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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부활 30년, 전북 지방자치 발자취와 미래] ⑥지방자치 새 시대, 준비와 한계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맞은 대한민국과 전라북도. 지난 30년간 민주주의 토양 아래 뿌리를 내린 지방자치는 올해 새로운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내년 시행을 앞두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더욱 신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중앙정부를 필두로 14개 광역자치단체뿐 아니라 전국 226개의 기초자치단체도 내년 지방자치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에 들어갔다. 준비 기간이 1년여밖에 되지 않는 촉박한 시간이지만 내실 있게 준비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짧은 준비 기간뿐 아니라 기초단체로 갈수록 지침과 현실의 괴리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실정이다. 광역자치단체보다 시(市) 단위, 그보다 군(郡) 단위 기초자치단체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2달여 남은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전라북도의 준비 모습을 확인하고,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향후 개선점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은 오는 2022년 1월 13일 시행된다. 지난 30여년간 기틀을 닦아온 지방자치의 새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로 평가 받는다. 개정안에는 지방자치의 중심이 주민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중앙과 지방 간 사무 배분에 관한 내용, 지방의 국제교류협력에 관한 규정 신설, 지방자치단체 기관구성 다양화 및 중앙지방협력회의 신설 근거 규정을 마련한 점과 특별지방자치단체의 구성에 관한 규정 등이 포함돼 있다. 2달여 앞으로 다가온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다양한 준비를 거듭하는 모습이다. 개정안에 대한 내용 가운데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인사권이다. 기존에 자치단체장에게 있던 의회사무국 인사권을 앞으로는 의회 의장이 행사하게 된다. 관심이 높은 만큼 논란도 많다. 전북에서는 지난 7월 전북도의회 지방자치TF팀을 신설했다. TF는 충남도의회와 전남도의회 등 타 시도 인사권 독립과 관련한 벤치마킹을 진행했고, 도내 시군의회와의 업무 연찬도 진행했다. 이와 관련한 전북도의회 자치법규의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도내 14개 시군의회에서도 중앙정부의 지침과 전북도의회와의 협업을 통해 지방자치법 개정안 시행에 맞춰 준비에 돌입했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의정지원관) 확충 등 지방의회 위상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크다. 특히, 내년 1월부터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 시행되지만, 관련 법령 개정이 늦어지는 등 인사권 독립이 반쪽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후속 법안 개정 작업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시행령 개정 작업이 늦어지면서 올해 말까지 지방의회 인사위원회와 소청심사위원회 설치 등을 위한 조례 개정을 서둘러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도내 한 기초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1년여의 준비 기간이 있었지만, 중앙부처에서 후속 법안 개정을 이제야 마무리하다 보니, 지방에서는 조례 개정하는 것도 바쁜 실정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마저도 광역의회는 사정이 양호하지만, 기초의회의 경우는 의회 사무국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더욱이 지방의회에는 자치 조직권이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인사권을 갖게 되더라도 실질적인 행사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직원 정원 수 등을 정할 수 있는 조직권은 지방의회에 권한을 주지 않고 여전히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개정안에서 의회 자체적으로 외부 전문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길은 열어두었지만, 정작 예산 편성권이 없기 때문에 인사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초의원 2명당 1명꼴로 마련된 정책지원 전문인력도 확대된 지자체의 권한을 감시견제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일각에서는 정책 지원 전문인력이 지방의회 의원의 사적 업무에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초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법 시행을 준비하면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많다. 중앙이나 광역단체만큼 준비가 안 된 것이 현실이라면서 현재도 시도의장협의회, 시군구의장협의회에서 중앙정부에 현실을 고려한 다양한 건의를 하는 것으로 안다. 내년 시행 이후 발생할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줄일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하진 시도지사협의회장 전북도와 중앙부처에서 근무한 행정공무원이자, 민선 4~5기 전주시장과 민선 6~7기 전북도지사까지. 40여 년을 행정관료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송하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이자 전북도지사. 지방자치, 특히 전북의 지방자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다. 송하진 시도지사협의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하진 시도지사협의회장은 지방자치를 두고 관치행정에서 주민행정으로 발전해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32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등으로 새로운 제도적 개선 성과도 나타나는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송 협의회장은 그동안 지방자치법에 포함된 지지부진했던 과제들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통해 한발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시작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면서 향후 지방자치의 틀을 재편하는 중요한 개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떠오른 지방정부 역할의 강화,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방분권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예측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에 판단과 대응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지방분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그는 지방분권의 핵심은 중앙집권적 권력 운영의 패러다임을 지방분권적으로 전환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지방의 혁신 역량을 활용하고, 지방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승화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여전히 한계와 개선점이 많다고 꼬집기도 했다. 지방자치 제도개선을 위한 일정의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중앙중심적인 정책 결정으로 인해 자치입법행정권재정권이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다는 것. 송 협의회장은 특히 지방재정 측면에서 지방세 비중 증가는 낮은 데 비해, 지방행정 수요 및 사회복지 강화에 따른 지방 대응비 요구는 급증하고 있어, 지방재정의 자율적 운용 여지는 줄어들고, 실질적 재정수요는 늘어나는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상황은 실질적인 지방자치 구현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대선정국에 지방분권 논의가 소홀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송 협의회장은 현재 2022년 대선을 대비해 각 후보가 나름대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방분권에 관한 공약을 내세우는 분은 보이지 않아 아쉬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천경석
  • 2021.11.15 16:51

[뉴스와 인물] 임근홍 전문건설협회장

