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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자전적 에세이집 2권 발간

'우리땅걷기'이사장인 신정일씨(59)에게는 여러 별칭이 따른다. '현대판 김정호''현대판 이중환''현대판 신 삿갓''걷기 도사''길 위의 철학자''길 위의 시인''향토사학자' '영혼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방외지사' 등이 그것이다. 그 스스로는 조용헌 강호도양학연구소장이 붙인'방외지사'(方外之士, 儒家의 입장에서 유가 밖에 있는 사람)가 자신에게 가장 걸맞은 별칭으로 꼽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아야 하고, 여행을 많이 해야 하며, 되도록 많이 걸어 다닐 수 있어야 방외지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며, 이 조건을 갖춘 사람이 신정일씨라는 게 조 소장의 이야기다. 그러나 신 이사장은 "말이 좋아서 방외지사지, 달리 말하면 할 일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고 자신을 한껏 낮췄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세상을 바라보고 혼자서 나름대로 공부법을 세웠고, 수많은 책을 읽고 세상을 편력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였기에 오로지'책과 길', 그리고 자연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워 자신의 진정한 스승은 곧 자연이자 책이라는 설명이다.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와 400여개 의 산들을 오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 쓰는 택리지〉 〈조선을 뒤흔든 최대의 역모사건〉 〈느리게 걷는 사람〉 등 60여권의 저서를 내면서 '문화사학자'로 '유명 인사'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망외지사의 삶을 살았던 아웃사이더 신정일이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한국 문화예술운동까지 이끌게 되었던 속사정'을 두 권의 자전적 에세이로 풀어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와 〈홀로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푸른영토). 그는 〈모든 것은…〉에서 진안 백운면 유년시절부터의 성장과정을 통해 어떻게 책과 길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홀로…〉에서 문화운동과 작가로 나서게 된 에피소드들을 소개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때 중학교 다니던 친구들과 달리 곡식 네댓 말을 등에 지고 진안에서 전주까지 40리가 넘는 길을 오가던 가난했던 시절의 고향이기에 자랑스러울 수 없었지만,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이 그 고향을 '눈룡'으로 지목한 후 고향이 새로운 느낌으로 와 닿았단다. 그는'한이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는 말을 인용해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진솔하게 그렸다.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게 군 생활이었다고 회고했다.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늘 혼자였으며, 혼자였기에 오로지 길을 걷거나 책을 읽으며 보냈다. 김지하 시인 등 각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게 된 이야기와, 도스토옙스키 등 많은 세계 석학들의 명언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덤으로 유익하게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삶을 깨닫게 될까'라고 노래한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과 같은 물음을 가끔씩 자신에게 던지겠다는 말로, '길 위의 철학자'생활을 계속할 것임을 각오로 다졌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1.01 23:02

