜨려 죽였다는 팥쥐기방죽, 팥쥐가 넘어가 건넜다는 두월천, 아버지 최만춘이 딸 콩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애통한 소식을 처음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는 애통리, 계모 배씨와 팥쥐가 짜고 콩쥐를 죽였다는 분통터진 소식을 들었다는 분통리(일명 분토리), 앵곡 역참(驛站)의 마방자리, 콩쥐를 도와준 두꺼비가 살았다는 두죽제 등 「콩쥐팥쥐전」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전개에 따른 지명들이 산재해 있다. 실제 이곳은 〈콩쥐팥쥐전〉의 배경을 놓고 김제시와 완주군이 경쟁적으로 서로 다투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김제 금구에 속해 있던 은교리와 앵곡마을을 완주군 이서마을로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서면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젼쥬 셔문밧 삼십리허’에 있다고 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3 전라도 전주부조에 도‘이서(伊西)는 전주 서쪽 30리에서 35리 사이에 있다고 한 기록과 부합된다. 또 앵곡마을에는 전주에 예속된 역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곳이며, 이 역참은 그 옛날 남북을 오가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그러므로 여러 지역색을 가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수집되고 혼합 재생산되어 구전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콩쥐팥쥐전〉이 생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고전소설 〈홍길동전〉도 전북 부안과 위도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홍길동이 이상국으로 건설한 율도국이 부안 위도라는 사실이 민간 전승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상당한 근거를 갖고 논의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인근인 영광에는 홍길동 마을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고, 실제 연산군 6년(1500)엔 가평, 홍천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소설 속의 홍길동(洪吉童)과 끝자만 다른 명화적(明火賊) 홍길동(洪吉同)이 존재했었다. 또한 조선 중기 여류시인이자 부안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었던 매창이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 허균, 이귀 등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왕래하며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으로써 〈홍길동전〉의 율도국이 이 고장 위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허균은 오랫동안 부안 기생 매창과 왕래하며 시로서 교유를 했고, 실제 부안 우반동 선계안골엔 〈홍길동전〉을 집필했던 장소가 정사암이라 전해내려 오고 있다. 그 당시 허균의 장형 허성은 전라관찰사였고, 허균은 충청, 전라도 지방의 세곡을 거둬들이는 수운판관이었기 때문에 부안을 자주 드나들었다. 선조 34년(1601년)에는 수운판관의 벼슬마저 사임을 하고 부안을 자주 내방하면서 매창과 시로서 절친하게 사귀었으므로 〈홍길동전〉을 부안에서 지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선조 실학자이자 많은 한문소설을 남긴 박지원의 〈허생전〉 가운데서도 부안 변산이 도적소굴의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허균의 〈홍길동전〉의 창작이 이 고장 부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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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4.04.18 23:02

문정 유고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 발간…18일 출판기념회

지난해 작고한 문정 시인(본명 문정희, 1961~2013)의 유고 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이 나왔다(애지).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첫 시집을 준비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시인의 죽음을 슬퍼하던 친구들이 뜻을 모아서다. 그를 시인으로 만든 신춘문예 당선작하모니카 부는 오빠를 표제작으로 마지막 작품인 그림자 치료까지 모두 84편의 시를 담았다. 시인의 시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과 소외된 이들의 삶에 지속적인 애정을 보이며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으로 보듬는다는 평을 받았다. 진안에서 자란 시인은 자신의 눈에 비친 봄비와 아지랑이와 호수와 구름과 이슬과 비와 나무를 산뜻한 이미지로 형상화해낸다. 편편이 시적 대상을 과장하거나 덧칠하지 않고 음전한 언어로 녹여낸 서정성이 짙다.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동체적 가치, 인간애를 그려낸 시편들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파동이 있다. 우석대 송준호 교수는 시집해설에서 문정 시인이 슬픔과 절망의 현실 속에서 최종적으로 의지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네 힘든 생을 끌고 나갈 생명력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안도현 시인은 유고 시집은 감정이 여리고 섬세한 문정 시인을 꼭 빼닮았다. 세상을 보는 눈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목소리는 욕심 없이 차분하고, 그가 매만진 언어는 숨소리가 고르다고 시인을 그렸다. 시집 발간과 관련, 전북작가회의(회장 복효근)와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우석고등학교(교장 이세재) 주축으로 18일 오후 6시30분 최명희문학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시인 문정을 떠올리는 밤의 타이틀을 건 이날 행사는 시인의 친구인 임영섭 씨(남성여고 교사)의 발제와, 시 낭송, 시인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물 상영 등을 통해 시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자리로 진행된다.고인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88년부터 우석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국어를 가르쳤으며, 지난 2008년 하모니카 부는 오빠로 문화일보의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2012년 전북작가회의 제1회 작가의 눈 작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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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4.04.15 23:02

