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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서 바라본 꽃·이웃·세상

'지리산 외딴집 사계절은 도시의 시간보다 천천히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 어김없이 흐른다. 봄에는 지인들을 모아 화전놀이를 즐기거나 조그맣게 가꾼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로 한 상을 차려 먹는다. 여름날에는 소나기가 후드득거리며 넓은 파초 잎에 떨어지는 소리를 즐긴다. 가을에는 감을 깎아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아 놓는다. 겨울에는 땔감용 나무들만 가득 쌓아 두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그리고 다시 언 땅을 뚫고 꽃들이 고개를 들면, 행여 사람들이 모르고 밟을 세라 팻말을 꽂아놓는다.''지리산 도인'이 된 박남준 시인이 모악산을 떠나 지리산 자락 악양 동매마을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꼭 10년. 사계절을 9번 거친 뒤 다시 맞는 봄이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 같지 않지만 그에게 봄은 매양 생경스럽고 존엄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집 마당에 나와서 '무슨 꽃이 피었나' 이 꽃 저 꽃 굽어보았습니다. 부추가 파릇파릇 올라오고, 노랗게 핀 복수초에 나비가 찾아왔습니다."자신의 말에 설명을 붙이는 데 인색한 시인이지만, 복수초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랐다. 복수(福壽)가 무병장수를 의미하며, 눈을 뜨고 핀다해서 눈새기꽃으로, 얼음 사이를 뚫고 피어난다 해서 얼음새꽃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모악산에서 키우던 복수초를 지리산까지 옮겨 심었으니 복수초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가늠할 것 같다. 여기에 기자와 전화 통화하던 날(2월27일), 마침 복수초에 벌과 나비가 날아와 앉은 모습을 봤으니 시인의 감정이 올라섰을 법도 하다.시인은 이렇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당으로 달려가 꽃과 나무와 인사를 나누고, 마당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통해 세상과 교감한다.그런 지리산 속에서 사는 재미를 산문집으로 풀어놓았다.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한겨례출판). 6년 전 낸 '산방일기'의 후속편 격이다. 1부에서는 지리산 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텃밭을 가꾸며 사는 이야기들로 꾸려졌다. 새로 이사 온 집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가꾼 집 단장 이야기, 텃밭 농사로 차린 소중한 밥상 이야기, 계절마다 번갈아 오는 새와 피고 지는 꽃 이야기 등 한가할 틈 없이 더불어 사는 자연 속 시인의 일상이 차려졌다. 2부에서는 혼자이면서도 혼자이지 않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이다. 가난한 시인이라 여기며 공짜로 밥을 주는 전주 콩나물국밥집 아주머니, 하룻밤 비운 사이 텃밭에 마음껏 농약 치고 제초까지 해주는 이웃집 할아버지, 등단하자마자 서울로 불러 시인의 자세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아버지 같기도 큰 형님 같기도 어깨동무 같기도 한 정양 시인, 저자의 앉은뱅이책상을 가져다 옻칠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준 동네 동생 등을 정감있게 그렸다.3부에서는 잘못된 사회적 행태를 시인의 눈을 통해 다시 읽을 수 있는 장이다. 제주 강정마을, 4대강 사업, 학교폭력, 장애인 복지, 용산 참사 등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지리산에 묻혀있지만, 시인의 사회를 향한 따뜻한 마음은 산문집 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크리스마스 때 사찰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석가탄신일에 교회와 성당에서 역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 상생과 화합·조화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출판사에서 철 지난 크리스마스 제목이 계절적으로 맞지 않다며 바꾸자 했지만, 시인은 상생과 조화를 말하는 데 계절이 따로 있냐며 현 제목을 우겨 지켰단다.책은 책이고, 지난겨울 별 일 없었냐고 근황을 물었다. 국가적으로 대통령이 바뀌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죽지 않고 산 것이 큰일이었단다. 방구들에서 가스가 새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 나무로 지피는 온돌이지만, 구들의 구조물이 슬레이트와 스티로폼으로 놓여 여기에 문제가 생긴 때문이었다. 20여일에 걸쳐 구들을 새로 놓은 것이 시인에게는 올 겨울 큰 공사였던 셈이다.외딴 곳에서 10년간 사는 게 외롭지 않을까. 시인의 답은 간명했다. "군중 속에서도 외로운 게 사람 아니냐"였다. 자연을 친구로 삼고 있는 시인에게 지인들이 많이 찾아와 피곤할 정도라는 엄살도 부린다. 세상에 받은 게 많아서 나눠주고 싶다는 게 지인들을 맞이하는 시인의 마음이다. 하루 주요 일과가 글 쓰는 일? 그렇지 않단다. 시인은 놀고 술 마시는 게 일상이고, 아주 심심하면 글을 쓴다고 했다. 전주 한 번 나가려면 화개로 가서 구례-곡성-남원을 거쳐야 하는 관계로 5시간이나 걸린다. 서울까지 3시간 40분 보다 멀다. 시인은 그래도 2달에 1번꼴로 전주를 찾아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세속을 얻어간다.1984년 시 전문지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등 20여권의 저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03.01 23:02

