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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⑤ 친일·군사정권 협력 어떻게 볼 것인가

친일 문제는 민족의 큰 숙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대통령 동생인 박근령의 친일망언, 현직 정치인들 윗대의 친일행적 등이 이슈가 됐다. 미당 서정주의 친일과 독재옹호 역시 여전히 그의 문학세계 전반의 공과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국민시인이란 위상에 큰 오점을 남겼으며, 문학적 성과와 맞물려 지금도 진행형의 논란거리다.△1940년대 초 친일시 10여편= 미당의 시적 이력에 친일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와 관련해 밝혀진 시만 해도 10여 편이다. 1942년부터 2년여에 걸쳐 쓰인 작품들, 시의 이야기-국민 시가에 대하여(매일신보, 1942, 평론),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춘추, 1943, 수필), 스무살 된 벗에게(조광, 1943, 수필), 항공일에(국민문학, 1943, 일본어시), 최제부의 군속지망(조광, 1943, 소설), 헌시(獻詩)(매일신보, 1943, 시), 보도행(조광, 1943, 수필), 무제(국민문학, 1943, 시) 오장 마쓰이 송가(매일신보, 1944, 시)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들은 대부분 최재서의 요청으로 일본말 시 잡지 국민시인의 편집일을 맡았을 때 쓰였다.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씨의 둘째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구국대원/(중략)/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로 온/ 원수 영미(英美)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미당을 친일 시인으로 낙인찍히게 만든 시, 오장 마쓰이 송가 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비롯된 태평양 전쟁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4년 12월 9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게재됐다. 이 시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를 찬미하고 있다. 무모한 전술에 동원된 몸뚱이도 인 씨성을 가진 엄연한 조선 젊은이의 것이다. 허병식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올 6월 발표한 논문, 식민지 주체의 아이덴티티 수행과 친일의 회로에서 미당의 친일시는 일제에 충성하는 민족의 맨얼굴을 자랑스럽게 전시한다고 평가했다.미당은 자신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의식했다. 그의 친일행각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고백과 사과는 1960년대 창피한 이야기들에서 이뤄졌다. 그는 이야기에서 전쟁세계에 대한 내 무지와 부족한 인식이 빚어낸 이것, 해방되어 돌이켜보니 참 너무나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미당은 1980년대의 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와 1992년 〈신동아〉에 기고한 일정 말기와 나의 친일시에서 일본이 쉽게 패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자신의 행위가 강요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혔다.△80년대 군사정권 옹호, 친일 행적 연상시켜= 해방 후, 미당은 친(親)권력적 행보를 보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50년~1970년을 거치면서 문단과 매체를 통해 확고한 문학권력으로 부상했고 대학교수라는 제도적 권위까지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가지가 떨어지게 열리는 꽃은/ 겨우내 여기 다 소곤거리던/ 바람의 바람의 소망이리라/ 바다밑 조개들이 붉고 푸른 문의는/ 온 철련 에워싸고 출렁거리던/ 물결의 물결의 소망이리라/ 이 거치른 마음의 땅에/ 소나기처럼 오시는 혁명은/ 오랜 민중의 소망이리라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8월 24일 경향신문에 발표한 시다. 제목은 혁명 찬(讚). 서은주 박사(연세대학교 강사)가 지난 해 12월 동국대에서 열린 학술발표회 서정주와 전통주의의 계보에서 공개했다. 미당은 이 시에서 군사 쿠데타를 민중의 소망이 반영된 혁명으로 추켜세웠다.미당의 군사정권 옹호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와서도 이어진다.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 원년으로 만드셨나니/(중략)/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중략)/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 하늘의 찬양과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이 시는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56세 생일 축하장에서 발표한 시, 처음으로다. 그는 시에서 당시 삼저호황(198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현상)에 의한 물가안정과 평화의 댐 건설을 전두환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했다. 김학동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그의 글 서정주의 생애와 문학〈서정주 연구〉에서 서정주가 보여준 친권력적인 태도는 일제 치하의 친일 행적과 연관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이외에도 그는 이승만의 전기를 쓰고, 베트남 참전기를 독려하는 시 다시 비정(非情)의 산하(山下)에를 썼으며, 1975년에는 김종필의 새마을 운동 시찰을 따라다니며 관제용 참관기를 남겼다. 1980년에는 광주의 비극을 발판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TV연설을 했다.△ 권력지향적 태도비판 잇따라= 미당의 문학과 현실인식에 대한 평가는 그의 타계 이후 언론 논쟁의 양상을 띠기도 했다. 이 논쟁은 미당의 제자였던 고은 시인이 지난 2001년 미당 담론에서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 시대에 대한 고소 공포증에 가까운 굴복이라고 쓰며 시작됐다. 이에 대해 송하선 우석대 명예교수는 미당담론에 대한 담론에서 돌아가신 스승의 뒤통수에 대고 돌을 던지는 그림은, 상상하기조차 힘들고 안타깝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미당의 문학과 정치적 행보에 대한 전면적 논쟁이었던 셈이다.현재도 미당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논자들은 미당의 삶과 문학이 세계관을 통해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서은주 박사는 미당은 친일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권력지향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며 당시에 존재했던 절대권력의 외압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겠지만,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인의 삶과 작품이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미당의 친일은 보통사람과의 친일과는 다르다 며 적어도 문단에 영향력이 큰 지식인이라면 도의적인 책임을 피해갈 순 없다. 해방 후 석고대죄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고 주장했다.조교현 광복회 전북지부 사무국장은 걸출한 문학적 재능을 친일에 썼다는 거 자체가 문제다 면서도 서정주에 대한 판단은 대중들에게 맡길 필요도 있다며 판단을 유보했다.△친일과 독재옹호는 반면교사하고, 시 자체로 평가받아야= 미당에 대해 일정정도 우호적인 관점을 가진 논자들은 친일독재옹호와 문학적 업적은 별개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은 예술은 이념적인 잣대나 가치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며 친일시 몇 편으로 명확한 근거 없이 서정주의 다른 작품들마저 친일 정신이 반영돼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복잡한 식민지 상황을 인지하고, 서정주의 행동이 친일(親日)이었는지 순일(順日)이었는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윤재웅 동국대학교 교수는 미당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행보를 단죄적 시각으로 바라보기엔, 여러 복잡한 함수들이 존재한다 며 그의 친일행적 및 독재정권 협조는 문학성과는 별개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미당을 위한 동생 서정태 시인의 변론= 미당의 동생 서정태 시인은 일제시기를 살아 본 사람의 입장에서 미당을 평가한다. 가족의 입장이 아닌 시인의 입장에서 얘기한다는 사실 역시 강조한다. 서정태 옹은 형님은 1944년 고창 경찰서에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킨다는 연극단원들의 사상적 배후혐의로 구금됐었다 며 당시에 큰 고초를 겪었는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서 시인은 이어 시대적 상황이 어땠는지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전두환을 찬양한 시에 관해서는 형님의 큰 과오라고 생각한다 면서도 장세동 전대통령 경호실장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장세동이가 형님에게 전두환 찬양을 부탁하면서, 거의 형님집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어쩔 수 없이 찬양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9.01 23:02

