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오늘날 지구상에 통신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전세계의 전화·팩스·e메일등 유무선 통신을 감청하는 이셜론(Echlon)이 24시간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 용어로‘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는 의미를 가진 이셜론은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공조하는 세계적인 통신 감청망으로 알려져 있다.지난 1948년 공산권 국가에 대항하는 국가안보 차원의 정보전 무기를 출범한 이셜론은 냉전 증식 이후에도 마약 테러등 국제범죄 저지를 명분으로 계속 운영되고 있는데 기업활동등 민간부문 감청에 간여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음성을 인식하는 초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하여 시간당 최고 2백만건의 통신내용을 감청하는 이 통신망은 세계 각지의 미국 감청기지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하여 단어검색 시스템을 통해 정보가 될만한 통신내용을 읽어 낸다. 실제로 미 국가 안보국이 프랑스의 한 기업과 브라질 정부간의 전화 협상내용을 감청, 이를 미국 기업에 건네줘 레이더 판매를 지원했다는 일화도 남기고 있다.그러나 미국이나 그밖의 어느나라도 자국의 통신감청 시설에 대해 존재자체를 시인하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공공연한 비밀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은폐되어있는것이 정보관련시설의 속성이다. 미국 정보위원회에서도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이나 목표, 활동기법·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것이 관행이다. 인적 자원을 투입해 첩보활동을 벌이는 CIA보다 통신감청을 통해 보다 정교한 정보를 생산해내는 NSA의 위력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그 방대한 기구·시설및 예산규모로도 입증된다.중국의 장쩌민(仗 民)국가 주석의 전용기 속에서 27개의 도청장치가 발견됐다 해서 미·중관계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는 보도다. 미 보잉사가 제작한 이 비행기의 침대·화장실등에 첨단장비가 숨겨져 있었던 사실을 시험비행중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런 사실을 알아내고도 중국이나 미국 어느쪽도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은 없다. 국익을 위한 정보전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될수없고 그런 감청이나 도청을 이미 국제적으로 일상화돼 있다는 증명이다.
때이른 대통령선거 바람이 일면서 또 돼먹지 않은 정치인들이 슬슬 지역감정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의원이“TK가 자기 몫을 찾기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TK표를 줄수 없다”며 지역주의를 선동하거니 곧바로 강재섭(姜在涉)의원이“막연하게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밀기보다는 TK철학과 구심점을 갖고 행동하자. 그래야 우리 몫도 챙기고 선거운동하는데도 효율적이다”라며‘TK응집론’을 부르짖고 나섰다.또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내각제를 실시해야한다면서 대선출마선언을 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총재도“지난 총선에서 영남과 호남은 다른 지역에 한석도 안주었으나 충청도만 마음이 좋아 여기저기 조금씩 나눠주다보니 분열됐다. 또 그럴 것이냐?”며 아주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당내 대선주자들 마저도 공공연히“호남출신 후보는 듣표력이 떨어진다. 비호남 지역에서 후보가 나와야 한다”며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하고 있다.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나라와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위인(爲人)들이 국민을 사분오열(四分五裂)시켜서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정치는 권력을 잡는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나라를 이토록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무슨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악순환만 되풀이 될뿐이다.‘패권적 지역주의’‘저항적 지역주의’‘기회주의적 지역주의’가 판을 치는한 누가 정권을 잡든 이나라를 온전히 끌고갈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귀에는‘차라리 삼국(三國)시대로 되돌아가 사는 것이 편할것 같다’는 민초들의 절망적인 푸념소리가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모르겠다.흔히 지역감정의 원일을 3김정치에서 찾으려 하지만 적어도 근대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의 씨앗을 뿌린 정치인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으로 지목하지 않을수 없다. 그가 이룬 경제적 위업은 역사가 높이 평가할일이지만 정치만은 강압통치와 중우(衆愚)정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은 그것을 일으켜 손해보는 쪽은 경계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구가 많은 지역이‘이 좁은 나라, 함께 살자’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월드컵이 1백3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회의 성공개최를 위한 각종 시설의 마무리와 선진 시민의식의 고양과 함께 안전문제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사안이 국제축구대회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훌리건(Hooligan)이라는 과격 난동꾼들의 움직임이다.훌리건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훌리건이라는 성을 가진 아일랜드 가족에서 유래됐다거나, 훌리스 갱의 오음(誤音)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1890년대 악명높았던 런던 불량배 훌리건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다. 설이야 어떻든 훌리건은 현대 축구의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되었다.현대적 의미의 훌리건이 등장했던 1970년대 영국에서만 해도 흥분한 축구팬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정도였으나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면서 수십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1985년 브취셀에서 열린 유벤투스 튜린-리버풀간의 유럽클럽선수권 결승전서 양목 응원단간의 충돌로 39명이 숨진 최악의 참사가 대표적 사건이다.지구촌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월드컵은 훌리건들의 좋은 활약무대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도 주최국 프랑스는 독일·영국등 주변 5개국과 공동 대처및 인터폴과의 진밀한 협조아래 원천봉쇄하는 시책을 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열리자 대책을 비웃기나 하듯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영국과 튀니지가 맞붙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과격 팬들의 유혈충돌로 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랑스에서 열린 독일-유고전에서는 경찰관 1명이 훌리건에게 쇠파이프로 얻어맞아 사망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각종 폭력사태로 대회기간중 1백65명이 구속됐고, 이중 86명은 1∼2년씩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회가 끝난후 조직위가 발간한 보고서도 대회의 가장 큰 오점으로 안전문제를 지적했다.2002년 월드컵대회를 1백30여일 앞두고 엊그제부터 전주 월드컵경기장에 경찰기동대 1개 중대가 고정배치될때 1개 중대가 고정배치돼 24시간 안전경비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유럽 참가국의 경기가 열리는 전주 역시 훌리건의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대회운영뿐 아니라 안전에서도 성공한 대회가 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의 분발을 거듭 촉구한다.