23. 채규판(蔡奎判) 편 - 비정(非情)의 서정 꿈꾸는 이미지스트

군산 옥구 출생으로 원광대학교 국문과(1964년)와 동 대학원을 수료함.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7년 시집 '바람에 서서' 이후 20여 권의 시와 시조집, 그리고 '한국현대 비교시인론' 외 7권의 논저를 발간하면서 1963년 부안 삼남중학교 교사, 군산 동고교를 거쳐 1988년부터 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봉직하다 정년퇴직을 하였다.배암 한 마리 아까샤 숲에 있네.빼문 혀로 휘휘 바람을 젓네. 산, 산새 섧히 울고꽃, 꽃잎이 지고오월 하늘, 배암, 꽃잎에 노네. 노을 빛이 배암이네.배암은 노을의 출구를 아네.꿈의 울밑에 찍-찍, 배암 우는 소리- 듣는가들리네.꽃이네. 먼 능선을 휘어잡는 아까샤 꽃이네. 아아, 배암이 아까시아꽃숲에 지네. -「배암 詩抄」전문, 1969'숲에 든 뱀'과 그 '뱀의 - 울음소리'가 간결하면서도 퍽 인상적이다. '배암이 아까샤 숲'에서 '혀를 빼물고' 그것도 '휘휘 바람을 젓고' 있다는 돌연한 발상은 참으로 낯설고 이색적인 -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 비쥬얼 이미지(visual image)로서 이는 '언어를 감각화'하는 그의 남다른 이미지스트다운 상상력과 재능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제가 가면 어디까지 갈까.소롯이 피는밤꽃들아우성인데훠어이 훠어이내두르며산을 때린다 해서꿈쩍이나 할까.머루랑 으깨어 풀어 놓듯검푸른강.달이탱자만 하구나. -「여창旅窓」에서, 2009달(月)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무슨 사연 그리 많아 '훠어이 훠어이/ 내두르며/ 산을 때린다.'했다. 그리고 '머루랑 으깨어 풀어 놓듯/ 검푸른/ 강'같이 어두운 밤인데, 멀리 '탱자'만한 달이 '제가 가면 어디까지 가겠' 다고 '잘도 가는구나.' 하고 나그네는 말한다. 캄캄한 '어둠의 밤'을 '머루를 으깨어 풀어 놓듯 / 검푸른 / 강'으로, 그리고 그 캄캄한 하늘에 '샛노랗게 떠 있는 조그마한 달'을 '탱자'에 비유하여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이미지를 여전히 선보이고 있다. 이미지스트다운 이러한 그의 시풍, 그리하여 순간 순간,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튕겨오는 미묘한 움직임과 그 직관적 감각의 편린들을 '날(生) 이미지' 그대로의 직조 하는 브르통의 자동기술법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시법(詩法)이 그의 말마따나 '구성에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고, 내용이 단계적이지 못하며, (그럼에도) 추상적 의미나 가치를 긍정하고자'하는 채규판 시의 자위적(自衛的) 개성이 아닐까 한다.그의 시는 이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 결합에서 오는 싱싱한 이미지적 조어(造語), 그러나 그러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무리한 결합 과정에서 파생되는 난해한 구문 또한 그의 시에 서로 다른 평가를 불러들이게 되는 또 다른 측면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 문학·출판
  • 기고
  • 2013.02.27 23:02

