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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여러 천체를 관측 연구하는 천문학은 인류의 출발과 더불어 비롯됐다고 할 정도로 가장 오래된 자연과학이다. 고대문명 발상기에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따른 달력을 만들어 농경이나 수렵에 필요한 계절을 제시해주었고, 또 별의 움직임에서 신의 뜻을 살핀다고 하는 통치의 필요성에 의해 천체를 관측하였다. 바빌로니아·헤브라이등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천문학과 이집트의 천문학은 그후 그리스로 전해져 발전하였다.동양에서도 역시 고대부터 천체관측이 행해졌다. 그리스와 비슷한 시대인 한(漢)나라 때에는 천체관측 기기인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어 천체현상을 예보하기 위한 관측에 사용하였다. 원(元)나라 징기스칸의 손자인 훌라구는 13세기에 중앙아시아의 마라게에 천문대를 세워 천체관측을 하였는데 당시의 관측기기는 후대인 코페르니쿠스 시대에 유렵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우수했다고 한다.중국의 문화권에 속해있던 우리나라도 천문학분야에서 그영향을 받아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역법(曆法)이 도입되었다. 신라말기 선덕여왕때는 첨성대가 세워져 그곳에서 천체관측을 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나라 천문학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던 때가 조선 세종때였다. 천문기구인 서운관(書雲觀)이 확대되고 각종 관측기기가 제작됐으며, 세종 자신이 뛰어난 천문학자로서 관리들이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천문학 분야에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지역에 천문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전북도가 과학기술부를 방문하여 긍정적 입장을 받아낸 계획은 해발 1천34m의 무주 적상산 정상에 국비와 지방지 28억원을 들여 2백평정도 규모의 관측실과 관람실등을 갖춘 원형 천체돔 모양의 천문대를 건립한다는 것.적상산은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한 사고(史庫)가 있던 곳이며, 사고를 지키는 승병들이 기거했던 호국사가 자리한 역사의 현장이다. 또한 지난 90년대에 건설된 양수발전소의 상부 댐이 산정호수를 이루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청정지역인 무주에 천문대가 건립되면 또 하나의 명물이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 추진되도록 관계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오늘이 단옷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날을 일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겼다. 아낙들은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고 남자 아이들은 오시(午時)에 목욕을 하면 탈 없이 지낼 수 있다는‘단오 물맞이’를 하였다. 그리고 수리취떡(車輪餠)과 쑥떡 등 음식을 나누었고 그네뛰기, 씨름 등을 즐겼다. 단옷날에 애용한 창포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손발이 저린 증세를 가라 앉히는 등 약효가 분명한 것으로 보아 단옷날은 축사(逐邪) 정도의 미신적 의미가 아닌 조상들의 경험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절기인 것이다. 더구나 단옷날은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여름이고 모내기를 끝낼 즈음이어서,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실질적인 행사이기도 하였다.3,40년 전의 덕진 연못은 많은 사람들의 와서 단오제 행사를 즐겼던 곳으로 기억된다. 길가에 늘어선 좌판들,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 연못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 일찌감치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 막걸리를 파는 주막등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단오제가 설날, 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꼽혔던 것으로 보면 그 행사의 중요성이나 규모는 짐작하고도 남는다.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런 단오제의 명맥이 끊긴 모양이다. 단옷날인 오늘, 주변을 둘러보니 지역행사도 자리한 지 44년이나 된 풍남제가 눈에 띈다. 풍남제가 단오제의 전통을 반영하려고 한 행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풍남제는 1967년 풍남문 중건 2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전주에서 이루어진 행사를 통합한 향토민속축제라고 한다. 이런 설명대로 하자면 단오제의 전통은 이어져야 할 법도 한데 이번 풍남제는 프로그램에서 단오의 본모습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단오제를 염두에 둔 행사였다고 굳이 이야기한다면 풍성했던 그 겉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도 주최측에서 의도한 바와는 다른 안타까운 모습들로 말이다.풍남제라는 축제가 전주의 역사를 재발경하고 전주만의 흥겨움과 풋풋한 인정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소중히 여겨왔던 단오의 전통고 한 꼭지 자리차지를 했으면 한다.
