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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인물] 남천현 우석대 총장 ‘냉철한 두뇌 뜨거운 가슴’

냉철한 두뇌 뜨거운 가슴 남천현 우석대학교 총장이 우석인들에게 바라는 마음이다. 소멸과 위기에 놓인 지역대학, 그 여파는 고스란히 전북에 전가된다. 지역 대학의 몰락은 곧 지역경제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어려운 시국에 우석대는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호남지역 최상위권 성적으로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돼 전북의 체면을 세웠다. 최고의 지성인이 모이는 상아탑, 전북 경쟁력의 한 축인 우석대는 이번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을 계기로 향후 100년 대학 도약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호남권 최상위권 성적을 낸 우석대 남천현 총장으로부터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과 의미, 그리고 그간의 준비과정을 들어봤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지역발전의 근본적인 초석이기 때문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 이다. 교육(敎育)의 한자적 의미는 세상과 마주치는 제자에게 스승이 회초리로 깨우침을 주는 스승과 제자사이의 베품과 본받음이 동시에 각인돼 있다. 백년지대계라고 하듯 끝없이 발전과 연구를 계속해 나가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교육부로부터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교육부의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되면서 앞으로 3년간 해마다 50억 원의 재정지원이 뒤따를 것입니다. 3년을 합하면 총 150억 원에 달합니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10여 년 가깝게 이어지는 등록금 동결의 엄중한 상황에서 단비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서 우석대학교의 대외적인 평가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우석대학교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사기도 크게 높여줄 것입니다. 우리 구성원들은 그동안 기본적으로 높은 역량과 자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계기로 우석대학교의 비전과 구성원들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부의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앞세워 우석대학교는 100년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찬 청사진을 그릴 것입니다.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되기까지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위한 준비는 지난 2020년 3월 총장에 취임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장 취임 직후만 해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만, 코로나19의 학내 차단에 고심하면서도 평가대책의 윤곽에 대한 구상을 이어갔습니다. 이제는 후일담이 됐습니다만 평가에 실패하면 총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배수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대학기본역량진단을 대비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계기로 우석대학교의 내재가치와 비전을 대내외에 보여줘야겠다는 출사표였습니다. 무엇보다 우석대는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호남제주권역 대학들 가운데 최상위권의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석대학교는 특히 정성평가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평균점수를 크게 웃돌았다고 합니다. 0.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우석대학교가 건네받은 최고수준의 성적표는 우석대학교의 탁월한 역량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석대가 새롭게 그릴 발전청사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령인구 감소는 계속될 것이고, 수도권 집중화도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럴수록 지방의 사립대학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입니다. 결국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얼마나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석대학교는 실용교육으로 실질적 성과를 낸다는 실용주의 대학의 기치를 앞세울 것입니다. 우석대학교의 사범대학 임용고사 합격자 수는 해마다 100명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군사계열 장교 합격자수도 전국 최다를 자랑합니다. 또한 소방과 경찰계열 학과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만큼 이른바 제복 공무원들을 다수 배출하는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입니다. 다른 대학보다 한발 앞선 차별화전략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우석대학교 구성원들은 철저하고 치밀한 밀착교육을 통해 우리 학생들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우석대 교직원들의 당면과제는 경쟁력 있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우석대는 우리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또한 졸업생들에게는 또 다른 고향이기도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소중하게 가꾸고 영원히 존재하는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취임 일성인 기본열정같이신명의 유전자가 우석대에 어느 정도 정착됐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본열정같이신명의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 참여한 구성원들 모두가 기본에 충실했고, 열정적이고 신명나게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취임 1년6개월이 지나는 동안 이러한 유전자가 착근될 수 있도록 대학 행정을 원칙대로 공정하게 처리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뢰가 쌓였다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인사나 업적평가에 있어 어떠한 불공정이나 특혜는 없다는 구성원들의 인식이 모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불편부당의 행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역발전과 어떻게 연계해 나가실지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역과의 협업은 대학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우석대학교는 혁신과 열정을 앞세워 대학 발전은 물론 지역발전의 밀알이 될 것입니다. 우석대는 지역과 지역사회를 위한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과 대학이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협업규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지역민들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적극 기대합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일에 앞서 마음부터 챙기는 총장 교수출신 1호 총장의 책임감 막중 2020년 3월 취임한 남천현 총장은 일에 앞서 구성원들의 마음부터 챙기는 총장으로 불린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대학 위기라는 풍전등화 위기에서도 우석대학교가 초심을 잃지 않고 100년 도약을 다짐하는 배경에는 남천현 총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자리잡고 있다. 남천현 총장은 우석대학교의 교수출신 1호 총장이기도 하다. 교수는 연구실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신념을 앞세워 줄곧 연구역량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왔다. 남천현 총장은 서울대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거쳐 1984년부터 2005년까지 우석대 회계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수원대에서도 회계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전산회계학회 회장, 한국경영학과 부회장, 한국증권금융 경영자문위원 등을 거쳤으며, 전사적자원관리(ERP)의 최고 전문가이기도 하다.

