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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 93.2%,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4.9%. 제15대 대통령선거에 이어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도 호남(전북·광주·전남) 유권자들이 또 몰표를 쏟아냈다. 선거의 특성상, 지역별로 다소간에 표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으나, 이처럼 특정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표를 몰아주는 투표행태는 민주국가의 자유선거 체제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호남지역의 개표 결과를 놓고 전국민이 깜짝 놀랐을테지만, 솔직히 찍은 장본인들 조차도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투표장에 들어가기 전, 모두 한자리에 모여 어느 후보에게 투표를 하자고 결의를 하고 투표를 해도, 이같이 완벽에 가까운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 어떻게 연거푸 두번씩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두말할나위 없이 호남사람들의 뿌리깊은 피해의식이 선거때만 되면 도지기 때문이다. 35년여 세월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독식하는 동안 숨죽이며 곁불만 쬐고 살아왔는데. 어찌 한(恨)이 남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렵사리 소수 연합정권으로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탄생한 후에도, 잘한 것은 모두 폄하시키고 잘못한 것은 침소봉대하여 5년내내 발목잡고 흔들어대기만 하였으니, 어찌 호남인들의 마음이 꼬이지 않았겠는가. 사정이 이런데 왜 호남이 ‘지역감정의 원조’로 지목받아야 하는가.하지만 이번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때 호남인들은 정동영(鄭東泳)후보와 한화갑(韓和甲)후보를 버리고 노후보를 선택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정치인들의 출신지역을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 호남인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인 것이다. 이마저도 당선 가능성이 어떻고 신지역주의가 어떻고 하며 평가절하를 하러 든다면 애써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의와 소신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노후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을 보면, 호남인들이 지역감정에 볼모잡힌 편협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 보다는 우리, 우리 보다는 나라를 더 걱정하는 의인들이 아닌가 생각된다.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일거에 털어낸 호남인들의 위대한 선택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통치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구시대 묵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시대 큰정치를 펼쳐줄것을 염원한다.
이번 16대 대통령 건거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판가름이 났다. 전자 개표기 덕분에 늦지 않은 시각에 당선자가 확정 발표된어 날을 지새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표과정을 지켜 보면서 한 가지 꼭 답을 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전남북과 광주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90%를 넘어 다른 지역의 지지율과 현격하게 차이를 보인 것이다.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무슨 호들갑이냐고 나무란다면 이 지역 정서상으로는 설명에 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을 염두에 둔다면 호남지역에서 특정후보 특히 민주당 후보에 대한 몰표는 우리 스스로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투표 결과가 지역주의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그동안 이 지역에서 보여준 행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16대 대통령 선거 결과로 나타난 호남지역의 투표행위는 비록 그 결과에서는 예전과 같다고 하더라고 그 동인(動因)이 지역주의에 있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더욱 설명을 필요로 한다.이런 믿음을 가진 것은 지난 번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광주는 물론 전주에서도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지역 사람들이 지역주의에 매여 있다고 한다면 경상도 사람 노무현에게 지지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보다 무소속 출마자가 다수 당선된 것도 이 지역 사람들이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하는 어리석은 유권자들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의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의 발원지가 광주였다는 점에서도 이 지역 사람들의 성숙한 정치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임을 말해 준다. 그리고 멀리는 불의에 맞서 싸웠던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역시 그 증거가 될 것이다.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공약 중 하나로 지역갈등 해소를 제시했던 노무현 당선자도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 장벽은 아직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이제 우리는 이 지역의 투표 양상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해석해 보고 공론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적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성숙한 정치의식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말이다.