신이 인간에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술도 각 민족이나 나라마다 내세우는 전통주(傳統酒)들이 있게 마련이다.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와인, 영국의 위스키, 러시아의 보드카, 몽골의 아유주, 멕시코의 데킬라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지역마다 특성을 지닌 술이 많아 3대, 5대 혹은 18대 명주(名酒)를 가려 뽑을 정도라고 한다.우리 조상들도 ‘적당한 음주는 백약(白藥)의 으뜸’이라고 했을만큼 술을 즐겼다. 고개를 넘으면 술맛이 다를 정도로 지방마다 독특한 가양주(家釀酒) 전통이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우리의 경우 고서(古書)에 나타난 전통 민속주의 종류만도 대체로 2백여종을 헤아린다.그러나 이같은 전통은 이땅을 강점했던 일제에 의해 단절됐다. 일제는 1916년 ‘주세령’으로 가정에서 술을 담그는 것을 금지했다. 광복은 일제에 의해 끊긴 우리 전통술의 명맥을 되살릴 좋은 기회였으나, 역대 정부는 일제의 주세정책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960년대에는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분으로 만든 식용 에틸알코올에 물을 섞어 마시도록 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전통주마저 사라져 갔다.맥주나 위스키와 같은 서양의 곡주가 술의 방효를 위해 맥아(麥芽·엿기름)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전통술은 누룩을 쓰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누룩중에서도 밀을 껍질째 갈아 반죽한뒤 곰팡이를 띄워 만든 막누룩을 주로 쓰는데 이는 쌀로 만든 일본누룩 입국(粒麴)과도 구별된다. 일본식 청주가 단순·경쾌한 맛인 반면 각종 무기질을 포함한 밀껍질이 들어간 우리 술은 그윽한 맛을 낸다.우리 전통술은 제조방법에 따라 쌀과 누룩을 발효시킨 술밑(酒田)을 맑게 여과한 약주, 술밑을 증류해 얻는 소주, 약주를 거르고 난 찌꺼기에 물을 섞어 거른 탁주(막걸리)로 분류된다.‘맛과 멋의 고장’인 우리지역에 엊그제 전통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주 전통문화지구에 자리한 이곳에는 전통술의 재현은 물론 한국의 가양주를 대표했던 도내 전통술 50여가지를 맛보고 담그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전시실을 비롯 발효·숙성실, 향음주례관등을 갖추어 놓았다.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전주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운영되길 기대한다.
김완주시장이 전주시장으로 취임하면서 문화재를 주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자물쇠로 채워져 있던 경기전을 열어 주민들이 건물 내로 들어가 태조의 어진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객사도 문을 열어 누구나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경기전과 객사가 전주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등장하였다.그러나 이번 월드컵 기간동안의 문화재 활용은 지나쳤다. 객사 안에 대형스크린을 설치하여 많으면 수천명까지 그 좁은 공간에 밀집하여 한국전을 보고 응원하도록 하였다. 다른 장소도 많은 데 하필이면 객사냐?객사는 보물 제583호로 조선 초 전주부성을 창건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개축되었다. 태조 이성계 출향지의 객사라 하여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고도 불렸다. 문화재를 주민에게 개방하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것은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화재에서 수천명이 모여 열띤 응원전을 벌이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여러 가지 불상사에 의해 문화재가 훼손될 수도 있다. 또한 문화재가 축구응원장소나 또는 행사장으로 전락된다면 원래 문화재로 지정한 의도가 크게 손상될 수 있다.전북유형문화재 제15호인 한벽당은 전주8경이 하나로 손꼽히며 빼어난 풍광을 자랑했던 곳이다. 청초한 물에 안개 낀 산수가 어우러져 조선시대 전주 최고의 정자였다.이곳에서는 풍남재의 일환으로 매일 4시부터 전통음식과 차를 맛보는 행사를 열고 있다. 각종 국악 공연도 이어지고 있다. 한 두 번이면 몰라도 매일 같은 행사를 한벽당 건물 내에서 지속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사적 339호인 경기전의 경우 건물 외부에서 행사를 하지 내부에서 행사를 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는 문화재를 주민에게 친숙하게 하고 문화재를 통해 전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그렇지만 문화재 건물 내에서 다중이 모여 문화재와 관련 없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행사는 하고 나면 지나가지만, 문화재는 후손 대대로 보존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다. 활용하더라도 문화재의 의미가 훼손될 정도까지 활용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종이를 크게 나누면 수록지(手鹿紙)와 기계지(機械紙)로 구분된다. 수록지란 사람이 손으로 떠내어 만드는 종이를 말하고 기계지란 이름 그대로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종이를 말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손으로 만든 종이라면 무조건 한지(韓紙)라고 부른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한지는 중국지( 紙)나 화지(日本紙)와 달라서 닥나무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우리고유의 종이를 말한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서 그 섬유를 대나무를 쪼개어 엮은 초지발을 이용해 떠 낸후 햇볕에 말린 종이다. 그공정(工程)이 매우 힘들고 까다로워 지금은 대량 생산이 힘들고 오직 전주지방에서 전통방식을 따라 특산품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한지와 대조적인 종이가 화지(和紙)다. 화지는 일본 사람들이 개발한 종이인데 투박한 한지와 달리 매끄럽기는 하지만 잘 찢어진다. 그래도 발이 고와 붓글씨를 쓰는 서예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화선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바로 그 종이다.한지는 장판지나 창호지와 같이 재래식 한옥구조에 주로 이용됐으며 물론 서예나 책자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다만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용도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용도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닥나무를 이용한 한지 생산외에 벤처기업에서 사진 인화지를 개발하기도 하고 한지를 옷감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선보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지금 전주에서 풍남제 행사의 일환으로 종이축제가 열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주 전통한지의 유래, 제작과정, 용도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한지 제품등을 선보여 국내외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전통한지를 가공한 패션쇼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 내게하기도 한다.특이한것은 동서양 작가들이 펼치는 국제종이작가초대전.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치러지는 이 행사에는 스웨덴과 독일등 유럽 작가들과 국내작가등 36명이 참여하여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종이에 표현하는 예술의 장을 마련했다 한다. 그중에서도 한지를 이용한 퍼포먼스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니 차제에 사라져 가는 우리고장 전통의 한지를 되돌아 보고 그 한지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높였으면 한다.
