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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조화로 가는 길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세계화는 한동안 세계를 바라보는 유일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세계화(Globalism) 조류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으면서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방화(Glocalism)가 거론된 지 오래다.세계화가 강대국 중심인 일국주의(一國主義)였다면, 세방화는 다국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리즘이 글로벌스탠다드라는 획일적 기준을 강요한다면, 글로컬리즘은 지역과 개인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상생과 조화의 세계관이다. 물론 글로벌리즘에도 장점이 많다. 세계문화의 전 지구적 공유, 빠른 혁신과 변화, 효율성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하지만 노동 및 금융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국경을 넘나들다보니 세계가 강대국 중심으로 흐르게 되면서 인류의 핵심가치가 시장문화 위에 서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다국적 기업의 가공할 힘을 경험했다. 또한 다국적 NGO들의 배타적 영향력도 경험했다. 전 세계가 은밀하게 끊임없이 경쟁하기를 부추기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경쟁자로 여기게 되었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란 작품이 있다. 앨리스가 거울나라에서 만난 붉은 머리 여왕은 항상 “더 빨리!다른 생각 말아!”를 외친다. “보다시피 여기에서는 계속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달려야 해. 만일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것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지.” 붉은 머리 여왕이 앨리스에게 외치던 말을 생각하면 앨리스가 있던 그 이상한 나라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왜 달리는지도 모르고 계속 달려야만 했던 앨리스와 끊임없이 혁신, 성장, 발전을 외쳐야 하는 우리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다.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라는 것이 있다. 생물체가 생태계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변화를 가져보지만, 생태계 역시 같이 변화하기 때문에 결국은 제 자리에 머무는 것처럼 되는 현상이다. 레드퀸은 한정된 파이 위에서 자신의 몫을 늘이기 위해 모두가 라이벌이 되어야 하는 핏물 가득한 레드오션에 산다. 레드오션은 누군가가 잃어야만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얻는 합계 제로의 섬이다. ‘세계=레드오션’이라는 글로벌리즘이 초래한 획일적 독재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세방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을 추구하는 깊고 푸른 블루오션, 그것이 바로 글로컬리즘이다. 수많은 국가, 인종, 문화가 넘나드는 소통의 길이다. 세계화라는 획일적 영향력 아래에서 시장문화를 추종하다 보면 인간의 본질적 가치가 왜곡되고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인간이 소외되는 것이 글로벌리즘의 맹점이다. 세계가 지속가능한 풍요나 평화를 필요로 하다면 상호존중의 가치에 바탕을 둔 글로컬리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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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4 23:02

선비문화 체험

경상북도 안동시 선비문화 수련원은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을 기리기 위해 2001년 11월에 설립한 곳이다. 수련원에서 1박 2일 체험했다. 450년 전 퇴계 선생께서 서원으로 출퇴근하던 고갯길을 걸어 서원에 당도하니 입구에 학문과 교육이 융성한 지역이라는 의미의 추로지향(鄒魯之鄕) 기념비가 세워졌고, 처음으로 지방에서 과거시험을 치렀다는 유적 시사단(試士壇)이 보였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이 계상서당에서 서거한 4년 뒤 1574년에 세웠다. 선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석봉(石棒) 한호(韓濩)가 쓴 ‘도산서원’의 편액이 걸려있다. 영남유림의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다. 도산서당(陶山書堂) 가운데 방 완락재(玩樂齋)와 마루인 암서헌(巖栖軒)이 있고 서당 앞 네모난 연못 정우당(淨友塘)과 퇴계 선생이 직접 파서 제자들과 함께 마셨다는 몽천(蒙泉)이 있다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에서의 알묘례(謁廟禮)집전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선비의 삶 그 현장 16대 종손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방문객에게 ‘의재정아(義在正我)라는 4자 성어 한 점씩을 들려 보내며 선생의 가르침을 전해주려는 팔순이 넘은 퇴계 가(家) 종손의 삶이야말로 자신보다는 타인을 우선하는 경(敬)에 입각하여 사셨던 퇴계의 모습 그대로였다.선비라 하면 자신에 엄격하고(薄己)/ 남에게 인자하며(厚人)/ 부모에게 효도하며(孝)/ 나라와 사회에 공헌하고(忠)/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好學), 다시 말해 우리 전통사회의 진정한 지도자를 말한다.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과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김병일 이사장은 “당신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이곳에 왔다며 낮은 자세로 본인소개를 한다. 퇴계 이황(李滉)선생의 묘소 옆에 새워진 나지막한 비석에는 관직이 없고,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간결하게 적혀있다. 이는 선생의 유명(遺命)을 따른 것이다. 선생께서 손수 지은 자명과 제자인 고봉 기대승이 지은 묘갈명이 뒷면에 새겨 있다. 하계마을은 진성 이 씨 퇴계 선생 후손들의 집성촌이다. 도산서원을 비롯하여 퇴계 종택, 묘소, 이육사 생가 터 등 마을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재와 함께 전통 고가옥이 어우러져 있는 마을이며 3대에 걸쳐 25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시킨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15명의 조선조 문과 급제자를 배출시킨 가문을 비롯하여 선비정신의산실로 평가되는 한국 유일의 집성촌이다.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퇴계 선생의 14대 후손으로 아호인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 수감번호 264에서 취음한 것이다. 1944년 1월 16일 북경감옥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론 중심의 당위론적 가르침보다 일상의 실천적 삶에 대한 존경심이 일상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주향백리(酒香白里) 화향천리(花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듯이 퇴계 선생의 아름다운 삶 역시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5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도 많은 후세인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30년 넘도록 공직에 머물면서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내신 김병일 이사장도 도산선생의 소원 선인다(善人多)를 이어내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것인가. 현대사회에서 보기 드문 선비인 성싶었다. 그의 집필인 ‘퇴계처럼’이란 〈글 항아리〉 속에는 그가 현대판 선비인 면면이 더욱 부각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참 좋은, 최고의 수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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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7 23:02

생사의 문제, 선악의 문제

이순신 장군은 항상 우리 민족의 존경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영화 ‘명량’을 통해 그 존경심이 더욱 커진 것 같다. 왜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그렇게 존경할까? 영화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나는 의리를 위해 싸운다. 장수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이 중에는 픽션도 있지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은 틀림없다.이런 명언을 쏟아낸 이순신 장군은 어떤 생각을 가진 분인가? 이 세 가지 말은 모두 하나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그것은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그 10배가 넘는 적군과 싸운다.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전투를 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백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려는 의리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인 것이다.이순신 장군의 생각은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말에 가장 잘 담겨있다. 여기서 죽으려고 하면 산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인가? 의를 위해서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에는 목숨보다 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관이 들어 있다. 반면에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말은 목숨을 위해 의를 버리면 오히려 죽는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보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선을 행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이순신 장군의 인생관은 생사의 문제보다 선악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이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최고의 리더로 존경하는 이유도 바로 이순신 장군의 이런 정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생사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지.” 생사의 문제라면 안 되겠지만, 생사의 문제가 아니니까 괜찮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사의 문제에 매달리면 어떻게 될까?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망한다. 필생즉사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는 오히려 선악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손해가 되더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필사즉생이 바로 이런 뜻이다.이순신 장군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사람이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살기 위해 친일파가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 말할 수 없이 비천해지고 말았다. 생사의 문제에 매달려 어떻게든지 살려고 했더니 오히려 죽은 것이다. 불량식품을 파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 생사의 문제에 매달려 불량식품을 팔다가 자신과 이웃이 함께 망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기가 망하지 않으려고 부정선거를 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자기가 사는가, 나라가 사는가?우리는 지금 생사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선악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우리가 선과 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나도 살고 나라도 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워야 할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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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0 23:02