토속성 묻어나오는 에로티시즘 조기호 시인 19번째 시집 〈민들레 가시내야〉

조기호 시인(78)이 19번째 시집으로 그동안의 작품 가운데 추린 시를 묶어 선집(選集) <민들레 가시내야>(문학사계)를 냈다.그는 89편의 시를 1부 신화, 2부 가난 이삭줍기, 3부 철들 무렵, 4부 전주성, 5부 주천왕 꽃, 6부 백제의 미소 등으로 나눠 담았다.조 시인 특유의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 묻어나오는 작품이 수록됐다.작품 해설에서 황송문 시인은 조 시인의 과잉된 의식은 예술지상주의쪽 관능미에 경도되어 있다며 다소곳한 에로티시즘과 의기양양한 에로티시즘으로 나눌 수 있다고 풀이했다.조 시인이 다소곳이 그리는 여인은 놋요강에도 소리 없이 소피볼 줄 아는 여인이다.더불어 선정적이고 색정적인 장면을 의기양양하게 펼칠 때에는 토속성이 함께 한다. 오월장미는 싸락눈 따 먹은 홍시 입술로/초여름 립스틱을/꾹꾹 눌러 찍었다며 도시의 문명적 요소까지 전이된 관능적 애욕이 넘친다는 해석이다.황 시인은 이어 육두문자는 이야기의 발성이 돼 걸쭉함을 낸다고 덧붙였다.시장 통 조껍데기 술집에 앉으면/여기도 씨벌/저기서도 씨벌/씨벌이 살아서 펄펄 날아다니는는 조껍데기 술집같은 풍경도 그려낸다.조기호 시인은 전주 출신으로 목정문화상, 전북예술상, 전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28 23:02

