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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정초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한 해의 복과 평안을 비는 제의(祭儀)가 열린다.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서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 펼쳐지는 띠뱃놀이도 그중 하나다.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 마을굿으로,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전통행사로 내려왔다.위도는 예전 칠산바다의 황금어장을 낀 풍요한 섬이었다.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조기 파시로 명성을 날렸던 곳이다. 그래서 풍어를 비는 띠뱃놀이가 전승되지 않았나 싶다.이 놀이는 1978년 춘천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1985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82-다호로 지정되었다.위도 띠뱃놀이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없으나 160-170년 전부터 행해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차는 준비과정과 띠뱃놀이 진행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핵심은 원당제, 주산돌기, 용왕제와 띠배 띄워보내기라 할 수 있다.원당제는 제삿날 아침 일찍 화주(제주)를 앞세워 무녀 화장 풍물패 뱃기 등이 줄 지어 원당(願堂)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마을 뒷산 꼭대기에 있는 원당에는 마을을 보살피는 7신의 화상이 모셔져 있다. 화주가 축문을 읽고 성주굿 산신굿등 7석이 펼쳐진다. 한 석이 끝날때 마다 음복을 하는데 이 때 무당이 선주들에게 쌀을 집어 주어 짝수가 나오면 그해 무병하고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주산돌기는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나무를 감기 위해 서려놓은 암수의 굵은 동아줄을 어깨에 매고 두편으로 갈라'에용소리'에 맞춰 반타원형으로 도는 것이다. 일종의 지신밟기 성격이다.그런 후 바닷가로 나와 용왕제를 지내고 띠배를 모선(母船)에 연결해 바다로 나간다. 띠배는 길이 3m, 폭 2m 정도의 띠풀(또는 억새풀)과 짚으로 만든 배다. 여기에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오색기와 소원문, 그리고 재액을 상징하는 허수아비 등을 만들어 태운다. 칠산바다로 나간 모선은 띠배를 끊어 바다에 수장하면서 이 행사는 끝난다.이 놀이는 제의적 긴장성과 놀이적 이완성이 잘 통합된 연행으로 꼽힌다. 마을 무녀가 1998년 사망한후 육지에서 무녀를 데려와 굿을 하면서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또 박제화된 지역축제 성격이 되어 버려 아쉬움을 남긴다.
진안군이 조선시대 기축옥사(己丑獄事)의 중심 인물이었던 정여립 선생의 유적을 발굴 보존하기위해 그가 최후에 항거했던 천반산성에 대한 학술용역을 실시한바 있다.1589년 선조 22년에 있었던 기축옥사는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없는 역사 미스터리이다. 기축옥사 일어난지 40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몇가지로 나누어져 있다.그하나는 기축옥사를 날조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정여립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하는 입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혁명을 모의하다가 실패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축옥사의 내용은 한국사 대사전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정여립은 조선 선조 때 모반자(謀叛者)로 자는 인백(仁白)이고 전주 출신이다. 1570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좌랑을 거쳐 수찬(修撰)으로 사직 했다. 본래 서인(西人)이었으나 집권중인 동인(東人)에 아부하여 임금으로부터 미움을 받았기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후 많은 선비들과 접촉하면서 정권을 잡을 야심으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신분의 제한없이 선비 불평객들을 모아 무술훈련을 시켰다. 정감록(鄭鑑錄)등 비기(秘記)를 퍼트리면서 이씨(李氏)가 망하고 정씨(鄭氏)가 흥한다고 민심을 선동하였다. 그러나 소문이 차차 퍼지자 거사를 앞당겨 1589년 선조22년에 겨울철 한강의 결빙기를 이용하여 황해도와 호남에서 동시에 궐기하여 서울에 침입하여 병조판서를 살해한 후 병권을 잡을 것을 모의했다. 이때 안악(安岳)군수 이축(李軸)이 이 사실을 듣고 보고하여 관련자들이 잡히자 정여립은 진안 죽도에 피신하다가 관군(官軍)이 포위하자 자살하였다."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재조명을 주장한 사람은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이었다. 그는 "사색당쟁 이후의 역사는 피차의 기록이 서로 모순되어 그 시비를 분별할 수 없어 역사의 가장 어려움이 된다."