[4. 정읍사 (상)] 묵묵히 참고 따르는 '기다림의 미학' 절정

달님이어높이 좀 돋으시어어기야 멀리 좀 비취오시라어기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전주 시장에서 오고 계신지요 어기야 진데를 디딜까 두려워라어기야 어강도리어디든 짐을 벗어놓고 쉬시어라어기야 내님 가는 길 저물까 두려워라 어기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어기야', '어기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는 모두 음악적 효과나 율동미를 높이기 위해 삽입된 여음(餘音)이다. 다른 백제가요와 마찬가지로 인고(忍苦)와 인종(忍從)을 바탕으로 한 기다림의 미학이 절정을 이룬 노래이다. 이러한 정서는 고려조 속요나 조선조 시가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이루었고 우리 문학의 주요한 맥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병욱, 조동일 등은 시조 장르의 원형이나 시원을 정읍사나 향가에서 3행 형식의 외형적 율조를 찾아내어 그 기원(起源)을 삼기도 했다. 고려사 악지조의 기록을 보면 전주의 속현인 정읍(井邑)에 살고 있는 한 행상인의 아내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행여 도적들에게 범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진데를 디딜까 두려워라'라는 상징적 은유법(symbolic metaphor)을 써서 노래하였다. 우리네는 무섭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는 으레 이러한 수사를 항용 관례적으로 써왔다. 예컨대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도 도둑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양상군자(梁上君子)'라 일러왔다. 아니면 '밤손님'이라는 미화법을 쓰거나 "불이야!" 하는 식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당한 처지에 빠졌을 때도 '흙탕물 튀겼다'라는 은유적 수사(修辭)를 항용 써왔다. 내레이터인 정읍사의 여인도 이와 같은 지혜를 발휘하여 다정하고도 유정(幽情)한 남편의 위해(危害)를 걱정한 나머지, '진데'를 디딜까 두렵다는 조심스럽고도 섬세한 아름다운 발성을 토해냈다. '즌대'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진 곳'을 의미하는 '진흙탕길'이다. 이것이 여성의 성(性)과 관련되었다거나 '화류항(花柳巷)'이나 '색주항(色酒巷)'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전거(典據)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선 중종 때 남곤(南袞)이 정읍사는 음사(淫詞)이므로 궁중의례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상소한 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양주동이나 지헌영, 박병채, 등이 주장한 주관적 해석을 맹목적으로 좇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러한 연유를 '고려사'의 악지의 기록에서 분명히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정읍사의 내레이터인 행상인의 아내는 남편이 밤길에 도적들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운 나머지 '흙탕물의 더러움에 의탁했다'(恐其夫 夜行犯害 托泥水之汚)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이수지오(泥水之汚)'는 '흙탕물의 더러움'이요, 정읍사 노래 속의 '즌대'는 즉 현대어 '진 곳'인 '진데'와 일치된다.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란 우선 남편의 신변에 무슨 위험이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차적인 걱정으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다. 그 다음 단계에 가서야 술집이나 다른 여인의 유혹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이차적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읍사가 음사(淫詞)라고 보는 단초인 '즌대'란 이런 양면적인 인간본성의 이중구조로 파악하는 게 온당하다. 단순한 음행(淫行)으로 국한하거나, 선뜻 주색에 탐닉(耽溺)된 것으로 풀이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임을 기다리는 심정이란 먼저 임의 신변상의 위해가 으뜸일 것이요, 다음으로 애태움과 초조 속에서 다른 여인에게 빠져버린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으로 전이되어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이게 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읍사의 여인이 위험한 밤길을 걸으며 귀가하는 남편의 안전을 달에게 비는 모습은 엘리아데가 말한 달과 물, 여인의 3자에 의한 생생력환대(生生力環帶)를 이루어지게 되는 신이한 써클의 도식과도 일치된다. 달은 원시시대부터 신비스런 신앙의 대상이었다. 위험한 밤길에 귀환하는 임의 안전을 정읍사의 여인이 달에게 비는 모습은 달과 물, 여인이란 엘리아데의 생생력환대를 바탕으로 한 민속신앙의 기원(祈願)행위로 표출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 문학·출판
  • 기고
  • 2013.10.31 23:02

고도원 아침편지 재단 이사장 "꿈 너머 꿈 가진 이는 행복"

"가장 좋은 꿈이 꿈 너머 꿈입니다. 새로운 꿈 너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아침편지를 쓴다고 할 수 있습니다."석정문학회(회장 소재호) 주최 '기호에서 상징까지'를 주제로 27일 전주 완산구청 강당에서 열린 2013 석정문학제 심포지엄에서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이 '꿈 너머 꿈'을 강조했다.고 이사장은 '꿈 너머 꿈'은 꿈을 갖되, 그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비전과 같은 것으로 정의 했다. 단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룬 꿈을 징검다리 삼아 그 꿈을 이룬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머리에 그리며 처음부터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백만장자를 꿈꿨으면 백만장자가 된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대통령을, 의사를, 선생님을, 화가를, 작가를, 발레리나를 꿈꾸었으면 그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지금부터 꿈꿔가는 것이 꿈 너머 꿈이란다.백만장자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 백만장자가 된 다음에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꿈 너머 꿈을 갖지 못한 것이다며,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새로운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또 김병종 서울대 교수(미술과)와 안숙성 명창이 초빙돼 석정문학 정신을 기리며 전북 문인들과 예술적 교감을 넓혔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0.28 23:02

