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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노인 인구는 작년 말을 기준으로 할 때 약 3백 37만 여명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의료 및 보건환경이 발달함에 따라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고령화 추세는 점차 가속화될 전망이다.하지만 노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대비책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를 보면 노인 연령층 중에서 본인 스스로 노후에 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노인 인구 중 30%에 지나지 않는다.고령화에 따른 노인문제는 어찌 보면 산업사회가 빚어내는 단연한 귀결이라고 체념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노인문제는 단순히 노인들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인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이끌어 내야 마땅한 것이다.산업사회는 가족제도의 해체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현상과 함께 핵가족 제도가 자연스럽게 대가족제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가치관은 새로운 사람을 요구했기 때문에 노인들의 지식과 경험은 옛것이 되고 말았다.세상은 변했지만 사람은 변하기가 어려운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나라의 노인들은 여전히 장남을 중심으로 한 부양체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핵가족 제도하에서의 젊은 세대 층에서는 전통적인 우리 나라의 부양방식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 또한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정부는 1988년부터 전국적인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제를 기초로 한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오고 있으나 현재의 국민기초생활보장과 의료보험 등은 현역세대 중심의 복지정책이며, 노인들에 대한 대책은 극히 미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켜보면서 이 시대의 노인들이 아마도 부모를 지킨 마지막 세대가 되고, 자식들에게 소외당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되지 않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촌에서 첫 수몰국가가 발생한다는 외신보도다. 남태평양상에 위치한 총명적 26㎢의 투발루공화국. 이 나라가 해수면 상승에 따른 국토잠식과 식수부족으로 1만1천여명의 국민들이 내년부터 뉴질랜드로 이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지구온난화 현상은 석유등 화석(化石)연료 사용의 급증으로 이산화탄소(CO2)등 온실효과를 나타내는 온실가스의 대기중 농도가 높아지면서 빚어진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산화탄소의 대기중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는데 공감한 세계각국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는 우리나라를 포함 1백54개국이 서명했다. 그후 1997년에는 미국과 일본등 OECD회원국을 포함 38개국이 기후변화협약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1990년 대비 평균 5.25 감축하기로 하는 교토의정서에 합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방안과 제재수준등을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된 끝에 최근 모로코에서 열린 제7차 기후변화협약회의에서 마침내 타결을 지었다.우리나라는 개도국에 포함돼 2008년부터 감축의무가 주어지는 공업선진국 명단에서는 일단 비켜났다. 2018년부터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할 계획이지만 현재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데다 10년안에 영국·캐나다를 제치고 세계 7위의 배출국이 될 것으로 예상돼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등으로 배출감축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필요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며, 세계 6위의 에너지 수입국가인 우리로서는 국제사회의 감축요구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대체에너지 개발은 필수적이다. 이와함께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국민들로서 에너지 낭비 행태를 줄이기 위한 환경의식이 어느때 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전주대사습이 표류할 위험에 처해있다. 아니 실제로는 진작부터 표류하고 있었다. 이번 학생대회를 통해 표류의 구체적 모습이 드러났을 뿐이다. 표류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방송 중계의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놀이’의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 한 축을 차지할 것이다. 시청률을 감안할 수밖에 없는 방송국 사정도 축제의 판을 짜는 데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측의 구태의연함이 그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대사습놀이의 정신은 망각한 채 이를 통해 어떻게 하면 문화적‘기득권’혹은‘권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만 매몰되어 시대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가장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역시 심사의 공정성 문제이다. 상당한 상금과 권위가 보장되는 대회인 만큼 자신들의 인맥을 입상시키기 위해 혈안이며 심한 경우 뒷거래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이번 두 주최측의 갈등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학생대회인 만큼 입상 여부가 입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심사위원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고, 그 심사위원 위촉권을 누가 갖느냐가 주최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법적 공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사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말하자면 법의 힘을 빌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대사습이 표류하고 있다는 것만 만천하에 드러내고 만 꼴이다.