지금 60대에 이른 사람들은 6·25 전쟁직후 초등학교에서 분유를 받아왔던 기억을 갖고 있다. 미국이 식량원조 차원에서 지원해준 분유를 학교 급식용으로 나눠줬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것을 가공해 먹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터라 집에 가져다가 물을 붓고 쪄서, 딱딱해진 덩어리를 이빨로 깨먹던 기억들이 생생하다.서양 사람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우유가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으로 일상화된것은 60년대 초기 외국에서 젖소를 대량도입하면서 부터다. 물론 일제하에서도 연간 3천t 정도가 생산이 됐고 역사적으로는 3국시대에 이미 우유를 마셨다는 기록도 있긴 하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이 마시는 희귀식품으로 유우소(乳牛所)까지 둘 정도였다니 우리 민족도 우유와의 인연이 서양 못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우유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한 식품이라고 한다. 우유와 달걀의 발견은 식품 발달사에서 신(神)이 인류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까지 회자된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염장(鹽場)이나 발효에서 비롯됐듯이 서양음식도 우유를 가공한 치즈나 버터 포타주 소스등으로 점차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엔 단순히 음용(飮用)으로만 보급되다가 점차 유제품으로 가공되어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62년계 부터다. 낙농업이 성행하고 외국으로부터 젖소를 대량 입식한 결과다. 지금 40대이후 세대들이 마시는 우유나 가공 유제품의 대량 소비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그런 우유가 요즘 국내에서 푸대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한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된 분유 1만8천여t이 소비가 안돼 재고로 쌓여 있다는 것이다. 지난 98년 분유파동때의 1만6천t보다 13%나 늘었다니 제2의 분유파동이 우려된다. 도내 낙농가들도 과잉생산에 따른 우유 재고량 누증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낙농업협회등에서 ‘우유 마시기’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소비촉진은 아직도 기대난이다. 도대체 마시지 않는 식성을 탓할수만도 없는 노릇이니 딱한 일이다. 근본적인 생산량 조절, 늙은 소 도퇴작업, 정부지원책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차제에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우유 보내기’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한번쯤 검토해 볼 일이다.
온 나라에 ‘히딩크 열풍’이 불고 있다. 단순 비교할 성질은 아니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국 국민으로서는 처음으로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한(韓)민족의 역사를 새로 썼을때도 이처럼 열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19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 이후 본선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다 2002 한·일 월드컵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꺽고 48년만에 통쾌한 승리를 거뒀으니, 한반도가 들썩들썩 할만도 하다. 그것도 자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할것 처럼 보였던 한국 축구가 히딩크의 지휘봉 아래 다시 태어났으니,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 뭐가 이상하겠는가.정작, 히딩크 본인이야 “나는 영웅이 아니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성실히 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히딩크 신드롬’은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월드컵대표팀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전 국민이 1천원씩 모아 히딩크를 영원히 잡아두자” “히씨 성의 시조(始祖)가 돼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들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꼬리를 물고 있고 히딩크 제스쳐에 히딩크 인형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재계에서도 “히딩크는 선수 선발에서 부터 베스트 일레븐 확정때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고 공평한 잣대를 적용했다. 그는 스타플레이어 조차도 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탈락시켰다”며 히딩크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눈치 빠른 정치권에도 어김없이 히딩크 바람이 불고 있다. 유세장마다 히딩크의 지도력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엷은 하늘색 셔츠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히딩크 패션이 후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다 좋다. 16강에 오르는 것이 우리의 소원인데, 히딩크가 뜨면 뜰수록 우리는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 격언(格言)에 칭찬도 지나치면 욕(辱)이 된다는 말이 있다. 더구나 쉬 뜨거워지고 쉬 식는 국민성에, 1등과 꼴등만 있고 중간은 없는 극단적인 국민의식에, 기분나는대로 띄웠다가 기대에 어긋나면 여지없이 매도해 버리는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설혹 16강에 가지 못하더라도 호들갑을 떨면서 실망하거나 히딩크를 천당에서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유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할일은 다 한것 아닌가.
