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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인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 대표

한국의 전통문화와 문화예술, 특히 우리 소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전북을 대표하는 문화시설은 자타공인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한국소리문화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지역 내 전통음악 명인들과 명창 그리고 콘서트, 클래식, 오페라, 무용, 뮤지컬 등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의 상시 공연이 개최되는 곳이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오페라, 발레 등의 대형공연을 올릴 수 있는 2037석 규모의 모악당과 중소 규모의 클래식 공연이 활발하게 올라가고 있는 666석의 연지홀, 신인음악가의 귀국독주회와 국악과 판소리, 연극, 하우스콘서트가 열리는 206석의 명인홀도 준비돼 있다. 개관 20주년을 맞은 한국소리문화전당이 나아가야 할 발자취를 서현석 대표에게 들어봤다. -2001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준비 및 예술감독을 역임한 뒤 17년 만에 대표로 다시 돌아오신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개관 20주년을 맞은 저의 감회는 한마디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잘 커줘서 참 고맙다! 입니다. 개관 당시 예술감독으로 밤을 세우며 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대표로서 개관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어 얼마나 큰 영광인지, 그동안 같이했던 얼굴들을 떠올리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설립과정에서 우리 전당의 규모 정도면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전북인구가 200 만 명도 안 되니 너무 규모가 큰 것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저는 당시 예술감독으로 우리 전북의 많은 예술인들과 도민들을 만나며 확신을 했습니다. 판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가 있고 장르마다 내공이 깊은 예술가들이 계셨고 귀명창으로 불리는 수준 높은 관객들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기획자에게는 노다지요 황금어장이 아닌가! 이런 생각과 의욕을 간직한 채 떠남을 아쉬워했었던 제가 어언 스무 살이 된 전당을 보니 역시 제 확신이 맞았다 싶습니다. -그간 한국소리문화전당이 이뤄낸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먼저 문화예술 발전, 고객 만족과 행복, 지역사회 기여 등을 3대 핵심가치로 정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발돋움, 최고의 공연전시를 통해 문화예술의 감동을 선사, 전당을 상징하는 특화된 고유 콘텐츠 개발, 투명경영 성장경영을 통해 독립경영의 기틀 마련을 운영 목표로 삼아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와 도민들의 문화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당은 자체 기획사업 브랜드인 아트 숲이란 플랫폼을 구축하고 예술, 대중, 지역에 따라 섹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북도민들의 문화여가생활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며 수준 높은 예술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예술과 대중, 새로운 트랜드를 접목한 거장전과 스테이지 윈더,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기획자의 눈, 지역 예술단체와의 협업 및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소리연리지, 소소한 행복 나눔 작은 음악회인 월드콘 등이 대표적입니다. 차별화된 문화예술콘텐츠를 개발해 도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과 문화로 꽃 피는 전북을 지향한 것도 그동안 일궈낸 결실들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수탁이후 코로나19 발생이전 4년 동안 연간 기획사업 추진 평균 건수 71건, 연간 기획사업 평균 관람객 6만4967명, 공연장 평균 가동률 72.6%로 나타났습니다. 재정자립도 또한 수탁기관 선정 이전 해인 2015년 32%보다 평균 7% 상승한 39%를 기록하는 등 꾸준하면서 안정적인 재정자립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공연계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당의 사정은 어떤가요?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세를 보이면서 대관 취소가 잇따르고 전당 기획사업도 큰 차질을 빚으면서 공연장 가동률이 38%로 급락했습니다. 