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대표회원들의 만장일치로 12대 회장 보궐 선거에 임근홍 유림건설 대표가 당선돼 오는 25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다. 임근홍 당선자는 역대 협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종합면허를 갖지 않고 전문면허만 보유하고 있어 전문건설업계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궐선거에 당선됐기 때문에 중앙회장에 나서기 위해 사퇴했던 김태경 회장의 잔여임기동안 재임하지만 12대 회장의 임기가 중앙회장과 맞추기 위해 4년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앞으로 3년간 협회를 이끌게 된다. 업역폐지에 따른 전문업계의 수주난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소통과 단합으로 하나되는 협회를 내세우고 있는 임근홍 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장 당선자를 만나봤다. - 먼저 만장일치로 당선을 축하합니다. 당선소감과 협회 운영방침에 대해 한 말씀. 장기화된 건설경기 불황과 건설산업 생산체계 개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도내 3000여 전문건설업체를 대표하는 자리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0여년간 건설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온 저의 인생처럼, 회원사가 당당한 협회, 신뢰받는 협회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전문건설업계가 지역경제에 차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시다시피 국내 건설산업은 국토의 종합적 개발과 국민의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도모하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문건설업은 현장에서 직접 시공을 담당하고 있어, 관내 장비와 자재 사용의 주체로 지역의 일자리 창출 및 소비 활성화를 이끌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업으로 지역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건설업계와 지역건설산업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지원과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 업역제한 폐지로 전문건설업체들의 어려움이 확산되고 있다는데 어떤 상황입니까. 건설산업 혁신방안의 일환으로 업역규제를 폐지하기 위한 정부 정책에 따라 올해부터 종합건설과 전문건설의 상호시장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상호 공정한 경쟁을 도모한다는 법 개정 취지와는 다르게 종합건설의 등록기준 조차 충족하기 어려운 영세한 전문건설업체는 기존의 공사물량까지 빼앗기며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로, 추가적인 보완책이 매우 시급한 상황입니다 - 업역제한 폐지가 전문건설업계에는 불리한 조건이라는 데 원인이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전문건설업체가 종합건설 대상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전문건설업보다 3배 이상의 자본금과 기술인력을 요구하는 종합건설의 등록기준을 갖추고 여러 전문업종을 보유해야만 합니다. 이는 상호시장 개방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높은 진입장벽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현재는 극소수의 업체만이 종합공사의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반면, 종합건설은 전문건설 대상공사에 손쉽게 참여가 가능하여 정부의 섣부른 정책 시행이 야기한 건설업계의 참사라는 업계의 여론이 팽배합니다. 16개 시도회장이 힘을 합쳐 업역폐지에 따른 전문건설업체들의 불리한 조건을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 할 계획입니다 - 회원사 권익보호를 위한 대책은. 상호시장 진출 허용으로 일방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전문건설업체의 권익보호와 생존권 수호를 위해서는 관련 법령의 합리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중앙회 및 전국 16개 시?도회와 업계의 의견을 모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더불어, 다른 불공정 관행들도 면밀하게 살펴 회원사의 경영여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지역업체 수주물량 확대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부당한 업역 침해 사례에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민관 발주처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전문건설 공사 발주의 당위성을 알리고 발주물량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현재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설치운영 중인 하도급 전담부서와 유기적인 업무공조를 통해 관내에서 시행중이거나 예정된 대형 건설공사에 도내 전문건설업체의 참여비율을 제고하고, 우리 지역 전문건설업체의 홍보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하겠습니다 - 하나 되는 협회를 표방하고 있는데 협회의 소통과 단합을 위한 계획은. 회원사는 협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협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회원사의 마음이 협회의 운영방향이 될 수 있도록, 집행부 뿐 만 아니라 도내 시?군별 지역협의회와 업종별 운영분과위원회를 통해 회원사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하여 협회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회원사가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통창구를 마련하여 하나 된 협회를 만들겠습니다 -끝으로 3000여 도내 전문건설업계를 이끄는 회장으로서 각오 한 말씀. 저를 단단히 믿고 뜨겁게 지지해 주며 도회장이라는 중책에 만장일치로 추대 해준 회원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회원 한분 한분의 진심을 가슴 깊이 새기고,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 전문건설 발전을 위해 전력질주 하겠습니다. 보다 굳게 결집된 협회로 거듭나 지역건설산업의 활성화와 전문건설업계의 권익보호를 위해 더욱 노력해전문건설사업자의 위상을 높이며, 늘 회원업체와 소통하는 협회가 되겠습니다. 사무처의 업무능력을 향상키시고 회원사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는 한편 불공정한 관행 근절과 적정공사비 확보로 회원사들의 경영여건을 개선하는 데 혼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완주군이 고향인 임근홍 회장은 1962년 생이며 (유)유림건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년 넘게 전문 건설업에 투신해오며 회원사의 단합과 결속을 통해 도내 전문건설업계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점을 소신으로 가지고 있으며 외지건설업체들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전북건설시장의 변화를 위해 지역건설업체들의 공사참여 확대를 위해 힘쓰겠다는 각오을 다지고 있다. 주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친밀한 성격이지만 결심한 일은 주도면밀하게 추진하며 여건이 성숙되면 자연스럽게 유도해가는 전형적인 조용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라북도회 제9대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제11대 부회장과 제11대 포장공사업 운영분과위원장,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제11대 대의원 등을 역임했다. 임근홍 당선자는 협회발전과 함께 코로나19로 더욱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지원사업과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 지역 문화행사 지원사업 등을 통해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기획
  • 이종호
  • 2021.11.14 16:54

[뉴스와 인물] 요소수 지역 공급 나선 김기원 (유)아톤산업 대표이사