소설가 정영신 '빈롱의 물안개' 제3회 전북소설문학상 수상

전북소설가협회(회장 김상휘)는 소설가 정영신씨의 단편소설'빈롱의 물안개'를 제3회 전북소설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작은 나이 차이와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여성결혼이민자들의 어두운 결혼생활을 형상화시킨 작품. 주인공 여성결혼 이민자는 한류바람을 타고 화려하게 포장된 꿈같은 한국생활을 기대하며 한국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나이 많은 남편과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갈등과 고향에 대한 향수 등으로 힘들어 한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베트남에서 첫사랑 남자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첫사랑 남자와 재회하기 위해 한국 남편과 이혼까지 결심하고 가출을 하지만 첫사랑 고향 남자는 이미 베트남에 아내와 어린 딸까지 두고 온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절망하게 된다. 물안개처럼 희뿌연 진정성이 없는 국제결혼은 양 국가와 본인, 그리고 자녀와 가족들, 사회에 많은 부정적인 문제들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하고 그 어려운 다문화가정의 결혼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많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호병탁 심사위원은 "소설 구조가 탄탄하고 법에 있어서도 결점이 보이지 않았다"며 "특히 작가는 독자들이 주인공 준과 심리적으로 밀착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 자연스럽게 인물에 동화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전주 출신의 국문학 박사이기도 한 정영신씨는 한서대 어학교육원 전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시상식은 12월 초 소설전북 제18호 출판 기념식과 함께 열릴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0.25 23:02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신석정 다시보기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석정문학제가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석정문학관 일원에서 열린다. 허소라 석정문학관장이 올 문학제에 맞춰 석정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보았다.금년은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내년 석정작고 40주기를 준비해야 하는 해이기도 하다.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선생께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던 1930년대는 문자 그대로 일제 식민치하의 암흑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문단적 악조건 속에서 석정은 일반 서정시의 근간이 되는 '나', '너'의 평범한 인칭을 통해 '이웃'이나 '민족'의 염원을 지속적으로 포장 반출 해냈던 것이다.널리 애송되어온 시 〈고운 심장〉(1936)에서도 '그래도 서러울 리 없는 너는 / 오 너는 아직도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 밤이 이대로 / 억만년이야 갈리라구' 라며 무한대의 밤과 맞서려했던 것이다. 고로 이 시 에서의 '너'는 어느 일 개인이나 사적(私的) 인칭이 아닌 바로 우리 민족 전체의 포괄적 대칭을 '너'로 암장해놓은 것이다.이 밖에도 시인은 역사의 증언자가 되기 위해선 '산도 강도 바다도/소리 없이 묻히는 어둠을 달라'며 역으로 그 자연을 거부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그동안 석정시를 고평(高評)한 평자로는 초기엔 김기림이여 중후기엔 박두진, 조지훈, 신동욱, 김윤식, 오세영 등이라 할 수 있는바 이중 특히 김윤식교수는 그를 전원시인이라 할 경우는 대체로 시집 〈촛불〉(1939)의 세계를 두고 하는 평가일 것이라면서 그의 시세계가 그다운 개성을 지니고 성숙해 간 것은 시집「슬픈 목가(1947)」세계부터라 하였다. 이어 근대 시문학사의 거목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고고한 세계가 무엇인지 규명해나갔다.(〈시문학〉1978.7)또한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시인은 석정의 '방(房)'(1939.9)이라는 작품을 추거하여 '이는 단순히 현실의식을 반영한 수준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를 대표한 저항시의 하나다 일러도 무리 없을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서정시가 지향하는 바는 일평생 시의 호흡을 자연, 그리고 동 시대의 다중(多衆)과 운명의 부침을 함께 하겠다는 휴머니즘의 구현이라 할 것이다.만일 석정이 노장(老莊)에 묻혀 자연, 목가시나 써왔다면 그가 써온 시 때문에 일제하에서부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을까?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래 몇 사례만 열거해보자-'단식의 노래'(서울일일신문)(1960.10) : 민주당 정권때 국회의사당 앞에서'교원노조' 설립을 주장하며 단식 농성하는 교사들을 격려하 는 시를 발표, 이듬해 516군사혁명 후 전주 경찰서에 수감.-〈한양〉(1964.6)지에, 경기도 운천리 미군부대에 통조림 하나를 훔치러 들어간 소년이 경비병에 의해 잔혹히 사살된 사건을 소재로 쓴 시 '슬픈 서정' 및 '지옥'을 발표, 당시 군사정부에 의해 반체제지로 낙인 찍힌 〈한양〉(일본에서 재일교표가 간행)지에 작품을 게재했던, 김우종(문학평론가) 임현영(현 민족문제연구소장), 이호철(소설가)등이 모두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석정은 당시고혈압으로 병상에 있어 이를 모면되다.-'서울 1969년 5월 어느날'〈월간문학〉(1969.7) 당시 뚜렷한 명분도 없이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호된 고문을 받고 며칠 만에 풀려나 남산을 내려오면서 쓴 시로 '눈물이 피잉 돌았다./ 한빛이 너무도 눈부신 5월 어느 날, 남산을 내려오던 내 시야에는 그 숱한 고층건물도 보이지 않았다'로 시작된 이 작품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속에 시인과 함께 누워있다. 이 밖에도 지난 60년대에 한국군의 월남파병을 소재로 한 시'꿈의 일부'〈동아〉(1967.2)가 있다. 비록 '백마가 울었다'(백마부대를 상징) 등 상징적으로 표현된 작품이긴 하나 한국의 시인중 유일하게 월남파병에 관심을 표명한 시라 할 것이다.이제 석정시에서 '자연과 역사를 아우른 시인'이란 명제에서 어느 한쪽을 지우려 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실수라 할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상 한 점 티 없는 전원 목가시인 한사람쯤 간직하고 싶은 것은 모두의 꿈이다. 그러나 '문자(文字)'가 그것을 허락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허소라 석정문학관장은 1959년 〈자유문학(自由文學)으로 등단. 시집〈목종(木鐘)〉 〈풍장〉 〈아침 시작〉 등과, 수필집 〈흐느끼는 목마(木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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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5 23:02