'불손한 책?' 보며 '독서 자유' 읽는다

단발머리를 하고 늘 어린 동생을 업고 다녔던 몽실언니.권정생 작가의 이 작품은 처음 잡지에 연재할 때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1986년에는 어용단체가 용공 동화의 사례로 몰았고 문교부가 학교도서관에서 빼라고 지시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권의 작가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도 불손한 책으로 찍히기는 마찬가지였다.<아기 공룡 둘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 부천의 명예시민인 그가 한 때는 아동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금서(禁書)였다. 지난 2008년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에 오른 뒤 서점에서 판매량이 10배 이상 뛰기도 했다.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독서문화시민연대)는 시대적 배경에서 금서였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을 펼치기 위해 독서의 달 첫 번째 주인 다음 달 1일부터 7일까지를 제1회 금서 읽기 주간(BBW, Banned Books Week)으로 정했다.전국의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등에서 금서를 읽으며 어떤 책이 왜 금지됐는지를 살펴보고 민주주의 기본원리이자 근본 규범인 표현의 자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취지에서다.출판, 독서, 도서관 등 책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모임인 독서문화시민연대가 꼽은 금서 목록에는 국내외가 망라돼 있다. 국내는 독재시절 반공 이데올로기에 묶이거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해외 사례 역시 풍기 문란을 이유로 금서가 된 책이 눈에 띄었다.현재는 해금된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사슴>을 비롯해 한홍구 사학자의 <대한민국史>, 위기철 작가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 김지하 시인의 <오적>, 조태일의 <국토> 등도 금서라는 낙인을 받았다.닐 웨일즈 작가가 중국에서 공산당 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김산을 기록한 <아리랑>은 민주와와 함께 해금됐다.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트 슈만 작가의 <세계화의 덫>, 헨리 조지 작가의 <진보와 빈곤>도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진보적인 경제서로 국방부가 지정한 금서에 이름을 넣었다.동화도 금서의 단골 목록이었다. 저스틴 리처드슨, 피터 파넬 작가의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는 의미를 담았지만 지난 2005년 출간한 뒤 금서로 올랐다. 아빠 펭귄 로이, 실로가 아기 펭귄 탱고를 키우는 내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였다.또한 모리스 샌닥 작가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린드그렌 작가의 <삐삐 롱스타킹>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화도 아동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책으로 지적되기도 했다.책의 역사 만큼 고전도 빼놓을 수 없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출간 당시 금서였다. 세상을 향한 풍자를 담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무삭제판도 마찬가지다.독서문화시민연대는 우리나라 책의 역사에서는 검열과 허가제가 오랫동안 책의 숨결을 억압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독자들은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고 금서의 울타리는 하나씩 둘씩 허물어졌다고 진단한다.이들은 진리생존설을 주창한 존 밀턴은 어떤 사상이 옳으냐 하는 것은 권력자인 검열관이 판정할 수 없고 그것은 자유로운 논쟁과 독자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야 진리가 살아남고 허위가 도태될 것이라 했다면서 이번 금서 읽기 주간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더 깊은, 독서의 자유와 도서관의 자유가 활짝 개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28 23:02