  • 기획
  • 이강모
  • 2021.09.26 16:53

[전북 명산, 회문산의 속살] ⑦회문산에 얽힌 설화와 전설

조선 500년 역사에서 회문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때는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회문산을 검색해보면 선조 때 토적들이 험지를 점거하고 도발하여 적의 소굴이 됐다는 기록 정도가 나온다. 험준한 산이어서 민중들의 삶과도 괴리가 있었다. 그래서 회문산은 이 일대 민초들에겐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민중들이 오랫동안 영산으로 여겨온 까닭에 신비스러운 여러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회문산은 오늘날 순창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고추장에 얽힌 설화부터 명당과 종교 관련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회문산(回文山)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부터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문산자연휴양림 역사관에는 홍성문설과 조평설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인물과 관련된 지명 이름이다. 홍성문설은 조선 중기 때 전설적 풍수가인 홍성문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다. 조평(1569~1647)설은 고향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지원하고 많은 덕을 베풀었던 조선 중기 문신인 조평이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서 회문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다. <회문산가>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홍성문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의 생몰연대에 대해 조선 중종 때인 혹은 영조 때 인물로 전해진다.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텃골에서 홍진사와 마을 주막집 주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그는 홍진사가 죽은 후 어린 나이에 회문산 만일사로 들어갔다. 회문산 자락 사자암 등에서 27년 도를 닦아 풍수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는 팔도를 답산한 후 회문산에 많은 명당이 있음을 알고 세상에 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명당에 욕심만 있지 그것을 감당할 덕을 갖춘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그는 양반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명당 장사로 양반을 희롱했다고도 한다. <회문산가>를 통해 회문산에 오선위기혈의 큰 명당이 있다고 해 지금도 많은 풍수가들이 이를 좇고 있다. 회문산 이름과 관련해 또 다른 해석도 있다. 回文이란 앞으로, 뒤로, 이리저리 돌려 읽어도 동일한 내용의 문장을 뜻하는데, 회문산은 투구봉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바라보아도 서로 같은 모습의 형태적 측면에서 이름 붙였을 것으로 추정했다.(김성암 도선-풍수비기 연구원)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회문산 주변을 물이 감아서 흐르기 때문에 回를 붙였고, 삼각형 모양의 투구봉은 문필봉과 같이 쓰일 수 있어 투구봉을 문필봉으로 보면 회문산이라는 이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회문산 고찰인 만일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고추장에 얽힌 설화가 담긴 절로 유명하다. 백제시대 건립된 천년고찰의 이 절은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왕위등극을 위해 절을 중건하고 만일동안 기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27년이나 되는 1만일을 기도했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것만큼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용헌 교수는 추정했다. 조 교수는 전북에서 이성계와 관련된 기도처로 만일사 외에 임실 성수산 상이암과 진안 마이산 은수사 등 3곳이나 사찰이 있는데, 이성계의 남원 왜구토벌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성계는 왜구토벌의 와중에서 전북의 지세를 자세히 파악했을 것이고, 어느 사찰이 영험한가도 알았을 것이란다. 만일사 존재를 이성계가 이때 파악한 것 같고, 무학대사가 만일사에서 기도를 하게 된 배경으로 해석했다. 전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만일사비가 그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3조각으로 부서진 것을 1978년 복원해서 건립한 비는 마멸이 심해 비문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2003년 예원대 전북역사문화연구소가 실시한 탁본 및 연구조사에 의하면 정유재란때 소실됐던 만일사를 지홍대사와 원측대사가 1658년에 중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한국전쟁 때 빨치산 소탕에 나섰던 국군에 의해 소실된 후 1954년 재건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화와 상관없이 만일사는 곧 회문산의 증언자인 셈이다.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인 만일사 경내는 현재 대웅전, 삼성각, 무설당, 일주문, 비각, 종각, 요사채,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순창 고추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로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이성계가 만일사에서 기도중인 스승 무학대사를 찾아 회문산으로 가던 중 점심때가 돼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과 함께 차려진 점심 먹게 됐다. 그 고추장 맛에 반했던 이성계는 왕으로 등극한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순창현감에게 고추장을 진상토록 하면서 순창 고추장이 유명해졌다는 설화다. 그러나 조선조 이전 간장과 된장 관련 기록은 있지만(<삼국사기>) 고추장에 대한 기록이 없어 일각에서 설화의 진정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고추장 관련 문헌 기록은 이수광이 1614년에 편찬한 <지봉유설>에고추에는 독이 있다. 일본에서 비로소 건너온 것이기에 왜겨자라 한다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한다.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과 일본 양쪽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높다. 