전국 문인협회 수장 200여명 전주 온다

한국문인협회 주최 제33차 전국대표자대회가 오는 9월 7,8일 이틀간 전주에서 열린다. 전라북도문학관(관장 이운룡사진)은 문협 전국대표자대회를 통해 전북도가 한국문학의 근원지이며 한국문학의 본산임을 전국에 선포할 것이라고 밝혔다.문협 전국대표자대회는 전국의 문인협회 시군지회 지부장 등 200여명의 문인들이 참석해 한국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자리로, 매년 시도를 순회하며 열린다. 올 전주 개최는 전라북도문학관 개관 1주년의 의미를 실었다.이운룡 관장은 "삼국시대 백제가요에서부터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문학 전 장르의 원형이 모두 전북에서 생성발전전승됐으나 전북에 집중돼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전국대표자대회를 통해 전북도가 한국문학의 근원지임을 전국 문인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를 위해 문학관은 한국문인협회 정종명 이사장 등의 이름으로 '한국문학의 메카 전라북도, 천년 꽃 피다'고 새긴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다. 이와함께 전일환 전주대 명예교수가'전북이 왜 한국문학의 메카인가'의 주제의 특강을 통해 그 논리를 뒷받침할 예정이다.한편, 문협 전국대표자대회에서는 우수지부에 대한 시상과 문학지콘테스트 시상, 우수지부 모범운영사례가 발표되며, 시낭송 및 이사장과의 대화의 시간이 마련된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02.26 23:02

차별화된 기획 풍성…'살아 있는 박물관'

