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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쉬운 학부모 노릇

지난주 나는 참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아이가 기말고사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애가 이번시험은 월드컵 때문에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다른 여느때 보다 힘들었다. 아침 일찍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의 등을 보며 애들시험에 자유롭고 싶은 심정을 갖았던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나는 큰 애가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 몇 가지 다짐을 했다. 부모가 해야할 일은 아이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하는 법을 배워나가도록 격려하는 것. 그저 사람답게 옳고 그름,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된 일을 분간하여 행동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성적이 최고가 아니라고 말이다.이 땅에서의 학부모 내가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생각이 아니다. 명색이 교육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나는 60년대 후반 전주에서 부자학교라고 이름난 한 초등학교를 다녔다. 다른 학교가 이부제 천막수업을 할 때 우리는 제법 넉넉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이 학교에는 타이아표 통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 왕자표 농구화를 신는 학생도 많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점심을 걸은 학생도 많을 시대에 토스토를 싸오고 시계를 차고 다니는 학생조차 있었다. 당연히 집이 부자고 과외를 받는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하고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들은 누구누구는 과외에서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어 성적이 오르고, 누구누구는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 성적이 올랐다고 하였다. 선생님들 또한 모든 애들을 결코 공평하게 대해주지 안했다. 학생의 됨됨이가 성적에 의해 점수가 매겨졌다. 성적이 좋지 않는 애는 축구에도 지고 싸움에도 졌다. 나는 그 학교에 애를 다시 보내게 되었다. 나는 학예발표회가 열리는 날 참담한 초등학교 시절이 되살아 났다. 같은 반 애 하나가 흰 연미복을 입고 지휘를 하고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애들은 따라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애들을 보았다. 극심한 학부모의 경쟁심리 그리고 애들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심한 충격을 받았다.30년여년이 지났건만 이 학교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큰 애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 켰다. 애가 그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부모노릇 훌륭했다고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맹목적인 애정에 빠져 들지는 않았다. 애가 중학교에 가면서 나의 다짐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애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뒤쳐지지 않을 까 불안에 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마다 자질은 다른 것이고 어느 자질이 어느 자질보다 낫거나 못한 것이 아니고 가치로운 것이다는 생각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너도 나도 좋은 학교를 찾아 서울로, 조기유학으로, 이민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서울강남 지역에 유명학원을 다니기 위해 일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학원 수강생 선발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학원입시용 과외가 있다고 한다. 전주에도 지난 4월 대한주부클럽 연합회 전주전북지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고등학생 10명 중 2명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낸다. 벌써부터 전주상산고를 들어가기 위해 전주로 이사온다는 소문도 들린다.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학교교육만으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대접받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계속 남을 것이다. 공평함을 위하여나는 학교에서 책만 보고 공부만 하는 아이만 칭찬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는 수학, 누구는 축구, 누구는 달리기, 누구는 첼로 등등 각자가 가진 아이들의 자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칭찬했으면 한다.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해주고, 똑같은 사람으로서 모두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으면 한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학부모 노릇하기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 까./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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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7.08 23:02

[새벽메아리] 히딩크가 대학인에게 주는 메시지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많은 한국사람들은 한국대표팀의 16강 진입을 염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한번도 이루지 못한 첫 승만 올려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것도 강력한 우승후보국들을 줄줄이 무너뜨리면서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에 진입했다. 도대체 히딩크 감독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단 말인가. 가장 간단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럽 팀과 치룬 과거 게임과 이번 게임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과거보다 체력이 현저하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전 후반 내내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앞에 유럽의 강팀들은 차례차례 무릎을 꿇고 말았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가장 확실하게 변화시킨 것은 체력의 향상이다.태극전사 체력향상 큰 변화체력의 향상, 어찌 보면 축구의 전문가가 아닌 누구라도 내 놓을 수 있는 단순하고 명쾌한 해법이다. 해법은 간단하지만 그 실천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역대 한국대표팀 감독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체력의 향상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필자는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매주 등산을 해온 터라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봉우리 하나 오를 때마다 더도 말고 지난주보다 1분만 단축하자고 모지게 다짐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주도 이미 베스트를 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내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숨은 목까지 차오르는데 이것은 지난주에도 똑같이 경험한 일이다. 그러나 체력의 향상은 이때부터다. 이러한 체력의 한계 상황을 뛰어 넘어 단 몇 초라도 단축하면 비로소 눈꼽만큼의 체력향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부분은 이 상황에서 주저 않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지난 주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외면받는 대학 심화교육과정운동의 기본이 체력이듯이 학문의 기본은 지력이다. 많은 학생들이 지력향상을 통한 자신의 경쟁력 제고를 바라면서도 막상 그것을 얻기 위해 치뤄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그 과정을 통해 수강생의 지력을 몇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체력향상과 마찬가지로 지력향상에도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강의 한 시간 듣고 나가면서 "오늘 강의 편안하게 부담없이 잘 들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력향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강의를 수강한 것이다. 등산에 비유한다면 땀도 나기 전에 숨도 차기 전에 주저 앉아버린 것과 다름없다. 편안하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강의라면 구태여 수강할 필요가 없다. 소설책과 신문은 혼자 읽어도 충분하다. 체력향상 때와 마찬가지로 지력을 한 단계 올리는 강의는 강의 끝난 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피곤함을 느껴야 정상이다.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그렇게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면 구태여 대학의 강의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힘들고 어렵지만 교수가 옆에서 도와주고 안내하기 때문에 혼자 할 때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많은 대학에서 고학년 심화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외면해 버린다. 보다 깊이 있는 과정을 이수하여 몇 단계 향상해야할 이때 쉽고 부담 없는 과목의 강의실로 전전한다. 당장은 편하고 좋을지 모르나 다시없는 지력향상의 기회를 스스로 외면해 버린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인식해야 한다. 히딩크의 기적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주는 명백한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남천현(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겸직교수, 대한상공회의소 ERP경영지원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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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7.01 23:02

[새벽메아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

격정환희감동―.텔레비전과 신문 지면은 물론 사이버 공간까지도 온통 월드컵의 물결이다. 온 누리는 붉은 색깔 하나로 홍수를 이루고, 남녀노소 할것없이 '대한민국'의 네 음절과 '짝짝-짝짝-짝'의 다섯 번 박수가 범람하고 있다.엊그제 16강의 벽을 넘어 기적같은 8강 진입을 성취한 직후, 자정 가까운 무렵에 팔달로와 객사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가슴이 벅차서 한 마디도 표현할 수 없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벅찬 감격을 누린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하나된 적이 있었던가.그야말로 온 국민이 한몸이며 한마음인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리고 자꾸만 울먹이는 격정의 눈시울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월드컵 4강 격정환희감동―.내친김에 4강까지도, 그리하여 마침내 우승까지도 달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화 창조의 순간에 광주 거리는, 저 일본의 거리는 과연 어떤 풍경을 연출할 것인가. 작은 공 하나의 위력이 온 지구촌을 이렇게도 울고 웃게 하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뒤바뀌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글은 4강 진입여부가 판가름난 뒤에 게재될 테지만―)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순간 {서경}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곧 모든 일은 가득 차면 기울고, 따라서 겸손하면 이익이 따른다는 뜻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삼천대천세계의 만상삼라가 극도로 번성하면 반드시 쇠미해질 날도 있지 아니한가.우리가 4강 진입에서, 아니면 우승의 문턱에서 실패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운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모두가 한쪽 면만을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16강전 연장경기에서 스웨덴의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고, 세네갈의 공은 골대를 맞춘 뒤 빨려들어 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 경우 두 나라의 실력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승자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축복의 박수를 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한 후원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감싸안을 수 있는 훈훈한 가슴의 소유자이리라.내용과 형식의 조화. 영혼과 육체의 쌍전.가장 바람직한 아름다움은 조화와 겸비와 병행에 있다. 축구를 통해서 하나된 이 마음이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총화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나라의 정치가 멋지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축구 하나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도약과 비상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을. 이 정권의 지도자들이 '만초손 겸수익'을 깊이 새기지 못한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흥분의 도가니, 열광의 파도, 환호성의 홍수에서 어떤 이성적 사고나 냉철한 분별력도 읽을 수 없었다면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까. 진정한 승자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없이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환희와 감동의 이면에는 좌절과 실의의 그림자도 엄연하게 존재한다.우선 나부터 좀더 진정할 필요가 있다. 안분(安分)과 함께 세상살이의 순경 역경을 통찰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겠다.패자에게 따뜻한 위로를도덕과 과학을 함께 갖추어야 하듯이, 정신과 육체를 아울러 건강하게 가꾸어야 하리라. 온전한 인격은 지정의의 통합에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프랑스나 포르투갈을 생각해 보고, 일본과 이탈리아를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겸손과 양보에는 덕이 있고, 관용과 사랑에는 보다 큰 성취가 함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은 '겸수익'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이용숙(시인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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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24 23:02