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④ 고향 고창, 어떻게 투영됐나

철학자 하이데거는 철학을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정의했다. 하이데거가 정의한 철학과 마찬가지로, 미당 문학에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드리워져 있다. 실제로도 미당 문학의 바탕에는 고향의 정서가 듬뿍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유년시절 외할머니가 해주던 옛이야기와 고향의 구전설화가 스며든 시집 <질마재 신화>, 주모(酒母)와의 슬픈 추억이 담긴 선운사 동구<동천> 등은 고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당이 묘사한 풍광이 살아있는 곳 고향 고창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그 곳에는 미당의 동생인 서정태 옹(93)이 1989년 귀향해, 형의 생가 바로 곁에 초가삼간, 우하정(又下亭)을 지어놓고 산다. 그를 찾는 사람들의 용건은 대부분 그의 형 서정주이기에 항상 말을 전하는 사람의 위치로 비켜 있을 터지만, 지속적으로 미당을 찾는 사람들과 교우하고 있다. 21일 본지기자의 취재에 동행했던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도 서정태 옹과 교분을 유지하는 한 사람이다.이날은 서정태 옹 역시 취재에 동행해 미당의 생애와 관련된 장소와 그가 시집에 형상화한 곳곳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집에서는 방문만 열고 북쪽 방향에 시선을 주면 <질마재 신화>의 모티브가 된 질마재가 보인다. 질마재. 산굽이를 따라 구불구불 길게 뻗은, 소나 말 안장을 닮았다는 언덕이다. 서 옹의 안내를 따라 가는데도, 길이 구불구불해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덕의 정상에는 형 내외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묘소근처에는 잡초가 제법 길고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서 옹에게 혹시 시묘살이 하는 것 같지 않냐 는 질문을 하니, 팔자려니 은근히 즐겁다고 했다.질마재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소요산을 등지고 있는 미당 시문학관이 보인다. 질마재길이 시문학관까지 잇닿아 있는데, 차로 5분 내외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미당의 유품과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어, 미당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문학관과 인접한 개울을 건너면 다시 미당 생가가 나온다. 생가의 담장은 낮게 둘러쳐져있고, 초가집 한 채와 창고가 덩그러니 서 있다. 그 사이에 위치한 마당에는 미당이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상가수의 소리)라고 일컫던 우물이 있다.미당 생가에서 벗어나 마을 입구 쪽으로 나오면 유년 시절 미당이 다녔다던 서당터가 있다. 바로 그 서당터의 건너편에는 미당 시 세계의 설화적 배경을 제공한 외가가 있다. 서 옹에 따르면 외할머니는 질마재 주변에 맴도는 설화 등을 미당에게 들려주며 시적 모티브를 제공했던 사람이다.외가의 오른편에는 배 모형의 전시물이 있고, 앞 벽에는 바다와 초가집이 그려져 있고, 시 해일이 적혀져있다. 일찍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던 남편을 기다렸던 미당 외할머니의 심정을 떠오르게 한다.△슬픈 사연 간직된 선운사 동구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미당이 남긴 절창(絶唱)중에 선운사 동구는 국민 애송시의 하나다. 이 시에는 슬픈 일화가 깃들어 있다. 송하선 우석대 명예교수가 쓴 <서정주 예술언어>에 따르면 미당은 선운사에 갔을 때 어느 주막에서 취중에 한 예쁜 주모를 본다. 그 후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뒤 다시 가보았더니 주막은 잿더미로 변하고 주모도 없는데, 그 잿더미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반기더라는 것이다.이와 관련한 실제 사연은 시 아버지 돌아가시고<팔할이 바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미당은 1942년 부친이 세상을 뜨자 고향에 내려간 길에 선운사에 들렀다. 어느 이슬비 내리는 가을 오후에 길가에 실파밭 건너 오막살이 주막에 들어가 약주를 찾았다. 주막에서 나이 사십 쯤 되보이는 주모와 만나 술을 마셨는데, 얼얼해진 주모가 육자배기를 들려줬다. 그 노래는 미당에게 진솔하게 전달됐다. 내 생애에서도 이것이 최고 정상이었네 라고 평했다. 주모는 떠나는 시인에게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이~ 했다. 미당은 술에 취해 독일어 이히 리베 디히(난 널 사랑해)를 연상했다. 세월이 10년 정도 흘러 미당이 그 주막을 다시 찾았는데 한국 전쟁 때 주모와 가족이 빨치산에게 학살당했다고 한다. 빨치산 토벌에 나선 경찰들에게 밥을 죄어 목인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미당은 시에서 그 주막도 불태워져 버리고 뒤에 내가 보았을 땐 그 실파만 남았더군. 그래 나는 그 뒤 선운사의 내 시비에 새긴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 그 육자배기 소리를 담아보았지라고 밝혔다.서정태 옹은 시에 나온 대로 주막집 없어진지 오래됐다 며 한국전쟁 때 빨치산들이 식량 얻으러 내려와서 불질러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고창군 부안면에 있다고 추정되는 주막터를 찾아보니, 음식점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고창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고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서정주의 시 세계는 고향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습니다 논문 서정주의 신라정신과 남한 문학장으로 지난 2013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김익균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의 말이다.그에 따르면 미당의 고향인 고창은 자신의 시 세계의 설화적 배경을 제공한 외할머니와 구분될 수 없다. 서정주의 고향 고창은 외할머니가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자화상)를 평생 동안 기다리고 있는 공간이다. 이는 미당의 시적 창작동기를 지배하는 원형이 된다.예를 들어,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동천)에 나온 구절인 천 살에도 안 죽기로 한 신랑이 돌아오는 풀밭길 은 일찍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던 남편(해일)과 연결된다. 또 만주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쓴 신부(질마재 신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시 안에서, 첫날 밤 도망가 버린 신랑을 그 자리에서 기다리다 산화한 여성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기다리며 고창에서 늙어간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변용한 것이다. 결국 미당의 시 세계에서 외할머니와 고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게 김익균 연구원의 설명이다.시집 단위로 볼 때, <질마재 신화>는 고창의 질마재 주변에 맴도는 설화들과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다. 간통사건과 우물, 단골무당네 머슴아이, 이삼만이라는 신 등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유년 시절에 들은 동네 설화를 기반으로 변형을 한 뒤,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다.이밖에 고창을 다룬 개별시로는 유년시절에 만났던 네 명의 소녀(섭섭이, 서우니, 푸접이, 순녜)를 그려낸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렇게 살고 싶은가<귀촉도>, 수대동시<화사집>, 내 영원은(동천) 등이 있다. 이에 대해 고봉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그의 논문 탈향과 귀향의 형이상학에서 서정주의 시 세계는 지속적으로 자기 실존의 근거를 확인하려는 귀향의지의 산물이다고 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8.25 23:02

