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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삶을 살면서 난관에 부딪힐 때 명저에서 건져 올린 좋은 문장 하나는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되고, 해답을 알려주는 스승이 되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연인이 된다. 도보여행가이자 문화사학자 신정일씨가 지금껏 읽어온 책들 속 명문장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세종서적).말과 글에는 엄청난 힘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보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한다. 이는 삶의 좌우명이 되기도 하고 평생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가 오로지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 아래 읽은 수만 권의 책 속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명문장들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앙드레 지드,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프란츠 카프카, T.S. 엘리엇, 스피노자, 생텍쥐페리, 연암 박지원,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등 수많은 현인과 작가들의 뛰어난 통찰을 살필 수 있다.그는 “책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앞서간 수많은 사람들도 체험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인생의 지혜를 압축한 문장들을 읽다보면 수십 명의 인생 스승들에게서 인생살이에 대한 참된 충고를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고 말했다.책은 ‘번민으로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냉혹한 세상 속 당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 당신에게’ 등 총 4개 주제로 구성된다. 후회에 발목이 묶여 좌절하는 독자에게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기 때문에 지나간 것으로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유럽 문학의 최대 서사시 ‘일리아스’의 한 대목이다. 작가는 결국 모든 인간의 일생은 자기에 도달하는 과정이고 자기실현의 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10권,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사찰 가는 길>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등 70여권의 책을 냈다.
전주 우석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전창옥 교사가 첫 시집을 냈다. 시집 <서편문(西片門)을 나서다>(전북대학교 출판문화원·건지시인선 1호).시인은 슬픔과 자비를 화두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분노, 불(佛)계의 상상력을 표현한다. ‘동해의 게야/ 기어서 나오라// 검은 파도 뚫고/ 기어서 나오라/ 게야// 네 두려움이/ 바다 속 어둠이고/ 네 목마름이/ 한낮의 백사라면// 저 높은 설악 넘어/ 광화의 큰 문으로/ 게야/ 기어서 가자’( ‘여름, 1980’ 전문)인간 고뇌의 슬픔을 자기 극복으로 이겨내려 하고 때로는 잘못 돌아가는 세상, 우리 자신에게 질타의 목울대를 높이기도 한다. 평소 불심이 깊은 그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사라지고 우주 삼라만상이 하나가 되는 법열의 정신세계도 안내한다. ‘석양이 구름 사이로/ 홍자 빛 화살을 뿌려놓고/ 자운영 가득한 들을 떠나면/ 하늘은 별이 가득한 술상/ 우주는 손안에 촐랑대는/ 작은 술잔 속의 섬/ 손톱만 한 배로 떠있다’( ‘만행’ 중)백령 시인은 해설에서 “가장 빨리 우는 이가 있을 테지만 그는 가장 길게 운다. 술을 먹고 우는 이가 있다지만 그는 멀쩡한 정신으로 술 취한 것처럼 운다. 그렇게 슬퍼하는 이가 있기에 우리 세상의 아픔은 그래도 이만큼 정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전주 출생인 전 시인은 지난 1973년 원호처 학생문예응모전에서 작품 ‘구원’으로 산문부 장원, 연세대 주최 전국학생백일장에서 시 ‘어머니’로 당선됐고, 1976년 단편소설 ‘동그란 시간 속의 시계’를 발표했다.
김성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학에서 공부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좌절하는 제자를 많이 본다. 과거 부진한 성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한 친구들도 있고, 스스로 공부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 공부를 할 여건이 안 된다고 의기소침해 하는 친구도 있다.김 교수가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공부 지침서<둔재의 공부법>(해드림출판사)을 펴냈다. 김 교수는 “현재 공부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과거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며 “학생들이 지금 보다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체득한 공부법들을 이 책에 발전시켜놓았다”고 말했다.책은 그가 체득한 학창시절 공부법,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깨우친 것과 다양한 공부 고수들의 공부법을 보며 느낀 것들을 수록했다. 주로 젊은 시절 사법시험 준비를 하면서 습득한 것들이다. 제자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노하우와 인생의 조언을 담았다.전북대 법과대학과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법학박사)한 김 교수는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전국금속산업 노동조합연맹 법률원 변호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및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행정안전부 공무원노사관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강언덕에 올라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띄웁니다./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약속들을 생각합니다.// 때늦은 회한을/ 응어리로 앓지 않기위해서/ 언젠가는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강언덕에 올라/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신영복 언약강물)전북시인협회(회장 김제김영) 문학기행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강(江)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시인과 전주시민 30여명은 지난 45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 시원인 황지연못을 찾아 강원도 태백으로 떠났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던 지난 1월 작고한 신영복 선생이 남긴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를 화두로 삼았다.기행은 강원도 시인과 그들의 시, 꽃을 주제로 한 시와 시작됐다. 류희옥 시인은 강원지역 시인들의 문학적 원류를 살피기 위해 김영욱 박재연 이홍섭 심재상 김남극 등 강원지역 시인의 시를 집중 조명해 참가자들과 공유했다.이번 문학기행은 강의 시원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야생화와의 만남이기도 했다. 함백산 줄기에 조성된 야생화공원인 만항재에서는 꽃을 소재로 한 시와의 조우가 이뤄졌다. 이세영시인은 괭이밥(김윤현) 풀꽃(나태주) 노랑어리연꽃(문효치) 봄, 가지를 꺾다(박성우) 라일락꽃(도종환) 등 삶과 희망, 상처를 깊이 성찰한 꽃에 관한 시수십여편을 들려줬다.문학기행 정점은 정선의 하이원리조트 야생화 군락지에서 진행된 시낭송. 김용옥 김계식 강신제 왕태삼 시인 등이 강과 꽃 등을 주제로 한 시를 낭송, 깊은 울림을 줬다.조미애 시인은 소박한 강의 발원지와 눈길한번 주지 않아도 꼿꼿한 꽃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시를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월숙 시인도 오래된 것, 흘러간 것들을 마주하는 소박한 기쁨이 있는 기행이었다고 밝혔다.기행에 참가한 시인들은 이번 기행의 감흥을 시로 피워 전북시인협회 협회지인 <시의 땅>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다.