전국적인 요소수 품귀 현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지역에 보탬이 되고자 통 큰 결단을 한 익산의 중소기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호남 유일의 요소수 생산업체인 (유)아톤산업이 그 주인공. 지난 2014년 설립부터 아톤산업을 이끌어 오고 있는 김기원(59) 대표이사는 자신의 책상에 정말 잘돼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를 두고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그런 긍정적 마인드가 아톤산업이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톤산업은 이번에 익산시와 요소수 우선 공급 약정을 체결하고 익산시민과 전북도민의 숨통을 트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자그마한 중소기업이 큰 성장을 이뤄낼 기회를 고스란히 시민과 도민 혜택으로 돌리면서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11일 김기원 대표이사를 만나 통 큰 결단을 내린 이유와 경영 철학을 들어봤다. - 이제 호남은 물론 전국에서 아톤산업의 명성이 자자합니다. 먼저 통 큰 결단을 내리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 회사는 정말 작은 중소기업입니다. 요소수 생산이 주된 분야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워낙 품귀 현상이 전국적으로 심해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통 큰 결단이라고 할 것까지도 사실 없습니다. 지역업체로서 무엇이라도 나름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차에 마침 익산시와 협조체계를 구축하게 됐습니다. 사실 품귀 현상이 본격화되자 여기저기 연락이 많이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지역에서 마을버스나 소방차, 구급차, 건설기계 등 꼭 필요한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사태만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를 택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물량으로 공공성을 담보해 공급할 수 있도록 익산시와 협의를 한 것입니다. - 정헌율 익산시장과 협약을 맺고 익산시민을 대상으로 우선 공급 약속을 하신 후 팔봉동 공설운동장에서 공급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습니까.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요소수의 경우 중국에서 원료를 들여와 제조를 하는데 중국의 상황이 쿼드나 베이징 올림픽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변화가 생겼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이번 품귀 사태가 빚어진 것인데, 업계 점유율이 큰 일부 대기업들이 미리 준비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희 회사 같은 중소기업은 보통 4개월 전에는 미리 원료를 수입해 놔야 안정적으로 공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된 물량을 아직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저희 회사는 생산을 하는 업체고 판매는 그 다음입니다. 저희가 생산을 하면 이것을 시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익산시가 공간을 내어준 것이지요. - 사실 요소수가 무엇인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요소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요. 경유자동차의 배기가스, 각종 산업시설, 발전소 등의 연료 연소과정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은 호흡기 장애를 유발하며 태양 자외선, 매연 등과 반응해 광화학 스모그나 인체에 유해한 각종 2차 오염물질을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문제 해결 및 환경규제 강화에 발맞춰 질소산화물을 저감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질소산화물을 질소와 물로 환원하기 위한 촉매환원제입니다. - 많은 직원이 딸린 기업을 운영하면 당연히 이윤이 최우선과제입니다. 회사로 보면 너무나도 좋은 기회가 온 셈인데요. 품귀 현상이 극심한 가운데 공급을 한다니까 전국에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재 저희 회사는 10리터를 1만2000원에 공급하고 있는데, 어느 기자분은 시중에 최하 3만원대에 유통이 되고 있어 차액을 단순 계산해 보면 일일 2억원 가까운 추가 매출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지요. 그저 지역업체로서 조금이나마 지역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현재 아톤산업 현황을 보면 차량용보다 산업용 생산이 더 많고, 호남지역에서는 아톤산업이 유일한 생산업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란이 없었다면 하루 100톤 정도로 사실 충분합니다. 실제 전북과 전남은 물론 충청이나 경상도지역까지 공급을 하고 있으니까요. - 아톤산업과 같은 중소기업이 지역에서 더욱 성장해야 한다는 말들도 많습니다. 대표님의 경영 철학과 앞으로 회사 운영 방침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회사는 환경 분야 전문 기업입니다. 무엇보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 슬로건입니다. 아울러 고객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 끊임없이 성장하고 힘차게 도약하는 기업,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라는 목표도 항상 가지고 매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품질 만족을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노력하면서 성장해 나가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5월에 설립한 기술연구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전문적인 기술 인력과 노하우로 제품의 기술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연구소는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연구개발 전담부서로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 익산시민은 물론 전북도민들도 아톤산업의 통 큰 결단에 무척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코로나19도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습니다. 한때 마스트 대란이 일었지만 이제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번 요소수 사태 역시 시민 여러분들이 현명하게 잘 대처해 나가고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물론 당장 생업에 지장을 받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럴수록 지역사회가 함께 조금씩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요소수 우선 공급 약정도 그 일환입니다. 부디 혼란을 틈탄 꼼수나 비양심적 행동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군산 출신인 김 대표이사는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와 호원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지역 내 환경업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4년 아톤산업을 설립했다. 이후 그동안의 오랜 환경분야 경험을 살려 요소수를 비롯한 환경약품 생산, 폐기물 수집운반, 환경전문공사, 환경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 기획
  • 송승욱
  • 2021.11.11 18:07

전북대학교병원 심장내과 이상록 교수

하루 평균 10만 번, 평생 약 30억 번 쉼 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심장 속 대동맥판막은 그만큼 닫혔다 열리며 온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공급한다. 그 문(門)이 노화 등의 이유로 좁아지면 혈액 흐름에 장애가 생기고, 심할 경우 심장이 멈출 수 있는데 그것을 대동맥판막 협착증(aortic stenosis)이라 한다. 주로 65세 이상의 고령에서 발병하는 이 질환은 처음에 무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놓치기 쉬우나 발현 후 2년 이내에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약 50%가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치명적이다. 특히 전북 지역은 70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타지역에 비해 높으며,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에 따르면 전북 지역은 인구수가 유사한 타지역 대비 대동맥판막 협착증(비류마티스성 대동맥판막장애)의 진단 수가 높은 편이다. 2017년 전북 지역 최초로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AVI 시술)을 성공했으며, 올해 TAVI 시술 50례를 달성한 전북대학교병원의 심장내과 이상록 교수를 만나 대동맥판막 협착증과 증상,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심장은 신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장기입니다. 심장에는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기 위한 4개의 판막이 있는데, 이 중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위치하는 판막이 대동맥판막입니다. 