올해 역시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당은 좌절하지 않고 중앙기관 등의 공모사업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올해 개관이래 가장 많은 16건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6억여 원의 사상 최대의 국고보조금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안정적으로 기획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전북현대모터스FC와 문화예술 발전과 스포츠 활성화를 위힌 업무 협약, 고창문화의전당 및 부안예술회관과 공연콘텐츠 공동제작배급 업무 협약, 도내 9개 문예회관과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 국립발레단과 업무 협약,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와 글로벌 문화교류 추진을 위한 업무 협약, 전주시립예술단과 문화예술 교류 업무 협약 등을 체결하며 도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확대를 위한 기반을 확충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다양한 장르의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비대면 온라인 공연 파이팅 콘서트를 기획해 전당 유튜브인 Sori Arts TV&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무료 관람을 제공하는 등 온라인 중계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예향전북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백조가 호수에 우아하게 떠 있도록 수면 밑에서 끊임없이 갈퀴질을 하는 백조의 발이 우리 전당 임직원들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반짝이며 성장했던 20년, 눈부시게 꿈꿔나갈 KoSAC이 우리 전당의 표어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임직원들은 세계로 나아가는 전북문화예술의 산실이요, 문화예술의 힘으로 도민들의 행복을 증진이라는 학교법인 우석학원의 수탁 미션을 구현하고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고창군, 부안군과 공동제작 중인 태권소리극 녹두와 같은 창작작업을 앞으로도 지자체와 협업으로 적극 추진할 것이며, 도내 전문 예술단체와 예술인들과의 공동작업과 참여를 더욱 넓혀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급변하는 공연전시분야를 지원하고 이끌어가는 전북문화예술의 중심이자 맏형으로서 영상분야, 메타버스 개발 참여는 물론 도민대상 예술교육에도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고 실속있는 해외 교류로 전북 예술계에 신선한 활력을 도모할 것입니다. 전당의 노하우를 해외에 전수하고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하여 명실상부, 콘텐츠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예술 발전에도 기여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되도록 우리 임직원 모두 열성을 다할 것입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인 서현석(66) 대표는 1955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소극장 <산울림> 극장장, 호암아트홀에서 연극, 영화, 해외공연을 담당했으며 우리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아홉살 인생> 등을 제작했다. 2001년에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준비 및 예술감독으로 전당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공연영화행사 기획사 ㈜조이슈즈를 설립. 서울시 <좋은영화감상회>, <세계유기농대회>, <청춘극장>, <한강 다리밑 영화제> 등을 연속 기획했다. 서현석 대표는 이번 20주년 개관식 때 최초로 열린 전주시향과 군산시향의 협연은 전북이 어려울 때 화합하는 모습도 보이고 서로 나누는 그런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면서 시향이 생긴지 처음으로 하는 협연이다보니 전문적인 연습공간이 부족하고 다들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코로나19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혔다.고 말했다. 이어 20주년 맞은 전당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문화 예향의 도시 전주라는 데서 도민들 또한 문화적 유전자가 있는데 이를 대변하듯 객석을 운영할 때 다른 데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객석률을 유지하고 있다며 직원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퀄리티가 가장 높은 직원들로 스카웃 제의도 많이 들어오다. 우리 전당은 기획팀의 사관학교로 불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 기획
  • 이강모
  • 2021.09.12 17:43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03)기억해야 할 코무덤