민족통일과 민중해방을 위해 살다간 고(故) 강희남 목사(1920~2009). 고인이 남긴 원고가 7년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강 목사의 자서전 <한 목사의 생애와 사상>(가림토).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초대의장을 맡는 등 1990년대 통일운동을 이끈 대표적 재야운동가로 알려져 있는 강 목사. 그는 지난 2009년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등 당시 시국을 비관해 단식을 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책은 강 목사가 단식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일대기를 정리한 200자 원고지 40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다.자서전을 내겠다던 그의 염원을 따라 제자들 사이에서 책을 출간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이견으로 원고 정리가 늦어졌고, 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초 발간위원회(위원장 고민영)를 꾸려졌다. 약 1년 간 본격적으로 준비한 끝에 7주기 추도식에 맞춰 자서전이 나오게 됐다.고민영 위원장은 여전히 남북한 당국자들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민중들은 정치적 압박, 경제적 빈곤, 사회적 차별에 고통 받고 있는 시대다며 강 목사의 생애와 사상과 실천을 후세에 전하고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기에 추모집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책은 강 목사의 생애부터 옥중생활, 애국, 통일 운동 등 4가지 주제로 분류해 삶의 궤적을 기록했다. 가능한 한 원문을 최대한 살렸고, 다른 글을 더하거나 빼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소 어렵고 난해했던 다른 저서들에 비해 글이 쉽고 명료하다. 특히 그동안 통일운동가로만 알려져 있던 것과 달리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부분들을 조명했다. 자신을 객관화해 표현한 것도 특징이다.그의 인생과 그의 대인관계 부분에서는 신학에 들어서게 된 계기, 군산 김제 전주 등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등과 윤보선 전 대통령,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은명기 목사와의 인연을 엮었다. 고인은 자신에 대해 권력자는 그의 안중에 없다 꼿꼿함 원칙주의자 라고 평하며 억압에 짓눌리지 않는 신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도에 빗나간 정치, 잘못된 사대예속주의는 비판하고 민중의 동향과 저항, 희생은 기록했다. 반통일 세력 속에서 전개한 통일운동 그리고 그 속의 애환, 범민련 해체론 등도 서술해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고 민족본질의 몸으로 마주할 것을 피력한다.흰돌 강희남 목사의 7주기 추모식과 유고집 출판기념회는 오는 5일 오후 5시 전주 노블레스웨딩홀(옛 진북동 MBC)에서 열린다.
김태자 전주대 명예교수가 시조집 <들풀처럼>(시조문학사)를 펴냈다. 지난 1990년 동양문학 수필 신인상 수상,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4년 제22회 한국시조문학상 수상, 2014년 제9회 세계문학상 시조 본상 수상 등을 한 그는 30여 년간 시조를 놓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 활동과 연구를 해왔다. 지난 2010년 시조집 <꿈 한 줌 안고 살다> 출간 후 6년 만에 낸 시조집 <들풀처럼>은 그동안 꾸준히 작업한 시조 150여 편을 수록하고 있다. ‘새까맣게 탄 들판에/ 여린 풀잎 뾰족뾰족// 폐허의 빈자리에 경이로운 새 생명// 아무런 기대도 없던/ 들꽃들로 피어나길.( ‘들풀처럼’중)’그는 “살면서 화도 나고 괴롭고 슬프고 미쳐버릴 것 같은 일들이 생길 때 나를 다스리고 안착시킬 수 있는 시조를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며 “남들 하는 것의 중간 정도로 작은 일에도 만족하고 들풀처럼 일어나면서 생명력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효는 우주보다 귀한 생명을 주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원불교는 효의 근본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원불교가 말하고자 하는 효의 연구서를 조정현 교무(법명 법현(法玄))가 10년 연구 끝에 발간해 화제다.조 교무는 “효는 부모가 자식을 잉태해 낳아서 기르면서 자식에게 부여한 절대적 사랑과 헌신에서부터 시작돼 최초의 인연관계인 부모와 자식 간에 형성된 은혜의 소산이다”며 “이게 원불교가 말하는 효”라고 결론지었다.원불교의 효 사상에 대한 진리를 연구해 10년 만에 발간한 그의 ‘원불교 효사상 연구’라는 저서에는 사례별·종교별 효에 대한 분석도 깊이 있게 담겼다.효의 본질과 동·서양 종교의 효사상을 분석한 부분에서는 종교별로 바라보는 효의 근원과 본질을 심층 분석하며 모든 종교가 바라보는 효의 동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조 교무는 “원불교 효사상의 본질은 은적 생명성 구현과 공경, 불공의 조화, 심신 낙원의 지향, 영생 보은의 실현 등이다”며 “모든 종교와 사상이 효를 논하면서 일반적으로 행위 자체를 보고 효도와 불효, 보은과 배은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특히 원불교의 효사상을 현대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원불교 효사상의 현대적 실천과 구현을 위해 고령사회의 문제와 다문화 사회에 대한 대처 방안, 인성교육의 문제 등을 조명한 부분은 이채롭기까지 하다.더욱이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과 정산, 대산으로 이어지는 원불교의 효사상을 최초로 역사적 측면에서 고찰하면서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 가능성을 열어둔 분석은 원불교 개교 100년의 의미를 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조 교무는 “소태산에 의해 구체화된 원불교 효사상은 정산과 대산에 의해 신앙적으로 뿌리가 내려졌다”며 “그 뿌리를 찾아 현재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이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부모 부양문제, 노인자살문제, 노인빈곤문제 등 이른바 노인 4고(苦)를 포함한 고령사회의 문제와 국가적 난제를 원불교 효사상 연구의 인지와 다각적 실천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조 교무의 저서에 대해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최성규 총장은 “원불교 효사상이라는 최초의 연구 서적은 원불교뿐만 아니라 세계 종교사에 큰 족적이 아닐 수 없다”며 “한국에서 시작된 원불교의 효사상은 국제 효학계에도 매우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서울대 박찬구 교수도 “한국의 효문화를 다시 바로 세우는데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과 도덕문화 발전에 동력인 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추천의 글을 남겼다.