전주에서도 월드컵 교통대책의 하나로 자동차 2부제가 강제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동차 2부제가 아니더라도 자동차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통체증과 주차문제로 인한 불편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을 더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많은 재원의 확보와 도로나 주차장의 효율적 이용 면에서 한계가 있다.좀더 바람직한 방법으로는 다른 교통수단의 활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는 그 중 대표적인 대안 교통수단으로 꼽을 수 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현재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자전거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건축가 김수근이 생전에 서울의 교통대책으로 4대문 안의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대신 자전거를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자전거가 대체교통수단으로 자주 지목되는 이유는 그만큼 효율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교통흐름이 지체되는 시간대에 도로를 메우는 자동차의 탑승인원, 그리고 주행거리를 생각한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자전거로 대체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편리하고 경제적이며 건강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전주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 전용도로가 제대로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보행자와 차량 그리고 내놓은 물건들이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개설된 전용도로라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 주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자전거를 타라고 홍보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활용하게 될 것이 때문이다.
전세계 수백명의 사람들을 자살하게 한 전설적인 노래‘글루미 썬데이(Gloomy Sunday)’는 1935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연인을 잃은 아픔을 담은 노래다. 레코드로 발매된 당시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이 노래를 듣고 1백87명이 자살했다. 지금처럼 대중매체가 발달하기 전에 노래 한곡이 자살자를 속출시켰던 전설같은 얘기이다. 사회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자살에 대한 이론을 정립시키고 자살예방의 심리요법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10대 사망원인중에 포함될 정도로 이미 우리 사회의‘주요 현상’이 되었다.뿐만 아니라 갈수록 자살 사망률이 늘어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90년 한국인의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9.8명이었다. 그러나 10년후인 2000년에는 14.6명으로 49%나 증가한 것이 이같은 사실을 반증해 준다.지난주 또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20대 남자와 10대 소녀가 강원 양양에서 승용차 배기가스를 이용 동반 자살해 충격을 주었다.인터넷 자살사이트를 매개로 한 사건은 지난 2000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20대 남성 2명의 동반자살이 처음이었다. 그후 타인의 자살을 도와준‘촉탁살인’,자살사이트에 심취한 초·중학생의 자살사건등이 발생한데 이어 최근엔 자살 방지를 목적으로 개설된‘안티(Anti) 자살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알게된 30대 남자와 여고생 2명이 아파트에서 동반자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그때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했지만 신통한 해법을 찾지 못한채 끔찍한 사건을 다시 목격하게 된 것이다. 당국은 자살을 권유하거나 수법을 알려주는 사이트는 폐쇄를 유도하지만 실제로 검색사이트에 등록되지 않은 자살사이트가 수십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우리는 지금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인터넷 사용인구가 2천4백만명에 이르는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화의 역기능을 막아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보호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부정하는 자살사이트는 가동되어서는 안된다.
전주시 중앙동에 중국 패루가 준공되고 차이나타운이 만들어지고 있다. 패루는 전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소주시의 이름을 따‘소주가’란 이름이 부착되어 있다. 시가 추진하는 차이나타운 조성사업의 일환이며 중국 기술자는 물론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각종 건축자재로 만들어졌다.전주에 처음 중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이다. 그 이전에도 무역을 하는 청나라 사람들이 거주하였겠지만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07년 전동 성당을 짓기 위해 중국에서 벽돌공과 석공들을 불러온 것이 시초이다.그 당시 한국에서 벽돌을 굽고 또는 벽돌로 건물을 짓는 방법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중국사람들이 와서 해야했다. 서울의 명동성당을 지을 때도, 전주의 전동성당을 지을때도 그랬다. 그래서 중국인 백명정도가 전주에 와서 서문밖에 거주하였다. 현재의 다가동파출소 서쪽의 골목 양옆이 주거지역이다. 여기에는 1910년대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현재도 화교소유의 중국음식점, 화교소학교 건물이 있다. 이곳이 전주 최초의 차이나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이 서문에서 동문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때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길이다. 민족의 흔적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도로를 내기 위해, 일제가 전주성 서쪽벽을 1907년 부숴버렸다. 그 당시 서문밖에 살던 일본인들이 점차 현재의 중앙동 웨딩의 거리로 진출하여 동문사거리까지 이르렀다. 이 길은 전주시내 최초의 근대적 가로망이며 또한 관통로가 생기기 전인 1970년대초까지 전주 최고의 변화가였다. 