에비! 에비야! 위험한 것이나 더러운 것 등을 아이가 만지려고 할 때 사용한 경계의 말이다. 엄한 아버지나 무서운 대상을 지칭하는 말로 짐작할 수도 있지만, 귀와 코의 한자인 이비(耳鼻)와 귀와 코를 베어 가는 사람인 이비야(耳鼻爺)에서 유래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순사를 에비라 칭하기도 했다는데 그 말에는 무섭고도 애통한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코를 벤다는 무시무시한 말. 상상하기도 싫지만, 중국 고대부터 죄인의 코를 베는 형벌인 비형(鼻刑)이 존재했다. 얼굴의 기둥으로 자리한 코의 의미를 크게 두는 것으로 한자인 스스로 자(自)는 사람 코의 상형이며, 코가 비뚤면 생각도 바르지 못한다는 중국속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형벌 중에 코를 자르는 것은 얼굴 정중앙의 코를 훼손하여 그 사람의 형상을 말소시키고 심리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형벌이었다. 그런데, 조선에는 형벌로 코가 베어진 것이 아니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죽은 병사는 물론이고 살아 있는 조선 사람의 코를 베어 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지봉유설』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임환(1561-1608년)의 『습정유고』에는 무비자(無鼻者) 즉 코 없는 사람이란 시구가 전해지는데 코 없는 자 뉘 집 자식 인가 / 산기슭에 홀로 앉아 얼굴을 가리고 우네 / 적병이 날카로운 칼 휘둘러 바람이 이니 / 하나 베이고 둘 베이어 천 백인의 코가 달아났구나라는 애달픈 구절이 남겨져 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耳塚, 미미즈카)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남원을 비롯한 조선에서 왜군이 전리품이자 증거로 베어 간 코를 묻어 1597년 9월 조성한 무덤이다. 가로 폭이 약 49m 높이 약 7.2m인 봉분 위에는 불교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지수화풍공을 상징해서 쌓아 올린 석탑인 오륜탑(五輪塔, 고린토)이 세워져 있다. 놀이터가 있는 귀무덤 공원이 옆에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받드는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가 큰길 건너에 있다. 코무덤인 것을 귀무덤이라 한 것에는, 코를 자른 것은 야만적이니 귀무덤으로 바꾸었다는 기록과 코가 꽃의 일본어와 같은 하나라 발음되니 꽃무덤이라 칭하는 것을 피하려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코를 벤 수량에 따라 포상을 준다며 코영수증과 감사장까지 발행했다. 왜군은 코의 수를 늘리려 코를 잘라 담은 피투성이 대바구니를 허리춤에 차고 살아있는 조선인 코까지 베어 가져갔으며 더러는 코 베인 이를 인질로 데려갔다. 소금에 절여 온 코는 일본 각지에 묻혔고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조선학자 강항(1567-1618년)은 교토 코무덤을 보고는 코를 쌓아 놓은 것이 하나의 구릉을 이뤘다 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사람들이 코무덤에 제사 지내려 제문을 강항에게 부탁하자 코와 귀는 서쪽에 묻혀 언덕을 이루었고, 큰 뱀은 동쪽에 묻혀 있다하고는 히데요시의 죽음을 숨기려고 부하들이 그의 뱃속에 소금을 넣어 한 달간이나 앉혀 둔 것을 빗대어 소금에 절여 감추었지만 향기롭지 못하다라고 써준 제문이 『간양록』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코무덤을 적병의 신체를 잘 묻어주어 자비를 베푼 것으로 미화하고 힘을 과시하는 선전 장소로 활용했다. 코무덤 비석에는 조선군의 코를 베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그는 이들을 원수라 생각지 않고 오히려 가여워하는 마음을 깊이 하여 친한 사람에게 하듯 공양을 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행도 코무덤에 들르게 하였으며, 1799년 간행된 책 속 교토명소를 그린 그림에는 코무덤을 구경하는 서양인과 일본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조선을 침략하여 개선했으며 태평성대에 공헌했다고 적었다. 19세기 그림과 다양한 교토명소 엽서에도 코무덤이 등장한다. 히데요시의 대표 유적 중 하나가 된 코무덤 석탑은 1969년에 호코지 절 석축과 함께 일본 국가 사적으로 지정받고 문화재가 되었다. 이후 2003년 교토시에서는 귀무덤과 코무덤을 함께 표기해 놓고 다음과 같은 안내판을 세웠다. 이 무덤은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목 대신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중략)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왜곡된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지만, 코무덤 안에는 선조들의 원한이 그대로 봉인되어 있다. 남원에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만여 명을 합장하여 모신 무덤으로 국가 사적인 만인의 총이 있다. 대부분 코가 잘린 채 수습되었을 것이다. 근처에는 왜군에게 끌려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망향의 그리움으로 불렀던 조선가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원광대학교 양은용(1947년생) 명예교수는 코무덤을 찾아가 참배하고 남원 만인의 총으로 선조들의 코무덤과 넋을 봉안해 오고자 결심 한지가 벌써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 바람을 못 이루고 있지만, 모시도록 노력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해요라고 하였다. 최근 엄숙하게 진행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 귀환을 가슴 벅차게 보면서 모시지 못한 선조들의 넋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흔적으로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침략자의 사당 근처에 있는 선조들의 코무덤이 있다.