한편, 원광효도마을 효도의 집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조 교무는 원광대와 원광대대학원을 졸업하고 원불교 미국 오렌지카운티 교당 교무와 한국효도회 이사, 성산효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효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향집을 떠나 대도시로 유학온 소년이 낯선 도시에서 처음 배운 것은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는 법이었다. 붉고 푸른 불꽃은 궁핍한 자취생에게 밥이 되었고 집이 되었다. 눈 오는 날, 자취방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무사히 갈 수 있었던 것도, 신춘문예 열병에 시달릴때 그를 위로한 것도 연탄의 온기였다. 안도현(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와 ‘연탄 한장’, ‘겨울밤의 시 쓰기’등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안 시인이 산문집을 묶었다. <그런 일>(삼인). 직업이라고 믿었던 ‘시 쓰기’를 멈춘 지 3년여. “시 한 편 쓰지 않고 천 그릇도 넘게 밥을 먹었다”는 시인은 “ ‘마감’이 없는 저녁은 호사롭고 쓸쓸하였다. 이러다 시가 영영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의 무게는 헤아리기 어렵다. 하룻밤에 백 편이라도 시를 꺼낼 것 같고 또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래 뒤척인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비유마저 덧없는, 참담한 광기의 시절’을 견디고 있는 시인은 시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또다른 형태의 글쓰기로 돌려놓았다. <그런 일>은 그가 14년 동안 쓴 글을 모으고, 버리고, 꿰매고, 다듬어 내놓은 것이다. 시심의 근원인 고향 경북 예천에서 “내성천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한 마리의 어린 물고기”가 시인의 꿈을 키우다 전교조 해직교사가 되고 전업작가가 되었다가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시인의 성장담이자 문학여정이다. 수많은 변주로 등장하는 고향과 문학청년시절의 고민, 시작노트, 서평, 교우관계까지 작품의 근원과 맥락을 내밀하게 보여준다. 등단시 ‘낙동강’(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의 실체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며,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연탄은 외로웠던 대구 유학시절의 애환을,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당대를 사는 시인으로서 세상에 빚을 갚는 일이었다. 글의 대부분은 이렇게 시를 그리워한다. 시인에게 시를 읽고 쓰는 것은 이 세상과 연애하는 일이다. 따라서 “시간을 녹여 쓴 흔적이 없는 시, 시간의 숙성을 견디지 못한 시, 말 하나에 목숨을 걸지 않은 시”는 신뢰하지 않는다. “한 줄 한줄이 전전긍긍이었으므로 이 산문들은 그 흔적들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지금, 이곳에, 나로 있게 해준 말들 앞에 옷깃을 여민다.” 시를 쓰지 않는 이 시간, 더 치열하게 시를 숙성시키고 있는 시인의 산문집은 친절한 시학강연이자 수십편의 문학강연이다. ·
제2회 한국시낭송포럼-동서공감이 오는 4일 오후 7시 전주한옥마을 내 소리문화관에서 개최된다.이번 행사는 시낭송과 춤, 연주, 성악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자리로 전북지역을 비롯한 서울, 대구, 경북지역 시인들이 참여해 각자가 선택한 시를 낭송한다.영호남 시인들이 상호간의 작품을 낭송함으로써 지역과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정서적 공감으로 극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또한 시낭송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정서함양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도 있다.대구의 이기철 시인과 남원의 복효근 시인, 전주의 이소애 시인 등 경북대구전북을 대표하는 시인들과 영호남, 서울지역의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참석한다. 주성용 무용가, 정수희 소프라노, 김민영 소리꾼의 특별 무대도 볼 수 있다.행사는 전북재능시낭송협회(회장 류명희)가 주최주관하고 전라북도, 전주시, (사)전주문인협회(회장 이소애)가 후원한다.류명희 회장은 시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멀리서 오시는 시인과 시와 시낭송을 사랑하는 분들께 감사하다며시낭송 문화를 통해 화합, 소통하는 시낭송 공감마당이 들불처럼 번져 곳곳에서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지 두 달이 지났다. 어머니는 입맛이 통 없다며 식사를 거의 못하고 기운이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안사람이 어머니를 부축하고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서 아파트단지 어린이놀이터에 갔을 때였다.한대희는 어머니 방에 들어가서 이부자리를 개려고 하다가 요 밑에 놓여있는 한 통의 빛바랜 편지를 발견했다. 정승철 교장이 어머니 희수를 축하하는 편지였다.처음에 희수 축하 인사말로 시작된 편지는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젊은 시절이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닌, 오묘한 인연의 끈으로 엮어진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제시대를 꿋꿋하게 버텨온 힘의 원천도 어머니에게서 느낀 첫사랑에 있었다고 술회했다.열여덟 살 때 피렌체 거리에서 만난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전주에서 만난 우리는 영원한 사랑의 열매를 거두었다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어머니 말대로 교장선생은 글재주가 있었다. 노래도 잘 부르고 풍금연주도 수준급이었다. 다재다능했다. 대희는 교장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새로워졌다.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 지어졌다.최 여사! 최 여사는 영혼불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학은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고 철학은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물론 실증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육신이 죽으면 사람의 정신적인 기능을 담당했던 영혼도 사라진다고 봐야겠지요. 철학 쪽에서는 저 그리스의 플라톤 이래 영혼불멸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논리적으로 흡족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종교 편에 서 있습니다. 영혼불멸이라고. 육체는 한 줌의 재로 땅에 묻히더라도 영혼은 영원히 하늘에 살아있다고.설사 과학이 사실적으로는 맞다 하더라도 현생 삶의 가치와 행복, 죽은 다음의 축복을 기도하고 추구하는 종교에서는 당연히 영혼불멸이라고 믿어야겠지요. 그런 신앙 속에서 우리들의 삶이 한결 순화될 수 있고 숭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최 여사! 