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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새로운 한 달간의 축제와 특별전, 월드비빔위크 '비빔의 맛'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축제 전주비빔밥축제는 2021년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4주간 매주 주말에 운영된다. 전주향교길 일대에서 소규모 온오프라인 형식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비빔밥이라는 하나의 음식이 아닌 비빔을 뜻하는 어울림에 의미를 두고 맛으로 다양한 만남을 만드는 축제로 초점을 맞췄다. 기존의 축제에서 나아가 더 많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올해, 2021년에는 류재현 문화기획자를 총감독으로 위촉하였다. 새로운 총감독이 그리는 2021년 전주비빔밥축제는 부제 월드비빔위크(World Bibim Week)에서 예측할 수 있다. 하나의 음식 비빔밥이 아닌 서로가 어울리는 문화 비빔의 축제다. 이번 전주비빔밥축제는 음식문화를 매개로 지역과 사람을 엮는다.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매주 주말마다 비빔위크(커플의 날), 비타민위크(아내의 날), 단백질위크(남편의 날), 월드위크(가족의 날)로 사람이 어울린다. 전주한옥마을에 집중하되 구 시내 객사, 웨딩의 거리, 동문길 등 전주 대표 상권과 함께 축제에 어울리는 특별한 요리와 할인 혜택이 펼쳐진다. 축제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전주 전역으로 뻗어나간다. 외식업협회 완산지부와 덕진지부의 협업으로 이날만 즐길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고 소개한다. 축제 기간 동안 어우러진 전주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가장 전통적인 지역이지만 젊은 세대가 더욱 즐길 수 있다. 그는 전국에서 오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전주다운 축제를 보여주고자 한다. 과거 문헌을 보면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고 했다. 골동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 데 넣고 비벼서 만든 밥을 뜻한다. 2021 월드비빔위크 특별전 《비빔의 맛》은 골동의 의미를 받아전주와 음식이란 키워드로 지역간, 세대간, 사람간 어우러진 만남을 소개하였다. 특별전은 〈명인의 맛〉〈향교의 맛〉〈그릇의 맛〉 세 가지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명인의 맛〉은 전주 음식 명인들의 세월의 이야기와 소장품을 소개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주사람들의 자랑 중 하나는 밥맛이 좋다는 것이다. 전주 밥맛을 지켜주는 건 누구일까.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명인명가들이 담아낸 음식은 수십 년 닦아온 그들의 솜씨로 비롯된 것이다. 기존의 명인명가의 음식을 감상한 것에서 나아가 이번 특별전의 3, 40년 거뜬히 함께했을 삶의 이야기와 세간살이를 마주한다. 〈향교의 맛〉은 타지 작가들이 전주향교를 담고 표현한 전시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는 김물길, 양명준, 이루다, 최근우 작가가 이번 전시를 꾸민다. 전주향교길이 이색적인 그들이 시선에서 자신만의 재능으로 표현하고 담고 전한다. 타지 사람의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늘상 보던 거리에 새로운 맛을 더하는 뚜렷함이다. 전주사람들에게는 관광지나 천변 산책로로만 여겨지던 거리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이방인이 그리는 전주의 시선을 즐겨본다. 〈그릇의 맛〉의 맛은 전주 방짜유기장 부녀와 남원 소목장과 옻칠장 부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그릇은 좋은 음식의 완성이다. 훌륭한 음식을 만들고 알맞게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이 다채로운 만큼 그릇의 생김새도 다양하며, 공예가들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공예가의 정성어린 솜씨로 만든 그릇을 충분히 만끽해본다. 전시기획은 콩나물국밥으로 시작하였다. 2021 전주비빔밥축제 류재현 총감독님은 8월 11일, 전주왱이 콩나물국밥집에 들렸다. 총감독님은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유대성 대표와 대화하였다. 대화는 영감을 꽃피운다. 이 전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어쩌면 100년이 넘는 주걱과 도마를 만난 것이다. 소녀의 얼굴이 보이는 오래된 주걱, 3대를 거치며 깊게 파인 도마를 보며 오랜 시간 만들어낸 명품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맛깔 나는 음식의 도시, 전주의 명인들은 보물을 그들이 내놓는 음식과 더불어 그들의 솜씨와 도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떤 우여곡절을 통해 식당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갔는지 예상할 수 없다. 그들이 겪었을 희노애락을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들의 세월과 함께 버텨준 세간살이만이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다. 여전히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를 끓이고 있을, 전주왱이 콩나물국밥은 이렇게 이야기를 담은 전시를 출발시켰다. 이번 〈명인의 맛〉에는 전주왱이 콩나물국밥 유대성 대표의 이야기는 물론, 김명옥김치 전통음식연구소 김명옥갑기회관 김정옥청실홍실 신복자궁 유인자반야돌솥밥 임복주가족회관 김년임 명인명가를 소개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과 전주 천변이 맞닿는 길, 전주향교길을 가보았는가. 〈향교의 맛〉은 전주향교길을 처음 만난 타지 작가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타지 사람들의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뚜렷하다. 우리가 늘상 보던 거리에서 새로운 맛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사람들에게 관광지나 천변 산책로 정도로 여겨지는 거리를 작가들은 어떻게 담아냈을까? 전주 방문객인 그들이 그리는 전주 향교길을 즐겨보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전주향교길의 풍경을 재치 있게 표현한 작품은 김물길 작가의 작업이다. 673일 46개국, 그리고 400여 장의 그림이란 타이틀을 가진 그는 24살에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여행지 속에서 만난 영감들을 그림에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림을 마주한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는 그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작업한다. 전주향교길의 거리를 담아낸 최근우와 양명준 사진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전주 한옥마을의 새로운 이면을 봤다고 말한다. 전주 한옥마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정됐었기 때문이다.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하고, 길거리음식을 먹기 위해 길게 줄 선 모습이다. 