어쨌든 동문거리는 전주의 근대를 상징하는 거리이다.홍지서림에서 동문사거리까지 오는 8일과 9일 동문거리의 축제를 한다. 주로 근대를 복원하고 근대적인 공동체, 추억을 되살리고 즐기기 위한 축제로 보인다. 동문거리에는 근대적인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그 당시의 문화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어 좋은 추억거리가 되리라 생각한다.중앙동 페루나 차이나 타운, 그리고 경원동의 동문거리축제가 우리의 옛추억도 살리고, 전주 역사의 연속성도 복원하고, 중국이나 일본과 새로운 차원에서 관계를 확대해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월드컵을 넘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6·13지방선거가 중반전에 접어 들면서 전국 곳곳의 유세현장이 말 잔치로 풍성하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험장에서 쏟아지는 후보자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역대 선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공약으로나 내세울만한 거창한 구호들이 쏟아져 나오고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는 온갖 험구와 흑색선전도 변함없다.지방자치도 일종의 정치행위라면 후보자도 정치인일수밖에 없고 정치인이 말을 잘 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말이란 많이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 말만 골라서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서양속담에 ‘많은 말은 칼이상으로 사람을 해칠수 있다’는 경구(警句)가 있고 ‘말이란 생각하는 것을 속이기 위해 인간에 주어졌다’고 설파한 프랑스 정치인도 있다. 할 말은 하되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아야 하며 품위와 절제의 미덕을 지킬줄 아는것이 ‘말잘하기’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방선거를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삼아 기세 올리기에 한창인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盧武鉉)민주당 후보간 말꼬리잡기는 도를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이후보가 ‘빠순이’나 ‘옥탑방’을 잘 몰랐다 해서 크게 흠이 될 일이 아니듯이 노후보가 흔히 쓰는 ‘깽판’이란 용어를 썼다해서 저질발언 운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작 문제 삼아야 할 ‘말 실수’들은 ‘공업용 미싱발언’이나 ‘창자를 꺼내 씹어 먹는다’든지 ‘정육점 칼로 집도하는 격’이라고 한 험구들이다. 친일파은은 하며 한 집안의 가계(家系)에 ‘놈’자까지 붙인 경우도 마찬가지다.지난 84년 미국 대선때 레이건의 유머는 지금 두후보간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고령과 관련하여 먼데일이 ‘너무 늙지 않았느냐’고 비꼬자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다. 너무 젊거나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받아 넘겼다. 미국 유권자들은 그를 선택했었다. 문제는 노후보의 언행을 사사건건 문제삼아 왜곡(?)과장을 일삼는 일부 언론보도에도 책임이 없지 않은것 같다는 국민들의 생각에 있다. 그러니 노후보의 가식없는 직설적 화법에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많은 그의 지지자가 늘어나는것 아닌가.
부모에 대한 효(孝)는 우리 민족에게는 변함없는 도덕과 윤리규범의 으뜸이다. 우리 조상들은 ‘효는 하늘의 불변하는 기준이요 땅의 떳떳함’(天之經 地之義)이라 하여 인륜을 넘어 천륜이라고까지 단언해 왔다. 공양미 3백석에 몸을 팔아 심봉사의 눈을 뜨게한 효녀 심청의 얘기나 부모간병을 위해 대변을 맛 보기도 했다는 효자의 얘기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는 효행이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그러나 효행록(孝行錄)에 전해 내려오는 이런 수많은 사례들이 오늘의 가치기준으로 볼때 얼마나 실천적 규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부모가 주신 머리털 하나도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전통적 효도관을 지금의 고도 산업사회에 대입(對入)시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낡은 사고(思考)일지도 모른다. 갈수록 더 해가는 핵가족화 영향으로 부모간이나 가족간 유대가 붕괴되어 가는 마당에 삼강(三綱)이 어떻고 오륜(五倫)이 어떻고 해봤자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오는 세태가 아닌가.물론 우리사회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효를 몸으로 실천하는 효자·효녀들의 얘기는 아직도 주변에 많다. 신부전증을 앓는 어머니에게 신장을 떼어준 딸, 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사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수술을 해준 아들의 효행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하지만 ‘장병(長病)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치매를 앓는 노부모때문에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불효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억울한 자식들도 많은게 우리사회다. ‘진자리 마른 자리갈아 뉘시던’하늘같던 부모의 은혜가 고부간이나 부자간 갈등으로 송사(訟事)의 대상으로 지탄받는 경우 또한 없지 않다.엊그제 경기도 의정부지원에서 내려진 ‘굶어죽은 노모’에 대한 판결은 새삼 효란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게 한다. 치매를 앓는 노모를 돌보지 않아 굶어 죽게한 며느리 대신 그런 정황을 알면서도 못본채 방치한 아들에게 법은 더욱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자식으로서의 최소한 도리’와 결과적으로 ‘가족간 불화의 씨앗’을 제공한 치매성 노인의 의식 상충은 과연 어떤 윤리적 잣대로 재단할수 있을까. 재판부도 도덕과 인륜, 효를 법으로 강제할수 밖에 없는 현시를 고민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런 경우가 어디 그 쪽 뿐일것인가에 생각이 이르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참정권(參政權·Politcal rights)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선거직이든 출마할 권리가 주어지지만 이따금 국민 정서에 크게 어긋나는 사람이 후보로 나서 정치를 희화화 시키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후보 자격을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에서조차 ‘인간쓰레기’취급을 당하는 위인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백번을 양보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물론 낙선을 시켜버리면 그만이지만 상처받은 민주 시민의 자존심은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지, 쓴웃음이 나온다.