ICT로 본 농업의 미래

최근 일본에서는 원격농장이 큰 인기를 얻었다. 컴퓨터 영상을 보며 게임을 하듯 채소를 키우는 것이다. 원하는 종자를 구입(약 1㎡ 당 월 500엔)하면 농장 직원이 작물 재배를 시작한다. 재배 상황은 영상으로 전달되고 수확한 후 택배로 배달까지 되는 시스템이다. 또한, 농장 직원 대부분은 고령자로 일자리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농부인 듯 농부는 아닌, 그러나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색다른 재미에 푹 빠졌다. 땅 한 번 밟지 않는 ‘온라인 농부’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호주에서는 과일을 12등급으로 감지해 어느 정도 익었는지 파악해 멀리 있는 주인에게 전달하는 로봇도 있다. 위성항법장치(GPS), 온도센서, 레이더 등 첨단 장비를 장착해 과수원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전송한다. 때에 따라 직접 비료나 물을 주기도 한다. 최근 농업 현장의 변화는 빠르고 놀랍다. 사람의 일로만 여기던 것들을 점차 인터넷과 로봇, 위성 등이 대신하고 있다. ‘그게 가능해?’라며 갸우뚱하던 이들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첨단 기술 덕분이다. 이렇게 농업의 형태가 바뀌는 모습을 세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농업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우리나라도 ICT와 농업의 융합, 그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농촌진흥청의 ‘스마트 팜(smart farm)’이다. 빛과 공간, 물주기의 제약을 극복해 지하나 실내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실내농장시스템으로, 생산력은 높이고 노동력은 낮췄다.친환경 LED와 태양광 자연채광 조명 시스템을 이용하고, 공기 중의 수분을 모아 스스로 물을 공급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원격 모니터링을 할 수 있어 빛의 양, 온도, 습도 등을 자동 또는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지난 10월 10일, 세종시에서는 ‘창조마을’시범사업 출범식이 열렸다. ‘창조마을’은 기존의 농업에 ICT 등을 접목하고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해 생산성과 경쟁력 강화를 꾀함과 동시에 교육과 복지 수준을 높인 살기 좋은 농촌마을이다.‘스마트 팜’은 물론, 농산물의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스마트 로컬푸드시스템’은 ‘창조마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의 결합으로 소규모 농가와 고령 농가의 참여도 활발해질 것이다. 게다가 도·농 간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스마트 러닝(smart learning)’까지 더한다면 전에 없던 농촌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전북도‘스마트 농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의 농가 수는 10만 6000여 가구로 총 가구 대비 15.4%에 이른다. 전국 평균인 6.4%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며, 전업 농가의 비중도 57.8%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농촌진흥청은 전북 혁신도시에서 기술과 정보를 결합한 첨단농업을 이끌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농생명 연구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기술 개발과 보급에 주력하며, 부족한 농업 인력을 대신할 과학 영농 실현에 역점을 두고 있다. 농업 강소국 네덜란드, 사막을 일군 이스라엘의 기적이 눈앞에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의 힘은 첨단 산업에 있다.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 좋은 농작물 생산으로 우리 농업이 나라를 이끌 미래 성장 산업으로 도약하는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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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3 23:02

좋은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

21세기, 그 중에서도 전반기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격동기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세계문명의 힘의 축이 동아시아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세계질서가 개편되고 있는 조짐이 매우 많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이언 모리스 교수는 21세기를 “서양에서 동양으로 힘의 축이 이동하는 시기”라면서 “앞으로의 40년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하였다. 또한 ‘메가트랜드’를 쓴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세계질서는 서구 중심에서 아시아 중심으로 진화”하는 거대한 조류 속에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반도국가이자 분단국가이다. 반도국가, 분단국가라는 말이 듣기에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우리 민족의 한계이자 가능성이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나라로 이탈리아가 있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로마시로 출발해서 세계최강의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역사는 ‘관용정신’에서 찾고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패자조차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방식만큼 로마의 제국화에 이바지 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용정책 덕에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로마가 ‘기회의 땅’이 되었고, 세계의 주민들이 자진해서 로마의 시민이 되고자 했다. 21세기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 바로 이 관용의 정신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접국가 한·중·일은 감정적·역사적 이견으로 이해의 충돌이 심하다. 정말이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흔히들 반도국가 민족은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라는 통념이 있다. 춤과 노래를 즐 매사에 다이내믹한 우리 민족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싶다. 지나치게 열정적이다 보니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의 동류의식이 생겨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차별의식이 많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지역감정이다. 지역감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미숙한 역사의식과 만나게 된다. 이 미숙한 역사관이 유전처럼 이어져 오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우리민족이 21세기 세계의 축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일도 바로 이 분파의식이다. 폐허 속에서 세계 최단기간에 일어선 우리 민족을 외국 언론에서는 ‘자신들이 얼마나 위대한 민족인지 모르는 민족’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관용정신’을 바탕으로 한 ‘관계의 능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다르다는 것은 풍부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이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바라보지 않고, 다름을 잘못됨으로 왜곡한다. 우리는 머잖아 통일한국도 대비해야한다. 통일한국이 되면 지금의 지역감정에 남북감정이라는 또 하나의 분리의식을 더하게 될 것이다. 사분오열된 분리의식이 더 갈래를 친다면 통일한국에 건강한 미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다. 이 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관계의 능력’을 우리 안에서부터 꽃피워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져야만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의 축이 될 수 있는 건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좋은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은 우리 안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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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7 23:02