지난 2000년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는 여론조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만 하다. 선거 당일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출구조사를 토대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개표가 진행되면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의 경합양상으로 나타나자 이를 번복하면서 ‘세기의 해프닝’은 시작됐다. 주요 방송사들은 다음날인 8일 새벽엔 부시 후보가 전체 선거인단중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여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가 곧이어 또 취소하는등 갈팡질팡했다. 이 바람에 고어 후보는 부시 후보에게 당선 축하전화를 걸었다가 번복했고,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축전을 보냈다가 취소하는 코미디같은 상황을 연출했다.이에 앞서 비슷한 오보는 1948년에도 또 한차례 빚어졌다. 세계적 여론조사 기관 갤럽의 창시자인 조지 갤럽이 이끄는 미국 여론연구원은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 후보가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 후보를 누를 것으로 예측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당시 대통령에 당선된 트루먼이 ‘듀이 후보의 승리’라고 오보한 신문을 치켜들고 있는 사진은 빗나간 여론조사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5대, 16대 총선에서 방송사들이 두표종로와 함께 발표한 예측보도가 개표결과와 크게 틀리는 바람에 출구조사 관련자를 문책하고 시청자에게 사과방송을 내보내는등 곤욕을 치렀다. 15대때는 후보자의 당락 예측보도가 틀린 곳이 무려 39곳이나 됐으며, 16대 때도 20여곳이나 예측이 빗나가면서 어느 당이 원내 제1당이 되는지 가장 기본적인 사안조차 맞히지 못했다.이처럼 제면을 구긴 방송사 선거예측보도가 지난 97년 대선과 올해 6.13 지방선거에서는 거의 적중했다. 여론조사의 이같은 시행착오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보다 정확도를 놀이기 위해서는 조사 방법의 개선에 대한 연구등이 꾸준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어제 실시된 16대 대선에서도 방송 3개사가 일제히 선거예측보도를 했다. 오보 위험부담을 안고 발표한 3개 방송사는 모두 오차범위내로 노무현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 실제 개표결과와 거의 적중했다. 지난 15대 대선때 이어 여론조사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다. 이번 출구조사를 계기로 국내 여론조사시관의 조사방법과 기법이 더욱 과학화해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더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원시시대에는 지도자를 어떻게 뽑았을까? 사냥을 하면서 돌아다니며 생활을 하였던 원시사회에서도 지도자는 가끔 바뀌었다. 지도자가 사냥을 잘 하도록 집단을 제대로 이끌었느냐가 중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사냥을 잘 하기 때문에 지도자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각종 신들이 그를 잘 보살펴 주기 때문에 그를 지도자로 하면 신의 도움을 잘 받아 사냥도 잘하고 병이나 재해를 가져오는 나쁜 귀신들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도자로 인정한 것이다.부족사회에서는 전쟁을 잘 하는것이 중요하였다. 신이 도와주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추장들도 대체로 전쟁을 잘 해야했다. 더불어 안녕과 풍년을 가져와야 했다. 이들이 모두 신이 그 추장을 돌봐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전쟁패배, 질병, 흉년의 경우, 신이 그를 버린 증거여서, 쉽게 반역이 일어난다. 농경국가가 시작되면서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계속 되었다. 신의 후손, 또는 신에 의해 점지된 사람이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역대 왕들은 신의 강력한 능력을 전수 받았거나 또는 신의 후손으로 묘사되고 있다. 단군이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조선의 개국왕들이모두 신의 후손이거나 신에 의해 점지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다.신의 혈통이기 때문에 그 후손들도 계속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왕권도 신의 혈통을 따라 상속받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이집트나 중국의 고대왕국에 있어서도 만찬가지였다.그러나 산업사회가 출현하면서 이러한 전통이 크게 바뀌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늘어나면서 왕을 신의 아들이라거나 신이 보호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낡은 사고방식으로 치부되었다. 신의 보호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능력을 검증할 필요가 생겼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함께 전국적인 투표를 통한 지도자의 선출방식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이전에는 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 뛰어난 능력을 상징하였다면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표를 모으느냐가 뛰어난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지도자는 신이 보낸다는 말을 사용한다. 오늘 신을 대신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소중하게 한 표를 행사하여야겠다.정말 능력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몸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비브리오균을 특히 독성이 강하다. 치사율이 높아 두 명중 한 명은 목숨을 잃을 정도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환자의 고통스런 모습이 TV에 단골로 비쳐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여름철에 잡은 생선이나 조개, 어패류등에는 반드시 이 균이 잠복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갯벌이 잘 형성된 서해안이나 남해안 일대는 두 말할것도 없다. 비브리오균 자체가 갯벌에 서식하는 미생물이고 이 균이 인체에 치명적인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1979년 학계에 처음 보고된 비브리오 블니쿠스에 의해 입증됐다.특히 사람들에게 비브리오 패혈증이 충격을 준것은 80년대 전남 모대학 총장이 여수에서 피조개를 날것으로 먹고 목숨을 잃으면서다.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은 생선회 뿐 아니라 조개류도 피까지 날것으로 들여 마시기를 좋아 하는데 정말 그랬다간 속수무책이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간장질환이 있거나 병력을 가진 사람은 아예 목숨을 담보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그런데 이 비브리오균이 굳이 생선이나 조개 어패류에서만 검출되는것도 아니다. 지난 99년 연세대 의학팀이 서울시내에서 임의로 추출한 단독주택·아파트·원룸등의 싱크대나 냉장고·침대·주방용구등에서도 이 균이 검출됐다고 보고서를 낸바 있다. 행주나 수저통 칼 도마등에서 검출되는것은 또 몰라도 침대에서까지 이 균이 발견됐다니 놀랍다. 