중요한 것은 땅에 떨어진 대사습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요‘놀이’로서의 본연의 속성을 하루빨리 되살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급선무라 할 수 있으며 보존회 구성원 자체의 혁신적 변화도 이를 위한 절대적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억지 명분으로 이 지역의 주요 문화자원인 대사습을 욕되게 하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되겠다. 전주대사습놀이는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이 결코 아닌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 였던 고(故)진태윤씨. 1920년생이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었으면 81세의 노인이다. 그의 파란만장 했을 삶의 역정이 사람들의 가슴을 친다.(20일자 본지 19면)그는 지난 62년 3월 간첩으로 난파됐다가 체포돼 88년 12월 만기출소하기까지 26년여 동안을 복역한후 전주에 정착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공장에 취직하는 등 새인생을 시작했으나 97년 4월 패혈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에게는 북에 두고온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었다 한다. 생전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을 위해 모은 것으로 보이는 2천만원이 예금 통장으로 사후에 발견됐다.아픔의 세월, 가족 사랑의 눈물이 짙게 배어 있을 이 돈이 지금 주인을 못찾아 국고로 귀속될 처지라 한다. 성공회를 중심으로‘진씨 유산처리위원회’가 구성돼 북쪽에 있을 아들에게 이 돈을 전하려 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진씨 가족의 생사확인이 급한데 적십자사도 정해진 규정과 순서를 따를 수 밖에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지난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대립과 갈등대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남북대화로 얻은 소득 중 이산가족의 상봉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 서울과 평양에서 두 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지난해에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송환 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들중에는 남한 가족을 두고 북쪽을 찾아간 또다른 이산의 주인공들도 있다.이념과 체제의 족쇄를 풀지못한 그들의 선택은‘인간자유’궁극의 목표가 무엇인지 숙제로 남겨 놓는다 치자. 하지만 가슴 매어지는 장기수 진씨의 사업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주민들은 80년대를 KBS가 주관한 이산가족 찾기 이벤트의 그 진한 감동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비극의 주인공들이 지금도 남과 북에서 눈물로 회한의 세월을 보내며 상봉의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드러난 이산가족 말고도 바로 진씨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에는 그늘속에 숨어사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또 있다.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온게 이산가족 상봉이다. 이 결실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줄 획기적인 전기는 언제쯤 이루어 질까.
‘아침에는 빈 논 지푸라기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더니 햇볕이 참 좋다. 강건너 묵은 산밭에는 감들이 꽃처럼 붉다. 빨갛게 단풍물이 드는 붉은 나무, 조용하게 노란 물이 들어가는 팽나무, 벌써 붉은 잎이 다 떨어져 가는 산벚나무…’‘배추 잎이나 무 잎은 서리를 맞을수록 싱싱하게 푸르다. 땅을 뚫고 땅위로 올라 온 흰 무의 몸뚱이는 얼마나 막강해 보이는가…’임실군 운암면 마암분교교사인‘섬진강 시인’김용택씨가 일간신문에 기고한‘어느 늦가을의하루’란 글 가운데 한 구절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가을 점묘(點描)에 아하! 하는 감흥이 절로 나온다.일상의 눈으로는 스쳐지나가는듯한 가을이지만 그가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 뒷곁 여기저기 담아둔 두곡식하며 탐스런 노란호박에 줄줄이 매달린 곶감꽂이, 처마를 받치는 강냉이 묶음, 수수단, 이른 아침 머리에 서리를 머금은 무·배추밭, 이모두가 천년을 이어온 우리 농촌의 정겨운 가을 모습들이다. 스산함과 넉넉함을 함께 안고 또 한 해의 가을걷이를 끝낸 농촌엔 그러나 지금 적적하리만치 고요가 흐른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식 교육때문에, 직장따라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나간 농촌사람들이 얼마인가.산업화 과정과 농정의 실패로 이농현상이 심화된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우렁 더우렁 산과들을 뛰놀며 자연속에 동심을 키우던 어린이들의 모습도 더불어 찾기 힘들다. 농촌학교는 시간이 흐를수록 폐교의 아픔과 함께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가장 쾌적한 교육환경이 자연 친화라는데 그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떠나는 안타까움을 언제까지 보고만있을 것인가.그런 농촌에 요즘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한다. 도시 초등학교 학생들의‘시골 유학’붐이 그것이다. 서울·전주등지에서 임실(마암분교)·김제등 농촌지역으로의 전학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자연친화적인 교육에 도시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들을 수용할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는 현장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돌아오는 농촌’을 만드는 일은 교육에서부터 시작되는것이 당연한데 그게 제대로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자(多者)무역체제 기본 틀’에 대한 협상이 세계무역기구(WTO) 제4차 각료회의에서 타결됨으로써 21세기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를 이끌고 갈 ‘뉴라운드’가 공식 출범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예고된 일이었지만 막상 강자의 논리에 휘둘릴 세계시장을 바라보니 이만저만 걱정이 되는게 아니다. 공산품과 비농산품·지적재산권·반덤핑 문제 등은 앞으로 전개될 분야별협상에서 얻는것도 있고 잃는것도 있겠지만 농어업 분야는 그야말로 벼랑끝으로 밀려 장차 이 나라 생명산업이 어디로 갈것인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당초 농산물 수입국들은 시장접근을 ‘실질적(substamtial)이고 점진적(progressive)’으로 해줄것을 요구했으나 점진적이라는 표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단계적 폐지(phasing out)’를 주장한 농산물 보조금도 ‘협상의 성과를 속단하지 않고’라는 전제를 붙여 타결됐다. 