전라감영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서울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각각 감영을 설치했다. 전라감영은 전주성내 중앙동에 옛 도청사와 경찰청자리에 설치하고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까지 호남지역을 감사가 총괄하는 행정기관이었다. 전라감영은 포정문布政門, 선화당宣化堂, 연신당燕申堂, 내아, 관풍각, 내삼문 등 40여 채의 웅장한 규모를 갖추었고 행정의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大都所가 설치된 자리로도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곳이다. 이렇듯 전주는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동안 전라도 전체를 다스리는 관찰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총체적인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전주 중앙동에 위치했던 전라감영이었다. 전라감영이 자취를 감추고 자료마저 대부분 소멸消滅되고, 보존하지 못한 애석함이 너무도 크다. 조선말의 전주모습을 담은 고지도가 아직 남아있고, 전라감사의 집무처인 선화당의 사진이 구술기록과 함께 전해오고 있으니 국가기록원의 배치도면을 면밀하게 살펴서 복원자료로 활용함 직하다. 그리만 한다면 그나마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겠는가. 일찍이 풍수와 지상가地相家들이 전주를 행주형行舟形이라며 많은 사람과 재물을 한 배 가득 싣고 계류하고 있는 형상이라 설파했다. 상제님께서도 군산이 세계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군창(群倉-군산)이 천하의 곳간이 될 것 이니라.”라고 예언했다.이 땅에 군창(군산)이 있으니 천하를 비우게 하지 아니 하리라. 왜국과 청국이 멀고 서양은 더욱 머나 저곳은 텅 비고 이곳은 가득 차리라. “군창群倉이 천하의 큰 곳간이 될 것이니라.”라는 뜻이다.당시 전주는 한양 평양 다음으로 번성하였으니 예언대로 조선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늦었지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전라감영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해서 당시의 건축문화와 가치관을 되살려야 한다. 과거 찬란했던 문화와 행적을 재현하여 이 고장의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인산인해를 이루는 한옥마을도 연계하고 객사와 연지공원, 건지산, 산성, 치명자산까지를 포함한 벨트를 조성하여 관광콘텐츠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구도심도 살아나고 관광산업도 육성시킬 수가 있다. ‘삼락농정’ 미래의 경제동력 ‘새만금’을 풀가동하여 떠내려가는 뱃머리를 다시금 전주성 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단단히 붙들어 매야한다.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영화롭던 3대 도시의 옛 성세가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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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0 23:02

성공한 인생과 건강한 인생

처칠이 이런 말을 했다. 돈을 잃는 것은 적게 잃는 것이다. 그러나 명예를 잃는 것은 크게 잃는 것이다. 더더욱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누가 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명언이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우리에게 더 익숙한 말이 있다. 돈을 잃는 것은 적게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크게 잃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이 말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건강이 세상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성공을 위해서는 우리의 강점을 강화하는 게 좋을까, 약점을 보완하는 게 좋을까? 수학을 잘하고 음악을 못하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수학을 더 잘해서 수학의 전문가가 되는 게 좋을까, 음악을 보완해서 수학과 음악을 모두 어느 정도 잘하는 게 좋을까? 수학에 집중해서 수학의 대가가 되는 게 좋다. 성공을 위해서는 강점에 집중해서 한 가지에 뛰어난 인재가 되는 게 유리하다.건강을 위해서는 어떨까? 폐가 튼튼하고 신장이 약하다면 폐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게 좋을까, 신장을 치료하는 게 좋을까? 신장을 치료하는 게 좋다. 사람은 몸의 다른 곳이 모두 건강해도 한 곳만 약하면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몸의 약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몸의 건강만 그런 게 아니다. 인생의 건강도 그렇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몸이 필요하듯이 건강한 인생도 필요하다. 건강한 인생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인생이 건강한 인생이다. 이웃에게 욕을 먹지 않는 인생이 건강한 인생이다. 악하게 살지 않고 선하게 사는 인생이 건강한 인생이다.건강한 인생은 실력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부도덕한 생활을 하면 건강한 인생이 아니다. 세상에서 성공해도 가족들의 원망을 받고 있다면 건강한 인생이 아니다. 건강한 인생은 선하게 살며 이웃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생이다. 돈이나 명예보다 몸의 건강이 더 중요하듯이 인생의 건강도 돈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하다. 노벨상을 받아도 이웃으로부터 야비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건강한 인생도 아니고 행복한 인생도 아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지만 그보다 선하고 건강한 인생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건강한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선한 모습을 더 강화해야 하는가, 나의 악한 모습을 고쳐야 하는가? 내가 가족들을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직장에서 근로자를 착취한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인생이 되는가? 가정을 더 사랑해야 하는가, 근로자 착취를 그쳐야 하는가? 착취를 그쳐야 한다. 건강한 인생이 되려면 친구들과 더 친해지는 게 아니라 나와 척을 진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 건강한 인생이 되려면 내 인생의 밝은 모습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악하고 어두운 모습을 고쳐야 한다. 그럴 때 인생이 더 건강하고 가치 있고 행복해진다.우리가 성공하려면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권력자와 더 가까워져야 한다. 그러나 건강하고 행복해지려면 몸의 병든 부분을 고쳐야 하고, 악한 모습을 선하게 고쳐야 하고, 어려운 이웃을 가까이 하며 도와줘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나 자신과 우리 사회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먼저 건강한 인생을 이루고 그 위에 실력을 갖춰 성공의 길을 갈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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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3 23:02

미래 성장산업으로의 농업

가을비가 지나니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숨 막히는 폭염을 지나 마른 장마, 가을 장마까지 먼 길을 돌아 만난 맑고 높은 하늘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무덥던 7월의 모퉁이에서 농촌진흥청이 새 집으로 옮아온 지 두 달이 좀 지났다. 많은 것을 꽃 피운 파릇파릇한 봄 같았던 수원시대를 마무리 하고 새 터를 돋워 오천년 전통의 농도인 전라북도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농촌진흥청 반백년 역사가 여무는 가을, 전북시대를 열었다.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요즘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늘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농업은 위기를 극복하는 튼튼한 뿌리가 된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시작은 농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50년이 그랬고, 세계의 많은 나라가 그 길을 걸었다.우리 농업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을 일궈 성장했다. ‘쌀 한 톨에는 농부의 땀 72방울이 맺힌다.’는 어르신들의 옛말은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요즘 많은 이들이 농업의 어려움을 꼬집고 있다. 그러나 세계 주요 선진국이나 유명 투자가, 미래학자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이들은 외려 인구 증가와 바이오에너지의 수요 증가,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공급의 불안전성 등을 근거로 농업을 강력한 미래 성장 산업으로 꼽는다. 특히, 고령화와 소득이 많은 독신가구 증가에 따른 고부가 기능성 식품, 가공 식품 등 식품 시장의 비약적인 발전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또한, 약용작물과 버섯, 장기 생산을 위한 동물 개발 등 농생명자원에서 얻는 천연 식의약소재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식물공장에 거는 기대도 크다.따라서, 앞으로의 농업은 안정적인 식량 생산과 소비자의 건강, 의료 등 새로운 시장 형성은 물론,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대될 것이다.이에 앞서 농업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관련 기술의 융합?복합을 비롯한 과학적 진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것이 곧 미래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이다.먼저, 농업과 과학기술이 만난 ‘스마트 농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첨단 기술을 통한 정밀 농업이 가능해지면 생산성과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해 미래의 식량 공급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다.이어, 세계 각국의 시장 개방에 따라 농식품의 수출 확대와 다변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품질 좋은 농산물을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국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안전성 관리와 장기 유통 중 신선도 관리 기술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농업과 농촌이 가진 고유의 문화와 환경, 경관 등을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6차 산업 모델을 개발하고, 도시민의 ‘치유’를 위해 식물을 이용한 도시농업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식량이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무기가 되는 세상이다. 온 나라의 눈과 귀가 이곳, 농촌진흥청을 향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량 안보라는 궁극의 목표를 좇아온 농촌진흥청은 그래서 더 갈 길이 바쁘다.이제 우린 농업이 자원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각오로 뛰어들면 못할 일이 없다. 미래의 농업이라는 새로운 장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그 중심에서 전라북도의 역할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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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6 23:02