  • 기획
  • 기고
  • 2021.09.08 16:56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좋은 죽음과 죽음준비

#1 저는 요양병원과 같은 기관에서 죽고 싶지 않아요. 조금만 아프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어요. 병원에 누워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생각도하기 싫어요. #2 코로나 사망자는 보통 죽음과는 정반대입니다. 일반적으론 사후 24시간이 지나야 화장 할 수 있는데 코로나 사망자는 감염우려 때문에 24시간 안에 시신을 비닐로 밀봉한 후 화장을 마쳐야 해요. 어떤 경우는 오후 3시에 사망해 오후 6시에 화장했으니 3시간 만에 죽음이 정리됐어요. (사망자 가족들이) 격리되는 바람에 임종을 못 지키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는 경우도 많아요. #1은 노인요양병원에서 11년째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는 요양보호사 A씨(58)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갖는 바람이다. #2는 염장이(장례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B씨(67)가 코로나19 이후 겪은 장례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우리의 의지를 넘는 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순간일 뿐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까지를 포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신과 무관하게 생각한다. 현세적 삶을 중시하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죽음이라는 단어조차도 재수 없고 불길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논의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다. 더욱이 매스미디어가 매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밥 먹듯 전하고 있어, 죽음이 남의 일로 치부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고 부정적인 무엇인가로 인식된다. 노년은 어느 시기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와 있고, 죽음을 자주 생각하는 시기이다. 삶의 마무리인 죽음을 어떻게 해야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음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자. 우리 사회는 생활정도가 나아지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제는 한발 더 나가,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도 이에 못지않다. 웰다잉은 좋은 죽음, 존엄한 죽음, 품위 있는 죽음, 아름다운 죽음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삶의 마지막 여정으로서 좋은 죽음은 현재의 삶을 재정비하고 임종 순간까지 개인의 존엄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좋은 죽음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통증과 고통이 없이 인공호흡기 등 기계적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두려움과 불안 없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측면에서는 무의미한 삶을 강제하지 않고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죽음이어야 한다. 영적 측면에서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영혼이 평화로운 안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이혜경, 2017). 그러면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중년(40-64세)과 노인(65세 이상)으로 세분화해 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연구 참여자들과 의사소통을 통해 개인의 다양한 반응을 확인하는 Q방법을 사용해 추출한 결과(정경희 외, 2018)다. 중년은 담담히 맞이하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는 1유형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좋은 죽음이라는 2유형, 내가 결정하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는 3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아직 죽음에 임박하지 않아서인지 다소 추상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국립 암센터 홈페이지 반면 노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1유형의 좋은 죽음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1유형은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움의 정서를 강하게 느끼는 유형으로 삶에 집중하는 것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두려운 생애 사건을 맞이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살지만 죽음 이후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2유형의 좋은 죽음은 짐이 되기 전에 떠나는 것이다. 이들 유형은 자신의 죽음이 배우자나 자녀 등 남겨진 가족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지를 우선 고려한다. 이들 역시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을 존재의 종말로 보며 자신의 죽음 이후 관계나 의례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유형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어떤 죽음도 좋은 죽음이 아니며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취하기를 원하며 죽음 준비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죽음준비에 대해 살펴보자. 죽음준비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준비와 물질적인 준비로 나눌 수 있다. 정신적 준비는 죽음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다. 생명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죽음이 오면 언제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에 대한 믿음도 크게 도움이 된다. 법정스님은 미리 쓰는 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絶緣)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스티브 잡스)이라거나 죽음을 잊지 말라(memento mori),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천상병의 귀천) 등의 자세도 정신적 죽음준비에 해당될 것이다. 물질적 준비는 죽음을 수용하고 좋은 죽음을 위해 행하는 구체적인 준비다.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다든지 엔딩노트유언장을 작성해 놓아 사후에 필요한 법률적 문제를 대비하는 등이다. 또 수의나 영정사진 등을 미리 준비하고 상조회나 사망보험 가입, 시신 및 장기기증 서약서 작성, 자서전 등의 준비도 포함된다.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은 상당수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7.8%는 수의를 마련하고 24.8%는 묘지를 마련해 놓았다. 이어 상조회 가입 17.0%, 상속처리 논의 12.4%,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4.7%, 유서 작성 4.2%, 장기기증서 3.4%, 죽음준비 교육수강 2.7% 순이었다. 희망하는 장례 방법은 화장이 67.8% (화장후 납골당 33.3%, 화장후 자연장 20.6%, 화장후 산골 13.9%), 매장이 11.6%였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20.6%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시작된다. 따라서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정신이 온전해야 좋은 죽음이다 -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 - 죽을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좋은 죽음이다 - 죽을 때 가족들과 관계가 나빠지면 좋은 죽음이 아니다 - 간병비(병원비)로 가족을 고생시키고 죽는 것은 좋은 죽음이 아니다 - 죽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좋은 죽음이다 - 죽음에 대해 주변이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 -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어야 좋은 죽음이다 - 죽은 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어야 좋은 죽음이다 -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

  • 기획
  • 기고
  • 2021.09.06 16:58