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③ 미당문학 다시보기(하)

미당 서정주는 자신이 펴낸 15권의 시집 안에서카멜레온같은 변신을 추구했다. 한국 시사에서 미당만큼 시적 세계관에 대해, 다양한 수사가 붙은 경우가 없다. 신라정신, 영원주의, 불교적 사유, 풍류정신, 초자연주의 등 무수한 관점과 평가가 존재한다. 미당 서정주가 시를 통해 이룩한 전 방위적인 미학적 성취 덕분이다. 미당 시집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며, 시 세계의 흐름을 살펴본다.△미당 서정주의 시집과 시기구분= 미당 서정주는 68년 동안 창작활동을 하면서 1000편이 넘는 시를 15권의 시집으로 발표했다. 1941년 첫 시집 〈화사집〉에서부터 〈귀촉도〉(1946), 〈서정주시선〉(1956), 〈신라초〉(1961), 〈동천〉(1968), 〈질마재신화〉(1975), 〈떠돌이의 시〉(1976),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안 잊히는 일들〉(1983), 〈노래〉(1984), 〈팔할이 바람〉(1988), 〈산시〉(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등이다.이 시집들에 담긴 시 세계의 흐름을 연대기별로 나눠서 살핀다는 건 쉽지 않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미당 작품의 시기구분이 완벽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어떤 연구자는 〈동천〉 과 〈질마재 신화〉를 기준으로 미당 시를 전기시와 후기시로 나눈 뒤 시 세계를 조망하고, 어떤 연구자는 〈화사집〉, 〈귀촉도〉까지를 전기시로, 어떤 연구자는 〈화사집〉만을 전기시로 보고 미당의 시 세계를 관통한다.이수정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그의 박사학위논문 서정주 시에 있어서 영원성 추구의 시학(서울대2006)에서 서정주의 시집 전체를 조감하는 시선에서 시기구분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의 특징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꿰뚫어 낼 시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수정 교수는 〈화사집〉(1941)부터 〈서정주 시선〉(1956)까지가 미당의 전기시, 〈신라초〉(1961)부터 〈떠돌이의 시〉(1976)까지 중기시,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부터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까지를 후기시로 분류했다.△ 미당의 전기시 시적 자아의 확장= 미당 전기시의 특징은 시적 자아의 확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당의 시 화사〈화사집〉에서는 꽃뱀을 통해 고독과 허무, 관능과 욕망에 뒤엉킨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려낸다. 즉 꽃뱀은 젊은 날 미당의 얼굴이자 실존의 거울에 해당한다. 이후 미당은 젊은 날의 과오를 회복하기 위해 설화와 함께 불교적 상상력을 도입했다. 촉나라 망제 설화를 모티브로 한 귀촉도〈귀촉도〉, 사랑과 불교적 상상력을 결합한 추천사〈서정주시선〉 가 대표적이다. 이들 시에서는 사랑과 생명은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영원의 세계, 절대의 세계로 열려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또 한국전쟁 이후 미당은 자신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자연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귀촉도〉 에서는 소녀들을 통해 자연으로 열림을 추구하고, 국화앞에서(서정주 시선)는 자연현상을 보며 자기 성찰을 한다.△ 미당의 중기시 시적 자아의 한계극복과 신라탐구, 질마재로의 귀환= 중기시는 전기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라를 탐구하고, 고향 마을인 질마재라는 매개체를 사용한다. 미당은 〈신라초〉에 삼국유사의 설화를 수용해, 젊은 날의 번뇌와 시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선덕여왕의 말씀〈신라초〉에서 신라의 하늘이 상징하는 영원주의가 그 내용이다.