올 한해 도내 박물관들은 문화프로그램콘텐츠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일부 프로그램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역 박물관들은 꾸준한 기획전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내실을 다져 양질의 콘텐츠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병하), 전주역사어진박물관(관장 이동희), 군산근대역사박물관(관장 정준기), 부안청자박물관, 전북대박물관(관장 이태영)이 내놓은 신년 계획을 통해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을 살펴본다.△국립전주박물관지역대표 박물관인 국립전주박물관은 상설전시강화다양한 특별전 개최 등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경쟁력을 높여가겠다는 계획이다. 우선'그림으로 서재를 품다, 책가도(1~4월)','꽃, 그 내음에 흠뻑 취하다(4~7월)','나의 삶, 나의 꿈 평생도(7~11)','땅을 일구는 마음, 경직도(11월~2014년 1월)'등의 차별화된 상설전시와 민속실 개편 등 전시관람 환경을 개선해 관람객들을 맞는다. 특히 지난 11년 동안 이어온 특별전'전북의 역사문물 12(10월~2014년 2월)'에서는 익산미륵사지 석탑 유물 중'왕궁리 5층석탑 사리기(국보 123호)', 고조선 준왕이 익산 지역에 거주했음을 증명해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전한경'등 25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마한의 중심지 고도익산을 집중 조명한다. 또 조선시대 소반의 역사예술적 가치를 볼 수 있는'조선의 소반(4~6월)', 오대산 월정사 한암, 탄허 선사의 유묵을 소개하는'한국의 고승유묵전(9~10월)'등 2개의 특별전도 눈길을 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의 문화복지 서비스 확대를 위해 어린이박물관학교, 박물관 대학토크콘서트, 초중고교 창의적 체험 활동과 연계한 주말 프로그램 등이 늘어나 지역민의 문화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주역사어진박물관전주역사어진박물관은 올해 중점 사업으로 관람객 증가를 목표로 내걸었다. 전주 시민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유물을 수집전시해 외지인들에게 전주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던 역사박물관은 올해 타지역과의 유물 교류를 강화해 전주를 알리는 다방면의 전시를 기획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수집된 유물카드 작성, 온라인 홍보강화 등에 신경쓰겠다고도 했다. 특별전'등잔'(3월 1일~5월 5일)에서는 대전옛터민속박물관이 소장 중인 등잔, 등경, 촛대 등 6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조선시대 조명기구가 단순히 기능적 역할에서 머물지 않고 장신구로까지 활용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예술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선조들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는'떡살전(9월 17일~11월 30일)', 개관 11주년 기념'사진엽서로 보는 전북전(6월 4일~8월 31일)','갑오년 말띠해 특별전(12월 11일~2014년 1월 30일)'등 지역 밀착형 전시가 이어지고 전주학 학술대회(5월), 한국지역학포럼(10월) 등 연구도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주 경기전 유료화가 되면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어진박물관은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전주사고 건립 540주년 기념 특별전(5월 1일~8월 25일)'을 마련, 임진왜란 때 실록의 피난변천 과정 등을 전시한다. 이와 함께'왕실의상 특별전(3월 4일~3월 31일)','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9월 3일~29일)', 조선왕실 특별전'왕의 글씨(10월 8일~12월 29일)'도 관람객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개항 100주년을 맞아 근현대사 특별전을 내놨다. 군산지역 화교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100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친구 화교전'이 지난달부터 오는 3월까지 열린다. 생활자료 등 100여점의 유물을 통해 군산에 정착한 화교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625 전쟁 생활사전(5~7월)','815광복 특별전(7~9월)'을 통해 군산의 근현대사를 조망할 기회가 마련된다. 이밖에도 한국의료봉사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의 생을 재조명하는'흙에 심은 사랑의 인술전(1~4월)','해양문화전(4~6월)'등 기획전도 이어지고 상설전시인 해양유물역사관, 근대 생활관, 어린이관에서는 군산지역의 과거 생활 모습을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부안청자박물관오는 4월 개관 2주년을 맞는 부안청자박물관은 올해 한국의 다양한 도자기를 소개하는 특별전과 고려청자 만들기 체험활동을 준비했다. 지난 12월부터 오는 5월까지 열리는'21세기 세계현대도자전'은 기존박물관에서 볼 수 없었던 조형성이 강한 현대도예를 만나볼 수 있다.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도예협의회 우수작품과 국제공모전 수상작, 세계현대도자전에 출품됐던 도자기들이 관람객들을 유혹한다.특히 '새로운 시각으로 본'靑磁'전(6월 24일~7월 8일)'에서는 현대도예가 회원 100여명이 참가해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관람객들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도자의 고유 가치를 회복하고 더불어 시대적 다양성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해석해 전통의 조형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고려청자 만들기 체험도 올해 계속된다. 가족과 함께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며 문화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전북대학교박물관올해 전북대박물관은 특별전 풍년이다.'제주의 봄 사진전(3월)'을 시작으로'故 승동표화백 작품 기탁 기념전(4월)','전북문학표지 그림전(5월)','한국 국악 악보전(7월)','완판본 특별기획전(9~10월)','선비의 고결한 정신세계- 매란국죽전(12월)'등 한 달이 멀다 하고 기획전이 이어진다. 특히'완판본 특별기획전'에서는 전라감영에서 찍어낸'동의보감','주자대전','자치통감'등 고서적이 전시돼 전주의 출판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와 함께'출판 문화의 메카 전주(가제)'라는 주제로 특강도 마련된다.

  • 문학·출판
  • 김정엽
  • 2013.02.14 23:02

기대고 싶은 것을 찾는 누군가에게

군산에서 활동하는 오경옥 시인이'길은 걸어감으로써 길을 만든다'를 냈다(신아출판사). 1997년 월간 '문학21'로 등단한 후 16년만에 묶어낸 시인의 첫 시집이다. 문학평론가 남기혁 교수(군산대)는 오 시인의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그리움'으로 보았다. "일상적 삶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과 경험들에 내재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를 그리움으로 정서로 휘감는다. 그런 까닭에 그의 언어는 한편으로는 비참한 세계의 현실에 대해 맹목적이다"고 했다. 오 시인의 '그리움'은 그 대상이 다양하게 변주하지만, 가장 주목하는 대상은 '어머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소소한 사물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져 있는 어머니의 기억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남 교수는 해석했다.'금강하구에서''사십대 중반이라는 나이''바다가 그립다는 것은''누군가 그리워질 때면' 등 4부로 나눠 70여편의 시가 수록됐다. 오 시인은 "글 속에서만이라도 온전히 내 자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싶었다"며, '서늘해진 누군가의 가슴에 미진한 온기로라도, 기대고 싶은 것을 찾는 누군가에 버팀목으로라도, 그리운 것들을 기억하는 이에게 추억으로라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되기'를 바랬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02.05 23:02