이러다가는 흔히 여름 한 철날것으로 먹지 않으면 된다는 믿음조차 깨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만큼 우리 주변 깊숙히 침투한 보이지 않는 미생물 세균으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증좌일지도 모른다.전남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패혈증을 일으키는 비브리오균 유전정보를 해독하여 미국 국립보건원산하 바이오텍 정보센터에 등재했다한다. 이 연구결과 1백여개의 새로운 병원성 유전자가 발견됐고 이를 바탕으로 새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할수 있을 것이라니‘피부 괴저병’으로 까지 불리우는 무서운 패혈증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것은 우리 의료 연구팀이 세계최초로 새로운 병원균의 유전체지도를 작성했 국제 공인기관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의학연구 수준도 이제 가히 세계적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TV토론으로 크게 덕을 본사람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60년 존 F 케네디였다. 중절모를 벗어던진 케네디의 젊고 활력이 넘쳐나는 모습은 상대 진영의 닉슨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더구나 당시 닉슨은 병원에서 갓 퇴원한 환자에서 늙고 음울한 표정이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첫 TV생중계때부터 케네디는 승기를 잡았다. 라디오 토론에서는 양자간 대결이 팽팽했지만 말 솜씨와 표정, 제스처까지 시청자에게 모두 노출된 TV토론에서 한 번 잡은 판세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아이렌하워대통령의 엉뚱한 한마디도 닉슨에게 치명타를 입혔다.그는 기자들이 ‘닉슨이 부통령 재임 8년동안 어떤 주요정책 결정에 참여했느냐’고 묻자 ‘1주일만 시간을 주면 한가지쯤 생각이 날것’이라고 받아 넘겼다. 물론 우스개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닉슨에겐 ‘개구리에게 장난으로 던진 돌’이 되고 말았다. 선거 막바지에 아이젠하워는 닉슨을 위해 지원유세에 나서는등 총력을 기울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흔히 TV토론의 무게를 두고 인용하는 대표적 사례중 하나다.반대도 레이건과 먼데일 대결했을때의 일화는 인신공격이나 상대방 비방이 별무 효과임을 입증하고 있다. 먼데일이‘레이건은 너무 늙었다’고 몰아 부치자 그는 점잖게 ‘상대방 후보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점을 나는 문제삼지 않겠다’고 받아넘겼고 결국 미국 유권자들은 레이건의 손을 들어 주었다.어제 사회·문화 분야의 토론을 끝으로 세차례의 대통령선거 TV토론이 모두 끝났다. 이제 채점표는 유권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동안의 토론 결과에 대한 반응도 갖가지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모구 자당 후보들이 절대적으로 앞섰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단은 자당 후보가 예상밖의 선전으로 유권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을것이라는 자평을 하고있다. 막판 최대 변수로 떠오른 행정수도 건설이나 북한 핵문제등도 나름대로 지지후보를 굳힌 유권자들에게 큰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도 있다.어쨌거나 이제 결전의 날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부송층이 아직도 20%에 이른다지만 어제 마지막 토론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유권자들도 많을 것이다. 철학과 비전을 국민들의 가슴속에 심어준 후보는 과연 누구일까. 행운의 여신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승리의 미소를 보낼 것이다.
자유민주진명의 마지막 보루요, 믿음직스런운 우방이었던 미국이 요즘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지난 91년 옛 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이 언제부턴가 흑백논리와 일방주의적 외교행태를 일삼더니, 전 세계가 반미(反美)여론으로 들끓고 있다. 나라마다 사안은 다르지만 하루가 멀다않고 지구촌 곳곳에서 ‘타도 미국’을 외치면서 반미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반미운동은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것 같다.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Pew) 리서치센터가 전 세계 44개국 국민 3만8천2백63명을 대상으로 ‘2002년 세계인의 생각’을 조사한 결과, 지난 1∼2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세계 여론이 눈에 띄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했던대로 반미감정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이슬람 국가였으며, 이집트와 파키스탄 요르단 터키 레바논 등 중동국가들은 조사대상자의 55∼75%가 미국이 싫다고 대답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서유럽에서도 반미정서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는데,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에 반대하는 독일이 2000년 이후 반미인구가 17%포인트나 늘었고, 영국과 이탈리아도 부시정권 출범 이후 대미 우호정서가 각각 8%와 6%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방글라데시(47%)에 이어 한국(44%)이 두번째로 반미감정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의정부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반미시위가 미군 무죄판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국민들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로 인해 주권이 침해되고 자존심이 짓밟힌데 대해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는것 같다. 대체적으로 국민들은 과격한 반미기류 확산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주권 회복’과 ‘부시 공식 사과’‘한미 주둔군 지워 협정(SOFA) 전면 재개정’만은 차제에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같은 와중에, 그것도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선(船)을 억류했다가 풀어준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미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이러다가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 반, 걱정 반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스스로 ‘고립의 무덤’을 파고 있는 미국 그들의 독불장군식 패권주의는 어디서 끝이 날 것인가? 답답하다.