노화로 인해 판막에 석회가 쌓이게 되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심장을 통한 혈액 흐름에 정체가 생기고, 심장 과부하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심장은 피를 온 몸으로 보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고 점차 심장 근육이 두꺼워집니다.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다 보면 결국 심장이 멈추기도 합니다. 주로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에 고령층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 역시 증가 추세에 있다고 예상됩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주요 증상은 무엇인가요. 심장 부위 통증과 호흡곤란, 실신과 같은 증상이 있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협착증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되기까지 특별한 자각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사망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심한 증상을 가진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의 경우 5년 내 생존율이 20~30%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본인이 고령층이고 평소 숨참, 심장 통증을 자주 느낀다면 가까운 내과에서 검진을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있나요. 환자의 증세 호소와 더불어 신체 검진상 심잡음의 존재로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심전도, 심초음파, 좌심도자검사, 심혈관조영술을 이용해 검사할 수 있으며, 대동맥 판막 협착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검사는 심장 초음파 검사입니다.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빠르고 불편하지 않게 대동맥판막협착을 검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증상이 나타난 후에 검사, 치료를 하게 되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협착의 정도가 상중하 중 상인 경우, 기대 여명이 2~3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령인 경우 평소 근처 병원 등에서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치료 방법과 각각의 특징 및 장단점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치료에는 수술과 시술이 있다. 지금까지는 흉부외과에서 가슴을 절개하고 인공판막으로 대체하는 수술적 대동맥판막 치환술(SAVR)이 주된 치료법이었습니다. 수술을 통해 인공판막을 삽입한 경우 15년 정도 효과가 지속되었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여는 수술적 치료는 고령 및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위험성이 크거나 부적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가슴을 열지 않고 대퇴부, 허벅지 쪽 혈관을 통해 인공 판막을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 판막 삽입술인 TAVI 시술이 개발되어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신 마취도 필요 없어, 고령의 환자나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적합합니다. 시술 시간이 짧고 통증이 적으며, 무엇보다 입원 기간이 짧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전북은 전국적으로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입니다. 지역 내 질병 발생률이 높은 편인가요. 전북도민 중 발병율이 얼마인지 확실한 통계는 없으나,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노화에 따라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75세 이상에서는 2% 정도의 발병률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전북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나이가 5세 정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고령화로 인해, 타지역에 비해 발병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때문에 전북대병원은 도민들의 건강을 지키고자 최우수 인력과 최신 장비 도입 등과 같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북대병원은 전북 최초의 TAVI 시술 기관 이자, 최근 약 80건을 TAVI 시술 사례를 달성하며 지역 내 최다 TAVI 시술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는. 올해 초 TAVI 시술을 진행했던 환자 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92세 남성 분이셨는데 전주천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기시는 분이었다. 병원에 방문하시게 된 계기도 자전거를 타다가 이전과 다르게 숨이 차는 느낌이 들어 진단을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자택 근처 병원에서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시고 검사 결과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확인되어 TAVI 시술을 받으셨습니다. 전북대병원에서 진행한 사례 중 가장 고령의 환자였음에도 시술 직후 증상이 호전되는 걸 환자 본인이 느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시술 후 2주 후 쯤, 전주천에서 자전거 타고 계시는 환자 분을 뵈어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고령이었음에도 예후가 좋아,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보람된 사례입니다. -마지막으로 환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심장 초음파 검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드렸지만, 모든 병원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청진을 통해서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있는 경우, 좁은 심장 판막을 통해 혈액이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특이한 잡음이 들립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청진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진에서 잡음이 발견되신 분들은 꼭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심장 초음파에 대한 건강보험이 확대됨에 따라, 기존에 25만 원 정도였던 일반 경흉부 검사가 본인부담금 3만~9만 원으로 크게 부담이 줄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빠르게 질병을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 교수는 국내외 심장내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다. 국내 급성심근경색증 환자의 치료 사례를 분석한 한국인 급성심근경색증의 현황에 대한 등록연구(KAMIR)에서 약물 용출 스텐트 삽입술의 임상의학적 안전성 연구로 관상동맥 중재시술 국제학술회의에서 2008 우수 연구상을 수상했다. 또 심혈관질환의 위험인자로 알려진 Lp(a)의 인종, 유전적 및 산화스트레스 차이와 주요 심장 질환의 관련성을 연구한 논문이 심장학 분야의 세계적 저널인 Circulation에 게재됐다. 이 교수는 전남대학교 의학 박사를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심장내과 교수, 전북대학교병원 심장내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대한심혈관중재학회의 학술위원회 위원, 대한심장학회 정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 교수는 지난해 1월 7박8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전북 지역민뿐 아니라 세계인의 의료 복지를 위해 힘쓰기도 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1.11.09 18:03

[전북 명산, 회문산의 속살] ⑨역사문화관광자원 활용 방안