저는 우리들의 사랑을 불멸의 것으로 승화시키려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저승으로 간 다음에도 그렇게 하렵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여생을 고결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고, 저 세상에 가서도 천상의 복락을 누릴 것입니다.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고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저에게 주신 최 여사에게 다시 감사드리며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1995년 3월 11일 정승철 올림한대희는 감격해 눈물이 글썽해졌다.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소원하셨던 대로 전주에서 가까운 데에 수목장으로 모셨다. 한대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주에 한 번씩은 어머니를 찾아 문안을 드렸다.크롬과 비소 화합물로 방부 처리한 오동나무로 만든 상자에 교장선생님의 편지를 담아 어머니의 유골함 옆에 나란히 묻었다. 두 분의 사랑이 영원히 불멸하기를 기원하면서.해가 바뀌었다. 시끄러운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개각이 임박했다고 언론이 연일 보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대희는 아들 정욱이 장관 후보로 내정됐다는 TV뉴스를 들었다. 뛸 듯이 기뻤다.어머니 묘소를 찾아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렸다.어머니, 어머니 손자가 장관 후보로 내정됐답니다.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마음 놓으세요. 이제 저 혼자만이 아는 이야기, 제가 그 비밀을 영원히 지킬 것을 굳게 약속드립니다.한대희는 어머니와 두 분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마음이 그렇게 가볍고 즐거울 수 없었다.〈 끝 〉 - 장성원※작자 후기: 톨스토이는 그의 친구이며 저명한 법률가인 코니로부터 들은 이 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명작 부활을 썼다.이 단편은, 아일랜드를 함께 여행하면서 내 친구 정평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쓴 소품임을 밝힌다. 정평에게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 졸작 밖에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5년 8월 23일
제20회 전북 고교생 백일장에서 이예슬(전주솔내고 3년)김유림(군산여자상업고 1년) 양이 각각 운문과 산문 부문 장원(장학금 100만원)을 차지했다.목정문화재단(이사장 김홍식)과 전북작가회의(회장 김병용)전북문인협회(회장 안도)가 전라북도교육청의 후원으로 마련한 제20회 전북 고교생 백일장이 지난 28일 전북대 인문대학에서 열렸다. 올해는 전북지역 35개 고교에서 512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글제는 밥상 들 빨래였다.전북작가회의와 전북문인협회 소속 문인 40명의 심사 결과, 차상인 윤주영(전주제일고 3년)김도희(전주기전여고 3년)김예지(유일여고 2년)백소희(전주여고 2년) 학생을 비롯해 모두 30명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00만원 상당의 도서가 지원되는 우수학교상은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와 전북여자고등학교가 선정됐다.
정승철 교장이 별세한 지 2년 가까이 흘렀다. 하루는 어머니 최찬옥이 아들 한 대희를 조용히 불렀다. 넓은 아파트에는 모자 밖에 없었다. 며느리는 친구들과 어울려 해외 패키지여행을 떠나고 없었다.어머니는 오늘따라 곱게 차려 입었다. 아들이 어머니 미수 때 해드린 옥색치마에 연분홍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어머니는 96세의 극 노인이지만 아직도 살결에 주름이 적고 치매기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기품이 있었다.임 서방 댁이 해준다고 하지만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만 못하구나. 요즘 입맛이 없네.임 서방 댁은 한 대희의 누이동생이다. 같은 아파트단지 안에 살고 있어 올케가 여행간 사이 아침 저녁으로 들려 친정어머니 밥상을 차려드리고 있었다.임 서방 댁도 음식을 잘 하는데요. 밥맛이 없으셔도 일부러라도 많이 잡수세요. 한 대희는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됐다.한 의원! 어머니가 어조를 바꾸었다. 어머니는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아들이라도 존칭을 쓰곤 했다. 한 대희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어머니가 저런 차림새로 존칭을 쓰며 무겁게 말문을 여는 것을 보고 한 대희는 유언 같은 말씀을 하려고 하나 그런 예감이 들었다.예, 어머니 말씀하세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내가 몇 가지 당부할 게 있어서꼭 그렇게 지켜주어야 해. 예감대로 유언을 말씀하실 모양이었다.예에 약속드리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한 대희는 긴장됐다.내가 항상 말한 대로 인덕을 가지고 집안을 다스려야 해. 덕불고라고 하지. 사람은 신의가 있어야 하고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해.오늘은 평소에 말씀하시던 덕문에서 살면 궁궐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복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은 만석꾼 못지않게 부자다.는 비유는 안하셨지만 덕성과 신의, 이것은 어머니가 가르쳐온 가훈이었다. 한 대희도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다.정욱이 내외도 잘 가르치고 정욱(正旭)은 한대희의 아들로 중앙에서 고위직 공무원으로 있다.예, 어머니 손자가 아들보다 더 반듯합니다. 마음을 놓으세요.한대희는 어머니가 저렇게 강조하시는 인의를 유훈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말할 것을 미리 정리한 듯 차분하게 당부를 이어 나갔다.내가 죽거들랑 다소 긴장의 끈을 풀었던 한 대희가 다시 귀를 세웠다.내가 죽거들랑 화장해서 수목장으로 해주어. 수목장이 깨끗하고 좋아 보이더라고.아버지 곁으로 가셔야지요. 그렇게 모시려고 하는데요.싫다. 정읍 선산은 멀고, 너와 정욱이가 자주 찾아올 수 있는 가까운 데 수목장으로 해주어.어머니 뜻대로 하겠습니다.어머니는 안도하는 듯 긴 숨을 쉬고는 벽에 걸린 대형 가족사진을 한참 쳐다보았다.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한 의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듣고 어미를 너무 탓하지 말고 마음 아파하지 말아라. 내가 저승으로 갈 마당에 지금 나 혼자 알고 있는 비밀을 너에게만 털어놓으니한 의원은 이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한대희는 신경이 곤두섰다. 아버지와의 비밀? 정 교장선생과의 로맨스? 숨겨놓은 재산?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침착하게 어머니의 비밀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그럼요. 걱정하지 마시고 모두 말씀하세요. 제가 어머니 앞에서 약속합니다.