[새벽메아리] 붉은 악마 수천명 17일 전주로

"모든 붉은 악마들의 뜨거운 열정을 담아 역사적 16강 진출을 일궈내겠다"오늘 한-미전을 맞는 대구 붉은 악마 회장의 각오이다.전북대에서도 오늘 대구경기를 문화관 내 대형스크린을 통해 중계하고, 시민과 함께 응원을 나설 예정이다. 적어도 미국과의 경기가 열리는 2시간여 동안 전국의 모든 기업, 공장, 기관, 학교는 일을 중단한다. 붉은 악마로 한덩어리가 되어 응원에 나설 것이다. 구호와 응원가로 우리나라 대표팀에 힘을 불어 넣을 것이다.아마 그 누구보다도 전주는 이 경기를 숨을 죽이며 가슴을 졸이고 보게 될 것이다. 이 경기에서 이기고 조2위가 되면 17일 전주에서 G조 1위와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기대에 못미치는 경제특수전주는 월드컵을 계기로 관광과 경제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잔뜩 기대해 왔다. 지난 4년여 동안 월드컵 준비에 쏟아부은 돈은 5,000억원. 이 가운데 70%이상을 경기장을 만들고 도로를 닦았다. 그러나 전주월드컵 개최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약 9,700억원. 전주시 1년예산의 2배정도, 무려 전북수출액의 300배에 이른다(한국은행 전주지점 추계). 잘 만 치루면 곱절 장사가 되는 것이다. 투자와 소비만 가지고 말이다.이 직접효과에 간접효과까지 더하면 돈으로 따지기 어렵다. 전주의 대외이미지홍보, 스포츠 마케팅 등 유관산업의 활성화, 전주시민의 결속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다. 숫자로 나타내기 조차 불가능하다. 통상 기업 인지도를 1%를 올리는 데 1천억원이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전주에 주는 간접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그러나 막상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전주 표정은 그다지 밝은 것만은 아닌 것같다. 지난 7일 스페인-파라과이 경기가 끝나고 더더욱 어두워졌다. 월드컵 기간 동안 도내를 찾을 관광객은 많이 잡아도 대략 12만명선. 이 가운데 숙박업소를 찾는 관광객은 많이 잡아 1만 5천여명수준이라고 말하여 지고 있다. 당초 전주시가 예상한 약 3만명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코아나 리베라 호텔은 경기전날과 당일만 예약이 완료되었으나 나머지 기간의 예약은 평소와 비슷하다. 전주시가 정한 지정숙박업소인 월드 인을 비롯, 민박과 대학 기숙사 등에도 예약율은 아주 낮다. 월드컵을 맞아 적지 않는 돈을 들이며 단단히 별러 왔던 시지정음식점이나 숙박업소는 별 재미를 못보고 있는 모양이다.'문화월드컵'을 표방한 전주의 핵심은 관광특수였다. 전주월드컵 추진단에 의하면, 전주경기가 열리는 3일 동안 이 지역에 찾아오는 관광객 10명중 외국인은 9명이라고 한다. 이에 맞추어 전주 시내 곳곳에서는 다양한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있지만, 외국인광객들은 경기만 보고 서울과 대전 등으로 떠난다.오늘 전주에서 경기를 벌일 폴란드대표팀 조차 오늘 와서 오늘 대전으로 돌아간다. 7일 스페인팀도 당일에 와서 당일에 대전에서 잤다. 대전은 한달동안 삼성화재유성연수원에서 머무는 폴란드 대표팀으로부터 약 3억원 정도를 번다. 전주는 파라과이와 포루투갈 대표팀이 삼성생명 전주연수원에서 잠시 머물면서 지불한 1천만원정도. 작년말만 해도 숙박대란을 우려했던 전주가 지금은 텅텅 빈 숙박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한국 조2위 16강진출 기대우리나라의 조2위 진출은 전주에 있어서 염원을 넘어 비원에 가깝다. 폴란드와의 첫승의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무려 2조원이다. 그래서 오늘 경기한판은 전주에게 아주 중요하다.오는 17일 붉은 악마들이 버스를 타고 전주에 모여들기를 비원한다. 부산과 광주, 대구, 대전등 전국에서 몰려올 것이다. 필승기원의 거리행진을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고, 세계의 눈과 귀가 전주에 모아질 것이다.전주시민은 이 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과 함께 월드컵 경기장, 덕진 대형 전광판앞에서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함성을 외친다. 밤 늦도록 전주시내 여기 저기에서는 붉은 물결로 가득찰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록될 이 날을 위해 '대한민국 화이팅'./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전북대학교 농업경제학과졸업서울대학원 졸업(경제학 석사)일본교토대학 대학원 졸업(농학박사)일본 교토대학 및 영국 레스터 대학 객원교수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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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10 23:02

[새벽메아리] 보수와 진보 그리고 수구와 개혁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4월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 올해 대선에서 진보적 성향의 후보와 보수적 성향의 후보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1.7%는 진보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반면 보수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17.5%에 그쳤다.평소 한국사회가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온 것에 비해 이것은 매우 뜻밖의 결과이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대단히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정작 진보정당의 지지도는 아직 5%를 벗어나지 못한다.여기서 우리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에 주목하게 된다.현재 정당을 놓고 볼 때 자신들의 주장대로 자민련=보수, 한나라당=개혁적 보수, 민주당=중도보수, 민주노동당=진보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에서야 이렇게 약간은 애매한 보수와 진보로 정치세력을 구분하지만 유럽은 더욱 선명하게 정치세력을 좌우로 구분한다.프랑스를 예로 들자면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번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한 극우로 분류되는 국민전선은 외국이민자 추방 등을 주장하는 반면 프랑스 공산당은 일찌감치 사회당에서 분리해 나와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하며 사회당과는 스스로를 구별하고 있다.한가지 아이러니는 대표적인 극우파시스트 정당인 히틀러의 나찌당의 정식 명칭은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이었다. 이름만 보면 좌파정당으로 보인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좌우의 구별법은 통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좌파 정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도 좌를 표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앞서의 여론조사결과로 되돌아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지만 정작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이 넘는다. 스스로는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는 현상이 정체성의 혼란을 적절히 나타내주는 것으로 보인다.나는 인간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싶다.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똑같이 공평한 권리를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출발한다. 근대시민혁명의 원형으로 불리는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공회는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을 기치로 공화국을 선포하고 부패한 봉건귀족들만 갖고 있던 투표권을 거의 모든 성인남자에게 부여했다.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으며 우리는 지금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앞으로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과정이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산, 지위, 학력, 성(性)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이데올로기로서의 진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무엇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 진보가 의미있어 보인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주의의 폐해, 분단 상태의 지속,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등이다.출신지역에 따라 이해관계를 동일시하는 맹목적 지역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상태이다.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이 다수 소속된 정당에 모든 것을 의존해버린다. 그런 면에서 지역주의의 극복이 진보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지역주의와 부딪쳐온 노무현씨가 대통령 후보로 선정된 것 또한 진보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가느냐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철학, 역사인식의 차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사회나 지켜야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그러나 그것이 소수의 특권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수구일 따름이다. 아울러 보수나 진보 모두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으면 수구에 빠져버릴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위치에 서있습니까?/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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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25 23:02