요즈음 북한과 관련된 국제정세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선이 일 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터진 미국의 북한 선박 공해상 나포와 북한의 핵시설 동결 해제 선언 등은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라 할 수 있다.북한이 핵시설 동결을 해제한다는 선언은 큰 이슈이긴 하지만 그동안 진행되어온 북핵문제를 고려한다면 예견이 불가능하거나 급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급작스러운 것은 미국의 북한선박 나포라고 볼 수 있다. 뜬금없는 미국의 행동은 여러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최근 전 국민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와 대선 정국을 겨냥했을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이런 의구심에서 본다면 미국은 아직도 한국에 레드 콤플렉스가 잘 먹힐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인공위성을 통해서 남포항을 출발한 북한 화물선 소산호를 한 달이상 추적하던 미국이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행동에 나섰는가 하는 점이 명쾌하지 않다. 더구나 공해상 나포라는 국제법 위반의 무리수를 두면서 말이다. 하여 앞서의 의구심에 좀더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한다.그동안 레드 콤플렉스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대선 때의 판문점 무력 시위를 북에 부탁한 속칭 ‘총풍’사건이다. 96년 4·11 총선 때의 북한군 비무장지대 무력시위 등은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레드 콤플렉스는 반사이익을 얻는 자는 있는데 그 생산자는 늘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는 특징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분명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소산호 나포사건만을 놓고 보면 레드 콤플레스 생산주체가 분명해서 ‘미국발 북풍’이라고까지 부르는 모양이다.경제용어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소비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이나 행복감이 소비단위가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한다는 인간 본성을 나타내는 경제 법칙이다. 레드 콤플렉스도 이젠 그 한계효용이 다한 모양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번 북한 소산호 나포사건에 대선정국이 요동을 쳤겠지만 지금의 국내정세를 보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국제정세는 5년전 외환위기 못지 않는 어려운 국면이다.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는 속에서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바른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전(宣傳)의 사전적 의미는 ‘주의·주장이나 어떤 사물의 존재·효능 따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와 공감을 얻기위해 널리 알리는 일 또는 그 활동’을 뜻한다.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상업선전인 광고와 구별되는 점이다.17세기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선전의 수단으로 벽보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 20세기들어 신문·라디오·TV등의 미디어가 등장하였지만 미디어를 이용할 수 없는 일반대중들에게는 커뮤니케이션들에게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서 벽보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1930년대 러시아에서 정치선전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던 벽보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확산된 대자보(大字報)는 대표적인 선전 공작용 벽보라 할 수 있다.대자보는 큰 글자로 작성하였기에 붙여진 명칭이다.우리나라에서도 방문(榜文)같은 것이 벽보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인 선전벽보가 본격 등장한 것은 건국후 각종 선거가 실시되면서 부터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각종 미디어가 발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선전벽보는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인물이나 경력·공약등을 살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유권자들은 TV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후보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지난 97년 대선때 부터 처음 시작한 TV토론은 유권자들이 지지후보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하다. 또한 3천만명에 이르는 네티즌들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손금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이처럼 미디어선거가 본궤도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후보들의 선전벽보는 선거초반 선거전이 시작됐음을 단지 알릴뿐 최소한의 판단기준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도시미관을 해칠 뿐아니라 선거가 끝난후 철거문제와 쓰레기 발생등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이밖에 선거때마다 벽보 훼손을 놓고 정당간에 벌이는 감정싸움은 유권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이 호남지역에서 자당 후보의 벽보만 훼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미디어선거시대에 가장 고전적 선전수단인 벽보는 이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시대에 맞니 않는 관행이나 제도는 과감히 시정하여 낭비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번 대선부터 후보들의 현수막을 없앤것 처럼 다음 대선에서는 길거리에서 선전벽보가 사라지길 기대한다.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공약을 제시하자 한나라당은 이를 천도(遷都)로 몰아붙이며 수도를 공동화시킬 것처럼 몰고 있다. 천도는 한국에서도 여러 번 이루어졌다. 고구려도 수도를 환인 -> 국내성 -> 평양으로 옮겼으며, 백제의 수도도 한성 -> 공주 -> 부여로 이전하였고, 고려는 개성에 조선은 한양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였다. 일본고대에서는 왕이 들어설 때마다 수도를 옮기기도 하였고, 중국에서도 수많은 수도들이 명멸하였다. 이 당시에 천도가 지니는 의미는 지금의 행정수도의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전통사회에서는 왕이 권력과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종교를 장악하고 있고, 다른 모든 주요 기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천도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의미할 정도로 중차대한 일이었다.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도를 옮기기 때문에 수도의 이전은 바로 모든 중심기능의 이전을 의미하였다.그러나 현대처럼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사회적 기능이 분화된 사회에서는 행정수도의 이전이 지니는 의미는 이전과 크게 다르다.현대사회에서도 행정수도의 이전이나 또는 행정수도와 경제수도가 다른 많은 사례들이 있다. 미국의 경우 워싱톤이 행정수도이지만, 뉴욕이 경제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워싱톤이 행정수도 역할을 한다고 하여 뉴욕이 공동화되거나 또는 폐허로 변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브라질에서도 행정수도를 옮겼고 호주에서도 행정수도를 옮겼지만 행정수도를 옮겨서 기존 수도의 경제적 기능이 몰락한 경우는 하나도 없다. 기존의 리우데자네이로나 시드니가 계속 경제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도 통일 이후 행정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겼지만 이전부터 행정수도의 기능이 행정에만 집중하여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말레이시아도 행정수도를 건설하여 이전하는 과정에 있지만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거나 또는 쿠알라룸푸르가 공동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은 없다.수도권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주기보다는, 수도이전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수도이전에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그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그리고 이전한다면 어떻게 이전하는 것이 좋은지 등의 보다 생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손’은 원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그의 국부론(國富論)에서 제기한 유명한 가설(假說)이다. 