라고 했다 한다.기축옥사는 지금도 전라도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여립의 마지막 항거지인 천반산성 유적지에 대한 관광지 개발은 물론 역사적 진실 규명에 대한 좀더 활발한 학술 연구가 있어야 겠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국회의원 할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고 했다.말이 논두렁 정기지 묘자리라도 잘 써야 된다는 뜻이 아닐까.국회의원은 권한은 많고 책임이 덜해 매력 있는 자리다.누구는 평생 표밭을 갉고 닦아도 한번도 못하는데 판에 다선 의원도 많다.인간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지만 국회의원은 예나 지금이나 선망임에는 틀림없다.요즘 국회의원은 동냥벼슬이 돼버렸다.표를 구걸해서 국회의원이 되기 때문이다.정책과 공약 대결을 통한 선거는 오간데 없고 지연 혈연 학연등 연고를 총 동원시킨 가운데 흑색선전이나 비방선거로 끝나기 때문이다.여기에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가 판쳐 너무 지역 정서에 의존하다 보니까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혈안이 돼버린 것 아닌가.정치인 만큼 역설적으로 지역감정을 즐기는 사람도 없다.말로는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은근히 즐긴다.국회의장을 지냈던 이효상씨가 지역주의를 조장했던 원조 정치인이다.공화당 박정희후보와 신민당 김대중후보와의 대통령 선거전을 단순화시키면서 승리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조장했다.지금도 지역주의는 여전할 뿐이다.경상도에서는 민주당이 발못 붙이고 전라도에서는 한나라당이 맥 못추는 것이 바로 지역주의의 병폐다.4.29 재선거를 앞두고 전주는 입지자들로 난리법석이다.유권자들은 별반 관심도 없는데 벌써부터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먹고 살기가 워낙 어려워져 관심도 없다.설 민심도 싸늘했다.그 밥에 그 반찬 아니냐며 정치적인 불신만 팽배하다.흘러간 물로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것처럼 한물간 사람들까지 선거판에 끼어 들었다.참으로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들이다.다 사람은 때가 있는 법이다.잘 나갈 때 고향 한번 안찾던 사람이 이제와서 고향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면 우문현답일 뿐이다.이번 판 부터는 굽은 소나무 고향 지킨다는 말처럼 그간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며 꿈을 키워온 사람이 돼야 맞다.이것이 시대 흐름에 따른 상식과 순리다.전북일보가 설을 앞두고 전주 완산갑과 덕진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40%가 참신하고 개혁적인 사람을 뽑겠다고 응답했다.전주 자존심 회복은 결국 유권자 손에 달려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는 허구인가. 1400년 동안 이어져 온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러브 스토리는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가. 지난 19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는 이같은 숙제에 의문을 하나 더 보탰다.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데 대해 아쉬움을 남겨 준 것이다.우선 당장 서동관련 축제를 개최하는 자치단체에 여파가 미치고 있다. 해마다 서동축제를 여는 익산시와 부여군이 당사자다. 익산시의 경우 경주시와의 교류도 재검토해야 할 입장이다.사람들은 흔히 사실(fact)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발효과정을 거쳐 숙성된 설화 또한 무시해선 안된다.이번에 발견된 사리봉안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나 백제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我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 부분이다. 종래 미륵사의 축조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부인이자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의 청원에 의한 것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이번에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최고의 관직인 좌평의 딸로 밝혀진 것이다.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후대에 지어낸 설화로 보는 시각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그동안 이같은 주장은 끊이지 않았다. 18세기 실학자 안정복은'동사강목'에서 "(서동설화에)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 많고, 본사(本史)에도 나오지 않으므로 취하지 않는다"고 가치를 폄하했다. 또 사학자 이병도는 197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서동은 무왕이 아니라 백제 24대 왕인 동성왕(東城王)이고, 그의 왕비는 선화공주가 아닌 신라 왕족 비지(比智)의 딸일 것"으로 추정했다.