[새벽메아리] 월드컵 16강과 시민의식 16강

사상최초의 한일 월드컵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에는 처음 보는 참가국 국기가 펄럭이고 전주에서 벌어지는 경기일정은 어디에서나 알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 성공적인 월드컵과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현수막은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기관장이나 어디서 말마디께나 하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월드컵 얘기가 빠지면 대화가 안될 정도이다. 분위기만이 아니고 외형에서도 경기 일정에 맞추어 척척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월드컵 상징물인 월드컵 경기장이 시험가동을 끝내고 위용을 뽐내고 있으며 인터체인지를 비롯한 도로망도 마무리되었다. 처음 월드컵을 전주에 유치하려 할 때 예산문제나 경기장 사후관리의 문제점을 들어 반대했었던 필자도 이제는 반대보다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입장이 되었다.이번 한일 월드컵은 친 환경적인 월드컵이 되어야 하고, 지구촌 축제 이면에 가려 소외되는 사람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환경 친화적 월드컵이란 경기장을 포함한 주요 관련 시설물들을 환경 친화적으로 건설하고 관리하며, 월드컵 경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열리는 행사를 친환경적으로 개최하는 것이며, 월드컵을 통해서 도시자체를 환경 친화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환경 월드컵이라고 해서 무조건 금욕적이고 엄숙하게 행사를 치루자는 것은 아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행사 전기간에 걸쳐 국민의 생활화된 환경보전의식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게 해서 앞으로 개최 될 국내의 각종 대형 스포츠 행사가 시민 참여를 통한 환경 친화적인 스포츠가 되도록 하는 기반을 닦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과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이미 친환경적인 행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고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에서도 환경 올림픽의 기치를 내걸고 있을 정도이다.우리나라에서 특히 전주에서 모범적으로 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과 지방정부 그리고 언론,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한다.시민들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친 환경적인 행사가 되는지 모니터 하기도하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제안해도 좋다.음식점 등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오는 손님들에게 인상에 남을만한 서비스를 한가지씩 준비하면 좋겠다. 현수막 한 장으로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것보다 실제로 실천할 것을 한가지씩 준비 해 보자는 것이다.예를들어 우리 음식점에서는 자원봉사자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한다면 신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기업도 월드컵을 돈벌이와 이미지 개선에 활용하려는 것보다, 폐수 매연 등을 최소화하는 실천 지침을 만들었으면 싶다.대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조직위원회나 지방정부도 무엇을 실천하고 모범을 보일까 고민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2부제를 권유 해놓고 주요인사들은 고급 승용차로 경기장까지 입장해 버린다면 시민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위원회 위원장, 도지사, 시장 등 주요인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입장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지구촌의 요란한 축제인 월드컵이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월드컵의 한편에서 전쟁이 준비된다면 아이러니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에서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차별이 이루어 wu서는 안 된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돈을 쓰는 선거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 기간만이 아니라 영원히 추방되어야 한다.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드는 것이 국민의 염원이 되었지만 덩달아 시민의식도 세계16강에 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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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16 23:02

[새벽메아리] 전주국제영화제를 기다리는 이유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전통과 고풍의 도시 전주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대해서 어떤 이는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꼴이라며 어줍잖은 짓 말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스필버그의 횡재를 예로 들며 핑크빛 영상산업 도시로의 꿈을 펼쳐 보이며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도 하였다.하지만 그동안 두 번의 영화제를 치르면서 한편으로는 한번 해볼만한 시도라는 자신감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참담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경험하였다.그러나 이런 두 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또 다른 기대감이 생겨난다. 사실 우리에게 영화제란 미지의 세계였으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높은 산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미로를 탐색하듯 조심스럽기도 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함정을 만나 고심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노하우로 축적되면서 이리 다듬고 저리 다듬으며 제3회 영화제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제3회 영화제는 그동안 우리가 겪은 두 번의 영화제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우리에게 선보일 것이다. 아직 제3회 영화제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펼쳐질지를 분명히 예상할 수는 없을 것이나 주변의 몇 가지 소문들은 이번 영화제에 남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일 영화들에 대한 기대감이다. 여기저기에서 귀동냥을 해보니 영화에 대해서 특별한 공력(?)을 가진 분들이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많은 영화들이 내게는 생소하다. 아마 많은 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잘 아는 영화가 아니라고 해서 기대를 접지는 마시라. 우리가 잘 아는 영화들은 집 앞에 산재해 있는 비디오방에서 얼마든지 빌려다 볼 수 있다. 그런 영화들을 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을 들인다면 그건 예산 낭비가 아닐까? 오히려 잘 아는 영화들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이 한번쯤 보아둘만한 영화라고 권하는 그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으니 반가와 할 일이다. 그것이 때로는 좀 어렵고, 전문적인 영화라 하더라도 어디 그게 영화전문가만 보라는 법 있는가?이 틈에 그들의 호기심을 엿보는 기회로 삼아 볼 만하다. 더욱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험은 그만큼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켜 주는 것이므로 그들의 영상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얘기를 한번쯤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하다. 영상의 언어로 세계를 구성하는 일은 이제 전혀 낯설은 일이 아니다. 영상은 우리 시대의 강력한 의사소통방법 중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영상체험을 통해서 우리의 의사를 영상언어로 구성하여 메시지를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이 영상언어를 통해 내게 보내는 메시지를 해독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이제 영상은 너와 나는 물론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주는 네트워크의 구실과 함께 심하게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리로서 지위가 격상되려 한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 전주국제영화제는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며, 시대의 요청에 발빠르게 적응하려는 젊은이들에게는 훌륭한 교육현장이며 놀이터가 될 것이다. 그것이 전주국제영화제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전주국제영화제는 그 지향점이 우리의 나태한 일상에 대한 도전을 꿈꾸는 것이다. 내 일상을 뒤집어 보는 일, 그것은 어쩌면 부끄럽고 불쾌한 체험이기도 할 것이며, 어쩌면 유쾌하고도 상쾌한 도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체험을 통해서 한번쯤은 나를,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게 분명하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 문 뒤에 놓여있는 세계에 흠뻑 빠져 며칠을 영화제와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 문윤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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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24 23:02