한승헌 변호사, 〈한국의 법치주의…〉 펴내

국민의정부 때 감사원장을 지낸 진안 출신의 한승헌 변호사(80)는 험난한 굴곡을 건넌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증인이다. 민주주의가 억압던 시절 시국사건과 양심수들의 변론을 맡아 진정한 법치를 세우려 몸부림쳤고, 그 스스로도 필화사건(75년)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1980년)으로 두 번에 걸쳐 투옥되는 힘든 삶을 살았다.그가 최근법조 55년 기념선집(전4권)을 완간했다. 지난해 3권을 낸 후 4권째 선집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를 출간했다(범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어떻게 가야할지 보여주는 한 변호사의 경험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겼다 .4권의 선집은 <피고인이 된 변호사> <권력과 필화> <한일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로 이루어졌다. <한일현대사~>는 일본어로 일본에서 출간됐다.기념선집은 한 변호사가 반세기에 걸쳐 남긴 말과 글들을 골라 엮은 것으로, 선집 발간을 위해 간행위원회가 구성됐다.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김선수(변호사) 김인회(인하대 교수) 김효경(경북대 교수) 김희수(변호사) 남형두(연세대 교수) 문미란(변호사) 백승헌(변호사) 서보학(경희대 교수) 정미화(변호사) 정연순(변호사) 조국(서울대 교수) 하태훈(고려대 교수)씨가 참여했다.한 변호사는문헌을 통한 연구가 아니라 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장 백서다. 오래된 글도 그 집필 당시의 시대상황과 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보기누름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증언집이 되었으면 보람이 되겠다고 책 머리말에 밝혔다.누구를 위한 법치주의인가-법치주의에 대한 오해와 왜곡가식적 법치주의의 실상-역대 반민주정권의 법치주의 훼손집권 정략에 밀려난 법의 정통성-국가이익과 집권자의 이익압제정권하의 사법의 진통-오풍 못지않은 영합의 위험법을 통한 정의구현은 가능한가-언론의 물음에 답하다등 5부로 구성됐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11 23:02

[(24) 조위한 한문소설 〈최척전〉과 가사 〈유민탄〉] 남원서 창작된 사회 비판 작품 '문학사 보배'