어머니의 안면과 입가 근육이 실룩거리고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머뭇머뭇 하다가 결심한 듯 입술에 힘을 준 뒤 말했다.사실은사실은 네가 너의 아버지 아들이 아니고 교장선생의 핏줄이다. 한 씨가 아니고 정가다.옛 ? 한대희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쉿! 어머니는 아들의 외마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입을 다물라고 둘 째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한대희는 청천벽력 같은 이 폭탄선언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 말문이 막혀버렸다.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이 말에 머리가 한동안 띵했다.어머니, 뭐라고 하셨어요? 대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아들이 놀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묻어버려도 될 일을 내가 괜히 입 밖에 내 너를 괴롭게 만드는구나. 내가 망령이 든 게지.한대희는 연신 한숨을 짓고 있는 어머니의 침울해진 노안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죄스럽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희는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했다.어머니는 과거사를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지금도 교장선생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한 의원이 이 어미를 이해해 주면 고맙겠네.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들은 어머니의 지난날들에 대한 이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처음 알고 난 다음의 충격, 이런 것들이 함께 북받쳐 흐느꼈다.그러지 말래도. 어머니가 달랬다.얼마 후 평생 처음 흘리는 눈물을 훔치면서 아들이 말했다.어머니, 잘 알았습니다. 말씀 잘하셨어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저 혼자 알고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평정을 되찾은 후 모자는 대화를 계속했다. 한대희가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교장선생님도 이 사실을 생전에 알고 계셨나요?알고 있었지. 네 아버지 너 열두 살 때 세상을 뜨신 다음에는 나 혼자 큰 집 살림 꾸려 나가고 너희 남매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그러다가어머니의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그러다가 네가 고등고시 합격한 직후 어머니가 울먹여 말이 또 끊겼다가 잠시 후 계속됐다.합격한 직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교장선생을 20여 년 만에 만나 대희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털어놓았지. 이 사실을 둘이서만 알고 있기로 약속하고. 그 양반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이제 수수께끼가 풀렸다. 교장선생이 왜 대희에게 친조카같이 혈육같이 대해주었는지, 내가 죽으면 한 의원과 한 의원 어머님께 꼭 알려드려라고 유언처럼 말했는지.어머니, 그러면 임 서방 댁도 교장선생님 혈육인가요?아니다. 게는 한가다. 너를 낳고 8년이 지나 우연찮게 임신해서 걔를 낳았지. 조물주의 조화란 정말 모를 일이더라. 정말 모를 일이야. 그런데 씨가 같은 남매보다 배가 같은 남매가 더 낫지 않으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어머니의 이 말에 대희는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내가 한가면 어떻고, 정가면 어떠냐?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자식인데임 서방 댁이 한가면 어떻고 정가면 어떠냐?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같은 자식인데.한대희는 모든 일을 대범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가슴이 후련했다. 〈계속〉장성원
5월 중순 어느 날 찬옥이 새벽잠을 자다가 신령스러운 꿈을 꾸었다. 신불의 계시가 있다고 믿어지는 영몽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금빛 찬란한 용이 나타나 자기 등에 타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찬옥을 등에 태우고 훨훨 날아다니는 꿈이었다.찬옥은 시조모와 시모의 소원으로 그렇게 신령이 현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틀이 지나 시조모가 소망한 대로 불공을 드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토요일 오후였다.불공드리러 가는 절에 가려면 금구를 거쳐야했다. 모처럼 탄 버스의 차창 밖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팔락이며 푸르러 가는 계절의 변조를 보면서 찬옥의 울적한 마음이 한결 싱그러워졌다. 버스가 한참 달려 교사시절 정승철과 함께 방문했던 순덕이 집이 있는 마을을 지나쳤다. 불현듯이 교사시절이 머리 가득히 떠올라 눈앞을 스쳤다. 정승철은 건강하게 지내는지, 테라다 교장 뒷 소식은 있는지, 순덕이는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는지, 담임했던 1학년 아이들은생각할수록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특히 정승철이 보고 싶었다. 2년 전 학교를 그만둔 후 결혼하기 전에 전주우체국 앞거리에서 우연히 한번 만나기는 했으나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적이 있었다.찬옥은 승철을 만나보기 위해 금구에서 내렸다. 토요일 오후교정에서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몇 몇 아이들이 놀고 있을 뿐 한적했다. 한 아이가 정승철 선생이 아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일러주었다.찬옥은 정승철의 자취집을 찾아갔다. 승철에게 가지고 있었던 꺼지지 않은 연모의 정이 되살아나 찬옥의 발길을 불공드리러 가는 길에서 승철의 자취집으로 돌리게 한 것이다. 마침 승철이 집에 있었다. 승철은 깜짝 놀라며 반겼다. 마치 옛날 연인을 다시 만난 듯, 절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승철은 스스럼이 없었다. 정감이 넘치게 말했다. 서로 속을 알고, 서로 신뢰하고, 함께 고민했던 사이가 상당기간 공백을 거쳐 더욱 친밀해진 것일까. 부드럽고 화창한 바람과 햇볕 속에 새잎과 새 꽃이 피어나는 학교 앞산 소나무 숲을 둘이서 거닐었다. 소나무 향을 듬뿍 마셨다. 폐부와 전신이 청신해지는 기분이었다.승철은 멀리 멀리 걷고 싶었다. 승철은 자기가 지어 찬옥에게 주려했던 시 꽃신이 떠올랐다.별들이 오가는 저 하늘 길을 / 둘이서 멀리 멀리 걸어갑니다.꽃신을 가슴에 안고 싶었던 꿈이 이루어 진 듯 승철은 고무되고 환희에 벅차 있었다. 찬옥은, 테라다 교장이 전보된 학교에서 1년 있다가 역시 학무당국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 군산 어느 일본인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이야기, 오노다는 승진해 다른 학교로 갔고 순덕이는 지금 6학년 재학 중이라는 소식 등을 들었다.