[새벽메아리] 변화 거부하는 전북정치권

민주당 전북지사 후보 경선 방법을 논의하는데 원칙이 없다. 말로는 도민참여와 정당민주화를 내세우다가도 이해관계가 얽히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을 바꿔버린다.도지사 후보 경선 방법을 논의해온 민주당 지구당위원장들은 모일 때마다 다른 경선방법을 제시했다. 시시때때로 경선 방법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진전되는 변화였다면 탓할 것이 없지만 원칙이 없이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결론이었기에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처음에는 지사 경선에 도민을 참여시키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가, 기존 당원과 도민이 참여하는 비율을 7:3로 구성하겠다고 제안하더니 며칠 후 당원들만으로 경선을 치르겠다고 번복하고 말았다. 지사 경선을 도민의 잔치가 아니라 지구당위원장 만의 잔치로 축소해가고 있는 듯하다.사실 이렇게 당내 경선으로 결론 나기까지는 후보자들의 이해관계와 지구당위원장들의 무소신,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명분이야 어떻든 인지도를 앞세운 후보와 당내기반을 염두에둔 후보의 수 싸움이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고 규율을 정하고 심판의 입장에 서야할 지구당 위원장들이 선수의 눈치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구당위원장들이 소신이 없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선에 도민참여를 점차 배제시켜 나가는 일관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번 지사경선을 대통령 경선처럼 당원과 도민의 비율을 5:5로 치루어 선례로 남는 것을 피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이는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와 같은 5:5로 치러야 하고 그렇게되면 지역에서 활동력이 높은 유력 후보에게 경선 에서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한다.즉, 자신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 도민의 정치참여와 참여민주주를 봉쇄시킨 것이다. 겉으로는 이미 명분이 되어 버린 도민참여 경선을 찬성하면서 속으로는 일관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따지게 되니까 도민의 뜻과는 다르게 결론이 나고 있는 것이다.민주당 대통령 경선을 지켜보면서 변화와 개혁이 시대의 흐름이며 국민적 요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경선이 중반을 지나면서 진흙탕싸움으로 변해가고 있긴 하지만 흥행에 성공한 정치드라마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오랫동안 대세론을 주장하며 여유롭던 후보가 이제는 처지가 뒤바뀌어 얼굴색이 달라졌고, 대통령에 다 된 것처럼 김치국을 마셔오던 야당 총재는 그렇게도 움켜쥐려던 총재직 마저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한다.이렇게 정치상황이 뒤바뀐 것은 국민이 정치공간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고착되어 있던 후보간 우열이 국민이 참여하면서 변하고 있고 밑바닥을 기던 민주당의 인기가 기사회생하고 있다.이처럼 역사적 흐름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옹다옹한다면 조금 얻으려다가 전부를 잃을 수 있다. 민주당 전라북도지사 경선에 나서는 후보, 그리고 지구당 위원장들은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리를 거쳤거나 현직에 있다.국민 그리고 우리 도민들의 바램과 기대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도민에게 감동을 주는 경선 방법을 빨리 확정지어주길 바란다.마침 오는 17일은 경선방법을 확정짓는 민주당 전북도지부 상무위원회가 있는 날이다. 지구당위원장의 결단과 조금은 도민의 곁에 가까이 있어온 상무위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면서 정치를 모르는 우매한 사람의 헛된 꿈이 아니길 바란다./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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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10 23:02

[새벽메아리] 농업살리기 모두 나서야

우리 농업은 조상 대대로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농업을 통해 모든 의식주가 해결되었고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떠받치는 밑거름이었다.이러한 농업이 오늘날 천대받고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반드시 지키고 살려야 된다는 신념으로 농민들은 우리 농업을 정성껏 보듬어 가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농업위기 앞에서 우리 국민들은 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농업을 지키고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다수 국민이 농촌에서 태어났거나 농촌을 통해 그들의 오늘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주지하다시피 농업은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발행하는 각종 도시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유지되어야 하고 정부당국이 가장 중시해야 할 산업이다.농촌붕괴로 인해 농촌공동화, 도시과밀화와 이에 따른 교통, 실업, 환경오염, 교육, 빈부격차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제가 불거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막대한 예산투입은 결국 농업을 살리고 지키기 위한 예산투입과 정부의 부담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다.농민이 적정한 소득을 올리고 농촌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국토의 균형발전, 도시문제해소, 중소도시의 안정적 유지라는 일석다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상식적인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쌀가격이 폭락하고 WTO 뉴라운드협상이나 한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농업위기가 더욱 심화되자 당장 농민들의 소비가 위축되고 이로인해 농기계 업체를 비롯한 농업관련업체의 타격이 현실화되는 한편 중소도시의 각종 매출이 급락하는 등 충격파가 적지 않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뿐만 아니라 농촌에 부모 형제를 두고 있는 도시민 가운데 약 40세까지는 농촌의 부모 형제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양육은 물론 최종학업까지의 교육비, 취업시까지의 생활비, 결혼비용, 주택자금이나 창업자금 지원, 쌀과 고추 등 각종 먹거리의 제공 등 어느 것 하나 농민인 부모 형제의 도움 없이 40세까지 자립할 수가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농민인 부모 형제가 도시로 보내는 식량 등의 먹거리나 도시 자녀들을 위한 지출은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금액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로도시로 향하고 있다.이런 농업농촌농민의 역할이 도외시되고 과소평가 되는 사회라면 앞으로 도시를 부양하는 농촌의 존립기반은 송두리채 흔들리고 그 모든 사회적 비용과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와 도시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다면 위기에 직면한 농업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용이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농림부는 예산부처를 설득하는 것이 힘들다고 호소하고 예산부처는 농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기피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농업을 지키고 살려애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우리 국민은 농업을 살리고 지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장래나 국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한 농업수호 의지가 정치권과 현정부의 정책에 반영되면 될 일이다.농업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국민적 합의와 정부의 의지 가운데 국민적합의라는 기름진 토양이 있으니 이 토양에서 좋은 결실을 맺도록 씨뿌리고 가꾸는 일을 정부가 지원하면 될 일이다.대통령 직속의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했으니 농업르 지키고 농촌을 회생시킬 수 있는 정말 좋은 방향과 정책, 정책수단들이 세워져야 한다.농업경쟁력, 소득안정망, 지역개발 및 복지 등 의제를 다룰 때 국내외적으로 직면한 WTO 뉴라운드, 한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쌀값문제 등 전반에 걸쳐 농민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좋은 대안들은 농민들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 국민을 위하고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좋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용호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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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03 23:02

[새벽메아리] 시립예술단 제대로 평가하자

타 지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전주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문화예술의 창조와 향유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주시내의 크고 작은 연주홀들은 일년내내 거의 쉬는 날 없이 이런 저런 공연들로 꾸준히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민들의 활약이 전주시의 적극적인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이끌어내고 있다.전주시의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 중 하나가 바로 시립예술단의 운영이다. 전주시에는 극단, 민속예술단, 교향악단, 합창단 등 4개의 시립예술단이 있는데 아마 이렇게 4개의 시립예술단을 갖추고 있는 도시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이는 전주시와 전주시민이 전주의 문화예술진흥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4개 시립예술단은 시 재정(년 30여억원 정도)의 지원을 받으며 매년 수차례의 정기연주회는 물론 시시때때로 초청연주회나 연합공연 등에 나서는 등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시립예술단에 지원되는 세금은 별로 아깝지 않다.하지만 시립예술단의 운영을 관심있게 지켜 본 사람이라면 시립예술단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한두가지쯤은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지금 필자가 그런 마음이다.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립예술단의 일년 활동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하지?' 현재의 구조에 의하면 시립예술단에 대한 평가는 전주시 문화예술과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예술적 소양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문화예술과에서 시립예술단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물론 언론에 실린 평론을 참고하거나 전문가들에게 평가를 의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문화예술과로부터 공식적으로 평가를 의뢰받았다는 전문가를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다.그래서 어쩌면 매년 이루어지는 시립예술단에 대한 평가가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예술성이나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 조직운영이나 근무평점 같은 평가로 대신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만약 그렇다면 이는 제대로 된 평가도 아니며, 장기적인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다. 시립예술단은 그 조직의 원만한 운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술성과 작품성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런데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시립예술단의 작품활동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해보려 한다. 먼저 시립예술단 활동에 대한 평가의 1차적인 책임은 시립예술단을 구성한 전주시에 있으므로 전주시는 시립예술단 평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시립예술단 활동이 매우 전문적인 활동이므로 전문가들에 의한 평가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따라서 시에서는 해당 장르의 전문가들로 평가단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평가를 정기적으로 의뢰하여 이를 기초자료로 삼는다. 이 평가단은 비교적 많은 분들로 풀(pool)을 구성하여 무작위로 평가를 의뢰하고, 그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공정성을 높인다.아울러 일반 시민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시민 모니터단을 구성하여 애호가들의 참여기회를 넓히고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한다.물론 아직 우리의 문화적 풍토는 좁은 지역에서 학연, 지연, 혈연 등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다보니 서로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평가할만큼 대담하지 못하다. 따라서 이 일이 참으로 곤란한 일이겠으나 시민의 세금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그 쓰임새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마땅한 책무일 것이다.그리고 시립예술단도 전문가들로부터 공개적으로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대해 토론함을 즐거워함으로써 보다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이런 정책이 우리 지역에 숨죽이고 있는 평론을 활성화시켜주는 기대밖의 성과까지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희망까지 품어본다./ 문윤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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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27 23:02