바다와 하늘이 빚어내는 재앙인‘엘니뇨 현상’은 태평양 적도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면서 주변지역에 가뭄, 홍수, 폭풍, 이상기온을 몰고오는 기상현상을 말한다. 이때 해수면 온도는 평균 섭씨 2∼3도, 최고 8∼10도까지 상승한다. 발생원인은 적도의 해수면과 불안정한 대기가 상호 작용해 방생한다는게 정설로 돼있다.‘엘니뇨’는 스페인어로‘아기 예수’또는‘사내아이’라는 뜻이다. 남미 서쪽 적도의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급상승하는 시기가 주로 크리스마스 전후에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통상 9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계속되는‘엘니뇨’는 적도부근의 해류방향은 물론 지구 전체의 기후를 크게 변화시킨다.‘엘니뇨’가 나타나는 주기는 대략 3∼4년으로 지난 30년동안‘엘니뇨’는 82∼83년사이,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91년과 94년에 이어 97∼98년등 세차례 발생했다. 가장 최근인 98년에는 전세계적으로 사상 최고인 8백90억달러(1백10조5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엘니뇨’는 농작물 작황 뿐아니라 해양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장기간 장마나 건조한 날씨로 산불 발생이 급증하기도 한다.이같은‘엘니뇨 공포’가 다시 시작된다는 불길한 소식이다. 미국 국립대양대기청(NOAA)의 전문가 버논 코스키가 올 여름‘엘니뇨’가 다시 지구상에 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최근 CNN방송이 보도했다. 코스키는“적도 태평양에서의 해수면 온도 상승과 구름 증가가 올 여름‘엘니뇨’가 세계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마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코스키의 예측을 이전의‘엘니뇨“와 관련 이미 정확성이 입증된 바 있어 신뢰를 높여주고 있다.9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재앙은 이제 범세계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도 이 시급한 현안에서 자유로울수 없게 됐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양곡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따라 생산이 타격을 받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 올 여름의 혹서 가뭄 홍수등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엘니뇨 공포’는‘강 건너 불’이 아니라‘발둥의 불’로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인의 우리말 사용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난 해 문화관광부가 국어사용 지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예비조사에 따르면 학생이나 성인들의 국어사용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중·고·대학생 및 성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이번‘어문규범능력검사’결과에 의하면 피검사자들의 평균점수(만점 100점)가 29∼34점으로 비슷한 문제로 1995년에 실시했을 때의 50∼55점보다 20점 정도가 떨어졌다. 특히 점수가 낮은 분야는 맞춤법으로‘가르치다’와‘가리키다’등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조차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영어 공용어화론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영어에 대한 병적인 열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불거진 일이라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것은 크게 부끄러워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언어관이 수그러들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염려가 되는 것이다.요즘 가뜩이나 힘을 얻고 있는 영어조기교육론 또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상을 더욱 조장할 것이다. 언어습득에 중요한 시기에 다른 언어 배우느라 우리말 배우기를 게을리 한다면 그 결과야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또 사이버 공간에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뒤틀기 쓰기’도 국어사용능력 저하의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언어가 일종의 사회적 약속인데 이를 무시하는 일을 자행하다 보면 그 공공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언어는 지식·정보 전달의 중요한 수단이자 우리들 의식과 사고의 필수부가결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언어가 바로 우리들 의식과 사고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오염은 의식과 사고의 오염으로 이어지며 언어능력의 저하는 바로 문화의 쇠퇴로 연결되는 것이다.더 늦기 전에 우리말을 가다듬고 그 사용능력을 높이기 위한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정쩡한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구호에 현혹되어 우리의 얼을 잃어버리는 일만은 피했으면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직은 24시간 일 하는 직업이다. 쉴틈 없이 나라와 국민을 생각해야 하고 중요한 국가대사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따로 없다.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급변하는 국내의 정세판단과 정책집행, 요즘 들끊는 무슨무슨 게이트까지 그야말로 만기친감(萬機親監)의 고역을 감수해야 할 자리이다. 그런 대통령이 한가로이 휴식이나 취하고 있다면 국민정서가 어떨까. 결코 곱지 않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대통령들의 여유로움은 그 나라의 국력만큼이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때 당시 부시대통령은 전쟁수행 임무를 참모들에게 맡긴채 틈만 나면 여가생활을 즐겼다. 