고추 대신 당초라는 이름의 문헌(1766년 <증보산림경제>)이 있어 임진왜란때 구원군으로 들어온 명군에 의해 동시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학계에서 거론된다. 설화는 설화다. 설화를 사실적으로 규명하거나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순창고추장이 유명하기 때문에 설화가 생겼을 게다. 실제 조선시대 순창고추장 명성이 자자했던 사실은 문헌으로 나타나 있다. 1800년대 초 생활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 순창과 천안, 함양 고추장을 팔도 명물로 소개했으며, 그 중 순창 고추장을 최고로 쳤다. 오늘날 순창은 고추장으로 특화됐다. 고추장 설화를 상기시키는 고추장 익는 마을이 회문산 아래 위치해 있고, 고추장민속마을은 순창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고추장이 순창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할 정도다. 고추장 익는 마을은 각종 항아리들이 해학적으로 쌓여 있다. 숙박시설과 식당, 강당, 세미나실, 캠프파이어 등 여가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농사체험을 할 수 있다. 20여년 전 순창읍 백산리 일대 조성된 고추장민속마을은 장류연구소장류박물관장류체험관옹기체험관발효미생물진흥원전통발효식품(장류)전용공장전통절임류세계화지원센터 등의 지원시설을 갖췄다. 매년 장류축제를 통해 순창고추장을 전국에 알리고, 순창세계발효소스 박람회를 통해 순창 장류의 세계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전통발효문화산업 투자선도지구도 새로 조성했다. 이곳에 참살이발효마을(발효테라피센터, 누룩체험관, 고추다년생식물원, 세계발효마을농장, 추억의 식품거리), 월드푸드사이언스관, 발효미생물전시관, 어린이실내놀이터, 고추장상설문화마당이 들어서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렇게 지역의 허브산업이 된 데는 순창 고추장만의 독특한 맛과 풍미가 있기 때문이다.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그 비결이 발효식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물과 기후 등에서 찾는다. 똑같은 재료를 같은 방법으로 고추장을 담가 다른 지역에서 숙성 시키더라도 순창고추장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건 기후 때문으로 분석한다. 은은하고 감미로우며 검붉은 순창만의 독특한 고추장 만드는데 순창지역 기후 영향이 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 설화에서부터 순창고추장의 유명세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 기획
  • 김원용
  • 2021.09.23 17:42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무형문화재 2·3세대를 주목

독립영화 [울림의 탄생](2020)은 60년 인생을 걸어 북을 만드는 악기장 임성빈 보유자가 그의 아들이자 전승교육사 이동국과 함께 대북을 제작하는 영화이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고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북을 만나 평생을 바쳐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악기장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귀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보유자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위로하는 마지막 울림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주목해야할 것은 두 가지이다.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는 임성빈 보유자, 그리고 그 곁을 지키고 힘을 더하는 아들 이동국이다. 문화유산은 윗세대에서 아랫세대까지 유산처럼 전해지는 문화를 뜻한다. 건강한 문화유산을 만들려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전하는 윗세대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바르게 익히고 시대의 흐름과 자신의 개성에 따라 변화를 만드는 아랫세대도 중요하다. 이번 이야기는 가족이 함께하는 명절, 추석을 맞아 문화유산을 잇는 23세대들의 이야기를 담아 전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심청가) 최잔디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심청가) 이수자 최잔디는 2018년 전주대사습놀이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 판소리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최잔디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노래 잘하는 아이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설장구 최막동 명인이고, 고모는 성찬순 선생님의 제자였을 정도였다. 6살 때 이모와 함께 길을 걷다 우연히 소리를 듣고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모랑 지나가다가 국악 소리에 꽂혔어요. 2층 국악학원에서 나던 소리였죠. 고집 부려서 학원에 올라갔던 기억이 나요.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실력과 응원이 더해지니 승승장구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다녔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입학했다. 그러나 스무 살을 전후로 삶이 크게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한예종 입학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가구는 물론 평생을 간직하고 싶었던 피아노까지 팔았다. 공연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학교도 나가지 않게 되고 시험을 치지도 못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보컬트레이너로 일을 하였다. 그렇게 20대의 8년이 사라졌다. 어느 날, 큰 수술을 하게 되었고 회복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 안을 걸어가던 중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다. 마침 [국악 한마당]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도민요를 부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소리를 너무 하고 싶다. 안 하면 안 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안되겠다. 다시 시작해보자하고 퇴원하자마자 학교에 재입학 서류를 제출했어요. 지금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과거 탄탄히 다진 실력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그만둘 생각을 한 그의 이야기는 참 파란만장했다. 