그는 국부론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이익과 안전만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사회공공의 부(富)를 증진시킨다’고 갈파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 행위의 근간인 수요와 공급은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조절되고 그에따라 고용도 창출되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은 필요없다는 낙관적 자유방임주의 경제논리의 바탕에 ‘신의 섭리’,곧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인용한 것이다.그러나 그의 이런 논리는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가난한 5백명이 있어야 한다’는 자유방임의 병패를 가져왔고 이는 곧 자본주의 사회 불평등의 표본이 되고 있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이처럼 경제용어였던 ‘보이지 않는 손’을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으면서 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인용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생물의 진화는 조물주에 의한 창조가 아니라 하등인것으로부터 고등인것으로의 변화와 발전에 의하여 생긴것이며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 있다고 주장했다.그런데 근래 들어서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보다 정치적으로 인용되는 일이 더 많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가령 암울했던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죽임을 당했던 그 많은 의문사 희생자들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분명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군복무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 ‘허일병 사건’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진상규명에 도달하지 못하는것이 좋은 예이다.지난번 민주당 국민경선때는 이인제후보가 ‘보이지 않는 손’을 거론해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한나라당 서청원대표가 또다시 이를 들고 나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SOFA개정요구와 반미(反美)기류가 확산되는 가운데 나온 이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 사실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주장 자체가 상당히 ‘뜬구름 잡기’식인데다가 예의 김대중청권은은이 나오는것을 보면 다분히 정치적 발언일것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이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정말 ‘보이지 않는 손’이 반미감정을 자극하여 조직적으로 확산시키는것이라면 예산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믿을국민이 얼마나 될까. 그랬다가는 진짜 국민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따귀라도 올려야 할 일 아닌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대규모 청중을 동원한 거리 유세는 눈에 띠게 줄어 들었다. 아니 줄어 들었다기보다 아예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듯 싶다. 후보들이 더러 유세지역 상가나 시장을 돌며 즉석 연설을 하긴 했지만 청중의 숫자는 미미했다. 민주화 이후 우리의 대선 운동방식이 일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증좌다.전북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대선이 중반전으로 접어들었지만 거리의 열기는 썰렁하다. 이회창후보와 권영길후보가 한차례 유세를 했지만 노무현후보는 아직 방문조착 하지 않았다. 대신 아침 출근시간대에 네거리에서 ‘지지호소 인사하기’에만 열심이다. 마치 지난 6·13지방선거때 모습 그대로다. 엊그제 본지 4컷 만화의 표현처럼 전북은 한나라당에게는 ‘먹지 못할 쉰밥’이고 민주당에게는 ‘언제 먹어도 되는 찬밥’이기 때문일까? 그만큼 지역정서가 특정 정당에 경도돼 있다는 풍자일태지만 대선 기류가 그런 식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이나 비전, 자질을 검증할 권리가 있고 그 과정에서 스킨쉽이라는 친밀한 정치행위를 선호하기도 한다. 역대 선거가 그랬고 그런 정서가 하루 아침에 바뀌는것 또한 아니다. 다만 대규모 청중동원으로 세를 과시하는 식의 유세전은 이제 낡은 방식이고 유권자들의 호응 또한 기대이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대신 97년 대선이후 TV토론과 연설및 미디어를 통한 광고전의 위력은 놀랄만 하다. 특히 지난번 후보단일화를 위한 노무현-정몽준 TV토론은 유권자들에게 미디어선거란 이런 것이란 본보기를 제공했다. 단일화를 결정지은 여론의 항배가 이 TV토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후보나 창조연설자들의 방송연설도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다.지난 3일의 3당후보 합동연설회는 진행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에 상대방에 대한 방어와 공격에 집중하느라 진지한 정책대결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긴 하지만 유권자들이 안방에 앉아 세 후보를 검증할수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만으로도 얼마나 민족스런 일인가.오늘밤 경제분야에 대한 2차 TV합동토론이 또 열린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경제분야에 쏠려있는 시점이다. 지난 1차때와 같이 단문단답(短問短答)식이 아니라 좀더 심도있는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토론결과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느 정도나마 예측할수 있는 그런 수준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문민정부 통치가 한창이던 지난 95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 제일의 재벌 이건희(李健熙)회장이 북경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석상에서 ‘한국의 기업은 2류, 공무원은 3류, 청치는 4류’라는 발언을 했다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으로 부터 미움을 사,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그가 어떤 심경에서 이같은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속시원한 말을 했다’는 반응이었다. 지긋지긋한 군산독재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시대 새정치가 싹을 틔우는가 싶었는데, 신물나는 정치형태는 방법만 바뀌었을뿐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국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그 후 7년이 지난 지금의 정치형태는 어떠한가?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 부분 정치발전이 이뤄진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정치적 기교만 더 교묘하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하여, 정치판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던 정치개혁 입법도 한 해가 다가도록 특위조차 열지 못하고 또 말장난으로 끝나고 말았다. 선거공영제의 전면 도입, 1백만원 이상 정치자금의 수표 사용 의무화, 정치자금 수입지출의 단일 계좌 사용 등, 선관위가 제출한 정치개혁 현안들이 그렇게도 두려운 것인지, 정치권에 묻고 싶다. 하기야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돼있는 마당에 무슨 기대를 할수 있을까 마는…한데 정치권에 아이러니컬한 사건이 하나 생겼다. 깨끗하기로 소문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의원이 대통령후보 경선때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며 양심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검찰은 김의원을 정치자금법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 법의 심판대에 올려 놓았다. 김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고백이 고해성사(告解聖事) 차원인지, 깨끗한 후보로서의 이미지 부각 차원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당시 그의 의중을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처벌받을수도 있다는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고백을 한 그의 용기는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현행 부패방지법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의 무를 규정하고 있듯이, 양심고백 또한 국가와 국민에 의해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잡초를 뽑아내고 꽃씨를 심어야지, 잡초를 키우기 위해 꽃을 꺽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것이다.