골프장에서, 바다낚시터에서 방중한을 즐기는 대통령의 동정은 전쟁상황 못지 않게 국민들의 관심사였다.섹스 스켄들로 임기후반내내 여론에 시달렸던 클린턴도 그랬다. 골프광이기도 한 그는 메스컴이 섹스관련 스캔들로 도배질을 할 때에도 시가를 입에 물고 골프채를 휘두르고 여유를 보였다. 국민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오히려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낄수 있었다. 노사(勞使)문제로 나라안이 시끄러운데도 어린 아들을 안고 휴가여행을 떠나는 토니 블래어 수상을 영국 국민들이 흉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대통령도 쉬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때문만이 아니라 건전하고 균형잡힌 정책을 차분히 구상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은 건강해야 한다. 왜 난데없이 대통령 건강론인가. 엊그제 연두회견장에 나온 김대통령의 피로에 지친듯한 모습때문이다.취임이후‘국민과의 대화’나 기자회견때마다 보여줬던 자신감과 건강한 모습이 이날 회견장에선 영 느껴지지 않았다. 알려진 바로는 전날밤 늦게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들은 권력운용의 난맥산이 나타날때마다 인치(人治)보다 법치(法治)를 강조하지만 법치가 곧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법치의 근간은 확립하되 도덕성 강화는 우리사회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대통령 혼자 슈퍼맨이 될수는 없다는 말이다. 부시 대통령의 졸도 해프닝이 미국 매스컴의 화재다.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런 민주사회의 금도가 왜 우리나라에선 힘든 것일까.
도박을 흔히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그 놀이의 흡인력마저 무시할수는 없다. 도박처럼 많은 사람들이 집중력을 쏟아 부으며 죽자살자 달려드는 놀이도 따로없기 때문이다. 포꺼꾼들은 펼쳐진 패와 상대방의 배턴방법,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도 면밀하게 분석해 자신이 이길 가능성을 계산한다.화투도 마찬가지다. 국민 놀이문화의 전형이 되다시피 한 고스톱판은 일년 3백65일 우리 생활주변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도리지꼬땡이니 삼봉이니 하는 화투도박은 말할것도 없고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한 신종 도박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경마는 또 어떤가. 경마에 승부를 거는 사람들은 적어도 어느 말이 좋은 성적을 낼지 가능한한 많은 자료를 입수해 나름대로 치밀하게 연구를 한다. 그만한 정성이면 어떤일을 해도 성공확률이 낮진않을터지만 한번의 대박꿈 때문에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게 경마나 도박이다.한번 잡으면 ‘밤새워 한다’거나 ‘안하면 초조하고 불안하다’는것이 노름 중독증을 알아보는 잣대 가운데 하나다. 증세가 마치 마약과 똑같다. ‘이번 한번만’이라고 다짐하곤 하지만 그 다짐을 이행하는 노름꾼은 이미 노름꾼이 아니다. 그래서 노름을 하다가 당국에 붙잡혀 가 경을 치고도 풀려나면 다시 노름판에 끼어드는 확률이 70%라는 통계도 나오는 것이다.도박이 때와 장소를 가리는것은 아니지만 요즘들어 더한층 기승을 부리는 것같다. 도시는 말할것도 없고 농한기를 맞은 농촌도박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한탕주의, 황금만능주의 병폐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것이 바로 도박이다. ‘놀이’가 도를 넘어 ‘노름’이 되면 분수를 넘어 요행을 바라거나 이런 사행심을 등쳐먹는 꼴지들의 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할수 있다는 것이 도박의 위험인것 같다.그런 ‘도박열기’가 불행히도 우리 전북이 전국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있는 모양이다. 지난 한해동안 도내에서 검거된 도박사범이 7백66건으로 전년에 비해 무려 94%나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약세를 면치 못하는 전북이 하필이면 도박열기 1위라니 가슴을 쳐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서민들의 ‘놀이’는 놔두더라도 당국이 도민·망신주는 ‘노름’만은 확실히 잡아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준비협상이 촉발시킨‘쌀값 파동’으로 한동안 농민들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벼가마를 끌고나와 길바닥에 뿌리고 불을 지르며 처절한 투쟁을 하더니 이제는 지쳤는지 조금은 잠잠해졌다. 대대손손 생명줄처럼 붙잡고 살아왔던 쌀농사가 조종(弔鐘)을 울릴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됐고 그렇다고 농촌에 눌러앉아 살아갈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으니 겨울 속에 묻힌 농민들 가슴은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만큼이나 시립고 춥다. 해동(解凍)만 되면 몇되지기 안되는 전답모두 팔아 도시로 뜨고 싶어도 쌀값 파동의 여파로 논밭값이 뚝 떨어지고 그나마 사겠다는 사람도 선뜻 나서지 않아 여태까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자신이 원망스럽기 조차 하다.그런데다 더더욱 분통터지는 일은 요즘 정부가 농촌을 위한답시고 내놓은 단편적인 정책들이 농촌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점이다. 한국 농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농민 수를 더 줄여야 한다는 막연한 정책에서 부터 쥐꼬리만한 직불제로 농민소득을 보장해준다는 땜질처방식 정책까지 하나같이 농민들 가슴에는 와닿지 않는 정책들 뿐이다. 게다가 농민들에게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농지법을 개정한답시고 농지를 전용할때 부담금은 없앴으나 대체농지조성비를 대폭 올리는 바람에 땅값이 비싼 도시근교만 큰 혜택을 받아 난개발만 부추겼을뿐 순수 농촌지역은 되레 땅값보다 비싼 비용을 물게되는 해괴한 현상이 벌어졌다.그뿐인가. 정부는 최근 도시민들에게 인기있는‘주말농장’을 3백평 범위 내에서 비농민도 취득할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남아도는 농지가 걱정(?)이 돼서 그러는 모양인데 도데체 그런 정책들이 농민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가뜩이나 화가 치밀어 오른 농민들 감정을 더 건드려 놓기만 했다. 