그러나 서동설화의 근거가 된 삼국유사의 기록은 역사와 설화가 혼재되어 있다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단군신화나 평강공주의 얘기 또한 마찬가지다.서동설화와 관련해 미륵사의 위치, 조성 터의 모습, 구조 등이 일치하는 것은 역사다. 반면 무왕이 용의 아들이라든지, 지명법사가 신통력으로 하룻 밤 사이 못을 메웠다는 등은 설화다. 앞으로 더 많은 해석과 반론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서동설화에서 우리는 전쟁에 지친 서민들의 희망, 백제(호남)와 신라(영남)의 화합이라는 코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1400년 전의 금제 사리기와 사리 봉안기등 많은 유물들은 일반인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사리 봉안기'는 우리 역사속의 흥미있는 로맨스라 할 백제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허구로 만들 가능성까지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번일로 미륵사지는 어쨌든 다시 주목받게 되었는데 미륵사는 익산시 미륵산 아래 있는 백제 시대때 창건된 우리나라 최고 사찰이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미륵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하루는 백제 무왕이 부인 (선화공주)과 함께 사자사로 가려고 용화산 밑 큰 못까지 왔는데 미륵불 셋이 못 속에서 나타나자 왕은 수레를 멈추고 치성을 드렸다. 이에 부인이 왕에게 여기다가 큰 절을 짓게 하소서 .저의 진정 소원이외다'고 하였다.왕이 이를 승낙하고 지명법사를 찾아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었더니 법사가 귀신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미륵불상 셋을 모실 전각과 탑, 행랑채를 각각 세 곳에 짓고 미륵사라는 현판을 붙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백제 최대 사찰인 미륵사 창건 설화에는 백제 국력을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마한 중심세력인 이곳 금마에 터를 잡았을 것 이라는 견해도 있다.미륵사는 어느때 폐찰이 되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조선 정조때의 강후진(
달도 차면 기운다.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여름이 가면 겨울이 온다.밤이 지나면 낮이 온다.행복이 극에 달하면 불행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뒤따른다.자연이 그럴진대 사람의 일이 이를 거스를 수 있으랴.사람의 일이 바로 인사(人事)다.너무 기쁘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슬프다고 주저 앉을 일도 못 된다.로마 제국 시절 개선장군이 군중들 사이에서 환호 받는 순간 한 노예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외치는 풍습이 있었다.메멘토 모리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와 행진하는 개선장군 뒤에 노예 한명을 세워 로마 시내를 퍼레이드 하는 동안 뒤에서"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이들 개선장군들은 승리에 들떠 쿠데타를 모의하기도 했기 때문에 승리한 장군이 군대를 끌고 입성하면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있었다.그런 상황에서"너무 우쭐거리지 말고 겸손하라,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노예를 시켜서 개선장군에게 메멘토 모리를 복창케 만든 것.윤흥길의 소설'완장'에 나오는 종술이는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이다.쥐뿔만한 권세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기 힘들다.종술에게 주어진 것은 사실 권세도 아니다.부도 권력도 아니다.단지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새겨진 감시원 완장 뿐이다.그러나 종술은 완장을 차면 돌변한다.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완장으로 인한 해프닝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도덕경에는'갑자기 부는 바람은 한나절을 지탱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폭우는 하루를 계속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주역의 핵심은'음중양 양중음'(陰中陽 陽中陰)으로 세상일이 음양의 이치에 따라 순환한다는 뜻이다.조분기소(鳥焚其巢 새가 그 둥지를 태운다)처럼 사람들이 새집을 태워버릴 수 있다.사람 역시 높은 벼슬에 있어 거만하게 굴면 다른 사람의 시기를 받아 해를 입기가 쉽다.예나 지금이나 주역 64괘 중 15번째인 겸(謙)괘만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지산겸(地山謙)이라하며 땅 밑에 산이 있음을 상징한다.땅속에 산이 들어간 모습으로 마음속으로 잘난척하는 마음이나 남보다 재주 등을 다 감춰버린 형상이다.기축년에는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며 겸허(謙虛)를 삶의 지혜로 삼으면 어떨까.