널리 이롭게 하는 복지사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성숙한 인간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외적인 역량과 내적인 역량이 균형을 이루는 성숙한 인간이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이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는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성숙한 사회에 대한 규정의 근간은 분명 구성원의 권리와 평등성이 존중되고 보호되느냐의 여부이다.최근 복지에 대한 논의가 주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복지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위해서는 과연 복지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복지(福祉)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복지학적으로는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는 상태이다. 복지(福과 祉)는 은나라 때부터 존재했던 말이다. 신과 관계된 부수자 示에 술단지를 의미하는 을 합성한 福은 신에게 제주를 올리며 복을 기원하는 모습이고, 祉는 하늘에서 내리는 행복을 의미하는, 하늘에 계신 신령이 복을 내려주는 모습을 뜻한다. 다시 말해 복지란 하늘에서 내려준 천부(天賦) 권리, 즉 하늘에서 내려준 ‘누구나 행복할 권리’이다. 복지와 적선은 다른 개념이다. 복지사회는 크게 보아 구성원의 평등성과 권리가 확대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복지를 사회적 약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적선쯤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 혜택을 늘여 우리 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발전전략으로 생각해야 한다. 복지란 법으로 규정되는 온기 없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의 현주소는 사회의식의 척도가 된다.10월을 맞이해 개천절에 대해 생각해본다.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을 5대 국경이라고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건국이념을 담고 있는 개천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하늘로 여겼던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하늘을 연다는 개천(開天)은 사람의 마음을 연다(心開)의 의미가 크다. 사람의 마음이 크게 열려야 ‘널리 인간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이야말로 천부의 권리인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문에서 사람을 지칭할 때 ‘人’이라고 하지, ‘人間’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고,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세상이다. 홍익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의 이익이다. 홍익인간이란 개념을 가슴에 품고 있는 우리 민족은 “서로 다툼이 없는 만민공영의 세상”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통합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긴급한 과제이다. 진정한 통합은 외부가 정한 규율이나 제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린 마음에서 온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10월은 하늘이 열린 개천의 달이다. 개천의 달을 맞이해서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공영(共榮)의 길을 숙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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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9 23:02

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

전북에는 보물이 많다. 작은 돌 큰 돌이라 불리는 보석 산업과 석재산업은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보물들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간척사업인 새로운 보물인 새만금(新萬金)까지 눈길 가는 곳마다 보물 아닌 것이 없다. 이어령 전 장관은 그 보물들을 얼마나 대단하게 여겼기에 전북을 두고 문화의 보고(寶庫)라고까지 말씀하셨을까. 하지만 아무리 보물이 많으면 무얼 하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겠는가. 새만금은 1000km반경 안에 중국, 일본, 러시아가 인접한 15억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이 기회의 땅을 선점하기 위해 7월3일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여 한·중 정상공동성명에 새만금 국제비지니스 센터(SIBC)를 구축할 것을 부속서에 첨부했다. 한·중이 협력하여 기술과 인력, 자본의 창조적 융합으로 새만금을 상해 포동浦東으로 만들어 글로벌 씨티(Global City)를 형성하자는 것 아닌가. 우리의 새만금이 끝내 잘 살아갈 수밖에 없을, 전북의 미래를 보정(補正)하는 누름단추가 될 전망이다. 이 새만금을 제대로 잘 가다듬어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일이야말로 우리 전북이 처한 당면의 과제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새만금이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발전하기에 최적지라며 기초계획을 바꿨다. 2030년까지 농경지 72%, 복합도시 28%로 계획된 것을 농경지 30%, 복합도시 70%로 바꾸면서 2020년까지 개발해야 경제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공기를 10년이나 앞당겨 드라이브를 거는가 싶었는데 환경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고 도민의 요청도 간절함이 부족해서였을까? 방향이 4대강 사업으로 급선회하여 2008년 11월에 착공, 22조를 쏟아 부어 2년 만에 4대강사업을 완공시켰다. 4대강 사업의 결과는 총체적 부실공사로 평가받았다. 새만금을 바짝 추켜들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통탄하지나 않을까. 그래도 새만금사업의 조성부지 용도를 변경하고 준공일자를 10년이나 앞당겨놓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할까? 우연이겠지만 세종시, 새만금사업, 4대강 사업의 개발투자비가 똑같은 22조원이다. 그런 건 차치한다 해도 세종시는 벌써 완공되었고 4대강사업은 겨우 2년여에 완공을 보았다. 헌데 우리 새만금사업은 어떠한가. 25년이 맥없이 흘러갔다. 오늘날까지 2조3900억 원을 투입했고 공정률은 약 10%에 머물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개념이 국가행정차원 전반에 걸쳐서 깡그리 증발되었다. 눈 씻고 주시해도 찾아보기가 어렵게 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께 청원합니다. 전북의 산하에 흩어진 보물들을 꿰는 데 앞장 서 주십시오. 새만금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남 아시아권의 새로운 먹거리의 보고입니다. 이름도 새로운 보배 ‘새만금(新萬金)’이라 하지 않습니까. 1987년 5월12일 새만금간척사업 추진계획이 발표되고 22년 9개월 만에 새만금 방조제 33.9km가 준공된 후 아직껏 방조제 좌우로 아득히 바다만 보일 뿐입니다. 새만금산업단지 566만 평을 최우선적으로 조성하여 한·중 경협 단지를 마련하고 차이나타운(Chaina town)을 조속히 유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우선 공항을 먼저 마련해야하고 따라서 외자유치도 가능해야 합니다. 국토균형발전의 견인차로 새만금에 사활을 걸어볼 의향을 여쭙고자 합니다. 옛날 선인들도 “군창(群倉-군산)이 천하의 곳간이 될 것이다”라고, 여러 차례 예지하고 예언하셨습니다. 청컨대 통일시대에 대비한 식량안보태세를 강화하는 청사진을 조속히 실현케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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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2 23:02