남원 만복사 동쪽에 모친을 일찍이 여의고 부친과 함께 살았던 최척이란 소년이 옥영이란 처자와 임, 병 양란을 겪으며 중국, 일본을 무대로 펼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다룬 조위한의 〈최척전(崔陟傳)〉도 남원에서 창작된 한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최척은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킨 변사정의 막하에 들어가 활약했던 실존인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주목된다. 그는 82세의 삶을 사는 동안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고, 일생동안 사회현실과 관련된 문학 활동을 해왔다. 이미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남원의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창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임제의 〈원생몽유록〉, 〈화사〉, 〈수성지〉 등 한문계 고소설에 이어 그러한 문학적 환경을 이루어 왔다는데도 의의가 있다.〈최척전〉은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이 받아야 했던 수난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왜구나 구원병으로 온 명군들에게까지도 당한 치욕과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아픔들까지 다루었고, 실제 역사적인 실존인물이 등장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등 세 나라를 무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다큐멘터리적인 작품이다. 특히 작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건전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은 작자정신이 깊게 베어난다는 점에서 기존 소설이 따를 수 없는 차별적인 작품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있는 홍도와도 유사한 내용으로 임진란 때 있었던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광해군 13년(1631년)에 조위한이 지은 소설로서 현재 한문본 필사본이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전한다. 조위한(趙緯韓)은 명종 22년(1567)에 출생하여 인조 27년(1649) 세상을 떠날 때까지 82년간의 그의 삶 자체는 임진란, 정유재란, 정묘 병자호란 등의 외침과 계축옥사,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 내적 난리로 어지러운 세상을 어렵게 살아온 풍운의 사대부였다. 그는 인조반정으로 인해 벼슬길에 오른 이후에도 과감하게 종실(宗室)인 인성군의 만행을 비판하는 ‘위인성군소척인피계(爲仁城君所斥避啓)’의 상소를 올림과 동시에 왕실 사람인 정백창을 논죄하라는 상소도 올렸다. 이러한 죄목으로 인조의 미움을 사서 한때 양양부사로 좌천이 되었지만, 인조 2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왕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군사를 거느리고 상경하여 왕을 보호할 만큼 임금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광해군 10년(1618년) 나이 52세 때 벼슬을 버리고 남원 주포로 이주하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생각하며 그 운(韻)을 빌어‘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를 짓고 전란으로 황폐된 강산과 세상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두 차례의 왜란과 정묘, 병자호란으로 피폐된 강토와 유랑민들의 참상을 보며 사대부로서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일마저 버려둔 채 살아가는 한심한 자신을 이 한시에 담았고, 또 광해군 13년 55세 때 가사 〈유민탄(流民嘆)〉을 지어 유랑하던 백성들의 처절한 한과 아픔을 담아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조위한은 잘못된 현실을 묵과하지 않고 작품 속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나라 안에 이 작품이 크게 유행하였고, 그런 이유로 광해군은 이를 알아보라고 궁중 밖으로 암행조사의 명을 내린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가사 〈유민탄〉은 그 작품이 유실되어 전해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억(趙億)이 찬한 ‘현곡조공행장(玄谷趙公行狀)’에는 장종 천계원년 즉 신유년 공이 55세 때 〈유민가〉를 지었는데 그 당시 부역에 시달리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즐비한 참상을 우리말로 지었다. 노래가사가 슬프고 곡진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슬퍼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홍만종은 「순오지」에 홍섬이 지은 〈원분가〉로부터 송순의 〈면앙정가〉, 백광홍의 〈관서별곡〉, 정철의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 차천로의 〈강촌별곡〉, 허균의 첩 무옥의 〈원부사〉, 조위한의 〈유민탄〉, 임휴우의 〈목동가〉, 무명씨가 지은 〈맹상군가〉 등 당대 굴지의 12가사를 소개하면서 조위한의 가사작품을 열 번째로 실어 놓았다. 그리고 이들 작품 가운데 〈유민탄〉은 ‘현곡 조위한이 지은 것으로 어두운 조정 정령(政令)의 번거로움과 열읍(列邑)들의 세금징수의 가혹함을 자세히 서술했으니 정협의 〈유민도〉와 서로 표리(表裏)가 됨직하다’라고 평설하였다. 또한 홍만종은 송시열이 찬한 조위한의 ‘신도비명’에도 조위한이 지은 〈유민탄〉이란 가사에는 백성들의 고통과 집안이 무너지는 슬픔을 그대로 기술했는데, 임금이 이를 찾아내라 했으나 찾아내지 못했고 훗날 광해실록을 수찬할 때 자신이 그것을 보고 사실로 믿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로 보면 조위한과 같은 조선조 사대부들은 불쌍한 백성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보살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애민사상의 소유자들이었고, 부조리한 정국을 고발하며 이를 광정해야 한다는 비판적 지성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대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조의 사회문화가 세계적이었다는 문화사가들의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우리 전북지방에서 그러한 훌륭한 사대부들 예컨대 신경준, 장복겸, 조위한 등이 가렴주구의 무자비한 세곡징수과 부조리한 정정(政情)을 바로 잡아야만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된다는 상소를 하는 한편, 이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 많은 저술활동을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다만 조위한의 가사 〈유민탄〉이 실전되어 안타깝지만, 어무적이란 사람이 지은 동명이작의 〈유민탄〉이란 한시를 보면 이 작품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창생들 어렵네(蒼生難)창생들 살기 어렵네(蒼生難)나는 너희를 구제할 마음 있어도(我有濟爾心)너희를 구제할 힘은 없다네(而無濟爾力)창생들 피나는 고통(蒼生苦)창생들 피 토하는 고통(蒼生苦)추워도 덮을 이불 하나 없는데(天寒爾無衾) 저들은 구제할 힘은 있어도(彼有濟爾力)구제할 마음은 없다네(而無濟爾心) 원컨대 소인의 마음 돌려서(願回小人腹)잠시 군자를 위해 걱정하노니(暫爲君子慮)잠시라도 군자의 귀를 빌어서(暫借君子耳)시험 삼아 백성의 말 들어보아라(試聽小民語)백성들은 말을 해도 그대들은 알아듣지 못하고(小民有語君不知) 지금 백성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렸네(今歲蒼生皆失所) 비록 대궐에서 임금이 근심하는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도(北闕雖下憂民詔)자방관청이 받아 보는 건 쓸데 없는 종이 한 조각이네(州縣傳看一虛紙) - 중략 -억만창생들은 입을 옷가지 하나 없이 헐벗고, 아무리 추워도 덮을 이불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데 구제할 힘이 있는 나라의 관료들은 탐관오리들뿐이라는 부조리한 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발한 시이다. 어무적(魚無迹)이라는 작자도 실명을 은익한 사대부일 것으로 보인다. 행동이 기민하지 못한 ‘어물쩍거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어무적’이라고 지은 필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안목을 지닌 사대부들의 작품들, 예컨대 장복겸이 임금께 올린 ‘구폐소’와 연시조 〈고산별곡〉, 장현경의 가사 〈사미인가〉, 조위한의 한문소설 〈최척전〉과 가사 〈유민탄〉, 신경준의 〈시칙〉 등은 우리 한국문학사상 보배로운 국문학적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조 사대부들의 비판적 지성의 사회문화로 인해 조선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상위그룹에 오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토록 훌륭한 사대부들을 전북이 낳고 또 그런 사대부들이 이 고장에서 살아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11 23:02