대통령의 취임식은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임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는 상징적인 자리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되고 역사에 길이 기록된다.대통령 취임식의 하이라이트는 취임사다. 특히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과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중요성을 반영하듯 명(名)연설이 많았다. 세계 각국의 영어 교재에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사에서 발췌한 주옥같은 구절들이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2005년 역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를 분석한 결과 역사적 전환점에 명취임사가 나온다고 했다. 1801년 토마스 제퍼슨의 연설을 효시로 꼽았다. 당시 미국이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로 분열됐던 상황에서 제퍼슨은 취임사에서"우리모두는 공화주의자이고 연방주의자"라고 선언, 분열을 치유했다.남북전쟁의 전세가 북부의 승리로 완전히 기울었던 1865년 링컨은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연설에서"그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심을 갖자"고 호소했다. 두 편으로 갈라싸운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던진 화합의 메시지였다. 사상 초유 대공황이 절정에 달했던 1933년 취임한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다.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경제부흥의 희망과 의욕을 고취시켰다.동서냉전 구도속에서 핵전쟁 위기가 확산되던 1961년 취임한 케네디는 "국가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대통령 취임사의 표본으로 여기는 명연설이다.흑인 출신으로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내일 새벽(한국시간)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다. 뛰어난 연설가로 정평이 난 오바마는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이나 취임사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국민들은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오바마 역시 국가 위기때 명연설의 주인공인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등 3명의 연설에서 영감을 얻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세계인들까지 감동시켜 인구에 회자(膾炙)될 수 있는 오바마의 역사적인 취임사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사망한 사람이 무려 1100명이라고 한다. 사망자 가운데 18세 이하 소년이 292명 여성이 75명이다. 부상자만도 4250명 이다. 종교 전쟁이다. 이스라엘의 너무 지나친 도발행위는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우리 속담에 시어미 밑에서 구박받은 며느리가 나중에 더 사나운 시어미가 된다는 말을 생각게 한다. 이스라엘인은 과거 폴란드 홀로코스트 사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독일 나치에 의한 700만 유태인 학살사건은 유태인을 동정케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해자로부터 이스라엘은 가해자로 바꾸어 졌다.이스라엘의 종교인 유태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팔레스타인들은 '알라'라는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이다. 이들 종교간은 다소 복합적이다. 이슬람교 에서는 유태교와 기독교를 원수로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호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유태교나 기독교 신자를 가르켜 '그 책의 사람들'이라고 불러 연관성을 부여한다.예를 든다면 이슬람교 여자들에게는 비(`) 이슬람교 남자와는 결혼을 못하게 하면서 이슬람 남자들은 유태교나 기독교 여자들과 결혼도 할 수 있다. 유태교에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만 선지자로 인정한 반면,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는 자신을 선지자로 인정하면서 유태교가 이단으로 인정한 예수를 마호메트는 자기 다음으로 훌륭한 선지자로 인정했다.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선지자들과 경전은 상당한 공통점을 안고 있다.여려 선지자들 가운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는 세 종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아브라함을 이슬람에서는 자기 조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성지(q?에 대한 개념도 비슷하여 예루살렘과 시나이산(?을 이슬람교 유테교 그리고 기독교가 자기 고유의 성지로 믿고 있다.이런 복합적인 구조는 예루살렘에 있는 황금 둥근 지붕을 한 '바위의 성전(q?'에서도 나타난다. 이건물의 초석은 기독교 건축양식이요 기둥은 유태교 양식이며 지붕은 이슬람교 양식의 복합 건축물이다. 종교 평화가 세계 평화의 선결 조건이라고 본다.
사람이 화를 낼때 내뱉는 숨을 봉지에 담아서 그 안에 모기를 넣어두면 모기는 몇분 안에 죽어 버린다고 한다. 반대로 싱글벙글 웃을 때 나오는 숨에서는 훨씬 오래 산다고 한다. 그 만큼 웃음(유머)이 명약(名藥)이라는 말이다.프랑스 작가 F.라블레는 "웃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요, 웃음을 아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작가는 "웃음이란 몸 전체가 즐거워지는 감동", "인간의 웃음은 하느님의 만족하심"이라고 했다.그러면 위대한 철학자들은 웃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신상훈 교수(서울종합예술학교)는 4가지로 나눈다. 첫째 웃는 것은'우월감'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으로 코메디 프로에서 영구·맹구 등 바보 캐릭터가 사람을 웃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프로이드의'해소론'이다. 억압된 자아가 긴장을 해소하고 싶어서 웃는다는 것이다. 유머도 꿈처럼 사회적인 규범에 갇힌 사람들의 긴장감을 풀어줘 위안을 준다고 한다. 세째 칸트의'부조화론'이다. 머릿속 개념과 실제 사이의 부조화가 웃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커다란 신발과 우수꽝스런 걸음걸이가 예다. 네째 베르그송의'사회론'이다. 예컨대 사장의 실수에 웃음이 나오는 것은 순간적으로 현실적응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이탈현상이 있을 때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다.이러한 웃음은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법과 뗄수 없는 관계다. 구조가 같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가 이그(IG)노벨상이다. 미국 하버드대 과학유머 잡지인 엽기연구연보(AIR)가 기발한 상상력과 이색적인 발명으로 세상을 즐겁게 한 과학자들에게 주는 상이다. 1991년 노벨상 풍자를 위해 제정했고 이그나시우스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웠다.그동안 인간과 개 사이의 통역장치,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가 왜 끔찍한지, 쉴새없이 나무를 쪼아대는 딱다구리가 왜 두통을 앓지 않는지 등 기발한 연구들이 상을 탔다. 한국인은 1999년 향기나는 신사복을 발명한 권혁호씨가 환경보호부문, 2000년 수천만쌍의 합동결혼식을 주선한 통일교 문선명씨가 경제학상을 수상했다.경제위기 등으로 세상살이가 팍팍한 요즘이다. 이런 때일수록 웃음 한 방으로 시름을 날려보내는 것은 어떨까. 웃음 속에는 다이나마이트보다 위력적인 에너지가 숨어있다지 않은가.