승철은 2~3년 전과 비교해 지금 일제의 탄압과 협박이 더욱 노골적으로 거세어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소위 황국신민이니 내선일체니 슬로건을 내걸고 관헌을 동원,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있어 견디기 어렵다고 호소했다.개명 시한이 오는 8월까집니다. 3개월 안에 개명하지 않으면 학교를 떠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찬옥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딱했다.침묵이 흘렀다. 찬옥이 화제를 돌려 다소 엉뚱하지만 그 용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기쁜 소식을 들은 듯 승철이 바로 말을 받았다.정말로 상서로운 꿈입니다. 경사가 있을 모양입니다.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고 해몽을 하는 승철의 얼굴빛이 다시 밝아졌다.산등성이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이 끝나면 해발 488미터의 구성산 산봉우리가 보이고 거기서부터는 잡목 숲이다. 잡목 숲길은 계곡으로 내려가도록 연결돼 있다. 소나무 숲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지만 잡목 숲길은 한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오솔길이다.두 사람은 계곡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승철이 앞장섰다. 비탈이 심한 데서는 승철이 손을 내밀었고 찬옥이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러나 길의 마지막에 이르러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찬옥을 승철이 껴안으려 했지만 찬옥은 몸을 돌렸다. 언짢아하거나 수줍어 하지는 않았다.신록의 나뭇가지들이 투영된 계곡물은 머리가 차가와지도록 맑았다. 순백색 담홍색 회색 화강암 조약돌들이 물속에서 구슬처럼 광택을 내고 있었다.며칠 전에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진 계곡물은 하얀 포말을 뿌리며 콸콸 흘러내렸다. 호반새들이 삐요오, 삐요오 울어 계곡의 깊은 정적을 깨곤 했다.승철이 먼저 바지를 걷어붙이고 개울에 발을 담갔다. 가재를 잡기 시작했다. 찬옥이 바로 뒤따랐다. 돌을 뒤칠 때마다 크고 작은 가재들이 뒷걸음질 치면서 재빨리 달아나는 것을 보고 찬옥은 신기해했다. 이들 앙증스런 생명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찬옥은 새삼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심을 가졌다.승철이 물장난을 걸었다. 가재 잡이에 열중하고 있는 찬옥의 얼굴에 한 움큼 물을 뿌렸다. 찬옥의 연꽃 빛 얼굴에 떨어진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보석보다 더 아름다웠다.반격에 나선 찬옥은 승철이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승철의 위아래 옷들이 반쯤 젖도록 물을 뿌려댔다. 승철을 쫓아다니는 찬옥의 하얀 장딴지가 투명한 물속에서 더욱 희게 보였다. 승철은 어린애처럼 웃으며 도망 다녔다. 승철의 물에 젖은 모습을 보고 찬옥은 파안대소했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순수한 첫사랑을 느낀 처녀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해 보였다.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구성산 서쪽 등성이를 넘어갔다. 계곡에는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개울가에 나란히 앉아 현제명 선생을 모셨던 음악회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찬옥이 나직이 그 집 앞을 불렀다. 다음에는 승철이 이어받아 번갈아 노래 부르기를 몇 차례 했다. 어떤 가곡은 합창했다. 노래가 끝나자 계곡물소리만 들릴 뿐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때 갑자기 뒤쪽 덤불숲에서 노루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찬옥 옆을 바짝 스치면서 개울을 건너 뛰어 저쪽 숲속으로 사라졌다.찬옥은 소스라치게 놀라 자기도 모르게 승철의 가슴 안으로 몸을 파묻었다. 몸을 다시 빼려고 했을 때 승철의 팔이 찬옥의 몸을 꼼짝 못하게 껴안았다. 승철의 입술이 뜨겁게 찬옥의 입술을 엄습했다. 눕혀있는 찬옥의 얼굴 위로 이목구비가 굵고 뚜렷한 승철의 얼굴이 숨 막히게 다가서 찬옥의 시야를 가렸다. 찬옥은 눈을 감았다. 찬옥은 심신을 승철에게 맡겼다.하늘에 샛별이 떠 반짝였다. 〈계속〉장성원
시인들은 시를 생산만 해내고, 읽고 즐기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며 관여하지 않을 때, 시문학과 대중들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 거리를 단축하고 시문학이 환영 받을 지름길을 낼 수는 없을까?(시 해설집<시의 지문> 중)시를 진맥해 시의 지문을 제대로 그릴 수 있도록, 마침내 시가 대중들의 맛깔스런 안주거리가 되거나 씹어도 비리지 않은 화젯거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 세계를 탐구했다.이동희(70) 시인이 시집<차가운 그림 문자>(도서출판 달샘), 시 해설집<시의 지문 1,2>, 평론집<시를 읽는 몇 가지 방법>(흐름 출판사)등 무려 4권을 출간했다.그는 문학이, 시문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혹은 우리 시대에 어떻게 기능하는 것일까?를 줄곧 화두로 붙들어 왔다. 나의 시는 내 시론의 그릇이요, 나의 시론은 내 시의 원형이다고 밝힌 그는 원형이라는 정신이 그릇이라는 형태에 담겨 나의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시를 쓰는 행위나 감상하는 행위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다고 강조한다.오롯이 자신의 작품세계에 빠져 만든 시집<차가운 그림 문자>는 농밀한 문학적 탐구와 사유, 구미를 당기는 재치와 풍자가 짙다. 다양한 글감의 작품을 몸시 말시 책시 돈시로 묶었다. 시집의 표제작인 차가운 그림문자는 대로에 스프레이로 표시된 사고현장을 그린 것으로 삶의 무상함을 읊으면서도 불교 연기(緣起)론에 입각한 생명 현상을 표현했다. 그의 독창적인 시각과 상상력이 온전히 전이된다.시 해설집<시의 지문 1,2>는 도내 일간지에서 우리 시조와 현대시에 해석과 사유를 덧붙인 것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이다. 시작품들이 지녔음직한 근원적인 의미와 아름다움의 한 축을, 혹은 전체를 붙잡고 삶의 의미를 풀어냈다.그는 시를 읽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고,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들이 생산하는 작품 마다 차별적인 형식미를 담고 있어 하나의 독서법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평론집 <시를 읽는 몇 가지 방법>에는 그가 평소 견지하고 있는 평론관을 적용해 열두 가지의 시독법을 제시했다. 영안(靈眼)으로 현상이 아닌 본질을 바라보는 것,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는 것, 시 저변의 그리움을 읽는 것 등이다.전주 출생으로 1985년 시전문지<심상(心象)>으로 등단, 전북시인협회 초대회장, 표현문학회 전북문인협회 전주풍물시동인회 심상시인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유연문예교실 부안문예창작반 전북문예교실에서 창작 실기지도를 하고 있다.