요즘 정치판을 보노라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거짓말의 수혜자가 누가 될지 아직 분명치 않다. 대선을 두 주정도 남겨둔 지금 그 진위(眞僞)를 판단하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아마도 거짓말을 하는 쪽에선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상반된 두 주장 중에서 어느 쪽 편을 유권자들이 믿게 될 것인지만 남았다.거짓말의 사전적인 정의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고의성’과 그 거짓말로 얻게 될 ‘혜택’일 것이다. 요즘 정당에서 대변인들이 주장하는 여러‘설’들을 보면 정말 악의적(惡意的)인 내용들도 더러 눈에 띈다. 글이란 자고로 앞뒤의 문맥을 살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음직도 한데 거두절미하고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내용을 들고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한심한 대변인도 있는 것을 보면 뭔가 급한 모양이라고 해석할 밖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대변인 자리를 꿰찼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서였을텐데도 말이다.그러니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몰라서 한 거짓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거짓말을 하게 된 동기는 뭘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모시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일 것이고 그리 되면 선거때 거짓말한 공로로 덕분에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그 동인(動因)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이 유치하다는 것은 말하는 자신들도 다 아는 것일텐데도 굳이 써먹는 이유는 다른 데있다. 바로 정치에 대해서 관망하는 사람들에게 정치협오증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투표자의 많고 적음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정치판의 거짓말과 혹색선전은 매우 훌륭한 정략적 도구가 될 수 있기때문이다.그런데 이런 거짓말을 주저없이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판은 바로 유권자들의 너그러움이 아닌가 싶다. 같은 고향사람이니 봐주고 학교가 같으니 봐주는 그런 너그러움의 반복이 결국은 정치모리배의 목숨을 연장시켜주는 면제부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요즘의 정치판이 혼란스럽고 판단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거짓말들을 잘 살핀다면 진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별 쌀 소비량이 급격히 줄면서 지금은 쌀이 남아 돌지만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쌀의 절대량이 부족했다. 60년대 중반까지 5∼6월의 보릿고개는 여전했고, 정부는 혼식및 분식장려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학교 선생님들이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점검하여 쌀밥을 싸온 아이들을 혼내주던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당연히 정부는 쌀 증산에 모든 국력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탄생된 벼 품종이 72년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된 후 ‘녹색혁명의 주역’으로 불렸던 ‘통일벼’였다. 서울대 허문회교수가 69년 태중재래 1호와 유카라의 1대 잡종벼에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의 기적의 볍씨라는 IR3호를 교잡 육성하며 개발했다.통일벼는 키가 작아 비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았고 병충해에도 강해 당시까지 단보당 4백㎏까지 끌어 올렸다. ‘반만년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는 평가가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77년에는 총생산량 4천1백70만석이라는 사상 최대의 풍작을 이루었다. 단지 미질이 좋지 않은데다 밥맛이 나쁜 흠이 있었다. 우리나라 농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통일벼도 쌀이 남아 돌면서 밥맛을 우선하는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91년 우리 들판에서 완전 자취를 감추었다.우리가 쌀에 관한한 양과 질적인 면에서 이처럼 자급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 세계의 빈곤인구중 3분의2가 몰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우리를 비롯 세계 각국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서울대 최양도·명지대 김주곤교수 팀이 미국 코넬대 레이 우 교수와 함께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트레할로스라는 유전자를 기존벼에 주입하여 다수확·고(高)저항상의 새로운 ‘슈퍼 벼’품종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새 품종은 추위나 가뭄에 강해 극지방이나 사막에서도 재배할 수 있고 수확량도 20% 이상 늘릴 수 있다고 한다.벼 품종 역시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도태와 진화를 반복해 왔다. 새로 개발된 슈퍼 벼도 언젠가는 통일벼와 같은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새 벼 품종이 국내학자에 의해 개발되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밥맛도 좋고 수확량도 많은 새 품종이 잇달아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어느 정도 평등한 사회는 지도자를 뽑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왕권국가나 독재국가보다 복잡하다. 