깊고 맑은 절창 '무명 시인'의 첫 시집

배재열 시인(57)은 시를 독학했다. 그 흔한 문단 행사에서도 얼굴 한 번 비춘 적 없으니 아직까진 철저한 무명. 첫 시집'타전'(황금알)을 보면 다양한 스타일의 시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는 게 놀랍다.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시를 써온 내공을 두고 문학평론가 호병탁씨는 "오랫동안 외롭게 움츠려 있었다. 이제 멀리 뛸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선 그의 짧은 시 두 편. '한 무리 참새 떼 날아오른다 / 입에 물린 노란나비 한 마리 / 저 처절한 아름다움 // 하늘에 핀 / 한 송이 / 경전'('찰나, 환해지다' 전문)'열꽃 피었다 / 몸뚱어리마다 // 그대가 툭툭 간질이면 / 달아오른 콩깍지처럼 / 비비꼬다 키득키득 / 쏟아내는 봄봄봄 // 땅끝에서 / 북으로 북으로 / 자지러지는 / 타전 // 홀랑 / 깍지 씌우는' ('타전' 전문)이렇듯 자연을 통한 삶의 예리한 통찰은 시에서 구체화된다. 시인은 서정시와 관념시라는 재미없는 이분법을 넘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시를 한 편씩 길어올린다.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해온 시인의 성실성과 진정성은 시에서 응축된 셈이다. 배 시인은 '그늘 두터운 나무를 키우고자 했으나 비옥한 토양을 만들지 못하고 여린 나무로 선보입니다. 죽비 쳐 주십시요, 죽비 지난 그 자리마다 준비하는 다람쥐가 되겠습니다.'라고 적으며 자신을 겸허히 낮추었다. 문단에서 스스로를 단련시킨 시인의 야금술(冶金術)이 경이롭고 반갑다. 시인은 정읍에서 태어나 2008년 '문학사랑'으로 등단해 2010년 계간 '문학사랑'에서 인터넷문학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3.02.05 23:02

하찮은 '파리' 가 던지는 무거운 메시지

별주부전(작자 미상), 박지원의 '호질', 조지오웰의 '동물 농장',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호랑이, 돼지 등 동물과 곤충이 등장해 인간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지배를 받는 동물들이 세속을 풍자하거나 비꼬고 심지어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사랑을 받았다.이처럼 인간에게 훈계를 해왔던 '비 인간' 주인공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하찮고 귀찮은 존재인 파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색적인 포토 에세이가 나왔다. 매그너스 무어의 사진에 순창 출신의 설정환 시인(42)이 글을 얹힌 '파리, 날다'(한스미디어). 자연경관과 인물 사진, 누드 사진들을 찍어 온 포토그래퍼 매그너스 무어의 사진 일러스트 작품에 유머가 깃든 설정환 시인의 감성적인 글을 더한 합작품이다. 책에 등장하는 파리들의 삶은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포츠를 즐기고, 꿈을 꾸며, 기도하고, 술마시고, 사랑하고 살다 결국 죽는다. 늘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희노애락이 담긴 일상들을 파리사진을 통해 객관화해서 보는 재미를 준다. 특히 "우리는 식량을 독점하지 않는 족속이야. 어디든 넘쳐나는 식량때문에 우린 언제나 평화야. 먹는것 때문에 늘 꿈도 없이 살면서도 우리를 때려 잡겠다는 폭력주의자들!"이라는 파리들의 외침은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무거운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때 '가장 하찮은 존재'인 파리가 던진 돌이 마음속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하는 대목이다. 매그너스 무어는 우연히 파티 장소에서 발견한 죽은 파리에 사진과 일러스트를 곁들여 작업을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면서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베를린과 영국의 몇몇 미술 전시회에 선을 보일 만큼 폭발적인 화제를 뿌렸다. 또 지난 2009년 출간한 첫 책 '파리 날다 The Life Of Fly'는 현재 6개국 이상의 나라에 판권이 수출됐고 카드, 캘린더, 티셔츠로 상품화까지 됐다. 공동 저자인 설정환 시인은 지난 2004년 '함께 가는 문학' 신인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해 2010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했다.