그러나 남천교를 시작으로 전주향교까지 이어지는 길목, 향교길은 사람 사는 정취로 가득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음식이 다채로운 만큼 그릇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그 그릇을 만드는 공예가들의 사연도 얼마나 각양각색일까. 전북 전주 풍남문 옆에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 유기를 두드리는 공방이 있으며, 남원에는 나무를 깎고 옻칠하는 부부도 있다. 그들의 정성으로 만든 그릇을 소개하였다. 백자나 사기, 청자 등 도자기를 식기로 즐기는 한국답게 도자기를 사고, 쓰고, 감상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나 그릇은 도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상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자는 시도를 이 전시에서 나타낸다.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유기와 목기로 구성된 테이블을 맛본다. 유기는 전북무형문화재 제43호 방짜유기장 이종덕 보유자와 이솔이 전수자의 작업이다. 이종덕 보유자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짜유기를 연구 및 제작하고 있다. 꽹과리나 징 등 소리를 내는 악기부터 밥그릇, 와인쿨러 등 다채로운 그릇까지 메질로 두드려 만든다. 이솔이는 아버지의 업을 이어 작업을 배우고 있다. 목기는 남원 파파우드 공방의 솜씨이다. 남편 소성선 소목장과 아내 황미슬 옻칠장의 협작품이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던 소성선은 남원으로 내려와 가구와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황미승 옻칠장이 그의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다 시작한 것이 옻칠이었다. 2018년부터 공방 매나메종을 차리며 동등한 작가로서 작업을 맞춰가고 있다.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강정원
  • 2021.10.13 16:55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노후 종교생활과 영성

노년기는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는 시기이다. 노화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외부환경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아존중감이 감소하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증가한다. 더구나 직장으로부터의 은퇴와 함께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등은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대폭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시기에 종교 활동은 노후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년기 종교 활동에 관한 연구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대체로 종교생활은 주관적 안녕감을 강화하고 우울증을 저하시키며 사망률과 유병률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노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유지 및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결과, 종교생활을 하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생활 만족도가 높고 소외감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인들이 종교생활을 통해 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자아 존중감을 높이며 친교활동 등으로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노인의 얼굴 표정이 더 밝다고 말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노후에는 젊은 시절보다 종교에 의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 보건복지부의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59.8%가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0년 11월 한국리서치의 종교인식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 18세 이상 남녀 중 종교를 믿는 사람 48%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이다. 또 성별로는 여자 노인이 64.4%, 남자 노인이 53.6%로 여자 노인의 종교 활동이 더 활발했다. 종교별로는 개신교(기독교) 24.3%, 불교 23.8%, 천주교 10.8%, 유교 0.6%, 원불교 0.2%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노인은 52.9%가 주1회 이상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종교생활은 노후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면 실제로 종교생활을 하는 노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이소원김찬우, 2016; 김형수, 2020). #1 성당에 다니면서 장례미사에 참 많이 다녔어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정성껏 보내드리고 사도회 분들도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을 보니 참 든든했어요. 전 천주교 장례미사로 제가 떠났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에게 성당에서 해 주었던 것처럼 저에게도 해 주시지 않을까요? 마지막까지 저를 도와 줄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좋아요. #2. 찬송 부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도하면서 회개도하고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나만의 결단을 하죠. 특히 기도는 나를 바라보고, 내가 사는 힘이에요. 이제 바라는 것은 없어요. 천국 갈 확신은 있으니까 욕심 부리지 않고 봉사하며 살다가 아름답게 떠나고 싶어요. #1과 #2는 각각 신앙경력 23년의 천주교 신자(80)와 20년의 개신교 신자(67)가 들려준 노후 종교생활에 대한 소회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발이며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유한한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의 은총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덧입혀지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단절은 이별과 슬픔을 동반하지만 부활과 영생의 상급을 바라보며 서로 위로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죽음의 공포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3 저의 어머님은 매일 천수경을 들으시는 불교신자였어요. 저도 날마다 (이곳에) 올 수만 있으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하겠어요... 화장실이 절은 다 바깥에 있잖아요. 등산객들이 많이 사용해서 지저분해요. 