조사에 의하면 우리 대학생들이 외국인 대학생들에 비해 외국인에게 심한 편견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국내 외국인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은 다문화 사회인 우리 현실에서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백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임에 반해 흑인 또는 동남아 저개발국에 대해서는 멸시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편견은 기성세대의 영향도 있다. 백인은 잘사는 문화인으로 흑인이나 동남아 저개발 국가인은 못사는 미개인으로 쳐다보는 이상한 선입관인 것이다.이런 선입관이 만들어낸 불행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십여 년 전에 한국 이민자들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LA에 흑인 폭동이 있었다.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한국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마켓을 방화 주 대상으로 삼었다. 왜 그들은 한국 이민자들에게 원한을 가졌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한국에서 이민온 한국인들이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흑인지역에서 생필품을 파는 마켓 운영을 많이 했는데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 낭비벽이 많은 때문인지 마켓의 단골손님이 되어 물건을 많이 사주었다. 이렇듯 흑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부자가 된 한국 이민자들은 주택은 반드시 백인들이 거주하는 백인촌에 사놓고 흑인지역의 자기 마켓에 출퇴근하였다. 그러면서 일년에 한번 있는 크리스마스날에 흑인지역을 위한 자선에 단 1달러를 기부하는데도 인색했다. 흑인에 대한 멸시감을 그대로 갖고 태평양을 넘은 것이다.흑인 폭동의 원인은 미국 경찰에 있었지만 폭동 때 방화대상은 한국 마켓이었다.흑인을 멸시한다고 백인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유태인은 자기들 피가 1%만 섞여도 유태인으로 간주한다. 다만 그들은 러시아계 유태인, 폴란드계 유태인, 이탈리아계 유태인이라는 식의 표현은 쓰지만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보는 것이다.앞으로 우리사회에도 갈수록 코시안들이 많아질 것이다. 코시안들도 한국피가 섞인 한국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대학생들처럼 외국인에 대한 편견으로 코시안을 대한다면 이들 코시안들은 우리사회의 불만집단이요 반발 세력이 될것이다. 내부의 (n)을 키우는 꼴이다. 포용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연초에도 술을 많이 마신다.술에 따라 마시는 잔도 각양각색이다.막걸리잔 소주잔 정종잔 맥주잔 위스키잔 와인잔등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그 가운데서도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술잔이다.글자 그대로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게 고안됐다.이 술잔에는 대기압과 용기 내의 압력차를 이용하여 수면보다 높은 곳에 물을 올리는 사이펀 원리가 숨어 있다.사이펀이란 용기를 기울이지 않고 속의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옮기는데 사용하는 관을 일컫는 용어로서 그 작용 원리를 사이펀 원리라고 한다.이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게 계영배를 만들 수 있다.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들이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전한다.그는 스승도 못 만든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으나 그후 유명세에 들떠서 방탕하게 생활하다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한다.그후 그가 만든 계영배를 조선 후기 의주출신으로 인삼무역권을 독점해서 큰 돈을 번 거상 임상옥이 항상 간직한채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렸다고 한다.작가 최인호는 소설에서 임상옥의 상도였던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즉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고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뜻을 전했다.물과 같은 재물을 혼자 가지려는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로 비극을 맞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그 재물로 파멸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요즘 우리 사회에도 과욕으로 넘치는 경우가 많다.가졌다고 넘치고,안다고 넘치고,잘났다고 다들 넘친다.부질 없는 짓이다.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 넘치는 것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채움(盈)을 경계했던 노자도 지이영지 불여기이(持而盈之 不如其已)라고 했다.지니고 채우기만 하면 그만 둠만 못하다는 말이다.계영배를 통해 각자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여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자족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지난주 청와대는 자전거를 녹색뉴딜 사업의 활성화 프로젝트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구상중 관심을 끄는게 4대강 살리기사업과 연계해 4대강을 잇는 1297㎞의 자전거길을 우선 2012년 까지 만들고, 이와 별도로 동해―서해―남해를 잇고 전국을 연결하는 총 연장 3114㎞의 전국 자전거도로 네트워크를 2018년 까지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자전거도로에 프랑스 전역을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본뜬 '투르 드 코리아(Tour De Korea)'를 유치해 세계적인 대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투르 드 프랑스'는 1903년 시작돼 현재 세계 최고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이클대회다. 