하나의 꿈과 다양한 능력

사람은 누구나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해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두 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 첫째,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꿈을 포기하면 꿈을 이룰 수 없다. 끝까지 꿈을 품고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둘째,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도 없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큰 꿈일수록 더 큰 실력이 필요하다.꿈을 이루려면 어떤 실력이 있어야 할까? 다양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실력만으로는 꿈을 이루기 어렵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뛰어난 체력, 공 다루는 능력, 경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판단력 등이 있어야 한다. 이 중의 하나만 가지고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어렵다.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때 정말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다. 다른 꿈도 마찬가지이다.개인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자유, 평등, 사랑, 정의가 이루어지고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려면 모든 국민이 이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를 위한 꿈을 잃은 것이다. 내 회사, 내 정당, 내 파벌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를 위한 꿈을 잃은 것이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는 꿈을 잃은 나라이다. 절대 잘 될 수 없다.꿈을 잃지 않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국가에도 다양한 분야의 실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분야에 아무리 좋은 인재가 많아도 다른 분야에 좋은 인재가 부족하면 나라가 잘되기 어렵다. 그룹 전체의 능력은 머리 좋은 사람만 많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다. 머리 좋은 사람, 실천력이 뛰어난 사람, 감독을 잘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높아진다. 그룹이나 국가의 능력은 다양한 인재가 모일 때 높아지는 것이다.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필요한 것은 사상과 이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온 국민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발전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생각이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눌 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해로운 일이 아니라 유익한 일이다. 여당과 야당이 있고, 진보와 보수가 있어야 나라가 발전한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를 볼 때 답답해하지 말고 우리나라의 보배로 생각해야 한다. 보수도 진보를 볼 때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상과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우리나라가 더 잘 될 수 있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꿈이 같아야 한다. 정말 이 나라 이 민족이 평화와 정의와 번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꿈이 같아야 한다.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나라는 위험해져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삼발이는 다리가 넓게 펴질수록 더 안전하게 설 수 있다. 단, 윗부분은 반드시 하나로 결합하여 있어야 한다. 삼발이의 윗부분이 분리되면 삼발이는 무너진다. 나라를 위한 꿈이 분열되면 나라도 무너진다. 우리 모두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정의와 평화와 번영의 나라를 이루려는 꿈에서는 하나가 되고 생각과 능력에서는 다양성을 갖춰 더 좋은 나라를 이룰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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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5 23:02

전북의 힘

최근 송하진 도지사가 도민과의 약속인 민선 6기 도지사 공약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0개 분야 123개의 사업에 대한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전라북도가 발표한 전북발전 123의 골자는 1억명 이상 관광객 전북방문, 2배 이상 도민 소득 달성, 3백만 도민시대 기반구축이라는 3대 전략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전라북도에 사람과 돈이 모이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 도민이 행복한 전라북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미래다라고 한다. 또한 역사는 발전한다고도 한다. 이 말처럼 과거 속에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해답이 모두 들어있고, 우리가 구축해온 정체성이 농축되어 있다. 얼마전만해도 전라북도를 가리켜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눈물의 땅이라고들 했다.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이면서도 수탈의 현장이었던 곳으로, 풍요 속 궁핍의 땅이라는 의미다. 동쪽은 산간지역이지만, 서쪽으로는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이 넓고 기름지게 펼쳐져 있어 전북은 농도(農道)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60년대 중공업정책이 시작되기 전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세대에 전북은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나라의 곳간이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호남평야를 적시고 서해바다로 들어가는 만경강과 동진강을 두 줄기 물이 감싸듯 정기가 풀어지지 않아 살만한 곳이 대단히 많다고 설명했고, 소설가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의 첫 장에서 김제만경평야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천혜의 축복이 오히려 전북이 굴곡진 역사를 가진 슬픔의 땅으로 전락하는 빌미가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탐관오리들이 욕심을 채우는 곳으로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지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아베가 세운 동진농업주식회사를 비롯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양곡수탈의 현장이자 통로가 되었다. 민선 6기 도지사가 제시한 전북의 희망가를 보면서 필자는 문득 전라북도에도 새로운 꿈이 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지역은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로 불려왔다. 만경, 김제평야는 나라 안에서 가장 큰 평야로 전주, 익산, 정읍, 군산, 완주, 부안, 고창 등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어 전북은 말 그대로 농자천하지대본의 아름답고 기름진 땅이었다. 지평선 위로 해가 되풀이해서 뜨고, 되풀이해서 지는 것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변천에 따라 순응하며 변화한다. 정부가 새로운 만금평야를 만들겠다고 전라북도에 새로운 땅을 만들고 있다. 변산반도와 군산, 고군산군도를 서쪽으로 껴안고, 북으로는 만경평야, 남으로는 김제평야를 웅숭깊게 품은 여의도 140배인 401㎢에 이르는 새로운 땅.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긴 방조제와 함께 283㎢가 간척지로, 118㎢가 호수로 바뀌면서 새로운 만금평야의 역사가 전북에서 시작된다. 새만금개발과 관련해 갑론을박의 여러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공사가 절반이 넘게 진행된 마당에 이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새로운 땅에서 전북의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북의 꿈이 있는가 자문해본다. 그 답은 분명 있다이다. 전북의 미래는 분명 밝다. 어느 집단이든 상위 2%의 사람이 그 집단을 살려내고 있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인재풀이 두텁고 다양해야만 경쟁력이 유지된다. 선진국일수록 인재양성에 관심이 높은 것은, 사람이 인류문명을 이끌고 가는 최고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전북의 힘 역시 사람에게서 나온다. 전라북도의 패배의식이 깊다. 너무 오래 소외되고 굴곡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슬픔의 강인한 힘을 믿는다. 새만금에 가장 근접한 대학인 군산대학교는 전북의 발전을 견인할 최고의 인재풀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10년 안에 군산새만금산단의 수요인력 60% 이상을 양성해 전북의 새로운 꿈을 실현시킬 계획이다. 슬픔의 넉넉한 힘을 이해할 줄 아는 전라북도인은 그 어느 지역 사람보다 강하고, 우수하다. 또한 고난 속에서 단련된 안정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평준화, 표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역의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전북인만이 가진 고유 한 형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신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경제적 수치나 정치적 위상 등이 삶의 질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한 집단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나 사유의 깊이 등 연륜을 지닌 무형의 자산이 진정한 힘이라는 생각을 할 만큼 성숙되었다. 진정한 힘은 우리만 잘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화합을 통한 상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럴 때, 전북의 힘이 커지고, 우리의 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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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1 23:02