그래도 화장실 청소 다하고, 그 많은 사람들 공양 값 주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말 못하는 부처님하고 한 약속을 지켜야지,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경험을 했고, 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존경스럽고, 내가 지금까지 결혼해서 애를 둘 낳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3은 50년 동안 절에 다니고 있는 불교신자(72)의 얘기다. 불교적 관점에서 죽음은 깨달음의 지혜로 본다. 불교에서 죽음은 본래 처음부터 없다는 깨달음이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주체적인 의식실체로서의 자아도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온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없애버림으로써 죽음을 극복한다. 즉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이라는 공포, 이 두 가지 허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인간은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종교를 가진 노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세를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죽음불안을 감소시키고 사후에 갈 곳이 있다는 현실적 평안함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가 부여돼 정서적 안정감을 갖고 소외감이 감소된다. 따라서 종교생활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픔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얻고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스승을 얻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년기에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욕구가 공존하는 시기이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의 기로에서 노인들은 생애주기적인 발달과업으로서 자아통합의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는 동안 부정적인 경험이나 갈등의 기억들을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다가올 죽음을 또 다른 현실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성(靈性, spirituality)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죽음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적 자각은 자신과 영성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든다. 여기서 영성은 흔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언급되고 있으나 이를 뛰어 넘는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영성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즉 물질적인 것(animalis)과 반대되는 의미로 거룩한 생명의 기운으로 정의된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하지만 영성의 본질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추구로 반드시 신이나 초월자를 믿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성을 사회과학적으로 정의하면 자연, 예술, 우주, 실제 인물, 위대한 사상이나 지적인 이념 등과 같은 자신보다 더 차원이 높은 존재와의 관계에서 삶의 의미 또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내면과정이다(임연옥허남재, 2017). 따라서 영성계발 또는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노년기에 겪는 여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대처하게 되면 풍요로운 노후 정신생활과 함께 죽음불안을 낮출 수 있다. 영성계발은 노인의 심리적 안녕이나 주관적 안녕을 긍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자원 혹은 적응 유연성으로 기능한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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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1 17:06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04)의암 주논개는 기녀였을까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조선의 재담꾼 유몽인이 『어우야담』에 논개를 소개한 첫 구절이다. 이 때문인지 논개는 왜장을 유혹하여 끌어안고는 물속으로 몸을 던져 함께 죽은 의로운 기생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논개는 장수 주촌마을의 선비인 신안 주씨 주달문과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양반가의 자손이며 의병장이자 장수현감을 지낸 최경회의 부인이다. 주논개(朱論介, 1574-1593)란 특이한 이름은 개해인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인 4갑술생으로 태어난 사주에 따라 개해에 낳은 개 놓은 개란 뜻으로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다. 아들을 잃고 얻은 외동딸의 특이한 사주에 고민하다가 귀한 자식일수록 이름을 함부로 짓게 되면 귀신이 샘을 내지 않아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지어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논개는 당시 훈장을 하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다가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모친과 함께 숙부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그러다 숙부가 장수의 부호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넘기려 하자 논개의 모친 고향인 경상도 함양으로 도주하여 지냈지만, 곧 발각되어 장수현감인 최경회(1532-1593)에게 불려가 횡령죄로 재판을 받으며 훗날 지아비가 될 그를 처음 만나게 된다. 논개 모녀의 억울한 사정을 접한 최경회는 무죄를 내리고는 오갈 곳이 없는 그들을 자신의 관저에서 일하며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후, 부인과 사별한 뒤 담양부사로 재직할 당시 논개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부의 연을 맺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해주최씨의 족보(1975년 개정판)에 김씨와 민씨 두 정경부인과 더불어 최경회의 부실 의암부인 신안주씨로 논개 일화가 함께 올라가 있으며, 최경회의 일대기를 엮은 문헌에도 그 내용이 실려 있다. 화순 출신인 최경회는 1567년 문과에 급제하여 옥구, 장수, 무장현감과 영암군수와 담양부사 등 주요 관직을 거치다 임진왜란이 나자 사직을 하고 고향으로 간다. 그러다 1592년 임진왜란 나자 상중임에도 의병을 모집하고 훈련시켜 의병활동하고, 고경명이 금산에서 순절한 이후 의병장으로 추대된다. 