원시사회에서는 노인들이 빙 둘러앉아 토론을 하면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설이 가장 중요한 정치설득수단이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연설과 더불어 신문, 삐라가 가장 중요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TV가 가장 중요한 설득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대선TV토론은 대선후보들이 직접 나와 서로 토론을 하기 때문에 현대정치의 백미이다. 토론은 상대를 마주하고 서로의 문제를 비판하고 또한 정책을 비교하여 제시하기 때문에 후보들의 비교검토가 용이하다. 연설은 연사가 일방적으로 떠들지만, 청중의 상호 상승작용으로 열기는 더욱 뜨겁다.TV에서 자주 후보토론이나 연설을 접하기 때문에 후보가 직접 연설하는 현장에 가볼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 이제 100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한 곳에 모아놓고 연설하기는 쉽지 않다. TV 토론은 한 번에 수백만명에서 수천만명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적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사람이 정치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그러나 그만큼 문제도 많다. 일정한 시간 내에 토론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항시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 전에 끝난다. 그러다 보니 몇마디의 자극적인 용어들이 훨씬 잘 전달되고 따라서 깊이보다는 자극적인 용어를 통한 이미지 심기에 주력하게 된다. 상대후보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계속 비판함으로써 상대후보에 그 딱지가 달라붙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론 후 머리 속에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또는 긍정적인 딱지가 강하게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TV와 신문이 교묘하게 특정 후보에게 부정적인 딱지를 반복적으로 붙이고, 다른 후보에게는 긍정적인 딱지를 반복적으로 붙여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토론과 달리 반론을 제기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후보들이 반복적인 용어를 통해 각인된 부정적 딱지를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딱지를 벗어나서 보다 심도있게 후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신이 중요시하는 몇가지 항목을 종이에 적고 주요 후보들이 각 항목에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를 적어서 비교해보는 것도 이미지나 구호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무릇 정치인은 시니의를 생명으로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변신에도 능해야 한다. 시류에 영합하거나 세의 유불리를 따져 설 자리를 찾을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남는다. 그런 정치인의 전형을 중국 역사에서 찾자면 단연 한(漢)고조 유방(劉邦)의 신하숙손통(叔孫通)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본래 설(薛)나라 사람이었지만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후 진(秦)나라를 세우자 ‘문학(文學)’으로 발탁되어 시환제와 2세황제까지 2대를 섬겼다. 그러나 진나라가 쇠퇴해 정세가 불리해지자 고국인 설나라로 돌아가 천하를 도모하던 항량(項梁)수하로 들어갔다. 그런지 얼마후 항량이 전쟁에서 죽자 이번에는 반란군 회왕(懷王)에게로 자리를 옮겼고 당시 회왕이 세력을 잃자 이번에는 항량의 조카 항우(項羽)에게로 다시 옮겨 갔다가 마지막으로 유방에게 충성을 바쳐 죽을때까지 벼슬을 한 인물이다.그의 이런 기막힌 변신에 대해 사마천은 ‘진퇴가때에 따라 변화무쌍했다(史記)’고 빈정거렸지만 여섯번이나 주군(主君)을 바꾼 그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가 딱이 부정적인것만은 아니았다. 그에게는 기회를 보는 민첩함과 사태를 깊이 읽는 판단력, 그 판단을 실천으로 옮길수 있는 행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자였던 그에게 제자들이 변절을 부끄러워 하자 그는 ‘일의 변화를 모르는 시골 유생’이라고 되려 호통을 쳤다니 그 도략이 홍곡(鴻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나 할까?대선 정국이 시작되면서 정치인들의 변신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이인제(李仁濟)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는 곧 자민련에 입당하여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손을 들어줄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의 탈당은 이미 예견돼왔던터라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행보를 보면 ‘정치의 정도(正道)’는 과연 무엇인가에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긴 말이 필요없다. 그가 ‘숙손통’만큼이나 기회를 보는 민첩함과 사태를 깊이 읽고 판단력으로 앞으로 전개될 정치역할구도에서 살아 남을수만 있다면 그로선 성공이다. 맹자(孟子)도 ‘훌륭한 사람은 자기가 약속한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의로운 선택만 하면 된다’고 역설적으로 갈파한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2천5백년전의 가치관이다. 지금은 민중이 정치를 이끄는 시대다. 더구나 ‘의로운 선택’에 대한 평가는 본인이 하는것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다.