회문산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산 자체 험준하지 않지만 큰지붕(정상)을 중심으로 첩첩산중을 이룬다. 빼어난 절경은 아니지만 참나무류 단풍나무 산벚나무 철쭉 진달래 등 다양한 식생물들이 봄가을 등산객들을 즐겁게 한다. 회문산을 둘러싸고 삼면으로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하천들이 섬진강과 합류해서 빚어내는 풍경도 특별하다. 여기에 빨치산, 의병, 종교, 명당 등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이런 자연과 역사적 자원을 가진 회문산이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이 운영 중인 자연휴양림 정도가 회문산을 상징한다. 역사적 자산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보존되거나 아예 방치돼 있다. 빨치산은 치욕의 역사로 꽁꽁 가둬두고 있고, 의병활동 무대는 산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 회문산의 잠자는 역사를 깨워야 한다. 역사의 깊이를 더하는 재조명 작업과 함께 흩어진 역사를 모아야 한다. 각계 의견을 종합하면, 도립공원화가 답이다. 회문산권이 순창 임실 정읍 3시군에 걸쳐 있고, 회문산이 품고 있는 역사문화적 자산 성격이 각기 달라 하나의 테마로 삼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문산의 중심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은 회문산이 갖고 있는 역사문화적 자산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말 그대로 산 속 휴양림에 머물고 있다. 회문산 역사관이 설치됐으나 역사적 장소임을 간략하게 소개한 패널이 사실상 전부다. 의병빨치산종교발상지동학농민혁명명당 등 테마별로 구분해 각각의 전시실을 갖추고 관련 내용을 유물과 사진 등으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 현재 30평 남짓한 회문산 역사관은 빨치산 역사관으로 쓰기에도 왜소하다. 산림청은 당초 회문산 자연휴양림에 빨치산 전북도당 총사령부 건물과 빨치산 숙소인 움막, 통신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활용했던 물레방아 발전시설 등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부 복원된 사령부마저 붕괴위험이 있다고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회문산 역사관을 신축했다.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던 자리에 6.25 양민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고, 빨치산 교육시설인 노령학원이 있던 곳을 물놀이장으로 만들었다. 지리산 빨치산 활동과 관련해 경남 하동과 산청은 그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경남 하동군과 산청군은 각각 지리산역사관과 지리산빨치산 토벌전시관을 만들어 당시 빨치산 생활상과 총기류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함양산청하동군 등 경남 3개 군은 6,25전쟁 50주년을 앞두고 지난 99년 잊힌 빨치산의 자취와 이동통로를 발굴, 빨치산 루트까지 조성해 역사교육장과 테마등산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회문산에서 의병의 역사가 묻혀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북에서 의병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순창의 의병 활동을 종합적으로 체계화시킨 연구가 미약하고 역사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 또한 미흡하다. 순창군이 회문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양윤숙 의병장 생가와 흉상공원다목적 운동장 등을 갖춘 의병공원 조성을 추진하다가 이마저도 중단했다. 순창에서 면암 최익현과 함께 눈부신 의병활동을 했던 돈헌 임병찬이 의병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던 회문산 서북쪽 기슭의 훈련장은 풀이 무성한 채 당시 역사를 소개한 유적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회문산 정상 부근에 돈헌의 무덤이 있으나 이 역시 역사적 자산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양대 거봉이었던 전봉준과 김개남의 피체지가 공히 회문산권이지만, 행정권역에 따라 기리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순창군은 전봉준 장군 피체지인 쌍치면 피노리에 기념관을 만들고 피노마을에서 회문산을 따라 구림면 금상마을까지 압송루트를 복원하고 있다. 반면 정읍 산내면 회문산 기슭에서 붙잡힌 김개남의 피체지는 그저 장소 표시만 남아 있다. 회문산의 역사적 자산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문화예술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남부군을 통해 회문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회문산에 관련 문학비 하나 없다. 한국전쟁에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의 장으로 삶기 위해 휴양림 내 비목의 숲과 해원의 숲을 조성했으나 감흥을 줄 콘텐츠가 없다. 한명희 시 비목과 김소월 시 산유화 등의 작품을 돌에 새겨두고 있으나 역사성지역성과 거리가 있다. 이태와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한 후 전향했던 순창 출신 김영 시인의 문학적 성과를 조명하고 시비를 건립한다면 회문산의 문학적 자산이 될 것이다. 영화 남부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데도 인색하다. 영화 줄거리의 중심 무대며 실제 영화 촬영 분량이 적지 않았던 회문산에 영화 관련 안내문조차 없다. 고창과 장수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영화남부군촬영지라고 관광홍보에 활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까지 회문산을 소재로 간간이 학생백일장과 작가회의 연수 등 문예활동이 열리기도 했으나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된 것도 아쉽다. (끝) 이영춘 신부 회문산은 박해를 받던 초기 천주교 신도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 천주교 교우촌은 박해시대에 형성된 종교인 취락으로서 독특한 취락형태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그 모습이 사라져 자취만 남아 있지만, 특정한 시대특정 집단의 취락구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역사문화사적 의미가 크다. 경계지역에 자리잡은 위치성, 세속과 떨어져 영적인 가치를 추구한 진정성(수도자적인 삶), 교우촌에서 이루어졌던 여러 가지 독특한 종교문화, 선교사들도 감탄한 이상적인 공동체성 등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의미들을 천주교 교우촌은 담고 있다. 일본의 경우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고토지역을 보존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전라도 지역은 교우촌이 가장 많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취락형태의 현장을 잘 보존한다면 역사문화적, 교육적, 관광문화적으로 훌륭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회문산에 묻힌 김난식은 김대건 신부의 유일한 형제이다. 최근의 성지순례는 이름난 성지보다는 신자들이 살았던 교우촌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적지들을 순례하는 추세이다. 이런 기회에 김난식과 김현채를 조명함은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는 김대건 신부의 집안들이 가장 많이 내려와 살았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로 내려온 그의 집안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김난식과 김현채를 기억하는 일은 순교자와 순교자적 삶을 함께 기억하는 중요한 자리매김이 될 것이다. 특히 동정(부부)으로 산 삶은 치명자산의 복자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부부의 맥을 잇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회문산은 피난처이자 희망처이다.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회문산으로 피신해 희망을 키웠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세상을 향한 희망을 꿈꿨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이런 곳들을 연계하여 회문산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회문산은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품고 있으며, 가까이 옥정호를 끼고 있어 현재에도 많은 도민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이 지역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면 더 확장된 역사문화관광 활성화에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전라북도 전체를 보면 이 지역에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도립공원이 지정되면 도민들에게나 지역민들에게 경제적문화적 유익의 창출에 크게 도움되리라 생각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원용
  • 2021.11.08 17:0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06)칠광도에 담긴 칠보의 유산