금산과 무주에서 남원과 전주 그리고 진주로 향하는 왜군을 격파한 뒤, 그 공을 인정받아 1593년 4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면서 진주로 부임한다. 하지만, 2차 진주성 전투인 6월 29일 진주성이 왜적에 함락되자 최경회는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한다. 이 소식을 접한 논개는 나라와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결심을 한다. 기회를 엿보던 논개는 왜군의 승전 기념 연회에 관아 소속의 기녀들만 연회장인 촉석루에 출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런 까닭에 기녀로 가장한 논개는 왜장인 게야무라 로쿠스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남강의 바위 쪽으로 유인했다. 그리고는 열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양손으로 왜장을 풀리지 않게 껴안고는 남강에 몸을 던져 스무 살의 나이로 순절했다고 전해진다. 논개의 충절 이야기가 널리 구전되다가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620년경이다. 유몽인을 필두로 정약용 등이 논개에 관한 문장을 남겼고, 투신한 바위를 논개와 동일시하여 의로운 바위 의암(義巖)의 글자를 1722년 정대융이 새기고 충절을 기린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논개를 추모하는 백성들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시기의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관기로 알려진 논개는 실리지 못한 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739년에 이르러서야 진주 촉석루 곁에 사당인 의기사(義妓祠)를 건립하였고, 1846년에는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가 장수 태생임을 기리고 충절을 선양하기 위하여 논개 <생장향수명비(生長鄕竪名碑)>를 장수에 세웠다. 장수에는 비가 세워진 곳을 기준으로 가운데를 준비(중비)마을, 비석 위쪽을 상비마을 아래쪽은 하비마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그 존재를 접한 일본인 순사부장이 비석을 깨버리라는 것을 장수 청년들이 비석을 밭에 몰래 묻어 보존한 뒤 광복이 되자, 논개 비를 캐러 가자!며 달려가 비석을 캐내 바로 세운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54년 장수군민의 성금으로 논개 초상화를 모시고 사당을 창건하여 1974년 현 위치로 논개사당을 옮겨 <생장향수명비>도 함께 조성했다. 논개 초상화도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김은호의 그림을 윤여환의 그림으로 교체하여 표준영정으로 지정했으며, 저수지에 수몰된 것으로 추정된 생가터를 기리며 저수지 이름을 의암호라 개칭하고 주변에 논개 생가를 조성해 놓았다. 생가 정자의 단아정이라는 한자현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이었으나 지금은 철거하고 한글현판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일본에는 논개에게 죽임을 당한 왜장을 영웅시한 일본인이 장수와 진주의 흙을 가져다 논개를 일본으로 따라간 첩으로 둔갑시켜 가묘를 만든 곳도 있다. 천인공노할 만행의 흔적이 기막히지만, 최경회와 논개의 묘는 진주에서 장수로시신을 옮기던 중 십이령 고개를 넘지 못한 채 장수를 지척에 둔 함양에 자리하여 전해지고 있다. 옛 관아 터인 장수군청 앞에는 천연기념물인 우람하고 아름다운 소나무 <장수 장수리 의암송>이 있다. 400여 년을 넘게 온갖 풍상을 함께 겪은 노거수를 주민들은 의암송이라 하고는 정성껏 보살피고 때론 나무가 건네는 힘을 받으며 논개를 기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녀로 기억되며 올곧게 평가 받지 못하는 의암 주논개의 위상 정립이 아쉽다. 돌아오는 10월 8일(음력 9월 3일)은 논개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가을빛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논개사당을 찾아 가을 단풍보다도 붉은 그 충절의 흔적을 새기는 것도 좋겠다.

  • 기획
  • 기고
  • 2021.10.06 16:37

[카드뉴스] 구급차는 내 콜택시?

  • 기획
  • 신재용
  • 2021.10.05 16:36

40년 만에 골프장 등록문서 받아 든 전주 샹그릴라CC 최영범 회장

전주 샹그릴라CC가 지난달 말 전북도로부터 골프장 정식 등록 문서를 받았다. 도내 등록된 골프장이 30개에 육박할 정도로 골프장이 넘쳐나는 상황이지만, 전주 샹그릴라CC의 골프장 등록은 또 하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질적으로 지역의 중추 골프장 역할을 해왔음에도 개장 이후 각종 송사에 휘말린 데다 한 때 등록 취소까지 받는 낭떠러지에서 올라섰기 때문이다. 골프장 건설부터 등록까지 40년이 걸린 골프장은 전국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골프장 하나에 모든 걸 건 최영범 전주 샹그릴라CC 회장(72)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를 만나 골프장 정상화까지 과정과 향후 운영계획을 들어봤다. -골프장 건설부터 정식 등록까지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90년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도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6년의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현재 위치가 아닌 월성리 저수지 부근 60만평을 400억원에 구입해 임실군 허가를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개발부적격지로 판단하면서다. 당시만 해도 골프장을 특권층 이용 시설로 보고 지역개발사업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등록기준을 맞추지 못한 데는 잦은 법 개정 문제도 있었다. 개장 당시 시범라운드를 하게 되면 등록으로 간주한다고 해서 160억원의 세금도 모두 납부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아 행정소송도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허가 당시 없었던 9홀 대중홀을 새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곧바로 해결할 수 있을 문제지만 골프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확장이 쉽지 않았다.” -골프장 정상화까지 겪었던 여러 어려움이 법과 행정의 문제로 여기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내 자신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었다. 행정 당국도 우리 골프장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그간 다뤄본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져 선도적 역할을 해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이번 정식 등록이 이루어지기까지 전북도와 임실군 지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골프장의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지금이야 골프장이 지역경제에 효자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 골프장을 건설할 때인 90년대 초만 해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그 때문에 결과적으로 골프장 부지 매입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 은행 돈을 빌리지 않고 부지 비용만으로 1000억원대를 투자했다. 