하지만 미당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천 년 전의 신라와 교감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동천에서 쓴 표현매서운 새가 그 표현 중 하나다. 서은주 교수는 매서운 새는 님(신라)과 나의 합일을 찌르고 잘라내는 공격적인 이미지이다며 결국 미당은 시에서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라는 표현을 사용해 피해가는 방식을 모색했다고 논증했다.이후 이런 어려움과 장애를 더 줄이기 위해, 미당은 고향 마을인 질마재라는 매개체를 선택한다. 미당은 말피〈질마재 신화〉에서 김유신과 천관녀 설화를 질마재 마을의 간통사건과 연결시키고, 상가수의 소리〈질마재 신화〉로 신라설화를 매개체인 질마재로 당겨온다.중기의 마지막 시집이라 할 수 있는 〈늙은 떠돌이의 시〉에서는 1977~1878년까지 세계 일주를 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삶의 모습과 생명의 다양성을 노래한다. 특히 이 시집에서는 신라와 고향을 통해 느낀 감수성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려는, 이행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당의 후기시 시적 감성의 나눔과 개인사 기록= 미당의 후기시는 신라를 통해 얻은 원시적 감성을 대중과 나눠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떠돌이의 시〉에서 시인은 세계를 떠돌며 느낀 바를 타인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서는 신라적 감성의 전달을 넘어 단군신화부터 반만년의 한국사를 재해석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 시집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수정 교수의 주장이다.1984년에 출간한 〈노래〉 역시 미당이 말한 이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당은 시집의 서문에 기획의도를 밝혀두었는데, 유행가의 범람과 그 가사의 저질성에 대해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면서 가사의 질적 향상에의 책임감을 느껴서 시험 삼아 써본 것이니 클래식 뿐 아니라 유행가 작곡자들도 동조해달라는 요지를 담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실제 작곡돼 불리기를 기대한 것이다. 시집에는 봄노래, 여름노래, 가을노래, 겨울노래의 4부에 모두 56편의 시가 수록됐고, 이 중 8편은 〈질마재 신화〉의 노래부에 수록된 시들 가운데 수정한 것이다.〈산시〉는 노래보다 더 폭넓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104편이 넘는 시들이 아시아유럽오세아니아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아프리카 6부로 나눠 수록됐다. 이 시집에서는 세계의 신화역사풍속자연에 대해 체험하고 공부한 방대한 자료를 소개했고, 세계 각국의 산이 하는 말을 시인이 듣고 전하는 형식을 취했다.미당은 또 자신의 개인사를 연대기 순으로 수록한 시를 펴냈다. 〈안 잊히는 일들〉과 〈팔할이 바람〉이 그것이다. 〈안 잊히는 일들〉에는 시인의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예순에 이르기까지 겪은 일들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한 시들이 수록돼 있다. 시인이 살아오면서 겪은 극적인 순간의 감정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묘사한 게 이 시집의 특징이다. 〈팔할이 바람〉역시 〈안 잊히는 일들〉처럼 시인의 개인사를 소재로 담고 있으며 내용도 비슷하다. 1984년에 떠난 2차 세계여행에 대한 것과 친일행적 비판에 대한 입장을 담은 것 등이 보충됐을 뿐이다. 이 시집은 1987년 7월 6일부터 12월 28일까지 〈일간 스포츠〉에 담시(대화형식의 시) 형식으로 52회에 걸쳐 연재됐다.이후 이어진 〈늙은 떠돌이의 시〉와 〈80소년 떠돌이의 시〉에서도 미당 본인의 개인사를 계속 보충하여 기록했다. 두 작품은 연작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늙은 떠돌이의 시〉는 유년시절부터 1993년에 쓴 시들을 다루고 있고, 〈80소년 떠돌이의 시〉는 전작 이후 1993년 시편과 그 이후 1994년부터 1997년의 시편을 담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8.21 23:02

"흙냄새 나는 농촌은 살 만한 곳"