[3. 망부의 백제오가(百濟五歌) (하)] 정읍사 여필종부 이념 춘향전에서 절정 이뤄

'정읍'은 전주의 속현(屬縣)인 정읍 사람이 행상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달 밝은 밤에 산마루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혹시나 밤길에 도적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한 끝에 진흙탕물에 의탁하여 무사귀환을 노래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세상에 전하기는 행상인의 아내가 고갯마루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고려사' 악지조에 기록되어 전해온다. 조선 성종조에 성현 등이 왕명에 의해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의 악가집을 편찬하면서 정읍사가 백제의 노래이지만, '악학궤범'에 실은 까닭은 이 노래만큼 조선의 건국이념에 부합된 노래가 없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패망한 나라엔 역사나 문화, 예술 등 그 어느 것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백제문화는 중국이 찬탄할 만큼 삼국 가운데 가장 찬란하였고, 그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다는 사실은 문화사가들에 의해 밝혀진 지 이미 오래다. 부위부강(夫爲婦綱),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면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유교이념이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된 노래가 정읍사에 견줄만한 게 없다. '고려사'의 기록이 그대로 믿기지 않을지라도 전주나 정읍이라는 구체적 지명으로보거나, 정읍사 전반에 흐르는 백제여인의 고운 정절을 보더라도 이 노래가 백제의 노래임을 부정할 길이 없다. 달을 매개로 하여 외간 남정네와 질탕(跌宕)하게 놀아난 처용아내의 부정(不貞)을 테마로 한 신라 '처용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를 찬(撰)한 일연(一然)은 불도를 닦는 승려답게 처용가의 배경설화에서 병을 일으키는 역신(疫神)이 처용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사람으로 둔갑하여 범한 것이라고 짐짓 처용의 아내를 불륜으로 내몰지 않고 윤리적 해석을 해놓았다.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정읍여인의 망부가인 '정읍사'도 정치적인 와류(渦流)에 휩쓸리며 음사(淫詞)로 내몰리면서 국가의례에서 제외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중종실록' 권 32에 남곤(南袞)은 정읍사를 남녀간 음사(淫詞)로 단정하고 이 노래 대신 고려 때부터 궁중의례에 사용되었던 '오관산(五冠山)'을 불러야 한다는 상소를 했는데, 이러한 시원적 기록에 따라 이 노래를 남녀간의 육정(肉情)적인 노래로 간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양주동, 지헌영, 이상섭, 박병채 등 국문학자들은 별다른 아무런 근거도 없이 '즌데'를 여성의 은밀한 부분으로 해석하여 - 밤길에 도적에게 범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흙탕물의 더러움에 의탁했다는 고려사 악지의 기록을 무시하고 - 정읍사를 음탕한 노래로 규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느이다 노코시라'는 사랑하는 임이 밤길을 서둘러 오다가 도적에게 위해(危害)를 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아무 곳이나 짐을 벗어놓고 쉬고 오시라'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지순(至純)한 사랑을 간파하지 못하고, 짐짓 '다른 어떤 여성에게 정을 주고 있는가'로 간주하여 정읍사가 의부증(疑夫症)적인 치정성(痴情性)을 벗어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작품으로 비하해 버리기도 했다.백제오가 가운데 유일하게 '무등산'만이 여타 다른 노래와 그 주제나 정조(情調)를 달리하고 있다. 무등산 조엔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며,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큰 고을이라 했다. 무등산에 성을 쌓았는데 백성들은 그 덕에 편안하게 살 수 있으므로 이를 즐거워하여 노래하였다고 하였으니, 무등산가만이 일종의 태평가적 성격을 띤 노래였음을 짐작케 한다. 이 외에도 이 고장에는 이러한 여성의 아름다운 정조가 서려있는 설화나 소설, 또는 역사적인 사실들도 많다. 삼국사기 열전에 전해져오는 음탕한 개로왕과 열녀인 도미의 아내에 얽혀져 있는 슬픈 이야기나,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국의 비운을 맞게 된 백제 의자왕 때 적군에게 몸을 더럽히느니보다 차라리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져 여인의 정절을 지키고 산화(散華)한 3000 궁녀들의 애닯은 이야기 등이 그렇다. 도미설화는 지리산가, 정읍사, 선운산가, 방등산가와 더불어 여인들의 정절을 주제로 한 열녀소설 춘향전의 원형이 된 노래요, 설화라 할 수 있다. '고려사'에 한 조각 이야기나 노래로 남겨진 이들 백제오가와 '삼국사기'에 담겨진 도미설화는 고대소설 '춘향전'과 여성의 아름다운 정절이라는 주제로 맥을 같이 한 고전문학이다. 춘향은 전라도 여인들의 정절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한국여성의 정절의 상징이 되어 세계여성문화사를 장식하고 있다. 백제 여인들의 치열한 정절의 관념은 도미설화나 지리산가와 더불어 백제오가를 거쳐 '춘향전'에서 그 절정을 이루어서 더욱 영롱하게 형상화된 셈이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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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4 23:02