그것도 IMF 시기다. 경험 없이 초기 자본투자를 많이 한 것이 이후 경영에 큰 부담을 줬다.” -처음 어떻게 골프장 건설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30대 젊었을 때 광산으로 큰돈을 벌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김제 금구 막장에서 금을 캐 얻은 수익은 국내 광산업계에서 손꼽을 정도였다. 80년대 초만 해도 골프 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시절, 돈도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골프 운동에 취미를 붙였다. 당시 전북에 프로 골퍼가 1명도 없어 경기도 강사를 모셔 레슨을 받았다. 전북 대표선수에 발탁되기도 했다. 내 자신 골프에 대한 매력을 느끼면서 골프산업의 미래를 보고 골프장 건설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전북에서 골프장이 익산 한 곳이었고, 대전과 충남도 1곳뿐이었다.” -코로나19로 골프장이 문전성시다. 골프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골프 대중화와 함께 골프장 건설이 급증했다. 골프장 경쟁 속에 골퍼들이 외국으로 많이 나가고 사업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홀을 줄이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국내 골프장들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게 박세리였다. 그의 미국 LPGA 우승 이후 골프 붐이 일면서 골프인구가 대폭 늘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최근 몇 년 사이 골프 대중화가 급속히 이뤄졌다. 특히 요즘 골프장마다 20~30대가 주류를 이룰 만큼 젊은 층 골퍼들이 급증하면서 관련 산업까지 크게 발달하고 있다. 골프의류가 패션도 주도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정식 등록이 이제 이루어졌지만, 실제 오랫동안 영업을 해왔다. 전주 샹그릴라CC가 지역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골프장이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 골프장이 국세와 지방세로 낸 세액만 1000억원에 이른다. 전북지역 연간 세액 1위로 세수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실군 전체 법인을 다 합친 것보다 많게 지방세를 냈다. 여기에 골프장의 고용창출도 크다. 현재 우리 골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은 200명이다.” -연간 10만명이 찾을 정도의 명문골프장으로 발돋움했다. 전주 샹그릴라CC의 매력을 자랑한다면. “명문골프장 조건으로 흔히 ‘3무’를 이야기 한다. 도로·철탑·악취다. 우리 골프장에서 도로가 안 보이고, 전선주가 없다. 옥정호상수원 보호구역이 인근에 자리잡아 공장이나 축사 등에서 나오는 냄새가 없다. 맑은 공기를 찾아 수도권 등에서 선호도가 높다. 명문 골프장의 주요 조건인 잔디관리와 코스, 직원서비스도 잘 갖췄다고 본다. 350고지에 있어 여름철 시원하고, 전주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점도 강점이다.” -코스 설계를 어떻게 했으며, 골퍼들의 평가는 어떤지. “코스 설계가 잘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평이하고 쉬우면 두 번 다시 잘 찾지 않는다. 프로 선수와 젊은층이 많아지면서 어려운 코스가 인기다. 설계 당시 프로와 아마추어까지 즐길 수 있게 난이도를 적절하게 배합했다. 긴 코스와 짧은 코스를 배합하고, 해저드와 벙커를 조절했다.” -정식 등록과 함께 골프장 운영에 변화가 있나. “현재 회원제에 대중제로 전환 중에 있다. 외지인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전북 골퍼들의 이용률이 높다. 요금 등에서 무리하지 않도록 해 도민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골프장을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골프장이 정상화 된 만큼 골프 새싹들에 대한 후원 등 여러 방법으로 지역 골프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도 적극 찾아보겠다.” -골프장과 함께 향후 리조트 개발도 계획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골프장 건설 당시 계획했던 게 리조트사업이다. 최근 전북도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아 CJ건설과 협약을 체결하고 설계 중에 있다. 골프장 내 50만평 부지에 호텔과 수영장, 워터파크, 눈썰매장 등의 레저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약 2000억원 투자를 예상하고 있다. 광주·대전에서도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여서 리조트가 조성되면 골프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끝으로 하고 싶은 한 말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골프장이 정상화 될 수 있었던 데는 행정과 언론, 지역사회의 성원 덕분으로 생각한다. 특히 골프장 건설 때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참여한 이후 워크아웃이라는 큰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골프장을 믿으며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준 농협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전주 샹그릴라CC 정상화까지 전주샹그릴라CC는 임실군 신덕면 갈마봉 계곡을 따라 이어진 27홀 코스를 갖춘 전주권 골프장이다. 최영범 회장이 고향 인근인 이곳에 부지를 마련해 골프장을 조성했다. 1989년 사업 허가를 받을 당시 전북지역 골프장은 익산 팔봉CC가 유일했다. 최 회장이 골프장 건설에 일찍 눈을 뜬 셈이다. 그러나 처음 45홀 규모로 허가를 받은 뒤 사업변경을 통해 36홀로, 다시 27홀로 준공 등록한 것이 이 골프장의 험난한 역사를 말해준다. 실제 골프장 정상화까지 과정을 보면 말 그대로 험로였다. 부지구입부터 벽에 부딪혔고, IMF 때 자금난에 시달리며 공사가 중단되는 등 공사 착공 10년만에야 준공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미등록 상태로 영업을 하다가 3차례 고발조치가 되기도 했고, 사업부지내 국·공유지 귀속과 사유지 매입 완료 등을 조건으로 조건부 등록을 했으나 이를 해결해지 못해 2015년 등록 취소 결정을 받아야 했다. 회사 측은 행정소송에서도 패했으나 최근 조건부 등록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기사회생 하게 됐다. 최영범 회장은 30대에 뛰어든 골프장 사업을 70 나이를 넘겨 이렇게 완성시킨데 자부심을 갖는다. 광산과 골프장 모두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까닭에 그 성공이 쉽지 않은, 이 두 가지 마음먹은 사업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다.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어서 별명이 불도저란다. ‘현대 정주영 회장보다 더 민다’는 게 주변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다. 골프장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최 회장이 세 번째 사업으로 마음먹은 리조트 사업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지 주목된다.