‘흙바람’이 불고 ‘흙냄새’가 나는 수필이 찾아왔다.수필가 형효순 씨가 2번째 수필집 <이래서 산다>(수필과비평사)를 냈다. 첫 번째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 년>에 이어 6년만이다. 그는 모두 5부로 나눠 53편의 글을 실었다. 농사 지으며, 자연에서 얻는 교감을 기술했다. 흙, 가족, 벼꽃, 마당, 씨앗을 소재로 농촌의 소박한 인정과 다소곳한 풍경, 노년의 황혼을 그려냈다. 이를 통해 그는 인생의 행복은 작은 것을 사랑하고 자연을 닮은 것이라 전한다. 도심의 빗물은 그저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야하지만 농촌에서는 생명의 원천이다. 이 물을 먹고 만개한 벼꽃은 ‘향기도 볼품도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밥’이 된다.한편으로는 7남매 중 5번째로 태어나 끊임없이 집안일을 해야 했던 유년기와 통일벼가 쏟아질 무렵 시집 와 ‘통일댁’이라 부르기를 자처한 사연도 밝힌다. 시댁에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쳤던 며느리의 모습과 함께 아버지, 어머니와의 끈끈한 정을 회상하는 가족사도 담았다.그는 “농촌은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또다시 책을 냈다”며 “혹여 농촌으로 내려올까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어설픈 유혹이 되길 바란다”고 출간 동기를 밝혔다.수필가 형효순 씨는 남원 출신으로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한국농어민신문 최우수편지 일반부문 동상, 행촌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을 역임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21 23:02

16회 전북시인상에 한선자…섬세한 내면묘사 '호평'

제16회 전북시인상에 한선자 시인(53)이 선정됐다.전북시인협회(회장 김영)는 올 협회 발간지를 통해 모인 작품을 대상으로 블라인드(blind) 심사한 결과 한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한 시인은 졸작에 눈길을 주셔서 고맙다며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그는 시(詩)와의 만남으로 삶에 내재된 어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그는 시를 만나러 가는 시간은 깜깜한 밤이었는데 그렇게 20여년을 헤맸다며 자신의 글이 심장이 나쁜 날들의 기록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내 시는 심장이 아픈 날들의 기록이었지만 햇빛을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심사를 맡은 양병호 전북대 교수(국문학과)는 26편의 시를 예술지상주의 규칙에 따라 줄 세우기 위해 고민하다 진솔하고 구체적인 마음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시 5편을 간추려 살폈다고 전했다.양 교수는 한선자 시인의 자화상에 대해 자아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로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고 평했다.한선자 시인은 장수 출신으로 지난 1996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시집 <내 작은 섬까지 그가 왔다>, <울어라 실컷, 울어라>를 냈다. 전북여류문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제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19 23:02

사람 냄새 풍기는 고향 산외 읊어

고향에 대한 향수와 서정성 짙은 시심을 펼친 시집이 나왔다. 송재옥 시인(79)은 4번째 시집인 <어리어리 스무남은 해>(신아출판사)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5부로 나눠 82편의 시를 내놓았다. 특히 시인의 고향인 정읍 ‘산외’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담아 10편 넘게 넣기도 했다. ‘노령줄기가 운암강변을 기다가 엇다 모르겠다 고개 들어 불끈 올라 챈 묵방산, 한숨 내쉬고 성깔 죽이며 두런두런 간은정이 범머리, 목욕재, 밤성골, 땅깔로 엎드린 채 왕자봉 향해 용을 썼겠다. 재충전 줄달음으로 배례밭, 팔백고지, 고당산, 마구 화난 듯 내장으로 듬성듬성 찍고 내달렸다’로 산외의 지세를 나타냈다.시인은 전형적인 시골 모습으로 산외를 기억한다. ‘이 동네 저 동네 오가는 사람’ 가운데는 ‘친척 찾는 손님과 숙식을 구걸하는 도부장수’가 있었고 ‘용머리장날이면 8도 떠돌던 얼치기 익살꾼/어중이떠중이 뒤섞인 주정꾼 장상꾼 호객소리’가 들렸다. 동네는 ‘제사나 생일이면 이웃과 조촐한 잔치를 열고/아낙네 품앗이 길쌈 방 입맛이 쓴 쉰내 나는 말잔치/이웃 정분까지 수다로 뒤집어 놓았다’며 ‘사람 냄새 풍기고 살았다’는 시절을 떠올려 본다. 송재옥 시인은 정읍 출신으로 지난 1991년 <표현> 작품상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제6회 열린시문학상, 제10회 모악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갓길 달리는 세상>, <흔들려야 안정하는 추>, <시간 구워 먹기>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14 23:02