물론 농촌정책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더욱이 급변하는 국제무역체제 속에서 농촌문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해결한 방법도 없다는 것을 농민들은 잘 안다.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감(感)으로 농정을 재단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겠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똑 같은 세월이지만 언제나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려고 다짐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지난날을 힘들고 어렵게 보낸 사람들은 누구나 어둠의 문을 닫고 그 어둠의 문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밝고 환한 시작의 문을 다시 새롭게 열어가고 싶은 마음이 앞설 것이다.서양사람들은 새로운 한해를 맞고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다시 한번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유를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의 상징성에서 찾는다고 한다. 야누스가 서양에서 옛것과 새로운 것의 중요성을 상징한다면 동양에서는 옛 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내라는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볼라치면 온고지신의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신세대 감각이 최고의 가치인 양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오래된 옛것은 낡고 쓸모 없는 구닥다리처럼 취급하면서 그저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인 냥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어쩌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나 각종 병리현상 그리고 역기능들은 과거를 잊고 옛것을 버리는 데에서 비롯된 것들은 아닌지 한 번쯤 반성해 볼일이다. 옛것이 없으면 어찌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부모가 있기에 자식이 있듯이 옛것이 있기에 새로운 것이 있는 것이다.부모의 유전자가 핏줄을 통해 자식에게 이어지듯이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관과 물질문명도 똑같이 역사의 맥(脈)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전승되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것은 무작정 옛것을 버리고 얻는 새로움은 아닐 것이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바라보는 눈을 가질 때만이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한때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라는 노래가 유행했던 것 같다. 그저 노래를 따라 부르듯 남들이 하는 대로 생각 없이 바꾸는 것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지금 50∼60대들이 초등학생이던 1950∼60년대만 해도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사정은 도시나 시골학교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시락을 지참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미국 원조물자인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이나 탈지분유를 쪄서 나눠주었다. 그러나 군것질 거리가 별로 없었던 당시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인기가 좋아 결식아동만 먹게 놓아두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아예 자기 도시락과 바꿔먹기까지 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불과 40여년전의 일이다. 작년 수출액 1천4백억 달러를 달성한 우리가 수출 1억달러 안팎이던 시절의 얘기다.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에도 결식아동이 그대로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경제발전과 복지정책 확대로 쌀이 없어 굶는 절대빈곤은 사라졌다. 그러나 가계경제의 파산이나 이혼등으로 인한 가정해체가 가속화하면서 양육기능을 잃거나 포기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누군가는 돌봐야만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식아동의 증가가 빈곤과 가족기능의 상실이 맞물려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실제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사한 국내 초·중·고 결식아동 수는 지난 89년 8천5백46명에서 97년 1만1천17명, 그리고 IMF사태 이후인 2000년 16만4천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지난해말 현재 도내에도 6천6백88명이 집계됐다. 이들에게는 중식비가 지원된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학교급식등에 포함시켜 점심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방학중 점심 해결을 위해 지난 99년부터 이들에게 농협상품권을 지급해주고 있으나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9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른 물건을 사는데 써버려 정작 점심해결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 다른 행정편의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식사를 거르는 것은 배고픔의 고통은 물론 정서함양에도 좋지 않다. 자라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그들에게 정서결핍이 생기면 언젠가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결식아동 문제는 모두가 고민해야할 사회문제이다.