이번 6·13지방선거 후보자 신청을 마감한 결과, 전국적으로 모두 1만9백14명이 입후보 했는데 이 가운데 12.4%에 이르는 1천3백57명이 전과(前科)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전과가 꼭 불명예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훈장같은 전과가 있는가 하면 사회통념상 충분히 용인이 되는 불가피한 전과도 있다. 또한 전과가 있다고 해서 자격없는 후보요, 전과가 없다고 해서 훌륭한 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죄질이 흉악하거나 파렴치한 후보는 두번 다시 정치판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야 한다.전과기록이 처음 공개되는 이번 선거에서 최다의 전과를 갖고 있는 후보는 충남 논산시의원에 출마한 K모씨로 특수절도와 폭력·주거침입·상해 등 14범이나 된다. 경기도 연천군수 후보로 나선 Y모씨도 공무집행방해와 폭력 등 전과 8범이었으며, 서울과 광주 기초의원 후보의 경우 윤락행위방지법과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강간치상등의 반 윤리적 전과자도 끼어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 대부분은 전과기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그나마 위안이 된다.하지만 어쩌닥 정치판에 이런 막가는 사람들까지 출연하여 설치게 됐는지, 정치인은 물론 온 국민이 깊은 성찰을 해야할 것 같다. 정치가 오죽 만만하게 보였으면 감히 그들이 정치판을 기웃거리게 됐을까? 하기야 정치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에서조 조차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 1순위로 정친인을 꼽는다고 하니 정치, 그 초상(肖像)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여러 나라의 축구 사랑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이런 축구 사랑이 우리에게도 바람직한 모습인지는 좀더 숙고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축구 사랑의 한 방편으로 이루어지는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우리 나라에서도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열성을 다하고 있다. 지난 3월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서 쓰는 참여와 봉사활동이 하루에 4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시간도 예비군, 민방위 활동, 친척과 이웃돕기를 빼고 나면 하루 1분으로 줄어든다. 이런 우리 나라의 풍토에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보수로 월드컵 행사를위해서 봉사하는 이들은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들이 봉사를 하면서 얻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 봉사자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통해서 보람과 재미를 느끼기도 하며 자신이 가진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기도 하며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건강한 인성을 덤으로 얻기도 한다.그런데 지난달 26일 수원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자원봉사자가 사진기자에게서 폭행을 당하고 행사담당 관계자에게서 폭언을 듣는 일이 생겼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층할 때 우발적으로 몸싸움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사진기자가 순간적인 감정을 가누지 못하고 자원봉사자에게 사과했다는 사실에서도 수긍이 간다.정말 심각한 것은 그 폭행의 현장에서 자원봉사자에게 폭언을 퍼부은 관계자와 사태의 수습이랍시고 해명하는 글을 올린 축구협회에서 찾을 수 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폭행 현장에서 폭언을 퍼부은 관계자와 대한축구협회의 입장은 한 마디로‘맞을 짓을 했다’는 것이다. 죄목은 자원봉사의 태도가 불량했기 때문이란다. 이런 대한축구협회의 해명은 자신들의 설 자리가 어디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나 있는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이런 태도는 같이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배신감을 심어 주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우리에게 자원봉사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월드컵 행사는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런 자원봉사가 정착되려면 이들 자원봉사자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의 수급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구촌 최대의 축구제전인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대회가 열린뒤 지난 1998년 16회 프랑스대회에 이르기까지 숱한 파란과 이변을 연출했다. 70여년 동안의 월드컵 역사동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사건이 많았지만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제8회 월드컵에서 북한팀의 돌풍은 최대의 사건으로 꼽힌다.북한팀은 8강 진출전에서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를 1대0으로 유권한 뒤 8강전인 포르투갈전에서도 전반에만 3골을 터트리며 승리를 거머쥐는듯 했으나 수반들어‘검은 표범’에우제비오에게 무려 4골을 잇따라 내주면서 3대5로 역전패했다. 북한 선수들의 파이팅은 당시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월드컵에 단 한번 출전한 북한팀의 선전에 비해 한국축구의 그동안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하다. 한국축구팀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처음 오른 이후 지난 프랑스대회까지 다섯차례 본선에 진출하면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14차례 경기에서의 전적은 4무10패에 그치고 있다.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 한번이라도 진출한 나라는 모두 65개국이며, 한국은 이중 1승도 올리지 못한 18개국에 포함돼있다.