그림 속 고스란히 담아 쓴 소녀 감성

그림이 먼저 일까, 글이 먼저 일까. 문인화가 이유경씨의 작품집을 접할 때 문득 생기는 궁금증이다. 그가 최근 펴낸 <내 마음을 봅니다> 역시 마찬가지다(신아출판사). 글 보다 많은 그림으로 엮어졌지만, 몇 줄 글에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문인화가들이 주로 중국의 명시들을 자신의 그림에 얹어놓는 방식과 달리 그는 자신의 생각과 소회들을 그림과 함께 풀어놓았다.2010년 <풀향기 머문길>을 출간한 이후 <그리운 바람길> <길섶에 서서> <꽃이 내게 말하네> <바람 잠시 쉬어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매년 한 권씩 낸 ‘그림을 곁들인 책’시리즈인 셈이다.<내 마음을 봅니다>는 소녀적 감성과 삶을 관조하는 저자의 인생 철학이 녹아 있다. 나무·꽃·산·강·물·바람·하늘 등 자연에서 사랑·행복·빛·꿈·눈물·허허로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픈 상처를 가누며 산으로 간 바람은 무심한 바위만 때리다 외로움으로 빈 가슴을 부여잡은 채 산허리만 휘감고 무심한 바위 곁에 서있던 외로운 나는 그저 마음 없는 마음으로 바람을 따르려 애를 쓰다 또 하나의 상처로 아프게 산을 넘고 있다’( ‘산으로 간 바람’전문) ‘진한 그리움 품고 먼 길 찾아온 그믐달 / 밤하늘은 따뜻한 가슴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죽 달빛은 아름답게 출렁이네 / 꿈이 머물다간 자리엔 기억마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계절의 향기를 달빛으로 곱게 색칠하고 있는데 영혼이 맑은 바람이 먼저 읽고 간다’( ‘꿈이 머물다간 자리’전문) ‘어두운 밤 나 홀로 듣는 달의 노래 빈 하늘에 들꽃 향기 가득 차오르고 / 찰랑 찰랑 바람 따라 눈이 부시게 피어오르는 달빛 아픔의 언저리엔 / 어느새 휘영청 행복 달이 떠가고 있네’( ‘나 홀로 듣는 달의 노래’전문)자연 속에서 삶을 속삭이고 관조하며 애환을 이야기 하는 작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하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5.08.14 23:02

혼불문학상에 이광재 '바람보다 큰' 당선

제5회 혼불문학상에 이광재 씨(53)의 소설 바람보다 큰이 당선됐다.11일 전주MBC는 동학 혁명의 발발부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까지의 상황을 실제적으로 다룬 바람보다 큰을 올해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발표했다.이 작품은 전봉준과 김개남 등 등장인물의 내밀한 개인적 정황부터 실제 혁명의 전개 과정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현해, 동학혁명을 이 시대로 불러냈다는 평을 받았다.심사위원장으로 현기영 소설가를 비롯해 이병천 (사)혼불문학 이사장, 성석제 소설가, 류보선 문학평론가, 하성란 소설가 등을 위원으로 구성한 심사위는 당선작에 대해 소설 한 편으로 동학혁명의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낸 하나의 역사서다며 옛 선비들이 즐겨 구사하던 의고체 문장을 차용, 격변기 우국지사의 높은 정신세계와 갈등, 시대적 고민을 밀도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고 호평했다.이광재 씨는 1980년대가 지나고 소설이 개인의 내면이나 미시적 세계에 천착한 글이 많았는데 거시적인 서사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 필요하다고 여겼다며 대개 그런 인물이 활동하는 배경은 역사적 공간이었고 이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이 씨는 이어 우리의 근대가 어떻게 시도좌절되고 현대의 굴절로 이어졌는가를 들여다 봤다고 덧붙였다.이광재 씨는 군산 출신으로 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학생 운동과 사회 운동을 하다 지난 1989년 <녹두꽃>에 단편 소설 아버지와 딸로 등단했다. 소설집 <아버지와 딸>(1992년)과 장편소설 <내 가슴의 청보리밭>(1993년), <폭풍이 지나간 자리>(1994년), 전봉준의 일대기를 그린 평전 <봉준이 온다>(2012년)를 냈다.혼불문학상은 <혼불>을 쓴 고(故) 최명희 작가의 문학혼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1년 전주MBC가 제정했다. 올해는 장편소설 155편을 접수, 12차 예심을 거쳐 5편이 본심에 올랐다. 대상 상금은 5000만 원이며, 수상작의 단행본은 오는 10월 초 출간한다. 수상작은 제1회 최문희 작가의 <난설헌>, 제2회 박정윤 작가의 <프린세스 바리>, 제3회 김대현 작가의 <홍도>, 제4회 박혜영 작가의 <비밀 정원>으로 발행됐다.혼불예술제를 겸한 시상식은 10월8일 진행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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