[뉴스와 인물] 조봉업 전북도 행정부지사 “‘공정’ 맥락, 지역균형발전 이뤄져야”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조봉업(53) 전북도 행정부지사가 지난달 30일 취임과 동시에 업무에 들어갔다. 조 부지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 취임식 대신 도청 각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도청 직원들에게 부친 편지글로 못다 한 이야기를 전했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건 안전과 공정, 배려, 성장, 품격. 평소 자신의 신념이 녹아든 가치들이다. 지난 3일 전북도청에서 만난 조 부지사는 공직생활에서 추구해온 5가지 가치를 어떻게 도정에 반영시킬 것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고향에서 행정부지사로 근무하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떠신지요. 다시 한번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돼 기쁘고 뜻깊게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금 우린 인류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만한 중차대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이겨내고, 동시에 완전히 달라질 새로운 세상에 대응하는 준비도 해야 하는 때입니다. 취임 인사로 직원들에게 편지글을 썼습니다. 그 중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공직자들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전북의 미래도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먼저 앞장서, 우리 도정이 지금의 변화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취임사에서 핵심 가치로 안전공정배려성장품격을 언급하셨습니다. 앞서 찰스 다윈을 인용했습니다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떤 상황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핵심적 가치들을 제대로 다지고 가꾸는 것이 전제돼야 합니다. 어떠한 변화의 물결이 오더라도 변하지 않을 가치, 공적 부문에서는 안전공정배려성장품격입니다. 이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우리 공직자들도 함께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말씀드렸습니다. -각 가치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부의 첫 번째 역할은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민의 안전이야말로 행정의 첫 번째 존재 이유입니다. 비단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공직자들과 함께 도민이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한 일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국가적 위상은 높아졌고, 경제 발전도 이뤄졌지만 많은 부문에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지방행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공정과 균형의 맥락에서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거시적, 미시적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노력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 역시 행정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장 늦게 그 흔적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염병 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도민을 보살피는 데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입니다. -말씀해주신 가치 가운데 공정은 세대, 지역,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담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정과 관련해 우리 도와 연관을 시켜본다면 지역 간 공정도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얘기할 수 있지만, 이는 소극적인 개념입니다. 이를 뛰어넘어 지역 간 공정의 맥락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적극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도 기획계장, 송하진 지사가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 공공기관 이전이 시작됐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농촌진흥청과 유관기관 이전을 요구했었는데, 당시 메아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분산분권 정책에 있어 분산은 신행정수도 이전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공공기관 이전의 의제화는 약했습니다. 저는 전북에만 농촌진흥청과 유관기관을 이전해달라는 건 논리가 약하다고 판단, 공공기관 200개 정도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 배분하는 계획서를 작성했습니다. 송 지사가 이 계획서를 성경륭 당시 청와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에게 전달하면서 공공기관 이전이 국가 의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은 공정의 맥락에서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 현 상황이 과연 공정한지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도정 현안으로는 무엇을 꼽고 계십니까. 당연히 코로나19 대응입니다. 4차 대유행으로 늘어난 환자 수를 감소세로 바꾸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공직자들과 함께 백신 접종, 방역 점검, 방역 취약계층 관리 등에 전력을 쏟겠습니다. 내년 국가예산 확보에도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국회 단계 증액을 위해 시군, 정치권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역대 최대 국가예산 확보라는 목표를 향해 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안 대응입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방안을 모색하고,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공공의대 설립을 이뤄내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구상이 있으시다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의 경우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결정하고 관련 절차를 밟아가고 있어서 기업결합 승인이 완료되면, 우리 도에서 재가동을 더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리라 봅니다.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면서 공공의대 설립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지만, 대선 상황과 연계해 풀어나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두 현안 모두 국가적, 기업적 환경이나 여건을 보면서 진행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도민들과 도청 구성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장형 부지사가 되겠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대면은 어렵지만 다양한 창구를 통해서 도민 여러분의 말씀을 듣고 정책이 간과했던 사각지대까지 꼼꼼히 살피겠습니다. 소통을 바탕으로 함께 이뤄내겠습니다. 지사님의 탁월한 리더십 하에 열정을 가진 공직자들과 일하는 것이 큰 영광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정을 만들어 가는 모든 분과 적극 협력, 소통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창 출신인 조 부지사는 고창고와 경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제36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며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재정정책과장, 유엔거버넌스센터 협력국장 등을 지냈다. 지역에서는 전북도 기획관리실장, 전주시 부시장을 역임했다. 이후 행안부로 복귀해 지역발전정책관과 의정관을 지냈다. 5년 만에 제42대 전북도 행정부지사로 취임하며 금의환향하게 됐다. 조 부지사는 민선 이후 도 기획계장 출신 첫 번째 행정부지사이다. 도는 조 부지사가 도정에 대한 지식과 탁월한 정책기획 능력, 중앙의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도 도정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기획
  • 문민주
  • 2021.09.05 17:55

[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⑥명당자리가 있다?