한국축구가 대망의 1승, 아니 더 나아가 16강에 진출한 호기인 21세기 첫 월드컵이 오늘 저녁 서울 상암구장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신예 세네갈의 첫 경기로 막이 오른다.지난해 1월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한국대표팀은 18개월의 담금질끝에 역대 어느 대회때보다 16강 진출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세계 축구의 강호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와 가진 평가전에서 펼친 우세 내지 대등한 경기내용이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세계 저명 언론을 비롯‘축구 황제’펠레같은 전문가들도 한국축구팀의 16강 진출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흔히 쓰는 스포츠 금언으로‘공은 둥글다’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 승부세계에서는 그만큼 예측을 불허한다. 노력을 다한 끝에 얻은 자신감이 승리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자만하거나 과잉기대 또한 금물이다. 한국 선수들이 첫경기때까지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려 멋진 경기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히딩크의 지도하에 축구국가대표팀이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도저히 도전할 수 없어 절벽처럼 느껴졌던 영국, 프랑스 축구대표팀과 대등한 게임을 하게 되었다. 그의 리더십은 자치단체장, 대학총장, 기업인, 단체 회장들도 배울 점이 많이 있다.첫째, 그는 대표팀에 대한 인사권을 확실히 장악하였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어느 지도자에게나 이는 중요하다. 인사권이 권력자의 청탁, 주변의 압력, 뇌물, 연고에 의해 영향받게 되면 부하들이 외부줄을 찾아다니고 인사에 대한 신뢰를 잃어 눈치만 보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완전한 인사권 장악과 공평한 인사권의 행사는 조직의 활력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둘째,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파악하여 핵심과제를 간결하고 단순하게 제시하였다. 즉, 체력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의 해결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후반전만 되면 헉헉거리던 대표선수들이 90분간 전천후로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되면 팀전력이 획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의식을 고취시켜 선수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따르게 했다. 나머지 문제는 부차적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셋째, 연고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모든 가능한 자원을 활용하고 시험하여 실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를 선발하였다. 철저히 객관적인 평가표에 의해 선수의 능력을 평가 하였다. 이를 통해 모든 선수가 스스로 실력만이 살길이라며 최선의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결국 각 포지션에 최강의 선수를 배치할 수 있었다.넷째, 이제까지 감독만 보고 뛰면 선수들을, 스스로 생각하여 보다 나은 방법을 찾아 뛰도록 하였다. 즉, 감독감이 아니라 모든 선수가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하도록 하여 팀의 창조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였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그는 이러한 신선한 지도력으로 대표팀의 체질을 크게 바꾸어 놓아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지도자 하나가 엄청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러한 효과적인 리더십을 가진 후보들을 골라 뽑아보자. 우리 지역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고 실업자의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며 노는 일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래서 장기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들은‘살아 있으되 죽은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일종의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다.기억으로조차 떠올리기 싫은 IMF사태때 이런 실업자수는 전국적으로 1백20만명이 넘었었다. 기업·금융계 정부산하기관등 각계의 구조조정으로 내몰린‘황당한 퇴직자’들이 분노와 좌절감에 떨어야 했던것도 이때였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금 정부는 IMF위기로부터의 완전탈출을 선언했고 거시경제 지표로는 우리경제에 푸른 신호등이 켜진지 오래다.실제로 실업률도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점차 낮아지고 있다. 통계청이 엊그제 발표한 4월중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률은 3.1%를 기록하여 전월보다 0.3% 하락했고 실업자수도 70만7천명으로 전월보다 6만2천여명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계절적 요인으로 고용증가세를 일시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장미빛 통계인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아직도 우리 대학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빈둥거리는 고급인력이 여전히 수십만명에 달하고 취직을 못할바에야 아예 휴학을 하겠다는 학생들 숫자 또한 적지 않다. 인생의 황금기, 꿈과 희망에 가득차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현실의벽은 아직도 철옹성처럼 완강하기만 한 것이다.이 중에서도 지금 29세∼31세 이르는 IMF 피해세대(?)들의 고통은 너무 크다.(28일자 본보 1면) 그들이 군복무까지 마치고 대학문을 나섰을때가 정확히 IMF 위기때와 일치한다. 취업난의 한가운데서 입사원서조차 변변히 내보지 못한 그들은 스스로를‘부랑인 학번’이라고 자조(自嘲)한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연령때문에 취업전선에서 또다시‘왕따’당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실업상태가 장기화하면 분노와 좌절감은 차츰 사그라 들고 니체식 허무주의나‘될대로 되라’식 체념기에 빠져 든다고 한다. 장차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 젊은 세대들이 이런 실업증후군(失業症候群)을 앓게 해서는 정말 안된다.