부안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 문학제 개최

부안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석정문학제가 석정문학회(회장 소재호) 주관으로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석정문학관 일원에서 개최된다. 이번 문학제는 첫날 오전 다문화가족 주부를 대상으로 산문분야 백일장을 개최하며, 오후 2시부터는 대학일반부 운문분야 백일장을 진행한다. 둘째 날인 26일에는 오전 10시 30분 개회식을 시작으로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의 '지조시인 신석정'이라는 주제로 석정 시문학 특강이 열린다. 오후에는 청구원에서부터 석정묘소, 새만금전시관 석정시비, 부안댐 시비동산, 채석강을 기행하며 석정시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답사하는 문학기행이 진행된다.또한, 석정문학회는 석정문학제와 연계하여 오는 27일 오후 2시 전주 완산구청 8층 강당에서 '기호에서 상징까지'라는 주제로 국악인 안숙선, 동양화가 강병종, '고도원의 아침 편지'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과 석정문학제 심포지엄을 진행한다. 석정문학관은 현대 시문학의 거장 신석정의 생애와 문학정신을 전승.보존하기 위하여 2011년 10월 29일 개관했으며, 전시관과 기획전시실에서 석정이 남긴 시와 문예지, 유품들을 상시 관람할 수 있고 각종 세미나와 문학교실 등을 운영해오고 있다.