[새벽메아리]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며, 어떤 이는 잘 다듬어진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가 느끼는 감동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사탕 한 개의 감동굉장히 오래된 일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오는 아름다운 기억이 하나 있다. 85년 나는 영등포교도소에 있었다. 반듯이 누워 발을 뻗으면 겨우 한뼘 정도의 여유가 남는 0.7평짜리 독방생활이 지리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솔깃한 제안 하나를 받았다.한글을 모르는 소년수에게 한글을 깨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고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다는 우리나라에 자기 이름 석자 못쓰는 사람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아 호기심도 생기고 오랜 독방생활로 사람의 향기가 그립기도 하여 선뜻 승낙하였다.내가 가르칠 아이는 15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만한 키, 왜소한 체구에 벌써 감옥에 6번째 들어왔다. 내가 가르칠 교재는 없었고 볼펜조차 지급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판판한 프라스틱 판에 버터를 바르고(사실 안티프라민이 성능이 훨씬 좋다) 그 위에 비닐을 씌운 판을 종이대신 사용하고 볼펜대신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한글공부는 고작해야 요즘 유치원 아이들이 하는 1,2,3 숫자 쓰기와 가나다라를 반복해서 쓰는 정도였다. 뭐 가르친다고 할만한 것도 없었지만 소년은 매우 열심이었다. 이윽고 몇일 후 아이는 자기 손으로 자기 이름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그때 너무나 기뻐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후 소년은 하루에 한 번 있는 운동시간에 내 방 앞을 지날 때 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형이 확정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다.이감가는날 소년은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로 나에게 사탕 하나를 주고 갔다. 나는 이 사탕을 오랫동안 먹을 수 없었다. 소년은 고아라 면회오는 사람도 없었으니 같은 방의 다른 사람이 준 사탕을 아껴두었다가 주고 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했다. 대신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전과자로 만들어버리는 세상과의 대결을 맹세했다.올해 설 덕담으로는 TV CF에서 시작된 부자되세요라는 말을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더 많이 들었다. 이 때 참 어색하여 뭐 부자까지는그냥하고 어정쩡하게 답하게 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해 소원이 부자가 되는 거는 어쩐지 씁쓸하다.선거를 앞두고는 후보들이 앞다투어 CEO대통령, CEO도지사를 표방하는 데 열을 올린다. 과연 기업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모두를 잘 살게 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정주영을 대통령으로 뽑았어야 했다.아름다운 바보들의 행진남들은 받고서도 안 받았다고 시치미를 떼다가 증거를 내밀면 탄압이라고 강변하는데 스스로 나도 떳떳지 않은 돈을 받았노라고 고백하는 바보가 있다. 남들은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 자기 혼자 옳다고 믿으며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뛰어드는 바보도 있다.사탕을 전해 준 소년수의 거친 손길,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이런 아름다운 바보들을 아름다움 속에 집어넣고 싶다.아름다운 세상이 싸움으로만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나는 많은 사람의 땀과 희생을 통해 차츰 이루어져가리라 굳게 믿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우리는 그것에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아름다운 바보들의 행진이 계속되길 바란다./ 김성주 (시민행동 21 뉴미디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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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20 23:02

[새벽메아리] 언론.시민단체 어깨 무겁다

2002년은 양대선거가 치러지는 선거의 해이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현재 각 정당들은 양대선거에 출마할 후보자 선정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언론은 이 사실을 빠짐없이 보도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방선거와 관련,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선거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해 선거법을 위반해 가면서 편파적으로 보도한 언론사 간부가 고발당하기도 하고 전현직 언론인들이 후보진영에 앞다투어 합류하고 있다.지역 시민단체들도 지난 총선에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해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하던 것과는 달리 단체 특성에 맞는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유권자인 국민이 자신을 대신해서 정치를 해 나갈 대표자를 뽑는 합법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잘 돼야 국민이 편안하고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 마냥 불법, 타락, 금전살포 같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고 후유증을 앓아왔다. 심지어 대의정치에 충실해야 할 당선자들은 마치 권력을 위임받은 양 국민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여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실정이다.선거문화를 바꾸어야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며 잃어버린 유권자의 주권도 되찾아 올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정당과 정치인, 선관위 등이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이런 움직임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는 역시 언론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시민단체이다. 따라서 양대 선거에서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선거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이 표출되고 상이한 의견들이 대립논쟁하는 구도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논쟁을 거칠 때 민주적인 의견이 다듬어지기 때문이다.비슷한 색깔의 후보자들이 대결하는 인물싸움의 장이 아니라 후보자의 다양한 사상과 차별적인 정책이 부딪치는 장이 되어야 하고, 유권자는 학연지연혈연 등 원시적인 방법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차별적인 정책이나 사상을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선거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당선될까로 관심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중요성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토론해가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갈 의무가 언론에 있다.언론사 출신이 후보진영에 합류하고 언론사는 전관예우에 따라 한 줄이라고 더 보도해주고, 그 결과에 따라 공과가 평가된다면 이는 '신 관언유착'이며 정치문화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이다. 칼보다 강하다는 펜의 힘을 가진 언론에서 권력을 가지고도 해결하지 못했던 후진적 정치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보도에 임한다면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높아갈 것이다.시민단체 또한 정치선거문화 개선에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유권자 교실을 개설해 유권자의 권리와 의무, 선거법 등을 중심으로 교육해서 선거 관련 자원봉사를 할 수 있고 선거 이후에는 의정감시 역할도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운동의 저변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공청회나 토론회, 공약평가, 정책제시 등 초보적인 것에서부터 생활정치 변화를 위해 직접참여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후보자들을 비교하면서 합법적인 틀 내에서 낙선운동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아무튼 올해 양대 선거에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크다 하겠다./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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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13 23:02