  • 문학·출판
  • 김정엽
  • 2013.02.05 23:02

"켜켜이 쌓인 필름서 전북의 역사가 나왔다"

사실상 '무모한 도전'이었다. 시류에 영합하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내용과 깊이를 두루 갖춘 웅숭깊은 양서를 출간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는 출판사가 지역신문의 사진집을 출간한다니. 2010년 창간 60주년을 맞은 전북일보 사진집'기억'을 낸 출판사는 학고재(대표 우찬규學古齋)다. 옛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오는 '학고창신'(學古創新) 아래 우리의 문화와 고전을 아름다운 편집과 장정으로 펴내온 학고재는 전북일보의 끈질긴 설득으로 '지역의 재발견'을 감행했다. "아! 60년이라니? 먼지가 켜켜이 쌓인 필름에서 '전북의 역사'가 나왔다. 이참에 전시된 사진들은 암실에서 빛으로 태어난 수천 점, 수만 점의 옥석 중에서 추려낸 귀한 옥들일 것이다. 여기 이 옥돌을 갈고 닦아서 전라북도의 미래를 조망하면서 지역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일 것. 10년 아니 40년이 흐르면 더욱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기억 - 전북일보에 비친 현대사 60년'을 가장 먼저 읽은 '첫 독자' 안도현 우석대 교수의 일성이다. 1950년 10월15일 창간호를 시작한 역사의 기록자인 본보 지면에 비친 현대사 60년 아리랑을 10년 단위로 짚은 사진전이라는 점 때문에 2010년에 열린 '전북의 자화상 - 60년의 기록, 역사를 말하다'는 그 자체만으로 화제를 몰고 왔다. 이후 본보가 좀 더 완성도 높은 사진집을 출간하자는 고민 끝에 미술전문 출판사를 택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 작업이 다소 늦어졌다. 반복될 수 없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불완전한 추억이라 하더라도 비로소 아스라한 감정들과 함께 우리 마음에 남아 빛날 수 있어서다. '기억'이라 불리는 이 사진집은 전북일보에 비친 현대사 60년의 현장이자 증언이며, 지역사회의 파수꾼이자 역사의 기록자라는 사명으로 지켜온 전북의 자화상이다. 흑백필름 속의 역사를 복원하는 대대적 작업으로 시작된 '전북의 타임캡슐'은 차곡차곡 쌓여 있던 전북의 역사를 정치와 경제사회문화생활양식 등 시대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400여 장으로 추렸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역할 분담은 공교롭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디자인 전문가로 활동해온 이재원 서울여대 교수가 기존 디자인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으로구현해냈다. 여기에 본보 김은정 콘텐츠 기획실장안봉주 부국장정지영 前 편집위원이 엄선한 700여 장의 사진의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함축된 역사를 쓰고 엮어 전북의 현대사 60년 '기억'을 완성시켰다. 사진으로만 독자에게 말을 걸 수 있게끔 사진 밑에 설명을 적는 형식을 거부하고 뒷부분에 관련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군데군데 비워둔 페이지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썼다. 활자의 크기도 제목과 본문의 글씨 크기를 같게 하고 이런 책이라면 으레 들어가게 되는 대표의 얼굴까지 생략해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흥미로운 '기억'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서창훈 전북일보 회장은 "역사는 기억이다. 기억은 곧 우리의 미래를 여는 힘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말한다. 우리에게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기록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정당한 역사로 서지 못한다. 전북일보가 전북의 현대사 60년을 한 권의 책으로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현대사와 고락을 함께해온 전북일보가 그 영욕의 궤적을 모은 전북의 현대사 기록 '기억'은 지역 언론으로서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면서 개혁과 변화를 통해 전북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약속이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3.02.04 23:02