  • 문학·출판
  • 양병대
  • 2013.10.23 23:02

"동방의 서정 한국 詩 러시아에 통할 것"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막심 고리키, 고골리, 투르게네프, 푸시킨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 대문호들이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이 러시아에는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후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 시인의 작품은 고작 4~5명 정도다. 고은정지용김남조 시인 등의 시집이 러시아어로 번역돼 출간됐을 뿐이다. 중등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전주에서 활동하는 이종희 시인(74)의 시가 러시아어로 번역돼 시집으로 발간됐다.'새해를 맞으러 뿌쉬낀으로 간다'(모아드림). 이 시인의 5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거둔 결실이다. 이 시집은 한러 대역((對譯, 원문의 단어, 구절, 문장과 맞대어서 번역함) 시집으로 발간돼 러시아에 한국문학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러시아에 사는 우리 교포(고려인)들에게 우리 글로 된 시를 함께 접할 수 있는 시집으로서도 의미를 더한다.이 시인의 시가 러시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년퇴임 후 러시아에'교육 선교'로 나서면서다. 시인은 쌍뜨 빼쩨르부르그의 근교에 있는 뿌쉬낀에서 러시아 교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혼을 심는 봉사활동을 한 게 그 계기가 됐다.당시 러시아에서 만난 통번역 프리랜서인 김환씨가 1차 번역 작업을 했고, 러시아 시인이자 언론인인 블라지미르 쎄멘체크씨가 2차 작업을 맡았다. 이 시인은 특히 블라지미르를'귀인'이라고 했다. 당초 2차 번역자로 나섰던 인사와 문제가 생겼을 때 만난 블라지미르가 그의 시에 감동을 받아 선뜻 맡아줬기 때문이다. 실제 블라지미르는 "작품을 번역하는 동안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게 해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그러나 친근하고 이해가 가는, 놀랍고 새로운 것들로 충만한 열정과 철학적 사색으로 덮여 있는 세상을 지켜보게 했다"는 심정을 시집 서평에 담았다. 그는 또 "진정한 시는 꽃과도 같은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설명이나 묘사로 대신할 수 없으며 꽃이 지니고 있는 조화로운 비율 또한 측정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를 번역하면서 그 감흥은 이국의 식물이나 씨앗을 얻게 된 사람의 느낌에 비할 수 있다"는 감회도 비쳤다.가족을 소재로 한 시들이 친근하게 와 닿았으며, 광범위한 테마에 놀랐고, 조국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도 흥미로와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리라는 게 역자의 평이다. 서정과 서사에 담긴 동방 특유의 비유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선율, 신뢰를 주는 억양, 깊은 신앙을 가진 예지가 사로잡는다고 덧붙였다. 이 시인은 흔쾌히 나서준'귀인'이 고마워서 그를 전주의 집으로 초대해 10여 일간 한국에서 함께 보냈으며, 한국의 장묘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를 보며 쓴'묘비명'이라는 시를 시집에 담기도 했다.시인의 시는 이번 시집이 발간되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 소재한 문예지 〈루베쥐〉에 21편의 작품이 평과 함께 집중 소개됐으며, 크라스노스야르스크 지역에서 발간되는 문예지 〈젠 이 노치〉에서도 7편의 작품이 실리며 러시아에 존재감을 알렸다.그의 시가 이렇게 한러 대역 시집으로 나오기까지 5년여에 걸쳐 250여개의 이메일과 70여 통의 국제전화가 오갔다고 한다.시집은 1부 거기서 살고 싶다, 2부 살만 한 세상, 3부 하늘 길을 간다, 4부 기도시로 나눠 120여 편의 시가 수록됐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시는 여기에 주(註)를 달아 러시아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했다. 총 800페이지에 이른다.이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와 관련, 문효치 시인과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한양대)가 해설을 넣었으며, 제자이기도 한 이동희 시인이 발문을 맡았다. 문효치 시인(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은"휴머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기독교 정신이 혼합된 시인의 시집이다"며,"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정서적 감성과 이성을 조화롭게 조율하여 삶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그리하여 시작과 마지막의 울림이 있는 시인의 삶의 기록이다"고 평했다.시집은 1차 1500부가 발행됐으며, 내년 인천 소재 한국이민사박물관 등 러시아 관련 단체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 시인은 "필생의 프로젝트로 삼아 한러 대역 시집을 낼 수 있게 됐다"며, "러시아 교포들이 우리 문학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0.23 23:02