대회가 열리는 7월 한달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월드컵 축구대회 못잖은 인기를 끌고 있다. 보통 21일에서 23일간에 걸쳐 열리는 장기 레이스로 골인지점만 파리 상젤리제거리로 정해져 있을 뿐 출발지와 코스는 매년 약간씩 변하며, 3200∼3900여㎞ 거리를 구간별로 나눠 매일 한 구간씩 달린다. 해발 고도 2000m가 넘는 여러 곳의 산악구간을 포함해 험난한 코스가 많기로 유명해 일명'지옥의 레이스'로도 불린다.이 대회에서 1999년 부터 2005년 까지 고환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고환 한쪽을 떼어내고 뇌조직 일부를 도려낸 미국의 암스트롱이 7년 연속 우승하면서 위대한'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적 한계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에 전 세계인이 감동했다.현재 세계적인 도로사이클 대회는'투르 드 프랑스'외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일주대회등 여러 국가에서 열리고 있다. 2007년과 지난해 국내 기존 도로를 이용해 전국 일주로 열린'투르 드 코리아'는 일반 국민들의 도로사이클에 대한 무관심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국내 도로사이클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고, 일부 정상급 선수들 마저 생계를 이유로 경륜에 진출해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사이클 동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만으로 세계적 대회로 발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훌륭한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세계 메이저 대회로 육성시키겠다는 구상도 좋지만 선수 저변 확대및 도로사이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T V 드라마들의 대부분의 고정 메뉴는 불륜, 신데렐라 스토리, 백혈병에 걸린 시한부인생, 고부간의 갈등 등이다. T V 드라마는 온가족이 동시에 시청할수 도 있기에 내용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을수 있다. 또 평범한 생활주변들을 드라마화 한다면 흥미를 자아낼수도 없을 것이다.그러다 보니 T V 드라마 역시도 소설처럼 흥미를 돋우고자 일상에서 일탈한 내용을 내걸고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T V 드라마들의 지나친 부정적인 내용들은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반발과 빈축을 사고 있다.그리고 드라마나 소설이 흥미를 위주로 한다 하드래도 그 기초는 현실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예를 든다면 고부간의 갈등이 많이 등장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시어머니의 위치는 옛날의 제왕적 위치가 아니다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놓여 양쪽 눈치속에 살아가는 초라한 신세일 뿐이다. 그런데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30,40년 전이라면 혹시 모른다. 그러나 핵가족화 된 오늘날 이런 내용은 졸업 앨범속의 빛바랜 사진일 뿐이다.불륜이라는 내용 역시도 너무 과장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건전성은 올바른 도덕의식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시한부 인생 주제를 놓고 벌이는 스토리 역시도 천편일률적(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금융위기 한파가 실물경제로 옮아가면서 온통 우울한 얘기 뿐이다. 부도, 파산, 구조조정, 명예퇴직, 자살 등의 단어들이 난무한다. 미디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위기에 대한 경고를 날리고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이다. 가뜩이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더 움추리게 한다.그래서인지 올해의 화두는 단연'희망'이다. 정부고 기업이고'희망'을 주제로 한 광고며 메시지를 내보낸다.M.루터는 "희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라고 정의했다. J.위트는 "희망은 만사가 용이하다고 가르치고, 실망은 만사가 곤란하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되어도 비켜설 곳이 있다"는 우리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또 "희망은 빈자(貧者)의 빵"이란 말이 있다. 반투족(族)도 "희망은 이 세상의 닻"이라 하지 않았던가.'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는 E.헤밍웨이의 작품 역시 희망의 언어로 인용된다.반면 절망은 키에르케고르의 입을 빌면'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낙담 또한 절망의 어머니다.하지만 절망의 늪에 빠져 본 사람만이 희망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H.헤세는 "신이 우리들에게 절망을 보내는 것은 우리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불러 일으키기 위함이다"고 했다.이번 달 20일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는 절망에서 희망을 건져낸 전형적 인물이다. 흑백 혼혈이라는 인종적 편견과 아버지의 부재, 부모의 재혼으로 인한 복잡한 가정환경은 방황과 일탈로 이끌었다. 그러나 대학시절 연설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깨닫고 사회운동에 눈을 뜬다. 이번 대선에선'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는 슬로건을 내세워'희망을 상징하는 리더'로 떠올랐다.얼마전 한 언론 설문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좋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90.6%가'나빠졌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이 있느냐?"는 물음에 84.3%가'희망이 있다'고 답했다.루쉰(魯迅)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새해엔 모두 희망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지난해 12월 27일, 개전(