[새벽메아리] 추악한 현대 올림픽

이번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은 한마디로 현대 스포츠가 얼마나 추악하게 변질되었는가를 실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올림픽은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진 스포츠 제전이 아닌 게 분명하다.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의 화합을 이루어내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 이제 그 이상을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올림픽이 새로운 분쟁을 일으키고 조그마한 갈등의 틈바구니를 더욱 크게 헤집어 놓고 있다.그래서 이제 올림픽의 역사는 고대 올림픽에서 근대 올림픽으로 발전해 온 단계를 지나 현대 올림픽(?)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를테면 올림픽의 역사는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그리스인들의 정성어린 제전행사로 종교, 예술, 군사훈련 등이 삼위일체를 이룬 헬레니즘 문화의 화려하고도 찬란한 결정체였던 고대 올림픽의 시대를 지나서,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하여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상호 이해와 우정을 다지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 했던 프랑스의 피에르드 쿠베르탱 남작(1863-1937)의 강렬한 집념에 의해 탄생한 근대 올림픽을 넘어서, 이제 상업적인 이해와 탐욕에 물들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국가간 치열한 경쟁과 이에 따른 승리와 패배의 선명한 자욱만을 중시하는 현대 올림픽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근대 올림픽 초기를 다룬 유명한 영화 '불의 전차'를 보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릴 수 없어 일요일 경기를 포기하는 유대인 이야기 등 아마츄어리즘의 올림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 올림픽에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갈수록 사라지고 승리만을 숭배하고 승리자들에 대한 경배와 찬양만이 무성할 뿐이다. 무엇이 현대 올림픽을 이렇게 변질시키고 있나. 그 이유는 먼저 올림픽이 개인들의 잔치가 아니라 국가들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개인들의 잔치였던 올림픽이 제국주의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우수한 국민을 가진 건강한 국가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올림픽은 치열한 국가간 경쟁의 장이 되었다. 이 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개인을 발굴하고 이들을 집중 육성하는 엘리트 스포츠에 몰두하며 스포츠 엘리트들을 국가의 상징으로 만들고 있다. 국가의 상징으로 부각된 스포츠 엘리트들은 또 한편으로는 국민 통합과 애국심을 이끌어내는 표상이 되고 있다. 이제 스포츠는 건강한 국가의 상징을 넘어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스포츠와 자본주의의 추잡한 결합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자본의 축적을 위한 매우 중요한 상품인 동시에 시장으로 기능한다.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에서 자본의 원활한 축적을 도와주는 스타 시스템이 스포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스포츠 스타가 탄생하고 이들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이른바 스포츠 마케팅 전략의 탄생 때문이다. 즉 스포츠 마케팅 전략상 위대한 스포츠 영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이번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연이은 잘못된 판정과 또 어떻게 해서라도 메달만 목에 걸면 된다는 일부 선수들의 추잡한 반칙행위들을 보면서 인간 세계에 더 이상 페어 플레이가 자리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생겨났다. 그래서 이 기회에 스포츠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 문윤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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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2.27 23:02

[새벽메아리] 국민참여경선에 부쳐

아직은 좀 이른 듯 하지만 민주당내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을 가끔 보게 된다. 주변의 관심이야 그리 높지 않지만 후보의 태도는 매우 진지해 보인다. 국민참여경선제가 비록 특정정당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한국 정치사의 흐름을 바꿀 획기적 사건이라 평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기대한만큼 큰 관심 속에 치루어지지 못하는 아쉬임이 있지만지금은 아주 옛날처럼 보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 기억되는 선거 방식이 있었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을 피로써 진압한 전두환이 그 해 8월, 최규하를 밀어내고 직접 대통령 자리에 앉기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감행했다. 이때 결과가 2525명 투표에 2524명 찬성이었다. 왜 한 명은 뺐을까? 궁금해서 좀 더 거슬러가 보면 9대때 박정희는 100% 지지로 당선이 되었다. 100%는 공산당식이라고 비난해왔으니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하기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똑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면 100% 나오는 건 너무 당연하다.이런 간접선거는 박정희가 국민들이 직접 뽑는 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DJ에게 겨우 이긴 후(실제로는 졌다는 게 정설), 72년 10월 유신에서 도입한 이후 국민의 힘으로 87년 되찾을때까지 15년이나 지속되었다.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6월 10일은 장충체육관에서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얼핏 보면 정당의 후보 선출을 시비한다는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당연히 축제가 되어야할 날을 온통 최루탄으로 범벅이 되게 하는 것이 이날 시위의 주목적이었다. 대회 장소 주변에 전경들을 배치하여 대의원외에는 아무도 얼씬 못하게 하고 비난 속에 치러지는 후보선출과정과 국민의 관심과 기대속에 축제처럼 치루어지는 것 중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할까? 결국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수용함으로써 긴 싸움은 일단락을 지었다. 대통령선거야 직선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정당의 후보자 선출과정은 당 안에서의 행사에 그쳤으며 당선 가능성이 불확실한 후보의 뛰처나가기는 여전히 계속되었다.이번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은 이런 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당의 발달과정에서 진일보한 것이다.TV와 신문들이 후보 인터뷰를 앞다투어 실지만 주변에서 느끼는 온도는 뜨겁지 않다. 여전히 정국은 게이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모처럼 열린 국회는 극한적인 비방, 폭로전으로 얼룩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다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된다.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높지 않다면 좋은 제도도 후보들간의 조직 대결 양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후보들 역시 여론에 기대기보다 좀 더 확실한 한 표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 국민참여경선제는 이미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다른 당에게도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울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시장 후보 선출을 민주노총과 함께 치르기로 했다. 이제 어느 정치 세력도 자신을 개방하지 않고서는 일반 국민들을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선거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매우 취약한 한국에서의 정당의 뿌리가 대중 속에 자리잡을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민주당의 시도가 찻잔 속의 태풍이 되지 않으려면 민주당 스스로 체화된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하며, 주인인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가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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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2.20 23:02

[새벽메아리] '한국식' 농업정책 세워라

새해를 맞았지만 미증유의 쌀값폭락에 따른 농가경제의 침체가 농촌을 무겁게 내리 누르면서 새해다운 활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작년 추석 무렵부터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된 농가경제 위기에 대한 원인분석과 다양한 해결방안들은 허기진 농민들에게 약간의 위로는 되었을망정 , 근본적 대책마련이라는 명제에는 아직 너무도 동떨어져 있을 뿐이다. 원인분석과 대안제시를 넘어서 이를 사회적으로 합의해내고 국가정책에 반영시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금년 예산에 논농업직불금을 ha당 50만원으로 늘리는 정도의 땜질식 방책만으로 그쳤고, 농민들을 향해 고품질 쌀생산에 주력하자는 캠페인성 구호만을 되풀이 외칠 뿐이었다. 농림부는 '쌀산업발전 중장기대책'을 검토하여 금년 3월 말까지 최종 확정한다고 발표하였다(12.26). 여론의 호된 질타에 못이겨 뒤늦게나마 허둥대는 농림부의 태도가 마땅치는 않지만, 기본방향을 수립하는 데 꼭 참고되어야 할 몇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경쟁력 강화'라는 헛된 미신을 버려라. 국내 쌀값이 미국, 중국에 비해 4-6배 비싸다고 한다.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쌀생산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미국은 평당 약 700원, 한국은 약 3만원 대). 따라서 한국농민들이 아무리 뼈를 깎는 생산비 절감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얘기가 이쯤되면, 경쟁력 없는 농업은 포기하고 잘 나가고 있는 첨단산업 중심으로 가자는 이른바 '비교우위론'이 들먹여질 수 있다. 하지만 비교우위론의 태생지인 영국이 이를 이미 1940년대에 무덤에 묻어버렸고, 정반대 방향의 농업투자를 통해 유럽 최대의 밀수출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과 한국을 비교하면 헤비급 권투선수와 중학생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중학생 수준에 맞는 경쟁력 강화의 목표치를 벗어나는 순간, 그 믿음은 헛된 미신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둘째, 부족한 국가재정 타령은 이제 제발 그만하라. 미국 연방정부는 국채발행액의 이자상환을 위해서 연간 1,500억 달러(미 국방예산의 절반)를 지출할 정도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일본도 국가채무가 2조 달러(약 2,600조원)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국내 농업지원예산을 최근 오히려 늘려왔다. 유럽이 2차대전 후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잉여농산물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 국내농업을 육성하고자 노력했을 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과연 국가재정이 넉넉하였겠는가? 재벌들의 빚잔치에 펑펑 쓰여졌던 IMF 당시의 공적자금처럼 농촌에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내농업을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다면 농업, 농민을 사랑한다는 빈 말이 아니라 구체적 예산집행을 통해 표현하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IMF당시 귀농했던 분들 중 70%가 다시 이농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도시 노동자의 평균 소득에 비해 농민들의 소득 수준이 80%까지 떨어졌다는 작년 말 통계청의 발표처럼, 지금 농촌은 더 이상 내려설 곳이 없는 빈사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농민들에게 해줄 것만 요구하지 말고 농민들도 적극적인 자구책을 강구하고 더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올한참 휴가철일 7월말 어느 휴일 저녁의 TV뉴스 시청을 권하고 싶다.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인근 계곡을 찾아 땀을 식히고.......찜통같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탐스러운 결실을 기대하며 휴일도 잊은 채 논과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이상 휴일표정 스케치였습니다"/ 김용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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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2.06 23:02