8번째 혼불학술상 수상자 6년만에 탄생

혼불학술상이 6년만에 수상자를 냈다. 최명희문학관은 김희진 씨(41)의 2013년 고려대 박사학위논문인 '최명희 '혼불'의 민속 모티프 연구'를 여덟 번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김 씨는 이 논문에서 관혼상제설화신앙은 물론이고 역사적 사건 등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다양한 민속 모티프를 '여담(餘談)'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도입해 작가의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분석했다. '혼불'에 삽입된 다양한 곁가지 이야기들을 여담이라고 규정하고, 작품의 서사담론 측면에서의 역할과 작품 전체 서사와의 연관성을 살폈다. 그는 "수상소식을 듣고 전주시 덕진동 최명희 선생의 묘부터 찾았다"면서 "혼불학술상은 인생의 제2막을 알리는 서곡인 만큼 겸허한 자세로 문학을 더 깊이 있게 보고 문학 연구에 정진해 부끄럽지 않은 연구자가 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심사위원회는 김 씨의 논문에 대해 "한 작품에 대한 집중적이고 미시적인 연구며, 방법론적 토대를 충실히 마련하고 그 위에 작품 분석의 결실을 잘 쌓아 올렸다"며 "특히 기존 연구에서 추상적 차원에 머물던 쟁점을 구체적인 논증으로 논파해 '혼불' 연구의 전망을 밝게 한 점이 혼불학술상의 여덟 번째 맥을 잇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심사는 윤석달(항공대)장성수(전북대)장일구 교수(전남대)소설가 김병용씨(전북대 초빙교수)가 맡았다. 수상자 김희진 씨는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뒤, 고려대 대학원(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박사후연구원(post doctor)으로 활동하며, 고려대공주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혼불학술상은 혼불기념사업회(대표 장성수)가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삶과 소설 '혼불'을 비롯한 그의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과 평론 등을 대상으로 지난 2001년부터 제정했다. 이전까지 장일구이덕화박현선서정섭김병용김복순고은미 등 7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4시 전주 한옥마을 내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300만 원이 수여되며, 시상식에 앞서 수상 기념 강연이 열린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3.10.21 23:02

고창 출신 경찰관 김상경 첫 시집

'놈의 눈은/올빼미의 사촌이다./누런 눈을 어둠속에서 반짝이다/먹이를 채는 그놈은/세상의 천진 무지개를 /어린 누 목을 물고서/전화를 하는 것이다/"내가 보호하고 있소. 경찰 개XX들에게 연락하면 알지?"/(중략)/누 새끼처럼 돌아왔다/ 손가락 총을 겨눈다 /사복들은 쇠주를 까고 /제복들은 열중쉬어 차렷/저 어머니- /오늘 내일 밤 /어떻게 눈 붙이나'('유괴')유괴로 무너져 내리고 짓밟힌 한 가족의 이야기와 경찰관들의 아픔과 자괴감을 담아낸 시다. 2000년대 초 〈문예사조〉로 등단한 고창 출신의 김상경 시인(양천경찰서 경감)이 첫 시집 〈고용한 것이 수상하다〉를 냈다(시문학). 경찰 직업이라는 특수성을 바탕으로 도회의 어둡고 밝은 풍경, 고향의 서정, 유년의 추억을 시재로 삼고 즉시 쪽지, 신문지 여백에 풀어낸 시들을 묶었다. 젊은 시절 그의 시정을 길러준 고향에서의 삶을 반추하는 작품군, 민중의 지팡이로서 도시적 현실 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군, 사변적 실존의식을 노래한 작품군으루 구성됐다.전주상고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신석정 선생에게 시혼을 배웠다는 그는 2011년 양천 문학상과 2012년 원주 전국 문인 대표자 대회 즉흥시 장원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0.18 23:02

김영춘 교사, 20년만에 두 번째 시집 〈나비의 사상〉

교사 시인인 김영춘 시인(56)이 첫 시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후 20년만에 두 번째 시집 〈나비의 사상〉을 냈다(작은숲). 1988년 실천문학 복간호에 '눈내리는 일'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시와 교육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바꾸고 싶은 소망을 갖고 산다"고 말한다.'계곡을 오르내리는 버들치처럼 / 꽝꽝한 제 몸 뚫고 얼굴 내민 / 물푸레나무의 정다운 새잎처럼 / 우리들의 시절 / 그만 못해도 / 너희들만 훨씬 못해도 / 아직 살아 있었구나 / 내 거친 숨소리 내가 듣는다'('산을 오르다'전문)문학평론가 정양 우석대 명예교수는 "안도현의 말처럼 김영춘은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그의 삶 자체가 시처럼 간결하고 깔끔하다"고 시집 발문에 적고 있다. 90년대 포장마차 시절의 연상되는 시가 많으며, 80년대적 열정과 그 순결한 정신을 확인하는 시들을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시인은 "사는 일이 내 시의 깊숙한 곳에서 늘 새롭게 태어나길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며, "묵은 서랍장에서 90년대 중반 이후의 시들을 꺼내어 바람 부는 세상 속으로 내보낸다"고 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후 복직했으며, 현재 전주 솔내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0.18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