음주문화의 변천도 시대상을 반영한다. 암울한 시대에는 술자리 역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희망의 시대에는 즐거움이 넘쳤다. 자유당 독재와 유신 치하를 거친 어두웠던 시절 사람들은‘취하기 위해’마셨지만 7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에는‘즐기기 위해’마시는 음주풍토가 조성됐다.그러나 주당(酒黨)에도 빈부격차는 있게 마련이라 음주행태는 확연히 구분된다. 한국이 세계 위스키시장의 첫번째 소비국이 될정도로 흥청망청 하는 호화사치 술꾼들이 있는가 하면 후주머니가 가벼워 포장마차 소주방을 기웃거리는 서민층 주당들의 애환은 여전하다.음주행태는 그렇다 치고 놀라운것은 포장마차의 변신이다. 50∼60년대 길거리에서 천이나 판자로 바람을 막으며 참새구이에 소주를 팔던곳이 포장마차였다. 그랬던것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 포장마차는 서민들의 단골집이 아니라 길거리 살롱으로, 음식백화점으로 거듭나 있다. IMF 경제위기가 오히려 포장마차의 성업을 도왔다는 아이러니가 성립된다.또하나, 80년대 이후 우리 음주문화에서 빼놓을수 없는곳이 노래방이 있다. 포장마차 같은데서 한 잔 걸친 주당들이 거의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이곳이다. 취흥이 도도한 술꾼들이 반주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기로 이만한 장소가 따로 없다. 포장마차와 노래방은 이제 우리나라 음주문화의 꼭지점에 있다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그런데 노래방에는 술이 없다. 흥에 겨워 기분내려고 찾아간 노래방에 술이 없으니 술꾼들은 불만이다. 물론 당국이 노래방에서의 주류판매를 금지하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건전한 유희공간이 음주로 인해 손상되고 자칫 음란·폭력 등 풍속을 해치는것을 방지하자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삭막하다. 노래방에서 알게 모르게 맥주류를 파는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도내 5백여곳의 노래방 업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상경투쟁을 벌였다 한다. 당국의 지나친 단속완화와 캔 맥주 판매를 허용해 달라는게 요구조건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글 일 없다면 이들의 요구가 그렇게 무리하고 보이지 않는다. 자고로 노래판에 술이 없으면 무슨 재미인가. 업계의 자정노력에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얼마 전 금융기관 노사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하였다 한다. 덕분에 26개 금융기관의 직원들은 좀더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앞으로 협상하게 될 다른 산업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금융자동화기기, 보안경비, 보안기기 업체 등이 그 혜택을 받겠지만 관광, 쇼핑 등 레저 문화 관련 시장이 크게 활성화될 전망이다.하지만 대다수 근로자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측과 사측이 주5일 근무에 대한 논의를 하고는 있다. 그러나 주5일 40시간 근무라는 큰 테두리에서만 합의를 했을 뿐 그 제도의 시행시기와 방법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타결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임금삭감 등 7가지의 선결요건을 받아들이라는 사측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측의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계제에 합의한 금융기관 노사의 합의는 어쨋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더구나 국가의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을 앞두고 이런 노사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염려는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틀림없어 보인다. 어느 한 편에 설 수 없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법’과 ‘원칙’을 내세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국가 이미지’와 ‘신인도’등을 고려한다면 정부는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노사관계가 원만하기를 바랄 것이다.문제는 그 동안의 노사관계에서 노측이 갖는 심한 불신감이다. 발전노조가 파업 이후 해고 3백51명, 고소고발 8백94명 그리고 무려 4천여명의 조합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와 임금, 재산 가압류 등의 압력 속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노사관계는 신뢰를 갖게 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계속된다면 월드컵 기간이라 하더라도 분규는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가 할일은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약자의 입장에서 합의를 도출하도록 중재하는 일이다.세계적인 흐름이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 추구라고 한다면 우리 나라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서로 합의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는 노사관계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정부가 맡아야 할 것이다. 당장 어느 한쪽의 불만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부의 소신을 기대해 본다.
고엽제는 원래 과일이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주변 수목의 무성한 잎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제초제의 일종이다. 고엽제가 전장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월맹군과 베트콩 근거지 주변의 숲을 황폐화시키기 위해 대량 살포하면서 부터다.고엽제의 종류로는 에이젠트 오렌지, 에이젠트 블루, 모뉴론등이 있는데 노란색 드럼통에 담긴 에이젠트 오렌지가 베트남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돼 고엽제의 대명사로 통했다. 고엽제 제조시에 5T등 여러 물질을 섞는데 혼합중 부산물로 생성되는 독성물질 다이옥신이‘피해의 주범’이다.미국은 1962년부터 1972년까지 10년동안 총1천9백만 갤런 상당의 에이젠트 오렌지를 살포했고, 한국군 작전지역인 광나이와 퀴논 등지에도 상당량이 뿌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일부 참전용사들은 독성은 모른채 살포하는 고엽제를 일부러 맞기까지 했다고 한다. 고엽제를 맞으면 모기등 벌레가 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엽제를 맞았던 파월장병들은 귀국후에 각종 피부질환과 신체마비 증상이 나타났으며, 암이나 정신질환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투병의 고통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까지 자주 발생했었다.지난 1993년‘고엽제 후유증 치료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뒤 지난해 6월까지 국가보훈처에 피해신청을 한 참전용사는 모두 7만2천여명에 이른다. 이중 4천1백48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3만8천8백77명이 후유의증(後遺疑症)으로 판정을 받았다.고엽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중 1만7천여명이 집단으로 1999년9월 고엽제 제조회사인 미국의 다우케미컬과 몬산토사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5조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2년8개월여의 진 심리끝에 어제 모두 기각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합의부는‘고엽제로 인해 발병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소멸시효인 10년이 이미 완성됐기 때문에 청구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그것도 우리 땅이 아닌 이국에서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절망감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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