회문산 정상에 서면 전북의 대표 산이라고 할 모악산 내장산 변산 지리산까지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회문산 정상(큰지붕)까지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단거리 코스부터 연봉으로 이어진 능선 코스를 취향과 시간에 맞게 선택해 즐길 수 있다. 정상에 접근할 수 등산 시작점도 여러 곳이다. 이렇게 회문산은 등산객을 유인할 수 있는 여러 매력을 갖췄다. 그럼에도 회문산 등산객은 그리 많다. 회문산에서 등산객을 마주칠 때가 드물다. 배후지 인구수가 적고, 휴양림 외에 달리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이유가 클 게다. 인근 강천산과 경쟁에서 밀린 것도 원인일 수 있다. 회문산에서 등산객보다 더 눈에 많이 띄는 게 무덤이다. 산 사람의 산이 아닌 죽은 이들을 위한 산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실제 회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바위가 있는 곳이면 위아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무덤이 있다. 심지어 산 정상의 암반위에 억지로 만들어 놓은 무덤도 볼 수 있다. 낭떠러지 가까운 곳에 어떻게 흙을 옮겨 묘를 썼는지 신기할 정도다. 회문산 자락에 묻힌 무덤이 1000기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많은 묘가 회문산을 덮은 데는 오래 전부터 회문산에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지면서다. 대표적인 게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풍수가사 <회문산가>다. 18세기 초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회문산가>는 6~7개 혈(穴)을 소개하면서 특히 오선위기(五仙圍碁)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오선위기에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는 예언을 곁들여서다. 이에 앞서 1600년대 활동한 분으로 알려진 일이승 스님은 산도(묫자리 그림)를 통해 회문산 오선위기와 함께 그 적합자로 배씨를 언급했다. 오선위기에 집착하는 풍수가 중에는 통일신라시대 풍수대가인 도선 국사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즉 도선의 풍수비기라는 <유산록> 순창편에 나오는 선녀직금혈(선녀가 베를 짜는 형상)을 일이승과 홍석문이 오선위기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회문산 오선위기형 명당이 널리 회자된 계기는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에 의해서다. 강증산은 모악산과 회문산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가 펼쳐진다고 역설하면서 회문산에 24개 명당이 있고 그 중 오선위기형을 으뜸으로 꼽았다. 이런 바탕 위에 오늘날에도 많은 풍수가들이 <회문산가>의 오선위기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그 혈을 찾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선위기 명당이 어떤 곳이기에 풍수가들이 여기에 꽂혀 있을까. 오선위기형은 다섯 가지 서로 다른 모양 산들이 둥글게 모인 형상을 말한다. 다섯 산의 가운데 바둑판을 두고 있는 형국이 오선위며, 풍수에서 아주 좋은 명당으로 여긴단다. 그러나 <회문산가>에서 그 혈 자리가 구체적으로 지목되지 않아 풍수가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오선의 산이 어떤 산인지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주인격을 놓고도 회문산 큰지붕과 장군봉, 깃대봉 등으로 엇갈린다. 그럼에도 잊힐 만하면 오선위기혈을 찾았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근래만 해도 회문산 정상에서 1.3km에 위치한 문터바위를 지목한 이가 있고, 그 위천근월굴에 혈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깃대봉 아래 능선에서 오선위기혈을 발견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풍수가이기도 한 제보자가 지목한 곳은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 마을 바로 위쪽으로, 회문산 마지막 파구(물이 빠져 나가는 곳) 지점과 닿아 있다. 제보자는 오선이라고 할 봉우리들이 둘러싸여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단단히 물을 틀어막는 파구를 갖췄으며, 거북이 목이 죽 밀고 나오는 형상을 지니고 있단다. 여기에 오선위기에서 말하는 다섯 개 반석이 땅 밑에 감춰져 있었다는 설명을 곁들여 일이승이나 홍성문이 말하는 오선위기혈처라고 주장했다. <회문산가>에 의한 오선위기를 허구로 보는 견해도 많다. 풍수가 김성암은 회문산가는 누군가가 도선 국사의 옥룡자 유산록에 있는 인근의 몇 혈처들을 찾아 모아 미사여구로 그저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며, 회문산가에 의한 오선위기는 없다고 단언했다.