맞아 죽을 각오로를 하고 썼다는 한 일본인의‘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한국 어머님들의 과잉보호와 그와 연계되어 있는‘입시전쟁’을 빗댄 것이다.“한국에 가니까 어느날 전 국민의 아침 출근 시각을 두어시간 늦추었다. 심지어 증권시장마저 30분 늦게 시작하고. 그러나 버스와 전철, 택시 등이 총동원되고 경찰도 비상사태인 듯했다. 거리 곳곳에서 부분적으로 통행을 금지했으며 병원의 구급 차량도 총동원하고…”이 얘기를 들은 미국인이 한국에 전쟁이나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지만, 매년 직접 목격해야 하는 우리들이 보아도 괴기스러운‘비상상황’이다.그런데 최근 이에 못지 않은 웃지 못할 상황이 부동산계에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서울 강남지역이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돼 정부 합동대책반의 상시 감시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이 작년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겨울방학을 이용, 학원, 학군이 좋은 강남지역으로 이사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수능시험일이 전국적인 비상사태인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차례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었다고 아파트값이 들썩이는 것은 아무리 한국인 특유의‘냄비 근성’과 연계시킨다 해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국가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입시전형방법을 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입시에 대한‘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평소의 적성에 따라 대학진학을 선택할 일이지 군사작전 펴듯이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이 결코 교육적인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근거한 조치인 것이다.그러나 우리 어머님들은 이 복잡한 전형에 더 치밀한‘작전’으로 대응함으로써 교육부의 정책자체를‘해체’시키고 있다. 대학 졸업해봐야 자기 적성이나 개성을 찾아 취업할 수 있는 길이 막연하기만 한데도‘대입지상주의’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니 대입시험일이 추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이 겨울을 더욱 차갑게 느끼게 하는‘강남소식’이 씁쓸하기만 하다.
공해(公害)하면 당장 떠오르는것이 소음이나 진동, 분진·악취같은 것들이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진때문에 빨래를 제대로 널지 못한다거나 쓰레기 적치장 주변의 악취,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나 건설현장의 소음·진동등은 생활환경을 침해하는 대표적 공해들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이 공해추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시민의식도 어느 정도 향상돼 이제 웬만해선 이런 공해 요인들은 방붙일 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추세다. 그러나 문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관련 사이트 번창으로 새롭게 등장한 스팸메일 공해나 휴대전화를 통한 스팸전화 공해이다. 이것들은 사전에 예방할수도, 효과적으로 방어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 인구는 2천4백12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국민의 56%가 지식정보화 사회의 총아라 할 인터넷을 일상생활의 필수품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1천9백60만명은 매일 e메일로 정보와 소식을 주고받을 정도라니 컴맹이나 인터넷맹들은 아예 현대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하지만 편리한만큼 공해도 심한것이 e메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e메일가운데 절반 이상을 음란성 짙은 내용이거나 제품관련 사이트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급하고 이런 쓰레기 메일들은 필요한 정보나 즐거운 소식대신 수신자들에게 짜증이나 불쾌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공해도 보통 심각한 공해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건전한 정보유통마저 왜곡시킬 뿐아니라 채팅중독에 빠진 주부들을 음란사이트로 유혹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는게 업계의 분석이기도 하다.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전화의 스팸전화도 마참가지. 신용카드사나 콘도회사 등의 가입권유, 반복되는 학원수강 안내등은 자증을 넘어 소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는게 가입자들의 하소연이다.그래도 이제 인터넷이나 휴대폰은 우리 생활에 뗄래야 뗄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 서 있다. 그만큼 커질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공해를 막으면서 건전한 정보화사회로 이끌어 나갈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일도 아니다. 흡연이 폐암의 주범이고 동맥경화나 심장질환 같은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의학상식쯤은 그야말로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연가들이 한번 맛들인 담배를 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독성 때문이다.담배속에 함유된 니코틴성분의 중독성은 헤로인이나 모르핀 아편보다 높다고 한다. 최근 연예인들이 자주 물의를 일으킨 필로폰이나 대마초보다도 중독성이 강한것이 담배라니 금연의 어려움을 이해할만도 하다. 그러니 해마다 정초가 되면 ‘올해엔 담배를 꼭 끊어야겠다’는 골초들의 각오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일이 많을수밖에 없는가보다.우리나라의 흡연인구는 대략 1천3백만명에 이른다. 이중 성인남자의 흡연률은 73%로 선진국 협의기구(OECD)가입국중 1위다. 유럽에서도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조차 금연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담배 피우는 사람을 아예 야만인 취급하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담배에 관한한 아직 후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것 같다.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데 있다. 성인들은 그렇다쳐도 청소년들의 흡연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남고성 가운데 27%, 남중생 7.4%, 여고생 10.7%가 담배를 피우고 있고 심지어 남녀초등학생 10명가운데 한명이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것도 화장실같은데 숨어서 몰래 피우는것은 옛 말, 교복차림에 어른들 앞에서도 버젓이 피우는것이 예사고 선생님한테 들켜도 크게 당황해 하지도 않는다니 큰 일이다. 오죽하면 교내 화장실에 아예 재털이를 비치해놓고 ‘담배꽁초를 잘 버리라’고 가르칠 정도에 이르렀을까. 서울시교육청이 생각다 못해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초중고 건물을 절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여 교사들부터 솔선하여 담배를 끊도록 했다는 것이다.이 조치가 서울시교육청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사정이 똑같기 때문에 전국 각급학교도 확산돼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담배 연기에 찌들어 건강을 해치는 일을 그냥 바라 볼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여론조사(Public opinion poll)는 각종 사회문제나 정책·쟁점등에 관해 사회구성원들의 견해나 태도·의향·신조등을 알아보기 위해 시행하는 일종의 사회조사이다. 