구약성서 잠언에'미련한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매인다'고 했다.부처님도"우리들의 입은 화근의 근원이며 몸을 태우는 맹화(猛火)라는 사실을 잘 알고 부모 형제와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상냥한 언사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조심을 당부했다.제논은"인간이 귀 두개와 혀 하나를 가진 것은 남의 말을 잘 듣고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다.논어 안연편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 나온다.네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마차라도 혀의 빠름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말은 한번 하면 그만큼 빨리 퍼지고 또 취소할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순자 영욕편에 선언난어포백(善言煖於布帛)이란 말도 나온다.좋은 말을 남에게 베풂은 비단 옷을 입히는 것보다 더 따뜻해 진다고 했다.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지 않았던가.중국에 처세 잘하기로 소문난 풍도(馮道)라는 재상이 있었다.그는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 후당 후량 후주 후진 후한 등 53년 동안 흥망한 다섯 왕조에서 10명의 임금을 섬길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었다.그가 남긴 설시(舌詩)는 오늘날에도 처세훈으로 삼아봄직하다.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입은 재앙의 문이요/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처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는 내용이다.이 시에서 입을 조심하라는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글은 몇번이고 고쳐 쓸 수 있지만 말은 한번 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입조심 안해 피해 본 예는 수없이 많다.화술은 검술(劍術)과 같다.검술을 익혀 사람을 살리는데 쓰면 생명의 기술이 되지만 사람을 죽이는데 쓰면 살인의 기술이 되듯이 화술을 익혀 선용하면 자신과 타인이 승리하는데 힘이 되지만 악용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 끝내 자신도 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입에서 나오는대로 솔구이발(率口而發)하지 말고 옛 성현의 가르침처럼 세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다.좋은 말도 다 못하고 사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험담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새해에는 서로 상처 받지 않도록 세치 혀 끝을 조심했으면 한다.새해 주고 받는 덕담처럼 말이다.
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한두가지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다짐한다.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어제와 오늘 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새해설계의 유형은 사람마다의 처지에 따라 다르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금연·금주를 결심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어 학습, 재테크등 다양하다. 일부는 자신의 당찬 결심을 주위에 알리기도 한다. 자신의 다짐에 스스로를 구속시키겠다는 뜻일 것이다.그러나 굳은 결심을 했던 사람들중 상당수가 며칠도 못가 결심을 쉽게 포기한다. 범인(凡人)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구습(舊習)에 안주하려는 타성 탓이리라. 흔히 얘기하는'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없는 돈 끌어대며 사놓은 운동기구와 등산복, 외국어 교재등이 애물단지가 되기 일쑤다.'작심삼일'이라는 말은 본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맹자(孟子)의 '호변장(好辯章)'에 나오는'작심'이라는 말은'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는 의미다.'작심삼일'은'사흘을 두고 심사숙고한 끝에 비로소 마음을 결정했다'는 신중함을 뜻했다. 그러나 고려말기 정치적 혼란기에 법령이 일관성이 없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빗댄'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말과 연결되면서 결심이 쉽게 흔들리는 부정적인 뜻으로 변했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처음 결심한 일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잡념에 마음이 끌리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집중력과 끈기 부족을 지적한 말이다. 최근엔 결심이 흔들릴때 마음을 다잡도록 도와주는 '결심 도우미 상품'까지 등장해 의지 박약을 보완해주고 있다. 금연하기 힘든 애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침하는 금연 재떨이'나 '폐모양 재떨이'등이 바로 그것이다.기축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새해 다짐이 작심삼일로 끝났다면 너무 낙담하거나 자괴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결심이 어그러졌더라도 실패가 아닌 실수라고 생각하면 다시 도전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시도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작심삼일도 열번하면 한달이다. 