그는 국악인의 길을 응원해준 가족과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최잔디는 어릴 적 광주에서 김향순 보유자와 이순자 보유자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강정숙 보유자에게 가야금 병창 미 산조를 사사하였다. 그녀의 20대를 품어준 고 성창순 보유자와 30대를 함께하고 있는 김수연 보유자까지. 이렇듯 최잔디의 판소리와 가야금, 철현금에는 모든 인연과 사건이 담겨있다. 올곧이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요. 예술가라면 일단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정체성은 전통이고 명맥을 잇는 거죠.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이선주 이수자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이수자 이선주는 작품 활동, 문화재 보존처리, 대학교 출강 등 활발히 옻칠 활동을 하고 있다. 부친 이의식은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보유자이다. 어릴 적부터 놀이터는 아버지의 공방이었다. 한창 때에는 4~5명 정도 삼촌들이 계셨고, 늘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옻칠 일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 마감이 바빴던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전공은 이과였다. 대학도 자연계열로 진학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일손을 도울 때가 훨씬 재밌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 일을 이어받아 공부해보자고 다짐하였다. 적성에도 맞다 싶어서 옻칠을 평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게 쭉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교 유학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계속 더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거든요. 어느 날은 교토 시내를 지나다 우연히 지도교수님을 뵈었다. 골동품을 보러 간다는 교수님 말을 듣고 따라갔다. 쉽게 보기 어려운 옛 물건들이 골동품상에 많았다. 이전부터도 보존처리를 하고 있었으나, 이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보존처리일도 시작하였다. 전통을 크게 보존과 활용으로 구분한다면 이선주 자신의 성향은 보존이 더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출강을 나가는 지금. 전통의 내일을 그리는 것도 후학을 위한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깊은 탄탄함 위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맛이 전통이라 설명하였다. 이선주는 옻칠과 더불어 다양한 것을 배웠고, 그것이 모두 옻칠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전통과 새로운 사이의 적당한 지점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전통은 전통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벽화를 그려봤어요. 이런 저를 보고 한편에서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왜 벽화를 그리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저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절충점을 잘 찾아나가야겠지요.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썰지연구소 소장 설지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1.09.15 17:21

[뉴스와 인물] “세계로 나아갈 알찬 의료 미래 100년을 향할 것” 유희철 21대 전북대병원장

유희철 전북대병원 21대 병원장이 지난 7월 30일 취임과 함께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유 원장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취임식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생략하고 병원라운딩과 운영위원 및 중간간부 워크숍, 유관기관 방문 등 현장경영에 매진해왔다. 유 원장은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임기 중 도민과 동행한 따듯한 의료 100년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갈 알찬 의료 미래 100년을 향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혁신해 글로컬 전북대병원을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전북일보는 유 병원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전북대병원 제21대 병원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를 갖지 못하고 영상과 지면으로만 인사를 전하게 된 것에 대해 송구스런 마음을 가지면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자리를 빌려 축하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병원장직을 수행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 헌신하겠다는 신념이 있고, 역대 병원장님들의 훌륭하신 업적과 지역 및 중앙의 리더, 그리고 정관계부처의 관계자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반자이자 든든한 원군인 병원가족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3년간 소신껏 일해 전라북도의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지역 책임병원의 역할은 물론 나아가 대한민국 의료의 한축을 담당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취임 직후 새 집행부를 구성하셨는데 이번 인사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21대 집행부를 맡으신 분들은 진료와 연구, 교육에 매진하면서 병원발전을 위해 헌신해오셨으며, 앞으로도 자신을 희생해 병원발전을 이끄실 분들입니다. 