전선숙씨가 아련하게 스쳐간 지난날 기억을 모아 첫 수필집 <시간이 스쳐간 자리>(도서출판 북 매니저)를 냈다.그는 “처음 강의를 들을 때는 보고 느낀 점을 생각나는 대로 물 흐르듯이 쓰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면 될 줄 알았지만 그것은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사람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자극을 통해 감동을 의미화하고 형상화해야 한다는 작문 교수님의 조언을 가슴에 품고 다시 펜을 잡았다”고 말했다.글감에 따라 소중한 가족, 자신의 삶, 사회에 대한 단상, 문득 생각나는 추억,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 삶의 질곡, 문학기행 등으로 나눠 삶의 흔적을 따라간다. 임실 출생으로 지난 2012년 종합문예지<대한문학> 수필부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 문학회, 한국 미래문학회,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유산에 천착해온 이종근 새전북신문 부국장이 <이 땅의 다리산책>에 이은 <한국의 다리 풍경>(채륜서)을 펴냈다. 이 책은 방일영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출간한 것으로, 다리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민속, 회화, 문학 등을 통시적으로 관찰하면서도 저자만의 새로운 시각을 담아냈다.저자는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고색창연한 건물에 주목하느라 풍경과 풍경을 이어주는 다리를 방관했다”면서 풍경에 무젖다가 돌아나올 즈음에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삶의 이편으로 데려다 주는 다리이야기를 풀어놓았다.책에 소개된 다리는 강원·경기·서울·경상·충청·전라도 등 전국의 20여곳. 10여년 넘게 현장답사를 통해 만난 문화와 역사를 머금고 있는 곳을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풀어냈다. 책 말미에 더하는 이야기로, 궁궐의 다리와 한국전쟁이 남긴다리, 놀이·축제와 관련된 다리,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놓인 다리를 소개했다. 저자는 이 책 내용의 80%가 처음으로 소개되거나 저자만의 해석과 느낌이 더해졌다고 밝혔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역사와 신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곳저곳 아롱다롱 매달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사)전북작가회의(회장 김병용) 월례문학토론회가 27일 오후 7시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다.대상 작품은 최근 발간된 이병초 시인의 시집 <까치 독사>와 서철원 소설가의 장편소설 <왕의 초상>.정동철 시인이 시집 <까치독사>에 대해 발제하며, 신귀백 영화평론가가 <왕의 초상>에 대해 서평한다.또한 토론회에서는 이병초 서철원작가와의 대화도 진행되며, 문인과 시민들의 시와 소설낭송 등도 이어진다.월례문학토론회는 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 2만원. 문의 275-2266.
내가 가는 것은/ 내 목소리를 찾아내/ 뜨겁게 듣고 싶은 것이다/ 나 보다 성장한/ 푸른 나를 보고 싶은 것이다.( 서시중)전병윤(81) 시인에게 시 세계는 가도 또 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장미꽃이 보일 듯 먼 길, 깊은 산 높은 바다를 건너는 고독한 길을 멈춤 없이 달려왔건만 시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하다. 그 갈망을 담아 네 번째 시집 <무뇌(無腦)>(도서출판 북매니저)를 냈다.간월암, 채석강, 무녀도, 전쟁기념관, 오렌지, 빈대, 한옥마을과 다람쥐 등 일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주제로 하지만 현상을 넘어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땅콩회항, 부러진 화살 등 사회문제도 다루며 보이지 않는 힘의 부조리를 드러낸다.별에도 달에도 없는 모자 전관예우,/물길을 트기도 막을 수도 있는 감투/참으로 큰 이빨들이 깨끗도 하겠다//올챙이는 몸보다 꼬리가 더 큰 법/어느 날 꼬리를 감쪽같이 감추고/개고리 되고나더니 두꺼비도 되겠다.( 관피아 중)관료와 마피아가 결합된 말, 관피아. 관료들의 이익 카르텔을 엉뚱하지만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동희 시인은 그의 시에 대해 글자 수와 행 갈음 같은 조건들에 간섭받는 시조 형식의 작품임에도 매우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며 아주 냉소적이지 않으면서도 비판적으로 닫힌 정의감과 양심의 안목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진안 출생인 그는 진안군, 김제군 등 8개 군 농촌지도소장을 지냈다. 지난 1996년 <문예사조>신인상으로 등단해 열린시문학회장, 진안문협 초대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공직 퇴직후 초등학교 배움터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우 수필가가 문집 <서문초2 이야기 제7학년>(신아출판사)을 펴냈다. 이씨가 서문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9년. 당시 서문초등학교 전교생은 1300여명에 달했는데 현재는 550명으로, 절반수준으로 감소했다. 게다가 아동학대까지 늘어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7년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눈 이야기와 감성을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아이들의 생각이나 말을 무시하며 큰소리를 치는 어른들에게 순수하고 맑은 어린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문집에는 동시와 동요, 그리고 짧은 글이 수록됐다. 작가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느낀 감성과 감동, 교훈이 담겼다. 때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밤잠을 설쳤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 더 큰 조바심은/ 지각대장이 늦을까봐/ “한 사람이라도 늦은면 출발은 못한다”/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1학기 내내 지각한 대장 때문에/ …’( ‘수학여행’ 중)이 작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며 “서문초등학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기를 바란다”고 후기에 밝혔다.한국아동문학회 전북지회 부회장, 경찰문인협회 부회장, 전주YMCA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수필집과 콩트집 어린이 교양서 등을 냈다. 전북수필문학상 확의문화예술상 아동학부문 본상 등을 수상했다.