또 수산물 분야에서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해야할 위기에 처해있다. 흡사 궁지에 몰린 생쥐 꼴이 되고 말았다.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정부의 단견적인 농정을 통렬히 규탄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 이같은 오늘의 참담한 사태는 7년전(1994년 5월)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타결되면서 이미 예견할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국내 농업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외국쌀 수입이 의무화되고 개방폭이 확대되면 우리 식량안보가 크게 위협받게 됨은 물론 종국에는 한국농업이 붕괴위기로 치닫게 될것이라고 경고했었다.사정이 이렇게 절박한데 한국농정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무엇보다 농촌의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황에서 가격지지 정책에만 매달려오다 어느날 갑자기 ‘쌀 증산정책 포기’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그것도 쌀이 남아돌아 주체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뿐인가. 휴경보상제를 실시해야 하는 마당에 일부 도시주변이 난개발 문제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자 느닷없이 농촌지역까지 ‘개발불가’ 딱지를 붙여버렸다. 도대체 농촌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시 바삐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한국농정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하늘의 신(神) 제우스는 노하였다.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하여 여자를 만들었는데, 이 여자에게 아프로디테는 매력을 선물했고 헤르메스는 꾀와 재주도 주었다. 모든 신들이 온갖 능력을 이 여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이름은 모든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판도라였다. 하지만 이 판도라는 인류에게 불행이자 재앙의 상징이 되었다.요즈음 우리 사회가 마치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막 열은 것은 아닌지 의아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부정과 비리의 검고 뿌리 깊은 커넥션이 끝을 알 수 없는 부패를 낳고, 그 부패는 다시 부정과 비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지난해 정현준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 뒤에는 굵직굵직한 국회의원이나 국정원 간부들이 뒤를 봐주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불거져 나오고 있고, 동방금고 불법대출에 관련되었던 이경자씨도 국회의원에게 로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그런가하면 올해에 벌어진 주가 조작 이용호 게이트에도 전 국정원 경제단장의 관련의혹도 짚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것마저 밝히기가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아니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모든 메가톤급 대형 비리사건들 뒤에는 어김없이 힘깨나 쓰는 구린 사람들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다.또 한가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은 그런 사건들의 수사가 이루어질 때마다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범죄행위를 처단해야할 검찰이 오히려 사건을 축소 또는 은폐하여 덮어버리고 묻어버렸다는 의혹이다. 이러한 연속적인 대형 비리 사건이 처리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야비하고 더러운 승냥이는 뒤로한 채 그저 힘없고 약한 토끼의 뒤를 쫓는 것 같은 검찰의 모습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판도라의 상자가 불행과 재앙이면서 또 하나의 희망인 것처럼 이제 우리 사회도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할 때이다. 단순히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는 재앙이 무서워 그것을 덮어버린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은 영원히 멀어져 갈 것이다. 어떠한 희생과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패와 비라가 손을 잡고 부정을 양산해 내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포도를 발효시켜서 만든 과실주인 포도주를 영어로는 와인(Wine), 프랑스어로는 뱅(Vin)이라고 부른다. 와인의 세계적 주산지인 프랑스 보들레지방의 햇포도주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가 어제 자정 전세계에 동시 출시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1년간 손꼽아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일반적으로 와인은 4개월에서 10개월쯤 숙성시킨 후 병에 담아 출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보졸레 누보’는 9월경 수확한 포도를 밀폐된 탱크에서 1주일정도 발효시킨 후 6주가량의 짧은 시간동안 숙성시킨 와인이다. 숙성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 맛은 와인이라기 보다 오히려 포도쥬스에 가까울 정도로 상큼하고 과일향이 살아있다. 알코올 도수도 일반와인이 12∼16도인데 비해 이보다 약간 낮은 9∼10도로 마시기에 가볍다. 때문에 해마다 11월 셋째주 목요일 자정을 기해 전세계 애호가들에게 동시에 공급하기 위해 비행기로 공수한다.‘보졸레 누보’는 2차대전 후 와인에 굶주린 보졸레지방 주민들이 채 익지 않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데서 출발해 50년대까지만해도 싸구려술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70년대초 ‘조지 뒤보프’라는 양조업자가 숙성이 덜돼 4개월내에 마셔야 하는 단점을 ‘햇 와인’이라는 마케팅 전략으로 역이용하면서 맛보기 붐을 일으켰다.우리나라도 이 와인의 인기는 예외가 아니다. 96년 처음 수입된 후 해마다 수입량이 늘어 올해는 작년보다 두배나 많은 42만병일 수입됐다고 한다. 애호가들은 출시 몇주전부터 백화점이나 인터넷 판매사이트등에 예약을 통해 구입했다니 정성이 대단하다.우리지역에서도 과실을 발효시켜 만든 과실주로 고창의 복분자주와 무주의 머루주가 생산되고 있다. 특히 복분자주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일 방북때 김정일위원장에게 선물했는가 하면,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공식 연회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우리 고장의 술이 세계인들이 즐겨찾을 수 있도록 ‘보졸레 누보’처럼 획기적이고 기발한 마케팅 전략을 기대해본다. 내년 월드컵때 전북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시음해볼 기회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듯 싶다.