이번 집행부 구성은 병원의 질적 성장과 지속성장을 도모하면서 구성원의 화합을 이끌 수 있도록 전문성과 경륜, 참신성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병원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충분한 경륜과 보직경험으로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분들을 배치했고 동시에 병원의 미래지향적인 지속성장에도 초점을 맞춰 보직경험보다는 패기와 열정이 강점인 젊은 보직자를 발탁하며 안정과 패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 새 집행부와 긴밀히 협력해 양질의 진료와 미래 의료를 준비하는 신뢰받는 병원, 최고의 병원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고, 향후 신종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은 있으신가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도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 직원들이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원객 출입통제를 시작으로 선별진료소 설치,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운영, 국민안심병원 지정, 중증코로나치료 중환자실운영 등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온 덕에 외래 환자 발생사례는 더러 있었어도 원내에서의 추가 감염 환자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적 감염병 재난에 안전하게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감염병대응센터를 유치해 코로나를 넘어 국가적 감염병 재난에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 연말 신축 예정인 감염병대응센터는 감염병 환자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응급센터 옆 부지에 지하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총 25실 51병상 규모로 지어집니다. 센터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경우 감염병 환자에 대한 검사부터 치료까지 독립된 공간에서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갖추게 됩니다. -최대 현안인 군산전북대병원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군산전북대병원 건립은 지역민의 건강수호와 우리 병원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입니다. 안타깝게도 환경문제 등으로 답보상태에 놓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부지매입을 완료하고 건립을 위한 관련 행정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업이 지연되면서 승인시점에 책정된 사업비로는 10년간의 물가상승과 법적기준 강화 등 변화된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정부에 사업비 증액을 요청했으며 현재 심의 중에 있습니다. 병원 내부적으로도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겠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전북도, 군산시, 정치권 등 관계기관은 물론 지역사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특히 군산분원이 자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전문과를 개설하는 종합병원 형식보다는 특정한 질환 및 치료 방법을 집약한 전문센터로 특화시켜 운영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초고령 지역에 맞게 심뇌혈관센터, 노인전문 소화기질환센터 및 새만금개발지역의 배후병원 역할에 필요한 국제진료센터 등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물론 응급의료와 감염병 대응 진료 등 공공의료 책임병원으로의 역할은 필수적으로 수행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전문센터를 통해 체계적 질병관리와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특화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조할 각과들이 운영되는 방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최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전북대병원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 병원에서는 수술실 22곳을 포함해 주변까지 모두 33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녹화기능은 활용하지 않고 모니터링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녹화기능은 향후 법령이 확정되거나 지침이 내려올 경우 전환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다만 운영과 관련해서는 의료진과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의견을 들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보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충족하는 방안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과 전북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우리 병원이 개원 112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세기가 넘도록 지역 보건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의학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민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병원에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준 도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도민의 귀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전주 출신인 유 병원장은 전주신흥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북대 학생처장을 역임했으며 전북지역암센터 소장, 한국간담췌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이식학회 상임이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충청호남권 최초로 혈액형불일치 간이식, 간암환자에서 로봇을 이용한 대량 간절제술에 성공해 화제를 모으는 등 간담췌 및 이식외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각 분야의 최고 베스트 닥터를 소개하는 EBS 1 명의편에 소개된 바 있다. 유 병원장은 구성원이 자긍심을 가지는 행복한 병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병원은 다양한 직군으로 이루어진 협력체이기 때문에 어떤 직장보다 화합과 조화가 중요한 곳이라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다수의 소리를 하나의 완벽한 선율로 만들어내듯이 구성원 모두가 하나로 협력해 최고의 진료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모니를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불협화음을 조율하여 화합으로 조화를 이뤄나가겠다고도 했다.