여론조사의 근원은 1824년 당시 미국에서 대통령선거 결과를 미리 가늠해보기 위해 실시한 모의투표가 단서(端緖)라는게 정설이지만 실제로는 20세기초부터 일반화돼 이후 많은 언론기관이 경쟁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대량 표본조사 방법을 쓴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지(誌)의 여론조사가 신뢰도 면에서 정평이나 있었으나 1936년 대통령선거때 소수 표본조사라는 근대식 방법을 도입하여 정확도를 크게 높인 갤럽과로퍼·크로슬리등 신흥조사 기관이 출현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그후에도 여론조사 기법은 꾸준히 개발돼 근래에는 실제결과와 근접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여론조사 자체가 안고있는 맹점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이 활용하고 있는 조사방법으로는 개별면접과 전화조사·우편조사의 방법이 있는데 개별면접의 경우 표준화면접과 비표준화면접, 방문조사와 인터셉트(가구이외의 장소)조사, 일대일면접과 집단면접중 어느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또 전화조사나 우편조사의 경우도 조사대상자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다시 적절한 표본을 추출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고 심지어 조사자의 태도나 조사시점까지도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조사기법상 표본추출과 자료수집·설문구성 및 분석과정에서의 숙련도는 조사결과의 신뢰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상당수 언론기관들이 별 ‘노하우’가 없는 조사기관과 함께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여과없이 발표를 하고 있다. 신년초 중앙언론사들이 대선후보들간의 ‘가상대결’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회창-이인제씨의 경우 많게는 12.6%P, 적게는 2.3%P의 차이가 났다. 신뢰도 오차범위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믿을수도, 그렇다고 안믿을수도 없는 여론조사,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좋지만 너무 남발하면 오히려 헷갈린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전주천이 되살아나고 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주천은 임실군 관촌면 슬치에서 발원하여 전주 시가지 중심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감아 돌아 서신동 북쪽에서 삼천천과 이내 합류한다. 완산칠봉의 팔각정에 올라 전주천을 내려다보노라면 맑고 깨끗했던 지난날의 전주천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수십년 전의 전주천은 단순한 하천이라기보다는 전주 시민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곳이었다. 여름철이면 물장구를 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과 천렵을 즐기던 어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으며, 때로는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빨래를 하던 곳이기도 하였다.그런가하면 하천의 제방을 따라서 길게 뻗은 천변로에 휘늘어진 수양버들을 보며 산책을 즐기는 것도 전주천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정취였다. 한걸음에 한벽루에 내달아 전주천에서 걷어올린 민물고기와 모래무지로 만든 오모가리탕 맛은 전주 시민의 미각을 돋구어 주는 별미(別味)의 하나였다. 그러던 전주천이 한때는 생활하수와 각종 오·폐수가 유입되면서 서서히 변질되어 악취가 나고 물고기마저 살수 없는 죽은 냇가가 되면서 전주 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 깨끗해진 전주천에 온갖 민물고기가 다시 서식하기 시작했고, 그 동안 자취를 감췄던 모래무지와 쉬리까지 찾아드는 살아있는 하천의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이제 모든 시민들이 전주천을 살리는 데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번 죽은 물을 되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물 문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의 생존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환경 문제인 것이다.세계를 제패하면서 그토록 융성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이나 대영제국 그리고 중국의 제국들도 수질오염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의 창궐로 순식간에 많은 인구가 감소되고 재난을 당했던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참 교훈인 것이다. 이제는 전주천을 살리는 데 전주 시민들이 앞장서야 할 차례이다. 새해에는 그 맑고 아름다운 전주천이 풍패지향(豊沛之鄕)의 고장 전주의 한 중심부를 도도하게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 부터 산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겼다. 우리의 건국신화가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실등을 보더라도 옛사람들이 산을 신성시하고 두려워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산정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이에따라 산신(山神)신앙이 생기고, 산에 세우는 절에도 산신각을 모셔 신불일체(神佛一體) 사조를 나타내기도 했다.산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 이외에도 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이로움은 계량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잘 가꿔진 숲 1ha는 연간 16톤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12톤의 산소를 배출해내는 자연정화기 역할을 한다. 오늘날 산업화에 따라 탄산가스의 과다한 배출량이 지구온난화와 한경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는 점을 상기하면 산림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또 우리나라 산림의 수분 저장능력은 1백80억톤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수도권 주민의 용수공급원인 팔당댐 저수능력의 20배에 이르는 분량이다. 우리니라 산림에 국민들에 주는 혜택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50조원에 이른다고 산림청은 밝혔다.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9.7%로 국민 한명당 1백6만원 정도다.이처럼 엄청난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는 산림이 무분별한 개발등으로 마구 훼손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 지난 2000년 한해동안 서울 남산면적(2백97ha)의 26배에 달하는 7천8백여ha의 산림이 사라졌다. 이같은 산림파괴는 전세계적으로 똑같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도시 인근의 산림은 택지개발과 물 수요를 위한 댐건설등으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그밖에도 ‘세계의 허파’불리는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 산림의 남벌과 산불등으로 해마다 1천1백여만ha의 산림이 없어지고 있다.때마침 산림을 보호하고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이며, 신선한 물의 원천인 산림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유엔이 올해로 ‘산의 해’로 공식선언했다. ‘후손들에게 풍부한 자원을 제공해 줄 산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은 전세계인의 과제’라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지적처럼 인류생명의 근원인 산을 보호하는데 국가나 인종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데 앞장서야 할 한해이다.