칠광(七狂)이라 불린 일곱 선비가 있다. 1613년 인목대비를 폐위한 광해군에 반발하여 상소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정읍 칠보에 은거한 김대립, 김응빈,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상형, 이탁 일곱 명의 선비를 칭하는 말이다. 시대를 걱정하며 스스로 미치광이가 된 그들의 모습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칠광도(七狂圖)」속의 주인공으로 남아있다. 그림 속의 장소는 옛 고을의 관청이 있던 마을을 뜻해 고현동이라고도 불린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와 시산리 일대이다. 최치원을 대표하는 역사성으로 정통성을 지니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그 맥을 지켜 전라도 서원의 수원 역할을 수행한 무성서원과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1401-1481)이 제창한 향약과 향음주례에 유래를 둔 태인 고현동 향약으로 500여 년이 넘도록 향촌 사회의 약속이 시행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칠광도」는 고종의 어진을 그린 어진화사로 유명한 채용신이 1910년 칠보면에 있는 김직술의 집에 머물며 칠광 중의 한 명인 송민고의 그림을 토대로 「송정십현도」와 함께 그린 그림이다. 「칠광도」는 비단 위에 채색한 가로 83.4cm, 세로 127.7cm의 크기로 고을의 경관이 그림지도처럼 상세히 표현되어 당대의 지형과 건물의 특징 그리고 칠광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지역의 귀한 자산도 담은 특별한 그림이다. 아름다운 산수화처럼 묘사된 산은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을 모신 산이라 하여 주민들이 성황산이라 부르는 산이다. 그 아래 지금의 무성리 무성서원과 주변 건물을 포함한 원촌마을 그리고 향약을 실시하고 문서를 보관하는 동각이 있는 남전마을과 시산 아래 지금의 시산리인 송산마을이 그려져 있다. 짐을 실은 나귀와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싸리나무로 보이는 나무로 얼기설기 담을 이룬 모습이 정겹다. 하지만, 마을을 지나는 물길은 1735년 대홍수를 비롯한 홍수와 섬진강댐을 만든 이후에 달라졌다. 서유구(1764-1845)가 『계원필경집』에 언급한 석귀와 유상대의 모습은 「칠광도」에도 찾아볼 수 있는데, 최치원이 성황산의 기를 보하기 위해 인공으로 만들었다 전해지는 흰 거북 바위와 자연 바위인푸른 거북 바위 그리고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는 현재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최치원이 유상곡수(流觴曲水)하며 풍류를 즐긴 것으로 알려진 유상대의 모습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유상곡수는 물길을 만들어 술잔을 물에 띄워놓고 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읊던 것으로 곡수연이라고도 불렸던 선비들의 놀이였다. 유상대는 태인 고현내에 있는데 고운 최치원 선생이 창건하였다란 묵재정언충의 시구와 시산 아래는 유상대가 있는데 대의 위쪽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대의 아래에는 굽이 도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라는 오백여 년 전에 쓰여진 정지유의 『유서석산기(무등산기)』에 기행문으로 남아있다. 그림에는 양 물길 사이 버드나무와 느티나무가 우거진 중심에 큰 바위를 빙 둘러 석축을 쌓은 것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신라의 포석정 등 정원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모습과 달리 작은 돌산과도 같은 바위 주위에 자연스레 냇물을 들인 것으로도 추정된다. 유상대는 훗날 태인 현감을 지낸 조상우와 그의 후손인 조항진이 복구했지만, 여러 차례의 홍수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에는 감운정이 세워져 있다. 이렇듯 한 고을을 다채롭게 표현한 아름다운 지도이자 풍경화인 「칠광도」인데, 의외로 그림의 제목이 된 주인공인 일곱 선비는 송정 아래 소나무 사이에 비밀스러운 듯이 작게 묘사되어있다. 세상을 등진 은둔자로 지조를 지키며 음풍영월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채용신의 의도가 돋보인다. 선비들이 담소를 나누고 사색하는 장소이자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의 절개에 비유하여 송정으로 이름 지어진 아담한 정자는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정 위에 자리한 영모당에는 「칠광도」와 칠광의 김응빈,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탁를 포함한 김관, 김정, 김급, 김우직, 양몽우를 열명의 어진사람으로 표현해 그린 「송정십현도」의 모사본이 모셔져 있다. 아래쪽에 후송정은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지만, 지금은 물이 말라 있고 민가가 들어서 그림과 옛 사진에 담겨진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어린 시절 이 근방을 놀이터 삼아 놀던 추억이 있는 향토연구가 오원근(1964년생)은 칠보면지와 「칠광도」를 접하고는 발굴하는 일에 몰두했다며 물길이 달라졌지만 마을에서 백구라 불린 흰 거북바위는 원천마을 입구 쪽과 푸른 거북바위인 청구는 태산선비문화관과 한옥민박촌 인근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또한,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안성열(1961년생)관장은 무성서원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전해준 데에는 옛 모습을 보여준 「칠광도」의 역할이 컸다 하였다. 「칠광도」속에 담긴 면면과 무성서원의 모습이 지속 가능한 지역의 가치를 증명해준 셈으로, 이를 전승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칠광도」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지정 추진에 힘쓰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내장산의 단풍나무를 비롯한 정읍의 산천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향연을 보고, 「칠광도」의 흔적을 따라 옛고을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고요한 가운데 사물이 변화하는 것을 바라본다는 정중관물화(靜中觀物化)란 편액이 걸린 송정을 찾아 계절의 변화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으리라.

  • 기획
  • 기고
  • 2021.11.03 16:59

[전북 명산, 회문산의 속살] ⑧문화예술로 녹아든 회문산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무겁게 짊어졌던 회문산은 문화예술적으로 어떻게 형상화 됐을까. 회문산의 역사적 무게에 비해 문화예술적 성취는 전체적으로 크지 않다. 그럼에도 회문산을 무대 삼거나 소재로 한 문예창작 활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빨치산 활동을 기록한 이태의 수기 <남부군>과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회문산을 조명하기 위한 지역 작가들의 문예 활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빨치산에 가담했던 이태(1922~1997)가 저술한 수기 형식의 <남부군>은 회문산을 일약 빨치산 활동의 중심무대로 올려놓았다. 1988년 <남부군>이 발간됐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병주와 조정래가 각각 장편소설 <지리산> <태백산맥>을 통해 빨치산 문학의 길을 열었다면, <남부군>은 작가의 직접 경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이 책은 저자가 빨치산에 입문한 회문산에서부터 지리산에서 체포될 때까지 기록이다. 서울에서 합동통신 기자로 활동하던 저자 이태(본명 이우태)는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온 뒤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로 흡수돼 전주지사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빨치산 입문 계기였다. 1950년 9월 연합군이 군산에 상륙하면서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를 따라 그 대원이 되어 회문산으로 들어가게 됐다. 회문산 독수리부대를 거쳐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돼 17개월간 체험을 기록한 것이 바로 <남부군>이다. 저자와 빨치산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남부군>이 생생하게 전한다. "구림천 골짜기 거너너 저편에 봉리는 7백미터대의 장군 회문연봉, 그리고 어느 골짜기엔가 사령부가 있을 시퍼런 산덩이는 마치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믿음직하게 보였다. 섬진강가로부터 급경사를 이루며 솟아 오른 회문봉의 나무 없는 정상은 옛 얘기에 나오는 고성처럼 장엄하고 신비로웠다. 거기서 말안장처럼 한 번 숙었다 다시 솟은 장군봉은 거대한 바윗덩이를 잇고 있어 투구바위로 불렀다. 회문산괴를 이루는 이 두 봉우리는 이듬해 3월 사령부가 소백산맥으로 이동할 때까지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의 메카였다. 어떤 위기를 당했을 때도 아득히 그 봉우리들이 바라보이면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든든했다" 회문산 무대는 국군의 집중 진압작전에 따라 덕유산까지 1개월에 걸쳐 이동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이현상 지리산 빨치산 투쟁과 체포될 때까지 과정을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이태의 <남부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태 본인의 빨치산 활동이 17개월에 불과하고 하급 간부로서 정보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일면만을 다루거나 잘못된 기술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남부군>은 이태의 풍부한 화술로 묘사된 개인사의 정리일 뿐 당시 빨치산의 집단적 삶과 의식을 객관화한 것은 아니라는 비판이 곁들여진다. 