지난 달 23일 국회에서는 ‘지방대육성특별법’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있었다. 82명의 총장과 1백10명의 전문대학장 등 교수 4백50명과 여야 중진들이 참석하여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확인했다.이 법안의 취지는 물론 지방대학을 살리자는 것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지방을 살리자는 데 있다. 지방의 인재와 자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서울공화국’의 위세가 지금과 같은 한 21세기 국가경쟁력은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지방경제를 살리고 지방문화를 살리자는 취지의 정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허나 대부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수도권 집중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그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에 우리나라 부모들의 남다른 교육열이 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학부모들이 있는 한 수도권 명문대학에 대한 집착은 해소될 수 없다.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간의 서열화가 상당 정도 가시화한 지금 상당수의 부모들은 지방대학에 자식 보내는 것을 ‘집안망신’정도로까지 여기고 있는 것이다.이로 인한 지방의 피폐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매년 6만여명의 지방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이동을 한다. 이로 인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자본이 재학기간을 6년으로 했을 때 줄잡아 6조원에 달한다는 것이다.이제 더 이상 이러한 기현상을 방관할 수 없다. 인재 육성에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는 비효율성으로 인한 국가경쟁력의 약화도 심각한 일이지만 중앙과 지방 사이의 유기체적 관계가 헝클어지면서 생기게 될 병리현상은 국가 자체의 자존능력을 현저하게 저하시킬 수 있다.이는 결코 ‘지방대학에 훌륭한 인재들을 보내자’는 식의 소박한 캠페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책적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의 부모들이 자진하여 지방대학에 자녀를 보내고 싶도록 지방대학을 훌륭하게 육성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인구 유출을 막는 길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방대학을 살리는 것이 곧 지방을 살리는 길인 것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DJ에 가장 비판적인 그룹이 교육계라는 지적이 있다. 일련의 개혁작업 추진과정에서 교육 부문의 저항이 유독 두드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정책마다 제동이 걸리지 않은것은 별로 없고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투쟁수위도 좀처럼 꺾일줄 모른다.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 도입, 교원성과급제, 중초교사 임용문제를 비롯 수준별 교육을 지향하는 7차교육과정 도입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이 사상 초유의 대규모 조퇴투쟁까지 벌이는 바람에 학원공동화현상을 우려하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이 뒤따랐고 이들에 대한 징계수위를 놓고 교육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정책 시비에 앞서 교사들에게 가장 절박한 현안은 아마도 정년단축 문제가 아닌가 싶다.이혜찬 교육부장관때 강력히 밀어부친 교육정년단축안은 99년 1월 국회에서 표결을 거쳐 통과됐다. 교원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3년 단축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4만2천여명의 교원들이 앞당겨 교단을 떠나야 한다. 교원들의 아픔이 클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들은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공무원·기업체등 사회 각 부문에서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해서 퇴직바람이 거센 마당에 교직이라고 철밥통이 될수 없다는 것이 여론의 흐름이었다.표면적으로는 잠잠한듯이 보이던 교원정년 문제가 또 다시 수면위로 떠 올랐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정년을 1년 연장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민주당이 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상임위 상정에서부터 논란이 예상된다. 여·야 모두 찬·반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시행 3년째 접어든 교원정년을 또다시 늘린다는 것은 옳다고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미 교단을 떠난 교사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이 문제에 대한 교총과 참교육학부모회등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누구 말이 옳은지 헷갈릴 정도다. 서로 정년연장 찬성과 반대가 70%가 넘는다는 주장이다. 어느 주장이 옳건 국민들의 눈으로 볼때는 결국 ‘내 밥그릇 챙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시각이 우세한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생전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가장 깎듯이 모신 사람은 아들 지만군의 담임 선생이었다 한다. 어느 장관급 고위관료는 자식의 버릇없음을 고치기 위해 학급 담임을 집에 초대해 자기 은사 모시듯 예를 다했다고도 한다. 한 저명한 학자는 혹시라도 자기 아들이 선생님의 실력을 무시할까봐 자식이 물어온 난해한 문제를 잘 모르겠다고 한 후 몰래 선생님에게 전화로 답을 알려 주기도 했다 한다. 모두 교육계에 널리 회자되는 ‘존경 받는 스승상’정립에 대한 일화들이다.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고 바른 인간관계에 기초위에 바른 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정의한다. 그 중심에 선생님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전통적으로 존경받던 교사상이 허물어 지고 사제관계도 갈수록 매말라 가는 것이 세태다. 