  • 기획
  • 김원용
  • 2021.10.04 18:14

[뉴스와 인물] 신원식 정무부지사 “해외기업 유치, 새만금을 국제산업단지로”

신원식(65) 전 한국천연가스수소차량협회 상근부회장이 전북도 정무부지사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다채로운 이력에 눈길이 갔다. 신 부지사는 중앙부처에서 14년, 민간기업에서 26년을 일했다. 그의 이력은 중앙정부와 민간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내와 해외라는 세로줄과 가로줄로 촘촘했다. 지난 7일 취임과 동시에 업무에 돌입한 신 부지사는 그 줄을 이용해 종횡무진 지역 현장을 누비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는 그를 만나 정무부지사의 역할, 전북 경제 체질 개선에 대한 비전 등을 들어봤다. -먼저 전북도 정무부지사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고향에서 정부부지사로 근무하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40년 전에 전북도 사무관으로 와서 근무했던 기억이 납니다. 40년 만에 다시 돌아와 가슴 벅찹니다. 그동안 몸은 멀리 있어도 고향 전북을 단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고향 발전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얻게 돼 기쁘면서도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에 정무부지사라는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송하진 지사님의 리더십,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에 저의 산업 현장 경험이 더해진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만합니다. -정무부지사는 말 그대로 고도의 정무적 감각이 필요한 직책입니다. 부지사께서 자신의 정무적 감각을 평가하신다면. 현대 민주 행정은 실무형 또는 정무형 어느 쪽에 치우쳐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저는 중앙부처와 다양한 민간기업에서 경제적 판단과 아울러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를 반영조정하고 언론과도 의사소통하며 정무적 경험을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내 시군, 유관기관과의 가교역할 등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 나가겠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하신 것처럼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다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이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약 15년간 공직에 몸담았습니다. 그 당시 경제산업 분야에서 근무했는데, 행정의 대상인 기업의 실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경제산업 정책을 입안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데 대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기업 현장을 경험하며 경제산업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국가 경제 핵심의 한 축인 조선산업에 대한 상당한 이해도를 쌓았습니다. 이후 세계 오토바이 헬멧 시장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는 HJC(홍진크라운)에서 근무하며 해외, 중소기업에 대한 경험도를 축적했습니다. 그렇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보니 업종도 조선, 생활용품, 전기, 친환경차 등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중앙부처와 민간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제가 전북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판단해 이 자리로 오게 됐습니다. -정무부지사께서는 중앙부처,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경험해보셨습니다. 각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들을 꼽아주신다면. 노력한 것만 가지고는 인정을 못 받는 것이 기업과 공직사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성과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리품을 팔아야 합니다. 현장에서 다리품을 팔면 안 되는 일은 왜 안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해 일이 되게끔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리품을 팔아 나의 간절함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상대방도 협조적인 태도로 변합니다. 결국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맥을 잡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제가 몸소 경험한 중소기업은 생각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중소기업은 오너체제의 기업입니다. 대기업은 조직이 뒷받침해주지만, 중소기업은 상당 부분을 오너가 리스크를 안고 해결해야 합니다. 오너들에 대한 인간적개인적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또 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애로를 파악하고 경쟁력 있는 지원책을 제시해야만 기업 유치가 가능합니다. 향후 전북에 기업을 유치하는 데 있어 교육 부문에 대한 세심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새만금을 포함한 전북 투자 유치 전략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많은 홍보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와 관련 반기별로 수도권 기업을 상대로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새만금의 여건을 설명할 계획입니다. 지속발전을 위해 신산업을 모색하는 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새만금은 충분히 매력적인 지역입니다. 특히 새만금은 신재생에너지, 수소, 데이터 등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북도가 이를 신산업 지도로 명명했는데, 아주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만금을 포함한 전북이 신산업 지도를 완성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또 투자 유치에 있어 수도권과의 거리도 고려 대상입니다. 최근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법 통과로 세종시라는 새로운 행정도시가 생기면 이를 중심으로 많은 네트워크가 갖춰지리라 예상됩니다. 세종시에서 1시간 거리인 새만금에는 공항항만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력을 토대로 새만금에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해외기업을 유치해, 새만금이 국제산업단지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미 세계시장에 진출한 해외기업을 전북에 유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수한 기술을 이전받고, 부품공장 등을 지역에 설립하면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세계시장을 향한 글로벌 새만금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업무에 앞서 전북도 간부진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계급적인 요소를 배제하라. 나를 많이 가르쳐달라. 그리고 나를 이용하라. 이 당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 조직 생활을 하면서 갖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직위분류제라고 하듯 직위에 따라 역할이 다른 것뿐이지 사장이라고 높고, 직원이라고 낮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정무부지사라는 직책을 가진 것뿐입니다. 