그럼에도 이 책은 회문산 빨치산 활동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 작품으로, 회문산의 빨치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태는 1952년 생포된 후 사상 전향하였고, 이후 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민추협과 YS의 민주산악회 간부를 지냈으며, 회문산을 몇 차례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남부군' 포스터. 회문산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데는 영화 남부군이 큰 몫을 담당했다. 이태의 <남부군>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부군은 1990년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3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대체로 원작을 충실히 따랐으나 개봉 당시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금기시됐던 빨치산 소재라는 이유로 종북논란도 제기됐으나 이후 오히려 반공물 성격이 짙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87년 6월 항쟁 이후 변화된 사회환경을 수용하고 시대적 담론을 반영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빨치산의 치정관계를 다뤘던 영화 <피아골>(1955)마저도 고뇌하는 빨치산을 등장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친공영화로 매도됐던 걸 감안하면 큰 변화며,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태백산맥이 나올 수 있었던 밑거름도 됐다. 이 영화로 정지영 감독이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안성기최민수최진실은 각 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여러 후일담을 남겼다. 제작기간이 3년으로, 원작자의 빨치산 활동 기간이었던 1년 7개월보다 길었고, 동원된 엑스트라가 연인원 3만명에 달했다. 주연이었던 안성기가 89년 한 해 꼬박 이 영화를 촬영하느라 그 해 출연 작품을 내지 못했으며, 극중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27일간 머리를 감지 않았다고 한다. 최진실과 임창정(고교 1년)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했다. 영화 촬영지는 오대산을 중심으로 지린산포항 보경사 등 전국에 걸쳐 있다. 주인공 이태가 활약했던 회문산에서 촬영한 장면은 주요 전투 장면과 철수 장면이다. 또 회문산 입구 안정 마을 앞 치천에서 빨치산들이 모여 식사하는 장면 등이 촬영됐다. 아지트를 배경으로 한 빨치산 활동상은 고창 선운산 정상과 용문굴 일대에서 촬영됐고, 이현상의 남부군 빨치산 500명이 목욕하는 장면 촬영지는 장수읍 덕산리에 있는 덕산계곡이었다. 구절초공원으로 가는 길인 정읍시 산내면 능교리 능다리(만경대 다리)에서는 경찰과 전투 중 총상을 당한 이태를 박민자(최진실)가 치료해주던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이곳은 영화 타짜와 드라마 전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회문산 로케이션 촬영때 영화 제작진과 주요 배우 등 약 30~40여 명이 순창읍에 숙소를 정하고 1주일 정도 숙식을 했으며, 당시 지역에선 영화배우 이야기가 큰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김영 시인 회문산부터 지리산까지 이태와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함께 한 순창 출신의 김영 시인(1929~1995, 본명 김웅)은 <남부군>에 실명으로 비중있게 등장한다. 영화 남부군에서 최민수가 그의 역할을 맡았다. 이태가 남원수용소에서 6개월만에 풀려난 것과 달리 김영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 20년형으로 감형을 받고 복역 중 폐결핵으로 12년 9개월만에야 가석방으로 출소했을 만큼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순창농고를 졸업하면서 시집을 내며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영은 198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후 그 해 첫 시집 <깃발 없이 가자>를 출간했다. 그는 또 자전 수기 <총과 백합꽃>(1988년) <빨치산 철창수첩>(1990년)에 이어 서간집 <두 하늘에 띄우는 그림>(1991년)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자신의 삶과 시대적 아픔을 절절하게 토해냈다. 그의 삶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이에 앞서 <신동아>(1965년 12월호, 논픽션 우수작)에 게재된벽과 인간을 통해서다. 고향 순창으로 내려와 쓴 어느 전향자의 수기라는 부제를 단 이 논픽션은 그가 어떻게 빨치산에 들어가게 됐으며 그 후 포로수용소와 형무소 생활이 어떠했는지 일기체 형식으로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처음 기독교사회주의에 가까운 생각을 품고 있었으며 원거리에서 코뮤니즘을 경험했으나 차츰 환멸을 느껴 오래 방랑과 고민 끝에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 코뮤니즘을 청산하고 전향하게 됐다. 그가 빨치산에 들어가게 된 것은 연세대에 재학 중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순창으로 내려왔을 때 열성 남로당원 친구와 붉은 완장을 찬 여친 영향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12년 감옥살이 후에 남은 것은 폐병과 심장병과 위궤양 뿐이나, 만신창이 몸으로 생존경쟁의 광장으로 나선다. 제로. 아무것도 없는 영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지금 아무런 이력서도 없고 증명서도 없다. 도민증도 없고 당원증도 없다 보호자도 없고 집도 없다. 어디로갈까. 쿼바디스. 이제야 나의 구원자는 내가 되리라. 목숨보다 소중한 자유의 선물을 헛되게 해선 안된다.(1964년 12월19일자 일기) <빨치산 철창수첩>에서 그의 역사적 인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책 서문에서 (빨치산) 비극의 역사가 그대로 망각의 늪에 빠져버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고 저술 배경을 설명했다. 또 책 발간과 관련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묶은 상처를 다시 헤집어내는 것은 더없이 아프고 쓰린 일이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또다른 비극을 방지하는 일이자 살아남은 자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장교철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은 순창이 낳은 천재로까지 일컬어졌던 김영 시인은 분단이 준 처절하게 함몰되고 희생된 시인이다며, 김영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원용
  • 2021.11.01 16:57

[뉴스와 인물] “한옥마을에 제2의 국악방송을 세우고 싶어”

유영대(65남원사진) 국악방송 사장은 전주 한옥마을에 제2의 국악방송을 세우고 싶다고 했다.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국악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국악방송의 새로운 센터를 세워 한옥마을의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전주는 국악의 성지이고, 물적인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에 충분히 (성공)가능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올 9월 1일자로 국악방송 사장에 임명된 이후, 창립 20주년을 맞은 국악방송의 미래 비전을 가다듬느라 바쁜 와중임에도 전주를 특별히 언급했다. 단순 고향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악 분야에서 전주가 갖고 있는 중요성 때문이었다. 본보와의 인터뷰 도중에 그에게는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 예산 확보를 위한 국회 차원의 대응, 프로그램 개편과 공연 기획 등에 대한 문의로, 그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좁은 의미의 국악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음악이라는 큰 범주로 확장해 세계화의 물결에 대응하겠다며 새로운 20년의 비전을 제시한 그를 서울 마포구 상암동 국악방송 본사 사장실에 만났다. - 교수에서 방송국 사장으로 변신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적잖게 고민했죠. 그러나 조직을 관리해 본 경험이 있어 자신이 있었습니다. 특히 국악과는 오랜 인연이 있는터라 나름 계획이 있었습니다. - 본 전공은 국문학인데, 국악과의 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조부께서 고 임방울 명창을 집으로 초대해 후원할 정도로 판소리에 관심이 많았고, 제 자신도 어렸을 때 남원에서 창극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그게 나의 토양입니다. 