디트로이트의 파산 신청

미국 미시간(Michigan)주 동남부에 위치한 공업도시 디트로이트(Detroit) 시가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3년 7월 연방법원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지방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미국자동차 ‘빅3 GM, 크라이슬러, 포드’가 있어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했던 디트로이트, 시민은 180만 명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1인당 소득이 미국 내의 최고였고 세계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이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쇠락해져 지금은 70만 명으로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미국자동차 빅3는 뒤늦게 시의 회생노력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옛 명성을 되찾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울산이 디트로이트를 닮아간다”라는 광고기사를 읽었었다. “소득상위 5%, 세계 자동차업계 최고수준의 임금체계에도 파업투쟁만 한다.” 몇몇 신문1면 광고 타이틀이다. 현대자동차의 파업을 비판하는 내용을 울산상공회의소가 기고한 것이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현대차 근로자1인 평균급여가 연봉 9,400만원이다. 우리나라 가구소득 상위 5%에 해당하는데도 현대차 노조가 더 이상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일을 거부하는 걸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세계 자동차시장을 호령하던 미국 디트로이트의 흥망성쇠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2009년에 파산한 미국자동차회사 GM은 일본차가 몰려오는데도 노조가 파업을 일삼고 퇴직자에게까지 의료비를 지원하다가 파산했다. 지역의 주력 기업이 흔들리자 소재지인 디트로이트가 슬림화되면서 결국 도시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것 이다. 노조 요구에 휩쓸린 자동차회사의 몰락이 대도시의 파경을 가져온 것이다. “울산 파업하는데 美공장 증설하시죠.” 네이션 딜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가 정몽구 현대그룹회장을 만나 미국공장 증설을 요청했다. 주지사는 현대기아차가 미국현지에서 물량부족을 겪고 있는데 공장을 증설하면 필요한 부지와 자금 등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은 130만대, 연간 35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현대차 엘라바마공장과 기아차 조지아공장을 110% 가동해도 74만대밖에 생산할 수 없다. 부족량 56만대는 한국공장 생산물량으로 충당할 수 밖에없다. 때문에 노조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반복된다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런 실정을 미리알고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의 노조는 일자리를 내놓겠다는 파업일색이다.그런가하면 울산이 디트로이트를 닮아간다고 엄살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전북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도 부분 파업을 함께하고 있었고, 군산 GM코리아는 4000명을 감원한다고 선포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도 설계가 지연되어 공장이 텅텅 비어있다. 군산경제의 동력은 이미 가물가물하고 있었다. 울산은 자동차뿐 아니라 정유, 석유화학, 조선 등 경제동력이 다양한데도 울상을 짓고 있는데 전북은 경제의 주동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상공회의소조차 입을 다물고 사회단체들 역시 고요하다. 진즉에 울산이아니라 전북에서 대서특필로 노사협의를 호소하고 새만금 조기개발을 들고 나왔어야했다. 도민 전체가 위기의식으로 팽배하여 와글와글 호소하며 들들들 끓어야했었다. 하지만 이곳 전주에서는 현대자동차 관리자와 협력업체사장들만 애를 태웠고 전북도민들은 아무 영문도 내용도 모른 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가고 있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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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5 23:02

우리와 의리

세상에 ‘우리’라는 말만큼 좋은 말도 별로 없다. ‘우리’는 너와 내가 하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반목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 화목하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온 가족이 하나가 된다면 집안이 늘 평화롭고 행복하며 번창할 것이다. 회사나 학교나 국가도 다 마찬가지이다.그렇다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어떤가? 이 말도 좋은 말이다. 이 말은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이 말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이 말을 특정한 사람들끼리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말은 선거 때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데 많이 사용되어 우리 사회에 큰 해를 끼쳐왔다.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알 수 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사랑과 협력의 범위가 어떠냐에 따라 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사람 중의 하나지만 그도 에바 브라운이라는 여인을 극진히 사랑했다. 만일 사랑을 연인의 범위에 국한해서 본다면 히틀러도 누구 못지않게 사랑이 많고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랑을 외국인에게까지 확대한다면 히틀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한 사람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조폭도 자기들끼리는 형제처럼 사랑한다. 그러나 힘없는 서민은 잔혹하게 착취한다. 만일 사랑의 범위를 의형제에 국한한다면 조폭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범위를 서민에게까지 확대한다면 조폭은 흉악한 자들이다.그렇다면 사랑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해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구에게까지 ‘우리’라고 해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 내 가족에게 우리라고 하는 것은 히틀러도 하는 일이다. 나의 패거리에게 우리라고 하는 것은 조폭도 하는 일이다. 같은 당파에게 우리라고 하는 것은 역사의 모든 간신들도 했던 일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우리라고 해야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고 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가?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특별히 더 우리라고 해야 할 사람이 있다.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이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워진다. 법관이 힘없는 서민에게 ‘우리’라고 하면 서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우리’라고 하면 근로자가 착취를 당하지 않는다. 상인이 소비자에게 ‘우리’라고 하면 소비자가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선거 때 타 지역 출신에게 ‘우리’라고 하면 망국병인 지역감정이 사라진다. 요즈음 의리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의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의리도 누구와의 의리냐에 따라 악한 것이 될 수 있다. 혈연, 지연, 학연에 따라 챙겨주는 의리는 배경 없는 서민을 왕따 시키는 악이지 결코 의리가 아니다. 나와 아무 이권이 없는 사람을 존중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고 대한민국과의 의리를 지키는 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좁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넓은 사랑만 사랑이다. 나와 이권이 있는 사람을 챙기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 나와 아무 이권도 없는 사람을 챙기는 게 의리이다. 이런 의리가 있어야 사회에 정의가 세워지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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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8 23:02

농촌교육농장과 보물창고

익산의 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구마의 역사를 배운다. 번뜩이는 창의력을 키우는 과학 공부도 고구마를 이용한다. 또,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을 보며 우리 집에서 사용한 수돗물과 가스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는지 계산하는 것이 공부다. 그 학교가 ‘농촌교육농장’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익산에서 유명한 고구마를 소재로 온몸으로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멀지 않은 김제의 농촌교육 농장에 가면 붓으로 암술에 꽃가루를 붙여 줄 수도 있고, 장수에서는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슬로우푸드를 비교하며 바른 먹거리의 중요성을 배울 수도 있다.농촌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드넓은 논과 밭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젠 누구나 찾아와 맘껏 뛰놀며 다양한 농촌의 생활과 문화를 오롯이 배우고 가는 산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농업인이 땅에서 작물을 수확하듯 도시인들은 요즘 농촌 곳곳의 보물 같은 교육농장들을 찾아다니며 수확의 기쁨을 얻는다.이런 배경에는 창의인성교육의 영향이 크다. 팍팍한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맑은 공기와 자연 환경은 자유와 어울림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농촌진흥청과 교육부는 농업과 농촌의 교육적 가치를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2012년에 초등학생, 2014년에 중학교 자유학기제 운영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아울러, 농촌진흥청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교과 과정과 연계한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농촌교육농장 550여 개를 육성했다. 볍씨에서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는 군산 가나안 농장, 방목하는 흑염소와 한우 등과 어울릴 수 있는 남원 소풍교육농장 등 농촌의 아름다운 별자리와 천연염색 등 전통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54개의 농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농장 주인은 생업을 하던 농업인에서 자연의 신비와 과학, 역사를 가르치는 ‘농부 선생님’이 된다. 농업인과 아이들 모두 새로운 경험을 하는 시간이다. 자유롭게 뛰어 놀며 어울림과 배려를 배운다. 자기 주도적 학습인 셈이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농업인에게는 자긍심과 보람을 갖게 한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농업과 농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역시 좋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농촌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응답이 2009년 18.5%에서2011년 23.4%로 늘었다. ‘농사짓는 곳’으로만 여기던 농촌을 이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 농촌교육농장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또한, 최근 안전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전한 체험 학습 공간을 만드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부터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제 시범 운영으로 48개 농장을 선정했으며, 올해에는 보험과 응급처지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등 안전 관리를 강화해 총 70개 농장을 선정할 계획이다. 도시의 아이들이 생기 넘치는 농촌으로 뛰어든다는 건 여러 면에서 좋은 현상이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소재들을 농장에 적용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할 때다. 더불어 전북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교육 농장을 찾아내 꿈과 희망의 터로 만들 계획이다.이번 휴가에는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고 농촌이라는 큰 보물창고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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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1 23:02