자기를 매섭게 쏘아보던 오노다의 뱁새눈만 보지 않아도 찬옥은 살 것 같았다. 봄이 오고, 봄이 가는 사이 찬옥은 자유와 여유를 마음껏 즐겼다. 그것도 잠시. 꼭두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습준비를 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자니 벌써 권태롭고 따분하기 시작했다.어머니는 잘 됐다는 기색이었다.어서 혼처를 정해 시집을 가야한다고 며칠 건너 독촉이 성화같았다.하루는 찬옥이 슬며시 어머니의 의중을 떠보았다.정승철이 어때요?뭐! 정승철이! 그 가정교사 했던 사람 말이냐?예상했던 대로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겪어보니 장래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설득해보려 했으나 어머니는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고개를 돌려버렸다.혼사란 두 집안이 엇비슷해야 좋은 것이라고 딸을 타일렀다.찬옥에게는 전통적인 명문의 관습을 애써 깨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다.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초여름 들어 중신아비가 들랑거렸다. 전주에서 이름난 집안의 일등 규수를 최고의 신랑감에게 중매하겠다고 입담 좋게 떠들어댔다. 찬옥은 누가 봐도 최상의 신부 감이었다. 집안도 집안이려니와 맵시가 우아한 달걀형 미인이었고 덕성스러웠다. 다소곳하고 온화했다.드디어 중신아비가 혼처를 한 군데 소개했다. 만석꾼 집안에 동경유학생이라고 자랑했다. 여름방학 때 전주에 오니 맞선을 보고 마음에 들면 해를 넘기지 말고 혼례를 올리라고 서둘렀다.양가 어머니들과 중신아비가 동석한 가운데 한경의(韓景懿)와 맞선을 봤다. 헌헌장부는 아니었으나 부잣집에서 고생 않고 자란 귀골이었다. 얼굴색은 깨끗하고 맑았으나 해쓱한 빛을 띠고 있었다. 찬옥과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스물여섯. 말수가 적고 조용히 들으면서 가볍게 웃는 편안한 사람이었다. 진실성은 있으나 적극성은 없어 보였다.찬옥의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았으나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의견도 찬옥과 같았다. 아버지는 여유를 가지고 다른 데도 알아보라며 정혼을 유보했다.그러나 한 씨 댁에서는 어머니는 물론이고 한경의도 만족해한다면서 조모께서 어서 손부 보기를 고대하니 이른 시일 안에 약혼식을 갖고 혼례 날짜를 정하자는 전갈이 왔다.찬옥의 어머니는 이만한 신랑감도 흔치 않겠다 싶어 찬옥과 남편에게 혼처를 정하자고 재촉했다. 그렇게 해서 한경의와 최찬옥은 그해 10월 부부의 가연을 맺게 됐다. 신혼여행은 동래온천으로 갔다. 첫날밤은 통과의례를 치루 듯 덤덤하게 보냈다. 신랑은 인상이 그렇듯 정력적이거나 쾌활한 사람은 아니었다.여행 3일째 되는 날 오후 둘이서 금정산 기슭을 거닐다가 한담을 나누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경의가 찬옥 씨, 나는 아나키스트입니다.아나키스트, 찬옥은 처음 듣는 말이다.아나키스트가 뭐예요? 처음 듣는 말 이예요.번역이 잘못된 감이 있지만 무정부주의라는 것 있잖아요. 무정부주의자라는 얘기지요.무정부주의라면 정부를 타도하고 관청들을 파괴하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테러행위로 알고 있는 찬옥은 섬쩍지근했다.아니 저렇게 귀골로 생긴 부잣집 종손이 어떻게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는가? 찬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경의의 말이 이어졌다. 아나키즘이란 권력의 지배나, 국가나 정부와 같은 권력기관의 존재를 아예부정하고 인간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상입니다.경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찬옥은 무정부주의라는 말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이제까지 자기 머릿속에 박혀있었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아나키즘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긴 하나 인간의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사상이라고 수긍했다. 일제의 억압을 받고 있는 인텔리가 숨 막히는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갖고자 하는 이념적 운동이라고 찬옥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여행에서 돌아와 시댁으로 신행 갔을 때 찬옥은 경의의 책상 위에 영국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 프랑스 쁘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 등 아나키즘 창시자들의 일본어 번역판 저서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경의가 아나키즘에 심취,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갈피에 흑백사진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열한 명이 두 줄로 찍은 사진이었다. 경의는 앞줄 오른 쪽에서 세 번째에 어느 여자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사진 아랫부분에 동경 아나키스트 동지들 1937.2.10.이라고 쓰여 있었다.찬옥의 시댁은 친정에서 불과 1킬로미터 쯤 떨어진 다가동에 있었다. 그 무렵 전주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던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조선인 부자들도 몇 집 살고 있는 동네였다.사람들이 시댁을 만석꾼으로 부르고 있으나 실상은 3천 석 정도 하는 집이었다. 한경의의 증조부, 조부 때는 6, 7천 석 했으나 2년 전에 세상을 뜬 경의의 선대인이 미두에 빠져 재산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경의의 선대인은 풍류를 즐겼던 한량이었다고 한다. 한경의가 여러 모로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 시어머니가 두어 차례 말한 적이 있다.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이 따로 있고 8백 평이 넘는 텃밭이 있는 너른 시댁에는 시조모 시모 그리고 온갖 집안일을 거들어 주는 만철이네 일가가 덩그렇게 살고 있었다.한경의는 독자이고 세 누나는 모두 고창, 부안, 남원으로 출가했다. 살림은 시모가 주관했다. 찬옥의 결혼생활은 평온했다. 시조모 시모 남편의 삼시 세 끼니를 차려드리는 것 이외에는 걱정거리가 없었다. 젊지만 묵직하고 태평스러운 남편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국악단 공연이나 음악회가 있을 때면 둘이서 빼놓지 않고 가기도 했다. 가까이 있는 친정에도 자주 다녀오고 전주여고보 친구들도 때때로 만나는 평탄한 생활이 어어졌다.시조모께서는 특히 찬옥을 금이야 옥이야 끔찍하게 아끼고 귀여워했다. 맛있거나 몸에 좋다는 음식을 보면 먹지 않고 두었다가 찬옥에게먹였다. 시모가 시샘을 느낀다고 입을 삐죽하곤 했지만 시모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찬옥에게 자모같이 항상 따뜻했다. 이 두 노부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찬옥이 옥동자를 낳아 이 집안의 대를 잇도록 하는 것이었다. 찬옥도 날이면 날마다 그것을 기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 1년이 넘도록 태기가 없었다. 노부인들은 물론 찬옥 내외, 찬옥의 친정, 한경의의 누나들까지 애태우기 시작했다.시모가 안채 뒤뜰, 깨끗이 씻은 장독소래기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하는 날이 많아졌다. 시조모는 불공을 드려 보라며 공찬헌금을 내놓기도 했다.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태기가 없었다. 겨울이 가고 새봄이 왔다. 집안 분위기가 생기가 없고 무겁게 가라앉았다.경의도 답답했던지 찬옥에게 미안하다며 동경에 얼마동안 다녀오고 싶다고 말해 그렇게 하라고 짐을 챙겨 주었다. 시모도 남원 막내딸 집에 가 있었다. 그 큰 집에 90이 넘은 시조모와 찬옥 만이 남게 돼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계속〉장성원
“노래 통해 전주에 활기 불어넣고 싶어요”
동시대 예술의 시선과 감각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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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전북문화 2025] ①희비 교차한 전북 미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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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윤일호 ‘거의 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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