결국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해오던 도립국악원 사태가 누구도 원하지 않던 최악의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도립국악원 예술단원 전체와 교수 전원에 대하여 재위촉을 거부하는 최고의 강경책이 축복의 인사로 주고받아야 할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취해진 것이다.이는 사실상 도립국악원의 해체와 다름없는 조처라 할 수 있다. 울 ㅣ음악을 아끼는 이 지역 많은 이들을 주눅들게 한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이리라. 문화를 아끼고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새해 벽두부터 엄동설한의 을씨년스러움을 절절이 느끼게 된 것도 이번사태가 함축하는 그 엄청난 의미 때문이리라.예술인 하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하나의 예술단을 육성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예산과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던가? 그런데도 이지역을 대표하는 예술단을 하루아침에 전원 해촉할 수 있다니, 우리 음악 증흥과 대중화에 중요한 기여를 해오던 교수들을 한꺼번에 몰아낼 수 있다니, 두렵다 못해 소름이 돋기조차 한다. 그 단호한 비예술성, 그 매정한 반문화성에.이제 국악의 고장 혹은 예향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세계화의 화려한 구호 속에 사라지고 있는 우리 문화 예술의 소중함을 느끼고 익히기 위해 어렵게 국악원을 찾은 많은 수강생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이 지역 원로 문화예술인들이 나선 것을 감히 촉구했던 것도 이런 파국을 미연에 방지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그러나 도의 이처럼‘신속한’대처에는 원로들이라 해서 무슨 뾰쪽한 수가 없었을 것 같다. 그만큼 성급하고 조악한 조처였다는 말이 된다.허나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일은 아니다. 그 깊은 불신과 감정의 끝에 절망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국악원의 의미는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기분풀이로 난도질당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행정의 원칙이나 조례의 세세한 내용은 이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지역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행정의 전횡으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
말은 예부터 사람과 독특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농사, 사냥, 전쟁, 말 경주에 이르기 까지 떼기 어려운 관계였다. 인류문명 초기에 사람은 말을 소유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말의 털색깔로 점을 쳤으며, 말의 머리를 메달아 놓고 그것에 초자연의 힘을 부여하기도 했다. 아름답고 훈련이 잘된 말은 지위의 상징이었다.아시아권에서 통하는 풍습으로 12간지의 7번째인 말은 중국 인도 일본 등지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우리의 경우도 신라의 탄생을 알려준 영물로 대접받았다. 역사를 주름잡았던 영웅호걸이나 문학작품속에 나오는 말과 관련된 일화들도 많다.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가 자결하기 직전에 애마 오추마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거나, 삼국지의 관운장이 타고 다닌 적토마가 주인을 따라 굶어 죽는 얘기는 인간과의 관계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말은 벼슬과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정치에 뜻을 두고 후보로 나서는 것을 출마(出馬)라 하고, 어느 벼슬자리에 누가 갈것인가를 두고 찧는 입방아를 하마평(下馬評)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말은 시대를 불문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뛰어난 예술세계를 남기도록 했다. 고구려나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천마(天馬)나 비마(飛馬)도 그중 하나다. 천마는 상제(上帝)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인식되었다. 고구려 안악 1호분의 비마도, 덕흥리 고분이나 경주 천마총 등에서 천마도를 볼 수 있다. 그들의 날랜 몸동작과 힘찬 생동감을 보노라면 웅비의 기상이 절로 느껴진다.올해는 임오년, 말띠 해다. 국가적으로 보면 세계인의 축구제전인 월드컵대회를 일본과 공동으로 개최한다. 전주에서도 월드컵 대회 3게임이 열린다. 완벽한 대회를 치러냄으로써 세계로 향한 전북의 저력을 펼쳐보일 기회다. 또 밀레니엄 들어 처음 치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는 2천년 초반의 국운을 좌우할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벌써부터 지역정서를 뛰어 넘는 세대교체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도민 모두에게 내일의 도약을 위한 천마의 꿈이 펼쳐지길 바란다.