고도성장의 그늘

군산의 구도심 재정비 사업을 비롯해서 각 도시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테크놀로지 산업의 탈출구로 문화경제 개념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이나 도심문화거리, 공원 등 빈 공간 조성은 도시 외관을 꾸민다는 하드웨어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도시만이 가지는 독특한 내적 세계를 표현한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근대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던 파리에서의 보들레르는 목적론적인 행위에 집착하는 성급한 군중들과는 대조적으로 도시를 응시하면서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사람들을 지칭해 플라뇌르(Flanuer, 산책하는 사람)라고 했다. 최근 도시의 문화공간이 늘어나고 산책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경쟁과 성장의 속도에 모두가 지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청년보”는 중국에서 스트레스와 과로로 돌연사한 인구가 60만명에 이르면서 만만디의 대국 중국이 과로사 1위 국가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인 10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영국 한 의학 잡지의 조사 결과는 더욱 끔직했다. 1억 이상의 인구가 늘 뭔가에 쫓기듯 초조하고 불안한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 것이다. 고도성장과 함께 풍요가 급속도로 유입되고, 성장의 그늘이 산만큼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대한민국이 현재 겪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2013년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기대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산출한 국가별행복지수(HIP)를 보면 1위 코스타리카, 2위 베트남, 3위 자메이카, 4위 벨리즈 순이었고, 한국이 60위, 덴마크가 93위, 미국이 104위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과 행복의 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이다.대부분의 부유한 국가에서는 끼니를 때우고,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에서 지내며,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함께 행복이 증대되던 시대는 이미 끝나버렸다.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선진국일수록 장기화될 소지가 있는 부정적 사회문제가 많이 일어났고, 국민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2013년도 기준 국내 1인당 GDP가 2만5000달러에 다다랐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빈곤이 해결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회가 충분히 부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위치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성장(소득)이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비교와 습관화에 있다. 경제성장 이전에 비해 국내 국민소득이 200배 이상 증가했지만, 우리는 돈 때문에 괴롭다고 한숨을 쉰다. 타인의 소득 증가가 나의 행복을 감소시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경쟁의 바다(레드오션)를 표류하며 속도와 성과를 숭배하는 종족이 되어 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속도와 경쟁에 지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목표는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니라 다수의 행복추구이다.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삶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지금은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 다수의 행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성취와 불안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가 추구할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다. 평등이 해답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질수록 내가 더 불행해지는 현상은 탄탈로스의 갈증과 다름없어 한계가 없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공헌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그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일 불볕더위가 지속되는 8월이다. 어느 때보다 속도에서 벗어난 한가로움이 필요한 때이다. 잠시 멈춰 주변을 바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라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대도시일수록 시민들이 한가롭게 걸으며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 수목이 우거진 산책로가 있고, 그 도시만의 독특한 내적 세계가 있는 문화공간이 그립다. 그곳이야말로 사회의 누적된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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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4 23:02

한국호의 위치를 세월호가 대변하고 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아직도 실종자를 수습 중이다. 세월호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비통한 사고로 우리사회에 크고 많은 의문과 과제를 남겼다. 속수무책의 천재지변이었다면 이리도 큰 비중의 뉴스거리는 되지 않을 것이었다. 너무도 흉측한 인재인데다가 무책임한 처리과정이 화에 화를 부풀렸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은 거친 파도와 풍랑에도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프로펠러를 체결할 때 보면 신축의 변화를 고려 일출 전에 계측을 반복한다. 건조된 선박은 유속이 가장 빠른 해상을 택하여 맹골수도(孟骨水道)보다 더 악조건의 시운전을 거듭한 연후에 선주와 선급의 인정을 받아 인도된다. 그렇건만 세월호는 일본에서 건조한 ‘파도 위’라는 선명을 지워버리고 세월호(世越號)라 개명한 뒤에 복원력 유무도 무시한 채 개조된 불균형상태의 선체를 운항했다. 마치 선명을 과시라도 하듯이 세월을 붙잡아 저승으로 향해갔다. 세상판도를 추월하여 300여명이 넘는 생명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볼모로 엮어 저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선장은 자기가 지휘하는 선박에 긴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및 선적화물의 구조에 필요한 수단을 다하여야한다.”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세월호 선장은 잠시라도 배의 평형을 더 유지하기 위해서 어린학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 하달을 하고서 자신은 허겁지겁 선원들과 함께 배를 빠져 나왔다. 그리하여 저 치욕스런 몰골로 온 세상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1513명의 사상자를 낸 타이타닉호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이 최후까지 타이타닉호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사고 원인은 선박개조, 하물적정량 초과, 선박안전관리 무시 등이었다. 모두가 선사 측 책임이다. 이차적 책임은 여객선을 관리한 정부 담당부처이다. 그런데 왜 대통령의 무능한 국정관리 탓으로 여론몰이를 이끌어 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선량한 국민은 자기나라를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 미국 죤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 구절 중 “당신의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당신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어 보라.”는 대목이 있다.미국의 시사주간지는 세월호 사태를 “고장 난 나라 : 비겁한 선장, 무능한 정부, 한심한 언론’으로 표현했다. 한국호에 승선한 국민들은 지금 집단 멀미 중이다. 세월호가 한국호의 현 주소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2일에 유병언 회장이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동안 하도 참말 같은 추측성·허구성 보도가 난무하였기에 그마저도 얼핏 믿겨지지 않지만 DNA며 지문까지 들먹여 확실하다 했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는 사실이다. 그가 사망하고 난 후로도 쏟아 부은 수사력에 따른 막대한 국고 손실 그리고 억측 보도들에 눈도 귀도 멀어버린 국민들의 정서적 심리적 피해를 과연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고 그에 상응한 답변을 들을 것인가. 하나 같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개조’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법과 정의가 살아있고 공정한 원칙이 우선하는 나라, 공권력이 존중받는 나라, 약자가 보호받고 만인의 권익이 평등한 나라로 새로이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고 싶다. △국중하 대표는 전북대 기계항공 시스템공학부 겸임교수, 어린이재단 전북후원회 회장, 전북지역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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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8 23:02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신입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economy, stupid) 이 문구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 후보가 선거 캠페인에 사용하여 현직 대통령이었던 부시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표어이다. 불과 1년 전인 1991년만 해도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무려 90%의 지지율을 얻고 있었다. 부시의 재선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선거의 천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서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부시는 국민에게 승전보를 가져다줬지만, 지갑은 두둑하게 해주지 못했다. 클린턴은 이것을 꼬집어 이런 표어를 내세우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정말 경제적으로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보다 더 매력적인 공약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를 할 때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표어를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하지 않는가? 후보들이 왜 이런 공약을 내세우겠는가? 국민이 그런 후보에게 표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경제만 살리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그런데 정말 경제만 살리면 행복해질까?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라.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지내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극히 피폐해졌다. 그러나 불과 50년 만에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국민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부모님들이 땅을 팔고 소를 팔아 자녀들을 공부시켰다. 이렇게 양성된 인재들을 통해 나라가 부강해진 것이다. 특히 60~70년대에는 정부가 이공계를 집중 지원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이공계로 몰렸고 이들이 산업전선에 나가면서 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당시는 경제가 지극히 어려울 때였다. 그래서 정부가 이공계를 집중 지원하여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그렇다면 지금도 경제가 가장 큰 문제인가? 물론 지금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의 타락과 정신의 피폐이다. 우리의 도덕이 타락했다는 극명한 증거는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의 피폐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자살률 세계 1위이다. 가장 불행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나라가 가난해서 그런 게 아니다. 부도덕과 정신의 피폐 때문에 그런 것이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고쳐야 한다. 우리는 절대 물질만으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서로 존중하며 화목하게 지내야 행복해진다. 생각해보라. 가장이 돈만 많이 벌어오면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비인격적인 행동을 해도 행복한 가정이 되는가? 오히려 돈은 적게 벌어와도 가족들이 사랑하고 존중해야 행복한 가정이 되지 않는가?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행복한 사회를 이루려면 경제만 생각하던 우리의 마음이 변하여 이웃을 존중하며 돕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신뢰하고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정의와 사랑의 정신인 것이다. △오덕호 총장은 호남신학대 교수, 광주서석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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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1 23:02