이런 결심이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이혼 숙려제란 남편과 부인이 협의 이혼을 할 당시에 자녀가 있을때는 3개월, 자녀가 없을때는 1개월이 지난후에야 이혼이 성립되는 제도를 말한다. 이혼 숙려제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제도라는 비난도 있었으나 현실적으로는 이혼률 감소를 가져왔다.통계청은 29일 '월간 인구 동향'에서 지난 10월 이혼건수는 96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00건이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작년보다 약 16% 줄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감정적인 이혼이 너무 많았다는 뜻도 된다. 결혼만큼이나 이혼이 중요한데도 많은 부부들이 어른스럽게 대처를 못한 것이다.미국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존 고트먼이 '가족 연구실'을 만들어 "행복한 부부" "이혼한 부부"라는 책을 만들어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는 강조하길 부부 문제의 원인은 부부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의사표현에 있다고 했다.상대방의 의견을 '조용히 사랑스럽게'듣는 것 만으로도 결혼생활에 큰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부부간의 말싸움은 없을 수 없지만 말싸움에도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불만을 이야기 할때도 특정의 행위를 지적해야지 상대방의 인격 자체를 건드리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잘못한 점만을 불평해야하지 그것을 빗대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고트먼은 결혼 생활의 갈등에 대해서도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는다. "결혼 생활에서 빚어지는 대부분의 의견 차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런 갈등의 70%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편은 아이를 갖고 싶은데 아내는 반대 한다든가 남편은 모임에 나가서 여려 사람과 지껄이기는 좋아하는데 부인은 싫어한다든가 남편은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고 싶은데 부인은 사찰로 가고 싶다든이다. 그러나 각자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고트먼은 충고하길 서로의 다른점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이혼 숙려제는 바로 이런 점도 아울러 생각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축년(己丑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대다수 국민들이 고통에 노출된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그리 밝은 전망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장기불황과 구조조정 등으로 혹독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공공기관이고 기업이고 가계고 온통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결, 각종 사회갈등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힘겨운 한 해가 될 것 같다.하지만 시작은 항상 설레게 마련이다. 신선하면서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플라톤은 "잘 시작한 일은, 반은 벌써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말과 상통한다.R.W. 에머슨은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조그만 씨앗이 하늘을 찌르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을 보라.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다 그 시초는 조그만 일에 배태하고 있다"고 했다. "낙락장송(落落長松)도 근본은 종자(種子)"라는 우리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노자(老子) 역시 "천리를 가는 것도 발밑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것에 남상(濫觴)이란 말이 있다.'순자(荀子)'와'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말로 모든 사물의 시발점을 가리킨다. 원문은 "원래 양쯔강은 민산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이 시작될 때의 물은 겨우 술잔을 띄울만한 여윈 물흐름이었다.(昔者 江出於岷山 其始出也 其源可以濫觴)"는 것이다.맹자(孟子)도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헛되이 먼 곳을 찾고 있다. 일은 해 보면 쉬운 것이다. 시작을 하지 않고 미리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고 갈파했다.그러나 시작부터 너무 큰 성공을 기대하지는 말 일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소설가가 자기 초기의 작품이 어찌나 유치한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자기를 비판했다. 그것을 듣고 안톤 체호프가 말하기를'천만의 말씀, 그것이 순조로운 출발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햇병아리 소설가가 성공에서부터 출발한대서야 그 사람은 파멸입니다'라고 했다."하루의 시작, 한 달의 시작, 한 해의 시작에는 무한한 희망과 기대가 담겨있다. 어렵다지만, 올 한 해 힘차게 새로운 시작을 해보면 어떨까.
년이 지고 오늘은 대망의 2009년의 첫날이다. 지난해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가 거대한 촛불시위 물결을 일으켰다. 그 덕택으로 지금은 좀더 안전한 미국산 소고기 맛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스무 다섯날이 지나 음력 1월1일이 되면 기축년(?), 소의 해가 된다. 소는 농경민족인 우리에게는 가축중의 가축으로 살어서는 노동을 제공하고 죽어서는 육신을 보시(K)했던 이타행(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탈출-장민강 청명초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