[새벽메아리] 춤의 사회학

춤이 넘쳐나고 있다. 라틴댄스, 재즈댄스, 살사, 힙합, 볼룸댄스, 스포츠댄스 등이 일상적 용어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그동안 춤을 독점해 온 청소년뿐만 아니라 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춤이라면 불륜을 연상케하는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도 떳떳하게 춤에 열광하고 있다. 춤바람이 불고 있다. 에어로빅으로 시작해 DDR이라는 혁명적 기계가 불씨를 지피고 백화점이나 사회교육원의 문화강좌에 댄스 교실이 인기를 모으더니, 마침내 시내 곳곳에 각종 댄스학원들이 속속 문을 열고, 인터넷에서도 자신의 춤 솜씨를 뽐내며 동영상 파일로 춤 실력을 겨루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갑자기 사람들은 왜 춤에 열광하는가? 춤이란 단순한 몸의 움직임만은 아니다. 그 몸 동작 하나하나에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춤은 어떤 메시지를 역동적인 에너지가 담겨진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언어소통방식이며 의사소통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춤은 인간 상호간에는 물론 자연이나 우주 또는 초자연적 힘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무당의 춤이나 주술가의 춤이 그러하고, 사랑하는 두 남녀가 함께 어울려 추는 춤이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적 활동만을 중시하고 몸을 통한 어떤 행위도 그 가치를 인정해 오지 않은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신념은 몸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춤을 때로는 매우 경박한 행위로, 때로는 매우 음란한 행위로 취급하였다. 그 결과 춤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어둡고 음침한 곳으로 숨어들어 은밀한 행위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지금 불고 있는 '춤바람'은 '춤'과 그것을 담아내는 '몸'이 다시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춤은 다른 어떤 표현방식보다도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최근 문화적 흐름이 바로 개인기를 중시하는 '자기 과시 또는 드러냄'인데 이는 보통 '튄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이 '튄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던 시대에서 이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시대로 변화해 왔고 이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드러냄'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적 배경이 춤열풍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춤 열풍은 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의 새로운 의사소통방식으로 춤의 의미를 회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의 춤 열풍을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춤의 열풍의 선도에는 청소년이 서 있다. '청소년과 춤'이라는 조합에서 부각되는 것은 바로 '젊음'이라는 문화적 코드이다. '젊음'이라는 문화적 코드가 부각될수록 젊음은 보다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되고, 생물학적으로 젊지 않은 사람들은 이 자본을 획득하기에 애쓰지만 더욱 주변화되고 말 것이다. 결국 춤과 젊음이 한 몸이 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문화산업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춤의 상품화, 춤의 즉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라틴댄스나 재즈댄스 등이 문화적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계급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춤의 유행이 또 하나의 문화귀족을 창출하고 있다. 또 춤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상품화 광고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예술적 표현이나 삶으로서의 춤이 아닌 상품화된 행위로 춤을 전락시키고 현대인의 속물적 취향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춤이 육체와 젊음을 문화자본화하는 현대문화의 특성을 더욱 강조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 진정한 '춤'을 위한 조건이 될 것이다. / 문윤걸 (전북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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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23 23:02

[새벽메아리] 클린턴과 한국정치

클린턴은 1978년 32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미국 아칸소주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지난 40년간의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주지사라는 기록도 남겼다.재선에 실패한 후 다시 도전하여 다섯 번째 주지사임기를 마친 클린턴은 1992년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침체에 빠진 미국경제를 되살린 업적으로 무난히 재선을 한 후 2000년 퇴임하였다.만약 클린턴이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그와같은 눈부신 정치적성공을 거두었을까? 워낙 정치적집념이 강하고 정치적네트워크연결에 탁월한 클린턴인지라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풍토에 적응하려고 접근방식을 180도 달리 하였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고 좌절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클린턴의 정치적 성공은 미국의 예비선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겨우 18살의 촉망받는 젊은이로 바깥 세상에 뛰어들었던 클린턴은 9년이 지난 27살에 고향 아칸소주에 돌아왔다. 조지타운대학, 옥스퍼드대학, 예일대학등에서 학업을 마친 그가 1973년 가을 아칸소주 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음해 클린턴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 4명이 경쟁에 나선 민주당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쉽게 압승하켰다. 압승의 이유는 클린턴의 조직관리 능력과 정열이 다른 후보자들의 지역적 기반을 능가한 데 있었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공하당 출신 하원의원인 햄머슈미트가 1966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후 한번도 민주당으로부터 도전다운 도전을 받지 않은 만큼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어 민주당에서는 강력한 입지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예상밖의 선전을 하여 강적 햄머슈미트에 맞서 2퍼센트의 차이까지 따라잡았다. 그 결과는 햄머슈미터에 대한 그때까지 민주당의 도전중 최고성적이었고 클린턴은 아칸소 민주당의 가장 촉망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후 승승장구한 클린턴은 1976년 민주당 검찰총장예비선거에서 압승하고 공화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쉽게 검찰총장에 당선되었고 2년후인 1978년에는 민주당주지사 예비선거와 주지사 본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하였다.그러나 정당이 1인지배체제하에 있고 지역주의투표행태가 횡행하는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은 이야기이다. 자질이 뛰어난 정치신인이라 하더라도 공청권을 장악한 총재나 그 대리인과 선이 닿지 않은 한 당의 공천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천상 천하 1인인 공천권자와의 줄이 혈연이나 지연, 학연 아니면 막대한 공천헌금일턴데 성실함과 진지함이 유일한 연줄인 정치신인들에게는 애당초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그렇다고 불의한 정치현실을 바꾸겠다고 무소속으로 출마해다가는 지역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풍차에 돌진하는 돈기호테 취급받기 쉽상이다.다행히 집권여당이 올해 대선후보선거는 국민경선제라는 사실상의 예비선거제를 도입하고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종 공직후보자는 당원대회에서 선출하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선거때마다 당을 바꾸고 정치개혁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던 정당이라 액면 그대로 믿어지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도 클린턴같은 정치인이 나올 수 풍토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진봉헌 (전주지방변호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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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21 23:02

[새벽메아리] ‘게이트’와 '스캔들'