(대한풍수지리연합회,회문산-오선위기 그리고 여러 혈들에 대한 세찰). 오선위기형을 떠나 풍수가들이 회문산에 명당자리가 많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실에서 활동하는 풍수가 신남식씨(60, 식품가공업)는 회문산은 특이하게 동서남북 큰 봉우리에서 분파된 혈들이 내려오면서 각기 좌청룡우백호로 혈을 맺어 그만큼 많은 혈을 품고 있고, 섬진강이 물을 막아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게 기를 가둔다고 했다. 풍수에서 물도 중요한 데, 회문산을 둘러싸고 물이 돌면서 유속을 떨어뜨려 명당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바위가 많은 것이 말해주듯 강한 기운의 산이어서 7부 능선 이상에서 혈을 찾기 힘들며 3부 능선 밑에 혈이 있다는 게 신 씨의 소견이다. 또 회문산에는 음기도 많아 피해볼 수 있는 곳도 많다며, 현재 산 능선 곳곳에 관리 되지 않는 사묘들이 그 예라고 덧붙였다. 높은 산에는 낮은 곳에, 낮은 산은 높은 곳에 혈이 있다는 풍수 원리를 벗어나 회문산 높은 곳만 찾는 것도 잘못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순창 출신의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우석대)는 회문산 명당에 대해 부정적이다. 김 교수는 명산은 그 기의 응결이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하찮은 인간 유골 하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다며, 명산과 영산에 명당이 없다는 철칙이 회문산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했다. 또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회문산은 악산이어서 음택이나 양택으로서 적절한 곳이 아니다며, 더 이상 부질없이 조상 유골을 높은 산, 험한 곳, 바람 부는 곳, 음습한 곳, 잡초 우거진 곳에 내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북전통문화연구소 순창지역의 풍수지리) 실증적으로 회문산 일대 명당자리로 큰 인물이 났다는 말은 풍수가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의 실학자 이재 황윤석 손자 묘가 만일사 위쪽에 자리하는데, 북한의 서열 안에 꼽히는 황병서가 그의 후손이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돈다. 명당 여부를 떠나 구한말 임병찬 의병장의 묘소가 큰지붕 아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모셔져 있고, 조선인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생 묘가 정읍 산내쪽 회문산 기슭에 묻혀 있다. 회문산 명당을 거론했던 강증산과 관련한 선대 묘가 깃대봉 기슭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문산만이 아닌 순창에 명당이 많아 예부터 외지 세력가들이 묘지 명당을 많이 찾아 썼다. 그래서 생거부안(남원) 사거순창이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될 정도다. 김두규 교수는 순창에 명당이 많아 풍수답사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만큼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묘지뿐 아니라 들판에 서 있는 석장승이나 남근석, 선돌, 정자, 전통 가옥, 서원, 향교, 사찰, 도시입지와 지명에 이르기까지 풍수와 관련된 명당들을 순창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복흥면 용지마을에 위치한 조선 성리학 대학자인 기정진의 할머니 묘, 복흥면 화용리와 쌍치면 보평마을에 있는 인촌 김성수의 9대조 묘와 증조모 묘, 복흥면 외양실에 있는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선조묘, 동계면의 논두렁 명당, 남원양씨 세거지인 동계면 구미리, 조선 최고의 정자 명당으로 꼽히는 귀래정, 팔덕면 산동리 남근석, 순창읍의 기울어진 진산을 바로잡기 위한 정자, 허한 쪽을 막아주기 위해 세운 순창읍 북쪽의 석장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을 갖고 있어 풍수지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이 많은 순창인 만큼 사거순창이 아닌 생거순창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다. /김원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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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21.09.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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