그런 마당에 ‘군사부(君師父)일체’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식의 유교적 가르침이 교육현장에서 먹혀 들리 만무하다. 예전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말썽을 피우는 학생에게 교사가 매를 들자 ‘선생님 돈많이 벌어 놨어요’하고 떠들더란다. 이런 섬뜩한 교실 분위기에서 어떻게 사제간의 정따위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바람직한 교육을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가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쯤은 이미 상식이다. 학교에서 제 아무리 잘 가르쳐도 가장과 사회의 협조 없이는 바람직한 교육은 기대난이다.그런 의미에서 지난 97년 창립후 어린이들의 질서·예절교육에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 사단법인 질서문화연구회(이사장 趙康來)의 활동상은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이 단체는 ‘사랑의 편지보내기’운동을 펼쳐 사제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한편 2백여명의 예의바른 모범어린이를 선발해 표창하는 등 소리내지 않으면서도 의미있는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잔잔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지난주 전주시내 초등학교 교장들을 전주컨벤션홀에 초청해 가진 보고회는 그런 노력들이 ‘작은 감동으로 확인된 큰 보람의 자리’이기도 했다. 사회가 아마뤼 각박해도 선생님은 존경받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그것이 교육입국의 근간이다. 질서문화연구회의 계속 정진을 기대한다.
막다른 길로 내몰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마침내 초강수(超强手)를 선택했다.대통령 임기를 1년3개월여나 남겨놓은 시점에서 자신의 통치기반인 민주당 총재직을 과감히 벗어던진 것이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씨등 전직 대통령들이 차기 후보를 선출해놓고 2∼3개월 후, 대선을 치르기 3∼4개월 전에 총재직을 내놓은 적은있지만 차기 대통령후보가 정해지기 전에 총재직을 사퇴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의 이번 결단은 자업자득이라는 극히 일부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는 느낌까지든다. 누가 김대통령을 이렇게 벼랑끝으로 내몰았는가? 두말할것 없이 치기(稚氣)어린 한국의 정치판과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그 주범이다. 제왕적 대통령, 인치(人治)의 대통령, 대중에 영합하는 대통령이라는 비난에 잘한 일은 감춰지고 못한 일만 크게 부각되어 여론으로 부터 뭇매를 맞았으니 그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것에 대해서까지 평가절하의 차원을 넘어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으니 어찌 아니 과로웠겠는가.게다가 당내에서는 정권재창출이라는 기치아래 벌써부터 대권경쟁에 정신이 팔려 레임덕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고 개혁세력들은 정권창출의 본산인 동교동계와의 결별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모두가 합심해도 정권재창출을 해낼수 있을까 말까 하는 판에 태생적으로 한계를 안고 태어난 민주당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꼴도 김대통령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도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이 어떻게 당운영을 민주적으로 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어쨋거나 김대통령은 여당 총재직을 깨끗이 버렸고 앞으로 정국은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을 정도로 흔미 해졌다. 사태를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고가서 이나라 이민족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의원까지도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든든하게 서있어야 나라도 좋고 야당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깊이 되새겨 볼 말이다.
구약성서의 사무엘 상편을 보면 엘라계곡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민족의 전쟁이 묘사되어 있다. 이름하여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맨손의 양치기 소년 다윗이 물 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시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한다.요즈음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략한 지 한 달이 넘어 서고 있지만 제1차 목표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그렇다고 제2차 목표인 탈레반 정권의 붕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싶어 보인다. 한마디로 전생 성과가 지지부진한 것이다.그런 와중에 와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구 소련이 10년 아프간 전쟁에서 얻은 것은 소련의 해체뿐이었다고 빈정대며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은 똑같은 결과를 맛볼 것이라고 미국의 부아를 돋구고 있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마치 장군에 멍군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복을 계속하고 있으며, 탈레반은 결사항전의 뜻을 결연하게 다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오사마 빈 라덴은 또 다른 보복을 꼭 하겠다고 하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탈레반 정부는 없어질 것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전쟁을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전쟁이 계속되면서 미국은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탈레반과 탄저균 말고도 반전 여론이라는 또 하나의 힘겨운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워싱턴과 LA 등 미국 주요도시에서는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중순에는 19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의 메카였던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시의회가 반전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미 뉴스워크지가 지난 3일 발표한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72%의 응답자가 미국의 공습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직은 압도적 다수가 전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치는 일주일 전보다 3%포인트, 그 전주에 비해서는 6%포인트 떨어진 수치다.