모두가 잠든 새벽을 가르고 붉게 솟아오르는 해돋이가 힘차고 웅장하다면 서족 하늘을 신비스럽게 낙조(落照)로 물들이는 해넘이는 평온하면서도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해돋이가 동적이고 남성적이라면 해넘이는 정적이고 여성적이다.뜨는 해는 그 모습이 힘차다. 그래서 뜨는 해를 보면 누구나 함성을 토해 내지만 지는 해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해돋이가 북소리처럼 온 세상을 깨운다면 해넘이는 가야금소리처럼 가느다란 현을 타고 세상을 잠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해넘이라면 이 고장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서해안의 풍광을 꼽을라치면 낙조가 언제나 첫손에 꼽히고, 김제의 망해사, 변산과 격포, 그리고 선운산의 낙조대가 빠질 수 없을것이다.그중 격포 채석강의 낙조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채석강의 수천 수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기묘한 바위절벽과 깍아지른 듯한 단애(斷崖)는 그야말로 자연이 억겁의 세월동안 밀물과 썰물로 빚어낸 걸작품인 것이다.채석강이라는 지명은 중국의 시성 이태백(李太白)이 뱃놀이 도중 물에 비친 달 모습에 반해 달을 따려고 뛰어들었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채석강(彩石江)에서 따 온 것이라 할말큼 주위 경치가 아름답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이 채석강의 비경이 서해 낙조의 붉은 빛에 살포시 물들어 가고 저녁 무렵이면 온 하늘과 땅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서쪽 바다에 잠기는 해가 붉게 물들면서 바다는 맞닿은 하늘과 구름을 곱게 물들이고, 썰물로 빠져나간 채석강의 바닥도 붉게 타오른다. 바닥을 물들인 낙조는 이어져 오른 채석강의 바위도 붉게 물들이며 이내 사람의 눈빛마저 붉게 물들인다.올해도 해넘이와 함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언제나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참으로 어느 해 못지 않게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우리가 매일 일상의 생활을 반복해서 살아가지만 단 하루라도 똑같은 날이 없는 것처럼 매일 반복해서 뜨고 지는 해돋이와 해넘이지만 언제나 그 의미는 다른 것이다. 올 연말의 해넘이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좀더 의미 있는 해넘이 였으면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원리를 근간으로 움직이고 있고 시장경제원리는 ‘경쟁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장의 기능과 시장경제원리의 모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문것 같다.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시장에 대한 평가’에는 두가지 극단적인 입장이 있다. 하나는 시장만능주의요 다른 하나는 반시장주의다. 주지하다시피 전자는 자본주의국가들이, 후자는 사회주의국가에서 신봉하는 제도이다. 시장만능주의는 “이기적 행동을 하는 경제주체들이 경쟁을 통해 스스로 자생적 질서와 조화를 창출해낸다”는 논리이고 반시장주의는 “끊임없는 경쟁이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을 불러 유휴설비와 실업을 발생시킬뿐 아니라, 우승열패를 통해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고 사회를 양극화시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해주었듯이 이 두가지 극단적 입장은 많은 시행착오를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근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란‘자유-평등-호혜’와 ‘억압-불평등-수탈’, 자생적 질서와 자생적 무질서, 균등화 경향과 양극화 경향이라는 서로 배치되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 존재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분위기는 경쟁, 그것도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한동안‘변해야 산다’ ‘바꿉시다’열풍이 부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패배는 죄악이다’‘밀리면 끝장이다’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하여 도대체 살기위해 경쟁하는건지 경쟁 하기위해 사는건지 헷갈릴정도다. 우리 사회는 지금 생존철학의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은채 경쟁과 승리이데올기만 판을 치고 있다. 경쟁능력이 없고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도 경쟁 증후군에 빠져들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경쟁이 자발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지 너죽고 나살기식의 막가파식 경쟁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말이다. 또 한해다 저물어가고 있지만 경쟁에서 낙오된 소외계층의 삶은 더 고달파지는 것 같다. 이들과 함께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면 경쟁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공직자 줄서기’ 악습, 이번엔 뿌리 뽑아야
오래된 다정함, 남문사잇길
새 주인 맞는 군산조선소, 신조선박 보고 싶다
‘연두색 넥타이’와 개헌의 봄
'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아리랑에 담긴 한민족의 고유정서
고래가 싸우는 세계, 한국의 길
부모님의 땀방울 서린 농지, 지혜롭게 물려받는 법
제세공과금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