전주 우석대 재직 시절에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유치를 위해 국악과 교수들과 함게 공연했고, 서울로 올라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도 맡았습니다. 특히 당시 청이와 춘향를 올렸는데, 국내 대표 방송프로그램 제작사인 박스 미디어에서 지금껏 본 창극중 최고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MB정부 땐 유인촌 장관으로부터 다시 한번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 국악방송TV 활성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향후 계획은. 인력과 예산이 너무 부족합니다. 현재는 최악의 상황이죠. 그래서 국악방송 시청자들이 도중에 채널을 절대 돌리지 않고, 직원들이 중도에 퇴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제 기본 목표입니다. 먼저, 방송은 11월 1일부터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바꿔나갈 것입니다. TV의 완성도도 높일 것이고요. 오디션 프로는 이미 여러 방송국에서 시작한 터라 내년으로 연기했는데, 내년에 최고 퀄리티의 오디션을 선보일 것입니다. 방송 진행은 국악인만을 고집하지 말라며 열어놨습니다. 대중가수가 진행하는 국악방송을 밤 10시부터 2시간 생방송으로 할 예정입니다. 또 취침 전 시간에는 국악은 50%만 하고, 나머지는 탱고 등 다양한 장르를 방송하라고 했죠. 우리가 하는 도전을 지켜봐 주세요. - 최고의 오디션 프로를 만들 복안은 있는지. 현장에선 실력은 최고이지만, 스승의 만류로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 여타 방송국에 비해 국악방송이 갖는 경쟁력은 무엇인지. 물량 등의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콘텐츠는 너무 좋습니다. 문제는 콘텐츠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인데, 잘만 해놓으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대는 방송국이 아닙니다. 세계화입니다. 그래서 슬로건로고도 바꾸라 했습니다. 앞으로는 K-MUSIC으로 쓸 계획입니다. K팝처럼 K브랜드로 가는 것이죠. -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삼겠다고 했는데, 가능성은 어느정도 입니까. 가능성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통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국악 밖에 없습니다. K팝이나 K컬쳐가 있으나, 자칫하면 다 무너져 버립니다. 그런데 국악이라는 베이스가 탄탄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한류는 국악에 있죠. 외국인들은 우리의 민요나 판소리를 들으면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동합니다. - 외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 정도가 아닌지. 호기심은 10분 정도면 충족됩니다. 그런데 4시간을 앉아서 듣는다는 것은 호기심 차원을 넘어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흥된다는 것이죠. 파리에 가면 퓨전처럼 가는 아이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하지만, 안숙선 선생이 가서 완창을 하면 숨도 안 쉬고 다 지켜봅니다. 세계 시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 좋은 작품 못지 않게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중요할 것 같은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시절에 주한미군을 초대해 공연한 적 있는데, 모두들 황홀해 했습니다. 공연 후 평가를 보내와서 월 1회 미8군에 가서 창극단 공연을 했습니다. 그 때 느낀 게 외국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게 쉽다는 것이었죠. 그들이 훨씬 감수성이 예민하고, 우리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국악을 모릅니다. - 최근 방송국 오디션 프로에서 소리꾼들이 K-팝과 크로스오버(특정 장르에 다른 장르 요소를 합친 음악)한 곡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두가지 입장입니다. 정통국악 고수론자의 입장에 보면 냉소적이지만, 국악방송 사장 입장에서는 아주 바람직합니다. 자꾸 저렇게 돼야 합니다. 그런다고 판소리가 훼손되지 않죠. 오히려 원형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위와 같은 형태가 나온 이유가 있습니까. 2000년대 초반에 제가 시도했던 것인데, (국악이) 어떻게든 박제화되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 표출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형태가 또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것이죠. - 전주는 대사습놀이 등 판소리 중심지였는데, 최근엔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주 한옥마을에 제2의 국악방송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 본사 처럼 국악방송의 새로운 본부로 말이죠. 현재의 위치보다 좀 더 큰 극장을 인수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공개 생방송하고, 관광객들이 모두 들어와서 배우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생각입니다. 자치단체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제2의 국악방송을 굳이 전주에 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전주는 국악의 성지같은 곳입니다. 특히 전주는 인적물적으로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악을 관람할 수 있는 관람객도 이미 훈련돼 있죠. 한옥마을에 들어서게 되면 한옥마을은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전주의 랜드마크가 한옥마을이라면, 한옥마을의 랜드마크는 국악방송이 될 것입니다. - 국악방송이 2001년 개국 때 서울 본사와 남원의 중계소로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까. 남원이 민속 음악의 본 고향이기에 당연한 것이죠. 그 만큼 남원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남원을 살려야 되는데, 안타깝습니다. 한 때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것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합니다. - 그 기회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남원에 국립민속국악원을 유치할 때 기획했던 게 북한과의 교류였습니다. 북한은 민족 가극 춘향전이 있고, 우리는 창극 춘향전이 있기에 남북교류하자고 했죠. 그 때가 1993년으로, 당시 키를 쥐고 있었던 고 윤이상 선생을 만나러 베를린을 갔죠. 계획안을 들은 윤이상 선생은 이후 김일성을 만나 제안을 했고, 김 주석은 한다고 했죠. 그런데 그 해 김 주석이 사망하는 바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 때 그 계획이 성사됐으면 남원이 세계적으로 클 수 있었죠. 1956년 전북 남원 보절면 출생. 남원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상경, 서울 배문고-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졸업 후 1985년 우석대 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10년간 전주에서 활동하다 1995년 고려대로 옮겼다. 올 8월 정년 퇴임 후 국악방송 사장에 임명됐다. 임기는 국립국악원장으로 옮긴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 1일까지다. 국문학자보다 판소리 전문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과 국립중앙극장 창극단 예술감독, 판소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2006~2012년) 시절, 총괄했던 공연 청을 비롯해 창극 산불춘향 등의 작품은 지금까지 많은 국악인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 같은 공로로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대상을 비롯해 다수의 국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사 논문을 심청전 연구로 썼던 그는 이후 국악과 연을 본격적으로 이어간 그는 전주MBC에서 10여년간 판소리 기행을 진행한데 이어 KBS FM-판소리 기행(3년간)과 국악방송 유영대의 판소리 여행(12년간)을 진행했다. 국악방송은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고 박재윤 초대 국립민속국악원장을 내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며 나의 스승이시다고 했다. 실용응용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 2000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원에 문화콘텐츠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 기획
  • 김준호
  • 2021.10.31 17:04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