'한국의 슈바이처' 이영춘 박사 유품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이 기획전으로 '흙에 심은 사랑의 인술 쌍천 이영춘박사의 삶' 전시회를 마련했다.박물관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쌍천 이영춘 박사의 숭고한 삶을 조명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박물관에 기증한 유품들을 정리해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4월21일까지 전시회를 갖는다.농촌위생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는 한국 농촌의료봉사의 선각자로 1935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군산 일본인 농장 부설 의료원에 부임해 군산, 김제, 정읍지역 가난한 소작인들을 치료했다.이어 1939년 우리나라 최초로 양호실과 양호교사제도를 도입 운영했으며, 1948년 한국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했다.특히 결핵, 매독, 기생충을 3대 민족의 독으로 규정하고 농촌보건 위생사업을 추진했으며, 농촌봉사활동에 필요한 간호사를 양성하기 위해 1951년 현재의 군산간호대학을 설립했다. 1973년부터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사업의 효시가 된 의료조합사업을 하기도 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쌍천의 삶, 기도하는 삶, 선구자의 삶, 봉사하는 삶, 예술인의 삶 등 다섯가지 주제로 구분했다"며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백성의 아픔을 치료했던 쌍천 이영춘 박사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 의료사와 농촌 실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이일권
  • 2013.02.01 23:02

19. 김민성(金民星) 편 - 가을 햇살과 바다 사랑했던 부안 시인

부안여중고 교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김민성(1927-2003) 시인은 부안 출신으로 1960년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이후 부안문화 원장과 『석정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부안의 역사와 문화 특히 이매창 문학 발굴과 신석정 시비 건립에 남다른 관심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대자연이라고 하는 절대적 존재 앞에서 서 있는 자신의 왜소한 존재에 대한 골똘한 인식으로 구도자적인 자세를 보인 시인이었다. 낮게 낮게 발을 쳐놓고태양은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참새 한 마리 바삐 돌아 간 뒤 바람이 인다 바람에 날리어 내가 파리똥만큼이나 작아지는 시간. 황토길 비포장도로를 운전수는 미친듯이 차를 몰고 어둠이 쓸어오는 가로수 정밀이 덮어 가는 논둑길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고즈너기설레는 가슴을 챙긴다. - 「석양」, 전문'태양이 이제 /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석양 앞에 서 있다. 이어 사라져버리고 없는 '태양'과 '날리는 바람' 앞에서 시인은 '파리똥만큼이나 작아진다'고 하였다. 태양도 '사라져 버리고' 참새도 '날아가 버린', 이처럼 그의 초기 시는 '사라져 버리고', '날아가 버린', 그리하여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무상감(無常感) 그리고 그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수밖에 실존적 자아에 대한 골똘한 인식에서 그의 시는 시작되고 있다.갈매기는 매칼없이 바다가 좋았다바다도 갈매기가 그저 좋았다 아홉물 큰 사리 바다가 긴 잠을 깬 용트림을 하면 물씬 갯 내음 갈매기는 파도를 알 것 같다. 해조음 속에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갈매기는 파도를 모를 것 같다.바다의 깊은 의미를 네가 알까 내가 알까. 매칼없이 좋은 바다에 하루를 앉았는데 갈매기는 기어히 빈 봄을 몰고 온다. - 「바다」전문절대의 '바다'가 등장하고, 그 앞에 서 있는 왜소한 존재, 곧 시적 자아의 상관물로서 '갈매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갈매기'에게 안겨오는 것은 언제나 '빈 봄'뿐이라는 허무의식이 그 배면에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바다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갈매기, 그래서 '매칼없이 좋아한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갈매기는 파도를 알 것 같'지만 끝내 '파도를 모를 것 같다'고 한다. 이것이 절대 무한의 바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비어 있고(空) 그러면서도 끝내 그 근원을 알 수 없는(不可解) 시적 자아의 모습, 아니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누구보다도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의 바다를 사랑하다 잔잔한 여운만을 남긴 채 바다로 되돌아간 시인. '맨발로 걸어오는 / 낙낙한 가을 햇살 따라', (「맨발로」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어 맨몸으로 우리 곁을 떠난 그는 진정 부안의 시인이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 문학·출판
  • 기고
  • 2013.01.30 23:02