해외에서의 반전 여론 또한 무시할 바가 아닌 것 같다. 이슬람 국가의 반미 시위대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으며, 영국을 비롯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반전운동의 확산이 더욱 거세 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글방인 서당(書堂)은 일종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에 관한 초기 기록은 사기(史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각 지방 평민층 자제들에게 경학, 문학, 무예등을 가르치던 경당( 堂)이라는 사학(私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처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려시대 서당에 관한 기록으로는 인종 2년인 1124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의 성장관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자세히 서술돼 있어 당시 서당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서당이 그대로 조선시대에 이어져 19세기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민중교육기관으로 그 기능을 다했다.이렇게 우리의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은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민간교육에 나서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후 우리나라를 병합한 일제의 교육말살정책에 따라 서당은 급속히 사라졌다. 일제는 1981년 ‘서당규칙’을 발표하여 전국에 2만4천여개소에 달하던 서당의 말살을 시도했다. 당시 공립 보통학교가 전국적으로 4백62개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할때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의 폐지는 일제의 민족교육 황폐화 책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당은 근대식 학제가 시행된 후에도 보통교육에 보조기관으로 명맥이 유지되다가 산간벽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급격히 쇠퇴했다.엊그제 김제시 성덕면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개인서당 낙성식이 열려 관심을 끌었다. ‘우리시대 마지막 훈장’으로 일컬어지는 화석 김수연(和石 金洙連·76)옹이 고향에 사재를 털어 마련한 ‘학성(學聖)강당’은 대지 8백여평에 건평 1백평 규모로 크고 작은 방 26개가 들어서 있어 1백여명의 수강생이 기거하면서 학문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50년간 학문전수에 힘써온 김옹은 앞으로도 전국에서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옛 선현들의 가르침을 무료로 가르칠 계획이라니 지극한 정성이 수강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극단적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왜곡되고 파괴된 가치규범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 말로 당면한 과제의 하나이다. ‘학성강당’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는 메카가 되길 기대해본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선심행정’이라는 말이다. 자치단체장들을 선거로 선출하다 보니 표를 얻기 위한 편의적 행정집행이 빈번해지면서 나온 것이리라.선심(善心)의 본래 사전적 의미는 ‘착한 마을’, ‘선량한 마음’ 혹은 ‘남을 구제하는 마음’등으로 좋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국사를 집행한다는 행정과 만나면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개인적 차원의 덕목이 공공 영역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선심행정이란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공정성,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합리적 기준이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결재권자에 의해 임의적으로 결정하여 집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체장의 판공비가 불투명하게 집행되는 것이나, 포상제의 남발, 그리고 요즘 언론의 집중 질타를 받은 바 있는 용역의 남발 등이 지방자치시대 대표적인 선심행정의 사례라 할 수 있다.축제나 체육대회 등 각종 전시성 행사나 사회단체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 혹은 ‘전관예우’형태로 자행되는 불필요한 위원회의 설립도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선심행정의 표본이다.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는 일이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일지라도 공공행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태도가 우선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선심행정에 현혹당하지 않는 성숙한 자세의 확보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쉽게 긍정을 해버리고 그렇지 않는 것은 선심행정이라 매도하는 이기주의야말로 선심행정이 기생하기 쉬운 숙주요 텃밭인 것이다.성숙한 시민의식만이 속보이는 선심으로 표를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막을 수 있다. 표가 급한 사람들이 반성할 것을 기다릴 게 아니라 그것이 표로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말이다. 시민 하나 하나의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기네스북(1996년판)에 오른 세계 최장수 인간은 일본인 이즈미 시게치요라는 사람이다. 그는 1865년 6월29일 태어나 1986년 2월21일 사망했으므로 정확히 1백20년 2백27일을 살다 간 셈이다. 그는 105세까지 일을 했으며 70세까지 독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기록상 최고 수명이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 살고있는 노인들도 없지 않다. 도미니카의 한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를 125세로 기억하고 있고 일본의 107세 쌍둥이 자매 할머니는 지금도 TV에 출연하는등 건강하게 살면서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유럽 알바니아의 산악지대나 코카서스지방,또는 요즘 테러전쟁으로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아프칸 같은 중동지역에도 장수마을은 수없이 많다. 110세된 아버지에 90세된 아들,70대손자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마을 풍경이 그렇게 평화로울수 없다. 