그래서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 즉 파트너십을 추구합니다. -특별히 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그동안 제가 중앙부처나 민간기업, 해외시장에서 일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쏟겠습니다.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제 충정을 이해해 주시고,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작으나마 제가 있는 동안 지역 경제산업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안 출신인 신 부지사는 서울 동성고와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제24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국제협력과, 산업정책과, 통상지원과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뒤 삼성중공업 이사, 홍진크라운 전무, 효성기계공업㈜ 전무, 일진전기㈜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최근에는 환경부 산하의 한국천연가스수소차량협회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했다. 도는 민관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 폭넓은 인맥을 두루 갖춘 신 부지사가 전북 신산업 지도의 완성,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 등 민선 7기 마무리 시점에서 도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기획
  • 문민주
  • 2021.09.29 17:56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위드 코로나, 주변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위드(With) 코로나.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과 돌파감염 등으로 코로나19 펜데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대두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는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는 것보다 그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치명률을 낮추는 등 새로운 방역체계를 도입해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이 되는 돌파감염 사례가 이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자는 위드 코로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교동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두었던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되짚어보고, 다시금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이어나가고자 <주변인의 얼굴>展을 기획하였다. 이번 기획초대전에서는 지역미술계 안에서 만의 담론을 뛰어 넘고자 충청북도 청주 지역작가들을 초대하여, 회화조각설치영상 등 현대미술의 장르를 망라하며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 10월, 청주 쉐마미술관(관장 김재관)에서 진행되었던 청주-전주 현대미술 교류전에 이어, 올해는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청주의 예술가들과 쌍방향적인 교류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타자들과 함께 전시를 진행, 코로나19 펜데믹의 현실에서 차별이 아닌 차이를 관찰하고자 마련했다. 전시는 2021년 9월 14일(화)부터 9월 26일(일)까지 약 2주간 교동미술관 본관 12전시실에서 진행됐으며, 전주 지역작가 12인(강현덕, 국승선, 김두해, 김부견, 김완순, 송재명, 이광철, 이보영, 이일순, 이재윤, 이홍규, 조현동)과 청주 지역작가 12인(김로이, 김성미, 김영란, 김재관, 박진명, 심재분, 오승언, 이경화, 임은수, 장백순, 최민건, 최익규)이 참여하여 작품을 선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일상에 익숙해져 갔고, 음식점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QR코드 체크 또는 명부를 작성 한다. 자연스럽게 체온을 재는 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36.5˚. 항상 우리는 유지하고 있지만 열이 나거나 춥거나 해야 우리는 소중함을 인지한다. 온도, 관계 모두 그렇게 일정한 거리나 온도를 유지해야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했지만 실은 항상 온도나 인간의 관계 등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저온과 고온사이를 팽팽하게 유지해야만 이 세상을 더불어 순리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공간에 두 개 이상의 사물이 존재하는 것을 공존이라고 부른다. 이번 출품작 <공존>은 사람과 사람의 공존을 뜻 할 수도 있고,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뜻하기도 한다. 문득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이해하며 공존하는 것이야 말로 나와는 다른 타자(他者)와의 성공적인 상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통해 풀어내게 되었다. 요즘 소확행이란 용어가 대유행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가치를 찾고 또 스스로 자신을 대접하는 일에 좀 더 적극적이 된 것 같다. 과거에는 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나를 무한 단련시키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요즘은 아픈 상처의 치료를 미루지 않고 수고와 노력에 작은 보상을 하며, 지나면 다시 올 수 없는 현재를 잘 살아내자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작품을 통해 매일 매일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 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좀 더 인간적인 좌절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힘에 겨운 삶의 존재와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신념과 회의와 겸허함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 속에 있는 허상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철학적 이치와 개념을 지닌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연으로의 회귀. 예술은 꼭 미학적, 조형적 원칙과 원리에 따라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생명의 무늬를 씨줄 날줄로 엮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 공간에 빛을 넣고 있다. 어쩌면 그날의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이 숨어있었는지 모른다. 하얀 달 아래 일렁이는 장면은 또 다른 기억과 이미지를 생산하고 피어나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무심코 지나쳐서 스치듯 지나간 그 날의 기억과 이미지의 잔재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되고 나름의 새로운 기억으로 각인된다. 달이 떠 있는 어둠의 기억과 그 아래에서의 순간이 겹쳐지질 반복하여 재생되는 이미지는 고스란히 하나의 장면으로 화면에 스며든다. 잔잔히 부는 바람이 부는 그날 그달 아래에서 또 다른 잔상이 뇌리에 새겨진다. 바이러스 변이와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재해 소식에 불안하기만 하다. 과학자들은 이미 지구의 자정 활동이 시작되었고 미래도 또한 낙관적이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다. 변덕스러워진 날씨로 자주 일기예보를 주시한다. 