1924년부터 72년까지 무려 48년동안 8명의 대통령을 모신 미국 FBI국장 에드거 후버는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닉슨이 대통령이 되기전 홍콩에서 호스티스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 두었다가 훗날 이를 ‘협박용’으로 이용했다. 그의 방에는 고위 정치인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비밀 자료함에 가득 담겨 있었다고 한다. 물론 수사요원들이 직접 수집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감청이나 도청을 통해 얻어진 정보들이었다.미국과 같은 인권국가에서 도청이 웬말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소도 웃을 우문(愚問)이다. CIA나 FBI가 도청을 하는 것은 상식이고 통신비밀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NSA같은 감청기구는 미국 안보의 핵심이다. 비단 미국만의 일도 아니다. 오늘날 국가안보나 마약겧劇側걋?강력범죄를 다스리기 위해 합법적인 감청이나 도청을 하지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국가이익을 위해 중요한 무역거래까지 도청으로 잡아내 활용하는게 선진국들의 관행이다. 오히려 미국이나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디지털 휴대폰의 감청을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이 용이하도록 시스템 개선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을 정도다.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국가정보원이 감청을 하는것은 지극히 합법적이다. 그 내용도 이미 여러차례 공개됐었다. 그런데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게 국정원 도겙㉲?시비다. 그것도 반드시 정치권에서다.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도청자료라면서 또 어마어마한(?)자료들을 폭로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이고 개연성이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국정원측은 신 건(辛 建)원장이 직접 나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법원의 영장에 의해 합법적 ‘감청’은 할망정 개인의 사생활을 엿듣는 불법‘도청’은 없다는게 신원장의 설명이다.그렇다면 어느쪽 말이 옳을까.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만큼 진실규명은 사법적 판단에 맡길수밖에 없다. 하지만 궁금하다. 왜 하필 이 시점인가. 누구의 말처럼 왜 호주머니에 놔두고 있다가 유리할때 꺼내 쓰고 불리할때 감추는가.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적기(適期)에 안타(?)를 치는’베일뒤 모(某)씨의 현란한 베팅솜씨에 그저 혀가 내둘릴 뿐이다.통화내용이 정말로 무차별적으로 도청되고 있다면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판단이다. 도청의 차원을 떠나‘아니면 말고’식의 여겲?폭로정치에 식상해 하는 국민들도 적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伸)의 영역에 대한 가증스런 도전인가? 아니면 인간도 조물주와 같은 무한의 능력을 부여받았는가? 지금 전 세계는 ‘복제인간 1호’의 탄생을 놓고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고민에 싸여있다. 인간복제는 지난 96년 복제양 돌리(Dolly)의 탄생과 함께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복제인간이 곧 태어난다는 소식에 인류는 ‘사실인가?’‘사실이라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것인가?’혼란스러워 하고있다.인간복제는 크게 나누어 두가지 목적으로 추진돼왔다. 하나는 불임 부부나 동성애자를 위한 의학적 목적이고, 또 하나는 영생의 삶을 얻기 위한 철학적 종교적 동기에서 출발했다. 전자는 내년 1월 미국인 대리모에게서 남아(男兒)가 출산될 것이라고 발표한 이탈리아의 체외수정 전문의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이고, 후자는 올해 안에 역시 미국인 산모에게서 여아(女兒)가 출생할 것이라고 예고한 세계 최초의 인간 복제회사인 클로네이드사(社)이다.종교단체의 후원을 받고있는 클로네이드사는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리더 격인 라엘에 의해 지난 97년 설립된 회사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2만5천년전 비행접시를 타고온 외계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인류 또한 이들의 복제를 통해 탄생했다고 믿고있는 종교적 단체이다. 라엘은 그가 지은 ‘YES 인간복제(부제-과학에 의한 영원한 생명)’이라는 책에서 “과거의 종교들이 오직 신비로운 사후(死後)의 낙원에서 이루어진다고 약속했던 영원한 생명, 그것은 인간이 가진 궁극적인 꿈이었고, 그꿈이 이제 복제를 통해 과학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어쨋거나 의학적 목적이든 철학적, 종교적 목적이든, 복제인간이 세상을 활보할 날이 멀지않았다고 생각하니, 묘한느낌이 든다.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은 나의 아들인가 형제인가? 또 자궁을 빌려준 대리모와 난자를 제공해준 여성이 서로 다를 경우, 복제인간의 어머니는 과연 누구인가? 복제인간이 성장해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귀하고 아름다운것이 아니겠는가? 죽지않고 영원히 산다면, 삶이 무슨의미가 있고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정말 혼란스럽다.
악어는 사냥감을 먹어 치운 뒤 눈물을 흘린다. 얼핏 생각하면 악어의 눈물 역시 일상적인 의미로 해석함직도 하다. 그래서 악어는 불쌍한 희생자를 생각하고 애도하는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하기 쉽다.그러나 눈물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감정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악어는 사냥감과 함께 짠물을 먹게 되어 있어서 몸안에 염분이 넘치기 마련이다. 이런 염분의 양을 조절하는 생리적 기능으로 악어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이런 속사정을 모른다면 앞서의 해석처럼 악어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예의 바른 동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지난 6월 13일이니까 월드컵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다. 어둑한 저녁도 아닌 오전 10시경에 두 명의 여학생이 미군 장갑차량에 압사당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군을 포함한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생리현상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 일상적인 대응이었다. 마치 악어의 눈물처럼.그동안 미군과 그 군속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심판이 우리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 적이 없었건 경험으로 보면 이번 사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었다.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사건 피의자인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운전병 마크 워커는 지난 20일과 22일 미 2사단 군사법정에 섰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배심원 제도가 아니다. 다만 그 배심원들이 모두 미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배심원들의 평결이 내려졌다. 모두 무죄, 그리고 28일 주한 미대사 허바드가 대신한 부시의 사과표명이 우리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처리 과정에서 한 가지 반복적인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악어의 식사처럼 일단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밀어 붙인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고 여기에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그런 다음에, 악어의 눈물처럼 분노한 한국민들의 감정에는 허사(虛辭)로 들릴 수 밖에 없는 사과표명을 던져 놓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그리고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한국민을 대변하고 보호해서 일을 해야 할 정부당국의 태도를 보면 도대체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수가 없다. 당하는 국민만 불쌍할 뿐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김 지사의 컷 오프설은 사실무근
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