문체부 인문독서아카데미 전북지역 3곳서 진행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2014년 인문독서아카데미’ 60개를 선정, 이달부터 11월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은 도서관, 문화원, 서원 등에서 인문정신 고양과 독서 문화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2013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다.전북에서는 완주군립 중앙도서관(설화 오딧세이 등), 전북도교육문화회관(지역문화로 풀어가는 유쾌한 인문학), 전북도청 도서관(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감상 등) 등 3곳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인문독서아카데미 프로그램은 공모 절차를 거쳐 선정됐으며, 공모에는 각 기관 및 단체에서 총 168개의 프로그램을 접수했다. 문체부는 출판·독서·문학 전문가 등이 참여해 주제의 적절성, 지역 문화와의 연계성, 강사의 적합성, 수행기관 운영 능력 등에 초점을 맞춰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독서동아리 운영 여부와 사업 완료 후의 기대 효과 및 정책 효과 등에도 중점을 두었다는 것.올해 수행기관으로 선정된 기관은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통섭형 주제의 강의로 지역 주민들을 맞이하게 된다. 수행기관에는 강사료와 교재비 등이 지원된다.문체부는 인문정신 및 독서문화 확산을 통한 ‘책 읽는 사회 만들기’를 위해 독서·시민단체·도서관 등과 함께 소외 지역에의 문학작가 파견, 독서동아리 활동 지원, 지역 대표 독서프로그램 지원,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지원, 대한민국 독서박람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9 23:02

한국동서문학상 수필 부문 임실 출신 신영규씨 작품상

수필가 신영규씨가 제2회 한국동서문학상 수필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수필 ‘실존 하려면 외로워야 한다’. 시상식은 지난 4일 부산예총회관에서 열렸다. 한국동서문학(이사장 겸 발행인 이석래)은 2012년 설립된 재단으로 한국문화와 문학의 신장을 목표로 한국동서문학을 계간으로 발간해 오고 있다. 한국동서문화상 및 문학상을 시상해오고 있으며, 무료 문학강좌와 도서보내기운동, 장애인협회 연계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임종찬(부산대 국문과 교수)심사위원장은 “신영규씨의 수상작은 무시무시한 외로움과 고독으로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이 매일 밤 치열한 상념의 전투 속에서 삶을 고뇌하고 거기서 깨달은 삶의 문제를 문학과 철학으로 연결, 승화시켜 결국 인간에게 생존의 물음표를 던져주고 사유케 하는 인식능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임실 출신의 신영규씨는 1995년 월간<문예사조>와 1997년 월간<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문협신문 편집주간과 전북수필 사무국장, 한국신문학 전북지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숲에서 만난 비> <사랑을 소매치기 당한 여자>, 칼럼집<돈아 돈 줄게 나와라> <펜 끝에 매달린 세상>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8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