  • 기획
  • 최정규
  • 2021.09.14 17:31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싸우는 당사자 곁에 있는 사람의 몫

전주에 노동청이(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여기 있었구나. 지인이 퇴사한 곳에서 사장이랑 임금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어 노동청에 방문했다. 난 지인의 동료 시민으로 심리적으로 힘을 보태기 위해 동행했다. 일상적으로 근로 상실 신고, 이직 확인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진북동에 위치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갔던 터라, 당연히 같은 곳이라고 짐작했으나 노동청은 다른 곳이었다. 문득 정부 부처(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센터 이름을 두고 상념에 잠긴다. 고용복지라는 워딩에서 정치적 입장 같은 게 만져진다. 다름 아닌 고용주의 입장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으로 복지를 얘기하니,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과 노동복지를 실현하는 일이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그 노동자로 살아가는 무게는 노동청을 방문하는 우리의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사진으로 그 그 표정을 찍어두었다면, 100년짜리 놀림감이었을 것이다. 잔뜩 회색빛 구름처럼 겁을 먹은 체 쫄아 있었다. 사업주와 대질을 하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단기직 노동자가 노동청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려와 달리 대질은 하지 않았다. 신고 경위와 사실 관계 확인(주휴수당 연장수당 월차수당 미지급, 휴게시간 확인 등), 쟁점 사항 확인하고 조서를 작성하였다. 예상외로(?) 근로감독관은 공정한 태도를 보였으며, 당사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 주었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바로 접한 기사는 근로감독관의 갑질에 관한 글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일터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곳일까? 나는 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였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 선임한테 들었던 가장 노골적이면서, 적확했던 조언은(?) 까라면 까라 것이었다. 나는 직장이라는 지리적인 공간보다 그곳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 방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다. 까라면 까라 이것은 전형적인 군대식 문법이다. 군대식 문법은 대다수 조직 사회에 통용된다. 타인과의 관계를 수평적 동료 관계가 아닌 수직적 위계질서로 이해하고 힘의 관계로 지배한다. 그것을 거스르기 위해 애쓰지 않는 곳이라면 예외가 없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가 한창 뜨고 있다. 군대에서 도망친 탈영병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 이야기다. 드라마 댓글 창에는 왜 그토록 많은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지 성토하는 글이 많은데, 전에 없이 충분히 공감했다. 그토록 강력한 폭력과 억압의 기억이라면 평생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드라마는 군필자의 경험을 자랑삼아 전시하거나 특권화하지 않는다. 김보통 작가는 <디피>는 왜 그들이 탈영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질문하며 이제는 (군대 현실이)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성찰한다. 그리고 피가해자의 둘만의 문제가 아닌 폭력이 존재하는 사회 현실을 방관 혹은 목격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소환하여 책임을 지운다. 'D.P 개의날' 원작 중 한 장면 지인이 겪는 직장 내 갈등 또한 수당 미지급 문제만은 아니었다. 조직 문화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을 때 우회적인 방식의 배제와 미묘한 성차별이 있었다. 군대식 강압적인 폭력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폭력과 차별의 기제는 동일하다. 주방에서 일할 때 쓰는 조리사 모자가 있는데, 여자는 낮은 거 써도 괜찮은데 남자가 낮은 거 쓰면 좀 그렇다.거나 수시로 울리는 단체 카톡방에 답장을 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단톡방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든 존재하는 먼지 차별이라고도 표현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미묘하다고 해서 차별이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싸우는 당사자 곁의 사람으로 이 일을 거치면서 새롭게 배웠다. 갑을 관계에서 폭력과 차별이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 을의 위치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몫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싸움 이전의 단계에서 긴장과 조정의 단계를 거쳐, 싸움을 예방하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자 한다. 이는 동등한 힘의 관계에서 가능하지만, 권력 차이가 날 때는 싸우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방적으로 지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 증폭되어 싸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때, 관계는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 파편화된 관계는 외롭고, 두렵고, 힘겹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싸우는 동안 이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자기 불안과 의심에 시달린다. 경계를 침해받았을 때 분노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곧잘 환원된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너만 생각하는거 아냐?라는 통념은 힘이 세서 피해자를 쥐고 흔든다. 사회적 약자(노동자)를 위한 권리 는 취약하고 언어는 빈곤하다. 드라마 의 질문처럼 당신은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목격자로 설 것인가? 지인의 직장 내 갈등 사건을 겪으면서 나 또한 변해갔다. 많이 알수록 개입할수록 점점 목격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당사자에게 온 마음의 체중을 실어 힘을 실으며 함께 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목격자들이 필요하다. 잊지 않고, 책임지고, 싸우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소해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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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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