대개는 문명과 등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깨끗한 공기,자연이 주는 식품이 장수의 비결이란 점이 공통적이다.엊그제 서울대 박상철(朴相哲)교수팀이 우리나라 장수 마을을 조사한 결과를 봐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인구 10만명당 100세이상 노인수가 21명 이상인 장수마을은 전국적으로 13개 지역이며 이들 지역은 대개 해발 300∼400m인 영·호남 구릉지역에 집중돼 있었다한다. 그중 전남이 7개로 가장 많았고 도내에서도 순창이 포함된것으로 나타났다.이 장수마을에 사는 100세 이상 노인들의 식생활을 보면 끼니마다 밥 한공기에 짜거나 매운 음식보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것으로 밝혀졌으며 술이나 담배를 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다. 노년의 건강은 타고난것이라기보다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학계의 보고도 있는지라 결국 이 노인들의 장수 비결도‘적게 먹고’‘잠을 잘 자며’규칙적인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무병장수(無病長壽)는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다. 그러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이치는 누구도 거스를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마련인 것이다. 다만 얼마나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다 가느냐가 중요하다. 장수(長壽)보다 금욕(禁欲)의 금도를 지키는 일,그것이 더 돋보이는 것이 세상 이치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주홍글씨’를 보면 목사와 간통한 죄로 간통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Adultery'의 첫 글자 'A'를 붉은 글씨로 가슴에 새기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던 비련의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등장한다.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인간을 가슴 설레이게 하는 묘약이 되어 왔고 때로는 깊은 수렁과 좌절을 주는 상처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불멸의 테마가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도 함께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사랑의 묘약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그런데, 남녀의 사랑과 혼인생활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 기차의 레일처럼 서로 평행선을 그리며 다른 길을 갈 때도 종종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간통죄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간통이란 배우자를 둔 사람이 자발적으로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강제적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강간과는 차이가 있으며, 성관계를 상품화하는 매매춘(賣買春)과도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간통을 가슴설레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시킬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역사적으로 간통죄 처벌은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따라서 서유럽의 경우, 간통에 대한 법적 제재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곧 그만큼 여권이 신장되었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주로 남성들이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고 여성들이 존속을 주장하는 흐름과는 좀 어긋나는 실정이다.간통죄 폐지가 어려운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우리 사회는 이혼한 사람, 특히 이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신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이혼을 하면 여성이 더 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서유럽에선 이혼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이나 불이익이 거의 없다. 오히려 독일에선 이혼한 여성에게 취업이나 면세 등 갖가지 혜택을 국가에서 주고 있는 실정이다.뿐만 아니다. 독일에서는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이 각각 네번씩 결혼하면서도 "재혼은 필수, 세번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을 마치 외치듯 서슴없이 하는데 그런 사회적 풍토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한순간 전 세계를 경악과 공포 속에 몰아넣은 미국 쌍둥이빌딩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사상자 수를 얼마로 예상하는가”라는 질문에 “지금은 희생자 수를 셀 때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존자와 부상자를 구출하느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더 이상 질문을 자제했고 이후 미국 언론은 테러의 주체와 배후에 대해서만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내비쳤을 뿐 어떤 추측 기사나 책임공방도 없이 하나같이 사태극복과 구조활동에 대부분의 기사를 할애했다.한 재미(在美) 언론인은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테러범을 향한 분노로 심리적 혼돈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나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고 놀랍도록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상황대처를 하는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지켜보면서 ‘위대한 미국’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한국 언론 풍토에 익숙한 자신이 사망자 수에 대한 호기심과 중앙정보국(CIA)에 대한 문책 수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같은 자신의 얄팍한 정서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요즘 한국 언론의 실태는 어떠한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미명하에 무차별적으로 또는 정략적으로 자행되는 폭로 기사,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기자의 식견과 객관성 부족 그리고 부주의한 감정 개입 등 으로 수많은 보도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정언(政言)갈등에 언론이 언론을 고발하는 언론사상 초우의 언언(言言)갈등까지 세기말적인 사건들이 판을 치고 있는 곳이 오늘날 한국 언론의 현주소요 부끄러운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다.