요즘 하루는 ‘게이트’로 시작해서 ‘게이트’로 지는 것 같다. 아침에 눈뜨면 ‘무슨 게이트’에 연루된 새로운 사람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문’이 계속해서 나타나 끝을 알 수 없다. ‘게이트’란 말은 공화당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에서 유래한 바, 원래 ‘스캔들’이나 ‘추문’으로 불리는 게 적합할진대 권력형 스캔들에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이번의 게이트들은 새로운 시대적 특징을 띄고 있다. 과거의 비리 의혹들은 대개 재벌과 관료, 정치집단 사이에 주로 발생했지만 이번의 사건들은 벤처기업을 끼고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과거의 강남 개발 붐을 틈타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들인 과거 졸부들과 달리 벤처열풍에 따라 급격히 부를 축적한 신흥 벤처 졸부들과 권력기관, 금융기관, 언론기관들이 벌이는 신종수법이다. 나는 누가 얼마를 받고 댓가성으로 어떤 위법을 행사했는 지엔 별 관심이 없다. 그건 검찰이 밝혀낼 일 뿐이다. 다만 왜 이런 추문들이 시작되었고 언제까지 진행될 지가 궁금하다.올해의 대통령기자회견을 보는 느낌은 수많은 ‘게이트’로 얼룩진 정권의 피로를 보는 듯했다. 외환위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넘기고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은 경제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쉬어 버린 목소리로 연신 죄송과 사과를 반복해야 하는 현주소가 몹시 씁쓸하다. 뒤늦게 정실인사를 하지 않고 불퇴전의 각오로 비리척결을 외치지만 왠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부터 4년전, 50년만의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몹시도 기뻐했던 사람들은 권력이란 결국 똑 같은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에 할 말을 잃는다.새로운 정권의 등장을 한 정권에서 다른 정권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영남에서 호남으로 권력의 중심이 옮겨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정권교체의 참된 의미를 모른 채 자신들도 그 자리에 앉아 볼 기회가 생기는 정도로 이해했을 지 모른다. 여전히 소수파 정권에 불과한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망각한 채 너무도 빨리 권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권력을 누리는 쪽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권력에서 조금(!) 소외되었던 이들은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적극 반기고 권력의 중심부로 재빠르게 진입했다. 단지 출신지역이 같다는 이유로 출신교가 같다는 이유로 믿을 만한 우리 편으로 둔갑하여 정권 교체의 꿀 맛을 누려왔다. 나는 이들을 각종 추문의 진원지로 의심한다. 이제 이들에 의해 권력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있고 이들은 벌써 새롭게 살 길을 모색하고 있을 지 모른다. 서로간에 암투를 벌이고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 정권에 보험이라도 들려고 안달이 날 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괜찮은 우리 편을 만들어 놓지 못한 DJ는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사태가 호전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따져보면 과거 정권의 대형 비리들에 비하면 지금의 것들은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참된 의미를 안다면 여러 게이트들이 더 가혹하게 폭로되어 오히려 이번 기회에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채우려는 오랜 관행을 멈출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권력에 취한 자들의 추한 이야기가 언제까지 계속 오르내릴까?/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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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16 23:02

[새벽메아리] 희망을 찾기위한 도전

기차표 구입을 위해 매표소 앞에 한 사람이 줄을 섰다. 서서히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는데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입석 두 장' 다음은 잘 들리게 '입석 두 장' 바로 앞사람이 분명한 어조로 '입석 두 장'을 달라며 계산을 한다. 자기 차례가 돌아온 그 사람은 물론 입석표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바로 뒷사람이 좌석표 있으면 달라고 한다. 매표원은 좌석표를 내 주었다.깜짝 놀라 되돌아서서 좌석표도 있었느냐고 묻자 '네'라는 대답이 무심하게 들려왔다. 다시 좌석표로 바꾸려 했지만 줄을 지어 서 있는 뒷사람들에 밀려 행동에 나서지는 못하고 입석표 구입에 만족해야 했다.살다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올해는 지방자치 일꾼을 뽑는 선거, 월드컵, 아시안게임, 대통령선거 등 큼직큼직한 행사들이 줄을 지어 있어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게 들떠서 지나가고 말 것이다.이런 속에서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다른 사람도 그랬으니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좌석표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는 꼼꼼함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희망 찾기에 나서야 한다.국정홍보처가 얼마 전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서 20세이상 성인 천 오 백 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한 결과 정당-국회-검찰-경찰-대기업-공무원-법원-언론기관 순으로 불신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조직인 동시에 가장 공정하고 신뢰받아야할 조직들이 '불신 받는 집단' 선두(先頭)를 놓고 경쟁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은 참으로 불행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불신 받고 있는 집단들이 우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집단으로 뒤바뀌는 희망을 우리는 도전정신과 꼼꼼함으로 현실화 시켜야 한다. 아직도 현실은 희망을 찾기에는 답답하다.여론조사에서 가장 불신한다고 해놓고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불신한다고 하는 기관에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아니 그곳에 밉보이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는지 처절하게 노력한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식사하는 곳에는 누군가에 의해 계산이 마쳐져 있다. 그러니 그들은 무엇을 잘 못했고 왜 불신 받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한다. 당연히 반성이니 불신이니 하는 말은 딴 세상 얘기가 되어 버린다.새해 각오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주술에 걸려 벌써 해이해졌을 시점에 희망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다져보면 어떨까 싶다.364일 정치개혁을 외치고 비판하다가 투표 당일 날은 고향사람, 동문, 친인척,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찍는다면 정치개혁은 요원할 것이다. 검찰, 경찰, 법원이 불신 받는 이유는 공평하지 못한 조사와 처벌에 있다 많은 서민들은 보복이 두려워 감히(?) 하소연하지도 못한다. 이제는 하소연해야 한다. 내가 하소연하면 다음 사람은 똑같이 억울한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작년까지는 아니 이제까지는 그냥 넘어갔던 일, 눈감고 우리지역사람 찍었던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래서 새롭게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앞사람 따라 입석만 외치는 사람은 여행기간 내내 서 있어야하고 혹시 빈자리가 생겨 앉으려해도 온갖 눈치가 보인다.꼼꼼하게 좌석을 챙긴 사람은 편안한 여행이 보장된다. 지방선거 한번 잘하면 4년이 편안하고 대선 한 번 잘하면 5년이 편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민주화 과정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모두 공익적인 일에 한가지씩 실천항목을 정해 작은일부터 시작하자. 희망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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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09 23:02

[새벽메아리] 2001 지역문화의 해를 마감하며

벌써 2001년의 끝에 서 있다. 하지만 2001년이 정부가 정한 '지역문화의 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지역문화의 해'를 결산하는 모임이 서울에서 있었다.이 자리에는 각 지역의 문화현장에서 활동하는 100여명의 문화활동가들과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 열띤 사례발표와 토론을 펼쳤는데 저마다 지역의 문화를 꽃피우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토로하였다.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에서는 전문 문화인력의 부족으로 담당 공무원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업무의 과중함을, 또 농촌지역일수록 향토 유물이나 사적지가 많이 산재해 있는데 예산이 태부족한 탓에 기초적인 자료정리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도시지역은 지역의 문화적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역 축제들의 남발을, 또 지역의 대형문화행사에 '점령군'처럼 왔다가 갈등만 일으키고 돌아가는 서울 문화 전문가들의 오만함을, 또 지역주민들의 손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는 지역문화에 대한 관의 소홀한 대우 등 수많은 문제들이 탁자위에 펼쳐졌다. 어느 것 하나 공감되지 않는 얘기가 없었으나 모두의 적극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우리의 지역문화가 서울의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인천 등 수도권 지역과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였다. 사실 돌이켜보면 지역에서의 삶과 문화가 강력한 중앙집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이미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매일 저녁, 퇴근길 라디오를 통해 서울의 교통상황에 대해 소상히 듣는다. 전주에서, 그리고 각 지방에서 퇴근을 서두르는 우리가 왜 서울의 상세한 교통정보를 들어야만 하는가. 하지만 공공의 전파가 서울에 집중되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우리는 신문을 통해 서울에 있는 백화점들의 세일 광고를 흔히 접하게 된다. 또 사투리를 쓰면 촌놈 취급받기 일쑤이고, 학교에서는 기어이 서울의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이른바 표준말을 가르치고야 만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이 서울 사람들을 기준으로 통일되고 있는 판에 지역의 삶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화가 온존할 수 있겠는가? 서울에서의 삶과 문화가 전국민의 표준적 삶과 문화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지역의 특색을 보존하자는 노력은 자칫하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나 분열주의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발을 딛고 사는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자연적 환경도,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이웃과 맺는 공동체 네트워크의 규범도, 그 과정에서 축적된 역사와 문화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의 문화가 표준적 삶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하고,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문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서로의 존재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며칠후면 지역문화를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들은 종결되고 '지역문화의 해'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문화의 해'를 선정하건 말건 지역문화는 이전에도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지역문화를 위한 지역주민의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 문윤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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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2.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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