농진청 이전과 농생명산업 허브 전북농업

7월 21일, 농촌진흥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다. 2005년 6월 24일 정부의 수도권 공공기관지방이전 기본계획에 따라 전북으로의 이전이 확정된 지 만 9년, 2008년 12월 30일 이전계획이 승인된 지 6년 만에 드디어 역사적인 이전이 시작된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1962년 경기도 수원의 서둔동에서 개청한 이후 52년간 축적된 수많은 정보와 지식, 기술, 전 세계와의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전북혁신도시내의 농업생명연구단지로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전북으로 이전하는 것은 단지 시설과 직원의 공간적·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전통·정신을 새로운 연구시설과 청사에 담아 농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세계적 농업연구의 중심이 될 새로운 농업연구 메카가 전라북도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전라북도 입장에서는 새로운 바이오 경제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첨단기술과의 접목으로 전통농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산업을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육성할 기회를 보다 쉽게 연계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새롭게 출범한 도정의 핵심전략인 ‘사람이 찾는 농촌, 제값 받는 농업, 보람 찾는 농민’ 등 농업 삼락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 도정의 상호 연계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앞으로 농촌진흥청은 바로 이곳 농업생명연구단지에서 기후변화, 식량위기, FTA 등 우리 농업이 마주한 수많은 위기에 대응함과 동시에 농생명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끌기 위한 첨단연구에 청의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농촌진흥청이 전북으로 이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로는 연간 8300억 원 이상의 생산과 2만여 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발생 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전망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가 다음의 몇 가지 분야에서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첫째, 도민 스스로 미래 농업에 대한 가능성과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선진국 중 농업이 강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지금까지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농업과 농촌은 지속되어야 하고 농업인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열정과 패기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전라북도 농업을 이끌 수 있도록 주변의 관심과 격려, 지원이 필요한 시기이다.둘째, 농산업 발전을 위해 구축된 지역 내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전라북도 지역에는 농촌진흥청의 농업생명연구단지, 익산 국가 식품클러스터, 김제 민간 육종단지, 정읍 첨단과학산업단지, 새만금 등 미래 농업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이 진행 중이다. 각각의 연구 및 산업 단지들이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 차원의 전략과 사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셋째, 경쟁력 있는 농기업체를 육성해야 한다. 바이오생명 자원을 부가가치 창출로 연계하기 위해서는 기술사업화와 산업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전북지역에 종자, 식품, 의약, 농기계 등에 관련된 농기업 육성을 위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앞으로의 농업은 단순한 수량위주의 생산에서 벗어나 생명공학, 정보통신, 첨단소재, 인공위성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융합해서 새로운 산업으로 태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가 보다 구체적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앞으로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라승용 차장은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원단장, 연구개발국장, 국립축산과학원장, 국립농업과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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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4 23:02

인문학 부재의 사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인간에 대한 정의는 과거에는 분명 이와 달랐다.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이라던지, 인간에 대한 자비심이 깊은 사람이던지, 바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우리는 생각해왔다. 고작 몇 십 년 사이에 좋은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처럼 달라진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인간 내면에는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가 있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인간은 협업을 통해서만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에 대해 극도로 냉랭한 야수가 될 수도 있고, 정의감과 이타심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교육은 인간의 이러한 비결정성에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백년지계 막여수인(百年之計莫如樹人)이라는 말이 시대를 초월해서 유효하다. 작은 목소리이지만,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인문학 부재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인문학 교육의 부재가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체계적인 야수로 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대형참사가 많은 편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대구지하철 화재, 얼마 전에는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이 있었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 사건은 여러 병폐가 누적된 것이지만 국민소득 2만불, 선진국 진입 등 성장우선주의 문화가 사회전반에 기조를 이루고 있던 탓이 크다.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앵그리맘’으로 대변되는 40대 엄마들을 비롯해서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의 슬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며 분향소로 줄이어 달려갔다. 국민 대다수가 슬픔에 빠지는 ‘집단 멘탈 붕괴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조그마한 위안이라면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선장, 부패한 관료처럼 야수로 진화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 또한 많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본성을 제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와 인문학 부재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인문학이란 인간정신의 본질을 연구해 인간다움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인간다움이란 자신 앞에 닥친 현실 앞에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과거에는 인문학이 일상생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 접근하기 힘든 높은 선반 위의 골동품으로 치부되었다. 삶이 왜 허무한지, 인간의 욕망은 왜 끝이 없는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왜 불안한지…. 일상생활을 뒤흔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문학적 생각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이 실용주의의 사회에서 인류 진화의 방향을 밝고 건강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누구나 일상의 고민에 잠복되지 않고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자기 삶에 대해 왜냐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 대해 왜냐고 질문 할 수 있는 한, 누구도 좋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나의균 총장은 전라북도 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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