물론 민주국가에서 언론사마다 각기 다른 견해를 갖는다고 그것을 탓할수는 없다. 또 정부의 언론정책이 반드시 옳다고 두둔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지 언론사와 언론인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겠다는 말이다. 언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여론독과점 현상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산소 원자 3개로 이루어진 오존(Ozone)은 약간의 푸른 색을 띠고 특유의 냄새를 지닌 기체로 산화력이 강하고 표백 살균에 사용된다. 지구상 오존 층량의 90%는 지표면 10∼50㎞의 성층권에 존재하며,그중에서도 25㎞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 층(層)을 오존층이라고 부른다. 오존층은 태양으로 부터 방출되는 강력한 자외선의 90% 이상을 차단하여 지구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자연산 필터 역할을 하고 있다.그런데 이 오존층의 파괴로 자외선 복사량이 증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환경재앙이 발생하고 있다. 오존층 파괴 주요원인은 20세기 들어 인류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냉장고나 자동차 에어컨등의 냉매로 널리 쓰이는 프레온 가스(염화불화탄소·CFC)를 비롯 할론,메틸 브로마이드등이 오존층의 오존을 파괴하기 때문이다.오존층이 1% 파괴되면 자외선은 2%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외선 증가는 피부암과 백내장 발병률을 높이며, 최근에는 동물의 DNA구조를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까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오존층이 10% 정도 감소한 호주에서는 전세계 피부암 환자의 6%가 발생하며, 해마다 1천명 이상이 피부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는 오존층 파괴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협약으로 89년 9월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으며, 우리나라도 91년 CFC등의 제조량을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80년대까지 계속 파괴되는 추세였던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이 90년대 들어 복원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연세대 오존관측소가 85년이후 매년 조사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99년 현재 한반도 상공에 있는 오존층의 오존량이 10년전인 89년에 비해 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같은 오존층의 복원현상은 오존층 파괴물질 사용을 줄인 것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 해도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 당장 눈앞의 편리함만을 목적으로 후손에 물려줘야 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죄악이다.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복원을 계기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할 때이다.
사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 가운데 하나다.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이나 세계 최고(最古)의 함무라비 법전도 사형의 적법성을 보여준다. 동서를 막론하고 흉악범에 대한 강력한 응보(應報)수단으로 대다수 국가들이 50여년전 까지만 해도 사형제도를 시행해왔다.우리나라도 사형제도 필요성을 계속 인정해오고 있다.지난 96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게 결정요지 였다.그러나 세계적인 추세는 사형의 폐지쪽으로 흐름을 타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대부분 2차대전 이후 사형제도를 없앴다. 엠네스티(국제사면위)에 따르면 올해 6월 현재 미국과 중국등 86개국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1백9개국이 이를 폐지했거나 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사형 폐지추진 움직임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다. 여야의원 1백54명은 지난달 30일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함께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불교·개신교등 국내 주요 종교계도 공동으로 11월 한달을 ‘사형폐지 촉구의 달’로 정하고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한다.사형폐지론의 논거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오판으로 억울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고, 범죄 억제효과가 없으며, 또 원시적인 보복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이에대해 존속론자들은 흉악범의 인권만 생각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으냐고 반박한다. 사형제도가 죽음에 대한 공포 및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는 주장이다. 피해자를 대신하여 국가나 징벌권을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헌재(憲哉)는 지난 96년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시대상황이 바뀌면 사형은 폐지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었다. 그 이후 5년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형제도 찬반논쟁의 가열에 따라 폐지론이 탄력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의 법감정이 흉악범의 인권까지 고려할 만큼 성숙됐는지는 의문이다. 충분한 여론수렴 절차가 필요한 사안이다. 사형폐지 운동의 귀추가 주목된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김 지사의 컷 오프설은 사실무근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지금, 우리에게 ‘호남’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