조선 선비의 서재, 그림으로 만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서가는 어떻게 생겼을까. 또 선비들이 바라던 서재는 어떤 모습일까.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꿈꾸던 서재를 그린 '책가도'를 살펴보는 미술실 테마전을 준비했다. '그림으로 서재를 품다, 책가도'(29일부터 4월 28일까지). 책거리 그림'이라고도 불리는'책가도(冊架圖)'는 책은 물론 각종 골동품이나 문방구, 꽃 등 여러 물품들을 그린 그림. 정조대(1776~1800)에 궁중화원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크게 유행했다. 초기 책가도에는 선비들의 애장품인 책과 문방사우를 중심으로 사랑방의 기물인 도자기·화병·화분·부채 그리고 선비의 여가 생활과 관련된 술병과 술잔·담뱃대·악기·도검·활·투호·바둑판·시계·대모 안경 등을 책 사이사이에 적절하게 배치돼 유교사회 선비들의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가로 퍼진 책가도는 그 소재가 보다 광범위해져 행복과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거북·매·소나무·학·대나무·봉황·사슴 등도 등장하고 있다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전주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해 전북대·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책가도 4점이 공개된다. 특히 전북대 소장 책가도에는 그림의 의뢰인으로 보이는 '부안군 부령 김병□'라는 사람의 편지봉투가 확인되기 도했다. 한편, 박물관 미술실은 이번 전시와 함께 조선왕실 관련 서화를 18세기 문예 부흥을 이끌었던 영조와 정조의 글씨와 그림으로 바꿔 걸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01.30 23:02

부채 위에 그려낸 소설 '혼불'

'혼불'의 완독자는 얼마나 될까. 故 최명희씨가 1980년 봄 첫 문장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부터 1996년 마지막 문장 '그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다'를 쓴 '혼불'은 원고지 1만2000장을 채운 방대한 분량. 그러나 '혼불'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우리말의 깃들인 혼의 무늬를 복원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완독까지는 아니지만 1권씩이라도 '혼불'을 읽어본 전북의 미술작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서양화가 진창윤씨는 '혼불'을 읽으면서 그리움에 뿔이 났다고 했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미완의 빈자리로 남은 '혼불'을 통해 그는 일본 제국주의가 공출해간 세월에 대한 절망감, 그러나 시대의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뿔난 그리움으로 그린 아크릴화'과연 나는 어디서'와 '유랑민' 등은 그런 기억의 흔적이다. 한국화가 이홍규장지은씨의 선화(扇畵부채 그림)에선 '혼불'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작품에 대한 그리움을 부채질한다. 언어를 조탁한 것 같은 아름다운 문체와 서정성에 힘입은 소설만큼이나 이들의 수묵채색화는 섬세한 시선과 예스러운 정취로 감싸안긴다. 아름다운 세월의 무늬가 새겨진 경기전 돌담길이나 사운대는 댓이파리 틈바구니에서 번뜩이는 달빛 등은 순결한 모국어를 담아 시대의 물살에 징검다리를 놓은 작가의 바람에 다름 아니다.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과 전주부채문화관이 '선화에 담은 혼불'展을 열어 전북 미술인들의 작품을 재조명한다. 고형숙 이봉금 이홍규 장지은 최윤진 서은형 임승한 정소라 진창윤 최지선씨는 각각 '혼불'을 읽으면서 "판소리를 읽고 있는 듯한 운율과 독특한 울림으로 장편 서사시를 읽는 것 같다"면서 "너무나 잘나서 못난 현대인들, 늘 허기진 사람들, 아픈 삶에 멀어져간 것들에게 체온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전시는 31일부터 2월13일까지 전주부채문화관 지선실에서 이어진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3.01.29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