보은, 원정리 들판에는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고목은 작년에 고사해 자리만 남아있었다. 긴 시간 생명을 이어온 나무도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했나 보다. 그러나 들판은 마구 자란 풀들과 넝쿨들로 풍성하고, 논에는 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작물이든 이름 없는 풀이든 서로 엉키고 붙어 들판이 한껏 풍성해져 다행이다. 혼란스런 환경에서도 식물 씨앗이나 곡물을 수확해 야무지게 씹어 먹으며 변화에 적응하고 상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논길을 걸어 고목이 있던 곳에서 멈추어 섰다. 천을 풀어 바람을 감지하고는 씨앗을 뿌리며 이 땅에 생명이 지속되길 기원했다. 김완순 교동미술관 관장은 이번 기획전시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로 비대면 환경이 활성화 되며 가상세계를 현실의 일부분처럼 받아들이는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로 도래하고 있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어떤 존재들이 있는지 소중함을 돌아보고자 <주변인의 얼굴>展을 기획하였다. 가상세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가장 좋은 관람은 현실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시를 통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가 떠오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1.09.29 16:48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청소년지도자의 삶

저는 청소년지도자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10명 6~7명은 청소년지도자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한다.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낯설음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이다. 청소년지도자라는 명칭은 청소년의 수련활동, 상담, 복지, 보호 등 청소년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모든 종사자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도내 청소년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자리와 그들의 목소리까지 들어보고자 한다. 청소년 현장에서는 청소년 참여와 권리, 청소년 활동, 청소년 자립 및 보호지원 등 청소년의 삶 전반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청소년 관련 기관 및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전라북도에는 청소년활동을 지원하는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1곳과 청소년수련시설 54곳, 청소년 상담과 복지지원을 위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15곳, 청소년 보호를 위한 청소년 쉼터 5곳, 청소년성문화센터 4곳 등이 있으며 그 외 청소년 단체와 관련 기관에서도 청소년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위와 같은 기관 안에는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등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청소년지도자가 종사하고 있는데, 청소년의 가까이에서 일하는 실무자부터 조직 관리를 위한 중간 관리자, 대외 협력 및 정책 개선을 위한 관리자 등이 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위탁법인 전라북도청소년단체협의회)에서는 이러한 청소년 현장 지도자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하여 정책 포럼 등을 진행하였으며, 매년 하반기 모범청소년지도자 시상식을 통해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청소년지도자들을 격려하고 청소년지도자대회를 운영하여 청소년 관련 기관 및 청소년지도자들이 교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2019년까지 청소년수련시설 종사자에 한해 진행했던 모범청소년지도자 시상식은 지난해부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쉼터, 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 단체 등 그 분야를 확대하였다. 또한 현 시국을 고려하여 모든 프로그램이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수상인원 등 최소한의 인원만 현장 참여하여 진행될 예정이다. 김의숙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장은 전라북도청소년지도자대회를 통해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지난 한해 청소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도내 청소년지도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비록 온라인이지만 소통과 교류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모범청소년지도자 시상식은 9월 29일 오후 2시 30분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진행되며 9개 상훈에 총 20여명의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시상을 진행할 예정이며 시상식은 10월 13일 오후 2시 온라인 전라북도청소년지도자대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지도자대회는 10월 13일 오후 2시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한다. 본 행사는 퀴즈이벤트, 응원릴레이 영상, 청소년과 지도자 강연, 사연 소개, 사례 공유회, 경품 추첨 이벤트 등 지도자 간 교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청소년 지도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난 2년은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청소년지도자는 기존의 대면 중심 활동이 제한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수칙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적응해왔다. 비대면 사업 개발, 온라인 매체 기술 습득, 비대면 환경에서의 의사소통 방법 등 요구되는 역량을 향상하며 청소년을 지원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과 청소년문화에 적응하며 청소년 눈높이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지도자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청소년지도자는 봉사활동가나 자원활동가가 아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인식개선과 처우개선이 시급하다. 도내 청소년지도자들 중에도 지자체에 따라 기관에 따라 처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좀 더 안정적이고 좋은 여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도내 곳곳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힘쓰고 있는 청소년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의 땀과 노력이 우리 청소년들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언젠가는 열매로 맺을 것입니다. 청소년지도자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손승진 전북청소년단체협의회 팀원 /손승진 전북청소년단체협의회 팀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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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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